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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法 “훈민정음 상주본 공개하라”… 절도범에 무죄 선고

    法 “훈민정음 상주본 공개하라”… 절도범에 무죄 선고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 이진만)는 7일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사진 오른쪽)을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배모(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증인들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등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와 관련된 것이지 상주본이 피고인의 소유라든가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진만 재판장은 선고를 마친 뒤 피고인 배씨에게 “숨겨놓고 있는 훈민정음 상주본을 하루라도 빨리 공개하는 게 역사와 민족, 인류에 대한 피고인의 책무”라면서 “상주본을 빨리 내놓고 전문가의 손에서 관리, 보관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배씨도 국가 기증 등과 관련해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검찰은 법률 검토를 거쳐 상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구고법 이상오 기획법관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추가 증인을 채택하고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의심이 있을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한다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따라 원심을 깼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이 앞서 이뤄진 민사재판의 결과와 다소 다른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상주본 소유권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민사재판의 결과를 뒤집는 것은 아니며, 민사재판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국보급으로 평가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배씨가 집 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며 세상에 공개했지만, 얼마 뒤 골동품업자 조용훈(67)씨가 도둑맞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전을 벌였다. 민사재판에서 대법원은 배씨가 조씨의 가게에서 고서(古書)를 사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간 것으로 인정된다며 조씨의 소유권을 인정했고, 배씨는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소유권자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조씨는 상주본을 되찾으면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주본은 국보 70호인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사진 왼쪽)과 같은 판본으로 판명되면서 별칭이 붙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공직열전 2012] (34) 문화체육관광부 (상) 고위공직자

    [공직열전 2012] (34) 문화체육관광부 (상) 고위공직자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던 전후로 한국 영화의 극장 점유율은 지난달 27일 77.7%로 경이적이었다. 8월 중반에 끝난 런던올림픽에서는 금메달 순위로 세계 5위다. 사흘에 한번꼴로 세계적인 발레·클래식 콩쿠르에서 한국인들이 1~3등을 수상하고 있다. 문화·예술·체육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 꽝꽝 뛰는 가슴을 한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문화체육관광부 곽영진(55) 제1차관이다. 행시 25기로 문화부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처럼 된 정통 관료다. 군부독재가 끝난 1988년 그는 ‘월북작가 해금’ ‘금지가요 해제’ ‘영화 소재 다원화’ 같은 정책을 완성했다. 21세기 한류의 토대를 24년 전에 깐 셈이다. 강직한 선비 스타일로 ‘독일 병정이란 별명으로 불렸지만 2006년 사행성 논란으로 사회를 발칵 뒤집은 게임 ‘바다이야기’의 후폭풍을 헤쳐 나오면서 변했다는 후문이다. 게임 활성화 정책이 시장에서 왜곡된 것인데 강도 높은 검찰 조사에도 곽 차관을 포함해 문화부 공무원 중 단 한 명도 사법 처리되지 않았다. 정치 바람을 타지 않는 부처였는데 2008년 정권 교체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전 정권에서 잘나갔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들이 무더기로 물을 먹었다. 그러나 적게는 3개월, 많게는 2년 정도 지난 뒤 능력 있는 관료답게 이들은 권토중래했다. 조현재(52·행시26) 기획조정실장과 강봉석(58·7급 공채) 종무실장, 신용언(55·행시 29) 관광산업국장, 나종민(49·행시 31) 대변인, 방선규(53·행시 28) 문화예술국장 등이다. 조 기획조정실장은 내부에 적이 없을 정도로 유연하고 조정 능력이 뛰어나지만 돌파력과 추진력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 서울신문의 공직인맥열전에 ‘공인된 차세대’로 소개된 신 관광산업국장은 2008년에 이어 ‘재수’(再修)하고 있다. 업무 장악력이 좋고 후배들이 좋아한다. 국정홍보처 출신답게 방 문화예술국장은 정무적이고 인적 네트워크의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문어발식 인맥을 자랑한다. ‘가난한 천재’로 불리는 비고시 출신인 강 종무실장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포항제철고를 나와 공무원이 된 뒤 뒤늦게 한양대에 진학했다. 인사계장-과장을 지낸 조직통으로 ‘강봉석 사단’이 있다는 음해가 나돌아 피해를 봤다. 1급 승진 1순위인 문화정책국장 재직 중 정권이 바뀌자 국립중앙도서관으로 튕겨 나갔다. 나 대변인은 1997년부터 출국하는 내외국인에게 1만원을 내도록 출국세를 신설해 ‘관광기금’을 조성했다. 월간 100만명의 외국 관광객 시대를 연 토대는 결국 출국세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문화부의 ‘차차기’ 차관 물망 1위는 나 대변인과 행시 34회의 선두주자인 오영우(47) 정책기획관이다. 오 정책기획관은 업무 욕심이 많아 후배들한테 눈총을 받는데 기획통으로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한다. 국립외교원에 교육 파견 중인 김기홍(53·행시 32) 이사관은 2년 6개월의 최장기 체육국장으로 2018년 평창올림픽을 유치한 정부 실무 책임자다. 문화부 여성 1호 국장에는 박명순(49·행시 34)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운영단장이 있다. 문소영·오상도기자 symun@seoul.co.kr
  •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절도범 “본문훼손 가능성”

