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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민의 막론하고] 믿는 대로 보지 말고 있는 대로 바라보자

    [정승민의 막론하고] 믿는 대로 보지 말고 있는 대로 바라보자

    보냄과 만남이 교차하는 연말이지만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는 비상시국이다. 정말 올 한 해는 마스크로 시작해 마스크로 끝나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서로를 없어져야 할 적폐 세력으로 드잡이하는 정치적 독단과 독선은 변함없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대문자는 사전에서만 존재한 지 오래다. 내 편은 진짜고 네 쪽은 가짜다.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보고 싶은 세상을 모자이크처럼 만들어 가는 것이 여의도와 광화문의 실정이다. 하지만 사필귀정(事必歸正)과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구축된 상상의 세계는 의사(擬似)현실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이더라도 이해관계는 숨어 있을 수밖에 없다. 적나라하게 이익만을 추구해도 결과적으로 공공선을 증진하기도 한다. 생활의 세계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정신 승리에는 이바지하겠지만 현실 적합도를 떨어뜨려 미래를 왜곡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현재는 비상시다. 위기를 뚫고 나가려면 평소보다 더욱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한층 정밀하게 분석해 최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모두가 납득하고 다 함께 실천하기 위한 대전제는 객관적인 현실 인식이다. 지식인과 정치인의 역할이 최우선적으로 요청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태는 여의치 않다. 진위를 가려야 할 그들이 오히려 확증편향을 갖고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데 열심이다. 우리 진영의 이익과 믿음을 해친다고 생각하는 정보나 자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을뿐더러 음해까지 서슴지 않는다. 사실 사건과 사고의 홍수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갈수록 모호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도 힘든 판에 일반인이 견뎌 내기는 쉽지 않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이 반지성이다. 인식 대신 믿음을, 현실 대신 환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단순 명료한 메시지로 세계를 알려 주는 지침을 내려먹인다. 무조건 우리는 진리고 적들은 거짓이다! 그러나 주관적 기대는 객관적 현실을 꺾을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시하던 미국 대통령의 감염은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과거부터 이어 온 집단적 확신이나 경험은 새로운 사태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다. 실제의 현상을 정치적 손익으로 재단하다가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는 비극을 맞게 된 것이 현재의 미국이 아닌가. 항상 해답은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있다. 믿는 대로 보지 말고 있는 대로 봐야 한다. 편견이나 편향이 없다고 구성원 모두가 신뢰할 때, 공동체의 위기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불편부당을 존재 이유로 내세우는 지성인의 역할이 중차대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본질적으로 ‘무소속’이기 때문에 브레이크가 될 수 있다. 혈연, 학연, 지연을 따지는 연고주의자들은 물질적 가치에 침윤돼 위기에 아랑곳없이 파벌과 집단의 이익만을 맹종한다. 모두의 신용을 얻을 턱이 없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려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자유로운 지성만이 대붕괴를 막는 제동장치가 된다. 특정한 사람만이 브레이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따져 보면 무소속의 결정판은 정부와 언론이다. 사적 이익으로 낙착되더라도 공공재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행정과 보도다. 둘 다 만인을 위한 만인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치닫는, 그래서 사회 전체를 와해하려는 움직임을 잘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자를 연구한 종교학자 오강남은 우선 사물을 다각적으로 볼 수 있는 양행(兩行)의 길을 터득하라고 권한다. 현상의 한 면만 절대화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상아(吾喪我)도 중요하다. 사건과 사람을 정밀하게 보려면 세속에 찌든 자의식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밀실에 갇혀 지냈던 우리 사회가 새해엔 광장에서 다 함께 거듭나기를 간절히 희원한다.
  •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시 제목도 집 이름도 ‘필경’… 원고지에 농사짓는 심훈의 삶 오롯이

    심훈은 1930년에 ‘필경’(筆耕)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당시 일제에 짓밟혔던 조선인들의 마음을, 원고지에 붓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으로 말하고자 했다. 이는 후에 심훈이 충남 당진으로 낙향해 지은 집 ‘필경사’의 당호가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제 치하의 농민들의 현실을 필경하듯 지은 소설 ‘상록수’를 창작한다. 그는 어찌하여 시도 집도 모두 ‘필경’이라 칭했던 것일까. 게다가 또 무슨 이유로 당대의 인기 소설가이자 시인, 연극과 영화배우이면서 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였으며 경성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프로듀서, 신문사의 기자이기도 했던 팔방미남이 농촌 계몽 소설인 ‘상록수’를 썼던 것인가. 그 이유를 찾아 충남 당진에 있는 심훈의 필경사로 가 보았다.1901년 경기 시흥군 신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태어난 심훈의 본명은 심대섭이다. 1926년에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필명인 ‘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흔히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경성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갔지만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됐다. 학교에선 퇴학을 당하고, 법원에선 6개월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미 그 당시 복역한 지 8개월이 지난 뒤였다. 출소 후 중국으로 건너가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고 이때 단재 신채호, 석오 이동녕 등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조선에 돌아와 최초의 영화소설을 썼고, 영화 ‘장한몽’의 이수일 역으로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기세를 이어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지만 심훈이 제작한 영화가 식민지의 현실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됐다. 이후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시와 신문 연재소설을 쓰며 영화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울분을 토해 냈는데 이 역시도 일제에 의해 연재 중단 조치를 당하게 된다. 다시 식민지 조선의 처지를 암시했다는 이유였다. 연이어 1930년 3·1운동을 기념하고자 쓴 시 ‘그날이 오면’을 완성해 시집으로 출간하려던 계획 역시도 출간금지에 처하면서 무산됐다. 이때 출간하지 못한 시집은 심훈의 사후 13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시집 ‘그날이 오면’의 이야기다.“삼십이면 선(立)다는데 나는 배밀이도 하지 못합니다. 부질없는 번뇌로, 마음의 방황으로, 머리 둘 곳을 모르다가 고개를 쳐드니, 어느덧 내 몸이 사십의 마루터기 위에 섰습니다. 걸어온 길바닥에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못한 채 나이만 들었으니 하염없게 생명이 좀썰린 생각을 할 때마다, 몸서리를 치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법 걸음마를 타게 되는 날까지의 내 정감의 파동은, 이따위 변변치 못한 기록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스스로 믿고 기다립니다.”(시집 ‘그날이 오면’의 머리말 중에서) 3·1운동 이듬해 경성방송국 문예담당 기자로도 입사했지만 사상 문제로 퇴직한 심훈은 아버지와 친척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던 충남 당진으로 낙향한다. 장조카인 심재영의 집에서 2년여간 기거하면서 필경사의 터를 닦고 집을 짓는다. 이후 필경사에서 쓴 소설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돼 그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하면서 소설가 심훈은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언제나 푸르른 나무의 눈, 계몽 소설 ‘상록수’는 당진 부곡리에서 심재영이 벌이고 있던 야학운동과 공동경작회 활동을 토대로 경기도 반월면에서 농촌계몽운동을 벌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에서 심재영은 박동혁으로, 최용신은 채영신으로 등장했다. 소설은 심훈이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에 사측에서 벌인 문자보급운동을 소설의 첫머리에 두고 시작한다. 일제가 추진한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글 교육이 금지되고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그때, 농촌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훈은 이 소설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 두 주인공이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계몽운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중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의 러브 라인만 심훈의 상상이고 그 외의 모든 정황들은 그 당시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 넣어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소설 ‘상록수’ 중에서) 심훈은 이렇게 빼앗긴 나라의 선각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불어넣어 농촌계몽소설을 썼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이 연재되는 동안 동아일보의 판매 부수가 늘었고, 신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가판대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이야기는 소설가 심훈의 인기와 계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방증한다. 심훈은 동아일보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상록학원에 기증해 더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힘을 썼다. 1936년 상록수의 단행본 작업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뒤 장티푸스에 걸려 서른다섯 해 짧은 생을 마친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과 호외 당진에서 잠시 상경했던 심훈은 때마침 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전하는 신문의 호외를 접하게 된다. 너무도 감격에 겨웠던 나머지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를 호외의 뒤쪽에 썼는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 작품은 당진의 심훈기념관에 손기정의 우승 사진과 함께 전시돼 있다.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 중에서)●바다 옆에 놓인 심훈기념관 심훈이 일생 동안 부르짖었던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가치 그리고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인 당진의 필경사 주변으로는 심재영 고택과 심훈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그날이 오면’ 기념비와 심훈의 동상도 오롯하게 서 있는 곳이다. 심훈의 생전에는 필경사 바로 앞까지 바다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개간된 이후로는 바다가 조금 멀어졌다고 한다. 필경사의 창은 바다를 향해 나 있는데, 그 안에 심훈이 썼던 책상이 보존돼 있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기념관 내부로 책상을 옮겼다.한때 교회로 이용되기도 했던 필경사는 유족들과 심훈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의 의지가 모여 다시 본연의 필경사로 돌아왔다. 서른다섯 해를 살다간 그의 사후에 서른여섯 해의 두 배가 훌쩍 넘도록 이렇게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고,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다양한 활동만을 이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지녔던 민족성에 대한 고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농촌계몽운동과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일들과 그의 시와 소설이 만난 자리의 깊은 울림이 아닐까. 상록학원은 현재 상록초등학교가 돼 여전히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배움터로 남아 있다. 이것이야말로 상록수이자 심훈 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한 글자씩 배운 글로 모두가 입을 모아 읽는 ‘그날이 오면’과 ‘상록수’ 그리고 심훈.바닷가 옆 필경사의 자리는 심훈만의 터가 아니라 누구의 말이든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받아 적는 모든 손길들이 주인인 곳이다. 누구든 와서 무엇이든 깨우치고 가는 자리, 그리하여 다시 이 자리는 이파리가 푸른 나무 밑에 앉아 어쩌면 아직도 오지 않은 ‘그날’을 헤아리며 하늘의 뜻을 받아 적는 자리인 당진 심훈기념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홍석경의 문화읽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눈

