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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잡은 안전교육

    초등학교에서 소방 안전교육을 받던 학부모들이 고가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는 소방서 주최로 열린 사고 예방 교육 과정에서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사고가 난 차량은 ‘굴절형 사다리차(굴절차)’로 바스켓(구조·탑승용 바구니)을 지탱하는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17일 오전 11시33분쯤 서울 중랑구 묵동 원묵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여성 학부모 3명이 굴절차의 바스켓을 타고 고층에 오르는 소방 훈련을 체험하던 중 갑자기 두께 1㎝짜리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24m 높이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학부모 정모(41·여)씨와 황모(35·여)씨 등 2명이 숨지고 오모(38·여)씨가 크게 다쳐 인근 서울 노원구 상계 을지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과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사다리와 바스켓을 연결하는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바스켓이 기울어졌다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바스켓 밖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에 추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중랑소방서가 4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10여명 등 250여명을 대상으로 개최한 ‘소방관 아저씨와 함께하는 가족 안전’ 행사로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할 예정이었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에 이어 체험행사에 참여했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굴절차 와이어 점검 한번도 안해 김한용 서울시 소방방재본부장은 “사고 차량은 그동안 와이어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 굴절차 와이어가 끊어진 것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고 차량은 1998년 12월 출고된 이후 와이어를 한번도 교체하지 않았다.2월21일 정기점검을 받았지만 와이어 테스트는 없었다. 또 사고 차량의 바스켓은 가로 100㎝, 세로 40㎝, 높이 80㎝ 크기로 탑승한 사람들을 고정하는 안전 벨트가 없었다. 따라서 바스켓을 고정하는 벨트만 있었더라면 참변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차량을 운전한 김모 소방장은 “15년째 소방관 생활을 하고 있지만 (3∼4t의 장력을 견딜 수 있는) 와이어가 끊어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바스켓에 어린이들은 5∼6명, 학부모들은 3명을 태워 바스켓 하중(최대 340㎏)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랑경찰서는 철제와이어를 현장에서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당시 사고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굴절차 주변에 에어 매트리스 등 아무런 안전장비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랑소방서장 직위해제 사고가 나자 학교 측은 학생들을 교실 안에서 안정을 취하게 한 뒤 낮 12시20분쯤 조기 귀가시켰다. 현장에 있던 아이들은 사고를 직접 목격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 있던 박모(12)양은 “사고를 보고 놀라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소방서와 학교 관계자들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원인과 안전 규정을 어긴 사실은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19일쯤 여경을 보내 사고를 당한 학부모의 아이들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소방방재본부는 현장 책임자인 성환상 중랑소방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책임자와 부상자에 대한 위로 및 지원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이달말까지로 예정된 안전교육 체험행사를 전면 중단하고 장비 안전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날벼락 같은 비보에 망연자실 사고로 숨진 정씨와 황씨의 유가족들은 갑자기 닥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황씨의 시어머니 이모(67)씨는 “알뜰살뜰 모아 겨우 집을 마련해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로 오른쪽 골반뼈와 대퇴부 등을 크게 다쳐 을지병원에 입원한 오씨는 “아이가 현장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봐 충격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아이 걱정에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강국진 박창규기자 betulo@seoul.co.kr
  •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씨 별세

    동화 ‘몽실언니´의 작가인 권정생씨가 17일 오후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70세. 고인은 신결핵 등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으며,16일부터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유명을 달리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후 귀국한 뒤 1967년 경북 안동에 정착했다.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월간 기독교교육이 주관하는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고 등단했다. 고인은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뤘다.‘몽실언니´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오소리네 집 꽃밭´ 등의 아동문학 작품을 남겼다. 특히 1984년 출간된 ‘몽실언니´는 현재까지 60여만부 이상 판매된 아동문학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다.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1975), 제22회 새싹문학상(1995) 등을 받았다. 장지는 생가가 있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이고,6·15민족문학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민족문학인장으로 장례가 치러진다. 빈소는 안동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054)820-1679.
  • 수백억 재산 포기하고 승려된 中 국민여배우 사망

