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지도자들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대출 이자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흑색선전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문화체육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폐업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700
  • ‘고장난 자본주의’ 글로벌 처방책 서둘러야

    29일 폐막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는 자본주의가 고장났다는 진단과 함께 ‘거대한 전환-새로운 모델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포럼은 대안 찾기까지 나가지 못한 채 세계적 경기 침체 상황의 심각성을 여러 가지 표현으로 묘사하는 데 그쳤다. 비관적인 전망일수록 주목받았다. 낙관론자들은 말을 아꼈고 비관론자들은 과거보다 더 강한 어조로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설파했다. 성장과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사회 전체의 만족도를 높이는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포럼 참가자들은 뜻을 모았다. 세계 각국이 소득 양극화와 청년 실업 문제에 맞닿아 있음에도 국제적 무역 불균형과 글로벌 재정 위기로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디스토피아’가 10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미 세계 인구의 0.5%가 전 세계 부의 38.5%(89조 1000억 달러)를 소유한 상황에 대한 반발은 극에 달했고,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은 스스로의 리더십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처했다. 결국 올해 다보스포럼은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동력을 찾기보다 그동안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췄다. 포럼은 ▲소비와 부채 위주 성장이 아닌 지속 가능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성장 ▲신흥국과 민간 기구 등을 포함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활성화 ▲에너지 등 제한된 자원을 보호하려는 새로운 사고방식 ▲생명과학·인공지능 등 기술 혁신을 통한 삶의 질 제고 등을 전환의 4가지 모델로 제시했다. 당면한 위기인 유로존 재정 위기와 관련해서는 국제 공조의 필요성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로존 구제기금을 늘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화벽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이 추가 기금 부담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독일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낼지는 미지수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1%만의 리그… 경제불평등 해법 ‘감감’

    유로존 재정 위기와 세계 경제 침체의 이중 악재 속에 지난 25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막을 올린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가 29일 폐막했다. 매년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국제 사회의 시급한 현안들을 논의해 온 다보스 포럼은 올해 특히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인한 전 세계적 반(反)자본주의 여론을 의식해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과 21세기적 대안 모색을 주요 의제로 내세워 주목을 끌었다.이에 따라 이번 포럼에선 어느 해보다 빈부 격차 해소와 사회 정의에 대한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수파차이 파니차팍 세계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은 28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 사회는 금융 위기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해소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 곳곳에서 평등, 정의 그리고 공명정대한 일처리를 촉구하고 있다.”면서 “일부 엘리트가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글로벌 마켓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개막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실패를 인정하며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던 포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도 27일 행사장 외곽에서 다보스 점령 운동을 벌이던 시위대에 면담을 요청하는 등 99%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포럼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유럽 재정 위기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8일 “발등의 불인 유로존 위기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정치인들이 위기 해법의 전면에 나서면서 포럼에 참석한 산업계, 금융계, 학계 인사들은 전례없는 무기력증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다보스포럼이 말의 성찬에 비해 대안이나 행동은 없고, 결국은 ‘1% 엘리트들만의 리그’에 그쳤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불공정 무역 관행이나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서구 노동자의 어려움과 줄어드는 연금에 대해서만 포커스를 맞추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한편 다보스포럼의 대안 성격으로 25일 브라질에서 개막해 29일 폐막한 세계사회포럼(WSF)은 “오는 6월 5일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서 자본주의에 반대하고 환경적·사회적 정의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다보스 포럼에서 제기된 자본주의 위기

    21세기 들어 지구촌은 정치와 경제 양 측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여전히 각국을 지배하고 있는 20세기형 정치, 경제 시스템이 21세의 급격한 사회,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징표들은 정치 쪽에서 먼저 나타나기 시작됐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리더십을 잃어가고 있다. 무슬림 지역에서도 ‘재스민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정치 체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민주주의의 확산이 21세기 정치 시스템 변화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현재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 중인 세계경제포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이 참가하는 다보스 포럼의 올해 첫 토론 주제는 ‘20세기 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에서 실패하고 있는가’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탐욕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에 따른 유럽 등의 재정위기, 그리고 각국에서 팽배한 극심한 빈부 격차 등 20세기형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을 국제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자본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1세기에 맞는 자본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일이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신봉자이지만,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한경쟁 체제의 낙오자들을 적절하게 돌보지 못한 데서 위기가 왔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낙오자와 약자를 포용하는 것이 21세기형 자본주의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다. 그런 체제를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바로 복지 정책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복지 논쟁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의 선봉에 서 있는 기업들의 인식과 역할이 중요하다. 빵, 커피, 떡볶이 등 골목 상권에까지 진출해 서민경제를 어지럽히는 한국 대기업의 행태가 21세기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 英·獨 “EU - 美 FTA 강력 지지”

