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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칠수·전영미의 와와쇼’ 8년만에 막 내린다

    ‘배칠수·전영미의 와와쇼’ 8년만에 막 내린다

    SBS라디오 러브FM ‘배칠수, 전영미의 와와쇼’ (이하 ‘와와쇼’)가 26일 방송을 끝으로 8년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8년간 배칠수와 함께 ‘와와쇼’ 를 진행해온 전영미는 10일 “26일 방송을 끝으로 29일 프로그램 개편에 들어간다.” 면서 “8년동안 정들었던 프로그램을 떠날려니 아쉽고 안타깝고 착잡하다.” 며 정들었던 프로그램을 떠나는 심정을 밝혔다. 지난 2002년 이래 배칠수와 함께 ‘와와쇼’ 를 이끌어온 전영미는 ‘와와쇼’ 가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을지 예상치 못했다. 전영미는 단짝MC 배칠수에게 “이렇게 오래갈지 몰랐었다.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 감사할 일이다.” 며 “우리 스스로도 많이 배웠고 아쉽게 인사하게 됐지만 나중에 만날 수 있다. 꼭 다시 만나자고 얘기했다.” 고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애청자는 생일 때만 되면 꽃다발을 보내주던 김정숙 아주머니. 하지만 이 애청자는 4~5년 전 전영미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년엔 꼭 좋은 사람 만나서 그 분께 받으라.” 며 최후 통첩을 했고 정말 그 이듬해부턴 꽃다발을 받지 못했다고 전영미는 예명이 은하인 친구도 기억에 남는 애청자로 꼽았다. 20대를 ‘와와쇼’ 와 함께 해왔다는 이 애청자는 얼마전 결혼을 해서 득남을 했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전영미는 “‘와와쇼’ 와 함께 세월을 같이 보내며 함께 나이를 먹어왔던 분들게 죄송해 ‘지못미’ 라고 말하고 싶다.” 며 “그런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아쉽다.” 고 라디오 종영에 대한 아쉬움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전영미와 배칠수가 일당백의 입담을 자랑하며 이끌어온 ‘전영미, 배칠수의 와와쇼’ 는 현재 3주분의 방송분을 남겨두고 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서거] 봉하에서 덕수궁까지… 전국 애도 물결

    [노 前대통령 서거] 봉하에서 덕수궁까지… 전국 애도 물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틀째인 24일에도 전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 고인의 영면(永眠)을 기원하는 추모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에는 오전 8시쯤부터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단 시민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일부 시민들은 영정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보도에 주저앉기도 했다. 조문은 10여명 단위로 한꺼번에 진행됐는데도 기다리는 행렬이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지하철2호선 시청역 지하대합실과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인근까지 3㎞ 넘게 꼬불꼬불 이어졌다. 추모객들은 길에서 3시간 이상을 기다리기도 했다. 추모행사를 주관한 노사모 회원은 “경남 봉하마을 빈소 등 전국 분향소에서 오늘 하루 30만명이 분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분향소를 찾았던 시민 중 500여명이 오후 8시10분쯤 “시민광장인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자.”며 시청광장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한때 시청에서 충정로로 향하는 편도 3차선 도로 가운데 2개 차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전날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설치된 이후 추모객 중 일부가 도로를 점거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자마자 곧장 이들을 에워싸고 인도 쪽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양측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공무원 곽모(50)씨는 “훌륭한 대통령을 떠나보낸 게 한없이 부끄럽고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여대생 임모(22)씨는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경기 부천지역 노사모가 송내역 북광장에 마련한 분향소와 수원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수원역 앞에 설치한 분향소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조문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서는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고) 총동창회가 서면 장학회관 6층에 마련한 분향소에도 조문이 이어졌다. 강태룡 총동창회장이 직접 추모객을 맞이한 가운데 동문인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이 이른 아침에 분향소를 찾았다. 시민·학생·시민단체 등 100여명은 전날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옆에서 시작한 촛불추모제를 이날 오후에도 계속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지였던 광주지역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발길이 이어졌다. 옛 전남도청 본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아침 일찍부터 추모객들이 몰려들더니 오후 한때 조문 행렬이 100여m나 이어졌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형배·이형석 전 비서관 등 이 지역 참여정부 인사들이 온종일 분향소를 지키며 애도했다. 전북 전주시내 오거리문화광장 분향소를 찾은 이모(40)씨는 “대통령이기 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들과 딸까지 수사대상에 오르니 심적인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상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특집 코너가 마련된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이 글머리에 ‘▶◀근조’ 리본을 달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다음 토론방인 ‘아고라’의 추모 서명에는 이날 자정 현재 16만여명의 네티즌이 헌화와 함께 ‘지못미(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네이버의 추모 게시판에는 38만여명의 네티즌들이 애도 글을 남겼다. 아이디 ‘조국’은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그곳에선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적었다. 전국종합 서울 김승훈 오달란기자 jhkim@seoul.co.kr