    수백억 재산 포기하고 승려된 中 국민여배우 사망

    중국의 유명 여배우에서 사업가로 변신해 수백억의 재산을 모은 뒤 지난 2월 갑자기 출가해 승려가 화제가 됐던 천샤오위(陳曉旭, 사진)가 지난 13일 지병인 암으로 숨져 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지난 2월 출가한 천샤오쉬가 13일 선전의 한 병원에서 유방암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천샤오쉬는 16일 불교의식에 따라 화장돼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천샤오쉬는 1987년 소설 홍루몽을 TV 드라마로 만든 ‘홍루몽’에 여주인공인 임대옥(林黛玉) 역으로 출연해 중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다. 천은 홍루몽 출연 이후 또 한편의 인기드라마 ‘家春秋’라는 드라마에 여주인공을 맡은 뒤 91년 높은 인기를 뿌리치고 연예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녀는 남편 하오통과 함께 ‘스방(世邦)광고’라는 회사를 차려 연매출 2억위안(약 240억 원)이상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천은 그러나 지난 2월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갑자기 출가해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포기한 채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의 바이궈싱롱스(百國興隆寺)에서 수계식을 받고 정식으로 승려가 됐다. 남편도 법적으로 이혼한 뒤 천의 뒤를 따라 출가했고 수백억원에 이르는 재산은 3등분해 가족과 사찰 그리고 자선단체에 각각 증여했다. 그녀는 사업에 성공한 뒤 출가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물질과 부가 커졌지만 그것이 나와 가족, 친지들에게 진정한 즐거움은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출가 소식은 팬들은 물론 일반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기도 했으며 일부 극성 팬들은 그녀를 따라 출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출가한지 석달이 지나지 않아 천은 16일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그녀는 출가 직전 이미 유방암 말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컷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타버린 혼불

    타버린 혼불

    15일 새벽 1시12분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삭령(朔寧) 최씨 종가(宗家)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이날 화재로 본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 삼문 등 목조 기와건물 5채 가운데 본채 84㎡가 전소돼 29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30분만에 진화됐다. 목격자 박모(80·여)씨는 “갑자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부엌과 다른 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 집에는 숨진 박씨 등 2명만 살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씨의 방에 설치돼 있던 변압기가 합선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삭령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작가 고(故)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다.190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전통가옥으로 마을과 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노봉마을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숨진 종부 박씨는 18세에 전남 보성에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둘째 딸은 국회의원을 지낸 최영희(68)씨이며 아들 강원(63)씨는 서울대병원 내과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큰딸 강희(70)씨는 교직을 정년퇴직했다. 남원의료원에서 빈소를 지키던 강희씨는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면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며 종가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 집안은 문과 12명과 무과 14명의 급제자를 배출해 남원의 명문가로 알려졌다. 박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효원아씨, 박씨의 시어머니는 율촌댁, 시할머니는 청암부인의 모델이 됐다. 혼불문학관 문화해설사 황영순(54·여)씨는 “박씨는 기억력이 좋고 학식이 높아 말씀도 조리있게 잘하고 건강했다.”면서 “자녀들이 조석으로 문안전화를 하고 한 달에 두번 정도 방문하는 효자들”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빈소는 서울대병원과 남원 의료원 2곳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서울대 병원에서 열리며, 장지는 종가 옆 선산이다. 한편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북애향대상, 단재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고 1998년 지병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부고] 김형경 전 의원 별세

    김형경 전 의원이 1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73세. 김 전 의원은 제12대 신한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고 극동운수 사장을 역임했다.유족은 부인 이경진씨와 1남3녀. 빈소는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 1가 50-3번지 자택. 발인은 17일 오전 7시.
  • [부고] 요정정치 원조 ‘장원’ 창업주 주정순씨