    [홍석경의 문화읽기] 스스로를 돌아보는 눈

    언제 왔는지 모르는 2020년이 벌써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칼럼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소재를 방탄소년단이 팡파르를 울리며 전해왔다. 불과 세 달 전에 ‘다이너마이트’로 미국의 대중음악 차트 빌보드 핫100의 1위를 차지했는데 이번에 발간된 한국어 앨범의 대표곡으로 다시 이 차트의 1위에 올랐고 이 앨범의 전곡이 순위에 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타면서 유명해진 “미국은 로컬”이라는 말이 사실이고, 미국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성공이 글로벌 스타인 BTS에게는 성공의 전부가 아닌 일부일 뿐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동안 BTS의 노래들이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아 왔으나 여전히 인기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영어노래 ‘다이너마이트’가 발매 첫주에 1위에 오르자 BTS의 미국 팬들은 일종의 모순을 느꼈을 것이다. 그동안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군소언어로 소통하는 BTS에 대한 지원과 연대가 언어와 상관없는 음악을 통한 소통이라고 믿어 온 팬들에게 여전히 영어가 중요하다는 반대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어떤 상업적 포장 없이 비싼 가격으로 판매된 이번 앨범은 방탄 멤버들이 가장 많이 참여해서 팬데믹 상황의 일상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우울, 무기력을 이겨 내기 위한 성찰 등을 소소하게 표현한 노래들이다. 이 모두가 ‘다이너마이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정적인 한국어로 돼 있다. 미국의 방탄 팬들은 이러한 내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다른 성공의 의지도 보이지 않고 그저 BTS를 느낄 수 있는 이 한국어 앨범을 크게 성공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해외 언론이 차곡차곡 정리해서 발표했듯 독보적인 것이 됐다. BTS의 역사적인 행보를 함께 만들어 가는 미국과 전 세계의 팬들이 이들의 성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듯,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을 대하는 국내의 시선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보는 생각을 드러내기에 흥미롭다. 한국의 아미들은 방탄의 성공을 보도하는 한국 언론이 소극적이거나 때로는 비판적이라고 호소하고, 실제 BTS의 전례 없는 기록들에 대한 외국 언론의 해설과 의미 부여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소극적인 기사와 해설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몇 년에 걸친 이 정도의 성공이라면 중요 언론이 심층취재로 다룰 만한 문화계 핫 뉴스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왜 그렇지 못할까. 나는 한국 언론과 지식인의 이런 태도가 팬들의 지적처럼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 한국인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선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대하며 모델로 삼았던 나라에서 주민으로서 오래 살았던 경험에 비추면, 대한민국은 이제 매우 잘사는 나라이고 시민들의 교육, 문화, 지적 수준 또한 상대적으로 균질한 놀라울 만큼 잘 발전된 나라이다.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여러 정치경제적 갈등과 남북 분단 상황이 우리의 현재를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할 뿐, 한국은 이제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선도하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위치에 있다. 한국인은 이러한 한국의 빠른 발전과 새로운 위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소위 “국뽕”이라고 비판되는 과도한 해석에 기반한 과잉 민족주의와 내화된 식민주의로 귀결되는 차가운 자조 사이에서 아직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적인 위치를 찾지 못한 듯하다. 이것은 정치, 경제, 문화 전 영역에서 발견되는데 방탄의 성공을 보는 언론의 시선도 아직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책 속에서 나는 영어가 셰익스피어의 언어이고 불어가 몰리에르의 언어라면 한국어는 BTS의 언어가 됐다고 썼다. 이것은 BTS 텍스트의 문학성을 넘어 동시대와의 공감능력과 영향력을 고려한 표현이다.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될 만큼 문화의 위계와 경계가 얇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헬조선이기만 하지 않고 세계 속 청년들의 꿈의 대상이 될 만큼 좋은 점을 많이 지녔다. 방탄소년단은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재를 영광스럽게 증언하고 있는 평범하고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청년들이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깊은 절망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깊은 절망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루이 16세가 처형되자 이웃 왕정국가들은 이 방자한 공화국 프랑스를 가만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앞장섰으나 나폴레옹 군대에 납작하게 패했다. 오스트리아는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대패하고 굴욕적인 평화조약에 서명했다. 프로이센은 더욱 한심한 처지에 놓였다. 왕실은 북쪽으로 쫓겨가고 나폴레옹 군대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과해 베를린에서 개선 행진을 벌였다. 귀족에게 눌려 살던 중산층에게 전쟁은 기회가 됐다. 왕들은 패전의 충격을 딛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회개혁을 단행했다. 근대적 법을 제정하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근대적 교육제도를 출범시켰다. 사회개혁은 중산층의 위상을 높아지게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쫓겨나자 유럽은 재빨리 이전 상태로 회귀했다. 독일 낭만주의는 이렇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상황에서 태어났다. 나은 세상을 기대했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격랑이 가라앉고 복고와 반동의 시대가 도래하자 실망했다. 이들은 소시민적 생활에 파묻혀 관념을 좇으면서 쓰라린 현실을 잊으려 했다. 프리드리히는 당대의 절망적이고 억눌린 분위기를 표현해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떠올랐다. 때로는 고요한 경건함으로, 때로는 몰아치는 거친 힘으로 다가오는 그의 그림은 하찮다고 무시되던 풍경화에 위엄을 부여했다. ‘바닷가의 수도사’는 이렇다 할 형태도 없고 색채도 단조로워서 거의 추상화처럼 보일 지경이다. 땅, 바다,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들여다보면 화면 아래 좁은 띠 같은 모래 언덕 위에 서 있는 한 수도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광막한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검푸른 바다는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흐린 하늘과 맞닿아 있다. 낮게 드리운 먹구름은 위로 갈수록 조금씩 옅어지다가 마침내 훤하게 열린 푸른 하늘로 이어진다. 그것을 희망이라 해도 좋을까? 지표 삼을 지형도 없는 심연 같은 공간, 밤인지 낮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부유하는 작고 외로운 존재, 인간. 미술평론가
  • 한성숙 “구글, 한국서 수익 내는 만큼 기여도 해야” 쓴소리

