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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지성’ 서울대 교수:4(공직 탐험)

    ◎학문외 ‘자리’에 한눈 파는 교수 늘어/정치지향 교수엔 동료들 냉담/TV자주 나오는 탤런트 교수도 외면/총장직선제후 ‘보직’ 경쟁 치열 ‘정치 교수’ ‘탤런트 교수’ ‘보직 교수’.교수 본연의 길과는 다른 길을 가는 교수들을 일컫는 말이다.서울대에는 이런 교수들이 유독 많다.지식인의 상징처럼 된 서울대 교수에 대한 각계의 유혹이 큰 탓이다. 정·관계로 진출하는 정치교수는 성격상 사회대에 집중한다.역작용으로 사회대 교수들의 정치교수에 대한 견제는 냉혹하다.지난해 경제학부 裵茂基 교수 사직사건이 대표적이다.정·관계 진출의 교수직 휴직을 허용한 교육공무원법이 96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다음인 지난해 3월 裵전교수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그러나 경제학부 교수들은 회의를 벌여 격렬한 토론끝에 한표차로 사표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었다. 비슷한 시기 자연대 權肅一 교수가 휴직하고 과기처장관으로 입각한 경우와는 대조적이었다. 李洪九 주미대사(전 총리·정치학과),李賢宰 전 총리(경제학과),趙淳 한나라당 명예총재(전 서울시장·경제학과),韓完相 전 부총리(사회학과),盧在鳳 전 총리(외교학과),金學俊 인천대 총장(전 의원·정치학과),崔昌圭 성균관장(전 의원·정치학과) 등 정·관계로 떠났던 사회대 교수들은 모두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회대 교수들이 정·관계진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한 외교학과 교수는 “사회과학은 현실과 유리될 수 없다.현실과 학문세계를 접목하면 오히려 양쪽 모두 발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동안 정·관계에서 일했던 교수들은 제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망신만 당한 경우가 많고,결국 ‘꿩먹고 알먹기’식의 자기 안위 살피기에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5·6공때 많이 배출됐던 정치교수가 사회의 전문화로 줄어드는 반면,최근에는 ‘보직교수’가 극성이다.젊은 교수들은 보직을 피해 도망간다고 하지만,보직을 탐내는 교수들이 많다.보직에 앉으면 수업이 줄고,판공비가 따로 나오는 데다가 이름 알리기도 좋다.서울대의 경우 학장을 비롯,각종 처장,연구소장 등의 보직이 교수직의 3분의 1에 이른다. 총장 직선제가 되면서 보직경쟁은 전쟁이 됐다.총장이 선거운동에 참가한 교수들을 주요 보직에 전면 배치하는 관행이 생긴 탓이다.李基俊 교수의 새 총장 취임으로 주요 보직이 모두 바뀔 것이라며 술렁이는 분위기다. 한 법대 교수는 “일부 교수들이 보직을 감투로 생각해 경쟁이 심하다.과거 총장 임명제때는 정치권등에 얘기해 보직을 차지하더니,총장 직선제 이후에는 총장후보 사람이 돼 보직 따기에 혈안”이라고 말했다. TV나 신문지상에 자주 나서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탤런트 교수’도 지탄대상이다.동료교수들의 경원과 함께 학생들로부터도 외면을 받는다.강의시간을 자주 비우고 시간 내내 잡담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공대 L모군은 “학점이 모자라 결석하고도 좋은 학점을 얻고 싶을 때나 탤런트교수들의 수강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 국론분열 충동질 중단 촉구/崔章集 정책자문위원장

    ◎‘민족해방전쟁 주장’ 북 성명서는 논지 왜곡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자문기획위원장은 13일 북한 조선기자동맹의 12일자 성명서와 관련,“본인이 6·25전쟁을 남침이 아닌 민족해방전쟁으로 보았다고 주장한 문제의 성명서는 나의 논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 변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崔위원장은 “월간조선의 왜곡사건에 이어 발표된 북측의 성명서는 남북한의 냉전기득세력이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崔위원장은 “북한의 성명서는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거부하고 냉전적 긴장을 유지하려는 북한 강경세력의 음모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북측은 우리 사회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같은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기자동맹중앙위(위원장 서동범) 명의의 성명을 발표,“崔章集 교수의 논문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여 지성과 양심을 가진 학자로서의 견해와 입장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라면서 “한 교수의 논문을 건 사상시비는 정의와 진리,남조선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도전이며 낡은 냉전 시기 사고방식으로 군사파쇼 시기를 재연시키려는 극우보수세력의 발악”이라고 비난했다고 중앙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성명은 “이번 사건은 악랄한 반북 대결 입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조선일보가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라는 것을 만천하에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한국의 지성’ 서울대 교수:3(공직 탐험)

    ◎1년에 논문 1편도 안쓰고 버티기 가능/논문써도 인센티브 없어/연구 의욕 꺾는 환경 큰 문제/학문 흐름 쫓아가기도 벅차 “경제학부의 한 교수님은 예전 강의노트를 계속 사용하시는 것 같은데,오늘은 정말 화가 났다.수학공식을 칠판에 쓴 뒤 ‘이해 되는 사람 손들어봐, 어이 자네 나와서 설명좀 하게’하고 본인은 경제신문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만으로 1시간을 채웠다” 서울대 한 학부생이 PC통신에 올려놓은 글이다. 서울대에도 ‘노는’ 교수는 많다.노트 한권,슬라이드 한장으로 수십년 버티는 교수,시험문제가 바뀐 적이 없는 교수 등의 명단이 학생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한다.또 대학원생이 쓴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슬그머니 갖다붙여 ‘업적’을 쌓는 교수도 있다. 논문은 교수 평가의 바로미터다.미국 과학인용목록(SCI)의 대학별 논문발표 순위를 보면 서울대는 96년 157위,97년 126위 등 100위 안에 좀처럼 들지 못한다.97년의 경우 1위인 하버드대의 논문발표수가 8,364편,2위 도쿄대가 5,536편,3위 워싱턴대가 4,769편인데 반해 서울대는 1,395편이다.세계 유수대학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난다. 전북대 徐모 교수는 “채용 당시는 우수한 인력이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서울대교수로서의 능력이 의문시된다”고 말했다.서울대 교수들도 이같은 현실을 인정한다.‘탈수기로 빨랫감을 쥐어짜듯’ 개인의 에너지를 100% 뽑아내는 미국 등의 교수에 비하면 ‘천국’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빈약한 업적에 대해 소장파 교수들은 연구를 교수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학교 및 사회분위기와 그에 순응하는 교수의 자세를 꼽는다.비교적 논문발표가 많은 사회대의 尹모 교수는 “교수에 대한 평가와 인센티브가 제대로 부여되지 않는 상황에서 논문을 적게 쓰나,많이 쓰나 차이가 없다.일년에 논문 하나 안 써도 버틸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경제학부의 한 교수도 “교수가 신문에 칼럼쓰고,외부강연하고,잡문이나 쓰는 것으로 더 평가받는 현실에서 진득한 연구가 될 리가 없다”고 했다. 연구에 욕심많은 교수들을 울리는 비(非)학구적 환경도 문제다.각종 행정 업무처리 때문에 학기 중에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밤늦게 공부할라치면 학교측에 유숙계를 제출해야하는 형편이다.또 외국학회에 가기 위한 출장도 한 학기당 1주일로 제한돼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외국 유명저널에 실린 논문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의 얽히고 설킨 선후배관계도 연구발전의 저해요인이다.이에 대해 외교학과의 한 교수는 “선배의 권위로 모든 것을 억누르는 수직적인 분위기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래서 감히 ‘나는 다르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받고 미국에서 조교수를 거친 뒤 서울대에 부임한 李모교수(37)는 “서울에 온지 4년만에 하버드대 동료들을 만나보니 내가 학계정보,연구성과물 모든 면에서 밀리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세월이 흐를수록 더 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 ‘한국의 지성’ 서울대 교수:2(공직 탐험)

