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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진 칼럼] 메르스가 별것 아니라고?

    [손성진 칼럼] 메르스가 별것 아니라고?

    과거를 받들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守舊) 세력은 혼돈기가 되면 정의의 사도처럼 칼을 빼든다. 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와도 같다고 할 수 없는, 이념도 정파도 아닌 이 세력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맹목적인 신념에 자신을 붙들어 매고 있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는 자기 확신범들이다. 건전한 보수라면 필요할 때는 문을 열어젖힐 줄 안다. 꽁꽁 걸어 잠근 수구 세력이 보수의 탈을 쓰고 보수인 양 활개를 쳐도 양자가 뒤죽박죽이 된 혼돈에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구별해 낼 방도도 없다. 물론 진보에도 수구가 섞여 있다. 그들을 좌우 이념 논쟁의 장에 초대하는 것조차 사치스럽고 불필요하다. 보수와 진보가 발전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동안에도 그 속에 뒤엉켜 있거나 가면을 쓰고 숨어 있는 수구는 현실 안정과 과거 회귀만을 흔들림 없이 추구한다. 스스로 정한 원칙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표현과 행동은 늘 극단으로 치닫는다. 언뜻 보면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 즉 탐욕으로 얼룩져 있다. 메르스에 피로감을 느낀 수구 세력이 어김없이 ‘칼을 받으라’며 발호하기 시작했다. 명백하게 국가적 중대사안임에도 군중심리에 의한 호들갑쯤으로 이번 사태를 격하시키려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저변에는 사안의 중요성과는 무관하게 안정만을 추구하는 기득권층의 보신 논리가 숨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세월호 희생자는 교통사고 사망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1년에 폐렴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만명이 넘고 결핵으로도 수천명이 죽는데 무슨 대수냐는 것이다. 목숨의 가치를 숫자로 따지는 이런 무리들에게 인권, 특히 소수의 인권이 안중에 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지식인이라고 자부한다면 의미를 숫자에서만 찾는 것은 사유(思惟)의 부족이라고 나무랄 수밖에 없다. 1000명이 넘어야 목숨의 가치가 있고 한 명은 무의미하다는 논리는 해괴하다. 그런 논리라면 겨우 3명이 희생된 송파 세 모녀 사건이나 골방에서 숨져 간 청년 실업자 자살 사건에도 주목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리저리 휩쓸리는 대중의 속성과 언론 센세이셔널리즘의 문제점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를 부화뇌동으로 무시해도 될 만큼 현대 사회의 구성원은 몽매하지 않다. 수구 세력은 정보가 통제된 사회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억압된 대중을 떠올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수십 년 전과는 다른 자유의 힘으로 대중은 군중심리가 아닌 혜안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 그런 대중의 힘 또한 여론이 철권정치를 무너뜨렸듯이 지금도 국가나 정부보다 더 중요한 발전의 한 축을 맡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번지르르한 표피 속에 감춰져 있던 곪은 환부를 노출시켰듯이 메르스 또한 수많은 숙제를 국가와 사회, 또 국민 개개인에게 던졌다. 중국에서 전파돼 중세 유럽을 궤멸시킨 페스트에 메르스를 비교할 바는 물론 아니다. 전염병의 위험성보다는 정부의 무능함과 무사안일, 거대 조직(병원과 같은)의 무책임, 사회 구성원의 무신경 등 갖가지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구 세력에게는 파헤쳐진 더러운 속살이 거슬리고 눈꼴사나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결과들의 연원을 따져 보면 그들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그래서 어떤 비리,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더라도 파묻고 외면하려만 드는 것일까. 지금까지도 세월호 사건을 단순한 정비 불량 사고 정도로 덮으려 하는 것일까. 메르스가 페스트와는 다르더라도 정부와 국민이 무관심하면 결핵 이상의 돌림병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대중과 대중의 생각을 반영하는 언론이 잠자코 있는다면 어떤 상황이 됐을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지나친 과민 반응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재난이 닥쳤을 때 어렵잖게 극복할 수 있다. 재난 극복에 수구와 개혁, 보수와 진보가 따로일 수 있겠는가.
  • [사설] 아베 정부, 고노·무라야마 고언에 귀 기울여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일본 관방장관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 발표 때 역대 정권의 담화를 계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그제 일본 도쿄 일본기자클럽에서 고노 전 관방장관과의 대담에서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정권의 담화를 확실하게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국제사회가 제기하고 있는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노 전 장관도 일본군 위안부 모집 과정에서 명백하게 강제 연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강제성에 주목하면서 “군이 이동하면 군이 준비한 차에 타고 이동했다. 완전히 군의 관리에 의한 것이고 이를 보면 명확하게 강제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분명한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계승과 관련해 아베 정부의 기조는 아직 온도 차가 크다. 이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은 하고 있지만 담화의 핵심인 ‘침략에 대한 사죄’에 대한 계승은 아직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되레 물밑에서는 사죄와 관련한 대목을 걷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아베 담화 관련 자문 기구 측은 “총리가 더이상 사죄하는 데 대해 일본 국민 내에 위화감이 강하다”며 사죄란 표현을 넣는 데 반대하고 있다. 아베 측근들은 일본 국민의 정서를 핑계 삼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최근 들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라는 요구가 일본 내에서도 빗발치고 있다. 일본 지식인 281명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아베 담화에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양심 세력은 “침략과 식민 지배가 아시아 이웃 나라 국민에게 손해와 고통을 초래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며 일본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죄를 촉구했다. 아베 정부는 일본 국내에서 울리고 있는 일본 정치인·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아베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주장하지만 한국인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손을 내미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포함됐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이번 아베 담화에도 담는 게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절실하다.
  • 신규 원전 후보지 삼척·영덕 반대투쟁 2라운드

    신규 원전 후보지 삼척·영덕 반대투쟁 2라운드

    정부가 2029년까지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지역을 대상으로 신규 원전 2기를 신설하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발표하면서 지역사회가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9일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지역 주민들은 ‘우리 고장에는 원전이 절대 들어서면 안 된다’며 정부를 상대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반대 투쟁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삼척시는 지난해 원전 건설 주민투표를 실시해 주민 85%가 원전 수용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인근 시·군 등 강원지역 전역에서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져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외되는 게 당연시됐다. 삼척원전백지화투쟁위는 “제7차 전력수급계획안 확정을 또다시 미뤄 2018년으로 넘긴다면 삼척핵발전소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회를 위해 전 시민이 또다시 투쟁할 것”이라며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2018년으로 넘길 게 아니라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즉각 백지화하고 정부의 계획대로 분산형 전원기반 구축을 통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호 삼척시장도 “국회에 제출한 정부 7차 전력수급계획의 원자력발전소 부분이 종전 4기에서 2기로 줄이겠다는 등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는 만큼 우선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위원장과의 면담을 신청해 놓고 있다”며 “전력수급계획안에 삼척이 포함되면 시민 뜻에 따라 백지화 투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북 영덕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도 이날 “영덕에 새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반드시 찬반 투표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전임 군수와 군의회는 군민 의견 수렴도 없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내는 등 절차 문제를 드러냈다”며 “군과 의회가 군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민 스스로 전체 의사를 묻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영덕 원전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는 지역 종교계와 지식인 등 각계각층 인사들로 지난 8일 출범됐다. 주민투표추진위는 이날 영덕군청 앞마당에서 출범식을 갖고 향후 적극적 행동에 나설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강석 영덕군의회 의장은 “정부가 영덕에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것은 고리에 지으려던 원전을 가져와 건설하겠다는 것으로 고리 주민들이 반대하는 원전을 영덕 주민들은 선뜻 수용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가 원전 건설이 필요하다면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시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이미 고리원전 6기가 설치된 부산지역 환경단체 등은 원전 추가 건설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리1호기 폐쇄부산범시민운동본부 박재율 공동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원전의 위협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대부분 국가가 원전 축소 내지 폐지로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이 같은 원전 정책은 마땅히 제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일본 지식인 281명 “침략 등 반성·사죄…아베담화에 재표명”