    절도범이 숨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이 훼손됐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 이진만) 심리로 열린 상주본 절도범 배모(49)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처음 상주본을 봤을 당시 일반적인 고서와 달리 서문 없이 바로 본문이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뒤표지가 있었지만 뒤표지 앞에 있어야 할 일부 내용은 없었고 책 가운데 부분에도 일부 내용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발견 당시 국보 70호로 지정된 간송미술관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일한 판본으로 밝혀져 국보급으로 평가받았다. 상주본은 지금까지 서문 4장과 뒷부분 1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고 본문 부분의 소실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배씨가 상주본을 처음 공개할 때 본문 일부가 없었을 가능성과 강제집행 등에 대비해 배씨가 미리 일부를 떼어낸 뒤 공개했을 개연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위안부 증거 있다] “정부 해결 촉구” 헌재 결정 1년…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

    [위안부 증거 있다] “정부 해결 촉구” 헌재 결정 1년… 한치의 진전도 없었다

    30일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을 촉구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꼭 1년이 된다. 헌재 결정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의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 위안부 문제는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를 중심으로 압박하는 단선적 전략에서 벗어나 국제 외교 무대 등에서 일본을 압박하는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는 29일 “우경화로 치닫는 정치 기류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큰 틀에서의 접근법을 제시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한 반인륜 범죄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유엔 총회나 인권위원회 등에서 위안부 문제를 보다 강하게 거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채널 이외에 국제 인권단체나 시민단체들과 연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역사의 증인인 위안부 생존자들을 통한 역사적 기록 작업을 강화해 일본 측 주장의 허구성을 깨뜨리는 사실 발굴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편 정부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 회피 움직임에 대해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해결방안을 하루속히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위안부’증거 이렇게 많은데…간교한 日

    ‘위안부’증거 이렇게 많은데…간교한 日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나타낸 한·일 간 공식문서가 없다.”며 식민지 시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공식문서’ 운운하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에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공식문서’만이 증거라면,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및 위안소 설치와 관련해 쏟아진 증거들은 다 무엇인가. 이들은 일본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들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북지방면군 및 중지주둔군 참모장에 보낸 통첩에는 ‘위안부 모집 관계자 단속에서 군의 위신을 지키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게끔 인선을 적절히 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40년 9월 19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작성한 ‘군기진작대책’ 에서는 ‘위안 시설은 사기 진작, 군기강 유지, 범죄 및 성병 예방 등에 대한 영향이 크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교육지도 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담아 작성한 ‘유수명부’가 2005년 발견되기도 했다. 1994년 미군이 작성한 증인보고서에는 포로들이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모집·관리 실태가 담겨 있다.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책으로 써 ‘위안부는 없다’던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에서는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 전 5권’을 펴냈다. 한국 외교부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를 근거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자료집을 냈고, 네덜란드 정부도 1994년 ‘일본 점령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의 네덜란드인 여성에 대한 강제매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쏟아지는 증거들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살아 있는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꽃 같은 청춘을 위안부로 살며 인권을 유린당한 네덜란드 여성 세마랑, 베트남의 랑송, 중국 구리인,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등이다. 유엔 보고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국제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가 1996년과 2003년 위안부 문제를 정식 거론한 이후 관련 유엔보고서만 10개나 된다. 유엔총회도 1992년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와 군대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반인권적·반도덕적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전후 배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소영·배경헌기자 symun@seoul.co.kr
  • [위안부 증거 있다] “내가 산증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위안부 증거 있다] “내가 산증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망언이 전해지자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은 “국가 간의 이해를 떠나 패륜의 극치”라며 분노했다. 강제동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일본의 행보에 “내가 강제 동원의 산증인이다.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한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경술국치 102주년인 29일 오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037번째 수요집회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7)·길원옥(85) 할머니는 “증거가 필요하면 우리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라. 이렇게 증인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길 할머니는 “나만 해도 일본 육군 제15사단을 따라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말레이시아 등지를 끌려다녔다.”면서 “지금까지도 그때 그 악몽 같은 기억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 할머니는 “민간인이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그 어린 소녀들을 다 데리고 (위험한 전선을) 다닐 수가 있느냐.”면서 “일본 정부가 주도하지 않았다는 말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억지”라고 말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잇단 망언에 피해 할머니들은 공분했다. 대구에 머물고 있는 이용수(83) 할머니는 “역사의 산증인인 나와 다른 할머니들이 엄연히 살아있는데 일본이 이젠 있던 일까지 없는 일로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파렴치한 일본의 정치인들이 인륜의 문제를 정치의 소도구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위안부 증거 있다] 15세 그녀 겐삐들에 끌려가고, 막아선 엄마는 짓밟혔다