    ◎자연大 교수 90% 외국 박사 출신/그나마 십중팔구 미국 유학파/도제식 교수키우기 경향 많아/전임강사서 정교수까지 11년 “서울대 교수는 꿈도 못 꿉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鄭모씨(29).하루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책과 씨름하며 교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하지만 모교에 남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국내에서 대학원과정을 마친 이른바 ‘국내파’는 틈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수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외국유학 경력을 가져야한다.특히 미국의 대학에서 석·박사과정 5년 이상을 거쳐야 한다.IMF이후 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더욱 심화된 현상이다.특히 이공계통은 국내박사와 미국박사의 차이가 크다.미국 유명 교수의 사사를 받아야 저명한 명저널에 논문이 실릴 가능성이 커지고 그래야 연구실적을 높게 평가받기 때문이다.자연과학대학 교수 중 10% 정도만 서울대 박사 출신이다.대학 전체로 따져도 서울대박사 출신은 35%에 불과한 형편이다. 서울대 교수의 미국학파 편중이 이따금 문제점으로제기되기도 한다.그러나 세계학계를 주도하는 곳이 미국이기 때문에 십중팔구 미국으로 향한다.독일 등 유럽유학파가 많았던 법대도 최근에는 미국쪽으로 바뀌는 추세다. 게다가 요즘은 서울대에 오기 전에 타대학에서 3∼4년 교수경력을 갖는 것이 필수다.이때도 이왕이면 미국대학의 경력이 좋다.이같은 과정을 모두 거쳐야 당당하게 서울대 교수지원서를 낸다.경력이 좋으면 바로 조교수로,그렇지 않으면 전임강사로 출발한다.조교수를 4년 정도 하고나면 부교수로 승진한다.보통 전임강사에서 정교수까지는 11년 정도 걸린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도 인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빛을 보기 어렵다.특히 교수 정원이 적은 과는 대학 또는 대학원생시절부터 교수의 인정을 받고 교수의 이론을 승계(?)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지난해 치과대학 임용비리가 터지긴 했지만 교수임용에 돈이 개입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불공정시비가 불거지는 것은 주로 인맥에 의한 비리다. 치과대학의 한 교수는 “학문성격이 도제식이어서 대학원 때부터 후계자 비슷하게 키우는경향”이라고 말했다.법대의 모 교수도 “과거 일부 과에서 자기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기 위해 상대후보 점수를 깎은 사례들도 더러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인문대 모과는 여성을 교수로 채용하지 않는다.몇년전 패기만만한 한 여학생이 석사과정 중 교수,동료들과 MT를 다녀온 뒤 학문의 길을 포기했다.교수가 남자동료들과는 학문토론을 벌이면서 자신에게는 잔심부름만 시키는 것을 보고 ‘아무리 해봤자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바늘구멍 만큼 들어가기 어려운 요즘 서울대 교수채용을 보며 노교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사회가 전반적으로 팽창하던 시절,손쉽게 서울대 교수가 된 세대들이다. 정년을 2년 앞둔 사범대학 모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럴만도 하다.“우리 때는 공부하기야 어려웠지만 교수되기는 쉬웠다.내 경우 해당과목을 전공한 교수가 국내에 없어 유학 중 학교측이 ‘귀국할 때까지 교수자리를 비워놓고 기다리겠다’고 연락해왔다.좋은 시절이었다”
  • ‘한국의 지성’ 서울대 교수:1(공직 탐험)

    ◎선후배·사제간 교수 대물림 일반화/친분이 교수임용 좌우/비판·경쟁 목소리 적어/학풍 정체로 학문 퇴보 국립 서울대학교 교수. 한국 최고의 명예직으로 꼽히는 이들도 법률상으론 공무원 규정을 적용받는다. 교육공무원 신분이다. 이들은 공직체계 속에서 신분보장을 받는 반면,이러 저러한 규제들이 연구활동에 장애가 된다고 말한다.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서울대 교수사회,그래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최고의 지성’ 서울대 교수는 어떤 모습인지,바람직한 상(像)은 어떤 것인지 서울대 안팎의 평가와 진단 등을 통해 조명해 본다. 서울대 교수들은 대부분 선·후배사이다.대부분 대학생 시절부터의 선·후배관계다. 사제지간도 많다. 서울대 학부졸업,또는 같은 과(科) 출신들로만 구성돼있는 ‘동종번식(Inbreeding)’의 전형이다. 98년 4월 현재 서울대교수 1,471명 가운데 95.6%가 서울대학부 출신이다. 연세대 80.3%,고려대 60.1%,부산대 47.9%,외국어대 35.5% 등 다른 대학과 비교하면 동족번식의 정도를 쉽게 알 수 있다. 과별로는 원로교수를 중심으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 서열이 대학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신규교수 채용부터 학문의 성격까지. 교수공정임용을 위한 모임의 張正鉉 간사는 “서울대 교수공채의 경쟁률은 기껏해야 2대 1정도다. 다른 학교들은 수십대 1인 경쟁률을 보이지만 서울대는 과별로 교수가 내정돼있을 때가 많다”면서 “원로교수를 정점으로 교수들이 순서대로 자기 후계자가 될만한 후배들을 교수로 채용하는 게 다반사”라고 밝혔다. 이 모임에 고발된 사례를 보면,서울대 모과의 경우 한 교수가 후계자로 점찍은 후배를 신임교수로 채용하기 위해 연구실적물로 인정치 않는 무자격논문을 그대로 통과시킨 사례도 있다. 서울대의 동종번식에 대해서는 바깥에서의 비판 못지 않게 안에서도 할 말이 많다. 외부에서 ‘학문의 근친상간’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며 외부대학학부 출신 쿼터제도입을 주장하지만,서울대 교수들은 객관적 능력 차이를 근거로 쿼터제반대입장을 보인다. 미국처럼 우수대학이 군(群)을 이루어 평준화돼 있는 상황이 돼야 인브리딩이근절될 것이라고 서울대 교수들은 말한다. 경제학부의 한 교수는 “최근들어 다른 대학출신을 뽑아보자는 의견도 많았지만,객관적 지표들,즉 외국저널에 실린 논문,미국대에서의 교수경력 등에서 이미 차이가 난다. 객관적으로 서울대 출신이 뛰어난 경우가 많은데 뽑지 말란 말이냐”고 말했다. 치과대의 모교수는 “교수는 박사학위를 얻은 곳이 어디냐로 평가해야 한다. 교수의 학부를 따지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사범대의 모 교수도 “오랜 관찰결과 ‘역시 서울대 출신이 낫더라’는 얘기를 한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서울대의 극심한 동종번식은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된 학풍이나 교수 개인의 자율성 제한 등으로 이어져 결국 학문의 전반적인 퇴보로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모두가 선·후배로 줄을 선 상황에서 비판과 경쟁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선배의 학설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기도 어렵다. 그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모교출신은박사 후 강사로만 가르칠 수 있고,타대학의 교수경력을 거쳐야만 교수가 되도록 관습법화하고 있고 미국은 인브리딩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간 친분이 강조될 경우 비판을 통한 학문의 발전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판이 없는 교수사회는 학문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이 ‘교수천국’이며 그중에서도 서울대는 최고 특혜집단이다” 한 교육계 인사가 서울대에 울리는 경종(警鐘)이다.
  • 일제·독재로 비틀린 역사 새로쓰기(서울신문이렇게바뀌었습니다:上)

