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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플러스] LG생활건강 생리대시장 진출

    LG생활건강은 기저귀, 생리대 시장에 진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 회사는 이를 위해 일본의 유니참과 합작법인 LG유니참을 설립했다. 합작법인은 LG생활건강이 유니참의 한국법인 주식인수와 증자에 참여, 지분 49%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대표이사는 LG생활건강 차석용 사장이 맡기로 했다.
  • “대필아닌 본인 필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재조사한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는 16일 유서는 대필이 아닌 고(故)김기설씨의 필체로 보인다고 밝혔다. 비록 유서 원본에 대한 필적감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전제에서 나온 발표이지만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유서대필 사건에 대한 당시 검찰조사 등의 조작의혹을 제기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진상규명위는 이날 중간발표를 통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이 아니었고, 검찰도 미리 유서대필 쪽으로 무리한 수사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경찰은 유서가 자필로 쓰인 것이라는 방증자료로 위원회가 입수한 김기설씨의 ‘전대협 노트’를 제시했다. 위원회는 “최근 발견된 김씨의 노트 속 글씨체가 사건 당시 국과수가 유서와 비교하며 강기훈씨 필체라고 판정한 글씨체와 육안으로 봐도 너무 유사하다.”면서 “결국 유서는 김씨의 필적 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정확한 감정을 위해 검찰에 유서원본 등의 공개를 2차례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면서 국과수와 대검 문서분석실,FBI 등에서는 복사본만으로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또 당시 감정을 의뢰했던 검사와 필적 감정을 맡았던 국과수 직원이 ‘어떤 감정 결과를 원하느냐.’는 등의 전화통화를 했고 검사와 검찰 직원이 직접 국과수를 방문했던 사실도 확인됐다고 밝혔다.이는 필적감정에서 요구되는 중립성, 객관성을 심하게 훼손하는 행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91년 5월8일 김씨가 서강대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살하자 검찰이 강씨를 유서 대필 등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한 사건이다. 재야단체는 그동안 검·경의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대법원에서 강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3년2개월만인 94년 만기 출소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진상규명위가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도 열람하지 못한 상황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가능성을 지적한 것은 믿을 만한 결과발표도 아닐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고 주장했다.이 관계자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은 사건에 대해 임의로 조작의혹이 있는 것처럼 잠정결론을 내고 언론에 공표하는 것은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성과 권위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경제플러스] SK, 인천정유 인수계약 체결

    SK㈜는 16일 서울 서린동 본사에서 최태원 회장, 신헌철 사장, 김재옥 인천정유 법정관리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정유 인수 계약을 했다.SK는 올해 9월2일 MOU 교환 이후 정밀실사 등을 거쳐 1조 6000억원 유상증자 참여 및 1조 4400억원의 회사채 인수를 골자로 하는 인천정유 인수방안을 확정하고 공정위 허가를 받은 뒤 이번에 계약을 마무리지었다.SK는 인천정유 인수로 하루 정제량이 111만 5000배럴로 늘어나 이 부문에서 아ㆍ태지역 4위의 메이저업체로 부상하게 됐다.
  •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 1만3000명

    최근들어 장기 기증이 급감하면서 하루속히 장기 이식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가 전국적으로 1만 300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의사협회 산하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가 최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연 ‘장기이식, 활성화 대책’ 심포지엄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혈액장기팀장은 2004년 말 현재 국내에서 골수와 각막을 제외한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총 6929명에 이르며 골수와 각막 이식 대기자를 포함하면 전체 대기자는 1만 3100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이들 환자의 평균 이식 대기기간은 신장 542일, 간장 332일, 췌장 651일, 심장 470일, 폐 605일이었다. 이처럼 대기자가 늘어나면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정 팀장은 “장기 기증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기증의사 표시제 시행, 잠재 뇌사자 발굴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장기구득기관(OPO)제 도입과 뇌사판정 체계의 재편, 국립장기이식관리기관(KONOS)의 역할 재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외과 교수는 “뇌사판정 전문의제도 및 장기 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정식 제천서울병원장은 “환자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식수술을 받을 국내·외 병원을 지정, 외국에서도 불편 없이 이식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환자를 국가가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발전기금 ‘기증자벽’ 설치

