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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7 괴담과 베이징올림픽

    007 괴담과 베이징올림픽

    영국 비밀첩보부의 살인면허소지자 007 제임스 본드를 만들어낸 작가 이언 플레밍 탄생 100주년이 5월로 다가왔다. 또한 이달은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최초의 본격 007 영화 <닥터 노>가 미국서 개봉된 지 45주년이 되는 달이다. 티베트 폭동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8월에는 중국 베이징올림픽이 열릴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옛 소련·동구권을 붕괴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생중계된 한국의 발전상에 자극받아 민중이 “공산주의 때문에 서유럽은 몰라도 한국보다 더 못살게 됐다”는 분노를 느꼈다는 것이다. 주요 언론이 다룬 이 말이 실감나는 것은 바로 그 때 나 자신 해외를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올림픽 직후 경제 시찰단원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예컨대 산동성장과 요령성장이 베푸는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식사를 같이한 중국의 지식인들 입에서 한국에 대한 찬사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었다. 나는 이후 비즈니스로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러시아 등 구소련 권에 수십 차례 왕래를 하였으며 아예 1995년부터 5년간 이들 나라에 주재하면서 합작투자회사의 경영에 관여하는 CEO를 한 경험이 있다. 1997년 우크라이나 키에브에 대우지역본사 사장으로 한창 근무할 때에는 러시아계 마피아가 나를 습격할지 모르니 주의하라는 우리 대사관 정보담당 서기관의 주의를 받고 있었다. 마침 남아공에 주재하는 권 사장이 괴한이 쏜 흉탄에 맞아 목숨을 잃자 키에브 신문에 누군가가 이 기사를 크게 실었다. 나를 위협한 셈이었다. 나는 출퇴근길을 번갈아 바꿔가며 움직였고 항상 가스총을 호신용으로 차에 두고 다녔다. 대우자동차가 합작 투자한 ‘아우토자즈’사가 한국 승용차를 조립해 팔기 시작하면서 우크라이나 중고차수입 마피아들이 수입이 크게 줄면서 판매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러시아 킬러들의 원정 지원을 받아 얼마든지 보복하는 일을 꾸밀 수 있는 입장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시 나는 우크라이나의 쿠츠마 대통령 산하 경제개발전략회의에도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소련 시절 핵무기미사일제조 공장장 출신이었다. 나의 사업 파트너 중에는 소련 KGB출신도 몇몇 있었다. 당시 소련권의 기업가를 포함한 지식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흥미 있는 부분이 있었다. 소련의 붕괴에 007영화 시리즈가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는 한탄이었다. 왜냐하면 소련인들도 소련이라는 국가조직과 소련 첩보원을 악당시 하는 그 영화들을 비디오로 즐겼다는 것이다. 007시리즈는 속속 영화화되어 전 세계에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다녔다. 그 원천인 제임스본드를 처음 등장시킨 소설 《카지노 로얄》을 출간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하여 작가가 숨을 거두고 나서 2년 뒤인 1966년까지 14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해마다 한 권씩 007 시리즈를 소설로 출간하는 왕성한 작가활동을 하였다. 신문기자 경력은 있다 하지만 2차 대전 때 영국 해군 정보부장의 부관으로 근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소설가로 변신, 약 10년간 혼자서 14권의 방대하고 복잡한 007 추리소설들과 다른 3권의 책을 줄기차게 출판해냈다는 데 그의 괴력이 있다. 그 후에 자료를 보니 적어도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1965)는 작가가 사망한 후 다른 이가 써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1962년의 <닥터 노>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007영화 시리즈가 벌어들인 총 극장수입은 현재 시세로 111억 달러로서 한화로 치면 10조 원이 넘는다. 그밖에 비디오게임과 DVD, 유사소설의 홍수로 엄청난 부대수입을 올렸다. 007유사소설도 쏟아져 나와 그 수가 50편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007의 저주, ‘그가 찍으면 죽는다’ 제임스 본드의 적은 누구인가.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가 블로펠드라는 악당이다. 그는 스펙터라는 NGO(민간기구)의 책임자로서 테러와 살인, 복수, 고문 등을 자행한다. 독일인과 그리스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인물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에서 경제학, 철학, 공학을 전공한 인텔리로서 세계 슈퍼 파워를 이간질하여 야심을 성취하려 한다. 그는 6권의 본드 시리즈에 등장한다. 또 다른 악당이 닥터 노(노 박사)이다. 중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엔 공산 치하의 중국대륙 범죄조직 ‘통(堂)’의 재무부장이었다가 나중에 스펙터 테러조직의 간부가 된다. 소련의 정보부(KGB)나 소련 방첩부대인 스머시(SMERSH)와 협조하면서 영미의 정보조직에 대항하여 서방세계를 괴롭힌다. 소련 스머시의 멤버들도 직접 등장한다. 위장 간첩 골드핑거, 살인 여간첩 로자 클렙 대령, 부두교 교주를 겸한 악당 미스터 빅, 전쟁광 코스코브 장군, 남미의 마약조직 두목 산체즈, 매춘과 도박으로 007과 대결하는 르 시프르 등이다. 소련 KGB출신으로는 건당 백만 달러씩 받는 살인마 파코,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지진으로 붕괴시키려는 맥스 조린, 석유재벌의 상속녀와 미묘한 사랑에 빠지는 살인마 레너드 등. 제3의 부류로는 영국을 배신하고 소련으로 넘어간 알렉스, 중국과 영미의 전쟁을 유발하려는 언론 마피아 엘리엇 카버, 미소 간의 핵전쟁을 유도하려는 스트롬버그, 소련의 지원을 받아 핵미사일을 런던으로 겨냥하려는 휴고 드랙스, 마약 딜러이며 소련의 이중간첩인 CIA요원 크리스타토스, 소련의 전쟁광 올로브 장군과 짜고 서유럽에서 핵폭탄을 폭발시키려는 아프간 출신 카말 칸, 아프간의 아편 밀수에 관여하는 친 소련 무기상 브래드 휘타커, 석유 파이프라인 폭파 음모의 여주인공 엘렉트라, 특수 무기로 휴전선을 무력화시키고 남한을 정복하려는 북한군 문 대령 등이다. 모두 광범위한 국제적 배경을 가진 첩보전의 악역들인데 그들은 소련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 등 유라시아 대륙의 여러 나라와 도시, 동남아, 서인도의 자메이카, 이슬람 국가들, 나아가 북한 등을 거점으로 한다. 007영화 16편이 파상적으로 전 세계 극장가를 강타할 즈음 그 주술(呪術)이 통했음인가, 1990년 소련은 급기야 붕괴된다. 007의 무대로 아프간 소재가 뜨는가 하자 이번엔 아프간의 탈레반정권이 축출된다. 2008년 3월 6일 소련 KGB출신으로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며 악명을 날리던 세계 최대의 무기 밀매상 빅토르 부트(41세)가 태국에서 체포되었다. 이제 크게 보아 007의 주적(主敵)은 테러 NGO의 잔당이 일부 남아 있으나 대상국가로는 북한이 남은 셈이다. 과연 북한은 ‘007의 저주’를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궁금하다. 북한인들이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바깥세상을 어느 정도로 보고 어떤 자극을 받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올림픽 개막과 때맞춰 007 시리즈 제22탄인 <퀀텀 오브 솔러스>가 전 세계 극장가를 강타할 예정이다. 결국 모스크바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11년 만에, 서울올림픽 이후 3년 만에 소련은 15개 공화국으로 해체되었다. 이제 남은 건 중국이 그 숱한 내분을 이겨내며 민주화로 가느냐, 이념고수에 머무느냐, 그것이 가장 궁금한 일이 되고 있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의 저자 월간 <삶과꿈> 2008년 5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두뇌 한국 미래 이들의 어깨에

