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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시진핑시대 개막] 敵이 없는 집념의 1인자 vs ‘리틀 胡’ 비운의 2인자

    ■시진핑 총서기 태자당 출신… 10차례 입당 퇴짜 文革때 부친 실각당해 토굴 생활 25년간 지방관료로 자신을 낮춰 13억명의 중국인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시진핑(習近平)은 신중하면서도 우직하다. 말을 아끼고 자신을 낮춰 적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중국의 1인자가 됐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勛) 전 부총리는 혁명원로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어머니 치신(齊心)도 팔로군 출신으로, 전형적인 태자당(당·정·군 혁명원로 자제 그룹)이다. 베이징의 권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유소년기를 부러울 것 없이 보냈지만 문화대혁명 때 부친이 우파로 몰려 실각당한 뒤 14살의 나이에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하방해 토굴 등에서 지내며 7년간 산촌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의 끈기와 집념은 남다르다. 열번 퇴짜를 맞고도 또 다시 신청해 공산당에 입당했고 공농병 청강생 자격으로 최고 명문 칭화대 화학과에 입학해 마르크스 이론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부친의 복권 후 대부분을 지방에서 보낸 공직 생활은 대체로 순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판공청에서 겅뱌오(耿飇) 국방부장의 비서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후 근무처로 중앙이 아닌 시골을 택했다.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을 시작으로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입성하기까지 장장 25년 동안 푸젠(福建)성, 저장(浙江)성 등 지방을 돌며 근무해 왔다. 특히 푸젠성 성장, 저장성 당서기, 상하이 당서기를 지내면서 ‘중앙’의 기조에 충실히 따르면서 실적을 일궈내 차세대 주자로 부상했다. 2007년 17기 1중전회(17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상무위원에 올라 이듬해 3월 국가부주석에 선임됐고 2010년에는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임돼 5세대 지도부 1인자 자리를 확정했다. 주영 대사를 지낸 커화(柯華)의 딸 커링링(柯玲玲)과 결혼했다가 이혼했으며 1987년 인민해방군 가무단 소속 인민가수 펑리위안(彭麗媛)과 재혼해 외동딸(시밍쩌)을 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리커창 차기 총리 中 최고 경제과학상 수상한 수재 胡 총애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 ‘분배’ 강조… 정책충돌 가능성도 차기 총리로 확정된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은 사실 ‘비운’의 인물이다. 5년 전 17차 전국대표대회(전대) 전까지 그는 유력하게 후진타오(胡錦濤)의 뒤를 이을 5세대 지도부의 1인자로 꼽혔다. 후진타오가 이끄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적자’로서 음으로 양으로 후진타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차 전대에서 리커창은 시진핑(習近平)에게 역전패당했다. 30대에 장관급 직책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맡는 등 시진핑에 비해 한참이나 앞섰던 그가 역전패당한 것은 너무나 똑똑하고 할 말 하는 성격인 데다 그가 대학 시절에 가졌던 자유사상에 대한 원로들의 거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시진핑이 공농병 청강생으로 칭화대에 진학한 것과 달리 리커창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한 수재다. 그는 모교에서 경제학과 석·박사 학위도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 ‘중국 경제의 3원구조를 논함’은 1991년 중국 경제학계 최고상인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수상했다. 졸업 후 유학 대신 대학에 남아 공청단 활동을 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안후이(安徽)성 동향인 후진타오를 만난 것도 그때였다. 두 사람은 서로 ‘커창’ ‘진타오’ 하며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숙했다. 그 후 그는 후진타오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지도자’로 키워졌다. 농업 대성인 허난(河南)성에서 대리성장, 성장, 당서기를 차례로 거쳤고 중공업지구인 랴오닝(遼寧)성으로 옮겨 경력을 덧붙였다. 농촌 출신 도시 일용 노동자인 농민공 문제 해결 등 분배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성장’을 강조하는 시진핑과 정책 추진 과정에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와 같은 강한 추진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영문과 청훙(程紅) 교수가 부인이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열린세상] 일자리 창출에 관광 잠재력을 활용해야/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일자리 창출에 관광 잠재력을 활용해야/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이달 중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드디어 10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관광객 수에 있어 우리도 세계 상위 20위권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성과의 최대 공헌자는 역시 중국이다. 몇 해 전부터 명동을 비롯한 우리의 주요 상권은 춘제(春節), 국경절 등 중국의 명절기간에 큰 호황을 누려왔다. 지난 10월 초 국경절 즈음에는 10만명 이상의 중국인들이 방한해 약 2억 달러를 쓰고 돌아갔다고 한다. 세계적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관광 발전의 3대 혁명은 1960년대 항공티켓 가격 하락과 패키지 투어 발달,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중국 등 신흥시장의 부상이라고 꼽았는데 그 진단이 틀리지 않은 듯하다. 관광은 사람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업이다. 따라서 어떤 분야보다도 일자리 창출 효과가 뛰어나다. 선진국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쇠락해 가는 농어촌의 경제활성화와 고용 확대를 위해 지역의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에 눈을 돌렸다. 중앙과 지방정부, 민간단체가 협업하여 직업훈련센터를 만들고 특산품 단지를 조성하는 등 지역 고유의 관광상품을 개발했다. 그 결과 이들 국가의 관광업 종사 비율은 전체 고용인구 중 적게는 3%, 많게는 11%에 이른다. 다만, 관광 고용은 숙련된 기술을 크게 요하지 않고 계절에 따른 변동이 심한 까닭에 파트타임과 비정규직이 많다는 취약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영세성과 낮은 보수 수준이 더해져 아직까지 젊은이들에게 크게 매력적인 취업분야는 아니다. 실제로 관광산업의 경제지표를 분석한 ‘관광위성계정’(TSA)에 따르면 우리나라 관광업 종사자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접한 중국과 일본, 더 멀리는 동남아시아 시장의 성장을 감안하면 관광산업의 발전 잠재력은 매우 크다고 본다. 과거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대규모 투자를 해왔듯이 중국, 일본 등 거대 관광시장을 고려한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나아가 서비스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킴으로써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예를 들면, 최근 수도권 곳곳에서는 호텔 건설 붐이 일고 있다. 급증하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참에 호텔 산업도 영세한 개인 경영에서 벗어나 체인 운영을 확대하는 등 규모의 경제를 고려해 봄직하다. 미국의 경우 전체 호텔의 4분의3이, 유럽은 4분의1이 체인호텔이다. 특히 선진국의 비즈니스 호텔 발전은 서비스 산업과 함께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서비스 산업의 성장과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로 향후 믿을 수 있고 안전한 체인 호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 외국인 방한객이 수도권에 집중돼 그 혜택이 지역에 골고루 분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울러 국제관광 지표의 호조와는 대조적으로 국민들의 국내여행 총량은 감소추세다. 주 40시간 근무, 주 5일 수업제 등에도 불구하고 숙박을 하는 여행은 오히려 큰 폭으로 줄었다고 한다. 여행이 일상화된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국내관광을 장려하는가.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학교 방학과 휴가의 연중 분산이다. 2월 스키방학을 시작으로 부활절 연휴, 여름방학, 11월 중간방학, 성탄절 및 겨울방학 등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일년 내내 주어진다. 관광업계는 사전 확정된 이 일정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상품을 미리 기획하고 마케팅한다. 특히 프랑스는 2009년 국내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레스토랑의 부가세율을 19.6%에서 5.5%로 획기적으로 인하했다. 맛은 있지만 비싸기로 악명 높은 음식 가격을 낮춰 내수진작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이었다. 무엇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주민 스스로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 고유의 문화·관광사업을 위해 공적 자금의 지원 아래 지역주민을 고용하거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사회적기업 방식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프랑스와 미국에서처럼 지역 상공인, 문화관광사업자, 관련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지역 상공·관광진흥 협의체를 운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불확실한 대외 경제여건과 저성장의 우려 속에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활로를 관광서비스 산업에서 찾기 바란다.
  •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朴·文·安 공약 살펴보니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朴·文·安 공약 살펴보니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세대·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균형 발전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일자리 창출 공약은 주로 청년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세 후보의 공통된 특징이다. 일자리 대책을 청년층 실업이나 복지 문제 차원에서 접근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역균형 발전 방안은 내용상으로는 이전보다 진전됐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세 후보는 모두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박 후보는 과학·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창조경제론’을 제시했고, 문 후보는 IT, 융합기술 등 창조산업에서 좋은 일자리 50만개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안 후보는 5년 한시의 청년고용특별조치를 실시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비해 중·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후보들의 대책은 구체적이지 못하다. 55세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방안이 눈길을 끄는 정도다. 때문에 일자리 공약이 지나치게 청년층 위주로만 짜여져 세대 갈등 해소 측면에서는 미흡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중·장년층이 종사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일자리 등에 대한 대책은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세 후보가 젊은 층의 표를 의식해 청년층 일자리 창출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갈등 해소 측면에서 세 후보는 지역균형 발전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해법으로 제시한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의 정당 공천폐지 등도 공통으로 내세우고 있다. 공천폐지 대상에 일부 차이점만 있을 뿐, 역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주요 유력후보들이 동시에 기초단체장·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재원 배분에도 적극적이다. 박 후보는 지방세 비율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고, 문 후보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조정해 재정분권까지 제대로 이루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지방세 구조를 개편해 지방재정 분권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우리 재정구조가 중앙정부 중심으로 돼 있어 재정 분권화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후보들의 공약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공약을 얼마나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서 지역갈등을 이용하고 이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서로 깎아내는 경쟁이 아니라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1) 세대·지역갈등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1) 세대·지역갈등