    국립암센터(원장 박재갑)는 최근 연구동 로비에서 암센터에 발전기금을 낸 후원인들을 기리는 ‘기증자벽’을 설치했다. 국립암센터는 ‘발전기금을 조성,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여기에 140명이 45억7000여 만원을 후원했다.
  • “10개 배아로 英인구 33% 치료”

    단 10개의 인간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들로 ‘이론적으로’ 영국 인구 3분의1 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줄기세포 은행을 만들 수 있다고 영국 언론이 보도해 관심을 모은다. 더 타임스, 데일리 메일 등 영국의 일간지들은 9일 영국 과학자들이 영국인 가운데 잠재해 있는 ‘슈퍼 기증자’들로부터 만들어 낸 줄기세포로 상당수 영국인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장기 기증자와 콩팥 이식수술 대기자 명단에 대한 분석을 통해 슈퍼 기증자가 제공한 10개의 배아에서 영국 인구의 38%가 완전(full) 합치,60% 이상은 우호적(favourable) 합치,80%는 유용한(beneficial) 합치를 보이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는 복제에 의존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대량으로 배양한 줄기세포를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어서 슈퍼 기증자를 찾아내는 일과 함께 실용화 가능성이 주목된다.지금까지는 면역 거부 반응 때문에 환자 자신의 체세포 복제를 통해 만든 배아 줄기세포만으로 치료에 필요한 장기 조직(tissue)을 만드는 데 연구가 집중돼 왔다.버밍엄 대학의 저스틴 존 박사는 “치료용 줄기세포 은행을 여는 데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5월 줄기세포 은행을 설립해 실험용 줄기세포를 제공해 왔다.박정경기자 외신종합 olive@seoul.co.kr
  • [시사 키워드] 주가와 경제

    [시사 키워드] 주가와 경제

    주가가 오르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환율과 금리와 주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코스피, 코스닥지수란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으로 구분된다.KOSPI(Korean Composite Stock Price Index)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지수이다. 주가지수 산정방식은 몇 차례 바뀌었는데 현재의 코스피는 1980년 1월4일의 기준지수를 100으로 정한 뒤 등락을 산출해 왔다. 산출방법은 개별종목의 주가에 상장주식수를 가중한 기준시점의 시가총액과 비교시점의 시가총액을 대비하여 산출한다.1980년과 비교할 때 지금은 지수가 1300을 넘어섰으므로 시가총액이 13배 이상 확대됐다. 코스닥(KOSDAQ:Korea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 장외 주식거래시장으로 미국의 나스닥(NASDAQ)과 유사한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증권시장이다.1996년 7월1일 증권업협회에 의해 개설됐다. 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한 장외시장이었으나 지금은 증권거래소와 대등한 독립적인 시장이 됐다. ●주가와 경제의 관계 주가는 경기의 선행지표다. 보통 경기보다 6개월쯤 선행하는 것으로 본다. 즉, 경제가 6월쯤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면 1월부터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를 나타낸다. 경제가 좋아지면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고 기업의 가치가 좋아지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것이다. 주가가 오르려면 수출경기가 좋아지고 소비심리가 개선되어야 하며 기업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 또 기업활동을 하기 좋은 저금리나 적정한 환율이 유지돼야 한다. 기업의 신상품·신기술 개발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외적으로는 정치·사회정세도 관계가 있다.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세계주가는 폭락한 적이 있다. 주식시장이 활황을 타면 기업들이 자본을 조달하기가 쉬워진다. 즉, 유상증자를 해 투자자들의 자본을 끌어들여 기업 운영에 쓰게 된다. 주가가 오름세를 타면 주가가 오른다고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증자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주가와 금리, 환율 ▲금리와 주가 주가는 보통 금리와 반비례한다. 금리가 오르면 주식에 투자해 놓은 사람들이 돈을 빼 은행으로 옮겨오므로 주가가 떨어진다. 주식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탓이다. 경제가 어려워 미래가 불확실하면 투자자들은 주식보다는 은행에 돈을 예치해 안정적인 이자를 받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또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금융비용이 증가해 이익이 낮아지고 따라서 주가가 낮아진다. ▲주가와 환율 환율이 오르면 통상적으로 주가가 오른다. 환율이 오르면 우리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하므로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 상승이 반드시 주가에 좋은 영향만 주지는 않는다. 경기 침체로 환율이 극도로 불안하면 외국인들은 투자를 보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일 때 1만달러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1년 후에 처분할 때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르면 수익률이 50%가 넘지 않는 이상 손해를 본다. 주가가 올라도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이 발생한다. 외환 위기 때 우리는 이런 경험을 했다. ▲환율과 금리 수입 물가는 환율이 하락(원화가치가 상승)하면 내려간다. 반대로 환율이 상승하면 물가는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당국은 금리를 올려서 물가를 잡으려 한다. 반대로 금리가 올라가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자금을 많이 갖고 들어온다. 한국에 외화가 많이 들어오면 원화가치가 상승(환율이 하락)하게 된다. ●최근의 주가 상승 주가 상승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기업들의 가치는 크게 올라갔고 기업들의 투자 환경을 좋게 만들어 거꾸로 경기를 되살리는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가상승은 외국인의 힘에 의존한 바 크다. 이제는 외국자본에 휘둘리지 말고 국내 투자자들의 역량으로 주식시장을 이끌어갈 때가 되었다. 최근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주가가 급등하거나 급락하지 않아야 한다. 서서히 내리고 서서히 오르는 건전하고 견조한 주식시장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손성진기자 sonsj@seoul.co.kr ■ 포인트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경제상황이 본격적으로 호전된 것 같지도 않은데 주가는 왜 오르는 것일까. 그동안 우리 주가는 외국에 비해 매우 저평가되어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경제가 제대로 평가를 받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황우석교수 입원” 건강악화… 신경쇠약등 치료