    두뇌 한국 미래 이들의 어깨에

    “인내하고 연구하면 두뇌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서울대 화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이현우(26)씨는 15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학술진흥재단의 ‘2008 BK21 영브레인(Young Brain)’ 15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혔다. 올해 첫 선정된 영브레인은 BK21 사업에 참여한 대학원생 가운데 전공 분야별로 평균 19대1의 경쟁률을 통과했다. 이씨는 백혈구의 일종인 호산구(好酸球, 기생충이나 병이 있을때 증가하는 백혈구)를 측정할 수 있는 형광화학센서를 개발해 미국 화학회지에 관련 논문이 실리고, 해외 연구진이나 교수들로부터 자료 요청을 받고 있다. 형광화학센서는 호산구 속에 있는 생체물질과 만나 형광색을 발산하기 때문에 이를 통해 호산구의 수치를 측정할 수 있다. 학계와 임상계는 “호산구와 관련된 질병인 ‘호산구 증가증’의 치료와 진단에 활용될 수 있으며, 연구성과가 축적되면 백혈병 관련 진료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씨는 “기초과학에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면서 “연구가 더 진전돼 특허를 내거나 기술이 실용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에 선정된 영브레인 15명 가운데 여성은 8명, 남성은 7명이다.5명은 최우수자로,10명은 우수자로 뽑혔다. 물리 분야의 서울대 심승보(28)·의학 분야의 충남대 양철수(26)·문학 분야의 고려대 이경숙(26·여)·재료공학 분야의 서울대 이기석(30)·생물 분야의 서울대 한진주(27·여)씨 등 5명이 최우수자로 선정돼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심씨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기화(同期化, 주기적인 운동을 하는 개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동일한 주기를 갖게 되는 현상)가 나노 세계에도 존재함을 관찰해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양씨는 폐결핵을 유발하는 병원성 결핵균에 감염된 대식세포(大食細胞, 면역정보를 전달하는 아메바 모양의 대형세포)에서의 신호전달 기작(메커니즘) 연구 등으로 최근 3년간 15편의 과학인용색인(SCI)논문을 발표했다. 최우수자 가운데 유일하게 인문계 출신인 이경숙씨는 ‘김수현 드라마의 수사학적 효과 산출 방식 연구’등 2편의 논문을 학술진흥재단 등재지에 게재하는 등 수사학과 연극학을 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우수자는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표창을 받았다. 기계공학 분야의 서울대 김필남(28·여)·생물 분야의 이화여대 박지혜(28·여)·사회학 분야의 고려대 송은영(25·여)·화공 분야의 카이스트 이승곤(28)·교육 분야의 서울대 이정아(32·여)·화학 분야의 서울대 이현우(25)·생명공학 분야의 서울대 전준현(29)·디자인 분야의 카이스트 정은빛(27·여)·외국어 분야의 고려대 정지수(29·여)·정보기술 분야의 연세대 홍진혁(28)씨 등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헌릉동 재단 대강당에서 표창장과 금메달을 받았다. 교과부는 젊은 지식인의 의욕을 높이기 위해 해마다 영브레인을 선정, 시상할 계획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자율주의운동 주창 伊 네그리 초청 추진

    자율주의운동 주창 伊 네그리 초청 추진

    지난달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75)의 일본 강연계획이 무산된 가운데 국내 학자들이 네그리의 한국 초청 강연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네그리는 전지구적 주권 개념과 노동의 재배치·재구성 문제를 놓고 세계 학계에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킨 ‘제국’의 공저자이자 자율주의운동(Autonomia, 아우토노미아)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네그리는 지난달 19일 일본에 입국해 이달 4일까지 도쿄대학 등 3개 대학에서 글로벌 시대의 노동문제와 지식인의 역할 등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었다. 줄곧 입국에 문제없다던 일본 외무성은 입국 이틀을 남겨 두고 과거 네그리의 ‘전력’(1978년 이탈리아 기민당 당수 알도 모로 암살사건에 연루돼 이듬해 4월 체포, 무죄판결 받았으나 국가전복죄로 기소)을 문제삼아 정치범이었음을 입증하는 서류 제출을 요구했고, 서류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네그리는 결국 방일을 포기했다. 네그리는 주최측에 보낸 이메일 편지에서 “최근 5년간 방문한 22개국 어디에서도 그 같은 서류를 요구받았던 적이 없다.”면서 “매우 실망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네그리 초청을 추진한 강상중 도쿄대 교수 등 19명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당국을 강하게 비판했고, 네그리와의 전화 질의응답 방식을 통해 계획했던 행사 대부분을 강행했다. 당초 네그리의 방한은 방일 일정에 맞춰 추진됐다. 국내 학자들 사이에서 일본 강연을 마친 네그리가 귀국 도중 한국을 경유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모아졌다. 네그리 전문가인 윤수종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일본측과 교섭을 진행했지만, 네그리의 방일 무산으로 초청 계획도 백지화됐다. 윤 교수는 “네그리는 생존 학자 가운데 가장 활발히 조명되는 인물로 한국 사회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책에도 많이 인용한다.”면서 “좋은 기회를 놓쳐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에도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가 네그리 초청을 추진한 바 있지만, 당시 사면 전이던 네그리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 대해선 여행이 금지돼 성사되지 못했다. 현재 논의 중인 네그리 방한 추진은 세 번째 시도인 셈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윤수종 교수, 조정환 도서출판 갈무리 대표 등이 주축이 돼 초청에 필요한 재정마련과 행사주체 결정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현재 몇 개 대학이 비용을 나눠 내고 공동주최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조정환 대표는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논의를 한 데 모아 초청 주체를 결정하면 초청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네그리의 학문적 동지이자 ‘제국’의 공저자인 미국 학자 마이클 하트와 함께 초청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햄릿의 매력은 다면성… 당대의 거울”

    “햄릿의 매력은 다면성… 당대의 거울”