    [부고] 요정정치 원조 ‘장원’ 창업주 주정순씨

    한국 현대 정계의 유명 인물들이 드나들면서 ‘막후정치’,‘밀실정치’라는 말을 탄생시켰던 고급 한정식집의 본산 ‘장원(莊園)’의 창업주인 주정순 여사가 12일 저녁 9시 종로구 내수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86세. 고인은 지난 1958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장원을 개업한 뒤 신문로 ‘향원’과 현재의 필운동 ‘장원’으로 자리를 옮기며 영업을 해왔다. 지난 2004년 큰딸인 문수정씨에게 물려주고 은퇴할 때까지 반세기 가까이 고급 한정식집의 전통을 이어온 업계의 ‘대모’였다. 고인은 광주 출신으로 한번 잔치가 벌어지면 보통 열흘 이상 가는 목포의 만석꾼 집안에 시집을 가 부엌일을 맡으면서 호남 전통음식을 익혔다. 장원을 개업한 뒤 특유의 손맛과 친절함에 반한 당대의 정·관계 실력자들을 단골손님으로 유치해 장안 최고의 한정식집으로 자리매김됐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도 찾았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까지 거물들이 단골로 드나들면서 한때 ‘한국 정·재계의 중요한 일은 장원에서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고인은 음식 맛과 고객관리, 종업원 관리에 엄격해 장원은 ‘한정식집의 사관학교’로도 불렸다. 유명 한정식집인 ‘미당’,‘늘만나’,‘수정’ 등의 주인들은 주 여사 문하에서 음식을 배워 독립했다. 큰딸 문씨는 “어머니는 식사 자리에서 보고 들은 얘기는 절대로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가르쳤다.”며 “최근에도 옛날 거물들의 뒷얘기를 들려 달라고 하면 조용히 가슴에 묻고 가겠다는 말씀만 하셨다.”고 회고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고인은 숨지기 전 ‘화장’을 당부, 유해는 평소 고인이 다녔던 교회의 납골당에 안장된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10시.(02)2072-2012.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4월의 노래’ 작곡가 김순애씨 별세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되는 박목월의 시 ‘4월의 노래’를 가곡으로 만든 원로 작곡가 김순애(金順愛)씨가 6일 오전 6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예술원이 9일 전했다.87세.고인은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1941년 이화여전 작곡과를 졸업한 뒤 대구와 서울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했다. 첫 창작곡은 1938년 이화여전 시절에 지은 자작시에 곡을 붙인 ‘네잎 클로버’로 알려져 있으며 ‘그대 있음에’ ‘첫사랑’ ‘꽃샘바람’ 등 다수의 가곡과 ‘오보에와 피아노 야상곡’(1956),‘바이올린 소나타’(1958),‘2악장의 교향곡’(1963),‘오보에를 위한 한국적 음율’(1968), 오페라 ‘직녀, 직녀여!’(1984) 등을 작곡했다. 미국 이스트만 음대 대학원 졸업 후 1953년부터 이화여대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1989년 예술원 음악분과 회원이 됐다. 서울시 문화상(1964), 제1회 한국작곡상(1974), 보관문화훈장(1984), 대한민국예술원상(1986), 국민훈장 모란장(1986),3·1문화상(1993)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역사에 비친 음악가들’(박영출판사·1976)이 있다. 생전에 당뇨로 고생했던 고인은 2003년부터 세딸 김초은(중국학 연구가)·초영(성악가)·초진이 살고 있는 미국에 머물러 왔다.남편인 성악가 김형로 전 서울대 음대 교수는 한국전쟁 때 납북돼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빈소는 서울병원에 마련됐다.12일 오전 9시 영락교회 벧엘기도실에서 발인 예배가 거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영락교회 공원묘지.(02)3410-6918.연합뉴스
  • 29살 총수올라 공격경영 외화 빼돌려 93년 구속도

    충남 천안이 고향인 김승연(55) 한화그룹 회장은 그동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재계의 ‘뉴스메이커’로 통했다. 현대판 ‘귀족’이라는 말도 있다.●한양화학·대한생명 인수 밀어붙여 김 회장은 지난 1981년 부친(김종희)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한화그룹(당시 한국화약그룹) 총수에 올랐다. 불과 29세였다.경기고, 미국 멘로대(경영학과), 드폴대 대학원(국제정치학과)을 졸업한 김 회장은 유엔한국협회 회장, 한·미교류협회 회장, 세계아마복싱연맹 수석부회장, 그리스 명예 총영사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 국회의원과 내무장관을 지낸 서정화씨가 장인이다. 김 회장은 재계의 변방에 있던 한화그룹을 재계서열 10위(공기업과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 제외)로 끌어올렸다.‘든든한 배경’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 등이 외형상 규모를 불리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지난 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을 인수한 데 이어 2002년에는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결과적으론 한양화학과 대한생명 인수가 현재 그룹에는 득이 되고 있지만, 많은 전문경영인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인수를 밀어붙인 게 김 회장이다. 그의 경영스타일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위의 의견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하면 밀어붙이는 쪽이다. 그룹의 성장 이면(裏面)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그룹분리 과정에서 빚어진 형제간 다툼, 대통령선거자금 수사 국면에서의 ‘도피성’ 장기 출국 등이다.93년에는 외화를 빼돌려 미국에 호화주택을 구입했다가 적발돼 구속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자식사랑이 지나쳐 보복폭행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의리 중시… 튀는 행동 구설김 회장은 의리를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김 회장은 부친이 워커 전 주한 미대사의 환갑잔치를 열어주기로 했지만 지병으로 타계하자 1982년 잔치를 열어줘 선친의 약속을 지켰다. 김 회장은 다정다감한 면도 있다.‘기러기 아빠’의 딱한 사연을 접하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임직원들에게 특별휴가와 여비를 지원해 가족 상봉의 기회를 준 것은 따뜻한 품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김 회장은 구속됐을 때 면회를 온 지인들에 대해 매우 고마워한다고 한다. 어려웠을 때를 생각해 정계·재계·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지인들이 구속됐을 때 가장 먼저 면회를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의리와 인간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다소 튀는 행동을 해왔다는 평가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한화그룹의 일부 직원들이 정문에 서서 인사를 한다.”면서 “다른 그룹의 경우에는 이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사회플러스] 헌병에 잡힌 피의자 급사

