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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m 크레바스에 빠진 산악인 6시간만에 ‘극적 탈출’

    22m 크레바스에 빠진 산악인 6시간만에 ‘극적 탈출’

    히말라야에서 홀로 등반하던 한 산악인이 빙하가 이동할 때 생기는 응력으로 빙하의 표면에 깊게 갈라진 틈인 ‘크레바스’에 추락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19일 켄터키 대학의 지리학 교수 겸 과학자 존 올(44)이 네팔 카트만두 히말라야의 힘룽히말(Himlung Himal, 7126m)을 오르는 과정에서 71피트(약 22m) 아래의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존이 직접 촬영한 영상에는 크레바스에 빠진 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추락할 때의 충격으로 얼굴이 피범벅 된 그가 끝이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 아랫부분과 자신이 떨어진 윗부분을 카메라로 보여준다. 존은 구조된 후에 가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눈으로 덮인 크레바스의 22미터 아래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1m 남짓한 얼음 턱에 걸려 목숨을 구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어깨가 탈골되고 얼굴과 무릎에 출혈과 타박상을 입은 채로 얼음도끼(ice axe)를 이용 크레바스를 힘겹게 탈출했다”고 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부상을 당한 악조건 속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22m 깊이의 크레바스를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총 6시간이 소요됐으며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위성 장비가 있는 그의 텐트로 이동하기까지 3시간이 더 경과했다. 존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구조되기를 기대하며 무려 9시간의 사투 끝에 자신의 텐트에 도착한 존이 팀의 베이스캠프에 위성 장비를 이용 구조요청을 보내지만 악천후로 인해 구조헬기가 뜰 수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상과 추위로 혼자 고통의 밤을 보내야 했던 존은 결국 다음날 긴급 출동한 헬기에 의해 구조된다. 존은 크레바스 속 추락으로 길비뼈 5개와 오른쪽 팔이 부러지고 얼굴과 무릎에 출혈과 타박상을 입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존 올은 오염에 의해 빙하의 녹는 속도를 연구하기 위해 산을 오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0년에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경험이 있는 전문 산악인이다. 사진·영상=RightThisMinute 유튜브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동물박사가 들려주는 동물이야기] (21) 서울대공원 개관 30년

    [동물박사가 들려주는 동물이야기] (21) 서울대공원 개관 30년

    서울대공원 서른 살 생일인 1일 손님들은 개원 초에 견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필자가 이곳에서 일한 지 꼭 3년을 맞는 날이라 남달랐다. 3년이 열 번이나 지나야 채울 수 있는 30년, 동물원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1909년 창경원으로 첫발을 뗀 한국의 동물원 역사는 경기 과천으로 이어졌다. 고(故) 오창영 초대 서울동물원장의 ‘한국동물원 80년사’와 서울시립대 손정목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엔 그때의 얘기가 녹았다. 1975년 서울 인구는 689만명이었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녹지는 줄어 사람들은 쉴 곳을 찾아 교외로 나갔다. 많은 도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창경원은 이미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침팬지가 관람객들로부터 팔도의 술을 다 받아먹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또한 도심의 공해와 전쟁의 위협 속에 동물들을 보호하기가 어려워져 문화재관리국과 서울시는 동물원을 옮기자고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1968년 관악산, 망우리, 수색 등 지역이 물망에 올랐고 1972년엔 북한산에 국립동물원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서울에 대규모 동물원을 만들기엔 무리였다. 그래서 지금의 과천 막계리로 결론지었다. 1978년 첫 삽을 떴다. 건설자문위원회의 공통된 생각은 창경원을 완전히 벗어나 사람과 동물이 어울릴 수 있는 국제수준의 동물공원(Zoological Park)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를 첫머리로 유럽, 일본까지 한 달에 걸쳐 지구촌 동물원을 찾아가 계획을 얽었다. 생태보전에 방점을 찍은 ‘자연동물원’이나 ‘동물공원’, 순수 우리말인 ‘한동산’을 바랐던 오 원장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동물사 건설의 원칙은 ‘동물복지 제일주의’, ‘안전한 가운데 쾌적한 관람’, ‘능률적이고 과학적인 관리’ 세 가지였다. 이에 따라 동물지리학적으로 현재의 황새마을이 우리나라, 왼쪽은 아프리카, 오른쪽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동물사를 배치했다. 예산 부족으로 수정을 거듭해 완벽하진 않았지만 개장 날짜를 잡고 대이동을 시작했다. 창경원, 각 지방 동물원에서 동물을 옮겼고 기증도 받았다. 키 5m를 웃도는 기린이 이동할 땐 몸통만 상자에 넣고 목을 숙이도록 풀로 유혹해 낮은 육교를 통과했다고 한다. 그런 고생은 보답을 받았다. 개관일인 1984년 5월 1일 입장객 75만명을 기록했다. 나흘 뒤 어린이날엔 100만명이나 됐다. 서울시 인구 10분의1에 이른다. 짜장면 한 그릇에 500원 하던 때 두 그릇 값인 1000원으로 시작한 입장료는 30년간 아주 조금씩 올라 이제 3000원이다. 그 사이 동물원은 꿈틀댔다. 1996년 대공원 종합발전계획, 2001년 생태동물원 조성 사업, 2005년 대공원 전체 재조성 계획 등을 세웠으나 막대한 예산 탓에 통째 바꾸지 못하고 동물사를 하나씩 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엔 기린 전망대로 기린과 눈높이를 맞추고 키에 걸맞게 동물행동풍부화 먹이대를 높이 설치해 벽을 핥던 정형행동을 줄였다. 야생에서 암벽 사이를 뛰어다니는 ‘바바리’양을 위해 인공암벽을 만들고 가운데엔 먹이통을 달아 행동을 활발하게 했다. 가장 큰 변화는 2009년 개선된 유인원관과 그해 마련된 한국동물원 100주년 기념광장, 그리고 2012년 완성된 열대조류관이었다. 유인원관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2003년부터 동물행동풍부화를 유인원에게 적용했지만 환경의 한계 탓에 리모델링 1순위로 꼽혔다. 유인원관은 ‘동물의 행복, 동물의 행동, 인간과 동물의 동행’이란 테마 아래 정글에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로 바꾸고 동물복지를 위한 시설물을 다양하게 도입했다. 침팬지에겐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도록 타워를 만드는 등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가꿨다. 허허벌판이던 100주년 기념광장엔 큰 바오밥나무를 세웠다. 인접한 전시관은 새로운 모습의 체험교육형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열대조류관도 빨리 개선해야 할 동물사였다. 오래된 철장에 소중한 열대조류들의 깃털이 상하기도 했다. 열대우림을 재현해 한쪽에 폭포수가 흐르는, 보다 자연스러운 전시환경을 꾸몄다. 직원들이 손수 덩굴나무를 구해 횃대를 만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새가 숨어 쉴 수 있는 공간도 늘렸다. 협소하고 습하던 소동물관은 호랑이, 늑대, 담비 등 토종동물과 서식지를 함께 설명해 주는 전시관으로 바뀌어 곧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현재 맹수사가 ‘호랑이 숲’으로 탈바꿈하고 있어 곧 손님을 맞는다. 변화 속에 사건·사고도 숱했다. 1987년엔 집중호우에 따른 산사태로 큰 돌이 떨어져 맹수사의 철책을 무너뜨렸다. 그 와중에 자칼이 탈출해 끝내 사살됐다. 2010년엔 말레이곰 ‘꼬마’가 대형 사고를 쳤다. 우리를 탈출한 것이다. 엄청난 사람이 청계산에 투입돼 애쓴 결과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얼마 전 호랑이를 돌보던 분을 잃었다. 동물원은 아직도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서울시 힐링센터 ‘쉼표’와 심리치료를 곁들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떠난 분은 되돌아올 수 없기에 우린 평생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제주도에서 불법으로 포획됐던 제돌이가 바다로 돌아가며 돌고래 쇼를 멈췄다. 쇼는 생태설명회로 바뀌고, 아기동물들을 밤새 살리고 키우던 인공포육장은 좀 더 큰 의미의 동물 보호에 앞장서고자 종보전센터로 바꿨다. 도입 10년을 맞은 동물행동풍부화와 전체 동물에게 확대하고 있는 긍정적 강화훈련까지, 대공원은 동물 복지에 애썼다. 하지만 숙제도 여전히 많다. 국내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자 공공기관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비판도 받아들이겠다. 관심과 응원을 부탁한다. enrichment@seoul.g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하)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하)