    한성숙 “구글, 한국서 수익 내는 만큼 기여도 해야” 쓴소리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 및 모든 앱에 대한 수수료 30% 확대 정책에 대해 “한국 시장에서 많은 수익을 내는 만큼 기여도 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한 대표는 24일 오전 ‘네이버 커넥트 2021’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인앱결제에 따른 시장 영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구글은 국내 모바일 앱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그런 구글의 수수료 정책 변화는 내부뿐 아니라 국내 창작 환경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좋은 시장과 생태계를 위해 신중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글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수익을 내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 기여하기 위한 고려도 많이 해야 한다”며 “다양한 결제 방식을 제공한다면 창작자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구글이 새 수수료 정책에 대해 입장을 바꿀 필요성이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한 대표는 최근 SK텔레콤과 손잡고 국내 시장 첫 진출을 예고한 아마존의 행보에 대해서는 “매년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놓고 많은 스터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커머스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공습은 내년에 더욱 치열해질 예정이라 잘 준비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CJ와의 협력에 대해서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물류 방식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고민하고 있고 콘텐츠도 세부적으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마련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꺼렸다. 이날 네이버는 중소상공인(SME)과 창작자를 키우는 데 2년간 18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한 대표는 “네이버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상공인 480만명, 창작자 160만명을 서로 연결해 ‘디지털 비즈니스 시너지’를 키우겠다”며 “네이버의 검색, 인공지능(AI) 추천, 데이터 등 다양한 기술과 플랫폼이 소상공인과 창작자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는 만큼 네이버의 기술을 통해 비즈니스와 창작활동을 연결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금융회사와 제휴해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를 위한 대출 서비스를 올해 안에 출시한다.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이 사업 성장을 위한 자금 융통에 도움을 주기 위한 취지다. 내년 상반기에는 데이터 기반의 ‘브랜드 커넥트’ 플랫폼도 선보일 예정이다. ‘브랜드 커넥트’ 플랫폼에서는 창작자 활동 현황, 최신 콘텐츠 등의 데이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브랜드와 창작자간 효과적인 연결이 가능하다. 스마트스토어 판매자와 노무사, 세무사, 관세사 등 지식인 전문가 1000여명을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내놓는다. 지난 3월 첫선을 보인 이후 지난 8월보다 참여자 수가 120%, 거래 규모가 150% 증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쇼핑 라이브’에 AI를 접목해 고도화하는 작업에도 나선다. 한 대표는 “내년은 일본에서의 경영 통합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고 이는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19가 마무리되면 중소상공인도 더 큰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닦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즈니스·투자 중심에 지식재산권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비즈니스·투자 중심에 지식재산권 있다

    인텔렉추얼 비즈니스장준환 지음한스컨텐츠/264쪽/1만 5000원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뜰까. 지식재산권 비즈니스와 투자전문 변호사 장준환은 “시대를 관통하는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대중의 마음을 관통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기업을 찾아 투자하면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설명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에서 뜨는 지역들은 지식재산권이 모이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곳에 고수익 지식인이 모여들고 상권을 형성하고 세련된 문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지역은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듯 지식재산권은 투자의 중요한 척도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팬데믹의 파고를 넘으며 경쟁력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의 핵심에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이 있다. IT·바이오 등 기술 기반 산업뿐만이 아니다. 기존 제조업, 금융업, 물류 분야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사물인터넷·나노 등의 지식 역량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고 있다. 아트,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도 지식재산권이 첨예한 이슈다. 전통 예술 장르의 공연·전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한 1인 미디어 슈퍼스타가 엔터테인먼트의 선두에 서서 거액의 저작권 수입을 올린다. 스포츠도 방송 중계권과 스폰서십 등을 바탕으로 한 거대 시장이 형성됐다. 온라인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인텔렉추얼 비즈니스’에서 첨단 기술, 패션, 트렌드,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게임, 아트, 자영업 등 각종 비즈니스 현장에서 지식재산권 이슈를 사례를 분석한다. 기업이 무엇을 경쟁력으로 삼아 사업을 펼칠지, 투자자는 어떤 기업이나 지역에 투자하면 유망할지에 대한 시각을 제시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열린세상] 노동자 권리 보호하는 노동위원회의 미래/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열린세상] 노동자 권리 보호하는 노동위원회의 미래/박영기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지난 11월 13일은 자신을 불꽃처럼 태우고 세상을 떠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였다. 그는 50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경제 발전이 최우선 과제였던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이었기에 이를 개선하려는 탄원이 무산되자 자신의 몸과 함께 쓸모없는 근로기준법을 화형시켰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식인, 대학생, 무엇보다 노동자들 스스로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흐름은 1979년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을 통해 결국 박정희 유신독재체제를 종식시키는 나비효과로 이어졌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정점에 이르게 된다. 같은 해 6월 전국적인 민주항쟁 이후 7~8월 2개월간 3000여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하는 등 경제 민주화 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 조직화 또한 급속하게 확대됐다. ‘87년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성과 중의 하나가 노동자 개인 권리구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당해고 구제기능이 노동위원회에 부여된 것이다. 1953년 노동위원회법 제정으로 설치된 노동위원회가 노동조합의 보호를 넘어 본격적으로 개별 노동자 보호 역할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다. 노동위원회는 노동계와 사용자,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공익위원 이렇게 3자로 구성된 준사법적 행정기관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구제하고 노동분쟁을 해결하는 공적인 기관이다. 노동쟁의, 복수노조, 부당노동행위 등 집단적 노동분쟁과 부당해고, 차별시정 등 개별적 노동분쟁에 대한 조정과 심판을 업무로 하고 있다. 2019년 노동위원회가 처리한 사건은 1만 7281건으로 2018년 1만 4224건 대비 21.5% 늘었다. 이는 노동조합 및 노동자의 권리의식 신장, 신설 노조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매년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부당해고 등 심판사건이 1만 4653건으로 약 85%이다. 2019년도 부당해고 등 심판사건에 든 시간은 평균 56일로 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법원으로 간 경우 1심 판결에만 304일이 걸린 것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신속하게 판정이 되고 있다. 신속한 권리구제는 노동위원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더욱이 사건의 95% 이상이 소송 없이 노동위원회에서 종결됐다. 노동위원회 판정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4.6%밖에 되지 않는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4.6% 사건의 90% 또한 노동위원회에서 판정한 대로 법원에서 확정되고 있다. 노동위원회에서 판정한 사건은 겨우 0.46%만이 법원에서 뒤집어질 만큼 신뢰성도 높다. 이러한 노동위원회의 성과에 힘입어 정부는 지난달 20일 사업주가 고용상 성차별을 했거나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있었음에도 조치의무 등을 다하지 않은 경우에는 피해자가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로 송부했다. 1989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노동위원회의 업무로 확대한 이후 또 하나의 중요한 노동자 개인 권리구제가 확장된 셈이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담당 기관이 고용노동부와 인권위원회 등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어 정작 권리구제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이 어느 곳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지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 법개정으로 준사법적 행정기관인 노동위원회가 직장 내 성희롱 판단의 전문적 기구로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협력할 필요가 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심판 기능 확대는 향후 직장 내 괴롭힘 사건으로의 기능 확대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노동문제 해결과 노동자 권리구제에서 노동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거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노동위원회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여 노동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제고됨으로써 더욱 믿을 만한 사회문제 해결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 지방정부 우수 정책 공유의 장으로 우뚝…제2회 자치분권 포럼 열려

