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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 경남도 자치분권 포럼...실시간 온라인 중계로 누구나 참여

    22일 경남도 자치분권 포럼...실시간 온라인 중계로 누구나 참여

    경남도는 ‘2022년 상반기 경상남도 자치분권 포럼’을 오는 22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실시간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이번 포럼은 지난 1월 13일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지방자치제도에 큰 변화가 생기고 주민 참여와 권리가 확대되는 상황을 고려해 마련됐다. 공무원과 주민들이 지방분권 정책과제에 관한 전문가 설명을 듣고 지방분권에 공감대 형성과 함께 대응전략을 논의한다. 1부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시·군·구 특례 제도를 직접 설명하고 청중과 질의·답변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행안부 자치분권제도과장, 경남도 자치분권협의회 위원, 시·군이 추천한 토론자 등이 토론을 한다. 2부에서는 경남도 주민자치회 현황을 공유하고 활성화 방안을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경남도 자치분권협의회 위원, 읍·면·동 주민자치회 실무자 등이 토론을 진행한다. 또 20여개 시·군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줌(ZOOM)으로 연결해 쌍방향 소통 방식으로 성장단계별 현황을 공유한다. 포럼은 현장에서 대면으로 진행하면서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를 해 도민 누구나 포럼에 참여할 수 있다. 유튜브 검색 창에 ‘갱남피셜’이나 ‘경상남도’를 검색하면 자치분권 온라인 토론회장(https://youtu.be/eDMF9NhLR9w)으로 들어갈 수 있다. 최영호 경남도 행정과장은 “이번 자치분권 포럼이 지역주민과 공무원들이 지방자치제도 변화를 인식하고 도내 시·군에 필요한 다양한 시·군·구 특례 발굴 등 주민 중심의 자치분권 정책을 수립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선거 달인은 없다” 퇴임 앞둔 이시종 충북지사 자서전 출간

    “선거 달인은 없다” 퇴임 앞둔 이시종 충북지사 자서전 출간

    ‘충주시장 3선, 국회의원 2선, 충북지사 3선’ 8전8승의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이달 말 퇴임하는 이시종 충북지사가 자서전을 냈다. 14일 충북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오는 18일 오후 2시 CJB미디어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책 제목은 ‘8전8승 이시종의 비결’이다. 362페이지 분량인 이 책에는 임명직 23년, 선출직 27년 등 이 지사의 공직 50년 경험이 담겨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지독한 가난 때문에 참외 장수, 지게꾼, 광부를 전전하고, 사범학교에 진학해 ‘국민학교’(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던 촌놈이 충북지사가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술했다.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시절 민선 지방자치제도를 직접 설계한 뒤 지방자치를 실험해 보기 위해 1995년 6월 충주시장 선거에 뛰어든 일화도 소개했다. ‘강호축’ 국가계획 반영, 방사광가속기 유치, 해양박물관 건립, 기업 투자유치 올인 정책, 무예마스터십 창건 등 과감히 밀어붙였던 도정의 뒷얘기들도 전했다. 출마한 8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체득한 필승비결도 공개했다. ‘쌀 한 톨 담는 심정으로 표를 구하라’, ‘진실이 최대의 무기다’ , ‘일로써 승부하라’, ‘중도를 잡아라’ 등이 그가 제시한 승리지침이다. 그는 선거의 달인은 없다며 최선이 달인이라고 강조했다. 채문영 충북지사 정책보좌관은 “지방자치 현장의 기록을 남기기위해 바쁜 일정속에서도 이 지사가 직접 글을 써 왔다”며 “이 책은 출판사와 서점을 통해 판매되고, 수익금 일부는 지역인재양성을 위해 기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는 30일 열리는 이 지사 퇴임식은 도청 대회의실에서 공무원들만 참석한 채 진행된다. 충주가 고향인 그는 청주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해 임명직으로 영월군수,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충주시장,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어 선거직으로 민선 1∼3기 충주시장, 17∼18대 국회의원(충주), 민선 5∼7기 충북지사를 지냈다.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 위원장인 이 지사는 퇴임 후에도 이 직책은 유지한다. 충북지사 임기를 마치면 서울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거주할 예정이다. 자서전을 통해 그는 “퇴임 후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주변 분들을 돌아보면서 자유를 찾아 훨훨 날고 싶다”고 밝혔다.
  • [나와, 현장] 투표 전에 500명은 이미 당선이라고요?/이하영 사회2부 기자

