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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답답한 日교과서 왜곡 대응

    작금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태를 보면서 일본은 과연우리에게 우방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수교국에 대해 이같은 의문을 던지는 자체가 결례일지 모르지만 한·일 두 나라·민족 사이에는 여전히 ‘감정적 앙금’이 짙게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이는 과거사 정리가제대로 안된 탓이며,특히 일본측의 거듭된 역사왜곡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일본의 첫번째 역사교과서 왜곡은 지난 82년으로 거슬러올라가는데,한국으로서는 ‘제2의 국치(國恥)’에 버금갈만한 모독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일본에게 한국을 손톱만큼이라도 존중·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왔겠는가? 또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이 그릇된 역사관에 빠져 그런 생각을 했다손 치더라도 일본정부가 어찌 그런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켰단 말인가? 백번을 양보해도 이를 ‘우연한 실수’로 볼 수 없는 것은,그같은작태가 근 20년 동안 계속 반복된다는 사실때문이다. 요즘도 수요일이면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서울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벌인다.피해 당사자가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일본군 위안부는 ‘역사에 없는 역사’라고 강변하는 그들과는 더이상 합리적인얘기를 하기가 어렵다. 최근 일본에서 정치혼란에다 만성적 경제불황이 겹치자,이 악조건을 비집고 ‘황국사관(皇國史觀)’이라는 망령이마치 나치 히틀러의 모습으로 불거졌다. 문제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교과서는 검정 과정에서전체 328쪽 가운데 137곳이 수정돼 마치 누더기 꼴이라는데 그렇다면 원본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문제는 최종 통과본에서 일부 내용이 수정,완화되기는 했지만 본질에서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는데 있다. 오죽했으면 4일자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전전(戰前),즉 일제시대의 국정교과서를 보는 듯했다고 썼을까.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답답하기 짝이없다. 한마디로 예전에도 봐온 양태 그대로다.외교부장관이 일본대사를 불러 유감표명이나 하고 주일 한국대사 소환을 검토하는 정도가 고작이다.인터넷 사이트에선 ‘일본열도를 폭격하라’는 등 분노섞인 목소리가 넘치고 있다. 정부당국은 이같은 국민감정을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건지 묻고 싶다. 이제 정부당국에 몇가지를 감히 권한다.먼저 주한 일본대사 추방을 촉구한다.그가 무슨 낯으로 한국땅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하는가? 아울러 역사교과서 왜곡을 부추겨 왔고,일본 극우세력의 나팔수 노릇을 해온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을 폐쇄시켜야 마땅하다.기존 대일정책의 전면 재검토도 촉구한다.지난 82년 ‘왜곡사건’당시 우리 국회에서는일본과의 단교 문제까지 논의한 바 있다. 정부는,우리 국민과 정부 스스로가 주권국가의 주체로서건재해 있음을 일본 국민·정부와 역사 앞에 당당히 내보여야 한다. 정운현 문화팀 차장 jwh59@
  • 日 주요 언론·시민단체 “검정 폐지하라”

    우익 교과서의 검정 통과를 계기로 일본에서 주요 언론과시민단체,양심있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교과서 검정제도폐지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4일자 사설에서 “문제는 검정과정에 간접적으로 국가가 관여하고 있는 점”이라며 “이제 검정 폐지를 목표로 개혁에 나설 때가 왔다”고 밝혔다.아사히(朝日)신문도 이날 “‘밀실’에서 이뤄지는 검정과정을공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시민단체,역사교육관계자들도“현재의 검정제도는 검정을 빙자한 정부의 검열”이며 “현 교과서 검정은 법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했다.정부가근거로 제시한 학습지도 요령은 문부과학성의 고시(告示)에불과한데도 출판사와 기술 내용 등을 구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 검정은 검정조사심의회가 정해진 검정 기준에 따라 심사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다.그러나 폐지론자들은 검정이 사실상 문부과학성의 상근직원과 문부과학상의 자문기관인 심의회의 판단에 입각해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2001년 노벨 평화상 후보인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도쿄교육대 교수는 65년부터 문부과학성 검정의 부당성에 대한 소송을 제기,82년 재판부로부터 “교과서 검정은 검열을금지한 헌법 위반일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한 행정의 부당한개입을 금지한 교육 기본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얻어낸 바있다. 그러나 우익 언론인 산케이(産經)와 요미우리(讀賣)신문등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이번 검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은훼손되지 않았다”며 현 검정제도를 옹호했다. 이진아기자 jlee@
  • 日각료 대부분 ‘황국사관파’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 일본 모리 내각 가운데 대부분은 ‘황국사관파’다.일본의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우익 교과서가 검정을 손쉽게 통과한 것도 ‘신의 대신’들이 후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문제의 황국사관파는 현 18명의 각료 가운데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를 비롯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경제재정 담당특명상,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행정개혁 담당 특명상,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경제산업상,가타야마 도라노스케(片山虎之助) 총무상, 야쓰 요시오(谷津義男) 농림수산상,사이토 도시쓰구(齊藤斗志二) 방위청 장관 등 7명. 이밖에 현 내각의 부대신(차관) 가운데 7명도 황국사관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일본유족회’,‘다함께 신사참배회’ 등 각종 우익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해 왔다.93년 발족된 자민당의‘역사검토 위원회’ 회원으로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우파지식인들로부터 강의를 듣는 등 결속을 다지기도 햇다.그결과 95년 8월 ‘대동아전쟁의 총괄’이라는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대동아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자존과 자위를 위한 전쟁이며 아시아 해방전쟁이었다 ▲난징(南京) 대학살과 군 위안부 등의 가해는 날조이며 일본은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최근의 교과서는 있지도 않은 침략과 가해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교과서싸움’이 필요하다 ▲이같은 역사 인식을 국민이 갖기 위해서는 학자를 동원,국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 일본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우익 진영의 위안부 기술 삭제 공격과 ‘새 교과서…모임’이전개한 자학사관 타파 및 교과서 검정 신청 등은 ‘대동아전쟁의 총괄’에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 것으로 본다. ‘새 교과서…모임’을 앞세워 일본 우익 진영의 역사 교과서 공격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현재 ‘새 교과서…모임’을 전면 지원하고 있는 자민당의‘일본의 전도(前途)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모임’은 역사 검토위의 후신격이다. 이진아기자 jlee@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정부 대응 방향