    지방정부 우수 정책 공유의 장으로 우뚝…제2회 자치분권 포럼 열려

    “자치분권을 위해 지방정부의 자율성은 더하기, 불필요한 규제 빼기, 책임과 역량 곱하기, 재정과 권한 나누기가 필요합니다.”자치분권지방정부협의회(이하 협의회)가 개최한 제2회 자치분권 포럼이 지난 20~21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 호텔에서 ‘자치분권! 국민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읽다’란 주제로 열렸다. 이 행사는 스웨덴의 정치 토론 축제인 ‘알메달렌 주간’에서 본떠 만들었다. 알메달렌은 스웨덴 고틀란드라는 섬의 작은 마을로 여름 휴가철이 되면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시민단체 등이 모여 시민들과 다양한 정책을 이야기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알메달렌 주간은 스웨덴 사람들이 정치를 얼마나 가깝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축제다. 애초 이 행사 역시 매년 9월 제주에서 개최되며 자치분권 실현을 위해 전국 지방정부의 우수 정책 사례 공유, 토론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하지만 지난 9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한 차례 연기됐으며, 박람회 형식의 행사를 포럼으로 축소했다. 참가 인원을 200여 명으로 제한하는 등 방역 수칙을 준수하고 일정도 간소화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해 40여개 기초 및 광역 지방정부가 참여했던 반면 올해는 20여개 지방정부가 참여했다. 첫날인 20일에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기조 강연, 협의회 정기총회, 지방자치분권 연극, 5개 소주제별 자치분권 콘퍼런스 등이 펼쳐졌다. 협의회장인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개회사에서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재난 상황 속에서도 지방정부는 드라이브 스루를 최초로 제안하고 중·소 패션·섬유업체와 손잡고 마스크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등 성공적인 ‘K-방역’의 토대를 마련했다”며 “위기상황에서 더욱 힘을 발휘하는 지방정부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30년 역사의 지방자치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고, 자치분권국가 대한민국을 실현하자”고 말했다. 이광재 국회의원은 ‘K-뉴딜, 우리 지역을 어떻게 바꿀 것인인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섰다. 이 의원은 “지역의 발전은 인구수가 아닌 혁신 여부에 달려있다며 ‘교육판 넷플릭스’를 도입해야한다”며 “전세계 살아있는 지식인들의 온라인 강의를 지역에 공급하고, 성공적인 사례를 모아갈 때 지역이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진 정기총회에서는 이동진 도봉구청장이자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둘째 날에는 ‘지방자치 30년, 자치분권의 역할’을 주제로 김동현 서울신문 차장의 진행으로 문 구청장과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장의 대담이 열렸다. 코로나19가 지방분권에 미친 영향을 묻는 말에 문 구청장은 “변화무쌍한 대변혁의 시대에서 전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올 때 지방이 지역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대응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세대별, 지역별 다양한 사례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자치분권의 실체에 대한 주민의 체감도가 높아지고 무엇이 진정한 자치분권이며, 왜 자치분권이 필요한지 생활 속에서 와 닿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왜 지방분권을 이야기할 때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대 4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세입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은 2018년 기준 22.3%로 연방형 국가의 평균치인 32.3%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단일형 국가 평균치 15.1%보다는 높은 수준을 보인다”며 “다만 세출의 측면에서 세입과 격차가 큰 상황으로 현 상황에서 보면 6대 4라는장기 목표치가 낮은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번 행사는 ‘자치분권, 우리가 가야할 길’에 대한 지자체장들의 소회 발표로 마무리됐다. 지자체장들은 ‘대한민국이 국민의 시대에서 주민의 시대로, 중앙집권 구조에서 자치분권 구조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지방정부가 연대하고 앞장서겠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문 구청장은 “저성장,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 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자치와 분권은 시대적 요구”라며 “이 행사가 매년 지속됨으로써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우고 중앙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도모하는 장으로 성장해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22년 만에 새 옷 입은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새 옷 입은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충격을 던진 ‘수용소 군도’가 2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45년부터 1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일을 생생하게 기술하면서 20세기 기록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저작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1973~1976년 발표한 원작의 1988년 국내판 초판 번역(김학수)을 유지하되, 오류를 바로잡고 새 한글맞춤법과 외래어표기법을 반영한 6권짜리 개정판을 오는 20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원서 도판 50여점을 이번에 처음 수록했다. 재소자 시절 저자와 수용소 내부 모습, 총살된 사람들의 얼굴 등도 실렸다. 책에는 저자는 물론 200명 넘는 죄수들의 이야기와 편지가 담겨 있다. 죄와 관계없이 수용소에 끌려온 이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장을 파헤치며,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넘게 팔렸다. 최초이자 최대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1918년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로스토프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난한 사실이 발각돼 징역형에 처해졌다. 첫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 발표했고,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수용소 군도’ 발표 이후 1974년 독일로 추방됐고, 197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94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인권 짓밟은 독재 소련…‘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개정판

    인권 짓밟은 독재 소련…‘수용소 군도‘ 22년 만에 개정판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 수용소의 비인간적 실상을 전 세계에 알려 충격을 던진 ‘수용소 군도’가 2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나왔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1973~1976년 발표한 원작의 1988년 국내판 초판 번역(김학수)을 유지하되, 각종 오류를 바로잡고 새 한글 맞춤법과 외래어 표기법을 반영한 6권짜리 개정판을 20일 출간한다고 밝혔다. 원서의 도판 50여 점을 이번에 처음으로 수록했다. 재소자 시절 당시 저자와 수용소 내부 모습, 총살된 사람들의 얼굴 등도 담겼다. 책은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이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1945년부터 11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며 보고 겪은 일을 생생하게 기술했다. 저자는 물론 200명 넘는 죄수들의 이야기와 편지를 담아낸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다. 죄와 관계없이 수용소에 끌려 온 이들이 인권을 유린당하는 시스템을 파헤친 20세기 기록 문학의 정수로 꼽히며, 발간 이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넘게 팔렸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의 비윤리성과 부도덕함, 이중성 등을 전 세계에 알려 최초이자 최대 공산주의 국가의 붕괴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1918년 러시아 키슬로보츠크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난 솔제니친은 로스토프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병 장교로 참전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스탈린을 비난한 사실이 발각돼 징역형에 처해졌다. 강제노동수용소 수감자의 하루를 그린 첫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1962년 발표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수용소 군도’ 발표 이후 1974년 독일로 추방됐고, 1976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20년간 망명 생활을 끝내고 1994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2008년 8월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윤경의 노동을 묻는다] 11월 13일, 1970년과 2020년