    독일과 영국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다보스포럼)에서 잇따라 유럽연합(EU)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해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1월 미국과 유럽연합 정상이 FTA를 위한 예비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한 데 이어 독일과 영국이 공개 지지 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미·유럽연합 FTA 체결 움직임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 간 FTA가 2001년 11월 이후 도하라운드로 상징되는 다자간 무역체제를 더욱 훼손시키고, 경제 대국의 이익과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25일(현지시간) 포럼 연설에서 미·유럽연합 FTA가 세계 무역에 긴요한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연합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다른 국가와 체결한 FTA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독일 총리의 전날 기조연설에 동조한 발언이다. 메르켈 총리는 연설에서 “유럽연합과 미국은 교역량이 6000억 유로(약 882조 5000억원)에 이르고 협력 잠재력이 남아 있어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라며 유럽연합과 미국 간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유럽연합 정상회담에 이은 독일과 영국 총리의 이 같은 언급은 농업 보조금과 관세 감축에 따른 각국의 이견으로 수년간 교착상태에 놓인 도하라운드가 생명을 다했다는 세계 지도자들의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그럼에도 자유무역의 보루인 도하라운드가 퇴보하고 경제 대국이나 선진국 간의 무역만 확대되면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소외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10월 세계지식포럼에서 도널드 존스턴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FTA가 확산될수록 개도국은 소외된다. 어떤 나라가 라이베리아를 FTA 대상국으로 선택하겠는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도 양국 간 FTA가 도하라운드 자유무역 협상의 동력을 소진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경제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과 유럽이 FTA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사설] 중앙당 폐지 실현하려면 정당법 고쳐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 대표와 최고위원 중심인 현행 지도체제를 폐지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중앙당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고 원내 정당을 지향하려는 방안에 대해 친박계 등 당내 일각의 시기상조론도 만만찮다. 우리는 원내 정당화가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정당정치 선진화 방안이지만, 여야가 손을 맞잡아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상·하원 지도자들이 평상시 정당을 이끄는 미국식 원내정당을 모델로 삼고 있다. 당 대표와 사무처 등 상근조직을 없애고 전국위원장이 당원 관리·교육을 전담하는 정도의 중앙당 기능만을 수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국위+원내 정당화’는 잘만 운용되면 ‘돈 봉투 전당대회’를 청산할 대안이 될 수 있을 게다. 당 대표가 당직 인선권과 공천권을 장악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전대 때마다 돈 봉투를 돌리는 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지 않은가. 과거 전대 돈 봉투 의혹으로 박희태 국회의장이 수사 대상으로 전락한 데 이어 민주당 대표 예비경선장 화장실에서도 돈다발이 오갔다는 보도를 보라. 그러나 미국식 원내정당화가 한국정치의 구태를 해결할 만능열쇠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각 정당의 행태를 보자. 여당 최고위원회의는 계파 갈등으로 온갖 가십만 쏟아내면서 ‘봉숭아 학당’이라는 비아냥을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원내대표가 이끄는 의원총회 또한 친이-친박이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등 사안마다 부딪치면서 민주적 토론으로 당론을 정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야당 의총도 종북 논쟁 등 쟁점을 놓고 ‘개그 콘서트’ 못잖은 희화적 행태를 연출해 왔다. 심지어 원내대표가 여야 협상에서 합의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절충안을 손바닥 뒤집듯 뒤엎어 버리기도 했다. 사실 중앙당 폐지에 앞서 미국의회에서처럼 크로스보팅이 일반화되는 등 타협과 절충의 정치문화부터 착근시켜야만 한다. 그러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느 한 당이 먼저 나서면 손해라는 현실론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중앙당 폐지는 여당의 비대위가 아니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다. 여야는 ‘돈 봉투 전대’와 결별하겠다면서 전당대회를 국민 혈세로 지원하려는 엉뚱한 발상을 접고, 중앙당 기능 축소를 지향하는 정당법 개정 논의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 [씨줄날줄] 영양지원 vs 식량지원/구본영 논설위원

    중국의 적십자사인 홍십자회가 최근 북한에 30만 위안(5400만원) 상당의 라면을 지원해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김정은체제 출범 후 중국의 첫 지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 간 대북 지원을 매개로 미묘한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랬다. 김정일 사망을 전후해 진행 중인 미·북 접촉에서 미국은 대북 ‘영양지원’(nutritional assistance)을 협상 카드로 내놨다는 후문이다. 종래의 식량지원(food aid)과는 차별화된 용어다.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 내려는 ‘바겐 칩’이라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지원 품목이 달랐다. 즉, 쌀·옥수수 같은 장기 저장이 가능한 식량 대신에 분유·비스킷이나 비타민 보충제를 주겠다는 것이다. 협상에서 북한은 영양지원 규모를 당초 24만t보다 늘리면서 쌀 등 알곡도 추가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미국은 불응했다고 한다. 미국이 영양지원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뭘까. 국무부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은 “‘영양지원’은 지도자들의 연회 테이블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쌀이나 통조림 같은 ‘식량지원’은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기 쉽다.”는 전제와 함께. 영양지원은 문자대로라면 실제로 영양결핍 상태인 북한주민에게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둔 용어다. 하지만 북한이 군수용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음은 물론이다. 그 지향점이 어디든, 영양지원 카드가 일정 부분 명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어린이와 산모의 영양 부족이 특히 심각하다는 점에서다. 북한 영유아의 신장이 남한에 비해 평균 10㎝가량 차이가 난다는 세계식량계획(WFP) 통계를 보라. 게다가 북한이 식량 분배 모니터링에 소극적인 것도 문제다. 과거 남한이 준 쌀을 북측이 중국에 되팔고 값싼 태국산 싸라기를 구입해 차액을 남겼다는 첩보도 있었다. 그래서 중국이 이번에 라면을 지원품목으로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식량도 영양도 아닌, ‘식품’을 골랐다는 점에서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를 바라는 중국이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올 때까지 대규모 식량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한·미를 의식해 나름의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비친다. ‘김씨 왕조’가 핵카드를 버리지 않는 한 북한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질 뿐일 것 같아 여간 안타깝지 않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리셋외교’ 설계자 맥폴 美·러 관계악화 불씨로

    ‘리셋외교’ 설계자 맥폴 美·러 관계악화 불씨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 이른바 ‘리셋외교’를 설계한 모스크바 주재 신임 미국 대사가 업무 착수 이틀 만에 크렘린의 분노를 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마이클 맥폴(49) 대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야권 핵심 인물들과 회동을 갖자 가뜩이나 3월 대선을 앞두고 날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 관리들이 맹공을 퍼부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최근 반정부 시위의 배후에 서방이 있다고 주장해온 러시아 정부로선 좋은 빌미이자 미·러 관계 악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스탠퍼드대 정치학과 교수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러시아·유라시아 담당 국장을 지낸 맥폴 대사는 20년 러시아통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러시아 내 강경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과거 행적을 보면 민주주의 선전으로 러시아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2008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수직적 정부 구조로 푸틴 체제 아래 정치 안정이 희생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고 등을 썼으니 크렘린으로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국영TV 채널 원은 17일 “맥폴의 진짜 목적은 야권 지도자들을 지원하고 혁명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며 과거 맥폴이 미국의 재정 지원을 받는 비영리단체 전국민주연구소(NDI) 러시아 사무소에서 일했던 전력, 1990년대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을 문제 삼았다. 방송을 본 맥폴 대사는 트위터에 “리셋외교 3년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군”이라고 응수했다. 블로그에는 야권 인사와의 회동은 통상적인 ‘양면 관계’ 차원의 만남이었다고 해명했다. 미국 관리들은 정부 관리뿐 아니라 시민사회 지도자들도 함께 만난다는 설명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살아남는 용병 이유가 있었군!

    살아남는 용병 이유가 있었군!

