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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 ‘어처구니’를 아십니까?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있다.이 말을 듣거나 되뇌다 보면 ‘멍텅구리’나 ‘뚱딴지’라는 단어가 덩달아 딸려오곤 한다.본디 바닷물고기 이름이었으나,못생긴 데다가 굼뜨기까지 해 판단력이 약하고 동작이 느린 사람을 지칭하는 멍텅구리.원래 돼지감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생김새나 성품이 엉뚱하고 우둔하며 무뚝뚝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뚱딴지.멍텅구리들이 모여 뚱딴지 경연대회를 벌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우습다. 한데 요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한다.이 사안에 입을 벌리고 어처구니없어 하다 보면 입 다물 틈도 없이 저 사건이 터지고,저 사건에 어이없어하며 휘둥그레지다 보면 또 다른 사고와 이슈와 대책과 조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곤 한다.어처구니없음의 연속이다. 학교만 없어지면 되겠네,라는 시니컬한 농담이 농담 같지 않은 이 사교육 공화국에서 아이들은 말도 배우기 전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원기계’가 되어간다.한치의 일탈도 허락지 않고 살아남아 간신히대학을 졸업한다 한들 막상 취업할 데가 없다.자고 나면 집값은 천만원씩이 오르고 급기야 1년 동안 2억원이 오르기도 했다.가까스로 취업이 되었다 한들 평균 연봉 3000만원으로 1년에 2억원이 오르는 이 부동산 공화국에서 정직한 아파트 한 채를 꿈꾼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매달 지출해야 하는,한 자녀당 최소한의 사교육비 50만원을 감당하기란 진땀나는 일이다. 그뿐인가.이혼율은 날마다 세계 최고를 경신하고 있고,우리의 가정은 바람과 스와핑과 원조교제에 시달리고 있다.명품과 조기유학으로 치장한 L(Luxury)-제너레이션 족이 있는가 하면 중고등학교 등록금도 못 내는 아이들이 있다.취업에 시달리는 2030대,사오정과 오륙도의 명퇴와 실직에 시달리는 4050대.우리 경제의 상당 부분은 이미 외국 자본에 발목 잡혀 있고,유례없는 실직에 취업난임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제조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전국 어디를 가나 먹자,자자,놀자판의 유흥업소들만이 휘황하다.국제 및 정치계의 현안은 새삼스럽지도 않으니 얘기도꺼내지 말자. 정신적,물질적 기반이 무서운 속도로 와해되고 있는 현재로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도,비전도 없어 보인다.멀쩡한 소시민들과 지식인들이,카드 빚과 연체이자에 시달리는 이유,이민박람회에 몰리는 이유,로또에 목숨 거는 이유,부동산 투기에 몰리는 이유,그리 쉽게 제 목숨과 가족의 목숨을 끊는 이유….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의 원인은 정작 우리에게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의 어처구니는 실제로 50㎝도 채 안 되는 맷돌의 윗돌에 달린 손잡이를 지칭한다.맷돌을 갈아야 되는데 맷돌의 상단 손잡이가 없을 때의 난처한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또한 사악하고 삿된 기운을 쫓기 위해 궁궐의 전각(殿閣)이나 문루의 기와지붕 위에 얹는 동물 모양의 토우(土偶)를 어처구니라고도 한다.그러니 대공사를 끝냈는데 마무리 작업으로 지붕에 토우를 올리지 않은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그 무엇이 빠졌을 때 우리는 어처구니없다고 한다.어처구니없는 작금이야말로정작 우리 사회를 맷돌처럼 돌릴 수 있는 손잡이로서의 어처구니,우리 사회의 위엄과 안전을 지켜줄 지킴이로서의 어처구니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분명 우리가 함부로 던져놓았거나 깜빡 잊고 있는 것들 중에 있을 것이다.그것이 양심이든,교양과 상식이든,정직이든,비전이든,리더십이든 말이다. 정 끝 별 시인 문학평론가
  • “군사정권과 맞선 시절이 가장 황홀”원로 인권변호사 이돈명 씨