    [이윤경의 노동을 묻는다] 11월 13일, 1970년과 2020년

    11월이다. 11월에는 전태일의 죽음과 민주노총 창립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을 쉬게 하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외치며 분신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50년 전 일이다.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은 전태일의 분신을 목도하며 충격과 분노를 느꼈고, 이후 고 조영래 변호사가 집필한 ‘전태일 평전’(1983년 당시에는 익명으로 출간)을 읽으며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노동운동가들의 투쟁과 좌절, 그리고 고난이 쌓여 1995년 11월 1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장정을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추서식에서 “오늘 전태일 열사에게 드린 훈장은 ‘노동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 갖는 실제 무게와 실천은 과연 무엇일까? 왜 정부의 의지가 아니고 정부 의지의 상징인 걸까? 1970년 전태일은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하는 10대 여성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절규했다. 2020년 들어서 택배 노동자가 열 분, 그것도 10월 한 달 동안에만 세 분이 사망했다. 다수가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택배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12시간을 일하고, 한 달 평균 4420건의 물품을 배송하고, 건당 800원의 배송 수수료를 받는다는 이 숫자들로 보아 이들의 죽음이 과로사가 아닐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사 직원 한 분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이런 추세로라면 올해도 작업장 사고 또는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의 수가 ‘평균 2000여 명’을 채울 전망이다. 마음이 무거워져 글을 쓰기 힘들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하고 있나? 노동계에서 ‘전태일 3법’이라 부르는 노동조합법 개정안(특수고용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결정권 추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근로 조건 개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안(산업 재해 발생 시 기업의 책임성을 강화)에 대해 앞장서도 부족할 더불어민주당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택배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도 기업에 대한 강제성은 없고, 무수한 권고와 유도로 채워져 있다. 강제성이 있는 법도 어기는 것이 자본가인데, 권고가 무슨 힘을 가질 거라고 예상하는 것일까? 게다가 노동운동가 개인과 노동조합을 금전적으로 옥죄어 파괴하는 손해배상소송 및 가압류의 남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단체 ‘손잡고’와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1월 현재,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은 총 58건이며, 그 액수가 658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 중 문재인 정부 들어 새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만 28건이고 그 청구 금액은 68억 7000여 만원에 달한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손해배상 소송 남용은 노동3권을 무력화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당은 국회에서 다수 정당이 되면 손해배상 및 가압류법을 고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정치는 “의지의 상징”이 아닌 구체적인 정책과 입법으로 구현된다. 역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문 대통령과 역대 가장 많은 의석을 갖고 있는 집권 여당이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개혁 입법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과 행정부 그리고 입법부의 절대 다수당인 민주당이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려는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아련하게 호명하고 훈장을 추서하는 것은 씁쓸한 추억팔이 또는 정치적 퍼포먼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수세적이고 관례적인 행위만 반복한다면, 중도와 안정이라는 간판 뒤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약속한 정책을 입법하고 집행하지 않는 그 어떤 정치인도 그 어떤 정치 세력도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바라는 국민의 심판을 비켜갈 수 없다.
  • 진중권 “유시민, ‘자유론’ 갖고 또 사기 친다”

    진중권 “유시민, ‘자유론’ 갖고 또 사기 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유튜브 ‘알릴레오 시즌3’에 출연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인용해 정부의 집회봉쇄조치를 옹호한 것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유시민이 자유론을 가지고 또 사기를 친다”고 비판했다. 14일 진 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지성의 문제다. 즉 알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유시민씨 본인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는 “그것(자유론의 개념)을 아는 사람이 잘난 게 아니라, 지식인을 자처하면서 그걸 모르는 사람이 문제”라며 “지식소매상이라면 팔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뭘 소매할 것인가”라고도 했다. 진 전 교수는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 건축양식인 파놉티콘(원형감독)을 들어 ‘유시민과 파놉티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겠다면서 “철학 공부 좀 한 사람이면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 얘기를 할지 감 잡으실 것이다. 아마 재미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유 이사장은 지난 13일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 3’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인용하면서 “8·15 광화문 집회 당시 정부의 집회 차단 조치는 정당하며 코로나 상황에서 집회를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정당한 제약”이라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자유론에 따르면) 어떤 사람의 행동이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지점에서는 개입이 정당하다”라고 설명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한겨레, MBC 피디가 쓴 ‘진중권 비판’ 칼럼 결국 삭제

    한겨레, MBC 피디가 쓴 ‘진중권 비판’ 칼럼 결국 삭제

    한겨레신문이 10일자에 ‘지식인의 진짜 책무’란 제목의 김민식 MBC 문화방송 드라마 피디의 칼럼을 실었다 사과문을 게재한데 이어 결국 삭제했다. 한겨레는 “10일치 26면에 실린 김민식 피디의 칼럼 ‘지식인의 진짜 책무’가 가정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임에도 걸러내지 못했다”면서 “특히 독자들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 내부에서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데 대해 심각성과 책임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김 피디 역시 “독자 반응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라며 “아버지의 폭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어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배려해야 한다는 주제로 글을 쓰다 정작 저 자신이 그 자세를 놓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 피디의 칼럼 내용은 진짜 지식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 사용해야 하며 반대의 경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부모님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는 책을 읽지 않는 아버지보다 책을 읽는 어머니가 불행했는데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로 당해내지 못해 말싸움하다 말문이 막힌다.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고 적었다. 다툼의 이유로는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 속에 아버지는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을 감지한다”고 했다.김 피디의 글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식인의 책무는 최소한 이런 글은 안 쓰는 데에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글을 쓴 김민식 피디는 안면이 있는 분으로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가슴이 아프다”면서 “머리로는 진보라 생각하나, 몸으로는 수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중성 때문에 김민식 피디나, 그 글을 그대로 내보낸 한겨레 데스크나, 그 글이 왜 문제가 되는지 미처 인식하지 못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그들이 미처 의식하지 못한 이중성이 자신이 그들에게 등을 돌린 이유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최근 이른바 ‘조국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에 이어 진보 정권의 타락과 위선을 강도높게 비판한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펴냈다. 진 전 교수는 “(진보의) 이중성은 이 사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들 스스로는 이중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 눈엔 비판을 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라며 슬픈 일이라고 한탄했다. 또 이 일로 김 피디가 글 쓸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진 전 교수는 “요즘은 페이스북도 예전처럼 자주 안 하고 일부러 긴 글을 거의 안 쓰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공격이 들어온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1996년 MBC에 입사한 김민식 피디는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인기를 끌면서 스타PD로 떠올랐고 드라마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했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노조부위원장으로 앞장섰고 2017년 KBS, MBC 총파업에서는 김장겸 전 MBC 사장 퇴진 운동에 참여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정승민의 막론하고] 두 개의 미국

