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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버스 하천 추락/1명 사망·13명 다쳐/대림동 대림천서

    13일 하오 10시5분쯤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 780 현대아파트앞 대림천 도로에서 도림동에서 신도림역으로 가던 도림운수 소속 25인승 마을버스(운전사·김태현·59)가 가드레일을 들이 받은뒤 대림천 4m아래로 추락,승객 14명 가운데 김미성씨(26·여·영등포구 신길동 278)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최영아씨(22·여)등 13명이 중상을 입었다. 숨진 김씨는 명지성모병원 영안실에 안치됐으며 나머지 승객 13명은 고대 구로병원 1명,명지성모병원 6명,강남성모병원 4명,대림성모병원 2명등으로 분산돼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 미·중 관계의 험로/폴 브래켄·미예일대 정치학 교수(지구촌 칼럼)

    ◎인권·「하나의 중국」 문제가 양국미래 걸림돌/중 지식인들 공산주의 혐오… 새 지도층 바라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지난 89년의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의 상태에서 막 벗어나고 있었다.그러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은 양국관계를 다시 악화시켰다.그런 가운데 중국당국은 미국 국적의 반체제 인사를 체포·구금했다.최근에는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한 미국 대통령부인 힐러리 클린턴여사의 인권에 관한 발언을 중국이 비난했다. 이같은 양국관계의 악화는 양측 정부의 임시적인 상호비방 자제로 당분간 수그러질 수 있을 것이다.언뜻 사태의 조기 수습에 성공한 듯 싶으나 실제 양국 관계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난 72년 상해 코뮤니케에서 최초로 명문화한 「하나의 중국」이라는 미·중관계의 포괄적 기본틀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요인의 핵심을 제대로 포착한 것같지 않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이 원칙은 「두개의 중국」 원칙따위와 바꿔지지는 않을 것이다.그렇지만 「하나의 중국」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 지를 정확히 재어보려는 노력은 계속될터이다. 지난 25년간 유효했던 원칙들이 이제는 더 이상 미·중관계의 핵심을 붙잡지 못한다는 주장을 많은 사람들이 선뜻 용납하지 못한다.정교한 외형 덕분에 이 원칙의 실제적 효용가치에 대한 의문은 뒤늦게야 제기되고 있다.대만이 중국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중국과 대만정부는 모두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미국의 정책이 과연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옛소련에 대한 공동 적개심으로 중국정부와의 관계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면서 동시에 대만과의 관계회복을 전적으로 포기케 하지 않았다.상해코뮤니케와 관련해 미국은 중국및 유럽과의 동시전쟁이라는 시나리오에서 단일 유럽전쟁으로 전술개념을 바꿨다. 그러나 소련의 종말로 미국은 또다시 정책을 바꿨다.경제 이득이 보다 더 중요해졌고 중국시장에의 접근은 지난 70년대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의미를 띄웠다.미국의 군사작전은 이 지역에서 기존 세력관계의 유지에 보다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이런 새 정책방향은 과거의 틀에 제대로 반영됐다고 볼수 없지만 앞으로 많은 주장과 참고자료의 근본을 이룰 것이 틀림없다.지난 72년 하나의 중국원칙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에서 거둘수 있는 전략적 이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해 중국 국민들의 의사와 관련지어볼 때 중국공산당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중국공산당은 그동안 맺은 약속등이 임시적이고 전술적이며 중국인민의 견해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만큼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으로 인해 찬탈자적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됐다. 이같은 역사해석을 바탕으로 미·중관계를 보면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 뻔하다.이는 미국과 중국이 과거에 극력 피하고자 애쓴 바로 그 사태이다.그럼에도 이 사태를 피하기엔 많은 중대한 조건이 가로놓여 있다. 첫째 대만이 중국인들에겐 처음인 민주적 정부시스템이란 사실이 중국인들을 압박해 온다.중국의 제한된 인권상황과 국제관행 존중의 얕음이 이와 대비할 때 보다 확연해진다.둘째 간과되기 쉽지만 학생및 기술 지성인으로 미국에 남아있는 10만명 가까운 중국인의존재는 아주 의미가 깊다. 미국정부에겐 이들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고 있지만 기술및 사업을 중국에서 유도·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이들의 대다수는 지난 89년 이후에도 미국에 남아있기를 원하면서 미국 최고의 대학 학생 신분이다.인류 역사상 이같이 많은 한나라의 인재가 다른 나라에서 교육받은 예는 없었다. 중국에 이미 정착한 기술 엘리트와 함께 이들 지성파들은 중국공산당은 물론이고 앞으로 중국지도부를 떠맡을 중국공산당간부의 자녀들에게도 심각한 위협을 줄 것이다. 이 두 그룹은 모두 공산주의에 냉소적이다.그러나 서방에서 교육받은 이들과 중국공산당지도자의 자제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전자는 현재 상대방에 비해 약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들은 연줄이나 출생등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력과 능력에 의해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다.다음 세대의 국가경영에 대한 두 그룹간의 알력과 경쟁은 사회적 지위와 계층등에 연관되어 있어 한층 격렬해질 수 밖에 없다.여기에서 하나의 중국이 눈길을 끌고 있지만 지금의중국공산당이 아닌 다른 정치세력에 의한 새로운 지도층의 대두가 강조된다. 대만과 정치세력 밖의 중국지성인들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중국 인권문제를 문제삼을 필요성을 느낀다.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견제가 아니라 정부을 바꾸는 편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중국이 서양에서 교육받은 엘리트와 대만 자본주의자에 의해 영도되는 미래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잘 먹히겠지만 중국공산당은 결코 그러한 국가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여기에서 지금의 중국정부가 미국의 움직임에 크나큰 신경을 쏟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자(사설)

    오는 97년에 우리나라에서 펼칠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서 활약할 자원봉사자를 서울신문사는 대회본부와 함께 모집한다.우리는 이미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세계의 칭찬속에 치러낸 경험이 있으므로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인 U대회를 치르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자원봉사자 또한 충분한 참여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U대회가 비록 규모는 작다고 하나 전문성이 요구되고 계절이나 스포츠종목 개최장소에 따른 차이도 있다.또한 이대회는 대학이 주축을 이루는 지성적인 제전이다.그러므로 자원봉사 기능도 다르다. 외국어능력도 다양하고 상당한 수준의 것이 요구된다.본대회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를 찾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심는 민간외교의 현실적인 역할을 할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들이기도 하다.우리에게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문화와 정신적 능력이 알려질수 있고 세계화된 한국인의 가능성이 전파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원봉사란 외국인과 외국어로 대화나 하며 이국적사귐이나 하는 겉보기에 「근사한 일」만은 아니다.그보다는 오히려 청소며 위급한 때 도움이 되는 「궂은일」에 더욱 많은 봉사인력이 필요하다.단순하고 손쉬운 일쯤으로 여기고 대강 해도 되는 일이라는 인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일손 돕는다고 빨랫감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단순하고 책임감은 별로 못 느낀채 호기심반으로 참여하는 인력은 가로거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이런 기회에 자원봉사에 얽힌 고귀한 인류애도 배우고 이웃과 아름답게 더불어 사는 우애의 지혜도 터득하는 기회기 될 수 있다면 인생을 통해 크고 뜻깊은 경험을 쌓게 될 것이다. 자원봉사의 문화가 아직은 일천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각급단계의 학교교육차원에서 「봉사」의 철학을 정착시켜야 할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이기도 하다.97U대회의 자원봉사참여는 그런 많은 의미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이다.적극 참여를 기대한다.
  • 인순이와 조영남(송정숙 칼럼)

