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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 야/광역의회 비례대표 선정 고심/의석은 한정… 각계요구는 밀물

    ◎민자­여성 5·직능대표 3·당직자 2 전망/민주/호남엔 여성·영남엔 전문가 영입 여야는 새로 도입된 광역의회 비례대표의원의 명단을 짜는데 애를 먹고 있다. 후보등록일인 다음달 11·12일까지 후보를 확정해야 하지만 각계의 「열화와 같은 요구」에 비해 의석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비례대표의원 정수는 지역구의원의 10%로 서울 14석 등 모두 97석이다.정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나누되 제1당이 3분의 2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민자당◁ ○…이번 선거에서 민자당 몫은 50석쯤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는 지난 91년 지방의원선거 득표율을 기초로 한 것으로 자민련의 출현과 일부지역에서 여권표의 이탈기류등을 감안하면 더 줄어들 수 있다. 민자당은 당초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돕기 위해 민자당 몫 가운데 70%이상을 여성계에 할당하기로 했다.여성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80% 이상을 요구하는 여성단체들의 「압력」을 고려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후보선정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노총에서 30% 이상을 공식 요구하고 최근민자당에 가입한 1백여개 직능단체들도 「몫」을 요구하고 나섰다.여기에 사무처 당직자,지구당의 청년·여성협의회장,후원회장 등도 배려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 시·도지부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최재욱 기조위원장은 『후보요구가 많다는 것은 즐거운 비명일 수도 있지만 자리를 받지 못한 유력인사들이 반발심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게 걱정』이라고 말했다.일부 시·도지부에서는 중앙당에 추천할 후보대상을 아예 4∼5배수로 늘려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여성 직능대표 당직자의 구성비율이 5대3대2정도의 비율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당◁ ○…우세지역과 열세지역으로 나눠 비례대표제를 활용한다는 복안이다.그러나 이기택총재와 동교동계간 치열한 갈등탓으로 대강의 원칙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선정작업에는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전남·북과 광주등 호남권과 같은 우세지역은 비례대표의 3분의 2를 수중에 넣을 것이 확실한 만큼 여성에 과반수를 할애하고 나머지는 시·도의원 탈락자로 채워 「아까운」 인사를 구제할 계획이다. 그러나 영남권등 열세지역은 여성보다는 각계각층의 전문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분위기다.이들을 민주당으로 끌어들여 지지기반 확산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수도권인데 지난번 광역의회선거에서 민자당이 압승한데다 이번에도 당내분으로 만신창이가 된 까닭에 전체 의석수에서 과연 민자당을 누를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비례대표의 규모를 저울질하고 있다.하지만 전체의석의 3분의 2를 일단 공천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민주/끝없는 내분 최악의 상황/이 총재 「총재실 폐쇄지시」파문확산

    ◎「돈봉투 편파조사·당사난동」 격분­이총재/권 부총재 진사사절… 「마음 돌리기」­동교동 가라앉는 둣했던 민주당 내분사태가 불꽃을 내뿜으며 재연하고 있다. 25일 상오 민주당의 마포당사에서는 총재단회의가 열리고 있었다.경기지사후보 경선파동에 대한 당진상조사위의 활동을 보고받고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자리였다.그런데 회의도중 이기택 총재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이 총재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총재직을 더이상 지켜야 할지 의문』이라고 말한뒤 곧바로 서울역으로 향했다.예정된 경북 김천·금릉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이 과정에서 이총재는 비서진에게 일부 당원들의 행패로 엉망이 돼있던 당사 총재실에서의 철수를 지시했다. 이 총재는 지구당개편대회에서 더욱 강도를 높였다.『공천불만을 빙자해 일부 계파가 뒤에서 조종,나를 상처내고 흠집내기 위한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고 동교동계에 직격탄을 쏘았다.이총재는 『아무리 얼굴이 두꺼워도 더이상 버틸 기력이 없고 정당대표를 더 해야할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총재직 사퇴는 물론 분당까지도 염두에 둔 표정이었다. 이처럼 사태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자 동교동계는 이날 저녁 권노갑 부총재 등 「진사 사절단」을 서울역에까지 보내 상경하는 이총재를 맞도록 하는등 마음돌리기에 나섰으나 정작 이총재는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며 말을 아꼈다.권 부총재가 『이총재가 당을 잘 이끌어달라.모든 문제는 이총재가 결정해달라』고 「백기투항」의 자세를 보였지만 이총재는 『어떻게 총재에게 이렇게 할수 있는지 회의를 느꼈다』며 『지금 심정으로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고 전혀 마음을 풀지 않았다.권부총재가 『총재직 사퇴는 절대 안된다』고 거듭 만류하자 『이런 상태에서 총재를 할수 있겠느냐』면서 『당은 대행체제로 하고 내가 떠나겠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전날까지 『경선파문이 잘 수습될 것』이라고 낙관했던 이총재다.그런 그가 이처럼 태도를 돌변한 데는 조사위의 활동이 편파적이라는 판단과 함께 전날 안산지구당 당원들의 총재실 「난입」이 직접적인 촉매제가 됐다는게 중론이다. 이총재는 조사위의 결론에 대해 『관행인 대의원 투숙을 향응제공이라니 말도 안된다.경선 당시 이규택경기도지부장이 건장한 청년 20∼30명에 의해 입장이 저지된 것도 우발적이냐』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여전히 동교동계가 폭력사태의 배후에 있고 권부총재가 현장을 지휘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위원들이 동교동계의 눈치를 살피느라 이 대목을 그냥 넘겼다고 확신하고 있다.거기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공천탈락 항의 「시위자」들이 이총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호남과 수도권 당원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자신에 대한 「목조르기」로 받아들이고 있다.특히 안산지구당 당원들이 총재실에 걸려있는 이총재의 초상화를 짓밟고 찢은 것은 특정계파의 불순한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할때 이번 내분은 가라앉더라도 적잖은 상흔을 남길 전망이다. 동교동계를 비롯한 나머지 계파들은 「이총재 달래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따라서 코앞에 닥친 지방선거까지감안한다면 이번에도 또다시 갈등을 묻어둔 채 봉합될 가능성이 크다.다만 이 불씨는 언제고 다시 터져나올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주변의 일반적 관측이다.
  • 프랑스혁명의 지적기원/다니얼 모르네 지음(화제의 책)

    ◎18세기 계몽주의사상 성숙·전파경로 추적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근원을 탐구한 고전.17 15∼87년을 배경으로 계몽주의가 무르익어 가는 과정,이 사상이 프랑스 전역으로 전파돼 대중을 각성케 하는 경로를 밝혔다. 지은이는 당시 국가의 개혁을 준비하고 요구한 정신을 「종교에 적대적인 정신」이었다고 본다.18세기 중엽 종교의 자유를 쥐고 흔드는 교회 정책은 맹렬한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이때 국왕의 정부는 교회와 보조를 같이했고,따라서 교회에 대한 반감은 왕정체제에 대한 반발로 옮아간다. 1770년 이후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은 문필가·귀족층 뿐만 아니라 중소 부르주아지,청년층,중학생들에게까지 번져나갔다.그리고 그 바탕에는 지식에의 욕구가 폭넓게 깔려 있었다. 지은이는 사상의 성숙과 전파과정을 밝히기 위해 당시 발간된 정기간행물은 물론 지방의 이름없는 저술가들의 원고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게 추적했다. 지난 87년부터 간행한 「프랑스혁명 2백주년 기념총서」가운데 일곱째 권으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서울대 서양사학과 최갑수교수가 해제를 덧붙였다. 곽광수 등 옮김,일월서각 2만원.
  • 민주/“지방선거는 끝났다” 낙담/경기경선 「돈봉투 파동」 후유증