    ◎양심적 개혁인사 칼럼 대폭 늘려 서울신문은 11일 대한매일로 새로 태어난다. 이에 앞서 이미 서울신문은 내용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행정뉴스’면 신설과 여러 특집보도는 그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또한 외부 필진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신념과 양식을 지닌 각계 인사를 폭넓게 포함시켰다. 이 모든 것은 새로이 출발하는 대한매일이 공익정론지로서 나아가는 데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필진 다양화·논조 변화/양비론적 시각 탈피/임수경씨 글 호평 받아 공익정론지 대한매일로 재탄생하는 서울신문의 많은 변화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필진의 다양화와 논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우선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기 위해 칼럼을 비롯,각종 외부 기고를 대폭 늘렸다. 그리고 필진의 선정에 있어서도 그동안 제도권 언론에 의해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개혁인사들에게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꾸며지는 서울광장,굄돌 등 고정칼럼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다양한 지적 욕구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광장은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동국대 황태연 교수 등 젊은 지성들을 포함한 각계각층 필진 16인이 꾸며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8,9월에 굄돌 필진으로 참여했던 임수경씨의 경우 젊은 통일운동가로서 진솔한 삶의 얘기들을 들려줘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회사의 입장을 나타내는 사설과 사내 필진들에 의한 칼럼들은 공공이익과 국민복지,민족화합을 앞세우고 2000년대를 앞서간다는 대한매일의 다짐하에 집필되고 있다. 그동안 상당부분 치우쳐 있던 기회주의적인 양비론적 시각을 탈피하여 민족정론의 입장에서 분명한 태도를 밝혀나가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내 기명칼럼으로는 김삼웅칼럼,림춘웅칼럼,장윤환칼럼,박갑천칼럼,박강문코너 등이 있으며 논설위원 등이 집필하는 ‘외언내언’과 ‘시론(時論)’,데스크의 ‘데스크시각’,일선기자의 ‘오늘의 눈’,독자들이 참여하는 ‘기고’와 ‘발언대’ 등 풍부한 오피니언 난을 꾸미고 있다. 한편 독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집 시리즈물도 기획되고 있다. 특히한국의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교수가 11일부터 주간 연재할 ‘문학과 사회와 역사’는 해방 이후 변혁기에 큰 역할을 해온 우리 문학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밝히는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대한매일신보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교수가 연재할 ‘대한매일 비사’는 한말 구국항일의 숨은 일화들을 낱낱이 파헤쳐줄 것이다. 아울러 대한매일의 문화면은 ‘문화국가’를 제창한 선각자들의 뜻을 좇아 문학,출판,공연,미술,문화정책 등 전 분야에서 우리것의 특화에 역점을 둔 지면으로 꾸며나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 건설에 보탬이 될 지면으로 특화를 이뤄나가고자 한다. ◎친일파·민주열사 연재/한국언론 새 지평 열어/금지문화·인생도 시리즈로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통해 정직한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서울신문은 과거 일부 왜곡보도에 대한 반성 위에 정직한 역사를 기록하는 올바른 언론의 길을 가기 위해 ‘정직한 역사 되찾기’ 장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친일파와 독재권력에 의해 왜곡됐던 현대사를 바로잡아 ‘정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로,서울신문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의 재조명을 시작으로 지난 5월 시작된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친일파와 독재권력에 의해 폄하됐던 金九 선생의 재평가와 ‘악법의 문제’를 점검한 후 지금은 ‘민주열사 열전’과 ‘친일의 군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일의 군상은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했으면서도 해방 후 독재권력과 결탁하여 지배층을 형성했던 친일파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친일행위자들은 해방 후 당연히 단죄됐어야 했다. 그것이 역사의 정의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 후에도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그 결과 민족정기가 훼손되고 정의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과 기회주의·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구조적 모순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총체적 사회문제의 원류는 친일파 청산의 실패임을 언론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실상을 외면해 왔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정직한 역사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신념으로 현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인 친일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언론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친일파문제를 서울신문이 처음으로 파헤치는 것은 한국언론의 새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일이다. 서울신문은 또 친일세력과 손을 잡은 독재권력에 저항하며 인간다운 삶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민주열사 열전을 연재하고 있다. 민주세력의 처절한 투쟁이 민주화의 불꽃이 되어 오늘의 밝은 세상을 밝히고 있으나 그들의 고귀한 희생은 독재권력에 의해 역사의 뒷무대에 묻혀 왔다. 독재권력에 의해 금지됐던 노래·공연·책 등을 소개하는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도 연재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시작한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새로 태어나는 대한매일에 의해 더욱 알차게 꾸며질 것이다. 대한매일은 1900년대 초 절망적인 시대상황에서도 구국활동,민족·독립정신 고취 등 민족의 자주성과 긍지를 일깨운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과 공익을 위한 정론지로서 21세기를 여는 참언론의 길을 갈 것이다.
  • “崔章集 교수 저술 이념 논란”/해외 한국학 학자 22명 성명

    ◎“한국 학문·지성자유 큰 위협” 【로스앤젤레스 연합】 해외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고려대 崔章集 교수(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저술을 둘러싼 ‘월간 조선’과 崔교수와의 이념논쟁과 관련,한국의 학문과 지성의 자유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나섰다. 미국 UCLA의 신기욱 교수(사회학)와 존 던컨 교수(동아시아 언어문화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캐나다,유럽,일본,호주 등의 한국학 학자 22명이 서명한 성명을 발표하고 월간 조선이 시작한 이념논쟁을 ‘학문의 자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하루빨리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성명은 ‘월간 조선’의 주장을 “공산권이 붕괴된 지 10년이 지난 오늘 냉전시대에나 통할 단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사 이해를 국민에게 주입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비판했다. 교수들은 “崔교수의 저작 중에서 맥락을 무시한 채 몇몇 구절을 인용해 이를 좌익으로 규정한 조선일보의 주장은 부적절하고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해외에서의 한국학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성명을 발표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崔교수는 영문 저작을 통해 미국 학계에 비교적 잘 알려진 편으로,이념적 성향은 약간 진보적인 중도파로 평가되고 있다”며 그를 좌익이나 용공,친북 학자로 보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에 서명한 교수는 다음과 같다. 로버트 버스웰(UCLA 한국학 연구소장),최정무(UC어바인대학),최경희(시카고대학),도널드 클라크(트리니티대학),알렌 델리센(네덜란드 EHESS대학),존던컨(UCLA),카터 에카트(하버드대학),로스 킹(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고병철(시카고 일리노이대학),이홍영(UC버클리),존 리(어바나­섐페인 일리노이대학),데이비드 매캔(하버드대학),데니스 맥나마라(조지타운대학),배형일(UC샌타바바라),제임스 팔레(워싱턴대학),박순원(일본 게이오대학),마크 피터슨(브리검영대학),마이클 로빈슨(인디애나대학),신기욱(UCLA),클라크 소렌슨(워싱턴대학),티모시 탱걸리니(UCLA),케네스 웰스(호주 국립대학)
  • 관례에 묵살된 민주화 공로/장준하 선생 금관문화훈장 추서 무산