    인순이와 조영남이 이끄는 KBS 「빅쇼」를 보았다.둘이는 참 잘했다.특히 연분홍물감 들인 모시치마에 흰 모시겹저고리를 받쳐입은 인순이의 모습은 뭐라 말할수 없는 친화감을 주었다.치마말기가 허리께까지 내려오게 입은 이런 입음새는,광주리나 물동이같은 것을 이고 생활하던 옛날 우리네 아낙을 연상시킨다.또아리괴어 머리에 인 것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채 손은 자유자재로 업은 아기에게 젖도 빨리며 잰걸음으로 걷고,행주치마를 가뜬하게 동이면 민첩한 부엌동자를 할 수 있는 무한히 능력있는 매무시다. 비록 연분홍 치마에 반짝이는 스팡클을 달아 「무대의상」화하기는 했지만 옛날 아낙네 특유의 인상을 고스란히 풍기게 하는 이런 의상을 누가 연출한 것일까,그것도 인순이에게.이제니까 말이지만 인순이는 흑인 혼혈이다.그가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에 아직도 우리 마음이 그리 편안치는 않다.그런데 이날 차림은 흡사 들일로 얼굴이 많이 탄 우리네 시골 누님이나 아주머니같이 제대로 어울렸다.그러고서 콧소리섞어 동백아가씨를 부르고 한이 철철 넘치게 칠갑산을 불러제치는 모습은 기가 막혔다.그리고 노래 사이사이에 섞이는 그 유쾌하고 귀여운 재롱은 안방을 환호케 했다. 인순이.그의 예명에는 성이 없다.미국인 흑인주둔군이었던 그의 아버지에게서는 이씨성도 김씨성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지난 50년 우리의 한많은 현대사가 낳은 슬픈 딸이다.외국인에게 우리네처럼 배타적이고 더구나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에게 우리네처럼 적의에 가까운 경계심을 가진 민족도 없다.너무도 잦았던 침략의 시련에서 딸과 누이와 아내조차 지키지 못했던 한이 지독한 콤플렉스가 되어 그 반작용으로 유난히 가혹한 혼혈 적대의식이 낳아졌는지도 모른다. 인순이는 그것을 전신으로 겪은 가엾고 가슴아픈 우리의 여식이다.그런 인순이가 이렇게도 밝게 노래하면서 이렇게 예쁜짓을 하여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그의 혼혈을 우리는 이제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고 이질감도 들지 않게 되었다.지금쯤은 연분홍치마입은 그의 등을 도닥도닥 두들겨주며 『이만큼 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느냐,애썼다』고 말해주고싶다. 그날 두사람은 「유행가」라고 통칭되는 우리가요만을 불렀다.인순이가 부르면 우리 가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목로집 작부가 불러 간드러지게 넘어가야 어울릴 것같은 가요도 팔뚝이 실팍한 우리들의 씩씩한 어머니나 아주머니의 노래처럼 당당하고 흥겹다.몇삼년이 지나도록 친정은 커녕 다니러 오는 친정오라비 구경도 못하지만 억척스레 시집을 일궈가는 당당한 며느리처럼 부른다.「홍도야 우지마라」조차 시들시들 지친 퇴기가 아니라 한은 내포되었으되 밝은 미래의 빛깔이 나게,인순이는 그렇게 부른다.『두손 꽁꽁 묶인 채로』 붙들려가던 지아비를 백년이고 천년이고 살아만 있으라고 비는 그의 「한많은 미아리 고개」는 우리에게 카다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조영남에 대해서는 말하기 새삼스럽다.우리 연예계에서 그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적당히 잘못생겼고 적당히 어눌하고 「오 솔레미오」를 클래식 성악가 못지않게 부르지만 『천두웅사안‥』 박달재를 부르기 시작하면 우리로 하여금 금방 기쁨과 흥겨움에 푸욱 잠기게 하는,그 범상한 비범.몇겹 숨겨진 안쪽에서 지성이 슬몃이 기어나와 우회로 출몰한다.서툰듯 위장된 그의 「객적은 수작」은 가시나무정글 속같은 현실의 혼미에 빠진 우리의 상처가 위로받는다. 살기가 번득이는 비수같은 말들을 천박한 속언으로 마음껏 농하며 상대를 난도질하는 정치권의 떠도는 적의들이 있고 그것들이 누구든지 베어서 유혈이 낭자한 상처를 증폭시키는 오늘의 우리를 그들만큼이라도 위로해주는 일이 달리는 없다.서툴지만 열심히 일은 하고도 수사학에 무능하여 바보스럽게 딴지걸려 나뒹구는 사람들을 바라보기에도 지친 우리도 그들 노래로 위로받는다. 도무지,우리는 왜 이리도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를까.「두만강 뱃사공」을 들으며 사할린서 온 동포도 남미에서 온 동포도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따라 부르고 「고향초」를 따라 부르던 북미서 온 멋쟁이 교포의 눈에서도 눈물이 철철 흐른다.어디를 가나 민족을 하나로 엮어주는 이 질깃질깃한 정서는 누가 뭐래도 우리만이 지닌 대화합의 인자다.어디서든 모여앉아 박수치며 부르기 시작하면금방 몰입하는 이 확실한 동질성을 에너지로 삼으면 해묵은 적개심도 누대로 쌓인 한도 화해의 용광로에 녹일 수 있는 힘,그 인자. 노래방 열기를 집대성하고 승화시켜 「열린 음악회」도 「빅쇼」도 성공시켰듯 이제 우리에게는 화합이,대화합이 필요하다.어쨌든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이만큼 이뤄냈다.뉴스머리를 탕칠하는 그깟 정치기류같은 것일랑 묵살하고 인순이 조영남과 함께 우릴랑은 웃으며 박수치며 화합으로 새로운 시대를 창조해나갈 「빅쇼」를 꾸밀수 있지 않겠는가.
  •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출간/연변조선족 작가 김학철씨(인터뷰)