    ●탈아파트 시대, 서울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아파트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 1970년 서울의 단독주택은 전체 주택의 85% 정도를 차지했다. 40여년이 흐른 2014년 서울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이 전체의 85%를 넘는 거대한 공동주택의 도시로 역전했다. 아파트는 물경 60%에 이른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던 아파트의 기세는 밀레니엄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풀 꺾였다. 전국적으로 단독주택 건설 물량이 2005년 2만 7000여 가구에서 2010년 4만 4000여 가구로 6년 연속 늘어난 반면 아파트 건설 물량은 2008년 41만 5000여 가구에서 2010년 27만 6000여 가구로 내리 3년간 준 것이다. 아파트 중독에서 풀린 사람들이 마당이 있는 대안 주거지를 원하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2009년에 실시한 이상적인 주택유형을 묻는 설문조사에 응답 가구의 64%가 단독주택을 원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일수록, 저소득층일수록, 60세 이상 고연령층일수록 단독주택 거주 욕구가 강했다. 아파트는 중소득층이나 30대 이하의 지지를 얻었다. 신한은행이 2011년에 실시한 주거유형 선호도 조사에서도 도시형 생활주택이 30%를 웃돌았고 뒤이어 타운하우스와 단독주택이 각각 25%를 나타냈다.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의 비율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영원할 것처럼 여겨졌던 아파트공화국에 균열이 생겼다. ‘거주기계’(르코르브쥐에) ‘인간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외수)에 질린 사람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그렇다면 아파트라는 거대한 덩치의 건조물이 지배하는 서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국의 아파트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 논문을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으로 펴낸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한국에서 아파트는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며 상징이다. 동시에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에서 투기의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한국인의 열광 역시 이 같은 투기 목적에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라고 한국 아파트의 흑역사를 들춰냈다. 줄레조는 아파트공화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아파트가 서울을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 것이라면서 머지않아 도심의 슬럼화가 진행되고 각종 도시 문제의 온상이 되리라고 예견했다. 아파트가 더는 그들의 구별 짓기를 뒷받침해 주지 못한다고 여긴 중산층이 떠나는 순간 아파트는 버려진다고 했다. 이미 여러 연구자가 한국 아파트 문화의 특징은 획일화와 구별 짓기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아파트는 구획화가 가능한 건축적·공간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거주민들은 함께 살기를 거부하며 구별 짓기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형성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었다. 서울 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산다. 만약 중산층이 서울의 아파트를 떠난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2005년 11월 프랑스 파리폭동의 진원지 방리외가 떠오른다. 대도시의 교외, 변두리를 뜻하는 방리외는 10~20층 고층 아파트와 자급자족 구조의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1960년대 집중적으로 지어졌지만 결국 빈곤층과 이민자들의 소굴로 변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영혼이 없는 거리에서 태어나 자란 젊은이들이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한 그곳이다. 우리의 뉴타운이나 신도시 아파트 단지 위에 방리외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임명직 서울시장들은 철권 통치자의 명에 따라 서울 곳곳에 아파트 단지를 마구잡이로 조성했다. 김현옥-양택식-구자춘 트리오가 관선시대 ‘아파트 입국(立國)’의 주역이라면 민주화 이후 민선 서울시장들도 재건축, 재개발, 뉴타운, 한강르네상스 같은 이름으로 아파트 건설의 전철을 밟았다. 특히 2002년 이명박 시장 시절 입안된 뉴타운 정책은 서울을 아파트의 수렁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은평, 길음, 왕십리 3곳이 시범 지역으로 지정됐으며 2003년 용산, 한남, 마포, 아현, 동작, 노량진 등 12곳을 추가 지정했다. 뉴타운 정책은 후임 오세훈 시장까지 계승돼 금천, 시흥, 영등포, 신길, 흑석, 노원, 상계 등 11곳이 늘어났다.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도 사실상 압구정, 여의도, 합정, 성수 등 한강변 아파트 재개발 계획이다. 서울 시내 26개 지구 245개 구역에 이르는 뉴타운 사업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는다. 2011년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은 “뉴타운은 태생부터 잘못된 것”이라면서 뉴타운과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궤도를 전면 수정했다. 도시 정비라는 핑계로 아파트를 헐어낸 자리에 다시 아파트를 짓는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 도시정비사업 40년의 패러다임이 바뀔지 지켜봐야 한다. ●“20년 내 단독주택문화로 바뀔 것”… 新주거혁명 예고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집은 가정과 사유재산의 보루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세포다. 집은 가치, 권위, 힘, 전통, 미의식을 표현한다. 그리고 집은 고정자산이다. 이용가치뿐 아니라 교환가치를 가진다. 개인의 투자 대상을 넘어 잉여자본이 스스로를 불리는 축적의 공간이다. 근대 이전 우리에게는 비교적 안정된 집의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급격한 근대화로 이런 문화는 해체됐다. 재래의 집은 버림받았고 아파트가 등장했다. 시대적·문화적 출처를 달리하는 공간과 기호의 편린들이 도시 공간을 만화경으로 만든다.”(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 지난 40년 동안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는 서울과 서울 사람을 통째 바꿔 놓았다. 입주와 동시에 저비용으로 깔리는 광통신망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터넷 보급국이 됐다. 전립선 치료제의 부작용이 대머리에게 발모의 희망을 준 것처럼 아파트 문화가 정보기술(IT) 강국의 핵심 자양분이 됐다. 문단속과 가사부담이 줄면서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권신장의 태풍이 일어났다. 아파트 주민은 이해관계 공약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정치 세력화했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아파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최고 인기 주거공간으로 뿌리를 깊게 내렸다. 아파트가 주택의 메인 상품이 된 것은 수익성·안전성 그리고 환금성이 확실하게 뛰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차별성이라는 매력을 추가해 갖고 있다. 마치 대입 수능시험이 그러하듯이 아파트는 주거 수준에 관련해 전 국민을 획일적으로 서열화한다. 특히 고급 아파트 거주는 현대 한국인에게 중산층 이상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 혹은 스펙 같은 것이 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도 “아파트의 투기·투자 상품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아파트 거주자들은 늘 이사 갈 준비를 하는 삶의 자세로 자신의 거주 지역을 대한다. ‘살 집’(house of live)이 아니라 ‘팔 집’(house of sale)이었던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동산 침체 및 주택보급률의 확대는 재산증식 수단으로서의 아파트 매력을 반감시켰다. 1인 및 2인 가구의 급속한 증가, 저출산·고령화와 소득증대, 주5일제 근무제 등 사회경제적 변화는 주거문화를 바꿨다. 정부의 주택 정책도 대량 공급보다 다양한 수요 충족으로 전환됐다. 아파트가 서울을 점령한 지 40년 만에 탈(脫)아파트 시대가 온 듯하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 대량공급 방법이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과부족 시대가 끝났다. 주택의 수요 압박이 약화하면서 아파트 선호도가 약화하는 계기가 됐다. 아파트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끝나 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20년 이내 현재의 아파트형 주택문화가 서구형 단독주택 문화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거 트렌드의 변화는 새로운 주거 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아파트에 대한 로망은 단독주택, 땅콩주택, 외콩주택, 한옥, 동호인주택, 도시형 타운하우스 등 거주자의 개성을 살리는 주거 형태로 옮겨 가고 있다. 주택 소유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졌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닌 ‘사는(live) 곳’으로 변화했다. 2012년 한국갤럽 조사에서 ‘집을 소유하면 좋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응답자가 50%에 이르렀고 20대와 30대로 내려갈수록 이용 개념이 뚜렷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에 대한 집착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줄레조의 예견처럼 중산층이 각자의 대안 주택을 찾아 아파트를 떠난 이후가 문제다. 지구상 최대의 아파트 도시 서울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그것이 궁금하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좋은 아파트의 조건! 땅밑에 흐르는 정기를 찾아라

    좋은 아파트의 조건! 땅밑에 흐르는 정기를 찾아라

    - 대한민국 부촌 살펴보니 … 풍수지리 적 ‘명당(明堂)’에 위치 - 부산 금정구, 금정산과 수양천이 둘러싼 배산임수지역으로 대표적인 명당으로 꼽혀 - 구서 SK VIEW,돈과 귀한 인물 배출될 기운 지녀 인근 수요자 눈길 압구정, 성북동, 한남동, 용산…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촌(富村)이라는 것이다. 이곳들이 부촌으로 자리잡은 것은 배후에 재물·성공·건강 등 기운을 북돋아주는 산이나 강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풍수지리학자의 견해다. 예전보다는 풍수지리 명당에 대한 개념이 많이 희석됐지만, 아직도 정치•경제계 사회지도층들은 후대까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주거명당을 찾느라혈안이 되어있다. 일반인들도 주택을 구입할 때 이왕이면 풍수지리상 기운이 좋은 곳을 택하는 게 일반적이다.재운, 관운 등의 풍수 프리미엄이 붙어 높은 시세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갤러리아포레 역시 재물과 권력, 인기 등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 용마음수형길지로 2년 연속 국내 실거래가 최고를 기록하며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잡은 상태다. 부산에서는 구서동 일대가 풍수지리상 ‘양택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전통적인 주거지로 발달했다. 배후에는 금정산 자락이,앞으로는 온천천이 흐르는 풍수지리 사상에서 명당으로 꼽히는 배산임수 조건을 충족한다. 명당에 대한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면서 양택명당으로 꼽히는 구서동 일대 분양예정인‘구서 SK VIEW’가 화제다. 명당풍수지리학회 강희종회장에 따르면 “구서 SK VIEW가 입지할 곳은 금정산 명당으로, 영구하산(靈龜下山)형에 와우안(臥牛案)의 양택명당임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수명장수와 귀한 인물이 배출된다는 길지에 소가 엎드려있는 형상으로 부자와 군자자손들이 나온다는 복지로 대대손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최고의 명당이다”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주거명당으로 꼽혔던 금정구 구서동은 전통적인 주거지역인 만큼 편리한 도로망과 쇼핑, 공공기관, 문화시설이 완비된 쾌적한 생활 인프라도 갖춰져 있다. 부산지하철 1호선 구서역을 도보 7분대로 이용 할 수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도시고속도로의 구서 IC가 인접해 편리한 교통망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산성터널 및 외부순환도로가 2018년 개통 예정으로 더욱 편리한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롯데마트, 구서 종합시장 등의 쇼핑시설이 갖춰져 있고, 금정구청 및 구서1동 주민센터 등 공공기관이 인접해 있다. 게다가 다양한 전시, 공연, 문화강좌로 삶의 질을 높여주는 금정문화회관까지 단지 인근에 위치하여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학군도 역시 눈에 띈다. 부산 최고 학군으로 꼽는 동래학군에 편입돼 인근에 대표적인 학교로 동래여중, 지산고, 부산과학고, 부산외대 등의 좋은 교육환경을 자녀에게 줄 수 있다. 구서동에는 이미 현대건설, 쌍용건설, 롯데건설 등의 브랜드 아파트가 밀집돼 주거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에 분양되는SK건설의 구서 SK VIEW와 함께 6,500여가구의 대규모 브랜드타운을 이뤄 구서동 내 고급주거지역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금정구에 6년만에 선보이는 SK VIEW 브랜드인 만큼, 특화된 알파공간이 적용된 평면과 지상에 차 없는 단지, 휘트니스, 실내 골프연습장 및 개인작업실로 이용 가능한 공간등의 커뮤니티 시설 제공 등 단지 설계에 더욱 신경 썼다. ’구서 SK VIEW’는 구서2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으로 아파트 규모는 693가구며 이 가운데 287가구를 일반분양 할 예정이다. 단지규모는 지하 3층, 지상 17~24층, 8개 동으로 주택형(일반분양 기준)은 전용면적 64㎡에서 114㎡까지 다양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초의 빛” 빛의 사진가 나카자토 가츠히토 초대전