    “요즘은 하루를 더 살면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 원로 인권변호사인 이돈명 변호사는 평생 가장 행복한 때를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박정희 정권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셈이지.내가 살아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걸 보니,사는 게 그저 즐거울 따름이야.” ●가슴 뜨거워 늘 행복했던 70∼80년대 반면 ‘가장 황홀했던 시절’은 70∼80년대라고 했다.의외였다.70년대 중반부터 시국·공안사건을 도맡으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그가 아닌가.오원춘 사건,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구로동맹파업사건 등 가시밭길 같은 시국을 헤쳤던 때였다.지난 86년 10월엔 수배중이던 재야인사 이부영씨(열린우리당 의원)를 숨겨줘 옥고를 치르기도 했지 않은가. 이 변호사의 ‘황홀’은 이렇다.“법정에 서서 군사정권의 잔혹함을 비판하며 겨레의 내일을 불 밝히던 시절이 아닌가.돈 한푼 못벌어도,몸은 힘들어도,가슴이 뜨거워 늘 행복했다네.”그가 걸어온 ‘황홀한 길’은 올해말 ‘이돈명 평전’에 담겨 출간될 예정이다. 전남 나주 출신인이 변호사는 1952년 정규학력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했다.10년간 판사로 재직했다.그러나 군사독재가 갈수록 포악해지자 법관의 역할에 회의가 들었다.법복을 벗고 방황했다.빚은 늘어만 가고 식솔들은 끼니를 걱정했다.“손수레도 드나들 수 없는 골목길 단칸방에서 배고파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나더군.” ‘먹고 살려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한평 남짓한 사무실에 다른 사람이 쓰다버린 책상이 고작이었지만,돈벌이는 엄청 잘됐다.판사 월급의 20배는 족히 벌었다.빚을 모두 갚고,서울 효자동에 98평짜리 집도 샀다.아담한 정원도 꾸며 평안하게 살아가나 싶었다. ●30년 곁눈질 안한 ‘유죄변호사’ 1975년.인생을 바꿔놓은 해가 찾아왔다.김지하 시인의 필화사건이 터졌다.침묵하던 지식인들은 명동성당에 모였다.유신헌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구국선언이 발표됐다.김대중 의원,함석헌 선생,윤보선 전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이 변호사도 강신옥·조준희 변호사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법률가는 법을 수호하는 사람들인데엉터리 헌법으로 국민들을 심판해야 되니,도저히 낯이 뜨거워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어.” 뒤늦게 뛰어든 인권변호사의 길이지만,이후 30년간 한번도 곁눈질하지 않았다.군사정권과 싸우며 얻은 별명은 ‘유죄변호사’.노동사건·학생운동사건 등 수백건의 시국사건을 맡았건만 집행유예나 무죄로 풀려난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다.시국사건이 변호사에겐 아쉬움으로,이 시대엔 아픔으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이 변호사는 세상에 잘못 알려진 사건으로 김재규 사건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꼽았다.10·26사건으로 법정에 선 김재규는 이 변호사 등에게 변론을 부탁했다.인권변호사들조차도 “박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유신을 옹호하던 김재규를 어떻게 옹호하느냐.”며 반대했다.김재규의 아내가 5여년 동안 남편이 쓴 붓글씨를 보여줬다.‘유신철폐’‘민주주의 만세’ 등 수백장이나 됐다.“김재규가 개인의 영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저격했다는 확신이 들더군.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김재규를 공작했다는 소문이 많았는데,사실이아니야.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민주주주의 꽃’은 마침내 피지 않았나.” 이 변호사는 해마다 경기도 용인의 한 공동묘지에 있는 김재규의 묘소를 찾고 있다. 1982년 3월 18일 부산지역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불을 질러 한 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정부는 대학생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방화를 일으켰다고 발표했다.“북한의 지령이라니 그건 터무니 없는 소리지.대학생들은 한국의 독재정치와 이를 방조하는 미국을 세계에 고발하고 싶었던 거야.” ‘쩌렁쩌렁’한 목소리나,힘주어 말할 때면 탁자를 ‘쿵쿵’ 내리치는 모습이 여든한해를 산 ‘노인’이란 사실을 의심케 했다.하지만 지난 98년에 발병한 심부전증도 여전하고,최근엔 전립선도 문제를 일으켜 투병중이라고 했다.3개월전엔 45년간 함께 했던 담배도 끊었다.35년간 살던 집도 정리,아들네로 옮겼다.서울을 떠나 요양하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받지만 ‘말벗’이 그리워 서울 하늘 아래 남았다.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주는 기성세대의 희생으로 자리잡게 됐다네.젊은이들이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고맙다는 얘길 듣겠다는 게 아니라,다시는 그같은 ‘오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야.” ●“다시 태어나면 신나게 놀아야지” 이 변호사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30분에 잠들 때까지 쉼없이 책과 신문을 읽고,후배들과 토론한다.92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에서 최근엔 송두율 교수 사건도 맡았던 탓에 후배들과 함께 고민했다.지난달 24일에는 함세웅 신부 등과 함께 재야 원로 모임을 갖고 “전투병 파병만큼은 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고마운 사람을 물었더니 올해로 여든인 부인 얘기를 꺼냈다.“수십년간 잔소리 한번없이 묵묵히 믿어준 사람이지.고맙고,존경스럽지.”아버지가 한 길을 가도록 도와준 자녀들(3남1녀)도 꼽았다. 다시 태어나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겠느냐고 질문하자 이 변호사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무슨 소리야.다시 태어나면 신나게 먹고 놀아야지.희생은 한 세대로 족하다네.자네도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분야에서 신명나게 즐기며 살아가게나.” 정은주기자 ejung@ ▲22년 전남 나주 출생 ▲54년 대전지법 판사 ▲63년 변호사 개업 ▲73년 서울변호사회 부회장 ▲78∼88년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사무국장·회장 ▲87년 국민운동중앙본부 의장 ▲88∼91년 조선대 총장 ▲2001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고문(현) ▲2001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현) ▲2002년 상지학원 이사장(현) ▲법무법인 덕수 대표(현)
  • 미카엘 가이어 주한독일대사 인터뷰/ “EU대표단 이달내 訪北”

