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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자벳을 향한 연민과 분노…역사에 가미된 매혹적 판타지[공연리뷰]

    엘리자벳을 향한 연민과 분노…역사에 가미된 매혹적 판타지[공연리뷰]

    “작은 새는 새장 안으로 날아들었고 철창문은 닫혔습니다.”(‘루케니’의 대사) 뮤지컬 ‘엘리자벳’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 속으로 스러져 간 인물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린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사랑받고 또 가장 미움받았던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1837~1898), 극 중 엘리자벳은 새장 안으로 날아든 작은 새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엄격함은 그를 결박시키는 족쇄가 된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의 어머니 소피가 ‘엄격해, 강인해, 냉정해, 냉철해’라고 주문처럼 외는 말은 헝가리의 민족주의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제국의 통합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읽힌다. ●한국 공연 10주년, 논란 잠재운 열연 작품의 매력은 엘리자벳에 대한 연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황실을 향한 민중의 분노가 함께 그려진다는 점에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시장에서 ‘우유를 달라’고 분노하는 민중을 뒤로하고 욕조에 우유를 붓고 코냑 한 잔에 날계란 세 알씩을 넣은 샴푸를 쓰는 엘리자벳의 모습은 그가 사랑받은 만큼 또 어떻게 동시에 미움을 얻게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 있는 게 전부인 군인들,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는 관료들, 무릎 꿇고 기도만 하는 사제들, 카페에 앉아 종말을 이야기하는 지식인들 등은 당시 종말적 분위기가 가득했던, 몰락해 가는 도시 빈으로 관객을 소환한다. 여기에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돼 작품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바로 ‘죽음’(토드)의 의인화다. 결혼식 주례사에서 흔히 쓰이는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이 작품 속에서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엘리자벳과 황제의 결혼식에서 ‘죽음’은 광기에 찬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판타지의 개입은 종말적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한편 엘리자벳을 향한 황제와 ‘죽음’의 사랑이라는 삼각관계를 통해 극을 절정으로 치닫게 한다. 계속되는 ‘죽음’의 유혹에도 엘리자벳은 ‘내 힘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 끝으로 무대·연출 변화 예고 현실과 판타지 사이 배치된 루케니란 인물은 또 어떤가. 실제 역사 속에서 루케니는 엘리자벳을 암살한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다. 뮤지컬에서 그는 극 전체의 해설자로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활보하며 시대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활약한다. 한국 초연 10주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엘리자벳’은 이번 공연이 기존 프로덕션을 만나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중 회전 무대와 세 개의 리프트, 그리고 ‘죽음’이 등장하는 11m에 달하는 브리지 등의 무대 세트를 비롯해 연출, 의상 등은 10주년 기념 공연을 끝으로 더는 만날 수 없게 된다. 옥주현, 박은태, 김준수, 신성록, 이지훈, 민영기 등 10년간 흥행을 이끌어 낸 기존 캐스트는 물론 공연 전 불거졌던 캐스팅 논란을 잠재울 만한 이지혜, 길병민 등 뉴캐스트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오는 11월 13일까지.
  •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전국노래자랑/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전국노래자랑/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일요일 점심시간의 식당은 예외 없이 전국노래자랑으로 채널 고정이다. 넋 놓고 보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들에게 손님의 등장이 미안할 정도. 지방에 갔을 때에는 볼륨을 좀 줄여 달라는 부탁을 한 적도 있다. 이 기억은 반가워서가 아니었다. 내게 일요일 점심은 고민 없이 출발비디오여행이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전국노래자랑을 본 시간의 90%는 식당이었다. 송해 선생이 돌아가시고 다음 진행자가 큰 관심사였다. 물망에 올랐던 이상벽씨 등을 뒤로하고 김신영씨가 낙점이 됐다. 보수적인 KBS의 고인물 프로그램에서 젊은 여성 MC의 선택은 신의 한 수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한동안 언론인의 칼럼, 지식인의 SNS에서는 의미를 여러 방면으로 해석하는 글이 터져 나왔다. 전국노래자랑을 저렇게 사랑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나. 내가 알기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수요예술무대를 보고 소감을 말하지 “지난주 전국노래자랑은 참 재미있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음악 프로그램의 새 진행자라면 모름지기 유희열, 이문세, 윤도현을 후보로 밀었어야 했다. 묘한 엇갈림이 느껴졌다. 이 의문은 질리언 테트의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읽으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는 말실수가 많았다. 막무가내의 거친 말투, 철자가 틀리고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지식인들은 질색을 하며 기품 있고 준비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다. 저자는 트럼프의 유세를 미국 프로레슬링 WWE와 비교했다. 트럼프는 전부터 WWE에 투자해 왔는데, 그 분위기에 익숙했다고 한다. 유세장은 WWE 경기장 같았고 거구의 트럼프는 팬들의 응원 속에 올라오는 스타 레슬러였다. 경쟁자는 ‘거짓말쟁이 테드’와 같이 희화화됐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WWE의 주요 팬인 저소득층에게는 이런 장면이 익숙한 프레임이었고, 쇼로 구성된 선악 대결 구도로 자연스레 비쳐졌다고 설명한다. 그에 반해 지식인들에게는 낯설고 저급해 보였을 뿐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교양 없이 과장되고 모욕적 구호가 난무하는 유세를 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다. 미국뿐 아니라 여기에도 두 개의 다른 문화의 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TV 프로그램부터 사회와 정치적 태도까지 두 줄로 늘어서 있고 서로의 거리는 채널 하나보다 멀다. 전국노래자랑을 수십년 동안 애청한 사람들 중에서 김신영의 등장에 사회문화적 해석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리를 둔 눈으로 낯선 모습을 자기 관점에서 읽어 보는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내가 제일 잘 아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저쪽 세상은 그렇게 복잡하고 세심하게 돌아가는 곳이 아닐지 모른다. 내가 잘 모르고 낯설다는 걸 인정하고 그 안에 들어가 보려는 마음부터 갖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 생각을 하며 켰다 하면 나오는 MC붐과 트로트 가수들의 흥겨움에 마음을 얹어 보았다. 영탁의 투어를 버스 대절해 다니느라 바쁘다는 환자의 신난 목소리와 함께.
  • SK, 30대 그룹 중 ESG경영 관심도 1위

    SK, 30대 그룹 중 ESG경영 관심도 1위

    SK그룹이 최근 1년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관련한 온라인 관심도가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5일 여론조사기관 데이터앤리서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2022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가운데 상위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ESG 경영 관련 온라인 정보량을 조사한 결과 SK그룹의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발표했다. 데이터앤리서치는 뉴스, 커뮤니티, 블로그, 카페,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지식인, 기업·단체, 정부·공공 등 12개 채널 23만개 사이트에서 ‘ESG’와 ‘그룹명’ 사이 키워드 간 글자 수를 한글 기준 25자 이내에서 결과 값이 도출되도록 자료를 수집했다. SK그룹의 ESG 정보량은 총 6만 7636건으로 2위 LG그룹(4만 87건)을 훌쩍 뛰어넘었고, 이는 웬만한 기업의 1년간 전체 정보량과 엇비슷하다는 게 데이터앤리서치 측 설명이다. 이어 롯데(3만 2785건), 삼성(2만 6673건), 포스코(2만 856건), 농협(1만 9172건), 한화(1만 6684건), KT(1만 3930건), GS(1만 3494건), CJ(1만 1409건), 현대차(7461건) 순으로 집계됐다. 데이터앤리서치 관계자는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 ESG 경영뿐 아니라 사회공헌 등 여러 지속가능경영 지표에서 늘 최상위권으로 나오고 있다”라면서 “SK가 자산규모 순위 3위에서 올해 5월 2위로 상승한 것은 이러한 지속가능경영 지표로 인한 신뢰도 상승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다음 조사 때는 자산규모를 고려한 ‘조정 ESG 경영’ 관심도 순위를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럴 경우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그룹이라도 순위는 더 높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서울광장] 다극 질서와 한국인 유전자/임병선 논설위원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유전자에 다극 질서에 대응하는 사상적, 심리적 요소가 약하다. 그런 점이 매우 걱정된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가 지난 23일 개최한 ‘한중 수교 30년, 갈등 극복 해법을 찾아서’ 포럼에 토론자로 나선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의 발언이 귀에 꽂혔다. 세계가 냉전 이후 미국 단극 체제에서 다극 질서로 바뀌고 있다는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의 발제에 대한 언급이었다. 미국 순양함 두 척이 그제 대만해협을 통과했고, 중국 전투기 10대가 상공을 정찰했다. 러시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침공, 반년 넘게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음을 과시한 북한은 언제라도 7차 핵실험을 감행, 우리와 일본 등에 전술핵을 쓸 수 있는 준비를 마치려 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일대일 외교에 능했던 우리가 삼각 질서나 다극 질서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진단했다. 동아시아에 신흥 세력이 부상해 질서가 바뀔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하거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의리를 앞세우고 주자학의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민족이라는 것이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다극 질서로 바뀌는 시기에 국익과 백성의 삶을 위하는 이용후생의 상인 의식이 필요한데, 반대로 갔다는 진단이다. 병자호란이나 구한말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고 의심했던 이들이나 취임 110일을 넘긴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에 ‘올인’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이들이나 의로움을 판단 잣대로 생각하는 점은 닮았다. 오드 아르네 베스타 예일대 교수는 ‘제국과 의로운 민족’ 한국어 서문을 통해 한반도가 유일하게 제국에 복속되지 않은 이유로 ‘정체성’과 ‘지식’을 꼽아 눈길을 모았다. 베스타 교수는 한국인이 의(義)를 중시하는 정체성을 지녔으며, 조선 지식인들이 오히려 중국인보다 제국을 더 잘 알고 있어서 포섭하려는 제국에 때로는 저항하며, 국방과 외교를 중국에 의지하면서도 국내 문제는 스스로 처리하는 식으로 현명하게 생존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혐오는 결코 방책이 안 된다. 중국을 잘 알아야 잘 대응할 수 있다. 중국에게 우리가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혐오할수록 중국을 더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공부와 숙고보다 그저 일어나는 상황 상황에 대처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어느 날은 미국 목소리에 힘을 싣다가 다른 날은 중국 달래기에 나서는가 하면, 어느 날은 북한과 북녘 인권을 압박하다 다른 날은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원칙론을 설파한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갈파한 대로 윤 대통령은 기본부터, 나라 운영의 기본 방법부터 익혀야 한다. 제도와 환경을 섣불리 이해하고 혁신을 외치면 안 된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기’(氣)를 충전하거나 집권여당 연찬회에 기웃거리거나 전당대회 시기를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보다 미중 전략경쟁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미국과 중국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토와 러시아, 북한, 일본이 이 시점에 어떤 고민을 하는지 연구하고 살펴야 한다. 한가위 물가나 전세난, 주택난 같은 민생 고민도 해야겠지만 우리 민족이 이 격변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국민들이 어떤 사상과 심리적 준비를 해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주변 세력들을 잘 안다고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 국민 모두가 착각하며 단정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민족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일방의 힘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들어서고 있다.
  • [책꽂이]