    ◎“중국내 조선의용군 항일투쟁사 전하고 싶어 집필” 『중국땅에서 일본에 혼신으로 맞섰으면서도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잊혀져가고 있는 조선의용군의 역사를 글로 남기고 싶었지요』 조선의용군 일원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했던 연변 동포작가 김학철(80)씨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이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다.광복 5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혹독한 일제탄압기인 지난 30년 대에도 우리끼리는 한마음으로 독립투쟁에 나섰다.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되도록 국토가 두동강난채 있을줄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19 16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의 삶은 가시밭길로만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신산스런 현대사를 거울처럼 보여준다.「넉가래(갑·수)」하나없이 「오리(을·우)」투성이인 성적표로 어머니를 걱정시키던 개구쟁이 소년 김학철은 멀쩡히 책값을 치르고도 일본순사한테 도둑으로 몰리자 민족감정이 불끈 솟는다.임시정부에 투신코자 다니던 보성고보 교복을 입은채 가출,상해까지 숨어들지만 정작 임시정부는 못찾고조선의용군에 끈이 닿는다.41년 일본과 교전중 포로가 돼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부상당한 다리 한짝을 잘라내고 해방 때까지 복역한다.하지만 이 시기는 기나긴 감옥나들이의 서곡일 뿐.김일성 정권의 독재와 맞서다 중국으로 쫓기다시피 건너간 김학철에겐 문화혁명의 회오리와 또 다른 모택동 독재가 기다리고 있었다.바른말 잘하는 작가는 모택동을 천안문위에 올라선 벌거벗은 황제라고 비꼬면서 문혁의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 「20세기의 신화」를 썼다가 10년징역을 포함,24년동안 실권된다.지난 80년 작가는 겨우 복권됐지만 작품은 아직 빛을 못보고 있는 상태. 이처럼 고난에 찬 일생을 털어놓는 작가의 어조는 그러나 낙천적이다 못해 익살맞기까지 하다.유년시절,독립투쟁당시,하다못해 감옥생활에 이르기까지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변인물들의 일화가 살아있기 때문이다.험난한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지은이가 지켜온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이 역사를 결코 비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이 모든 것을 단지 기억에 의지해 써냈다는 작가는 『앞으로는 연변 조선족이 소수민족으로 겪는 불익도 다뤄볼 예정』이라며 나이가 꺾지못한 창작욕과 인간애를 말했다.「최후의 분대장」은 번역이 끝나는대로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에서도 출간된다.
  • 문화교류(21세기 한­일 새 지평:4)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세계와 공유할 「문화적 가치」 창출 협력을/「가까운 이웃」 한­일의 새 뭔화 좌표/집단이기·허위의식부터 버려야/지역·생활 문화영역 접촉 확대를 한·일간의 인적·물적교류는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가고 있다.국교정상화가 이룩된 65년의 왕복 1만명 수준의 인적 교류자수가 94년도에는 2백70만명으로 늘어났고 물적교류도 3백89억달러를 기록하고 있다.이와같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게 일본을 「가까이 지내야 할 나라」로 손꼽은 한국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94년 공보처가 대륙연구소에 의뢰하여 전국의 청소년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는 조사대상자의 33.7%가 이와같이 응답했다고 발표했는데 89년의 5.3%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이다. ○응어리진 과거사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인 SIS리서치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 한국인들은 일본을 가장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로 응답하고 있다.또 지난 10년간 대일감정의 변화에 대해서는 각각 나빠졌다(16.2%),변함없다(45.2%),좋아졌다(38%)는 응답이 주어졌다.10년간 상대국가에 대해 호감을 갖지 못하게 된 이유를 묻는 한·일 양국의 또다른 여론조사는 각각 과거의 사죄나 보상을 구하기 때문에(63%),과거의 사죄나 보상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84%)라는 응답을 얻어냈다. ○옛날 잘잊는 일인 한·일간의 과거청산문제는 너무나도 뿌리깊은 것이어서 어디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일단 일본인의 역사인식과도 연관될 수 있다.도쿄대학의 인류학교수 이토 아비토씨는 한일문화를 비교하는 자리에서 일본문화의 특색을 애니미즘과 연결시키면서 일본인의 전통적 역사의식에서는 『기억에 있는 「지금」사람들과 「옛날」사람들의 두 범주밖에 생각할 수 없고,일반민중은 「옛날」사람들의 경험이나 감개를 카드화해서 묶어놓고는 무엇인가를 매개로 필요에 따라 적절한 카드를 빼들고 「지금」의 자기와의 동일화를 단번에 이루어 버린다』고 밝혔다.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50년도 더 지난 「옛날」사람들의 경험중 특히 현재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잊어버리거나 뽑아내지 않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전통적인 역사인식 탓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설혹 사실이라 해도 사실이 당위일 수는 없다.다행히도 양식있는 일본인들은 독일의 바이츠제커전대통령의 「독일과 일본의 전후 50년」이라는 방일강연에 귀를 기울인다.『과거를 부정하는 사람은 과거를 되풀이할 위험을 안고 있다.…전쟁에서의 죄와 옳지 못한 일들을 공평하게 판단하려면 역사의 진실에 눈을 닫아서는 안된다』 우리 역시 이와같은 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그러나 우리로서는 좀더 오래 전에 이스라엘사람들이 다짐했던 명언,즉 『잊지는 말자,그러나 용서는 하자』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하다. ○유해기준 마련을 그러면서도 우리는 비판적인 인식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의 보존과 창출에 공동으로 협력해야 할것이다. 이때 비판의 대상은 상대 민족이 아니라 인류의 이름으로 과감히 분쇄해야 하는 집단이기주의와 허위의식 자체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같은 맥락에서 일본의 대중문화에 대해서도 국내외 어느 상품에나 다 같이 적용할 수 있는 청소년 유해판정 기준을 마련하는 일에 양국의 양식있는 인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또한 일본문화상품의 원본 및 번역소개는 허용하되 번안과 표절은 철저하게 통제하여 우리것과 일본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한·일 문화교류에 있어 인간적 가치가 좀더 높은 부분에 좀더 많은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는 것은 물론이다.이때에도 양국간에 균형이 갖춰지도록 하는 조처가 강구되어야 한다. ○균형교류 급선무 요컨대 인간적 가치가 높은 부분의 교류가 균형있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한편,지역수준의 교류,민간차원의 교류,생활문화 영역의 교류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된다.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교류 확대는 양국 국민들간의 좀더 나은 상호이해를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이념·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국경이 없어지고 있다.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문화영역은 더욱 더하다.광복 50년을 맞아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이웃한 한일 두나라의 문화교류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한단계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약력 ▲김문환 ▲서울대 교수(51세) ▲서울대 미학과졸 ▲철학박사 ◎상대국가의 문화·사회 배울 기회 넓혀야/젊은층 교류 확대,이해 증진을/지방단체의 제도적 지원 바람직 일본과 한국은 인접해 있으면서도 서로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 의외로 모르는 부분이 많다.학교교육에서는 상대국가의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문화와 사회에 대해서 배울 기회는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교육만 강조 두 나라 모두 단일민족사회를 지향해온 때문일까,다른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확실히 부족한 것같다.또 두나라 모두 근대화를 위해 국민교육에 힘을 기울여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으나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보편적 인간교육이란 측면에선 뒤떨어진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평상시에는 선량한 국민으로 행동하면서도 외국인과 접촉하자마자 국가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일까,스스로 위축되어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편협해져 자기 편한대로 행동하기도 한다.이것이 서로의 혐오감을 돋우게 되는 본의아닌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것같다. ○직접 맞닥 뜨려야 국가나 국민의 벽을 넘어서 상호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문화면에서의 교류」다.원래 인간은 누구라도 이웃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다.따라서 문화교류라는 것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대로 서로 실제로 방문해 그 문화를 직접 맞닥뜨려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도쿄대학에서 문화와 사회 또는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조차 아직 한국을 방문한 일이 없는 경우도 많다.그러나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해,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방문하는 일이 가능한 현재,서로 이웃나라의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것은 이제는 용인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지성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로서는 태만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웃나라의 문화를 모르고서 먼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한국사람을 알지 못하면 일본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또한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일이 일본자신을 더 잘 아는데도 중요한 열쇠를 잡게 되는 것임을 일본인은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좋든 싫든 한국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사람들도 깨닫고 있다.이는 한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한국을 실제로 방문한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한국측에도 이는 적용되지 않을까.대도시의 비즈니스가 등은 어느 나라나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문화의 차이성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한걸음이라도 골목안에 들어서 보면 여기저기에서 생활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나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보고 듣는 것 전부가 신선하고 서울의 거리를 하루종일 걸어 돌아다니면서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지적 욕구도 촉발 특히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이들은 서로의 문화를 접할 기회가 충분하다면 자신의 문화적 아이덴티티에도 눈을 뜨는 귀중한 체험이 된다 하겠다.가정생활까지 접할 기회가 있다면 더욱더 좋다.일상 생활문화는 서로의 이해를위해서는 좀더 가깝고 큰 실마리가 된다.예를 들자면 식생활 등은 누구라도 평상시 되풀이 경험하는 기본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가까운 나라라 하더라도 차이가 있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다른 문화를 발견하고 문화비교를 즐기는 것은 지적인 욕구도 생겨나게 한다. ○아이덴티티 조성 문화교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제도적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다른 문화체험의 워크숍이나 문화비교의 토론회 등의 교류사업을 위해서는 일본측에서 각지방 등에 민간의 갖가지 교류단체가 돈들이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체제가 필요하다.이 가운데서도 가고시마현의 네트워크를 볼 때 한국 대학과 이전부터 「고구마교류」를 진행해온 실적이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지방의 국제화」의 일환으로 한국 진도와 농어촌 후계자의 교류에 착수했다.이같은 지방끼리의 풀뿌리 교류는 지방에 살고 있다는 아이덴티티를 공통의 과제로서 전국에 널리 퍼지게 하고 있다. □약력 ▲이 토아비토 ▲일본 도쿄대 교수(52세)▲도쿄대졸 ▲문화인류학 전공
  •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모든 것은 신의 은총」 라스트신 압권/박진감 넘치는 소설기법을 영상화한 걸작 이 작품은 1936년에 소설로 발표된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대표작을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영화다.그는 철저하고 엄격한 연출력으로 영화예술의 자유로운 표현기법을 보여줌으로써 프랑스가 낳은 세계 최고의 지성적인 감독으로 부각되었다. 영화는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가 쓴 일기장이 펼쳐지면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어 펼쳐졌던 일기장이 덮이면서 끝이 난다.현대사회의 모든 악과 싸우다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죽게되는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는 현대인의 마음을 파고드는 권태와 겉으로는 건전한 생활을 하는 듯한 교구 사람들속에 웅크리고 있는 방황,증오,교만,반항등의 악과 싸우게 된다.이러한 악은 더욱 파급돼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영혼까지도 타락시키며 결국 그들로 하여금 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한다.앙브리쿠르의 본당신부는 이 싸움을 하는데 있어 상관들의 비난과 백작가의 반발,소녀들의 깜찍스런 음모 같은 것들에 의해 곤경을 겪는다.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는 것은 투박한듯 하면서도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직관력을 가진 토르씨의 늙은 신부뿐이다. 이와 같은 곤경에 빠진 환경속에서도 앙브리쿠르 신부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사랑을 잃고 신에 대한 증오심으로만 가득찬 백작부인의 희망과 사랑을 되찾고,신부를 골탕먹이려고 음모를 꾸민 소녀 세라피타가 어느 날 언덕위에 위암의 고통으로 탈진해 쓰러져 있는 신부를 구원해주게 되며,백작의 딸 상탈도 신의 은총을 받게 된다. 브레송은 원작자인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구사한 방대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소설기법을 그의 까다로운 카메라 서술법으로 재구성했다.브레송은 앙브리쿠르 신부의 심리현상을 초현실적인 영상기법을 사용해 추상적으로 만들어서 그의 운명과 싸우는 인물들의 내적 시간의 흐름을 우리에게 직접 느끼게 해준다. 앙브리쿠르 신부의 핏기 없고 무표정한 얼굴의 큰 화면은 우리에게 죽음을 동시에 암시한다.백작아들의 죽음,백작부인의 죽음,델방드 의사의 자살,마지막에는 신부의 죽음이 있다.그리하여 이 무표정한 얼굴들과 신의 불투명한 존재는 브레송의 작품을 진정한 비극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영화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선과 악의 대결에서 선이 승리를 거두지만 거기에는 악의 본질적인 약점이 있다.증오로 표시되는 본질적인 악도 신의 사랑에까지 승화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의 사랑(파스칼적인)앞에서는 역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그러나 제아무리 강한 이 사랑의 힘도 「은총」으로 순화되기 전에는 절대적인 힘이 될 수 없을 것이다.죽어가는 마지막 순간에 앙브리쿠르 신부가 말한 『모든 것이 은총이다』라는 말은 나자신 내면의 소리로 다가온다.『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다』
  • 음악평론가 박용구(이세기의 인물탐구:80)