    “누가 대통령이 돼도 세대갈등과 지역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한다.”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진단이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층과 노후가 불안한 노인층의 사회적 불만은 커져만 가고 있다. 영호남의 반목은 다소 줄어드는 양상이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커지면서 심각한 갈등을 빚고있다. 이런 세대·지역 갈등 등 대립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위기의 한국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대갈등 진단과 제언 경제 위기로 삶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서 일자리와 노년층 부양을 둘러싼 세대갈등이 사회 분열의 핵심 축으로 등장하게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세대갈등은 주로 정치·문화적 차이에서 표출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지금은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차원의 주도권 싸움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이는 생계와도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릴수록, 노년층이 두터워질수록 생존권을 둘러싼 세대간 경쟁이 ‘갈등’수준을 넘어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취업난에도 노년층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 층과 노후 불안에도 자식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중·장년층이 결국은 가족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갈등 폭발이 그나마 억제되고 있지만, 국가가 서둘러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불만이 증폭돼 심각한 사회 문제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 20년 뒤에 지금의 노년층을 대체하게 될 40~50대 중·장년층 상당수가 고학력자란 점에서 노년층이 일종의 압력단체로 등장하게 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중산층보다 빈곤층의 부양 부담이 더 크기 때문에 세대갈등이 계층갈등과 결합된 형태로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50대 초반부터 퇴직을 강요당하는 노인 인구 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차별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커지고 있는데다, 해외 복지시스템을 접한 고학력자가 많아 연령 간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들이 불만을 집단적으로 표출하게 되면 머지않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와 한국사회학회가 연령별로 추출한 모집단 1500명을 상대로 지난 9월 개별면접을 실시한 결과 65~69세까지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응답이 20대(24.9%)에서 가장 낮았고, 곧 노년층으로 진입하는 50대(40.5%)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 20대의 49.0%가 청년일자리 확대를 위해 조기퇴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50대는 39.3%만이 여기에 찬성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을 부양해야 할 젊은 층은 일자리가 없고, 노인이 될 중년층은 대개 경력이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쉽게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세대 간 타협을 통해 정년을 연장하는 동시에 젊은 층을 위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정년 퇴직을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과 함께 젊은 세대를 위한 정보통신(IT)계열 일자리와 창업 및 벤처 시장 육성이 해답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퇴직한 노년층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자체별로 세대 차별에 대한 정서적·문화적 풍토를 바꾸는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핵심은 세금을 더 걷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지만, 욕을 먹어가며 증세를 집행할 정치권의 의지가 약하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지역갈등 진단과 제언 서울·지방 ‘경제갈등’… “공정 균형개발로 풀어야” 전문가들은 영호남 갈등이라는 전통적 지역갈등은 예전같이 극심하지 않지만,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 등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갈등의 원인이 정치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2일 “정치적 동원력을 갖는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많이 풀렸다.”고 진단했다. 그는 영남이 대구·경북·부산으로 분화되고 있고 호남에서도 민주당 이외의 표도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다른 원인도 있지만 영호남 갈등 약화의 원인은 지역갈등의 핵심에 있던 광주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상징적인 복권을 통해 맺혔던 감정들이 풀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영호남 갈등이 정치적 도구로 쓰이면 여전히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방 국립대 같은 경우는 학생을 교육시켜도 서울로 간다.”면서 “지역인재 유지와 재생산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농촌경제연구원 조사결과, 지난해 농가소득은 연 3015만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5098만원의 59.1%에 그쳤다. 이 비율이 60% 아래도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농가소득이 도시가구 소득을 웃돌았지만 85년 112.8%를 정점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도시가구의 소득은 증가한 반면 농가소득은 정체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역갈등의 해소 방안은 평등하고 공정한 지역균형개발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제도적으로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기초단체장·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선구제는 지역에서 특정 정치집단의 독점구조를 만드는 폐단이 있고, 지역문제를 주로 다루는 기초 단체장·의원은 굳이 정당과 연계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문제로 본연의 역할을 되찾도록 하자는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발전에 성공적인 모델도시, 특히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대학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권역별·거점별 명문대에 자녀를 보내는 것에 부모들이 만족한다면 기업 이전과 지역 균형 발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서울에 있는 일자리를 빼앗아 옮기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보다 좋은 직업이 지역에 생겨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선택! 역사를 갈랐다] (34) 1930년대 모던 보이 vs 마르크스 보이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이름은 한성부(漢城府)였다. 사람들은 한양이라 불렀다. 한양은 북한산 남녘과 한강 북쪽 사이에 자리 잡은 양지바른 터전이라는 뜻이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면서 한성부를 경성부(京城府)로 바꾸고 경기도에 소속시켜 위상을 낮추었다. 서울을 일본의 오사카나 교토와 같은 지방 도시로 만든 것이었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성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1935년에는 44만명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25% 남짓이 일본인이었다. 식민지 도시 경성은 청계천을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청계천 이남에는 본정통(오늘날 충무로), 명치정(지금의 명동)에서 일본인 상가를 중심으로 남촌이 생겼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 상가는 근대의 상품과 화려한 건물, ‘현대인의 신경’인 네온사인으로 덮였다. 카페, 우동집, 빙수집, 찻집이 즐비했다. 남촌은 ‘경성 속의 일본’이었다. 오늘날 명동 부근인 진고개는 본디 변두리 마을이었다.일본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 ‘작은 도쿄’를 세우고 주인으로 들어앉았다. 백화점과 카페, 당구장, 극장 같은 근대 유흥시설이 남촌에 몰려 있었다. 청계천 이북에는 조선인 상가가 많았던 종로통을 중심으로 북촌이 되었다. 북촌 지역은 전통 한옥과 나지막한 상점들이 있었으며 밤거리는 어두컴컴했다. 식민 도시의 ‘원주민 상가’였던 종로는 중심에서 밀려났다. 종로의 밤거리에는 온갖 ‘싸구려’ 물건을 파는 야시가 열렸다. “극도의 생활난에 빠진 빈궁한 사람들이 혹시나 입에 풀칠이나 할까 하는 눈물겨운 생각”으로 야시에서 물건을 팔았다. 경성은 식민지 지배층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하이칼라 경성’과 식민지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나는 ‘실업 경성’의 두 모습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쾌락 추구 ‘모던 보이’ 1920년대가 되면서 양복 입은 남자와 양장한 여성이 늘어갔다. 옷과 장신구 등은 유행 바람을 탔다.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면도를 하는 것을 ‘신식’으로 가는 길처럼 여겼다. 그럼에도 여자 단발은 아직 문제가 되었다. 