    [위안부 증거 있다] 15세 그녀 겐삐들에 끌려가고, 막아선 엄마는 짓밟혔다

    “만 열다섯 살인 1939년, 추석을 지낸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엄마와 함께 목화를 따는데, 작은 군용차를 타고 빨간 완장을 찬 일본 헌병 4명이 나타났다. ‘겐삐’(헌병)들은 내가 모르는 일본말로 몰아세웠고, 난 무서워서 반항도 못하고 ‘엄마!’만 외쳐댔다. 엄마가 겐삐의 다리를 붙들고, ‘우리 애기를 데리고 가려면 날 죽여놓고 가라.’고 하자, 겐삐는 발로 엄마를 사정 없이 내리찍었다. 엄마는 밭을 구르면서 휘뜩 자빠지셨고, 그것이 엄마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진경팽 할머니) 비극은 도처에서 찾아왔다. 목화 따던 가을에도, 동짓달에도, 헌병들은 집과 학교를 가리지 않고 덮쳤다. 1937년 난징점령 과정에서 대대적인 민간인 학살과 강간을 자행한 일제가 국제 사회의 맹비난을 받던 시점이었다. 1932년 만주에 일본군 위안소를 설치한 일제는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자 강간과 성병 등 군내 성 문제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며 위안소를 확대했다. 누구에게도 위안받지 못한 위안부들의 기구한 삶은 그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강제동원 방법은 다양했다. 폭력과 협박은 예사였고, “돈을 벌게 해주겠다.”며 취업사기를 치는 일도 빈번했다. 김분선 할머니는 “일본 사람이 ‘옷도 고운 것 입고 공장에 취직시켜 줄 테니 나물 뜯으며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데려갔다.”고 증언했다. 1992년 우리 정부의 위안부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 피해자는 “1938년 일본의 놋그릇 상납요구와 창씨개명에 반대한 아버지가 연행됐다. 애국봉사대에 지원하면 아버지가 풀려날 수 있다고 해서 지원했더니 곧바로 위안부에 끌려갔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위안부의 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문옥주 할머니는 “방에는 이불 하나와 요 하나, 베개 둘이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중국 동북부 도안성은 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면서 “하루에 20명 내지 30명은 상대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옥분 할머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받았다.”고 증언했다. 종전은 위안부 생활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위안부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하거나 유기했다. 살아 남은 이들 중에는 수치심으로 고향에 돌아오는 대신 현지에 남는 길을 택한 사람도 많았다. 가까스로 고국에 돌아온다 해도 되돌아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멸시였다. 1992년 6월 1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가네다 기미코’(金田君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 역시 그런 피해자의 한 사람이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피해 보상 청구 소송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 할머니는 유일한 생계수단인 파출부일을 할 수 없게 될까봐 가발에 선글라스를 쓴 채 가명으로 증언대에 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도 낳을 수 없고 결혼도 못하고, 평생 오갈 데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몸도 마음도 아편으로 썩었다. 일본땅을 다 줘도 내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 청춘을 돌려달라.” 당시 위안부는 네덜란드인 100여명과 타이완인 등 최소 5만명에서 30만명에 이르렀다. 현재 생존해 있는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는 61명이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위안부 증거’ 이렇게 많은데…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나타낸 한·일 간 공식문서가 없다.”며 식민지 시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공식문서’ 운운하는 일본 정부는 역사적 진실에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공식문서’만이 증거라면,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한국, 타이완,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 및 위안소 설치와 관련해 쏟아진 증거들은 다 무엇인가. 이들은 일본에 강력한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움직일 수 없는 지표들이다. 1938년 3월 4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북지방면군 및 중지주둔군 참모장에 보낸 통첩에는 ‘위안부 모집 관계자 단속에서 군의 위신을 지키고 사회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게끔 인선을 적절히 행하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1940년 9월 19일 일본 육군성 부관이 작성한 ‘군기진작대책’ 에서는 ‘위안 시설은 사기 진작, 군기강 유지, 범죄 및 성병 예방 등에 대한 영향이 크므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교육지도 참고자료를 송부했다고 밝혔다. 일본 후생성이 해방 전후 위안부 신상기록을 담아 작성한 ‘유수명부’가 2005년 발견되기도 했다. 1994년 미군이 작성한 증인보고서에는 포로들이 증언한 일본군 위안부 모집·관리 실태가 담겨 있다.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책으로 써 ‘위안부는 없다’던 일본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한, 일본의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에서는 ‘정부조사 종군위안부관계자료집성 전 5권’을 펴냈다. 한국 외교부는 1992년 7월 일본 정부의 조사를 근거로 ‘일제하 군대위안부 실태조사 중간보고서’ 자료집을 냈고, 네덜란드 정부도 1994년 ‘일본 점령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의 네덜란드인 여성에 대한 강제매춘’ 보고서를 발표했다. 쏟아지는 증거들 앞에서 물러설 곳이 없어진 일본은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명의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살아 있는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꽃 같은 청춘을 위안부로 살며 인권을 유린당한 네덜란드 여성 세마랑, 베트남의 랑송, 중국 구리인, 한국의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 등이다. 유엔 보고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자 국제적인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여성폭력특별보고관 보고서가 1996년과 2003년 위안부 문제를 정식 거론한 이후 관련 유엔보고서만 10개나 된다. 유엔총회도 1992년을 시작으로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해 왔다.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공식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본정부와 군대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반인권적·반도덕적 행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면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와 전후 배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소영·배경헌기자 symun@seoul.co.kr
  • [공직열전 2012] (30)국방부 (하)국·과장급 주요 간부

