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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즈믄동이’ 선물 푸짐

    새천년을 맞아 새해 1월1일 태어나는 ‘즈믄동이’(밀레니엄 베이비)에게 각병원이 푸짐한 선물을 준다. 이대목동병원은 2000년 1월1일 이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는 모든 아기와 산모의 분만진료비를 무료로 해주기로 했다.이와 별도로 이날 첫번째 자연분만 주인공인 아기에게는 금팔찌 1점을 선물하며,1년간 아기 진료비를 무료로 해준다. 영동세브란스병원도 새해 첫날 첫번째로 태어나는 아기(제왕절개 포함)에게진료비 전액을 면제해주고 2,000번째로 내원하는 환자에게는 꽃다발과 함께30만원 상당의 건강진단권을 준다.또 이날 생일을 맞은 환자 모두에게 축하메시지가 담긴 꽃바구니가 전달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및 강남 차병원,서울을지병원도 1월1일 첫번째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는 아기에게 병원비 전액를 면제해주고 아기용품 일체를 제공한다. 이밖에 경북 안동병원도 자연분만을 통해 첫번째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산모의 병원비를 전액 면제해 줄 뿐 아니라 평생 장학금과 생후 1년간 분유를 제공하기로 했다.또 이날 하루동안 역시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에대해서도 병원비를 면제해주고 6개월간 분유를 제공할 계획이다. 임창용·안동 김상화기자 shkim@
  • 신동방 회장 구속 이모저모

    신동방그룹의 신명수(申明秀)회장은 주주와 투자자들은 물론 정부당국까지속여 주가조작 및 외화도피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검찰은 사주의 ‘제멋대로식 경영방식의 폐단’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고 설명했다. ◆신회장은 상장법인인 회사를 개인회사처럼 마음대로 경영하다가 2,000억원대의 손실을 입히고 회사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자 재무제표를 허위로 꾸며 유상증자를 한 뒤 청약대금이 입금된 바로 다음날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등전횡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수사 관계자는 “증권거래 질서를 크게 교란시킨 죄질이 극히 불량한 범죄”라며 구속 수사를 당연시했다. ◆신회장은 임용석 상무가 지난 23일 구속되자 지병을 이유로 서울 시내 모병원에 입원하는 등 검찰의 소환을 지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수차례에 걸친출두 요청을 거부해 오던 신회장은 검찰이 ‘긴급체포’ 방침을 시사하자 24일 오후 1시쯤 검찰에 출두했다.신회장은 지난 6월 금감원이 검찰에 수사를의뢰한 뒤 거래장부 등 물증을 없애고 조직적으로 은폐 기도를 해온 것으로알려졌다. 검찰의 수사가 6개월간이나 지지부진했던 것도 조직적인 은폐 작업 때문이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신회장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태국 푸케트의 골프장 사업 투자 등은국내 유수의 로펌의 자문을 받아 이뤄진 것으로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며,지난 3월 신동방 주식 청약 후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도 예정돼 있었던 것일뿐 고의성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주가조작으로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는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락 이상록기자 jrlee@
  • 金宇中전회장 심장질환 증세 악화

    유럽에 체류 중인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 회장이 심장질환을 앓아 곧 수술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 관계자는 17일 “지난해 연말부터 김 전 회장이 심장에 이상이 있었으나 올해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이 현지 의사로부터 정밀진단후 수술여부를 결정하자는 소견을 받고 적당한 병원을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김 전 회장의 소식은 그의 거취를 예의주시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채권단에게도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현재 유럽의 한 국가에 머물고 있으며 소재지에 대해 대우 관계자는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인 정희자(鄭禧子) 대우개발회장은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도져 미국에서입원치료를 받은뒤 지난달 귀국,서울 방배동 자택에 머물고 있다.한편 일각에서는 김 전회장의 이같은 와병설과 관련,대우문제가 마무리돼 가면서 부실회계처리 등에 대한 책임론이 급부상하자 사법처리를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풀이하기도 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전경집 본사 인사팀장 별세

    전경집(全景集)대한매일신보사 경영본부 인사팀장(50·부국장급)이 9일 오전 6시40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전 인사팀장은 84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15년 동안 재직해왔다. 장례식은 11일 오전 8시 대한매일 사우장으로 치러진다.빈소 여의도 성모병원 5호,발인 11일 오전 9시.장지 충남 천안시 천안공원묘지.(02)769-1442
  • [의열 독립투쟁](12)나석주 의사

