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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명품도시 울산을 향하여/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이 달초 울산을 다녀간 정부합동 감사반의 지적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태화루 아래 선상 카페에서 감상하는 폭포수, 수변의 오페라 하우스, 수벽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 요트장과 남산 케이블 카, 연어 이벤트, 형형색색 조명 받은 다리들….” 딱딱할 것 같은 감사반의 이런 권고에 ‘환상적인 이야기’라는 반응과 ‘발상의 전환을 위한 충고’라는 등 여러 반응이 일었다. 조금은 꿈같은 아이디어의 실현성 여부는 차치하고, 변화하는 도시 울산의 미래와 생태도시를 향한 발길에 힘을 실어준 고맙고 신선한 충고로 받아들이고 싶다. 시꺼먼 매연에 찌들어 있는 공해도시로만 생각했던 울산 한복판, 전국 수영대회가 열리고 연어가 돌아오는 태화강에서 감사반들이 얼마나 깊은 감명을 받았기에 그런 ‘낭만적’인 권고를 쏟아냈을까. 아마도 깨끗한 생태하천으로 되살아난 태화강의 변신에 감동한 나머지 그런 ‘환상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돌아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권고가 울산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아주 높게 평가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여건도, 의욕도, 가능성도 없는 도시에 그런 권고는 무의미하다. 이제 세상이 변한 만큼 울산도 변해야 한다.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과거, 환경이야 어떻든 두 발을 뻗고 잘 수 있는 집이면 됐지만 이제는 ‘조망권’에 ‘일조권’에 ‘경관’을 따지고 삶의 질과 주거의 질을 강조하는 시대다. 이제 ‘도시 경관’은 도시생활에서 선택 아닌 필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실 울산은 도시경관에 관한 한 선구적인 도시다. 지금은 많은 도시가 경관 관련 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울산시는 1996년 건축행정과를 도시미관과로 바꾸었고 2001년 ‘도시경관 종합기본계획’을 수립해 경관의 골격과 가이드 라인을 설정했다. 나아가 2005년에는 ‘태화강변 경관계획’을 세우고 경관관리 지침까지 만들어놓은 상태다. 또 울산 남구도 내년 1월 ‘도시디자인과’를 신설해 도시경관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개선, 관리할 참이다. 울산은 국부를 창출해 온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산업 수도’이지만 그동안 공해도시의 대명사로 공장의 검은 연기를 연상시킨 도시였다. 그런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이 수영대회와 연어의 생태하천으로 거듭나는 모습에서 엄청난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했다. 도시정책의 일관된 추진이 얼마나 대단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체험하고 있다. ‘울산발 인사실험’도 성공적이고,‘울산발 생태실험’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 ‘경관 실험’,‘디자인 실험’이 시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공간 인식의 대전환이 전제돼야 한다. 도시경관은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110만 시민 모두를 위한 공공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부터 시작돼야 한다. ‘창조도시’(The Creative city)의 저자인 영국의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유럽 최고 문화컨설팅 조직회사인 코미디아 설립자로 도시혁신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는 “궁극적으로 도시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도층의 자질”이라고 했다. 또 도시 지도층의 5대 핵심 덕목의 첫째는 예지(foresight)라고도 했다. 여기에 집중력·호기심·개방성·창조성·협동성·조직력·결의까지 갖추고, 시민의 창의성을 도시의 기풍(ethos)으로 진작시키는 분위기만 살려간다면 공해도시에서 생태도시, 디자인 명품도시로 만드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 [지방시대] 지역문화는 ‘초콜릿 상자’다/송재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것(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인생이란 어떤 (좋은)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영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말했습니다. 초콜릿 원료가 상품으로 나와 소비자들 손에 쥐어지기까지 많은 공정과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더구나 상자 안의 어떤 초콜릿을 고르더라도 만족할 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험을 거치고, 실패를 해본 뒤라야 진정한 ‘달콤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지역문화 역시 초콜릿 상자와도 같습니다. 무궁무진하고, 보석과 같은 콘텐츠와 사람이 가득해 어떤 것을 집어들더라도 지역 문화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고품격 초콜릿 상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원과 투자,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 등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한 자치단체의 문화예술과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이 다된 시각이었지만 지역 문화와 예술 발전을 위한 열기는 그야말로 ‘후끈’했습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 먼저 털어놓은 ‘애로사항’은 문화의 중앙집중현상 때문에 ‘지역문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푸념이었습니다. 대형 뮤지컬이 지역에서 엄청난 좌석 점유율을 보이며 공연을 하지만, 이것은 서울에서 만든 기획일 뿐이며 서울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만들어놓은 완성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치단체와 더불어 문화 분권을 시도하고 활성화한 지 10년이 지났지만,10년 전의 고민과 현재의 고민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를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역문화를 지역 활성화의 근간으로 삼아 문화도시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지역 혁신의 주요 정책으로 확산시키고 있었습니다. 현재 지역정부의 예산 중 문화예산이 3%를 넘는 지자체는 매우 드물며,1%가 채 되지 않는 곳도 태반입니다. 이것마저 지키고 가꾸는 문화정책이 아닌, 부수고 혹은 새로 세우는 개발비용으로 생각하는 곳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개발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그래서 당장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경제 발전을 통한 문화적 발전, 사람을 모으는 발전으로 이해되고 실천된다면 살기 좋은 마을(지역) 만들기는 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산업도, 문화도 결국 사람입니다. 정확히 ‘전문 인력’입니다.‘불광불급(不狂不及)’, 즉 미쳐야 미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 일은 없듯 어떤 일에 미쳐야, 즉 전문가가 돼야 결국 그 일에 미칩니다(이릅니다). 지역문화가 활성화되려면 지역문화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는 데 미친 자치단체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이치에 맞게 계획하고 수행하는 데 미친 공무원들이 있어야 하며, 이를 적절하게 뒷받침하고 단호하게 평가내릴 줄 아는 미친 활동가들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며 지켜가는 미친 시민들, 즉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 꼬불꼬불한 길을 쭉쭉 뻗은 아스팔트길을 내달라 하는 시민보다 정감어린 돌담과 흙먼지 나는 골목길을 지켜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날. 그래서 지역 경제와 문화가 병행 발전해 창조적 인재가 몰려오는 살맛나는 그 날을 위해 지켜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품질좋은 초콜릿 상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집어들더라도 지역의 문화·예술이 살아있는 맛있는 초콜릿이 나오는 그런 초콜릿 상자 말입니다. 송재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 [지방시대] 공연장 밖의 아이들/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10월의 마지막 날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 오닐의 연주회가 있었다. 공연시작 전 공연장 밖에 중·고생이 많이 있어 비올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 몹시 기뻤다. 오닐은 기타 듀오의 잔잔한 반주 위로 눈물과 미소를 머금으며 겨울나그네 전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연주회 내내 필자는 가슴을 여러번 쓸어내렸고 팬들도 숨을 죽이면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비올라 선율에 한없이 젖어 들었다. 감동은 여기까지였다. 왈칵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은 벅찬 가슴을 안고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데 한무리의 중·고생이 모여들었다. 나보다 앞서가던 중년 관객들에게 다가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자 어떤 이는 백 속에서 뭘 꺼내 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기도 했다.“공연티켓 좀…” 아뿔사 그거였구나. 어쩌면 요런 맹랑한 생각을 다 했을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고 감상문을 써낼 때 티켓을 첨부하게 한다. 이러한 수행 과제에 대해 필자는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강제적이긴 해도 과제 때문에 청소년들이 한번쯤 음악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찾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문화예술 감각도 쌓이게 될 테니까. 선생님들도 이걸 기대했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경험하고 느껴보면 조금 더 예술의 세계와 가까워질 거라고. 그런데 이런 식으로 티켓을 구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감상문을 써내다니. 