    *‘日교과서 바로잡기’ 장기전 채비. 왜곡된 일본 역사교과서의 검정 통과 문제가 ‘장기전’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정부로서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단시일 내에 이끌어낼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분석된다.정부 관계자는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주변국의 주장을 반영해 수정을 가했다는 점에서 지난 82년 파동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교과서 내용의 재수정은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임성준(任晟準) 외교통상부 차관보 주재로 4일 오전 열린관계부처 대책회의에서도 재수정 요구 등 구체적인 대책이마련되지는 않았다.단지 일본 교과서에 대한 정밀 검토가끝나는 대로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 나가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통상부로불러들인 한승수(韓昇洙) 외교부 장관은 “역사교과서 문제는 양국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일본의 성의있는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며 원론적인 입장만 전달했다. 결국 일본교과서에 대한 정밀 검토가 끝난 뒤에야 특단의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한·일 우호협력 증진을 위해 추진중인 한·일 청소년교류사업의 일시 연기,지금까지 3차에 걸쳐 진행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전면 재검토 등이 후속 대책 중 하나로 검토되고있다.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의 소환이라는 초강수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 국내 시민단체(NGO)와 일본 내 시민단체 그리고 양식있는 지식인과 교사들이 연대하는 교과서 불채택운동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이밖에 교과서 문제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중국 정부와의 공동 대처도 필요할 경우배제하지 않을 방침이다.주한 중국대사관측도 우리 정부와공동보조를 취하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원상기자 wshong@
  • [사설] 日 교과서, 끝까지 대응해야

    일제 침략사에 대한 왜곡 등으로 아시아 각국의 반발을사온 일본의 중학교용 교과서들이 끝내 검정을 통과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3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일본내 극우성향 단체로 알려진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역사 및 공민 교과서 등 8종의 개악된 교과서에 대해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준 셈이다.이웃나라나 자국내 양심세력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일본내 국수주의 세력의 뿌리가 깊음을 새삼 확인하며 분노를 느낀다.우리는비록 일본 정부의 검정절차가 끝났다 하더라도 계속 끈기있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와 중국 등 일제 피해 당사국들의 거센 반발 여론에직면,문제의 교과서들에서는 일부 극단적 표현이 수정된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역사 왜곡이라는 본질적 문제점은온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검정을 통과한 5개 교과서가 군대위안부 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지 않은가.더욱이 일본이 러·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전체 황인종을 대표해 백인종과 싸웠다고 기술하고 있다니 어이가없다. 일본의 새세대들이 자라나는 교실에서 이같은 과거사 덧칠이 자행될 것이라고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힌다. 일본 문화개방 일정을 연기하거나 항의 특사를 파견하는등 정부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주장도 이를 막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된다.그러나 우리는 그 정도의 대응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본다.교과서 왜곡이 일본내 양심세력의자체 정화 메커니즘에 의해 제동이 걸리지 않을 정도이기때문이다. 최근 도쿄대 총장이 졸업식에서 과거사 왜곡의부당성을 지적했다.이에 앞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겐자부로 등 일본 지식인 17명도 지난달 16일 올바른 역사기술을 촉구했다.그러나 이 양심적 목소리들은 국수주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일본의 일부 매스컴의 나팔 소리에 비해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사실 일본 국수주의의 부활은 10여년의 경제침체로 싹이 튼 정체성의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만큼 입체적으로 대응해야만 문제해결이 가능할 것이다.일본정부를 상대로 외교적 해결을 시도하는 한편 국제 민간단체나 국제기구 등과 연대,국제여론을 환기하는등 전방위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그런 맥락에서 일제의피해를 본 아시아국가들이 중심이 돼 세계 각국의 역사학계와 인권·문화단체가 줄기차게 역사왜곡의 부당성을 지적하도록 해야 한다.세계화 시대에 쇄국주의적 역사왜곡은시대역행적일 뿐만 아니라 이웃국가들과 협력을 통한 일본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도 불리하다는 점을 일깨워야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일본내 양심세력들이 펼칠,문제 교과서의 채택 반대운동을 우리가 측면지원하는 것도 필요한일이라고 본다.
  • 역사왜곡 日교과서 검정통과 파장/ 정부 대책과 전망

