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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의 역설… ‘언택트 상담 전문가’ 새로운 대세가 뜬다

    코로나의 역설… ‘언택트 상담 전문가’ 새로운 대세가 뜬다

    “뱃살이 신경쓰여요. 홈트레이닝 계획을 짜 볼 수 있을까요.” 12일 비대면 전문가 상담 서비스인 ‘지식인 엑스퍼트’에 접속해 피트니스(운동) 분야 전문가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평소에 하던 수영을 자제 중”이라고 덧붙이자 상담사는 운동보조기구인 ‘폼롤러’를 이용한 홈트레이닝 운동법을 알려줬다. 몇 달 전 해봤던 체성분 분석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자 “저녁 한 끼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라”고 조언했다. 10분으로 정한 상담시간이 끝났다는 문구가 뜨자 전문가는 “이메일로 폼롤러 운동법을 보낼테니 인쇄해서 붙여 놓고 따라 하라”며 상담을 마쳤다. 전문가 상담에서도 ‘언택트’(비대면)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선택한 뒤 메신저나 영상 등으로 상담을 받는 서비스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네이버의 ‘지식인 엑스퍼트’는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소비’가 늘어난 것과 맞물려 3개월 만에 약 4만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지난 1월 대비 2월의 전체 상담건수가 87.6% 증가했고 12가지 상담 분야 중에 영양·식단(1398%), 마음상담(370%), 피트니스(155.9%)가 두드러지게 늘었다. 이용자가 상담료로 지불한 금액 중 네이버페이에서 결제 수수료로 5.5%를 갖고 나머지는 상담사에게 돌아가는데 월 1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전문가들이 벌써 여러 명 나왔다. ‘지식인 엑스퍼트’ 이전에는 헬로마인드케어(심리 상담), 로톡·헬프미(법률 상담), 펫닥(반려동물 상담) 등의 업체들이 분야별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활동자에게 암호화폐로 보상하는 ‘아하’도 지난해 출시해 세무·노무·보험 등 9개 분야에서 상담 서비스 중이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은 지난해 11월 ‘라인 변호사 상담’을 출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현지 합작회사를 통해 의료 상담 서비스인 ‘라인 헬스케어’를 내놨다. ‘지식인 엑스퍼트’의 운동 분야 전문가인 문석기(29) 핏블리 대표는 “오프라인에서 헬스장 두 곳을 운영 중인데 온라인 상담을 받은 뒤 좋았다며 헬스장에 찾아와 등록한 사례도 있다”면서 “상담하는 입장에서도 빈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사람들이 온라인 상담에 익숙해지면 이 시장이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전문가 상담도 ‘언택트’가 대세…월 1000만원 버는 상담사도 등장

    전문가 상담도 ‘언택트’가 대세…월 1000만원 버는 상담사도 등장

    전문가 상담도 앱으로 가능한 시대 “뱃살이 신경쓰여요. 홈트레이닝 계획을 짜 볼 수 있을까요.”  12일 비대면 전문가 상담 서비스인 ‘지식인 엑스퍼트’에 접속해 피트니스(운동) 분야 전문가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평소에 하던 수영을 자제 중”이라고 덧붙이자 상담사는 운동보조기구인 ‘폼롤러’를 이용한 홈트레이닝 운동법을 알려줬다. 몇 달 전 해봤던 체성분 분석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자 “저녁 한 끼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먹어라”고 조언했다. 10분으로 정한 상담시간이 끝났다는 문구가 뜨자 전문가는 “이메일로 폼롤러 운동법을 보낼테니 인쇄해서 붙여 놓고 따라 하라”며 상담을 마쳤다.  전문가 상담에서도 ‘언택트’(비대면)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가를 선택한 뒤 메신저나 영상 등으로 상담을 받는 서비스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네이버의 ‘지식인 엑스퍼트’는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소비’가 늘어난 것과 맞물려 3개월 만에 약 4만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지난 1월 대비 2월의 전체 상담건수가 87.6% 증가했고 12가지 상담 분야 중에 영양·식단(1398%), 마음상담(370%), 피트니스(155.9%)가 두드러지게 늘었다. 이용자가 상담료로 지불한 금액 중 네이버페이에서 결제 수수료로 5.5%를 갖고 나머지는 상담사에게 돌아가는데 월 1000만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전문가들이 벌써 여러 명 나왔다.  ‘지식인 엑스퍼트’ 이전에는 헬로마인드케어(심리 상담), 로톡·헬프미(법률 상담), 펫닥(반려동물 상담) 등의 업체들이 분야별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활동자에게 암호화폐로 보상하는 ‘아하’도 지난해 출시해 세무·노무·보험 등 9개 분야에서 상담 서비스 중이다.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인 라인은 지난해 11월 ‘라인 변호사 상담’을 출시했고, 지난해 12월에는 현지 합작회사를 통해 의료 상담 서비스인 ‘라인 헬스케어’를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신경정신과 등을 직접 찾아가길 주저했던 사람들이 비대면 상담은 상대적으로 편하게 이용하는 것 같다”면서 “과거 게시판 형태의 상담 서비스인 ‘네이버 지식인’은 자신이 남긴 질문이 모두에게 공개됐는데 메신저로 개인 상담을 받으면 프라이버시도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식인 엑스퍼트’의 운동 분야 전문가인 문석기(29) 핏블리 대표는 “오프라인에서 헬스장 두 곳을 운영 중인데 온라인 상담을 받은 뒤 좋았다며 헬스장에 찾아와 등록한 사례도 있다”면서 “상담하는 입장에서도 빈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사람들이 온라인 상담에 익숙해지면 이 시장이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코로나19마저 정쟁화… ‘어우이개중’ 작태가 극성 부리는 한국 사회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코로나19마저 정쟁화… ‘어우이개중’ 작태가 극성 부리는 한국 사회