    [나와, 현장] 투표 전에 500명은 이미 당선이라고요?/이하영 사회2부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누구를 뽑아야 하나 고민하며 집으로 발송된 선거공보물을 살펴보다 한 안내문을 보고 흠칫 놀랐다. ‘2022년 6월 1일 실시하는 선거에서… 후보자수가 의원정수와 같으므로 투표를 실시하지 않음을 안내합니다.’ 거주하는 자치구의 기초의회 후보 4명이 이미 당선됐다는 공지였다. 선거구명과 해당 동 표기만 있을 뿐 누가 뽑혔는지 이름도 없었다. 이름 모를 당선인들의 공보물은 당연히 없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후보자 명부를 찾아 낯선 이름을 보고서야 ‘아, 이들이 당선된 사람이구나’ 알게 됐다. 당혹스러움은 내 몫만이 아니었다. 한 지인도 “공보물을 열어 보니 이미 당선된 사람이 있더라”며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거보단 치열하다”며 황당해했다. 풀뿌리 민주주의 바탕을 이루는 지방자치제의 꽃, 지방선거 투표는 6월 1일 오전 6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을 통해 무투표 당선인을 확인해 보니 30일 기준으로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기초의회 의원 등 전국에서 이미 509명의 당선이 완료됐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뽑아야 할 사람과 출마한 사람의 수가 같거나 출마자가 더 적으면 무투표 당선을 인정한다. 불가피한 상황을 위한 장치인 동시에 제도가 거대 양당 셈법의 희생양으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이번 선거 무투표 당선자 수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무투표 당선인이 속출한 상황에는 지역 구도에 기댄 거대 양당제의 부작용이 강력히 작용했다. 여야는 각자 당선이 거의 어려운 특정 지역구에는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고, 남은 몫은 강세 정당이 선출 정수에 맞춰 후보를 내며 독점했다. 그렇게 무투표 당선인의 50% 이상이 영호남에서 나왔다. ‘2인 선거구’로 분류된 곳에는 여야가 ‘사이좋게’ 1명씩 후보를 내고 당선됐다. 거대 양당에선 문제의식도 없다. 오죽했으면 광주 지역의 한 녹색당 후보가 “무투표 당선된 게 자랑은 아닙니다. 당선 공지 글 올리지 마시고 자숙하십시오. 유권자의 투표할 권리를 빼앗는 것이야말로 촌극 아닌가요?”라고 꼬집었을까. 무투표 당선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수정당과 시민단체가 지적한 것은 물론 헌법재판소도 소수의견으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강력한 거대 정당이 잠식한 입법부는 유독 잠잠하다. 올해 역대 최다 무투표 당선인이 나왔지만, 양당 정치가 강화되며 지방선거마다 기록을 경신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거대 양당으로 굳어진 권력 지형 문제는 둘째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썩어들어가지 않을까.
  •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모든 것 잃은 30년 전 양심선언… 다시 돌아가면 더 준비하고 했을 것”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 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30년 전 양심선언 이지문, “삼성 돌아가고 싶다” [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군대 안에서 벌어져 온 여당 기표 강요, 공개 투표 등은 그 시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반발이라도 했다가는 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을까 염려하며 부당한 지시인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게 찍히지나 않을까 두려워 침묵했고, 나 하나 나선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아서 눈을 감았다. 1992년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군 부재자 투표 역시 노골적인 부정투표였다. 스물넷 청년 장교는 눈을 감지도, 침묵하지도 않았다. 이를 세상에 알렸다. 무슨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그저 평범한 상식에 따라 행동했다.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선거는 공정하게 치러져야 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 대한 믿음이었다. 30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이 바뀐 만큼 ‘이지문 중위’의 삶도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50대 중년이 된 이지문(54)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1992년 3월 22일 일요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표 80% 이상 나오게 하라’, ‘선관위 없는 공개 투표’, ‘투표 내용 검열’ 등 군대 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부정투표를 폭로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여전히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던 때였다. 이문옥 감사관, 윤석양 보안사 이병, 한준수 연기군수 등과 함께 공익제보를 상징하는 ‘내부고발 1세대’ 인물이다. 우리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이었지만 돌아온 대가는 처절했다. 그는 헌병대 영창을 갔고, 전역 뒤 예정된 ‘삼성맨’으로 돌아갈 길도 끊겼으며, 이등병 계급장만 단 채 빈 들판으로 내던져졌다. 지난 26일 이 이사장을 만났다. 그리고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묻자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웃는다. 이는 그가 양심선언 직후 군으로부터 받았던 같은 맥락의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 사단 징계위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똑같이 행동하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군이 더 공정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반성이 전혀 없군’이라며 이등병으로 파면시켰죠.” 상식과 양심을 믿는 청년 장교에게는 우문(愚問)이었다. 30년 뒤 다시 반복된 질문 역시 우문이었다. 돌아온 답이 더욱 지혜로워졌을 뿐이다. “사실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기도 하죠. 다시 해야죠. 대신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만약 당시 너무 철저하게 준비했으면 순수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하.”그는 그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부대로 들어가 군복무를 계속 하려 했다. 군 부재자 투표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장도 놓고 나왔다. 철저히 준비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그저 상식에 따른 순수한 의도뿐이었음을 보여 준 단적인 사례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87학번이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하던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도 데모 한 번 하지 않은 이였다. 내내 학생운동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위 현장에 한 번도 나서지 않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그는 “남과 세상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 아님을 대학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알았기에 데모와는 거리를 뒀다”면서 “다만 남들과 다르게 편히 학군단 생활하고 졸업 뒤에는 삼성에 입사하고 하면서 선후배 친구들에게 부채의식과 부끄러움은 조금씩 쌓여 갔다”고 말했다. 엄청난 곡절을 거치며 이 이사장의 정치사회적 삶은 1992년 3월 새로 시작된 셈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 우연이 겹치고 쌓여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운명이 된 셈이었죠. 만약 당시 근무하던 부대(9사단3789부대)가 경기도 파주가 아닌 서울과 멀리 떨어진 강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면, 또 위수지역을 통과할 때 헌병이 제대로 검문을 했더라면, 또 기자회견 전날 밤 당직사관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그 양심선언은 없었을지도 모르죠.” 이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1992년 5월 이등병으로 파면됐지만 3년 가까운 법정 다툼 끝에 다시 중위 계급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부패방지법 및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이 제정됐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무르익어 갔고 반부패는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동안 그는 공익제보자를 돕고 반부패의 가치를 역설하면서 지냈다. 그렇다고 1992년 경험과 활동에 머무르지만은 않았다. 1995년 부활한 지방자치제에서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현실 정치에 발을 담가 보기도 했고 고스란히 그 한계와 모순을 몸으로 체감하기도 했다”면서 “우리의 정치가 평범한 시민의 참여 없는 상층부 중심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추첨 민주주의’다. 흔히 말하는 ‘제비뽑기’로 국회와 지방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선거가 가장 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면서 “보통 시민들의 지적 수준과 경험이 정치인보다 못하지 않은 만큼 계층, 연령, 지역, 성별로 안배해서 시민의 삶과 연관된 과제를 다루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직업 정치인이 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소속 정당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굳이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던 고대 그리스 아테네가 관직 대부분을 추첨제로 선발했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제도다. 이 이사장은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고 주민의 직접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첨 민주주의 방법으로 지방자치 차원에서 ‘시민의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성별, 연령 등을 감안해서 추첨식으로 시민의원을 선출하고 다양한 정보와 판단 근거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숙의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하고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시민의회’라는 개념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마치 30년 전 양심선언을 앞두고 ‘청년 이지문’이 기대와 걱정으로 들떠서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열변을 내뿜었다. 