    ◎정부 “잡지공로자엔 ‘은관’이 최고훈장”/가족들 거부… 상훈행정 난맥상 드러내 사상계 발행인 고 장준하씨에 대한 금관문화훈장 추서가 무산됐다. 정부는 지난 27일 국무회의를 열고 장씨의 훈장건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훈격을 둘러싼 유가족의 반발로 안건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장씨 유족들이 은관문화훈장은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거부했기 때문.정부는 그러나 고인에 대한 훈장 추서는 잡지에 기여한 공로에 국한된 것인 데다 잡지 공로자에 대한 최고훈장은 은관이라는 점을 들어 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관행과 관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에 따라 오는 31일 잡지의 날로 예정된 장씨에 대한 훈장수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정부측은 훈장상신의 효력은 유효한 것이라며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가족들이 은관문화훈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씨에 대한 훈장추서는 이번이 두번째.지난 91년 광복절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광복군에 투신,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공적이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당정권을 거쳐 3공화국까지 사상계를 통해 민주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상계는 50년대 초반부터 70년까지 지성인의 사랑을 받던 대표적인 잡지. 53년 4월 창간돼 70년 5월 당시 김지하의 ‘오적’을 게재한 것과 관련,폐간되기까지 모두 205권을 냈다.50년대 후반에는 정치 및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가해 4·19의 정신적 배경이 됐으며 5·16 이후와 3공화국때는 군정연장 및 한·일수교에 반대한 것은 물론 언론탄압에 맞서 민주사상 고양에 앞장서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잡지계 및 장씨와 행동을 함께 했던 민주인사들은 정부가 형식논리에 치우쳐 은관훈장을 고집하는 것은 인색한 처사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한편 이번 훈장추서 무산은 96년에 있었던 소설가 황순원씨의 은관문화훈장 거부와 이효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국민훈장 석류장 거부와 더불어 상훈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 작은 책이 아름답다/판형·페이지수 많지않아 읽기 편해

    ◎‘사설이란’‘신혼여행의 사회학’ 등 주제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 작은 책들이 눈에 띈다. 신혼여행의 사회학(문학과 지성사),사설이란(LG상남언론재단),여성미학의 사회사(사계절)… 이 책들은 변형 4·6배판으로 크기가 작으면서 200쪽이 채 안된다.지면이 한정된만큼 심층적인 분석보다는 주제를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뤄 독자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그만큼 가격도 헐하다. ‘신혼여행의 사회학’은 신혼여행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저자 권귀숙씨는,신혼부부는 모두에게 완전히 공개되는 결혼식을 통해 ‘전면’에 나서지만 신혼여행을 통해 신비스런 사적 공간인 ‘후면’으로 빠져 들어간다고 말한다.신혼여행은 성(性)과 성(聖)의 세계이다.즉 육체적 결합을 통해 부부라는 사회적 승인을 받고 나아가 신랑·신부는 왕·왕비와 같은 일종의 성(聖)의 세계로 들어간다.그러나 시부모 선물을 준비하는 등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성(聖)의 세계는 속(俗)으로 돌아간다. 김호준 전 서울신문 논설주간은 ‘사설이란’에서 매사에 첫 단추를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듯이 관심을 끄는 주제와 핵심을 찌르는 서두로 독자의 눈을 붙잡아야 좋은 사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아울러 독자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면 논리적 수사적 긴박감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영화팬들이 명화의 멋진 장면을 기억하듯이 독자들도 사설의 마지막 부분을 기억하기 때문에 사설의 끝 단락은 고갱이처럼 알차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는 이어 ▲사설을 쓰기전 기승전결의 멋진 설계도를 작성하고 ▲문장은 간명하고 쉬우며 ▲주장은 분명해야 한다고 덧붙인다.LG상남언론재단은 컴퓨터활용 보도론(추광영 지음),신문기사 제목달기(임종업 지음),오프 더 레코드(윤석홍 지음)등 언론관련 실용서적도 함께 냈다. 미술평론가 강성원씨는 ‘한국여성미학의 사회사’에서 개화기 이후 100여년간 사회 변화에 따라 바뀌어온 한국여성의 이미지를 사진·그림을 통해 문화사적으로 분석했다.사계절 기획팀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제에 간략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금오신화(솔), 인간과 기술(서광사),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열림원)도 이런 류데 속한다.
  • 경성대 이재하 교수 ‘인간조조’ 출간

    ◎IMF 시대 조조의 지혜를 빌려라/“권모술수에 능한 난세의 영웅”/正史 입각 부정적 이미지 ‘세탁’/합리·실용주의 결합된 실천가로 실존 인물은 허구의 세계를 통해 미화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중국 후한(後漢)시대의 조조(曹操)는 아마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조조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간사함,권모술수,악의 전형으로 비춰진다. 소설에서 조조는 굶주림에 떠는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식량창고를 지키는 군사들의 목을 벤 뒤 양식을 빼돌렸다며 죄를 뒤집어 씌운다. 반면 유비는 현군으로,조자룡은 용맹성의 표상으로,제갈량은 지혜의 상징으로,관우는 신의와 충절의 대명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의 조조는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은 나관중이 촉이 한나라를 잇는 ‘촉한(蜀漢)정통론’에 섰기 때문이다. 부산 경성대 이재하 교수는 ‘인간조조’(바다출판사)1권 ‘천하의 지혜를 모아라’에서 허구가 아닌 정사,기록 등 사실에 입각,조조를 평가한다. 저자는 ‘조조 시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조 전문가. 저자에 따르면 조조는 한마디로 말해 현실주의자다. 즉 합리주의와 실용주의가 결합된 실천가라는 것이다. 조조는 익히 알려진대로 군웅할거로 사분오 열된 중원을 통일시킨 인물로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살았다. 태평성대에는 예와 덕 등 이상적인 관념으로 다스릴수 있지만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이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치밀한 전략과 전술,지도력과 용병술,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력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난세에 천하를 얻으려면 인재가 필요하다. 조조는 재능이 있는 사람은 과감히 등용했다. 지혜와 용기,인품까지 두루 갖추고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인품에 다소 흠이 있어도 능력이 뛰어나면 등용하는 것이 순리다. 이러한 그의 용병술은 중국의 전통적인 문관제도에 비춰보면 이단이라고 할수 있다. 조조는 부하인 서선과 진교가 다투자 이렇게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건안 5년(200년) 이전의 일은 일체 거론하지 마라. 만일 이전의 일로 이러쿵,저러쿵하면 죄로 다스리겠다’ 전란이 끊이지 않던 어지러운 시대에는 비방과 모함이 난무하고 흠집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일정 시점 이전의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새 출발 할수 있는 기회를 부여,인재를 얻은 것이다. 바다출판사는 조조의 인간적 측면과 병법을 다룬 2권과 3권도 펴낼 예정이다. 한편 문학과 지성사도 ‘천하경영,조조의 삶과 문학’(오수형 편역)이라는 책을 펴냈다. 1,2부에서 문장에도 뛰어난 재질을 보였던 조조의 시와 문장을 소개하고 3부에서 그의 일생을 서술했다. 두 책의 편저자들은 ‘난세를 헤쳐나간 조조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외환위기 뿌리는 지식인 출세주의/金容洛 희곡작가(발언대)