    정부는 극우성향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한·일관계사 왜곡 교과서가 큰 수정없이 통과되는 등일본 역사교과서 검정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강경대응을 준비중이다. 정부 당국자는 “‘새 역사 모임’이 만든 교과서는 사실(史實)의 선택과 해석에서 형평성을 잃은 자국중심주의적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면서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는대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한 첫 반응으로 3일 오전 ‘깊은 유감’의 뜻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이어 전문가들의 세밀한 검토와 함께 외교분야 당정회의,외교통상부차관 주재 관계부처 대책회의 등을 차례로 갖고 대응수위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교과서 내용 가운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재수정을 요구할 방침이다.또 국내 시민단체(NGO)와 일본내 양심적인 지식인이 함께하는 ‘교과서불채택 운동’도 대안 중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상룡(崔相龍)주일 대사의소환 등 초강경책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면이 없지 않다.이번 문제로 지난 98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방일 이후 진전돼온 한·일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정부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보편적 인식이 결여된 역사교과서로 주변 국민들의 마음에 벽을 쌓는 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둘 방침”이라고 말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홍원상기자 wshong@
  • [김삼웅 칼럼] ‘치매의 역사’ 바로잡지 못하면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단 한가지뿐이다.그것은 인류가 그 사실을 잊는 것이다.”-유대인 학살의 현장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 기념비에 새겨진 글이다.맹자는 ‘전사불망(前史不忘) 후사지사(後事之師)’라했다.지난 일을 잊지 않으므로 후일의 교사로 삼는다는 뜻이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체커 전 독일 대통령은 “과거에 눈을감은 자는 현재에도 맹목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일제시대 우리 독립군사관학교는 ‘오수불망’(吾讐不忘)이란 교재로 독립군을 양성했다.‘우리의 원수를 잊지 말자’는가르침이었다.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빨리 쉽게 잊는다.그래서 가치관이 전도되고 진실과 허위가 뒤죽박죽이다.E H카는 “역사가 정확을 기한다는 것은 미덕이기 전에 하나의 신성한 의무”라고 역설했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니 ‘현실’은 자꾸 뒤틀린다. 뒤틀리는 현상을 살펴보자.그동안 어렵사리 유지돼온 남북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사대주의에 기생해온 냉전세력과미국 부시 정부에 의해 크게 도전받고 있다.정치개혁은 기득세력의 저항으로 표류하고 언론개혁은 수구언론의 공세로 비틀거린다. 군사독재 시대의 희생자인 의문사 진상규명도 사건 관련자들의 기피로 제자리걸음이다.82건이 의문사로 선정됐지만 단 한건도 진상을 밝히지 못한 상태다.1,000억원이 넘는 안기부 자금 횡령사건도 꼬리를 감추고 각종 ‘괴문서’ 사건도 유야무야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무책임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역사 드라마의 인기에서 나타나듯이 사극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역사의식은 박약한 것이 우리 국민이다.역사의식만투철하다면 지금과 같은 ‘악화’(惡貨)가 설치지는 못할것이다.역사의식의 빈약과 치매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그레셤 법칙’이 나타나게 됐다. 잘못은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면서 임정이 탄핵한 인물을 건국 대통령으로 선출한 ‘정치치매증’에서 비롯한다.이렇게 시작된 정치치매 현상은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하고,친일파의 온상에서 수구세력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장준하 선생이 생전에 말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될자격이없는 사람이 셋 있는데,오카모토 미노루와 다카기마사오와 박정희”라는 바로 그 동일인이 집권하고 이후그의 아류들이 현대사의 ‘주류세력’(main stream)이 됐다. 이 주류에는 정치군인,부패 정치인,족벌언론과 어용 지식인,타락한 기업인이 중심을 이루고 이들은 분단과 냉전구조와 지역갈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거대한 수구계급 사회를 형성했다.요즘 언론개혁에 어깃장을 놓는 식자들을 살펴보면 수구언론과 연계되거나 군사정권에서 핵심역할을했던 자들 또는 그 2세들이다.독재시대에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자들이 마치 자유언론의 파수꾼이 된 것처럼 설친다.청산하지 못한 치매역사의 부끄러운 업보다.일제시대일경이 독립운동가 중 가장 많은 현상금을 내걸고 눈이뒤집혀서 잡고자 했던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선생은 해방후 국립경찰 간부로 변신한 고등계 형사 출신의 노덕술에게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그리고 월북했고 최근까지 그의이름을 부르는 것도 거부됐다.약산의 여동생이 밀양에서북에 있는 오빠의 두 아들을 찾고자 이산상봉 신청을 했다고 들었다. 너무 먼 얘기인가.군사정권에서 민주인사들을 고문하던자가 어느 도시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 되고,수구언론 거부운동이 들불처럼 일고 있는 지역의 국회의원은족벌언론의 대변자인 양 정론지를 매도한다. 나서서는 안될 사람들이 킹 메이커가 되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부시 정부가 북한에 강경책을 써주기를,밸도 없고자존심도 없는 사대주의 언론·지식인들이 날뛴다.청산하지 못한 치매정치의 낯뜨거운 현상이다. 연암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선비는 천작(天爵)이다”고 썼다.‘천작’이란 하늘에서 받은 벼슬이란 뜻으로,남에게 존경받을 만한 덕행과 시비곡직을 가리는 지식인을말한다. 지금의 지식인과 언론인을 옛 선비에 비할 바 아니지만최소한의 ‘선비정신’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걸핏하면 남북 화해협력을 헐뜯고 외신과 외국기관의 보고서를 왜곡하고 우리 국익보다는 타국의 이익에 충실하려는 쓸개 빠진지식인·언론인들은 역사와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역사의 필주(筆誅)가, ‘천작’을 내는 하늘의 ‘천벌’(天罰)이 두렵지 않은가. 김삼웅
  • 이총재 제기 국민 대연합론 “”지역·계층 갈등 조장””비판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29일 충북대 특강에서 ‘국민대연합론’을 제기한 데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 등 여권은 30일 “국민 편가르기”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이 총재는 “혼란과 불안의 이 나라가 바뀌기를 원하는모든 사람과 양식있는 지사,실력 있는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국민대연합을 이룰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리 사회의 모든 양심 세력들에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국민대연합론을 제기했다.국민대연합론은 올 초 이 총재가 말한‘주류론’과 맥이 통하는 것으로 민주당·자민련·민국당등 여당의 ‘3당 정책연합’에 대한 이 총재의 대응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대연합론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회현상을부적절하게 분류, 접근할 경우 자승자박하는 오류를 남기기 쉽다”면서 “주류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동·서지역간 갈등을 조장하고 계층별로 나눠 불안을 조장하고있다”고 비판했다.이어 이 총재의 분류법에 대해 “한탄스럽고 불행한 일”이라며 “주류론으로 국민을 양분하더니 이제는 지식인과 비지식인으로분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민대연합론이 지식인을 국민대연합으로 묶어정부 반대 세력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판단,반격을 꾀했다.지금은 ‘여야 대연합’으로 경제를 살리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실현시켜야 할 때이기 때문에 국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지식인을 적으로만들려는 의도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이명식(李明植)·장전형(張全亨)부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국민대연합론을 비난했다.이 부대변인은 “국민대연합론은 국민 편가르기이자 국민 분열론으로 이 총재의대선 전략일 뿐”이라면서 “이 나라가 바뀌기를 원하는모든 사람을 이 총재 중심으로 모으는 것이 진정한 국민대연합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했다이춘규기자 taein@
  • 조동걸교수 고희기념 ‘自選논문집’출간