단발한 여인들은 ‘단발미인’이라 하여 뭇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몇몇 여인이 단발했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단발이 크게 번졌다. 일부 여성은 단발에 ‘물결을 일으키는’ 파마도 했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생각과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 생겨났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그들을 일컬어 모던 보이, 모던 걸이라고 불렀다. 모던 세대들은 사랑법도 새로웠다. 그들은 자유연애를 바랐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누구인지를 딱 부러지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 모던 세대란 도시와 서구 또는 일본문화를 즐기며 근대를 적극 받아들인 신세대로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대개 이들은 식민지 현실이나 사회모순에 관심을 두지 않고 ‘모던’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 모던 보이, 모던 걸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가 문화 영역에서 터를 잡았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배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축음기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 시장이 커졌다. 1930년대 초반 ‘레코드의 홍수, 유성기의 천하’라는 말이 떠돌았다. 모던 보이는 근대적 유흥공간을 찾아 여가와 유흥도 즐겼다. ‘거리의 오아시스’ 다방에서 근대의 상징처럼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다방은 하나의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도시인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는 문제가 있었다. 도시의 분위기를 좇던 모던 보이를 ‘에로’의 길로 안내한 것이 바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카페란 여급이 술시중을 드는 곳에서 비싸게 술을 먹는 곳이었다. 여급에게 팁도 주어야 했다. 카페는 ‘퇴폐적 취미’를 발산하는 곳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카페를 ‘에로의 신전’ 또는 ‘향락 제작소’라고 불렀다. 모던 보이들은 백화점 가기를 좋아했다. 1930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문을 연 뒤 잇달아 히라다·조지야·미나카이·화신백화점 등이 문을 열었다. 백화점의 화려한 쇼윈도는 ‘시각의 쾌락’을 맛보게 한다. 최첨단 기기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으리으리한 백화점에 들어선다. 갖가지 물건을 쓰임새에 따라 가지런하게 분류해 놓은 백화점은 ‘과학적’이다. 매장 앞에는 ‘어여쁜 숍걸’이 매우 상냥하다. 어디 그뿐인가. 백화점은 호화로운 식당과 전람회를 열 수 있는 전시공간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모던 보이들은 ‘도시의 심장’인 백화점에서 도시의 감각과 유행의 물결을 느꼈다. 모던 보이는 갑자기 닥쳐온 근대 도시의 습속을 하루라도 먼저 몸에 익혀야 했다. 그러한 모던 보이에게 경성은 근대의 훈련장이자 여가와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유흥의 도시였다. 그들은 자기가 경험하는 근대가 ‘혼종의 근대’ 또는 ‘식민지 근대’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식민 도시를 거닐고 근대를 소비했다. ●이재유의 경성 1936년 12월 25일이었다. 농사꾼, 장돌뱅이, 노동자, 학생 등으로 변장한 32명의 경찰이 ‘검거 중대’를 만들어 창동 남쪽에서 시골 농민 차림인 30대 초반의 한 남자를 체포했다. 일제에 맞서 비합법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던 이재유였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보통 사람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불온’했다. 이재유는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되고 노동자와 농민이 새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려 했다. 이재유는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 이재유의 정세 판단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혁명적 낙관주의 없이 어떻게 온몸을 던질 수 있겠는가. 1930년대는 대공황이 닥쳐와 자본주의가 큰 위기에 빠졌다. 숨통을 연장하려는 자본주의는 노동자와 농민을 더욱 수탈했다. 이에 맞서 곳곳에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아직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농민투쟁도 기껏해야 군단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툭툭 불거지는 여러 투쟁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타오르는 들불로 만들 수는 없을까. 이재유는 1920년대 노동조합·농민조합과는 다른 혁명적 노동조합·혁명적 농민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조직은 선진 활동가들의 비합법 모임이다. 그러나 혁명적 노동조합과 혁명적 농민조합만으로 혁명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재유가 보기에 혁명운동을 앞장서 이끌 혁명가들의 조직인 ‘조선공산당’이 없으면, 혁명이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공황을 벗어나려고 제국주의자들이 전쟁에 뛰어드는 형국에서 반제국주의 투쟁을 조직하려 해도 당은 꼭 있어야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이재유는 1920년대처럼 전국적인 당 조직을 먼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장하는 당 조직을 만들려 했다. 그는 운동의 근거지를 경성으로 삼았다. 이관술, 김삼룡, 이현상, 이순금, 정태식 등 수많은 동지가 그와 함께했다. 이재유 수사기록에는 “요즈음 경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거의 모든 공산주의운동의 흑막으로 이재유가 활동함으로써 수많은 청년 남녀가 해를 입었다.”고 적었다. 이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재유 조직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도 많았다. 이재유는 피검과 고문, 옥살이, 탈옥, 재검거를 되풀이했다. 일제 탄압으로 조직이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서 굽힘 없이 혁명운동을 했다. 이재유는 1932년에서 1936년 말까지 ‘경성 트로이카’, ‘경성재건그룹’,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만들었다. 이재유에게 경성은 혁명운동의 근거지이자 그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킬 발판이었다. ●모던 보이의 ‘핑크’ vs 이재유의 ‘적색’ 1930년대 일본에서 ‘에로’가 유행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공황과 전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본 청년들은 일본의 긴자거리를 배회하며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핑크’가 되거나 진지하게 사회주의 혁명을 실천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 되어 ‘아카(red)’가 되는 것, 둘 가운데 하나였다.” 식민지 조선도 이와 비슷했다. 식민지 조선의 모던 보이는 경성의 혼마치(지금의 충무로)부근을 서성였다. 이 ‘핑크’들은 카페와 기생집을 드나들며 향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상반되는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도 조선에 있었다. 1920년대 근대 교육을 받은 젊은이 사이에서 사회주의가 크게 유행하여, “입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졌다.”고 했다. 이 새 세대를 일컬어 조선에서도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신문과 잡지에는 거의 빠짐없이 사회주의 관련 글이 실렸고,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비롯해 주요 사회주의 글도 번역됐다.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은 다른 문제요,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다른 문제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는 알아야만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의 형편이다.”는 책 광고까지 있었다. 일제 기록에 따르면, “예전의 독립운동이 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초조해진 민중에게 사회주의운동은 일종의 자극과 광명을 주었다.” 1905년에 태어난 이재유도 ‘마르크스 보이’였다. 개성 송도고보에 다닐 때부터 ‘마르크스 보이’가 된 이재유는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했다. 그 뒤 그는 여러 단체에서 실천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이재유는 1932년 ‘경성트로이카’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적색’ 혁명가가 되었다. ‘트로이카’란 “몇몇 지도부가 먼저 당의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세 마리 말이 자유롭게 마차를 끄는 것과 같이 회원 모두가 저마다 자유롭게 선전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이재유는 “일생을 혁명가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감옥에서도 조선어 사용금지 반대, ‘수감자 대우 개선’ 등의 투쟁을 했다. 이재유는 형이 다 끝나고도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주보호교도소에 갇혔다. ‘핑크’의 모던 보이가 ‘메이크업’한 경성을 누빌 때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했던 이재유, 그는 1944년 10월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뒷날 사람들은 그를 “비합법 혁명운동사에서 최고의 기록을 남긴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규진(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 “한국판 잡스 키운다” 한국게임과학고