    ◎「열린 시각」으로 「평론 외길」 50년/음악·무용 비롯,모든 문화분야 탁발한 이론 전개/「음악 교육론」… 일제가 말살한 우리 정서 부활 노력/저서 「교양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감상 지침서로 유명 「미를 위해서는 깨뜨릴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이는 베토벤의 말이다.또 입사 박용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미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파괴해도 아깝지 않을만큼」그의 의식과 사상은 줄기차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고 언제나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음악계는 말한다.「그것은 예술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 탓」이며 「긴장이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이라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일 것이다. 「박용구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년동안 계속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이는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92년 「낭만음악」(여름호)특집 「작가연구」에서 밝힌 말이다. 같은 글에서 이교수는 「50년에 이르는 평론활동은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잡지나 신문들이 일정한 평론가에게 그 긴기간동안 계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짚고 있다.또 「음악과 무용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그는 예술문화를 제한없이 드나들며」『논리전개도 상당히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치,때로는 대담한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 논조와 사안별로 관심의 소재가 변하는 「논리에 입각한 비평가라기 보다 감각에 의한 비평가」』라고 결론짓는다. ○예술계의 팔방미인 실제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은 넓고 깊고 다양하다.그래서 예술에 관한 한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음악펜클럽 예술평론가협의회 유니세프문화예술인클럽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세계무용연맹(WDA)도 그가 주관하는 단체이고 그가 쓴 「춘향가」「줄리아」「님의 침묵」등 수많은 작품들은 교향시·오페라로 작곡되어 호평받은바 있다. 과연 그의 평문은 어느 지면에서나 탁발한 이론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도저한 주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해방직후 발표한 「아동음악 교육론」은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었고 전5권으로 펴낸 「교양의 음악」의 경우는 클래식음악팬의 음악감상을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지망생과 음악관계 전문가들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섭취시킨 교과서이기도 했다. 「예술가란 어느 시대에서나 환경의 도전자요,권위의 파괴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해온 그는 60년대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쉔베르크 도형악보의 존 케이지·베베른·베르크와 슈톡하우젠에 이르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우호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면 당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한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 등의 전위작업을 「선구자적 도전 정신」으로 평가하여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크게 북돋워주었다.「공간」지에 발표한 일련의 「작가론」에서 특히 백병동을 향해 「음악으로 말할줄 아는 소중한 사람」 또는 「그 노여움이 화염이 되어 역사의 밤을 밝히도록 기대한다」고 감싼 것도그런 맥락에서다. ○한약방집 네째 아들 그의 녹슬지 않는 사회정의감은 87년 6월항쟁과 88올림픽이 끝난후 「예총」에 대한 역할회의론이 일어났을때도 「예총도 뉘우쳐야 한다」는 글에서 심장한 어조를 멈추지 않는다.그는 「예총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고 있다」고 감연히 지적했고 「예총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고 결코 지성인의 모임도 아니며 그 체질은 다만 편견과 독선에 차있다.예총이 이념공동체라면 우선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삶의 조건인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안일에 빠져있던 문화예술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어릴때 소망한 것은 「독립투사」가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독립투사의 조건은 「강인한 인내력과 행동력」이었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두가지 강점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여」 그때부터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체류 기간동안은 주로 「단사들과 더불어 담예논도에 심취」하는 세월을 만들어 나갔다. 도쿄시절의 입사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의 회상은 이런 흔적을 진하게 뒷받침해준다.「그는 예술순례를 주도하는가 하면 예술과 문화전반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이던 모임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한치도 후회함이 없는 그의 사회정의감과 예술분야에 임하는 지성인의 자세는 당시 유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항로는 남보다 파고가 거세고 파란이 심한 편이었다. 경북 풍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박은식씨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졸업후 조부의 고향이던 평양으로 가서 평양고보에 진학,5학년이 되던해 독서회를 조직한 일로 왜경에 검거되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컸으나 부친이 부농인 것과 상반되어 이 마저 포기한채 일본에 밀항했다.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이 역시 체질에 맞지않아 일본의 「음악평론」사에 입사한 것이 음악·무용가가된 계기가 된다. 광복후 조국에 돌아와 첫 평론집 「음악과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였으나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터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시 50년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끝없는 파란」과 「방랑」을 「방랑시인 김삿갓」에 비유하여 스스로 삿갓 입자를 쓴 「입사」란 호를 지어 가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창작희곡 집필 몰두 창작희곡집 「흙비」 후기는 그의 솟구치는 앙양과 침정을 요연하게 드러내는 고백성사와도 같다.「나는 성깔부터가 적을 사랑하라는 박애주의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사랑해야만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여기의 작품들은 사랑에서 보다는 미움으로 해서 쓰여졌는지도 모른다.그만큼 내 생애는 미움에 찬 세월이었다.마음의 눈은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고 처연한 심정을 글귀마다 담고 있다. 그는 82세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모든 사고방식은 활짝 열려있고 목소리는 낭랑하며 행동은 반듯하다.그가 살고있는 세검정 세이장은 20여년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트롬본처럼 말려올라간 예술주택으로 요즘은 지난해 가을 문예중앙에 발표한 「바리데기」후속으로 우리 「무가」의 원천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창작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만이 남길수 있는 단테의 「신곡」 못지않은 명작에의 도전이라는 각오다.가족은 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부인 정덕미 여사와 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그의 주장대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자하는 염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예술미의 창조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원한대로 언제나 「멋대로」 흘러왔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우리 모두가 별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것 같다.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인 자유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한」그는 「가장 선한 장엄미 건축을 위해」 그의 멋과 자유를 파괴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그런 순간을 위해 예술관조의 형안도 끝내 그 빛을 잃지 않을것이다. □박용구 연보 ▲1914년 경북 풍기출생 ▲33년 평양고보졸업,도일,일본대 예술과 입학 ▲37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졸업,일본 「음악평론」사 입사 ▲49년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민교사)출간,도일 ▲50∼60년 일본 도쿄 고마키(소목)발레단 문예부장 ▲52년 일본 「배우좌」연출공부 ▲62년 서울음악평론동인회대표간사 ▲66∼68년 예그린악단단장 ▲70∼76년 공간사주간·운영위원 ▲76년∼현재 음악펜클럽 회장 ▲81년∼현재 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83년∼현재 채동선기념사업회장 ▲86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단장 ▲88∼94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93년∼현재 세계무용연맹 발족(WDA),한국본부 회장,은관문화훈장 ▲94년 창작희곡 「바리데기」(문예중앙 가을호)발표 ▲95년 세계무용연맹 창립총회및 아시아 태평양센터주최 국제무용페스티벌(KIDE)개최 「음악의 별들」(어문각 48년) 「음악입문」(박문출판사) 「음악과 현실」(일지사 49년) 「교양의 음악」전5권(창조사 69년) 「음악의 주변」(창조사 70년) 「음악의 광장」(일지사 75년) 「불멸의 음악가들」(일지사) 「음악의 세계」(계몽사) 「음악이 만나는 자리」(일지사 77년) 「음악의 문」(청한문화사 81년) 창작집 「흙비」(해보라 기획 85년) 「오늘의 초상」(일지사 89년) 「명곡과 명인들」(세광음악출판사)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95년)출간외 논문 무용극본「님의 침묵」 「바리공주」 오페라극본「춘향가」 「줄리아」등 다수
  • 경주 감산사/석조보살상(한국인의 얼굴:40)