    송두율 교수 사법처리,이라크 파병,북핵 6자 회담 등에 대해 독일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지난 7월 말 부임한 미카엘 가이어(Michael Geier·사진·59) 주한 독일 대사.아들(17)과 서울 도봉산에 올랐다가 “함께 먹자.”며 깎은 과일을 나눠주는 한국인들의 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그는 31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정부의 입장을 조심스레 밝혔다. 가이어 대사는 송 교수 문제와 관련,“독일 국적을 가진 송 교수가 국제법과 상식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면서 “그러나 현 단계에서 독일이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할 만한 점은 없다.”고 강조했다.강금실 법무장관을 만날 계획도 현단계에선 없다고 밝혔다. 그는 11월 중 계획된 유럽연합(EU) 대표단의 방북 계획도 소개했다.지난 1월 EU측이 하비에르 솔라나 대외정책 대표를 북한에 파견키로 결정했지만,북한측의 소극적 자세로 무산된 지 10개월 만에 열리는 북·EU간 접촉이다. 가이어 대사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지지·지원한다.”면서 “독일 정부는 평양에 주민들이자유롭게 출입하고,문화 예술 공연도 할 수 있는 문화관을 내년 봄 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다음은 일문 일답. 2차 6자 회담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독일과 유럽연합은 한반도 문제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현 EU 의장국인 이탈리아와 차기 의장국인 아일랜드,그리고 EU집행위 국장급으로 구성된 이른바 EU트로이카 대표단을 금명간 북한에 파견,6자 회담 지지 입장과 함께,북한 핵폐기 및 대북 지원 협상의 어느 단계에서 유럽연합이 경제적 지원을 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일정을 잡고 있으나 3∼4주 안에는 방북할 것으로 보인다.EU는 북한과의 관계,그리고 북한이 우려하는 안보 우려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도 표명한다. 독일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도 남·북한을 중심국가로 선정했고,내년 봄 평양에 문화관도 열 계획이다.북한 당국은 아무 제한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송 교수 문제와 관련,독일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 -사실 한국 정부가 송 교수에게 두고 있는 혐의사실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다.다만 송 교수가 독일 국민이기 때문에 국제 법과 국제적 상식에 맞는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아울러 송 교수 문제로 한·독 양국 관계가 저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말씀한 국제법 상식과 한국 법 규범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는데. -물론 조금 다른 점은 있겠지만,현재 우리가 정식으로 항의할 만한 점은 없다. 강금실 법무장관을 만날 것이란 보도가 있었는데. -현재 계획한 것은 없다.강 장관은 매우 훌륭한 분으로 감탄하고 있다.언젠가는 만나겠다.하지만 송 교수와 연관지어선 만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세력간 대립각은 분단 구조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는데 통일을 이룬 독일 지식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나는 외교관이고,외교관으로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답변이 ‘내정문제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독일과 미국의 갈등 양상이 드러났는데 파병에 대한 입장은 있나. -갈등이라고 하기엔 좀 과장된 측면이 있다.슈뢰더 독일 총리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의 안정과 평화 정착,경제 부흥에 애쓴다는데 의견을 모았다.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동 문제 해결이 우선이다.독일은 지난번 스페인 마드리드 이라크 재건 공여국 회의에서 EU를 통해 2억 유로 지원 방침을 밝혔지만 파병은 하지 않는다.이미 아프가니스탄과 발칸 반도에 독일 연방군이 많이 나가 있어 여력이 없다.아프간 활동에 대해선 미국이 굉장히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파병을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여력이 없어서인가.우리 사회의 파병·반파병 논란 기저에는 전쟁 명분론도 깔려 있다. -여력이 없다는 게 이유의 다가 아니다.이라크 전쟁 명분에 대해선 논란이 많고 독일 정부는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해 왔으며 이에는 변함이 없다.파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가진 어떤 사람,단체도 지지한다. 30년 외교관 생활 중 아시아 지역 근무는 처음인데. -한국에 대해선 사진으로만 봤다.부임전 교통체증 등 환경이 끔찍하다는 말을 들어 브라질의 상파울루 정도로 생각했다.그러나 산과 강이 푸른 환경친화적인 서울이 다른 어느 대도시보다 마음에든다.독일은 산업화를 한국보다 100년 전에 시작했고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한국도 이제 세계화 과정에서 잃어버리고 있는 게 많은 것 같다.농업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소중하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한국 생활 석달째,고향집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말말말˙˙˙

    상업적으로 유력한 해외 출판사가 우리 문학 번역서를 내야 한다.그래야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인지도가 높아지고,노벨문학상 수상의 기반이 될 수 있다.현지 비평계·지식인 사회 일시적 관심만으로는 시쳇말로 턱도 없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우리 출판도 해외시장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 [마당] 대학생들이여 책 좀 읽자

    중국 한나라 말기인 후한(後漢)시대가 있었다.환관의 전횡이 계속되고 지식인들은 정치·경제적 자립을 확보하지 못한 채,정권을 장악한 환관들의 무고를 당하여 두 차례에 걸쳐 수천 명씩 금고(禁錮)의 형을 받은 수난의 시기였다. 이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의 시기 중의 하나였고,위·촉·오의 삼국정립을 예고하는 분열의 조짐도 있었다. 후한의 헌제(獻帝)때 동우(董遇)라는 유학자 있었다.그는 이런 혼란한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달리 고전을 좋아하여 어느 곳을 가든지 항상 책을 곁에 끼고 다니면서 읽었다.그의 이러한 모습은 어느새 헌제의 귀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다.헌제 역시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므로 동우의 학자다운 면모에 반하여 그를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임명하고 경서(經書)를 가르치도록 했다. 동우의 명성이 서서히 알려지면서,세간에는 그의 밑으로 들어와 제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그러나 동우는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그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먼저 책을 백 번 읽어라.백 번 읽으면 그 의미를 저절로 알게 된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동우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볼멘소리를 했다.“책을 백 번이나 읽을 만한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자 동우가 말했다.“세 가지 여분을 갖고 해라.” “세 가지 여분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 여분이란 겨울,밤,비오는 때를 말한다.겨울은 한 해의 여분이고,밤은 한 날의 여분이며,비오는 때는 한 때의 여분이다.그러니 이 여분을 이용하여 독서에 정진하면 된다.” 지난날 우리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기본적인 고전은 어떻게 해서든 읽는 것이 필수였다.대체로 한자가 좀 많고 활자는 깨알 같고 누렇게 바랜 두툼한 책이 대부분이었고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읽는 것은 기본이었다.그런데 요즘 세태에선 수준있는 책을 읽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재미있고 쉬운 책만 읽으려 한다. 대학 입시준비에 찌들 대로 찌들어 중고교 시절을 보내고 나니 독서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시간이 비교적 많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몇몇 전공서적을 제외하면 도무지 책을 읽으려 들지않는다는 것이다.심지어 전국의 주요 대학 도서관의 도서대출 순위를 매겨보아도 대학생 수준의 지적 고뇌가 요구되는 고전(古典)보다는 실용서이거나 머리를 식히기 위한 심심풀이용 책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으니 대학생들의 지적 수준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하기야 요즘 웬만한 대학도 강의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대학생들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전공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에 별 반응도 없고,전공 관련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교수의 강의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담당 교수들은 힘겹게 강의를 하거나 강의 수준을 낮춰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심지어 전공 기본과목조차도 어렵다는 인식하에 폐강되는 일이 적지 않다. 대학생들이여,모두들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수준을 좀 높여 보자.한두번 읽어보고 책장에 꼽아두는 그런 책보다는 여러 번 읽어도 무엇인가 남는 그런 책,정녕 시공을 뛰어넘어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고전을 읽어보기로 하자. 김 원 중 건양대교수 중문과
  • 책 /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