    “황우석교수 입원” 건강악화… 신경쇠약등 치료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6일 오후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교수는 줄기세포와 관련해 논란이 불거진 뒤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쇠약과 위궤양 증세를 보여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어느 병원에 입원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황 교수팀 관계자는 “황 교수가 일단 작은 병원에 입원한 상태지만 악화될 경우 큰 병원으로 옮길 수 도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팀의 핵심 멤버로 주치의를 겸하고 있는 안규리 서울의대 교수는 “황 교수는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연구실에 돌아오고 싶어하지만 건강이 악화돼 주치의 입장에서 지금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다.”면서 “당분간 안정이 필요한 상태로 조만간 입원해 회복하도록 권유했다.”고 말했다. 오명 부총리도 “황 교수는 현재 신경쇠약과 위궤양을 앓고 있어 하루 이틀 사이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권의 한 관계자는 “불면증이 심해 수면제를 먹고 경기도 모 별장에서 쉬고 있으며 내일 모레쯤 서울대 병원에 입원할 것으로 알고있다.”고 이날 입원설을 부인했다. 황 교수는 건강이 회복되면 배아줄기세포 연구 논란을 입증하기 위해 후속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황 교수팀에 따르면 이중 하나는 개의 자연교배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문은 일본 연구팀이 황 교수에 앞서 발표하는 바람에 ‘세계 최초’의 자리를 넘겨줬다. 또 나머지 하나는 난치병 치료와 관련된 동물 줄기세포 분화실험으로, 이 논문이 발표될 경우 진위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과학기술계는 기대하고 있다. 황 교수팀 연구진은 이날 연구 현장에 복귀했다. 서울대 수의학과 이병천 교수는 이날 난자 기증자 1000명 돌파 기념식이 끝난 뒤 수의학과 회의실에서 기자들을 만나 “사소한 시비에 연연하지 않고 오늘부터 연구실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확보한 다수의 줄기세포주를 활용해 연구팀과 전세계 연구자들에게서 나올 후속논문을 통해 여러분을 다시 만날 때까지 연구에만 전념하겠다.”면서 “과학은 과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원로들의 고언, 동료과학자들의 의견에 따라 줄기세포 검증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오 부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연구단계에 있는 과학적 결과물을 과도하게 취재하고 파헤쳐 우리 학계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과학자들 사기에도 악영향을 주었다.”고 MBC PD수첩 보도를 비판했다. 난자매매에 따른 윤리성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는 16일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최종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권선택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43명은 이날 ‘황우석 교수와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유지혜 김준석기자 wisepen@seoul.co.kr
  • 부정 얼룩진 방탄헬멧 군납