  •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진보에 길을 묻다 8] 채진원 “진보정당 설계부터 잘못

     민주노총은 내우외환에 빠져 있고 민주노동당은 ‘입법 전쟁’의 와중에 존재감이 엷다.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었던 이들에게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왜 이렇게 됐을까..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 창당과 감격적인 원내 진입,그리고 그 뒤의 내리막길을 줄곧 지켜본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애초의 정당 설계가 잘못됐다고 단언한다.채 전 실장은 10여년 민주노동당의 부침을 지켜본 경험을 녹여내 지난 1월 심사를 통과한 박사학위 논문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을 통해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중정당 모델을 따라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물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신자유주의화,탈이념화 상황에선 파편화된 노동자나 서민 대중을 대변하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짚었다.  ’진보에 길을 묻다’ 8회 주인공으로 3일 만난 채 전 실장은 “민주노총을 토대로 손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민주노동당 퇴조의 원인을 짚었다.2004년 원내 진입한 민주노동당은 이듬해 울산 북구 재선거에서 충격의 참패를 기록한 뒤 당내 헤게모니가 정파 대표에서 원내 의원에게로 옮겨졌는데 채 전 실장은 이런 흐름에서 원내정당 모델이 더욱 적실성 있는 대안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를 이번 논문에 담아낸 것이다.  그가 구상하는 원내정당 모델은 “국민과 소통능력이 있고 정책개발 능력이 있는 원내 의원이 시민사회와 연계해 수평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구축,생활정치적 요구들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이념과 계급,정파가 줄어드는 대신,서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욕구를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해진다.  민주노동당이 안팎에 과시했던 진성당원제가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정파 대표들에 의해 포획돼 사실 투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발언권이 폭넓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도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그는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해 보수나 진보나 모두 ‘의회민주주의의 무덤’이라고 개탄했던 상황을 면밀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드러난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당 모델은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 모델”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려면 물적 기반으로 삼는 조직된 노동자,정규직만을 더이상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고 비정규직이나 서민 대중을 위해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결코 놓칠 수 없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진정한 환골탈태란 주문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사학위 논문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녹여든 것 같다.  당 활동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다.시민들을 설득하기가 힘들어졌다.어떤 정책과 이슈,쟁점 등에 대해 시민들을 설득할 만큼 잘 알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졌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 원내진출 이후 높아진 기대에 견줘 당내 정파싸움,민주노총의 권력 다툼과 부패 등을 보면서 당의 지지기반인 비정규직이 당에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당의 전망과 집권 가능성을 회의하게 됐지만 극복할 대안을 찾지 못했다.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결과,지도부의 무능이나 이기심,오류 때문이 아니라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당이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지구화 정보화 탈냉전이란 거대한 변화에 맞는 정당모델,정치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80년대식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당의 한계나 오류를 극복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의정정책실장 등을 맡으면서 당내 갈등을 피부로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2004년 제1 정책위원회 정책국장,2005년 3월부터 의정실장을 맡으면서 정파 지도부와 원내 의원들의 갈등을 목격했다.갈등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당의 문제점을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했다.  당시 당에선 대중정당 모델을 철저히 추종했고 원내정당화 모델을 철저히 반대했다.이를 견제하기 위해 오죽했으면 국회의원이 당 지도부가 될 수 없게 제도까지 만들었겠는가.중앙당 지도부는 의원들을 통제하려 했는데 현실은 국민들이나 일반 시민들은 의원들을 먼저 바라보았다.의원들이 많은 역할을 하기 위해선 자율권이 필요했는데 중앙당에선 통제하고 싶어했던 거다.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중앙당 지도부가 손을 들었다.당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당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것은 이름도 모르는 정파 대표가 아니라 의원들이었던 것이다.