    군 헌병대에 붙잡힌 사기 사건의 50대 피의자가 조사를 받기도 전 갑자기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26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54분쯤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수사과 소속의 원사 1명과 사병 1명이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조모(50)씨를 경찰에 인계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다. 그러나 군 장성을 사칭해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조씨는 용산서 경제팀 사무실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오후 4시 47분쯤 치료 도중 숨을 거뒀다. 경찰은 조씨에게서 아무런 외상이 발견되지 않고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춰 지병으로 갑자기 숨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 [하재봉의 영화읽기]오래된 정원

    [하재봉의 영화읽기]오래된 정원

    80년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모두 가슴 속에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 정의인지 알면서도 두려움으로, 자신의 안락한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 시대의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숨져 간 그 사람들 앞에서 모두 죄인이었다. 80년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인 광주의 비극을 이야기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엄청난 집단적 상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훗날 장선우 감독이 <꽃잎>으로 영화화 한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 80년대 후일담 문학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황석영 원작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쓰라렸다.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가슴 벅찬 감동보다는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 소금을 뿌린 듯,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영혼이 쓰라렸다. 80년대를 비겁하게 살았던 회한이 온몸의 실핏줄까지 사무치게 말달려갔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십 몇 년 전 당시의 우리의 삶은 암울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과연 우리들 앞에 빛이 있기는 하는 것인지, 시계제로의 캄캄한 상황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지난 뒤 그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다.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다. <오래된 정원>은 지나간 우리의 아픈 역사에 바치는 진혼가이다. 8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자신의 지나온 삶과 무관하게 볼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 나의 삶들이 떠올랐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지는 못했지만 그 상처를 잊고 살지도 못했다. 광주라는 도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시절,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살던 것이 죄악이던 시절, 살아남은 자들이 느껴야만 했던 죄의식은 일종의 시대적 부채였다. <오래된 정원>은 그 부채의식을 멜로 장르 속으로 녹여서 표현한다. 영화는 머리가 희끗한 40대의 남자가 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상범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6년 8개월 만에 풀려난 현우는 사회주의자였다. 자신이 감옥에 있는 그 긴 세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사회주의자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러나 땅 투기를 해서 거대한 부를 획득했고, 풀려난 아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명품으로 외양을 바꿔 준다. 그리고 한 선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한윤희, 현우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 한윤희를 떠올리면서 영화는 현우가 감옥에서 있었던 16년 8개월보다 조금 더 이전인 1980년대 초로 플래시백 된다. 80년 5월, 진압군이 광주로 진입하기 직전, 전남도청에 마련된 시민군 지휘부에서 빠져나가 도피생할을 시작한 현우(지진희 분)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시골학교 미술교사인 한윤희(염정아 분)의 집에서 은거를 한다. 수배중인 사상범을 숨겨만 주어도 신상의 불이익은 물론 심각한 처벌을 받던 그 시절, 수배자의 연고지에는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지인들의 소개로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집에서 은거를 해야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외딴 오지 갈뫼에서 두 사람만의 생활을 보내면서 그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야산 중턱에 있는 낡은 집. 그곳이 그들의 보금자리였다. 시대가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어도 사랑은 피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영원할 수는 없다. 현우는 동지들이 모두 붙잡힌 상황에서 자신만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죄의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한윤희 곁을 떠나 도시로 잠입한다. “숨겨줘 먹여줘 재워줘 몸줘. 