    원로사학자 조동걸(趙東杰·70)국민대 명예교수가 고희를맞아 책 두 권을 펴냈다. 그동안 우리 학계의 관행대로라면 대개 후학이나 제자들이 고희를 맞는 스승에게 ‘고희헌정 논문집’형태로 바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조 교수가 펴낸 책은 반대다.‘자선(自選)논문집’ 형태다.“생일은 회갑이나 칠순이나 어느 것이라도 개인적인 것이고,가정의 문제이므로 ‘사회화’시킬 이유가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 교수는 고희인 지난 23일을 사흘 앞두고 미국에 있는아들을 보러간다며 훌쩍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모르긴해도 아마 주위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번에 조 교수가 펴낸 두 권 가운데 한 권은 97년 정년퇴임후 2∼3년동안 발표한 논문을 모은 논문집(‘한국 근현대사의 이상과 형상’)이고,또 한 권은 이 기간동안에쓴 잡문을 모은 역사평론집(‘그래도 역사의 힘을 믿는다’)격이다.두 권의 책에서 조 교수는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역사관·세계관 등을 가감없이,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평론집은 그렇다고쳐도논문집인 ‘한국근대사의…’마저도 그렇다.우선 두 권 모두 머리말이 있고,그 뒤에 또 ‘서설’이 따로 있다.어쩌면 저자는 본문보다 이부분에 더 힘을 줬는지도 모른다. 평소 크고 작은 학회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온 것으로이름이 난 조 교수는 또 역사학자로서 세상사를 외면치 않고 살아왔다.그는 99년 여름 ‘박정희기념관’건립문제가논란이 되자 역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한 역사학 잡지에원고지 100매가 넘는 장문의 글을 써서 우리시대의 몰역사성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번 ‘서설’에서 그의 비판은 주로 정치분야로 모아진다. 문민정부를 ‘93정권’,국민의 정부를 ‘98정권’으로 표현하면서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함을 질타하고 있다.한 예로민주당의 ‘국회의원 꿔주기’와 지난 96년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안기부 자금유용 의혹 등을 열거하며 정치인들을‘협잡꾼’으로, 정치개혁을 정치판의 ‘쓰레기 분리수거’라는 용어로 혹평했다.지식인에 대한 비판도 예외가 아니다.그는 “도덕적 장치가 없는 지식은 금력이나 권력에못지않은 폭력을 낳을것이며,나아가 인류사회를 어지럽히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4월은 북한 축제의 달