    60년 넘게 셰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해온 원로 영문학자가 다시 ‘햄릿’에 주목했다. 국제교류진흥회 이사장인 여석기(86) 고려대 명예교수. 최근 펴낸 저서 ‘나의 햄릿 강의’(생각의나무)를 통해 여 교수는 영문학 전공 학생에서 일반 독자로 강의 대상을 넓혔다. 1일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만난 여 교수는 “햄릿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사, 캐릭터, 극 전개 등 상당히 수수께끼가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햄릿’은 16세기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영화나 연극으로 옮겨져 오고 있다.“속된 말로 얘기하면 참 맷집이 좋은 작가에 작품이야. 두들겨 팬다고….”(웃음) 이렇듯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전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작용하는 이유는 뭘까. 여 교수는 캐릭터의 다면성, 당대 지성인들의 자기 동일시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사색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낭만적인 햄릿상이 기존의 고정관념이라 할 수 있는데, 학자들은 계속 그걸 깨고 있습니다. 햄릿을 행동적·염세적으로 보는 거죠. 저는 그런 다면성이 햄릿의 매력이라고 봅니다. 또 18∼20세기 당대 지식인들은 햄릿에 늘 자신을 투영해 왔어요.2차대전 후 폴란드 학자 얀 코트는 ‘가장 우리 동시대적인 면모를 띠는 인물이 햄릿’이라고 했죠.19세기 러시아의 투르게네프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두 유형으로 나눴지요. 당시 러시아인들은 여러 억압 속에서 우리는 햄릿 같은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햄릿은 당대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지요.” 여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영미권 밖에서 더 자유롭게 ‘칼질’이 이뤄진다고 지적한다. 문화권의 영향도 크다. 그러나 지금껏 국내의 셰익스피어 작품은 ‘자기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다는 게 여 교수의 주장이다. “‘햄릿’은 1922년 처음 번역돼 나왔고, 신극으로 공연된 것은 1951년입니다. 그때도 단순히 서양의 고전이라고 해서 올린 거지,‘자기 것’으로 소화해 올렸다고는 할 수 없지요.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 서양문학의 영향을 받으며 신극운동을 해왔지만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헨리크 입센, 안톤 체호프 같은 작가로부터 출발했지요. 서양문화의 세례를 셰익스피어에게서 받은 흔적은 없어요.” 여 교수는 1965년 극작가들을 위한 극작워크숍을 처음 개설했다.1970년부터 10년간 사재를 털어 계간지 ‘연극평론’을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여석기 연극평론가상도 올해로 11회를 넘겼다.“비평가는 남을 납득시켜야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비평가는 바람직하지 못하지요. 자신의 주장이 있으면, 내가 왜 이런 입장을 취하느냐는 알맹이를 보여 주는 게 중요해요.” 신극 100년을 바라보는 소감을 묻자 여 교수는 “현장에서 떠난 지 오래”라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들려줄 말은 많은 듯했다. 노학자는 국가를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국립극장의 권위를 확고히 세우는 일과 해외에서 인정받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연출가들의 노력을 주문했다. 글 사진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日요미우리 “뉴라이트 교과서, 일제 찬미”

    日요미우리 “뉴라이트 교과서, 일제 찬미”

    “한국 교과서가 일제시대를 찬미하고 있다.” 유미우리신문이 최근 한국의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출간한 역사책 ‘대안 교과서’에 대해 “일제시대를 인정하는 교과서”라고 29일 지면과 30일 영문 인터넷판을 통해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의 새로운 교과서가 일제시대를 찬미하고 있다.’(New S. Korean textbook lauds aspects of Japanese rule)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에서 출간된 역사 교과서는 일제시대에 대한 반감을 선전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그러나 이 새 교과서는 당시 근대화에 필요한 능력을 일본에게 배우는 시기였음을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또 신문은 대안 교과서가 일본에 의해 철도와 도로 등이 개발된 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전하면서 “일본의 지배가 한반도의 자유 시장경제를 가져왔다.”는 교과서의 내용을 인용했다. 이어 “이 교과서는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포함된 ‘뉴라이트’라는 집단에서 만든 것”이라며 지식인들이 만든 교과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요미우리신문은 한국의 일부 언론이 이 대안 교과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인용해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요미우리 영문판 인터넷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탄 민주주의 첫걸음 ‘성공적’

    부탄 민주주의 첫걸음 ‘성공적’

    24일 치러진 부탄 총선에서 ‘평민의 당’이 ‘귀족당’을 누르는 이변이 연출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출신의 유학파 지그미 틴리가 이끄는 부탄통일당(DPT)이 예상을 깨고 왕실 외척인 상가이 응게덥이 이끄는 국민민주당(PDP)에 압승을 거뒀다. ●“DPT, 총 47석중 44석 차지” 지난 1월 선거로 상원(25석)을 구성한 데 이어 이번에 하원(47석) 선거로 ‘은둔의 왕국’ 부탄은 100년 동안의 절대왕정을 완전히 접고 입헌 군주제 민주주의 국가로서 첫 걸음마를 시작하게 됐다. 25일 BBC는 부탄 선거관리위원회 쿤장 왕디를 인용해 “DPT가 총47개 하원 의석 가운데 44개 의석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탄리는 부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왕정시절 두 차례 총리와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총선 압승으로 세번째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팔덴 체링 DPT 대변인은 “깜짝 놀랄 만한 결과”라면서 “국민이 우리에게 보여준 지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기뻐했다.DPT 후보 가운데 한명인 우엔 티셔링은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이번 승리는 당이 아닌 국가의 승리”라고 진단했다. 반면 예상과는 반대로 참패한 PDP 총수인 응게덥은 일가에서 4명의 왕비를 배출한 귀족이다. 그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역구에서도 탈락해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부탄 전문가들은 “탄리가 서민층과 지식인층의 표심을 사로잡은 것이 압승 원인”이라고 풀이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총선은 부탄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있어 또하나의 전향적인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투표 참관인인 일본의 다키오 야마다도 “부탄 국민들의 위대한 성공”이라고 말했다. 히말리아의 작은 나라인 부탄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전 국왕이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기로 결정한 이후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추진해 왔다. 피플파워에 의해 국왕이 축출된 이웃나라인 네팔과 달리 부탄은 국왕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소리없는 정치혁명’을 이룬 것이다. ●現 국왕은 국가원수 영향력 유지할 듯 전세계 독신 지도자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배우자 5걸에 드는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28) 현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부탄 국민들은 급속한 변화를 염려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한편 부탄은 1인당 GDP 1400달러의 가난한 나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국민들의 마음이 넉넉해 지난해 영국 레스터대가 조사한 ‘세계 행복지수’에서 8위에 올랐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사설] ‘뉴라이트 교과서’ 출간을 보는 눈