    KGC인삼공사는 16일 로드니 화이트를 보내고 크리스 다니엘스를 불러들였다. 미 프로농구(NBA) 출신의 화이트는 노련하게 인삼공사를 이끌었지만 챔피언을 노리기에는 높이에서 2% 부족했다. 훈련 중 화를 내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거나, 경기 중 공을 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했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이상범 감독은 “(화이트의 돌출행동은) 한국문화를 잘 모르니까 그랬는데 다음에 혹시 다시 온다면 알 것”이라면서 “다니엘스는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다. 성품이 좋으니 약속플레이도 잘 지키고 팀에도 금방 녹아들 걸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니엘스는 2008~09시즌부터 오리온스·동부·KT&G(현 인삼공사)·전자랜드·KCC를 두루 거치며 안정적인 기량을 보였다. 이로써 KCC(디숀 심스)를 제외한 9개 구단이 모두 새 얼굴이 아닌 국내 코트에 낯익은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됐다. 자유계약제도이고 1명 보유·1명 출전의 규정 덕에 쟁쟁한 선수들이 KBL을 노크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결국 ‘구관’이 대세가 됐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정규리그 순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운데 무리한 모험보다 이미 국내 코트를 잘 아는 선수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외인의 조건은 뭘까.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성품을 들었다. 기량은 어차피 고만고만(?)한데 그걸 잘 발휘하려면 우리 문화에 대한 적응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부의 로드 벤슨은 강동희 감독이 말할 때 ‘열중 쉬어’ 자세로 듣는다. 한국사람 다 된 것. 감독과 코치 말이라면 군말 없이 100%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갈등도 많았다. 약속된 패턴플레이를 무시하고 독불장군 짓을 했고, 감독에 항명도 했다. 반항이라기보다 수평적인 미국문화에서 살다 한국에 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강 감독은 벤슨을 단호하게 다뤘다. 미국으로 당장 떠나라고 짐을 싸서 내쫓은 적도 있다. 힘 겨루기가 일단락되자 벤슨은 이제 선두팀의 대체 불가능한 외국인 선수가 됐다. 강동희 감독은 “한국문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수다. 국내선수를 존중하는 마음, 한국적 예의를 갖추는 게 기량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악동’으로 불리던 테렌스 레더(모비스)도 요즘은 ‘순둥이’가 됐다. 코트에서의 승부욕은 여전하지만 숙소 생활은 확 바뀌었다. 통역이 운동화까지 들고 다닐 정도로 악명이 높았던 레더는 요즘 손수 빨래도 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10개 구단에서 ‘버림’받은 게 꽤나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교체선수로 다시 KBL을 밟은 레더는 회식 때도 전처럼 따로 먹지 않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포장해온 음식을 어울려 먹는다. 눈치가 빨라 웬만한 한국말은 다 이해하고, 심지어 “왜 그래”, “알았어.”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애론 헤인즈(LG)와 레바논 리그에서 한솥밥 먹을 때는 둘이 재미 삼아 한국말을 쓰기도 했단다. 이도현 모비스 대리는 “용병이 한국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기본조건”이라고 했다. 내년 시즌 외국인 선수 선발은 다시 드래프트 제도(2명 보유·1명 출전)로 돌아간다. KBL에서 뛰고 싶다면 한국문화를 향해 마음부터 열어야 할 것 같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4)조직의 귀재 리위안차오

    [뉴차이나 시진핑 시대 사람들] (4)조직의 귀재 리위안차오

    현재 공산당 서열 18위의 정치국 위원인 리위안차오(李源潮·62) 당 중앙조직부장이 올가을 제18차 전대에서 서열 6위의 국가부주석이나 선전을 관장하는 서열 5위의 상무위원에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 선전과 조직 업무에 달통했기 때문이다. 리 부장은 중국 권력의 3대 파벌인 ‘퇀파이’(團派), ‘태자당’, ‘상하이방’에 모두 포함된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에서 7년간 중책을 역임하면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신뢰를 쌓았다. 상하이에서 성장했고, 상하이에서 출세한 상하이방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리간청(李干成) 전 상하이시 부시장이다. 아버지 역시 공청단 허난성 서기를 지냈다. 출세에 도움이 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했다. 문화대혁명 때 다른 ‘지식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집단농장으로 상산하향(上山下鄕), 4년간 중노동을 했다. 공농병 청강생으로 상하이사범대 수학과에 들어가 1년반 과정으로 속성 졸업한 뒤에는 수학교사로 근무했다. ●공청단서 중책… 후 주석 신뢰 얻어 대학입시 재개와 함께 명문 상하이 푸단(復旦)대 수학과에 다시 입학하면서 비로소 출세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아버지는 문혁 종료와 함께 완전히 복권돼 상하이시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을 맡고 있었다. ●‘주특기’ 선전 관장 상무위원 가능성 대학 졸업 후 학교와 상하이시 공청단을 관할하던 리 부장은 얼마 안 있어 공청단 중앙으로 추천돼 중앙서기처 서기에 보임됐다. 이때 후 주석은 상무서기를 맡고 있었고, 리 부장보다 5살 아래인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는 후보서기에 임명됐다. ‘공청단 쐉리(雙李·두 명의 리 서기)’는 후 주석의 영도 아래 공청단 중앙에서의 생활을 시작해 친밀한 동지관계를 이어갔다. 승승장구하던 리 부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공청단 중앙에서 잘나가던 그는 1990년 말 공산당 중앙대외선전소조 국장으로 사실상 좌천됐고, 3년 후에야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으로 차관급 위치에 올랐다. 한참 후배인 리 부총리는 이미 장관급인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를 꿰찬 뒤였다. 10년 가까이 당과 정부에서 선전 업무를 관장하던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오랜 간청 끝에 지방 당무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방 근무는 중국 지도자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고향인 장쑤성에서 부서기를 시작으로 당서기까지 7년간 실무를 가다듬었다. 일각에선 이때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 후 주석의 후광으로 2007년 제17차 전대 때 정치국 위원에 올랐다는 악평도 나온다. ●경제학 석사·법학박사 취득 베이징대 경제학과에서 석사 학위, 중앙당교에서 과학사회주의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푸단대 재학시절 기숙사 불이 꺼지는 밤 11시 이후 교정 가로등 밑에서 독학으로 익힌 영어 실력도 수준급이고, 이례적으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수 경력도 갖고 있다. 출생 당시 중국 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직후여서 아버지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을 반대하고 북한을 지원)의 ‘위안차오’(援朝)로 이름을 지었다가 같은 발음의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는 설도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설] 박희태 의장 당장 귀국해 진실을 밝혀라