기막힌 것은 이 방법이 오래전부터 일반화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런 과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정말 안 하느니만 못 하다. 오히려 부정직하고 못된 처세술만 학습시키는 꼴이다. 티켓을 구해주는 부모나 건네주는 어른들은 공범자이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면 더욱더 큰일 날 일이다. 학생들은 이런 하소연을 할지 모른다. 시간이 없고 비싸고 어렵다고. 그러나 이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잘 살펴보면 우리네 주변에 공연이나 전시회는 하루도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유명한 전문가들도 있지만 아마추어나 일반인들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발표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공간이나 대학 교정에서 이들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고 무료인 경우도 많다. 대전만 해도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시립미술관, 박물관, 청소년수련원, 충남대, 카이스트, 대형 마켓 등에서 크고 작은 공연과 전시회가 잇따르고 있다. 만일 찾을 시간과 여건이 안 된다면 DVD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이용하면 된다. 좋은 작품과 친절한 해설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매스미디어 속에 넘쳐난다. 평소 이를 통해 좋은 작품을 감상하다가 시간이 나면 근처의 발표회장을 찾아보고 좀더 열정과 여유가 생기면 돈을 들여 프로페셔널한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다. 학교에서 그저 숙제를 던져주고 보고서만 평가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행여 자식이 공부시간을 뺏길까봐 티켓을 구해오고 자료를 수집해 주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있는 한 그 어느 것도 기대하긴 어렵다. 선생님과 부모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예술세계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삶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며 내 것으로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알려주고 함께해야 한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잘 살펴도 예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단 한번이라도 공연장 밖에서 못된 처세술을 배우는 아이들의 공범자가 된 적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생활 속에서 함께 즐기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 [지방시대] 광주공항 국제선 폐지,다시 고려하라/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광주공항 ‘국제선’을 무안공항으로 옮긴다고 한다. 광주지역 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 기타 관련 업체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설교통부는 ‘밀어붙이기식’ 인상을 주면서까지 이 문제를 속전속결로 처리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 건교부는 10년 전부터 준비해온 사업이라면서 “진도가 너무 나갔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더니 결국 2008년 6월까지 국제선 이전을 유보하는 선에서 일단 불을 끈 것처럼 행보를 보이고 있다. 광주공항에 광주∼무안, 순천∼목포간의 고속도로가 완성되는 기간까지 한시적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띄울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매듭을 지으려는 것 같다. 물론 새로 개설되는 국제선은 광주공항에서가 아니라 무안공항에서만 가능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동안 국제선 폐지에 따른 보완책으로 시원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던 건교부는 지자체와 수차례 실랑이를 벌이다가, 궁여지책으로 고속도로 조기 완성, 광주∼무안공항간 통행료 면제 등 몇 가지 지엽적인 방안을 발표하는 것으로 일단락지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또 지자체의 맹렬한 항의에 다급해진 건교부는 “공군 비행장도 무안공항으로 이전키로 국방부와 기본적인 협의를 가졌다.”고 발표하면서 광주지역 여론 무마에 전전긍긍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선 폐지,‘이전 보완책’에 따른 건교부의 발표(11월1일)에 지역 여론은 시큰둥하다. 생계에 쫓긴 시민들은 당장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지 않지만 “혹시 이러다 광주가 더 쭈그러들지 않는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렇지 않아도 전남도청을 무안으로 옮겨 광주시내 중심에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인구 140만 광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오는 판국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21세기인 지금은 도시와 나라 발전에 ‘하늘길’이 가장 중요한 몫을 하는 이른바 ‘범세계적 에어라인시대’가 아닌가. 현 단계에서 보면 한반도의 남녘 중심 도시인 광주가 ▲5·18 민주성지 ▲아시아문화 중심도시 ▲첨단산업 거점 ▲남도문화 중심축 ▲호남교육 중심지로서 보다 폭넓게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하늘길’, 특히 국제선의 활성화가 중차대한 시점이다. 이런 점들을 깊이 고뇌하지 않고 ‘광주공항 국제선 폐지, 무안공항으로 이전’만을 최상책으로 삼는다면 과연 후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심사숙고해 봐야 하리라. 그런 다음,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하는 작업에 착수해도 늦지 않다는 게 전남 도민, 광주 시민들의 바람일 게다. 필자는 바로 이런 생각과 함께 하늘길 개척이야말로 ‘정치+경제’적 측면만 아니라 ‘문화+경제’적 측면에서 재고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문화가 정치·경제를 리드하는 것이 오늘과 내일의 추세라는 점을 건교부 정책 입안자들도 고려하길 바란다. 거대한 선박 제조 못지않게 한 장의 CD, 한 사람의 영혼이 수천명의 밥그릇을 채워주는 일이 이미 문화 선진국에선 벌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광주의 혼,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한 축이기도 한 광주의 하늘을 ‘국제선 폐지’로 막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광주의 하늘은 광주의 자존심이요, 그리하여 더 많은 세계인들이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지방시대] 대구 쿨한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대구가 ‘쿨한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도시에 발전 동기를 제공하는 창의적인 집단을 유인하고 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집단이란 바로 랜드리와 플로리다가 말하는 디자이너, 패션 리더, 건축가, 화가, 컴퓨터 마니아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일자리 창출형 아이디어 생산자이며, 창작이 필요한 경제활동 종사자이다. 미국만 하더라도 창의적 그룹이 만들어내는 신종 직업 수가 2000만개를 넘는다고 한다. 전체 임금노동자 절반 정도가 이러한 지식관련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이다. 이제 어떤 국가나 도시가 발전을 앞당기고자 한다면 쿨한 멋과 창의적 집단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개 창의적인 사람들은 특정의 단단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직종에 전념하는 이들과 교제하기를 즐긴다. 평범한 것과 독특한 것을 두루 경험하기에 정신적으로 항상 열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히 개인주의자이지만 자신의 이념을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사회적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철저하다. 이들 중 다수는 자주 최고급 공간에서 여가를 보내면서도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작업장에 파묻혀 창작하느라 고민하고 땀 흘린다. 이처럼 세련미와 거친 면을 함께 지닌 집단은 변화를 외면한 채 규모만 큰 도시, 부패와 범죄가 만연한 도시보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미래지향적 성격의 도시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처의 도시 행정가들은 무작정 인구 증가를 바라는 대신 저마다 창의적인 인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려 애쓴다. 생각과 행동이 남다른 이들을 향한 일종의 매력 경쟁인 셈이다. 여기에는 세계의 모든 도시들이 뛰어들었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 가운데 유럽 도시 다섯 곳을 선정해 디자이너, 패션 리더, 건축가들이 앞다퉈 몰려드는 까닭을 밝혔다. 이유는 양질의 교육 여건, 사회적 다양성을 자본으로 여기는 열린 자세, 피가 끓고 심장이 뛰는 역동적 분위기에 있었다. 암스테르담이 그러하고, 더블린이 그렇다. 특히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옛 향기 깃든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멋스러울 뿐만 아니라 지적 분위기와 첨단 기술이 잘 어우러져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대구시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아느니만큼 일종의 내부 수리에 나섰다. 도시디자인위원회를 구성해 대구의 외관을 다시 꾸미고, 도심지 일대를 새롭게 단장하려는 구상에 들어갔다. 창의적 인력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변화에 더디던 시민들 역시 다원성 부족을 발전의 심각한 제약요인으로 인식하면서 폐쇄적인 지역문화 걷어치우기에 아주 열심이다. 하지만 대구가 가까운 시일 내에 쿨한 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를 두고서는 여전히 못미더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저마다 개성을 살린 건축물과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움을 주는 형형색색의 표현물이 꽉 들어찬 서구 도시를 접한 사람이라면 의문 가지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과묵한 도시가 크게 달라져 세계 곳곳의 창의적 인재들을 끌어모으리라는 기대조차 버릴 수는 없다. 