    유몽인은 1618년 집권 대북 세력의 탄핵을 받자 즉각 사표를 내고 서산(지금의 고양시 송추)에 은거해 집필에 몰두했다. 그는 1621년에서 1622년 사이 ‘장자’의 우언적 기법을 빌려 시사와 학문 인륜을 아우른 야담집 10여권을 탈고했다. 문집 80여권도 정리한 뒤 두 책의 표제를 각각 ‘어우야담’과 ‘어우집’으로 했다. ‘어우’는 ‘장자’의 ‘천지편’의 “어우이개중”(於于以蓋衆) 곧 ‘허망한 말로써 백성을 속인다’는 대목에서 따온 그의 호였다. “자공이 하루는 길을 가다가, 항아리로 물을 길어 채소밭에 주는 노인을 보고 ‘왜 두레박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노인이 물었다. ‘뉘시오.’ ‘공자의 문인입니다.’ ‘섣부른 지식으로 성인을 흉내 내며,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홀로 현을 타면서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천하에 명성을 팔려는 사람?’” 당대의 석학 공자는 졸지에 ‘혹세무민하고 곡학아세하는 자’가 됐다. 유몽인 시절, 공자는 석학 정도가 아니라 당대 지식인이 신앙하는 성인이었다. 유몽인은 그런 성인을 능멸하는 옛말을 제 호로 삼은 것이다. 그에겐 일찍이 응문, 간재 등의 호가 있었지만 50대가 넘어서면서 묵호자(말없음을 즐기는 이)나 어우를 많이 썼고, 50대 중반부터는 어우로 통했다. 절친인 월사 이정구는 그를 ‘유어우’라 했고 남창 김현성의 행장에서도 그는 ‘유어우’로 나온다. 유몽인은 두 저작이 지식인 권력자의 거짓과 허위의식을 남김없이 까발린 ‘매월당집’(김시습 저)의 뒤를 잇기를 희망했다.(‘천덕암 법견에게 남긴 글’) 유몽인은 거짓과 위선에 질색했다. 글쓰기에서조차, 당시 숭상하던 당송의 화장기 짙은 문장은 멀리하고 ‘질박하고 거친 말’을 사용해 심중의 진실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는 것을 모범으로 삼았다. 그는 ‘어우’를 호로 삼아 허망한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을 경계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분열하며 거짓을 일삼는 지식인들의 작태를 조롱했다.색목을 굳이 따지자면 그는 북인. 임진왜란 중 광해군을 호종하며 자연스럽게 남명 조식의 제자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북인의 대부 정인홍을 존경했다. 그는 한 번도 ‘북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인의 이해를 위해 신념을 팔지는 않았다. 1591년 서인의 영수 정철이 세자 책봉 문제로 궁지에 몰렸을 때 엄벌을 주장하는 당론과 달리 선처를 호소했다. 정철은 1589년 기축옥사를 통해 동인을 쑥대밭으로 만든 공적이었다. 그러나 세자 책봉 문제에 관한 한 이산해의 꾐에 넘어가 선조로부터 날벼락을 맞은 터였다. 동인은 그의 처리를 놓고 남인과 북인을 분열했다. 유몽인은 북인에 발을 담그고 남인의 온건론에 동조했다. 이후 북인은 1599년 홍여순의 대사헌 천거 문제를 놓고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했다. 대북과 소북은 1608년 선조의 죽음을 전후로 왕권 승계를 놓고 생사를 건 암투를 벌였다. 정인홍, 이이첨 등 대북은 세자 광해군의 승계를 주장했고 유영경 등 집권 소북은 세 살배기 적자 영창대군의 승계를 추진했다. 유몽인은 도승지로서 선조의 유교를 있는 그대로 처리해 광해군이 승계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은 정국을 주도했고 1613년 계축옥사를 계기로 권력을 장악했다. 대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폐모살제’ 주장을 통해 일당 독재를 추구했다. 패륜 논란 속에서 대북은 육북, 골북, 중북으로 분열했다. 유몽인은 중북에 속했으나, 골북이나 육북에 속하지 않은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기자헌이나 유몽인 등 중북은 서인, 남인과 입장이 같았다. 유몽인은 일찍이 서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을 존경하고 마찬가지로 동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삶을 흠모했다. 퇴계와 남명의 제자들이 남북으로 분열한 뒤에도 두 스승에 대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서인이었던 백사 이항복, 월사 이정구 그리고 후일 인조반정의 주역 이귀 등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의 성장 과정은 붕당과 거리가 멀었다. 유몽인이 등과한 1589년은 기축옥사와 함께 분당, 분열, 파쟁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는 서인의 횡포, 동인의 집권과 분열, 동서남북 붕당의 공리공론과 분쟁을 지켜봤다. 당리당략에 따라 세상을 속이는 짓을 지긋지긋하게 경험했다. 1604년 월사 이정구가 세자책봉주청사로 명에 갈 때 준 전별사에는 이에 대한 분노가 잘 녹아 있다. “성인은 붕우의 의리를 오륜에 나란히 놓았다. 조정에서 사론(士論)이 나뉜 뒤부터 봉우의 의리를 평생 지키는 일이 어려워졌다. 벗 사귀는 도리는 하나인데 어찌하여 둘로 나뉘고, 둘도 불행한데 어찌하여 넷이 되고 다섯이 되었는가? 하나인 도리가 넷, 다섯으로 나뉘어 줄을 세워 사당을 만드니 …한편에 들어간 사람은 각기 하나의 세력이 되어 나머지 네다섯 편과 적이 되었다.” 이렇게 다짐하기도 했다. “… 나는 혼자다. 홀로 세상 길을 가는데 어찌 한편에 붙을 수 있을까? 한편에 붙지 않으므로 네다섯이 모두 내 친구가 된다. 파벌의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나는 떨지 않을 것이며 파벌의 뜨거움은 흙을 태울 정도지만 나는 불타지 않겠다. 될 것도 없고 안 될 것도 없으니, 오직 내 마음을 따르겠다.” 이런 태도는 계축옥사 이후 집권 대북, 그중에서도 육북이 제기한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폐출론 속에서 그대로 관철됐다. 그는 이이첨 등 자신이 속한 붕당 지도부에 맞섰다. 곽재우, 기자헌, 정구, 이항복, 이덕형 등 일부 강개한 지식인들과 함께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이이첨, 허균 등의 탄핵을 받아 면직됐다. 총애하던 광해군의 부름을 받아 곧 조정으로 돌아왔지만, 해주옥사 등에서 인목대비의 신원을 요구하다가 투옥된 이들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1618년 봄, 그는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됐을 뿐 사실상 폐서인됐을 때였다. 한성부에 써놓은 ‘백주지창’이 문제였다. 시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장사가 홀연히 장검을 들고 일어나니, 취중에 마땅히 노간의 머리를 베리라.” 이에 대해 “허균은 자신을 지칭하는 줄 알았고, 이이첨은 소북의 박승종을 지목했고, 박승종은 이이첨을 지목했으니, 소북 대북의 권간들이 모두 노하여 중상하는 말을 임금께 아뢰었다.”(‘광해군일기’ 중에서) 결국 정인홍, 이이첨은 “그가 원수를 잊고 역적을 비호한다. 목을 베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몽인은 ‘코흘리개의 놀잇감’이 된 벼슬을 버리고 서산으로 들어갔다. 그가 문집을 정리하고 야담을 완성한 뒤 ‘어우’라 이름한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어우야담에는 ‘문장가와 도학 대가들의 당파성’이란 단편이 나온다. 중국 최고의 문장가라는 한유와 소동파, 최고의 도학자라는 주자 등이 ‘상대를 배척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는 옛이야기를 상기하고 퇴계와 남명의 제자들이 문묘종사를 놓고 싸우는 것을 한탄한 글이었다. 결론은 이러했다. “(두 사람의) 도학과 절의가 뛰어남에도 다투는 것은 양쪽 제자들의 재주와 지혜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편 ‘고변이 성행하게 된 연유’에선 “밥숟가락이 남보다 조금이라도 큰 것을 보면 고변을 하는” 작태를 개탄했다. 고변의 주인공은 대개 글줄이나 읽고 쓰는 선비들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어우이개중’의 작태는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극성을 부린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코로나19마저 정쟁화하고 이념화하는 요즘의 작태는 어우당 시절의 극단을 재현한다. 일부 언론과 정당, 지식인 결합체는 마치 우군이라도 만난 것처럼 이 정부가 이 바이러스에 무너지도록 고사를 지냈다. 중국과의 관계 단절과 경제적 파탄을 노리기라도 하는 듯 중국인 출입금지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공포와 불신을 확산시켜 생산량의 한계로 말미암은 마스크 부족을 대란으로 만들고, 대통령 탄핵까지 운위했다. 저 홀로 의로운 척, 차선을 죽여 최악을 키워야 정의가 산다고 떠드는 자들도 있다. 온갖 고상한 말로 400년 전 대북, 소북, 골북, 육북, 탁소북, 청소북의 분열과 상잔을 재현하려 한다.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천하에 명성이나 팔고’ ‘허망한 말로 세상을 속이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일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783명이 장발장은행 덕에 교도소에 가지 않았습니다”

    “783명이 장발장은행 덕에 교도소에 가지 않았습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민중’이란 표현을 쓰면서 연대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관념에 가까운 것이었다. ‘감시와 처벌’을 쓴 프랑스 지식인 미셸 푸코는 말로만 떠들고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을 비판했는데, 그 비판의 화살은 정작 나부터 맞아야 했다.”죄를 저질러 벌금을 내야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교도소에서 강제노역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 5년 전 은행장을 맡아 일하는 홍세화 작가는 은행을 찾은 이들을 보며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생각의 좌표’ 등을 낸 진보 지식인 홍세화 작가가 11년 만에 사회비평 에세이 ‘결: 거침에 대하여’(한겨레출판사)를 들고 찾아왔다. 책은 권력과 물질이 득세한 우리 사회에서 자유인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들이다. 편견과 오류를 멀리하고 자신과 끝없는 싸움을 해나가는 무기는 다름아닌 ‘사유’다. 그는 이전 책에서도 강조했듯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를 끊임없이 되물으라고 조언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결’은 주체할 수 없이 크고 거친 세상의 풍파에 휩쓸려버릴 때에도 한결같이 중심을 지켜 온 자신의 사유를 가리키는 말이다.저자의 사유는 지난 5년간 그가 몸담았던 장발장은행을 통해 구체화한다. 그는 2015년 2월 25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이름을 딴 장발장은행의 수장을 맡았다.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 벌금형을 받았지만 수중에 몇 백만원이 없고 가족이나 친지들에게서 빌리기도 어려울 만큼 사회적 관계까지 열악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발장은행엔 올해 초까지 5년 동안 모두 7875명이 10억 8256만 9653원의 성금을 보냈다. 덕분에 지금까지 모두 783명의 장발장이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특히 이 가운데 128명이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지켜본 저자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소박하게 살지언정 사회적 연대가 살아 있는 사회,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만큼은 지켜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시민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올바른 정치참여를 해야 한다며, 이렇게 제안한다. “한국 사회라는 산에서 내려와 ‘조금 더 낮게’ 걸으며 지배와 복종에 맞서는 자유인으로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돼 보자”고.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출판사의 팩트체커들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출판사의 팩트체커들