    [정승민의 막론하고] 두 개의 미국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것이 ‘명백한 운명’이라고 자부해 왔던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선을 보면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승리 연설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가 조작됐다며 불복하고 있다. 신성한 민의를 도둑질당할 만큼 자질과 능력이 없다는 고해성사인 것인가. 게다가 지지자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언행은 무책임하다. 반대파까지 포용해야 할 정치인이 적대와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근거나 물증 없이 내뱉는 막가파식 주장은 공동체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극히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주목할 것은 트럼프의 득표력이다. 당선인 바이든과 나란히 미국 선거 사상 처음 7000만표의 벽을 깼다.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득표율 차이도 근소하다. 미국 사회는 홍해가 갈라지듯 절반으로 나뉘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고착됐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트럼프 이전부터 사실 미국은 두 개였다. 정치학자 강상중과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공통적으로 미국 사회 내부의 해소하기 어려운 대립 구조에 주목한다. 지역적으로는 남부와 북부, 해안과 내륙이 다투는 구도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남부와 내륙은 대체로 야만과 폭력의 이미지다. 뉴욕의 ‘위대한 개츠비’와 달리 텍사스 카우보이는 주먹이 먼저고 여성을 차별하는 마초다. 록과 컨트리음악이 겨루고 금융과 유전이 맞선다. 마천루와 옥수수밭은 지금도 평행선을 긋고 있다. 19세기 남북전쟁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지만 뿌리는 한층 깊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건너온 청교도 후예들은 전쟁을 통해 나라를 만들었다. 영국군과 동족상잔을 치른 것이다. 피로 세운 나라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해밀턴주의자와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제퍼슨주의자들은 처음부터 각을 세웠다. 인간관의 차이도 크다. 크고 힘센 정부에서 국민은 통치 대상이다. 반면 독립을 쟁취한 시민에게는 자치가 최우선이다. 중도적 입장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갈등 확산을 경고했지만 나중에 내전으로 비화됐다. 두 개의 미국엔 지역뿐만 아니라 대중과 엘리트의 반목도 겹쳐 있다. 특히 동부의 기득권 세력을 경멸하던 앤드루 잭슨의 백악관 입성이 분기점이 됐다. 대통령이 된 ‘촌뜨기’ 잭슨은 권력자, 언론, 지성인과 척을 졌지만 대중은 열광했다. 이때부터 미국 대중은 주기적으로 엘리트 집단에 격렬한 반감을 표출해 왔다. 이 때문에 기성 정치의 때가 덜 묻은 것처럼 보이는 인물에게 마그마처럼 뜨거운 지지를 보내곤 한다. 1992년 대선에서 백만장자 로스 페로가 선전한 것이나 2016년 선거 당시 트럼프의 역전극이 펼쳐진 것은 대중의 에너지가 분출된 덕이다. 1950년대 초 무명의 초선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대통령급’으로 급부상한 것도 엘리트 관료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전문가와 지식인에 대한 적대감은 요즘 절정에 달한 듯하다. 백악관의 정략적 코로나 정책에 버텨 온 앤서니 파우치 전염병연구소장을 효수해야 한다는 반문명적 선동까지 나오니 갈 데까지 간 듯하다. 이러다가 건국 초기부터 내연해 온 이분법적 모순이 활화산처럼 폭발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미국은 두 개이기 때문에 생산적이다. 남부와 북부, 민주당과 공화당, 대중과 엘리트의 긴장과 갈등이 국가적 생존 능력을 키워 왔다. 양대 세력 간에 빚어지는 혼란에서 질서를 창출하는 파워가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혁신과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한때는 소련에 패배하고 일본이 추월한다고 했다. 지금도 중국이 앞지른다고 하지만 여전히 미국이 건재한 까닭이다. 이번 대선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민낯이 드러났다고도 하지만 글쎄다. 거의 반분된 사회가 봉합되려면 패배한 쪽의 살풀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 않을까.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훈이 몸에 밴 미국의 복원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 올해 ‘임종국상’에 강성현 교수, 박시백 화백

    올해 ‘임종국상’에 강성현 교수, 박시백 화백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14회를 맞은 올해 수상자로 학술 부문에 강성현(왼쪽) 성공회대 교수, 문화 부문에 박시백 화백을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사업회는 강 교수가 역사사회학자로서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공안,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 냉전과 과거청산 등을 주제로 주목할 성과를 꾸준히 내놨다고 설명했다. 수상저서인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푸른역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비롯한 한일 극우연합세력의 역사부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사업회는 강 교수가 최근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의 기관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 관련 중요자료를 발굴 수집해 연구 지평을 넓히는 데에 이바지했다고 설명했다. 박시백 화백은 일제강점기의 우리 역사를 다룬 7권짜리 ‘35년’(비아북)으로 수상자에 선정됐다. 박 화백은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수집과 연구에 매진해 5년 동안 작품을 썼다. 사업회는 박 화백이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가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시사만화가로 만화계에 발을 디디고서 전업작가로 전환해 201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 20권을 완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임종국상은 친일문제에 천착한 임종국(1929∼1989) 선생을 기리고자 마련했다. 선생은 국민적 반대 속에 1965년 한일협정이 굴욕적으로 체결되자,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하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이후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해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 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사업회는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9일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경성에선 무리 속 고독을 걸었고 파리에선 자본주의 곁을 걸었다