행정과 시민의 실천 의지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 [지방시대] 지방자치도 수확의 계절 돼야/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온 나라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가을을 맞아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농수산물을 소재로 한 축제가 특히 한창이다. 이러한 축제는 해당 지역의 주요한 산업기반인 농수산물의 판매와 홍보, 지역에 대한 좋은 이미지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도작 농업의 문화를 축제화해 성공한 김제 지평선축제를 비롯해 고추, 배, 단감, 밤, 전어, 젓갈 등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축제가 늘어나자 일부에서는 너무 축제가 많고 특색이 없으며, 경제성도 없이 예산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시·군 단체장이 재선을 위한 유권자 접촉 행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전북지역에서는 한 해 70여개가 넘는 축제가 있다고 하니 14개 시·군 평균 5개 이상의 축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지역은 중앙정부에서 임명한 단체장들이 이끌었다. 주민이 임명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임명권자인 장관이나 대통령에게만 충성을 했다. 그래서 쓰레기 매립장이든, 소각장이든 지금은 주민들이 반발하는 사업도 밀어붙이기로 처리했다. 주민들의 반발은 경찰력 등을 동원해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민선 단체장은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과거 단체장만큼 강력하고 분명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러한 환경변화를 읽어내기보다는 지방자치 제도를 도입하니까 갈등이 많아지고, 단체장은 표를 의식해 밀어붙이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막상 자신과 관련된 일에 갈등이 있으면 단체장에게 민주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축제 또한 마찬가지다. 축제가 갖는 본래 기능은 외면하고, 행사에 들어간 예산과 단체장의 낯 내기만을 지적하며, 축제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지역축제는 지역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일부 문제점이 있지만 이는 지방자치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과거 강력한 중앙정부가 각종 정책과 예산, 인사권을 가진 상황에서 지역은 중앙을 구성하는 부분에 불과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은 자신들의 특색을 잃었다. 그런데 이러한 중앙집권 시절의 습관은 지금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역별로 자신들의 지역을 발전시킬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를 수없이 방문하고 있다. 이러한 지방의 노력들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진정성에서 비롯된 활동들이지만 아쉬움이 많다. 경제자유구역이든, 기업도시든 각 지역이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해당 지역이 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면서, 각 지방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각 지역의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말은 지방자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앙정부가 지역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도록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결국 지역간 대립만을 낳는다. 또한 해당 정책의 성공을 위한 지역주민의 참여와 책임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한 사업이 아닌데 지역주민들이 참여하고, 책임성을 갖기는 어렵다. 이는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결국에는 예산을 낭비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지방이 결정하고 지방이 책임을 지는 분권화된 시스템 개선을 위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 [지방시대] 부산은 선진도시인가/임정덕 부산대 교수

    국민 소득이나 생활 수준으로 치면 한국은 확실히 선진국이다.1인당 소득이 한국의 3배쯤 되는 일본 사람보다 한국 사람이 잘살지 못한다고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특히 도시 생활은 높은 수준을 구가한다. 새롭게 들어서는 최신 건물, 날로 좋아지는 도로, 시민들의 옷차림 등에서 선진국인 일본보다 못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중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급 음식점의 가격은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비싼 곳이 많은 데도 호텔 레스토랑이나 고급 음식점은 성업 중이고 더 늘어난다. 외국의 명품 제조사가 한국 시장을 노려 진출할 정도로 소비에서도 선진국 수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승용차 생산 대수와 인구 대비 보급률에서도 한국은 선진국 중 상위를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위치에 있다. 그러나 교통 질서, 교통 의식 측면에서는 도저히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없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특히 도시의 교통 및 주차 질서에서는 웬만한 후진국보다 더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또 개선의 전망도 밝지 않다. 고도 성장에 따른 자동차 보급 속도가 도로나 주차면적 공급 속도를 훨씬 넘어선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선진국 어느 나라도 도로부터 만들어 놓고 자동차를 보급하지는 않았다. 또 어느 선진국도 도로나 주차장 등의 시설 공급에 의해 도시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쓰지 않고 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는 도로율이 50%나 되지만 교통 정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대도시도 부산과 같은 무질서한 주차 질서를 보이는 곳은 없다. 뉴욕이나 도쿄에 차가 많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산을 포함하는 한국 대도시의 주차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행정 당국이나 시민의 재산권 의식과 인권 의식 결여 및 이에 더한 패배 의식 때문이다. 자동차는 개인이나 소유주의 재산이고 소유주는 그것을 놓아 둘 장소를 확보해야 한다. 아니면 장소를 사든지 빌리든지 해야 한다. 도로는 공공의 재산이고 재산 가치도 엄청나다. 그 도로를 무단 점유, 사용하는 것은 재산권의 침해이다. 어느 누가 자기 집 경계 내에 허가받지 않은 자동차나 물건을 놓아두게 용인하는가. 고발과 처벌이 당연히 뒤따른다. 그런데 어째서 공공 재산은 마음대로 써도 되는지 알 수 없다. 10년 전에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부산시의 도로상에 주차하는 승용차 1대 면적의 땅값 가치는 약 2000만원이었다. 도시 교통의 여건이나 자동차의 특성을 감안해 도로상의 주차가 불가피하다고 치자. 그러나 좁은 도로의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또 간선 도로의 두개 차선을 점유해 통행 속도를 떨어뜨리고 사고를 유발하는 책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간선 도로를 제외한 부산의 대부분 도로에서 보행자가 다녀야 할 인도에 차를 주차시켜 사람은 차도로 다녀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인권 침해는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가. 보행권도 없는 사회가 인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렇다면 차가 생활 필수품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돈이 없기 때문에 은행 돈을 무단으로 쓰거나 배가 고프기 때문에 아무 음식이나 공짜로 먹어도 된다고 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다는 패배 의식을 극복하지 않는 한 도시 교통문제는 해결할 길이 없고 부산이 선진 도시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임정덕 부산대 교수
  • [지방시대] 청주-청원은 이제 통합해야/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지난달 29일은 청주·청원지역 주민들에게 특별한 날이다.2년 전 두 자치단체가 주민투표로 행정구역 통합을 시도했다 무산된 날이고 주민투표법상 통합 문제를 재론할 수 없는 2년의 유예기간이 끝난 날이기 때문이다. 통합을 재추진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요즘 청주과 청원을 사랑하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두 지역 통합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역 언론들도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인구의 도시 집중과 교통·통신의 발달로 생활·경제권, 행정권 사이에 심한 괴리현상을 빚어 왔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적인 자치행정을 달성하기 위해 1994년 관계 법령에 따라 전국의 자치행정구역 통폐합을 추진했다.90여개의 시군이 40여개로 도·농 통합시로 출범했다. 이후에 두 번이나 실패했던 여수시와 여천시, 그리고 여천군도 합쳐졌다. 그러나 청원군과 청주시는 두 번의 통합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청원·청주는 군의 중앙에 시가 위치하는 계란 노른자위 형태를 취하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행정구역 통합이 절실한 곳이다. 이런 형태의 행정구역이 전국에 14개나 됐지만 13곳은 94년 통합되고 청주·청원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 통합이 왜 필요한 것일까. 청주와 청원지역은 삼한시대부터 동일한 행정구역으로 역사적 맥락을 같이 한다. 경찰구, 소방구, 택시영업구, 버스영업구 등도 이미 통합행정 체제로 운용된다. 보건의료, 공원, 체육시설, 영화관은 물론 생필품 구매 시설도 공동으로 이용한다. 행정구역이 형식적인 또는 지리적인 경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정의 효율성 면에서도 두 곳이 합쳐지면 공공 및 유관기관의 통합 운용으로 재정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돈을 발전 잠재력이 큰 청원지역 도시기반시설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주와 청원이 따로 노는 도시계획을 하나로 묶어 세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도농간 균형 발전을 합리적으로 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주·청원지역 경제 자립의 최대 과제인 호남고속철도 오송역과 청주국제공항 활성화에도 두 지역이 힘을 합칠 수 있다. 