    ◎8월 당권경쟁 의식한 세겨루기서 비롯/이총재­동교동계 극한대결로 치달을듯 돈봉투사건과 폭력사태등 난장판으로 얼룩진 13일 밤의 경기지사후보 경선으로 민주당은 당내 계파간 극한대결이란 심각한 후유증을 격게될 전망이다.또 야당이 벌인 구태의연한 추태에 대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민주당은 지방선거 전략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게됐다. 아울러 돈봉투사건에 대해 사법기관이 수사에 착수하고 선관위도 선거법위반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민주당은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봉착하게 됐다.돈봉투 살포혐의가 있는 후보의 구속가능성을 비롯,법정으로까지 비화될 소지도 충분하다. 이번 사건은 철저히 이기택 총재와 동교동계의 헤게모니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이 총재와 동교동계의 뿌리깊은 불신과 갈등은 경선을 철저한 DJ(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와 KT(이 총재)의 대리전으로 만들어 버렸다.8월 당권경쟁을 염두에 둔 이총재 진영은 총력을 다해 장경우 의원을 지원했고 동교동계도 이 총재측의 방해로 당초의 「이종찬 후보카드」가 무산된데 대한 「응징」차원에서 자파의 안동선의원를 노골적으로 밀었다.거기다 비주류의 김상현 고문도 당권의 전초전으로 간주,동교동계 안의원쪽에 가세했다.이처럼 당내 계파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결국 「적전분열」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두 진영은 감정싸움을 한층 가열시키면서 급기야 분당까지 거론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더구나 폭행을 당한 이 총재계의 이규택 경기도지부장은 동교동계의 권노갑 부총재와 안의원을 수원지검에 폭력교사혐의로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중단된 개표를 계속할 것이냐 여부와 돈봉투시비에 대한 두 진영의 시각차는 너무 현격해 타협이 어려울 지경이다.따라서 민주당은 15일 총재단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나 해법을 찾기는 커녕 엄청난 내홍에 휩싸여 내분이 심화장기화될 공산이 크다는게 당 주변의 일치된 시각이다. 이 총재는 14일 『개표문제는 총재단회의가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2차투표를 했으면 당연히 개표도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다.거기다 동교동계가 개표를 막는 것은 안후보의 패배가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이총재 진영은 돈봉투사건에 대해서도 「조작」이라고 주장한다.안 후보측에서 열세를 절감하고 1차투표에 들어가기전 대의원 집단합숙과 향응제공을 문제삼아 부동표를 흡수,승리한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이것이 빗나가자 돈봉투사건을 조작해 막판공세를 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특히 폭력사태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동교동계 청년당원들이며 권노갑 부총재가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다고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분위기는 이와 정반대다.대의원들에 대한 향응제공은 증거사진까지 있는 사실이며 더구나 돈봉투를 살포하다 물증까지 적발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까닭에 개표는 있을수 없다고 강조한다.따라서 경선은 당연히 무효이며 재경선을 하든지 두후보를 모두 사퇴시킨뒤 이종찬 고문을 추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이처럼 양쪽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이제 지방선거는 끝났다』는게 낙담한 민주당원들의 자조의 소리다.
  • 서울시장후보/“표밭가꾸기 휴일도 없다”

    ◎정원식/예배뒤 연예인 축구대회장 참석 격려/조순/새벽 등산객 접촉… 잠실구장 야구관람/박찬종/대구서 재충전… 맨투맨 홍보전략 구상 오는 6월 서울시장선거에서 3파전을 벌이게 되는 민자당의 정원식 후보와 민주당의 조순 후보는 일요일인 14일 본격적인 선거전 돌입에 앞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운동경기장등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는 휴식을 취하느라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전날 국립묘지참배와 민자당사 방문,지하철공사장시찰등 바쁜 하루를 보낸 정 후보는 이날 교회를 찾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정 후보는 이날 상오10시쯤 부부동반으로 화곡동 자택을 나서 역삼동 충현교회를 찾았는데 서울시장후보로 선출된 뒤 첫번째 예배인 탓인지 많은 신도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았다. 정 후보는 이어 이웃 음식점에서 고향친구들과 설렁탕으로 점심을 나눈 뒤 2002년 월드컵유치를 위한 연예인자선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동대문운동장으로 향했다.그는 『주최측인 탤런트 이덕화씨가 강력히 요청해운동장에 나오게 됐다』면서 『지난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있을 때 이씨가 연예인지원단장으로 활약해 친분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탤런트 이덕화씨는 본경기에 앞서 내빈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평소 축구에 관심이 많고 대중문화에도 이해가 깊은 귀빈 한사람이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정후보를 소개,1만여명의 관람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정후보는 대회장인 민관식 전문교부장관과 환담을 나누며 가수팀과 탤런트팀의 축구경기를 1시간30분동안 지켜보다 『몇몇 사람과 모여 선거관련 대책회의를 갖기로 했다』면서 자리를 떴다. 정 후보는 15일에는 민자당 서울시지부에서 서울시지구당위원장들과 선거전략회의를 가진 뒤 시지부건물 3층에 마련된 「선거캠프」에 입주한다. ○…12일 선거대책본부 발족에 이어 13일 초청토론회·대학축제참석등으로 분주한 하루를 보낸 민주당의 조순 후보는 14일 새벽5시에 일어나 「관악산산신령」이란 별명처럼 관악산 등산로를 오르면서 등산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조 후보는 이어 상오7시30분 시내 롯데호텔에서 일본의 「전국청년시장회」 대표단 4명과 간담회를 갖고 「바람직한 지방자치 발전방안」을 주제로 환담했다.그는 이 자리에서 초청자인 「참여와 자치를 위한 청년캠프」측 관계자가 『일본을 비롯한 정치선진국에서는 청년들이 지방의원은 물론 단체장에도 당선돼 모범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그는 또 간담회장으로 찾아온 모시사주간지 취재진과 인터뷰를 갖고 봉천동 자택으로 귀가,점심을 들었다.조 후보는 하오2시쯤 낙성대역에서 지하철2호선을 타고 잠실야구장에 도착,OB와 태평양의 프로야구를 관람했다.조후보가 이 경기를 택한 이유는 OB가 서울,태평양이 인천·경기·강원을 본거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 측근이 귀띔했다.조 후보는 이 자리에서 프로바둑기사인 조훈현9단과 우연히 만났다.조9단이 『바둑과 선거는 유사한 점이 많다.끝내기가 중요하다.끝내기를 잘해서 반드시 승리하시길 바란다』고 지지를 표시하자 조 후보는 『나도 아마 5단으로 바둑을 매우 좋아한다.언제 한수 가르쳐달라』고 화답했다. ○…무소속의 박찬종 후보는 이날 아침 일찍 비행기편으로 대구에 내려가 휴식을 취한 뒤 저녁 늦게 귀가했다.박 후보의 한 측근은 『휴일은 쉬고 월요일부터 다시 지하철·노상 등을 발로 뛰며 시민들과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의원 향응” 폭로… 얼룩진 경선/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선출 안팎