    “태초의 빛” 빛의 사진가 나카자토 가츠히토 초대전

    일본 사진작가 나카자토 카츠히토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오는 3월 14일부터 4월 4일까지 갤러리 온에서 열린다. 나카자토 카츠히토는 일본의 지리적 풍경 (landscape)을 객관적 시선으로 촬영하고 있는 일본의 사진가로 현재 동경(東京) 조형 대학 조형학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부터 도쿄(東京)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상점, 도시의 공장, 빈 점포, 시장 등과 같은 대안 가능한 공간에서 사진전, 사진 설치, 워크숍을 다수 개최하였다. 이러한 다원적인 전시 방식을 통해 작가는 사진표현을 중심으로 거리나 지역과의 사회적인 소통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사진의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이번 갤러리 온 전시에서는 그의 「용궁龍宮(Ryu-guu)The ancient landscape on the shore」시리즈와 「보소 에치고 터널(Boso-Echigo Tunnels)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나카자토는 용궁시리로 흑조 (일본 열도를 따라 태평양을 흐르는 난류)의 밤에 느낄 수 있는 아득한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표현했다. 먼 바다에 있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의 이미지이다. 그 곳엔 조용한 빛과 어둠의 세계가 있다. 보소(房總)(Boso)는 치바현(千葉縣)의 옛 지명이고, 에치고(越後)(Echigo)는 니가타현(新潟縣)의 옛 이름이다. 이곳의 터널들은 약 200여 년 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파서 만든 터널로서,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는 낡고, 진귀한 지형 중 하나이다. 이곳의 터널을 빛과 접목해서 촬영한 나카자토는 예술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보여지는 보소 에치고의 터널들로 하여금 태고의 신비로운 지리적 경관에 현대의 감수성을 더하고 있다. 지구의 탄생부터 공존하고 있는 대지에 빛으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그는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그 영향으로 작업의 소재는 지리적 풍경을 기본으로 <꿈>, <밤과 어둠>, <빛>등의 테마로 이어지고 있다. 환경문제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현재,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환경캠페인보다 나카자토 가츠히토의 지난 50억년을 버텨온 우리의 대지가 빛으로 다시 살아나는 사진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울릴 것이다. 자세한 전시관람 안내는 전화(02-733-8295)로 하면 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서울은 넓고 그리고 깊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장기연재한 ‘서울택리지’가 서울의 윤곽을 더듬는 도시학적 탐사였다면 이번에 후속으로 선보이는 ‘서울택리지-테마기행’은 서울의 속살을 찬찬히 살펴보는 풍물적 탐사의 성격을 띨 것입니다. 먼저 세계 최고,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의 아파트와 아파트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서울의 극장, 백화점, 호텔, 공원, 시장의 명멸사(明滅史)를 추적할 작정입니다.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상가와 지하도, 고가도로와 육교의 부침이나 한강 다리와 나루의 변천도 들여다보기의 대상입니다. 물난리와 하천복개, 전차, 판자촌과 달동네, 다방·댄스홀 같은 유흥업소에 얽힌 흘러간 추억도 되새김해 볼만할 겁니다.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이내믹이 지배하고 있는 서울의 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어쩌다 아파트가 서울의 압도적 주거문화가 됐을까 아파트는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서울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서울 도시경관을 아파트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교수가 2007년에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은 파리의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의 아파트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줄레조는 1990년 서울 방문길에서 공룡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서울의 아파트’를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주제로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서울의 아파트 건설 이유와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분석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0년 넘게 걸린 긴 조사과정을 통해 그녀는 왜 아파트가 서울의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됐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이방인의 눈에는 희귀한 이상현상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은 덤덤했다. “그런 것도 연구대상인가”라는 조롱 섞인 핀잔을 극복하고 줄레조는 200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아파트문화 분야연구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받는다. 유수 기관들이 그녀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줄레조의 의문에 한국사람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서울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대로다. 그러나 줄레조의 연구결과는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압축된 현대성’(compressed modernity)의 반영이었다. 아파트는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산업화를 담당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서울사람, 나아가 한국인 욕망의 상징이며 3각 동맹이 건재하는 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아파트와 아파트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한다. 영화평론가 이형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집의 역사’와 다름없다”라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을 중산층 평균적 삶의 실현으로 봤다. 주거지역과 평형, 아파트 건설회사의 브랜드가 신분을 드러내고, 재개발이나 뉴타운 공약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하고, 아파트 정책이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출현한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또 다른 성공과 신분을 상징하는 ‘욕망의 바벨탑’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칼럼리스트 우석훈도 줄레조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중산층의 욕망과 개발독재의 획일성이 결합된 부동산정책과 아파트공화국의 파국을 예고했다. ‘아파트 한국사회’를 펴낸 건축가 박인석(명지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비판의 대상을 좁혔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담장을 둘러친 ‘단지’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는 아파트를 열악한 도시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私設) 오아시스’라고 명명하면서 오아시스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임대아파트 단지, 분양아파트 단지,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처럼 아파트 단지가 재산가치에 따라 계급화하면서 계층적으로 폐쇄성을 띤다고 보았다. ‘단지 해체’가 왜곡된 아파트문화를 바로잡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정아파트부터 와우아파트까지… 아파트의 부침 아파트가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다. 일제는 회현동에 3층짜리 공동주택(미쿠니아파트)을 지은 데 이어 1932년 충정로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충정아파트(도요타아파트)를 지었다. 혜화동과 적선동 등에도 아파트가 선보였다. 주로 일본인 임대·거주용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8층짜리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이었으니 충정아파트는 당장 도시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아파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미래주택 개념에 따른 획기적 건축물이었다. 이 아파트는 한때 호텔(트레머호텔, 코리아관광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되돌아갔다.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으로 건물 절반이 뜯겨나가는 곡절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어진 최초의 민간아파트는 1958년 중앙산업이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였다. 17평짜리 4층 건물에 152가구가 살았다. 정식명칭은 ‘종암 아파트먼트 하우스’였지만 ‘종암아파트’로 줄여 부르면서 ‘아파트’라는 용어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잘나가는 기업인, 정치인, 예술가들이 입주했으며 최초의 옥내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이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양변기로 대변되는 화장실 문화의 대혁명을 알린 옥내 좌식화장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해괴망측한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돌이 깔린 침실이 현관이나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은 특이한 구조였다. 1995년 종암선경아파트로 재건축됐다. 1962년 안양으로 이전한 마포형무소 자리에 대한주택공사가 최고급 마포아파트(도화동 삼성아파트)를 건립하자 서울의 모던보이와 모던걸 사이에 아파트는 일약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입주 초기 연탄보일러 중독사고가 연발하고 부유층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아파트주변에 담장을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는 ‘자폐적 공간’을 조성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세계 유일의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모델등장이었다.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유입은 주택난을 부채질했다. 도심과 가까운 지역의 산비탈과 국공유지변 하천부지를 꽉 메운 토막집과 판잣집을 밀어내고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지은 낙산 시민아파트 등 대부분 시민아파트는 경관훼손 사례로 낙인 찍혀 1990년대 철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현옥 시장(1966~70년 재임)이 주도한 시민아파트는 본래 철거민 수용용이었다. 시민아파트 1호는 천연동 금화아파트였다. 한 서울시 공무원이 해발 203m의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짓는 이유를 묻자 김 시장은 “이 바보야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볼 것 아니냐”라고 답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전해진다. 1968~69년에 지은 시민아파트는 어김없이 산허리 또는 산등성이에 지어졌다.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관 하나는 끝내주는 금화아파트는 아직도 살아남아 개발연대기의 암담함을 나타내는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 뚫린 물길은 막을 수 없었다 도심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롯데백화점 청량리점)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원조격이다. 특히 세운상가 아파트는 1960년 후반부터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1970년대 초까지 상한가를 쳤다. 18~25평의 작은 평수였지만 대규모 상가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이 아파트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했다. 사대문 안에 밀집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류층 집결지였다. 세운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던 ‘종삼’과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얻어진 1만 3000평의 공지 위에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까지 무려 1km를 8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괴물이었다. 아파트의 고급화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처음 시도됐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에 지은 한강맨션은 중앙집중식 난방을 채택한 첫 호화 아파트였다.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분양이 대박 나자 당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주공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비롯한 대형 건설업체들이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1970년 4월8일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지만 뚫린 물길을 막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의 문턱을 막 넘어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공기업 탐방] “시간외 거래 연장·단주 매매 확대 등 시장 활성화 적극 추진”

    [공기업 탐방] “시간외 거래 연장·단주 매매 확대 등 시장 활성화 적극 추진”