    1926년 12월28일 오후 2시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한 조선 청년이 조선식산은행(남대문로 2가)과 동양척식회사(을지로 2가)에 폭탄을 던지고 일경과 동양척식회사 직원 등 7명을 살상시킨 사건이 일어났다.공격 대상이 토지를 장악하여 농민들의 원성이 집중되던 일제의 기관이었으니 조선인들로선 그야말로 응어리진 민족의 한을 씻어주는 쾌거였다.이 거사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격정의 장을 펼쳐낸 장면이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나석주(羅錫疇·1892∼1926) 의사였다. 황해도 재령 태생인 나 의사는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11세에 이문성(李文成)과 결혼하였다.15세에 고향 마을의 보명학교(普明學校)에 입학해신학문을 배우고,안악으로 가서 백범 김구 선생이 설립한 양산학교(養山學校)를 다녔다.김구는 ‘백범일지’에서 나 의사를‘제자이자 동지’라고 표현하였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이 강탈당하자 나 의사는 국권회복에 신명을 바치고자맹세하고 1913년 21세때 1차 망명길에 올랐다.만주로 건너간 그는 북간도를거쳐 이동휘(李東輝)가 개설한 나자구(羅子溝)의 무관학교에 입학,군 간부로 성장하였다.1915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서는 국내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면서 아이들을 교육하였다.1917년에는 동양척식회사 사리원지점에 농토를 전부 몰수당한 그는 결국 소작농으로 몰락하고 말았다.훗날 동양척식회사를 응징하게 된 것은 이 일이 한 계기가 됐다.3·1의거가 일어나자 그는 겸이포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고 미곡상점도 문을 닫게 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황해도 사리원으로 옮겨 표면적으로는 정미소를 경영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동지를 모으고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1920년 김덕영(金德永) 최호준(崔皓俊) 최세욱(崔世郁) 박정손(朴正孫) 이시태(李時泰)등과 의열투쟁 조직을 결성하고 군자금 모금과 친일파 숙청을 계획하였다.사리원의 부호 최병항(崔秉恒),안악의 부호 원형로(元炯潞)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받아 상해의 임시정부로 송금하기도 했다.일경 1명과 악질 친일파인 은율군수를 처단한 후 일경에 쫓기던 그는 마침내 독립운동의 새 돌파구마련을 위해 중국으로 제2차 망명길에 올랐다.상해로 간 나 의사는 임시정부 내무부 경무국장으로 활약하고 있던 백범 김구 밑에서 경무국 소속 경호원으로 임명되어 임시정부와 동포사회에 파고 드는 밀정을 찾아내 박멸하고 정부요인들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특히 상해 주재 일본영사관의 경찰과 첩보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기에 나 의사가 소속된 경무국 경호원들은 정보수집과경찰의 임무를 함께 수행하고 있었다. 한편 1920년대 후반 들어 김구·여운형(呂運亨) 등은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하였다.이는 ‘독립은 전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군사 양성과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1922년 10월 조직한 것이 한국노병회다.정부가 군대를 유지할 능력을 갖지 못하니 한 사람이라도 군사훈련을받아 군사요원이 되고 또 노동자가 돼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으로서 출전하는 계획이었다.즉 한 사람이‘노동자’요‘병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노병회는 군간부 양성을 위해 요원을 중국의 각 군사학교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나 의사는 첫 요원으로 파견된 1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1923년 초 한단(邯鄲)군사강습소에 입교,사관훈련을 받고 이듬해 중국군 초급장교로 임관되어 중대장으로 복무하다가 1925년 상해로 돌아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1925년부터 그는 국내 침투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세가지구도 위에 전개되고 있었다.임시정부와 한국노병회를 대표해 김구,제2차 유림단의거를 진행하고 있던 김창숙(金昌淑),그리고 의열단을 이끌던 김원봉(金元鳳)이라는 세 세력의 협조에 의해 나 의사를 비롯한 요원들이 국내로 잠입해 의열투쟁을 벌이는 투쟁이었다.즉 김구가 키운 군사 간부로서,김창숙이 국내 유림에게서 모금한 자금으로 무기를 구입하여 의열단원으로서 국내로침투하는 것이다.목표는 동양척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1925년 중국인으로부터 배 한 척을 구입하여 국내로 잠입하고자 하였다.그 과정을 보여주는 나 의사의 서신(금년 6월 대한매일신보사에서 발간한 ‘백범 김구전집’ 4권에 실림)을 보면 그가 천진에서 이승춘(李承春) 한봉근(韓鳳根)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국내 침투용 선박 구입자금을 준비하는 내용을 알 수 있다.그러나 계획이 연기되다가 끝내 자금 부족으로 계획을변경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이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당초의 계획은 수정되고,실행은 1926년으로 연기되었다.마침 1926년(병인년) 1월1일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가 조직됐다.병인의용대는 한국노병회가 정체현상을 보이자 의열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나 의사는 여기에 가입한 후 국내 침투계획을 재추진,1926년 12월26일 단독으로여객선 이통환(利通丸)을 타고 인천에 도착하였다.마중덕(馬中德)이란 중국인 노동자로 위장한 나 의사는 권총과 폭탄을 갖고 들어왔다. 이틀 뒤인 12월28일 오후 2시쯤 조선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하게도 불발이었다.곧바로 인근 동양척식회사로 이동한 나 의사는 일본 경찰과동양척식회사 직원 등 3명을 사살하고 4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과정에서 다시 폭탄을 던졌으나 이것마저 불발이었다.거사 준비과정이 너무길다보니 폭탄의 성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나 의사는 곧장 거리로 나가 일경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중과부적으로 당해내지 못하자 마침내 권총으로 자결하였다.나의사는 숨지기 전 본인의 이름과 의열단 소속이란 것만 밝혔을 뿐 더이상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순국하였다./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나석주 의사 후손과 추모사업 나석주 의사가 일경과 대치 끝에 권총으로 자결,순국한 후 장남 응섭(應燮)은 부친의 시신을 찾으러 갔다가 오히려 8일 동안 구금돼 고문을 받았다.순국 직후 일제에 의해 미아리 공동묘지에 강제 매장된 나 의사의 유해는 아들에 의해 수습돼 고향 황해도 재령 땅에 묻혔다.당시 일제의 감시 때문에 아무런 표식이나 봉분도 만들 수 없었는데 분단 이후 그 소식을 알 수 없다.이 때문에 현재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묘소 대신 무후선열제단에 나 의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나 의사는 1남1녀를 두었다.장남은 일찍 사망하고 장녀 응서(應瑞·1918년생)는 92년 지병으로 사망했다.현재 나 의사는 직계 후손이 절손된 상태다. 지난 17일 제60회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나 의사의 의거 현장인 당시동양척식회사 본점 자리(현 외환은행 본점 터)에서 나 의사의 동상이 제막됐다.추모 단체로는 김상옥·나석주의사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가 구성돼 활동하고 있으며 동상 건립도 기념사업회에서 추진한 결과다. 나 의사는 지난 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 金宇中씨 ‘잠행 외유’ 장기화

    김우중(金宇中) 대우회장의 ‘해외 잠행’이 길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달 11일 중국으로 간지 한달이 넘도록 ‘뚜렷한 일’없이 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처에 머물고 있다.요즘 심경은 한마디로 ‘답답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김 회장의 ‘외유’는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사법처리 문제가 깨끗하게 정리되지 않는 한 귀국하기 어려울 것같다. 한 측근은 “사의를 표명한 상태여서 해외에서 회사일을 보는 것은 아니다”며 “30여년의 경영인생을 정리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회장은 지난 1일 회장직 사의를 전화로 알려온 뒤 전화 연락도 뜸해졌다.한 임원은 “3주전 서울 힐튼호텔 매각관계로 김 회장이 일시 귀국했었다”며 “전같으면 잘못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하고 화도 냈을텐데 이같은 정열을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우자동차의 처리방식에는 여전히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국내외 사업장의 시너지효과를 무시한 채 금융측면만을 생각,매각을 강행할경우 장차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외국기업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며안타까워하고 있다. 와중에 부인 정희자(鄭禧子) 대우개발 회장마저 몸져 누워 김 회장의 마음은 무겁기만하다.정 회장은 아도니스 클럽 개장 등 회사업무로 무리를 해 지병인 허리디스크가 도져 미국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다. 김환용기자 dragonk@
  • [외언내언] 김자경, 영원한 프리마돈나