    한반도 전문가 등 일본 지식인 281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전후 70년 담화에 사죄와 반성을 명확히 표명하고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韓·中에 고통 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시급” 이들은 8일 일본 참의원 회관에서 ‘2015년 한·일 역사문제에 관해 일본의 지식인이 성명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간 나오토 담화 등 일본 정부의 역사문제 담화의 계승을 확인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침략과 식민 지배가 한국, 중국 등에 손해와 고통을 초래했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다시 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언했다. 지식인들은 양국 간 역사 문제 중 가장 해결이 시급한 것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꼽았다. 고노 담화 이후 한·일 양국에서 새롭게 발굴된 위안부 자료를 통해 위안소의 설치·운영·관리 주체가 민간업자가 아니라 바로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며 일본이 국가적 책임을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성명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미즈노 나오키 교토대 교수,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오타 오사무 일본 도시샤대 교수 등 17명이 발기인으로 나섰고 한반도 전문가를 중심으로 281명이 서명했다. ●美·日 공동개발 ‘해상 요격 미사일’ 발사실험 성공 한편 이날 교도통신은 미사일방어(MD)의 하나로 미국과 일본이 공동 개발 중인 해상 배치형 요격 미사일 ‘SM3블록2A’의 첫 발사실험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탄두 등이 장착되는 미사일 앞부분인 노즈콘과 진로제어, 추진로켓 분리 등의 성능을 실험했다. 타깃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으며 실제 요격 실험까지는 진행하지 않았다. ‘SM3블록2A’는 현재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에 탑재된 ‘블록1A’의 개량형으로 2017년쯤 개발을 마친 뒤 해상자위대에 배치할 예정이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공자, 서양에 혁명을 선물하다

    공자, 서양에 혁명을 선물하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황태연·김종록 지음/김영사/368쪽/1만 4800원 “공자는 선지자가 아니고, 조금도 계시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도덕은 순수하고 엄격하며 동시에 인간적이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존경할 만 한 시대는 바로 사람들이 공자의 도를 따르는 시대였다.” 유럽의 근대를 연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가 ‘국민의 도덕과 정신에 관한 평론’(1756)에서 밝힌 내용이다. 새 책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 따르면 공자철학은 계몽주의의 토대가 됐으며, 동양 선비문화의 복사판인 로코코 문화를 꽃피운 원동력이었다. 공자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시민혁명을 촉발시켰다는 것을 서구맹종주의자들은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사료들과 철학 교류 이야기들이 책에 펼쳐진다. 책은 공자를 중심에 놓고 세계철학사를 재해석한 황태연 교수(동국대 정치외교학과)의 ‘공자와 세계’(전 5권)를 김종록 문화국가연구소장이 한 권으로 요약한 것이다. 프로이센제국의 왕립 할레 대학에서 총장을 맡았던 크리스티안 볼프는 1721년 이임식 연설에서 “공자의 언행은 그리스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덕철학의 보고다. 공자는 그리스도가 유럽에서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중국에서 받는다”며 공자의 무신론적 도덕철학을 높이 칭송했다. 종교계의 미움을 산 볼프는 조국에서 쫓겨나야 했지만 이 연설문은 해적판으로 인쇄돼 도처에서 활발한 토론의 주제가 된다. 이 밖에 라이프니츠, 루소, 흄, 애덤 스미스 등 우리가 아는 18세기 유럽의 최고 지식인들은 공자를 추앙하고 숭배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중농주의 자유경제론의 창시자 프랑수아 케네의 사상적 모태 역시 공맹, 노자의 무위이치, 민본주의, 농본주의, 자유상업론이었다. 이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태동에 공자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공자 열풍은 최초로 중국에 가톨릭을 전파한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 이래 공자철학을 가톨릭 사상과 유사한 것으로 해석했던 예수회선교사들의 시도에 의해 촉발됐다고 책은 전한다. 유럽 선교사들은 중국에 기독교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중국 문화를 배워야 했다. 그러다 만난 공자의 매력에 절로 빠져들었고 거꾸로 유럽에 열렬히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 후반부터 예수회 신부들을 통해 공자의 저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계몽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영국 명예혁명 이전에 유교의 사서(四書), 즉 논어, 맹자, 대학, 중용과 주역, 효경, 소학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된 상태였다. 공자의 철학과 사상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어 있던 유럽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급기야 유럽사회에 공자 열풍이 불었고, 유럽의 경험주의자들은 공자철학의 지원을 받아 스콜라철학과 그리스합리주의를 분쇄하는 사상투쟁을 벌인다. 프랑스대혁명은 그 산물이었다. 이랬던 동아시아가 왜 서구 열강에 참패했는지에 대해 저자들은 ”18세기 중국과 조선은 부족할 것 없이 두루 갖춰져 있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느 문명이건 정체는 곧 퇴보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반면 16~18세기 유럽은 동양과 여타 세계에 많은 관심을 두고 세계 각지로 진출하며 도처에서 문물을 받아들였고 서구문명을 꽃피웠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은 제국주의로 옷을 갈아입고 문명개화라는 명목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약탈했다. 책은 “공자철학은 이성보다 감성을, 추리보다 경험을 앞세우고 천성적 욕망과 감정을 선하게 여기며 인의(仁義)의 덕성을 지식보다 중시한다”면서 “서구 경험론과 굳게 연대한 공자철학이야말로 인류의 새 삶을 디자인할 확실한 대안철학”이라고 강조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외교 위기 아니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의 지식인들과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니 이 다음에 중국과 힘을 합쳐 일본에 적대적인 나라가 되지 않을지 걱정됩니다”라고. 한국과 중국의 지나간 역사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멀리 조선시대로 되돌아가 한국이 중국에 조공 바치던 역사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은 한국전쟁 때 대규모의 군대를 출병해 남북이 분단되도록 한 나라라는 역사적 판단도 못 하는 것이다. 중국과 국교를 열고 지금은 명동에 중국인이 넘쳐 나지만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중국과의 역사 관계에서 배태된 ‘중국 공포’라는 염색체가 단단히 박혀 있다는 사실은 웬만한 한국 사람들은 다 안다. 단지 중국과의 관계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명철하게 알고 있고 이 다음에 혹여 경제적 힘에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스런 속내들이 있다. 그래서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면서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것이 대중적 상념일 것이다. 그러면 일본과는 어떤가.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침략 사과에 대해 “너무 자주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속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반성과 사과에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감상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총리가 사과를 하면 며칠도 안 가 각료 중 한 사람이 과거사 망언을 되풀이해 왔으니 말이다. 위안부 문제와 식민 지배에 대한 억울함을 딛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로 가자고 약속한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한국이 이런 대승적 견지에서 일본을 용서하고 파트너로 생각하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 나름대로 민주주의 가치를 지닌 국가 경영을 해 왔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신뢰의 바탕 위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좋은 관계를 심화해 나갈 것이고 이 관계는 한국의 미래에 좋은 토양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한·일 관계가 경색돼 있지만 조만간 풀릴 것이라는 낙관적 평가를 하는 이유도 한반도 주변 국가 중 일본이 그래도 민주주의의 가치가 훈련된 나라라고 한국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이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은 어떤가. 중국과의 지나간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중국이 과거처럼 동북아를 바라본다면 결코 주변국의 속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일본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군사력 증강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이 기존 질서를 흩트리고 이미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를 넘보면서 심지어는 난사제도를 군사요쇄화하며 필리핀·베트남을 불안하게 하니 미래가 불 보듯 뻔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중국의 국력이 강대해지면 강대해질수록 주변국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한 중국이기에 더욱 그러하고 미국을 맞상대하는 힘이 길러지면 힘의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중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한국이 선진국을 향해 달려가려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와 같이 전쟁이 없고 평화가 유지돼야 한다. 중국의 대두, 미·일의 신방위협력지침으로 한국 주변의 안보 상황에 큰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가 위기가 아닌가”라는 물음이 쏟아지고 있다. 필자는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 국민들이 한국 주변의 변화에 촉각을 세워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해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한국 주변의 가장 큰 변화인 일본의 우익화, 중국 대두의 바닥에서 군사력 증강에 많은 돈을 쓰는 중국과 일본을 보게 된다. 그래서 한국이 능동적으로 나서서 국가 예산을 허비하는 군비경쟁을 해소하고 중국·일본 국민들의 복지증진과 경제적 번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한국이 주도해 만들어 나가는 외교의 길을 택하면 설득력이 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겠지만 침략의 역사가 없는 한국이 동북아 평화의 꿈을 그리는 대화 체제를 제안하며 꾸준한 설득해 나가면 번영의 동북아가 될 수 있다. 위기의 한국 외교가 아니라 기회의 한국 외교가 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 “인간 존엄 짓밟은 역사, 위안부 할머니께 사죄”