그는 “읍·면·동 민회, 기초시민의회, 광역시민의회, 국가시민의회 등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기존의 의회가 있는 곳은 양원제 형태로 운영하는 실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시민의회가 하원 기능을, 기존 의회가 상원 기능을 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런 ‘시민의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 차원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국회와 정부가 결단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에서 이미 시민의회를 1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가 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도 특정한 과제와 주제에 대해 정보접근권을 갖고 고민하면 오히려 기존 정치인보다 더 나은 판단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실제로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현실 곳곳에서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체할 수 있는 제도와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따름이다.지난 30일 오후 다시 만나 옛 부대를 함께 찾은 그는 먼발치에서 부대를 바라보며 “이등병으로 떠나야만 했던 저 안에 다시 들어가 찬찬히 한번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은데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또한 “이와 함께 처음 입사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삼성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전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러 비판이 있긴 하지만 삼성 역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리며 기업의 윤리경영, 준법경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만큼 반부패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청년 이지문’과 제법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양심선언 이후 공익제보의 활성화를 통해 부정부패 없는 세상을 꿈꿨다면, 이제 그 후반부는 정치학자이자 시민사회운동가로서 ‘추첨민주주의’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며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를 꿈꾸고 있다. 그의 바람이 실현되는 것이 좀더 투명한 세상, 민주주의가 깊어 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테니 30년 전보다 더 크게 응원할 수밖에 없다.
  • [자치광장] 12년 위에 그린 지방자치의 미래/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12년 위에 그린 지방자치의 미래/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2022년 5월 22일 현재 4345일째 용산구청장직을 수행해오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농사와도 같아서 지방자치단체장 4년 임기 동안 신규사업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구민들께서 다시 기회를 주신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서 용산 발전을 위한 씨앗을 심었고, 또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내리 3선 구청장으로서 각종 사업들을 직접 마무리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 주신 용산 구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제8대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감회가 새롭다. 지자체장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아직 다 못 끝낸 사업들에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초고령화 시대, 경로당이나 단순한 오락 위주의 노인교실보다는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용산 노인대학’을 설립하고 싶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지만 예산 편성 문제로 무산됐다. 임기가 조금만 더 남아 있었다면, 다음 기회가 있다면 꼭 이룰 수 있었을 사업이라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연혁으로만 따지면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는 70년이 넘었다. 1948년 헌법 제정 당시 이미 지방자치 규정을 뒀고,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됐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지방의회 선거가, 1955년 동장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인해 지방의회가 해산되고, 지방자치는 성장을 멈췄다. 이후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했다. 1991년 제1회 지방의회 선거, 1995년 지자체장 선거가 치러지면서 외형을 갖췄다. 다만 민선 2기 포함 4선 구청장으로서, 민선 7기 상반기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장에 이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으로서 지방선거 공천제나 지자체장 3선 연임 제한 등의 제약은 지방자치 발전의 한계라 생각한다. 시대가 변할수록 지방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현장 방역의 최일선에 있는 지방정부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 바이러스에 더 취약한 소외계층은 물론 지역 상권 활성화를 챙기는 일까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데 있어서도 지방정부의 비중은 커질 것이다. 지방정부를 이끌어 갈 단체장의 능력이 보다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지리적 조건과 상황이 각기 다른 226개 기초지방정부가 지역 특성을 살린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예산은 물론이고 권한의 제약이 많이 따른다. 중앙정치든 지방정치든 최종 목표는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과 행복에 있다. 그런 이유로 지방정부 수장으로서 12년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중앙에 얽매이지 않는 지방자치 현실화를 다시금 언급해 본다.
  • [자치광장] 재정분권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지름길/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자치광장] 재정분권이 진정한 지방자치의 지름길/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동학의 뿌리인 천도교 2대 교주 최시형이 강조하며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발전한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이르는 말이다. 평생 정치적인 지주로 삼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일생 동안 강조하신 말이기도 한 이 말을 목민관으로 봉직하는 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다. 1995년 답십리 지역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출발해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친절하고 청렴한 구청, 행정서비스 최우수 자치단체라는 성과로 보답했다. 이런 성과는 2010년 8년 만에 다시 도전한 민선 5기 구청장에 압도적으로 선택을 받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민선 2기 4년을 포함해 총 16년간 동대문구청장직을 수행하면서 어려운 과제를 해결했다는 뚜렷한 성과도 있었지만 지방자치의 한계로 인한 좌절도 많았다. 구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은 구민이 직접 뽑은 구청장에게 위임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아직까지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든 헌법을 적용해 40년 넘은 오늘날에까지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40살 넘은 성년에게 돌쟁이 옷을 입힌 격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완의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우리나라에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것이 1991년이니 벌써 31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한 세대가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분권의 문제는 완성도 높은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가예산의 재원배분 구조를 살펴보면 국민의 세금 중 중앙정부에서 76%, 서울시에서 11%, 25개 자치구가 12~13%를 나눠서 갖는다. 이런 실정에서 전체 국고보조사업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복지 예산 규모는 국고 보조율에 비해 더 가파르게 상승했고, 최근 3년 동안 지방비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우리 구의 경우에도 전체 구 예산 7360억원 중 53.7%인 3958억원이 복지예산으로 편성돼 있어 지방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서울의 인구는 1000만명으로 한 나라의 규모이며, 25개 자치구별 실정은 제각각이다. 각각의 실정과 규모에 맞는 예산배정을 통한 지방재정 확충이 재정분권 실현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개헌을 통한 법령과 제도 정비로 재정분권을 실현하고 지자체의 특성에 맞게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재정분권이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의 지름길이고,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이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 “다산로 개발 규제 풀기 시급… 중구 출신 나서야”[6·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판세 분석]