    “한국판 잡스 키운다” 한국게임과학고

    “우리도 미국의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처럼 정보기술(IT) 분야에서 10대의 세계적인 스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동시에 실무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게임과학고 정광호 교장의 말이다. 9일 저녁 8시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쏙 서울신문’은 세계적인 게임 인재를 양성하는 한국게임과학고를 찾아 카메라에 담았다. 전북 완주군 대둔산 아래에 위치한 이곳. 2004년 개교 당시 50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이래 꾸준히 학생이 늘어 현재 학생 300명이 교사 50여명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게임에 관한 모든 분야를 전문가 수준으로 교육하고 있다. 화면에 표시되는 소리의 파형을 이용해 게임에 사용되는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만들고 디자인하는 ‘사운드디자인과’, 미래의 프로게이머를 양성하는 ‘e스포츠과’, 직접 그림을 그려 공간지각 능력을 기르고 게임에 필요한 그래픽 이미지를 만드는 ‘3D 애니메이션과’ 등 6개 전공이 있다. 실무적인 교육 덕분에 2학년이 되면 한 팀을 이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학급 편성도 전공과목 구분 없이 반 편성을 해 학생 간 소통을 이루도록 했다. 그래픽과 1학년 이준형(16)군은 “다른 전공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졸업생 100명 중 10%는 미국과 중국 등의 유학생으로 선발된다. 학교 선택부터 여권 수속까지 모든 부분을 학교가 책임지고 진행한다.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학교 내 간판을 전부 영어로 제작하는가 하면 영어 강의를 매일 한 시간씩 의무적으로 한다. 또한 해동검도와 체육시간 등을 통해 컴퓨터에 지친 몸과 건강을 챙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올해 전라북도 영어 올림피아드 동상과 지방기능경기대회 각 부문 금·은·동상, 그리고 전국기능대회 은메달 등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오늘의 게임 명문고가 되기까지는 2004년 부임 이래 독자적인 교육을 위해 정부 예산도 마다한 정광호 교장의 뚝심이 있다. 이 밖에 지난 8일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을 맞아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과거 대학입시와 관련한 영상 기록물을 화면에 담았다. 내년부터 법정 공휴일로 변경된 한글날에 대한 국민 관심도 뜨겁다. 서울 중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스물여덟자의 놀이터’라는 이름으로 한글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바라보는 전시회도 소개한다. 또한 청계천에서 펼쳐지고 있는 ‘서울 등축제’를 스케치했다.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벼락출세는 없었다