    “인간 존엄 짓밟은 역사, 위안부 할머니께 사죄”

    일본 교회의 양심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식인 등 15명으로 구성된 ‘사죄와 화해 방문단’(단장 무라오카 다카마츠 교수)이 27일 오후 경기도 용인 수지구 새에덴교회에서 ‘사죄와 화해의 예배’를 드렸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방한한 이들은 예배에서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강제하면서 한국교회에 상처를 준 과거사를 사죄하고 직접 사과문을 낭독했다. 방문단은 이에 앞서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관하는 1180차 수요 집회에도 참석해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났다. 이들은 할머니들께 드리는 사죄문을 읽으면서 일본의 과거사를 참회하고 사죄했다.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지의 대학에서 헬라어·히브리어를 가르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해온 무라오카 다카마츠 교수는 “일본군이 여러분에게 상처를 입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짓밟은 역사는 저희 조국의 역사라는 점에서 저도 일본 국민으로서 책임이 있다”면서 “희생자의 상처를 악화시키는 현 정부의 모습에 일본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고 심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무라오카 교수는 특히 “22년 전 고노 관방장관 담화와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 이후 아베 내각을 비롯한 일본 정부는 전임자의 발언에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하면서 희생자의 상처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광주 항쟁, 파리 코뮌보다 영향력 컸다”

    “광주 항쟁, 파리 코뮌보다 영향력 컸다”

    폭압에 맞서다 빚어진 숱한 죽음의 진실이 가려져 있던 그 시절, 또 시간이 흘러서도 그 희생의 의미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 시절 광주는 외국의 언론인, 지식인들에게 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던 배경에는 당시 서독 공영방송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78)가 있었다. 그가 찍었던 5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은 1982년 거꾸로 한국에 들어왔다. 광주 아닌 지역의 시민들은 흔히 ‘독일 비디오’, ‘일본 비디오’ 등으로 표현되는 외신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군부독재정권과 수구 언론이 시민폭동, 혹은 북한군 개입 등으로 매도하고 왜곡해 왔던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서구 지식인이 있다. 미국의 정치사회학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68) 보스턴 웬트워스공과대학 교수다. 1980년 5월 광주의 의미가 국내에서도 지역의 영역에 머문 채 소모적이고 정략적인 사실 공방만을 벌이거나 박제화한 명예의 틀 안에 갇히고 얼마간의 보상금 지급 문제에 얽매여 있을 때 1980년 뿜어졌던 광주의 빛줄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 갔음을 자각하게 해 준 이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최근 2012년 영문으로 펴낸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를 한국어로 번역해 ‘아시아의 민중봉기’와 ‘한국의 민중봉기’(오월의 봄 펴냄) 등 2권으로 내놨다. 사회활동가이자 연구자인 그가 10년 넘는 세월을 통해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특히 ‘한국의 민중봉기’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시작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봉기’(uprising)의 관점에서 그 내용은 물론 배경과 성격, 역사적 의미 등을 담아낸 한국 근현대사 속 민중항쟁의 연대기다. 엄연한 외부인의 시각이지만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연대의 관점을 놓지 않은 내재적 접근의 태도를 취했다. 그는 “한국의 풍부하고 고통스러운 봉기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학 연구에서 거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가장 훌륭한 영어판 한국 역사서 가운데 하나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역시 광주에 대해 겨우 1쪽을 할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막스 베버나 카를 마르크스는 극동(far east)의 문화가 서구 문명의 거대담론 외부에 존재한다고 인식했다. 또한 표트르 크로폿킨과 같은 급진적인 아나키스트들조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관점을 공공연히 밝혔다. 위르겐 하버마스 역시 에른스트 놀테와 진행한 ‘역사가 논쟁’에서 아시아를 악과 연결하는 인식의 기초 위에서 논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여전한 서구중심주의 담론의 편향성, 서구우월주의 등은 엄존해 있다. 특히 그는 광주가 세계 혁명사에 던진 세계사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는 20세기 말 필리핀, 대만, 방글라데시, 네팔,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벌어진 엄청난 정치 변화의 중심에 광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그는 “각 나라 수천명의 인명 희생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운동들이 독재를 ‘민주적’ 체제로 변혁할 때 광주의 자랑스러운 피플파워의 모범은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또한 “직접민주주의와 자치의 측면에서 볼 때 광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1980년 광주에서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파리코뮌처럼 자유와 민주주의가 민중 삶의 핵심 성격으로 자리매김되며 범죄율이 급감하는 등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어떤 관점에서는 파리코뮌(1871년)보다 세계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1968년 5월 프랑스를 휩쓴 68혁명에 관한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으로 잘 알려진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2001년 전남대 5·18연구소 객원교수로 일하면서 광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는 21일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미국 유학파 지식인의 두 얼굴

    미국 유학파 지식인의 두 얼굴

    지배받는 지배자/김종영 지음/돌베개/318쪽/1만 6000원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계층이론을 내놓으며 지식인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규정했다. 지식인들은 문화적 영역의 지배자이면서 그것조차 아우르는 경제적 영역을 담당하는 자본가 계층의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가 칭하는 ‘지배받는 지배자’는 지식공동체, 특히 한국 대학사회 속 ‘미국 유학파’들을 특정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적·문화적 헤게모니를 갖고 있지만,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이들이다. 김 교수는 단순한 한국 사회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담론이 아닌, 지식 생산의 글로벌 위계를 통해 그 생성과 발전의 과정을 분석했다. 기실 역사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늘 선진국에서 배워 오는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신라시대에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고, 조선시대에는 실학을 배우러 명나라·청나라를 향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근대화를 배우기 위한 방편으로 일본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이들이 세상을 차지해 왔다. 미국 유학파들은 ‘영어’라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방법과 유학을 통해 다진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구 학계의 선진 연구 결과를 맨 먼저 받아들였다. 뒤에서는 ‘지식 수입상’이라는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국내 학계에서 엄연히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 따른 루저들의 질시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미국 유학파를 모두 삐딱하게 볼 수만은 없다. 글로벌 문화자본의 축적을 통한 사회적 지위 상승의 욕망뿐 아니라 국내 대학의 폐쇄성, 봉건성으로부터 탈출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의 열망 등도 주요한 요인이다. 실제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대학의 자유로운 연구 풍토, 개방성, 공정성 등을 배워 와 한국 대학의 비민주성을 개혁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김 교수는 1999~2005년, 2011~2014년 두 번에 걸쳐 미국·한국 곳곳을 찾아가 심층면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발과 가슴으로 담아 낸 연구 결과임을 방증하고 있다. 덕분에 언어와 학비 문제, 연구조교 생활, 학위 취득 뒤 취업 과정 등 미국 유학을 둘러싼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까지 포함해 생생한 사례들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저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국내 대학 풍토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일본 과거사 반성’ 지키기 나선 日시민단체