    한나라당의 2008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으로 여야 정치권이 좌불안석이다. 특히 박희태 국회의장의 당시 경선 캠프 인사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한나라당은 패닉 상태다. 오죽하면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에서 명함 돌리기조차 힘든 분위기”라며 공멸의 위기감을 토로할 정도이겠는가. 우리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박희태 의장이 해외 순방을 중단하고, 귀국해 진실을 밝히는 게 순리라고 본다. 검찰 수사의 칼날이 전대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를 정조준하면서 조직적으로 돈을 살포했을 것이라는 정황은 속속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 안병용 한나라당 은평갑 당협위원장 등 박 후보 측 핵심 인사들은 모두 혐의 사실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돈을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줬다는 주체는 없는 희한한 현상이 이어지는 꼴이다. 이 와중에 여당은 의원들끼리 트위터 설전을 벌이는 등 자중지란까지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간 2007년 대권 경선에서도 금품이 오갔을 것이라는 자폭성 주장까지 제기된다. 사태가 이럴진대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 의장이 한가롭게 해외를 떠돌 때인지 묻고 싶다. 박 의장은 지난 9일 일본에서 열린 제20차 아시아·태평양의회포럼(APPF) 총회 참석에 이어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스리랑카를 돌며 방문국 대통령과 국회의장 등을 만나는 일정을 이어 가고 있다. 상대국 정치 지도자들과의 면담을 갑자기 취소하는 것은 국익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다. 하지만 현직 국회의장이 부끄러운 의혹을 사고 있는 엄중한 상황이 아닌가. 예정된 순방 일정을 단축하더라도 검찰 조사에 조속히 응하고 책임을 질 일이 있으면 지는 게 오히려 입법부 수장이라는 공직의 무게에 값하는 자세일 것이다. 돈 봉투 사건은 우리 정치권 전체가 얼마나 금권에 찌들어 있는가를 보여 주는 빙산의 일각 같은 사례다. 민주통합당의 전대 금품살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여야를 떠나 혐의를 받는 인사는 누구든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진솔한 양심 고백을 해 한국 정치의 60여년 고질인 금권정치를 타파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침략루트 열릴라 中, 北 못 버린다

    침략루트 열릴라 中, 北 못 버린다

    “우리는 원자탄과 미사일을 두려워 해선 안 됩니다.(중략) 제국주의자들이 우리에게 전쟁을 걸어 올 경우 우리는 3억 이상의 인명을 희생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략) 전쟁은 어차피 전쟁입니다. 세월은 흐를 것이고, 우리는 다시 예전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212쪽) 인구 부문이 약간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장 같지 않은가? 북한의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발언인가 싶다. 속으로는 겁을 집어먹었을지언정 북한이 미국을 향해 독하게 쏟아내는 ‘벼랑 끝 전술’과 똑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1956년 마오쩌둥이 소련의 흐루쇼프의 자본주의 진영과의 평화공존 정책을 비판하며 쏟아낸 발언이다. 1971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해 미·중 수교의 첫 장을 연 헨리 키신저가 지난해 5월에 펴낸 ‘중국이야기’(민음사 펴냄)는 청나라의 이홍장을 시작으로 마오쩌둥-덩샤오핑-장쩌민 등의 중국 정치 지도자들 특유의 외교전략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신저는 21세기 G2로 성장한 중국의 국제관계나 외교정책을 이해하려면, 먼저 ‘분열하면 반드시 통일하고, 통일하면 반드시 분열했던’ 중국의 오래된 제국의 역사와 통치의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이민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중국에 ‘외교’란 풍성한 외교적·경제적 수단을 활용해 적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들을 중국이 감당할 수 있는 관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외교는 방어가 목적이고, 군사적 공격조차도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 타격을 줘 도전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등을 통해 전통사회를 철저히 깨부수려 했지만, 여전히 유교적 틀 안에서 사고하고, 제국이었던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랑캐를 다스리듯 이웃나라와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1956년 마오쩌둥의 발언은 이런 중국적 외교의 특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강경하게 발언하지만, 막상 군사적 대치 속에서는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마오쩌둥은 이념적 형제인 중국공산당 대신 국민당의 뒤를 봐주며 극동 해안과 만주, 신장 등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긴 소련에 대해 힘이 다 갖춰지지 않았을 때도 칼을 들이댔다. 그 덕분에 중국은 20년간 인연을 끊었던 미국과 수교를 맺게 된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리는 이이제이를 연상케 한다. 또한, 마오쩌뚱은 세계 초강대국이던 소련과 미국을 놓고 심리전도 벌인다. 제갈공명의 ‘공성계’(空城計)의 패와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마오쩌둥은 1958년 미국에 대항해 타이완의 진먼과 마쭈에 대한 포격을 실시하는데, 이보다 3주 전에 흐루쇼프가 베이징을 방문케 한다. 모스크바가 사전에 타이완에 대한 포격에 동의하는 듯한 인상을 미국에 던져준 것이다. 이때 마오쩌둥은 미국이 실제로 전쟁을 걸어올까 걱정해 미국 선박을 피해 조심조심 포격할 것을 군대에 요청했다. 덩샤오핑도 비슷한 전술을 1978년에 썼다. 덩샤오핑은 1978년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1979년 베트남 침공을 통보했다. 막상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하자 미국이 이 침공을 허락한 듯한 인상을 주게 돼 다른 강대국이 간섭할 생각을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장쩌민 역시 주권의 제약을 암시할까 봐 중국의 폭력 사용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지만, 30여 년 무력 사용을 자제했다. 키신저의 시각에서 보면 마오쩌둥을 비롯해 중국의 지도자들은 레닌보다는 손자병법이나 삼국지, 수호지와 같은 중국의 고전에서 더 많이 외교적 과제나 주도권을 계획한다고 평가했다. 1969년 당시 미국과의 수교전략에도 삼국지를 인용했다고 한다. 키신저의 중국이야기를 통틀어 한국에서 관심을 둘 부분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 과정과 소련 대신 중국이 한국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원인을 분석한 대목이다. 키신저는 북측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 두 지도자가 그 나름대로 국가의 명분을 위해 평생을 싸웠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한반도 전체에 대한 리더십을 주장했다고 평가했다. 마오쩌둥은 북한의 남침이 중국이 타이완을 정복해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판단했지만, 북한의 김일성은 타이완이 중국의 손에 떨어지면 남한에서 자신의 기회를 잃을 것을 간파했다. 그 때문에 맥아더 장군이 1949년 3월 한국을 미국의 방위선 밖으로 내놓고, 1950년 1월 딘 애치슨이 아시아 정책관련 연설에서 이를 확인해주자,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에 남침을 허락받고자 집요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지지를 얻어냈다. 젊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 머리 끝에서 놀았던 셈이다. 키신저는 중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이유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이 성공하자, 1894년 청일전쟁과 같은 비극적 역사가 반복될 가능성에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제가 만주 점령과 중국 북부 침공을 감행했던 그곳에 미군이 등장하는 것을 중국이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1894년 일제의 ‘전통적인 중국 침략 루트’를 미국에 용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2011년 책을 쓰는 시점에서 북핵을 어젠다로 중국과 미국이 만난다는 것이 아이로니컬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은 북핵 프로그램 초기 10년 동안은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방관했다. 그러나 북핵이 확산돼 일본,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다른 나라에도 핵확산 가능성이 발생하자, 아시아의 전략적 지형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북한의 붕괴도 두려워한다.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이 60년 전 한국전에 개입해 방지하려고 했던 ‘전통적 침략 루트’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595~596쪽) 키신저는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미 대화를 기본으로 한 6자회담으로 복잡해질 수 있는 국제관계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키신저가 소개한 중국 지도자들의 외교정책을 지켜보고 있으면, 전략적 사고보다 다양한 사안에 대해 대체로 ‘조용한 외교’로 대응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가 능사인지 의문이 생긴다. 2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美 공화 두번째 경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전망