    [공직열전 2012] (30)국방부 (하)국·과장급 주요 간부

    국방부의 국장 및 과장급 간부들은 ‘얼리버드’다. 평균 출근 시간이 7시 전후로 다른 행정기관보다 1시간여 빠르다. 외부 출신 국방부 인사들은 군 전담 부서답게 상하관계의 엄격한 규율과 더불어 이른 아침부터 업무에 전념하는 모습을 조직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특히 71명의 과장급 간부들은 군비통제, 예산, 군수, 남북관계 등 폭넓은 이슈에 정통하다고 자부한다. 특히 여성 과장도 지난 2005년 이래 8명에 달해 첫 여성 국장의 탄생도 기대해 봄직하다. 국제정책관은 국방정책실장을 보좌하는 대외 군사정책 분야 요직이다. 최홍기 국제정책관은 외교통상부 출신으로 군축 등 비확산 문제 전문가로 꼽힌다. 주한미군 방위비 부담문제 등 민감한 한·미 간의 군사 외교 이슈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처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장병의 정신교육과 훈련계획을 총괄하는 정대현 국방교육정책관은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원리원칙주의자다. 기획재정부 출신인 안일환 계획예산관은 정통 경제관료답게 예산 분야의 빈틈없는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평소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것을 좋아한다. 정보통신학 박사인 유철희 정보화기획관은 예비역 육군 준장으로 각 군의 전장관리와 상호운용성 구축 등 군의 정보화 사업을 담당한다. 290만 예비군의 조직 편성과 물자 동원 운용계획을 책임지는 이범수(육군 소장) 동원기획관은 군 출신 국장급 중 드문 학군장교(ROTC) 출신이다. 술·담배·유흥과는 거리가 멀고 황소같이 우직한 성격이다. 이남우 보건복지관은 주무 국장 중 가장 젊다. 군인과 군무원의 보수 및 연금계획을 수립하고 군 의료 수급과 예비역에 대한 지원을 총괄한다. 행시출신 국방부 공무원 중 촉망받는 핵심 주자로 꼽힌다. 이상욱(육군 소장) 군수관리관은 군내 장비 탄약 보급과 군수품 관리, 대외군수협력의 책임자다. 업무 추진력과 부드러움을 갖춘 ‘덕장’으로 아랫사람에게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지 않아 인기가 많다. 기술 관료 출신인 오기영 군사시설기획관은 주관이 뚜렷하고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경조(해군 소장) 국방운영개혁추진관은 2007년 해군본부 근무 시절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위한 청해부대 파견을 처음 건의한 ‘아이디어 맨’으로 꼽힌다.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장성들도 국방부의 소중한 자산으로 통한다. 신경철(육군 준장) 군구조개혁추진관은 유영조(육군 소장) 전력정책관과 함께 육군 장성의 주축인 육사 36기 동기다. 특히 신 준장은 국방개혁 분야에 있어 최고 전문가로 국방부 내에서 전역시키기 아까운 인물로 꼽한다. 정치학 박사인 이상철(육군 준장) 군비통제차장은 군에서 20년간 북한 문제를 다뤄온 남북관계의 산 증인으로 통한다. 소령 때부터 남북 군사회담에 참여하는 등 군에서 북한을 가장 잘 안다. 한미연합사에서 근무한 신경수(육군 준장) 국제정책차장은 소문난 미국통이다. 국제군비통제와 국군포로 문제의 실무자인 백경희 군비통제과장은 고교 졸업 이후 바로 국방부에 입성해 34년째 근무했다.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과장이 된 타고난 노력가형이다. 영국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문상균(육군 대령) 북한정책과장은 야전 때부터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부하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학생들과 집단성관계 맺은 고교 여교사의 말로

    고교 여교사가 재직 시절 학생들과 여러번 집단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기소됐다. 美 CBS 방송 보도에 따르면 미국 케너데일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던 브리트니 컬랩스는 지난해 알링턴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남학생 5명을 초대해 집단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지난 16일 재판을 받았다. 컬랩스는 세 아이를 둔 28세의 유부녀 교사였다. 경찰에 따르면 컬랩스는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 여러번 학생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한번에 4명과 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있다. 