    벼락출세는 없었다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전대) 폐막 직후인 오는 15일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중국의 5세대 최고지도부에는 속칭 ‘벼락출세’한 인사는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홍콩 명보는 6일 18차 전대를 통해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임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들은 과거와 달리 대부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현재의 위치에 올랐고 행정 업무에서 뚜렷한 업적이 있으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데다 악성 루머로부터 자유로운 특징이 있다고 보도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에 이어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에 오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경우 촌장, 현장, 시장, 성장, 당서기 등을 차례로 거쳐 상무위원에 올랐고 차기 총리로 내정된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수십년간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뒤 농업지대인 허난(河南)성과 공업지구인 랴오닝(遼寧)성의 당서기를 역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17차 전대 직전인 2007년 6월 후 주석을 비롯한 현 최고지도부와 공산당 원로,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등 400여명의 투표를 통해 상무위원에 진입하는 등 민주적인 추천 절차를 밟았다. 4세대 최고지도부에 이공계 출신이 많은 것과 달리 5세대 최고지도부는 인문·사회계열 전공자가 대부분이며 문화대혁명 시절 농촌으로 내려가 노동을 한 경험이 있고 장기간 지방에서 훈련을 거쳐 서민 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뉴스 WHO] “청년실업·노인·보육문제 해결… 시민의 삶 바꾼 시장 되고 싶다”

    [뉴스 WHO] “청년실업·노인·보육문제 해결… 시민의 삶 바꾼 시장 되고 싶다”

    “그동안 내린 결정들이 시민들의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민의 삶을 바꾼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4일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인터뷰에서 “지난 1년은 참으로 짧고도 긴 세월,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며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그는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다음 달 1일부터 1주일간 미분양된 은평뉴타운에 임시 시장실을 마련해 입주자들이 겪고 있는 많은 고통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한 뒤 답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에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앞으로도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실업, 노인, 보육 문제 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민생현장에 움직이는 시장실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취임 1주년 인사말을 통해 올해를 시작하면서 후한서 황보규전에 나오는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를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그는 “물은 배를 띄울 수 있지만, 동시에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이 말은 시대를 떠나 ‘민심의 힘’을 깨우쳐 주는 말”이라면서 “취임 당시 ‘서울이라는 큰 배의 선장은 시민 여러분’이라는 말을 구현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재선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2년 8개월이라는 임기는 짧지만 활용하기에 따라 긴 시간이기도 하다.”면서 “시장이 되기 위해 살아오지 않았듯이 재선을 위해서 시정을 운영하지 않겠다. 시대의 사명을 다하겠다. 시민이 전적으로 판단할 문제다.”라고 답했다. 올 대선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나고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제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선거법상 특정 후보를 지지할 수 없게 돼 있으니 법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출구 전략을 위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정부의 매몰 비용 지원이 없으면 뉴타운 해제 속도가 둔화될 수밖에 없는 만큼 주거재생센터 등처럼 다양한 창조적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지난 총선 때 여야가 매몰비용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새 정부가 이런 압력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는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채무 앞에서 제 지혜의 한계를 탓하기도 했다.”며 막대한 부채를 꼽았다. 그는 “깊어지는 불경기와 세수 감축, 아직은 제한적인 지방분권으로 인한 한계와 그로 인한 안타까움은 일상이 됐지만 돌아보면 모든 장애물은 과속방지턱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면서 “끝까지 혁신의 행정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 [주말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OBS 일요일 밤 11시 25분) 1940년대 일제 치하 경성에서는 민족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의 이름도 개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일본 군부는 신라 1000년의 상징이라 불리던 석굴암 본존불상의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이마에 박혀 있던 동방의 빛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침내 일본 군부의 최고 권력자인 총감은 수년간 집요하게 노력한 끝에 동방의 빛을 얻게 되고 승리를 자축하는 동시에 하루빨리 본국인 일본으로 이송하기 위한 동방의 빛 환송회를 연다. 한편 전도유망한 재력가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천의 얼굴을 가진 경성 최고의 사기꾼 봉구는 동방의 빛을 차지하기 위해 내숭 100단의 경성 제일 재즈 가수 춘자에게 동방의 빛 환송회 자리에 동행하자고 제안한다. ●혁명가의 연인(EBS 토요일 밤 11시) 사비니엥 드 케르파덱 백작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어느 해안 마을에 살고 있다. 그는 부인과 사별한 뒤 친아들 오렐, 대녀 셀린, 그리고 사제 수업을 받던 중 도망쳐 나온 소년 타르캥을 키우면서 하늘을 나는 기구 발명에 몰두한다. 1789년 파리에서는 왕실 감옥 바스티유가 시민들에게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백작은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인다. 4년 후인 1793년 국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프랑스 방방곡곡에서 공화정파와 왕정파가 내전을 벌인다. 공화정 관리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타르캥은 혁명공화군에 동참할 병사들을 모으고 셀린에게는 혁명 이념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임무를 맡긴다. 얼마 후 미국에서 귀국한 오렐은 셀린의 마음이 타르캥에게 향해 있음을 알게 된다. ●위대한 유산(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소년 핍은 누나와 대장장이인 매형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핍은 부모님의 무덤가에서 탈출한 죄수 매그위치를 만나 음식과 줄을 가져다준다. 죄수는 줄로 쇠사슬을 끊고 도주하려 하지만 뒤따라온 군인들에게 붙잡힌다. 얼마 뒤 핍은 실연의 슬픔으로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가는 늙은 노처녀 해비셤의 저택에서 지내는 대가로 보수를 받게 된다. 음침한 대저택에서 핍은 아름답지만 차가운 소녀 에스텔라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에스텔라가 숙녀 수업을 받기 위해 파리로 떠나고 핍은 매형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둘은 이별한다. 세월이 흘러 핍이 어엿한 청년이 되었을 때 해비셤의 법정 관리인인 재거스가 찾아와 핍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누가 남겼는지도 모르는 유산을 상속받은 핍은 런던으로 가서 도시 생활에 적응하며 점차 어엿한 신사가 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이가 찾아와 유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유산을 상속한 사람이라고 밝히는데….
  • [사설] 대선후보들 中企 일자리 질 높이기 경쟁하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복지, 경제 민주화에 이어 어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제시했다.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창조적 경제 운용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차별 철폐, 근로시간 단축,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지방 출신 우대 등 노동시장 차별 시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경제 민주화를 통한 대·중소기업 상생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밑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세 후보가 모두 표현에 차이만 있을 뿐 청년층을 겨냥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줄 테니 지지해 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로 바꾸고, 양질의 일자리는 많이 만들겠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말의 성찬(盛饌)만 있을 뿐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3D업종에 정보기술(IT)만 갖다붙인다고 좋은 일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드넓은 세계를 향해 뛰라 한다고 양질의 해외 일자리가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2004년 이후 청년실업이 계속 악화되면서 졸업 연기 또는 휴학 비중이 높아진 것은 일자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청년 구직자들이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기관 등으로만 몰리고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이유는 대·중소기업 간 임금 및 복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지난해 37.4%, 올 상반기 35.6%에 이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2011년 9.1%)보다 월등히 크다. 전반적인 산업재해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의 재해 근로자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따라서 현란한 수식어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떠벌릴 게 아니라 중소기업의 일자리 질을 높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자면 100여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지원책을 일자리 질 높이기 위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특히 정년 연장 등과 같은 친(親)근로자 정책은 여력이 있다는 이유로 대기업이나 공기업부터 시행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부터 먼저 도입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 대·중소기업 격차 확대를 조장하면서 중소기업 취업 기피를 해소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안착하는 지방인재 채용목표제