    ‘일본 과거사 반성’ 지키기 나선 日시민단체

    철거 위기에 놓인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도비를 지키기 위해 일본 시민단체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2일 민단 등에 따르면 일본 군마현 다카사키시 ‘군마의 숲’에는 2004년 세워진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도비가 있다. 추도비 앞면에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강제 징용 등으로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를 반성하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한글과 일본어로 기록돼 있다. 군마현은 지난해 추도비 갱신 불허 판정을 내렸다. 보수우익단체에서 “비문이 반일 내용을 담고 있고, 추도집회에서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추도비 철거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맞서 의식 있는 군마현의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조선인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이 결성됐고, 민단 군마본부도 힘을 보탰다. 추도비 모임 측은 “군마현이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이라며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지난해 11월 마에바시 지방법원에 냈다. 지난달 18일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 희생자 추모집회가 열렸고 시민 180여명이 제단에 헌화하기도 했다. 이노우에 데루오 추도비 모임 공동대표는 “2차대전 말기에 조선에서 100만여명이 강제 징용(징병)돼 다수 희생자가 나왔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피해 배상은 물론이고 정확한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일본이 주변국에 끼친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을 통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추도비를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작된 서명운동에는 일본 시민뿐만 아니라 민단과 재일동포도 적극 나서 지금까지 4만명이 동참했다. 모임 측은 서명록을 첨부해 6월 군마현의회에 추도비 설치 기간 갱신을 요구하는 청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박선용 민단 군마본부 단장은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한 계속 사과를 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라며 “우경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양식 있는 지식인과 시민들은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동학혁명, 실은 영남에서 싹텄다

    동학혁명, 실은 영남에서 싹텄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 반봉건, 반외세를 전면에 내걸고 기층 민중들이 이뤄낸 사실상 첫 번째 운동이라는 굵직한 이정표를 남긴 동학농민혁명은 흔히 전라도, 충청도를 주 무대 삼은 것처럼 기억된다. 혁명의 불씨를 던진 전라도 고부의 농민 봉기와 농민군이 처음 관군에게 승리를 거둔 전라도 정읍 황토현 전투, 관민상화(官民相和)책으로서 ‘거버넌스형 자치기구’인 집강소를 전라도 전역에 설치한다는 합의, 일본군과 관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뒤 혁명의 기세가 꺾인 충청도 공주 우금티 전투 등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굵직한 역사의 공간이 모두 충청도와 전라도에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군과 결합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의 주요한 사상적 기반과 실천적 방향을 제공한 동학의 발원지는 오히려 영남 지역이었다. 동학학회는 15일 영남대에서 조선 후기 유림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경상도 일대에서 동학을 창시하고 전파한 과정을 밝히고 그 의미를 되돌아보는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대구 감영과 1894년 경상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동학농민혁명 제121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갖는다. 동학농민 혁명사에서 대구와 경상 감영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을 사료 연구로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한국 근대사 발전 과정에서 경상도 지역이 기여한 바를 규명하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실제 동학농민혁명이 본격화한 1894년 3월 1차 봉기에 북접 계통에 속하는 경상도 지역 동학 조직은 가세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학은 ‘척왜(斥倭)’의 기치를 분명히 들었고, 경상도 동학 조직은 일본 침략 경로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일본군들이 그해 6월 21일 경복궁을 기습 공격했다는 사실은 세력 확장의 명분이자 배경이었다. 동래에서 수륙 양쪽으로 진격하는 일본군 앞에 속수무책인 경상 감영과 달리 가장 먼저 일본군과 대적하는 전투를 개시했다. 처음에는 전신소를 공격하는 등 게릴라 전술을 폈고, 8월에는 경북 예천 읍내 일본 병참부를 공격하며 9월 전라, 충청 지역의 2차 봉기 결정을 선도하는 역할도 맡았다. 신영우 충북대 교수는 “경상도 북서부 군현의 동학농민군의 공세 대상은 문경, 상주 등 북상하는 일본군 병참부와 군용전신소를 공격하는 것이었고, 이는 청과 전쟁을 벌이려 하는 일본군에게 절실한 문제였다”는 경상도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약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척왜 싸움은 물론, 내치 측면에서도 경상도 지역 농민들은 소송까지 관아가 아닌 동학 조직을 찾아가 할 정도로 의지했다는 점도 밝힌다. 이뿐 아니다.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1824~1864)는 경주에서 태어나 울산과 경주 등에서 수도를 하고 동학을 일으킨 뒤 대구읍성 남문 밖 관덕당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의 목은 사흘간 남문 장대에 걸려 있었다. 경북 상주 동학교 및 교당(지방문화재 민속자료 120호)은 최제우 사후 남접 김주희가 창시한 동학 및 동학 교당이다. 이렇듯 경상 지역은 동학이 시작하고 이론적 체계가 완성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상주 동학교당에 보관 중인 동학대전, 동학경전 발간물과 목판 등 289종 1425점의 영남 지역 동학 관련 유물들은 한창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1890∼1950년 전후까지 상주 동학교에서 포교활동을 위해 생산한 기록물 일체로 전적, 판목, 복식, 교기, 의기 등으로 이뤄져 있다. 물론 유교 지식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상도의 지역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19세기 후반 외세 침략과 유교사회 내부의 변동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영남학파 유생들은 상소와 격문을 통해 동학을 ‘좌도난정(左道政·잘못된 도리로 세상을 어지럽힌다)’으로 규정하고, 동학군을 집권체제 및 양반지배층에 대한 심각한 반역의 무리로 바라봤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지금까지 확인된 경상 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들은 주로 토벌군이나 민보군, 그리고 유생들이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농민군이 직접 기록한 자료는 최근에 알려진 ‘학초전’을 제외하고는 전무한 실정”이라면서 “경상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제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老사상가 백낙청, 대전환을 고하다