    군납품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홍만표)는 4일 회사 돈을 빼돌린 뒤 49억여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유용한 방탄헬멧과 방탄판 공급업체 O사 전 대표이사 김모(64)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위장업체 D사를 만든 뒤 거래대금을 허위 또는 과다하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1996년 6월∼지난해 1월 46억 6000여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거래업체와의 허위 물품거래 대금으로 2억 2000여만원을 빼돌려 유상증자에 사용하고 기계구입비 명목으로 88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회사 자본금 47억원을 넘는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무리하게 회사 돈을 빼돌린 배경에 주목, 로비 등 다른 목적으로 돈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특히 검찰은 비자금 중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20억∼30억원을 추적 중이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언론에서 방탄헬멧 등의 로비의혹 등을 보도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지난 9월 귀국, 검찰 조사를 받았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씨줄날줄] 페이스 오프/박홍기 논설위원

    ‘페이스 오프(Face off)’는 아이스하키 경기 용어이다. 센터라인의 중앙에 양팀의 선수 한명이 나와 마주 선다. 심판은 두 선수 사이에 퍽을 던지면 선수들은 먼저 스틱으로 퍽을 빼앗아 자기 팀에 보내려 한다. 심판이 퍽을 떨어뜨려 경기를 시작하는 것을 페이스 오프라고 한다. 또 중단된 경기를 다시 할 때도 마찬가지다. 다른 한편으로는 두 집단이 맞붙을 위기상황을 뜻하기도 한다. 페이스 오프는 부딪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최근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38세 여성의 부분 ‘안면이식(Face transplant)수술’이 성공했다.1997년 제작된 영화 ‘페이스 오프’처럼 ‘얼굴 이식’이 실현된 셈이다. 개에게 얼굴을 물려 코와 턱·입술이 잘려져 나간 환자는 뇌사자의 얼굴 피부 조직 등을 기증받았다. 환자의 상태는 좋고 이식 상태도 좋다고 한다. 안면이식 수술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게 성형 의학계의 견해이다. 간이나 심장 등의 장기를 비롯, 손이나 발 등 절단된 신체의 이식 수술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피부이식에 따른 면역계의 거부 반응도 약물의 발달로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평생 면역 억제제에 의존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1999년 루이빌 의대에서 손 이식수술을 통해 안면이식 수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또 지난 7월에는 클리블랜드 병원에서 화상이나 사고로 얼굴이 망가진 환자들 가운데 이식 수술 대상자를 찾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직 안면이식 수술이 이뤄졌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왜 지금껏 안면이식 수술의 성과는 없었을까. 페이스 오프에 따른 정체성과 윤리적인 문제, 즉 내적·외적인 부딪침 때문이다. 수술 뒤 얼굴이 기증자와 비슷하다면 본인이나 가족, 기증자의 가족들이 느낄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당연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다른 신체 장기와는 달리 얼굴피부 기증 사례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수술 받은 환자가 새 얼굴로 새 삶을 영위하는 데 정체성의 혼란을 덜 겪었으면 한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佛서 부분 안면이식 수술 첫성공

    세계 최초의 얼굴이식 수술이 프랑스에서 성공했다. 영화 ‘페이스 오프’가 개봉된 지난 1997년만 해도 이같은 내용은 영화 속 허구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현실이 된 셈이다. 1일 프랑스 의료전문지인 ‘르 포앙’에 따르면 장 미셸 뒤베르나르 외과교수가 주도한 의료팀이 지난달 27∼28일 프랑스 북부 아미앵의 CHU 대학병원에서 38세 여성을 대상으로 부분 안면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성은 지난 5월 개에 물려 코와 턱, 입술이 잘려나가 제대로 말을 하거나 음식물을 씹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의료팀은 뇌사 상태의 여성으로부터 얼굴 피부 조직과 근육, 혈관, 신경 등을 기증받아 이 여성의 얼굴에 이식수술을 실시했다. 병원측은 성명에서 “환자의 상태가 아주 좋고, 이식 상태도 정상”이라면서 “이번 수술이 세계 최초의 부분 안면이식 수술”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화상을 입거나 다른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다양한 신체 부위를 이식받아 왔다. 그러나 이질적인 피부 조직에 대한 민감성이 큰 얼굴은 이식수술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 얼굴을 통째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식하는 수술은 기증된 얼굴 피부의 혈관과 신경을 현미경을 통해 환자 얼굴에 하나하나 봉합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굴이식 수술이 성공함에 따라 얼굴 화상 환자 등에게는 희소식이지만 다른 부위와 달리 얼굴 이식은 새 얼굴에 대한 ‘정체성 혼란’ 등 윤리적, 도덕적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병원측은 환자가 완전히 회복됐을 때 얼굴이 어떤 모양이 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으나 의료 전문가들은 영화에서처럼 기증자의 얼굴을 닮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예상하고 있다. 한편 뒤베르나르 교수는 지난 1998년에도 세계 최초로 손 이식 수술에 성공했으며,2000년에는 양손과 팔 접합 수술에 성공하기도 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新亞 ‘알짜조선소 신화’