    美 공화 두번째 경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결과·전망

    10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국민참여 경선)에서 밋 롬니 전 매세추세츠 주지사가 예상대로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롬니는 현대적인 공화당 경선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2군데에서 모두 승리한 공화당 경선후보가 됐다. ●헌츠먼, 깜짝 3위로 완주 동력 얻어 롬니는 이날 39.4%의 득표율(개표율 95% 현재)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4년 전 이곳 프라이머리에서 32%를 차지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이다. 이로써 롬니는 지난 3일 아이오와에서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의 돌풍에 일격을 당했던 대세론에 다시 힘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됐다. 2위는 22.8%를 얻은 론 폴 하원의원이 차지했다. 폴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위로 선전한 데 이어 뉴햄프셔에서 2위로 도약함에 따라 장기전의 기반을 확고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4년 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불과 8%를 득표해 부진했었다. 3위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포기하고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전력투구했던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16.8%)가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중도사퇴 위기에서 벗어나 경선을 더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아이오와에 이어 뉴햄프셔에서도 4위(9.4%)를 기록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신데렐라처럼 급부상했던 샌토럼은 9.3%로 5위에 그쳤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사실상 포기했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0.7% 득표율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보수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은 뉴햄프셔에서 온건보수 성향의 롬니가 예상대로 싱거운 승리를 거둠에 따라 관심은 벌써부터 다음 경선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21일)로 옮겨졌다. ●‘신데렐라’ 샌토럼 5위 그쳐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 비율이 60%가 넘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이어서 이들의 지지를 업은 강경보수 성향 후보들이 온건보수 성향의 롬니에 역전을 노릴 만한 ‘기회의 땅’으로 주목된다. 복음주의자들이 이단으로 간주하는 몰몬교 신자인 롬니는 4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15%밖에 얻지 못했다. 관건은 강경보수 성향의 샌토럼과 깅리치, 페리 등 셋 중 한 후보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이 지지를 단일화할 수 있을지 여부다. 단일화가 성공한다면 롬니에 대한 역전이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 표가 분산되면서 롬니가 어부지리를 얻을 개연성이 높다. 공화당 보수파 지도자들은 13∼14일 텍사스에 모여 단일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만일 롬니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단 몇표 차이로라도 1위를 차지한다면 대세론이 거세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1위를 강경파 후보에게 내주고 역전당한다면 향후 극도의 혼전이 펼쳐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는 경선 초반전의 최대 분수령이라 할 만하다. 1980년대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 승자가 예외 없이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왔다. 맨체스터(뉴햄프셔)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열린세상] 넥스트 데모크라시를 기다리며/장은수 민음사 대표