    老사상가 백낙청, 대전환을 고하다

    1966년 당시 28살의 젊은 논객은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라는 도발적 논문을 썼다. 개인적 감상(感傷)과 감각적 문체가 각광받던 당시 한국의 문단 풍토에서 주창한 ‘시민문학론’은 파천황적인 충격이었다. 김승옥, 이청준 등의 문학은 찬탄이 아닌 극복의 대상이 됐다. 미국 유학을 갓 마치고 온 뒤 계간 학술문예지 ‘창작과비평’을 창간시켰던 백낙청(77) 서울대 명예교수다. 1970년대 들어 서구 문학에 주눅들어 온 문단에 민족문학론을 내세우며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물줄기를 뚫었고, 문학이 시대와 별개로 존재하지 않음을 각인시켰다. 백 명예교수는 이후 분단체제론, 중도주의 변혁론, 2013년체제론 등으로 시대적 실천담론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제시해 왔다. ●한국사회의 근본적 탈바꿈을 위한 동력 찾아나서 반백년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15년, 이제는 문학평론가, 인권운동가, 통일운동가 등 실천적 지식인에서 노사상가로 자리매김된 그가 다시 한번 한국사회에 파천황적인 대전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올 초부터 정치·경제·교육·환경·여성·노동·남북관계 7개 분야의 현장에서 내공을 쌓아 온 전문가들을 차례로 만나 묻고 답하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대담집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를 펴냈다. 현장에 깊숙이 뿌리내린 이들의 목소리에서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방향과 동력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계간 창비 가을호에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를 기고한 것이 대담 기획의 계기였다. ‘적공’과 ‘전환’은 내공을 깊게 쌓고 변화를 준비하자는 의미다. 실제 백 명예교수와 얘기 나눈 이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사회 전체에 대한 설계가 가능할 전문가들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이범 교육평론가,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김영훈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박성민 정치평론가다. ●대중과 함께하는 중도노선 큰 틀 속 변혁의 관점 놓치지 말아야 백 명예교수는 지난 대선 전에 내놓았던 ‘2013년체제론’에 대해 “당시 선거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스스로도 대선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었다. 그럼에도 2013년체제는 만들어지지 못했다”면서 “좀 더 겸허하게 묻는 자세로 나아가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이번에는 내 생각보다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하면서 이 세상이 어떤 면에서 바뀌고 있고 어떤 면에서 안 바뀌는지, 안 바뀌고 있다면 왜 안 바뀌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고 대담집 기획의 배경을 설명했다. 각 대담을 관통하는 것은 ‘중도주의 변혁론’이다.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힘을 합치고, 더욱 광범위한 대중과 함께하는 중도 노선을 강조하면서도 진정한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변혁의 관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백 명예교수의 문제제기와 대안 제시가 곳곳에 깔려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창조경제 전도사’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윤종록 원장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창조경제 전도사’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윤종록 원장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은 말 그대로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정보통신산업의 진흥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관련 정책 연구 및 수립을 지원하고 전문인력 양성 등 기반조성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이곳 수장은 미래창조과학기술부 2차관을 지낸 윤종록(58) 원장. 윤 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아이디어를 제시, ‘창조경제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3월 19일 원장 부임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역동성 회복에 진력하고 있다. 윤 원장을 만나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문제점, 성장 가능성 등에 대해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 NIPA 원장실에서 진행됐다.→경제에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창조경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나가는 부분과 기존 산업이 ICT 융합을 통해 역동성을 갖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은 핀테크 등 지금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기존 산업을 ICT와 어떻게 융합해 가느냐, 이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조선·자동차 등이 지난 50년간 넘버원으로 해 왔으나 이제 사양산업으로 접어든다고 할 게 아니라 이것을 ICT라는 비타민을 통해 다시 역동성을 제고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미국도 실업률이 떨어지고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을 5.5%까지 했는데 원인을 들여다보면 창업을 많이 하고 기존 산업이 ICT를 통해 역동성을 되찾아 가는 두 가지가 합쳐져 현재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기존 산업이 역동성을 되찾는 것과 ICT와 과학기술이 접목해 새로운 이노베이션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두 가지가 잘돼야 한다. 창조경제라는 것은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것과 기존 산업이 역동성을 찾는 것 두 가지 다 아울러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기존 산업 분야에서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고 했는데 국내 업계 대표들이 이를 잘 모르나. -생각들은 다 있으나 절실함을 많이 못 느끼는 것 같다. 다른 성공 사례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제조업은 만들어서 팔아 버리면 끝이다. 이를 서비스로 바꾸면 한번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연장이 된다. 항공기 엔진으로 유명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는 엔진을 팔면 센서, GPS를 장착한다. 어느 항공기에 탑재되든 엔진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데이터를 GE 본사로 보내온다. 그러면 GE에서 사후관리서비스를 한다. 엔진이라는 제품을 서비스로 실시간 관리함으로써 엔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매출이 계속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네덜란드 헨드릭스(Hendriks)의 주력 사업 변신도 참고할 만하다. 이 회사는 가축 사료 업체에서 출발해 가축 질병 진단 키트 개발에 이어 질병 백신 보급으로 생산 업체에서 서비스 업체로, 종국에는 솔루션 업체로 변신한 경우다. 우리나라도 선박 엔진, 현대중공업의 선박 엔진이 전 세계 중대형 선박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GE처럼 현대중공업도 센서를 부착해 대서양 등 전 세계 어디를 운항하든 관리해 줄 수 있는 서비스 회사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 기술로도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하다. 사물인테넷, 센서를 부착하고 와이어리스로 빅데이터를 활용할 클라우딩을 연결해 놓으면 그 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다. 지난 2월 현대중공업에 갔었는데 이런 얘기를 같이 했다. 그쪽에서도 굉장히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적한 대로 전통산업 분야에서도 ICT 융합 마인드를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전통산업 분야에서 혁신 바람을 일으킬 아이디어로는 어떤게 있나. -무엇보다 기존 산업과 ICT 융합을 통해 업그레이드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CEO가 융합 개념을 확실히 인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신발 회사를 운영하는 CEO에게 ‘ICT 융합을 통해 우리 회사를 이렇게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전통산업 CEO가 융합 관점에서 자극을 받고 변신해 갈 수 있도록 이른바 명품융합과정(AMP 과정) 개설을 검토 중에 있다. 단순한 제품 제조 회사가 서비스에서 솔루션 회사로 성장한 네덜란드의 헨드릭스 같은 사례를 제시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 한다. 이를 위해 융합을 원하는 전통산업 기업과 ICT 솔루션 기업을 연결해 주는 이른바 ‘융합센터’ 설립도 검토 중이다. →ICT 융합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랄까, 목표는 뭐라고 할 수 있나. -좋은 질문이다.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거나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는 것뿐이다. 값싼 노동력이 경쟁력을 상실했다면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는 ‘브레인 경제’로 바꿔야 한다. 중요한 것은 두뇌를 잘 활용해 혁신하는 것이다. ICT 융합을 통한 혁신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 자원이 없는 나라는 ICT 융합 외에 대안이 없다. 상상력을 혁신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를 잘 활용한 나라로 꼽은 이스라엘을 연구한 책도 냈던데. -맞다. 창조경제는 상상력을 이노베이션이라는 혁신으로 바꿔 주는 것이라고 본다. 최근의 혁신적 변화는 거대한 과학기술이 아니라 작은 상상력이 바꾼 것이다. 예를 들면 구글은 15년 전 태어났다. 현 주식을 다 팔면 200조원 정도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다. 그런데 노벨상 몇 개 만들어 냈느냐. 아니다. ‘구글 서제스트’란 검색엔진 하나가 등장한다. 검색하다 보면 단어 하나 집어넣었는데, 예를 들어 ‘NY’를 집어넣었는데 알아서 막 제안을 한다. 그게 야후를 무너뜨린다. 이후 승승장구해 세계 2위까지 왔다. 구글 서제스트라는 간단한 상상력이 구글을 바꿨다. 우리 네이버도 15세로 구글과 나이가 같다. 네이버 분당 사옥에 가 보면 24층 건물 하나 있는데 그 안이 컴퓨터로 꽉 차 있다. 이 회사 주식을 다 팔면 KT에 SKT 주식을 다 판 것과 같다. 네이버가 노벨상 만들었는가. 아니다. 네이버 지식인이 모티브가 돼 큰 회사가 됐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상상력이 거대한 이노베이션의 출발선이었다. 상상력을 혁신으로 바꾸는 것이다. →상상력을 이노베이션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를 바꿔야 한다. 교육, 문화, 금융시스템 등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공식적 조직을 비공식적으로 바꾸고, 수직적 문화를 수평적 문화로 바꿔야 한다. 교육에서도 질문과 토론을 통한 창의성 교육을 하고, 금융에서도 리스크를 감당할 줄 아는 벤처 금융을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받쳐져야 한다. 이런 게 다 됐을 때 창조경제가 ‘풀 스피드’를 낼 수 있다. 창조경제가 몇 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기보다 어느 정도 속도로 가느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겠는가. 창조경제는 경제 패러다임이다. 산업경제시대 손발의 부지런함으로 움직이는 데서 두뇌로 변화하는 것이니 몇 년 안에 성과가 난다기보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SW)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 -우리가 특별히 약한 게 소프트파워다. 하드파워는 강한데 이 약한 소프트파워를 강하게 하는 것, 이것이 창조경제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브레인(두뇌)이 움직여야 하는데 브레인은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를 강하게 하려면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에코 시스템이 잘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가능하면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를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에 필요한 것은 영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인 ‘컴퓨터와의 대화’다. 영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컴퓨터와 대화하면 학부모들은 아이들 게임중독을 떠올리며 말리지 않나. -게임은 제가 말한 컴퓨터와의 대화 중에서도 수동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말하는 컴퓨터와의 대화는 남이 만든 게임에 중독될 정도로 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게임을 만드는 데 중독돼 버리게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버리는 방향에 초점을 둬야 한다. 내가 만드는 데 중독되게 해야 한다. 좋은 개념의 중독이다. 다음 세대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 직업 환경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향후 20년 내 미국 일자리 절반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자동화돼 소멸할 것이며, 새로운 직업들에는 창의적이고 사회적인 역량이 필요하리라는 전망이 있다.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은 정해진 지식을 습득하기보다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찾고 배워서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은 모두를 개발자로 만들려는 게 아니라 교육 과정을 통해 스스로 문제 해결 능력을 찾아내는 창의력 교육의 한 과정이다. →핀테크 사업을 보면 구글·알리바바 등 정보기술(IT) 기업 중심으로 잘되는데 핀테크 산업을 국내에 조기 정착시키려면. -편리하고 보완도 유지해 주는 상충되는 가치를 유지시키는 기술을 누가 갖느냐의 싸움이다. 그런데 중국이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다는 이점이 있다. 개인의 거래 상태 등을 빅데이터 등을 통해 즉각 체크할 수 있는 빅데이터 산물, 알고리즘을 갖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인간이 생각해서 기계 만들고 도움을 주는 것인데 기계로 인해 일자리가 날아가 버리는 형국 아닌가. -정보화라는 부분이 인간 역량을 기계에 위탁하게 하는데, 속도는 컴퓨터에 의존할지 모르나 창의성은 그래도 결국 인간의 몫이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 몫이라고 본다.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속도를 보조하는 것이지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NIPA가 다음달 진천·음성 혁신도시로 옮긴다고 들었다. 이전 준비는 잘 되고 있나. -이전하면 당분간 불편하겠지만 ICT 융합을 통해 경제 역동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 우리에게 주어진 비전과 미션을 공유하고 빨리 안착하도록 하겠다. 특히 진천 시대를 맞이해 지역사회 지원 사업을 확대할 생각이다. ICT를 응용해 습도·온도 조절 등 농작물을 기르는 환경을 조절하는 이른바 ‘스마트팜’ 시범 사업 등 NIPA 차원의 지역밀착형 ICT 융합 활동을 추진하려 한다. 박현갑 편집국 부국장 eaglduo@seoul.co.kr ■윤종록 원장은 윤 원장은 한국항공대 항공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해 미래창조과학부와 KT에서 우리나라 통신망 현대화를 기획하고 집행했다. KT의 마케팅본부장, 연구개발 부사장, 미국 벨연구소 특임연구원,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을 지냈다. 우리나라처럼 자원 빈국이면서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부상한 이스라엘의 성장 비결을 다룬 ‘후츠파로 일어서라’(2013)를 저술하고 ‘창업국가’(2010)라는 책도 번역했을 정도로 ‘ICT 비타민’을 통한 산업의 업그레이드에 관심이 많다. 정보통신 업체 근무에다 관련 부처 정책을 다뤄 현실감과 정책 비전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 말로, 그의 발 닿는 곳마다 다른 바람이 불다