그러나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학생들은 사건 당시 18세가 넘어 강간죄는 적용 안되지만 알링턴 경찰서 형사 제이슨 휴스턴은 “18세가 넘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범죄”라고 증언했다. 컬랩스는 유죄가 확정되면 최고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각 건마다 10000달러씩 5만달러를 벌금으로 부과받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뉴스팀
  • 삼성 “애플측 특허 침해로 4억 달러 손실” 반격

    삼성 “애플측 특허 침해로 4억 달러 손실” 반격

    삼성전자가 25억 달러가 넘는 애플의 피해보상 요구액이 과도하다며, 오히려 애플에 4억 달러 이상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로써 두 회사는 막바지에 이른 미국 특허 소송에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모두 드러냈다. ●재판 막바지… 구체적 요구사항 다 나와 1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소재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과 애플 간 본안 소송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이 자사 3세대(3G) 통신표준특허를 침해해 최대 4억 2180만 달러(약 477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삼성 측 증인으로 나온 빈센트 오브라이언 OSKR(미국의 특허소송 전문 로펌) 회계사는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 3건을 침해한 것에 대해 2280만 달러(약 258억원)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티스 UC버클리대 교수도 “애플이 삼성전자의 특허 2건을 추가로 침해했기 때문에 최대 3억 9900만 달러(약 4516억원)를 더 내야 한다.”고 추산했다. 티스 교수가 산정한 로열티 수수료율은 최대 2.75%다. 이와 함께 애플이 주장하고 있는 최대 27억 5000만 달러(약 3조 1080억원)의 피해보상 추정액도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반박했다. 삼성 측 피해 산정 전문가인 마이클 와그너는 “애플이 25억 달러가 넘는 피해를 봤다는 주장은 삼성의 이익 추정을 잘못한 데서 나온 것으로, 휴대전화 마케팅 비용과 이동통신 사업자에 대한 지원금, 연구·개발(R&D) 비용 등이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애플이 특허 침해라고 주장하는 스마트 기기들로 삼성이 번 이익은 5억 19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애플 측 “증인 22명 소환하겠다”에 판사 “마약했냐” 양사의 주장을 요약하면 삼성은 애플의 특허 침해 피해가 5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플은 삼성 주장의 5배가 넘는 금액(최대 27억 5000만 달러)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은 또 애플로부터 통신특허 피해액으로 최대 4억 달러가량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애플은 이 액수가 과하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가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면서, 전날 미 법원에서 제안한 양사 최고경영자(CEO)간 최종 협상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삼성전자의 증인 소환이 끝나면 22명의 증인을 소환하겠다.”는 윌리엄 리 애플 측 변호사에 대해 “마약을 하지 않고서야 이 증인들을 모두 소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않느냐.”고 질책했다. 리 변호사가 “시간 안에 변론을 마칠 수 있다.”고 맞섰지만, 고 판사는 “서류를 검토해 본 뒤 증인 신청에 대한 이유가 적절하지 않으면 이유 없이 재판 시간에 손실을 준 대가로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엄중 경고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17일 마지막 심리를 남겨두고 있다. 21일 최종변론을 마친 뒤 24일 배심원 평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 연일 박근혜 책임론… 朴 “진상위 조사 끝난 일”