    무역의 날인 지난달 30일 ‘신아’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조선업체가 금호석유화학, 현대모비스 등 굴지의 대기업과 나란히 금탑산업훈장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11월까지 수출실적은 2억 5400만달러로 2002년 7590만달러에서 3배 이상 늘었다. 1946년 경남 통영 미륵도에 자리를 잡은 ‘최기호 조선소’가 모태인 신아는 1991년 12월 국내 최초로 직원이 주인 되는 회사로 새 출발했다. 신아는 1978년부터 대우그룹 계열로 편입됐지만 91년 대우그룹이 경영합리화 조치의 일환으로 대우조선과의 합병을 결의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합병되는 순간 신아 직원들은 생업을 잃을게 뻔한 상황이었다. 통영 토박이로, 직원들이 ‘형님’처럼 모시던 유수언(63·당시 관리담당 임원)사장은 종업원지주회사 설립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 전 임직원들을 설득했다.264명의 직원들이 뜻을 같이해 퇴직금과 위로금을 털어 8억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유 사장과 직원들은 이후에도 상여금 등과 집을 담보로 잡혀가며 몇차례 증자에 참여, 현재 지분 58.8%를 갖고 있다. 信亞에서 新亞로 이름을 바꾼 신아는 종업원들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그 어떤 노조보다 강성이었던 노조를 자진해산하고 경영 정상화에 매진했다. 그 결과 92년 22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올해 3100억원(예상)으로 껑충 뛰어오르며 국내 8위, 세계 22위 규모의 중견 조선소로 거듭났다. 종업원지주회사 설립을 주도했던 유수언 사장은 2001년 3월 사장취임 이후 매년 평균 150일가량을 해외출장에 할애,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벌여왔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1500명이 넘는 직원 가운데 가장 빠른 시간인 아침 6시30분이면 조선소로 출근한다.2003년 태풍 매미로 조선소가 피해를 입었을 때 직원들과 함께 밤새 젖은 용접기를 말리고 삽으로 흙을 파냈을 정도로 몸을 아끼지 않는다. 용인대 유도학과, 해병대 유도대표 출신답게 강인한 체력(유도 6단)과 정신력이 든든한 자산이다. 종업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유 사장은 매년 연구개발에 매출의 10% 이상을 투자해 2008년 매출 6000억원, 순이익 800억원을 달성한다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현재 수주잔고가 46척,20억 6000만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목표달성에는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회사를 세계 10대 조선소로 키워 놓은 이후에는 증시 상장을 통해 그동안 묵묵히 허리띠를 졸라매 온 직원들에게 주주의 기쁨을 안겨줄 생각이다. 중학교 체육교사에서 조선소 사장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 온 유 사장이지만 요즘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다고 한다. 수십년간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달성한 세계 조선 1위국의 위상을 5년내에 중국으로 넘겨줄 것 같기 때문이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현대重, 현대그룹과 ‘완전결별’?