    “올해 상반기 안에 시간 외 종가 거래 시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거래 시간 연장은 현재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반기 안에 구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 이사장실에서 만난 최경수(64)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현재 침체된 자본시장에 대한 걱정이 컸다. 주식거래 감소는 곧 거래소 수익 악화로 이어진다. 최근 방만 경영을 이유로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되지 않아 올해 예산을 전년 대비 30% 삭감하는 등 거래소 안팎으로 부는 바람이 거세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꺼려 왔던 최 이사장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시장의 꽃인 거래소의 역할과 사업 계획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거래소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그에 앞서 거래 감소 등으로 수익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거래소의 중장기 대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미국의 양적완화(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 축소, 일본의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인한 엔저 유도 등으로 수출 기업과 내수가 부진하다 보니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아 증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은 원래 1분기가 안 좋고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되곤 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하반기로 갈수록 시장이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거래소에서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시간 외 거래 제도 개선, 5만원 미만 종목도 1주씩 거래할 수 있도록 단주거래 확대 등이 대표적인 방안으로 정부와 협의를 거쳐 상반기 안에 추진하려고 한다. 시간 외 거래제도 개선은 현재 오후 3시 10분~3시 30분으로 정해진 시간 외 종가거래 시간을 오후 3시 10분~오후 4시로 연장하고 체결주기도 현재 30분에서 5~10분 간격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거래 시간 연장안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거래 시간 연장도 증권업계와 실무적으로 논의하고 있으며 하반기 중에 중점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시장의 거래 시간대를 맞춰 투자 수요를 우리 시장 쪽으로 붙들어 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 주요 기업들의 상장도 추진한다고 들었는데. -상장을 늘리는 것이 주요 목표다. 유가증권시장은 30개, 코스닥시장은 70개, 코넥스시장은 100개 기업의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카카오톡, 현대오일뱅크 같은 우량 기업들의 상장을 적극 유치하려고 한다. 현재 거래소 직원들이 산업단지와 공업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상장 기업을 발굴하고 있다. 공기업 쪽에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공기업에는 부동산을 파는 것보다 상장해서 증자를 통해서 부채를 상환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들어 권유하고 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코스닥의 거래소 분리 방안이 들어갔다 제외됐다고 한다. 코스닥시장이 유가증권시장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제2의 벤처붐을 일으키겠다는 것처럼 벤처기업들이 상장하는 코스닥·코넥스시장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통합거래소 출범 이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간 시장관리 제도가 유사하게 운영돼 온 게 사실이다. 앞으로 코스닥시장은 상장요건을 유가증권시장에 비해 완화할 생각이다. 재무제표에 관계없이 신기술, 성장성만 있으면 바로 코스닥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더 풀려고 한다. 코스닥시장 진입을 쉽게 하고 불공정거래는 엄격하게 감시하는 방안을 계속 준비해왔다. →한국의 파생상품 시장이 한때 세계 1위였지만 현재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 파생상품 거래에 과세하는 방안이 파생상품 거래량을 더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은가. -파생상품시장은 적은 비용으로 주식시장의 위험을 헤지(위험 회피)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거래비용 최소화가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최대한 비과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생상품에 대한 과세는 단기적으로 정부의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외국인이 거래 비용이 적은 일본이나 중국시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생상품 거래에 과세하기로 정부가 이미 방안을 만들어놨다면 주식·파생상품 공통으로 자본이득세 방식으로 부과하는 것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이라고 본다. →최근 거래소에서 국채 3년물 거래에서 전산장애가 일어나는 등 전산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차례 사고가 나면서 전 부서에 정보기술(IT) 전담반을 두는 한편 전 직원의 IT화를 주문했다. 직원들에게 ‘항상 긴장해야 하고 사고가 나면 다 죽는다’고 각오하라고 말했을 정도다. 매일 IT 본부장으로부터 전산 상황에 대해 수시로 보고받는다. 24시간 시스템이다 보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전 직원들의 IT화, IT본부, 전산 위탁 운영을 맡기는 코스콤이 삼위일체가 되도록 강조하고 있다. 2년 넘게 개발한 끝에 3일부터 가동하는 엑스추어플러스(EXTURE+)는 초고속 매매 서비스 외에 사고가 났을 경우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물론 복구할 일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 →이번에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뭔가. -공공기관으로 묶여 있어서 인력과 예산 통제가 있고 경영평가까지 수시로 받아야 해 민간의 창의성이 없어져 버리는 문제가 크다. 현재 시장 상황이 안 좋은 만큼 직원들이 좀 더 새로운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경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준공무원화된 조직이라 그렇게 잘 안 된다. →방만 경영이라고 지적받는 것에 인력구조의 문제도 있다는 것인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경비성 비용을 줄이는 등 예산을 전년 대비 30% 줄였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에 이해를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문제는 인건비다. 거래소 인적 구조를 보면 평균 근무연속이 18년으로 노령화돼 있다. 게다가 거래소 직원들은 전산시스템을 운영하고 상품을 개발하는 등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쓰는 전문 작업이 많고 정규직이 대부분이다. 또 입사 후 팀장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반 기업과 비교하면 정상적인 구조는 아니다. 이사장 취임 후 최근 첫 인사를 하면서 능력 위주로 대폭 발탁해 인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무는 77%(10명) 교체했고 부팀장은 60%(88명)를 바꿨다. 이 가운데 능력 위주로 발탁한 인사는 상무는 5명, 부서장은 13명, 팀장은 23명이다. 상무급은 1964년생, 부장급은 1968년생으로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전진 배치했다. 물론 고참들의 능력이 필요한 곳도 있다. 시니어 그룹의 가장 큰 장점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유가 상장 심사하는 곳, 시장감시 파트는 고도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이 필요한 곳이다. 이들을 따로 모아 수석 상장심사역, 시장감시관 등 별도의 직함을 줘서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릴 수 있도록 역할을 줬다. →관가와 민간, 공공기관 등 모든 곳을 다 경험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 -치열함이다. 민간기업에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어디든 찾아다니는 등 치열함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직원들 하나하나 매우 우수하지만 거래소가 경쟁 상대가 없다 보니 스스로 찾아서 경쟁해야겠다는 그런 치열함은 없다. 자본시장이 어려워서 거래도 대폭 위축되고 이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는 게 필요하다. 대담 김성수 경제부장 정리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최경수 이사장은 ▲경북 성주 ▲경북고, 서울대 지리학과 ▲행시 14회,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제심판원장, 세제실장, 서울중부국세청장, 조달청장, 현대증권 사장
  • 이방인 눈으로 기록한 일제 시대 한반도 풍경

    이방인 눈으로 기록한 일제 시대 한반도 풍경

    “경복궁 남쪽 시내의 북서부는 관가이다. 이곳에는 화강암으로 지은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다. (중략)남쪽으로 유럽인 거주지와 개신교 선교회의 일부, 영사관 구역이 이어진다. 삼각형의 시청광장과 남대문로의 커브 지역에서 경복궁 지역과의 건축양식 차이가 더 커진다. 이 지역에 인접해 단층의 옛 한국(조선) 상점들, 2층의 일본인 상점들과 여러 층의 미국식 또는 유럽식 건물들이 있다.”(412쪽·1933년 어느 날 서울 중심가의 풍경) 벽안의 이방인이 바라본 1930년대 한반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독일인 지리학자 헤르만 라우텐자흐(1886~1971)는 1933년 무려 8개월간 한반도에 머물며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제주까지 구석구석을 뒤져 꼼꼼한 조사를 벌였다. 장장 1만 5000여㎞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다. 이 기록은 고스란히 그의 저서 ‘코레아: 일제 강점기의 한국지리’(푸른길)에 담겼다. ‘논쟁의 여지 없는 지지(地誌)의 대가’라 불릴 만큼 그의 기록은 방대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당시 서울(경성)의 모습. ‘시가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두 직선의 폭넓은 동서 도로가 가옥의 바다를 횡단한다. 이들 도로는 네 개의 폭넓은 남북 도로와 교차한다…. 이 도로들을 따라서 전차노선이 있고 동아시아 도시들의 특징인 수많은 전봇대들이 낮은 가옥들의 지붕 위로 높게 서 있다.’ 일본인들이 남산의 전망 좋은 서사면에 메이지 천황을 봉헌한 조선에서 가장 높은 신사(조선신사)를 지었다든가, 남산 사면과 산록에 일본인 거주 지역이 있고 한강변 교외에 한국인 어부와 뱃사공이 몰려 산다는 내용들이다. 또 당시 통계를 인용해 서울의 인구는 39만 4592명이라고 전한다. 한국인(71%), 일본인(28%)의 순이었는데 일본인 인구비는 13%에서 20여년 만에 곱절 이상 늘었다. 이마저도 당시 경기 지역 일부가 서울에 편입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저자가 “도심의 실제 일본인 인구 구성비는 은폐됐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라우텐자흐의 기록은 추상적인 마르코 폴로의 견문록 등과는 차이가 난다. 그는 낡은 고물 포드자동차로 8900㎞, 열차나 선박으로 4500㎞를 이동했고, 도보 여정만도 1600㎞에 이르렀다. 사진을 찍고, 암석과 토양, 식물의 견본을 수집했으며, 정부간행 지형도와 지질도, 수백 권의 소책자를 챙겨 독일로 가져갔다. 그렇게 여행에서 수집한 자료와 1000여 종의 참고문헌을 분석해 한국 지지의 표준서를 만들었다. 저자는 “한국에 관해 유럽 언어로 된 저작물은 드물 뿐더러 지리학 전문서는 전혀 없었다”고 회고했다. 애초 포르투갈의 지리를 연구하던 저자는 비슷한 위도 상의 유라시아 대륙 끝의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였다. 연구에선 압록강~두만강 선이 한반도의 경계를 비교적 잘 드러내는 선이라거나 간도 지방 인구의 80%가 한국인이란 상세한 이야기를 전한다. 또 일본 야요이 문화의 조상들이 한국에서 유래했고 당시 금속가공물품이 한국에서 수입됐다는 견해도 전한다. 선사시대에 만주-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퉁구스계 종족이 이주했을 것이란 추론도 내놓는다. 하지만 그는 한반도 남부가 고대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식의 식민사관에 동조하며, 조선은 소국이면서 불행한 지리적 위치에 놓였고 늘 기구한 국가적 운명을 맞아 왔다는 편견을 드러낸다. 당시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인 학자가 조선총독부의 도움을 얻어 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란 한계 탓이다. 책은 1945년 독일 쾰러 출판사에서 처음 발간됐으나 국내에는 소수의 지리학자에게만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1988년 슈프링어 출판사에서 영역본이 발간됐고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독일어 원본을 한국어로 완역한 것은 저자들(김종규·강경원·손명철 교수)이 처음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무려 5층 건물높이! 6,800만 톤 사상최대 눈사태 화제