    ◎살짝 뜬 눈가에 웃음… 온유한 인상/야트막하고 실한 코… 친근감 더 해 신라에서 8세기는 불교미술이 한껏 만개한 시기다.그 꽃봉오리를 8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미 터뜨렸는데,바로 성덕왕(702 ∼ 736년)시대다.특히 화강암을 소재로 한 불상조각은 이 시대의 대표적 조형미술이다.도처에 널린 화강암을 불상으로 다듬어 보려는 신라인들의 불심은 불후의 명작 불상조각들을 남겼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감산사석조미륵보살입상이 8세기 초반의 작품이다.경북 경주시 대동면 신계리 감산사에 본래있던 것을 지난 1915년 서울로 옮겨왔다.대좌와 보살상 뒤쪽을 막아준 광배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2.57m에 이른다.보살상 자체의 키를 재도 1.83m가 나온다.그러고 보면 꽤나 큰 키를 기준한 등신대의 보살상인 것이다. 이 보살은 얼핏 익살스러워 보인다.그리고 눈을 꼭 감지않고 슬며시 웃음 그려내어 눈에도 장난기가 들어있다.그럼에도 온유한 까닭은 보살이기 때문일 것이다.코가 높지는 않으나 콧방울이 실한 보살은 안광이 꺼지지 않아 친근감을더 해준다.작은 입을 다물고 웃는 통에 입가의 주름 법령이 유난히 깊다.그래서 외래적 요소가 없는 신라인일 수 있고,또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얼굴은 풍만하고 몸매는 육감적이다.어깨는 넓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면서 둥글고 통통한 팔뚝으로 이어졌다.특히 육감적 느낌을 주는 부분은 허리와 두 다리의 굴곡을 강조하듯 표현한 옷주름에 있다.허리부분에서 겹친 치마에 띠장식을 매어 가랑이께로 늘어뜨렸다.그리고 탄력있는 다리에 달라붙은 치마가 잔주름을 이루었다.치마의 주름을 두 다리 사이로 모아 허리쪽으로 끌어올려 몸매를 한껏 자랑했다. 이러한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에 와서 유행한 양식이라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어딘가 인도 굽타시대의 불상을 닮았다.그 인도의 불상이 당나라에 흘러들어와 더욱 발전한데 이어 이를 신라의 것으로 수용했다. 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썼다.구슬이 달린 머리띠 한 가운데 화불이 있으니 관세음보살이 분명하건만 어인 일로 미륵보살이 되었다.그 연유는 뒷면에 선각으로 길게 새긴 글씨(명문)에 미륵보살이라고 밝힌데 있다.새김글씨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의 조상주는 김지성으로 되어있다.그는 통일신라시대 중아찬(신라 17관등 중의 제6위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67살에 관직을 떠나 서기 719년에 자신의 땅 감산장전을 바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그 절이 바로 보살상을 세웠던 감산사다.보살상 새김글씨 내용과 일치하는 대목은 「삼국유사」남월산조에도 나온다.「삼국유사」는 또 이 보살상이 감산사 금당에 봉안되었다고 기록했다.그러니까 감산사의 주존이 미륵보살이라는 사실을 일러주는 기록이다.미륵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는 당시 신라의 법상종신앙이 엿보인다.
  • 첫 소설 「여수의 사랑」펴낸 한강씨(인터뷰)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데뷔/“그냥 아름다운 글 쓰고 싶었어요” 『처음엔 발표한 소설들이 한권 분량이 됐으니까 책이 나와야 겠거니 막연히 생각했지요.그런데 막상 작가의 말을 쓰려니까 글쓰기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이 두서없이 떠오르더라구요』 지난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소설가가 된 한강(25)씨가 첫번째 창작집 「여수의 사랑」(문학과 지성사)을 펴냈다.풋풋한 눈매가 아직도 소녀같기만 한 소설가 경력 1년 반짜리의 젊은 소설집이라는 점때문에 책에 쏠리는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신세대의 발랄함을 기대하고 책을 펴본 이들은 소설에 나타난 뜻밖의 서글프고 어둡고 한스러운 정조에 깜짝 놀란다.「차창 밖으로는 숱 많은 머리털을 가닥가닥 헝클어뜨린 버드나무 숲이 비바람을 껴안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예리한 주방용 칼로 살점을 모두 발라낸 물고기처럼,상의를 벗은 재헌의 몸뚱이는 참혹하게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등은 이 소설집에 실린 「저녁빛」을 이루는 문장.미친 어머니를 둔 화가지망생청년의 광기를 그린 이 단편에서도 나타나듯이 단정하면서도 처참한 문장들이 그물처럼 이어지면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한강 소설의 특징이다. 『글쎄요.고등학교때 임철우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소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그냥 아름다운 소설을 쓰고 싶지요,뭐』 작가는 질문마다 그런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듯이 글쎄요를 연발한다.그는 『소설을 안썼더라면 훨씬 열정과 사랑을 갖고 살 수도 있었을텐데라고 생각할때도 있다』면서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라고 말로 할 수 없는 더 많은 얘기들을 암시했다. 한씨는 소설가 한승원씨의 딸이자 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인 한동림씨의 동생이다.
  • 「문학과 사회」 가을호작품에 몰두/소설가 오정희씨(작가와의 대화)

    ◎“문 닫아걸고 원고지와 씨름”/나는 굼뜬 작가… 조바심 치지만 하루 한장이 고작/「고통없이 쓴 글은 흉내」 박경리 선생 말은 큰 위안 「작가로서의 광기도 없고 특별한 삶을 살지도 못한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몇해전 박경리 선생님을 처음 뵈었어요. 외딴 곳에서 아무 걸릴 것없이 문학만 하는 것 같은 선생님이 너무 부러워 저처럼 가정의 울타리에 갇혀서야 무슨 큰 글을 쓰겠느냐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고단한 체험에서 우러나지 않은 글은 흉내고 관념일뿐 진짜 문학이 아니라고 저를 달래며 웃으시더군요」 삶의 속됨과 누추함을 가차없이 드러내면서도 이를 명징한 언어로 포현해 오히려 아름답게 느끼게끔 하는 작가 오정희씨(48).주부노릇 엄마노릇에 1년에 많아야 단편 세편으로 숨바꼭질하듯 독자와 만나온 그가 요즘 부쩍 바빠졌다. 계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실을 작픔을 쓰느라 문고리를 걸어잠근채 한여름을 나고 있기대문. 또 멀잖아 그간 발표한 작픔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창작집으로 묶여 나온다. 「글쓴답시고 훌쩍 어디 놀러도 못갈만큼 항상 마음죄며 살아요. 그러면서도 이리 더딘것을 보면 제가 굼뜬 작가인가 봐요」 최근 동료들이 두번이나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한 것도 그의 마음을 바쁘게 한다. 얼마전 나온 책 「오정희 문학앨범」(웅진출판사)은 그를 아끼는 문인들이 작품론과 작가론을 하나씩 내놓아 「오정희 문학」의 웅숭깊은 세계를 해부한 기획. 보석을 깎듯 글을 다듬고,단정하게 가족을 건사하면서도 웃사람에겐 너그러운 벗으로 살아온 삶의 여러 층위를 짐작케 해준다. 이 책엔 지인들이 쓴 연대기와 작품론,작가와의 사연을 담은 이경자·이제하씨의 글,그가 손수 고룬 산문 세편,또 「유년의 뜰」「동경」 「옛우물」 등 소설 세 편을 수록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있는 글은 작가가 직접 밝힌 「소설쓰기,소설짓기」이다. 식구들이 집을 나선 아침 7시부터 하루를 써내려간 이 글엔 정확하고 아름다운 한줄을 위해 원고지칸과 피를 말리는 씨름을 해야 하는 작가의 생활이 드리워져 있다. 그것을 한없이 확장되는 희고 텅빈 종이앞에서 커피를 마셨다,집안을 치웠다 조바심을 치지만 하루에 원고지 한 장을 다 못채우는 언어 세공인의 운명이다. 또 계간 문예지 「작가세계」 여름호도 「오정희 특집」을 실어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고교시절 「인생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다만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까지했던 그녀가 어떻게 반복되는 살림살이를 덤덤히 받아들이게 됐을까. 「젊은 날엔 본디 환상과 열정이 승한 법이지요, 하지만 이젠 지루하고 권태로운 일상이 구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게 여유있게 웃는 작가의 대답이다.
  • “핵무기 폐기론은 옳지 않다”/마이클 메이(해외논단)