    뉴라이트 계열의 지식인들로 구성된 ‘교과서 포럼’이 그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등학교에서 정식 채택한 교과서가 아니다. 지금의 역사 교과서가 올바르지 않다며 그를 대체할 목적으로 우리 사회에 하나의 대안을 던진 것이다. 집필을 주도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의 60년사를 역사적 모순이 증폭된 과정으로 서술하는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의 대안이라는 것은 역사 상식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기존 역사학계에서 식민지화를 부추긴 것으로 평가하는 김옥균 등 갑신정변 주역들을 근대화의 선각자라고 뒤집는가 하면 동학농민혁명도 농민봉기로 격하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는 “폭력적 억압체제”라고 전제하면서도 근대문명의 학습기라고 과감히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다 보니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포럼 측의 실증주의에 입각한 역사의 재해석 시도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값지다. 그러나 시안 단계에서 4·19를 ‘학생운동’이라고 했던 시각에서 엿볼 수 있듯 그들이 비판하는 좌편향의 극단에 자리하는 우편향 소지도 있다. 나아가 “식민지배가 한국에 도움이 됐다.”는 일본 극우 논리나 “박정희 정권 때문에 이만큼 살게 됐다.”는 식의 변질된 주장으로 연결될 우려도 있다. 학계는 대안 교과서를 무시하지 말고 포럼 측의 주장을 따지는 학문적 검증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곳곳에 우편향 역사인식… 논란 불가피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기존 역사서를 ‘좌파적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교과서포럼’은 23일 기존 역사 서술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이 곳곳에 보이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ㆍ현대사’(기파랑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등에 대하여 일본에 의존한 경거망동으로 식민지화 위기만 불러일으켰다는 기존의 역사 서술과는 달리 청나라에 대한 조공과 문벌폐지 등을 시도했다는 점을 들어 근대화를 추구했던 선각자로 적극평가를 요구했다. 반면 ‘동학란’ 당시 농민군이 요구했다는 탐관오리 처벌 등의 폐정개혁안은 1940년 출간된 ‘역사소설 동학사’에 수록된 내용일 뿐으로, 실제 봉기는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하여 서민 경제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성격이 강했다고 언급했다. ●“동학은 혁명아니라 복고운동에 불과” 또 일제 지배체제인 1910∼1945년은 ‘일제 강점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로 ‘정치적 차별과 억압을 동반한 야만의 정치체제’였지만, 일제의 지배는 총칼로 한국인의 재산을 빼앗는 전근대적 폭력적 수탈이 아니라 근대적 재산제도와 시장경제의 원리에 준하는 것이었다고 서술했다. 앞서 ‘대안교과서’ 편찬은 시작단계에서부터 반발에 부딪혔다.‘교과서포럼’이 2006년 11월30일 학술심포지엄을 열었으나,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4·19 관련단체 회원들이 몰려들면서 폭력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4·19는 민주혁명,5·16은 쿠데타로 정리했다.10월유신은 정변으로 박정희의 비타협적 귄위주의의 정점이었으며, 정통성에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2·12는 하극상,5·18은 민주화운동으로 서술했다.6·25는 남침전쟁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세습왕조나 다름없는 체제이고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정치집단이라고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 4·3사건은 좌익무장 반란” 역사용어의 선택도 파격적이어서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켰고, 여순사건과 제주 4·3사건은 ‘좌파세력의 무장반란’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후쇼사 교과서의 한국판”이라면서 “이들의 주장은 한국 근현대사를 오로지 경제시장주의와 반공주의로만 설명하려는 것으로 과거 조선총독부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 책의 필진으로는 이영훈 교수를 비롯하여 김재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등 12명이 참여했다. 서동철 이문영기자 dcsuh@seoul.co.kr
  • 유럽의회,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논의

    지난 10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티베트(시짱·西藏) 독립시위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위를 무력진압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국제사회 압박 강화 독일은 22일(이하 현지시간) 중국에 티베트 사태의 진상을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은 이날 독일 일간 빌트지에 “중국이 선별된 TV 화면만을 내보내는 것은 진상을 왜곡하는 눈속임이며 외국 언론의 취재를 막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스-게르트 푀터링 유럽의회 의장도 이날 독일 주간지 빌트 암 존타크에 “중국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지 않는다면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이 정당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의회는 다음주 브뤼셀에서 티베트사태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모임을 가질 예정이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의회의 정치그룹들은 중국의 강경진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EU 지도자들에게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할 것을 권유하거나 올림픽 경기 자체를 불참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의회 소식통은 전했다. 더불어 티베트사태에 그동안 침묵을 지켰던 중국 지식인들이 정부의 대응 방식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반체제 작가인 류샤오보(劉曉波) 등 30명은 이날 외국 웹사이트에 올린 공개성명에서 “중국 관영 언론의 일방적인 선전공세는 민족간 증오를 부채질하고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국가통일에도 나쁜 영향만 끼친다.”고 주장했다. 중국정부는 23일 중국내 동조시위를 벌였던 지역이 통제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고 AP가 전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의 동조 시위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中 지식인들 정부 정면비판 22일 제네바 유엔 유럽본부에서 중국의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려 유엔 인권 이사회 등 국제 인권기구들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앞서 스위스 거주 티베트인들을 중심으로 로잔과 취리히에서도 항의 집회가 있었다. 한편 중국은 이날 세계 100여개국이 티베트 사태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 지지를 표시했다고 주장했다. 쿠바 정부도 “티베트사태는 외부세력이 조장한 것”이라며 “중국 국내 문제에 간섭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반대한다.”며 중국 입장을 두둔했다.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 지음

    프로이트, 루카치, 비트겐슈타인, 슘페터, 말러, 브로흐, 볼츠만, 부버, 후설, 만하임, 클림트, 곰브리치, 쇤베르크…. 전 세계가 기억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기억할 사상가이자 예술가인 이 이름들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모두 오스트리아가 낳은 거목들이란 점이다. 이들의 사상과 예술이 무르익은 시간적 공간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역사학과 교수였던 윌리엄 존스턴은 세계적 지성들이 한데 어울렸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혼기에 주목했다.‘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변학수 등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1848년에서 1918년 사이 오스트리아의 지식인들이 그토록 거대한 정신적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어떻게 사회와 유기적으로 교류했는지를 짚었다. ●프로이트 등 오스트리아 지성 70여명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근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조가 몰락하면서 대제국은 극도의 혼란을 맞았다.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가 왕위를 포기하자 제국은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등 모두 6개 민족국가로 분열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수도 빈을 포함해 700만 인구를 거느린 오스트리아의 사정은 가장 열악했다. 호프부르크 궁전의 비품들은 식량과 바꿔치기되는 신세가 됐고, 수백년 세를 떨쳤던 쇤브룬 성은 고아원으로 전락했다.1921년 몰아친 혹한으로 이듬해 빈대학은 문을 닫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조피아와 화가 에곤 실레 등 수천명이 죽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과 사상적 가치들은 독일의 아류쯤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사상과 예술이 대접받는다는 건 당시 형편으로는 사치였다. 시대정황을 정밀묘사한 책은, 그럼에도 그 시점의 오스트리아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홀대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세기말, 오스트리아라는 이름의 ‘정신적 대륙’을 누빈 거목들은 세계 지성사에 결정적 자양이 됐기 때문이다.730여쪽의 방대한 저술 속에서 호명된 오스트리아 지성들은 줄잡아 70여명. 사회민주주의자 빅토르 아들러, 오토 바우어, 막스 아들러, 법률가이자 정치학자 요제프 슘페터, 안톤 멩거, 한스 켈젠이 있다. 음악 장르를 확장시킨 브루크너, 볼프, 말러, 쇤베르크를 비롯해 화가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에 이르기까지 예술사에 새 이정표를 세운 명단도 화려하다. ●세계 역사·문학·예술 등서 족적 남겨 세기말 혼란기를 살았던 거목들의 족적 자체를 상세히 추적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의 목표지점은 일관되게 하나다. 그들의 정신적 허기와 지적 위기를 버티게 해준 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적이다. 예컨대 당시 빈에서 야유와 모함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당시 프로이트의 사회적 좌표를 되돌아보는 것은 기본이고, 그의 제자들과 반대론자들에 관한 에세이 두 편을 실어 그의 학자적 삶이 시대와 어떻게 유기적 호흡을 시도했으며 또 불화했는지를 되짚는다. 빈을 떠나 보헤미아 지역과 부다페스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프로이트의 면모를 새롭게 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연구에 천착한 지은이의 학문적 깊이 덕분에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된 사실도 적지 않다. 하이데거의 스승이자 오늘날 프랑스어권에서 집중연구되고 있는 에드문트 후설. 보헤미아의 정신권에 뿌리를 대고 빈과 그라츠로 지평을 확장해 간 일련의 재조명 작업 등은 깊이 있는 사상사를 기다려온 독자라면 반색할 만하다. 유럽을 넘어 세계의 문화·사상사 전반을 끝점없이 활강하는 지적 편력, 그 사유의 깊이에 번번이 발목이 잠긴다.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잊혀진 한 시대의 정신사적 성과들을 새삼 확인하는 의미는 선명하다. 저자는 물었다.“온고지신(溫故知新)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적 삶은 얼마나 공허하며 얼마나 황량한 것이겠는가?” 2만 8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동아시아론은 확대된 민족주의”