    ‘62학번, 기계공학과 졸업,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력, 영어·중국어 수준급’. 올해 77세인 우리 출판사 팩트체커의 이력이다. 역사적 사실이 많이 담긴 책은 인쇄 2~3주 전 그가 모든 사실관계를 최종 점검한다. 논조는 상관 않는다, 저자의 몫이므로. 문체도 괘념치 않는다, 미학은 그의 영역이 아니므로. 정치적 입장은 있지만 함구한다, 젊은 편집자와 부딪칠 수 있으므로. 그가 오로지 집중하는 건 오류를 골라내는 일이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우선 모든 역사적 사실과 인명, 지명, 숫자 등을 재검토한다. 조선왕조실록,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국립국어원 등 인터넷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더블 체크가 기본이다. 실록은 국사편찬위 사이트의 한글 번역본과 영인본을 대조해 잘못 입력된 한자·숫자를 고쳐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인물 정보는 지방지와 실기(實記), 자전(自傳) 등을 확보해 교차 점검 후 확정본을 마련한다. 세계의 모든 지도를 확보해 지리와 지명의 방향과 거리 정보가 맞는지 점검한다. 몇몇 신문을 구독하며 어제 죽은 유명 인사를 메모해 놓는다. 그럼으로써 인쇄 직전의 책에 등장하는 누군가를 생존인물에서 고인으로 바꿔 표기한 적도 있다. 일단 모든 숫자는 의심하고, 번역물은 원서를 꼼꼼히 대조하는 가운데 원서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원서에 오류가 많으면 해외 출판사에 이메일을 쓴다.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많을까. 주위를 돌아보건대 거의 없다. 출판사 편집자들이 교정 교열 과정에서 팩트체커 역할을 맡지만, 까막눈이거나 혹은 사실관계를 끝까지 확인할 의지력이 박약한 경우가 많다. 하루 종일 검토해서 오류 한두 개 잡아내는 일에 희열을 느낄 사람은 많지 않다. 게다가 갖춰야 할 실력은 만만찮은데, 그런 전인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엔 드물다. 참고로 미국 ‘뉴요커’의 팩트체커 지원자 자격을 보자.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말할 수 있고 고전 그리스어를 읽을 수 있으며… 오만의 술탄과 카타르의 에미르는 누구인지 곧바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앤서니 애버릿의 ‘키케로’ 서평을 쓰면서 그 책의 편집자를 비판했다. “라틴어에 일부 황당한 오역이 있다. 편집자는 라틴어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손을 댔는가.” 로마 관련 책을 내려면 편집자는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쯤은 알아야 한다는 게 서평자의 주문으로, 저자의 오류는 최종적으로 편집자의 오류로 귀착된다. 이런 능력은 어떻게 갖춰지는가. 거의 광적인 결벽증, 효율성과는 담을 쌓고, 원고를 음미하면서 자기 감상을 끼적거릴 여유가 없다. 가장 근원이 되는 자료를 찾아 연어처럼 헤엄쳐야 하고,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24시간 마음속에 담아 둬야 한다(혹은 나만큼 정확한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까지). 외국어 회화 실력이 꽝이라도 전 세계 외래어 표기법엔 달인이어야 한다. 가령 1400쪽짜리 ‘저먼 지니어스’를 편집하면서 담당 팩트체커는 “이 책이 서양의 저명인사를 국립국어원 자료보다 더 많이 아우르니 향후 교정의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뉴요커’의 편집자 세라 리핀콧은 한 번의 오류가 낳는 어마어마한 악영향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일단 지면에 실린 오류는 도서관에서 계속 살아가며 정성스레 목록화되고, 연구자들은 최초의 오류에 의지해 새로운 오류를 거듭 생산한다.” 송곳으로, 펜으로 이것들을 도려내야 하는 게 팩트체커의 임무다.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더욱 놀랍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 상대가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만할 수 없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우리는 오늘도 그 일을 배우고 있다.
  • [박철현의 이방사회] 이게 다 아베 총리 탓이다

    [박철현의 이방사회] 이게 다 아베 총리 탓이다

    요즘 “일본 왜 그래”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그들의 궁금증은, 당연히 코로나19 대처 방식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방역 시스템을 갖췄다는 일본이 왜 갑자기 이렇게 됐을까. 예방의학의 최선진국이며 잇단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계화된 빈틈없는 매뉴얼, 섬나라의 특성을 살린 원천적 차단, 청결한 위생의식이 자랑이었던 나라다. 그런데 국립감염증연구소는 지난 13일이 돼서야 비로소 민간 제약 기업 및 연구소에 감염자의 항체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지적, 특히 뉴욕타임스의 “절대 따라해서는 안 되는 교과서적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일본”이라는 기사가 나오자 아베 신조 총리는 긴급회의를 열어 하루 300명분의 진단을 11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도 지역사회 감염, 즉 3, 4차 감염이 가시화되자 지난 15일부터 이전과는 다른 심층적인 보도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확진환자 수가 증가하자 드완고, GMO 등 IT 대기업들이 발빠르게 재택근무를 실시했고 18일부터는 소프트뱅크, 히타치 등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최초 확진환자 발표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고, 설상가상 일본 후생노동성은 확진환자들의 감염 후 동선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도쿄 NTT데이터에 근무하는 지바현의 20대 확진환자가 두 차례 통근 지하철을 이용했고 40대 도쿄 확진환자는 신칸센을 타고 지방을 다녀왔는데 언제 어느 노선을 탔는지 공개하지 않아 불안과 공포를 야기시켰다. 정부는 총체적인 판단 미스를 범했고 이를 지적해야 할 일본 언론은, 적어도 지난 14일까지는 정부 발표의 충실한 대변자에 불과했다. 일본이 왜 이렇게 됐는가. 아베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 관방 중심의 정치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수출규제 정책이나 징용공 문제도 형태만 달랐지 이러한 관방 정치의 폐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 간의 외교협정과 관련없이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2007년 일본최고재판소는 인정했다. 니시마쓰 건설에 청구권 소송을 건 중국인 강제징용자들의 손을 들어 줬기 때문이다.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사법체계에서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이라는 외교적 약속을 계속 강조했고, 일본 언론은 이를 충실히 받아쓰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또한 한국의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났을 때를 대비해 신일철주금에 절대 화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사법적 판단에, 내각관방부가 주도해 사기업에 이러한 명령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몇 달 지나 수출규제라는 대악수를 뒀다. 결과는 알다시피 일본의 반영구적 손해로 나타났다. 총리 관저가 일본의 국익을 오히려 해친 셈이다. 하지만 이를 지적하는 지식인과 언론은 별로 없다. 이번 방역사태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관저가 주도한 방역대책은 국립감염증연구소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민간의 참여는 배제됐고, 설상가상으로 시약조차 부족했다. 시중의 일반병원들은 국립감염증연구소가 배포한 코로나19 감염의심 증상 매뉴얼에만 의존해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으면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 지바 20대 남성 확진환자가 네 번이나 병원을 옮겨 다닌 이유다. 19일부터 시작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 선의 하선시에는 재검사조차 하지 않고 승객들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 크루즈선의 승객이었던 80대 감염 부부는 사망했다. 컨트롤타워가 내각관방부라면 관저가 사태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저 주도로 강력한 방침과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책임자인 아베 총리는 국회 질의에서 자신의 스캔들 덮기에만 급급했고, 전문가회의는 지난 16일에 처음으로 열렸다. 확진환자가 나온 후 한 달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이렇듯 전적으로 국민들에게 의존하는 한심한 일본 정부를 보면, 그나마 한국 정부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정파를 떠나 국민 모두를 위해, 하루빨리 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같이 힘내자.
  • 피츠제럴드가 옮긴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

    피츠제럴드가 옮긴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

    11세기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4행시)다. 루바이란 페르시아 지식인들이 벗들과 흥겹게 어울리며 읊조린 즉흥시다. 당대에도 대단한 문학 작품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이얌은 오늘날 이란의 북동부에 자리한 호라산주 니샤푸르에서 1048년에 태어나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다 1131년쯤 고향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문학자, 수학자, 철학자로 더 널리 알려졌으며 당대에는 시인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도 극히 미미하다. 그런데 7세기가 흐른 뒤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는 하이얌이 남긴 것으로 알려진 수백 편의 루바이 가운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75편을 영어로 옮겨 책을 펴냈다. ‘쾌락주의적 불신자(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인 하이얌과 당대 최고의 시인 피츠제럴드를 잇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856년 옥스퍼드대 보들리언 도서관에서 조수로 일하던 언어 천재 에드워드 카우얼로부터 하이얌의 것으로 보이는 ‘아우즐리 필사본’을 베낀 노트를 건네받은 피츠제럴드는 같은 해 가을 인도 캘커타의 프레지던시 칼리지 교수로 임명된 카우얼로부터 현지에서 베낀 다른 필사본을 받았다. 카우얼은 피츠제럴드에게 페르시아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2년에 걸쳐 하이얌의 루바이들을 번안했다. 일관된 맥락이나 연속성을 갖추지 않은 루바이를 영국인의 하루에 맞춰 재구성했다. 루바이의 압운 체계를 따르면서도 영국 시 특유의 리듬과 율격을 살렸다. 평론가들은 피츠제럴드가 번안을 넘어 하이얌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의 번안본이 세상에 알려진 과정도 흥미롭다. 두 필사본 가운데 35편을 옮긴 그가 1858년 초 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지만 답이 없어 돌려받고, 그 뒤 40편을 더 옮겨 이듬해 버나드 쿼리치 출판사에 맡겨 자비로 ‘오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250부를 찍었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발행인 쿼리치는 재고본을 ‘1페니 떨이 박스’에 치워뒀다. 2년 뒤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한 두 문인이 친구 로제티와 스윈번에게 보냈고, 라파엘 전파 문인화가 그룹이 대중에게 널리 알렸다. 초판이 나온 1859년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에 관해’가 나온 해였다. 삶의 불확실성과 종교적 철학적 체계에 의문을 던지던 때였다. 삶의 덧없음을 슬퍼하면서 동시에 감각적 쾌락을 즐기자는 이 시집에 관통하는 두 정신은 1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읽히고 갖가지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피츠제럴드의 ‘입소문’ 덕에 ‘루바이야트’의 시편들은 TS 엘리어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여러 문학가들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어트는 ‘시의 용도와 비평의 용도’에 “열네 살 무렵 내 주위에 놓여 있던 피츠제럴드의 ‘오마르’를 우연히 집어들었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 시가 내게 펼쳐 보인 감정의 새 세계로 압도당한 채 끌려들어갔던 것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느닷없는 개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세계는 눈부시고 유쾌하고 고통스러운 색깔로 채색돼 새롭게 나타났다”고 돌아봤다. 아르헨티나 시인 보르헤스는 ‘에드워드 피츠제럴드의 수수께끼’를 통해 “어쩌면 1857년쯤에 오마르의 영혼이 피츠제럴드의 영혼 속에 자리를 잡았던 듯하다. ‘루바이야트’에서 우리는 우주의 역사란 신이 구상하고 무대에 올리고 지켜보는 장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념은(전문 용어로는 범신론이라고 하는데) 우리로 하여금 피츠제럴드가 오마르를 재창조할 수 있었다고 믿게 만들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본질적으로는 신이거나 신의 순간적 얼굴들이기 때문이다.(중략) 어떤 합작이건 다 신비롭다. 피츠제럴드와 오마르의 합작은 훨씬 더 신비하다. 두 사람은 서로 달랐고, 어쩌면 살아 생전에는 벗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죽음과 변천과 시간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게 만들고 그들을 하나의 시인이 되게끔 묶어줬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노래 가사에도 여러 차례 인용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가 한국외국어대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배재대 영어영문학과 윤준 교수가 옮긴 ‘루바이야트’(4행시 모음)를 펴냈다. 기존 도서들은 1879년 4판본을 주로 소개했는데 19세기 영문학을 탐구해온 윤 교수는 초판본을 저본 삼아 옮겼다. 상세한 주석과 해석이 달렸고 그동안 소개된 적이 없는 피츠제럴드의 서문을 실은 것도 눈길을 끈다. 여기에 1860년대부터 이어진 영국의 삽화 전통과 19세기 말~20세기 초 ‘아르 누보’를 결합한 것으로 이름 높은 영국 삽화가 에드먼드 조지프 설리번이 1913년 피츠제럴드 판본을 재출간하면서 그려 넣은 삽화를 실은 것도 매혹적이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서울광장] 정치적 중립, 그 실체의 허망함/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치적 중립, 그 실체의 허망함/박록삼 논설위원