    [책꽂이]

    딜리셔스(롭 던·모니카 산체스 지음, 김수진 옮김, 까치 펴냄)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인 저자들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진화와 역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왔는지 고찰한다. 600만년 전 도구의 발명은 더 달거나 풍미가 있는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한 고민에서 비롯됐고, 인간은 수천년간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고 나눠 먹으며 사회성을 길러 왔다. 333쪽. 1만 8000원.이토록 재밌는 음악 이야기(크리스토프 로이더 지음, 배명자 옮김, 반니 펴냄) 독일 공연예술가의 시각으로 자연의 음악부터 팝뮤직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탐구한다. 음역을 기준으로 뽑은 최고의 가수는 누구인지, 베토벤을 죽게 한 악기는 무엇인지 등의 잡학과 2분 만에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방법 등의 실용적 지식이 가득하다. 376쪽. 2만원.비단길 편지(윤후명 지음, 은행나무 펴냄)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활동해 온 윤후명 작가가 10년 만에 펴낸 시집. 총 219편의 시를 통해 그간 펼쳐 보인 다양한 시의 세계를 다시 한번 재현한다. 일상적인 언어의 규범적, 문법적 질서가 무시되거나 파괴된 시편들을 통해 언어적 고민과 시인의 세계관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음을 드러낸다. 300쪽. 1만 5000원.회계사 김경율의 ‘노빠꾸’ 인생(김경율 지음, 트라이온 펴냄)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지지 세력을 비판했던 김경율 회계사의 자전적 에세이. 20여년간 시민운동에 몸담으며 쌍용자동차 해고 무효 소송,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공론화를 이끌었던 저자가 진보 진영의 민낯을 폭로하기까지 고난과 역경을 지나온 한 인간의 비화와 성찰의 기록이다. 316쪽. 1만 7800원.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행복(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부키 펴냄)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행복의 요건을 규명한다. 행복은 환경보다 유전적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현대 심리학계의 믿음을 반박하고, 우리가 지속적으로 더 행복해지려면 외부적 요인 또한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애착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다. 504쪽. 2만원.파국이냐 삶이냐(장 피에르 뒤피 지음, 이충훈 옮김, 산현재 펴냄) 프랑스 과학철학자인 저자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한복판에서 써 내려간 사유 일기. 정부가 생명 보호에 집착하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까지 과도한 강제 조치를 시행한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저자는 분노 어린 비판을 쏟아낸다. 282쪽. 1만 7000원.
  • 인간 넘어 이젠 모든 생명이 중심… 그의 서가는 우주를 품는다[김언호의 서재탐험]

    인간 넘어 이젠 모든 생명이 중심… 그의 서가는 우주를 품는다[김언호의 서재탐험]

    # ‘지구와사람’ 창립-생명·지구공동체 지향… 다양한 학술행사·교육·출판 등 기획# 내 기억 속의 노무현-탈권위적 이상주의자… 그의 사유는 수평적이고 늘 열려 있어# 책 탐닉하는 법률가-문학·철학·종교·사상 등 편식 없이 탐독… 인생책은 ‘슬픈 열대’ # 인생의 전환점과 책-정치 근원 고민할 때 만난 마루야마 마사오… 영세 계기도# 희망·격려가 된 작가-토머스 베리의 삶에 대한 성찰과 경축… 더 큰 관점 얻게 돼# 지구중심주의 모색-인간중심적 세계관에 지구 황폐화… ‘우주적 겸손’ 필요해강금실 변호사가 이끄는 ‘지구와사람’은 생명공동체·지구공동체를 지향한다. 2015년에 창립했다. 다양한 학술행사와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생태연구회·지구법학회·기후와문화연구회를 통해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문명, 인간과 비인간의 동등한 삶을 구현하려 한다. 정기 콘퍼런스와 기후 변화 컬로퀴엄, 지구법 강좌, 생명문화 강좌를 연다. 생명의 시작(詩作), 생태기행 등 문화예술 플랫폼을 펼친다. 출판기획으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를 대중적으로 모색한다. ‘지구와사람’은 여느 사회문화운동 모임보다 대안적이고 실천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젊은 변호사 강금실의 법무부 장관 임용은 우리 정치사에 기록될 만한 파격이었다. 정치가 노무현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인문주의자·생태주의자 강금실에게도 귀중한 경험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진정한 민주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습니다. 현실적인 정치인이라기보다 탈권위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사유는 수평적이고 늘 열려 있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진면목은 퇴임 후 그의 고향 마을에서의 일상에서도 드러난다. 봉화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잔을 들었다. “자전거 뒷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들판을 달리는 할아버지 노무현이 우리 국민들에게 각인돼 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닙니까.” 2008년 11월 노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와 함께 헤이리 북하우스를 방문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렸더니, “선배님, 그간 잘 계셨습니까”라고 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선배님’이라는 인사를 받다니. 노 전 대통령은 그날 두어 시간 북하우스에 머물면서 책방과 미술 전시, 책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나는 노 전 대통령에게 우리가 펴낸 준초이의 대형 사진집 ‘백제’를 선물했다. “이런 큰 책 받아도 됩니까.” “농사지으면 이웃과 나누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은 책 농사입니다.” 내 고향 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마을과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뒷산에 올라가면 저 멀리 봉화산이 보인다. 나는 고향 갈 때면 봉화에 놀러 가겠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때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나는 강 변호사에게 가까이서 모신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창의적이고 꿈꾸는 영혼이었습니다. 현실보다 한발 앞서서 사회의 진보를 모색했습니다.” ●시 읽기로 빠져든 독서 강 변호사는 시 읽기를 좋아했다. 민음사가 펴내던 ‘세계시인선’을 모조리 읽었다.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보르헤스를 탐닉했다. 그의 시, 그의 소설을 모조리 읽었다. 이기영의 불교 책들, 보조국사 지눌을 읽었다. 카뮈와 사르트르를 읽었다. 문학을 넘어 철학과 사상, 종교와 신학을 읽었다. 에리히 프롬, 디트리히 본회퍼,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 헤겔이 그 저자들이었다.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탐독했다. 김우창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을 읽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80년대 젊은이들의 필독서이듯이 그의 독서목록에도 들어 있었다. 지인으로부터 두 별호를 받았다. 새벽빛을 뜻하는 ‘효명’(曉明)과 보랏빛 노을이라는 의미의 ‘자하’(紫霞)인데, 효명과 자하는 여명·일몰과 같은 이미지다. “브라질 원주민 사회의 현장조사를 기행문 형식으로 저술한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내 인생의 한 권의 책’입니다. 마르세유에서 출발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 삶의 원감각(原感覺)을 그리면서 ‘슬픈 열대’는 시작되지요.”●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은 법률가 강금실의 인생에서 한 전환점을 만든 책이다. 노무현 정부에 참여하면서 정치란 무엇인가를 근원적으로 생각하는데, 민주적인 사회를 어떻게 구현할지를 치열하게 생각하는 실천적인 지식인 마루야마의 이 책을 읽었다. 영세받는 계기를 만든 책이었다. 마루야마의 대형 에세이 ‘일본 파시즘의 사상과 운동’을 나는 1980년 초 차기벽·박충석 교수가 편한 ‘일본현대사의 구조’를 기획하면서 읽었다. 1990년대부터 펴내는 ‘한길그레이트북스’의 한 권으로 이 책을 출간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펴낸 3500여 권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기억되는 책이다. 인간과 정치, 권력과 도덕, 지배와 복종,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깊게 성찰하고 있다. 2014년에 작고한 이론과실천사의 김태경 대표가 펴낸 율리우스 푸치크의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 강금실이 그의 삶에서 두고두고 기억하는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이다. 저자 푸치크는 히틀러가 체코를 점령했을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한 저널리스트였다.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1943년 9월에 처형된 푸치크가 감옥에서 남긴 글과 편지를 묶은 것이다. 누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아내를 부탁한다. “나는 내가 없어지더라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강금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서 한나 아렌트를 만난다. 유대인으로서 근대 세계의 ‘근본악’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사상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본격적으로 대면한다. 정치현실을 관조하는 형이상학적 분석을 넘어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실천적 철학을 온몸, 온정신으로 탐구하는 아렌트에게 인문주의자 강금실은 경도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유대인 학살의 주범 아이히만 재판을 현장에서 취재해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천명한다. 생각하기의 무능으로부터 빚어지는 악의 평범성은 수많은 사람들을 경각시킨다. “사유하지 않으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유하게 하는 사회적 학습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토머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 강 변호사는 2009년 대학원에서 토머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을 읽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주의 일부인 지구에서 피어난 생명으로서 인간이 지닌 물질적·정신적·영적 차원의 의미를 파악하고,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지나쳐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새로운 대안으로 생태문명을 제시합니다. 그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위대한 과업’입니다. ‘위대한 과업’의 문장은 이지적인 차원을 넘어 시적으로 혼을 울려서 황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제6장 ‘생존력 있는 인간’은 인간의 신체와 영혼을 만들어 낸 우주의 원형적 상징의 하나로 ‘생명의 나무’를 말합니다.” 베리의 사상은 문명사와 생태학과 우주론의 결합으로 압축할 수 있다. 생태학의 지평을 정치·경제와 같은 사회적·과학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우주와 영성의 차원까지로 넓혔다고 평가받는다. “삶에 대한 베리의 핵심 메시지는 ‘성찰’(Reflection)과 ‘경축’(Celebration)입니다. 이 주제는 삶의 여러 어려움으로 고민할 때 나에게 희망을 주었고 격려가 되었습니다. 50대까지 사회와 권력에 관심을 두었다면,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온 우주와 지구의 온 삶을 깨달아 가고 있다고 할까요. 지구와 우주의 생명과 존재라는 더 큰 관점에서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의 틀을 새로이 얻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탐구하는 강금실은 베리의 또 다른 책들인 ‘모든 존재는 권리를 가진다’, ‘우주 이야기’, ‘지구의 꿈’, ‘황혼의 사색’을 우리들에게 권독한다. ●산·강· 꽃도… 모든 존재는 권리 가져 오늘날의 과학·산업문명과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이 인류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 물질적·경제적 가치관이 인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가 오늘의 자본주의와 과학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일깨우고 있다. “난민 수용소의 아이들이 굶주리면서 죽어 가고 있지만, 인류를 살인하는 군산복합체의 무기상들은 호화로운 연회장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굶어 죽어 가는 노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주가 몇 포인트 떨어졌다고 야단스럽게 떠드는 미디어의 현실을 보십시오!” 오늘의 인간들은 자신의 권리만을 부르짖고 있다. 이제 자신의 권리보다 ‘의무’를 중시하고 각성하는 삶이 요구되지 않는가. “오늘 우리 인간에게는 ‘우주적 겸손’이 필요합니다. 권력지향적인 사고를 넘어 예술가의 심미안이 필요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말했지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보라’는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2020년 지구법학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지구를 위한 법학’을 출간했다. 지구법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자들이 모이고 있다. “인간 중심에서 모든 생명의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권리를 가진다. 강에는 강의 권리가, 산에는 산의 권리가 있다. 곤충에게는 곤충의 권리가, 꽃에는 꽃의 권리가 있다. 이제는 인간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지구공동체 모두가 참여하는 체제가 필요하다. 지금 강금실이 추구하는 주제다. 강금실은 저간의 공부와 생각을 두 권의 책 ‘생명의 정치’(2012)와 ‘지구를 위한 변론’(2021)에 담았다. ‘생명의 정치’가 산업문명의 대안을 모색하는 새로운 생명중심의 생태학적 관점을 소개했다면, ‘지구를 위한 변론’은 보다 구체적인 시대상황과 대안을 담론한다. 강금실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책 읽기를 진행한다. 함께 토론하기, 함께 생각하기다. 함께하는 삶은 의미 있고 재미있다. ‘성찰’과 ‘축제’의 삶이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옥창준 “한반도와 중국 관계 더 긴 호흡에서 살펴보자” [평화연구소의 창]