    ◎확실한 전쟁 억지력… 냉전후 안보체계 와해 막아 냉전 이후 핵무기 무용론이 세계지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마이클 메이 스탠포드대 교수(국제안보·무기통제 연구소장)는 세계안보 유지를 위한 핵무기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한다.브루킹스연구소 계간지에 실린 그의 글 「무서운 안전보장」을 소개한다. 오늘날 여러나라 무기고에 저장돼 있는 핵무기는 한개 평균 사방 수마일을 파괴하면서 대도시에선 1백만명은 족히 죽일 수 있다.이런 물건들의 역할은 무엇인가.미국은,또 다른 나라들은 무엇 때문에 이를 필요로 하는가.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대충 정리하면 『무엇 때문에 필요한지는 우리도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러시아 등 여러나라가 수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세계 도처에 불안정한 상황이 깔려 있다.점차로 숫자를 줄이고 더 이상 확산되는 걸 막으려고 애쓰고 있으나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몇천개 정도는 간직할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지식계층과 학자들은 이런 입장을 비전이 부족하다고 비판한 뒤 한시라도 빨리 몽땅 없애버리자는 폐기론과 심심하면 출현하는 깡패·무뢰한 국가들에 대한 응징용으로 몇개만 남겨두자는 극소보유론 두노선으로 편을 갈랐다. 유행에 뒤지긴 했지만 미국 입장이 올바른 것이며 폐기론,극소보유론은 잘못된 것이다.세계는 지금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두리뭉실한 미국정부의 변명보다 훨씬 논리적이며 사람들에게 썩 기분좋게 들리지 않는 냉엄한 판단에서 비롯된다.자기들 사이의 평화를 「멋지긴 하나 근본적 안보 이해가 문제될 땐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세계강국들은 핵무기의 존재로 평화를 「정부와 국민들 모두의 근본적 안보 이해」로 여기게 된 것이다. 우리의 소원과는 달리 현재의 국제사회를 하나의 세계 안에서 법을 준수하는 동등한 시민같은 국가들의 모임으로 볼 수는 없다.특히 근본적 안보 면에서 그렇다.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나 이런 국제 형편에선 결국 의지할 건 자신의 힘뿐일 것이며 이는 당연한 것이다.이에 따라 전통적인 안보최우선 행태가 아직도 팽배한다.지금 중부유럽,동아시아,중동에서 벌어지는모습은 19세기초의 메테를니히나 19세기말의 비스마르크 때와 별로 다를게 없다.현재의 국가들은 과거와는 다르게 상호의존적,반응적,쌍방향적이긴 하나 불안정하다는 점에선 과거와 똑같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강력한 무기들과 억지력을 보유하는 것이 미국 안보정책의 최우선 목적이며 이는 곧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미국의 중심적 권익을 해외에서 지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핵무기의 존재로 분명 전쟁이 쓸모없는 낡은 것으로 되지는 않았지만 전쟁억지와 관련해 이를 대신할 어떤 것도 현실적으론 존재하지 않는다.핵무기는 교전 양측이 전쟁에서 얻고자 했던 것들을 단숨에,확실하게 파괴시킨다.적 뿐 아니라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전쟁터까지도 파괴시킬 수 있는 점이 핵무기를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것으로 만들었다.폐기론자와 극소보유론자들은 이같은 역할을 대체할 현실적 대안이 없다. 몇몇 나라들은 냉전 이후 지금 훨씬 불안정해졌다.냉전은 억압과 고통을 수반했지만 전통적으로 갈등 지역에 위치한 많은 국가들에게 단단한 안보 틀을 제공했다.자신보다 더 큰 여러나라에 끼여 있거나 이해 문제를 제기한 이들 전통적인 갈등 국가들중 몇몇은 냉전 이후 독자적 안보체계를 요망하면서 핵무기에 시선을 돌렸다.세계로부터 고립된 북한과 이란이 좋은 예다.폐기론자들과 극소보유론자들은 미국에 대한 주요 위협은 이들 고립국가들이며 이런 위협만 제외하면 핵무기 보유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완전포기하거나 핵심방어체계가 아닌 주변무기단위로 격하시킬 때라고 주장한다. 핵무기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는 평화를 제공하거나 유지하게 하는 권위를 창출하지 못하지만 이를 무시했을 경우에 대한 책벌만은 명확하게 공지시킨다.이에 따라 앞으로 세계는 핵보유국끼리 이해상충할 때 앞뒤를 재는 조심성의 크기로 이해가 갈릴 가능성이 짙다.경계를 확실히 그으려는 경향에 힘입어 장래 수년,수십년 동안 세계는 다시 강국들의 영향권 재편과 확정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러시아가 아직은 주위를 살펴야만 하는 이때를 활용해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을 향해 대시하고 있는 체코,헝가리,폴란드의 처지가 이해된다.반면 대만에 대해 확고부동한 정책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뜻을 무시하고 지금 대만 인정을 추진하는 것은 사려깊지 못하다. 핵억지력은 현대생활의 한 엄연한 사실이다.그러므로 미국이 이 억지력을 무효화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핵폐기는 현상황에서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더라도 이의 추진은 틀린 것이다.극소보유론은 무의미하다.핵무기는 매일 몇개인가로 계산되지 않고 최종적 안보 개념으로 논해지기 때문이다.지난 50년간 억지력은 시사전문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했고 견고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쩌면 억지력이 이토록 잘 작동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포기할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윈스턴 처칠은 원자시대 초두에 『안전은 공포감에서 생겨난 튼튼한 아이일 수 있다.공포감을 대신할 보다 나은 어떤 것을 완전히 확신하지 않는 한 우리는 원자무기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갈파했다.사방을 둘러봐도 이를 대신할 보다 나은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 김대통령­클린턴 2년새 4번째 대좌/김대통령­방미 여로

    ◎“6·25참전 미군 희생은 한국번영 초석”­김대통령/단독·확대회담 60분… 덕담 교환하며 우호 확인/미 각계 유력인사 4백명 부부동반 초청 환담 김영삼 대통령은 워싱턴 국빈방문 사흘째인 27일 상오 11시40분(한국시간 28일 0시40분·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경수로 지원문제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을 논의한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내외신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에서 명예인문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저녁에는 미국의 정계·재계·언론계·문화계 등 각계의 유력인사들을 초청,리셉션을 베풀고 환담을 나눴다. ○회담장 향하며 미소 ▷단독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의 클린턴대통령 집무실(오벌오피스)에서 20분 남짓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회담에 돌입했다. 양국 정상회담은 지난 93년7월 클린턴대통령의 방한과 93년11월김대통령의 방미,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 단독정상회담에는 우리측의 유종하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미국의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만 배석했다. 두 정상은 여러차례 정상회담과 전화통화 등으로 가까워진 탓인지 회담을 갖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시종 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통상문제 집중 거론 ▷확대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클린턴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캐비닛룸으로 자리를 옮겨 확대정상회담에 들어갔다. 양국 대통령은 확대회담에 앞서 각각 배석자를 소개한 뒤 두 나라 우호관계를 화제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약 40분간 진행된 확대정상회담에서는 단독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과 함께 양국간 통상증진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6월부터 우리 정부가 시행한 외국인 투자환경개선정책을 설명한 뒤 『미국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대한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확대정상회담을 끝낸 양국정상은 단독회담이 열렸던 오벌 오피스로 다시 자리를 옮겨 잠시 환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외무·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박건우 주미대사,청와대의 한이헌경제·유종하 외교안보·윤여전 공보수석,임성준 외무부 미주국장이 배석했고 미국측에서는 고어 부통령,크리스토퍼 국무·페리 국방·브라운 상무장관,파네티 백악관비서실장,캔터 USTR(미국무역대표부)대표,레이크 안보보좌관,레이니 주한대사,로드 국무부차관보 등이 배석했다. ○미의 평화지원 다짐 ▷백악관 공식환영식◁ ○…정상회담에 앞서 김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레이저 백악관의전실장의 안내로 입장,클린턴 대통령과 인사를 나눈 김대통령은 앨 고어 부통령내외,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존 섈리캐슈빌리 합참의장 등 미국측 환영인사를 소개받은 뒤 사열대로 올랐다. 김대통령은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애국가와 미국국가가 연주된 뒤 의장대를 사열했고 미국 고적대의 분열식을 참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환영사를 통해 『한·미관계는 상호 고통분담의 역사와 공동목표의 미래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김대통령의 희생과 집념에 힘입어 한국은 경제성장에 걸맞는 정치적 발전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대통령은 또 『북한핵문제가 한·미·일 세나라간의 긴밀한 공조체제 아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면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남북대화 재개,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확보를 위한 미국의 확고한 지원을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42년전 오늘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참전우방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린 전쟁이 3년만에 역사상 가장 긴 휴전에 들어갔다』고 상기시킨 뒤 『한국국민이 미국의 한국전 참전용사와 국민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미국 젊은이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증언하러 왔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그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4천4백만 한국인은 오늘날 민주주의와 번영을 구가하고있다』고 감사의 뜻을 밝히고 『한국은 앞으로 보다 평화로운 세계,보다 번영하는 지구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미국국민과 굳게 손잡고 나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5차례 열렬한 박수 ▷미국 유력인사 리셉션◁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백악관 바로 옆쪽에 자리한 코코란 미술관 1층홀에서 톰 폴리 전하원의장,제시 브라운 육군성장관,샘 넌 상원의원 등 미국의 유력인사 4백명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환담을 나눴다. 김대통령은 박건우주미대사의 안내로 리셉션장에 들어선 후 4중주 실내악단의 「아리랑」 등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중앙 플로어에서 45분간에 걸쳐 참석자 전원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 김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전쟁의 잿더미에서 실의에 빠진 우리에게 미국은 전쟁복구와 경제재건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서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김대통령이 『한국이 기적을 이루기까지 미국의 도움이 컸다』면서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고 인사하자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등모두 5차례에 걸쳐 박수로 호응했다. ○자유는 번영의 열쇠 ▷명예박사학위 수여◁ ○…김대통령은 26일 하오 조지타운대학 본관 힐리홀에서 오도노반 총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명예인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자유는 번영의 열쇠」라는 제목의 학위수락 연설을 했다. 순차통역으로 진행된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한국에서 북한공산주의의 위협은 군사독재를 불러왔고 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다』면서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전화통화도 10여회 ○…스탠리 로스 백악관 NSC(국가안보위) 아시아담당 보좌관은 27일 한·미 정상회담에 앞선 브리핑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매우 친밀한 관계라며 수치를 비교해가며 강조. 로스 보좌관은 두 정상간의 직접 대좌는 93년 여름 클린턴대통령의 한국방문으로 가진 첫대좌 이래 4번째라고 소개하고 두번째는 블레이크섬 회담후 백악관에서,세번째는 APEC 보고르회담에서라고 발표. 그는 또 양국 정상간에는 전화와 서신교환도 잦다고 설명하고 지금까지 직접 전화통화만도 10차례가 넘는다며 이는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부연설명. ◎김대통령 미 조지타운대 명박 수락연설/요지 세계 최고수준의 학문적 업적과 교육적 명성으로 빛나는 조지타운대학으로부터 수여받은 이 학위는 나에게 최상의 영예가 될 것입니다.클린턴대통령을 비롯하여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온 이 대학졸업생들,그리고 21세기의 주역이 될 학생 여러분과 동문이 된 이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대학이 2백여년전,종교적 자유와 미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정에서 창설되었다는 사실에,40여년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해온 나로서는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태평양 너머 동북아 한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우리 모두에게 자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우리는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후 국토분단과 전쟁,그리고 절대빈곤이라는 3중고를 안고 국가건설에 나서야 했습니다.우리는 절망의 어두움으로부터 희망의 빛을끌어내야 했습니다. 대학생으로서 서양철학에 심취해 있던 나는 당시 한국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숱한 고뇌를 하였습니다. 나는 미국이 이미 누리고 있던 자유와 평등,풍요와 복지는 다름아닌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맺은 결실임을 확신하였습니다.나는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정계에 투신하여 40여년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삶을 바쳤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숱한 역경이 있었습니다. 일본 식민통치가 남긴 척박한 토양에 민주주의는 뿌리내리기 어려웠습니다.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은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군사독재를 불러왔습니다.절대빈곤의 고통은 개발독재를 정당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유와 인권은 양보할 수 없는 권리로서 그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신하였습니다.자유민주주의가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지름길이며,공산주의의 위협을 극복하는 요체라고 믿었습니다.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별개가 아니라 자유라는 한 뿌리를 가진 두 가지라는 나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이러한 신념을함께 한 한국 국민의 기나긴 민주화 투쟁은 마침내 문민 민주주의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나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한국사회에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왔습니다. 이러한 개혁조치가 경제를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몇년전의 만성적 침체를 벗어나 8%이상의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습니다.정당성과 효율성을 함께 지닌 민주정부만이 국민에게 참다운 번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민주화투쟁을 통해 자유 없는 번영은 진정한 번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자유 없는 번영은 풍족한 노예생활과 같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태동시키고 있습니다.정보화의 거대한 물결이 세계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고 있습니다.동양과 서양이 진정으로 만나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화의 조화」를 통해 인류역사 추진의 두 수레바퀴가 되는 위대한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진리의 산실인대학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계가 새로운 문명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나는 세계공동체의 시대이자 지식사회의 시대를 맞아 세계 대학간의 교류와 협력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해졌음을 강조하고자 합니다.이미 조지타운대학을 비롯한 미국의 대학에서 교육받은 한국의 인재들은 한국사회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지금도 5만여명의 한국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시아는 이제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름으로써 여러분의 새로운 개척지가 될 것입니다. 한·미 우호관계는 자유와 번영의 가치 아래 새로운 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성숙되어갈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 중견작가 유순하씨 새 장편소설 「아주 먼 길」