통합 반대자들은 10년 전 1차 통합 과정에서 나온 청원주민의 반대의견을 계속해서 내세우고 있다. 통합이 이뤄지면 세금이 증가되고, 청원에 혐오시설만 오고, 도시 중심 행정운용으로 청원이 소외될 것이라는 논리다. 또 통합하지 말고 청주·청원을 다섯개의 자치단체로 분리하자는 주장을 하더니 급기야는 청원시로 승격을 시키겠다는 입장을 취해 통합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런 이면에는 청원이 존재해야 기득권을 누리는 청원군수와 공무원, 지방의원, 이장단, 농민단체, 정치사회단체 등의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제 청원군과 청주시는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기존 통합지역의 시행착오를 거울 삼아 통합시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청사진을 주민에게 내놓아야 한다. 단체장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기보다 통합에 대한 장단점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힘써야 한다. 공개 토론회를 열고 정기 주민여론을 조사해 발표하는 일들이 그것이다. 두 지역 시민단체들도 통합의 장단점을 충분히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객관성을 내세운 형식적인 보도보다는 정론직필로써 주민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행자부장관과 충북도지사는 청주·청원의 행정구역 통합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민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도농 통합이 잘못된 정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 [지방시대] 울산 재평가되어야 한다/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역사도시 울산, 산업수도 울산’ 울산∼부산간 7호 국도를 따라 부산 쪽으로 가다 보면 울산과 양산 경계인 회야교 입구의 대형 안내간판에 쓰여 있는 문구다. 울산은 ‘산업’과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라는 뜻이다.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 주변은 그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다. 한국문화의 기원이라는 반구대 암각화에다 천전리 각석이 있다. 땅을 파는 곳마다 ‘고분’이 나온다. 최대 ‘공룡 유적’이 있고 ‘청동기 주거지’도 널리 분포해 있다. 그럼에도 외지 사람들이 울산 하면 떠올리는 두 가지의 낡은 도시 이미지가 있다. 공해도시이며 노사분규가 많은 노동자 도시가 그것이다. 울산은 공업도시니까 당연히 공해가 많은 도시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늘은 시커멓고, 공기는 마시기 두렵고, 냄새 퀴퀴하고, 오염으로 나무가 죽어가고, 바다는 죽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 또 어느 날 전국으로 나가는 TV뉴스 한 장면을 보고서는 과격한 노사 충돌로 골치 아픈 도시이며 노사분규의 메카쯤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보라. 울산 도심에서 서쪽으로 30분 가면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준령들이 즐비하다. 동쪽으로 30분만 가면 동해안 청정 해안이 넘실댄다. 인구 110만명의 대도시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에서는 몇년째 전국수영대회가 열리고 있다. 울산의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보다도 낮다. 이쯤만 열거해도 울산은 많이 ‘억울한’ 도시다. 도시는 늘 두 얼굴이다. 오래된 것과 새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함께 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울산에는 당연히 노동자의 외침도 있지만 노사평화의 모범도 많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처음으로 무분규 타결이라는 신화를 일구어 냈다.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은 13년 무분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은 우리나라의 ‘산업수도’로서, 인구에 비해 자동차가 많은 도시이다. 디트로이트나 도요타처럼 ‘자동차 공업의 메카’로서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공업화 45년 동안 공해를 많이 배출해 시민들은 오염된 공기를 많이 마셨고 공업화의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공해나 노사분규 같은 반갑잖은 소식만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생태도시를 위해 아무리 엄청난 투자를 하고 세계적 문화유산을 가진 역사도시라고 자랑해도 공해나 노사분규 같은 반갑지 않은 뉴스가 한두 번 나가면 소용이 없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있고 한국 자동차 공업의 메카이며 좋은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살기 좋은 도시라는 자랑이 빛을 잃게 된다. 울산은 이제는 더 이상 공해에 찌들고 노사 분규만 있는 과격한 이미지의 도시가 아니다. 한국 문화의 기원인 반구대 암각화와 한국 최대의 공룡 유적이 있는 도시다. 한국 공업화 45년의 일등 공신 도시이며 우리나라 산업의 10∼20%를 차지하는 도시다. 도심 한복판 태화강에서 전국수영대회를 개최하는 생태도시다. 이에 걸맞게 제대로 된 평가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울산의 환경투자가 보람이 있고 건전한 기업문화를 위한 지역 상공인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울산의 환경문제 보도로 취재 기자가 상을 받는 환경오염에 관한 논란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민과 관이 쏟아 부은 엄청난 환경투자가 한낱 물거품이 되는 그런 도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유일한 ‘생태산업도시’로의 꿈을 접어버리는 억울한 도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울산이 재평가되어야 할 이유다. 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 27일부터 백화점 가을 브랜드 세일…물량많은 초반 3일 노려라

    ‘세일 초반 3일을 노려라.’ 주요 백화점들이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최대 잔치인 가을세일에 돌입한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은 27일부터 브랜드 세일에 들어간다. 정기세일(10월3∼14일) 1주일 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몸 풀기’ 세일이다. 롯데백화점은 28일부터 브랜드 세일을 한다. 올해는 가을정기행사 기간이 지난해보다 닷새 정도 짧아졌다. 브랜드 세일단계부터 치열한 판촉전이 예상된다. 브랜드 참여율도 최고 90%까지 끌어올렸다. 행사에 전략 상품을 총출동시킨 셈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좋은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구매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26일 “세일 첫날 매장을 찾는 것이 가장 좋지만 사정상 어렵더라도 세일 시작 3일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월(移越)상품 및 기획상품의 구입은 금요일과 월요일 오전이 적기(適期)다. 세일기간 주요 행사가 ‘금요일∼일요일, 월요일∼목요일’을 주기로 교체되기 때문에 행사 첫날인 월요일과 금요일에 물량이 가장 풍성하다. 전단지나 백화점 매장에 붙은 ‘○○기획전’을 잘 이용하면 할인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단독’,‘온리(only)’,‘한정’ 등의 단어가 들어간 행사 내용부터 파악하는 것이 좋다. 한정상품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이윤없이 균일가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 노(NO)세일 상품인 ‘가구’도 이때만큼은 예외다. 할인제휴 카드, 상품권 증정, 특가상품, 진열상품 등 깜짝판촉 내용을 공개한다. 백화점별로 판촉내용을 세일 첫날 전단지에만 공개해 진검승부를 벌이는 게 업계의 관행이다. 한편 신세계 백화점은 브랜드 세일에 최고 30%까지 할인 판매한다. 강남점에서는 지방시와 로가디스 남성 정장을 39만원과 29만원에 각각 살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28일부터 본점에서 스니커즈 초특가전을 연다.DKNY, 디젤, 라코스테 스니커즈를 4만 5000∼5만 9000원에 판매한다. 절반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과 목동점에서는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을·겨울상품을 50∼7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지방시대] 농촌도 이제 ‘쇼’를 하라/송재호 제주대 교수·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쇼 곱하기 쇼는 쇼. 쇼 곱하기 쇼 곱하기 쇼는 쇼. 쇼 곱하기 쇼 곱하기 쇼 곱하기….” 흥겨운 노래와 쉽고 재미있는 몸 동작 캐릭터로 유명한 이 광고는 최근 CF계의 화제입니다. 캐릭터 숫자가 노래와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단순하지만 볼수록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 광고를 보면서 문화와 관광이 만나고, 관과 민이 만나고, 문화와 산업 등이 만나 어우러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아가 이 광고를 우리의 농촌 현실에도 대입시켜 봅니다. 갑자기 농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추석을 앞두고 마음은 이미 고향에 가 있을 듯해서입니다. 그러나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일컬어지는 한가위 앞에 넉넉하고 따뜻해야 할 우리네 고향을 떠올리면 답답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농사 일이 힘이 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어 자식들 학교 보내고 결혼시킬 수 있을 때만 해도 희망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누르디누른 들판을 배경으로 ‘올해도 풍년’이라는 9시 뉴스의 헤드 라인을 보기만 해도 배불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농민 시위에다 생산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며 배추밭을 갈아엎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걱정하는 농가의 한숨 섞인 뉴스를 보면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치는 기분이 듭니다. 