    안착하는 지방인재 채용목표제

    지방대학 출신들도 공직에 적극 진출할 수 있는 지방인재 채용목표제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6일 “올해 5급 공무원 공채 2차시험 합격자 313명 중 지방인재 채용목표제에 따라 일반행정에서 6명, 재경직에서 2명 등 8명의 지방인재가 추가로 합격했다.”면서 “2차 시험에는 총 2086명이 응시해 8.1대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다음달 16~17일 면접시험을 거쳐 259명의 최종 합격자를 가려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날 오후 사이버 국가고시센터(http://gosi.kr)에 합격자 명단을 발표했다. 지방인재 채용목표제는 균형인사지침에 따라 2007년 5급 공무원 공채시험에서 처음 실시됐다. 합격자의 20%까지 지방소재 대학 출신을 합격시키는 제도다. 무조건 합격자의 20%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합격점수선에서 -1점 이내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첫해인 2007년에는 2명(2차 합격 기준)이 나오는 데 그쳤고, 2008년 4명, 2009년 3명 등 합격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6명, 올해에는 8명까지 늘어났다. 새로운 제도로 인해 지방대학 출신 수혜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까지 5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지만, 청년 일자리 대책 차원에서 적용 기간을 5년 더 연장했다. 그나마 최종 합격자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5명이 면접에서 탈락했다. 면접심사위원들이 어떻게 안배하느냐에 따라 지역 출신을 배려하겠다는 제도의 취지 자체가 무색해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 올해 역시 몇 명이 최종 합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 또한 여전하다. 행안부에서는 인천, 경기권 대학까지도 지방소재 대학으로 분류하고 있어 서울지역 대학 출신들이 받는 소외감은 크다. 특히 지난해부터 국회가 사무처 8급 공무원을 선발하면서 비수도권 대학 출신들을 최대 30%까지 선발하는 내용의 지방인재 채용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수험생들의 불만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추가 합격자 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점수 차이도 별로 크지 않긴 하지만 제도를 도입한 초기에 실효성을 강화하려다 보니 ‘서울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나왔고, 추가 합격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으니 ‘지방 배려 취지 무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버려진 공항에 출몰하는 여자귀신 ‘블랙 레이디’

    버려진 공항에 출몰하는 여자귀신 ‘블랙 레이디’

    버려진 공항에 여자귀신이 출몰해 주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공항 활주로에선 최근 낡은 관까지 발견돼 음산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다. 공항은 아르헨티나 지방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의 몬테 케만도라는 작은 도시에 위치해 있다. 이미 오래 전에 폐쇄돼 지금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다. 이 공항 활주로에서 최근 낡은 관이 하나 발견됐다. 관 주변 바닥에는 여러 개 초가 녹아 있었고, “죽음은 시작이다.”라는 섬뜩한 글도 적혀 있었다. 도시 전체가 공포에 떨자 경찰은 현장을 조사했다. 낡은 관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경찰은 “확인 결과 관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단지 관이 나타났다는 사실만 갖고 공연히 무서워 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지만 공포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버려진 공항에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자자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공항이 외진 곳에 있어 밤에 조용한 곳을 찾는 젊은 남녀가 자주 간다.”면서 “귀신을 봤다는 청년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귀신을 목격했다는 한 청년은 “애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지나가는 걸 봤다.”면서 “공항에 귀신이 산다는 건 주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귀신을 ‘블랙 레이디’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진=인트란시헨테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변호사도 근로기준법 보호 못 받아… 권익 개선”

    “변호사도 근로기준법 보호 못 받아… 권익 개선”

    “지금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가 법조계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빵집·골목 상권 진출은 대형 로펌의 일감 싹쓸이와 비슷하고 대학 등록금 문제는 로스쿨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변호사들이 뭉쳤습니다.” 경력 10년 미만의 변호사들이 모여 ‘청년변호사협회’를 결성했다.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나승철(35·사법시험 45회) 변호사는 8일 “젊은 변호사들의 권익을 확대하는 동시에 서민들이 법조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협회 창립 배경을 밝혔다. 현재까지 모인 변호사는 30명 남짓이지만 보수적인 법조계에서 그들만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뭉쳤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나 변호사는 지난해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해 30대 돌풍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당시 사법시험 24회 출신의 오욱환(52) 변호사에게 26표의 근소한 차이로 패해 화제가 됐다. 나 변호사는 “2년 전부터 젊은 변호사들이 모여 우리의 노동환경 개선과 비리 법조인 척결 등에 대한 목소리를 내 왔다.”면서 “좀 더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법리를 다투면서 정작 자신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변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 로스쿨의 비싼 등록금 등을 당면 현안으로 꼽았다. “로스쿨은 등록금이 너무 비싸 서민들이 법조인이 되는 데 커다란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 존치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생각입니다.” 그는 “공정사회와 반칙 없는 사회의 실현, 특권사회 반대를 기본 이념으로 정해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하자는 취지의 구체적 정책대안 활동을 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사설] 지역·세대의 벽 허물기 유권자도 동참해야