    말로, 그의 발 닿는 곳마다 다른 바람이 불다

    앙드레 말로 평전/장 라쿠튀르 지음/김화영 옮김/김영사/652쪽/2만 5000원 ‘인간의 조건’, ‘정복자’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은 걸작을 남긴 뛰어난 문인이자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측근으로 문화부 장관을 지낸 프랑스의 대표 지성 앙드레 말로(1901~1976)는 “나의 모든 소설 중 최고의 소설은 바로 나의 삶”이라고 했다. “오직 나 개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겠는가”라며 문학, 미술, 탐험, 전쟁, 영화, 정치를 종횡무진했던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를 웅변하는 말이다. ‘르몽드’와 ‘누벨옵세르바퇴르’지 등 프랑스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대기자이자 전기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쌓은 장 라쿠튀르가 펴낸 ‘앙드레 말로 평전’이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말로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73년 초판이 발행된 평전은 1982년 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됐으나 출판했던 홍성사가 문을 닫아 오랫동안 절판됐었다. 평전은 무엇보다도 말로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삶과 문학, 사유와 행동의 궤적을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의 관점에서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칠고 밀도 짙었던 말로의 삶을 하나의 작품처럼 재구축해 보여 준 라쿠튀르는 말한다. “그가 다녀온 지평에서는 항상 바람이 다르게 분다.” 20세기가 첫발을 내디딘 190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0대에 1차 세계대전의 격동을 맞이한 말로는 파리에서의 댄디 생활을 털고 인도차이나, 스페인, 소련, 오리엔트의 사막 등 광대한 지역에서 벌어진 치열한 모험 속으로 몸을 던졌다. 희귀본을 찾아내 판매하며 출판사 기획자로, 집필자로 활동하던 그는 스무살 때 이국에 대한 호기심에 프랑스령인 인도차이나 반도로 향한다. 고대 앙코르와트 사원의 조각을 밀반출하려다 도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감옥에서 식민 지배에 심한 혐오감을 느낀 그는 열렬한 반식민주의자가 됐다. 1924년 프랑스로 돌아오던 길에 중국에 들른 말로는 사회주의혁명의 소용돌이를 직접 목격한다. 1933년 장제스가 공산당을 탄압한 상하이 쿠데타를 무대로 한 소설 ‘인간의 조건’을 발표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나치 수용소를 그린 ‘모멸의 시대’로 전체주의를 비판한 그는 1936년 스페인내전이 일어났을 때는 직접 가담해 싸웠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망’에서 스페인의 파시즘을 고발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레지스탕스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전선에서 샤를 드골 장군을 만났다. 드골 장군의 첫 번째 내각에서 공보장관을 지냈으며 1959년부터 10년간 드골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1969년 드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함께 은퇴했다. 1976년 만성 폐출혈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말로는 1996년 서거 20주기를 맞아 프랑스 최고의 국가유공자들만 안장된 파리 판테온 사원에 유해가 안장됐다. 김 명예교수는 해제에서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사건들 속으로 몸을 던진 말로는 인류의 복지와 건전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말로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치열한 모험을 통해 초극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역사가도 사람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