    ◎“장 의원측서 현금살포 기도” 주장/몸싸움·욕설 뒤범벅… 대회장 혼란/동교동게,KT진영 비난… 장 부보 사퇴 요구 13일 하오 안양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후보선출 대의원대회는 불법선거운동과 매표 시비로 이어지면서 심한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등 파행으로 얼룩졌다. 이에 따라 장경우 의원을 지원하는 이기택 총재측과 안동선 의원의 소속계파인 동교동계의 「대리전」 양상으로 비쳐졌던 이번 경선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민주당의 지방선거 전략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대회 수차례 중단 ○…하오2시로 예정됐던 이날 대회는 향응제공과 매표 여부를 둘러싼 장경우·안동선 두 후보측의 시비로 고성과 욕설,몸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차례 중단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돈봉투 사건」은 하오7시 결선투표가 진행되는 도중 일어났다. 대의원석에 있던 안의원측 지지자들이 돌연 『장의원측이 대의원들을 매수하기 위해 돈봉투를 돌렸다』고 외치며 투표중단을 요구했다.이어 여러명의 청년당원들이 대의원석에 있던 한중진의원의 보좌역을 자칭하는 최경섭씨(39)를 대회장 뒤 분장실로 끌고 들어가 현금 10만원씩이 든 봉투 3개와 성남시 수정구와 중원·분당구 대의원 명단을 압수했다.최씨는 이와 관련,『대의원들을 매수한 사실이 없다』고 완강히 부인했으나 안의원측은 『대의원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면서 대회를 무효로 할 것을 주장했다.이 과정에서 양측은 욕설과 함께 심한 몸싸움을 벌여 투표가 중단됐다. 도지부 선관위측은 「돈봉투 시비」가 일자 즉각 회의를 소집,대책을 논의했으나 대회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안의원측과 「선대회 후진상조사」를 주장하는 장의원측 주장이 맞서 하오11시가 넘도록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돈봉투사건」으로 대회가 중단되자 동교동계는 장의원의 자진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이총재 진영에 총공세를 폈다.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 부총재는 『이번 사건은 명백한 해당행위』라면서 『마땅히 장의원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후보를 자진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이어 『투표장에서 돈봉투를 돌리다 적발된 것은 야당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라며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경선을 무리하게 고집한 측이 이번 일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이총재에게 화살을 돌렸다.김영배 의원도 『당에 이렇게 먹칠을 했으니 이제 장의원은 당을 떠나야 한다』고 흥분했다. 이에 맞서 장의원은 『돈봉투 문제는 선관위의 엄정한 조사를 통해 가려져야 할 문제』라면서 『결선투표까지 마쳤으니 투표결과를 발표하고 대회를 정상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한편 이총재는 이날 밤 측근인 이장희 의원으로부터 대회상황을 보고받은 뒤 『개함을 관철시키라』고 엄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회장 주변에서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이 12일 귀국해 경기도지사 후보선출문제에 대해 불쾌한 심기를 나타낸 점을 들어 『동교동계 의원들이 이번 기회에 이총재측에 본때를 보여 주려고 단단히 벼른 것 같다』고 관측했다. ○진상규명을 요구 ○…한편 이날 하오2시 대회 시작 직전 안의원은 성명을 내고 『장의원측이 자파 대의원들을 12일 밤 집단투숙시키며 향응을 제공했다』면서 즉각 선관위를 소집할 것을 요구하며 대회참석을 거부,대회가 1시간20분 남짓 지연됐다. 안의원은 성명에서 『당헌당규를 위반한 이같은 불법타락선거에 대해 선관위는 즉각 진상을 규명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의원측은 현장사진과 호텔 객실열쇠 등을 증거로 공개하면서 『이밖에도 용인플라자와 안양관광호텔 등에도 하남·동두천·용인지역의 대의원들을 투숙시켜 술과 음식을 제공하고 20만원씩을 지급했으며 여기에는 이총재 측근의원들까지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과반서 2표 부족 ○…전체 대의원 5백10명 가운데 4백59명이 참가한 1차투표에서 이총재측이 지원한 장의원은 2백28표를 얻어 안의원을 6표차로 눌렀으나 과반수에 불과 2표가 모자라 결선투표에 들어갔다. 한편 7표에 그친 정관희후보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안의원과 손을 맞잡고 등단,안의원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 피습 노동청 수색/학생가방 등 수거/경찰,수사본부 설치

    서울지방노동청 화염병 피습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방배경찰서는 22일 김종우 서울경찰청 형사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범인검거를 위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서울지방노동청 주변을 수색한 결과 화염병 37개,쇠파이프 32개,시너통 1개 등이 든 비닐백과 대학신문 정기구독 신청서용지 47장이 든 학생용 가방을 각각 수거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최근 해고근로자들의 노동부장관 면담좌절과 사당의원내 경찰병력진입 등과 관련,노·학연대를 주장하는 운동권학생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날 상오 1시10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3동 102 서울지방노동청 건물에 마스크를 쓴 청년 40명이 몰려가 화염병 10개를 던져 1층 로비가 불에 그을리고 당직근무자 김상수(39·근로감독관)씨가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다.
  • “전당원 지방선거 자원봉사자로”/민자/교육지침서 지구당에 시달

    ◎청년·여성조직 훈련… 250만명 확보 목표/전국구의원도 활용… 6월초부터 「실전」 투입 민자당이 자원봉사자 확보를 위한 비상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돈과 조직」이라는 프리미엄이 사라진 만큼 6월의 지방자치선거는 자원봉사자들이 얼마나 뛰어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가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민자당은 중앙당에 3만명,15개 시·도지부와 2백37개 지구당에 1만명씩 모두 2백50만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지난달 25일부터 신문광고등을 통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그러나 16일까지 접수된 신청서는 중앙당에 1백50여명을 비롯,모두 3천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지구당별로 10명 안팎으로 유급선거운동원을 제한하고 있는 선거법 규정 때문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당원들이 섞여 있어 순수한 자원봉사자는 1천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민자당은 이에 따라 전국 시·도지부및 지구당에 배포한 지방선거대비 당원교육지침에서 「모든 당원의 자원봉사자화」를 시달했다. 김덕룡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지난날 당원들은 일당과 활동비등을 통한 선거특수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당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원봉사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익숙지는 않겠지만 민자당이 모범을 보일 때 유권자들도 집권당의 자기희생을 인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사무처 관계자는 『4백50만 당원 가운데 허수를 뺀 2백만명과 대학생,직장인 가운데 희망자,그리고 후보자의 사조직을 모두 흡수하면 2백50만 자원봉사자 모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그래서 2단계 자원봉사자 확보 전략을 세웠다.당원단합대회및 당원교육이 금지되기 시작하는 선거일전 45일(5월12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5월12일 전까지는 전국 4천3백여개 읍·면·동별 협의회의 기본조직인 청년회장 여성회장과 전국 2백37개 지구당별 직능조직인 청년·여성위원장들을 자원봉사자의 「씨앗」으로 훈련시킨다는 것이다.이를 위해 이달초부터 지난 11일까지 전국 시·도지부및 지구당 당직자와 청년·여성위원장들에 대한 중앙당 연수를 마친데 이어 이달말까지 여성중앙위원들을 권역별로 나눠 여성정책홍보단을 구성할 방침이다. 또한 7만명의 단원을 거느리고 있는 민주자유청년봉사단(민청·총단장 박종웅 의원)을 행사및 홍보전의 주축으로 내세우기 위해 14일부터 다음달초까지 권역별 세미나를 갖는 방식으로 조직을 점검하고 있다. 2단계로 다음달 12일부터 이들 기간조직을 자원봉사단으로 전환시켜 지구당및 시·도지부에 할당하는 한편 자원봉사자 교육을 지역별로 수시로 실시해 비당원의 흡수에 주력할 방침이다.이를 위해 자원봉사자 신분증도 만들어 소속감을 높여 주기로 했다.전국구의원들도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지역별로 투입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허용되는 6월 11일부터 「실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민자당은 그러나 자원봉사제도에 익숙지 않은 일선 조직에서 자원봉사 모집을 빙자한 호별방문,별도의 사무실설치,자원봉사자에 대한 활동비지급등 탈법 시비를 빚을 가능성에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따라서 「자원봉사자를 위한 선거법 해설」 책자를 발간해 배포하는 한편,자원봉사자 신청서 접수 때 불법선거운동을 않겠다는 서약서를 함께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대전/민자「인물」­자민련「바람」 한판승부(시도지사 누가뛰나:4)