    서울대학교를 지망하는 문과계열 학생 중 80%는 궁극적으로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보려는 의도에서 서울대를 지망한다고 한다.사법고시나 행정고시 합격은 권력의 길로 나아가는 첩경으로 알려져 있다.그리고 권력은 곧 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부귀’와 ‘영화’를 동시에 누릴 권한이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고시를 통해 임용되는 판·검사와 고위 공무원의 위력이나 권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았더라면 나도 법과대학을 지망했을지 모른다.그런데 부모가 안 계셨을 뿐만 아니라,주변에 고시와 관련된 사람이 없었고,또 당시의 급한 상황에서 월급이나마 제대로 받는 직업이 은행원과 선생뿐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범대학을 선택했다. 요즘 나는 내 인생을 결정한 것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하나는 서울대 사대를 나왔다는 것과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것이다.우리 사회는 ‘학벌사회’라 나는 이 두가지만으로도 대우받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나는, ‘학벌사회’에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실력사회’ 즉 실력이 대우받는 세상에서 인정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실력사회란 실력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이다.이는 당연하며 바람직한 일이다.그러나 학벌사회란 특권이 개입되고,‘정직한 성공주의’가 아닌 ‘출세주의’가 끼어들어 실력사회가 타락한 것이다.못 배운 자들의 출세주의는 기껏해야 범죄를 저지르는 등 개인적인 비극으로 끝나지만 배운 자들의 출세주의는 사회 전체를 부패하게 만든다.더욱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배운자들이 권력·재벌과 야합하면 나라가 망하게 될 위험도 있다. 따라서 지식인 또는 지성인의 ‘출세지향주의’는 권력자나 재벌의 욕심 이상으로 부도덕한 것이다.출세주의 지식인들은 사회적 책임보다는 개인적인 욕심을 우선하며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소극적이다. 지식인의 책임의식은 ‘버려서는 안될 양심’이다.지식인과 지성인의 타락이나 부패는 사회전체를 비리와 부정부패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외환위기로 촉발된 IMF관리체제는 재벌과 정치인의 부정부패에서만 유래된 것이 아니다.사회 엘리트들의 출세지향적인사고를 배경으로 한 ‘타락’이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아닐까?
  • 金 대통령­기든스 총장 대화

    ◎“사회구조 모순 개혁차원 유럽서도 제2건국운동” 金大中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제3의 길’을 제창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이론적 지주인 앤서니 기든스 영국 런던정경대(LSE)총장을 만났다.대화는 당초 예정을 넘겨 45분동안 계속됐다.사상가적 일면을 갖춘 金대통령과 ‘영국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기든스총장간의 이날 대화는 기든스 총장이 주창한 ‘사회적 파트너십’과 우리의 ‘제2건국 운동’이 주제를 이뤘다.“매우 철학적이고 아카데믹한 대화였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총평했다. 먼저 기든스 총장은 金대통령의 ‘파트너십’ 질문에 “기본적으로 사회가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뒤 “먼저 기업을 살린뒤 성과를 분배해야 하며,한국도 그런 길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또 제2건국운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영국사회는 물론 유럽연합(EU)도 이런 통합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 뜻을 높이 샀다.아울러 “개혁은 어느 사회에서나 필요하다”면서 “제2건국운동은 근대 산업사회의 구조를 현대화하는 것으로 유럽에서도이같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에 金대통령은 “우리는 국가가 시혜만을 베풀지않고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적인 사회보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중국방문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기든스 총장은 金대통령이 92년 대선패배후 영국 케임브리지에 머물던 시절,수시로 대화를 나눴던 유럽 최고의 지성중 한명이다.金대통령이 이날 “지난 4월 런던에 갔을 때 케임브리지에 있는 줄 알고 연락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그는 이날 金대통령에게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모후 등이 받은 이 대학의 명예교수증을 전달했다.
  • 도척의 충견(金三雄 칼럼)

    요(堯)임금이 어느날 마을을 지나는데 개 한 마리가 사납게 짖어댔다. 도척(盜척)의 개였다. 요임금은 인품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치적에 대한 후세 사가들의 칭송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정도의 성군이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그의 인덕은 무변하여 마치 하늘이 만물을 길러줌과 같고, 그 슬기로움은 신명(神明)과 다를 바 없어 천지간에 모르는 것이 없고, 만민이 그의 성덕을 고루 입음이 흡사 초목이 태양을 향하여 우러러봄과 같고, 가문 날에 단비를 갈망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요임금은 한마디로 동양적 군주의 이상형으로 미화되고 찬미된 백세제왕(百世帝王)의 전범이다. 반면에 도척은 나날이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간을 회로 쳐서 먹는 등 난폭하기 짝이 없었고, 수천명의 도당을 이끌고 천하를 횡행하는 도적의 수괴였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흉악한 도적으로 친다. ○세금도적과 총격강도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향해 짖는 것을 척구폐요라 했다.개는 상대가 요라 하더라도 주인이 짖으라면 짖는 동물이다. 개에게는 성군의 덕보다 도적의고깃덩이가 더 값지다. 우리 사회에는 ‘도척의 충견’이 날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의 충견(忠犬)이 되어 독립지사들을 사납게 물어뜯는 것을 시작으로,군사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민주인사들을 짖어댄 번견(番犬)이 많았다. 일제의 충견과 군사독재의 번견들은 대부분 학벌과 학식이 출중한 지식인들이었다. 언론인도 적지않았다. 이들은 배운 학문의 가치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고깃덩이를 좇아 애국자와 민주인사들을 물어뜯거나 짖어댔다. 이권과 촌지의 고깃덩이에 눈이 멀어 양심과 지성을 포기한 도척의 충견들은, 그러나 사회가 달라져도 바뀔 줄을 모른다. 국세청 불법선거자금 모금사건이 절도라면 판문점 북한군 총격요청사건은 강도다. 전자는 나라의 곳간을 훔치는 국절(國竊)이고, 후자는 나라를 강도질하려는 국도(國盜)이다. 이런 국절과 국도의 충견들에게 고깃덩이를 미끼로 던지는 도척의 무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길들여진 ‘개버릇’그대로인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오늘 개회되는 국회는 우선 이 문제부터 규명해야한다. 정치쟁점이 아닌 실체적 진실규명에 노력해야 한다.두사건은 정파의 이해문제 이전에 바로 우리 공동체의 존립과 관계되기 때문이다.국회는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협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여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도척의 충견’과 ‘도척’을 국사범으로 처벌하고 야당 주장대로 고문조작이라면 ‘권력의 충견’노릇을 한 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진실과 국가기강 그리고 인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진실보도를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 정치문제화하면서 쟁점이 흐려지고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 매양 엄청난 사건들이 정치쟁점화로 흐지부지되면서 국법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도·비판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도 문제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보다 정파의 이해를 좇으려는 자세는 번견의 행동일 뿐이다. 지난해 모야당의원(당시)의 ‘명암사건’때의 보도태도와 이번 총격사건의 보도태도는 천양지차이다. 두 사건의 본질이 천양지간인데도 말이다. 우리 지식인과 언론인이 더이상‘도척의 충견’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깃덩이나 얻어먹으면서 아무소리나 마구 하는 ‘도척의 충견’들은 본성을 찾아야 한다. 인간이 짐승노릇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高建 서울시장 취임 100일 특별인터뷰