    민주통합당은 17일에도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재야 정치인이었던 고(故) 장준하 선생의 37년 전 타살 의혹과 관련, “반드시 사망 원인에 관한 진상을 밝혀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세의 표적은 박 전 대통령의 딸로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다. 책임론을 제기, 흠집을 내겠다는 의도로 비쳐진다. 이해찬 대표는 영등포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장준하 선생은 현대사의 증인”이라며 “사망 원인에 관한 규명이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박 후보는 부당한 통치, 불의의 정권에 맞서 죽어간 죽음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지금 권력을 탐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5·16쿠데타와 유신 정권에 대한 반성과 사죄”라고 공격했다. 김한길 최고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장준하 선생의 주검이 시대의 아픔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계신다. 참 나쁜 사람들! 그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며 승승장구를 꿈꾸고 있다니….”라며 박 후보를 겨냥했다. 이 대표는 정세균 대선 경선 후보와 함께 경기 파주시 장준하공원에서 열린 37주기 추모식 및 장준하공원 개원식에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장준하 선생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부영 상임고문을 임명, 박 후보의 사죄를 촉구하며 책임을 묻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박 후보는 이날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현장 목격자 등에 대한 조사가 그동안 이뤄지지 않았나. 그런 기록들이 있는 것을 나도 봤다.”고 원론적인 언급만 했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삼성 “애플이 특허3건 침해” 美법정서 반격

    삼성전자와 애플의 미국 특허소송이 3주차로 접어든 가운데, 삼성전자가 “애플이 자사의 특허 3건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14일(현지시간) 열린 공판에서 삼성전자 변호인단은 우드워드 양 하버드대 전자공학과 교수를 증인으로 불러 애플의 아이폰, 아이팟 그리고 아이패드 등의 제품이 이메일, 사진앨범, 음원 재생과 관련해 삼성의 특허들을 침해했다는 주장을 들었다. 양 교수는 삼성의 특허는 아이폰이 처음 시장에 공개된 2007년 이전에 신청된 것이라며 애플의 아이폰3G, 아이폰3GS, 아이팟 터치 4세대 제품 그리고 아이패드2가 특허를 침해한 제품이라고 지적했다. ●“터치스크린 애플 기술아니다” 삼성은 또 ‘다이아몬드터치’라는 터치스크린 소프트웨어(SW)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처음으로 창안한 SW 개발자 클리프튼 포라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포라인이 8년 전에 웹페이지·지도 등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며, 애플이 터치스크린 기술을 발명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삼성은 아울러 삼성 자체의 갤럭시S 아이콘 디자인을 위해 3개월간 대규모 팀을 구성, 하루에 2~3시간을 자며 일했다는 왕지윤이라는 디자이너도 증인으로 불렀다. 한편, 삼성전자는 휴렛패커드(HP)가 2002년 내놓은 태블릿PC가 애플 디자인 특허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며 애플의 디자인 특허 무력화 공세를 펼쳤다. 삼성전자 측 증인인 이타이 셔먼은 대형 스크린과 모서리의 원형 처리, 마름모꼴의 스피커 등과 같은 디자인 요소는 애플이 아이폰을 들고 나오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며 애플의 논점을 반박했다. ●“애플 디자인 아이패드 이전 존재” 멀티터치 회사 ‘더블터치’의 사장인 셔먼은 특히 HP가 2002년에 내놓은 태블릿 TC1000은 애플이 자사의 태블릿PC 디자인에 적용하기 2년 전, 그리고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8년 전에 나왔지만 현재 애플이 자사 디자인 특허라고 하는 요소들과 같은 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특허소송 삼성측 첫증인… 애플에 반격