    “다산로 개발 규제 풀기 시급… 중구 출신 나서야”[6·1 지방선거 서울 구청장 판세 분석]

    “다산로는 중구 인구의 70%가 사는 강남의 테헤란로와 같은 중심거리입니다. 그러나 각종 규제로 인해 변변한 고층 건물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서울시와 정부를 설득해 규제를 완화하고 다산로를 테헤란로처럼 개발하겠습니다.” 김길성 국민의힘 후보는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산로를 개발해 구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중구의 도심 공동화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숭인동사거리에서 시작해 신당동, 약수동까지 3.2㎞에 이르는 다산로는 남산과 문화재 등에 따른 각종 규제로 인해 개발이 더딘 지역이다. 김 후보는 “제가 용인도시공사 사장으로 재임할 때 처인구의 도시개발사업을 성공시켰다”면서 “직접 토지주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중재한 결과로 이런 경험이 중구 구민들의 개발욕구와 맞아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계획을 전달했다”면서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중재자로서 각종 민원을 받아 민·관, 민·민 등 다양한 갈등을 해결한 경험이 있어 당선된다면 정부·서울시·중구로 이어지는 삼각라인을 구축해 중구 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고 약속했다. 김 후보는 다산로 개발을 통해 주택을 더 확보하고 배후지역 상권 활성화로 도심 공동화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다산로를 포함해 장충동과 필동, 회현동, 명동 등 남산고도 제한으로 묶여 있는 중구 내 지역이 약 115만㎡가 넘는다”면서 “중앙부처, 서울시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들 지역의 재개발 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청년, 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역세권 주변 행복주택을 건립해 직주근접의 도시 재생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후보는 초·중·고를 모두 중구에서 다닌 중구 토박이다. 그는 “그동안 중구는 정부 기관과 대기업 등이 몰려 있는 서울의 심장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낙하산 인사들이 많아 민선 지방자치제 이후 중구 출신이 구청장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면서 “최근 만나는 구민분들은 처음으로 오는 중구 출신 구청장에 대한 기대감을 보여 주고 계신다. 중구에서 자란 제가 구청장이 된다면 구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대화하는 단체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파산 막고 장례 돕는 약자의 ‘베프’ 지자체