    ‘불굴의 오뚝이’‘분투(奮鬪)의 또순’을 과시하면서 한국 오페라사(史)에 우뚝 선 김자경(金慈璟). 얼핏 들으면 드세고 거센 여장부의 이미지지만그를 만나본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화사한 심성에서 ‘영원한 프리마돈나’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지난 48년 한국의 첫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로 발탁되어 오페라의 샛별로 떠올랐고 같은해 부군 심형구(沈亨求)화백의 주선으로 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에 유학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소프라노 릴리폰즈의 노래를 듣고 ‘메트로폴리탄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임을 자책하여 한동안 좌절했으나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 무대에 세우자’는 결심으로학교측에 ‘카네기 홀에서 독창회를 하겠다’고 선언했다.권위자들 앞에서까다로운 오디션을 거쳐야했고 결국 ‘독특한 음질의 아름다운 릴릭 소프라노’를 인정받아 1950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영광을누렸다. 그러나 62년, 청천벽력같은 부군의 타계 소식에 충격을 받고 전신마비증에걸려 긴 칩거에 들어 갔고68년에야 비로소 모든 재산을 털어 김자경오페라단을 창단하게 되었다. ‘라트라비아타’를 필두로 한 정기공연 56회와 소극장 공연 600여회를 기록하기까지 그가 신발이 해어지도록 각 기업체와 동창후배를 찾아다니면서 표를 팔아야했던 사연은‘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초와 수난과 시련이었다’고 고백한바 있다.겉으로는 화려하고 단정하지만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옷감을 끊어다 직접 옷을 해입고 팔순이 되도록 고물 소형승용차를 손수운전하는 등 대기업도 감당하지 못하는 오페라단을 오늘까지 이끌어온 것은 바로 허리를 졸라맨 결과일 것이다.또 남에게 받은만큼 되돌린다는 뜻에서 해마다 독창회를 열고 여기서 얻어진 수익금으로 맹인 50여명에게 개안수술을 해준 일은 그의 왼손만이 아는 선행이다. 호는 심설(心雪).여가에는 영어성경을 붓글씨로 쓰거나 부채에다 그림을 그리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명랑한 표정으로 무대에 나왔던 그가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되면서 밝던 눈이 보이지 않고 갑자기 걷지도 못하게 된 것은 극히최근이다.그리고 지난 여름 김자경 오페라단의 5번째 ‘라트라비아타’공연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와 청중들에게 보낸 인사가 마지막이 되었다.음악의성취뿐 아니라 그늘지고 병든이에게 ‘이 세상의 빛’을 실천한 그는 비록우리곁을 떠났으나 오페라를 위한 찬연한 업적과 프리마돈나로서의 시들줄모르는 정열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릴릭소프라노로 메아리치게 될것이다. 李世基 논설위원 sgr@
  • 한진 탈세수사 이모저모/ 이종왕수사기획관 문답

    한진그룹 탈세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10일 오전까지도 조수호(趙秀鎬)한진해운사장의 신병처리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 ‘경제논리’를 내세워불구속 기소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그러면서도 형평성에 어긋난 결정이라는비난을 우려해 그 배경과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장의 귀가 조치는 가족관계,범죄 후 정황,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고려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특히 조사장이 36억원의 유용액을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룹 계열사에 지원했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회장 일가가 조성한 비자금이 정·관계로흘러들어가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수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정·관계 로비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은 전혀 없다”고 거듭강조한 뒤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세금 납부에 썼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로비의혹을 제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당뇨·고혈압 등 지병으로 지난 8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조중훈회장은 이날 병원을 출발,오전 9시57분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도착했다.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지난 95년 11월10일 10시 대검청사에 출두한 지 꼭 4년 만이다.지팡이를 짚고 비서들의 부축을 받으면서승용차에서 내린 조회장은 심경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젖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10층 중앙수사부 수사실로 직행했다. ■조중훈 회장 3부자(父子)는 이날 한때 동시에 대검 11층에서 조사를 받았다.하지만 조사실은 각각 달랐다.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3부자가 한날에조사를 받은 적은 없었다”면서 “그러나 이들을 서로 만나게 하거나 같이식사를 하게 하지는 않고 조사에만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조중훈 회장의 지병을 감안,한진그룹 항공의료원장 이모 박사와 간호사 1∼2명을 조사실 옆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이종왕수사기획관 문답한진그룹 탈세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앙수사부 이종왕(李鍾旺)수사기획관은 10일 “조수호(趙秀鎬)한진해운사장은 탈세 등의 혐의를모두 시인하고있지만 가족관계나 기업 활동 등을 고려해 일단 귀가 조치했다”고 밝혀 불구속 기소할 방침임을 내비쳤다.다음은 일문일답. ■조수호 사장을 다시 소환하나 조중훈(趙重勳)한진그룹회장과 조양호(趙亮鎬)대한항공회장과 관련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부를 수 있다. ■조양호 회장에 대한 수사 진척은 국세청이 고발한 내용은 시인하고 있지만 해외 현지법인인 KALF사 관련 비리는 부인하고 있다. ■고의로 탈세했다는 것은 시인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조양호 회장은 조중훈 회장과 같은 혐의로 고발됐는데 아버지 혐의까지 시인한다는 것인가 답변을 유보하겠다. ■탈세하기 위해 빼돌린 자금을 정·관계 로비용으로 사용했나 비자금이 곧로비자금은 아니다.조양호 회장이 개인적으로 납부해야 할 세금을 비자금으로 내는 등 사용(私用)했을 수도 있다.비자금 용처 수사를 정·관계 로비수사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조양호 회장의 신병 처리가 오늘 안으로 이뤄지나 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조사시한인 내일 오전 10시까지는 해봐야 알 수 있다. ■조중훈 회장 3부자(父子)의 대질신문도 고려하고 있나 대질까지는 필요없다.그러나 관련된 내용을 서로에게 추궁할 필요는 있다. 강충식기자
  • ‘영원한 춘희’ 김자경씨 별세

    ‘한국 오페라계의 대모’로 불리던 원로성악가 김자경(金慈璟)씨가 9일 새벽 5시30분 지병인 당뇨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향년 82세. 그는 한국 최초의 프리마돈나이자,말년까지 자칭 ‘방년 18세’로 맹렬히활동한 열정적 음악인이었다.특히 지난 68년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은 56차례 정기공연과 600여차례에 이르는 소극장공연,다양한 기획공연을 통해 한국오페라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는 1917년 경기 개성에서 목사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찬송가를부르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다. 이화여전 음악과 졸업과 함께 이화여고에 음악교사로 부임했으나,48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음악학교에서 본격적 성악수업을 받았다.50년에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가지기도 했다.귀국하여 활동하던 62년 화가였던 남편 심형구(沈亨求)씨가 세상을 떠나자 오페라운동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영원한 춘희’라는 애칭처럼 지난 8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 ‘춘희’가 마지막 무대가 됐다.유족은 장남 홍(弘·사업)과 차남 현식(賢植·사업),장녀 영혜(永惠·미국 오하이오주 애쉴랜드대 교수) 등 2남1녀.빈소는서울 삼성의료원,발인은 13일 오전 9시.(02)3410-6914서동철기자 dcsuh@
  • 추간판 탈출증 척추강 협착증 증세‘예방‘치료법