    4월은 북한에서는 의미있는 달이다.15일 ‘태양절’이 있고 25일은 인민군 창건일이다. 태양절은 고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생일로 15·16일 이틀이 휴일이다.태양절 일주일 전부터는 외국인의 출입이엄격하게 통제되는 등 북한 전역이 태양절 준비에 나선다. 김 주석의 생일이 태양절 이름을 얻은 것은 김 주석 사망3주년이던 97년 7월이다.당시 북한은 김 주석이 태어난 해(1912년)를 원년으로 해 ‘주체’연호를 쓰고 생일은 ‘태양절’로 부르겠다는 중대 발표를 했다. 그동안의 행사를 되돌아보면 북한 전역은 태양절을 맞아각종 행사가 벌어져 축제분위기가 된다. 가장 큰 행사로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을 꼽을 수있다.40여개국의 각종 단체가 참석하는 이 행사는 지난 82년 김 주석의 70회 생일을 시작으로 83년만 빼고는 매년열렸다.이외에도 당·정·군 간부와 지식인·근로자·군인등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하는 30여건의 경축행사가 태양절전후에 치러진다. 태양절의 또 하나의 특징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대한 충성의 맹세다. 이는 평양4·25문화회관에서 열리는생일기념 보고대회에서 거듭 강조된다. 즉 김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로 새롭게 부른 것은 김일성 시대의 마감을 공식화하고 김정일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나가기 위한 수순이었다. 충성심 제고 차원에서 태양절을 앞두고 특별배급이나 사회 각 분야에서 대규모 승진 등도 이뤄진다.98·99년 2년연속 군 장성급 승진인사가 있었고 학자들에게 교수직이주어지기도 한다. 한편 인민군 창건일은 북한의 29개 기념일 중 유일하게휴일이다.이날을 기념,군과 관련된 건물에는 4·25를 붙이는 경우가 일반화됐다. 전경하기자 lark3@
  • 日교과서 수정 ‘시늉만’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싼 파문이 새 국면을 맞았다. 일제의 아시아 침략,조선 병탄,난징(南京)학살 등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거나 왜곡한 교과서 신청본이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통과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파문의 조기수습을 위해 일본 정부는 검정결과를 3개월 앞당겨 이르면 오는 31일쯤 발표할 예정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유감 표명,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의 거듭된 경고 등을 통해 교과서 수정을 요구해 온한국과 중국 정부는 검정결과에 따른 다각도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경우에 따라서는 2차대전 종전 이후 한·일,중·일간 최악의 외교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쿄의 외교소식통과 일본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비난의표적이 됐던 왜곡부분은 큰 폭으로 수정됐어도 기존 역사기술보다는 몇걸음 후퇴한 검정결과가 나올 것이 확실시된다.한 외교소식통은 “광복 이후 가장 우호적인 단계에 접어든 한·일 관계가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닛케이 평균주가 1만2,000엔대 붕괴로 상징되는 경제난국에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의 사퇴정국이 맞물리면서 일본인들의 관심은 온통 정치·경제상황에 쏠려 있어 피부로느끼긴 어렵지만 일본 사회의 긴장감도 수면 아래서 커져가고 있다.교과서 파동을 주도해온 진보·보수 진영의 대변지격인 아사히(朝日)신문과 산케이(産經)신문은 특집기사 등을 통해 꾸준히 상대쪽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검정결과가 나오면 공방은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교과서 검정결과는 82년 교과서 파동을 훨씬 뛰어넘는 대립과 갈등을 일본 열도와 주변국에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후에키 다카코(28·여·회사원)는 “역사 교과서 문제에 관심은 없으나 월드컵을 400여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두 나라 사이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진영의 선두에 서 있는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은 교과서 검정통과를 전제로 다양한 전략수립에 착수했다.대표적인 슬로건은 ‘왜곡 교과서 채택 0%’.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사무국장은 “어린이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게할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이다.전국 20여곳에 지부를 두고 있는 네트 21은 4월부터 가두서명에 나서 일본 사회에양심적인 소리를 확산시킨다는 생각이다.‘교과서에 진실과자유를 연락회’‘일본출판노조연합회’ ‘역사사실을 직시하는 모임’ 등이 네트 21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왜곡교과서 채택 저지에 적극 나설 움직임이다.닛쿄소(日敎組·일본교직원노조) 등과도 연대해 현장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유도할 계획이다. 반면 왜곡 교과서 제작을 주도해온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올 여름까지 중학교 10% 채택을 목표로 선전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반대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다쿠쇼쿠(拓植)대학 교수는 “일본은 전쟁의 책임이 있는 일황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왔으며 이것이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최대이유”라면서 “과거 청산을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 기술하고 이를 교육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日 역사왜곡은 황국사관 망령”

    국무총리 소속 자문기구인 ‘민족정기선양자문위원회’(위원장 崔昌圭성균관장)는 23일 정부 중앙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강력히 규탄하면서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최 위원장은 결의문에서 “일본이 과거 역사를 반성하지않고 오히려 미래 세대에 왜곡된 역사를 주입시키려는 것은 반 역사적 만행이며 과거 황국사관의 부활”이라며 일본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이 위원회가 다소 소강 상태에 있던 일본의 역사 교과서왜곡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두 가지 이유로 보인다.우선일본 교과서 검증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다시 한번 ‘강력한’ 메시지를 일본측에 전달할 필요가있다는 판단에서다.또 한·일 외교문제 등을 고려,정부측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민간 단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 위원장은 이에 대해 “민족정기 수호와 우리 민족의위상 확립을 위한 첫 과제”라고 말했다.역사 왜곡은 문화적 도발이고 역사적 침략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그는또 “역사문제가 바르지 않으면 나라간에 소통이 단절되는것을 의미한다”면서 “군사·정치 분야보다 역사 왜곡문제야말로 근본적인 단절”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날 결의문을 주한 일본대사관에 전달했다.특히 일본 내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함께 ‘새 역사 만들기모임’ 등 극우 모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 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당시는 일본교사들이 교과서를 채택했지만 이번에는 현(縣)의 교육위원회가 채택하기 때문에 그때보다 더 세심하게 불채택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동참이 어느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中 지식인이 본 세계화의 덫 ‘13억의 충돌’