    “동아시아론은 확대된 민족주의”

    ‘동아시아론’은 민족주의의 변종?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역사학자로 일국적 국사(國史)의 해체를 주창해온 임지현(50)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이번엔 동아시아론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족주의 극복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진 동아시아론조차 민족주의의 지역적 확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7일 ‘밑으로부터의 세계화:트랜스내셔널리즘의 이론과 실천’이란 주제로 한양대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논쟁적 주장을 펼친다. 학술대회는 임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주최한다. ●한·중·일 미래개척 이론 및 전략으로 제시 현재 동아시아론은 만개 상태다. 국내는 물론 해외 학계에서도 동아시아론은 한중일 3국의 오늘을 해석하고 내일을 개척하는 이론 및 전략으로 제시돼 왔다.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동아시아론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중반이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구축하기 위해 동아시아론을 활용하는 경향이 강했던 반면, 한국은 동구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새로운 대안 이념을 갈구하던 비판적 지식집단이 주로 동아시아에 주목했다.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과 연계해 동아시아의 평화 확보와 서구 근대 극복을 추구하는 계간 ‘창작과비평’ 그룹의 진보담론, 동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성공 원인을 유교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찾는 유교자본주의론, 유·불·선과 한자문화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동아시아를 상정하고 서구 중심의 사유 극복을 강조하는 탈근대담론 등이 모두 동아시아론으로 표현됐다. 이들은 서로의 이론에 각주를 붙이며 상호 비판과 검증작업을 거쳐왔지만, 동아시아론이 민족주의 극복을 지향한다는 전제만큼은 크게 의심받지 않았다. 반면 임 교수는 ‘동아시아론=민족주의 극복 담론’이란 전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특정 동아시아론이 아닌 동아시아란 틀거리로 사고되는 담론 전반을 겨냥한다. 임 교수는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민족주의적 갈등구조를 넘어서려는 담론적 시도로써 동아시아론은 오히려 국민국가의 확대된 외연으로서의 동아시아를 본질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타국가 배제, 3국의 이해관계만 반영 한중일로만 동아시아를 상정하고 타이완이나 필리핀 등 여타 국가를 배제하는 전략은 3국의 국가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확대된 민족주의’일 뿐이란 것이다. 동아시아론자들에게 동아시아는 ‘한중일을 하나의 벨트로 묶은 실체’이나 임 교수에게 동아시아는 ‘한중일 3국으로만 가정한 상상의 구성체’일 뿐이다. 임 교수는 “크고 작은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동아시아에서 동아시아론이 한중일의 평화공존에 기여할 것이란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면서도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지역을 억지로 하나의 관념으로 묶으려 할 경우 유럽의 패권국들이 하나의 유럽을 설정한 뒤 터키 등 이슬람 유럽을 비유럽으로 배제해온 행태를 반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회현상을 국민국가 경계 내에서만 바라보는 패러다임 극복 이론인 트랜스내셔널리즘(초국가주의)을 통해 미국과 유럽 중심의 패권적 세계화 논리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기획됐다. 영국 리즈대 동아시아센터 연구원 알리사 존스는 ‘트랜스내셔널리즘과 동아시에서의 (탈)근대 시민 만들기’란 논문에서 국민국가 경계를 벗어난 국제적·초국가적 민족주의 개념과 이를 강화해온 대중교육체계 사이의 관계를 밝힌다. 데니스 갤번 미국 오리건대 교수는 ‘서아프리카에서의 트랜스내셔널리즘과 후기식민지’란 논문에서 인종적·문화적·역사적 공동체의 일상을 재구성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의 트랜스내셔널리즘 연구와 후기식민주의적 상황 사이의 긴장 구조를 탐구한다. 또 윤성호 한양대 교수의 논문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의 안과 밖’은 미국 중심의 패권적 국가주의의 비판자 역할을 해온 아시안-아메리칸 연구가 환태평양적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은밀히 아시아를 타자화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기고]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는 어디 갔나/김형근 과학저술가

    [기고]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는 어디 갔나/김형근 과학저술가

    과학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과학기술인은 사회의 중요한 엘리트이자 지식인이다. 우리의 미래를 이끄는 리더다. 연구나 교육에 종사하는, 그야말로 순수 과학기술인의 수는 100만명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전공으로 살아가는 종사자는 어림잡아 500만명에 이른다. 넓은 의미에서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을 과학기술인으로 꼽는다면 이보다 훨씬 불어나 엄청난 수치가 될 것이다. 작년 11월1일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홍릉 KIST 본관 존슨강당에는 과학기술계를 주도하는 리더들이 다 모였다. 그들은 과학입국을 부르짖으면서 과학기술의 자존심을 지켜준 고 박정희 대통령을 그렸다. 강당에 들어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기립 박수로 환영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후보 과학기술정책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밖에 없다고 강조하는 이 후보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그야말로 이제야 비로소 과학기술이 뭔지,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지도자를 만났다는 엄청난 희망에 부풀었다.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을 위해 상당한 대우와 투자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 과학기술인을 위한 제2의 박정희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가 과학기술계 내에 울려 퍼졌다. 과학기술계의 배려인지, 아니면 한나라당의 전략인지는 모른다. 거기에는 천재소년 송유근도 참석했다. 그리고 중요한 질문자의 한 사람이었다. 어떤 질문이었는지 잘 모른다.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내용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후보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쨌든 과학기술계가 상당한 기대에 부풀었던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 인수위가 정부 부처의 통폐합을 단행하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비로소 과학기술계 리더들은 그들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열렬하게 보냈던 찬사가 결과적으로 헛된 기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현정부와 줄다리기 싸움을 하면서 과학기술부는 논의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여성부, 통일부, 그리고 물론 결국 폐지된 해양수산부는 상당한 쟁점이 됐다. 그러면 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과학기술부의 존폐는 논쟁의 대상조차 안 됐을까? 과학기술인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다.500만명, 그리고 그들은 사회의 가장 엘리트들이며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다. 과학기술부는 통폐합이 된 것이 아니다. 폐지된 것이고 없어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1967년 과학기술처로 출발한 과학기술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장관이 부총리 급으로 격상됐다. 과학기술인들의 욕심이 과도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은 지금보다 더한 대접을 기대했다가 낭패 본 것은 아닐까? 상당수의 엘리트가 포진해 있는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어떤 강력한 목소리를 낸 것일까? 또 냈다 해도 그 목소리를 여론에 호소할 정도로 강력하게 밀어붙였을까? 과학기술부가 없어지는 것을 보는 과학기술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과학저술가로 활동하는 필자의 마음도 아쉽다. 과학과 기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엘리트로 인정받고 있는 과학기술인들은 직업인이기에 앞서 학자다. 학자적 양심과 분노를 표출할 줄 알아야 한다. 자존심과 거룩한 분노 속에서 과학기술의 미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늘 아쉬워하는 훌륭한 후배들도 나온다. 결코 병약한 인텔리로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 김형근 과학저술가
  • [신경림 누항나들이]‘잃어버린 10년’은 없다