    요통하면 흔히 ‘디스크’를 생각하지만 그외에도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가장 많은 것이 흔히 ‘삔다’고 하는 염좌이고 그 다음은 디스크로 불리는 추간판탈출증,척추강협착증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디스크나 척추강협착증은 단순히 요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다리나 발목아래의 운동능력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세심한 주의와 관리가 필요하다. 을지의대 노원을지병원 정형외과 배상욱교수는 “디스크와 척추강협착증은의사들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진단이 까다롭다”며 “반드시 척추전문의진단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추간판탈출증 척추의 뼈와 뼈사이에 있는 원판모양의 연골(디스크,추간판)이 밀려나와 척수신경 등을 압박해 요통 등 각종 신경질환을 일으키는 것.외상이나 허리를 굽혀 무거운 물건을 갑자기 들어올릴 때,비만한 사람에게 특히 잘 일어난다. 추간판이 밀려나오면 처음에는 심한 요통이 있고,눌린 신경에 따라 통증이무릎에서 발가락까지 퍼져 내려간다.심하면 방광이 마비되거나 항문 괄약근이 약화되는 증세가 오기도한다. 보통 누워 안정을 취하고,열찜질,마사지 등 물리치료를 받으면 70%는 3개월이내에 증상이 없어지거나 좋아진다.디스크 환자를 그대로 놓아둬도 4년후에는 수술을 받은 환자와 상태가 같아진다는 연구보고도 있다.그만큼 자체 치유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수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거나 요양할 시간이없는 사람에 한정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척추강협착증 척추 속 신경다발이 지나가는 길목(척추강)이 좁아져 신경이 압박을 받아 나타나는 증상.보통 50대 이후 요추의 퇴행성 변화로 일어난다.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당기거나 저리며 심할 때는 다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특이한 것은 아프다가도 앉거나 누우면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누우면 척추강이 약간 넓어져 신경 압박이 덜해지기 때문이다.앉으나서나 증상에 별 차이가 없는 디스크와 가장 크게 차이나는 부분이다.척추강협착증을 그대로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 발목이하를 움직이지 못해 기어다니거나 배뇨·배변 감각이 없어져 기저귀를차고 다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치료는 원칙적으로 척추강을 확장하는 수술요법이 쓰인다.일단 좁아진 척추강은 약이나 물리요법으로 넓힐 수 없기 때문.배상욱교수는 “증상에 따라차이가 있지만 수술로 환자의 80∼90%가 치료된다”며 “다리 저림이나 통증은 거의 100% 개선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예방과 관리 디스크는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변성되며,이때 잘밀려나온다.디스크가 변성되면서 삼투압 원리로 디스크 형태 유지 역할을 하는 ‘프로테오글리칸’이란 물질이 결핍되기 때문.하지만 아직 영양이 차단되는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따라서 요통이 지속적으로 느껴지면 정밀검사를 통해 디스크 변성여부를 체크,대비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척추강이 좁아지는 것은 퇴행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하지만 막노동 등 허리를 무리하게 쓰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평소 허리를 조심해 쓰는 것이 좋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새천년을 위한 한국사회의 비전]