    ◎여 박태관·박중배씨 물망… 자민련은 심대평씨/충남/김덕영 전지사·이동호 전내무 등 여 공천경쟁/충북 ▷대전시장◁ 대전지역은 이른바 「JP(김종필 의원의 애칭) 바람」의 영향권에 든다.김의원이 이끄는 「자유민주연합」 쪽에서는 대전시장을 남에게 내준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의기양양하다. 그러나 민자당의 생각은 다르다.신당바람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표로 연결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민자당은 이곳 유권자 가운데 45%가량이 충청권 출신일 뿐 35%는 영·호남사람,나머지는 이북출신등 전국각지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니 「자민련」이 넘어설 수 없는 벽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듯 하다. ○염홍철씨 후보확실 결국 대전시장 자리는 「인물」을 앞세운 민자당과 「신당바람」을 등에 업은 「자민련」 사이에서 그 주인이 판가름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자당은 염홍철 대전시장을 후보로 내세울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염시장은 대전시장으로 부임할 때부터 민선시장을 염두에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지난 2년 동안 나름대로 조직을 다지고 「연애에 빠진 시장」이라는 수상집을 내는등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자민련」은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지낸 홍선기씨를 후보로 내정해 놓고 있다.홍씨는 이 지역 최대의 학맥을 이루는 대전고 출신인데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래서 JP가 민자당 대표로 있던 시절부터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등 다른 야권후보는 변수가 되지못할 것이라는 풀이들이다. ▷충남도지사◁ 충남은 「JP 바람」의 본거지로 민자당이 도전장을 내는 양상이 되고 있다. ○지역발전 논리 강조 민자당은 JP의 신당바람에 속을 태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JP의 고향인 부여를 중심으로 한 충남남부와 천안·아산을 중심으로 한 충남북부는 정서가 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또 북부는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자당은 박태권 전지사를 일단 후보 물망에 올려놓고 있다.박전지사는 벌써부터농민회와 농어민후계자단체 새마을조직 4H 청년회의소등 각종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박전지사 쪽에서는 『낙후된 지역의 발전을 이루려면 중앙과 막바로 선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이 지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면서 특히 민주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박중배 지사가 급부상하고 있다.정치인을 내세워 「자민련」이 바람을 일으킬 명분을 주기 보다는 정통관료끼리 인물대결을 해보자는 것이다. 「자민련」은 심대평 전충남지사로 이미 굳혀 놓았다.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과 청와대행정수석을 지내기도 한 심전지사는 오래전부터 지사출마를 위해 물밑 작업을 해왔던 인물이다.일찌감치 지사후보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진 심전지사는 JP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민주당에서는 장기욱의원이 출마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당 바람으로 요즘은 주춤해진 상태다. ▷충북도지사◁ 충북지사는 민자당과 「자민련」 모두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JP 바람을 여기까지 불게 할 수는 없다』는 민자당과 『충북까지는 건져야 한다』는 「자민련」의 비장한 각오가 맞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김덕영 전충북지사와 윤석조 서주산업회장·이동호 전내무부장관·김재기 종합유선방송협회장등이 뛴다 최근에는 이원종 전서울시장까지 거론되는 등 경선이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기에 전국구의 구천서의원이 『젊은 세대에 경선문호 개방』을 외치고 있다. ○양보못할 마지노선 「자민련」은 지방자치제 선거가 끝난 뒤 예상되는 정계개편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충북지사를 차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이 때문에 민자당 공천을 노리다 최근 옮겨온 주병덕전충북지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민주당은 이용희고문이 2년째 지역기반을 닦으며 『여권후보의 난립으로 표가 분산되면 가능성이 있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 일 국회의원/“정주외국인 참정권 부여”88%찬성

    ◎재일 한국청년 상공인연합 설문조사/실시시기 90%가 “5∼10 년뒤 예상”/자민·신진의원 상대적 반대 많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국회의원들은 재일 한국민단(단장 신용상)이 추진하고 있는 정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긍정적인 것으로 재일 한국청년상공인연합회(회장 여건이)가 실시한 앙케트 조사결과 10일 밝혀졌다. 상공인련이 기명식으로 지난달 일본 중·참의원 7백59명을 대상으로 앙케트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이중 3백15명이 응답했으며 88%인 2백76명이 지방참정권부여에 찬성했고 3%(10명)가 반대했다. 또한 현재는 인정할 수 없으나 장래에는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5%(16명)로 나타났으며 실시시기에 대해서는 90%가 5∼10년뒤로 전망했다. 찬성하는 이유는 일본 민주주의 진전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반대하는 응답자들은 『귀화하면 참정권이 생기므로 귀화하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여 회장은 『간사이(관서) 대지진 직후 조사라서 회답률이 50%에 이르지 않아 그대로 평가하기는 어려우나지방참정권 실현을 위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정당별로는 중·참의원 모두 모든 정당에서 찬성이 있었으나 반대하는 의원은 자민당과 통합야당 신진당에 많았다.
  • 가장 안정된 도시/개성/가장 타락한 도시/혜산(북한 이모저모)