    현대중공업이 최근 현대아산 지분을 매각한 것을 계기로 현대그룹과 ‘완전 결별’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자회사인 현대미포조선은 최근 현대아산 지분 13.77%(134만여주)를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택배에 매각했다. 현대중공업은 99년 2월 현대아산 설립 당시 200억원을 출자한 이후 5차례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때 출자규모가 892억원에 달했지만 이번 주식 매각 대금은 47억원에 불과했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되기 전까지 현대아산 지분 24.84%를 갖고 있었다. 현대아산 지분 때문에 계열 분리가 어려워지자 9.89%를 현대아산에 무상 증여하기도 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주력 업종이 아닌 부문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현대아산의 지분을 처리했다.”면서 “새로 주주가 된 현대택배는 현대아산의 개성공단 건설 기자재 물류 등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2000년 한때 최대 주주가 현대상선으로 변경됐지만 2001년 6월 정몽준 당시 고문이 최대 주주로 부상하면서 이듬 해 계열 분리가 완료됐다. 하지만 구 현대그룹 시절의 인연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 계열사에 남아 있는 지분을 추가 처분할지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현대중공업측은 “투자 목적을 상실했거나 사업 연관성이 없는 불필요한 지분은 지속적으로 처분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2.16%를 갖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친어머니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최대 주주의 지분이 29.9%에 불과해 아직도 KCC그룹(33.71%)과의 경영권 분쟁 불씨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2.16%는 적지 않은 비중이다. 현대중공업은 또 현대경제연구원 지분 14.4%를 갖고 있다. 계열분리를 위해 연구원측에 대여한 지분 4.6%와 정몽준 대주주의 개인지분 0.5%를 더하면 19.5%에 달한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경주 ‘최부잣집’ 원형 되찾는다

    경주 ‘최부잣집’ 원형 되찾는다

    중요민속자료 27호인 경북 경주시 ‘최부잣집’ 종택의 사랑채와 별당 등이 30여년 만에 원형 복원된다. 28일 경주시에 따르면 ‘교촌 한옥마을’조성을 위한 첫 사업으로 총 사업비 10억원을 들여 1970년 11월 화재로 소실된 최부잣집 사랑채와 별당 등을 복원하기로 했다. 시는 이에 따라 29일 경주 교동 69번지 현장에서 고유제(기공식)를 치르고, 내년 5월까지 5억원을 들여 120.7㎡ 규모의 사랑채를 복원할 계획이다. 또 내년도 사업비 5억원으로 연말까지 별당과 문간채, 방앗간 등을 복원한다. 시는 이를 위해 올해 국비 3억 5000만원을 지원받은 한편 사랑채 소실 이전 사진과 고증자료를 확보했다. 또 지난 8월 최종 자문회의를 거쳐 10월 초 문화재청의 설계승인을 받았다. 최씨 종택 사랑채 터에는 현재 화강암 주춧돌 20여개가 남아 있으며 이 주춧돌들은 신라 왕경(王京) 건물 터에 있던 유서 깊은 돌로 알려졌다. 최부잣집은 당초 99칸의 큰 규모였으나 광복 이후 줄어들어 현재 대지 3000여㎡에 건물 5채만 들어서 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안양 ‘공장부지’ 기증자 화났다

    2년전 경기도 안양시에 300억원대 공장부지를 공원용지로 기증한 한 사업가가 자신의 의사와 달리 땅이 활용되자 반발하고 나섰다. 안양시 안양4동 삼정펄프(옛 삼덕제지) 전재준(82)회장은 28일 회사 홈페이지(http://www.sjpulp.com/samjungpulp)를 통해 “안양시가 자신의 기증의사와 다른 용도로 공장부지를 활용하고 있다.”며 “지하주차장 건설계획 중지와 함께 반대 서명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전 회장은 “안양시에 공장부지 4842평을 기증할 당시 공원 용도로 기증했고 신중대 시장도 ‘전국에서 제일가는 공원을 만들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나 이제 와서 부지에 60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 회장은 “이는 시민을 위한 공원 조성보다 주차장 수입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결코 매연과 소음으로 뒤덮이는 주차장이 건설돼서는 안 되기에 반대서명 운동에 보다 많은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업도시 안양의 상징물인 굴뚝과 경비실을 보존하겠다던 약속도 어기고 지난 7월 철거하고 말았다.”고 섭섭함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인근 주택가와 중앙시장의 만성적인 주차난을 해소하고 향후 수암천 복원을 위해 수암천 복개 주차장을 철거할 예정이기 때문에 공원부지 지하에 주차장을 건설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장 굴뚝과 경비실 역시 너무 낡아 안전에 문제가 있어 철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는 이어 “그동안 공원 활용을 놓고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와 사업설명회 등을 통해 얻은 결론으로, 기증자의 의사도 반영하고 인근의 주차난도 해소하기 위해 지하에는 주차장을, 지상에는 공원을 각각 조성하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앞으로 기증자를 최대한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안양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한달] “하루에 다 보는건 무리… 한두번 더 오세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한달] “하루에 다 보는건 무리… 한두번 더 오세요”