    추석과 개천절로 이어진 연휴에서 드러난 대선 표심 가운데 어두운 단면 하나가 있다. 우리 선거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돼 온 지역 대립 구도가 도무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70여일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선 역시 지역구도에 관한 한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박정희 체제에서 잉태되고 3김(金) 시대 때 만개한 지역 대립의 악폐가 노무현·이명박 정부 10년을 거치고도 줄어들기는커녕 선거의 상수(常數)로 자리잡은 게 한국 정치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달 세 유력후보의 출마 선언 이후 이번 연휴까지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전국 판세와 별개로 영·호남에서의 우열만큼은 요지부동이다. 한국갤럽 조사를 기준으로 양자 대결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대구·경북에서 60~75%의 굳건한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경우 전국 지지율이 어떠하든 이곳에서만은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남은 정반대다. 야권 후보로 누가 서든 문·안 후보는 61~76%의 고공행진을, 박 후보는 14~18%의 낮은 포복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경남에서 문·안 후보가 선전하고 있다고 하나 그들의 고향인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지역구도에서 벗어난 현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령화와 청년 실업률 증가가 빚어낸 세대 간 표심 장벽도 갈수록 높아가는 양상이다. 무슨 정책을 내놓은들 박 후보는 20~30대에서, 문·안 후보는 50대 이상에서 35%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실제 투표에서는 표 몰아주기 현상이 더욱 강화되는 역대 대선 양상을 감안하면 이번 대선에서도 한 후보가 특정 지역에서 90% 이상을 독식하고, 특정 세대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현상이 나올 공산이 크다. ‘선거 비용도 아낄 겸 그냥 수도권의 40대만 투표하게 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그저 우습게만 들리지 않는 게 지금 표심의 현주소인 것이다. 유권자의 각성이 절실하다. 정치권만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지역과 세대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가 후보의 정책과 자질만 보고 선택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세 후보도 지역 구도에 기대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여기서 이 얘기, 저기서 저 얘기 하는 식으로 지역 표심을 부추기고 다닐 바엔 차라리 공동으로 지방행 중단을 선언하는 게 정치 발전에 낫다.
  • 잠꾸러기 청년판사, 매일 지각하더니 결국…

    어렵게 공부해 판사가 된 남자가 늦잠자는 버릇 때문에 실업자가 됐다. 밥 먹듯 지각을 한 중미 코스타리카의 한 판사에게 해임 결정이 내려졌다고 나시온 등 현지 언론이 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각 때문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 판사는 코스타리카 골피토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35세 청년 판사다. 사법부 최고위원회는 판사의 지각 때문에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민원이 빗발치자 징계위원회를 소집, 처리를 고민하다 결국 해임결정을 내렸다. 골피토 지방법원의 조정관이 사법부 최고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청년판사의 근무태도는 빵점이었다. 조정관은 “매일 지각을 하는 건 물론 재판이 열리는 날에도 판사가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하는 게 보통이었다.”면서 “지각을 하면 언제나 늦잠을 잤다는 변명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지각하는 판사에 대해 동료 판사는 물론 검찰, 법원 직원들의 불만이 매일 커지고 있다.”며 적절한 조치를 호소했다. 한편 사법부 최고위원회가 해임을 결정하자 문제의 잠꾸러기 판사는 “늦잠이 판사해임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며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추석밥상을 잡아라”… 朴-文-安 세 후보가 엄선한 민심재료는

    대선을 채 3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하는 이번 추석에서 대선은 명절상에 오를 ‘메인 메뉴’가 될 수밖에 없다. 정담(政談)이 모이면 민심이 되는 만큼 대선 후보들은 유리한 민심 재료를 추석 밥상에 올리기 위해 총력전에 들어갔다. ●“野단일화, A형에게 B형 피 수혈하는 꼴”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선 후보가 지난 24일 꺼내든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추석상에 올릴 최고의 재료로 꼽는다. ‘하우스 푸어’와 ‘렌트 푸어’를 위한 부동산 정책 공약, 책임 총리·장관제 실시를 포함한 정치 쇄신 방안 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대선 ‘컨트롤타워’인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막판 인선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박 후보는 28일에는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는 등 민생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당 관계자는 “과거사 사과를 계기로 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멈춘 만큼 추석 이후 지지세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후보 측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김빼기 소재’도 내놓고 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안 후보는 재벌의 경제 집중 등을 노무현 정부의 잘못으로 비판했는데 (노무현 정부 출신인) 문 후보와 단일화한다는 게 정상적인가.”라면서 “혈액형 A 환자에게 B형 혈액을 수혈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문후보는 정당후보로 책임정치 가능” 반대로 문 후보 진영에서는 추석 민심을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한 1차 발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정당의 책임 정치를 강조해 무소속인 안 후보와 차별화한다는 전략을 승부수로 띄운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문 후보는 정당 후보로서 책임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 후보보다 비교우위에 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이른바 ‘삼도(三都) 찍기’ 전략으로 추석 민심 잡기에 나선다. 28일 야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광주를 시작으로 충청권 민심의 바로미터인 대전, 후보 자신의 고향이자 PK(부산·경남) 민심의 풍향계인 부산을 잇따라 찾는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지역·계파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역시 광주다. 민주당 텃밭임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또 추석 연휴 동안 선대위 인선 작업을 거쳐 추석 직후 인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安측 “최대 승부처 수도권 집중 공략” 안 후보는 지난 19일 출마 선언 후 일주일간 이어온 ‘혁신 경제’ 행보에서 전환, ‘서민 경제’를 키워드로 추석 민심 잡기에 나설 계획이다. 안 후보는 그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경제가 뒤따라야 한다.”며 창업청년사관학교와 경기 수원 못골시장, 국민대 무인차량로봇연구센터 등을 방문했다. 추석 기간에는 ‘민생’을 기치로 본격적으로 서민들과 접촉면을 확대하고, 지방보다는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 등 수도권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소외된 사람과 사회적 약자 등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연휴 동안 방문 대상지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안 후보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논란은 탈법 여부와 상관없이 추석 민심을 적잖이 흔들 악재라는 점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재연·이영준·송수연기자 oscal@seoul.co.kr
  • 유로존 다시 ‘反긴축 시위’ 불길