    ○경제·범죄율 등 분석 ○…북한의 지방도시 중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된 도시는 「개성시」이며,가장 타락한 도시는 「혜산시」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입수된 북한관련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각 시·군에 대한 주민들의 성향및 경제실태·범죄발생률 등을 분석한 후 이같은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이 자료는 북한은 개성시를 평양 다음으로 안정된 지역으로 간주,식량 등의 물자를 타 도시에 비해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며,거주 주민들이 직장을 무단으로 결근하거나 싸움질 등 조그마한 문제만 야기시켜도 지체없이 타 시·군으로 추방하는 등 안정화 지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성시가 북한의 지방도시 중 가장 안정된 지역으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수차에 걸친 성분조사 사업을 통해 6·25전쟁 피해자 등 소위 성분양호자 20% 정도만을 남기고 전 주민을 타 시·군으로 강제이주 시킨데 이어 휴전선에 인접한 도시라는 이유로 「승인번호제」를 도입,일반인의 개성시 출입을 억제 시킨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와함께 1955년 개성시를 직할시로 승격시키면서 지방공업을 육성한 관계로 모든 물품의 공급이 타 시·도에 비해 비교적 잘 이뤄져 시민들의 생활이 다소 낫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양강도 혜산시는 중국과 인접한 관계로 밀수 등 각종 범법행위가 만연,북한이 가장 골치아픈 도시,타락한 도시로 여기고 있다. 일례로 생전의 김일성도 혜산시의 타락상에 대해 『혜산시 청년들은 주체사상보다 자본주의 사상에 더 물들어 있다』고 비판을 가하였다는 것이다. ○획일적 찬에 식상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시리즈 영화 「민족과 운명」을 외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북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체제를 「이상향」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특히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나아가 「예술적 자질」을 선전하는 도구로도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북한주민들에게는 관람이 거의 「의무사항」이 되고 있는데 주민들은 대부분 이에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즉 획일적인 김일성 김정일체제 찬양물이라는데 흥미를 잃어 의무적인 관람때에도 잠을 자거나 여러가지 핑계로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민족과 운명」시리즈는 현재 21부까지 공개됐다.
  • “민자당 새출발에 마음 든든”/김대통령/1년만의 당사방문 이모저모

    ◎「행정구역」 언급안해 당·국회 일임 시사/「열린 정당」 향해 이 대표중심 단합 당부 김영삼 대통령이 22일 민자당사를 방문한 것은 지난해 1월31일 당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방문한 뒤 두번째이다.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3시55분쯤 당사에 도착,이춘구대표와 김덕용사무총장 등 당6역의 영접을 받으며 5층 당무회의실로 직행. 이대표는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총재께서 대통령취임 2주년과 유럽순방 일정 등 바쁜 국정에도 불구하고 당을 찾아주어 큰 기쁨이자 영광』이라고 환영.이대표는 이어 『지난 2년동안 나라의 도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총재의 세계일류국가 건설이라는 목표가 힘차게 펼쳐지는 취임3차년도가 되길 바란다』고 부연. ○…당무회의에서 김 사무총장은 95년 당무운영계획 보고를 통해 『시·도지사후보 선거인단 선출및 각급 후보 공모,영입설명회,후보경선,공천자대회 등으로 선거흐름을 장악하고 유권자의 70%에 이르는 청년층과 여성층의 관심을 이끌 생활정치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보고.그러나 정작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행정개편 문제에 관해서는 언급이 전무. ○…이승윤 정책위의장은 정책보고에서 『국가경쟁력에 역행하는 법과 제도를 조속히 정비하고 사후대책위주의 정책개발이 아니라 사전대비 위주의 정책개발을 강화하겠다』고 다짐. 현경대 원내총무는 『국익을 위한 국회를 주도하기 위해 합리적인 야당의 주장은 과감히 수용하고 지방자치제가 진정한 주민자치·생활자치 실현에 부합되도록 관련 제도를 검토·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보고. ○…김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에서 『오랜만에 당사를 방문,감회가 크다』면서 『당이 지난 전당대회를 계기로 새출발하고 있어 총재로서 마음 든든하다』고 새 당직자들의 업무추진에 만족감을 피력. 김 대통령은 이어 「역사를 창조하는 정당」의 첫째 조건으로 국가 발전의 장기비전을 제시한 뒤 『민자당이 앞장서야 세계화는 성공하며 국민들이 세계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당원들이 선봉장이 되어 달라』고 주문. 김 대통령은 국가발전의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정책개발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여의도 연구소」의 설립을 예로 든 뒤 『합리적 논리와 정책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연구하는 정당만이 승리할 것』이라고 언급. 김 대통령은 19세기말 근대화의 문턱에서 지도층이 수구파와 개화파로 분열돼 나라를 잃었던 교훈을 상기시킨 뒤리춘구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의 단합을 당부. ○…김 대통령은 그러나 정치권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지방행정 구역및 구조개편 문제에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당론화 단계에 접어든 개편 논의를 당과 국회에 맡겼음을 시사. ○…김 대통령은 당무회의가 끝나자 회의장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김 대통령은 지난번 대통령선거 전까지 집무실이었던 당사 6층 대표실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감회어린 표정. 김 대통령은 이어 3층 대회의실에 마련된 다과회장으로 이동. 김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오늘은 전당대회 뒤 새로 취임한 이춘구대표가 국회에서 첫 연설을 한 날』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뒤 『새로운 결심으로 승리를 다짐하자』고 강조. 김대통령은 다과회장을 나와 예정에 없던 기자실에들러 기자들과 악수로 인사.
  • 세계화 과제/외국어 조기교육 등 19개로/「추진위」 잠정선정

    ◎정부정책 개선대상은 37개 세계화추진위원회는 18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이홍구 국무총리와 김진현 공동위원장 주재로 제4차 회의를 열어 「법률서비스 향상과 사법시험제도 개선」등 6개분야,19개 중점추진 과제를 잠정 선정했다. 추진위는 이와함께 세계화추진 관련위원회나 정부 부처가 시행방안을 작성,위원회에 제출할 과제로 「미래산업구조에 대응한 산업인력 양성체제 개선」등 37개를 선정했다. 추진위는 오는 21일 제5차회의를 열어 추진과제를 확정한 뒤 25일 김영삼대통령주재로 열리는 제6차회의에 보고한다. 추진위는 3월까지 분야별 소위원회를 가동,과제별로 구체적인 추진정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날 잠정 선정된 중점추진과제와 위원회 상정과제는 다음과 같다. ◇중점추진 과제 ▲외국어 조기교육실시등 효과적인 외국어교육▲외국에 대한 이해증진을 위한 교육강화▲청년들의 세계봉사와 입시제도 연계▲행정·교육·복지분야의 정보화 촉진▲법률서비스 향상과 사법시험제도 개선▲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경제규제 철폐▲노사제도및 관행의 합리화▲세계촌 운영방안▲기업지배 구조의 개선▲세계화를 위한 언론의 역할▲공무원의 국제감각 함양을 위한 교육훈련제도 개선▲행정전문성 제고를 위한 고급공무원 임용 육성체제 개편▲지방자치제하의 지역균형개발추진▲세계화에 부응한 지방자치단체 역할증대▲한반도 주변4강 조사연구체제 구축▲국제기구 참여확대▲해외동포사회 활성화▲자율적 민간운동의 활성화와 각종단체 운영의 합리적 개선▲국가이미지 일류화(해외여행문화 개선,한국형 적십자운동 전개 ◇위원회 상정과제 ▲창의력과 인성중시 교육제도 개선▲미래산업구조에 대응한 산업인력 양성체제 개선▲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사회 각분야의 정보화 촉진▲과학기술의 획기적 발전및 연구개발 활동의 세계화▲출연연구기관의 관리체계 효율화▲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정보통신서비스 산업의 경쟁 촉진▲행형제도 개선▲치안서비스 개선▲경제환경변화에 대응한 경제운영방식 개선▲징세제도 개선▲외국인노동자 종합대책▲농어촌의 세계화▲연금·의료·고용보험제도 발전▲식품·의약품안전관리체계 선진화▲금융·외환개혁의 가속화▲세계무역기구체제 출범에 대응하는 산업지원체제 개편▲도로 공항 항만 고속철도 확충▲시민정치의식의 세계화▲감사제도 확립▲공무원간 직급 불균형 시정▲공직자 경쟁풍토 조성을 위한 인사제도 개선▲공무원 사회의 긍지제고와 부정부패 척결▲지방재정의 확충▲국가와 지방정부간 재정및 정책연계성 제고▲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이질성 해소▲실리외교의 추구▲신해양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21세기 환경 비전과 추진방안▲한반도 환경보전을 위한 국제협력 강화▲우리 문화예술의 세계진출과 외국문화의 합리적 수용▲세계인상 제도 도입▲기초질서 확립과 국민생활 개혁▲문화예술 공간의 확충▲문화와 관광연계▲지식 문화산업의 경쟁력 제고
  • 민자,12국2실 체제 개편안 의결(정치)