    [열린세상] 넥스트 데모크라시를 기다리며/장은수 민음사 대표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탓인지, 연말과 새해 모임의 화제는 단연 박근혜와 안철수 두 사람의 ‘결심’이었다. 박근혜 위원장이 어떤 방법을 통해 한나라당을 되살릴 것인지, 안철수 원장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결심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결심을 통해 인간은 과거를 정지시키고, 현재를 변화시키며, 미래를 초대한다. 결단의 순간이 어려운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낡은 삶의 지침을 송두리째 버리고 새로운 삶의 나침반을 갖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한 개인의 결심이 자신을 넘어 사회 전체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릴 때가 있다. 삼봉 정도전이 마흔한 살의 나이로 이성계를 찾아 함경도로 간 순간이 그러했다. 그는 스물한 살의 나이로 국정을 개혁하고,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원하며, 권력의 부정을 일소하려는 야망을 품고 출사했다. 그러나 기존 권문세족과 충돌한 끝에 20년 동안 삭탈관직과 유배를 거듭한 데다, 그 무렵에는 심지어 사는 곳에서 쫓겨나 유랑살이를 하면서 빌어먹기까지 해야 했다. 좌절과 절망이 그를 둘러싸고, 분노와 한숨이 그를 사로잡았다. 마침내 모든 혁명가가 그러했듯이, 정도전은 고려 자체를 버리지 않고는 어떤 미래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 왕조를 열 현실적 힘을 가진 이성계를 찾아간 것이다. 그 순간 신권으로써 왕권을 견제하고 과거를 통해 신권의 독점을 가로막고자 한 정도전 사상의 제도적 실체가 탄생했으며, 붕당제와 관료제라는, 어쩌면 오늘날까지 여전히 끈질기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생겨났다. 현재 우리 지도자들이 마주한 순간도 삼봉이 마주했던 것과 같은 심각한 정치적 결단의 때일지도 모른다. 낡아빠진 질서를 수선해서 다시 쓸 것인가, 이를 폐기하고 아예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절체절명의 선택이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우리 앞에 놓였다. ‘안철수 현상’이 상징하는 ‘소셜’ 정치의 탄생과 디도스 공격과 돈 봉투 살포로 한계를 드러낸 ‘정당’ 정치의 몰락은 그동안 우리를 지탱해 왔던 시스템의 파멸적 종언을 보여준다. 기존 정당들은 몇 번이나 요술을 부려 이 시스템의 생명을 근근이 이어왔지만, 이번만큼은 이를 연장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정치를 위협하는 지진해일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이미 다른 모든 분야에서 일어난 혁명이 뒤늦게 정치 자체를 공격하는 구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장치산업과 같았다. 먼저 거대한 돈을 들여 대규모 설비투자를 한 후 나중에 상품을 만들어서 이익을 올리는 굴뚝산업처럼 운영된 것이다. 한국정치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구축한 설비, 즉 유지와 관리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지구당’이라는 조직을 결코 버리지 못했다. 전국에 실핏줄처럼 퍼진 지역조직을 통해 여론을 조절하면서 표를 이끌어내는 ‘맛’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다. 돈 봉투 살포는 이런 정치 공론장이 사실상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건일 뿐이다. 한마디로, 높은 진입 장벽을 이루어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은 것은 ‘돈’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등 네트워크화한 세계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디어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공동의 관심사와 가치에 근거를 둔 정치적 동맹을 이룩하고 이를 온라인 미디어 공론장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확산하면서 공유하는 비용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다른 모든 산업이 그러했듯이, ‘정치 산업’ 역시 네트워크 혁명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저비용 고효율’의 혁신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혼수상태에 빠진 정당의 각종 재산이나 헤아리면서 생명 연장장치를 떼지 못하거나, 국민 경선에 돈 봉투를 살포하고도 관행을 빌미로 슬쩍 눙치려 해서는 결코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체제, 즉 ‘넥스트 데모크라시’를 상상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와 안철수 등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결심’을 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넥스트 데모크라시’를 염두에 두지 않고는 어떤 시도도 헛되게 될 것이다. 권력은 이제 여의도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있으니까.
  • 한·중 소통 강화… 외교장관 핫라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중 정보 불통(不通)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중 양국이 지난 2005년 설치된 외교장관 간 직통전화(핫라인)와 외교당국 간 고위급 전략대화 등을 통해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기로 했다. 한·중 양국은 1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한·중 공동언론문’을 발표했다. 9~10일 이틀간 진행된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원자바오 총리와의 면담,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의 면담 등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양국은 중국 어선 불법 어로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어업 질서의 공동 수호 및 어족자원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양국 수산당국이 기존 협조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 고위 지도자들의 교류를 유지하고 정부·의회와 정당 간 교류와 각 분야의 실무협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직급에서 소통과 조율을 원활히 함으로써 공동 이익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중국 측은 남북한 양측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와 협력을 추진해 최종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조속한 체결이 양국의 이익에 부합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한국의 국내 절차가 끝나는 대로 한·중 FTA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 한·중은 또 양국 간 경제통상 협력이 안정적이고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2015년 무역액 3000억 달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베이징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CEO 칼럼] 420년 전 壬亂 새기고 국운 융성을 바란다/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CEO 칼럼] 420년 전 壬亂 새기고 국운 융성을 바란다/김광재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임진년 새해를 맞으니 420년 전 임진왜란이 떠오른다. 일본의 침략 앞에서도 당파적 이해로 국론이 분열되어 그 결과, 온 백성이 7년 이상 고통받았던 아픈 역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위기, 재정위기의 파고 앞에서도 정치권은 정파적 이해에만 몰두하고 있다.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이 제대로 되지 못하니, 수많은 국민은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힘든 지경이다. 세계 193개국 중 우리나라가 갈등이 많기로 4위라고 한다. 이념 갈등, 지역 갈등, 노사 갈등에 이어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보듯 세대 간 갈등까지 극명하게 표출됐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던 구소련이 무너지고, 중국도 흑묘백묘론의 실용과 수정사회주의로 정책을 바꾼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친북, 종북, 반북으로 남남 갈등에 시달리며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도 변화를 꺼리면서 진보를 막으려는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간디는 “맹목적 이기주의는 나라를 망친다.”고 말했다. 6개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해 놓고도 부처 간 이기주의로 자유교역을 활성화할 규제 완화는 미흡한 현실이다. 산업별 이기주의, 극단적 노조투쟁, 노동유연성 부족, 외자 먹튀 비난 등으로 인해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는 성과도 거의 없다. 성장이냐 분배냐, 복지포퓰리즘 등을 두고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세계 11위에서 지난해 15위로 하강했다. 무역규모 세계 9위의 국가인데도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해 수년이 지나 재협상한 결과 대미 자동차 수출 시 관세 축소 연기 등 더 불리한 합의를 하게 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반대에만 집착하는 세력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대외개방에 대한 일종의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인턴 모집에도 박사,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원서를 50차례 넘게 써도 취업을 못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신도 부러워하는 일부 공기업과 귀족 노조들은 6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챙기면서도 의무와 책임은 소홀히 하며 여전히 자신들의 권익 확대에 더 아우성이다. 늘어나는 공기업 부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에 툭하면 파업하겠다니, 그 부채는 어떻게 줄이며 어느 세대가 갚아야 하는지 도대체 답이 나오질 않는다. 왜 청년실업은 줄지 않는지, 왜 기업투자는 늘지 않는지 그저 문제만 지적하고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면서 남 탓이라는 손가락질만 있는 작금의 현실을 누군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건설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최저가입찰제는 건설현장에 가면 더 많은 문제가 보인다. 건설업체 난립과 과당 경쟁으로 100여개 중 30여개 업체가 법정관리 상태인데 최저가입찰제를 하니 예정가의 70% 이하 저가낙찰업체가 더 많다. 이들은 노무비를 아끼려고 값싼 외국인근로자와 불법 체류자를 고용, 확대된 공공건설사업비 중 노무비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되고 청년실업은 줄어들지 않는다. 더구나 설계 변경 등을 통한 총사업비 증가는 70% 이상 낙찰업체보다 무려 3.6배나 많고, 부실시공에 안전소홀까지 겹쳐 더 많은 사고에 노출돼 있다. 문제의 해답은 현장에 있다. 탁상공론, 기초원리만의 담론은 정책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금년은 총선, 대선의 해다. 중요한 선택의 시기다. 한·유럽연합(EU), 한·미 FTA로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경제 영토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 분야에 산적한 문제와 갈등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국민도 길을 잃고 헤맬 것이 뻔하다. 더 많은 일자리 창출로 젊은이들이 기회를 잡고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당과 지도자들을 뽑아야 한다. 그것이 국운 융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美와 ‘치킨게임’ 왜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美와 ‘치킨게임’ 왜