    파산 막고 장례 돕는 약자의 ‘베프’ 지자체

    인천 청소년 빚 상속 막기 나서경기도 보행안전 지도사 육성천안 노인 안전손잡이 만들어반려동물 의료비 혜택 등 다양전국 대도시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안을 잇따라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28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시의회는 최근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방지 법률지원 조례안’과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의결하고 다음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빚 대물림 방지 법률지원 조례안’은 인천 지역 아동·청소년이 법을 몰라 부모가 진 채무를 상속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시장의 책무, 지원 대상·범위·방법·신청 절차, 법률지원 업무 담당자의 비밀 준수 의무, 협력체계 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원치 않는 상속 등을 이유로 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는 전국적으로 80명에 이른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은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저임금 예술인들을 돕기 위해 발의됐다. 경기도의회는 보행약자를 지원하기 위해 ‘보행안전지도사 육성 및 지원조례안’을 오는 31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건설교통위원회 추민규 의원(하남2)이 발의한 이 조례안은 시장 군수가 운용하는 보행지도사 지원에 필요한 협력체제 구축, 민간활동 장려 등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천안시의회는 저소득 무연고자 등을 위한 장례 지원과 노인 안전손잡이 지원 관련 조례안을 만들었다, 지난 24일 상임위를 통과한 장례 지원 조례안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저소득층 및 무연고자를 위해 현금 또는 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노인 안전손잡이 지원 조례안은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의 주택에 안전손잡이 설치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 대전, 부산, 광주시의회는 장애인 및 저소득층의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 조례안을 만들었고, 경기 고양시의회는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증진 조례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인천시의회 신은호 의장은 “지방자치제 시행 후 우리나라 복지정책 수준이 매우 높아졌으나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도움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며 “사회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이웃들이 경제적인 문제나 일자리 부족 문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지 않도록 동료 의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구석구석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파산 막고 장례 돕는 약자의 ‘베프’ 지자체

    파산 막고 장례 돕는 약자의 ‘베프’ 지자체

    전국 대도시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안을 잇따라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28일 서울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시의회는 최근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방지 법률지원 조례안’과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심사 의결하고 다음달 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빚 대물림 방지 법률지원 조례안’은 인천 지역 아동·청소년이 법을 몰라 부모가 진 채무를 상속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시장의 책무, 지원 대상·범위·방법·신청 절차, 법률지원 업무 담당자의 비밀 준수 의무, 협력체계 구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인천시의회에 따르면 2016년부터 5년간 원치 않는 상속 등을 이유로 파산 신청한 미성년자가 80명에 이른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안’은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고 일자리가 부족한 저임금 예술인들을 돕기 위해 발의됐다.경기도의회는 보행약자를 지원하기 위해 ‘보행안전지도사 육성 및 지원조례안’을 오는 31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건설교통위원회 추민규 의원(하남2)이 발의한 이 조례안은 시장 군수가 운용하는 보행지도사 지원에 필요한 협력체제 구축, 민간활동 장려 등에 대한 경기도 차원의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천안시의회는 저소득 무연고자 등을 위한 장례 지원과 노인 안전손잡이 지원 관련 조례안을 만들었다, 지난 24일 상임위를 통과한 장례 지원 조례안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저소득층 및 무연고자를 위해 현금 또는 물품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노인 안전손잡이 지원 조례안은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의 주택에 안전손잡이 설치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밖에 대전, 부산, 광주시의회는 장애인 및 저소득층의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 조례안을 만들었고, 경기 고양시의회는 공동주택 경비원 인권 증진 조례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인천시의회 신은호 의장은 “지방자치제 시행 후 우리나라 복지정책 수준이 매우 높아졌으나 아직도 사회 곳곳에는 도움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며 “사회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이웃들이 경제적인 문제나 일자리 부족 문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지 않도록 동료 의원들과 함께 앞으로도 구석구석 살펴보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자치광장] 지방자치의 진정한 의미/김선갑 서울 광진구청장

    [자치광장] 지방자치의 진정한 의미/김선갑 서울 광진구청장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이 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광역·기초의회, 광역·기초단체장을 모두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온전한 의미의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그동안 지방정부의 역할이 점차 늘어나면서 자치분권 실현 주체인 지역 주민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주민은 수동적 수혜자에서 주체적인 정책 결정 및 참여자로 바뀌고 조례에 대해 직접적인 의사표시도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지방자치의 올바른 방향은 ‘주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진정한 의미는 주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주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가용재원이 필수적이다. 구 차원에서 늘릴 수 있는 예산은 재산세와 등록면허세이다. 등록면허세의 경우 규모가 작고 지방세는 규모가 큰 편이지만 광진구는 비과세 토지가 56%를 차지하고 있어 지방세 수입이 17%에 그친다. 아차산과 어린이대공원, 3개의 대학까지 있어 최적의 주거 여건을 갖추고 있지만, 모두 면세 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부 재원 확충에 적극 노력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3년간 공모사업과 특교금, 특교세 등 총 1600억원을 확보하는 결실을 얻었다. 이를 기반으로 광진구 재정 여건은 민선 7기 출범연도인 2018년 4400억원에서 올해 본예산이 7323억원으로 약 3000억원(66.4%)의 재정 규모가 늘어났다. 하지만 재정 규모가 늘어났다는 것보다 재정 여건이 건전해졌는지가 중요하다. 광진구는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2020년 예산과 별도로 관리되는 기금 중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2018년 기금에 적립된 재원은 959억원에서 2022년 약 817억원(85.2%)이 늘어난 1776억원이 적립돼 통합재정수지비율이 높아졌다. 이런 재정 여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전 직원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발굴하고 노력한 덕분이다. 민선 7기에 확보한 가용재원으로 구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구민 체감형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158개 신규 사업 중 약 50개를 구민 체감형 사업으로 꾸렸으며 올해는 182개 신규 사업을 발굴하고 이 중 체감형 사업은 128개로 전년도 대비 3배 가까이 늘렸다. 이렇듯 광진구는 철저한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구민을 위한 정책과 사업을 빈틈없이 챙기고 있다. 앞으로도 구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체감형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구민 중심의 구정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
  • “자치분권 나라 향해 담대하게 도전”…경기지사 도전 염태영 수원시장, 퇴임