    덩샤오핑이 지난 78년 개혁개방의 물꼬를 튼 뒤 중국은 고도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물론 성장의 뒷편에는 지역간빈부 격차와 농촌 파괴, 관료 부패, 실업자 증가 등 어두운그림자도 짙게 깔려 있다. 중국은 올해를 세계화의 원년으로 삼았다.다음달쯤 WTO(세계무역기구)가입 결정이,7월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결정이 내려지길 고대하고 있다.농업보조금 등 낙후산업 보호조치 철폐 및 금융주권 약화 등 어느 정도 양보와 희생을감수하더라도 WTO에 가입해 시장을 개방하면 소비재 가격인하와 경쟁력 강화,외자 도입 등 이점이 훨씬 많다고 언론과관리·기업인들은 선전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13억의 중국이 시장의 신화에 굴복해,실패가 보증된 자본주의화의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시장의 신화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한다.대표적 신좌파 소장학자인 베이징항공대 경영대학원 부연구원 한더치앙(韓德强)은 ‘13억의 충돌’(이재훈 옮김,이후 펴냄)에서 시장낙관주의를 버리고 시장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중국적 길을 택하라고 충고한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리카도의 ‘비교우위론’,로스토우의 ‘경제발전 단계론’에 근거한 시장낙관주의는 실물경제에 적용할 수 없는 허구적 가설이라고 반박한다.‘경쟁이론’과 ‘보호무역론’‘중심-주변이론’등을토대로 한 시장현실주의를 주장한다.저개발국에서 개발도상국을 거쳐 선진국에 이르는 단계적 발전 모델은 꿈에 불과하며,강자와 약자로 구성되는 중심과 주변의 질서가 국제경제의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효율보다 평등이 우선되는 일자리 우선정책,자원소비형이 아닌 절약형 경제발전정책, 경제논리를 뛰어넘는전략산업 육성정책,유일한 희망인 우수인력 양성을 위한 과학기술과 교육사업정책을 중국이 진정 민주적이고 문화적인부국강병을 실현할 수 있는 중국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시장개방의 득실을 산업별로 점검하며 국가보호 없이 세계시장의 경쟁을 받아들이기는 무리라고 분석한다.이 책은 중국판 ‘세계화의 덫’이다. 김주혁기자 jhkm@
  • 서울대 한상진교수 “美 끌어들여 用美黨爭 주도”

    현정권 출범초부터 2년간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교수가 조선일보 김대중주필의 칼럼을정면으로 비판한 글을 사이버공간에 띄워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교수는 19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kr)의 1만 297번째 뉴스게릴라(시민기자)로 가입한후 첫 데뷔작으로 조선일보 김주필의 글을 반박한 ‘계산된 용미당쟁(用美黨爭)의 해악’을 게재했다.이는 중진 대학교수가 보수언론의 중견 언론인을 상대로 직격탄을 날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선 한교수는 지난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대중칼럼‘대북 원맨쇼에 걸린 제동’을 읽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하고는 “언론권력의 무모함과 오만함을 넘어 조선일보가 미국을 국내정치에 끌어들여 용미당쟁을 선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조선일보 주필이 이런 혼탁한 글을 발표하는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자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이 아닐 수없다”면서 “지식인의 한사람으로서 참을수 없어 이 글을쓴다”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한교수는 “한미간에 불신과오해를 부추길 수 있는 주장이 조선일보같은 거대 신문의주필 이름으로 나오는 것은 언론권력의 숨은 의도와 계산때문”이라며 “이는 김대통령의 상표랄 수 있는 북한포용정책을 흔들어 놓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 이라고비판했다. 정운현기자
  • ‘안티조선’ 고소사태 새 국면

    ‘안티조선운동’이 지식인들이 주도한 중앙무대에 이어소지역운동으로 점차 확산추세에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사측의 고소사태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예견되는,안티조선운동을 둘러싼 법리논쟁을 계기로 이 운동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고소사태의 발단은 지난 1일 발생한 ‘대구 3·1절 유인물사건’.경산진보연합 사무국장 이상호씨는 이날 대구 수성구 고산지역 일대에서 ‘조선일보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유인물 1만6,000여매를 아파트촌 일대에배포했다.이 일로 이씨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경찰서에 임의동행식으로 연행돼 5시간 정도 조사받고 풀려났다.이 사건이 발생한 후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수성경찰서 홈페이지를 방문해 거칠게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로부터 닷새 뒤인 6일 조선일보 대구지사 탁모 지사장은 이씨 등 3명을 명예훼손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이를계기로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18일 대구 현지에서 항의집회를 가졌다.이 집회에는 서울에서 조선일보반대 시민연대(안티조선연대)의 김동민 상임대표를 비롯해 김정란 상지대교수, 방의천 발해뗏목탐사대장,인터넷 칼럼니스트 문한별씨,웹진 ‘대자보’ 발행인 이창은씨 등이 참석했다.부산의 시인 노혜경씨와 부산 인물과사상모임(인사모)·안티조선 ‘우리모두’ 회원과,대구지역 인사모·경산진보연합·희망의 시민포럼·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등 50여명도 함께했다.이들은 대구 동인동 국채보상공원에서 가진 집회에서 “조선일보의 친일행적을 알린 것이 명예훼손이라면 나도 고소하라”고 주장하고는 조선일보 대구지사 앞으로 옮겨 항의집회를 속개했다.집회후 이들은조선일보반대 대구시민연대 출범과 조선일보반대 ‘1인시위’ 등을 논의한 후 자진 해산했다. 한편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조선일보 없는 옥천’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펼쳐온 ‘조선일보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조선바보운동)의 대표전정표씨와 옥천신문사 편집국장 오한흥씨가 지난 8일 조선일보 옥천지국 최영배 지국장으로부터 검찰에 업무방해혐의로 피소된 것으로 밝혀졌다.최지국장은 고소장에서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선량한 옥천주민들을 현혹,300부 정도가 구독중지돼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최지국장은 ‘조선바보운동’ 관계자를 고소하면서 조선바보인터넷 홈페이지인 물총닷컴(www.mulchong.com)에 실린 회원들의 활동사항을 증거자료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지국장의 고소에 대해 오한흥 편집국장은 “옥천지역 조선일보 구독자 1,000여명 가운데 300여명이 조선바보운동의 영향으로 구독을 중지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이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조선일보측의이같은 반응은 오히려 조선의 친일행적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옥천지역 조선일보 반대운동(조선바보운동)의 경우 회원(독립군)수가 운동 개시 7개월만에 400여명으로 늘어났다.특히 이들 가운데는 진보진영 인사는 물론 민족중흥동지회·바르게살기협의회·재향군인회 등 소위 관변단체 인사들과 지역유지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이 지역에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한것으로 평가된다.오국장은 “검찰의 소환이 있으면 당당히출두해 이 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안티조선운동을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로 보기에는 법적으로 무리가 있다”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시민운동인 만큼 조선일보가 법적·도덕적으로 불리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왜곡 역사교과서 검정 불합격 요구