    미국 애플사와 특허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가 첫 증인을 내세워 반격에 나섰다. 1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에서 삼성전자 측 증인으로 출석한 2명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애플 측이 주장하는 자사 기술에도 선행 기술이 존재한다는 취지로 증언해 애플의 독창성을 공격했다. 애플의 ‘러버 밴딩’과 유사한 터치스크린 기술이 아이폰이 출시된 2007년 이전에 이미 개발됐다는 것이다. 러버 밴딩은 사용자가 스크롤을 끝까지 내렸을 때 화면이 튀어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이전까지 애플 측 증인들이 제기하는 주장을 반대신문하는 데 주력해 왔다. 최근 2주 동안 애플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아이폰, 아이패드의 디자인과 기술을 베껴 특허를 침해했을 뿐 아니라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깎아내렸다며 공세를 폈다. 한편 소송을 담당한 루시 고 판사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중 갤럭시에이스, 갤럭시S i9000, 갤럭시S Ⅱ i9100 등 3개 종류의 스마트폰을 최근 심리에서 제외했다. 이 밖에 법정에서는 아이폰을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되며 장점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의 삼성전자 이메일이 공개됐다. 이 이메일은 2010년 3월 2일 이성식 삼성전자 디자인팀 상무가 임원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 상무는 갤럭시S 디자인 개발을 담당했다. 이메일에는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의 발언도 공개됐다. 이 상무는 “최 부회장이 사용자경험(UX)에서 과거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면서 “물론 애플이 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자이니치 아닙니다 재일조선인 입니다

    “해방 뒤 일본에 남은 60만 조선인에게 국적은 없었다. 식민지 시절 강제된 일본 국적을 1952년 일방적으로 박탈당했는데, 당시 조국은 분단됐을 뿐 아니라 남북 모두 일본과 국교가 없었다. 그 때문에 재일조선인들은 처참한 무권리 상태에 빠졌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서경식 지음, 형진의 옮김, 반비 펴냄)은 몹시 슬픈 얘기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하면 빠찡꼬업자, 사채업자, 간첩단, 조총련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극심한 차별 속에 먹고살 게 없어 그리 됐다곤 하지만 왠지 밝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정대세, 추성훈 같은 스포츠 스타의 등장으로 이런 이미지는 크게 개선됐다. 그럼에도 ‘한국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대세가 정작 국가대표로서는 태극기 대신 인공기를 택할 정도로 여전히 모호한 대상이 재일조선인이다. 저자는 이를 ‘자이니치’(在日) 같은 줄임말 말고 ‘재일조선인’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집약시킨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이니치라는 줄임말에는 ‘일본 사람도 아닌데 왜 아직도 일본에 있지?’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의도적으로 ‘조선’이라는 표현을 피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바보 같고 멍청하고 게으르다.’라는 등식을 만들다 보니 조선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피하려 드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정확하고 분명하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고 본다. 재일조선인을 차별하지 않을 때, 행복해지는 것은 재일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해 뒀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다 이런 말도 해 뒀다. “재일조선인을 ‘차별받는 가여운 타자’로 규정짓거나 ‘일본인’이라는 ‘악’을 만드는 것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말고,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는 일본인 속에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1만 4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윤정수 연대보증한 빚 갚아라” 서울지법, 4억대 채무변제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 최승욱)는 전자부품 제조업체 A사가 개그맨 윤정수(40)씨를 상대로 “연대보증 빚 4억 6000만원을 변제하라.”며 제기한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종합도매업체 B사가 A사로부터 6억원을 빌릴 때 연대보증을 선 윤씨는 2010년 4월 빚을 대신 갚아 주기로 약속했다. 윤씨는 1억 4000만원을 바로 갚고, 나머지 빚을 2010년부터 내년까지 15차례에 걸쳐 3000만원씩 변제하기로 했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윤씨는 ‘담보로 맡긴 10억원 상당의 B사 주식을 A사가 모두 처분함에 따라 연대보증인의 변제 의무도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B사가 A사에 담보로 주식을 제공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애플 “비윤리적” vs 삼성 “합법 조치”