그런데 왜 떠나니 이 바보야”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떠나는 현우를 보면서 윤희 역의 염정아가 던진 이 대사는 <오래된 정원>에서 가장 기억되는 대사다. 그러나 현우는 갈뫼를 떠나 도시로 들어오자마자 잠복근무하던 형사에 붙잡혀 감옥에 수감되고, 그 이후 한윤희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리고 현우를 은닉한 죄로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사건 연루자는 면회도 하지 못한다는 법에 의해, 다시는 현우를 만나지 못한다. 현우가 한윤희의 곁을 떠날 당시 윤희가 임신 상태였다는 것을 현우는 알지 못한다. 그는 17년이 지난 시간 동안 윤희를 만나지 못했고 풀려난 후 갈뫼에 다시 와서야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우가 풀려나기 얼마 전,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던 한윤희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갈뫼에 다시 온 현우는 회한에 사무쳐서 옛 생각을 하며 눈물 흘릴 뿐이다. 우리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현우의 비극적 사랑에 우리 모두 공범으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치열했던 시절, 우리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저처럼 크고 많은 수많은 비극들이 만들어졌다. <오래된 정원>은 80년대 후일담 영화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아픔이 개인에게 미치는 고통스러운 삶을 드러낸다. 임상수 감독은 10·26 당일의 이야기를 정치하게 묘사해 가면서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그린 <그때 그 사람들>에 이어 그 바로 뒤 전개된 광주의 비극, 그리고 신군부가 지배하던 80년대 초의 암울했던 전두환 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뜨거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수시로 교차되면서, 17년 뒤 감옥에서 풀려난 현우가, 한윤희와 함께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들이 파편적으로 삽입된 편집은 대중적으로 불편한 양식이지만,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은 잦은 플래시백으로 의도적으로 관객들의 몰입을 차단하고 그들이 비판적 이성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를 원한다.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오래된 정원>이 단순한 멜로로 끝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원작과는 다르게 염정아의 너무나 세련된 도시적 이미지는, 사회주의자 청년을 숨겨주고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불길처럼 사랑하는 한윤희 역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지진희도 너무나 인텔리적이다. 더 좋은 배우의 조합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캐스팅이 나쁜 것은 아니다. 두 배우 모두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각자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모자람 없이 전력투구하고 있다. 원작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윤희의 생기와 도시적 이미지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겠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염정아가 창조한 또 다른 한윤희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시대의 차갑고 무서운 공기가 더 느껴졌다면 역설적으로 그들의 절박한 사랑이 더 빛나지 않았을까? 현우의 체포 뒤 오랫동안 이어지는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이념적 사투와 위장취업 노동운동 등이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밀집도는 조금 떨어진다. 감독이 애정을 갖고 창조한 영작이라는 인물은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며 임상수 감독의 전작인 <바람난 가족>의 주영작과 이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삶에 대한 도덕적 의지와 정열을 갖고 어두운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화면에 옮긴 감독의 노력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02 구독문의:02-319-3791
  • [Local] 대구시 이상화 시인 고택 복원키로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 시인의 고택이 복원된다. 18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시 중구 계산동 계산성당 남동쪽에 있는 이상화 시인의 고택을 복원하기로 했다.1억 5000만원을 들여 다음달 초 공사에 들어가 9월 말 마무리한다. 고택은 이상화 시인이 말년에 머물렀던 곳으로, 대지 205㎡에 건축면적 64.5㎡이다. 최근 고택 복원을 위한 설계를 마치고 시공사도 결정했다. 시는 이곳에 유족과 지인, 문인 등이 소장한 유품을 모아 ‘이상화기념관’으로 문을 열 계획이다. 자료 수집과 전시 등을 모두 완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이상화기념관’은 내년쯤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고택은 이상화 시인의 백부가 지은 집으로, 그는 이곳에서 2년여 생활하다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집은 1998년 대구시의 도시계획 도로에 편입돼 헐릴 뻔했지만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이상화 고택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강력히 반발하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2005년 10월 인근 주상복합건물을 짓던 군인공제회가 집을 사들여 대구시에 기부했다.
  • [부고]