    [도쿄 연합]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65),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국제정치학) 도쿄대학 명예교수 등 일본의 지식인 17명은 역사 교과서 검정과 관련,16일 성명을 발표하고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를 검정에서 불합격시킬 것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이들은 ‘가해의 기술(記述)을 후퇴시킨 역사 교과서를우려,정부에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지금까지 보도된 ‘새 교과서…모임’측의 교과서 수정판은 애매한 표현으로 부분적 수정을 한 것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가해행위를 기술하지 않고 있다”면서 문부과학성은 이같이 애매하고 불성실한 수정 내용을 검정에서 합격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진실을 직시하는 성실한 태도를 차세대 국민에게배양해주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의한 가해를 솔직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격 하이퍼텍스트 소설 첫선

    전자책 업체인 북토피아(www.booktopia.com)와 인터넷MBC(www.imbc.com)는 국내 최초의 본격 하이퍼텍스트 소설 ‘디지털 구보 2001’을 공동 제작,15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주인공 구보와 남주인공 이상,구보의 어머니 등 3명의 하루(새벽4시부터 오전2시까지 22시간)를 통해 그들의 과거와현재,의식의 흐름,사건들을 엮었다.웹사이트에서 독자가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과 등장인물 별로 자유롭게 선택해읽고,자신만의 이야기를 덧붙이며,도중에 240개 관련 문학작품과 음악 동영상 등 1,000여개 링크를 통해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디지털 소설이다.‘구보’는 박태원 최인훈 주인석을 거치며 사실상 하이퍼텍스트 형식으로 창작돼온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1일’에서 따와 ‘성 전환’만 시켰다. 제작을 지휘한 최혜실 한국과학기술원 국문과교수는 “하이퍼텍스트는 웹을 끌어들여 웹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학이자‘책의 몸바꾸기’”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김혜경 북토피아대표(푸른숲 대표)는 “지식인을 위한 재미있는 지적 게임”이라고 성격을 규정한다. 한편 북토피아가 개발해 키즈토피아(www.kidstopia.com)에이달부터 선보인 어린이 멀티미디어 동화는 이달말부터 MBC-TV ‘뽀뽀뽀’프로에 주1회 방영된다. 김주혁기자
  • 日 지식인 26명 성명 “”교과서 검정합격 반대””

    [도쿄 연합] 구로사와 노부아키(黑澤惟昭) 도쿄 학예대학교수 등 일본 지식인 26명은 14일 우익진영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이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파문과 관련,성명을 내고 “진실을 짓밟는 교과서를 용인할 수없다”며 문제교과서의 검정합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로사와 교수 등은 이날 성명을 발표한 뒤 ‘평화·인권·민주주의 교육 위기에 대응하는 모임’을 결성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 스루가(駿河)대학교수 등 역사학자들이 이날 일본 제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중 아시아 각국에 끼친 피해를 조사할 ‘항구평화조사국’을 국립 국회도서관에 조속히 설치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 김동욱교수 내일 LA서 심포지엄

    천문현상은 주자로 대표되는 중국 송대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학문적 대상이었다고 한다.물론 천체를 관측해서 순환의 법칙 등을 규명해보려고 그런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우주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의 본성을 키워나가야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문제가 관심사였다. 성리학에 절대적 가치를 두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마찬가지였다.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1554∼1637)은 정치적 혼란기에 일생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지냈다.17세기 초 경상도 한외진 곳에 은거지를 얻었다.입암(立巖)이라는 큰 바위가 있는 곳이다. 여헌은 은거지를 정하고는 집터와 주변 산과 시내,골짜기 28곳에 이름을 지었다.입암 초입은 은거자를 부른다는 뜻으로초은(招隱),연못은 귀를 씻는다는 뜻으로 세이담(洗耳潭)하는 식이다. 그리곤 입암을 북극성에,주변 28곳은 28성좌에 견주었다.입암 옆 평평한 바위 계구대(戒懼臺)는 28성좌의 첫번째인 각수(角宿),입암 곁에 서 있는 일곱개의 돌 상두석(象斗石)은북두칠성으로 삼았다.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김동욱 경기대교수(한국건축사)가 의미를 찾는 작업을 했다.‘조선중기 은거선비의 집터와 별자리의 관계’라는 논문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하여 미국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에서 16∼18일 열리는 ‘한국미술사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김교수에 따르면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은거지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비유했다.그 과정에서 고유한 건축 및 자연관이싹텄다.여헌이 은거지를 별자리에 비유한 것도 이런 다양한해석의 하나라는 것이다. 28성좌(宿)는 고대 중국의 별자리 개념이다.별자리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여헌이 입암 주변 28곳을 28성좌에 견준 것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여헌은별자리에 대비시켜 이름을 짓고 의미를 찾았지만,관념적인숫자와 상대적인 위치관계에 머물렀고,실제 별자리 위치를자연 지형에 대비시킨 것은 아니었다.별자리 이름붙이기는초야에 묻혀사는 성리학자의 관념적 유희에 불과했을까. 김교수는 여헌의 작업을 자신의 거처를 우주의 중심으로 바라보는 존재에 대한 자신감의 산물로 보았다.나아가 황폐한땅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여 삶의 터전으로 가꾸는 긍정적인결과를 낳았다.조선 중기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학문적 자신감을 바탕으로,생활터전을 적극 경영한 성과였다는 것이다. 입암촌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 입암리에 있다.입암과 주변 경관은 지금도 잘 보존되고 있다.여헌이 이름지은 28곳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마을은 교육열이 높아 이름난 학자나 문필가도 상당수 배출됐다고 한다.하늘의 별자리를 자신이 사는마을에 재현코자 했던 한 유학자의 꿈이 마을을 번영으로 이끈 힘으로 작용한 셈이다. 더불어 현실세계에서 종종 쓰잘 데 없는 것으로 치부되곤하는 성리학적 관념세계가,실천이 뒷받침될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여헌과 입암촌의 관계는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김삼웅 칼럼] 진짜 언론인 함석헌 100주년