    “위협에는 위협으로 맞선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이 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제재에 반발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언급한 이후 걸프만(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의 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55) 이란 대통령과 서방국가의 대결로 보이지만 대통령 뒤에는 ‘핵을 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72)가 버티고 있다. 종교지도자이자 실질적 국가원수인 그는 오래전부터 미국 등과의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상황)을 즐겨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번번이 서방이 염두에 둔 핵개발 금지선을 넘어 게임이 진짜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5일(현지시간) 전했다. 하메네이는 크게 4가지 이유 때문에 핵개발을 고집한다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우선 이란의 제1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제자라는 태생적 이유가 있다. 호메이니는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을 이끌며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인물로 이란은 이후 30년 동안 미국 주도의 서방세계와 대립하며 신정 체제를 유지했다. 호메이니 사후인 1989년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하메네이는 미국과의 투쟁을 계속했다. 다른 반미국가처럼 ‘슈퍼파워’와 맞서려면 핵보유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품은 듯하다. 하메네이는 핵 보유 여부의 모호성을 활용한 외교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자 핵개발을 지속했다. 이슬람권 내 영향력을 높이고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또 이라크, 리비아 등 핵을 포기한 반미국가 지도자들이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핵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하면 중국, 러시아 등이 방어막이 돼줄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하메네이의 ‘도박’은 협상 기회를 몇 차례 놓치면서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FP가 지적했다.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이었던 하산 로하니 등 실용주의 세력은 2005년 유엔의 대(對)이란 제재를 우려하며 핵 완화 정책을 주장했으나 하메네이는 묵살했다. 또 2009년 미국에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협상 기회를 잡았지만 줄곧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결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010년 6월 이란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는 “아마디네자드 퇴임 이후 온건파 대통령이 집권한다고 해도 하메네이가 권좌를 지키는 이상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불교계 학승’ 지관스님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불교계 학승’ 지관스님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정부가 지난 2일 입적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6일 오전 11시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리는 영결식 때 지관 스님 영전에 훈장을 올린다. 최 장관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의 조의 메시지를 대독해 지관 스님의 공적을 기릴 예정이다. 불교계의 대표적 학승(學僧)인 지관 스님은 금석문 분야 등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했다. 생전에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 13권, 한국 전통사상서를 불자들이 알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한 ‘한국전통사상총서’ 13권 등을 편찬했다. 한편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4일에도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 등 정계인사를 비롯해 최근덕 성균관장,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종교 지도자들이 조문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불교 대표적 學僧 지관스님 입적

    한국불교 대표적 學僧 지관스님 입적

    대한불교 조계종 32대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智冠) 스님이 2일 오후 7시 55분 서울 정릉동 경국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0세, 법랍 66세. 영결식은 8일 11시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서 거행되며, 장례격은 3일 결정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관스님은 지병인 천식과 투병하다가 상태가 악화해 이날 세상을 떠났다.지관스님은 폐 천식이 심해 지난해 9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수면 치료’를 받으며 지병을 돌봤지만, 고령이라 회복되지 않았다. 지관스님은 9월 입원 직전 원고지에 친필로 ‘사세(辭世)를 앞두고’라는 제목의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스님은 임종게에서 “무상한 육신으로 연꽃을 사바에 피우고/허깨비 빈 몸으로 법신을 적멸에 드러내네/팔십년 전에는 그가 바로 나이더니/팔십년 후에는 내가 바로 그이로다.”라고 전했다. ●평생 불교 저서 편찬에 매진 1947년 해인사에서 당대 최고 율사(律師)였던 자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관스님은 1953년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963년 경남대를 졸업하고서 1976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해인사 주지, 동국대 이사와 총장, 조계종 총무원장(2005-2009) 등을 역임했다. 지관스님은 조계종을 대표하는 학승(學僧)으로 꼽힌다. 지관스님은 퇴임 후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호를 딴 가산(伽山)불교문화연구원에서 불교대백과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작업에 매달렸다. 금석문(石文) 분야의 권위자였던 지관스님은 ‘가산불교대사림’ 이전에 ‘역대고승비문총서’(전7권)를 편찬했으며, 한국불교학연구자 100인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한국불교문화사상사’ 등을 펴내는 등 종단을 대표했던 학승다운 면모를 보여왔다. 그가 1974년 펴낸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도 한국불교학 자료의 서지적 기원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님은 1991년 동국대 총장에서 물러난 뒤 한국불교학연구를 통한 한국불교중흥을 위해 사재를 털어 창경궁 근처에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개원했다. 개원 후 연구원 10여 명과 함께 편찬 작업에 매진한 스님은 바쁜 일정에도 머물던 정릉 경국사에서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출퇴근하는 등 솔선수범하며 배움과 가르침의 길을 걸었다. 그가 평생 매달렸던 가산불교대사림은 현재 13권까지 편찬됐다. 조계종 원로의원이던 지관스님은 2005년 제32대 총무원장에 취임했으며, ‘원로’답게 종단의 안정과 화합의 기틀을 마련하고서 4년 임기를 마치자 평화롭게 종권을 이양했다. 그는 총무원장 재임 시 조계종의 소의경전(근본경전)인 ‘금강경’을 표준화했으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완공 등 조계사 성역화,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충남 공주 태화산 전통불교문화원, 국제선센터 건립 등을 통해 한국불교와 간화선의 대중화 기반을 구축했다. 고인은 조계종단에서 최연소 강사(28세), 최연소 본사(해인사) 주지(38세), 최초 비구 대학총장(1986년·동국대) 등의 기록도 갖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관광부 은관문화훈장(2001년)에 서훈되고 조계종 포교대상(2001년), 만해대상 학술부문상(2005년) 등을 수상했다. 이 밖에 종단교육공로표창(1969년), 서울시 정의사회구현 표창(1982년) 등 수상경력이 있다. ●故 노대통령 비명·만장 작성 한편, 지관스님은 지난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건립된 ‘아주 작은 비석’에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비명과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사용된 만장을 직접 쓰기도 했다. 반면 같은 해 6월,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심화된 국론분열을 수습하고자 7개 종단 종교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자 참석을 거부해 눈길을 끌었고, 2008년 7월에는 경찰이 조계종 경내에서 지관스님이 탄 차량을 과도하게 검문한 것과 관련,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한·중 ‘北 변수’로 삐걱… “외교·안보 고차방정식 풀어야”

    한·중 ‘北 변수’로 삐걱… “외교·안보 고차방정식 풀어야”