    유로존 경제 위기에 따른 긴축정책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추가 긴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라 발생했다. 그리스에서는 26일(현지시간) 새 연합정부가 구성된 뒤 처음으로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24시간 총파업이 발생해 전국이 마비됐다. 그리스 정부는 2014년까지 115억 유로 규모의 예산을 줄여야 해 임금·연금 삭감, 정년 연장 폐지 등이 불가피한 상태다. 이날 공공과 민간 부문 노총은 임금 동결을 요구하며 버스와 지하철 운행을 멈췄고 항공기 일부도 운항을 중단했다. 교사와 의사 등 전문직이 파업에 가세했으며 유적지, 상점도 전면 파업에 들어가 상당수 관광객이 발길을 돌렸다. 아테네 도심에서는 그리스노동자총연맹(GSEE)과 공공노조연맹(ADEDY) 등 양대 노동단체 소속 노조원과 시민 등 5만명이 의사당에서 행진을 벌였다. 시위대는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아웃”이라고 쓴 팻말을 흔들었고, 복면한 일부 청년들이 화염병을 던지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막았다. 아테네에서는 지난 2월에도 의회의 긴축안 통과에 반대해 시위자들이 상점과 은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 시위가 발생했다. 내년도 예산안 발표를 이틀 앞둔 스페인도 25일 대규모 반(反)긴축시위와 카탈루냐의 분리주의 움직임으로 요동쳤다. 이날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시위대 6000명이 “의회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의회 앞에서 긴축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의 충돌로 28명이 다치고 22명이 체포됐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19%를 차지하는 카탈루냐의 아르투르 마스 수반은 이날 지방의회에서 오는 11월 25일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이는 자치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사실상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의 성격을 지닌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구제금융에 따르는 조건이 합리적인지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라호이 총리는 유럽 각국 정부와 투자자들로부터 전면 구제금융과 국채 매입을 신청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지방시대] 신용불량자의 사면과 새 출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지방시대] 신용불량자의 사면과 새 출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신용불량자. 경우에 따라 개념이나 통계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국민 중 600만명 정도가 신용불량자라고 한다. 빚 때문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된 신불자의 명칭이나 이유 역시 다양하다. 취직도 하기 전에 신불자가 된 젊은이를 일컫는 청년신불, 재학 중 대출받은 등록금 상환을 연체한 등록신불, 사오정과 오륙도로 버림받고 자영업을 하다가 망한 자영신불, 생활비 때문에 카드와 대출을 돌려막는 가계신불,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샀지만 깡통주택이 된 주택신불, 중소기업이나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이자 차별을 받는 이자신불 등등. 우리 사회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아르바이트로 잠 설쳐가며 푼돈 벌면서, 등록금을 대출받은 대졸자에게 우리 사회가 붙여준 딱지가 청년신불자다. 취업이 돼야 이자든 원금이든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존을 위해 시작한 자영업자들이 시장 과잉으로 수년 내 파산하지만 경쟁의 이름으로 방치하는 게 우리 행정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주택을 담보로 빌린 돈을 생활비로 썼다고 도덕적 비난을 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친 이웃들에게 돌아온 결과다. 그들 대부분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기보다 신불자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불자를 경쟁의 패배자라고 매도하거나 모럴 해저드의 대명사로 폄훼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들의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만든 제도와 정책의 실패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개인에게는 혹독하고, 대기업이나 재벌에는 관대한 정책의 이중성을 먼저 문제 삼아야 한다. IMF 외환위기 당시는 물론이고 그 전후에도 재벌과 금융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논거를 들어 천문학적 빚 탕감이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재벌과 금융이 그토록 매도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로 그들을 살린 정부가 대한민국이다. 투입된 공적자금은 세금이고, 탕감된 빚은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이었다. 묻고 싶다. 그들이 받은 특혜를 국민들이 받으면 안 되는가. 국제화와 경쟁력 강화의 이름으로 노동시장을 붕괴시키고, 가족공동체를 막다른 길로 내몬 것도 그들이다. 워킹 푸어의 양산체계를 만든 재벌이나 다국적기업보다 그 희생자인 개인에게 눈길을 돌려야 하는 이유다. 값싼 비용의 대명사로 전락한 비정규직과 명퇴자들에게도 과감한 탕감정책을 베풀어야 한다. 돈 때문에 자살하는 국민, 경제문제로 갈라서는 가족, 돈 때문에 저질러지는 2차 범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600만명의 국민과 그 가족들이 잘못된 금융과 대출제도에 의해 언제까지 주눅이 들어야 하고, 범죄자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신불자의 모럴 해저드를 말하기 전에 제도와 탐욕이 만들어낸 경제적 약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금융권이 과학을 가장한 잣대로 돈과 자산기준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고, 기준치에 미달하면 팽개치는 방식도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국민들은 돈보다 자신의 재능과 기술, 지식을 평가하는 세상을 꿈꾼다. 자본과 금융의 이익논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간답게 평가받고 싶어 한다. 600만 신불자와 가족들을 대신해 새롭게 당선될 대통령에게 요청한다. 신불자의 전면 사면과 신금융정책을 실시하라.
  • 불지른 뒤 출동한 소방차 턴 무장 강도단

    불지른 뒤 출동한 소방차 턴 무장 강도단

    긴급 출동한 소방차가 진화작업 중 털리는 황당한 사건이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다. 아르헨티나 지방도시 사라테에서 불을 끄던 소방대원들이 떼강도를 만나 털렸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강도들은 불을 질러 소방차를 출동시킨 뒤 범행을 저질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소방대는 사건 당일 한 주택에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황급히 출동, 바로 진화작업을 시작했다,. 강도가 떼지어 나타난 건 바로 이때였다. 20여 명의 청년들이 분주하게 작업하는 소방대원들을 포위했다. 권총, 엽총 등으로 무장한 강도들은 소방대원들을 꼼짝 못하게 하고 소방차에 실려 있던 값비싼 소방장비와 도구들을 빼앗아 도망갔다. 현지 언론은 “강도들이 암시장에서 잘 팔릴 물건들만 골라 강탈했다.”면서 “도망가면서 강도들이 소방차에 여러 번 총을 쐈다.”고 보도했다. 한편 주택에 발생한 화재는 강도들의 방화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장비를 빼앗기 위해 소방차를 불러낸 셈이다. 사진=딘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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