    얼마 전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 해프닝’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완벽한 헛발질이다. 공직선거법이라는 실정법의 틀에 갇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주장과 견해를 밝히는 칼럼에 논리적 반박도 아니고, 대뜸 검찰 고발로 대꾸한 것은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협애함 그 자체였다. 공론의 장으로서 언론의 기능을 법적 다툼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은 성숙한 여론 환경 조성에도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해 검찰에 의존해야 함을 자인한 셈이다. 그렇잖아도 여야에 대한 선택적 수사를 통해 검찰이 정치판의 플레이어로 뛰어드는 ‘검찰 정치의 시대’ 아닌가. 선거법 위반은 친고죄가 아니니 고발 취하에도 검찰의 수사 착수 가능성은 높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대단히 안 좋은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논란 덕분에 임 교수는 ‘전국구 수준’의 비판적 진보 지식인 반열에 올랐다. 20여년 전 한나라당 시의원 후보 출마를 비롯해 손학규 후보 캠프(통합민주당), 창조한국당, 국민의당 등을 전전했던 ‘준정치인’이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그의 칼럼 제목처럼 ‘민주당만 빼고’ 대부분 주요 정당과 인연을 맺은 행보를 해 왔다. 해당 언론사가 임 교수의 이러한 이력을 다 알고서도 필자로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임 교수의 학자 이전의 정치 행적은 민주당 공보국이 사과문에 적시했듯 고발이라는 악수를 두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부는 큰 권한만큼 책임 또한 크다. 하지만 정부의 주요 정책과 국가적 과제가 당파적 이해관계에 휩쓸리게 되면 사회의 표류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실제 권력 비판처럼 윤리적인 비판 또한 없다. 하나 임 교수의 칼럼은 ‘민주당에 대한 적의’를 빼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때 흔히 봐 왔던 데자뷔에 가깝다. 오히려 과거 진보 진영의 정치비평보다 훨씬 더 퇴행적이다. 민간인 사찰, 불법체포, 고문 수사 등이 없는 세상에서 정부 여당 비판만큼 안전한 비판이 없다. 진보적 가치와 논리를 빌려 중도개혁정당을 비판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 줄 뿐 사회의 변화·개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비판의 수혜는 진보정당이 아닌, 거대 보수정당이 고스란히 가져갔던 역사의 가르침을 자신이 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칼럼에서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했기 때문’에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했다고 말한 임 교수가 자기 주장의 완결성,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었다면 ‘○○당 빼고’가 아닌, ‘◇◇당을 찍자’라고 선명하게 주장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임 교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아니,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권력 비판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오랜 언론 관행이 한몫했다. 또한 어지간하면 여야를 적당히 섞어서 싸잡아 비판하고, 정치 자체를 욕하는 와중에 자신의 성향을 슬쩍 드러내는 것을 흔히들 ‘균형 잡힌’ 글쓰기 기술이자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국회는 정책을 생산하고, 법을 만든다. 국민들은 여러 사안에 대해 토론하고, 정당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위성정당 창당, 원전 정책 등 정치권의 쟁점이 되는 사안들은 모두 분명한 찬반의 논거 속 여야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이슈들이다. 지식인과 언론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 헌법적 가치 및 각자의 양심에 근거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중요한 책무다. 이때 비로소 정치를 ‘정쟁이 아닌 정책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환상에 갇혀 이를 ‘정쟁의 소재’로 치부하며 싸잡아 비판만 내놓는 순간, 정치의 표류는 시작된다. 임 교수는 정치혐오가 깊어진다고 우려하면서 정작 정치혐오를 조장했다. 사실 언론의 측면에서 보면, 이번 ‘칼럼 고발 사건’은 차라리 잘된 일일 수 있다.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다가오는 21대 총선의 유불리라는 관점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면 그렇다. 권력 비판이 단순히 수단으로만 쓰이지는 않았나 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혹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결과적으로 특정 보수정당의 이익을 대변해 온 건 아니었는지 자성할 기회이기도 하다. ‘임미리만 빼고’ 나면 나머지 언론들은 정치와 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해 그동안 다 잘해온 건지 평가해 보자는 말이다. 이참에 언론이 오랫동안 표방해왔던 기계적 중립, 객관적 균형의 실체적 진실에 대해 성찰한다면 이번 해프닝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아시아의 병자’/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시아의 병자’/박홍환 논설위원