    무려 5층 건물높이! 6,800만 톤 사상최대 눈사태 화제

    최근 수년간 관측된 것 중 가장 거대한 크기의 눈사태 현장이 생생히 포착돼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지난 16일 알래스카 남동부 라페루즈 산에서 발생한 눈사태 사진을 2일(현지시간)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눈사태는 총 6,800만 톤 크기로 일반 5층짜리 건물이 파묻힐 정도로 거대한데 최근 발생한 눈사태 중 가장 큰 규모로 파악된다. 이는 라페루즈 산 하부 4.8㎞ 길이로 길게 뻗어져 내렸다. 이번 관측이 주목받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비즈니스업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기법이 눈사태 관측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는 ‘대중’(crowd)과 ‘외부자원활용’(outsourcing)의 합성어로, 기업이 제품, 서비스 개발과정에 외부 전문가나 일반 대중을 참여시키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참고로 이번 관측에는 눈사태 블로거, 지진학자, 헬리콥터 조종사, NASA(미 항공우주국)가 참여해 화제가 됐다. 눈사태 징조를 최초 포착한 이는 영국 더럼대학 지리학자이자 유명 눈사태 전문 블로거인 데이브 페틀리다. 그는 학교 지진계에 나타난 수치를 토대로 알래스카 눈사태 가능성을 블로그에 올렸고 이는 캐나다 노던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지진학자 마르텐 헤르세마에게 전해졌다. 헤르세마는 페틀리의 블로그 내용을 꼼꼼히 분석해 눈사태 장소를 라페루즈 산악일대로 추정했고 정확한 현장 위치를 얻기 위해 NASA 랜셋인공위성 촬영 자료와 알래스카 헬리콥터 파일럿인 드레이크 올슨을 섭외했다. 최종적으로 올슨은 알래스카 라페루즈 산 일대를 비행하며 정확한 현장 사진을 포착해냈다. 패틀리는 “이런 거대 눈사태는 매우 드문 현상이지만 지구 지형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혹시 우리가 놓친 다른 눈사태는 없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Drake olson/NASA/데일리메일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고시 접고 카페 창업… “학점보다 노력 중요”

    고시 접고 카페 창업… “학점보다 노력 중요”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건 공부 비법이 아니에요. 학점은 좀 나빠도 노력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네요.” 26일 10년 만에 서울대를 졸업한 지리학과 04학번 양광현(31)씨는 감회가 남달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사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동기들이 고시나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서림동 고시촌에 카페 ‘달콤’을 열었다. 양씨의 졸업 평점은 2.02점. 가까스로 최저 학점을 채우고 졸업한 그는 “누구보다 ‘진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현재 카페 두 곳을 운영하는 양씨는 “창업을 준비하느라 학점 관리는 제대로 못했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데 전공지식을 백분 활용했다”고 웃었다. 양씨는 2007년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얘기부터 늘어놓았다. 그는 “친구들을 따라 사법시험에 도전할 생각으로 고시촌 독서실에 파묻혔는데 가만 보니 주변에 커피 한 잔 마실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이후 가게의 입지조건과 카페 메뉴 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만에 고시를 접고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며 세부전공으로 지리학을 선택했다. 양씨는 “200곳 넘게 카페들을 찾아가 잘되는 곳에서는 온종일 앉아 손님들의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하기도 하고 남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유통구조를 관찰했다”면서 “입지는 좋지만 권리금이 없는 장소를 찾으려고 매일 발로 뛰었다”고 말했다. 졸업 성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학교에 대한 애정이나 학구열은 누구보다 높다. 양씨는 “대학 수업에서 상권 분석을 하거나 업종 관련 인터뷰를 하면서 시야나 관심분야가 훨씬 넓어졌다”면서 “목표를 정한 뒤에는 충분한 경험을 하면서 공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국 시장에 내가 만든 카페 브랜드를 진출시키는 게 목표”라며 “요즘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공기업 탐방-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레저·숙박·쇼핑… 세계적 테마파크 추진

    [공기업 탐방-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레저·숙박·쇼핑… 세계적 테마파크 추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쓰레기 매립장을 세계적인 테마파크로 조성하기 위해 해외 투자자 물색에 나섰다. 인천 서구 매립지의 테마파크는 국제공항과 고속도로, 전철 등이 인접해 잠재 고객인 2500만명의 수도권 시민이 한 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아울러 일본과 중국 등 16억 인구가 항공편으로 네 시간 안에 방문이 가능해 국내는 물론 동북아 최고의 지리학적 입지를 갖췄다는 점도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최근 한 해외 투자자가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위해 1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해 와 사업 착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매립지에 조성될 테마파크는 쇼와 이벤트, 레저, 휴양, 숙박, 쇼핑의 기회까지 제공하는 ‘체류형 리조트 복합시설’이다. 글로벌 브랜드를 지닌 대규모 테마파크를 유치한다면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이미지 제고는 물론 국내 관광산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테마파크 개발로 인한 지역경제 파급 효과로는 ▲고용창출 ▲지방자치단체 세수입 증가 ▲지역 이미지 향상 ▲건설경기 부양과 인프라 개선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사업에 대해 주변 지역 주민들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점은 걸림돌이다. 또 혐오시설인 매립지를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이 정치적인 해석으로 사업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약점도 떠안고 있다. 이에 따라 공사 측은 테마파크로 인한 파급 효과를 설명하며 적극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관계자는 “테마파크 조성사업은 우선적으로 청라 등 주변지역 주민들의 여가활동에 대한 욕구 해소, 자산가치 상승 등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며 “단순한 여가활동의 차원을 넘어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파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우선 관광객 증가와 함께 서비스산업 부문이 활발해져 인천시의 발전과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창조경제를 창출하는 중요한 전략과 수단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국내외 관광객 유치나 일자리 창출 효과뿐만 아니라 문화·관광·정보기술(IT) 산업 등에 미치는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송재용 사장은 “테마파크의 폐기물처리시설이라는 이색적인 환경 콘텐츠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자산이 될 수 있다”면서 “매립지에 테마파크가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세계에서 유일한 환경·문화·관광의 메카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시베리아에 생긴 미스터리 ‘크레이터’ 정체는?

    시베리아에 생긴 미스터리 ‘크레이터’ 정체는?

    무려 65년 동안이나 비밀을 풀지못한 미스터리 크레이터의 사연이 알려져 관심을 끌고있다. 최근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은 러시아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분화구 모양의 ‘파톰스키 크레이터’(Patomskiy crater)의 비밀을 지금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머리를 긁적이게 만든 이 크레이터는 지난 1949년 처음 발견됐다. 독수리 둥지같은 이 크레이터의 크기는 약 80m 높이에 지름은 150m로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올만큼 크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이 크레이터의 ‘나이’는 100~500년. 현재까지 전문가들이 추측한 생성 원인은 화산폭발, 운석충돌, 핵실험, 구소련의 비밀시설 등 다양하지만 어느것 하나 명확한 증거가 없다. 데일리메일은 “지난해 현지 과학자들이 샘플을 채취해 조사에 나섰지만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면서 “핵실험으로 인한 크레이터 생성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크레이터 생성에 대한 나머지 추측도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한 전문가는 “화산은 이 지역에서 수천km나 떨어져 있으며 운석 충돌로 생긴 물질 또한 찾을 수 없었다” 면서 “인근의 나무도 비정상적으로 빨리 자란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엄용수 집공개, 취재 온 PD에게 집구매 유도 ‘얼마나 좋길래..’

    엄용수 집공개, 취재 온 PD에게 집구매 유도 ‘얼마나 좋길래..’