    -사회분과 밀레니엄시대의 한국 사회는 노동,환경,법 등 세분야의 변화와 발전방향에따라 비전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됐다. ‘21세기 지속가능한 발전과 환경정책’을 발표한 차명제(車明齊) 배달환경연구소장은 “그린벨트정책은 비록 많은 문제와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지난 7월발표된 정부의 그린벨트제도 개선안은 오히려 과거보다 후퇴한 감이 없지 않다”고 꼬집었다. 차소장은 특히 환경정책은 장기적 전망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회집단과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동의과정을 통해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체 관리기구의 신설 등 점진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의 선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에서의 법의 지배’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한 박은정(朴恩正)이화여대교수는 “법치문화의 미성숙과 규범의 뒤틀림,이로 인한 국민적 불신의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새 세기의 세계질서의 능동적 주체로서 활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박교수는 법치문화의 혁신을 위해 시민의 권익과 편의에 봉사하는 법원,정의와 형평을 수호하는 검찰,값싸고 질높은 서비스로 다가서는 변호사를 배출하는 사법혁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법은 사회통합과 사회조직화의 기본원리이므로 통일과정과 통일후를 대비,통일법이념의 기본원리들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분야 주제발표자로 나선 선한승(宣翰承) 노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노사정위원회와 한국의 선택’이라는 주제발표문을 통해 “21세기 노사정위원회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지평을 열어가는 제도적 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강화 ▲다원화된 노사정위원의 협의채널 구축 ▲노사정의 공정한 역할분담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사회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도입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아래서 구사됐던 ‘국가합의주의’가 ‘사회적 합의주의’로의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교안보 분과 동북아 지역의 안보협력과 대화를 위한 ‘다자 안보체제’의 확립이 21세기 한국외교의 핵심 과제의 하나로 지적됐다.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21세기 한국외교의 방향과 한미관계’란 주제발표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정착 노력과 함께 지역차원에서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햇볕정책의 결실로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체제는 장기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안정 확보를 위한 지역동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화 아태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도 같은 맥락에서 다자간 안보체제 확립필요성을 지적했다.김 위원은 ‘21세기 동북아 안보환경과 중국의 역할’이란 주제발표에서 “동북아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선 다자간 안보체제에 중국의 가입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동북아 안보의 양대 축은 중국과 미국이며 중국을 지역 안보질서와 안정의 협조자 또는 균형자로서 유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중국과 미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교차하는 동북아 상황에서 중미관계는 동북아상황의 결정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현 상황에 대해 김성한 교수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사이의 협력지향적인 양자간 상호협력이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중국·일본간의 ‘새로운 삼각관계’의 불안정성은 계속되고남북한 관계도 경제부문에서의 협력과 정치부문에서의 대립이 병존하는 형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면서 이에대한 한국외교의 대응 방향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남북한의 군사력 수준과 군축논의’란 주제발표에서 지만원(池萬元) 사회발전시스템 연구소장은 한국군의 대북 군사전략도 상황변화와 국가의전략수행의 방향변화에 따라 변화돼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북한이 평화공존을 원치않을 경우 한국군은 보다 강한 억지력과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분과 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개혁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국가발전과공동체를 위한 것이란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것이시급한 과제라는 의견이 제기됐다. 장의관(張義寬) 아태평화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적 개혁정치의 현실과방향’이란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주장하면서 개혁의 시점선택이 개혁 방식과 함께 당위성 확보에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혁정책의 홍보는 현 정부가 가장 실패한 영역”이라면서 “개혁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위원은 개혁에 불안감을 느끼는 보수세력이 기득권층에 한정되지 않고 폭넓게 존재하는 것은 다수가 민주화의 성취를 과거와 비교해 조급하게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또 보수세력에 대응해 현실성있고 체계적인 정책대안들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한 것도 중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교수는 ‘국민의 정부의 정체성’이란 주제발표에서 “새천년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정부의 통치철학의 바탕은 ‘강한 국가’와 ‘강한 사회’가 어우러진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치철학은 집권 첫해인 지난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으로 출발,올들어 생산적 복지를 추가한 ‘3자병행발전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또 재벌개혁과 중산층·시민을 위한 정치는 이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강력한 지도력에 바탕을 두고 공정성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일관성있는정책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국가체제가 앞으로의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기현(辛起鉉) 전북대교수는 지역주의는 권위주의 통치시대의 산물이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지역주의적 선거문화의 추방을 위해 총체적 분권화와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연립이나 국정운영과정에서의 정당 제휴를 통한 ‘공동선의 추구’가 자연스런 선거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이와함께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저항적 지역주의나 패권적 지역주의의 고착화를 막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분과 다가올 세기는 문화의 세기이자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통해 ‘창조적 문화한국’을 건설할 절호의 시기라는 문화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제시됐다. 특히 영화와 유교문화분야에서의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충돌 등 순기능과 역기능이 거론됐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문화시민운동과 정치,경제,사회와 유기적인 연관을 갖는 종합적인 문화발전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이 역설됐다. ‘문화개방 시대의 한국영화-출구는 어디인가’를 발표한 유지나(柳智娜)동국대교수는 “외국영화가 주도하는 한국영화시장,국내시장에 갇혀있는 한국영화의 폐쇄성,관객층 및 제작배급·상영시스템의 불투명성과 부조리 등이 한국영화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단기적이고 전시행정적인 정부개입보다는 한국영화의 체질개선과 강화를 유도하는 간접적이고 장기적인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심광현(沈光鉉)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창조적 문화한국 건설과 문화시민운동의 새로운 과제’를 통해 “새 세기의 문화정책은 관변인사와 단체가중심이 아닌 다양한 문화예술인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문화적 참여주의의장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정부는 문화산업을 단순히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의 문화주권과 국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의 향방을 가늠할 핵심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아시아적 가치논쟁과 한국의 유교문화’를 발표한 이승환(李承煥) 고려대교수는 “흔히 아시아적 가치로 거론되는 것들은 각기 순기능과 역기능을 갖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서 “중요한 것은 전통적 가치의 비판적 계승이며 이들 가치들이 유효하게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는 영역을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맞게 재구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 지적하는 ‘유교적 자본주의’는 잘못된 용어이며 자기절제와철저한 정신적,육체적 수양을 강조하는 유교의 지혜를 경제체제의 핵심부에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리 강동형 노주석 최여경기자 yunbin@ -학술대회 이모저모 정치·사회·외교안보·문화 등 4개 분과별 주제발표와 토론이 있은 18일학술회의에는 모두 600여명의 각계 인사들이 참석,성황을 이뤘다.분과별 회의는 짜임새 있게 진행 됐으며 방청석의 의견 개진도 활발했다. 9시 30분 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개회식은 아태재단측에서 이문영(李文永) 이사장,오기평(吳淇坪) 사무총장,대한매일신보사차일석(車一錫)사장,김삼웅(金三雄)주필 등 대회관계자,학술대회 주제발표및 토론자 등이 참가한 가운데 30분동안 진행됐다.오기평 사무총장은 개회사에서 “우리는 전환기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불안이 엇갈리고 있다”면서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느냐,그리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분과 학술대회에서 국민의 정부 정체성과 개혁정책,선거 정당제도를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그러나 이론적인 면과 학술적인 고찰에 치우쳐 현실적 대안제시가 부족하다는 방청석의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토론자로 나선 지병문(池秉文) 전남대 교수는 주제발표자인 김일영(金一榮) 성균관대 교수가 ‘정부는 선거를 의식,신자유주의적 민중주의에 빠지지 말아야할것’이라고 주문한 데 대해 “실업자가 150만명을 넘고 노숙자가 늘어나는 마당에 선거를 의식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정책을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사회분과 학술대회는 김동익(金東益)성균관대 석좌교수의 사회로 2시간30분동안 짜임새있게 진행됐다. 그린벨트제도의 해결방안,노사문제 등 당사자사이의 이해관계가 얽힌 다소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방청객들이 직접 나서서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린벨트제도의 점진적 개선방안을 제시한 차명제 배달환경연구소장의 주제발표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박승(朴昇)중앙대교수는 “후진국형 환경보호정책인 그린밸트제도를 완전철폐한 뒤 선진국형 국토관리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공격적인 의견을 개진,눈길을 끌었다.한편 문화분야 학술대회는 사회를 맡은 권태준(權泰埈)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제외한 주제발표자와 토론자가 모두 30∼40대의 젊은 문화인으로 짜여져 열기를 더했다.
  • 산자부 국장급 과로로 잇단 와병

    산업자원부가 국장급들의 ‘유고(有故)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다.최근 들어 국장급 간부들이 과로로 잇따라 쓰러진 것이다. 산자부의 액운(厄運)은 지난 7월 A국장이 과로로 지병이 악화되면서 시작됐다.당시 A국장은 산자부의 핵심부서로 자리를 옮긴 뒤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지병이 악화돼 한달 가까이 휴가를 내야 했다.A국장은 최근 업무량이적은 다른 자리로 옮겼다. 거의 매일 자정 무렵 퇴근하는 것으로 유명한 B국장도 갑작스런 발병으로지난 주말 병원에 입원,수술을 받았다.이 때문에 전임국장이 직무대행으로‘긴급투입’되기까지 했다.역시 누적된 피로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와병(臥病)까지는 아니지만 피로누적에 따른 업무차질도 간간이 빚어진다.C국장은 최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울진원전 방사능 누출사고의 주무국장이건만 정작 얼마전 열린 국정감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과로 때문이었다. 이처럼 국장들의 와병이 이어지자 산자부에는 새삼 ‘50대의 위기감’이 불거지는 양상이다.한 국장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산업구조조정과 정부개혁작업 등으로 간부 대다수가 밤 10시는 돼야 퇴근한다”면서 “과장 이하 실무진들도 비슷한 실정으로,일은 늘고 위상은 갈수록 떨어져 부 전체의 사기가많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5월 재정경제부 차관에서 자리를 옮긴 정덕구(鄭德龜)장관의 강도높은 업무추진력을 산자부 관료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진경호기자 jade@
  • 이봉주 팀 복귀