    옥창준 “한반도와 중국 관계 더 긴 호흡에서 살펴보자” [평화연구소의 창]

    16일자 서울신문 23면 평화연구소의 창에 소개된 옥창준 정치학 박사 인터뷰 가운데 지면에 미처 소개되지 못한 대목이다. 지면 인터뷰 보러가기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plan -저자와의 인연은. “2017년, 저자가 라이샤워 강연을 막 마치고 중국과 한국을 연이어 방문했다. 방한했을 때 서울대, 경남대,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강연을 했다. 이 때 베스타와 인연이 있는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를 통해 소개받고 인사를 드렸다. 저자의 주저인 ‘냉전의 지구사’를 번역하겠다 직접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줬다. 그 인연이 이 책 번역으로 이어졌다. ‘냉전의 지구사’를 보며 우리 독자들은 당연히 냉전의 중심인 한반도의 사례가 많이 다뤄졌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작 한반도 관련이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또 중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관련 논의도 의외로 적다. 그렇기에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 앞 책의 보완재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번역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여담이지만 번역을 막 착수했을 때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논쟁이 있었고, 책이 출간되기 직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의 한복 논쟁, 석연치 않은 판정을 둘러싸고 한중 간의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 시의적절한 번역서를 출간했다고 생각한다.”-번역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영어로는 참 좋은 책 제목이고 의미심장하기도 한데 제목을 한국어로 적확히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양인 학자로서 중국을 포착할 때, ‘Empire’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말 독자의 감각에서 Empire의 번역어인 ‘제국’은 조금 다른 외연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국을 바라볼 때 제국, 제국주의보다는 ‘중화’란 표현이 우리들 피부에 좀 더 감각적으로 와 닿는다. 이를 제국으로 표현했을 때 오는 이질감이 있는데, 한글판을 읽는 독자들이 이를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독서를 해나가면 좋겠다. 또 영어 단어 ‘Nation’도 마찬가지다. ‘민족’으로 번역했을 때 꼭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뜨거운 감정이 있다. 아마 저자가 사용한 이 단어의 어감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보다 좀 더 차분할 것이란 점을 의식했으면 한다. 또 저자에게 코리아는 때로는 남과 북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한국인으로선 코리아는 당연히 한국인데 외부자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 의도적으로 한반도라는 표현을 고집했는데, 번역을 마친 뒤에도 여전히 살짝 어색한 감이 남기도 했다. 독자들의 너른 양해를 바란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이로서 책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면. “한국어 자료를 읽을 수 없는데, 기존의 전공인 중국사를 넘어서 한국사까지 연구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점이 좀 더 글로벌한 시각에서 과감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저자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자료를 제대로 못 읽고, 자료에서 표현되는 뉘앙스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대목도 있을 것이다. 과감하게 한중관계 600년사를 그려냈지만, 그려낸 서사가 큰 방향에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 학자들을 만나 중국어로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 학생들도 많이 가르쳤으니 중국 사람들이 바라보는 한반도관이 투영된 것이 아닌가 걱정도 있다. 그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중국 사람들 입장에서 한반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라는 베스타 교수의 지적은 충분히 음미해볼 만하다. 그러니 중국과의 대화를 채우는 것은 우리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자들의 몫이다. 한반도 국가와 중국의 관계를 더 긴 호흡에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 중국어판이 나온다면 중국어권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베스타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중국 입장에서도 정녕 제국이 되고 싶으면 한반도와의 관계가 시금석이 되는 것 같다. 실은 지금 그것이 잘 안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외교가 해내야 할 일이기도 한데 우리 국민들의 대중국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정치권도 완벽히 통제하기 쉽지 않다. “동감이다. 동아시아에 오랫동안 누적돼 온 문제들이 있는데 그 전에는 터놓고 얘기하지 않고 서로 얼버무리며 넘기곤 했던 문제들이 이제는 서로 대등하게 성장한 상황에 평등하게 얘기를 주고받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사상 첫 경험이 아닐까 한다. 언젠가는 거쳐야 할 지점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처음이라 거칠게 분출하는 경향은 있지만 거쳐야 할 과정인 것 같다.” -지금까지 공부의 초점과 앞으로의 초점은. “국제정치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과연 현실 국제정치를 잘 알 수 있느냐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받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냉전 초기 한국 국제정치학의 역사로 잡았다. ‘냉전 국제정치’란 새로운 현상을 당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읽어냈는가 살폈다. 냉전을 ‘열전’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현실에 우리의 눈으로 주체적으로 냉전을 읽어낸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지식인들은 미국 국제정치학을 수용하면서 극복하고, 또 우리의 현실을 나름대로 해석해내야 하는 삼중고에 시달렸다. 냉전기 한국이란 독특한 장소에서 국제정치를 우리의 눈으로 읽어내려는 시각이 분명 존재했다. 학위논문에서는 주로 냉전 초기를 다뤘지만 앞으로는 시공간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 “韓은 ‘의로운 나라’란 수사 경계를… 中은 가부장적 책임으로 포장” [평화연구소의 창]

    “韓은 ‘의로운 나라’란 수사 경계를… 中은 가부장적 책임으로 포장” [평화연구소의 창]

    “한국이 대단하고 의로운 나라란 식으로, 이 책이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번역하는 내내 이렇게 읽히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중 수교 이후 30년의 변화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한계도 있다. 외부 관찰자의 시각으로 중국의 정책 담당자들에게 귀를 기울여 쓴 책이란 점을 감안해 우리가 주체적으로 그 속을 채워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출간된 오드 아르네 베스타(62) 미국 예일대 교수의 책 ‘제국과 의로운 민족’(너머북스)은 한국 독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명청 시대를 비롯해 한반도와 중국의 600년 관계를 돌아보며 중국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를 의로운 민족이라고 여기며 여느 주변국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부여했으며 자신들보다 중국을 더 잘 아는 민족으로 여겨 왔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해서 중국은 늘 한반도를 완전히 복속시키지 않고 상대적으로 많은 자율성과 독립을 부여해 왔다는 베스타 교수의 주장은 신선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들렸다. 지난 6월부터 여러 차례 이메일이나 화상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이 오지 않아 평화연구소는 대신 이 책은 물론 그의 전작 ‘냉전의 지구사’를 옮긴 옥창준(35)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박사를 만났다. 이제 막 국제정치학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옥 박사는 번역하며 느꼈던 점들, 베스타 교수가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한반도의 미래를 주체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 등을 풀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저자 베스타 교수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노르웨이 출신의 역사학자로 냉전사(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다. 차가운 평화로 경험했던 냉전의 ‘중심’이 아니라 열전으로 경험했던 ‘주변’의 냉전을 통해 전체적인 양상을 포착하려 했다. ‘냉전의 지구사’에 잘 드러나 있다. 사실 베스타의 첫출발은 중국현대사 연구자다. 베스타는 ‘잠 못 이루는 제국’이라는 책에서 중국사를 접근할 때에도 중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과 주변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서 중국사를 서술했다. 이런 시선이 자연스럽게 중국이라는 제국과 주변인 한반도가 지닌 역할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한국어판 서문에만 ‘정체성 유지’ 표현 -책의 의미를 짚는다면. “영어판과 달리 한국어판 서문에만 한국이 정체성을 유지했고 중국에 대한 지식이 많았다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저자의 전략적 서술 같은데 그 대목이 많은 국내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 한국이 대단하고 의로운 나라다, 이렇게 해석되는 것 같아 조금 위험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저자의 의도도 아닐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만 읽히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확실히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사를 본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독자 가운데 과연 중국이 몽골이나 티베트, 베트남, 캄보디아를 지배했던 것과 조선을 지배했던 통치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과 가까운 나라들이 중국 제국이 해체될 때 사라지는 경우나 국체가 흔들리는 예가 많았다. 저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라는 지역이 중국이 스스로 제국이란 것을 드러내기 위해 독립은 허용했지만 자신의 문화를 받아들여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상징적 가치가 있는 지역이었고, 그런 모습이 여느 지역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베트남의 상황이 그나마 조선과 많이 비슷해 우리가 비교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상징적 가치 때문에라도 중국은 한반도를 자기의 영토로 삼지 않았지만 적당히 내버려 두면서도 문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전략을 취했다. 중국은 완전히 통치하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하면서도 중화세계 안에 묶어 뒀고, 조선 사람들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았던 것 같다.”●‘예의의 나라’란 말은 칭찬 아닌 수치 -그런데 지금은 많이 다르지 않나. “책의 저본이 되는 하버드대 라이샤워 강연은 2017년에 행해졌다. 이 책의 제3부는 중국의 고위 외교정책 결정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초로 하고 있어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그 뒤 코로나19의 확산과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은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일례로 과연 지금도 중국의 전문가들이 정말 내심 한국 중심으로 통일되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현 상황보다 낫다고 보고 있을까? 오히려 나는 베스타 교수가 인터뷰한 중국 측 인사들이 이와 같은 레토릭을 통해서 여전히 한반도 통일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의로운 민족이란 찬사에 함정이 있다는 뜻인가. “개화파의 비조인 박규수(朴珪壽)는 ‘예의의 나라’라는 말을 칭찬이 아니라 비루하다고 평가하는 기록을 남긴 적이 있다. 세상에 예의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중국이 이적(夷狄) 가운데 이런 나라가 있음을 가상히 여겨 칭찬한 수사에 불과하니, 이는 오히려 스스로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말이라 본 것이다. 오히려 ‘의로움’은 우리를 가부장적으로 바라보는 중국의 시선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하기에, 우리가 일정한 경계를 표해야 할 말이다. 거대한 제국 옆에서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자신감을 지닐 필요도 분명 있겠지만 그런 ‘국뽕’식 접근보다 앞으로는 한반도 국가가 중국 옆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이 의로움의 실질적인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또 이전 시기의 중국·한반도 관계와 달리 현재는 북핵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문제가 존재하고, 남한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유 진영 가운데 성장해 왔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가 느끼는 ‘의로움’은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오히려 중화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중국과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런 충돌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어떤 해법이 있을 수 있나. “물론 한반도 통일에 있어 중국의 역할이 존재하지만, 북한·러시아·중국의 연계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중요할 것이다. 상책(上策)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더라도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미국 모두의 신뢰를 받을 수 없는 전략은 하책(下策)임이 분명하다. 이 책은 중국·한반도 관계를 다루지만 결국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세계전략의 하위범주로 이루어질 것임을 파악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세계질서 속에서 성장해 온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현 질서의 유지냐 타파냐를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질서를 어떻게 보수하고 개신(改新)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이 얼마나 설득력을 얻는지가 앞으로 새로운 세계질서가 등장할 때 한국의 위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본다.” ●‘한반도는 中에 무엇인가’ 반문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책과 오언 데니의 ‘청한론’(China and Korea), 유길준의 ‘서유견문’ 3권 ‘방국의 권리’를 연결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외부의 시선으로 중국·한반도의 역사적 관계가 흥미로워진다는 것은 세계질서가 변동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데니의 ‘청한론’을 떠올렸다. 이와 같은 외부의 시선에 대한 21세기 유길준의 응답이 필요하다. 현재 지식인들이나 국민들이 ‘한반도에 중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만 매몰돼 있는데 ‘한반도는 중국에 무엇인가’라는 다소 낯선 질문에 답을 채워야 한다. 중국이 포용력 있는 지역 강대국, 세계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도 한반도인의 동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의미가 있다. 우리도 새로운 ‘의로움’에 기초해 중국을 끊임없이 설득함으로써, 중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인터뷰 계속 보러가기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816500003
  •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비천한 지식인/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비천한 지식인/번역가