    엄용수 집공개가 화제다. 개그맨 엄용수가 혼자 사는 집을 방송 최초 공개했다. 엄용수는 20일 방송된 KBS2 ‘여유만만’에서 혼자 사는 집에 취재진을 초대했다. 그는 이날 깔끔하게 정돈된 거실을 공개하면서 “일생의 전 시간을 거실에서 보낸다. 부부가 생활한다면 취침시간에 침실로 가지만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잘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엄용수는 풍수지리학자가 추천한 거실의 명당자리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풍수지리를 이야기하며 취재 온 PD에게 집 구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또한 거실에는 그의 개그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는 장르 불문의 책들이 전시돼 있었다. 안방은 이혼 후 자료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엄용수 집은 혼자 사는 집 같지 않게 잘 정돈된 옷장과 냉장고가 눈길을 끌었다. 사진 = KBS2 (엄용수 집공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과학이 걸어온 길 천재적 발상인가 대중적 협력인가

    과학이 걸어온 길 천재적 발상인가 대중적 협력인가

    # 1. 1900년 12월 14일은 ‘양자혁명’의 날이다. 막스 플랑크(1858~1947년) 베를린대 교수는 뉴턴의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뒤바꾼 ‘E=hv’란 법칙을 세상에 내놨다. 흑체복사 현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한 양자역학은 트랜지스터를 비롯해 반도체, 초전도체를 활용한 현대 전자공학의 밑바탕이 됐다. 플랑크는 베를린 인근 녹지인 그뤼네발트를 일곱 살 난 아들과 걸으며 “아빠가 뉴턴에 버금가는 중요한 발견을 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당시로선 양자역학의 본질을 꿰뚫진 못했다. 이는 스위스 특허청 계약직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년)의 몫이었다. 대학에서 강사 채용이 거부됐던 아인슈타인은 근근이 생계를 꾸리며 1905년 한 해에만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방정식인 ‘E=mc2’을 유도한 특수상대성이론이 포함됐다. #2. 하와이제도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 집단을 이끈 제임스 쿡 선장은 폴리네시아인들을 만난 뒤 외쳤다. “이 종족이 광대한 대양을 가로질러 뉴질랜드와 이스터섬까지 퍼져 나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폴리네시아인들은 5000년에 걸쳐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수역인 태평양을 개척했다. 쿡 선장도 원주민 항해자의 도움을 얻어 74개의 섬이 그려진 지도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 지도와 섬들에는 쿡의 이름이 붙었다. 역사도 원주민 항해자가 아닌 쿡의 이름만 기억할 따름이다. #3. 수천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대전의 종식을 앞당겼지만 과학자들은 뒤늦게 고민에 빠졌다. 자신들의 연구가 핵무기로 뒤바뀐 현실에 두려움과 윤리적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전 직후 조직을 결성해 본격적인 운동에 나선다. 이렇게 탄생한 ‘원자과학자연맹’은 냉전시대 군축과 반체제 과학자 구명 운동을 이끌었다. 연초 출판계에 과학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양자역학, 양자장이론 등 전문 지식을 다룬 서적부터 과학의 감춰진 이면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까지 다양하다. 민중과학, 좌파과학 등을 소개하는 ‘색깔있는’ 책도 나왔다. ‘퀀텀스토리’(짐 배것 지음, 박병철 옮김, 바니 펴냄)는 양자역학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궤적을 조명한 책이다. 양자역학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전복하며 상대성 이론과 함께 20세기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과학적 발견으로 꼽힌다.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들은 “이제 물리학에서 더 이상 새로운 발견은 없다”고 선언했지만, 이는 난공불락의 요새에 먹구름이 모여드는 징조에 불과했다. 이 같은 오만함은 플랑크의 ‘작용양자’ 개념이 도입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한때 뉴턴의 고전 열역학을 열렬히 숭배했던 플랑크는 물질이 원자나 분자로 이뤄진 불연속 객체라는 ‘원자론’으로 전향한다. 아인슈타인이라는 걸출한 천재 한 사람이 완성한 상대성 이론과 달리 양자역학은 플랑크,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닐스 보어, 리처드 파인먼, 스티븐 와인버그, 피터 힉스 등 시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천재들이 머리를 맞대 고군분투한 결과물이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가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거대강입자충돌기(LHC)의 힉스 입자(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최소 입자)를 증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반면 ‘과학의 민중사’(클리퍼드 코너 지음, 김명진·안성우·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전자의 가정을 뒤엎는다. ‘타고난 천재들이 이뤄냈다’는 과학기술 발전의 신화에 반기를 든다. 과학엘리트들의 업적에는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준 보통사람들의 노력이 전제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민중사관적 잣대를 들이대며 집단의 산물을 강조한 것이다. 예컨대 달의 위치와 조석의 관계를 기록해 지리학과 천문학 발전의 기반을 닦은 어부들, 화학과 재료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광부·대장장이·옹기장이, 산업혁명 완수에 필요한 지식을 생산한 금속노동자와 기계공 등을 다룬다. 과학의 숨겨진 이면을 더 들춰보고 싶다면 좌파 과학사학자 게리 워스키의 ‘과학… 좌파’(게리 워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이매진 펴냄)를 챙겨 읽어봄직하다. 연구실 밖에서 인종·성 차별, 환경오염, 핵무기에 맞선 20세기 좌파 과학자들은 신자유주의, 군비 강화, 테러, 기후변화 등이 기승을 부리는 오늘날 제3의 과학좌파 운동을 전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공기업 개혁 이번엔 제대로 하자] ‘부채 141조 LH 수술법’… 이정록 前 이사회 의장에게 듣는다

    [공기업 개혁 이번엔 제대로 하자] ‘부채 141조 LH 수술법’… 이정록 前 이사회 의장에게 듣는다

    부채 규모 141조 7300억원. 자본금 172조 2000억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위태롭다. 자본 잠식이 코앞이라는 전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공기업 부채 순위 부동의 1위인 LH를 뒤집을 만한 해법은 없을까. LH 초대 이사회 의장을 지낸 이정록(57) 전남대 교수에게 해법을 들어 봤다. 이 교수는 현대건설 최고경영자 출신인 이지송 전 LH 사장의 개혁을 지켜봤던 인물이다. 당시 이 사장의 개혁은 상당한 부채 절감 효과를 내며 ‘곪은 공룡’ LH의 환골탈태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장의 개혁은 ‘미완의 개혁’이 되고 말았다. 이 교수는 1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LH 개혁이 완수되지 못한 건 귀족 노조의 기득권 사수 탓”이라면서 “노조 개혁 없이는 LH 개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불어 “LH 개혁의 핵심은 LH의 역할 축소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LH는 사업 구조상 사업을 벌일수록 부채가 쌓인다”면서 “일을 줄이는 것이 부채 털기의 선결 과제”라고 진단했다. →LH 통합 초기 당시 이지송 사장과 LH 개혁을 주도한 주인공으로 알고 있다. -(이 전 사장이) 노련했다. 일단 현장을 아는 전문가니 “사장님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현장을 모르는 현 사장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아마 잘 모를 거다. (현장을 모르면) 이사들이 ‘이건 안 됩니다’라고 강하게 말하면 오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막판에는 이 전 사장이 조금 욕심을 부려 일을 못 하기도 했다. 좀 더 해서 LH를 안정화시켜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전 사장의 개혁으로 성과를 내는 듯했지만 여전히 LH는 방만 경영의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반쪽짜리 개혁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 -강성 노조다. 두 개의 노조와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이 전 사장의 개혁에 걸림돌이 됐다. 통합 초기 조직의 안정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토공과 주공을 합쳤는데 만약 통합 후에 노사 분규 등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봐라. 후속 공기업들의 구조조정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다. 정부가 부담스러워하니까 개혁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전 사장도 물리적 통합은 됐으니까 화학적 통합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애초에 이 전 대통령이 LH를 합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본다. 각각의 기업에서 구조조정과 개혁을 했어야 했다. →개혁의 걸림돌을 두 노조라 꼽았다. -토공 노조가 주공 노조에 힘을 못 쓴다. 노조원 수 자체가 주공이 많기 때문이다. 부채 부문이나 액수도 주공이 훨씬 많았던 상태로 통합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전 사장이 유관 부서 통폐합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주공 노조가 반대하고 나섰다. 일단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주공 노조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설득해야 할 노조가 둘이나 있으니 개혁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이 전 사장도 막판에 단일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눈치를 봤다. 승진 인사와 보직 부여 과정에서 1급 어떤 자리는 주공 몫, 어떤 자리는 토공 몫, 1급 승진자의 몇 퍼센트는 주공 몫 등 경영진의 인사에 노조가 직접 개입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공기업 사장은 3~4년이면 바뀌니까 노조가 기업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틀렸다. 공기업의 주인은 노조가 아니라 국민이다. →LH 노조가 왜 귀족 노조인가. -LH에 전문직이라는 게 있다. 일명 ‘5.10.30’(오텐삼십)이라고 부른다. 심각하다. 1급 5년, 2급 10년, 근무 30년이면 현장에서 아웃되도록 하는 제도인데 이렇게 되면 보통 정년을 3~4년 남긴 상태에서 전문직이 된다. 말은 자문, 고문역이지만 아무 일도 안 하고 월급을 받는다. 임금 피크가 있지만 보통 3~4년 일도 안 하고 정년 59세까지 놀고 먹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똑똑한 사람들도 큰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이사는 2년 하면 전문직을 못 하고 퇴직을 해야 한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현장 전문가들이 썩고 있다. 이 전 사장도 정말 이 제도 없애고 싶어 했다. 일 잘해서 이사 하라고 하면 “아직 애들 학교도 졸업 못 했고…”라고 해 버리니까. 사외이사들도 이 제도부터 없애라고 주구장창 주문했다. 하지만 결국 못 없앴다. 세상에 이런 공기업은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과거 토공·주공 사장들은 노조와 싸우기 싫어 적당히 타협을 했다. 임기를 편하게 채우려는 보신주의가 실로 엄청난 폐해를 낳은 셈이다. 실제 전임 사장들은 노조의 파업이 공기업 평가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 때문에 임기 보전과 평가 등을 고려해 노조와 적당히 거래하고, 노조가 반대하면 슬그머니 개혁 작업을 미루는 행태를 보였다. 그런 관행이 개혁 작업을 더디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 전 사장도 초기에는 뚝심과 배짱으로 노조를 무시하고 일을 처리했지만,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에서는 힘이 부쳤는지 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 전 사장의 LH 개혁은 어땠나. -이 전 사장의 개혁안은 A학점짜리다. 가장 큰 이유는 사업 수를 축소했다는 데 있다. 역대 사장들은 이런저런 이유와 민원 때문에 전국에 많은 사업장을 지정했다. 사업 수의 확대는 부채 증가의 지름길이다. 이 전 사장은 실제 전국의 414개 사업장 수를 270여개로 대폭 줄였다. 물론 지역구 사업이 취소된 국회의원들은 난리가 났다. 주민들도 불만을 갖게 됐고, 국정조사에서도 LH가 곤욕을 치렀다. 만약 그때 이 전 사장이 외압에 굴복했다면, 전국의 LH 사업장 수는 500개 이상으로 늘어났을 것이고 지금보다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이다. 물론 과감한 부처 통폐합과 인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한 것은 한계였다고 본다. 과거 두 개 회사가 하던 일을 하나로 통합했으면 직원 수도 그만큼 줄였어야 했는데 조직 안정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직원 구조조정은 후순위로 밀렸다. →LH의 부채 증가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LH 부채 증가의 첫 번째 요인은 자본의 회임 기간이 긴 국책사업의 추진이다. 둘째는 임대주택의 공급이라고 본다. 실제로 임대주택 한 채를 공급하면 약 1억원의 부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문제는 LH가 이미 국민 신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런저런 부채 증가의 원인을 설명해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관 이기주의, 직원 이기주의, 직원 귀족주의에 빠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알아 버렸는데, 정작 회사와 직원들은 아직도 ‘대마불사’의 신화를 붙잡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LH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LH는 지금처럼 큰 인원, 큰 조직으로 갈 필요가 없다. 서울, 인천, 경기, 광주 등 각 지자체가 자회사처럼 지방도시공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주택은 민간도 짓는다. 이제 LH가 기능을 덜어내야 한다. 복지 차원에서 꼭 정부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된다. 조직이 존재하기 위해 계속 사업을 부풀리면 결국 부채만 늘어난다. 1960~70년대 국가 개발주의 시대도 아닌데 왜 공기업이 이를 덜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사장은 사장대로 임기 내에 성과를 보여 주고 싶으니 사업을 늘린다. 정부 역시 임기 내 공기업 개혁 성과를 보여 줘야 하니 개혁의 무늬만 만들고 있다. 임대주택에 대한 정부의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주택청을 신설해 관련 업무를 LH에서 가져가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의 공기업 의존도를 어느 정도 부술 필요가 있다. →LH 특성상 사장 임기가 너무 짧다는 생각도 든다. -낙하산 말고 전문가가 와야 한다. 사장도 5~6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상태라면 현 경영진도 큰 역할이 없을 것이다. 3년 동안 일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사장이 3~4년 하다 가는데 직원들이 말을 듣겠는가.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이정록 교수는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교수(1987년~) ▲대한지리학회 회장(2005~06년) ▲전남대 사회과학대학 학장(2008~10년) ▲한국토지주택공사 이사회 의장(2009~12년)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민간위원(2008~13년)
  • 중2 교과서 독도 오류투성이… 국경선 등 日에 빌미줄 내용 포함