    오늘(13일)은 함석헌선생 탄생 100주년이다. 함석헌은 역사연구가·사상가·민권운동가·잡지발행인 등 여러가지로 분류되지만 ‘진짜 언론인’도 한 범주라 하겠다. 언론인이면 언론인이지 진짜는 뭐고 가짜는 뭐냐고 할지 모르지만 상품에 진짜와 가짜가 있고 진실한 사람과 위선자가있듯이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특히 오랜 독재와 냉전시대에사이비언론(인)이 득세하고 판칠 때 함석헌이야말로 진짜 언론인의 역할을 했다. 제도언론에 지면이 허용될 때는 할 말을 하고,지면이 봉쇄당할 때는 ‘언론게릴라전’을 펴면서 독재와 냉전세력과 싸웠다. 최근 어떤 신문이 ‘할 말은 하는 신문’을 구호로 내걸었지만,그런 신문이 독재에 침묵하거나 곡필을 서슴지 않을 때함석헌은 진짜 할 말을 했다. 억압시대에는 비굴하고 민주시대에는 방종하는 사이비 비판이 아니라 남들이 입을 다물때,천지가 암흑에 덮일 때 그는 할 말을 했다. 친일언론이 식민지 백성들을 전쟁터로 몰아갈 때 함석헌은동지들과 ‘성서조선’을 만들며 어둠에 묻힌 조선역사를 쓰다가 투옥되고,자유당 천하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어용족 또는 만송족(晩松族)일 때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논설을 썼다가 감옥엘 갔다. 5·16쿠데타로 온세상이 공포에싸일 때는 ‘5·16을 어떻게 볼까’란 쿠데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정치군인들에게 할 말을다한 것이다. 당시 족벌언론이 쓴 쿠데타 지지 사설과 기사,논평은 한국언론사의 치부를 드러낸다. 독재권력이 강화되면서 지식인은 두 갈래 부류로 나타났다. 저항과 타협의 길이었다. 저항자는 설 땅을 잃고 타협자는풍요가 따랐다. 고려무인정권 때도 그랬고 일제식민시대도그랬다. 그리고 비굴하게 타협하면서 무인정권과 식민통치를찬양한 세력이 시대의 주류가 되었다. 군사독재 시절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석헌 등 진짜 비판자는 도태되고 사이비들이 득세하여 사세를 키우고 영향력을증대시켰다. 전두환정권에서 이런 현상은 절정을 이루었다. 언론통제가 심해지자 함석헌은 제도언론인들에게 언론게릴라전을 제창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언론활동이 불가능한상황이기에 게릴라전술로 언론투쟁을 하자는 것이었다. 게릴라전은 정규군이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특수임무가 요구될때 전개된다. 신문사주와 간부들이 군사독재와 유착된 상태에서 언론의 정상적 기능(정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게릴라전을 제창했던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의 목마른 외침은 빈 산의 메아리에 그쳤다. 독재의 짓누름도 심했지만 그들이 던져준 이권과 고깃덩이도만만찮았다. 또 긴 세월 길들여진 보신주의 언론인들이 게릴라로 활동하기에는 너무 배부르고 비대해졌다. 특히 양심적 기자들이 자유언론의 횃불을 들었다가 쫓겨나면서부터 진짜 저항언론의 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함석헌은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직접 게릴라전에 나섰다. 함석헌은 사이비들처럼 사주의 지침이나 시세에 따라 아무권력이나 무조건 지지 또는 반대하는 따위의 언론인과는 격이 달랐다. 군사독재를 준엄하게 비판하다가도 통일문제는지극히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갈라진 이대로는 살 수 없고 산다고 해도 사람이 아닙니다. 남은 북을 믿고 북은 남을 믿고 일어섭시다.”(북한동포에게 보내는 편지) 30여년 전에 쓴 글이 지금 읽어도 감동을 준다. 참글은 이렇게 이념과 시공을 뛰어넘는다. 그 자신 진짜 언론인인 송건호씨는 함석헌을 타고난 언론인으로 평가한다. 신문기자나 논설위원의 경력은 없지만 타고난 언론인이란 두가지 논거를 들었다. 첫째,문장이 보통 언론인 이상으로 유려하고 평이하다. 언론인과 비언론인의 구분은 문장이 쉬운가 난삽한가라면 함선생의 문장은 간결하고 쉽다. 둘째,시대를 보는 눈이 예리하다. 나날의 시사문제에 날카롭다는 것이 아니라 시대 이면에 흐르는 사조를 꿰뚫는 눈이날카롭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함석헌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아는 용기있는 언론인이었고 용기의 원천은 역사의식이었다. 역사의식이 없는용기는 풍차에 칼질하는 만용이거나 멧돼지의 저돌성이다.타락한 언론의 저돌성이 ‘비판’의 이름으로 설치는 시대에함석헌의 참언론정신이 그립다. △김삼웅 주필 ki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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