    ●이재(전 경남은행 국제부장)원(전 경희대 부총장)씨 모친상 13일 경희의료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958-9545●추교섭(삼지상사 대표)교인(삼성물산 인사지원실장 상무)씨 부친상 장성봉(사업)씨 빙부상 13이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31)787-1503●여준동(코리아아마스 회장)균동(영화감독)씨 부친상 박재권(3K Inc. 대표)씨 빙부상 13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779-2193●황용진(CJ자산운용 경영리스크관리본부장 이사)창진(안과의사)씨 부친상 13일 부산 조은강안병원, 발인 15일 오전 (051)610-9671●문완식(SH공사 홍보팀장)용식(사업)씨 모친상 김현태(영남건설교육원 원장)김수현(법무사)홍재형(〃)씨 빙모상 13일 서울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3430-0397●신동규(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보도과장)씨 부친상 13일 강원도 원주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10시30분 (033)760-4603●주용철(이로지텍 대표)용진(KCC 차장)씨 부친상 황진자(한국소비자보호원 차장)씨 시부상 손동화(한국식품개발연구원)유병우(자영업)씨 빙부상 13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2650-2742●유형선(인하대 교수)영선(유영선치과 원장)경선(와토코리아 대표)씨 모친상 황도형(전 성신양회 상무이사)김근호(마이폰 사장)씨 빙모상 13일 경희 동서신의학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440-8912●김영태(중소기업청 서기관)씨 모친상 임병전(현대증권 포트폴리오팀 대리)씨 빙모상 12일 부산의료원,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51)607-2654●오환우(진해 경화초등학교 교사)환중(회사원)환원(원테크놀로지 대표)환호(국회의원 보좌관)씨 부친상 12일 경남 창원 파티마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55)270-1942●최완용(엠에스테크놀러지 대표)승용(〃 부사장)호용(종근당 병원사업부장)씨 부친상 최다래(현암중 교사)씨 조부상 이명례(단대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조성묵(삼태성 이사)씨 빙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5●김일원(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발전처 총무팀장)씨 별세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6●김성로(전 동명기술공사 부사장)씨 별세 13일 한양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20분 (02)2290-9460●오용식(충북도의원)씨 부친상 13일 충북 괴산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043)834-4447●조문배(불교방송 보도국 차장)씨 형님상 12일 을지병원, 발인 14일 오후 2시 (02)971-2203●이종구(전 한나라당 총재특보)씨 빙모상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92-0899
  • [부고]

    ●정영환(전 건국학원 재단이사)씨 별세 재원(새화비나 부사장)재윤(명승건축 대표)씨 부친상 윤귀섭(전 금융결제원장)권오형(한국공인회계사회 수석부회장)이광수(전남대 경제학부 교수)황흥주(충정회계법인 대표)씨 빙부상 11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590-2352●정한근(방송위원회 부장)동근(문화일보 기자)씨 조모상 12일 부산 대동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51)550-9955●장영운(자영업)광운(대전도시개발공사 학하사업단 팀장)씨 부친상 이정훈(대전시 공보담당)씨 빙부상 12일 대전 을지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42)471-1653●김상현(원자력안전기술원 홍보팀장)씨 모친상 12일 대전 평화원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042)250-9411●박윤성(자영업)윤모(에이테크 부사장)씨 모친상 11일 서울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2)2072-2016●김항근(전 유니온백시멘트 부사장)씨 별세 준범(김준범성형외과 병원장)씨 부친상 조태훈(한국기술교육대 교수)씨 빙부상 12일 아주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31)219-4110
  • 사회·교육 대정부질문 공방

    사회·교육 대정부질문 공방

    여야는 11일 국회 교육·사회·문화부문 대정부 질문을 갖고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인 3불 정책과 국민연금법 개정 재추진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은 참여정부가 추진해 온 기여입학·본고사·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이 실패한 만큼 폐지 또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3불 정책이 엄연히 존속하고 있음에도 공교육은 죽어가고 사교육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3불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신당모임의 노웅래 의원도 “정부의 입시정책 따로, 대학 선발제도 따로는 한참 잘못된 제도”라며 “대학 측이 요구하는 학생선발 자율권을 3불 정책의 기조 하에서 수용할 여지는 없느냐.”고 따졌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지병문 의원은 “3불 정책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마지노선”이라며 “서울대가 국립대의 본분을 망각하고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각을 세웠다. 같은 당 정봉주 의원도 “3불 정책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축적된 제도”라며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실패한 정책인양 호도해 정권을 획득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신일 교육부총리는 “대학에 학생선발의 자율권이 있지만 고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며 “대학의 난데없는 주장에 정부도 당황스럽다.”고 답했다. 국민연금법 개정 재추진에 대해서도 공방은 치열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모두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한다는 점에서 입장을 같이하지만 한나라당이 기초연금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어 양당 이 이견을 노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상조 의원은 “국민연금법을 부결시킨 한나라당과 일부 정당들의 책임도 있다.”면서도 “이를 이유로 기초노령연금법에 대해 거부권을 운운하는 정부도 옳지 않다.”고 양비론을 폈다. 이어 이 의원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은 재원의 구조와 성격이 다른 만큼 거부권 행사 없이 국민연금법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기초연금만이 장애인, 노인, 가정주부 등 사각지대를 보호하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며 기초연금에 대한 정부 입장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신장 나눴으니 이젠 ‘피나눈 형제’