    “자치분권 나라 향해 담대하게 도전”…경기지사 도전 염태영 수원시장, 퇴임

    “수원의 더 큰 발전, 모두를 위한 ‘자치분권의 나라’를 향해 담대하게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습니다.” 민선 8기 경기지사를 준비하는 염태영 수원시장이 14일 오후 2시 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지막으로 12년 만에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2010년 7월 민선 5기 수원시장으로 취임한 염 시장은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최초로 5·6·7기 3선에 성공한 수원시장이다. 염 시장은 퇴임사에서 “맡겨주신 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퇴임 인사를 드리게 돼 대단히 아쉽고 송구하다”며 “수원시 최초의 3선 시장으로 일할 기회를 주신 시민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제게 임기 중에 한 일 가운데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시민 한분 한분께서 수원에 산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드렸다’고 대답하고 싶다”며 “지난 12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둔 것은 시민과 함께한 ‘수원형 거버넌스’의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제 임기 12년은 기초지자체에 대한 기존의 구속적 틀을 깨는 도전의 연속이었다”며 “수원은 이제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 선도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광역정부·중앙정부에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기초지방정부’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염 시장은 또 “지난 12년 동안 시정 최일선에서 묵묵히 헌신해주신 공직자 여러분을 잊지 않겠다”며 “여러분께 함께 위대한 수원시민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 가장 큰 행운이자 보람이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위대한 수원시민의 힘을 믿는다. 사람이 반가운 도시, 위대한 수원의 빛나는 발전을 온 마음으로 기원한다”며 퇴임사를 마무리했다. 염 시장은 퇴임식을 마치고, 본관 로비에서 환송하는 공직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시청을 떠났다. 염 시장은  3선 연임 제한 규정 등의 이유로 차기 경기지사 선거 출마 예상자로 꾸준히 거명돼 왔다. 지난달 27일 기자 인사회에서 6월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여의도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과 반감이 많은데, 이런 국민의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답하는 등 출마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 인권위 “청소년 정치참여 폭넓게 증진해야”

    인권위 “청소년 정치참여 폭넓게 증진해야”

    인권위 ‘청소년 정치 참여’ 증진 권고청소년의 정치 참여권 증진을 위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투표, 주민소환 등 지방자치제도 관련 연령 기준을 낮추기 위한 법·제도적 조치를 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가 나왔다. 인권위는 18일 “국회의원·지방선거 피선거권·정당 가입 연령을 낮추는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등 국회의 지속적인 노력을 환영한다”면서도 “여전히 추가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있어 국회와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게는 정당 가입 및 선거운동 금지 연령 기준을 낮추거나 삭제하고, 모의 투표시행을 위한 교육 관련 지침과 유의사항 등을 개발해 보급하라고 권고했다. 동시에 국회의장에게는 정당 가입 및 선거운동 금지 연령기준, 지방자치 관련 연령기준 개선 등 청소년 정치 참여권 증진을 위한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18세 미만 청소년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또 선거권과 주민 조례 발안·주민감사 청구권자 연령 기준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18세로 낮아졌으나 여전히 주민투표제와 주민소환 연령 기준은 19세로 돼 있다. 인권위는 “관련 법안 추진 사항을 모니터링하는 등 청소년 정치적 참여권 증진을 위해 지속해서 노력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 김태수 서울시의원, YIP 의정대상 최우수상 수상

    서울시의회 김태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중랑구 제2선거구)이 지방자치제도 활성화와 주민행복정책 입안에 기여한 공로로 의정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여의도정책연구원은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2021 대한민국 지방자치평가연계 의정포럼 YIP 의정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김 의원은 △10대 서울시의회 조례 1호 발의(서울시 개성공단 지원 조례) △‘서울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서울시의회 부활 30주년 행사로 열린 시민이 뽑은 최고 조례 2위 선정(대표발의 김태수)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위한 각종 정책토론회 개최 등 의정활동과 △면목선 도시철도 조기 착공 △어린이보호구역 환경 개선 사업 △공공 체육시설 개선 사업 등 지역활동을 높게 평가받았다. 김태수 의원은 “남은 의정 생활을 서울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중랑구민의 행복정책을 위하여 더욱더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 목포·여수·순천, 전남 시군 직제순위 변경 두고 신경전

    전남도청 조직도 기구표 오른쪽 상단에는 22개 시군이 세로 순서로 나열돼 있다. 목포·여수·순천·나주·광양시 순서다. 바로 아래는 담양·곡성 등 군 단위가 기재돼 있다. 시군 직제 순위로 도 공식 행사 서열 순위도 이를 따른다. 이 규정은 1949년 인구 수 등 도시 규모에 따라 지자체별 순위가 결정된 후 현재까지 72년 동안 사용 중이다. 이 같은 행정구역 편제 순위는 1910년 목포부와 1935년 광주부가 생긴 뒤에 여수부와 순천부가 출범한 데서 유래한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부가 시로 변경됐고, 여수와 순천이 시로 승격되면서 고착화됐다. 당시에도 인구 수와 도시 규모로 결정됐다. 5개 시를 제외한 나머지 17개 군은 전남도청이 광주시에 있었던 지리적 접근성으로 결정됐다. 광주를 중심으로 가까운 지역부터 우선순위가 되고, 가장 먼 신안군이 마지막이 됐다. 이 때문에 민선 자치시대가 뿌리를 내리고 시대가 변한 만큼 현 상황에 맞게 지자체 순위도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실제로 광주에 있던 전남도청이 2005년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하고, 일본강점기 전남 최대도시였던 목포시 인구도 전남에서 3번째로 떨어지는 등 지자체들이 부침을 겪고 있다. 지난달 현재 전남도 인구는 183만 3864명이었다. 이중 순천시가 28만 1587명으로 가장 많았다. 여수시는 27만 6747명, 목포시는 21만 8785명, 광양시는 15만 493명, 나주시는 11만 6701명이었다. 내년 예산도 순천시가 1조 3782억원, 목포시가 8900억원 등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도 관계자는 “직제 순위를 변경하려면 의회 차원에서 검토해야 하는 데 반발하는 지역도 생겨 쉽게 결정하지 못할 사항이다”고 말했다.
  • 시대에 맞지않는 전남 22개 시·군 직제 순위 ‘논란’...목포냐 순천시냐?