소비자들은 우리 것이 최고라며 ‘국산, 국산’을 외치는데 그것을 생산하는 농민은 한숨만 늘어가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희망의 불씨는 분명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농촌에 문화와 관광이 어우러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농촌 플러스 문화·관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단순한 만남을 넘어서 상생을 통해 남루해질 대로 남루해진 농촌을 새롭게 단장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구석구석 문화·관광적 요소를 찾고 이를 가시화시켜야 합니다. 그런 다음 농촌 일상으로 천천히 흡수되어야 합니다. 이미 문화와 관광은 농촌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한 작은 마을은 간판 바꾸는 작업 하나만으로 세간에 마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참여와 합의, 지역 서예가의 서체라는 문화가 더해지고 곱해져 아름다운 간판 마을을 만들어냈고, 마침내 스쳐 지나가는 곳에서 머물고 싶은 마을로 살려 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곳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속속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은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 농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바로 ‘쇼’입니다.‘농촌 곱하기 문화·관광’을 통해 얻은 결실을 잘 포장하고, 마케팅하고, 서비스하는 ‘쇼’가 필요한 것입니다. 농산물 생산만 하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이 가미된 농촌으로 탈바꿈해 일상 탈출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농촌으로, 농촌으로’ 발걸음할 수 있도록 쇼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속칭 ‘쇼하고 있네!’의 쇼에 그쳐선 안 됩니다. 지역의 정체성을 간직한 문화, 지역사회에 바탕을 둔 관광, 이것을 선도할 사람 등이 어우러져 ‘살기 좋은 마을’을 향한 쇼가 지금 시작되어야 합니다. 무대는 농촌이며, 무대의 주인공은 농민들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농촌 곱하기 문화·관광 플러스 쇼’를 실천하여 살기 좋은 농촌마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그 날이 오기를 이번 추석 보름달에 빌어 봅니다. 송재호 제주대 교수·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 [지방시대] 말뿐인 ‘위기 청소년을 위한 사회안전망’/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지난 학기 대전에 사는 중학생 서너명이 서산의 한 아동센터에 와서 공짜로 잠잘 곳을 문의했다. 가출 청소년임을 직감한 상담원은 관련 기관을 찾아 보호하고자 했으나 당장 이들을 보호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가출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쉼터는 멀리 천안에 있었고 그나마 제한된 수용 인원 때문에 그 곳으로 보낼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려 보내고자 이런 저런 이야기로 달래고 있던 중에 이들은 잠시 틈을 타 가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사회 청소년통합지원체계(Community Youth Safety-Net)가 구축돼 있다. 지역 사회의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연계해 가출이나 비행, 약물, 성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위기 청소년을 돕는 시스템이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야심차게 구축한 것이다. 전국 청소년(상담)지원센터가 CYS-Net의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헬프콜 1388을 통해 위기 청소년이 발견되면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상담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도록 돼 있다. 즉 지역사회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자원과 연계해 원스톱 서비스 전달 체계를 갖춘 것이다. 언뜻 보면 위기 청소년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대단히 잘 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시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충청 지역에서만 보더라도 지역 사회의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네트워킹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기 청소년들이 발견돼도 지역에서 연계할 수 있는 자원이 거의 없다. 지역 내 허브기관이 하루 24시간 이 역할을 해 나갈 여건도 안돼 있다. 현재 청소년지원센터는 시·군 단위로 1곳이 있다. 대부분 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고 매우 열악한 상태다. 지역마다 약간 차이는 있겠지만 지자체는 대부분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예산을 그야말로 쥐꼬리보다도 짧게 책정하고 있다. 단체장의 마인드나 지역 의회가 청소년 문제나 청소년지원센터의 기능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특히 지방의 시·군은 특별지역 외에 대개 상담원 1명이 모든 역할을 떠맡고 있어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청소년 문제는 불행하게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그 문제의 양상도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다. 이제는 비행 청소년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일반 청소년이라도 가정문제나 심리적인 문제로 가정 밖에서 일시적 보호서비스가 요구되는 일이 많아졌다. 수요가 없어 줄어든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지금은 청소년보호시설이 지역 곳곳에서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가을엔 마음이 우울해지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난다. 지역사회가 모두 위기 청소년들의 안전을 위한 자원이라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온통 위험요소들로만 가득하니 마음이 무겁다. 충청지역 가출 청소년들을 위한 제도권 내 청소년 쉼터는 2곳뿐이다. 지역지원센터가 위기 청소년을 발견하더라도 네트워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위기 청소년을 위한 홍보 문구가 눈에 많이 띈다. 웬만한 사람들은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헬프콜인 1388을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1388을 아무리 눌러 봤자 별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또한 위기 청소년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 문제로 이어질 때 그 파장은 또 어떻겠는가. 기왕에 힘들여 좋은 제도를 만들었으니 그 효과가 한번 제대로 나게 해 보자. 국가와 지자체는 제도만 번듯하게 만들어 홍보할 게 아니라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뒷받침도 해야 한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 [지방시대] 9월,가을은 우리의 스승입니다/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9월이 왔습니다. 몹시도 뜨거웠던 우리들의 이마를 식혀주며 먼먼 산봉우리에서 불어오는 소슬바람으로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나뭇잎들은 서둘러 여름날의 마지막 햇살과 수액을 더 열심히 빨아들이고 새들은 하늘을 멀리 날기 위해 깃털을 바지런히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9월은 나그네입니다. 우리들 몸속에 숨겨진, 아니 어쩌면 우리들 몸의 구석 어딘가에 숨어있을 영혼은 파란 불을 켜고 국토의 저편까지 여행을 떠나자고 보채고 있습니다. 마음에 빈곳이 많은 사람들은 가을꽃 한 송이라도 더 찾아 나설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밤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책 페이지들을 한 장 한 장 부지런히 넘겨갈 것입니다. 9월은 고개 숙이는 달입니다. 벼들과 함께 하는 들길을 걸으며 ‘고개 숙인다’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깨달음에 이르는 달입니다. 고개 숙인다는 것―그것은 요란한 소리가 없이 오래오래 사유하고 사랑한다는 것, 스스로를 비우고 비워서 기도와 평화와 경건함으로 채워 넣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세상의 모든 열매는 익어야 고개를 숙이고 제 맛과 제 향기를 낸다는 것을 가을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9월, 가을은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의 인생과 세상살이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9월엔 ‘작은 것들’도 크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많은 것, 더 큰 것, 더 배부른 것을 찾기만 했던 우리들이 어쩌면 어리석은 부분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풀여치, 고추잠자리, 쓰르라미의 숨결 하나하나가 모아져서 우주의 숨결을 이룬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9월이 오면 사람들은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누구나 노래하는 음악가가 됩니다. 누구나 저 높푸른 하늘에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됩니다. 누구나 깊이 사색하는 철학자가 됩니다. 누구나 가슴 드넓어지고 여문 벼들이, 알곡들이 출렁대는 농부의 땀 흘리는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9월이 오면 사람들은 아름다워집니다. 깊은 산 물소리처럼 이웃사랑도 잔잔하게 흐르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대로 누군가와 더 나누고 싶어하고 부자들은 부자들대로 ‘나눔과 베풂’의 시간을 가지려고 자신의 주머니 속에 손을 자주 넣는 달이 9월입니다. 9월은 미움을 모릅니다. 다툼을 모릅니다. 두 눈을 부릅뜨지 않습니다. 경박스럽게 날뛰지도 않습니다. 편을 가르고 누구를 시샘하지도 않습니다.9월은 아련한 시절 옹달샘의 새색시처럼 수줍음이 가득한 얼굴 그 모습입니다. 이슬이 맺힌 산국화처럼 청초할 따름입니다. 또한 9월은 전라도와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서울과 지방, 남과 북을 편 가르려 하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반도 분단의 정치사회적 DNA에서 비롯된 섹티즘(분파주의)을 멀리 멀리 보내버리면서 우리 모두를 푸른 하늘 아래 하나로 두고자 합니다. 9월은 쓸쓸하기도 합니다. 쓸쓸하되 감나무 잎사귀에 내리는 햇살처럼 따스합니다. 잠든 아이를 등에 업고 바느질하시던 그 옛날 고향집 어머니처럼 그렇게 고요하고 고요할 따름입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결실의 나라로 조금씩 발자국을 옮겨가는 사랑과 감사의 달인 9월. 이제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정치와 경제, 밥그릇과 ‘큰마음’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준태 조선대 교수·시인