    파리 파사주는 자본, 베를린은 관료제·소비의 도시경성에선 선진 문물 동경과 식민지 우울 담긴 ‘산책’산책에 내재된 정주·유목… 우리 삶도 그와 닮은꼴“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각한다. 그는 눈앞에 경성역을 본다. (…)그러나 오히려 고독은 그곳에 있었다. 인간 본래의 온정을 찾을 수 없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중) ‘산책’은 그저 한가로운 단어 같다. 보고 즐길 것을 찾느라 분주한 여행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근육도 제대로 쓰지 않고, 땀도 나지 않으니 운동에 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 느긋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행위에서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경성이라는 공간, 군중의 무리에서 식민지 근대인의 고독을 묘사했다. 이창남 경북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의 신간 ‘도시와 산책자´는 1920~1930년대 파리, 베를린, 경성, 도쿄와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한 비평과 소설에서 산책의 의미를 찾는다. 산책은 부유한 이들 혹은 엘리트나 즐기는 행위였지만 근대 들어 대중에게까지 퍼졌다. 발터 베냐민은 ‘파사주 작품’을 통해 물신주의에 빠진 파리의 산책자를 포착했다.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대대적인 재정비 사업으로 관통 대로가 뚫리고 기념비적 건축물과 거대 광장이 들어선다. 베냐민은 파사주(통행로)를 가리켜 ‘상품 자본의 신전’이라고 지칭한다. 대중은 사유하는 대신 파사주를 산책하며 새로운 물건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직장인’에서 베를린을 중심으로 관료화한 체제와 소비적 도취가 함께하는 대도시를 묘사한다. 체제 속에 붙잡힌 대중은 한편으로는 유목 생활을 꿈꾼다. 산책은 일상 탈출의 방식인 셈이다.일본 제국주의는 오스만 남작의 파리 재정비 사업을 도쿄에 그대로 적용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도쿄는 파리의 아시아 버전이고,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이식한 경성은 식민지 로컬 버전이라고 봤다. 저자는 경성을 산책하던 이상, 박태원, 나혜석 같은 지식인들을 선진 문물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인의 우울이라는 이중적 측면에서 조명한다. 이상은 ‘오감도’와 ‘날개’를 통해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뚫린 길을 내달리면서도 공포에 젖은 아해들, 창부 아내를 두고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 위에서 자살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근대인의 공포와 소외를 나타낸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작품들을 살펴본 저자는 도쿄의 외국인 산책자 슈테판 바크비츠의 기록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현대의 산책자까지 돌아본다. 산책이 이방인과 타자에 대한 경계 짓기를 허무는 긍정적 계기도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저자의 주관석 분석, 특히 독일 작품을 주로 소재로 삼아 난해한 부분이 다소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연구에서 1990년대로 바로 건너뛴 점도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느린 보행과 깊은 사색으로 상징되던 산책이 합리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된 도시 속 삶과 함께 종말을 고하진 않았다는 주장은 생각해 볼 만하다. 저자는 산책에 내재한 ‘정주’와 ‘유목’의 개념을 뽑아내고, 두 개념이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교차하는 변증법적 삶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대도시로 대표되는 자본과 체계의 압박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또 다른 정주의 장소를 희구하는 탈출과 회복의 과정이 바로 산책인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글로벌 In&Out] 외국인, 한국 문학을 읽다/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타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외국인, 한국 문학을 읽다/페브리아니 엘피다 트리흐타라니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읽을 때,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문학에 사용된 언어는 일상어와 달라 복잡하고 각양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복잡하고 다양한 언어가 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외에도 다른 점을 고려해 보면, 한국 문학에 매료되는 다른 한 가지는, 그 안에서 포착되거나 반영된 사회문제들이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문학을 접한 시기가 거의 10년 전이었고 학부 때 한국 문학 강의를 들었다. 주로 시를 위주로 배워서 한국 시의 특징을 배우게 되었다. 한국 시는 인도네시아 시보다 자연적인 요소를 많이 사용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시에서 사용된 언어도 더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갈수록 순수를 지향하는 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시라든가, 저항 시 등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소설도 같이 배웠다. 사회문제를 다룬 시나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사회, 문화, 풍습, 비판 등에 대해서도 같이 고려하게 된다. 한국 문학을 더 깊게 공부하자는 의지를 낸 계기다. 한국 시인 중에는 윤동주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시인 중 한 명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유일한 유고 시집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많이 번역된 것으로 알고 있다. 2년 전에 인도네시아어로도 번역되었다. 필자는 특히 윤동주를 매우 좋아한다. 처음으로 그의 시집을 접했을 때는 단지 그 제목에 매료되었을 뿐이었고 그 안에 실린 시들을 마저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시인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기자 그의 시를 완전히 읽었고 그때부터 윤동주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다. 한국시는 어렵지만 윤동주 시가 그나마 읽히기가 쉬운 시이다. 그가 사용한 언어가 대부분 거의 일상어이다 보니 외국인으로서 읽기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뜻이 깊다고 본다. 그의 대표적인 시에서 따질 수 있는 핵심어를 보면,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을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당시 윤동주 시인은 한국말로 시를 작성했으므로 억압을 받았을까, 윤동주 시인은 “시가 쉽게 쓰여져” 괴로워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당시에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끔찍했고 얼마나 압박했기에 “암흑기”라고 표현할 정도의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것이 바로 문학과 사회의 연관성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는 자로서 이 연관성을 깊이 고려해 보는 것을 중시하는 이유가 된다. 소설가로는 염상섭이 눈에 뜨인다. 필자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 즉 ‘만세전’ 혹은 ‘삼대’가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이 작품을 읽으면 1920년대와 1930년대 한국 사회를 얼핏 엿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문학은 허구적인 요소가 드러나 있으나 그 점을 고려해서 문학을 통해 한국 역사, 문화 및 사회를 공부하게 되는 동기를 얻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염상섭의 두 가지의 작품을 읽으면 전자는 억압한 일제강점기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몰락해 가고 있는지 한 지식인의 눈으로 볼 수 있고, 후자는 1930년대의 특히 한국 가족 제도가 어떤지를 알 수 있다. 리얼리즘 작가로서 널리 알려진 염상섭은 각 시대의 현실적인 요소를 소설 안에서 잘 포착했다. 윤동주와 염상섭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시인과 작가이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도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대해 더 공부할 수 있다. 문학의 매력이자, 한국 문학을 더욱 깊이 배우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외국인에게 한국 문학을 추천해 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할 줄 몰라도 다양한 언어로 된 번역판을 쉽게 찾을 수 있으니, 시도해 보시라.
  • [금요칼럼] 군자와 소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군자와 소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국은 흑백논리의 진영 싸움이 심하다. 조선 시대에 피 튀기는 300년 당쟁이 있었다면, 현재는 당쟁 뺨치는 정쟁이 온 나라를 뒤흔든다. 심지어 일반 장삼이사까지도 진영 싸움으로 쫙 나뉜 것 같다. 혁명과 이념 투쟁의 시기인 20세기가 지난 지 오래인데, 한국은 여전히 진영으로 갈라져 전쟁 중이다. 왜 유독 한국 사회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까? 가까운 근현대 역사를 보면 수긍이 간다. 같은 세상에서 역사적 경험은 양극처럼 달랐기 때문이다. 개화와 척사, 항일과 친일, 친미와 친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남쪽과 북쪽, 민주와 독재, 노동과 재벌 등등 지난 150여 년 한국 역사는 양자택일을 늘 요구했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다. 이렇게 몇 세대가 이어지다 보니, 불과 몇 개월 만에 마스크 착용이 자연스럽듯이,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하다. 공통분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라진 여의도요, 5000만 국민의 건실한 교집합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런 특이 현상의 원인을 근현대사의 경험 때문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분단도 없었고 전쟁(내전)도 없었던 조선에서는 왜 그토록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양쪽으로 나뉘어 피 터지게 싸웠을까? 한반도의 정치판을 흑백논리 이전투구로 만든 역사적 연원은 좀더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혹시 흑백논리로 볼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교의 영향과는 무관할까? 국가는 문명 수준이 낮을수록, 사람은 인식 수준이 낮을수록, 선악에 기초한 저급한 흑백논리가 횡행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의 선악 구도가 대체로 선명한 데 비해, 일반 영화의 구도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좋은 방증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면서도 유교의 인간관은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인간의 부류를 군자와 소인으로 칼로 무 베듯이 확연히 갈랐기 때문이다. 유교의 가치 기준에서 군자는 절대 선이요, 소인은 절대 악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절대 선하거나 절대 악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선과 악은 화학적으로 혼재해 있지, 수학의 공식을 적용해 인수분해 해낼 대상은 전혀 아니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공존하되, 다만 이성으로 조절하는 능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이성애 성향과 동성애 성향도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되, 그 본능적 비율이 사람마다 차이가 날 따름이다. 그런데도 조선 시대 500년간 군자·소인 이데올로기는 한반도를 만화영화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이런 조선 사회에서 어떤 이가 소인이라고 탄핵을 당하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낙인을 받은 꼴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본인은 말할 나위도 없고, 자손만대를 이어가며 그 문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개인 차원을 넘어 가문의 수치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종교 분쟁과도 흡사하다. 신을 믿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일반인보다 더 치열하고도 처절하다. 패배를 인정할 경우 자신의 신이 열등함을 인정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자, 자기가 신의 가호에서 제외됐음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종교전쟁은 없었지만, 정치무대와 지식인사회에서 날마다 벌어진 군자·소인 논쟁의 속성도 그 본질은 비슷했다. 어떤 논쟁이 군자·소인 논쟁으로 비화하는 순간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 장기전에 돌입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문화적 유전인자에 근현대사의 양자택일 경험이 더해져서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다. 사실상 반면교사뿐인 당쟁을 ‘붕당정치’라는 미사여구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과거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할까? 저급한 꽹과리 수준의 깽판을 ‘정당정치’라고 호도하면 지지도가 올라갈까? 이참에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비전을 갖는다면, 지금 야당은 향후 여당의 지위를 오래 누릴 것이다.
  •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나훈아와 너훈아