    10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명지병원 장기이식병동.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김일규(44·㈜공항리무진 기사)씨와 김종승(38·〃)씨가 회복실에 나란히 누워 있다. 지난 4일 신장이식센터에서 4시간이 넘는 수술을 통해 종승씨의 신장은 일규씨의 몸으로 옮겨졌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이제 둘은 콩팥을 나눈 사이다. 종승씨는 급성신부전증으로 쓰러진 직장동료 일규씨를 위해 신장을 선뜻 내어줬다. 노조와 다른 동료들은 기다렸다는 듯 2500만원이 넘는 수술비용 마련에 나섰다. 공항리무진 버스를 운전하는 일규씨는 지난 3월 초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마땅한 기증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기증자가 있다고 해도 문제였다. 일규씨의 가정은 최근 빚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이미 파산 직전의 극한 상황에 내몰린 상황. 수술과 병원비 2500만원은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병문안 차 병원을 찾은 직장동료 종승씨가 “에이. 기운내. 검사해서 맞으면 내가 주면 돼 잖아.”라며 신장기증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2002년 1월 공항리무진 버스회사에서 만나 호형호제하고 지냈다. 고향도 경남 진주와 산청으로 비슷해 귀경·귀향길은 물론 농번기엔 고향에 내려가 ‘모내기 품앗이’를 함께할 정도였다. 종승씨는 그 길로 조용히 이식가능 여부를 검사했고, 결과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이 85% 일치해 이식해도 좋다.”란 판정이 나왔다. 다행히 수술도 성공적이어서 종승씨는 한 달 후, 일규씨는 6개월 후면 직장생활도 가능하다고 한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동료들은 발 벗고 모금에 나서면서 2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노조위원장 이봉열(60)씨는 “비번 날까지 정류장에 나가 승객들의 짐을 실어주는 두 사람의 성실함은 이미 정평이 났다.”면서 “동료들이 내 일처럼 돕는 것도 남의 일에 제 몸 사리는 법이 없었던 두 김씨가 쌓은 덕 때문”이라고 말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美 럼즈펠드계 줄사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국방부에서 한반도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리처드 롤리스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이 물러났다. 미 국방부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롤리스 부차관이 사임 의사를 피력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성명에서 “롤리스가 지난 4년 반 동안 국방부 업무를 훌륭히 마치고 오는 7월 공식 퇴임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롤리스 부차관이 최근 지병인 허리 디스크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고 사퇴 이유를 설명했다. 롤리스 부차관의 자리는 조직 개편에 따라 차관보로 승격되며, 후임에는 제임스 신 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차관보가 임명될 것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롤리스 부차관도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여러 도전에 직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롤리스 부차관은 지난해 11월 치러진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고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사퇴하면서부터 동반 퇴진설에 시달려 왔다. 럼즈펠드 전 장관은 롤리스 부차관을 각별히 아꼈다. 롤리스 부차관은 상관들을 거치지 않고 럼즈펠드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했다. 부차관이라는 직함도 미 국방부에는 없는 것을 럼즈펠드 전 장관이 임의로 붙여준 것이다. 원래는 부차관보였지만, 한국 등 상대국의 고위직 인사들과 직접 상대하도록 형식적으로 높여준 것이다. 럼즈펠드 전 장관은 지난해 말 아·태담당 차관보직을 신설해 롤리스를 내정했으며, 상원의 인준청문회를 앞두고 있었다.외교 소식통들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몰두해 있는 사이에 롤리스 부차관이 사실상 미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을 총괄해 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럼즈펠드 후임으로 등장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롤리스 부차관의 업무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 장관과 롤리스 부차관은 모두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이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주로 분석업무를 담당해 한국 등 현장에서 뛴 롤리스 부차관과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미 국방부 소식통은 설명했다.dawn@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이광우 선생 별세