    ◎작지만 강하고 능률적인 市조직 구축/세무 등 민원현장 부조리 ‘백벌백계’ 대처/공공근로 일반­전문 이원화… 생산성 높여 高建 서울시장이 8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전남도지사,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국회의원,서울시장,명지대 총장,국무총리…. 그래서 얻은 별명이 ‘행정의 달인’이다. 그는 요즘 머리 못지않게 몸도 바쁘다. 각종 사업현장과 민원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갖가지 사연과 민원을 들고 찾아오는 시민들을 만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하지만 高시장은 조금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1,100만 시민을 위한 일이기에 갈수록 애착과 의욕이 강해진다고 했다. □대담=崔秉烈 전국팀 차장 ­취임 100일을 자평해주시지요. ▲그동안 수해대책이며 노숙자문제 등 현안에 묻혀 시간 가는 것을 따져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100일은 앞으로 4년간의 마라톤을 뛰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매고 허리띠를 동여매는 준비와 다짐의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시조직은 서비스 본위의 경영조직으로탈바꿈했고 직원들도 해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앞으로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IMF졸업을 위한 경제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열과 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실·국장 책임경영제 성과 ­관선때에 비해 서울시장의 위상과 역할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시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점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옛날 시장들이 주로 위를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시민을 보고 시민과 함께 뛰는 점이 다릅니다. 중앙정부의 출장소장격이라는 점과 1,100만 시민의 이익대변자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죠. ­그동안 시의 행정이 어느정도 바뀌었다고 평가하십니까. ▲부임하자마자 1단계 조직개편에 착수,비효율적인 거대조직을 서비스 본위의 경영조직으로 바꾸었으며 실·국장 책임경영제를 도입,실질적인 책임행정이 이뤄지도록 했습니다. 1단계 구조조정으로 무한경쟁시대와 IMF시대를 맞아 작지만 강하고 능률적인 조직을 구축했다고 자부합니다. 시민들의 요청으로 감사를 하는 시민감사청구제를 강화하고 있고 시민들로 하여금 행정서비스의 만족도를 평가하게 하는 시민평가제도 곧 실시됩니다. 엄청난 변화와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변화를 통해 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효율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시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전직 시청직원의 수백억대 축재건이 불거지는 등 행정의 투명성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공직자 부조리 가운데 권력형·정경유착형은 거의 단절됐는데 일선 민원현장에서의 부조리는 아직도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주택건축·소방·세무·위생분야와 각종 공사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부조리 척결에 나서는 한편 과거 일벌백계식 처벌을 앞으로는 백벌백계로 다스리려 합니다. ○98개 기관 2차 구조조정 ­2차 구조조정의 방향과 일정은. ▲현재 6개 투자기관 및 사업소 등 시 산하 98개 기관을 대상으로 2단계 구조조정을 추진중에 있습니다. 10월 말까지 직영·민간위탁·민영화·공사화 등 윤곽을 확정,11월까지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민간위탁·민영화 등은 세부계획을 수립해 99년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실직자를 위한 공공근로사업에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데요. ▲그간 공공근로사업은 실직자의 생계 및 사회안정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미흡한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본래 취지를 살려 참여자의 자격을 실직자 위주로 제한하는 한편 성별·연령별로 구분배치,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겠습니다. 특히 단순노무 위주의 일반공공근로와 사무·전문직을 위한 전문공공근로로 이원화하고 임금도 탄력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지방주행세 도입 추진 ­시의 교통정책에 변화가 있습니까. ▲기본방향은 대중교통 우선입니다. 이를 기조로 공급자 측면에서 대중교통에 승객이 유인될 수 있도록 버스와 지하철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전자감응식 새 신호체계를 도입하는 등 교통관리의 과학화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아울러 수요측면에서 자가용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동차 보유부담을 낮추고 주행부담을 늘리는 지방주행세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11월부터 시행하려던교통카드의 버스·지하철 호환사용 계획은 비용부담과 기술·기기의 안정성 문제로 당분간 연기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시험운영을 거쳐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는 내년초에는 시행할 것입니다. ○일시적 재정감소 지원 ­자치구들의 재정난이 심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세입을 토대로 전망할때 시의 경우 약 20%,자치구는 약 10%의 세수결손이 예상되지만 일부의 우려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일부 재정난이 심각한 구는 재정투융자기금 융자와 특별교부금 지원 등을 통해 적극 돕겠습니다. ­빈부격차 문제가 자치구간 대립으로 비화하는 양상입니다. ▲서울은 단일생활권으로 형성·발전돼 왔기 때문에 지역간 균형발전이 특히 중요합니다. 일부 구는 자체수입이 재정수요의 배를 초과하는 반면 일부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동일 생활권내의 지역개발투자나 행정서비스의 격차가 생겨나고 시간이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세입구조를 분석해봤더니 주로 종토세의 지역간 편중때문이더군요. 그래서 시세 중 종토세와규모가 비슷하고 지역간 분포도 비교적 고른 담배소비세를 종토세와 교환,재정불균형을 완화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치구의 평균 재정수요 충족도가 65.6%에서 68.3%로 향상되고 22개 구는 30억∼60억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됩니다. 물론 일시에 재정이 감소하는 일부 구에서 부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재원조정교부금 지원 등의 충격완화 방안을 마련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상수원 수질개선 노력 ­물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한강수계 광역자치단체들간에 갈등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수도권 5개 시·도지사는 지난 9월30일 환경부·수자원공사 등이 포함되는 한강수계관리위원회를 구성,상수원 수질개선에 공동노력하기로 하고 물 문제 해결비용도 합리적 원칙에 따라 공동분담하기로 했습니다. 서울시는 98년에 한강 상류 수질개선비용으로 145억원을 지원했으며 앞으로 이를 대폭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 심기운동 등 도시환경 문제에 강한 애착을 갖고 계신데…. ▲시정의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나갈 ‘생명의 나무 1,000만그루 심기’사업은 앞으로 4년안에 서울을 회색도시에서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녹색도시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아파트 빈 공간부터 시작해 공항로,한강변,학교운동장 주변 등에 녹음을 조성하고 도로 등으로 끊어진 공원과 녹지는 녹도로 연결할 것입니다. 가로나 공원의 나무에 번호를 부여,호적부처럼 관리하고 공공기관의 담장도 생울타리로 대체할 생각입니다. 또 시민들이 주택이나 공지에 나무를 심을 때 시에서 묘목을 지원하고 출생·결혼·승진·입학 등 기념식수운동을 전개,기념식수가 최고의 선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임기중에 21세기를 맞으시는데. ▲2000년에는 서울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개최되며 2년 뒤에는 월드컵이 열립니다. 이 두 행사를 통해 서울과 우리나라는 IMF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21세기를 맞아 서울이 인간적인 도시,한국적인 도시,세계적인 도시로 우뚝 설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임기가 끝난 뒤의 거취문제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임기 후 거취요? 취임한지 얼마나 됐다고…. ◎市長­시민 주말데이트/민원해결 지름길 정착/지난 7월부터 시작/12회에 166명 만나/160여건 대기… 호응 커 高建 시장은 서울 시민이 어떤 생각을 하고,불편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챙긴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에 시민들을 만나 여론을 듣는 ‘토요 데이트’는 그만큼 무게가 실려 있다. 지난 7월4일 첫 데이트를 가진 이래 지금까지 12회에 걸쳐 모두 166명을 만났다. 민원은 48건이 접수됐다. 이중 민원성이 28건을 차지했다. 앞으로도 160건이나 高시장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토요 데이트’를 통해 나타난 高시장의 민원관(觀)은 단순히 선심성만은 아닌 듯하다. 시민들이 논리를 앞세워 민원을 해결하려면 적극 응한다. 그러나 억지성 민원을 힘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이해를 구한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달려들면 단호하게 거절한다. 지난 7월23일 발생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대문구 홍제 3동 주민 15명이 북부간선도로의 램프공사로 생활이 불편하다며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시청 현관을 점거,농성을 벌였다. 시청의 모든 간부들이 나서 설득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욕설이 쏟아졌으나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결국 해결책은 高시장이 찾았다. 30여분만에 高시장이 나타나 대표 3명만 시장실로 오고,나머지는 기다리라고 했다. 계속 농성을 하면 만나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주민들의 목소리는 조용해졌다. 대표가 시장실로 들어가 협상을 벌여 ‘토요 데이트’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접수된 상당수의 민원은 해결됐다. 직접 나서 해결하기도 하지만,시장을 만나도 안된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홍제 3동 주민들의 민원은 高시장이 직접 개입해 해결한 케이스다. 민선 이후 도입된 ‘토요 데이트’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봐도 될 것같다.
  • 가진자의 나눔과 봉사정신/李春鎬(서울광장)