따라서 당의 헤게모니 자체가 점차적으로 원내 의원들 중심으로 넘어갔고 당의 구조도 조금씩 바뀌게 됐다.    ●민주노동당 10년의 공과를 정리하면.  정당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가 창당한 노동자계급정당,사회주의적 이념정당,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 독점적이고 편향적인 기득권층과 보수세력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다양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가능성을 2004년 원내진출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이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또는 지구화,정보화,후기산업화,탈이념화 등의 달라진 시대상황은 과거 단일한 노동자 계급과 조직으로 뭉칠 수 있었던 정당에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정규직과 비정규직,노동조합원과 비노동조합원으로 파편화되고,노동자의 이익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당도 유연한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그 변화의 시대에 하나의 이념과 단일한 위계조직을 강조하는 운동권 모델을 고집함으로써 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들의 복잡한 이익에 반응하지 못했다.결국 대기업 소속과 정규직,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상층노동계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서 다수의 비정규직과 약자들이 이탈하게 된 것은 그 한계라 할 수 있다.그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것이 2005년 울산 북구 재선거 패배였다.  다시 말해 민주노총이 시대착오적인 계급환원주의 노선과 사회주의적 계급정당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민주노동당은 산업화시대에 유행했던 조직논리,이념논리,정당논리,이른바 대중정당모델에 집착했던 것이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울산 북구 패배 이후 2007년 대선을 앞두고도 같은 잘못이 되풀이된 이유는.  많은 불만과 문제 제기들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당모델까지 검토하지 못한 것은 당이 민주노총이란 조직된 노동자를 모태로 출범한 한계라고 생각한다.민주노총을 토대로 상대적으로 쉽게 창당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지기반을 민주노총 이외에 다수의 비정규직,서민에 확대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흔히 민주노동당의 두 가지 성역이 있다고 했는데 민주노총과 북한이란 성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당모델을 원내정당 모델로 바꿨으면 오늘날의 위기가 없었을까,이런 역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  원내정당화 모델을 생각한 것은 당의 헤게모니가 원내 의원 중심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맞물려서였다.울산 북구 패배 이후 당의 총체적 위기가 확인됐다.지지율이 18%에서 5% 이하로 바닥을 쳤다.울산은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대중정당 모델이 가장 잘 발현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패배를 했고 그 패배의 원인이 비정규직의 외면과 이탈 속에서 당이 망가진 것이었다.그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을 인정받은 의원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미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확인이 됐는데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민주노동당은 대단히 위계적인 조직이다.그 조직에 아직까지도 민주노총의 헤게모니가 작용하고 있다.30%의 할당제가 관철되고 있다.국민적 차원에서 개방,분권적인 개혁,다양한 이념을 수용해야 한다는 전략 등이 철저히 가로막힌다.  2007년 대선 후보를 경선해야 한다는 안팎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다.개방형 경선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확인하고도 폐쇄적인 당원 직선제로 지분이 큰 정파들은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 대신 다른 후보를 내세웠고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확대하지 못한 자업자득이었다.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의 앞날은 어렵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의 변화가 감지되나.  18대 총선 이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하지만 미진한 것은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여전히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당을 개방화,분권화,네트워크화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기득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4월 재보선에서 국민경선 대신 민중경선 으로 후보를 선출하려 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본다.선거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논문의 문제의식을 조금 더 구체화하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할 대안정당으로 대중정당 모델이냐 원내정당 모델이냐는 학계 논쟁이 있었다.최장집 교수 등이 얘기한 대중정당 모델이 시대적인 적실성이 있다고 보았다.원내진출 이후 당 생활을 해보니 한계가 많이 드러났다.사회 변화에 적응 못한 정당 모델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았다.  대중정당 모델의 쇠퇴는 당지도부의 리더십과 운영상의 오류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배경 때문이었다.시대에 뒤처진 대중정당모델을 고집했을 때 이념과 정파의 편향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더 많은 비정규직과 서민대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대중정당 모델을 포기하고 대안이 되는 모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고 본다.  