    ‘잠적 파문’을 일으켰던 한국마라톤의 대들보 이봉주(29·코오롱)가 팀이탈 19일만에 복귀했다. 이봉주는 지난 9일 오후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송상수 코오롱체육단장을 만나 훈련재개의 뜻을 밝힌 뒤 서울 대치동 숙소에 복귀,정봉수감독에게 새 출발을 다짐했다.송단장은 숙소 이전,사생활 최대한 보장,포상금체계 개선 등이봉주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수용하고 팀 분위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입장을 분명히 했다.이봉주는 정감독에게 “뜻하지 않게 파장이 커져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며 정감독은 “마음자세를 하루빨리 가다듬어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자”고 당부했다. 이봉주는 당분간 을지병원에서 부상당한 왼발을 치료한 뒤 가벼운 조깅 등재활훈련을 거쳐 이르면 새달 초순께 팀 훈련에 합류, 본격적으로 내년 시드니올림픽에 대비할 계획이다.
  • [의열 독립투쟁](7) 백정기 의사

    무정부주의 독립운동은 한민족의 민족해방운동 방법론 가운데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투쟁방략 중 하나였다.그러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백정기(白貞基·1896∼1934) 의사는 일찍이 무정부주의사상(아나키즘)을 수용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한 선각자였다. 일제하 한국인 무정부주의자들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는 물론,소수의 특권계급(공산당 등)이나 일당독재,약탈적 경제제도,사회적 불평등,노예적 문화·사상 등도 타도 대상으로 규정하였다.따라서 이런 한국인들의 무정부주의운동은 독립운동의 주체가 노동자와 농민 등 민중이라고 설파하고,민중이주체가 된 암살·파괴·폭동 등 폭력혁명론적 투쟁방법론을 제창한 사실은주목된다.일제에 대항할만한 군사력이나 경제력,조직적 기반 등이 별로 없는 식민지의 민중입장에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쓴 의·열투쟁은 오히려 정당한수단이 되는 것이다.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우리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그러나 같은 곳에서 윤 의사와 거의 동시에일제 침략세력을 응징코자 한 영걸이 있었으니,그가 바로 백정기 의사이다.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백의사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공원 출입증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도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백의사는 1896년 1월(음력)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났다.본관은 수원으로 뒷날 호를 구파(鷗波)라 하여 ‘백구파’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어릴 때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타고난 성품이 총명하고 활달하여 14세 전후에는 사서삼경에 통달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또 신학문도 배워 정치·경제·사상사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서울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의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고향의 3·1운동을 주도하였다.이 해 8월 동지 4명과 함께 상경,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일제기관의 파괴를 꾀했으나,뜻을 이루지 못하고 중국 펑톈(奉天,현 瀋陽)으로 망명했다.이곳에서 후일 ‘육삼정 의거’에 같이 참여하게 되는 동지 이강훈(李康勳·전 광복회장)을 만났다. 1920년 겨울부터 1923년 후반기까지는 군자금 조달과 주요 기관·시설파괴등을 목적으로 국내와 일본 도쿄 등지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1923년 말 우여곡절 끝에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간 백 의사는 그곳에서 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김창숙(金昌淑)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을 만나큰 영향을 받았다.특히 이때 이들과 교유하면서 무정부주의 사상을 수용하였다.그리하여 1924년 4월 이회영·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정화암(鄭華岩)·유자명(柳子明)등과 함께 재중 한인 최초의 무정부주의 조직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결성하게 된다.이 연맹은 중국·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참여한 조직이었다. 1930년 4월에는 유자명·정화암 등과 함께 역시 무정부주의 단체인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조직했으며 그해 10월말 정화암 등과만주로 건너가 ‘한족총연합회’에 참여하는 등 조직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특히 백 의사는 이곳에서 일부독립운동가들의 민중 억압을 비판하는연극을 공연하여 재만 한인들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지병이 악화로 1931년 5월경 상하이로 돌아온 의사는 몸을 요양하는 한편,영국인 전차회사의 매표원으로 일하며 일정한 직업이 없이 독립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동지들을 부양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평소의 소신을 펼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한탄하고 있던 백 의사는 마침 일본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항일투쟁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有吉明)에게 4천만 엔(圓)이란 거액을 지원,중국정부의 고관들을 매수하기 위해 상하이의‘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리집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백 의사를 비롯해 정화암·이강훈·원심창(元心昌)등 10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은 1933년 3월5일 상하이에 있는 백 의사의 아파트에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그런데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의거에 나서겠다고 해 제비뽑기로 주동자를 뽑게 되었다.추첨결과 백정기와 이강훈이 결정되자 일본에서 건너온 무정부주의자 원심창도 동행을 자청,최종 3인이 선정되었다. 마침내 운명의 1933년 3월 17일.중국인 동지 왕야차오(王亞樵)로부터 입수한 권총과 수류탄,고성능 폭탄을 품에 간직한 백정기와 이강훈 등은 밤 8시경 육삼정 건너편 송강춘(松江春)이란 음식점에서 아리요시 등이 회합을 끝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의거를 눈앞에 둔 순간 미리 거사정보를 입수하고 대비하고 있던 일본·중국 관헌에게 세 사람 모두 붙잡혀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육삼정 의거’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거사 직후 ‘상하이시보(上海時報)’를 비롯해 중국 신문은 물론 국내의 주요신문들도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였다. 현장에서 피체된 백 의사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사하야(諫早)감옥에서 복역중 1934년 6월 5일 영양실조와 병고로향년 39세로 순국하였다.백 의사의 유해는 해방 이듬해 김구 선생의 지시로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리고 1963년 3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장세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硏 연구원‘文博 *‘육삼정 의거' 나머지 2人은 ‘육삼정 의거’의 주역 3인 중 나머지 두 동지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우선 두 동지 가운데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 선생은 아직 생존해 있는데 생존 애국지사 가운데 최고령자이다. 이 선생은 올해 96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애국선열 관련 행사에는 빠지지않고 참석하고 있다. 금년 백범 50주기 추도식에서도 자필로 쓴 추도문을 낭독했다.젊어서 백야김좌진(金佐鎭)장군을 곁에서 모셨으며 백 의사와 함께 체포된 후 15년형을선고받고 일본감옥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일본 현지에서 백의사등 3의사의 유해 봉환에 앞장섰으며 60년까지 재일거류민단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4·19혁명후 귀국해서는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60년대말부터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자서전 ‘민족해방운동과 나’를 비롯,독립운동 관련 저서도 여러권 남겼다.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과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원심창(元心昌,일명 元勳) 선생 역시 백 의사와 같이 체포되어 무기징역을언도받고 복역중 8·15해방을 맞아 투옥 22년만에 일본 가고시마형무소에서석방됐다. 해방후 민단(民團)창립에 참가,11·12대 중앙단장을 지냈다.71년 7월 4일 일본에서 타계후 ‘의사’로 추존돼 재일한국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두 사람 모두 7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정운현기자 jwh59@ *백정기 의사 유족근황과 추모사업 백정기 의사는 의거 당시 기혼자였으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순국했다.현재 백 의사의 유족으로 등록된 백계현(白械鉉·65)씨는 백 의사의 동생 백진수(白珍守·46년 작고)씨의 아들로 백 의사에게 양자로 입양된 사람이다.백의사의 동생 진수씨도 국내 항일 공적으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백 의사의 양자 계현씨는 한 때 공직생활과 개인사업을 하였으며 광복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백의사 추모사업은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주로 추진되고 있다.정읍시는 수년전부터 시 예산으로 백 의사의 사당과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왔으나 IMF사태 이후 자금난으로 모두 중단된 실정이다.현재 정읍에는 백정기의사기념사업회(회장 朴在福·전 정읍시의회의장)가 구성돼 추모사업을 해오고 있으며매년 4월 13일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서 공동추모제가 열리고 있다.기념물로는 58년 전북도민의 성금으로 정읍에 세워진 ‘순국기념비’와 독립기념관경내의 ‘어록비’ 등이 있다. 정운현기자
  • 이봉주 왼발부상… 올림픽金‘초비상’