    15년 전 중국작가협회 대표단이 한국에 왔을 때 환영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작가 중 모 대학 문학연구소 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노교수가 내 앞에 앉아 오래 별러 왔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선생님은 글을 쓰실 때 자유로우십니까?” 중국작가협회가 중국공산당 산하 단체인 것을 생각하면 사뭇 민감하고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이었다. 뜻밖에도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자유롭습니다. 당은 우리 작가들의 글쓰기에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질문한 내가 위축될 정도로 그는 당당하고 단호했다. 그의 말만 들으면 중국 작가들은 중국공산당과 출판사 그리고 자신들이 행하는 3중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소재, 주제, 관점에서 공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는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현재도 그렇지 않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가 6·4 톈안먼 항쟁을 회고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2010년과 2011년, 각기 프랑스와 대만에서 출판됐다. 역시 유명 작가인 옌롄커가 중국 언론 통제의 현주소를 비판한 2014년 작 ‘침묵과 한숨’도 미국과 대만에서 출판됐다. 두 작가 모두 애초에 이 책들을 중국에서 출판하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옌롄커는 그나마 중국 작가들이 ‘민감한’ 저작을 대만에서라도 출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대만의 출판사와 출판인들에게 감사해야” 하며 나아가 “해외에서의 출판과 존재를 허용해 준 권력에 대해서도 눈물을 머금고 감사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했다. 지당한 말이다. 나 역시 중국공산당의 그런 ‘아량’과 ‘지혜’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촘촘히 언론을 통제하면서도 비판적 지식인들의 불만을 배려해 작은 숨구멍을 늘 잊지 않았다. 국내에서는 금서가 될 저작이 대만과 홍콩을 포함한 외국에서 출판되는 것을 눈감아 준 것이다. 만리방화벽을 구축하고도 일부 중국 네티즌이 우회 접속으로 페이스북과 구글을 이용하고 또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넷플릭스 콘텐츠를 즐기게 눈감아 주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올해 시진핑 3기 정권이 출범한 뒤에도 계속 아량과 지혜를 발휘해 줄지는 미지수다. 자유롭지 않은 중국의 창작 환경에서도 자유를 구가한다던 노교수의 당당한 눈빛을 떠올리면 옌롄커가 말한, 권력을 마주하고 있을 때의 ‘문학의 비천함’이 함께 떠오른다. 그는 최고 권력이 정해 준 틀 안에서만 글을 쓰는 대가로 작은 권력을 얻었을 것이다. 그 권력은 돈과 지위로 환산된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권력은 상위의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데, 만약 최고 권력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그것에 복종하는 하위의 권력은 모두 비천하다. 이 메커니즘에 속한다면 중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문학은 비천하다. 이 메커니즘에 속한다면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인도 비천하다.
  • 숨을수록 유명해진… 안티 예술가의 조롱[지금, 이 영화]

    숨을수록 유명해진… 안티 예술가의 조롱[지금, 이 영화]

    민중 예술가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다.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예명과 그가 남긴 작품뿐이다. 이를테면 “1956년 전남 출생, 고교 졸업 후 현재 기능공”이라는 약력 한 줄로 1980년대 한국 시단에 등장한 박노해(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준말)가 그렇다. 그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회자됐고, 1984년 출간한 시집 ‘노동의 새벽’이 불러일으킨 이른바 ‘박노해 현상’은 문단을 넘어 198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토록 그가 주목받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민중과 지식인의 경계를 허문 시를 썼다는 데서 우선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또 다른 연유도 있다. 다름 아닌 그의 익명성이다. 작품과 본명이 아닌 이름 말고는 대부분의 사적 정보가 감춰져 있어 오히려 그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는 역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박노해는 박기평이라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예술가가 있다. 예술가라고 표현했으나 스스로 예술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뱅크시다. 1974년 영국 출생으로 추정된다는 소문 외에 그의 신상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 그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세와 영향력을 가진 예술 테러리스트 예술가로 활동 중이다. 수집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앞다퉈 모으면서 거래 가격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 뱅크시의 명성이 덩달아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그의 이력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뱅크시’다. 엘리오 에스파냐 감독이 붙인 원제목은 ‘뱅크시와 법외 예술의 부상’(Banksy and the Rise of Outlaw Art)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뱅크시의 작업이 시작부터 법 바깥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길거리 담벼락에 페인트를 뿌려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 운동에 몰두했는데, 대다수 국가는 공공 기물에 손상을 입힌다며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또한 그는 대영박물관 등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어 두는 기행을 일삼았다. 이런 행동은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다. 진지한 예술 테러였다. 엘리트만을 위한 예술, 값비싼 상품으로 전락한 예술을 조롱하고 공격한 것이다. 이 밖에 그는 반전과 탈권위 등 여러 메시지를 행위 예술을 아우르는 작품으로 전하는 데 힘썼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에 지은 ‘벽에 가로막힌 호텔’(The Walled Off Hotel),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되자마자 파쇄를 시도한 ‘풍선과 소녀’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뱅크시가 왜 21세기 화제의 안티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는가를 각종 인터뷰와 자료를 활용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를 전혀 몰랐던 관객이라고 해도 ‘뱅크시’를 보고 나면 그에 관해 한두 마디 견해를 덧붙일 수 있을 정도다. 다양한 말이 오갈 수 있겠지만 뱅크시가 누구냐 하는 질문은 부질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니라 그가 야기한 효과에 있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 칼럼니스트
  • 지식인도 시민운동도 ‘팬덤’에 굴복… 그 막강한 영향력, 이젠 따져보자 [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지식인도 시민운동도 ‘팬덤’에 굴복… 그 막강한 영향력, 이젠 따져보자 [박상훈의 호모 폴리티쿠스]