    한국과 중국이 올해로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성년’이 되는 동안 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최상위 외교단계로 발전했고, 양국 간 인적·물적 교류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루 수만명의 양국 국민이 비행기와 선박을 이용해 양국을 오가고 있다. 정상을 비롯한 양국 지도자들의 왕래도 빈번하다. 그야말로 양국관계는 활짝 꽃 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양국 간의 ‘전략적 소통’은 성년을 맞은 외교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대화는 많지만 특정 부분에만 접근하면 도돌이표가 그려진 악보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지고 만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북한이라는 ‘중간지대’를 두고 있는 한·중 관계의 현실이다.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의 현 주소를 살펴봤다. 지난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청와대는 워싱턴 백악관과 도쿄 총리관저에 전화를 연결한 뒤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베이징 자금성 서쪽의 중국 최고지도부 관저 및 집무지역)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중 최고지도자 ‘핫라인’은 결국 뚫리지 않았다. 2008년 2월 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10차례 가까운 만남을 가졌지만 정작 ‘포스트 김정일’이라는 막중한 상황에서는 대화의 문이 굳게 닫혀 버린 것이다. 국내적으로 대중(對中) 외교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가운데 외교 실무진들의 ‘판단미스’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의 밀접한 북·중 관계를 감안하면 후 주석의 ‘통화사절’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후 주석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은 채 양제츠 외교부장을 통해 한·미·일·러와 간접 소통했다. 중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 한국과의 소통을 주저하는 것은 지난해 5월 김 위원장의 방중 당시 후 주석과 김 위원장 간의 합의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후 주석은 당시 김 위원장에게 내정 및 외교, 국제 및 지역문제에 대한 전략적 소통 강화 등을 제의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세차례 더 방중했고, 북한과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이 상호방문하며 소통의 폭을 넓혀왔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와중에서 한·중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북한 변수에 미국 변수까지 개입된 결과로 해석된다.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가 양국의 실용주의적 지도부를 자극해 미·중 관계를 급속도로 발전시킨 반면 오히려 재편된 힘의 질서가 한·중 관계의 정체를 초래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외교 전선이 ‘한·미·일’ 대 ‘북·중·러’ 형태로 냉전시대의 그림을 재연한 것도 미국의 아·태지역 세력확장과 이를 막으려는 중국의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실제 중국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자국을 상대로 한 ‘힘의 과시’로 확대 해석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중 관계의 악화로 나타났다. 경제는 뜨겁지만 외교안보는 차가운 한·중 관계는 이미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견됐다. 2008년 5월 첫 방중한 이 대통령이 후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중국 외교부 친강(秦剛) 대변인은 외교결례 논란을 무릅쓰고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논평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나름대로 안정됐던 한·중 관계가 험로에 빠질 것이란 점을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한·중 양국 국민 간의 뿌리 깊은 반목도 문제다. 특히 중국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교육이 강화되면서 중국인의 민족주의가 우월적 국수주의로 변질돼 반한(反韓)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수교 2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북한변수, 미국변수, 양국 내재변수 등으로 인해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1일 “한·중 양국은 북한문제 등 심각한 전략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이를 방치한 채 상호이익이 합치되는 경제 및 사회문화 교류협력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왔다.”면서 “한·중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적 호혜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과 한·중 관계의 조화, 북·중 동맹과 북·미 관계의 개선 등 3차 방정식,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욱 치밀한 외교적 분석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글로벌 시대] 유로존은 지속될 수 있는가/강승중 수출입은행 런던법인장

    [글로벌 시대] 유로존은 지속될 수 있는가/강승중 수출입은행 런던법인장

    새해를 맞은 유럽에서 2012년 경제 전망을 논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주제는 과연 유로존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유지 발전될 것인지, 아니면 결국 해체 내지 붕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경제력 차이가 있는 국가들의 통화를 하나로 묶고 금리와 환율을 초국가적으로 관리한다는 발상은 출발부터 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점이 그리스의 채무위기로 현재화되자 많은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왔다. 유로화 체제는 역내 국가의 수출경쟁력 차이를 환율 변수로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봉쇄되어 있어 구조적으로 경상수지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 높은 독일은 흑자기조를 지속할 수 있는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지중해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에서 헤어나올 마땅한 정책 대응수단이 없는 것이다. 결국 독일은 유로화 체제의 가장 큰 수혜국이다. 과거와 같은 개별 통화체제였다면, 높은 수출경쟁력은 마르크화의 절상으로 상쇄되고 지금과 같은 흑자과잉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 위기가 촉발된 그리스는 경상수지 적자에 더하여 심각한 재정적자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었고, 베짱이 식으로 쓰고 보자는 재정운용을 펴온 실상이 드러나면서 개미와 같은 근면한 삶을 미덕으로 삼으며 경상수지 흑자를 누려온 독일 및 북유럽국가들에 감정적인 거부감을 불러와 지중해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주저하게 만들면서 효과적이고 강력한 시장 대응방안을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유로존 지속 여부에 관한 논의는 경제나 금융의 논리에서 탐색될 시점은 지났고, 정치·역사적 관점에서 방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여년 전 유럽국가 간 단일화폐 도입을 주장한 정책 입안자들이 그 내재적 문제점을 간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화폐 통합은 반세기 넘어 진행되어온 통합의 한 과정일 뿐, 그 자체가 완결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강행하였을 것이다. 이는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전쟁으로 얼룩진 유럽 땅에서 평화가 정착되려면 국가 간 연대와 궁극적인 통합이 필요하다는 각성 하에, 드골이나 아데나워 같은 지도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유럽 통합의 초석을 쌓기 시작한 진행형 과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랜 세월 유럽대륙에서 평화가 지속되고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의 자유화가 성취되면서 유럽인들, 특히 독일인들은 이성적으로 통합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국가 간 연대를 추구하기보다는, 이웃 국가에 대한 감정적인 불신감을 드러내고 통합의 대가를 지불하는 데 회의를 나타내면서 통합의 추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서는 유로화 체제 붕괴 시 닥칠 재앙에 대해 경제적 분석보다는 정치적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중 가장 극적인 것은 지난해 11월 폴란드의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이 연설과 신문 기고를 통해 드러낸 솔직한 견해다. 그는 “(2차대전 당시)독일의 탱크나 (냉전체제 하에서의)러시아의 미사일보다 폴란드의 안위를 위협하는 것은 유로존의 붕괴이다. 독일만이 유로존을 도울 수 있다.”고 역설하면서 독일이 역사적 관점에서 책임을 질 것을 강조하였다.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때 영국이 신재정협약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고, 이에 질세라 프랑스가 자국 신용등급 강등설에 대해 영국의 신용등급이 먼저 강등되어야 한다고 노골적인 반응을 서슴없이 드러낸 모습은 앞으로 전개될 갈등과 분열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느껴진다. 2012년 내내 유럽인들은 유로존의 운명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재정통합 방안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지 등의 기술적 문제를 물을 것이 아니라, 과연 유럽의 지도자들이 연대와 통합의 정신을 아직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유럽국가들을 1·2부 리그로 나누어 ‘우리’와 ‘그들’이 구분된 이웃으로 살아가려 하는지의 향후 생존방식에 대한 방향을 물어야 할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