    ‘한국 마라톤의 기둥’ 이봉주(29·코오롱·사진)가 훈련중 심각한 부상을당해 내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목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9일 “이봉주가 8월말부터 한달동안 호주 시드니에서가진 전지훈련중 왼발 부상을 당했다”며 “소속팀인 코오롱은 참가 예정이던 11월 뉴욕마라톤 등 올해의 모든 국제대회에 이봉주를 출전시키지 않기로했다”고 밝혔다. 정봉수 코오롱감독도 “진단 결과 왼발 복숭아뼈 아래의인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5일 정밀검사에서 뼈조각이 발견돼재활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깁스를 풀고 가벼운 걷기운동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코오롱은 이봉주를 푹 쉬게 한 뒤 내년부터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에 합류시킬 방침이다. 한편 이봉주를 치료해온 이경태 을지병원 족부클리닉 과장은 “현재 상태로는 수술을 하는 게 좋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후유증이 우려돼 메스를 대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파병동의’ 진통 끝 의장 직권상정

    동티모르 파병동의안이 국감 전야(前夜)의 국회를 뜨겁게 달궜다.여야는 28일 파병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채 국회의장 직권상정,결국 여당 단독 처리라는 수순을 밟았다. ?통일외교통상위 이날 동티모르 파병동의안을 이틀째 심의한 통외위는 여야간 의견 대립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오전으로 예정된 전체회의는 여야가 각각 자체 대책회의를 갖는 바람에 무산됐다.오후 1시에 가까스로 열린 회의도 1시간여만에 정회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여당은 전날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밤늦게까지 회의를 열어 현지 조사단의 조사보고를 청취하는 등 충분한 토론이 이뤄졌으니 표결에 들어가자고 요구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전투병 파병 반대라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며 “논의를 계속하자”고 맞섰다.이 과정에서 여당쪽은 한나라당 소속인 유흥수(柳興洙)위원장이 “아직 질문할 의원이 남아 있으니 표결은 어렵다”며 정회를 선포하자 “위원장이 ‘편파 사회’를 보고 있다”며 항의했다. 앞서 통외위 소속 여야 간사는 비공식 접촉을 갖고 절충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한나라당 간사인 이신범(李信範)의원은 전투병의 수를 200명에서 100명으로 줄이고 공병을 100명 늘리는 절충안을 제시했다.이에 국민회의 간사인 김상우(金翔宇)의원은 “파병을 할지 말지가 핵심이지병력구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본회의 야당의 반대로 난항이 거듭되자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총무가 오전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에게 본회의 직권 상정을 요청했다.이에 따라 박의장은 통외위에 심의시한을 이날 오후 2시로 통보,본회의 처리 절차에 들어갔다.그러나 여야간 줄다리기가 시간을 끌면서 오후 2시 본회의는 4차례나연기,오후 5시10분에 개회됐다. ?총무회담 국민회의 박상천·자민련 이긍규(李肯珪)·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오후 3시 국회의장실에서 회담을 갖고 막판 절충을 시도했다.이자리에서 여당 총무들이 한나라당 이총무의 ‘본회의 찬반토론 TV생중계’요구를 전격 수용,야당을 본회의장으로 불러들였다. 한나라당 이총무는 파병동의안 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총재회담을제의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반대토론 직후 전원 퇴장하겠다”며 표결 불참의사를 밝혔다. 앞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실력저지 방안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당초 지도부는 본회의 파병안 처리시 단상 점거 등 실력 저지를한다는 전략을 짜놓았지만 일부 중진 의원의 반대로 전략이 급선회했다. 하순봉(河舜鳳)총장과 안상수(安商守) 신영국(申榮國) 서훈(徐勳)의원 등이 단상점거를 주장하자 김수한(金守漢)의원등은 “단상을 점거하는 행위는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박찬구 박준석기자 ckpark@
  • “시신 이송” 규정 현실화 돼야