    [신경림 누항나들이]‘잃어버린 10년’은 없다

    지난 1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나라 이집트를 다녀왔다.1981년에 집권한 무바라크가 28년째 계엄 통치하고 있는 나라이지만,50년대 나세르가 쿠데타로 집권했을 때만 해도 가장 희망이 있는 신생국으로 주목 받았던 터이다.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희망 없는 나라로 지목했던 같은 신문에 나세르가 혁명 10년을 맞이하여 ‘새 이집트를 위한 나의 포부’라는 논문을 기고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 기억을 아직도 나는 가지고 있다. 그 논문에서 그는,“우리가 해야 했던 가장 본질적인 과업은…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일하는 자유, 먹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으며, 토지를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가족을 보호하며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있게 국가가 조정하는 것은 바로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를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때가 바로 5·16 쿠데타 직후여서인지 5·16이 곧 나세르의 쿠데타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설이 무성했으며, 나세르를 뒤따르는 것만이 성공의 길이라는 주장도 많았다. 한데 지금 그 나라 형편은 어떠한가. 무바라크의 다섯번째 임기가 끝나는 2011년에는 그 아들이 그 자리를 계승할 것이라고 한다. 인구 8500만명에 경찰이 100만명, 땅은 우리의 열배며 자원도 풍부하지만, 관광 외에는 산업다운 산업이 없다. 민주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나세르가 강조한 ‘개인의 존엄성과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 웬만한 길목이면 다 낡은 총을 멘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으며, 우연히 만난 지식인들은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크게 꺼린다. 정부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곧 추방이나 죽음을 의미하는 만큼 반정부 시위 따위는 생각도 못한다. 관광지에는 무장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차를 타고 조금만 멀리 가는 여정이면 으레 경찰이 동승한다. 대통령도 국민을 믿지 못해 한번 거동하면 3000명의 경비원이 따른다고 한다. 경찰이 관광지에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셔터를 눌러준 다음 엄지와 검지를 비벼 돈 세는 시늉을 하면서 “원 달러”를 되뇌는 풍경은 이제 슬픈 풍속도다. 국민의 하위 10%는 하루 1달러로 연명하고, 상위 10%가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기쁘게 생각했지만, 문득 24∼25년전 우리 모습이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숙연해졌다. 물론 우리는 적어도 1달러로 생활하지는 않았으며 외국인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원 달러”를 구걸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름 아래 존칭을 생략했다고 하여 몇년씩 감옥을 살고 정부가 하는 일을 반대하다가 맞아 죽기도 하는 모습은 예사로 있었던 일들이다. 그런 체제가 계속되었더라면 정부가 앞장서 이끌어 가까스로 일어서고 있던 우리 경제도 그쯤에서 주저앉고 말았으리라. 국민의 힘의 동원 없이는 제대로 된 경제성장은 절대로 불가능했을 터이다. 이제는 대통령이고 정부고 마구 욕하고 비판해도 좋은 세상이 되었다. 이 민주화가 경제성장의 뒷받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것이 저절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들 잊고 있는 것 같다. 이만큼 되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갇히고 다치고 죽었으며, 그 끝마무리 점에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립은 그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두 정권의 오만과 편견, 아마추어리즘과 경박함이 국민의 외면을 자초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다져놓은 10년을 고집스럽게 ‘잃어버린 10년’으로 격하하려는 시도 또한, 신생국 중 가장 성공한 예로 드는 우리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매도하는 청맹과니 시각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신경림 시인
  • [열린세상] 대학 졸업식에서 느끼는 서글픔/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대학 졸업식에서 느끼는 서글픔/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매년 2월은 대학 졸업식이 열리는 시즌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교수들은 졸업식 참석을 두려워한다. 졸업생들이 은사님들을 모시고 베풀어 주는 사은회 모임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의 대상이다. 졸업을 축하하기엔 현실이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다. 졸업생의 반 정도는 졸업식 날까지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교문을 나서게 된다는 현실을 교수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이 당면하고 있는 보편적 상황일 것이다. 전국의 도서관, 독서실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 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이전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취업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고도 쉽사리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요즘과 같은 물질적 풍요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대학에서 낭만과 멋도 만끽하고 파티며 미팅이며 놀고 즐기는 대학문화도 존재했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지식인의 사명감을 갖고 항의도 하고 격렬한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예전의 대학생들은 취업 걱정 없이 학문을 탐구하고 대학문화를 즐기는 동시에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공유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 선택된 엘리트 집단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예전의 대학생에게 졸업은 사회인으로서의 힘찬 새 출발을 의미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대학생에게 졸업은 황량한 경쟁만이 도사리는 인간 시장으로의 방출을 의미하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대학 졸업생의 취업난은 더욱 가중되어 누적된 청년 실업자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이 다가오면 각종 자격시험, 고시와 공무원시험, 입사시험 등 좁은 관문을 뚫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험공부에 매달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휴학을 하고 취업준비의 시간을 벌거나 무작정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 수는 더욱 많아졌다. 대학에 입학한 후, 군 입대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정상적으로 4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은 이제 그다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압축 고도성장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들은 비록 현실은 가난하고 척박했어도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자신만만한 비전을 설계하며 대학생활을 구가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생들은 물질적으로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중압감 때문인지 왠지 분주하고 쫓기는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예전보다 훨씬 학업에도 열심일 뿐 아니라 외국어나 IT기술 등 각종 재능 면에서 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재가 적지 않다. 국제적으로 보아도 우리의 대학생들이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뒤진다고 말할 수 없다. 이웃나라 일본만 해도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 상황은 한국과는 딴판이다. 일본은 1990년대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은 탓인지 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과열 경쟁을 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생이 한국보다 우수해서라기보다는 일본사회가 우리보다 충분한 일자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는 재학 중에 일찌감치 취업을 확정짓고 여유 있게 사회 진출을 준비하며 대학의 남은 생활을 즐기는 졸업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업 시즌이 되면 어깨가 축 늘어진 우리 졸업생들을 보며 죄스러움과 자책에 빠지게 되는 것은 대학에서 근무하는 필자에 한정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새 정부의 출범을 맞아 하루빨리 경제 활력을 되찾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우리 대학생들이 꿈과 비전을 가지고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기성세대가 풀어가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학술플러스] ‘조선시대 한국인의’ 日서 발간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국내 학술서적 번역·출판 지원사업의 첫 성과로 하우봉 전북대 인문학부 교수의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본인식’을 일본 현지에서 발간했다. 이 책은 조선 초기부터 개항기까지 각 당파별 대일의식의 차이와 함께 일본을 직접 왕래한 통신사와 수신사, 재야 지식인들의 대일관 등을 보여준다. 재단은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고통의 역사’, 허수열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의 ‘개발 없는 개발’,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일본군성노예제’ 등도 연내 일본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 김성이 후보자 5共 ‘정화사업’ 유공 표창받아