  • [지방시대] 지식산업도시와 대구의 미래/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구는 영남의 중심지로서 위용이 대단했다. 오랜 학문 전통이 살아 있어 사방에서 인재가 모여들고, 교통 요지이다 보니 원근의 생산물이 분주히 드나들었다. 금호강변에는 공장이 즐비하게 늘어섰으니 그야말로 호시절이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오늘날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근대를 지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높게 솟은 공장 굴뚝이 한 사회의 잠재력을 상징했다면, 이후 개인, 기업, 도시,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주된 요소로 등장한 것은 지식 창출과 활용 능력이다.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다양한 영역에 미친 영향은 깊고 광범위하다. 대구는 지식기반 경제시대의 도래를 맞아 초기 대응이 매끄럽지 못했다. 경쟁 도시들이 저마다 일찌감치 외부 조건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애쓰고 신성장동력산업 육성에 열을 올렸으나, 당시 대구의 선택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시대적 움직임이 급박함에도 지식집약형 첨단산업 위주로 지역 경제 질서 재편을 서두르기보다 기존 산업구조를 붙잡은 채 수년을 보냈다. 이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전략적 접근의 한계이지만, 그 결과는 지역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취약했던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다행히 요즘 대구시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 대안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아직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지역이 내세울 미래 비전은 국제 지식산업도시 건설에 맞춰질 듯하다. 대내외 여건에 아주 잘 어울리는 선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국내 여러 도시 가운데 대구만큼 지식기반 경제에 알맞은 인프라를 갖춘 곳이 드물다. 우수한 교육시설이 숱하게 많고, 인적자원 양성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 토대 역시 빠지지 않는다. 교육과 학술관련 공공기관 이전 예정지인 혁신도시 조성이 계획대로 마무리될 경우 기초는 훨씬 견고해진다. 아무튼 21세기 지식기반 경제시대에 지역 특성을 제대로 살린 비전이 어느 정도 뚜렷해졌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미래형 첨단산업을 키우면서 이에 필요한 연구개발 역량 제고를 이뤄내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도시의 경쟁력은 얼마나 신속하고 안정되게 새로운 지식을 생산·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 바탕은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학습이다. 근래 전문가들이 기업이나 지역 발전을 두고 경제 주체 간 상호 의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생산체계가 바뀌고 지식기반 경제가 진전됨에 따라 도시는 과거처럼 단순한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변화를 촉진하는 사회적 환경이 되었다.IT, 나노, 바이오기술이 어우러진 첨단산업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옳게 자라난다. 아울러 대구가 국제 지식산업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더 있다. 가장 먼저 갖출 것은 지역 구성원의 명확한 목적의식 공유와 리더의 확고한 의지이다. 여러 이해 집단이 당장 현실에 닥친 위기와 도전을 충분히 인식하고, 정치·행정 지도자들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법·제도적 뒷받침을 가능케 할 때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부 도전은 만만찮아 보인다. 일부 집단은 여전히 일정한 경계의 벽을 세운 채 자기 이익 지키기에 여념이 없고, 지역 전체의 내일에 대해 이기적인 자세를 취한다. 이처럼 협소한 태도가 대선을 기회삼아 대구의 재도약을 모색하려는 야심찬 시도에 자칫 흠집을 내지 않을까 크게 우려스럽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
  • [지방시대]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가?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뒤풀이 모임을 가졌다. 늦게 끝나 전주행 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지만 나의 장래가 걸린 문제를 상담하다 보니 고속버스 막차를 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걱정이 되어 여러 곳에 차편을 알아보게 되었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철도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 전화를 넣었다. 기계음이었지만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철도고객센터입니다.”하더니, 이어 “지금은 모든 상담 전화가 통화 중이어서 연결해드릴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주시기 바라며, 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 통화 요금이 부과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밤 11시40분을 넘어선지라 다른 교통편은 없을 것이고, 상담 전화가 많다는 것은 기차편이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잠시 후 다시 전화를 하였다. 세 번 정도 위의 상황이 계속되니 친절한 안내고 뭐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네 번째 전화를 하자,“상담원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음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전달되었다. 슬슬 올라오던 짜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차편이 있을까 하고 묻기 위해 목청까지 가다듬으며 귀를 수화기에 바짝 대고 있는데,“지금은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며 기대를 저버렸다. 다시 통화 단추를 눌렀다. 이번에는 제법 비장한 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KTX와 함께하는 철도고객센터입니다. 상담원 상담 시간은 매일 오전 06시부터 밤 12시까지입니다. 자동응답 ARS를 원하시면 *표를 눌러주십시오. 감사합니다.”였다.20여분을 통화 중이더니 밤 12시가 넘자 상담원 상담시간이 끝나버린 것이다. 오기도 생기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통화 단추를 누르고 시키는 대로 계속 눌러 보았다. 예약은 몇 번으로 해라, 출발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도착역을 가·나·다 순으로 눌러라, 차표 시간은 언제 필요하냐. 기계음의 요구대로 하다가 틀려서 다시 시작하고, 못 들어서 다시 시작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 들려온 최종 목소리는 전주까지 가는 기차는 오전 7시까지 없다는 대답이었다. 한 시간의 씨름 끝에 나온 대답치고는 너무 간단명료했다. 죄없는 전화기만 던져졌다. 아침 7시 조찬 모임에 맞추기 위해 술 한 잔을 더하다가 새벽 3시쯤 내 생애 가장 비싼 택시요금 15만원을 내고 전주에 돌아왔다. 철도역에 가보면 표파는 곳이 표사는 곳으로, 표받는 곳이 표내는 곳으로 바뀌어 있다.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즉 소비자를 중심으로 안내판이 바뀌었다는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자동응답 안내로 인해 불편을 느끼고 난 뒤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 것은 허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안내는 철도공사뿐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관이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고객센터를 예로 든 것뿐이지 철도공사만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인력을 줄여 예산을 절감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불편해도 이용할 사람은 이용할 것이라는 배짱도 있을 것이다. 조금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책 결정권자는 차표를 구입하거나 이용할 때 이런 불편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보자. 기계음에서 사람으로 바꾸어 안내하면 고용 창출에 기여할 것이고 소비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측면에서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나만 불편을 느끼는 것인지 공론화해 보자. 최형재 전주아름다운가게 공동대표
  • [지방시대] 지역경쟁력 향상이 출산율 높인다/임정덕 부산대 교수