    중2 교과서 독도 오류투성이… 국경선 등 日에 빌미줄 내용 포함

    중학교 사회2 교과서에서 독도 관련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지리·생태적 특성에 관한 단순 오류부터 영토선과 주민 거주 여부처럼 외교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할 만한 대목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송호열 서원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두산동아, 비상교육, 좋은책신사고, 미래엔, 지학사, 천재교과서 등 6종 교과서의 독도 관련 내용을 비교한 ‘중학교 사회2 교과서의 독도 비교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을 한국사진지리학회지에 발표했다고 10일 밝혔다. 송 교수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학계는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교육계는 이 성과를 정밀하게 가공해 차분하게 교육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아직 독도 및 독도 교육에 대한 연구 성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적, 생태적 가치뿐 아니라 독도의 영역적 가치, 군사·안보적 가치를 교과서에 중요하게 기술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교과서 집필진이 독도에 대해 많은 분량(4~7쪽)을 할애하고 비교적 충실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6종 교과서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오류가 나타났다고 송 교수는 지적했다. 비상교육은 독도 면적을 18만 7453㎡로 서술해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이 고시한 면적(18만 7554㎡)과 100㎡ 정도 차이를 보였고 독도를 표기한 지도에서는 해상 국경선을 병기하면서 우리 영해 면적을 줄여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좋은책신사고는 “독도가 울릉도보다 250만년 앞서 형성됐다”고 했지만 210만년 앞서 형성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 밖에 독도에 서식하는 새 종류가 139종이지만 100여종으로 잘못 쓰거나 서식하는 곤충 종 수를 실제 129종과 다르게 93종으로 쓴 교과서도 있었다. 일본이 역이용할 빌미가 될 수 있는 오류도 발견됐다. 두산동아와 미래엔은 독도를 천연기념물로 최초 지정한 연도를 1999년이라고 했지만 천연기념물 최초 지정은 실제로 1982년에 이뤄졌다고 송 교수는 설명했다. 또 지학사는 독도를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묘사했는데 김성도, 김신열씨 부부 등 10명이 독도를 주민등록 주소지로 쓰고 있다. 천연기념물 지정이나 주민등록은 독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배권을 보여주는 근거다. 독도 주변 자원을 과장한 기술이 6종 전체에서 고르게 발견됐다. 깊은 바다 전역에서 개발이 가능한 ‘해양심층수’나 울릉도 주변에 매설된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독도의 부존자원으로 설명했다. 교과서 저자들은 2007년 독도 교육이 집필 기준에 포함된 이후 개편이 잦아 교과서 집필 기간이 몇 개월에 불과했고 기본적인 독도 관련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류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좋은책신사고 저자인 김창환 강원대 지리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부분을 제외한 독도 연구는 초보 단계여서 교과서 집필에 참고할 학계 연구 자료가 부족하다”고 호소한 뒤 “지적된 오류를 검증해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신년기획-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鐵의 실크로드’…부산항이 동북아 물류 허브로 뜬다

    [신년기획-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鐵의 실크로드’…부산항이 동북아 물류 허브로 뜬다

    19세기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리히트호펜은 1877년 중국 신장(新疆)에서 중앙아시아를 통과하는 국제 교역로를 ‘실크로드’(Silk Road)라고 불렀다. 실크로드는 중국을 기·종점으로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럽에 이르는 국제 교역로의 의미로 폭넓게 사용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8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한 데 이어 11월 13일 북한과 러시아가 합작한 나진~하산 철도 프로젝트에 한국이 동참하기로 합의해 부산에서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 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가 1916년 세계에서 가장 긴 시베리아 횡단철도(9297㎞)를 연결한 지 1세기 만이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이 공론화된 지 13년여 만이다. 철의 실크로드 사업은 ‘한반도 종단철도’(TKR)를 구축,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 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GR)와 연계해 유럽까지 경제성이 보장된 수송로를 건설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대안 가운데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유럽까지 최단 거리인 데다 자원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에서 두만강을 거쳐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국경 통과가 적어 통관 절차나 환적(해상운송에서 화물을 다른 운송수단에 옮겨 싣는 것) 등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강원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해상으로 화물을 수송하면 30~33일이 걸린다. 반면 유라시아 대륙 횡단철도로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경유하면 20~22일로 10일가량 단축된다. 운임도 컨테이너 1개당 46%가량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재진 강원발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에너지원의 73.4%를 중동에 의존하는 만큼 러시아 극동지역의 에너지 자원 확보를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라시아 철도가 기대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유라시아 철도를 추진하려면 남북관계 악화로 중단된 남북한 철도연결 사업을 복원해야 한다. 정부는 2000년 9월 경기 파주시 문산부터 군사분계선까지 경의선 구간 12㎞를 착공해 2002년 10월 완공했다. 강원 고성군 제진역부터 군사분계선까지 동해선 구간 7㎞를 2005년 12월 건설했다. 북측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궤도 부설을 2004년 10월 완료했고, 지난해(2013년) 9월 나진부터 러시아 하산까지 철도 54㎞를 개통했다. TKR 노선은 현재 3개 축으로, 이 중 TSR과 연결 가능한 노선은 2개 축이다. 첫번째는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철원까지 연결된 남측의 경부·경원선 노선 533㎞와 북한 평강에서 청진, 두만강까지 749㎞를 연결한 1313㎞의 경부·경원선 축이다. 두번째는 부산에서 포항, 삼척, 강릉, 제진역을 통과하는 470㎞와 북한의 원산, 나진, 두만강 접경까지 781㎞를 합한 길이 1351㎞ 규모의 동해선 축이다. 이 가운데 경원선은 아직 북한과 연결되지 않았고, 동해선 남측 지역도 제진역만 북한과 연결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개통을 목표로 포항~삼척 165.8㎞ 구간을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제진역에서 강릉을 지나는 철도 노선은 계획 중이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동북아교통연구실장은 31일 “제진역에서 남쪽으로 가는 철로가 없다는 점에서 동해지역을 통한 유라시아 철도 구간은 2020~2030년쯤 현실화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동해선 철도는 현재 국내 물류의 70~80%를 담당하고 있는 경부축의 혼잡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특히 부산항과 울산항보다 러시아에 가까운 강원도가 러시아 교역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과의 연결통로 역할을 하는 제진역은 2006년 완공 이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북한 금강산역~남한 제진역 간 거리는 25.5㎞.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던 2007년 5월 17일 남북 간 열차 시험운행에 따라 북한 열차가 한 차례 들어온 이후 더 이상 운행을 못함으로써 역으로서의 역할을 잃었다. 북한 방향 외에 남쪽으로 이어진 선로가 없을 뿐 아니라 6년여간 열차 운행이 없다 보니 선로는 붉게 녹슬었고 7만평에 달하는 제진역사는 황량해 보였다. 고성군 죽왕면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황경원(43)씨는 “금강산 관광 중단 이전보다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면서 “철도 연결 등 남북한 간 화해 협력 분위기만 이뤄지면 지역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유라시아 철도가 실현되면 경부·경원선 축은 여객, 동해선 축은 화물 수송에 제격”이라고 전망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따라 유라시아 철도망이 구축된다면 러시아 철도와 우리 철도의 이질적 시스템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선로 사이의 간격을 의미하는 궤간만 보면 우리와 북한, 중국은 폭 1435㎜의 표준궤를 사용하는 데 반해 러시아는 1520㎜의 광궤를 사용한다. 낙후된 북한 철도의 현대화도 과제로 꼽힌다. 북한 철도의 전철화율은 80.4%로 남한(69.1%)보다 높지만 노후화되고 전력공급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곧잘 운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된다. 안 실장은 “남북 관계의 진전뿐 아니라 일부 구간이 시속 10~20㎞ 수준에 불과한 북한 철도의 현대화 등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성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런던서 뉴욕까지 걷다 찾은 자아