    김성이 후보자 5共 ‘정화사업’ 유공 표창받아

    논문 중복 게재 및 공금유용 의혹 등을 받는 김성이(62·이화여대 교수)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80년대 초반 정부와 유관단체의 지원을 받아 학생·노동운동과 ‘사회정화운동’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룬 보고서를 집필해 물의를 빚고 있다. 보고서들은 당시 학생운동을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규정하고, 정치인·공무원·지식인 등이 관 주도의 범국민운동에 참여할 것을 기술했다. 김 후보자는 1982년 봄 발표한 보고서가 개념설정 및 정책제안에 기여한 공로로 그해 12월 ‘정화사업 유공’ 대통령표창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학생운동은 사회병리현상´ 논문 발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장복심(통합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성심여대 부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1년부터 2년간 학생·노동운동 관련 논문 3편을 발표했다. 특히 1981년 7월 게재한 ‘대학생의 서클활동과 현실참여 태도와의 관계규명’은 문교부 정책연구지원비를 받은 일종의 학생운동 분석 보고서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대학생의 사회참여 태도 수정을 위해 대학 서클 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론에서 “격심한 사회변동이 ‘사회적 병리현상’을 일으켰다.”면서 “혼란 속에 갈등을 갖게 된 대학생들은 개인적 욕구불만과 좌절감이 심화돼 집단적으로 대학당국, 사회, 정부에 과격한 비판행동을 드러낸다.”고 기술했다. 또 “남학생은 군대 미필자가, 여학생은 다수 서클에 참여할수록 현실참여 태도가 적극적”이라고 못박았다. ●김후보측 “공직 청렴도 지표 개발 공로” 장 의원실측은 “당시 김 후보자의 다른 논문 2편은 노동운동과 정화운동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전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이듬해인 1982년 12월 부정부패척결 등과 관련된 조사보고서로 대통령표창(0056711)을 받아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대사회’에 ‘3대 부정적 심리실태에 관한 조사연구’를 게재해 사회교육을 통한 부패척결 등을 주장했다. 현대사회는 신군부가 사회정화운동 추진을 위해 사회정화위원회와 함께 설립한 ‘현대사회연구소’의 기관지였다. 서울신문이 이 논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논문에서 김 후보자는 기업인·지식인·노동자 등에게 행한 인위적 ‘사회교육’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특히 결론에선 “정치인·공무원·언론인 등이 솔선수범해야 하고, 지역유Z지와 단체책임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측은 “1979년 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순수한 학자의 관점에서 학생운동을 연구해보려 했다.”면서 “현대사회연구소 보고서의 경우, 젊은 학자들이 부패의식·인플레이션·무질서 등의 해소를 위해 광범위한 연구의 틀을 제시해 표창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문화마당] 다시 세워야 할 숭례문의 의미/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문화마당] 다시 세워야 할 숭례문의 의미/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타 사라졌다는 것은 지금 이곳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정치적 책임 공방이 제기되었고, 행정부처간 책임 공방으로 이어졌다. 뒤이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관점이 덧붙여졌다. 전통 복원에 대한 의지와 아예 새로운 숭례문을 짓자는 논의로 발전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 모두의 탓이오로 결론이 나는 듯하다. 추모제까지 열렸다. 이제 언젠가 숭례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한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악몽은 극복되는 것인가. ‘숭례문 논란’과 관련, 숭례문이 불탔는데 왜 대한민국이 망합니까? 라는 당돌한 물음을 제기한 네티즌의 냉정한 시각이 오히려 현실성을 획득할지도 모른다. 숭례문이 불타고 지금 갖가지 논란이 일고 있지만 어느새 이 모든 논의는 잠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한 시대의 악몽, 혹은 정서적 공황은 일시적 충격으로 작용하고 망각의 시간 속에 묻혀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진 600년전 건축물 숭례문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600년전 우리민족의 문명의 증거라면, 우리는 단순한 건축물을 잃은 것이 아니라 600년전 문명의 귀중한 증거물을 잃은 셈이다. 문명이 문화의 구체적 표현양식이라면 우리는 또한 600년전 우리의 문화를 잃은 것이다. 우리가 숭례문의 소실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단순한 문화재의 소실보다 우리 민족의 존재감을 증명하던 한 의식의 상징물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의식의 상징물을 잃었다고 대한민국이 망합니까? 라는 질문을 계속 한다면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영어를 통용어로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국어가 없어지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영어가 통용어로 사용되면서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영어적 사유로 전환될 것이고, 말의 리듬과 생체리듬·생활방식까지 전이될 것이다. 급기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한민족이 사라집니까. 물론 아니다. 국가가 망했다고 민족은 사라지지 않음을 일제 36년 식민치하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을 사라지지 않게 한 노력은 국가를 다시 회생시키려는 독립지사들의 의지와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춘원 이광수의 뼈아픈 고백- “나는 조국이 그렇게 빨리 해방될 줄 몰랐다. 나는 민족의 장래를 위해 친일했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가가 사라져도 민족은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친일을 했다는 친일 지식인들의 논리야말로 대한민국은 망해도 한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국가가 사라져도 민족은 영원한가. 일본과 분명히 다른 독자적 민족성과 언어권을 지닌 유구국은 국가를 상실하면서 일본의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었다. 지금 오키나와 시민들은 일본과 다른 민족이며 독자적 삶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애써 주장할 수 있는가. 한때 원·청 제국을 건설했던 만주 기마민족은 지금 중국의 국민으로 변방 소수민족에 불과한 입장에 처해 있다. 숙신 말갈 같은 그들의 독자적 국가와 민족의 이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중국 국민으로 편입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라진 숭례문에 대해 당황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한민족 의식의 문제 때문이다. 나는 숭례문은 반드시 가능한 한 옛 건축양식에 의거해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 지은 숭례문 내에 무너지고 불타 사라진 악몽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전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 숭례문 사진뿐만 아니라 2008년 2월 불타 흉물로 남은 숭례문 모습을 그대로 전시해 한 문명이 어떻게 역사적 굴곡을 넘으며 존재하고 있는가를 생생히 증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건강한 삶의 의식 아닐까. 이윤택 동국대 연극학과 교수
  • [정부조직개편 협상 난항] 李·孫 ‘양보없는 氣싸움’