    민자당은 15일 당무회의를 열고 조직국및 정책국을 통합하는 등 14국 체제를 12국2실 체제로 개편하는 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은 정책2·3국을 폐지,정책국으로 통합하는 대신 정책운영부와 정책부를 신설하고 있다. 또 청년직능국 기능 가운데 청년분야를 조직국에 편입시키고 직능국을 독립시켰다. 이와 함께 중앙상무위원회를 지원하기 위해 상무위 운영실을 신설하고 국책자문위에도 행정실을 신설했다. 이밖에 지방자치제의 시행을 앞두고 시·도지부의 기능 강화 차원에서 조직·지방자치·홍보·청년·여성부외에 정책부를 신설했다.
  • 중국/「남아선호」 폐해/여아살해 급증

    ◎낙태 97%가 여아… 연4백만명 추정/「한자녀갖기」 부작용… 성비 불균형 심화 남자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중국 사람들의 욕망이 최근 들어 12억 중국민의 인구 구조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중국은 다른 아시아국가들처럼 전통적으로 남아선호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나라로 예전에는 여아를 낳으면 강보에 싸서 강가에 버리거나 우물속에 빠뜨리는 악습도 자행,유아 살해율이 매우 높았었던 나라였다.유아살해율은 정확히 말해 여아살해율이 옳은 말이었다. 중국에서 이같이 수천년동안 자행된 여아살해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때는 바로 공산당 정부가 남녀에게 공평한 취업의 기회를 준다고 부르짖고 실제로 일부는 그렇게 됐던 지난 1949년조치 이후부터. 그러던 것이 지난 70년대 들면서 유아살해가 다시 크게 늘고 있으며 이번에는 합법적인 형태를 띤 낙태가 자행되고 있어 단속이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즉 태아의 감별을 통한 여아살해가 전국적으로 만연된 것이다.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태아 유산의 97.5%가 여아이며 정확한 수치는 없으나 한해에 3백만∼4백만명 이상이 여자태아 중절수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이처럼 여아살해가 다시 고개를 든 것은 지난 70년대초 중국 인구가 10억을 넘어서면서부터 인구폭발의 위기를 느낀 정부가 자녀를 한명만 낳도록 하는 조치를 시행한 이후다. 한명의 자녀를 갖자니 자연 남아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여아를 기피했고 여기에 지난 79년 초음파 검사를 통한 태아 성별 판별이 처음 선보이면서 이를 더욱 부추겼다. 현재 중국에는 초음파 검사기 약 1만여대가 전국 도시에 보급돼 있으며 이 기계가 갖춰진 병원에는 지방 각지에서 모여든 산모들이 구름처럼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청년보는 감숙성 산골의 한 개천가에 밀려온 강보에 싸인 여아 쌍둥이가 죽어가는 처참한 모습의 사진을 「어머니 당신의 딸을 다시 집으로 데려가십시오」라는 제목과 함께 보도했다. 여아 출산 기피로 현재 중국의 남녀 인구비는 여자 1백명에 남자가 무려 1백18.5명이라는 심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의 어느 시골에 가도 혼인 적령을 넘은 남자는 부지기수인데 짝이 될 여자는 거의 없다.운남성 남부의 한 시골에서는 1백여명의 노총각들이 장가를 가지 못해 애를 태우는 사례가 지방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로서는 아직 뾰족한 묘안이 없어 여아 감소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고 결혼을 위해 돈을 주고 여자를 사거나 훔치는 못된 풍습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 해방정국의 혼란(새로쓰는 한국현대사:6)