당의 위기가 닥쳤을 때 결국엔 의원들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의정 활동을 지켜보면서 이를 대중정당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이 대안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런 얘기들을 분당 이전부터 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응들은 어땠는지.  비정규직을 더 많이 대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공유했지만 원인을 따질 때 그들은 사람의 문제,성품의 문제 이런 쪽으로 봤다.더 좋은 사람이 비정규직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정당모델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진보신당은 원내정당 모델에 부합한다고 보는지.  분당 이후 반작용으로 신규 당원이 입당하고 민주노총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이 출발했다는 점에서,노회찬과 심상정이란 두 전직 의원의 지지층이 흡수된 측면이 있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현역 의원이 없어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정당모델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중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후기 산업화 사회에선 대중이라 함은 비정규직,비노조원,화이트칼라처럼 어느 곳에 소속될 수 없는,유동성이 큰 사람들이다.비조직된 대중이 더 많다.위계적인 조직 구도가 아닌 네트워크화된 대중만이 수평적인 네트워크로 연결된 유연성이 대중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노동과 사회’ 지난해 12월호에 기고한 ‘노조원들은 시민적 다양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란 제목의 글은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다.선진 노동자들이 왜 다양성을 잃고 기득권층으로 고착됐는지.  개인과 조직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위계적인 조직에 속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할 수 없다.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개성이나 끼를 발산할 수 있다.계급환원적인 생각,집단을 궁극선(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전체주의적 사고로 고착화된다.특정한 사안에 대한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땐 유리하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처음 창당 때는 진성당원제라는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있겠다는 기대를 했는데 이념적으로 편향된 당내 정파 지도자들이 당을 포획해놓고 있었다.다수의 당원은 말을 사실상 제대로 못하고 기껏해야 투표하는 것이고 발언권이라든가 소통이 보장되지 않고 당내 민주주의에서 소외되고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페이퍼 당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참여민주주의란 이상이 당을 장악한 정파 엘리트에 의해 왜곡되기 시작하니까 이탈할 수밖에 없게 되고 재미를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원들이 당에 묶여 있으면 정파가 시키는 대로 당의 눈치를 봐야 한다.소신있게 큰 이득을 위해 국민과 소통할 수 없고 당내 정파구도가 약화되고 의원들에 권력이 넘어가면 소통능력과 정책능력이 검증된 의원들이 국민들과 소통할 공간이 열렸다는 의미가 된다.    ●꿈꾸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진보라는 개념부터 시작하자.보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진보의 논리지만 진보만이 진리라는 역편향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성악(單聲樂)적인 구도가 있다.그러나 다양성과 복잡성 및 유동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진보가 필요하다고 본다.즉,진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공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다성악(多聲樂)적인 세계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라는 시각도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의 의견정도로,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 잠정적인 결론 수준에서 존재하도록 의식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저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공존방식으로서의 진보, 다양성 속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둘째. 다성악적인 진보를 구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로서 원내 의원들이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하면서 토의가 강조되는 원내정당모델이라고 믿는다.    ●그런 내용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보다 어떤 점에서 진전됐느냐 묻는다면.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역동성과 네트워크가 하나의 답이 된다고 본다.정당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지 않나.최장집 교수도 그런 점에서 지적당했다.촛불시위 때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반응하지 못했던 정당들의 한계를 봤다.이게 핵심이다.시민들의 생활정치에 대한 욕구에 반응하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념과 계급 정파가 줄어들더라도 서민들의 욕구와 필요를 캐치할 수 있는 반응성이 있어야 한다.소통 속에서 발견된 욕구를 정책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정책 생산능력이 담보될 때 정당으로서 생존할 수 있다.원내정당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다.    ●두 당과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대중정당 모델에선 당의 이념과 게급,정파,조직이 강조되는데 이것이 약화될 것이다.당이 원내 의원 중심으로 가져가면서 유권자,시민사회와의 연계 부분이 강조된다.당원 중심을 벗어나 일반 유권자,지지자들도 당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시민사회의 요구가 전달되고 이것들이 의회에서 토의를 통해 합의되고 정책 결정이 되고 국민에게 성과물로 다가온다.    ●명칭은 원내정당 모델이지만 정당은 조그맣고도 시민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 조직은 엘리트가 강조되는 게 당연하다.