    윈스턴 처칠은 혀 짧은 소리와 말더듬을 극복하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명연설로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다.‘20세기 최고의 연설가’인 그는 대조법을 즐겨 사용했다.“만약에 현재와 과거가 화합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미래를 상실한다.”거나 “패배에 응답하는 방법은 한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승리다.” 같은 말이 그 대표적인 예다.운율이야말로 최고의 화술 비법.처칠은 사회주의자들을 운율을 살려 이렇게 정의했다.“사회주의자들은 해괴한 숫자(decimals)와 복잡한 단어(polysyllables)를 과용하는 전문 지식인들(intellectuals)이다.” 그는 운율의 비결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제임스 C 흄스 지음,이채진 옮김,시아출판사 펴냄)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고 한 시대를 이끌었던 리더들의 화법의 비결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소개한다. 저자는 아이젠하워·닉슨 등 역대 미국 대통령 다섯 명의 연설문 작성에 참여했던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저자에 따르면 권위와 파워야말로 대중연설의 알파요 오메가다.위대한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권위와 힘이 깃든 대중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터득했다. 사람들이 흔히 암송하는 연설 중의 하나가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남부 도시 게티즈버그의 국립묘지에서 한 게티즈버그 연설이다.시인이자 전기작가인 칼 샌드버그는 이 연설을 ‘위대한 미국의 시’라고 불렀다.허스키한 목소리와 사투리를 고민하던 링컨은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말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국민의,국민에 의한,국민을 위한 정부”.기억에 남는 것은 이처럼 짤막한 말이다.링컨은 노예제 확대를 반대하며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듯이 주인도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링컨은 한낱 시골뜨기 취급을 당했지만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 됐다. 리더들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낸다.1986년 베를린회의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그는 어떤 외교적 수사도 애매모호한 관료적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다.레이건은 “고르바초프 서기장,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려 주시오.”라고 요구했다.새 역사를 준비하는 말을 해야 할 시점임을 간파하고 예상을 깨는 말로 상황을 장악한 것이다. 침묵은 때로 말보다 소리가 크다.리더들은 종종 의도적인 침묵을 이용한다.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침묵의 카리스마를 적절히 활용한 인물이다.그는 출정에 앞서 병사들을 모아놓고 처음 수십 초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는 방법을 택했다.그러면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병사들은 나폴레옹이 그때마다 거인처럼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탁월한 웅변가였던 히틀러 또한 전략적 침묵의 대가.당시 영상자료를 보면 히틀러가 베를린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을 앞에 두고 아무 말없이 콧수염과 이마를 매만지며 원고를 검토하는 장면이 나온다.그렇게 5분쯤 지나면 사람들은 히틀러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히틀러는 이때 속삭이듯 말한다.“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저자는,침묵은 종종 카리스마를 창조하고 신뢰감을 높여주는 ‘연설의 액자’ 구실을 한다고 강조한다.95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열린세상] 한 지식인의 고뇌