    모두가 “정치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통찰력 있는 진단과 처방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믿는 정치학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이 정치혐오에 기대거나 소수 팬덤을 동원하려는 얕은 유혹을 넘어선 정치의 본뜻을 고찰합니다. 3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1. 정치학 개념 중에는 현실에서 먼저 만들어져 사용되다가 뒤늦게 이론화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게 ‘민주주의’다. 처음 이 말은 ‘데모스’로 불리는 일반 시민들도 ‘크라토스’, 즉 통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비난하고 조롱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을 교육받지 않은 이들이 공익을 어떻게 판별해서 통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민주주의? 그건 일종의 광신자들의 잘못된 신념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으로 만들어진 말이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가 군주정이나 귀족정과 구분되는 정치체제의 한 유형을 뜻하는 개념으로 발전한 것은 한참 지나서였다. 이마누엘 칸트 말마따나 “이성이 자신에게 필요한 힘을 획득하기 전까지” 그전에 없던 새로운 생각이나 주장들이 광신으로 비난받곤 했는데, 민주주의야말로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다. 2. 포퓰리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이 말은 19세기 말 미국과 러시아에서 등장했다. 당시 미국에서 포퓰리즘은 산업화에 밀려나기 시작한 농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일종의 정치적 대중운동이었다. 철도의 확장이 몰고 온 변화 속에서 유대인들이 지배하던 은행 대출에 자신의 토지가 결박당한 자영농민들의 박탈감을 반영했다. 그들 대부분은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이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포퓰리즘에는 농본주의와 인종주의 거기다 반유대주의까지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러시아 포퓰리즘은 로마노프 왕조 시대 농민들이 겪는 곤경을 안타깝게 생각한 도시 인텔리겐치아의 문화운동에서 출발했다. 일부는 황제 암살 같은 방식으로 농민들이 가졌던 원한을 해결하려 했고, 일부는 러시아 농촌의 전통을 찬미하는 문예운동으로 나아갔다.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전까지 러시아 포퓰리즘의 영향력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포퓰리즘이 농촌에서 산업 도시로 이주해 온 하층 도시민들의 광범한 정치운동으로 나타난 것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였다. 라틴아메리카가 그 중심이었다. 이 시기 포퓰리즘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운동과 나란히 발전했는데, 이 두 이념 운동보다 하층민의 정서에 잘 부응하면서 큰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포퓰리즘은 초기엔 기득권과 엘리트, 제국주의에 모두 반대하는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추종 현상이 포퓰리즘의 지배적인 형태가 되었다. 그 뒤에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세계 도처에서 다채로운 특징을 갖고 등장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것이 포퓰리즘이다. 특히나 특정한 이념적 지향과 상관없이 좌우를 넘나들며 대중적 불만을 정치쟁점화하는 데 성공한 경우라면 언제든 위세를 떨쳤던 정치운동이 포퓰리즘이다. 3. 처음부터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민주주의가 만들어 내는 대중적 현상의 하나로서 팬덤 정치를 좀더 깊고 넓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를 꽤나 합리적인 개념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정치체제가 그러하지만 민주주의는 특히나 더 인간의 나약한 정념과 불합리한 기대를 동반한다.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꽤 규모 있는 요구가 표출될 때는 더더욱 일관성 없는 무정형성이 두드러진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역동적이게도 하고 또 어렵게도 만든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가치 있게 운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우리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거나 실망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그 장점과 단점을 균형 있게 다뤄 가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만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선용하는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논란이 되는 팬덤 정치 역시 찬반의 소모적 논란에 맡겨 두지 말고 가능한 한 우리 민주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포착하고 또 개선해 가기 위해 의미 있는 정치 용어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광적인 사람이라는 뜻의 ‘패나틱’(fanatic)에서 유래한 팬덤은 우리말로 광신과 열광에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의미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성(reason)과 대비되는 의미의 열정·정념(passion)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와 같은 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팬덤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 비판적인 사유의 계보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주장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팬덤 정치는 포퓰리즘과 유사한 면을 갖는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주의를 급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토론 가능한 주제로 따져 보려면, 논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개념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유형론은 물론 인과론, 나아가 규범적 평가를 위한 기준을 발전시킬 수 있다. 팬덤 정치는 기존 정당정치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팬덤 정치는 전통적인 정당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팬덤 정치가와 정당 정치가, 팬덤 지지자와 정당 지지자는 어떻게 다른가? 국민경선·권리당원·여론조사 등 정당의 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은 팬덤 정치 확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팬덤 정치가 진영 양극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 역시 팬덤 정치에 대한 개념화 없이는 제대로 따지기 쉽지 않다. 4. 팬덤 정치란 정당의 공식적 가치나 이념보다는 정치 엘리트 개인의 ‘개성적 힘’에 의존하는 대중 정치를 가리킨다. 팬덤 정치가의 관점에서 팬덤 정치는 ‘자신만의 사인화(私人化)된 권위자원’의 빠른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지지 동원정치다. 정치가가 더 많은 지지를 추구하고 자신에게 권위자원을 집중시키고 싶어 하는 것은 대중 정치에 부수되는 ‘귀여운 비용(費用)’이다. 안철수 현상 같은 사례에서 보듯 그리 공격적이지 않은 양상으로 나타날 때는 특정 인물을 통해 변화의 욕구를 표현하는 사회현상 내지는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주목을 받다 사라지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정치 현상일 때도 많다. 그러나 팬덤 정치는 다르다. 그 핵심은 기존의 정당 규범이나 정치 규범을 무시하거나 우회, 혹은 때로 공격하고 파괴하는 방식으로 대중으로부터의 지지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정치를 좀더 격렬하고 열정적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팬덤 정치가는 정당 정치가 기득권과 특권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정당 정치의 아웃사이더로 여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정하게 경쟁해서는 당도, 권력도 장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당을 바꾸고 지배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동료 정치인과의 공존과 협력을 통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팬덤을 이용해 기존 정치를 제압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팬덤 정치를 개별 정치인의 개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더 중요한 특징은 제도화된 정치과정 밖에서 정치과정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지지자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방식의 집합적 열정’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팬덤 정치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운동이다. 운동으로서의 팬덤은 제도화를 거부하는 대중적 열정에 그 본질이 있다. 제도화는 정념과 열정을 배제한 이성적 기획을 뜻한다. 팬덤은 그럴 수 없다. 팬덤은 계속 열정을 동원해야 하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팬덤 지지자들은 정치를 평화로운 조정보다는 적대적 싸움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종북, 친일, 적폐 세력과 싸우는 건 소명이나 다름없다. 팬덤 정치가의 존재도, 정당의 공식적 가치나 이념도 그것에 복무할 때만 가치를 갖는다. 정형성이나 안정성은 팬덤의 본질과 충돌한다. 새로운 운동성을 끊임없이 보충해야 팬덤은 지속가능하다. 팬덤 정치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심지어 길지 않은 주기로 수혜자와 피해자가 교차할 때도 있다. 한때 팬덤 정치의 수혜자였다가 지금은 ‘친명’ 팬덤의 공격을 받게 된 ‘친문’ 팬덤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 가변성, 운동성, 비전형성 때문에 팬덤 정치는 관점에 따라서는 민주주의를 혁신하는 대중적 에너지로 이해되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유사 포퓰리즘처럼 보이기도 한다. 5. 팬덤 지지자들이 적극적 시민성을 이상으로 삼는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당의 문화나 전통, 규범,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정치 과정과 절차를 신뢰하고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 긴 과정의 끝에서 최종적 결정자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에 일상적으로 관여하고자 하고, 정치를 변화시키고 싶어 한다. 다만 그것이 연대와 협력, 공익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보다는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자들을 제압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움직인다는 차이는 있다. 그들은 정치, 정당, 의회, 언론, 지식인을 신뢰하지 않고 정치가를 믿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자유주의적 시민성은 물론 공화주의적 시민성의 이상과도 거리가 먼 특별한 시민이다. 때로는 혁명적이고 때로는 반동적이다. 격렬한 선의는 있으나 자신의 선의가 불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돈과 표와 열정을 가진 팬덤 시민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야심을 가진 정치인일수록 자신도 힘을 키워 가다 보면 언젠가 팬덤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놓을 수가 없다. 언론이나 시민운동, 지식사회 역시 팬덤 시민들의 영향력에 굴복한 지 오래다. 강렬한 정견을 가진 팬덤 시민들의 요구에 맞게 두 개의 큰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사나운 얼굴을 하고 공격을 주고받는 일에 이들도 익숙하다. 싫든 좋든 팬덤 정치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가 가진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시대적 현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인지 본격적으로 따져 볼 때다. 정치발전소 학교장
  • 앞마당처럼 드나들며 쌓은 중국 이야기… 그의 서가는 대륙 펼친 ‘역사 놀이터’다 [김언호의 서재탐험]

    앞마당처럼 드나들며 쌓은 중국 이야기… 그의 서가는 대륙 펼친 ‘역사 놀이터’다 [김언호의 서재탐험]