    “하루종일 관람객을 돕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2층 기증관에서 만난 빨간 조끼 차림의 자원봉사자 김원자(56)씨. 관람객을 위한 전시물 설명과 관람질서 유지를 위해 몇 시간째 걸어다녔지만 피곤한 기색은 별로 없었다.“개관 초기에는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와 많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이 애를 먹었어요. 지금도 모든 관람객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지 못해 아쉬워요.” 김씨는 1998년 한국박물관회가 주관하는 ‘박물관대학’을 졸업한 뒤 2000년 경복궁 옛 중앙박물관 시절부터 자원봉사자 1기로 활동해왔다. 박물관 유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 아니라 관람질서 지원에 있어 베테랑이다. 그는 “입장이 금지된 7세 미만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들어와 뛰어다니거나 전시물 주위를 돌아다니면 다칠까봐 가장 걱정된다.”면서 “학생들이 학교 과제물을 가져와 진열장 유리에 대고 글씨를 쓰고 유리를 만져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쉬워했다. 또 일부 노인들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 큰 소리로 이야기해 아이들이 따라하는 경우도 생기는 등 조용하게 관람하는 분위기가 아직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단체관람객 등 예약한 손님에게는 1∼2시간에 걸쳐 유물 및 기증자, 기증과정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해준다. 그는 “관람객들이 설명을 듣고 유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고 고마워할 때 가장 기쁘다.”면서 “내년에는 박물관을 다시 보기 위해 오는 관람객도 많을 것으로 예상돼 전시물 설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증관만도 11개실로 이뤄져 모두 관람하려면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하루에 모든 전시관을 다 볼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한두 번씩 더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네티즌 725명 “난자 기증”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난자를 제공하겠다는 누리꾼들의 수가 계속 늘고 있다. 황 교수는 며칠째 연구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이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된다. 27일 황 교수의 팬 커뮤니티인 ‘아이러브황우석’(http:///daum.cafe.net//ilovehws)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 난자 기증 의사를 밝힌 누리꾼의 수는 이날 아침 기준으로 725명이다.중·고생과 40세 이상 여성 등 연령상 기증이 불가능한 누리꾼들도 ‘정신적 기증자’로 참여하고 있다. 난자 기증자들을 돕기 위한 봉사단도 발족된다.‘난자기증운동본부 자원봉사단’(가칭)은 다음달 초 서울에서 창립식을 열고 난자기증 시술 교육 및 기증자 건강 관리 등의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 MBC 본사 앞에서 누리꾼 50여명은 가수 강원래씨와 함께 황 교수의 난자 의혹을 제기한 ‘PD수첩’에 항의하는 촛불 시위를 벌였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난자 파동] 의혹 전말과 남은 과제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은 ‘난자 의혹’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5월 이후 최근까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는 생명윤리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기인한 측면이 컸으며, 결과적으로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법적 기준이 없던 때의 윤리적 문제’로 황 교수팀을 단죄하고, 세계줄기세포허브를 비롯한 줄기세포 연구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세상 물정 몰랐던’ 황 교수 황 교수팀은 지난해 2월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연구성과를 미국의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러나 3개월 뒤 영국의 네이처가 연구원 2명이 난자를 기증했다는 윤리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당시 황 교수와 해당 연구원들은 영어가 서툴러서 생긴 오해라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황 교수는 “난자 제공자 한 명이 프라이버시 보호를 요청했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제공된 난자 때문에 윤리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 답답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세차례나 네이처와 같은 문제를 제기했으나, 그 때마다 ‘모든 연구는 정부가 정한 윤리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준수했다.’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연구원들의 난자기증을 ‘나쁜 일’이 아닌 ‘좋은 일’로 간주하는 등 국제 윤리기준에 어두웠던 것도 또다른 원인이다. 또 난자 기증자들에게 금품이 제공된 사실과 관련해서는 황 교수가 연구팀원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점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다. 황 교수는 “연구 과정에서 깊은 통찰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면서 “국민 여러분들이 저에게는 모진 매를 내려주시고, 환골탈태하려는 연구팀에는 한번 더 성원을 보내주신다면 보답드릴 날이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동안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황 교수는 윤리성과 투명성 측면에서 타격을 받게 됐다. 또 인체를 대상으로 한 의학연구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헬싱키 선언’ 위반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을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난자기증이 연구원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이뤄졌고, 황 교수가 연구원들의 비밀보장을 위해 불가피한 ‘거짓말’을 한 만큼 더 큰 문제로 비화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국제 과학계가 이같은 ‘한국적 특수성’에 수긍할지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헬싱키선언 위반여부 논란소지 다만 줄기세포 연구만은 차질없이 지속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줄기세포 연구 분야의 세계적 중심이 될 세계줄기세포허브가 미국과 영국을 제치고 한국으로 결정된 것은 황 교수팀이 난치성 질환에 걸린 환자의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황 교수팀의 연구가 임상시험에 돌입할 경우 난치병 치료의 국제 중심으로까지 도약할 수 있다. 한용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황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의 ‘파이어니어’(선구자)”라면서 “황 교수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담을 털고 연구에 정진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영모 울산대 의대 교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과학 연구는 투명하게 가야 하며, 이는 결과적으로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내년증시 ‘상장 러시’ 온다