    ◎송진우,「건준」 맞서 「국민대회준비위」결성/여운형 내세운 우익의 「합작」노선 반대/“「임정」지지”표방… 고하 피살로 좌익 타격/하지, “「인공」은 소련과 밀접한 관계… 활동 중지”명령 1945년 해방정국은 아주 혼란스럽게 저물어갔다.당시 사회상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있다면 미 국무성이 J R 하지 중장에게 파견한 정치고문 H M 베닝호프의 보고서일 것이다.미군이 진주한 이후 9월15일에 작성한 이 보고서는 「조금만 불똥이 튀어도 폭발할 화약통,그것이 남한의 상황」이라고 기술했다. 그의 말대로 남한은 과연 화약통이었을까.어쨌든 1945년이 세밑에 다가선 12월30일 상오6시 송진우를 저격한 서울 원서동 76의 총성을 시발로 정치테러가 잇따랐다.뒷날 여운형·장덕수·김구로 이어진 암살사건은 해방정국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송진우는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하자 이에 맞섰다.그래서 건준이 인공을 선포한 다음날인 9월7일 우익지도자 3백80명과 함께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아직 중국 중칭(중경)에서 돌아오지 못한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를 지지하고,국민대표를 선출하기 위한 모임이었다.송진우의 죽음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다만 건국대회준비위원회는 9월16일 한국민주당(한민당)을 창당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 해방정국의 판도를 선점한 인공의 실체를 먼저 딛고 넘어가는 것이 당시 사회상을 돌아보는 수순이 될 것이다.인공이 병아리라면 달걀 격이기도 한 건준은 194508월15일 발족되었다.여운형은 8월14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으로부터 일본 패전소식을 들은데 이어 다음날 15일 아침에는 정무총감 엔도(원등륭작)의 방문을 받는다.행정권을 이양할 테니 맡아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이를 수락한 여운형은 그날밤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부위원장은 안재홍이 맡았다.이와 더불어 5개의 부서를 두고 2천여명의 청년·학생으로 건국치안대도 조직되었다. 건준에 송진우·장덕수등은 불참했으나 안재홍·김병로·이인등 우익및 중간노선의 인물과 박헌영계열의 좌익세력,정백 중심의 장안파 공산당계열이 들어왔다.말하자면 좌우합작성격을 띤 건준은 지방조직도 확대,8월말까지 1백45개의 지부조직이 이루어질 정도였다.그러나 건준은 건국에 실패하고 말았다.좌익계열이 재빨리 조직을 확대,건준을 장악하고 미군이 진주하기 이틀전인 9월20일 조선인민공화국(인공)을 선포한 것이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한 이후 9월12일 하지장군이 시공관에서 정치인들과의 대화를 모색할 때 33개 정당대표가 등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이렇듯 복잡다단한 정치상황은 하지의 정치고문 베닝호프가 9월15일 미 국무성에 보낸 보고서에 나타난다.그는 9월말에 가서 이들 정당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는데,민주적 보수집단과 급진 또는 공산주의가 그것이다.특히 미군정은 급진주의 주요세력으로 인민공화국을 주목했다. 그래서 미군정은 인민공화국을 도전세력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이는 공식명칭에 국가를 상징하는 「국」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유일한 정부를 표방했기 때문이다.더구나 인공은 1946년3월1일 총선거 실시를 골자로 하는 특별조치까지 마련해놓은 상태였다.이에 대해 군정장관 아놀드는 10월10일 한국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군정이 남한의 유일한 정부』라고 못박고 『군정은 다른 형태의 모든 정부를 통제할 권한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인공은 이에 맞서 11월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서도 공화국명칭을 여전히 사용했다.하지는 맥아더에게 보낸 보고서(미 외교문서시리즈 제6·1945년)에서 「인공은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세력이고 소련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전했다.그리고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닌 상당수의 좌익세력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인공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옳겠다고 판단한 하지는 맥아더에게 이 대목에 대한 평가도 구했다. 맥아더로부터 「어떠한 결졍을 내려도 지지할 것」이라는 회신이 돌아왔다.하지는 마침내 인공에 대한 활동중지명령을 내린다.이에따라 주한미군 방첩대(CIC)는 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간판을 떼어버렸다.이렇듯 인공은 미군정 아래서 좌익세력규합 이외에 다른 의미를 거두지 못한 채 사실상 종말을 고한 것이다. 이승만과 김구는 인공중앙인민위간판이 내려지기 얼마 전에 귀국했다.이승만은 10월16일,김구는 11월23일에 각각 돌아왔다.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귀환문제,특히 이승만문제는 워싱턴·토쿄(맥아더사령부)·서울(미군정) 사이에 사전조율되었다(미 육군작전국문서 한국편 1945년10월).하지는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이승만·김구·김규식의 귀환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 국무성은 중국 중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망명지로부터 귀환이 허가되었음을 통보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자격 귀환임을 강조했다.여기에는 이승만도 포함되었다.미 국무성은 귀환자들에게 「38도선 이남지역에 머무는 동안 군정당국의 법과 규칙을 준수한다」는 서약서를 받도록 하는 조치도 잊지 않았다.이승만은 귀국 2주만에 반소(반소)논쟁을 벌였다.이에 국무성은 서약을 유의토록 환기시키면서 곧 소련과 가질 교섭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반응을 즉각 보였다. 국제간에 이해가 엇갈린 정치전략은 변화무상한 것인가.철저한 반공주의자에다 항일운동가라는 점을 들어 서둘러 귀국시킨 미국이 이승만에게첫 제동을 건 것이다.김구 역시 이승만과 같은 이유로 여의도 군용비행장을 거쳐 조국땅을 밟았으나 그다음 12월2일 군산비행장에 내린 임정요인들은 고국의 산하조차 바라보지 못하는 미군 장갑차에 실려 서울에 왔다.이승만과 김구의 환국은 다른 정치판도의 변화를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승만의 존재는 하지로 하여금 각양각색의 정치단체통합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당시 이승만의 명성은 대단해서 모든 정당이 거의 다 의장직 수락을 제의해올 정도였으니까….이승만은 귀국한 지 1주일도 안되는 10월23일까지 50여개 단체대표를 만났다.그 결과는 독립촉성중앙회 결성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인공과 공산주의자들이 등을 돌려 좌우익 골은 더욱 깊어갔다. 한편 38도선 이북 소련군 점령지역 평양에서는 9월3일 국내파 공산주의 중심인물의 하나인 현준혁이 암살되는 것으로 정치투쟁조짐을 드러내고 있었다.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원장 조만식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그의 죽음은 한반도 해방정국의 암살1호로 기록된다. 이에 앞서 소련군사령관 치스차코프의 명령에 의해 10월8∼10일 평양에서 북조선 5도대회가 열린데 이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설립(10월13일)되었다.그리고 김일성이 모습을 드러낸 평양시민대회(10월14일)가 열렸고,들러리정당 조선민주당이 창당되는등 소련의 의도대로 착착 돌아갔다. 역사에는 결코 가정이 없다고 한다.하지만 이런 명제를 무시하고 남북한의 많은 세력이 구심점을 갖추었거나 연합전선을 폈더라면 외세에 의한 분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해방정국은 건국의 옷을 입기는커녕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해방뒤 「첫 정치희생자」는 현준혁/「사회장사진」국내 첫 발굴/「송진우 저격」 3개월여전 평양서 적위대에 피살/「9월3일 암살」 묘비서 확인… 「소관련」시사 논문도 우리는 해방정국에서 암살1호하면 45년 12월30일에 숨진 송진우를 흔히 떠올린다.그러나 사실상의 첫 희생자가 이보다 3개월이나 앞서 9월3일 평양에서 소련 민정당국과 결탁한 반대파에 암살된 공산주의자 현준혁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흔치않다. 그는 1906년 평남 개천의 소지주 집안출신으로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인물.8·15해방을 서울에서 맞아 장안파공산당의 평안남도 책임자로 임명됐다.그달 18일 평양에 도착한 직후 조선공산당 평남지구위원회와 적위대를 조직했다.소련군이 진주한 무렵 다른 공산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8월27일 조직된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될 정도였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남의 공산주의 세력은 소련파·화요파·적색노조파등이 복잡하게 얽힌 형국.소련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하던 그는 소군정과 관계가 좋지 못했고 이를 빌미로 반현준혁파들은 그를 반소분자나 부르주아로 몰아세웠다. 그가 심하게 마찰을 빚었던 상대는 평양 보안서장을 거쳐 평양시 적위대장에 임명된 송창겸과 일제때 포목조합 이사장을 지낸 장시우등 소련파.김일성 영입 계획을 추진하던 소련 민정당국은 결국 송창겸과 장시우등 친소적인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현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9월3일하오1시 소련 민정사령부서 회의를 마치고 소련제 스리쿼터를 타고 돌아가다 적위대 복장의 괴한에게 총을 맞고 숨졌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일본 도쿄대 와다 하루키(화전춘수)교수는 자신의 논문 「소련의 대북한 정책」에서 「암살범이 누구이든 현준혁의 죽음은 소련측으로는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고 기술했다. 현준혁의 암살날짜가 지금까지는 9월28일로 알려졌으나 최근 하와이대 서대숙교수가 평양에서 촬영한 묘비 기록을 통해 9월3일로 확인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소련당국이 의도적으로 현준혁의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러준 당시의 사진도 긴급 입수했다. 이날 암살에 대한 또 다른 설은 당시 민족주의 진영의 거목인 조만식 휘하의 반공주의자들의 거사란 주장도 있다.그러나 현준혁은 당시 조만식을 신뢰하는 사이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는 반론이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중국여행객/탈북자 행세 조선족 “조심”