    [김주대의 방방곡곡 삶] 나훈아와 너훈아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할 때 가수 나훈아의 콘서트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서글픈 2020년 추석을 확실히 훈훈하게 만들었다. 콘서트에 처음 등장한 ‘테스형’이라는 노래는 다소 생경했지만 재미있는 충격을 주기도 했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 왜 이렇게 힘들어 /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 세월은 또 왜 저래 /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 가 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나훈아에 대해 많은 사람이 많은 말을 하는 통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나훈아의 모창 가수 한 사람이 생각났다. 나훈아의 모창 가수로 ‘너훈아’와 ‘나운하’가 있었는데 둘은 공생할 수 없는 숙명적 라이벌이었다. 너훈아와 나운하는 남들이 보기에도 서로 거리를 둔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너훈아가 죽자 나운하가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구슬피 울었다. 기자들이 왜 그토록 슬피 우느냐고 묻자 나운하는 생전 너훈아와의 관계에 대해 “남들은 라이벌이라고 했지만, 스케줄이 잡혔는데 급한 일이 생기면 대신 나가 주는 등 알게 모르게 서로 도운 참 돈독한 사이였어요. 돌아보니 우린 같은 배를 탄 형제였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은 둘의 겉모습이었지 속모습이 아니었다. 일찍이 나훈아의 형 ‘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라는 말을 남겼다. 간암 선고를 받고도 너훈아는 병색을 드러내지 않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2014년 12월 10일 서울 강북구 자원봉사자의 날 행사에서 부른 노래를 마지막으로 이승을 떠났다. 나훈아의 형이니까 너훈아의 형이기도 한 (소크라)테스형은 이런 말도 남겼다. “죽음을 면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굴함을 면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빨리 달리기 때문이다.” 나훈아의 모창 가수 너훈아는 비록 남의 노래를 흉내 내는 사람이었지만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다. 무대에서 노래 부르다 죽겠다는 말을 자주 했던 너훈아는 노래로 살다가 노래로 죽었다. (모창 가수로 조형필, 설훈도, 밤실이, 방쉬리, 임희자, 현숙이, 현찰, 태쥐나, 주연미, 송대광, 패튀김 등이 있는 모양이다. 무단히 가엽지만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나훈아에 대해 열 사람이 열 말을 한다. 온통 나라를 점령한 듯한 뽕짝의 천한 역사를 모르지 않는다. 나름대로 지식인은 나훈아와 노래를 비웃고, 먹은 맘 없이 순한 사람들은 나훈아와 그의 노래를 그저 좋아하며, 젊은이들은 뭐 저런 게 있나, 한다. 열 말 하는 열 사람들에게 나훈아의 테스형, 소크라테스는 “어려서는 겸손하며, 젊어서는 온화해지고, 장년에 공정해져라. 그리고 늙어서는 신중해져라”라고 말한다. 사실 제대로 된 노래는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의 떨림에서 나오고 그 몸의 떨림은 우주의 시원(폭발)에 기어코 닿아 있다. 우주가 생기던 대폭발의 순간에 발생한 떨림으로 지금도 우주는 확장되고 있다. 그 확장과 떨림(와류, 복사에너지, 암흑물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떨림은 지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아니 느낌을 당하는 것이다. 느낌을 당하는 사람의 떨리는 여린 몸에서 노래는 나오는 것이니 아무나 잘할 수 없는 것이 노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저 속되나 구슬픈, 유치하나 구성지고 서러운 인민의 노래를 느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우상과 맞섰던 고 리영희 선생을 다시 읽다

    우상과 맞섰던 고 리영희 선생을 다시 읽다

    “리영희 선생은 냉전과 군부독재의 상황에서 담연히 일어나 잘못을 말한 ‘벌거벗은 임금을 비판한 소년’이었다.” 고 리영희 선생과 제도권 밖에서는 사제 관계를 맺고,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함께 근무했던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선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어 “1974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머리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긴급조치가 내려지고, 민청학련 등이 일어난 암흑과도 같았던 시기에 당시 담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을 낸 이가 누구인가 하는 관심이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리영희 선생 10주기를 맞아 평전과 선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출판사 창비는 27일 서울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와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평전을 쓴 권 대표는 “엄혹한 시대에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항상 궁금했고, 평전의 서술도 그것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책은 한반도 최북단 변방인 평안북도 운산에서 출생하고 한국전쟁을 맞이하기까지를 쓴 ‘수업시대’, 비판적 지식인으로 담금질질한 한국전쟁 시기에 관한 ‘연마시대’, 기자로서의 삶을 다룬 ‘실천시대’, 사회주의 붕괴와 북한의 핵 문제 등에 관한 ‘성찰의 시대’ 등 4부분으로 구성했다. ‘진실에 복무하다’라는 평전 제목대로 기자로 활동하면서 국제 사회를 조망하고 독재 시절 목소리를 내며 ‘사상의 은사’로 불리기까지 부분은 3편으로 다시 나눠 자세하게 수록했다. 가족은 물론 지인과 충분한 인터뷰를 거쳤고 구속과 해직, 연행을 반복한 투사로서의 활동은 물론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반영했다. 권 대표는 “한쪽은 ‘사상의 은사‘, 반대편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비판하는데, 평전이 그런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선집은 리영희재단 이사장인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선생의 전체 저서와 번역서 20여권, 7500면에 이르는 350편 글 가운데 대표작 22편을 골라 실었다. ‘한반도’, ‘국제관계’, ‘사상·언론’, ‘문명·미래’의 4부분에 걸쳐 베트남전쟁, 중국 사회주의 사상, 국가보안법, 사회주의 몰락 등 굵직한 사건에 관해 쓴 글을 포함해 선생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대화’ 글, 그리고 일본 교과서나 친일 극복, 미국 사회의 그늘을 다룬 글 등이 포함됐다. 책 제목인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는 선생이 한 농부의 글에 답하면서 쓴 편지 구절에서 가져왔다. 1977년 나왔다가 이듬해 강제로 삭제당했던 것으로, 이번 선집에는 원문을 담았다. 관련해 선생이 썼던 글 가운데 고유명사를 잘못 썼거나 사실이 다른 경우, 출처가 다른 부분 등도 이번에 모두 바로 잡았다. 1986~1995년 선생의 연구실에서 조교로 지냈던 최 교수는 “한 분야에서 정통한 이는 많지만 시대 전체를 아우르며 미래까지 조망하면서 울림 있게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쓴 이는 선생 이후 없을 것이다. 제국과 권력, 파시즘, 친일, 사회주의 등 우상과 평생 싸우며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깨고자 했던 것들은 지금도 건재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에 관해 현지 취재해 쓴 ‘8억인과의 대화’에 관해 국제정치학자 한 분이 ‘전문가라면 다 아는 내용’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지식을 안다는 것과 지식을 전파해 사회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다시 말해 아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집과 관련 “글을 고를 때 현재성이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과 일본에 관해 비판한 글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로 보건대 충분한 현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원한 것은 ‘리영희가 필요 없는 세상’이었다”면서 “10주기를 맞아 발행한 책과 관련 행사들이 그를 넘어서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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