    우리 사회에는 나만이 옳다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모든 정치적 사회적 세력들은 자신들만이 ‘정의’의 편이고 자신들의 주장에 비판적인 사람들에 대해 ‘불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이는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배척해야 한다는 면에서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모든 사람들은 불완전하다.그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세력을 이루었기 때문에,모든 정치·사회세력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그들은 겸손하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반성해 나가야 한다.이것이 민주사회를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문화적 안전장치인 ‘관용성’인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다원화,분권화를 지속시켜 가면서,국정안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바로 그 사회내에서 ‘관용성’이란 문화적 기제가 제대로 작동되기 때문이다.관용성이란 문화가 바로 타협을 만들어 내는 재료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정치적 투쟁이 무한정 증폭되어 가고 있다.아직 우리 사회는 ‘관용성’보다는 ‘비타협성’을 존중한다.자신만이 옳다는 주장은 대화채널을 막아버린다.타협의 여지가 없는 주장들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은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국민 대다수는 사안에 따라 때로는 여당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며 때로는 야당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현재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야당지지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의 묘미이다.집권여당도 야당도 국민의 생각변화에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많은 국민들이 회색지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기제가 된다. 회색지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민생이 보장되는 가운데 자신들의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것이다.그들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고 개성도 다르다.그러나 기본적으로 정부나 정치가 민생보장에 실패하고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면 그들은 언제든지 돌아선다.이민이 급증하고,원정출산이 유행하는 현실은 회색지대사람들만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주지 못한 정치사회 엘리트들의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정치사회 엘리트들은 말로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다.그들의 행태를 보면 반민주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자신만이 옳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이는 독선적인 것이며 민주주의에 해가 된다. 지식인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는 반성한다.지식 사회 내에서 나는 나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해 오지는 않았는지? 학생들에게 나의 이론만을 강요해 오지는 않았는지? 이러한 것들이 학생들로 하여금 ‘관용성’보다는 ‘비타협적’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요즈음 시사토론을 보면 주로 찬반토론이 많다.찬성과 반대측 인사들이 각기 다른 견해를 표명할 뿐이다.그러고 나서 시청자들이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투표를 한다.공허하다.회색지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경우가 많다.왜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국민들은 민생과 그들의 행복추구를 위해 정치인들이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내어주길 기대한다.이를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서로 타협을 할 수 있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그 문화의 핵심이 바로 ‘관용성’인 것이다. 민주사회에서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설득해 낼 수 있을 때 정치적 힘을 갖게 된다.민주적 리더십의 본질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든지,배척한다든지,경멸하는 문화풍토는 그러한 리더십의 출현을 방해한다. 이제는 내 주장만을 펴지 말고 남의 주장을 잘 경청하자.서로 다른 주장이 모두를 위한 하나의 주장이 될 수 있도록 타협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나가자.요즈음 우리사회는 갈등만이 고조되어 가고 있다.그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 모두 ‘관용성’을 갖는 일이다. 이 남 영 숙명여대 교수 정치학
  • “시장개혁 3개년계획 연내 확정”/盧대통령 지식인포럼 연설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올해 말까지 시장개혁 3개년 계획을 확정해 대기업집단 관련 정책의 목표와 중장기 추진 일정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4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연설을 통해 “실력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시장에서 판가름나고,정도(正道)를 걷는 기업과 반칙을 일삼는 기업이 가려져 각각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경제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고자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은행 민영화를 조기에 마무리하고 그동안 미진했던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도 적극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하되,불공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법과 원칙을 적용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계제도를 개혁하고 증권분야 집단소송제도 제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과 관련,“외국인 임직원의 조세부담을 낮추고 임대료가 무상에 가까운 저렴한 입지를 공급해나갈 것”이라면서 “첨단산업 투자에 대해서는 현금지원도 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또 “투자상담부터 인·허가까지 전 과정을 한 명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지원하는 원스톱 서비스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곽태헌기자
  • [길섶에서] 白石의 회상

    이른 새벽 승용차 라디오에서 누군가가 백석(白石)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있었다.‘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처음 들어보는 시로 제목부터가 낯설었다.광복 전 창백한 한 지식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백석이 자야(子夜)라고 이름지은 한 여인을 그린 시이며,그 자야라는 여인은 우리도 잘 아는 법정 스님의 길상사와 깊은 인연이 있다는 소개가 이어졌다.‘가볍게 만나,쉽게 헤어지는 것이 요즈음 세태인데,시 속에 영원히 살아있으니 참 고운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의 변화는 사소한 것에도 우리를 감상에 젖게 한다.계절의 선물인가.그러나 자야는 세상을 버리고 백석을 쫓아가진 않았다.남과 북으로 헤어져 살다 생을 마쳤으니.시의 아름다움이 다가선 아침이었다. 양승현 논설위원
  • 이장희교수 이적성 무죄 확정

    대법원 2부(주심 裵淇源 대법관)는 12일 초등학생을 위한 통일교육 교재 ‘나는야 통일1세대’와 관련,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혐의로 기소된 한국외대 교수 이장희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97년 지식인 사회의 반체제적 분위기를 일소한다는 명분 속에 강행됐던 이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6년 만에 무리한 것으로 결론났다.
  • 노벨평화상 시린 에바디/이슬람 여권신장 25년 외길

    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시린 에바디(56)는 이슬람 사회에서 선구적인 인물로 꼽힌다.이란의 첫 여성 판사로 재직했으며 이후 작가·변호사·학자·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며 여성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반평생을 바쳤다.이같은 공로로 지난 2001년에 이미 노르웨이 ‘라프토 인권상’도 수상했다. ●여성 첫 판사로 임명…약자의 편에 에바디는 1974년 테헤란 법대를 졸업하고 1975년부터 약 5년간 테헤란 법원의 법원장을 지냈다.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판사에 임명돼 당시부터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활동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이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특히 이란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작가와 인권운동가로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다.이란 어린이인권후원협회 창립자이기도 한 에바디 여사는 94년 유엔아동기금(UNICEF)후원으로 ‘어린이 인권:이란 내 어린이 인권의 법적 양상에 관한 연구’를 출판했다. 또한 다른 변호사들이 꺼려하는 인권 관련 소송 변론을 도맡았다.대표적으로 1999년과 2000년도에 살해된 작가와 지식인들의 유가족을 대변했으며 1999년 이란 경찰이 테헤란 대학을 기습했던 테러사건의 배후를 밝혀냈다.또한 여성에게 불리한 이란 가족법의 개정을 이끌어 내는 등 여성 권익보장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이같은 활동으로 이란 사회 기득권층에게 반감을 산 에바디는 지난 2000년 7월 정부관료와 강경파들의 관계를 폭로하는 비디오테이프 파문에 연루돼 구속되는 등 수차례 투옥됐다.5년간 변호사자격정지 명령을 받기도 했던 그녀는 최근 여성운동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여성들이 남편의 허가없이는 사회활동은 물론 해외 여행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이란에서 에바디는 여성의 ‘대변인’으로 불리고 있다. ●이슬람과 서구의 중재자로 기대 전세계가 에바디 여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조국인 이란 정부에서는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이란 현지 언론들은 10일 현재까지 그녀의 수상 소식조차 보도하지 않고 있다. 에바디에 대해 서구사회는 “이슬람교도이면서도 사회문제 해결에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고 이슬람교와 민주주의의 조화를 추구한 지각있는 무슬림”으로 평가한다.그러나 강경론자들이 기득권을 잡고 있는 주류 이란 사회는 개혁을 요구하는 그녀를 사회혼란을 야기하는 문제인물로 경계하고 있는 듯하다.특히 이번 수상을 이란에 대한 서구의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국제적으로도 에바디 여사의 수상이 의외라는 반응도 많다.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하기 직전까지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이 유력한 후보자로 꼽혔다.특히 평화 전도사로 존경받은 83세의 교황이 수상자로 뽑히지 않은 데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이슬람사회와 서구사회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에바디가 선택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인권운동에 힘을 얻게 된 동시에 두 사회의 중재자로서 무거운 짐을 지게 됐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SK, 송교수 자금지원 부인