    중국 근대사의 거인인 루쉰(魯迅·1881~1936)은 원래 의학도였다. 국비유학생으로 1904년 일본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수업시간에 목도한 러일전쟁 당시의 사진 한 장을 계기로 인생의 목표를 바꿨다. 러시아에 군사기밀을 넘긴 죄로 일본군에게 참수되는 중국인 사진이었는데 건장하지만 멍청한 얼굴의 중국인들이 잔뜩 모여들어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루쉰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 더 시급하다”며 그 길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사상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일본 학생들의 환호소리를 들으며 그는 “어리석고 겁약한 국민은 사형수나 구경꾼밖에 될 수 없다”는 참담함을 느꼈던 것이다. 당시 중국은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에 제 땅을 내주고 불평등조약을 감수해야만 했던 처지였다. 조계지에서 발행되던 영국계 신문은 중국을 ‘동아시아의 병자’(Sick man of East Asia)라 조롱했다. 상점에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팻말까지 내걸렸다. 청말 사상가인 량치차오(梁啓超·1873~1929)가 이 같은 내용을 알렸고, 이웃 국가인 일본조차도 ‘도우아뵤오후’(東亞病夫)라고 손가락질했다. 교육가 옌푸(嚴復·1854~1921)를 비롯해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이 “오늘의 중국은 병든 사람과 다름없다”고 절망했다. 심지어 마오쩌둥(毛澤東)조차도. 영화에서도 많이 묘사됐다. ‘브루스 리’ 이소룡 주연의 영화 정무문(1972년)이 대표적이다. 서구 열강의 조계지가 설치돼 있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주인공 브루스 리가 일본인들이 도장에 던져 놓고 간 ‘도우아뵤오후’ 편액을 떼어내 내동댕이쳐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중국인은 동아시아의 병자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리옌제 주연의 영화 ‘무인 곽원갑’(2006)에서는 주인공이 서구의 근육질 무사들을 차례로 때려눕힌다. ‘아시아의 병자’라 조롱하는 서구 열강을 격파한다는 의미다. 중국 외교부가 ‘중국은 진정한 아시아의 병자’(China is the real sick man of Asia)라는 칼럼 제목을 문제삼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중국 주재 기자 3명의 기자증을 회수하고, 강제추방 명령을 내렸다. 지금 어느 누구도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중국을 ‘아시아의 병자’라 여기지 않는데도 중국이 100년 전의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닌지 안타깝다. 스스로를 대국으로 자처하는 중국이 여전히 기자증 갱신을 무기로 외국언론까지 통제하는 악습을 버리지 않는 것도 놀랍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발표 하루 전날 미 국무부는 신화통신 등 중국 국영언론사들에 대한 규제 방침을 밝혔다. 추방조치가 그 보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tinger@seoul.co.kr
  • [곽병찬 칼럼] 표현의 자유,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곽병찬 칼럼] 표현의 자유,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임미리씨가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했고, 이낙연 전 총리가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내정자 자격으로 사과를 했고, 임씨가 ‘수용한다’고 했다. 그러면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임씨의 칼럼으로 말미암은 표현의 자유 소동은 종결된 걸까. 임씨가 말하는 ‘국민’은 누구이고, 이 전 총리가 사과했다는 ‘국민’은 누구인가. 소동을 일으킨 건 민주당이다. ‘민주당만 빼고’라는 대목만 빼면 지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판 혹은 비난인데도 ‘고발’했다. ‘협량하다’느니 ‘오만하다’느니 ‘겸손하지 못했다’느니 따위의 말들이 논란의 키워드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그런 말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따질 때 쓸 것은 아니다. 임씨가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전국적 망을 가진 대형 스피커로 거두절미하고 ‘민주당만 찍지 말라’는 소리가 퍼지는데 침묵할 정당이 어디 있을까. 당장 표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후보자들이 당 지도부를 비난했겠지만, 후보가 확정된 뒤라면 그들이 먼저 흥분했을 것이다. 임씨의 글은 상식적으로 보아도 현행 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다. 후보자 확정 여부를 따지지만, 이번 선거법 개정과 함께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과점을 위한 ‘위성정당’을 창당할 정도로 정당은 그 자체로 후보자가 되었다. 문제는 ‘국민’이다. 임씨가 지목한 국민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그는 정당과 정치인이 국민을 농락하는 이유를 ‘국민’이 ‘최악을 피하려 차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국민이란 ‘민주당 지지자’일 것이다. 임씨는 그들에게 이번엔 ‘민주당만 빼자’고 했다. 민주당은 ‘최악’이다. 나름대로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선택인데 나라를 그르치고 또 그르칠 죄인 취급을 당한 이들에게 임씨의 ‘말’은 살아온 삶, 인격, 양식에 대한 모욕이다. 동의할 수도 없는 이유로 훈계까지 들어야 했으니 더욱 그렇다. 검찰 개혁, 노동 여건 악화, 재벌 개혁 포기, 정권 이해 골몰 등. 설사 동의한다 해도 ‘도로 새누리당’이나 ‘떴다방 정당’이 왜 민주당보다 나은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짜고짜 ‘민주당만 빼고’ 하자는 요구만 있다. 그런 ‘민주당 지지자’를 위로하는 말이 공교롭게도 임씨를 지지하는 홍세화씨의 칼럼에 한 대목 있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민족해방전선에 군자금 전달을 마다하지 않던 장폴 사르트르를 단죄해야 한다는 측근에게 드골이 ‘그도 프랑스야’라고 만류했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존중한 것’이라는 필자의 엘리트주의적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저 드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임씨에게 전하고 싶다. ‘지식인 임씨’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임씨가 자괴감을 강요한 민주당 지지자들도 드골의 말처럼 대한민국이고 그 국민이다. 그들은 어쩌면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어쩌면 ‘그런 지식인들’보다 더 열심히 거리에서, 삶터에서 정상국가를 염원했다. 함부로 조롱해선 안 된다. 그런 일에 쓰라고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지식인들을 자극한 것은 검찰 고발이었다. 솔직히 말해 보자. 여당이 고발한다고 겁먹을 검찰인가. 여권을 잡는 데 혈안이 된 게 검찰이다. 그리고 말을 일삼는 지식인이라면 그 ‘말’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 1997년 대통령선거일 하루 전인 12월 18일치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은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 결과의 추이를 분석한 기사를 게재했다. 유권자가 가장 목말라했던 정보였다. 그러나 선거법에 금지된 것이었으니 고발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이었다. 김종철 기자는 이후 김대중 정부 아래서 수사, 기소, 재판 등 법정 절차 외에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며 왜 ‘선거법이 부당하고 보도가 정당한지’ 세상에 알렸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고, 공민권 제한을 당했지만, 2005년 선거법 관련조항은 개정됐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넓히는 데는 그런 희생이 있었다. 멕시코의 비폭력 민족해방군(신사파티스타) 지도자 마르코스는 ‘말은 민중의 무기’라고 했다. 약자들의 유일한 무기가 ‘말’이다. 그런 ‘말’을 몇몇 지식인들이 고성능 스피커를 가진 집단(언론사)과 결합해 독과점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표현의 자유가 이들의 무분별한 감정이나 배설하고, 책임은 모면하는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지식인의 공깃돌이 아니다.
  • 진중권 “586세대가 대통령을 운동권 낡은 정치문화에 가둬”

    진중권 “586세대가 대통령을 운동권 낡은 정치문화에 가둬”

    “민주당, 단단히 고장났다…위기인데 위기인 줄 모른다”“쓴소리하면 극성 친문에 ‘양념’당해…자유주의 아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586세대가 대통령을 과거 운동권 시절의 낡은 정치문화에 가둬버렸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위기인데 위기인 줄 모른다”면서 “(민주당이) 고장이 나도 단단히 고장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 의식을 가진 극소수의 의원들마저 괜히 쓴 소리 했다가는 극성스러운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양념’ 당할까, 권리당원인 친문 조직표를 (의식해) 두려워 말을 못 한다”면서 “안에서 비판을 못 하면 밖에서라도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극성 지지자들이 집단으로 ‘양념’질을 해대는 바람에 밖에서 비판을 못 한다”고 비판했다. ‘양념’이란 19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쟁 후보였던 안희정·이재명 후보에게 비난 문자를 보낸 데 대해 문재인 당시 후보가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며 지지자들을 감싼 데서 비롯된 말이다. 최근 ‘민주당만 빼고’라는 칼럼을 썼다가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한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경우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비판에 민주당이 결국 고발을 취하했지만,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고발에 나섰다.진중권 전 교수는 “상황이 이 지경인데 민주당은 그냥 손 놓고, 아니 이 상황을 즐긴다”면서 “다수의 지식인이 기가 죽어 침묵하는 사이 일부는 대중독재의 흐름에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거나 아예 어용선동가가 돼 그 흐름을 주도하고 그 공으로 돈도 벌고 공천도 받는다”고 개탄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민주당의 586세대 정치인들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해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상황이 이 지경인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더 절망적인 것은 이게 문제라는 것을 인식조차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자 김대중, 노무현은 젊은 386들을 데려다가 자유주의 틀 내에서 자기 뜻을 펼치게 해 주었는데 어느덧 그들이 586 주류가 되어 대통령을 만들고 그 대통령을 과거 운동권 시절의 낡은 정치문화에 가둬버렸다”면서 “이들이 당정을 장악, 이 나라 정치 문화가 졸지에 80년대 운동권 문화에 물들어 버렸다”고 했다.그 결과 “이견을 가진 이의 존재를 묻어버리는 식으로 처리하고, 상대를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간주하고, 투표를 적으로 섬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서 “이건 결코 자유주의적 정치문화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이러한 정서로 세뇌된 여권이기에 “청와대에서 조국 임명을 강행했던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이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하게 한 중대한 정치적 실수를 하고도 외려 국회의원으로 영전한다”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이어 “이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까지 한 사안(조국 사태)인데 외려 김용민, 김남국 등 조국 키즈들을 영입한다”면서 “(이 모든 일이 위기도, 문제도, 실수도 인식 못 하는 여권의 정신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갑갑하다”고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中 전인대 42년 만에 첫 연기… 코로나 ‘0번 환자’ 논란 가열

    中 전인대 42년 만에 첫 연기… 코로나 ‘0번 환자’ 논란 가열

    우한연구소 “최초 감염자설 가짜 뉴스” 후베이 차량 전면 통제·공공장소 폐쇄 ‘시진핑 퇴진 촉구’ 지식인 쉬즈융 체포중국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누적 확진환자가 7만명을 넘어섰다. 발원지인 후베이 지역에서는 지역 내 차량 이동까지 전면 통제하며 사실상 경제활동이 중단됐다. 매년 3월 초 열리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퇴진을 촉구한 권퇴서(勸退書)를 올린 유명 지식인 쉬즈융이 체포됐다. 17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0시 현재 본토의 확진환자는 7만 548명, 사망자는 1770명이다. 전날보다 각각 2048명, 105명 늘었다. 확진환자가 7만명을 넘어선 것은 중국 보건당국이 관련 통계를 발표한 뒤 처음이다. 다만 후베이성을 뺀 다른 지역에서는 신규 확진환자가 115명으로 떨어져 지난 3일(890명)을 정점으로 13일 연속 하락했다. 확산세는 한풀 꺾였지만 코로나19의 최초 감염 경로에 대한 소문과 추측은 더욱 난무하고 있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과학원 우한병독연구소(WIV)가 전날 성명을 내고 “우리 연구소 출신 황옌링이 ‘0번 환자’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고 보도했다. ‘0번 환자’는 인간에게서 발견된 적이 없는 새 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를 뜻한다.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WIV에서 근무하던 황옌링이 ‘0번 환자’로 코로나19에 감염돼 숨졌고 그의 시신을 처리한 장례업체 직원이 이 병을 대거 퍼뜨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연구소는 “황옌링은 2015년 여기서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다른 성으로 갔다. 이후 우한으로 돌아온 적이 없다”면서 “그는 현재 건강하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후베이성에 대한 ‘봉쇄적 관리’에도 일일 확진환자가 2000명 가까이 쏟아지자 아예 민간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하는 극단적 조치가 나왔다. 후베이성 정부는 공무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문화, 체육을 즐기는 공공장소도 전부 폐쇄하기로 했다. 사실상 지역 경제활동을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이달 하순 상무위원회에서 제13기 전인대 제3차회의 연기 결정 초안을 심의한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정치 외적 이유로 양회 일정에 변동이 생기는 것은 문화대혁명 뒤 양회가 복원된 1978년 뒤로 42년 만에 처음이다. 1995년부터 매년 3월 초 열리던 관례도 25년 만에 깨진다. 양회 연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현실이 되면서 시 주석의 초동 대처 실패를 묻는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 이론지 추스는 지난달 3일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시 주석이 한 발언 전문을 실어 그가 1월 7일 코로나19 대응 회의 때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날 홍콩 명보는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해 정반대의 내용을 소개했다. 지난해 말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속출하자 우리의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즉각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되레 ‘중앙 영도인’(시 주석)은 1월 7일 회의에서 “예방에 나서되 다가오는 춘제(음력 설) 분위기는 깨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의 안이한 상황 판단이 후베이성과 우한시 정부의 그릇된 대응을 불러왔다고 명보는 분석했다. 중국 당국의 ‘입 틀어막기’도 가속화되고 있다. 시 주석의 퇴진을 촉구한 유명 반체제 활동가 쉬즈융이 지난 15일 광둥성 광저우에서 체포됐다고 프랑스 공영방송 RFI 등이 보도했다. 쉬즈융은 지난 4일 소셜미디어에 “주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시 주석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덕부심’ 갖춘 여성리더 양성 매진… 덕성의 새로운 100년 열겠다”