    런던서 뉴욕까지 걷다 찾은 자아

    사이코지오그래피/윌 셀프 지음/박지훈 옮김/21세기북스/336쪽/3만원 심리지리학(사이코지오그래피)은 장소, 기억, 정체성의 상호작용을 탐험하려는 시도로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가 1995년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와 주변 환경의 배치가 우리의 사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또 그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의식의 흐름이 어떠한지 등을 연구하려는 데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걷는 행위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신간 ‘사이코지오그래피’의 저자는 책 제목에 걸맞게 자신의 고향인 런던의 집에서 어머니의 고향인 뉴욕을 심리지리학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도보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일, 가족, 여행 혹은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촘촘하게 짜인 연상이라는 거미줄을 타고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촉수를 내밀어 건물과 풍경,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의 심리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가차 없이 말한다. 발걸음이 닿는 곳의 독특함에 취하고 지리가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며 자신의 기억, 꿈, 연상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한다. 이 책의 주된 테마는 ‘런던에서 뉴욕까지 걸어가기’이다. 두 곳에서의 도보여행을 통해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후엔 ‘인디펜던트’지에 ‘사이코지오그래피’라는 제목으로 실린 단편들의 모음으로 이어진다. 런던에서 뉴욕까지의 여정과 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풀어낸 해석에서 그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며 어떨 때에는 괴짜 같은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뇌하수체로 가득 찬 베이싱토크, 도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파울로는 런던과 로스앤젤레스가 불경스러운 교잡을 통해 낳은 사생아로 취급한다. ‘리오의 히틀러’에서는 여행이 다른 문화를 침범하는 현상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관찰한다. 저자는 참화를 겪은 영국 땅을 두 차례 이상 돌아다녔다.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그는 걷는 행위가 우리 문명에 재앙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한국풍수인물사’ 펴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저자와의 차 한잔] ‘한국풍수인물사’ 펴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

    흔히 풍수는 좋은 땅을 골라서 덕을 보자는 발복의 방편쯤으로 여겨진다. 신라 말엽 중국으로부터 유입됐다는 이른바 ‘술법 풍수’며 ‘음택(陰宅·무덤)풍수’가 그것이다. 실제로 거개의 풍수가는 이 중국 풍수에 매몰돼 있고 일반인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흐름과는 달리 한국에는 발복의 차원을 넘는 상생의 자생적인 풍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천착해 사는 풍수 전문가가 있다. 최창조(63)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한국 자생풍수를 알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살리자는 차원의 책들을 세상에 내놓았던 그가 한국 자생풍수의 계보를 엮은 ‘한국풍수인물사’(민음사)를 펴내 화제다. “언제부터인가 풍수에는 좋지 않은 눈길이 쏟아지고 있어요. 덕을 보자는 욕심과 이기주의의 편식 탓이지요. 우리 자생의 풍수는 사실 그런 측면과는 멀고 오히려 더불어 같이 살자는 조화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 말마따나 책은 중국에서 풍수가 들어오기 훨씬 전 이미 이 땅에서 활동했던 이부터 고려·조선시대까지 살았던 상생의 풍수 흔적을 촘촘히 추적해 보여준다. 신라의 석탈해가 초승달 모양의 집터를 빼앗았다는 기록이며 선덕여왕이 여근곡(女根谷)에 백제 군사가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기록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그 흔적들은 한 틀로 꿰어진다.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비보’(裨褓)와 ‘개벽’이다. “도선국사는 1100개의 사찰을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찾아본 그 사찰들은 한결같이 빼어난 길지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물이 차고 사람 살기에 불편한 땅들이 더 많았어요. 흠결 있는 땅을 찾아 좋은 곳으로 만들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결국 자생 풍수는 이 세상에 완전한 땅이란 없다는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건 땅이건 결함 없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일부러 결함을 택해 그것을 고치려 든 게 자생풍수를 집대성한 도선 풍수의 근본인 셈이지요.” 철저하게 비보에 바탕을 둔 자생 풍수가들의 흔적은 전방위로 뻗쳐 있다고 최 교수는 거듭 말한다. 이를테면 고려 묘청이 천명했던 개벽사상이며 조선 건국 시 무학대사가 폈던 현실정치, 조선말 홍경래와 전봉준의 동학사상이 그 풍수의 부인할 수 없는 궤적이란다. “우리 자생의 풍수는 조상 묏자리 잘 쓰자는 음택보다는 조화로운 생활을 중요시하는 양택(陽宅·살아 있는 사람의 집터) 풍수였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사람의 지리학’이지요.” 자생 풍수를 외치며 풍수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최 교수는 그 명망과는 달리 학계와 풍수가들로부터 외면당해 사는 학자다. 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직을 박차고 나온 것도 그런 맥락에서 돌출된 사건이라고 한다. “어떻게 풍수에서 일률적인 계량화를 요구할 수 있습니까. 지금도 학계에서는 풍수라는 말조차 꺼내기가 쉽지 않지요. 대개의 풍수가들 역시 제가 말하는 비보의 풍수는 귀담아듣지 않는 실정이지요.” 최 교수는 인터뷰 내내 ‘명당은 따로 없다’는 말을 줄곧 입에 올렸다. “명당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풍수에서도 가장 중시할 것은 사람의 삶이 아닌가요. 자연과 사람이 친화하는 최고의 방법을 찾는 게 진정한 풍수의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자생 풍수의 흔적들을 찾아 떠난다는 최 교수. ‘명당이란 없다’는 자신의 말에 거품을 무는 풍수가들, 과학적으로 설명하라는 학계의 채근에도 그의 자생 풍수 고집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땅 못지않게 그 땅에 몸담고 의지해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배우가 무대 탓을 하고,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면 추해 보이지요. 결국 땅도 사람이 하기에 좋고 나쁨이 결정됩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 바로 명당이지요.”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펴낸 건축가 김정후 박사

    [저자와의 차 한잔]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 펴낸 건축가 김정후 박사

    철강대국 독일의 아이콘이던 뒤스부르크의 티센 제철소. 60만평에 이르는 이 거대한 산업유산은 1985년 문을 닫자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고철 덩어리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녹물과 화공약품의 독성 가득한 악취는 시민들에게 ‘절망’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하지만 12년 뒤, 죽음의 땅은 유례없는 친환경 공원으로 거듭나 시민들을 넉넉하게 끌어안기 시작했다. 제철소의 버려진 용광로는 스킨스쿠버장으로, 철제 파이프는 미끄럼틀로, 광석 저장고는 암벽등반 코스로 변신했다. 오늘날 연간 방문객이 50만명에 이르는 뒤스부르크 환경공원의 ‘반전’이다.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자로 ‘지속 가능한 도시 만들기’를 탐구해 온 런던대(UCL) 지리학과의 김정후(44) 박사가 이번엔 유럽 산업유산의 재활용에 주목했다. ‘유럽건축 뒤집어보기’(2007), ‘유럽의 발견’(2010)에 이은 유럽 시리즈 3탄 격인 새 저서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돌베개)를 통해서다. ‘도시 속 도시’로 거듭난 가스 저장고(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 유쾌한 상상력의 아지트로 탈바꿈한 수력 발전소(영국 런던의 와핑 프로젝트), 최고급 호텔로 변신한 200여년 역사의 감옥(핀란드 헬싱키의 카타야노카 호텔) 등 저자가 일일이 현장 취재한 14건의 사례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되기까지의 배경과 도시 관계자들의 지난한 노력 및 갈등, 변화의 의미 등이 충실히 녹아 있다. 김 박사는 산업유산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산업화를 경험한 도시에서 생겨난 산업용 건물이 대부분 역할을 상실한 가운데 이런 시설을 허물지 않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재활용하는 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지혜와 가능성이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산업혁명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경쟁하듯 산업유산 재생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시대가 지나며 삶의 영역 밖으로 밀려났던 건물, 시설들이 시민들의 일상으로 다시 성큼 들어오기까지 가장 필요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핵심이었습니다. 도시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버려진 건물을 헐지 않고 재활용하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반대했죠. 특히 파리의 철도, 빈의 가스 저장고, 뒤스부르크의 제철소 등은 막대한 부지만 차지하고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하루빨리 이를 없애고 재개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 당국과 전문가들은 머리를 맞대고 산업유산이 훌륭하게 재활용될 수 있음을 시민들에게 치열하게 설득했습니다.” 산업유산의 성공적인 재활용이 도시와 시민들에게 가져다준 혜택, 일깨워준 가치는 해당 도시의 장소성과 역사성의 복원이라고 저자는 짚어낸다. “도시의 역사와 전통을 기억하게 만듦으로써 시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설명이다. 탄광촌을 개조한 영국 더럼의 비미시 박물관이 탄광업의 쇠락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은 사례 등이 그렇다. “도시는 다양한 세대의 삶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예술품입니다. 산업유산에 담긴 이전 세대의 삶, 시간의 켜와 흔적을 살리면서 우리 시대에 맞는 새 기능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지속 가능하고 풍요로운 삶의 환경이죠.” 김 박사는 “우리 역시 선유도 공원, 윤동주 문학관 등 산업용 시설을 도시의 훌륭한 재산으로 되돌렸듯 더 늦기 전에 언제 헐릴지 모를 산업유산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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