    “역사가도 사람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이영석 지음/푸른역사/476쪽/2만 8000원 ‘내가 다루려는 주제는 쾌락으로서의 역사다. 힘들고 바쁜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허용되는 여가 시간을 기분 좋고 유익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역사 말이다.’(버트런드 러셀) 역사학자의 논문이나 저술은 딱딱하고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갈파했듯이 역사 읽기는 난해한 기피의 장르만은 아니다. 역사가 역시 개인적 단상과 주관을 충분히 견지한 채 살고 있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은 사회사·경제사에 일가를 이룬 역사가 12명을 통해 문명과 세계사의 이면을 들춘 책이다. 한국서양사학회장을 지낸 이영석 광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12명의 궤적과 대표작을 훑어 역사 이면의 역사를 소개했다. 윌리엄 호스킨스, 로런스 스톤, 로이 포터, 에드워드 톰슨, 에릭 홉스봄, 니얼 퍼거슨, 데이비드 캐너다인, 사이먼 샤마, 시어도어 젤딘, 아널드 토인비, 한국 학자 이순탁·노명식 교수가 주인공들이다. 영국사 학자답게 책 속 주인공들은 영국학자에 편중된 느낌이다. 그러나 단선적 영국사에 머물지 않고 문명과 세계사를 연관지어 풀어낸 울림이 작지 않다. 로런스 스톤은 대표적인 학자로 다가온다. 스톤은 영국혁명의 원인을 튜더-스튜어드 왕조시대 귀족사회의 위기로 지목, 학계로부터 비판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학자다. 스톤은 귀족층의 낭비가 심해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런 현상이 중세후기에 형성된 중산적 토지소유층인 ‘젠트리’(향신)의 대두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스톤은 미국으로 옮긴 뒤 학계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영국혁명의 요인을 재차 강조했다. 군주정에의 존경·복종심이 약화됐고, 국교회 또한 다른 종파에 대한 포용력을 잃었으며 귀족층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절대권력의 교회가 공식 교회 결혼식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치르는 비밀결혼이 성행했고 결국 법과 교회법정을 무너뜨렸음을 제시한다. 역사 서술이 문자언어에서 영상언어로 전환되는 경향의 추적도 흥미롭다. 역사가들은 영상물이 여흥이나 오락 성격이 강하고, 역사학의 정체성과 영상언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영상물로서의 역사 접근을 폄훼하고 기피한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예술사 교수인 사이먼 샤마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영상물 역사서술을 시도했다. 샤마 교수는 BBC ‘브리튼의 역사’에 참여해 영국사의 그늘을 들춰냈다. 서민 삶에 관심을 둔 낭만주의 지식인들의 혁명분위기 주도며 산업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전면 부상, 나폴레옹전쟁, 차티즘운동…. 이런 부분들을 카메라 앞에서 일일이 서술한 샤마를 놓고 저자는 ‘영화 탄생 이후 처음으로 역사가가 영상역사물이란 새 형식의 저자가 됐다’고 말한다 아널드 토인비의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도 눈길을 끈다. 토인비는 1929년 안식년을 맞아 중국, 일본, 조선, 만주 등 동아시아 일대를 답사해 ‘중국으로의 여행’을 펴냈다. 토인비의 동아시아 여행은 그의 문명사 서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중국으로의 여행’과 이에 바탕한 ‘역사의 연구’에 드러난 동아시아 인식은 중국에 쏠려 있다. ‘중국에서는 아래로부터 위로 서구화를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면서 자주 제동이 걸렸지만 실제 중간계급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은 어떤가. 오직 권위와 명령으로만 신민의 서구화 작업에 착수한 지배자들은 국민에게 토착적이고 내실 있는 중간계급을 낳도록 하는 비강제적 사회진화 과정을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인비는 특히 한국여행 중 들판의 농민들을 보고는 ‘그 작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관련성을 보지 못한 인상이 짙다.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쏠린 토인비가 동아시아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상정했다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만약 토인비가 살아 있다면 지금 중국의 재부상을 새로운 문명의 탄생과 발전의 징후로 여길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G2 정치·경제 기싸움을 바라보는 두 시선

    G2 정치·경제 기싸움을 바라보는 두 시선

    미국과 중국의 G2 체제는 이미 고착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신창타이(新常態)를 강조하며 10%에 육박하는 고도 경제성장률이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미국 또한 저유가, 강달러를 앞세워 경제 회복세를 보이며 슈퍼 대국의 위상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의 신좌파 학자인 왕사오광(王紹光) 홍콩중문대 교수와 벤 스틸 미국외교협회 국제경제국장이 각각 한국을 찾았다. 정치와 경제를 놓고 벌이는 미·중 대결 양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벤 스틸 美외교협회 국제경제국장의 미·중 간 국제통화 체제 경쟁 “AIIB發 글로벌 화폐전쟁 지속”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추진에 미국의 심기는 불편하다. AIIB는 기존에 있던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과 명분상 기능이 상당 부분 겹친다. 미국의 입장은 명백하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다.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미국의 노골적 반대 움직임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주변 국가들은 1000억 달러의 자본금 중 중국이 절반을 부담하는 AIIB에 가입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AIIB는 일대일로(一帶一路·신실크로드 계획)와 함께 위안화를 국제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벤 스틸 미국외교협회 국제경제국장이 최근 내놓은 ‘브레턴우즈 전투’의 한국판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그는 미국 상·하원과 상품선물거래위원회에서 금융시장과 통화 문제에 관한 정책적 조언자 역할을 맡았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정책연구원 주최의 ‘아산 플래넘’에 참석한 벤 스틸 국장은 “세계 총생산량의 36%를 차지하는 두 국가는 국제금융 불균형의 주 근원지”라고 규정했다. ‘브레턴우즈 전투’는 1944년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각국 환율을 달러에 고정하기로 합의한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내용이다. 이 중 브레턴우즈 체제의 두 주인공,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자본주의에 기초한 세계적 금융 시스템을 설계한 미국 재무부 차관보인 해리 덱스터 화이트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결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적 과정과 당시 국제금융시장의 환경 및 새 질서 마련의 불가피성 등을 비롯해 첩보전을 떠올리게 하는 회의 막후 상황, 화이트가 실은 소련의 간첩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을 어지간한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담았다. 1971년 붕괴됐지만 세차게 꿈틀대는 중국과 미국의 국제금융 체제 다툼 속에서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흘러간 브레턴우즈 체제는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벤 스틸 국장은 “중국은 자국이 축적한 달러 표시 자산의 구매력이 급감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미국은 자금 융통이 불가능해질까 염려하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중국은 1940년대 미국과 달리 주도적 위치를 갖기가 아직 어렵고, 미국은 당시 영국이 미국에 간청했듯 중국에 간청할 처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한편 두 나라의 팽팽한 긴장 관계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왕사오광 홍콩중문대 교수의 ‘중국식 민주주의’론 “中 ‘대표형 민주주의’ 틀 갖췄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 이후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는 눈부셨다. 하지만 정치 영역은 민주주의의 결핍이라는 측면에서 미국 등 서구로부터 늘 공격받아 왔다. 공산당 유일 영도 체계는 효율적인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서구식 민주주의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치체제였던 탓이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 발전의 결과물이 구체적인 지표로 드러나면서 중국은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된 부분에 대해서도 수세적 입장에 머물지 않게 됐다. 정치의 영역, 통치모델 차원에서도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하기보다 본격적으로 대국굴기(大國?起·떨쳐 일어나다)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신좌파 지식인 왕사오광(61) 교수는 그 대표적인 이데올로그다. 그는 ‘중국식 민주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역할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왕 교수는 1982년 베이징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예일대에서 10년 동안 정치학을 강의했다. 그가 1993년 펴낸 ‘중국 국가능력보고’는 공산당, 정부, 학계 등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공공관리, 행정체계, 경제부문, 사회부문 등 국가관리의 다양한 영역에서 보고서를 펴내며 중국 정부의 각종 정책 결정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8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연구소 성균중국연구소는 왕 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는 ‘시진핑 시기 중국의 민주주의 과정과 방향, 전망’을 주제로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다. 왕 교수는 “자유와 경쟁의 다당제 선거를 가지고 민주의 표준에 부합되는지를 따지면 곤란하다”면서 지난 몇 십 년에 걸쳐 중국은 이미 ‘대표형 민주주의’의 이론적 틀을 갖고 누구를 대표하고, 누가 대표하고, 무엇을 대표하고, 어떻게 대표하는가에 대한 실질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형 민주주의’(representational democracy)라는 왕 교수의 독창적 이론 체계다. 형식과 절차에 치중하는 서구식 ‘대의형 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와 구별 짓는 개념이다. 실제 그의 이론은 서구 학자 등으로부터 초기엔 견강부회(牽?附會)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근 서구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엘리트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반성, 대안 제시 등과 맞닿는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길섶에서] 햇살이 밝아서/최광숙 논설위원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 ~ 괜찮았어’. 얼마 전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에서 정승환과 수지가 듀엣으로 부른 가요 ‘대낮에 한 이별’의 한 대목이다. 8년 전에 발표된 이 곡을 최근에야 접하고 자주 흥얼거린다. 메마른 일상에 찾아온 ‘햇살’ 같은 노래라고나 할까.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부드러운 멜로디도 그렇지만, 이별을 하는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마침 하늘을 가득 메운 햇살이 감싸주었다는 가사가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혹독한 감옥 생활에도 자살하지 않은 것은 ‘햇볕’ 덕분이라고 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난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는 것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20여년간 감옥살이를 한 지식인의 처절한 고통을 이겨내게 한 것도, 이별에 ‘죽을 것 같아서 숨도 못 쉰다’는 젊은 연인의 마음을 다잡아 준 것도 햇살이다. 실제로 햇볕이 우울한 마음을 치료해준다는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햇살은 오늘도 무심히 세상을 비추지만 마음 깊이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최광숙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르네상스 지식인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만능 재주꾼’ 中人, 그들이 꽃피운 조선