    2012년 ‘중국인 이야기’를 써내기 시작하면서 저자 김명호(전 성공회대 교수)는 “40년 가까이 중국은 나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책·잡지·영화·노래·경극과 새벽 시장, 크고 작은 음식점 돌아다니는 것이 나의 행로였다.” 중국 근현대사 주역들의 사상과 행동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중국인 이야기’는 현재 제9권까지 출간됐다. 중국을 자기 바깥마당처럼 드나드는 김명호가 아니고는 써낼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이야기로 풀어내는 중국사 내가 김명호 교수를 본격적으로 대면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은 2009년 4월이었다.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의 인문출판인들이 동아시아 출판공동체·독서공동체의 실현을 모색하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여강(麗江)회의에서였다. 중국 측이 김 교수를 초청했던 것인데, 그때 나는 “그래,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야!”라고 소리쳤다. 전 22권의 ‘이이화·한국사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전 15권을 펴내면서, 나는 ‘중국인 이야기’를 궁리하고 있었다. 대형의 ‘이야기’ 3부작 기획이었다. 여강 이후 나는 김명호 교수를 매일처럼 만나고 있다. 그에게 몇 시간이고 중국과 중국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방대한 독서세계에 빠진다. 만나지 못하면 전화를 건다. 30분, 한 시간씩 통화가 이어진다. 심야를 가리지 않는다. 여강 이후 독서인 김명호와 출판인 김언호가 만나고 통화한 횟수가 수천일 것이다. 나의 ‘출판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가 김명호다. 어느 날 밤늦게 전화 걸면 북경(北京)에서 받는다. 대만에서, 홍콩에서 받는다. 책 보러 왔다 한다. 그의 일상적인 중국체험이다. 중국의 역사와 인물, 인문·예술과 놀고 있다. 김명호의 이야기마당에 나는 고수가 된다. 추임새로 그의 이야기를 받아 낸다. ●‘난독의 시대’ 김명호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계시는 서울 효자동 한옥 사랑방에서 청전 이상범 화백, 윤제술 국회 부의장 같은 어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었다. 서가엔 한적(漢籍)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었다. 수십 권에 이르는 ‘증국번가서’(曾國蕃家書)가 서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의 ‘가서’가 그렇게 중요한 책인 줄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함석헌 선생의 사상적 자서전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를 중학교 때 읽었다. 세종문화회관 그 자리의 시민회관에서 열린 함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강연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을유문화사가 펴낸 ‘세계문학전집’과 ‘한국문학전집’을 읽었다. 1945년 해방부터 1950년 한국전쟁까지 쏟아져나온 진보적인 책들을 읽으려 했다. 서울신문사에서 출간된 홍명희의 세로쓰기 ‘임꺽정’을 완독했다. 현암사에서 펴낸 ‘최남선전집’과 신구문화사의 ‘한용운전집’, 일지사의 ‘조지훈전집’을 읽었다. 신구문화사의 베스트셀러 ‘한국의 인간상’, ‘세계의 인간상’을 읽었다. 신구문화사의 ‘전후세계문학전집’과 ‘전후한국문학전집’은 표지와 장정이 참 현대적이었다. ‘탐구신서’를 탐독했다. 김명호에게 1960년대는 ‘난독’(亂讀)의 시대였다. 1970년대 대학 시절부터는 역사·사회과학 책들을 읽었다. 이기백·천관우·송건호·강재언·리영희·김열규가 그 저자들이었다. 일제 말 ‘조선과학사’를 써낸 민족사학자 홍이섭의 난삽한 ‘한국사의 방법’을 읽었다. “이병주 소설 좋아했습니다. ‘산하’ 재미있지요. 책머리에 실린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이병주가 아니면 생각 못할 메시지가 아닐까 했습니다. ‘행복어사전’도 좋았어요. 이병주 소설 하면 역시 ‘지리산’과 ‘관부연락선’이지요. ‘지리산’은 진주에서 읽어야 해요. 서울에선 그 맛이 나지 않아요. 난 노신의 소설보다 ‘잡문’을 좋아하는데, 북경의 겨울밤에 읽어야 노신을 더 느낄 수 있습니다.” 1980년대는 금서의 시대였다. 출판인들과 책들이 권위주의 권력과 싸우던 시대였다. “금서들 거의 다 읽었습니다. 신동엽의 ‘금강’도 읽었습니다.”●중국으로 이끈 앙드레 말로 독서인 김명호는 어떻게 중국을 만났을까. “‘을유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과 ‘정복자’를 읽고 중국공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두 소설은 홍콩·광동 파업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국을 전공하기 위해서는 한문을 공부해야 했다. “1970년대 초 청명 임창순 선생이 개설한 태동고전연구소에 가서 한문공부를 했습니다. 파고다 공원 근방에 있었지요. 봉은사로 가서 동초 이진영 선생에게 한문을 배웠습니다. 뚝섬 나루터에서 배 타고 봉은사로 건너가는 공부길이었습니다. 봉선사에 계시던 운허 스님도 만났지요. 1970년 초부터 1972년 2월 군입대 전날까지 봉은사를 다녔는데, 그때 봉은사에서는 ‘팔만대장경’ 국역작업이 진행됐고, 운허 스님이 역장(譯長)이었습니다. 제대 후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2년간 한문공부를 했습니다.” 1980년대에 김명호는 주말이면 홍콩과 대만에 가서 살았다. 경상대에서 6년, 건국대에서 4년을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격동하는 중국대륙을 읽고 체험하는 것이었다. 방학 땐 아예 거기 가서 놀았다. 홍콩은 중국을 체험할 수 있는 자유지대였다. 중국대륙의 내면을 깊게 관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정보와 이론을 담아내는 다양한 잡지들을 접할 수 있었다. 1989년 4월 15일 북경의 천안문(天安門)광장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국공산당 정부는 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했다. 6월 4일 진압이 끝나는 천안문광장은 붉은 피가 흘러넘쳤다. 한국지식인들을 비롯한 많은 국외자들은 중국공산당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난 중국공산당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동안 읽고 관찰한 결과 중국공산당이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고 확신했습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민국시대는 중국문화의 전성기였다. 이 시기의 사상가·혁명가·문학가들의 문집·전집을 주력해서 읽었다. “‘장개석일기’는 정말 흥미롭습니다. 장개석은 죽기 전날까지 일기를 썼는데, 늘 반성한다면서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교수 사직하고 서점인이 되다 1990년 3월 1일, 서울 동숭동에 대형 중국전문서점이 문을 연다. 1992년 8월 24일 중국대륙과 수교하기 한참 전이었다. ‘북경삼련’과 ‘홍콩삼련’에 이어지는 ‘서울삼련’이었다. 교수 김명호는 학교를 사직하고 서점인이 됐다. “1980년대 내가 홍콩삼련을 드나드는 것을 그쪽에서 주의 깊게 보았던 것 같아요. 많은 책들을 구입하면서 한 번도 할인해 달라 하지 않은 나는 그들에게 특별한 손님이었던가 봐요. 하루는 동수옥(董秀玉) 대표가 날 보자고 했어요. 그날 동수옥 대표의 안내로 각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동수옥 대표와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지요. 나에 대한 그의 신뢰와 권유로 서울삼련을 열게 됩니다.” 한중문화교류사에서 한 차원을 높이는 서울삼련의 개관으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출판의 깊이와 넓이를 서울에서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개관하면서 서울삼련에 비치된 책이 8t 트럭 20대나 되는 분량이었다. 해마다 5~6회씩 책을 들여왔으니, 엄청난 양의 서점이었다. 해외에 있는 중국서점 가운데 책의 수준과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서점이었다. 안목 있는 연구자·지식인·예술가들에게 서울삼련의 등장은 가히 문화사적 사건이었다. 화가 서세옥·송영방·정탁영,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용희가 단골이었다. 수교가 되면서 중국과의 내왕이 자유로워졌다. 1999년 큰 적자를 내고 문을 닫지만, 서울삼련은 중국의 중요 인사들이 방한하면 으레 들르는 코스가 됐다. 비치된 책들의 수준을 중국인들도 놀라워했다. “서울삼련의 10년은 참으로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전설 같은 중국의 예술가·지식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서점을 방문하는 중국인사들과 ‘문화친구’가 됩니다. 화가 황영옥(黃永玉), 서예가 계공(啓功)과 황묘자(黃苗子), 사상가 이택후(李澤厚), 만화가 정총(丁聰) 같은 거장들과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지요. 중국인들의 심연을 알게 됩니다.” 북경의 지화사(智和寺)에 보존돼 있는 ‘건륭판 대장경’의 탁본을 1억원도 더 주고 수입했다. 책 자체가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기에 법보(法寶)다.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함께 ‘동방의 유이(有二)’한 존재다. 지금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김 교수는 서점을 닫으면서 ‘건륭판 대장경’을 승가대학에 시주했다. 서점의 재고들을 반품하지 않고 7개 대학에 기증했다. ●저자 김명호와의 특별한 여행 김명호 교수는 지금 파주서재 말고 서울에 제2의 서재가 있다. 상도동엔 서고가 있다. 서울삼련을 끝낸 후 다시 컬렉션한, 엄청난 수준의 책들이다. 나는 김 교수에게 ‘중국인 이야기’를 끝내면, 김 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책들로 ‘중국책 특별전’을 해보자고 하고 있다. ‘중국인 이야기’ 제1권을 펴낸 그해 여름, 나는 ‘중국인 이야기’ 독후감 대회를 열고 재미있는 독후감을 보내 준 독자들과 북경을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저자 김명호 교수와의 특별한 여행이었다. 그는 북경의 뒷골목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저명한 정치가·예술가·지식인들이 어느 골목에 살았는지. 유서 깊은 사가(史家) 골목을 걸으면서, 이 집은 한때 국가주석이었던 화국봉(華國鋒)의 집이고, 그 옆집이 외교부장 교관화(喬冠華)가 살던 집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외교관들이 드나드는 식당 ‘열빈’(悅賓)에 가서 식사할 수 있었다. 열빈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제1호 민간식당’이다. 북경의 구석구석을 서울처럼 아는 김명호는 그래서 ‘중국은 나의 놀이터’라고 말한다. 장대한 역사공간에서, 책들의 숲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문협(文俠) 김명호의 이야기를 우리는 더 듣고 싶어 한다. 한길사·한길책박물관 대표
  • ‘김연아♥’ 고우림 아버지 정치색 논란…‘이재명 공개지지’

    ‘김연아♥’ 고우림 아버지 정치색 논란…‘이재명 공개지지’

    ‘피겨여왕’ 김연아가 포레스텔라 고우림과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고우림의 집안에까지 과도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일 김연아와 고우림이 오는 10월 22일 신라호텔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올댓스케이트 아이스쇼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연아는 4년 만에 아이스쇼에 출연했고, 고우림은 포레스텔라 멤버로 축하 무대에 올랐다. 이후 연인으로 발전한 고우림과 김연아는 3년 연애 끝에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김연아의 결혼 소식이 보도되자 김연아의 예비신랑 고우림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신상이 온종일 온라인을 달궜다. 특히 1995년생으로 김연아보다 다섯 살 연하인 고우림이 ‘군 미필’인 사실이 알려지며 “다소 성급한 결혼 결정이 아니냐”는 주장과 함께 일부 네티즌들은 김연아의 ‘혼전 임신’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연아 측은 “말도 안 된다. 사실 무근”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고우림의 아버지인 고경수 목사가 대구에서 대구이주민선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실과 함께 과거 행적까지 드러나며 ‘정치색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우림의 부친은 보수세가 강한 대구에서 이례적으로 진보적인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3년에는 대구경북목회자정의평화위원회 대표를 맡으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대구시민 1219 동행 1차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지난해 7월 26일에는 ‘대구경북지역 지식인, 전문직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 참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이 드러났다.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세간의 관심을 받는 김연아지만 예비신랑 가족의 정치색까지 언급되는 과도한 신상털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 이희옥 “‘짱깨주의의 탄생’은 의지의 영역이 분석의 영역 압도한 것“

    이희옥 “‘짱깨주의의 탄생’은 의지의 영역이 분석의 영역 압도한 것“

    서울신문 19일자 27면 ‘평화연구소의 창’에 실린 이희옥(62) 성균중국연구소 소장 인터뷰 앞 대목을 온라인에 게재합니다. 한 시간 남짓 인터뷰 가운데 지면에 실린 내용보다 앞서 얘기를 나눈 내용입니다. -수교 30주년을 돌아보며 복잡한 감정이 교차할 것 같다. “수교 당시는 두 나라가 서로 필요해 이를테면 이익의 균형을 찾았다. 교섭 과정에 대한 구술사를 펴내면서 협상에 참여했던 외교관들이 한국의 요구와 중국의 요구가 맞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 서로에게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그 때는 서로의 체제와 제도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중국을 ‘죽의 장막‘이라 일컬었고, 사회주의적 행동 양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올 지 몰랐다. 중국도 탈냉전 시기에 자본주의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정리가 잘 안 돼 있었다. 따라서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이익의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어느 시기 서로를 잘 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상대의 행동이나 정책의 의도와 속살들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중국이 사회주의 정체성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가치관의 차이가 벌어지고 두 나라 관계의 버팀목이었던 경제관계도 보완성보다 경쟁성이 강화됐으며, 국제질서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도 등장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고, 상대의 외교행태가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비판하면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두 나라 국민들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데. “구조적인 문제라 해법이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고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상대의 인식과 행동을 내 중심, 내 필요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어려워진다. 사람을 잘 모를 때는 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쉽게 예단하지 않는데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면 그의 행동을 쉽게 예단하면서 희망적 예단이 많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 차이도 있고 서로의 행동에 대한 기대 차이, 다양한 문제에 대한 역할 차이도 나타났다. 한중관계는 이런 차이가 동시에 분출하는 국면이다.” -김희교 교수의 ‘짱깨주의의 탄생’을 어떻게 보는지.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해 조심스럽다. 사회과학자로서 중국 문제를 보는 제 입장만 말하고자 한다. 오늘날 중국에 대해 미국과 서구가 악마화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동맹국을 묶어 중국을 때려 중국의 패권 속도를 늦추려는 미국의 어두운 세계전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선 안된다. 한미동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동맹의 의인화’에 빠지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인들 삶의 저변을 약화시키는 중국 정부나 지도부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국내에서 중국을 보는 차가운 시선도 외부 상징조작의 결과라기보다 중국을 보는 변화된 우리 학계의 흐름, 또는 민주주의의 인식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모든 중국 문제를 미국의 음모론 같은 환원주의에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양화라는 조건을 걸었지만, 전직 대통령의 책 추천도 성급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 말의 무게는 문제의 본질 밖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지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외교나 대북정책에서도 의지의 영역이 분석의 영역을 압도하는 과정에 많은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다.” -조금 쉽게 풀이해달라. “선의의 의지와 행동이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으나, 생각보다 중국과 북한이 미국과 서구에 포위당했다는 의식이 강했고, 한국의 중재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선택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았다.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데 성과를 거뒀으나, 근본적인 해결 과정의 진전에는 의지의 영역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과 인민대중은 얼마나 일치된 지향을 갖고 있나. “중국의 지식인들이나 기업인들, 시장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중국의 정책 노선은 부조화가 있다. 다만 일반 대중은 시진핑 체제에 대한 지지도가 상당히 높다. 그리고 시진핑 체제는 이런 대중지지에 기반해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정책적 유인이 강하다. 과거 문화대혁명을 동란이라고 표현하는데 오늘날 중국사회를 난동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적 격차가 너무 커졌다. 이런 점에서 중국 국민들은 ‘이러려고 사회주의를 했나”하는 신념의 위기로 나타났다. 이를 포착해 시진핑 체제는 개발독재 방식의 선부론이 끝났다며 공동부유론 구호를 만들고 대중의 불만을 빼주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 제시하면서 사회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다시 시도하는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다. 시 주석이 대중에 내세울 짧고 명확한 정치적 업적이 잘 안 보인다. 국내 정치사회를 통합했다든지 경제 성적이 좋았다든지 아니면 국제관계를 매력적으로 이끌어 중국의 시대를 열었다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위기를 부르짖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마오쩌둥 시대는 정치적 위기를 강조하고 덩샤오핑 시기는 경제적 위기를 강조했는데 지금은 전 지구적 위기를 강조하는 것 같다. 100년 만에 찾아온 대변국이란 표현도 이런 맥락에서다. 역설적으로 미중전략경쟁도 시진핑의 리더십 강화에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권력의 변화를 가져온다든지, 중산층의 이반을 통해 정치사회가 균열된다든지, 지배층의 개혁파와 대중이 결합해 권력 지형을 바꿀 가능성은 많지 않다.” -‘인민영수’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마오쩌둥 때 위대한 영수라고 했으니 시진핑 체제가 마오 시기로 돌아간다는 평가를 종종 받는다. 마오는 카리스마 리더십의 정점이었는데 덩샤오핑은 상대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동의에 근거한 헤게모니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진핑은 그런 수준에 미치지 못해 자신의 사상을 헌법과 당강령에 반영하는 등 인위적으로 상징을 조작하고 있다. 영수란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그 권력이 생각보다는 취약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지면 기사 보러가기
  • “아베를 영웅으로 미화하지 말라”...일본에 이어지는 지성인들의 외침 [김태균의 J로그]