    “국민이 알아 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이게 정치를 하자는 것이냐.”(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정부조직개편안을 둘러싸고 이명박 당선인과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강(强) 대 강(强)’ 대치를 보이고 있다.4월 총선을 앞두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16일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국정운용 워크숍’에서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여러 모습이 국민에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초이스를 준다고 생각한다.”면서 “야당을 비난하고 누구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이 당선인은 “오늘의 어려움을 탓할 필요가 없다. 국민은 다 알고 있다.”고도 했다. 조직개편 논란 속에 각료도 임명하지 못하고 새 정부를 띄워야 하는 현 정국상황의 책임을 민주당이 져야 한다고 압박하면서 총선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손 대표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양당 원내대표가 물밑 접촉을 통해 접점을 찾았는데도 이를 이 당선인이 뒤엎었다면서 “이게 야당을 대하는 신정부의 태도냐.”고 비판하고는 보란 듯이 부산으로 내려가 해양수산부 존치를 주장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는 16일 오후 부산 영주동 코모도호텔에서 ‘해양수산부 폐지를 반대하는 지식인 포럼’에 참석했다. 한때 해수부 폐지 반대 궐기대회에 참석하려다 간담회 참석으로 일정을 바꾼 것을 두고 손 대표의 자세가 누그러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으나 이날 손 대표의 발언은 이같은 분석을 무색하게 했다. 손 대표는 “해수부 존속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서 “굳은 인식을 갖고 꼭 지켜내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정부조직개편안 협상이 결렬될 경우 자신들이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당선인의 일련의 행보와 발언들에 비춰볼 때 더이상 타협점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차피 점접을 찾을 수 없다면 집권 초기부터 ‘약한 야당’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수부 존치 주장에는 텃밭인 호남에서 존치 여론이 높은 만큼 ‘집토끼’ 단속에도 효과가 있다는 생각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여성가족부를 먼저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폐지되더라도 여성계와 여론의 뭇매를 한나라당에 떠넘길 수도 있다. 최근 두 사람의 대치에는 개인적인 앙금도 자리잡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때 한나라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 당선인과 손 대표는 각각 선거법 위반에 따른 피선거권 박탈과 경기도지사 선거 실패 등으로 미국 워싱턴에 머물면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함께 ‘오리알 3인방’으로 함께 어울렸다. 하지만 이 당선인과 손 대표는 한나라당 경선레이스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이 당선인이 탈당 조짐을 보이던 손 대표에게 “안에 있어도 시베리아지만 나가도 추울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이후 손 대표는 이 당선인의 ‘시베리아 발언’이 앙금으로 남았는지 손 대표는 탈당 후 자신의 정치환경을 ‘시베리아’에 곧잘 비유했다. 나길회 김지훈기자 kkirina@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정조가 묻는다 “지금 어디로 가냐”고

    [내 책을 말한다] 정조가 묻는다 “지금 어디로 가냐”고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 열한 살의 어린 세손(世孫)은 할아버지에게,“아비를 살려 주옵소서.”라고 빌었다. 이때만 해도 세손은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이 없었다면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전율한다. 세손이 없었다면 영조는 ‘삼종(三宗:효종·현종·숙종)의 혈맥(血脈)’인 사도세자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모친이 그 사건에 가담한 이유도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도세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한중록’은 사도세자가 “(영조가) 세손은 귀하게 여기니 세손이 있는데 내가 없어도 관계할까?”라고 말하고, 혜경궁 홍씨에게 “자네는 세손 데리고 오래 살려 하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사도세자가 부친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들의 운명을 받아들여 좁은 뒤주 속에서 여드레 동안이나 신음하다 숨을 거둔 순간 비극은 정조의 운명이 되었다. 그러나 영조가 사도세자를 애도하며 쓴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라는 ‘금등지사(金之詞)’를 보고 할아버지 영조도 저주받은 신탁의 주인공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수많은 방해를 무릅쓰고 즉위한 정조는 과거로 돌아가는 대신 미래를 선택했다. 모친 윤씨와 장씨를 비명에 잃었던 연산군과 경종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과거로 돌아가는 길은 실패한 국왕의 길이기 때문이다. 즉위 일성으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포한 정조는 그릇된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로 나아갔다. 대리청정하는 저군(儲君)을 뒤주에 넣어 죽인 증오의 정치,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택군(擇君)의 정치, 노론(老論) 일당의 전제(專制) 정치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갔던 것이다. 그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는 그 도상에서 정조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의 이야기다. ‘정조 시대를 읽는 18가지 시선’이란 부제는 열여덟 가지의 다양한 시선으로 그 시대를 조망했다는 뜻이다. 정조의 즉위를 방해하는 노론, 정조를 암살하려고 존현각 지붕 위로 침입한 자객들, 정조의 이복동생을 죽이라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정순왕후, 송시열의 후손 송덕상을 추대하려는 무리들, 그리고 미래를 가장해 과거로 돌아가려는 흑두봉조하 홍국영 같은 사람들과 실랑이하며 정조는 미래로 나아갔다. 이가환·이승훈, 정약용 형제처럼 열린 지식인들, 최고의 학자였으나 서얼이란 이유로 소외 당하던 이덕무·박제가·유득공 같은 서얼들, 그리고 신분제에 신음하던 백성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그 길 끝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조가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래서 정조와 그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길로 가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 연구소장
  •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말년은 대개 순응의 시간이다. 지난 시간의 불협화음과 화해하고 얼마 남지 않는 시간과 타협하는 때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비판적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에게 말년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평생 ‘이방인의 정체성’으로 살아온 그의 ‘부정의 정신’은 나이를 먹어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 탈식민주의의 선봉에서 서구의 지배적 담론에 맞섰던 그에게 말년은 결코 순응의 시간이 아니었다. ●예술가 말년의 작품과 사상 탐구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장호연 옮김, 마티 펴냄)는 백혈병과 싸우던 말년의 사이드가 여러 예술가들의 ‘말년’ 삶의 태도를 분석한 책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인생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작품과 사상이 어떤 양식을 띠는지 사이드는 세밀하게 탐구한다. 책은 2003년 9월 아침 눈을 감기까지 그가 써온 원고들을 지인이 묶어 낸 유고작이다. 사이드는 자신이 선택한 예술가들에게서 세간의 일반적 평가와는 다른 특성을 뽑아낸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말년의 오페라는 그간 모더니즘 사조를 역행한 음악적 퇴보의 예로 꼽혀 왔지만, 사이드는 그에게 독일 나치의 야만성으로부터 18세기 조성음악을 지켜낸 수호자의 위상을 부여한다. 프랑스 소설가 장 주네에겐 각별한 연대감을 표한다. 서구 지식인의 이중성을 비판하며 논쟁을 몰고 다녔던 주네에게 정체성이란 그에게 붙은 이단아로서의 딱지였고, 결연히 반대해야 할 상징투쟁의 대상이었다. 알제리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애정을 표한 주네를 사이드는 늙지 않는 비타협과 맹렬한 반율법주의의 실현자로 파악한다. 사이드가 예술가들의 말년에서 뽑아낸 공통의 양식은 시대와 끊임없이 불화하는 전복의 정신이다. 조화·화해·포용·관용으로 정의되는 노년의 외피를 걷어낸, 균열과 모순을 과감히 드러내는 저항적 태도다. 저간의 성취를 통해 누리는 달콤한 명예가 아니라, 풀리지 않는 모순을 끌어안고 곱씹어 대는 입안의 가시다. ●기존 질서로부터의 일탈, ‘자발적 망명´ 사이드는 이를 ‘자발적 망명’이라 부른다. 자발적 망명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에서 이탈하는 것”이고,“기존의 사회 질서와 교감하기를 과감히 포기한 채 모순적이고 소외된 관계를 새롭게 맺는 것”이다. 사이드는 “말년의 양식에는 노화를 두고 보지 않고 계속 거리두기와 망명과 시대착오의 감각을 고집하려는 긴장이 본질적으로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소외된 걸작’도 자발적 망명을 통해서만 태어난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이탈리아 작가 람페두사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그리스 시인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와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이 예술가들을 바라보는 사이드의 시각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보낸 말년의 공통점은 결국 ‘가장 원숙해진 청년정신´ 혹은 ‘절대 다듬어지지 않는 청년정신´이다. 책은 출판사의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첫 번째 권으로 기획됐다.1만 5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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