    올해 4월 독일의 한 신문이 “송두율 교수가 8년전부터 매년 남북 지식인 회의를 개최해 왔으며,송 교수는 SK그룹의 한 동창생으로부터 매년 15만달러씩을 회의 개최 자금으로 지원받고 있다.”고 보도했다고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10일 밝혔다. 그러나 SK측은 “사실무근이다.”고 부인했다.한 관계자는 “올초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해외학자공동학술대회에 스폰서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와전된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송 교수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적이 없으며,SK 경영진중에 송 교수의 동창생(서울대 철학과)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반박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송두율 파문 / ‘宋 옹호’ 강법무 손보나

    다음은 강금실 법무부 장관인가? 강 장관의 최근 발언에 대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까지 문제삼고 나서 ‘해임건의안’이 양당 공조로 추진되는 것은 아닌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 장관은 송두율 교수에 대해 “‘김철수’라도 처벌할 수 있을까.”라고 발언한 데 이어 “송 교수의 입국은 결과적으로 우리 체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국 자체를 ‘전향서’로 인식하듯 말해 처벌 면제를 거듭 시사했다. 이에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9일 “대통령과 장관 등 최고위직 인사들이 송 교수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있다.”면서 “엄정한 법집행이 사명인 법무장관은 좌파적 관점보다는 중도나 우파적 관점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비판했다.그러면서 “좌파 시각의 사람이 맡아야 할 자리와 우파 시각의 사람이 맡아야 할 자리는 따로 있는데 강 장관은 법무장관보다는 인권위원장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꼬집었다. 한때 강 장관에 ‘호감’을 보였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발끈하고 나섰다.전날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보도할수록 사건의 본질에서 멀어져 뭐가 뭔지 헷갈린다.”고 한 이창동 문화장관도 함께 겨냥해 최 대표는 “장관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헷갈리는 말을 하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일침을 놨다. 최 대표는 “말을 좀 자중하고 최소한 검찰 수사가 결론날 때까지 기다려야지,장관들이 자꾸 한 마디 두 마디씩 하면 국민이 나라를 어떻게 보겠느냐.”면서 “이 문제만은 사후에라도 따져야겠다.”고 강조해 검찰 조사가 끝난 후 ‘정부 내 입국 배후세력설’은 물론 장관들의 발언도 집중 추궁할 뜻을 내비쳤다. 이강두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이런 자세는 ‘국민 70% 이상이 송 교수의 처벌을 바란다.’는 요구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배용수 부대변인도 “사건의 본질은 좌파 지식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냐의 문제”라며 “국무위원의 송두율 감싸기 발언이 색깔론 시비를 불러오기 위한 도발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가세했다. 박정경기자 olive@
  • “시대상 무시한 ‘송두율 사냥’ 안돼”/EBS ‘똘레랑스‘ 진행 홍세화씨

    송두율 교수를 다룬 일련의 KBS TV 프로그램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이번에는 EBS TV가 같은 주제를 다룰 예정이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EBS는 14일 오후 10시50분 ‘똘레랑스-차이 혹은 다름’에서 송두율 교수 사례를 중심으로 한 ‘해외의 고립 지식인’을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이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진행자가 다름아닌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56)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기 때문.각종 기고와 저술 등을 통하여 진보적인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온 그는 망명에 가까운 20여년의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2002년 초 귀국했다는 점에서 송두율 교수와 ‘닮은꼴’ 인생이다. 기자와 만난 홍씨는 송 교수 문제와 관련,“그의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작금의 ‘마녀사냥’은 해외에 고립된 지식인에게 체제 선택을 강요하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무시한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규정했다. ‘똘레랑스-차이 혹은 다름’은 지난달 30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첫회 한총련 수배자 문제에 이어,지난 7일 두번째 방송에서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인공기를 불태운 것 등을 소재로 체제간 대립 문제를 다루었다.14일 3회는 당초 ‘비전향장기수’를 주제로 삼았으나,‘…고립지식인’으로 바꾸었다. 이쯤되면 홍 위원의 전력이나 KBS의 사례는 제쳐놓더라도 편향성 시비를 걱정할 법하다.실제로 기획단계에서부터 “우리도 KBS처럼 두들겨 맞는 것 아니냐.”“공영방송 EBS에는 걸맞지 않은 소재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내에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 위원은 “비판은 이미 각오했다.”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른 입장과 견해들을 드러내고,그 접점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라면서 “내 역할은 그것들을 소개·정리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우리사회에 부각시킨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그는 “나와 남의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로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는 뉘앙스가 들어간 ‘관용’과는 조금 다르다.”면서 “다름을 우월이나 적대감으로 몰아가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항체”라고 설명했다.그는 “폐쇄·편향된 사회에서 ‘똘레랑스’를 외치면서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방송에 나서는 자세를 피력했다. 홍씨는 “원래 방송 활동을 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서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공중파 방송으로 ‘갈등과 대립을 공존의 방식으로 모색해보겠다.’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는 만큼 손을 안 보탤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그는 단순한 진행자 역할만이 아니라 소재와 주제 선정,내용 구성 등 제작과정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범민련 前유럽간부 소환 방침/황장엽씨 제3장소서 이미 조사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친북 혐의 수사와 관련,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유럽본부 사무국장 C씨를 9일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8일 알려졌다. C씨는 부산 모 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해직된 뒤 지난 94년 미국을 거쳐 독일에 정착,유럽 범민련에 가입해 활동해 오다 지난 99년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C씨가 94년부터 유럽에서 친북활동을 해온 인사들의 자료를 관리해 왔던 인물인 만큼 송 교수의 친북 행위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중요한 참고인으로 보고 있다.특히 검찰은 C씨가 송 교수의 대북 접촉창구로 활동하다 지난 99년 1월 미국으로 망명한 김경필 전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서기관의 사업파트너였던 점을 중시하고 있다. 검찰은 C씨를 상대로 송 교수가 94년 7월 김일성 장례위원으로 참석할 당시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는 사실을 알고 입북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서울시내 모처에서 조사했다.송 교수는 10일 오전 10시에 재소환키로 했다. 검찰은 황씨를 상대로 김용순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로부터 송 교수가 노동당 후보위원 김철수라고 말을 들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황씨와 송 교수의 대질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검찰은 이날 세번째로 소환한 송 교수를 상대로 오씨의 입북을 권유했는지와 송씨가 저술한 ‘경계인의 사색’ 등 서적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했다. 한편 자유언론수호 국민포럼 등 시민단체는 이날 “송 교수를 해외민주 인사로 지칭해 국내로 초청하고,송 교수를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미화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민주인사들의 명예를 더럽혔다.”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강충식 구혜영기자 chungsik@
  • [임영숙 칼럼] ‘경계도시’의 ‘경계인’