    ◎“도피자금 도와 달라” 금품 사취­구걸 【북경 연합】 중국으로 탈출해오는 북한인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중국에서는 일부 조선족이 탈북자를 가장,이곳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상대로 사기구걸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사기꾼은 특히 탈북자들의 은신처인 동북지방의 대도시 중심가에 있는 호텔 등을 무대로 한국인 여행객에 접근,도피자금및 생계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있는 것으로 20일 알려졌다. 현지 조선족 소식통들에 따르면 이러한 조선족 사기꾼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람이 김성일(29)이란 이름의 청년. 김은 이달초 업무차 심양을 방문해 심양시내 중산호텔에 머물고 있던 국내 중소기업대표 김모씨에게 접근해 자신은 함흥시 사로청 위원장으로 북한체제에 환멸을 느껴오던 중 평양TV 방송의 국제보도 시간에 한국내의 각종 시위 장면을 보고 자유가 보장된 나라임을 알게돼 지난 11월29일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중국으로 탈출해 왔으며 한국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이에 김모씨는딱한 생각이 들어 기차표를 사는데 보태라며 김성일에게 2백위안(약 1만9천5백원)을 쥐어줬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일은 이밖에도 올 1월부터 중산호텔을 배회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내가 함흥시 사로청 위원장인데 휘하에 2만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반김쿠데타를 모의하다 사전정보가 누설돼 몰래 도망쳐 나왔다』『북한에서 탈출해온 군인인데 배가 고파 죽겠다』고 호소하며 3백∼5백위안 정도의 금품을 사취해왔다고 이들 소식통은 전했다. 동포소식통들은 『김성일과 같은 몇몇 사기꾼들 때문에 이곳 동포사회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자꾸 나빠지는 것 같다』면서 『이들은 주로 호텔이나 열차 등을 무대로 상습적인 사기구걸 행각을 벌이고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 「당대회 통한 당활성화」 부심/민자/김 대통령 “당개편 없다”이후

    ◎“원점서 출발”… 정망 등 미래지향적 개정/총재직 재선출 형식 단합과시 절차 검토 「기구개편은 없지만 당을 활성화 하는 전당대회」­지도체제 문제로 빚어졌던 백가쟁명식 논란을 현체제 유지로 가닥을 잡은 민자당의 과제다. 민주계 실세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복수부총재론,경선론 등에 긴장하며 거창한 대회를 준비하던 사무처 실무부서들도 이제 그동안 기안하던 서류들을 모두 파기하고 원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체제는 그만두고라도 당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제기됐던 시도지부장 경선,전당대회 대의원의 소수정예화 등에 대한 지도부의 뜻이 명확지 않아 아직도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다. 문정수사무총장도 21일 시·도지부 대회는 예정대로 경선으로 치르느냐』는 질문에 『그리 해야하지 않겠나.그런데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문총장은 7천명인 전당대회 대의원수를 4천여명으로 크게 줄이려던 방침에 대해서도 『중앙상무위 운영위원수와 달리 전당대회 대의원수는 별로 의미가 없는 숫자』라고 전당대회의 규모 축소에 미련을 나타내면서도 분명한 언급을 피했다. 당직자들은 『기구를 바꾸고 해야만 당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며 지구당 및 시도지부대회를 통해 당의 하부조직을 정비하는 과정 자체가 활성화』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지난 17일 『당기구개편은 없다』고 김종필대표에게 밝히기 전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분명 대조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당의 이미지를 바꾸고 새롭게 변모하는 「미래형 정당」을 과시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도 검토되고 있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런 방안의 하나로 『당의 정강·정책을 세계화에 초점을 둔 국정운용과 환경·도덕성 회복 등 인간다운 삶의 질을 추구하는 내용으로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와 관련,당내에서는 당명도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한 검토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중립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민주」는 고수하되 「우리민주당」 「공화민주당」 「민주통일당」하는 식으로 공동체의식이나 안정기조를 반영하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민족통일의 책임을 명기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2년 임기의 총재직을 전당대회에서 재선출하는 형식으로 당의 단합을 과시하는 절차도 밟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인다. 시도지부대회에서는 전면 경선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시도지부 운영위 또는 대의원대회에서 지부장을 선출하는 형식을 거치고 지구당대회에서는 지난 8월 무소속의원들을 영입한 대구 수성을 등 5개 지구당의 위원장 교체와 청년·여성조직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김대표 사퇴설」의 계기가 됐던 전당대회 문제는 대전 등 지방을 검토하던 안을 바꿔 서울에서 치르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 연변동포/“모국방문 너무 힘들다” 분통

    ◎북경 한국대사관 아침부터 장사진/한달에 2번 비자신청 접수표 발급 주중 한국대사관이 세들어 있는 북경의 국제무역센터(국무)빌딩 바깥쪽 인도.이곳에선 얼마 전부터 두터운 외투차림의 2백여명이 아침7,8시부터 건물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추위에 떨면서 엉거주춤한 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띄고 있다. 이들은 지난 열흘동안 한국대사관 영사부의 비자접수시간이 끝나는 하오4시무렵에야 삼삼오오 떼지어 흩어졌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여 하루종일 서성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이들은 친인척방문으로 한국행 비자를 얻기 위해 흑룡강성이나 길림성등 동북지방에서 내려온 조선족동포다. 매일 비자접수를 받던 한국대사관 영사부가 지난 6일에는 친인척 방문비자에 한해 한꺼번에 20일까지 보름동안의 비자접수번호표를 나눠주고 이날부터 접수번호표를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건물입실을 허용하자 그후 북경에 온 이들은 접수표가 없어 건물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밖에서 접수대기표를 주는 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대사관영사부측은 오는 21일에야 비자접수표를 다시 발급한다는 안내문을 건물안팎에 붙여놓았지만 이들은 대사관측이 언제 또 방법을 변경할지 모른다며 매일 대사관주변으로 찾아와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북경에 오는데 적게는 20시간에서 많게는 2,3일이 걸렸다며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것보다는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올 겨울들어 대사관 영사부측은 「조선족 여러분께 알립니다」란 제목의 안내문을 여러차례 이 건물의 안팎에 붙였다.지난 11월말 안내문은 『신청자가 많아 비자발급이 늦어지고 있다.돈을 받고 사증발급인정서나 초청장을 받아주겠다고 하는 알선업자가 성행한다는 풍문인데 이에 속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이들은 최근 대사관측의 비자접수방법변경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중국에서 서민이 북경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든 줄 빤히 알 텐데 보름에 한번씩 접수표를 나누어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무역센터 빌딩 밖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사관주변 여점(여관)등에 기숙하며 비자접수표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족동포가 6백명이 훨씬 넘는다고 말하고 있다.이들은 시간을 정해서 하루에 한번씩 대기표를 주면 되지 않느냐고 언성을 높이고 있으나 한국대사관 「높은 분들」은 전혀 들으려고조차 않는다고 한숨을 내쉰다.노모를 모시고 와서 며칠째 줄을 서고 있다는 한 조선족청년은 『한국놈들 어디 두고 보자』며 핏대를 올리기도 했다. 비자받으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니 귀찮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조선족동포에게 원한과 불쾌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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