    “아베를 영웅으로 미화하지 말라”...일본에 이어지는 지성인들의 외침 [김태균의 J로그]

    “일본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망하면 모두 ‘물에 흘려 보내며’ 없었던 일로 하는 ‘미덕’이 있지만 이는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나치의 죄상에 대해 맹렬히 반성하면서 과거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사에구사 시게아키·작곡가) 지난 8일 총격을 받고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을 올 가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하는 등 일본내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사망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치적 신념 등에 따른 저격이 아님에도 ‘민주주의의 위기’,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등으로 규정하는 일본 주류사회의 여론몰이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日주류사회 여론몰이에 잇단 경고 미야마 준이치 주오대 교수(역사학)는 17일 허핑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르기로 한 데 대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국장이란 특정 인물을 기리는 데 있어 국민도 정부도 모두 납득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국가가 실시하는 의례이지만, 그러한 대상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미야마 교수는 “그 사람의 업적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에서 ‘그는 위대했다’고 평가를 확정하며 그의 죽음이 중요하다고 공인하는 데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베 전 총리를 국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베 정권을 높이 평가하고 (현재에도 집권하고 있는) 자민당 정권을 긍정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국장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현 정권을 위해 실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거기에 많은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죽음의 정치적 이용’이다.”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극의 영웅’ 미화가 시작됐다”진보 성향의 유명 작곡가 사에구사는 지난 16일 닛칸겐다이(日刊現代)에 기고한 ‘아베 전 총리의 추도와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별개다...죽음을 미화해서는 안된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본 사회에)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비극의 영웅’ 미화가 시작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모리·가케 스캔들’(극우 사학재단인 모리토모 학원과 아베의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학원에 대한 아베 정권 차원의 부당 특혜 제공 의혹),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국가 예산이 들어간 정부 행사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 등 아베 전 총리 재임기의 각종 추문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벚꽃을 보는 모임’에 대한 국회 질의에서 아베 전 총리가 118차례에 걸쳐 거짓으로 답변했는데도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고 흐지부지 종결한 것을 적시하고 “그가 사망하면서 이제는 진상 규명이 어렵게 됐다”고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정치가로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전세계에 웃는 얼굴로 돈을 뿌리고 다녔을 뿐이다.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제정책)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아베의 죽음이 어째서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평론가 후지사키 마사토는 뉴스위크 일본판에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위기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아베 전 총리의 죽음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권력이든 테러리스트이든 ‘정치적 다름’을 폭력으로써 해결하려는 세력 때문에 한 정치가의 생명이 사라졌다면 그것을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걸맞은 이유 없이 단지 정치인 한 사람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만 놓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인이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사망했을 때 이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오바타 세키 게이오대학 교수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뒤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위기상황에서 자기 두뇌를 쓰지 않고 남들로부터 상투적인 문구를 빌려 지껄이는 꼴에 불과하다”며 “그들이 일본의 최고 지식인 계층이라는 점,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최대 약점”이라고 탄식했다.
  • [포착] 나치가 학살한 폴란드인 8000명 유해 발견… “무게만 17.5t”

    [포착] 나치가 학살한 폴란드인 8000명 유해 발견… “무게만 17.5t”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폴란드인 8000여 명을 화장하고 매장한 매장지가 발견됐다고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이 14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란드 국립추모재단은 나치 집단 수용소가 있던 솔다우(현재 지명은 지아우도보) 인근에서 사람을 화장한 재가 묻힌 매장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재단이 발견한 재의 무게는 무려 17.5t에 달한다.국립추모재단 측은 시신 한 구를 화장했을 때 나오는 재를 2㎏으로 가정했을 때, 이번에 발견된 매장지의 희생자는 8000명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해당 지역에서 또 다른 구덩이 2개가 추가로 발견됨에 따라, 희생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발굴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BBC는 나치가 학살의 흔적을 감추려 이미 매장된 시신을 다시 꺼내 화장한 뒤 재를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나치는 1939년 당시 솔다우에 집단 수용소를 만들고, 유대인뿐만 아니라 폴란드 지식인이나 정치적 반대 세력 등을 가뒀다. 이 집단 수용소는 다른 수용소로 분산하기 전 거쳐가는 일종의 선별관리소 역할을 했다. 해당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3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폴란드 당국은 희생자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한편,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13일 “나치의 전쟁 범죄뿐만 아니라 나치 범죄에 따른 경제적 손실액을 계산한 보고서를 준비 중”이라면서 “독일은 과거 폴란드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으면서도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폴란드 측의 주장에 대해 독일은 보상 문제가 1950년 법적으로 정리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BBC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폴란드인은 약 600만 명에 달하며 이중 절반은 유대인”이라면서 “2019년 폴란드 여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폴란드가 전쟁 기간 동안 나치에 의해 입은 경제적 피해는 8500억 달러(한화 약 1000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 고려인 낡은 가방… 85년 민족혼 가득

    고려인 낡은 가방… 85년 민족혼 가득

    카자흐스탄과 수교 30주년 기념 생존 의지 보인 농지 개척 사진 홍범도 수위로 일한 극장 모형 신문·희곡 등 한글 사료도 풍성 고난 속 문화예술 희망 엿보여하루아침에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지면 가방엔 무얼 챙겨야 할까.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중앙아시아로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은 크지 않은 여행가방에 옷가지와 함께 책이나 공연에 필요한 소품 같은 것들을 챙겼다고 한다. 문화예술을 통해 어딜 가서든 민족혼을 잊지 않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고려인의 정착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 ‘와싹와싹 자라게’를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 KF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정착 85주년이기도 하다. 전시관 입구에는 중앙아시아에 외따로이 떨어졌던 고려인처럼 낡은 갈색 여행가방 하나가 쓸쓸히 놓여 있다. KF갤러리 관계자는 “당시 실제로 썼던 여행가방”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둘러보면 그 여행가방에 단순히 옷가지와 같은 생활필수품만 챙긴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전시의 주를 이루는 사진에는 당시 학생들이나 교사, 우리말로 연극을 선보인 연극인들, 한글 신문 ‘레닌기치’ 사원들과 출판사 관계자 등 우리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레닌기치를 계승해 오늘날까지 발간되는 고려신문,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명맥을 잇는 고려극장 등은 고려인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이어 간 민족혼을 엿보게 한다. 전시 중간에는 낯선 땅에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치열했던 생존 흔적도 살필 수 있다. 강제 이주는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강제이주명령서에 서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고려인들이 도착한 일대는 진펄과 갈밭, 소금밭뿐이었다.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부터 갈대를 베고, 땅을 고르고, 메마른 땅에 물을 대어 볍씨를 뿌렸다. 척박한 땅에 집을 짓고 개척했던 고려인들의 사진은 이들이 뿌린 씨가 황무지를 푸른 옥토로 변신시켰다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강인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생활이 나아진 고려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 대신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고려인들에게 모국어 고등교육을 금지시켰지만 문화예술 활동에는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극장과 신문사로 모여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어 갔고, 수많은 한글 문학 단행본과 희곡 등이 탄생했다. 고려극장은 ‘봉오동전투’를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근무한 역사도 품고 있었다. KF 관계자는 “현재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엘리트 계층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며 “5세대까지 내려와 한글이 익숙하진 않지만 고려신문과 고려극장 등을 통해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명인 ‘와싹와싹 자라게’는 고려인 1세대 극작가 연성용이 1933년에 작사·작곡한 노래 ‘씨를 활활 뿌려라’의 후렴구 가사다. 바람에 와사삭, 와싹 스치는 농경지의 빼곡한 벼 잎들을 상상하게 하는 이 가사는 고려인들의 희망을 보여 주는 말로 고단한 삶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강제 이주’ 고려인이 끝까지 지킨 민족혼, 문화예술 꽃 피웠다