    ‘만능 재주꾼’ 中人, 그들이 꽃피운 조선

    조선의 중인들/허경진 지음/알에이치코리아/400쪽/1만 8000원 고득점자 순으로 전국 모든 대학의 의대라는 의대는 모두 돌고 돈 뒤 그 다음 수험생이 서울대를 간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갯소리가 통용되는 세상이다. 의사는 선망의 직업이다. 판사, 변호사, 외교관 등은 또 어떤가. 업무를 통해 명예와 성취를 이뤄 내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돈을 잘 버는 직업들인 덕에 세간의 인기가 드높다. 시간을 150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사정은 어떨까. 이들은 잡과(雜科) 시험을 통해 선발된 전문직 관원들이다. 생원·진사 합격자에게 주는 국보가 찍힌 백패(白牌)가 아니라 예조인(禮曹印)만 찍힌 백패를 받았다. 양반과 평민 사이에 끼인 경계인 신분이었지만 계급의 벽을 넘나들며 예술적 열정을 꽃피웠고, 과학적 재능과 비범함을 마음껏 발산했다. 또한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열린 사고로 서양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문화 메신저 역할도 기꺼이 도맡았다. 실사구시형 지식인의 소양을 눈여겨본 여러 왕과 양반들의 두터운 신뢰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궈 낸 정조 시대가 대표적이다. 정조는 당시 서얼금고법 때문에 중인이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규장각에 검서관직을 신설, 책을 검토하고 필사하는 업무를 맡겼다.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서이수가 이렇게 등용된 중인들이다. 농사꾼 출신으로 ‘기하원본’을 독학한 김영은 정조에게 발탁돼 관상감에 등용됐다. 평평한 해시계인 지평일구를 만든 과학자였다. 또 조선의 운명을 바꾼 인물도 있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명나라 서적에 이성계 및 왕실의 계보가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는 일)는 절체절명의 난제였고, 노련한 역관 홍순언이 이를 해결한 사례도 있다. 39가지 야담과 소설로 후세에 이야기가 전할 정도가 됐다. 또한 효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극심했던 질병 종기를 치료한 의원 백광현 역시 마찬가지다. 백광현은 현종의 목에 난 종기를 고치고, 효종비 인선왕후의 머리에 난 종기까지 치료해 명예직이지만, 종1품 벼슬에까지 올랐다. 기술과 과학이 있어 삶의 질은 더욱 윤택해지고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물론 공동체의 삶에 복무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다. 봉건의 시대, 반상의 계급 제도가 사람을 출생 자체로 규정지을 때 중인들의 기술과 과학은 태생적 한계를 비웃듯 극복하고 공동체와 대의를 고민하며 새 시대의 맹아가 됐다. 그때의 중인들은 이제 전문가로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됐건만, 세태가 보여주는 뒷맛이 개운치 만은 않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글로 기억하다, 잊혀지는 아픔을

    글로 기억하다, 잊혀지는 아픔을

    “전 국민이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 일인데 아무 것도 안 해선 안 된다. 기억은 믿을 수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 편한 식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할 필요가 있다. 문장을 이용해 한 시대의 정서와 사상까지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기록하려 했다.” 슬픔을 저마다 속으로만 삭였던 문인들이 작심하고 펜을 들었다. 순수문학을 추구하던 문인들까지 사회의식으로 똘똘 뭉친 펜을 굴렸다. 16일 참사 1주년을 맞는 ‘세월호 사건’을 기록하고 증언하기 위해서다. 문인들은 “문학이 세월호 참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시켜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구심점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소설가 15명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공동소설집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예옥)를 냈다. 심상대, 이평재, 노경실, 전성태, 한차현, 이명랑, 권영임, 김신, 손현주, 방민호, 한숙현, 신주희, 박사랑, 김산아, 김은 등 문단의 중진부터 신인까지 다양한 성향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추억을 나눈 친구를 떠나보낸 아이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살아남은 아이들 등 세월호 침몰로 고통받고 상처받은 이들을 감싸 안았다. 진상 규명을 외면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 책 속 첫 번째 작품인 심상대의 ‘슬비야, 비가 온다’는 은규와 재중이 세월호 침몰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친구 슬비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는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문학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작가로서의 죄책감 때문에도 힘들었다. 쓰고 난 지금도 너무 힘들다. 음모론을 믿지 않는데 사고 양상을 추적하다 보니까 음모론도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이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어 힘들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을 그린 단편소설 ‘가족 버스’를 쓴 전성태는 “자의식에 집중하던 데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위무하고 고통에 공감하며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국민이 원하는 건 진상규명인데 정부에서 돈을 내세우고 진영 논리로 편을 가르며 정치적인 방식으로 풀어 가려 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정부에서 정치적인 싸움으로 몰아가 국민들이 치유가 안 되도록 하고 있다.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한 다음에 보상이든 대책이든 나와야 한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감수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돼야 세월호 사건이 의미를 지니고 아픔도 극복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세월호 추모시집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다산책방)를 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요구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았다. 살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이웃은 우리에게 무엇인지, 국가나 권력은 국민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체제는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 등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모든 근거들을 진지하게 되돌아봤다. 방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고통,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의문을 지난 1년간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썼다”고 했다. ‘오로지 진실만을 노래하게 하소서/큰 슬픔과 아픔의 사금파리 한 조각만이라도 오롯이 실어놓게 하소서//두려움과 주저함으로 나아가지 못함이 없도록 하시되/원한과 복수에 머물게 하지 마소서//(중략) 바다에 스러져간 아이들을 노래하는 이 나날들만은/저로 하여 거짓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발원)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다/삼백예순날/나는 너희들의 죽음만 사랑한 게 아닐까/너희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숨겨놓은 내 죄를 씻어온 게 아닐까/어떻게 해야/이 슬픔이 진짜 사랑이 될까/어떻게 해야/너희들처럼 환해질 수 있을까’(참회) 방 교수는 “진상 파악을 회피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야 원한과 복수를 넘어서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충격받고 상처받은 사람들, 슬프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의 정서적 공동체도 만들 수 있다.” 한편 한국작가회의는 세월호 참사 1주년을 하루 앞둔 15일 ‘아직, 깊고 어두운 물 속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작가회의는 “4억원이니 8억원이니 액수를 떠벌리며 국민 안전과 생명을 방기한 국가의 죄를 은폐하고 있다”며 “신속히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진상을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작가회의는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아직 밝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배상과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냐”며 “사건 발생부터 수습과 대응까지 한결같이 작동하는 천박한 자본 논리가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작가회의는 이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 문화제도 개최했다. 희생자를 향한 추모의 글과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적은 르포 글 등을 발표했다. 글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사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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