    ◎“가진 자의 탐욕 날선 언어로 해부” 지난 8∼9년간 집중적인 글쓰기로 주목 받아온 중견작가 유순하씨(52)가 새 장편소설 「아주 먼 길」을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다. 희곡 「인간이라면 누구나」로 68년 사상계를 통해 데뷔한 그가 첫 소설집을 낸 것은 지난 88년.이후 그는 마치 늦은 물오름에 한풀이라도 하듯 1년에 두세권씩 단행본을 쏟아냈다.노동문학으로 분류되는 「생성」「배반」,일본에 대한 민족감정을 다룬 「고궁」,우리 사회 중간층의 목소리를 묶어낸 창작집 「벙어리 누에」를 거쳐 94년 여성운동의 문제점을 추궁한 「한 몽상가의 여자론」,올초 대기업 삼성의 실체를 파헤친 비평서 「삼성,신화는 없다」까지 그는 남들이 손대지 않는 곳으로 끊임없이 글감의 폭을 넓혀온 소설가로 꼽힌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그의 작품을 하나로 묶는 끈이 있다.그것은 바로 상식을 존중하는 균형감각이다.사람살이의 소박한 윤리를 믿는 그의 소설은 간혹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것이 작품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하는 받침대 역할을 해왔다. 「아주 먼 길」은 이런 점에서 지극히 유순하적인 작품이다.서울의 대학휴학생 영선과 농촌 처녀 준희의 눈으로 번갈아 쓰이는 이 소설은 가진 사람들의 탐욕과 타락을 날선 언어로 해부하면서 인간됨의 본질을 묻고 있다. 물욕에 휘둘리는 아버지와 아귀 같은 어머니를 미치도록 증오하는 영선은 어머니가 작은 부인임을 알게되고부터 스스로를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그런 그에게 뒷산의 들풀처럼 스스럼 없는 준희가 나타난다.또 자신보다 더 버거운 삶을 버텨온 이복형제들,식구들의 패악을 감싸는 가정부 재윤 어머니도 그의 마음을 흔드는 인간성의 소유자다.소설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과 「한때 소녀시절엔 미래에 대한 보랏빛 꿈을 꾸며 흰천에 꽃수를 놓던」 그러나 지금은 욕망 때문에 쓰러진 어머니의 비참한 발작앞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하는 영선의 깨어남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밋밋해뵈는 얼개지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책읽는 즐거움을 더한다.「맑은 공기가 콧구멍을 거쳐 가슴에까지 이어 흐르는 소리가 호르르 울리는듯했다」「문득문득 들국화가 나타났다.더러는 두셋이 함께,더러는 홀로,더러는 건성드뭇이 무리를 지어」같은 아름다운 문장에서 지은이의 농익은 붓끝을 엿볼 수 있다.
  • 14년만에 연작시 「풍장」마무리 황동규씨(인터뷰)

    ◎“「풍장」 처음 쓸때보다 삶 더 사랑하게 됐죠” 『연작시 풍장을 쓰면서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가장 중요한 변화는 14년전 이 연작을 시작했을 때보다 삶을 더 사랑하게 됐다는 점이겠지요』 시인 황동규(57)씨가 80년대 자신의 상징같았던 「풍장」연작을 70편째로 매듭지었다.「현대문학」 7월호에 발표한 여섯편을 마지막으로 오래 붙들었던 시적 화두에 마침표를 찍은것. 『이 연작을 처음 발표한 82년 무렵에는 삶 아니면 죽음,선 아니면 악의 극명한 이분법이 사람들을 옥죄고 있었지요.어느날 대학시절 여행다니면서 본 풍장의 허허로운 광경이 해독제처럼 떠올라 나를 시로 끌어갔습니다』 「내 세상뜨면 풍장을 시켜다오/…/바람을 이불처럼 덮고/화장도 해탈도 없이/…/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바람과 놀게 해다오」 세상의 거친 요철을 통째로 감싸안을수 없어 고통스러웠던 80년대 풍장의 무엇이 시인을 끌었는가는 자명해보인다.시체를 밝은 대기속에 꺼내어 말리는 이 장의는 삶도 아니지만 시커먼 흙속의 완전한 죽음도 아닌것처럼 시인에겐 비쳐졌을 것.삶과 죽음사이에 어스름처럼 내다걸려 그 경계를 허무는 이 둥근 맞물림의 공간이 당시 시대의 부채감에 허덕이던 시인에게 바람처럼 홀가분한 삶의 또다른 경지를 드러낸 것이다. 「세상 뜰 때는 심장 멎기 직전/눈이 먼저 꺼지지 않겠는가/어느 오후 창밖 싱싱한 카나다 단풍/그 옆 느티나무 이층 까치집/그 아래서 난폭하게 타고 있는 등꽃 불떨기/아 허파꽈리들 온통 청보라로 익히는 불떨기들을/천천히 다시 한번 만나보게 하고/동작 그만,하며 세상 슬몃 눈에 들어와 어두워질 때/“세상에서 만난 사람들 하나하나 확연했어,/예쁜 덧니까지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덕수궁 국어연구원 앞에서 시인은 삶,죽음같은 말들의 비릿한 군살을 완전히 털어버린 가벼움으로 기자와 만났다.『지난 14년간 산보하듯이 띄엄띄엄 연작시를 써왔다』는 황시인.『이제 정말 풍장으로 풀것은 거의 다 풀었다』고 해맑게 웃는 그가 또 어떤 엄숙한 세계로 날아가 개구장이 같은 가벼움을 전염시킬지 궁금하다. 「풍장」은 올 9월초문학과 지성사에서 시집으로 묶여 나오고 연대교수 실비아 브레젤에 의해 독어로도 번역된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세계,「안전지대」 2곳 맹포격/스레브레니차지성은 완전 장악