    ‘강제 이주’ 고려인이 끝까지 지킨 민족혼, 문화예술 꽃 피웠다

    하루아침에 강제 이주 명령이 떨어지면 가방엔 무얼 챙겨야 할까.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중앙아시아로 떠나야 했던 고려인들은 크지 않은 여행가방에 옷가지와 함께 책이나 공연에 필요한 소품 같은 것들을 챙겼다고 한다. 문화예술을 통해 어딜 가서든 민족혼을 잊지 않고자 했던 그들의 의지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고려인의 정착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 ‘와싹와싹 자라게’를 다음달 6일까지 서울 중구 수하동 KF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정착 85주년이기도 하다. 전시관 입구에는 중앙아시아에 외따로이 떨어졌던 고려인처럼 낡은 갈색 여행가방 하나가 쓸쓸히 놓여 있다. KF갤러리 관계자는 “당시 실제로 썼던 여행가방”이라고 설명했다.전시를 둘러보면 그 여행가방에 단순히 옷가지와 같은 생활필수품만 챙긴 것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전시의 주를 이루는 사진에는 당시 학생들이나 교사, 우리말로 연극을 선보인 연극인들, 한글 신문 ‘레닌기치’ 사원들과 출판사 관계자 등 우리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레닌기치를 계승해 오늘날까지 발간되는 고려신문, 마찬가지로 현재까지 명맥을 잇는 고려극장 등은 고려인들이 척박한 땅에서도 이어 간 민족혼을 엿보게 한다. 전시 중간에는 낯선 땅에 정착해야 했던 고려인들의 치열했던 생존 흔적도 살필 수 있다. 강제 이주는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이 고려인강제이주명령서에 서명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고려인들이 도착한 일대는 진펄과 갈밭, 소금밭뿐이었다. 고려인들은 이듬해 봄부터 갈대를 베고, 땅을 고르고, 메마른 땅에 물을 대어 볍씨를 뿌렸다. 척박한 땅에 집을 짓고 개척했던 고려인들의 사진은 이들이 뿌린 씨가 황무지를 푸른 옥토로 변신시켰다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강인한 의지를 느끼게 한다.생활이 나아진 고려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 대신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고려인들에게 모국어 고등교육을 금지시켰지만 문화예술 활동에는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지식인들은 극장과 신문사로 모여 민족문화의 명맥을 이어 갔고, 수많은 한글 문학 단행본과 희곡 등이 탄생했다. 고려극장은 ‘봉오동전투’를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수위로 근무한 역사도 품고 있었다. KF 관계자는 “현재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 엘리트 계층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며 “5세대까지 내려와 한글이 익숙하진 않지만 고려신문과 고려극장 등을 통해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명인 ‘와싹와싹 자라게’는 고려인 1세대 극작가 연성용이 1933년에 작사·작곡한 노래 ‘씨를 활활 뿌려라’의 후렴구 가사다. 바람에 와사삭, 와싹 스치는 농경지의 빼곡한 벼 잎들을 상상하게 하는 이 가사는 고려인들의 희망을 보여 주는 말로 고단한 삶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이은경의 과학산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양, 마이크로 디그리/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이은경의 과학산책]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양, 마이크로 디그리/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앞으로는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 졸업장이나 졸업증서를 보고 어리둥절해질 수 있다. ○○학과에 다닌 자녀의 졸업 서류에 ○○학 전공, △△ 복수전공, ◇◇ 부전공 외에 어쩌면 □□ 융합전공, ▽▽ 나노 디그리(Nano Degree), ◎◎ 마이크로 디그리(Micro Degree)같이 낯선 용어가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 변화하는 교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들이 새로 도입한 제도들이다. 고등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은 사회 변화에 맞춰 교육 내용과 제도를 바꾸면서 진화했다. 정비된 교육과정과 학위제도를 가진 대학이라는 시스템은 중세 말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생겨났고, 시간을 두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인구 증가와 도시화에 따라 사회에는 성직자를 포함해 전문 지식인이 더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은 일종의 지식 ‘길드’처럼 운영됐다. 학생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초 교육과정으로서 문법, 수사학, 논리학 3과목의 기초소양을 마치면 배철러(bachelor·학사)가 됐고 다음 단계인 산술, 기하학, 음악, 천문학으로 구성된 4과 과정을 끝내면 학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 마스터(master·석사) 또는 닥터(doctor·박사)로 인정받았다. 이들 7개 과목은 당시 지식 전문가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본 소양과목이었다. 이런 전통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대학 교과에 교양과목과 전공과목으로 나뉘어 있는 식이다. 이런 틀 안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교양의 내용과 범위는 역동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이후 수백년간 이어진 대학의 전통을 깬 새로운 유형의 대학이 독일에서 나타났다. 산업혁명이 몰고 온 사회변화에 적극 부응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19세기에 등장한 것이다. 연구 논문을 쓰는 박사학위 제도와 실험 교육, 새로운 학과 구성 등 베를린 대학 모델은 신흥 산업국가인 독일의 부상과 함께 유럽을 넘어 세계로 퍼졌다. 그리고 20세기와 21세기에는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과학기술, 산업, 사회의 필요에 맞추어 대학의 역할, 교육과정, 학위 제도 등이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변화했으며, 지금도 변화하는 중이다. 이제 대학은 고등 교육기관이자 지식재산권을 생산하는 연구기관이고, 나아가 기술혁신과 창업에 기여하는 경제주체 중 하나가 됐다. 이 모든 변화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살아남으려는 대학의 적응 과정이었다. 새로운 방식들은 대부분 오랜 전통이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존 질서의 밖에서 시도됐다.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됨에 따라 기존 교양과정의 구성, 기존 학과 구분에는 맞지 않는 영역의 교육 수요가 증가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이전 세대에게 문해력, 외국어, 산술과 논리가 기본 소양이었다면 다음 세대에게는 통계, 빅데이터, 코딩 같은 이른바 디지털 문해력이 기본 소양이 될 것이다. 학과와 대학의 경계를 넘어 디지털 소양교육을 촉진하기 위해 새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 마이크로 디그리 또는 나노 디그리다. 최근 도입된 마이크로 디그리는 기존 학사, 석사, 박사처럼 자격을 나타내는 학위라기보다 아직은 교육과정 수료 인증에 가깝다. 예를 들어 원하는 모든 전공의 학생들이 빅데이터 관련 지정 교과목 4~5개를 소속 대학 또는 공유 대학에서 이수하면 빅데이터 마이크로 디그리를 받을 수 있다. 기존 전공이나 대학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 소비자에게 열린 제도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내실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게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새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그래야 수요자인 사회와 기업이 마이크로 디그리를 가진 인재의 역량을 인정할 것이고,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롭게 힘받아 뜨는 말들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새롭게 힘받아 뜨는 말들

    다듬을 외국어 새말 후보를 훑어보던 새말모임 위원들 중 몇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디제라티(digerati)? 이게 무슨 뜻이지? 풀이를 보니 디지털(digital)과 지식인을 뜻하는 ‘리터라티’(literati)를 붙인 합성어다.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지식 계층을 뜻한다고 한다. 다시 한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평소 우리말 순화에 관심을 두고 불필요한 외국어 표현이 새로 등장하는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새말모임 위원들에게조차 낯선 단어가 아닌가. 그렇다면 일반 국민에게는 더더구나 낯설 법한 단어를 서둘러 다듬어야만 할까? 위원들은 잠시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이미 많이 쓰고 있는 외국어를 우리말로 순화하는 작업은 물론 시급하지만, 아직은 낯선 단어를 한 발짝 빨리 새말로 바꾸는 작업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국어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안착하기 전에 우리말이 먼저 단단히 자리를 다져 놓으면 외국어가 불필요하게 끼어들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디제라티’는 특히나 쓰임새가 더 넓어지리라 예측되는 단어다. 지금은 주로 사회학이나 언론정보학 등 학술 분야에서만 주로 쓰이고 있지만, 정보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머지않아 대중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선제적으로 순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가닥을 잡으니 말을 다듬는 작업은 빠르고 수월하게 진행됐다. 조어 자체가 ‘디지털’과 ‘지식인’이라는 두 개의 분명한 개념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이미 우리말로 순화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 사회에 정착해 버린 단어. 무리하게 우리말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리기로 하고 ‘리터라티’라는 단어에 과녁을 겨누어 다듬기에 들어갔다. 이 역시 지식인, 지식층, 지식 계급 등의 단어로 쉽게 의견이 모였다. 후보 단어는 ‘디지털 지식인’, ‘디지털 지식층’, ‘디지털 지식 계급’으로 정해졌다. ‘사이버 지식인’, ‘디지털 정보층’ 등도 물망에 올랐으나 원 단어가 가진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탈락했다. ‘디지털 지식인’과 ‘디지털 지식층’은 둘 다 무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말이다. 새말모임 위원들은 그중 ‘디지털 지식층’을 일순위 후보로 꼽았다. ‘시대를 선도하거나 사회에서 지식 권력을 구사하는 집단’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계층’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디지털 지식인’이 그 뒤를 이었고 ‘디지털 지식 계급’을 마지막 순위로 후보 명단에 올렸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디지털 지식인’이 선택을 받았다. 응답자의 79.1%가 적절한 표현이라는 데 동의했다. ‘디지털 지식층’(76.9%) 역시 근소한 차이로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급’이라는 표현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과연 시민들의 선호도도 다른 두 후보 단어에 비해 뚝 떨어졌다(41.6%). 이렇게 해서 ‘디지털 지식인’이라는 우리 다듬은 말이 탄생하게 됐다. 여담 한 가지. ‘디제라티’라는 단어는 과연 ‘신조어’일까? 아직 우리에게 낯선 단어라고는 했지만, 이 말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1992년 뉴욕타임스를 통해서였다. 무려 40년이나 된 단어로, 미국에서는 이미 웹스터사전에 등재될 만큼 ‘보통명사’가 됐다고 한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때 역시 1999년도다. 존 브록먼의 저서 ‘디제라티-디지털 시대의 파워엘리트’가 번역 출간됐다. 한창 ‘닷컴’ 바람이 시대를 풍미할 때 등장했던 이 단어는 이후 사용이 뜸해져 어느샌가 우리에게 ‘낯선’ 표현이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언어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잊혔다가도 부활하는 법.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말이 그랬다. ‘현실 세계와도 같은 각종 사회 활동이 3차원의 가상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을 일컫는 이 말은 신조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연륜 있는’ 단어다. ‘메타버스’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때도 ‘디제라티’처럼 1992년으로, 미국의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전에 탄생했다 한동안 잊혔던 표현이 오늘날 정보통신의 발달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활동까지 더해져 새롭게 ‘뜬’ 것이다. 디제라티도 메타버스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시대를 제대로 만나면 새로 생명을 얻고 활개를 치는 단어’가 될지 모른다. 아니, 앞서 말했듯 그럴 가능성이 크다. 메타버스는 2021년 국립국어원이 ‘확장 가상 세계’, ‘가상 융합 세계’로 다듬어 소개한 바 있다. ‘확장 가상 세계’, ‘가상 융합 세계’의 건투를 빌며, 새로 탄생한 ‘디지털 지식인’도 굳세게 뿌리를 내려 가길 기원한다. ※ 새말모임은 어려운 외래 새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다듬어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국어, 언론, 통번역, 문학, 정보통신, 보건 등 여러 분야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이 모임을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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