다만 행위자가 정파냐 아니면 국민들의 이익이나 선호에 접근할 수 있는 원내 의원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만큼 물적 기반이 없어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고정된 지지기반이 없어 불안정할 수있다.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잘 되고 있느냐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민주노총이란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과거 지지기반으로 갈 수 있겠는가.간다면 상층 노동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금 더 좁아진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연성이 큰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데 느슨한 수준의 네트워크를 가능케하는 것은 정책능력과 소통능력 뿐이다.그때그때 이슈가 터지고 시민들의 요구가 터져나올 때 생활상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원내정당 모델이 대안이라고 본다.  원내정당 모델이 현실에서 나타날 때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것이다.하지만 대중정당 모델보다 낫다는 생각이다.원내정당 모델을 현실에서 구현할 때 당내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분산화하고 개방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진보신당의 지못미 당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새 이슈를 개발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진보정당 통합이나 반(反)MB 전선에 참여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점증할 것이란 지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이명박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진보진영내에서 힘이 약하면, 함께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의견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소수의 의견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있다.진보정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큰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채진원씨가 걸어온 길  늦깎이 초보 연구자라고 자신을 낮춘 채진원(40)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국민승리 21에 1998년 입당해 지난해 진보신당과 분당하기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10년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단국대 사학과 88학번인 채 연구원은 민주노동당에서 경험한 희로애락과 한계를 바탕으로 2005년 경희대 정치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했고 지난 1월에야 어렵사리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됐다.  2004년 원내 진출 전까지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 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과 ‘이자제한법’.정치개혁의 대표 법안으로 손꼽히는 ‘1인 2표 정당명부비례대표 도입’에 관여했던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창당 이후 정책위원회 제1정책조정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정치관계법을 담당했으며 이후 의정정책실장으로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정책 지원을 담당했다.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부인의 외조를 위해 중앙당을 사직한 뒤 평당원으로 남아있다가 지난해 3월 심상정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제안한 혁신안 ‘생활속의 진보’가 부결되자 탈당했다.현재 어느 당에도 몸담고 있지 않다.  전문연구자의 길을 걷는 한편 기회가 닿으면 의정활동이나 입법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지못미~”…부시 대통령 ‘최악의 순간’ 20

    영국 언론이 임기를 1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부시’ 베스트 20을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조지 부시의 워스트 순간 20’(20 Worst Moments)에는 정치·경제·사회 등 각계에서 실수를 범한 부시의 정책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리스트에는 이라크 전쟁과 테러에 관련된 항목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다음은 영국 언론이 선정한 ‘조지 부시의 워스트 순간 20’ 중 일부.(괄호 안는 원문 제목) 1. 없는 무기 만들어내려다 ‘거짓말쟁이’ 된 부시(No WMDs)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WND)를 보유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이라크 공격을 감행해 전 세계적인 비난에 부딪힌 바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그 어떠한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고 많은 사상자와 부상자를 낸 이라크 전쟁에 대한 비난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2. 빈 라덴 경고 무시하다가 큰 코 다친 부시(Ignoring Pre-9/11 Terror Memo) 9.11 테러가 발생하기 일주일 전 텍사스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부시는 CIA로부터 “빈 라덴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조취도 취하지 않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이 같은 부시의 행각은 자국 내에서도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3. ‘방패 없이 전쟁터 나가’라고 부추긴 부시(Lack of Body armour for US troops) 부시는 이라크와 값비싼 전쟁을 치르느라 예산을 모두 소비한 탓에 파병 군인들에게 보호 갑옷을 지급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 또 한 번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아들을 이라크에 보낸 많은 부모들은 ‘방패 없이 전쟁터에 나간’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4. 