    “‘덕부심’ 갖춘 여성리더 양성 매진… 덕성의 새로운 100년 열겠다”

    서울의 진산 북한산 아래 다소곳이 자리잡은 덕성여대. 서울의 여느 대학과 달리 평평한 캠퍼스에 나지막한 학사(學舍)들이 어머니 품처럼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캠퍼스 입구의 대학본부를 지나 안쪽으로 몇 발짝만 옮기면 나타나는 대운동장도 방문객을 따뜻하게 껴안아 주는 것 같다. 대학 캠퍼스가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까 싶어 연신 사방을 둘러보게 된다. 고개를 들면 북한산의 비경이 두 눈을 가득 채운다. 손에 잡힐 듯한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덕성의 위상을 말해 주는 듯 우뚝 솟아 있다.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덕성여대가 올 4월이면 창학 100주년을 맞는다.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인 차미리사(1879~1955) 여사가 1920년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가 모태이다. 외국 자본이나 외국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온전히 우리 여성의 열정과 노력으로 세운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어서 덕성여대의 100주년은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강수경(52) 총장을 만나 덕성여대가 걸어온 100년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획을 들었다.-창학 100주년을 축하한다. “덕성여대의 창학 100주년은 우리 민족과 나라에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는 4월 17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학술심포지엄, 엠블럼 공모, 차미리사 선생 묘역 정비 등의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재도약’을 주제로 각종 학술행사, 기념행사, 동문참여행사 등을 펼쳐 나갈 것이다.” -덕성여대만의 특성이나 문화가 있다면. “독립운동가인 차미리사 여사가 여성교육을 위해 설립한 학교인 만큼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강한 비판 의식을 덕성의 ‘학풍’(學風)이라고 할 수 있다. 덕성여대의 자부심이란 뜻인 ‘덕부심’을 자랑스러워한다. 학내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차미리사 여사의 창학이념(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으로 돌아가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강한 비판 의식은 학교를 100년간 굳건히 지켜 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학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율이 높고, 민주적이고 투명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도와 대내외 평가는. “덕성여대는 1987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기 이전부터 인문학과 사회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고, 학문적 업적도 많이 쌓았다. 특히 여대로서는 드물게 약학대학을 비롯해 39개 학과가 개설돼 기초학문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왔다고 자부한다. 철학과를 비롯해 국내에 몇 안 되는 미술사학과와 문화인류학과도 개설돼 있을 뿐 아니라 예술대는 동양화와 서양화로 구분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2005년에는 타 대학들이 법학전문대학원 설립으로 학부과정을 없애는 추세에서도 덕성여대는 법학과를 신설해 법률 기초지식을 갖춘 여성 인재 배출에 기여하고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연구하는 기초역량을 길러 주고 있다. 물론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전문 법조인이 되려는 학생뿐 아니라 입법관련 기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 교육부를 비롯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 등 외부평가 기관의 평가가 긍정적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재단의 충실한 재정지원도 한몫하고 있어 덕성의 미래는 아주 밝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계속 여대로 운영할 것인가. “여성교육은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다른 대학들이 신입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덕성여대는 앞으로도 그런 걱정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섬세함, 모성애, 끈기 등 우리 대한민국 여성만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는 여성 교육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것이다.” -미래 100년을 향한 청사진이 있다면. “교육혁신을 통해 덕성여대만이 할 수 있는 여성교육의 길을 끊임없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 덕성성장지수(DGI)를 개발해 입학에서 졸업, 사회진출 후까지 학교가 지원하고 관리해 학생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다. 아울러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변화에도 여성이 더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BT) 분야를 특성화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여성 리더들을 양성할 것이다.” -올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올해부터 사회과학대학과 인문과학대학을 글로벌융합대학으로 통합해 신입생을 선발했다.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은 과학기술대학으로 통합해 역시 신입생을 학과 단위가 아닌 대학 단위로 뽑았다. 신입생들에게 다양한 학문을 접할 기회를 부여하고, 올바른 학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제2 전공을 통해 마음껏 학구열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시도는 국내대학 가운데 처음이라고 하니 변화를 향한 성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총장이 직접 강의를 맡았다는데. “지난해 총장으로 선임된 이후에도 법학 관련 과목 강의를 계속했다. 선배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총장으로서 학생들에게 귀감(모델)이 되고자 했다. 교직원과 학생 모두에게 총장의 권위보다는 혁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학사행정으로 바쁜 게 사실이지만 강의를 통해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부터는 총장으로서 학사행정에 전념할 생각이다. 대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도록 하려 한다.” -교직원과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는 비결은. “법학과 교수 시절의 헌법, 행정법, 노동법 등의 강의가 학생들의 욕구를 적게나마 채워 줬다고 본다. 학생들이 필요한 시간에 언제든지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연구실을 항상 개방해 뒀다. 후배 학생들과 거리낌없이 언제나 대화할 수 있는 게 개인적으로도 행복했다. 지난해 총장 직선에서 학생 지지율이 무려 98.3%를 기록해 무척 놀랐다. 학교 발전을 열망하는 덕성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온몸을 전율케 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남은 임기 동안 학생들과 학교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인권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고. “법학과가 생기면서 ‘인권과 노동법’ 강의가 개설됐고, 노동 관련 문제와 여성인권에 대해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사회에 나갔을 때 여성이라는 지위에서 오는 부당함,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처하는 법률적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여성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 방법과 법률적 조언을 위해 ‘불어라 휘파람’이란 연재물을 교내 신문에 싣기도 했다. 총장 임기 중에 인권을 특성화한 교양교육을 체계화하고, 인권센터를 통해 전문적인 인권활동가를 양성해 덕성여대가 여성 인권교육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심판위원으로 5년째 활동 중이다. 개인의 신념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제도나 체제 등이 정비돼 있지 않다. 가령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에 대한 인권 보장 등에 관심을 쏟고 있다. 특히 우리 대학이 위치한 서울 도봉구에서는 5년 넘게 인권위원장을 맡아 인권조례 제정부터 구민을 위한 인권센터 개소도 이끌어 냈다. 이런 대외 활동이 덕성여대를 여성 인권교육의 메카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중·고교 6년 동안 매주 시 한 편씩 옮겨 적으며 외웠던 습관이 법학자로 살아온 나 자신에게 많은 힘이 됐다. 덕성여대 학생들은 기본 소양을 갖췄다는 ‘덕부심’이 가득한 만큼 시대변화에도 잘 적응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글쓰기와 독서 습관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양대학 내 글쓰기센터를 소통역량센터로 확대 개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교 학생이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도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닐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전공이 무엇이든 덕성을 갖춘 창의적인 지식인, 협력하는 전문인, 실천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yidonggu@seoul.co.kr
  • 1호 안건 못 내고… 표정 굳은 삼성 준법감시위

    삼성의 ‘준법 경영’을 이끌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13일 ‘묘한 분위기’ 속에 2차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1시간여 전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프로포폴 투약 의혹’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교수·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지식인 438명이 준법감시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물하려는 의도라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준법감시위의 위원들은 이날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사옥 33층 회의실로 향했다. 위원들은 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취재진이 ‘이 회장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에 대해 질문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삼성에서 벌어지는 모든 위법사항을 성역없이 처리하겠다며 출범했지만 준법감시위는 회의에서 프로포폴 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형 준법감시위원장은 회의가 끝난 뒤 취재진의 관련 질문이 다시 쏟아지자 “그건 위원회에서도 이야기될 수 없다. 아직은…”이라며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다. 우선 위원회에서도 논의 자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있었던 1차 회의를 장장 6시간에 걸쳐 진행했던 것에 이어 이날도 일정을 마무리짓기까지는 6시간을 훌쩍 넘겼다. 지난 첫 회의에서 운영계획 및 규칙 등 제반 사항을 확정해 닻을 올린 준법감시위원회는 2차 회의에서는 앞으로 위원회가 집중해 다룰 ‘1호 안건’을 어떤 것으로 잡을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법감시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외후원 등 위원회에 보고된 안건에 대해 심의했다”면서 “제1차 회의에서 청취했던 (삼성) 관계사들의 준법감시 프로그램 현황과 관련해 그 개선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 점에 대해 관계사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또 “위원들이 제안한 삼성의 준법경영 관련 구체적인 이슈들에 대해 장시간 의견을 나누었으며, 오늘 논의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위원회의 중점 검토 과제를 신중하게 선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3차 회의는 다음달 5일 오후 2시에 열린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檢, 이재용 프로포폴 의혹 수사… 삼성 “사실무근”