    미국 원정 출산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부 계층에서 미국의 국적 취득 수단으로 원정 출산을 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원정 출산의 옳고그름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왜 이 현상이 나타나는지, 대책은 없는지 짚어봐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환경이 더 좋은 곳, 더 경쟁력이 있는 곳을 원한다. 국경, 이동수단, 진입장벽 등의 제도적, 자연적 제약 때문에 실행하지 못할 따름이지 선택의 자유와 능력이 있다면 자신에게 보다 나은 곳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후진국가 국민들이 보다 살기 나은 선진국으로의 이민을 열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지역 외국인과 중국 등지 근로자들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에 오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이는 자국보다 돈벌이가 났고 경쟁력이 있는 나라에서 일하고 싶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말은 나면 제주도로’란 속담이 있다. 서울은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지방과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따라서 부모들은 서울로 보낼 형편이 된다면 일찍부터 보내야 자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광복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가 옛날보다 엄청나게 커졌다. 물물교환 시대와 달리 화폐 경제하의 생존경쟁 체제에서 개인이나 가족의 입지 결정은 전보다 훨씬 중요하게 됐다. 요즘처럼 제도적, 문화적 제약이 없어진 상태에서는 인구 이동으로 인해 지역 격차는 갈수록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 현상의 결과는 지역별 인구 규모 변화로 나타났다. 수도권은 인구가 밀집하는 반면 부산을 비롯해 일부 지방도시는 감소하고 있다. 정부는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셋째아이부터는 보험 혜택을 주지 않는 등 출산 억제를 위해 각종 시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온갖 출산장려 정책을 쏟아놓고 있다. 지역인구(노동력)의 유출과 함께 자연증가(출산율)의 감소라는 설상가상의 상태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출산장려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출산율 증가 정책은 단기정책이 아닌 장기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부산의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인구 유입보다 유출이 많기 때문이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도시에 비해 부산에 마땅한 일자리나 사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뜻이다. 또 교육 경쟁력, 생활 여건, 도시의 활력이나 장래에 대한 기대감이 다른 지역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양대 축에서 비교해 볼 때 다른 지역보다 경쟁력이 높지 않다는 뜻이다. 아무리 떠나지 말라 호소해도 일자리와 보다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출산 장려정책에 힘입어 아기를 낳더라도 그 아기나 가족이 끝까지 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인구 유출을 막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지역경제가 먼저 살아나야 한다. 문제가 있을수록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 공무원 조직이다. 출산장려 정책의 효과는 장기적일 수밖에 없고 사회문화와 가치관에 의해 더 영향을 받으나 눈앞에 있는 약간의 금전적 혜택 때문에 특정 지역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청이나 구청이 출산장려를 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인력과 예산을 마구 쓰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릴 수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자고로 눈앞의 문제는 본질부터 파악해야 하고 해결은 멀리 내다보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임정덕 부산대 교수
  • [지방시대] 청주직지문화특구에 거는 기대/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마침내 중앙정부가 직지(直指)의 진가를 알았나 보다. 지난 6월 인쇄문화산업진흥법을 만들더니 며칠 전에는 지역특화발전특구위원회를 열어 청주 고인쇄박물관 주변을 ‘청주직지문화특구’로 지정했으니 말이다. 청주직지문화특구는 문화자원을 바탕으로 지정된 국내 최초의 특구여서 의미가 크다. 이는 지역의 조그마한 시민단체가 문화운동으로 시작한 직지찾기운동이 그 시발점이었다. 풀뿌리민주주의 실천이 낳은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직지가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곱씹어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직지가 독일의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선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이다.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그 가치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직지는 인류사에 정보의 생산, 기록, 교류를 촉진하는 매개체로서 학습의 양과 질을 가속화시켰다. 현대의 지식정보사회를 이루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정보기술과 인간의 창조적 지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제시해 준다. 청주시와 시민단체가 정부의 관심 밖에 있던 직지의 세계화를 통해 청주의 세계화 전략을 구상하고 다듬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직지의 가치를 문화·경제와 연계해 청주의 세계화에 경쟁력을 확보한 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산업도시이자 세계 최고 인쇄문화도시로 승화시키자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번 특구지정으로 중앙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받게 되면서 이러한 프로젝트가 힘을 얻게 됐다. 직지특구의 계획에는 2010년까지 총 130억원을 들여 직지문화특화거리를 조성하고 기반조성 사업, 직지문화 관광상품 개발 및 홍보 사업, 관광자원 개발과 투어링사업 등 3개 분야에서 10여개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구지정이 지방정부 경쟁력을 가져오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청주시가 정부의 특구지정 원칙과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할 때에 그 효과는 극대화될 것이다. 청주직지문화특구 지정이 직지가 지니는 상징성과 위상에 걸맞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선택과 집중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로 추진되고 있는 직지와 관련된 사업을 재정비해 직지의 위상에 걸맞은 사업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시민사회단체, 학술단체, 언론기관 등이 나눠먹기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직지 관련 사업과 예산도 재정비해 효율적으로 배분해야만 한다. 청주시 중기 재정계획과 도시 기본계획과정과의 연계도 필요하다. 둘째 청주직지문화특구의 지리적 범위가 재정립돼야 한다. 현재의 특구범위로는 직지를 통한 인쇄문화도시의 초석을 다지는 데 역부족이다. 추진 과정에서 기존 특구범위에다 그동안 연구돼온 직지문화지구를 도시계획에 담아 이를 연계한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직지문화특구 지정이 지니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들의 관심과 배려, 중앙 정부의 인식 제고를 통한 행정력과 예산 지원도 절실하다. 특히 직지 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완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을 관리 운용하는 중심축다운 지위와 조직, 시설, 연구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독일 마인츠시가 구텐베르크의 세계화 100년 역사를 통해 세계적인 인쇄문화도시로 거듭난 점에 비춰 보면 청주직지문화특구의 지정은 청주시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직지의 가치를 살려 청주의 희망이 한국의 희망으로, 더 나아가 세계 지식산업의 희망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남기헌 충청대 행정학부 교수
  • [지방시대] 고층 주상복합,이제 그만/ 김선범 울산대 교수 건축학부

    울산에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목 좋은 도심 상업지역은 재건축의 광풍이 몰아치고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개발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재건축만 하면 대박이라도 터질 것처럼 꿈에 부풀어 있다. 특히 개발자(디벨로퍼)에게 태화강변 상업지역은 매력 있는 개발 대상 1순위다. 상업지역은 주거지역보다 훨씬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고, 더구나 강가는 건축법상 수백m의 초고층 건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상복합아파트는 상업지역에 들어서는 상가를 포함한 아파트다. 땅값이 비싸 건물을 고층으로 지어야 개발이익을 남길 수 있어 높은 분양가로 이어진다. 중구 옥교동에는 54층 주상복합아파트까지 허가가 났다. 맨해튼이 아닌 울산에서, 강변에 수직으로 150m가 넘는 초고층 아파트는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울산에서 허가가 난 주상복합 건축물은 22개 지역에 4200여 가구에 이른다. 층수도 24층에서 54층까지 다양하다. 평균 40층을 넘는다. 토지는 유한한데 공간 수요는 계속 늘어나니 초고층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문제는 초고층 건축물이 주거용이라는 데 있다. 사람이 사는 공간이 초고층일 때 생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직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초고층 주거에 대한 구조공학적 및 주거환경적 평가가 일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한정된 토지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극대화하고, 노후 불량지역을 개선해 도시 랜드마크로서의 위용을 뽐내게 한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층 주거의 질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주변 도시경관은 물론 조망권을 해치며 심각한 교통문제도 일으킨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지 얼마 안 된 멀쩡한 건물까지도 마구 헐고 새 건물을 짓는, 자원낭비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개발 행태다. 이득이 되면 뭐든지 한다는 거대한 자본주의 도시개발의 광풍이 지주나 건물주에게는 횡재일지 모르나 주변 이웃과 애꿎은 세입자들에게는 큰 멍에다. 지진 같은 자연 재해에도 매우 취약하다. 최근 건축학계에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주거의 질’을 다룬 논문들이 자주 보인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는 ‘주거의 질’에서 볼 때 결코 최상은 아니다. 발코니나 베란다가 없어 화재 때 대피 공간이 없는데다 창문의 전면 개폐가 불가능해 자연환기가 원활하지 못하고 정전에는 대책이 없다. 또 하나 울산에서 걱정되는 점은 분양 문제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개발자들은 울산의 경제적 잠재력을 과대 평가하고 있다. 