    4년전 잠시 미국에 살 때다. 한 학기 40시간인 자원봉사활동 때문에 고등학생인 아들을 태우고 오전 5시 학교에 도착했다. 주말의 새벽 어둠을 가르며 봉고차를 운전하고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교장선생님이셨다. 하얀 운동화에 낡은 청바지,그리고 환한 미소 속에 아이들의 손을 정성스레 잡아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교장선생님의 따스한 모습을 보는 순간,아,이것이구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은… 지금도 그때 그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지성인의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잔잔히 남아 있다. 아들은 2시간을 달려가서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손에 물집이 생기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한다. 아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각자 흩어져서 자신들의 돈으로 햄버거를 사먹는 것을 보고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이 추운 겨울 땀으로 목욕을 할 정도로 일을 했는데 점심을 주지 않다니…’ 가져간 돈은 없고 배는 고파 신경질이 났다”고 말했다. 그때 교장선생님께서 5달러를 주셔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는 아들은 용돈에서 5달러를 갚겠다며 싱긋 웃었다. ○지도층이 솔선수범 나는 그때 아들의 아름다운 표정에서 자원봉사의 의미를 완전히 깨달았음을 감지했다. 아마도 그날 이후 아들은 공짜에 대한 혼미한 생각을 깨끗이 정리했으리라 믿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인의 자원봉사 교육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체험 속에서 인생을 성장시키며 완성해 가는 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은 또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저녁돕기 봉사활동을 한 후 ‘그들에게 기쁨을 준다면 밝은 사회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풍요로운 사회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나도 커서 오늘 자원봉사를 같이한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 보고서를 보면서 교육은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경험과 실천이 더욱 더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미국이 강력한 힘을 도출해 내는 것은 이와 같이 철저한 자원봉사교육과 성인이 되어서도 자원봉사로 이웃 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이라 생각된다. 그 좋은 예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다. ○老교장의 땀과 봉사 미국인의 54.2%가 자원봉사자로 자기 헌신을 실천하고 있는 반면,한국인은 겨우 0.02%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통계숫자를 보면서 가진 자와 배운 자가 뼈아픈 희생의 몫을 자처하지 않는 한 IMF를 극복하고 성숙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요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연말엔 한국의 실업률이 10%에 달할 것이라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보고서를 보면서도 ‘지금 이대로’를 외치며 아직도 건배한다는 가진 자의 오만은 우리를 분노케 할 뿐만 아니라 더욱 더 씁쓸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더불어 주말을 땀과 봉사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던 노(老)교장선생님의 실천과 소외된 이웃에게 봉사와 사랑으로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는 미국 지도층 인사들의 희생정신이 지금 이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 귀기울이고 실천하는 지도층 인사들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들에게 희생과 나눔을 약속받을 때이다.
  • 물에 빠진 여중생 3명 수색중/소방관 3명 급류 휩쓸려 순직

    ◎대구 금호강서 이국희·김기범·김현철씨/“잘다녀온다더니 웬 날벼락” 가족들 오열 ‘하늘도 무심하시지…’ 남부지방을 휩쓴 태풍으로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난 가운데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던 119 구조대원 3명이 급류에 휘말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일 오후 4시30분쯤 어둠이 서서히 깔려 가던 대구시 북구 검단동 제3아양교 근처 금호강.지난달 30일 실종된 대구 동부여중 2학년 金정희양(15)등 여중생 3명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이던 대구 동부소방서 소속 李國熙 소방장(44) 등 구조대원 4명을 태운 보트가 갑자기 급류에 휘말려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미처 구조 손길이 미치지도 못 할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 직후 긴급 출동한 헬기에 의해 구조된 李소방장과 金起範(26)·金晛哲 소방사(28)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그만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함께 보트에 타고 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裵孝奉 소방교(28)는 “하류로 이동하면서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갑자기 보트가 물막이 보에서 2m 아래로 떨어지면서 급류에 휩쓸렸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사고를 당한 대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사정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경력의 베테랑인 李소방장은 어머니가 7년 지성끝에 얻은 외아들.평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친 채 젊은 부하직원들을 이끌고 직접 수색작업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李소방장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조부모와 어머님을 극진히 모신 효자였는데…”라고 말하는 동료대원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96년 12월 육군대위로 제대한 뒤 지난해 구조대원으로 합류한 金晛哲 소방사는 부인과 6살박이 아들과 함께 100만원짜리 전셋방에 살면서 내년 봄 결혼식을 올린다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지난 96년 10월 공수부대 중사로 제대하고 소방대원으로 투신한 金起範 소방사 역시 내년 봄 5년간 사귀어 온 학교동창 애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시신이 안치된 대구 파티마병원 영안실에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한 가족들이 넋을 잃고 있었다.金起範 소방사의 어머니 李희순씨(52)는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는데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태풍이 귀한 아들을 빼앗아 갔다”며 울부짖었다.
  • 김탁환씨 장편소설 ‘불멸’ 1,2권 출간

    ◎충무공·원균/생명 은인서 敵이 된 사연 뭘까/‘방패’와 ‘칼’… 운명적 대결/壬亂 이전 상황도 촘촘히 그려 “…조정이 사람을 잘못 써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애석하도다.만일 1597년에 이순신을 통제사에서 면직시키지 않았더라면 어찌 한산도의 패전이 있었을 것이며,호남과 호서를 적의 소굴로 만들었을 것이냐…” ‘선조실록’의 사관은 이렇게 적었다.그러나 정작 선조는 이순신을 ‘무군지죄(無君之罪)’ 곧 임금을 업신여긴 죄인으로 여겼다. 두번씩이나 백의종군을 당한 ‘비운의 장수’이순신.역사를 초월해 이미 신화가 돼버린 그의 진실은 무엇인가. 환상소설 ‘열두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와 비평집 ‘진정성 너머의 세계’ 등으로 이름을 얻은 김탁환씨(31)가 이순신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밝힌 장편소설 ‘불멸’(미래지성)을 펴냈다.이번에 나온 것은 전4권중 1권 ‘조선의 칼,조선의 방패’와 2권 ‘식인의 땅’.3권 ‘해상왕 천하’와 4권 ‘마지막 이순신’은 이달말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소설은 조산만호 이순신이 녹둔도에서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패전하고,원균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구해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러나 이순신은 유성룡의 강력한 천거로 정읍현감을 거쳐 전라좌수사가 된다.반면 원균은 윤두수·신립·이일 등의 후원으로 경상우수사로 임명된다.두 사람은 이내 운명적인 대결의 길을 걷는다.작가는 이순신을 ‘조선의 방패’,원균을 ‘조선의 칼’로 묘사한다. 이 소설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나온 ‘이순신’ 소설들과는 달리 임진왜란 발발 이전의 상황도 촘촘히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이광수의 ‘이순신’은 1592년부터 다룬다.또 특유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신채호의 ‘이순신’은 설화적 분위기가 강한 ‘한계’가 있다.
  • 곡필 언론학(金三雄 칼럼)