    애국지사 이광우 선생이 26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82세. 선생은 1942년 5월 당시 17살의 나이로 부산진초등학교 동기생 5명과 일본군 군수품 제조공장인 조선방직을 파괴할 목적으로 ‘친우회’를 조직, 공장노동자를 설득하고, 자갈치시장, 부두 등을 돌며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다 일경에 체포됐다. 체포 뒤 경남 경찰국 고등과 외사계 하판락(사망)주임 등 일본경찰로부터 10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다. 장기간의 조사 끝에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단기 1년 장기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2년 5개월간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았다.1989년 뒤늦게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했지만 증거자료 불충분으로 심사가 유보됐다. 하지만 아들 상국(48)씨가 아버지를 고문한 하판락씨를 추적해 항일활동을 입증,2000년 8월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빈소는 부산 보훈병원 장례식장 203호(011-557-5357)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8일 오전 6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부고] 한만영 전 국립국악원장

    한만영(72) 전 국립국악원장이 지난 21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대 국악과 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예술연구실장,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고인은 1984년 서울부활의교회를 개척했으며 최근까지 서울대치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씨와 아들 별(서울대치순복음교회 목사), 진(용인대 국악과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30분.(02)3410-6916.
  • “대대적 발굴 기대” vs “최대한 보존해야”

    “대대적 발굴 기대” vs “최대한 보존해야”

    대릉원(大陵園)과 이웃한 경북 경주시 황오동 일대 신라고분 밀집지역에 대한 학술발굴조사가 시작됐다. 들머리에 물 색깔이 쪽빛이었다는 우물이 남아 있어 쪽샘지구라고 불리는 곳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소장 지병목)는 땅을 파기 전에 지신(地神)에게 알리고 위로하는 개토제(開土祭)를 지난 20일 현장에서 지내고, 연말까지 1만 6900㎡(5070평)를 발굴조사하기로 했다. 이어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38만 4000㎡(11만 5200평)에 이르는 쪽샘지구 전체를 발굴조사한다는 계획이다. 1973년 훗날 천마총으로 명명된 황남동 155호 고분과 1975년 황남대총 이후 경주의 신라고분에 대한 본격 발굴조사는 32년 만이다. 고고학자들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천마도와 금관을 제 손으로 수습한 선배들의 전설 같은 발굴 스토리를 들으며 꿈을 키워온 젊은 고고학자들은 내심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며 흥분을 억누른다. 반면 고참급 고고학자들은 전면 발굴보다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바라는 분위기이다. 고고학자들 사이에 시각 차이는 있어도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쪽샘지구가 뉴스를 양산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이 지역은 1970년대 버스터미널이 들어선 데 이어 식당촌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 민가로 가득 차 상당수 고분은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도굴꾼들이 고분 위에 지은 민가를 통째로 사들인 뒤 유유하게 땅을 파헤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도로공사 과정에서도 중요한 유물이 수습되곤 하는 만큼 내일이라도 놀랄 만한 무엇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5월 발굴에 따른 세부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사전조사를 벌인 결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추정되는 상당수 신라고분은 민가가 철거되면서 돌무지가 노출되는 등 파괴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몇몇 고분에서는 봉분의 흔적이 관찰되는 등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쪽샘지구 발굴조사팀장을 맡은 박윤정 학예연구사는 “천마총에 버금가는 신라왕족의 화려한 부장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부지를 추가로 사들이고 지속적으로 학술조사를 벌여 대릉원과 연계한 세계적인 고분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지낸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발굴은 최소화하고 보존하는 것이 후손들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라면서 “먼저 시굴조사로 유적의 분포상황을 확인한 뒤 발굴할 고분과 보존할 고분을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것이 필요하다면 1926년 당시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가 참관하는 가운데 발굴이 이루어져 금관과 금제허리띠, 귀고리 등이 다량으로 나왔으나, 현재는 봉분도 없는 노서동의 서봉총을 복원해 내부를 둘러볼 수 있게 만드는 등의 방법도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발굴조사 과정을 시민들이 연중 참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광과 연계한 학습의 장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김재종 前경찰대학장

    경찰대학장과 대통령 치안비서관 등을 지낸 김재종씨가 18일 오후 6시 지병으로 별세했다.62세.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 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전남지방청장과 인천지방청장, 대통령 치안비서관, 경찰대학장, 국무총리 민정수석 비서관 등을 지냈다.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 상원씨가 있다. 발인은 21일 오전 6시.(02)3010-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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