경제지표상으로는 서울에 버금가는 정도여서 개발 타당성이나 분양성을 높게 보고 있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양의 문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도 맞물려 있지만 울산의 경제력이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해도 울산에서 7000가구의 수요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이미 무리하게 끌어들인 금융비용 부담도 골칫거리다. 시장경제에 맡기기에는 그 여파가 너무나 크다. 조례를 바꾸어 용적률을 조정하는 것이 대안이지만 쉽지 않고 의회가 떠맡기에도 부담스럽다. 이대로 가면 배가 침몰할 것이 뻔하지만 종사자들에게 일손을 놓으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타이타닉 현실주의’가 울산의 주상복합아파트에 적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미분양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한데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무리한 추진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9월부터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적용 이전에 무조건 허가신청을 하고 보자는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일반 재개발아파트(1만 6200가구)까지 가세해 분양 물량은 자꾸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고 머뭇거리면 공급 과잉으로 분양도 안 되고, 짓다 만 초고층 건축물 골조들이 도심 곳곳에 흉물스럽게 남아 있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 [지방시대] 제주 관광 혁신의 길은/송재호 한국문화관광 정책연구원장

    바야흐로 관광의 시대다. 한국을 중심으로 항공시간 90분 거리 내에 소득 1만달러 이상의 인구 3억 5000만명이 있다. 이미 1억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테두리에서 국경을 넘어 유동하고 있고, 국내를 움직이는 내국인 관광객들도 연간 5억명이다. 가히 ‘신유목민 시대’의 현대판 엑소더스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면 외화 가득률이 약 100억 달러,1000억 달러 이상의 상품수출 효과를 낸다. 상품 수출이 3000억 달러인 무역액에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반면, 여행수지와 교육수지 적자를 합하면 130억 달러 규모다. 힘들여 일하고 상품 수출해 번 돈을 여행 다니며, 아이들 유학, 연수 보내는 데 다 쓰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지출하는 골프비용도 10억 달러를 넘고, 카지노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지출도 2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국제 교육단지들을 만들어 먼저 ‘해외로, 해외로’를 외치는 내국인들을 부여잡고,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역내 관광객들을 일정 부분 데려와 준다고만 해도 그 국민경제 효과는 엄청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관광휴양지대가 필요한다. 이런 개발 잠재력을 갖춘 곳이 어디 없을까. 특별자치 ‘제주호’는 그래서 출발했다. 균형발전을 넘어서 세계적인 특화개발 사례를 만들어 보자는 원대한 비전도 함께 했다. 특별자치는 국가적으로 서비스 소프트 분야의 한반도 개방경제를 선도하고 지역적으로는 방문객 1000만명의 위대한 제주경제시대를 열기 위한 임팩트이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관광 현실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관광객은 성장 커브를 멈추고 정체되고 있다. 비슷한 가격대의 중국 상하이, 동남아 괌과 사이판과도 경쟁력에서 크게 위협받고 있다. 그렇다고 고급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가치 경쟁력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호텔, 펜션 등 숙박시설의 50%가 가동을 멈추고 있는 것이 오늘 제주호의 현실이다. 골프장도 이미 과당경쟁 상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새로운 설비투자의 시대에 대규모 개발투자는 아직 먼 얘기처럼 들린다. 국제 관광지라고 하면서 공항 개방이 폐쇄적이고 공항 시설이 협소한 건 둘째로 치더라도, 제주로 오가는 항공기 좌석 구하기조차 어려워 전쟁을 방불케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관광 한국호의 예인선으로서 제주 관광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디즈니랜드를 건설하고 세계 관광도시로 재무장하는 홍콩, 도쿄와 뉴욕을 능가하는 국제자유도시를 만들겠다며 세계 대형 크레인의 절반 이상을 갖다 놓은 상하이, 라스베이거스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가족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급부상한 마카오. 어떻게 하면 이들과 경쟁해 당당한 국제관광지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것인가. 그 답은 명실상부한 특별자치의 내실화, 이를 통한 선제 투자와 제도 혁신에 있다. 공공투자 비중을 대폭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 투자를 끌어들여야 한다.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혁파하고 국제 수준의 지역 매니지먼트가 가능하도록 국내법 체계를 뛰어넘는 특례를 부여해야 한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제2공항 건설과 국적 항공사 수준의 항공사 육성, 면세권 부여를 통한 세계적 쇼핑지역 조성, 기업유치를 위한 포괄적 인센티브, 종합 엔터테인먼트 설비투자의 유치, 이러한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탄력적인 조직 등 경쟁력과 가치를 겸비한 관광제주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송재호 한국문화관광 정책연구원장
  • [지방시대] 도심 속의 ‘작은 학교’/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올해 초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 초등학교가 새로 문을 열었다.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의 학생수가 너무 많아 분교를 한 것이다. 행정 구역상 필자의 막내도 새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 건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초등학교 때 이와 똑같은 이유로 전학을 갔던 필자는 내심 새 학교가 걱정됐다. 나의 기억에 내가 전학 갔던 새 학교는 허허벌판에 건물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고 학교에 간 첫날 책걸상을 직접 들어 교실로 운반해야 했었다. 운동장도 다져지지 않아 몇날 며칠 수업도 하지 않고 운동장에 나와 모래 밟기도 했다. 물리적으로 학교가 완성되는 데 무척 오래 걸렸으며 학교 생활이 안정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로 35년 전의 일이다. 그때와 지금 상황은 비교도 안 되지만 신설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부분 자녀를 전학시키는 데 부담을 가졌고 그 중 일부는 1년 후 학교가 안정되면 전학시키려고 주소지를 옮기기도 했다. 어떤 이는 새 학교의 학급수가 너무 적어 아이에게 학습적으로 도움이 안 될 거라고 했다. 필자 또한 신설학교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을 갖고 있어 안심이 되진 않았지만 학교가 집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고 다른 것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새 학교는 여러 가지로 필자를 감동시켰다. 처음 만족시킨 것은 예쁜 학교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교사(校舍)와 교정, 최신식으로 모든 시설을 갖춘 학교의 모습은 신설되는 공립학교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개교하는 첫날부터 아이들은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멋진 학교시설에 정말 학교를 좋아했다. 또한 아이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꼼꼼하게 지도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이 학교는 학력 평가에서도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뿐이랴. 전교생 이름을 거의 다 기억하고 교정에서나 등·하굣길에 일일이 챙겨주는 교장·교감 선생님, 자녀가 임원이건 아니건 학교를 위해 자발적으로 즐겁게 봉사하는 학부모들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개교 기념 행사와 체육대회 땐 정말 아기자기한 동네 잔치가 되었다. 대도시 아파트촌 안에서는 참으로 보기 힘든 의외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바로 한 학급 학생수 20명 내외, 전체 학급수 8학급인 ‘작은 학교’의 모습이다. 이 학교는 한 학기를 마치는 지금 매우 성공적인 운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무엇보다 신설학교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교육청과 학교의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학교 신축에 BTL(Build Transfer Lease) 방식을 도입하고 ‘작은 학교’를 지향한 교육정책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는 없었다고 본다. 좋은 학교란 물리적 환경과 심리적 환경이 조화를 이룰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애정을 갖고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에게 세심한 지도를 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은 교육 환경이 좋은 작은 학교에서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학급당 20명 내외의 학생수와 전체 학년 12학급 이하의 규모를 가진 학교를 일컫는 것이다. 교육 선진국에서 대부분 ‘작은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심의 주택가 한복판에 등장한 예쁘고 작은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하나가 돼 체험 학습도 마음껏 하고 신나게 공부하는 모습은 매우 신선한 감동을 준다. 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도 이러한 교육환경 속에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작은 학교’는 누구보다도 도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환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방은령 한서대 아동청소년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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