날씨에게도 배신당한 부시(Failure to include Louisiana’s coastal parishes in state of emergency plan) 지난 2005년 8월 미국을 덮친 대규모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착륙 이틀 전, 부시는 루지애나와 앨라바마 미시시피 등 3개의 주에 긴급대피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작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루지애나 인근 해안은 경고 지역에서 제외시켜 빈축을 산 바 있다. 5.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몰매 맞은’ 부시(Limiting stem cell research) 부시는 임기 초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가 파킨슨 병을 치료하는데 엄청난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환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텔레그래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정책을 취소하는 날을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비꼬았다. 6. ‘부익부 빈익빈’ 만들기에 강한 부시(Tax cuts for the wealthy) 미국의 부호들에게 세금을 감면하는 법을 통과시킨 부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속화 시킨 ‘공’을 인정받아 세계 여론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미국 경제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부를 만큼 무너져 내렸지만 부호들은 부시의 세금 감면법을 방패삼아 더욱 배를 불릴 수 있게 됐다. ‘조지 부시의 최악의 순간 20’ 1) No WMDs(이라크 전쟁 발발 원인인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2) “Brownie, you’re doing a heck of a job”(재앙 대책 본부장이 거대 태풍 ‘카트리나’예측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감싸준 부시의 멘트) 3) No Post-War Plan for Iraq(이라크 전쟁은 다시 없다 ‘허언’) 4) Permitting Torture(물 고문 등 각종 고문 허용) 5) Ignoring Pre-9/11 Terror Memo(9.11 테러 경고메시지 무시) 6) “Mission Accomplished”(없는 무기 찾으려 전쟁 일으키고도 “임무 완료”라 평가) 7) Entering Iraq without a UN mandate(UN 승인 없이 이라크 진공) 8) Insisting there was a link between Saddam Hussein and al-Qaeda(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의 ‘억지’ 연관성 주장) 9) Failing to capture Osama bin Laden(오사마 빈라덴 체포 실패) 10) Abandoning the Kyoto Protocol(자국 산업체 보호하려 환경조약은 ‘교토의정서’ 반대) 11) Refusing to let Katrina ruin his holiday(태풍 ‘카트리나’로 미국 곳곳에서 피해 속출했을 때, 부시는 연일 ‘휴가중’) 12) Underestimating the cost of the war(이라크 전쟁 소요비용 ‘과소평가’) 13) Lack of body armour for US troops(예산 부족으로 파병 병사들에게 갑옷 지급 미루다) 14) Failure to include Louisiana’s coastal parishes in state of emergency plan(태풍 ‘카트리나’ 최대 피해지역만 제외한 ‘앙꼬없는’ 태풍경보발령) 15) Tax cuts for the wealthy (부호만을 위한 세금 감면정책) 16) Losing focus on Afghanistan(’줏대없는’ 아프가니스탄 정책) 17) Limiting stem cell research(배아줄기세포 연구 제한) 18) Appointment and backing of Alberto Gonzales(능력있는 인재보다 ‘인맥’ 내세운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부 장관 인사) 19) Awarding lucrative Iraq reconstruction contracts to Halliburton(이라크 전쟁 발발 후 최대 다국적 석유 기업 핼리버튼사(社)에 이라크 사업 계약관련 수주) 20) Warrantless Wiretap(9.11테러 이후 ‘무선 도청’방식 승인)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문순 민주의원 “정연주 사장 지못미”

    전 MBC 사장이자 민주당 국회의원인 최문순 의원이 11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KBS 정연주 사장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동아투위(동아일보 자유언론 수호 투쟁위원회)의 막내였던 정연주 사장이 이제 62살의 나이로 ‘마지막 시련’을 당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동아투위(www.donga1024.or.kr)는 33년전인 75년 3월 17일 150여명의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PD,아나운서들이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만들어졌다. 29살에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정연주 사장은 동아투위가 모이면 ‘아직도 물주전자를 들고다니는 분’이며 ‘지금도 전세살이를 하면서 수시로 집을 옮겨다닌다’고 최 의원은 밝혔다. “정연주 사장에게 개인 비리를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웃기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동아투위 사람들은 동아일보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중앙정보부가 취직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에 무직자라는 사회적 위신의 손상과 경제적 위험에 노출된 채 평생을 살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분적으로 수입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사실상 평생을 ‘건달’로 지낸 정연주 사장에게 말년에 KBS사장 자리가 주어졌다.이 자리를 지켜면서 좌우 양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그 내용은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로 민망한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정연주 사장은 다시 해외 망명을 생각할지도 모른다.그의 살을 뜯어 언론 자유를 누린 우리는 무엇인가?동아투위 선배님들,당신들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인생을 바쳤는데 우리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동아투위 역시 성명서를 발표하고 “몸은 비록 늙었지만 언론자유가 회복되는 그 날까지 다시 투쟁 대열에 나설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고 밝혔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빨에 립스틱이… ‘지못미’ 엠마 왓슨