    ◎나토 강경대응 태세 【사라예보·파리 로이터 AFP 연합】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유엔 안전지대인 스레브레니차를 완전 장악한 뒤 제파,고라즈데등 다른 안전지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12일 프랑스군의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라크대통령은 이날 강력한 군사대응을 강조하면서도 『유엔평화유지군이 스레브레니차를 다시 탈환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유엔군의 주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적절한 결과를 도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앞서 알랭 쥐페 프랑스총리는 스레브레니차 함락은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프랑스는 이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어떤 군사 작전에도 참여할 준비가 돼 있으며 관계국들과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세르비아계는 3만여명의 난민이 몰려든 스레브레니차지구의 포토카리 마을을 점령했으며 이곳에 있는 유엔평화유지군의 마지막 캠프도 함락됐다. 세르비아계 사령관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은 12일 4백여대의 트럭과 버스와 함께 포토카리에 도착한 뒤 회교도들을 강제로 소개시키기 시작해 「인종청소」를 재개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믈라디치는 유엔군 소속 네덜란드 지휘관에게 이들을 우선 세르비아계 관할지역인 인근 브라트나치로 데리고 가겠으며 16세 이상의 남자에 대해서는 회교도측에 인도하기 전에 「전범」여부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세르비아계의 공격에 대해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보스니아대통령은 유엔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무력사용을 통한 유엔안전지대의 탈환을 요청했다. 나토 전투기 사령관 레이턴 스미스 제독은 보스니아에 있는 유엔군측이 요청할 경우 보스니아에 대한 추가공습을 실시할 준비가 돼 있으며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으로 이를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영국과 네덜란드는 특공대와 함정,헬기 등으로 구성된 특수임무부대를 보스니아에 파견하기 위해 소집돼 대기중이며,다른 부대와 함정들도 아드리아해로 이동하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대기 상태에 있다고 영국의 PA통신이 보도했다.
  • 필기시험 폐지의 문제(임춘웅칼럼)

    대기업들이 올해부터 신입사원을 뽑는데 종전의 필기시험제도를 없애고 대신 인성과 적성을 주로 보는 면접시험 중심으로 채용제도를 바꿔볼 계획이라고 한다. 현대그룹이 일찌감치 올하반기 대졸사원 채용때부터 필기시험을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기아그룹도 필기를 없애는 대신 면접시험을 두차례에 걸쳐 실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삼성그룹의 경우는 기왕의 필기시험을 폐지하는 대신 영어시험은 TOEIC등으로 대체하고 상식시험을 지성·인성·지능지수등을 알아보는 다른 시험으로 바꿔보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보도됐다.그밖에도 LG·쌍룡등 많은 기업들이 사원을 뽑는데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탈피해보려는 여러가지 구상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변화 움직임은 기존의 시험위주 채용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학력위주 평가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온 것이어서 그 병폐를 새삼스럽게 다시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런 점에서 잘못된 것을 시정해보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 도입하려는 제도에는 또다른 문제가 없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어디 하나가 한다면 줄줄이 따라나서는 유행성 「바람」의 문제점도 지적해두고 싶다.필기시험을 없애도 학교성적이 고려될 것이므로 학력평가가 아주 없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렇긴 해도 학교마다 다른 성적을 어떻게 비교할 것이며 인성·적성을 가려내는 합리적인 방법이 있는가도 알아봐야 한다. 음악대학 입시에 부정의 소지가 있다고 해서 교수와 학생사이에 커튼을 쳐놓고 실기테스트를 하는 나라에서 면접위주의 채용시험이 얼마만큼 공정성을 유지할수 있는가도 문제다.인성이나 적성을 적절하게 테스트 할수 있는 방법이 먼저 검토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학벌중심으로 채용이 될 가능성이다.비교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세칭 일류대학 중심으로 뽑는 경향이 현저해질 것이다.그렇게 되면 지방대나 이름없는 대학 출신자들은 대학동안 열심히 준비를 했어도 경쟁의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새로운 모순이 나타나게 된다. 대학의 추천이 주요평가 기준이돼있는 미국의 경우 한때 국무부요원의 40%이상을 동부 아이비 리그 출신자들이 차지할 때가 있었다.그런 문제가 제기됐을때 미국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식 공채방식을 검토해보자는 논의도 있었다.우리나라 처럼 학연·지연·혈연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풍토에다 부패요인 마저 겹쳐있는 사회에서 필기시험 전면폐지는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적지않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시험위주 평가제도는 많은 병폐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때묻은 계층구조를 허무는데 일조한 일면도 없지 않다.기업이 모처럼 시도해보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폄하하려는게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를 도입할 때는 보다 신중해야하고 다른 문제는 없는가도 사전에 살피는 지혜가 따라주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 미등단작가 장편소설 “화제”

    ◎김운비 작 「청동입술」·김이소 작 「칼에 대한 명상」/2명 모두 불문학박사… 소재·시각 독특,주요 출판사서 기획/청동…­「남녀의 완벽한 만남」에 회의적 물음표/칼에…­자살 한국 애인 회고한는 프랑스 남자 주요 문학출판사들이 동시에 미등단작가의 장편소설 출간에 나섰다.문학과 지성사에서 「청동입술」(김운비 지음)을 냈고 민음사가 「칼에 대한 명상」(가제·김이소 지음)을 곧 출판할 예정.민음사는 이밖에도 올 하반기에 미등단작가의 장편 두어권을 더 내놓을 계획이다. 신춘문예 당선이나 문예지 추천이라는 제도권 등단절차를 거치지 않은 신인의 약점을 굵직한 출판사의 이름이 보완해주고 있는데다 이 신인들의 작품이 참신한 소재,독특한 시각을 지니고 있어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청동입술」의 저자 김운비씨(38·본명 김지영)는 프랑스 제7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고 평론가로 글을 써왔지만 소설은 이 책이 첫작품.복거일·이명행에 이어 문학과 지성사가 전격적으로 단행본을 할애한 세번째 미등단신인이라는 점이 소설에쏠리는 주목을 배가하고 있다. 이같은 외부적 요인 외에 멜로드라마에서 기본틀을 빌려온 듯한 이 책은 소설 자체로도 흥미롭게 읽힌다. 대학시절 연인관계였다가 헤어진 류수와 민구는 류수가 프랑스에서 돌아오면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세월의 틈새엔 정윤이라는 또 다른 여자가 끼어 있다.민구를 사이에 둔 류수와 정윤의 삼각관계는 현아·한석·정길·우희 등 수많은 남녀와의 부딪침을 거치면서 욕망의 증식과 가지치기를 거듭한다. 라이벌로 인해 더욱 타오르는 삼각형의 욕망은 욕망의 대상이 된 타인의 전존재를 삼키려 들지만 그 끝자리에서 그러쥐는 것은 대상의 실체가 아니라 뾰족할대로 뾰족해져 재가 된 자신의 마음의 흔적뿐이다. 이 책은 욕망의 이같은 메커니즘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완벽한 만남이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적 물음을 던진다는 점에서 연애소설을 뛰어넘는다. 「칼에 대한 명상」의 김이소씨(40·본명 김정옥)도 역시 불문학박사로 로브그리예를 전공했다.불혹 나이의 늦깎이 데뷔지만 문학공부는 소설쓰기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한국유학생의 연인이었던 프랑스남자가 자신의 애인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이 유학생이 귀국한 뒤 자신에 대한 몰이해와 구직난 등의 문제와 부딪쳐 고민하다 자살에까지 이른다는 줄거리. 하지만 이 소설은 뚜렷한 스토리를 들려주거나 의미있는 전언을 남기기보다는 읽는 이의 감정을 고조시켜가는 과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마치 음악을 들으며 언어를 떠난 순수감정의 세계를 추체험하듯이 소설이 바로 이런 순수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여기엔 소설이 더이상 진리가 목적이 아니라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예술행위라고 한 로브그리예의 영향이 강하게 배어 있다. 민음사 편집주간 이영준씨는 『제도권 문단서 동떨어진 작품중엔 뜻밖에 전율할 상상력으로 세상보기의 새로운 시각을 여는 작품이 많다』면서 『앞으로도 미등단작가의 참신한 문제작을 발굴,소개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문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주요출판사들이 이처럼 미등단 신인의 작품 출판에 본격적으로 나섬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는 소설출판의 흐름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 대기업 채용방식 달라진다/현대이어 쌍용·기아 필기시험 없애

    ◎하반기부터/삼성도 검토… 면접·토익 활용방침 현대그룹에 이어 쌍용·기아그룹 등도 올 하반기의 공개채용때부터 필기시험을 없애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이에 따라 대기업들의 채용방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쌍용은 필기시험을 없애는 대신 입사지원서에 지원동기,근무조건,자기계발 계획 등을 기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아도 필기시험을 폐지하고 면접을 두차례 실시할 계획이다. 쌍용과 기아그룹은 종전의 영어,상식 등의 필기시험에서 평가한 부분을 면접을 통해 보강하거나 TOEIC(직장인 영어능력테스트)성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다.대우그룹은 올 하반기부터 공개채용하지만 필기시험은 치르지 않을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영어시험을 TOEIC 등으로 대체하고 상식시험을 지성,인성,지능지수 등을 검사하는 삼성자격시험으로 대체키로 하는 등 필기시험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대그룹은 올 하반기 대졸신입사원채용때부터 필기시험을 없애는 대신 면접을 종전의 한번에서 두번으로 늘리기로 했다.주요 대기업들은 올 하반기 채용규모를 전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늘릴 계획이다. 한편 유행처럼 필기시험을 없애려는 일부 기업들의 움직임에 대해 비판도 나오고 있다.필기시험은 없앤다고 하지만 TOEIC시험이나 인성시험 등을 치른다면 큰 차이는 없는데다 필기시험보다 면접의 비중을 너무 높게 하면 비일류대출신에게는 다소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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