    시대에 맞지않는 전남 22개 시·군 직제 순위 ‘논란’...목포냐 순천시냐?

    전남도청 조직도 기구표 오른쪽 상단에는 전남 22개 시군이 세로 순서로 나열돼 있다. 목포·여수·순천·나주·광양시 순서다. 바로 아래는 담양·곡성 등 군 단위가 기재돼있다. 전남 22개 시·군 직제순위다. 전남도 공식 행사시 일선 시군 서열 순위도 이같은 직제순서를 그대로 따른다. 이 규정은 1949년 인구 수 등 도시 규모에 따라 지자체별 순위가 결정된 후 현재까지 72년 동안 막연히 사용중이다. 현재와 같은 행정구역 편제 순위는 1910년 목포부와 1935년 광주부가 생긴 그 후에 여수부와 순천부가 생긴데서 유래한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광주부’와 ‘목포부’가 ‘시’로 변경되고, 여수와 순천이 시로 승격 되면서 지금 처럼 고착화됐다. 그 당시에도 인구 수와 도시 규모로 결정했다. 1986년 나주시, 1989년 광양시로 승격한 5개 시를 제외한 나머지 17개 군은 전남도청이 광주광역시에 있었던 지리적 접근성으로 결정됐다. 전남도 관계자는 “광주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가까운 지역부터 우선 순위가 되고, 가장 나중에 원안으로 들어 온 신안군이 맨 마지막 서열이 됐다”고 설명했다. 담양군은 광주에서 가장 근접해 군 단위에서 첫번째 서열이 됐다. 이때문에 민선 자치시대가 뿌리를 내리고 시대가 변한 만큼 현 상황에 맞춰 인구 수와 예산 규모 등에 맞게 지자체 순위도 재정립해야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실제로 광주광역시에 있던 전남도청이 2005년 무안군 남악신도시로 이전하고, 일제시대 전남 최대도시였던 목포시 인구도 전남 3번째로 떨어진데 이어 인구 30만명을 웃돌던 여수시도 27만명대로 줄어드는 등 각 지자체들은 많은 부침을 겪고 있다. 11월말 현재 전남도 인구는 183만 3864명이다. 이중 순천시가 28만 1587명으로 전남 최다 인구로 성장했다. 순천은 광주광역시와 전주시에 이어 호남 3대 도시 지위를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여수시로 27만 6747명, 목포시는 21만 8785명, 광양시 15만 493명, 나주시 11만 6701명이다. 이들 5개 시의 2022년 예산도 큰 차이를 보인다. 순천시 1조 3782억원, 여수시 1조 3713억원, 광양시 1조 1602억원, 목포시 8900억원, 나주시 8889억원이다. 이와관련 전남도 관계자는 “직제 순위를 변경할려면 의회 차원에서 검토를 해야하는데 반발하는 지역도 생겨 곤혹스러워 질 것 같다”며 “인구 순서가 합리적이지만 다른지역으로 빠져 나가는 숫자도 생기는 만큼 쉽게 결정 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 [정대화의 더 정치] 사회 갈등·양극화 풀자… ‘소통·협의·상생’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정대화의 더 정치] 사회 갈등·양극화 풀자… ‘소통·협의·상생’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인류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일까 전쟁의 역사일까?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 패러다임의 역사라는 말을 추가하고 싶다. 역사라는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수많은 대립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이 과정을 토머스 쿤의 말로 표현하면 역사란 하나의 패러다임이 형성돼 도전받고 무너지면서 다른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다수 인간의 인식과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특정한 인식체계, 가치체계, 행동 양식의 총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은 패러다임 간 대결의 극단적 형태 종교적 관점이지만 불교와 유교의 세계관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이고 지금도 그렇다. 서양에서도 기독교적 관점은 절대적 중요성을 가지며 그 안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이 패러다임 차원에서 대립했다. 물리학에서 뉴턴의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정치 영역에서 왕권신수설과 민주주의론 등 패러다임의 대립과 발전의 사례는 많다. 그러므로 역사는 패러다임의 대결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전쟁은 패러다임 간 대결의 극단적인 형태이므로 전쟁의 역사는 곧 패러다임의 역사가 된다. 이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보자. 매우 가혹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가 빨랐고 변화의 폭이 컸고, 그에 따른 패러다임의 교체가 매우 극심했다. 무엇보다도 외압이 강하게 작용했으므로 한순간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조선 후기의 거듭된 당쟁과 대규모 농민봉기, 외세의 침탈과 국권 상실, 식민지 억압과 독립운동, 해방에 이은 분단과 한국전쟁, 정부 수립과 독재와 민주화 등 급격한 전환기가 연이었다.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이유를 탐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또 다른 전환의 문제에 집중하자.우리 현대사는 한마디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다. 조선 후기의 봉건적 유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망국의 길을 걸었고 식민지 지배의 유제가 청산되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았다. 더구나 해방은 청산되지 못한 반제 반봉건의 과제 위에 분단 극복과 반독재의 과제까지 떠안았다. 막중한 4대 과제를 짊어졌으니 등이 휘어질 지경이었고, 사정이 이러하니 정의와 도덕보다는 불법과 반칙이 난무했으며 정상적인 사람들은 좌절했다. 75년 전 우리는 이런 악조건에서 출발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그래서 행복한가 그러나 전화위복이랄까 새옹지마랄까. 우리는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달성했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쿠데타와 독재로 점철됐던 정치가 점차 민주화됐다. 그 결과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매우 드문 나라가 됐다.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랐고 케이팝과 한류로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대단한 일이고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상전벽해의 반전을 실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하고 안락하고 행복한가. 그렇지만 이 질문에 선뜻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해방 시점에서 짊어진 4대 과제 중에서 민주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과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인 데다 그 그늘 또한 매우 짙다. 한반도 분단체제는 아직도 끝이 보이질 않고 반제 반봉건의 과제는 시효소멸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내장됐다. 그것이 최근의 양극화, 지역 불균형과 지역소멸, 자살률, 정치사회적 갈등과 같은 극단적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미어터지는데 지역과 시골은 사람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기형적인 나라가 돼 버렸다. 이 모든 현상을 한반도 분단체제의 유산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분단 만능주의라거나 분단 환원론이라고 매도하지 말자. ●분단체제·반제국·반봉건 과제 해결해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선거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통상의 선거라는 것이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으로 수렴되는 경향성을 갖는 법인데 분단체제의 모순구조는 중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사독재의 철옹성을 민주화의 염원으로 넘어선 것처럼 패러다임의 혁명적 교체가 불가피하게 됐다. 1945년에 해방과 동시에 분단됐으니 2045년이면 해방 100년이자 분단 100년이 된다. 오스트리아, 베트남, 독일의 경우를 생각할 때 우리가 해방 100년이 되는 2045년을 분단 상태로 맞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국민적 각오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연방제 패러다임이 제기된다. 연방제는 한반도 분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남북한의 체제가 이질화되고 격차가 큰 상황에서는 남북한이 만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남북한이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남한을 강력한 자치권을 갖는 남한연방으로 전환하고 그 후 남북협상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북한연방을 권고한 후 남한과 북한의 연방이 하나의 통일연방으로 결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이때 적용되는 연방의 강도는 유연하고 탄력적이어야 한다. 남한연방이나 북한연방은 결합의 강도가 높아도 무방하지만 남북한이 만나는 마지막 통일연방은 연합 수준으로 충분히 강도를 낮추는 것이 좋다. 연방제가 한반도 통일에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국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자치 30년 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방자치로는 망국적인 수도권 집중과 참혹한 지역소멸을 막을 수 없다. 오랜 세월 정부와 정치권과 학계와 시민사회가 한목소리로 지역분권을 주장했지만 지역 불균형은 더욱 심화됐다.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이 엄존하고 지방이 중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에서 시혜적 지역분권론으로는 균형발전이 불가능하므로 현행 지방자치제 아래서는 지역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그저 꿈일 수밖에 없다. 결국 지역이 권한과 재정을 갖는 자립적 지역분권이어야 하는데, 연방제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차제에 대통령제와 내각제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도 재검토할 때가 됐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는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제도가 더 좋다고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대통령제를 선택해서 70년 이상 사용해 왔기 때문에 이 제도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사회적 갈등이 오히려 증폭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와 달리 사회적 요구가 매우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제가 그 다양성을 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려할 때가 됐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대신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면서 합의를 촉진하는 내각제로 타협적 리더십을 구축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더욱이 내각제 방식은 대통령제보다 남북한 통일에 더욱 유리하다. ●만고불변의 제도 없어… 새로운 상황 시작돼 제도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하는 만고불변의 제도는 없다. 상황이 바뀌면 제도가 바뀌고 해결책도 달라진다. 경제가 성장하면 배분의 문제가 발생하고,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억눌렸던 요구가 분출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제약 없이 표출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민주화가 됐는데도 사회갈등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제가 발전했는데도 양극화가 외려 심화되고, 도시의 발전이 지역의 소멸을 재촉하고,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발전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소통하고 협의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 딱 적기다. 상지대 교수
  • 고진숙 서울 용산구 의원, ‘서울시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대상’ 수상