    최근 ‘오보’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기사를 비롯하여 어느 일간신문 주필의 철지난 칼럼도 오역 또는 왜곡논쟁의 대상에 올랐다. 일부 신문의 기명칼럼과 여론조사는 사실왜곡과 조사문항의 편파성을 둘러싸고 이해 당사자의 반론을 실은 바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언론은 ‘오보 논쟁’이라 표현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왜곡 또는 곡필논쟁이라 해야 마땅하다. 오보가 자의성 없는 실수라고 한다면 왜곡이나 곡필은 뚜렷한 목적으로 사실(진실)을 조작하는 차이가 있다.오보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지만 왜곡(곡필)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오보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곡필은 용서될 수 없다. 부끄러운 현상이지만 우리 언론(인)은 지성과 양심을 속이면서 곡필을 휘갈기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군사독재의 어용언론이 민주인사들을 좌경용공으로 매도해온 곡필의 사례는 열거하기가 역겨울 정도이다.‘성마저 혁명도구로’라던 5공언론의 치부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흔히 비정상의 언론인을 분류하는데 야누스형과하이에나형으로 비유한다.야누스형은 두 얼굴의 언론인을 말한다.상황이 좋으면 제법 바른글을 쓰는척 하다가도 시국이 어려워지면 침묵하거나 왜곡으로 회귀하는 언론인의 이름이다. 하이에나형은 ‘사막의 청소부’란 비유대로 사자소리만 들려도 벌벌 떨다가 사자 시체에는 가장 먼저 덤벼드는 약삭빠른 간교한 언론인을 말한다.군사정권시절 어용곡필을 일삼다가 민주화 시대가 되자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언론인은 이 부류에 속한다. ○밀턴의 진리 생존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언론인이전에 지식인의 본분이다. 맹자는 ‘비시지심 지지단야(非是之心 智之端也)’라 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이 슬기라는 인간본성의 단서가 된다고 했는데, 이때의 ‘비시지심’이 바로 비판정신의 근본이다. ‘진리생존설’을 주장한 존 밀턴은 “진실은 반드시 두꺼운 허위와 왜곡의 껍질을 뚫고 살아남는다”고 했다. 아무리 거짓과 왜곡이 그럴듯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은 밝혀진다. 이것은 역사의 법칙이기도 하다. 일본군국주의를 미화하면서 동족을 배반했던 친일언론, 이승만이나 군사정권에 아첨해온 어용언론이 비록 당대에는 여론을 주도하고 사회의 명사 노릇을 했지만 역사는 이들을 곡필 지식인으로 하나하나 단죄한다. 비록 ‘단죄’의 시간에 장단이 있을수 있지만 자신이 쓴 글이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심판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아는 언론인(지식인)이라면 함부로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다.진리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중국 진나라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사람인 왕융(王戎)을 언론인은 기억해야 한다. 곡필의 고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렇다. 왕융의 집에 품질좋은 배(梨)나무가 있었다. 심술이 고약한 그는 배를 팔때면, 행여 남들이 그 씨를 심어 맛좋은 배가 이웃에 퍼져 나갈것을 막고자 날카로운 송곳으로 씨를 꿰뚫어서 핵(核)을 죽여버린 후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배의 씨 꿰뚫는 찬핵 이 고사로 인해 ‘찬핵(鑽核)’또는 ‘찬이(鑽梨)’라는 문자가 생겼다.‘핵’을 뚫었다는 말은 ‘씨알’을 죽였다는 뜻이다.사마천은 이를 받아서 진실을 속이고 왜곡하는 글을 찬핵과 같다고 했다.곡필이 곧 찬핵인 소이연이다. 사람의 육신을 상하게 하는 불량식품제조업자는 심한 비난과 법의 제재를 받는다.그런데 진실을 속이고 국민의 분별력을 멍들게 하는 ‘불량언론제조업자’는 명사대접을 받는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닌가. 언론정화가 시급하다.언론의 정화없이는 개혁도 지역화합도 통일도 쉽지 않다.진실에 살고자하는 양심적 언론과 언론단체 그리고 ‘언론학’을 연구하는 교수 학생들의 곡필언론추방캠페인이 필요하다고 본다.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간첩 李尙珍·金英福 암약상/추적 피하려 첨단 통신수법 사용

    ◎천안레이더기지·오산비행장 등 정보 수집/우표뒤쪽 접착면에 마이크로 필름붙여 北送 오스트리아 빈을 거점으로 간첩활동을 한 李尙珍·金英福은 안기부 등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최첨단 통신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어 북한에 보내는 ‘특수 방법’을 쓰기도 했다. 李·金은 지난 93년 10월 1차 입북때 받은 1만달러를 비롯,모두 5만3,200달러와 40만엔으로 빈에서 아파트를 얻고 팩스,전화 등 통신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했다. 1차 방북때 ‘조국통일만세’의 준말인 ‘조일만’으로 공작명을 부여받았다. ‘두뇌난수(頭腦亂數)’를 이용한 통신방법도 교육받았다. 두뇌난수는 빈 아파트의 번지수 1538 및 방번호 06 등과 중복되지 않는 2479를 조합,1538062479로 정했다. 절대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다 국내 출판사의 문고판 소설 ‘무정’과 ‘숫자·자음·모음·조사’로 짠 ‘약어표’를 토대로 문자를 암호화하거나 암호화된 문자를 풀었다.예컨대 소설 ‘무정’에서 원하는 문자가 몇 페이지 몇 행의 몇 번째 글자인가를 확인해 숫자화한 다음 보고내용을 두뇌난수로 더하고 빼서 나온 숫자를 약어표에서 문자화해 원문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긴급할 때는 평양의 지정된 장소에 5분 간격으로 두 차례 전화를 걸었다. “빈에 있는 ‘조일만’입니다. ○○무역회사 부사장과 통화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으로도 연락했다. 평상시에는 평양­본사,지성용 부부장­부사장,사람­물건,위험하다­아프다,만나자­보낸다 등 20여개의 음어를 사용했다. 李·金은 지난 94년 2차 입북때 하루에 두 시간씩 사흘동안 특수사진술까지 배웠다. 자료 등을 찍은 마이크로 필름은 우표 뒷면이나 편지 봉투의 봉함면에 붙여 평양으로 보냈다. 李·金은 이같은 통신 방법을 이용,국내의 천안 레이더기지,육군 탄약창,오산비행장,현대자동차 등 주요시설의 현황과 경제자료 등을 수집해 북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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