    내년증시 ‘상장 러시’ 온다

    내년 주식시장에서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예상된다. 올해 사상 최대의 주가상승을 지켜보았고, 내년에도 증시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너도나도 ‘돈 맥’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꺼번에 신규주식 물량이 쏟아지면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주가하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증시상장 신청 4배 급증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외부감사인 지정을 신청한 기업은 394개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53곳이 기업공개(IPO·증시상장)를 목적으로 감사인 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예년에 비해 3∼4배나 많은 수치다. 또 증시상장을 염두에 둔 253개 기업의 88.5%가 자산규모 5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으로 나타났다. 자산이 70억원 미만인 소기업은 53개사,3000억원 이상인 대기업이 5개사 등이다. 감사인 지정 신청이 쇄도한 이유는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것과도 상관이 있다. 증시상장을 원하는 기업은 증권선물거래소에 예비상장 심사보고서와 금감원이 지정하는 감사인의 최근 1년 감사보고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결국 올해 안에 감사를 받아야 절차를 밟아 내년 상장이 가능하다. ●‘자금은 많을수록 좋아’ 기업들이 상장을 하려면 ‘감사→주간사 선정→금융감독위원회 등록→이사회 결의→명의개서 대행계약→유가증권 신고→사업설명회→청약’ 등 26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탈락할 수 있는 부담을 감수하고 증시에 몰리는 이유는 주가 상승기에는 손쉽게 거액의 기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셋그룹의 계열 증권사는 내년 2월 상장과 공모자금 4000억원을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계열 생명보험사의 유상증자도 함께 단행, 증시에서만 모두 1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퇴직연금과 변액보험 시장에서 선두권에 진입하기 위한 든든한 ‘실탄’을 준비중인 셈이다. 국내 데스크용 PC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주연테크도 내년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삼고 주간사를 하나증권으로 선정했다. 올 상반기 매출액은 1566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매출(1846억원)의 85%를 달성했다. 내년 매출은 3000억원으로 잡았다. 장사가 잘 되면서 증시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2년 전에는 기업과 증시 환경이 나빠 상장에 실패했으나 이제는 (둘 다 사정이 나아져) 상장심사 통과를 급선무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하락의 원인제공 우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9.69포인트(0.76%) 오른 1291.71을 기록, 이틀째 사상 최고점을 바꾸었다. 코스닥지수도 8.60포인트(1.26%) 오른 690.87에 장을 마쳐 ‘역대 최장기간 연속상승(19일)’,‘연중 최고기록’ 등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코스피지수가 최고 1600선까지 오르며 신기록을 쏟아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상장 종목이 급증하면 이같은 낙관적인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도 있다. 외국계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달 중순 IPO 신청기업의 수가 89개사에 이르자 내년 주식물량이 올해보다 167.9%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내년 한국 증시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기업들이 증시상장을 통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바람직한 활동으로 평가한다.”면서도 “과도한 공급은 증시에 분명히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어 “수급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문제로 시장과 투자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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