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 칼럼] 중1 성적 공개에 분노하는가
중학교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치른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된 뒤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에 있는 학교의 평균 점수가 영어 과목의 경우 크게는 22점까지 벌어지는 등 그동안 막연히 생각해 온 지역별 학력 격차가 수치로 입증된 것이다.
성적이 덜 좋게 나온 학생·학부모, 일선학교의 충격과 분노는 상당했다. 이 정도로 실력차가 날 줄은 몰랐다는 것, 점수가 공개되는 바람에 학생·학교가 성적순으로 서열화했다는 것, 실력을 보완하려면 학원·과외에 더욱 매달리거나 아니면 성적 좋은 동네로 이사해야겠다는 것 등 반응은 격렬했다. 아울러 전국 일제고사를 치르는 게 옳지 않다거나 개인·학교별 석차를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다.
이같은 충격과 분노는 당연하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단계이므로, 초등학생 시절의 학업 성취도를 따진 이번 시험에서는 전국 어느 학교·지역에서건 성적이 고르게 나와야 마땅했다. 강남 아이들은 고액 과외에, 과목별 전문학원에서 산다더라는 풍문은 들었지만 그 차이가 대수랴 하는 생각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단평가 결과를 보니 현실은 냉정했고, 그래서 우리 아이는 좋은 대학 가기 영 글렀다고 느꼈을 것이다.
분노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대상을 올바로 골라야만 개선책을 찾을 수 있고, 분노를 삭일 수 있다. 먼저 일제고사 실시와 성적 공개를 반대하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일제고사를 치렀기 때문에 아이들 학력 격차가 발생한 게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격차가 전국적인 시험으로 확인된 데 불과하다. 또 고교에 진학하면 어차피 매년 전국 규모의 시험을 여러 차례 치른다. 석차도 당연히 통보된다. 그런데 3년 앞당겨 중1년생을 상대로 시험을 치른 게 절대 잘못한 짓일까.
암에 걸린 환자도 조기에 발견해야 완치할 수 있다. 말기에 가깝게 찾아낼수록 치료는 어려워진다. 내 아이, 내 학교의 실력을 일찍 알아야 그에 걸맞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고교에 올라가 비로소 아이의 성적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중학교 때 미리 아는 것이 분명히 낫다. 학생·학교를 서열화했다는 주장도 합리적이지 않다. 대학으로 치면 SKY(서울·고려·연세대), 기업으로는 삼성·LG·현대 등이 선호 대상의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이는 누가 ‘서열’을 정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실력 뛰어난 수험생·구직자가 많이 지원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열’은 결과일 뿐이지 원인이 아니다.
자, 이제 분노는 하되 대상을 정확히 고르자. 당신은 이번에 일제고사를 치르고 성적을 공개한 행위보다는, 현실적으로 지역별 학력 격차가 이처럼 심각한 데 대해 분노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와 교육당국, 국회의원, 지자체,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전국의 초·중·고가 지역별 편차 없이 고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교육 제도·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그래서 사교육에 올인할 수 없는 나 같은 서민의 자식들도, 공부에 한해서는 본인이 열심히 한 만큼 성과를 거두게 해달라고. 학교와 교사에게도 요구해야 한다. 가난한 동네의 성적 나쁜 아이들을 받은 당신들은 실력을 어떻게 향상시킬 계획이냐고.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 경쟁에서 손해 보지 않는 길은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돈으로 승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정치·행정권에 이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마침 국회의원 선거철이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