    檢, 이재용 프로포폴 의혹 수사… 삼성 “사실무근”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삼성은 제보자의 일방적 주장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호삼)는 지난달 대검찰청으로부터 해당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공익신고자 김모씨에 의해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돼 권익위가 신고 자료와 수사의뢰서를 대검에 전달했다. 김씨는 이 부회장이 프로포폴을 투약받았다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 간호조무사 신모씨의 남자친구로 알려졌다. 해당 성형외과는 애경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채승석(50) 전 애경개발 대표이사의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에도 연루돼 지난해 말 폐업했다. 탐사보도 매체인 뉴스타파는 이날 이 부회장이 2017년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해 프로포폴을 투약받은 정황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 촬영본을 공개했다. 병원장 김모씨와 간호조무사 신씨가 나눈 SNS 메시지, 신씨와 이 부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눈 SNS 메시지를 제보자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둔 것이라고 뉴스타파는 보도했다. 이에 검찰은 조만간 제보자 및 김씨와 신씨 등을 차례로 불러 의혹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날 삼성전자 측은 입장문을 내고 뉴스타파의 보도에 대해 “다툼이 있는 관련자들의 추측과 오해, 서로에 대한 의심 등을 근거로 한 일방적 주장”이라며 “과거 병원에서 의사의 전문적 소견에 따라 치료를 받았고, 이후 개인적 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방문 진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불법 투약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어 “악의적인 허위 보도에 책임을 물어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당사자는 물론 회사, 투자자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사실이 아닌 보도가 확대재생산되지 않도록 수사 결과를 차분하게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 외에도 유명 남자 영화배우 A씨와 재벌가 자제인 기업인 B씨, 유명 패션디자이너 C씨 등 10여명도 해당 성형외과에서 상습적으로 프로포폴을 불법적으로 맞은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교수, 변호사 등 483명으로 구성된 ‘이재용 파기환송심의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촉구하는 지식인 모임’은 이 부회장의 뇌물죄 파기환송심을 진행 중인 법원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촉구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보우소나루, 브라질 민주주의 위협”…세계 예술·지식인 ‘공포정치’에 반기

    “보우소나루, 브라질 민주주의 위협”…세계 예술·지식인 ‘공포정치’에 반기

    아마존 사진 공개 인사 경질 등 보복 파울루 코엘류·스팅 등 2700여명 탄원브라질 여성 감독 페트라 코스타(36)의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가 올해 미 아카데미상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후보에 올랐을 때 국민들은 수상의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정작 브라질 정부는 이 영화에 악평을 쏟아냈다. 전직 대통령의 탄핵 사건 등을 다룬 이 영화가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부자가 함께 영화를 공격한 데 이어 대변인실 차원에서 코스타를 ‘가짜뉴스의 행상인’이라고 묘사한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정권 전체가 나서서 30대 젊은 여성 영화인을 집요하게 ‘매장’했다.보우소나루 정권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콘텐츠나 언론 보도에 위협을 가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더이상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전 세계 유명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비판하는 탄원을 냈다고 브라질 언론들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브라질에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제목의 이번 탄원서는 이틀 전 가디언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은 소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를 비롯해 세계적 석학 노엄 촘스키,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작곡가 필립 글래스, 팝가수 스팅과 그의 아내인 영화배우 트루디 스타일러 등 2776명에 이른다. 이들은 “브라질의 민주적 기관들이 공격받고 있다”면서 “보우소나루 행정부가 언론뿐만 아니라 문화, 과학, 교육을 조직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우소나루 정권에서 나타난 대표적인 퇴행적 징후로는 지난 1월 중순 문화정책 최고 책임자인 호베르투 아우빙이 독일 나치 정권의 당 선전부장이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연설을 흉내 낸 동영상을 올렸다가 해임된 사례가 꼽힌다. 청원은 “(아우빙은 해임됐지만) 보우소나루 정권의 극우 정치 프로젝트는 전면적으로 계속되고 있고,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보우소나루 정권이 교과서 검열과 교사 감시를 자행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영화진흥위원회와 예술기금, 문화재단 등에 검열과 예산삭감 등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고도 성토했다. 현 정권에서 보우소나루의 눈밖에 난 인사들이 줄줄이 인사 보복을 당하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예컨대 아마존 산불 사태 때 삼림 벌채 상황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한 리카르도 갈바오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장이 전격 경질된 바 있다. 지식인·문화예술인들의 이번 청원이 브라질 안팎의 여론에 실제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남미 각국의 반정부 시위가 거센 가운데 브라질은 극우정권의 공포정치 속에 민심이 억눌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날 브라질 노동자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은 창당 40주년 기념행사에서 현 정권에 맞서는 거리 투쟁을 촉구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신종코로나 첫 경고한 中의사 죽음에 ‘언론 자유’ 목소리 터져나와

    신종코로나 첫 경고한 中의사 죽음에 ‘언론 자유’ 목소리 터져나와

    ‘톈안먼 시위’ 재현 경고까지…시진핑 체제 도전 직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경고했다가 괴담 유포로 처벌받은 중국 의사 리원량이 신종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다 감염돼 결국 숨지자 중국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포함해 중국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이 결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온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이러한 주장을 차단하려 애쓰고 있지만 중국 학자들이 잇따라 비슷한 주장을 내놓으면서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체제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화중사범대학의 탕이밍 국학원 원장과 동료 교수들은 공개서한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서한에서 “리원량의 경고가 유언비어로 치부되지 않았다면, 모든 시민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 국가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34세 의사 리원량은 누구? 우한중심병원 의사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30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증세가 있는 환자의 보고서를 입수해 이를 대학 동창들의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그러나 그는 12월 31일 새벽 1시 우한 위생건강위원회에 불려가 발병 소식의 출처를 추궁당했다. 결국 새해 첫날 우한 경찰은 리원량의 경고를 유언비어로 규정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리원량을 비롯한 8명의 의사를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공지했다. 리원량은 지난달 3일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렸다는 내용의 ‘훈계서’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그는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4주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당국이 사망 발표를 연기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한 학자들 “사태 핵심은 언론의 자유…정부 사과해야” 서한을 발표한 화중사범대학의 학자들은 “리원량을 포함한 8명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알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침해당하고 말았다”면서 “정부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들 ‘내부 고발자’에게 제기된 혐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들 8명에게 사과하고, 리원량을 순교자로 지정할 것도 요구했다. 학자들은 중국 헌법을 인용해 “중화인민공화국 시민들은 언론,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며 “시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집단의 이익이나 다른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신종코로나 확산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이며, 우리는 리원량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며, 관료들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서한은 중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확산됐다. “톈안먼 사태보다 더 심각한 상황 벌어질 수 있다” 리원량의 죽음이 알려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인 지난 7일 오전 6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는 ‘리원량 의사가 사망했다’는 해시태그가 붙은 글의 조회 수가 6억 7000만건을 기록했다. 비슷한 제목의 ‘리원량 사망’ 글의 조회 수도 2억 3000만건에 달했다. ‘나는 언론의 자유를 원한다’는 해시태그 글도 286만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으나, 이 글들은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다. 리원량의 죽음 이후 중국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우한의 화중사법대학 교수들뿐만이 아니다. 베이징대 법학 교수인 장첸판은 “정부는 2월 6일(리원량 사망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면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법 조항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리원량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다”면서 “그의 죽음이 우리를 두렵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용기를 내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더 많은 사람이 두려움에 떨어 침묵을 지킨다면 죽음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체제에 맞서 ‘아니요’(No)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처럼 앞장서서 정부의 언론 통제를 비판하는 가운데 리원량의 죽음이 시진핑 정권을 향한 ‘신뢰의 위기’를 촉발시켜 톈안먼 사태와 같은 거대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 유혈 진압한 ‘중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현재도 중국 내에서 6·4 항쟁에 대한 정보가 상당수 차단되거나 검열되고 있다. 친첸훙 우한대학 법학 교수는 “이번 사태는 대단히 큰 위기”라며 “중국의 여론은 지금껏 분열됐지만, 이제는 (리원량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라는 동일한 감정과 태도를 공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친 교수는 “상황이 폭발할까 봐 걱정된다”며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가 죽었을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친 교수가 언급한 ‘후야오방의 죽음’이 톈안먼 사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직에 올라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힌 인물이다. 그러나 1986년 발생한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그가 1989년 4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그의 죽음이 같은 해 6월 톈안먼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中 당국, 들끓는 분노에 언론 통제…‘민심 달래기’ 감찰도 시작 리원량의 죽음에 지식인 사회는 물론 대중들의 분노도 높아지자 중국 정부도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민심을 달래기 위한 대응에도 나섰다. 당국은 리원량의 사망이 미칠 파장을 우려해 기사와 소셜미디어를 검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훈계 처분을 받았던 우한 의사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제목의 남방도시보 기사는 곧 삭제됐다. 그가 신종코로나를 경고하고도 당국으로부터 처벌받았다는 점을 부각한 제목 때문으로 여겨진다. ‘#우한시 정부는 리원량에게 사과해야한다#’는 해시태그는 웨이보에 올라왔다가 신속히 검열됐다. 심지어 그의 사망 시각조차 의문스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애초 6일 오후 9시 30분에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망 시각이 7일 새벽 2시 58분으로 바뀌었다.이 때문에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당국이 사망 발표를 연기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사망 보도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사망 발표 연기 의혹에 대해 “관련된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화 대변인은 이어 “많은 의료인이 전염병 발생 이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모두를 위해 용감히 최전선에서 희생했다”면서 “우리는 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고, 리원량 선생과 세상을 떠난 다른 환자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국가감찰위원회는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해 의사 리원량과 관련된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난징대 정치학 교수인 구쑤는 “국가 고위 기관이 의사 한 명의 죽음에 이렇게 신속하게 조사팀을 파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다만 이들이 리원량을 처벌한 경찰은 조사할 수 있겠지만, 이를 지시한 상층까지 조사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SCMP는 “중국 정부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관료들을 처벌할 수 있겠지만, 이는 신종 코로나 방역 작업을 벌이는 관료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딜레마를 불러온다”며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는 대중의 요구를 얼마나 수용할지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국민 죽어나가는데… “시진핑은 어디에 있나, 물러나라”