    송두율 교수가 “어떤 처벌도 받겠지만 추방은 상상하기 싫다.”고 말했을 때 가슴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왔다.‘아무리 오래 살아도 유랑자와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해외 거주 지식인’이 고향땅에 뼈를 묻고자 하는 수구초심을 표현한 것으로 그 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었던 윤이상은 고향 통영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며 노후를 조용히 지내고 싶어했지만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윤이상이 타계하기 1년 전인 지난 94년 그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국내 첫 시도였던 윤이상 음악제가 열렸을 때 나는 “77세의 병든 노구로 고향땅을 밟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가로막아야 했던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문화부의 공연담당 기자로서 유럽음악계가 경탄하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에 대한 풍문을 계속 들으면서 그의 실체를 접할 수 없는 목마름을 나는 느꼈다. 그의 귀국을 추진한 국내 음악계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고 그 노력을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당시중앙정보부 요원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나는 윤이상 음악제에 달려갔고 금기시됐던 그 음악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부인과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절하는 송 교수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부인 정정희씨의 대한매일 인터뷰는 더욱 가슴 아팠다.입국 계기를 “제일 먼저는 아이들 때문이다.”고 밝힌 부인은 “아버지가 겪은 아픔을 두 아들이 고스란히 넘겨 받는 것 같다.”며 몇 차례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송 교수의 다른 언행은 이런 정서적인 접근을 무색하게 만든다.그가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수만달러를 북으로부터 받았고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확인됐다는 국정원의 조사결과가 밝혀진 후 가진 기자회견은 엉뚱했다.자신의 지난 과오를 진솔하게 털어 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대 국민 사과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기자회견은 마치도 ‘경계인’의 강의 같았다.송 교수 자신도 37년 만의 귀국에서 ‘문화 충격’을 느꼈다지만,양파 껍질 벗겨지듯그의 진실이 벗겨진 다음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과가 아닌 ‘어정쩡한 자기 합리화’ 같은 해명을 강의처럼 들어야 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실망했다.악의적인 색깔 공세 탓이든,진솔하게 과거 행적을 밝히지 않은 송 교수 자신의 탓이든,기자회견과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오랜 외국생활로 인한 그의 한국어 구사와 이해에 문제가 있었든 ‘지식인 송두율’은 거의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듯싶다. 송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의 홍형숙 감독은 “경계도시는 원래 동·서독 분단시절에 베를린의 별칭이지만 통독 이후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도시는 대한민국의 서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경계도시 시절 베를린처럼 지금 서울과 평양도 육로로 연결돼 1000여명이 한꺼번에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이 경계도시를 찾은 경계인은 그러나 동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미국의 다문화 커뮤니케이션 학자 홉스테드가 한국 문화를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라고 분석했을 정도니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 설자리는 이곳에 없는 것이다. 10년 전 윤이상의 귀국이 이루어졌다면 그가 지금처럼 온전히 내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을까.귀국조건으로 ‘서약서’라는 이름의 ‘반성문’을 쓰는 것을 거부했던 그가 만일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귀국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지식인 송두율’에게 실망했다 하더라도 ‘자연인 송두율’에게 연민을 가질 수는 없을까.처자식을 데리고 찾아온 이를 내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우리는 생떼 같은 목숨을 백십여명이나 죽인 KAL기 폭파범 김현희도 품에 안은 민족이 아닌가.부질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주필 ysi@
  • 책 /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1~6