    주거형태의 변화에 따라 장례문화도 바뀌고 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장례식도 집에서 치르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병원 영안실에서 치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그러나 유가족 마음대로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급하다고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기 위해119 구급차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행 시신 처리와 관련된 규정은 일반인에겐 생소할 정도로 까다롭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관련 규정에 의한 절차를 거치면 상관없다.그러나 지병으로 집에서 숨지더라도 유가족 임의로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면 형법 위반으로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현행법상 변사체는 범죄와 관련이 없더라도 거주지 관할 파출소장이 의사의 검안서를 첨부해 ‘행정검시’ 조서를 작성하게 돼 있다.범죄와 관련이 있어 보이면 검사의 지휘를 받는 ‘사법검시’를 받아야 한다. 경찰청 예규 제92호 행정검시 규칙에는 ‘변사체는 행정검시를 마치고 나서야 시신을 영안실 등으로옮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를 어기면 형법 제163조 ‘변사체 검시방해’에 해당돼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내의 한 파출소장은 “병원측이 자신들의 병원에서 치료받았거나 입원실에서 숨진 환자가 아니면 혹시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사인 미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모씨(33·서울 강동구 둔촌동)는 시내 병원에서 폐암 치료를 받다가 불치 판정을 받고 집에 누워 있던 부친이 지난 23일 숨을 거두자 119 구급차를불러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다.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그러나 부친의 사망을 확인한 응급실 의사가 사망확인서에 ‘사인미상’이라고 기록하자 “폐암 환자였는데 왜 사인이 분명치 않으냐” 고 되물었다.그러자 의사는 “우리 병원 환자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며칠 뒤 김씨는 부친의 시신이 자연재해로 의한 사망,행려병사자와 같은 변사체로 처리돼 경찰에 보고된 사실을 알았다.김씨는 결국 사망신고서와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는 했으나 경찰 등이 관련 규정을 제시하며 시비를 걸면 낭패를 볼 뻔했다. 시신을 119구급차나 민간 또는 병원 응급차로 옮기는 것도 관련 규정상 불법이다.119구급차 등은 시신이 아닌 응급환자의 수송만 맡게 돼 있기 때문이다.시신 운반은 병원의 장의용 차를 이용하게 돼 있으나 장의용 차가 있는병원은 드물다. 일부 유가족은 민간 또는 병원 응급차의 시신 운반요금이 6만∼20만원인 반면 무료인 119구급차를 일부러 찾는 경우가 많다.서울시 소방방재본부 구조구급과 관계자는 “시신을 앞에 놓고 사정을 하는 유가족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는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김경운기자 kkwoon@
  • 고르비 부인 라이사여사 별세

    모스크바 AP 특약 냉전종식의 주역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대통령의부인 라이사여사가 20일 오전 독일 뮌스터대 병원에서 지병인 백혈병이 악화돼 사망했다.67세. 지난 7월부터 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온 라이사여사는 최근 병세가악화돼 수일간 생명이 위독한 상태를 보이다 이날 새벽 숨졌다고 뮌스터대병원 대변인이 발표했다. 라이사여사는 80년대 중반 개혁·개방정책을 펴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서방 나들이를 하면서 지적인 미모와 우아함으로 서방 언론들로부터 과거의 소련 퍼스트 레이디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여인으로 찬사를 받았다.
  • 분권화시대 맞춰 지방행정 혁신을

    인간개발연구원(원장 張萬基)은 17일 전남 장성군과 함께 장성군청 대회의실에서 ‘지자체의 새천년맞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가졌다.이달곤(李達坤)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의 ‘21세기 지방정부의 혁신과제와전략’이라는 강연으로 시작된 포럼에는 유재현(兪在賢)경실련 환경개발센터 부이사장,지병문(池秉文)전남대 교수 등이 나서 21세기 자치경영의 새로운패러다임을 찾아 보았다.이달곤 원장의 기조 강연을 요약 소개한다. 우리의 지방자치제는 2000년대를 앞두고 조기 제도화와 새로운 비전의 모색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지방정부도 다양한 개혁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지방정부 시스템 전체의 변화가 느린 탓에 성과는 미진한 상태다.체계적이지 못한 사업,허세적인경영화 등은 냉정히 평가돼야 한다.이제는 지방정부의 핵심역량을 구축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주도적으로 비전을 정립하고 내부개혁에 충실한 지방정부가 탄생해야 한다. 21세기 한국사회의 특성은 분권화와 지식화로 집약된다.분권화란 단순히 정치적 집권화의 대응개념이라기보다는 주민이 자기책임성과 자율적 변화의 원동력을 찾아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뜻한다. 그러면서 국제적인 문화 및 경제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이 진행돼 개인의 생활양식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정보와 지식이 주된 생산요소가 되는 지식사회에서 공공부문 역시 조직구성원의 행태나 역할변화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앞으로 정치·행정·경제·사회적 측면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적극적인 경쟁자로 거듭나야 한다. 지방자치 개혁을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은 시스템 내부 및 외부시스템과의연계문제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시스템 내부적으로는 지방정부의 기능과 규모를 재조정하고 경쟁시대,분권화시대,다원화시대에 맞는 자치행정의 패러다임을 세우는 등 구조적 최적화와 운영의 효율화를 확보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과 지방이 경쟁적 관계 속에 국가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적절한 역할분담이 이뤄져야 한다.읍·면·동의 기능전환을 전제로 광역과기초 중 하나를 폐지하는 지방행정계층조정을 통해 행정능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식사회의 도래’라는 도전에 직면한 지방정부로서는 조직구성원 개개인이 유연성·창의력·다기능적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핵심역량을 강화해야 하며,이는 곧 조직구성원의 지식근로자화를 의미한다. 지방정부 조직 자체를 학습조직화할 것도 요구된다.과거처럼 정보제공에 치우치던 교육에서 벗어나 지식을 제공하는 재직교육을 통해 지식을 내면화·데이터베이스화하고,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학습조직을 만드는 것만이 지식경영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이와 관련해 정보시스템을통한 개인간,개인·조직간,조직상호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자문서화에 따른 문서량 감소,지식 및 정보공유의 활성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정보기술(IT)의 고도화가 선행돼야 한다. 외부시스템과의 연계를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민간주체들과 협력관계를 갖는 노력이 중요하다.이와 관련,최근전개되고 있는 세계적인 행정개혁의 주요 논점이 공공 및 민간부문간 영역의 조정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민간부문과의 협력관계는 공공영역의최소화 및 시민집단에 대한 지원,주민과의 협력을 통한 지방문제의 공동처리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 ‘후라이 보이’곽규석씨 별세

    60·70년대 코미디언과 명사회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후라이보이’곽규석(郭圭錫·71)씨가 미국 뉴욕에서 지난달 31일 오후 7시(현지시각) 지병인췌장암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공군 연예대에서 활동하다 지난 56년 극장무대에 진출해 성대묘사·원맨쇼의 개척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막둥이’구봉서(具鳳書·73)씨와 짝을 이루어 TV코미디의 전성시대를 구가했다.공군 출신이어서 붙은 그의 별명‘후라이(Fly)보이’는 한동안 국내 코미디계의 대명사로 회자됐다. 그는 57년 CBS라디오의 ‘후라이보이 아워’를 통해 진행자로 데뷔한 뒤 ‘KBS 노래자랑’,KBS라디오 ‘후박사 막박사’,MBC ‘청춘만세’,‘토요일밤에’ 등 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고 특히 64년 12월부터 11년 동안 TBC의인기 프로 ‘쇼쇼쇼’의 명사회자로 군림하면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조복화씨와 1남2녀.발인은 3일(현지시각)뉴욕 프리싱제미 장례식장에서 있으며 이날 오전 11시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예음교회에서추모예배가 열린다.(0342)717-0691. 임병선기자 bs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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