    국민 죽어나가는데… “시진핑은 어디에 있나, 물러나라”

    “초기 대응 실패는 언론자유 없기 때문” 中 교수·저명 지식인 이례적 공개 비판 親中 성향 WHO 내부서도 불만 표출중국 내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의 최고 책임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CNN 방송도 “시 주석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며 공산당 지도부를 작심하고 질타했다. 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칭화대 법학 교수인 쉬장룬은 최근 해외 웹사이트에 게재한 논문 등을 통해 “신종 코로나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쉬 교수는 신종 코로나 확산 초기에 (의사 리원량 등에게서)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당국이 이를 억누른 것을 지적하며 “공론장이 열릴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돼 더이상 조기 경보를 울릴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관료의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성과를 낼 역량이 없는 이들만 넘쳐난다”고 일갈했다. 앞서 쉬 교수는 2018년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해 개헌에 나서자 이를 비판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저명 지식인인 쉬즈융도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무역전쟁, 홍콩 시위, 신종 코로나 확산 등 주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시 주석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신(시 주석)은 악당은 아니지만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다”라면서 “당신에게 물러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쉬즈융은 중국 당국의 탄압을 피해 지난해 말부터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노골적 친중 성향으로 눈총을 받던 세계보건기구(WHO) 내부에서도 중국에 대한 불만이 감지된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WHO 자문기구인 긴급위원회의 일원인 호주 커튼 대학의 존 매켄지 명예교수는 중국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신속하게 감염사례를 보고하지 않은 점에 대해 “비난받을 행위”라고 언급했다. 매켄지 교수의 발언은 그간 중국의 대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온 WHO의 공식 입장과 매우 다르다고 더타임스는 평했다. CNN은 ‘중국은 시진핑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지휘한다 말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 주석은 최근 며칠간 인민일보 첫 페이지나 중국 중앙(CC)TV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전면에 나서야 함에도 그가 사라진 것을 두고 ‘기이하다’고 표현했다. 주민들의 반감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고 CNN은 추측했다. 그러자 인민일보는 곧바로 6일 자 1면 톱기사에 시 주석이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만나는 사진을 게재하며 분위기 전환에 나섰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해맑던 김광석, 신인 송강호… 그 시절 그때 우리와 만나다

    해맑던 김광석, 신인 송강호… 그 시절 그때 우리와 만나다

    “유명한 사진작가도 아닌데 개인전을 열어도 되나 싶었습니다. 남한테 보여 주려고 찍은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좋아서 찍은 사진들이니까요. 지난 세월을 사진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공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변했구나 느낍니다.”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학림다방 30년-젊은 날의 초상’을 열고 있는 이충열(65) 학림다방 대표는 혼자만 간직하던 비밀을 세상에 내놓은 아이처럼 쑥스러워했다. 1956년 대학로 119번지에 문을 연 뒤 한자리에서 60년 넘게 영업 중인 학림다방은 대학로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명소다. 서울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엔 젊은 지식인들의 토론장이었고, 1975년 관악으로 옮겨 간 이후로는 음악, 미술, 연극, 문학계 인사들이 밤낮으로 교류하는 아지트로 사랑받았다. 이 대표는 1987년부터 네 번째 주인으로 학림다방을 운영해 온 터줏대감이다. 1983년 지하철 공사로 건물이 새로 지어진 뒤 레스토랑으로 바뀌어 단골들의 발길이 끊기자 주변 권유로 인수하게 됐다. 나무 테이블, 천 소파, 레코드판과 DJ박스 등 1970년대 풍경을 되살린 인테리어는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과 커피, 예술의 향기가 어우러진 이곳을 서울시는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이 대표가 1980~1990년대 연우무대와 학전 등 대학로 극단들의 포스터와 보도자료용 사진을 공짜로 찍어 준 사실은 익히 알려졌지만 다방을 즐겨 찾던 단골 문화예술인들의 사진과 창밖 거리 풍경을 꾸준히 촬영해 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4년 YMCA 사진학원 1기 수강생으로 사진을 처음 배웠고, 군대에서 운 좋게 사진병으로 근무했다”는 그는 학림다방 운영 초기에 고가의 라이카 카메라를 중고로 산 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30년간 찍은 사진의 규모는 500롤, 1만 5000여장. 그는 “공연 사진을 찍고 남은 필름이 아까워 인물과 주변 풍경들에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며 “다방 안에 있는 인물을 찍을 땐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다방 한쪽에 암실을 차려 직접 인화 작업을 했기 때문에 전부 흑백사진이다. 이번 사진전은 그 방대한 기록의 편린을 ‘젊은 날의 초상’, ‘창문 너머로 흐른 시절들’, ‘학림다방’ 등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전시했다. ‘젊은 날의 초상’에선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 배우 송강호·황정민·설경구의 풋풋했던 신인 시절을 만날 수 있다. ‘창문 너머로 흐른 시절들’은 학림다방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본 거리 풍경들이다. 민주화 시위가 격렬했던 1980~1990년대와 월드컵 응원 열기로 달아오른 2002년 대학로 풍경의 대비가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일단을 보여 주는 듯하다. ‘학림다방’은 학림다방에 머물렀던 사람과 공간 자체에 대한 기록이다. 문인 이덕희, 정치인 백기완, 시인 김지하, 철학자 윤구병 등 문화예술인들과 이름 모를 단골손님들의 모습이 담겼다. “‘학림 세대’들은 대부분 60대 후반이고, 돌아가신 분도 많아요. 요즘 학림다방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젊은이들이 주로 찾기 때문에 오랜 단골손님들이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세상이 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요.” 이 대표는 지난해 디지털카메라를 처음으로 구입했다. 시력이 나빠져 라이카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바뀌었지만 그가 렌즈에 담을 사람과 세상 풍경은 아마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전시는 오는 9일까지.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통조림, ‘가배당’ 커피, 와인 사러 오시오”/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통조림, ‘가배당’ 커피, 와인 사러 오시오”/손성진 논설고문

    황성신문 1901년 6월 19일자에 식료품 광고가 처음 실렸다. 지금의 서울 광화문 남쪽에 있었다는 점포 ‘구옥상전’이 낸 광고로 포도주, 가배당(??糖), 우유, 밀감주(오렌지주스), 목과(木果·과일), 맥주, 전복을 판다고 삽화와 함께 알리고 있다. 상표는 없다. 맥주·밀감주는 병에, 목과·전복·우유는 캔에 들어 있다. 모두 수입품이었을 이런 가공식품들을 일반 국민이 접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광고가 계속된 것을 보면 개화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수입 식품의 소비층이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통조림이다. 전쟁이나 항해에서는 음식을 상하지 않게 갖고 다니는 게 숙제였다. 나폴레옹이 큰 상금을 내걸어 프랑스에서 진공 병조림이 탄생했고, 이를 발전시켜 주석 통조림을 발명한 사람은 영국인 듀란드로 1810년의 일이었다. 광고 속의 물품들도 대부분 서양이나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우유인데 생우유가 아니라 분말 우유, 즉 분유였을 것이다. 네슬레가 최초로 깡통에 든 분유를 내놓은 것은 1867년이었다. 분유는 영아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분유뿐만 아니라 진공 깡통 속에 든 과일이나 전복을 처음 접한 당시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을 게다. 포도주는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었다고 고문헌에 있다지만 광고에 나온 것은 서양식 레드와인이다. 같은 황성신문 1909년 7월 2일자에 포도주를 위조해 판매한 기사가 있다. 아마도 가짜 술을 팔다 처음 적발된 사건일 것이다. 이후에도 불량 포도주 판매를 중지시켰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에 적잖은 사람들이 와인을 즐겼다는 말이 된다. 고종이 일본 소야(曾彌) 통감에게 와인을 하사했다는 기사도 있다(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2일자). 1910년대에 접어들면 ‘적옥(赤玉) 포도주’ 등 와인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 커피가 처음 들어왔을 때 양탕(洋湯)국이라고 했다가 가배(??), 가비(茄菲), 가비(??), 가피(加皮) 등으로 음차를 해서 불렀다. 가배당은 각설탕 속에 커피가 들어 있는 것으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설탕과 커피가 녹는 일종의 인스턴트 커피였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 나왔다. 커피는 고종 황제가 즐겨 마셨다고 하지만, 사실은 1884년 무렵에도 이미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1902년 문을 연 손탁호텔 1층에 있던 커피숍이 최초의 커피숍이라고 한다. 하지만 황성신문 1900년 11월 24일자에 “송교(松橋·신문로 1가) 청향관 가피차(加皮茶) 파는 집에서 진(眞)요리를 염가로…”라는 광고가 게재됐으니 그보다 앞선다.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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