    고진숙 서울 용산구 의원, ‘서울시구의회의장협의회 지방의정대상’ 수상

    고진숙 서울 용산구의원이 지난 5일 서울시구의회의장협의회가 수여하는 지방의정대상을 수상했다. ‘지방의정대상’은 활발하고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자치구 의정과 지방자치제도 발전에 기여한 의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이번 지방의정대상을 수상한 고진숙 의원은 용산구의회 제8대 전반기 운영위원장을 역임하며 남다른 열정으로 주민들의 복지 증진과 용산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고 의원은 “구의원으로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구민들과 적극 소통하며 소임을 다했을 뿐인데,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되어 감사드린다.”라며 “더 열심히 지역과 주민을 위해 일하라는 의미로 알고, 주민의 행복과 용산구 발전을 위해 더욱더 힘쓰겠다.” 고 소감을 전했다.
  • 중앙 정부는 무제한, 지자체는 1년뿐… 국·공유지 무상 사용에 ‘불공정’ 논란

    군경·각 부처, 고양 1만 6000㎡ 무료 이용市, 정부 보유지 1620㎡ 쓰며 年1억 지불국가 사용료 부과·토지 맞교환 등 모색 국·공유지를 사용할 때 지방자치단체는 매수를 전제로 1년간만 무상 사용이 가능한 반면, 중앙정부는 계속해서 무상 사용이 가능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공유지 사용료 징수법이 지자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신문 취재결과 경기도 고양시는 덕양구 주교동 일대의 기획재정부 소유 토지 1360여㎡를 주차장으로 사용하면서 연간 1억여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중앙정부)는 공시가 5억 2000만원에 이르는 고양시 토지 8146㎡를 50년 동안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단 한 푼의 사용료도 내지 않고 있다. 국방부를 포함해 경찰서·소방서·교육청·환경부 등 중앙정부 각 부처가 고양 지역에서 무상으로 사용하는 토지 면적은 1만 6000여㎡에 이르고 이를 공시가로 따져보면 144억원이나 된다. 반면, 고양시는 48억원인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 토지 1620㎡를 빌려 사용하면서 연간 1억 2300만원의 임차료를 내고 있다. 만약 고양시가 국방부 등으로부터 사용료를 받을 경우 연간 3억 6100만원의 세외수입이 예상된다. 이같이 국·공유지 사용방식이 불공정한 것은 현행 국유재산법(34조)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때문이다. 국유재산법은 ‘국가재산을 지자체가 공용·공공용 또는 비영리 공익사업용으로 사용할 경우 매수를 전제로 1년 만 무상사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24조)은 ‘국가나 다른 지자체가 특정 지자체 소유 재산을 사용할 경우 임대료를 면제 할 수 있다’며 무기한 무료사용 여지를 뒀다. 또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이전에는 국가와 지자체 소유 재산에 대한 관계가 정립되지 않았고, 이후 관행적으로 무상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화 됐다. 지자체들은 “이같은 사례는 전국적으로 집계 조차 불가능할 만큼 많다”며 “지방자치시대에 걸맞게 국·공유지 사용료 불평등을 개선해 재정건전성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상급기관의 목적사업이 지속되는 한 지자체가 자기 재산에 대한 권리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소유자와 점유자의 불일치로 재산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양시 관계자는 “국유재산법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 서로 상충돼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중앙정부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파주시는 군부대가 점유하고 있는 시유지와 국방부 소유 토지를 맞교환하는 방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시는 내년까지 30여개 필지를 교환할 예정이다.
  •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노태우 별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육사에서 전두환과 운명적 조우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현재 대구)에서 부친 노병수씨와 모친 김태향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가 결혼한지 8년 만에 태어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성장했다. 부친이 일제시대 면서기로 일한 덕에 여유있는 생활을 누렸지만, 노 전 대통령이 7살 되던 해 부친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았다.  대구공업중학교(대구공고) 항공과에 입학한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말라리아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투병 생활을 거치며 의사의 꿈을 갖게 되고, 경북중학교 4학년(학제 개편 이후 경북고 1학년)으로 편입한다. 편입한 해에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았지만 5학년부터는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6학년 때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지원해 군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헌병학교 9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헌병으로 근무한 1년 동안 2등 중사(현재의 상병)까지 진급한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다. 이곳에서 그는 대구공고 1년 선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생도 시절 방을 같이 쓰면서 단순한 육사 동기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게 된다. 육사 졸업 4년 뒤 육사 동기인 김복동의 동생 김옥숙과 결혼한다. 월남 파병을 다녀오고 제9공수여단장, 제9보병사단장 등 요직을 거쳤다. 참모총장 수석보좌관,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보직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는 등 그의 뒤를 따랐다. 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2·12 쿠데타’로 이어진다.   ●12·12 쿠데타와 5·18  노 전 대통령이 속한 육사 11기가 중심이 된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 세력으로 성장했다. 국가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등 수도권 지역에서 세력을 성장하던 하나회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때 전 전 대통령과 함께 핵심 세력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에서 29연대, 30연대를 강제로 출동시키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김재규 내란 방조죄’라는 죄목으로 체포해 청와대를 포위하고 국방부부터 차례대로 장악했다. 이 사건으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군부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사실상 ‘친구’에서 ‘군신’으로 바뀌게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다음해 5월 17일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단행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로써 권력을 완전히 장악, 본격적인 정치 무대에 뛰어든다.  ‘12·12 쿠데타’는 노태우 정권까지 정당화 됐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 과거 청산 움직임과 함께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다. 이후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법정에 서게 됐다. 1997년 재판부는 “12·12는 명백한 군사반란이며 5·17과 5·18은 내란 또는 내란목적 살인행위였다”고 판결했다.   ●5공화국의 2인자  노 전 대통령은 늘 두번째였다. 정치군인의 길을 걸었던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육사 동기들의 반감을 다스리는 것을 비롯해 전 전 대통령 주변에서 도움을 줬다. 5공화국에서 주요 요직을 맡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2인자일 뿐이었다.  1980년 8월 27일 전 전 대통령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군 보안사령관직을 1년간 맡다가 이듬해 7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군에서 예편한 직후 외교안보 담당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고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에는 남북 고위회담 수석대표를 맡았고 이어 초대 체육부장관과 제41대 내무부장관을 지냈다. 5공화국의 가장 큰 역점 사업이었던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1985년에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육사 동기인 권익현의 뒤를 이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을 거쳐 총재를 지냈다.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전 전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1인자가 될 기회를 잡는다.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인 ‘6·29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강성 군부세력과 구별되는 온건 군부세력의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36%의 득표율로 1971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다.   ●6공화국과 북방정책  1988년 2월 출범한 노태우 정부의 앞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민족자존, 민주화합, 균형발전, 통일번영을 4대 국정기조로 내걸었지만 정권의 탄생 배경과 인적구성으로 볼 때 이러한 정책들을 실천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따랐다. ‘6공화국’이 아닌 ‘5.5공화국’이란 평가도 나왔다.  1988년 4월, 민주화 이후 첫 총선을 통해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노태우 정부의 순탄찮은 운명을 암시하는 전주곡이었다. 재야인사들에 대한 복권과 해금을 단행하지만, 평민·민주·공화 야3당이 청문회를 통해 5공화국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핵심인사들에 대한 처벌이 이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과오를 사과하고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노태우 정부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된 것은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현대중공업 파업 등을 통해 형성된 공안정국을 통해서다. 1990년에는 대통령 선언 형식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동시에 ‘1노 3김’의 분할체제를 청산하는 정계개편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민정·민주·공화 3당은 1990년 1월 22일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합당을 선언한다. 1992년 14대 총선으로 민자·민주·국민의 3당구조가 출현하기까지 의회는 214석의 거대여당이 주도하는 사실상의 일방적 독주체제가 2년 남짓 이어진다.  노태우 정부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절차적 측면의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신장된 시기였다. 5공에 비해 입법·사법부의 자율성이 강화됐고 30년만에 지방자치제가 부활됐다. 노동·시민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의 요구가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적 불안에도 불구하고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호황’이란 우호적 대외환경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기도 했다.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었다. 그 시작은 1988년 발표된 7·7선언이었다. 6공화국 대외정책의 핵심인 ‘북방정책’의 기본지침이었던 선언을 바탕으로 중국·소련 등 사회주의권과 관개개선이 이뤄진다. 경제력과 군사·외교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사회주의권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북한과도 대화창구도 복원,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12월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비자금 투옥과 그 이후  1992년 대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에 성공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박계동 당시 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10월 27일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450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해 13·14대 총선자금, 부동산 위장 매입, 민정·민자당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잔금 1940억원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구속기소된다.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의 개인비리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합작해 정치와 경제를 밀실에서 주무른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재벌총수 대부분이 관련돼 재판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은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돼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고 1997년말 국민의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면·복권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전임자였던 전두환 대통령과 달리 외부활동을 삼간채 자택에 칩거하며 사실상의 ‘은둔’ 생활에 들어간다. 10년 넘게 권부의 1·2인자 자리를 지켰던 그로선 치욕적이고 불우한 말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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