    이빨에 립스틱이… ‘지못미’ 엠마 왓슨

    엠마 왓슨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해리포터의 히로인 엠마 왓슨의 사진 한 장이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 해외 언론은 “카르티에 국제 폴로 행사에 엠마왓슨이 우아한 모습으로 참여했다.”며 “그러나 웃을 때 드러난 하얀 이빨엔 빨간 립스틱이 민망하게 묻어있었다.”고 27일 보도했다. 찰스 황태자가 참관하는 가운데 영국과 호주가 폴로 경기를 했던 이날 행사에는 약 3만 5천여 명의 인사가 모여들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상류층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 18세의 어린 엠마 왓슨의 우아한 자태는 단연 눈에 띄었다.”며 기품 있는 모습을 칭찬했다. 그러나 파파라치의 집중적인 공세를 받은 엠마 왓슨의 사진 속에는 이빨에 립스틱 자국이 적나라하게 묻어있는 모습도 포함돼 있었던 것. 사진을 본 영국 네티즌들은 “저런 사진이 찍히다니 불쌍하다”(Katie), “엠마 왓슨을 너무 좋아하지만 저건 너무 지저분하다“(chantall) 등 안타깝다는 반응과 실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 justjared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지아 기자 skybabe8@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명세빈’ 내각/ 오풍연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인터넷 수준은 가히 세계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1400만명을 넘어섰다. 휴대전화 가입자는 무려 4400만명으로 1인당 1대꼴이다. 그러다 보니 40여일간 계속된 촛불집회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보여줬다. 현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안방에 중계되고, 네티즌들은 이에 환호했다. 넷심이 하나로 뭉치면서 시민들은 거리로 하나둘씩 모였다. 서울 광화문과 태평로를 꽉 메운 광경은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인터넷 왕국답게 네티즌의 용어도 기발하다.4·9 총선이 끝난 뒤 ‘지못미’ 열풍이 불었다. 진보신당 노회찬·심상정 후보가 낙선하자,“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건넨 위로였다. 댓글도 홍수처럼 쏟아졌다. 지난해 인터넷 인기어 1위는 ‘우왕ㅋ굳ㅋ’였다. 대략 ‘좋다’‘최고다’라는 뜻을 지닌 일종의 감탄사다. 미국 역시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최근 공화당원이면서도 오바마를 지지하는 ‘오바마칸(오바마+공화당원)’이나 열성적인 지지층인 ‘오바마니아(오바마+마니아)’ 등의 신조어가 생겼단다. 2∼3일 전부터 네티즌을 달구는 신조어가 나왔다.‘명세빈’이 그것이다. 이는 ‘명확하게 세 가지가 빈약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돈과 지연(영남), 소망교회 출신이 아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강부자(강남 땅부자)’‘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S라인(서울시청 출신)’과 대칭되는 개념이다.‘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빈정거림도 유행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을 빗댔다.“모든 일은 형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인사권력(?)을 휘두른다 해서 풍자하지 않았겠는가. 이 대통령은 네티즌 사이에 영문 이니셜을 딴 ‘2MB’로 불린다. 특히 이번 시위 과정에서 피켓의 간판으로 쓰이는 등 수모를 많이 당했다. 쇠고기 수입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긴 하나 그간의 인사 실패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 내각과 청와대 수석에 대한 인사가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이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못 꿴 만큼 이번엔 제대로 맞췄으면 하는 바람이다.‘명세빈’의 뜻을 곱씹으면 해답이 나올 것 같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사설] ‘지못미’열풍, 진보 재도약 계기 돼야

    정가에는 요즘 ‘지못미’가 화제다.‘지못미’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의 약칭이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심상정, 노회찬 후보에 대한 아쉬움을, 진보신당에 대한 새로운 지지·후원 운동으로 극복하려는 움직임이다. 보도에 따르면 진보신당 입당자가 매일 200명에 이르고, 후원금 지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 진영이 몰락에 가까운 참패를 당한 상황에서 진보의 반성과 재기를 기약하는 신선한 바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러잖아도 이번 총선결과를 두고 우리 정치의 보수화 쏠림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등 보수 성향의 당선자 숫자가 200여명에 이르고, 민주당 역시 우향우·보수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이 컸다지만, 이같은 쏠림현상은 향후 정치·사회발전에 또 다른 갈등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지못미’ 열풍이 새삼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지못미’는 물론 진보신당을 향한 바람이다. 하지만 진보계열이 새로운 도약을 하라는 국민들의 기대와 여망이 담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고, 국민의식도 변했다. 민주·반민주, 평등·불평등, 가진자·못가진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의 삶속으로 파고들어 환경, 생태, 인권, 소수자 문제 등을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노력을 기울여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지못미’가 강한 진보로 거듭나는 출발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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