    김월회 등 옮김 창비 펴냄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 6명의 지적 편력과 문선,대담 등을 모은 기획시리즈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김월회 등 옮김)이 창비에서 나왔다.‘제국의 눈’(천광싱 지음),‘아시아라는 사유공간’(쑨거 지음),‘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추이 즈위안 지음),‘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왕 후이 지음),‘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사카이 나오키 지음)‘여럿이며 하나인 아시아’(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등 모두 6권이다. 문화·매체이론을 전공한 천광싱(타이완 칭화대 교수)은 타이완 내부의 심각한 현안인 성적(省籍) 모순의 문제,즉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문제를 탈식민·탈냉전·탈제국화의 거시적 관점에서 다룬다.그는 타이완을 동북아의 변방이 아니라 동남아 중심으로 설정하려는 타이완 지식인사회의 시도를 ‘하위제국주의’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쑨거(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가 펼치는 동아시아담론의 핵심은 국가 단위의 경계를 강조하거나 그것을 간단히 부정하는 것은 모두 진정한 문제해결의 길이 아니라는 것.국민국가의 경계 안팎 모두를 고려하는 동아시아 단위의 사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추이 즈위안(미국 MIT 정치학과 교수)과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잡지인 ‘두수(讀書)’의 편집위원 왕 후이(중국 칭화대 교수)는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이들은 1990년대 이후 중국 지식인들의 현대화와 시장에 관한 유토피아적 사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사회주의 시장화’는 중국이 서구근대의 자본주의 논리에 일방적으로 편입돼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카이 나오키(미국 코넬대 교수)는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과 교섭이란 관점에서 국민주의의 함정을 살피며,야마무로 신이치(일본 교토대학 교수) 또한 ‘국민국가론’을 다룬다.신이치는 근대국가를 만든 주체인 국민이야말로 국가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국민주체’를 강조한다. 창비측은 “각국의 기존 동아시아론은 국가주의 강화의 도구로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자국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각국의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동아시아론을 꼼꼼히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기획취지를밝혔다.6만원. 김종면기자@
  • NGO /“시민포럼으로” “담론 전통 유지를” YMCA 시민논단 ‘진로’ 고민

    국내 시민사회 최초의 공개 토론프로그램인 ‘서울YMCA 시민논단’이 향후 진로를 놓고 시름에 잠겼다. Y시민논단은 1968년 처음 시작돼 35년간 이어져 왔으며 지난달 26일 400회를 맞았다. 시민논단은 그동안 ‘3선개헌’‘통일교는 기독교인가’‘민중과 지식인’‘뜻으로 본 해방40년’ 등 시대의 고비마다 핫이슈를 제기,논란을 불러일으켰다.이날 서울YMCA 친교실에서 ‘한국사회와 토론문화’를 주제로 열린 400회 기념 토론회에서 노종호 시민논단 전 위원장은 “시민논단을 시민이 기획하고 조직하고 진행할 수 있는 적극적 시민포럼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논단의 사회적 기여가 컸던 것은 인정하지만 시민 주도의 ‘시민포럼’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참석자들도 시민논단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예시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새로운 역할을 주문했다.다양한 정책적 대안제시를 통해 보다 NGO 중심적인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문호개방을 통해 지역공동체나 생활현장에서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등 변신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온라인 토론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하지만 시민논단의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은 “시민논단은 여론형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TV토론과는 달리 시민들의 담론을 형성해내는 시민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다.”면서 “의제발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제를 현실 속에서 다루고 해결해가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정두환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참여와 갈등해소를 위해서는 토론문화 확산이 기본”이라면서 “시민논단이 모범적 토론전형을 많이 창출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현 기조를 유지한 상태에서의 발전을 주장했다. 노주석기자
  • “자본주의 美주도 이데올로기에 좌우”슬라보예 지젝 교수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주변 강대국에 의해 고통받다가 숱한 희생과 자구노력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다는 점에서 슬로베니아와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고,그래서 양국의 교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한국철학회의 초청으로 방한중인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의 슬라보예 지젝(사진·54) 교수는 6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 연수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옛 것과 현대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는 한국은 미국보다는 유럽의 교외와 닮아 있으며 그런 점에서 슬로베니아와 유사한 점을 많이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젝 교수는 라캉과 헤겔철학을 접목해 마르크시즘의 현대적 계승에 천착해온 철학자. 90년대 서구세계에 ‘라캉 르네상스’를 일으키며 ‘동유럽의 기적’이란 별명을 얻었다.마르크시즘에 정통하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와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그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외견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20세기의 강압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젝 교수는 “특히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이데올로기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송두율 파문 / 박호성교수가 본 송두율

    송두율 교수의 오랜 지인으로 송 교수 가족의 귀국을 권했던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교수가 7일 발매되는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기고문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박 교수는 “1977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만난 송 교수는 28세에 세계적인 철학자 하버마스 밑에서 박사학위를 따낸 선망의 대상이었다.”면서 “직접 송 교수를 찾아가 곧 한가족처럼 어울리는 사이가 됐다.”고 밝혔다.그는 “송 교수는 외국인으로는 어려운 학문적 업적을 거뒀고 조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저항적 지식인’이었기에 ‘우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송 교수가 대중성이나 저돌적 담력이 결여돼 있어 투사나 운동가는 못 됐고 당시 독일 교민사회의 운동권 주류에서도 소외 당하는 눈치였다.”고 평가하고 “송 교수는 남북한을 공정하게 사랑했기에 그를 ‘한반도적 민족주의자’로 규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발표와 송 교수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 박 교수는 “37년 만에 돌아와 한국말 감각도 어눌해,엄청난 해석의 차이를 유발할 수 있는 미묘하고 까다로운 대공 수사용어에 대해 무슨 의미인지를 깊이 헤아리지도 못한 채 마구 내뱉은 말도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고 말했다.그는 “독일에는 공산당에 정식으로 가입한 교수도 부지기수니 입북시 일종의 ‘통과의례’로 노동당에 형식적으로 가입한 적이 있다는 희미한 기억만 있는 송 교수에게 미리 밝히지 않았다고 삿대질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인지 곱씹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송 교수를 냉전의 잔재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평가하면서 “민족과 조국의 일원으로 포옹해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적임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자.”고 주장했다.한편 박 교수는 6일 “송 교수는 투사도,운동가도 아닌 ‘나이브’한 학자”라면서 “정작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국정원장에 고영구 변호사가 임명되고,이종수씨가 KBS이사장에 오르는 등 한국이 민주화됐다고 생각해 입국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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