    삼성전자와 애플 간 사활을 건 특허전쟁이 초반부터 폭로전 양상을 띠며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법원이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문건을 일반에게 공개하자 애플은 법원에 ‘긴급 제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고, 삼성전자는 ‘합법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법원기록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본안 소송에서 애플 재직 당시 ‘소니를 닮은’ 제품을 디자인한 일본계 디자이너 니시보리 신을 배심원 앞에 세우려 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실패했다. 삼성전자는 애플 디자인 특허 공동등록자인 니시보리가 이번 재판의 핵심 증인이 될 것으로 판단해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 북부지방법원과 국제무역위원회(ITC)를 통해 그에게 사전 증언청취를 통보했다. 니시보리는 애플의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의 지시로 기존 소니 제품을 베껴 아이폰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애플은 2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니시보리가 병가를 이유로 사전 증언청취에 응할 수 없어 건강이 회복되면 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이 정한 증언청취 기한을 넘겼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그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ITC의 명령을 다시 받아내 하와이에 머물고 있던 니시보리를 찾아갔다. 결국 그에게서 “소니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재판을 담당하는 루시 고 판사는 “증언청취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배심원들에게 구체적인 그의 증언내용을 공개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게다가 니시보리는 재판을 앞둔 지난달 초 갑작스레 애플을 퇴사한 뒤 미 연방법상 소환명령이 미치지 않는 하와이에 머물고 있다. 법원을 통한 소환이 어려운데다, 애플에서 떠난 만큼 애플을 통해 그를 법정에 불러들일 방법이 현재로서는 막혀버렸다. 핵심 증거라고 판단한 내용들이 잇따라 법원으로부터 가로막히자 결국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법원이 제외시킨 증거들을 언론에 공개하는 초강수를 뒀다. 삼성이 공개한 문건에는 니시보리가 조너선 아이브의 지시를 받아 소니를 닮은 제품을 디자인했다고 발언한 내용도 포함됐다. 삼성전자 측 변호인은 “애플의 불공정하고 악의적인 공격에서 삼성전자를 변호하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애플은 삼성전자에 제재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밝히는 등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애플은 루시 고 판사에게 서한을 보내 “삼성전자의 문건 공개는 삼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베꼈다는 애플의 주장에 대한 반박 논거를 미디어를 통해 배심원들에게 전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애플 측 변호인은 “채택되지 않은 증거로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고의적 시도는 부당하고 비윤리적”이라면서 “애플은 긴급 제재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5) 만화 수출을 말하다

    [K-코믹스 신한류 이끈다] (15) 만화 수출을 말하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글로벌 만화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달궈진 탓일까. 지금은 한계 상황에 직면해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만화의 수출이 2005년을 기점으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프랑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멕시코 등 해외에서 발행되던 우리 만화 잡지가 대부분 휴간 또는 폐간됐다는 사실도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가장 큰 원인은 바깥에 내다 팔 콘텐츠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만화 잡지의 활황기에 쏟아져 나왔던 작품들은 대부분 수출 계약이 성사됐지만, 이후 신규 판권 계약이 급격히 감소했다. 불황이 국내 만화 시장을 덮치며 잡지가 3~4종으로 줄었고, 신규 출판 만화의 숫자도 급감한 탓이 크다. 웹툰과 어린이 학습 만화 쪽으로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어 우리 만화 전체 생산력에 변함이 없어 보이지만, 그동안 수출 최전선을 담당했던 출판 만화의 생산력은 확실히 둔화됐다. 실제로 국내 만화 단행본 출간 규모는 2002년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02년 2472종(학습 만화 제외)에서 2010년 1325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그나마 2007년 이후 다소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는데 이는 웹툰들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데 따른 것이다. 만화 수출이 정체된 외부 요인으로는 일본 만화의 세계 시장 진출 본격화가 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지에서 일본 만화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며 해외 출판 시장, 그중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만화 시장이 움츠러든 것도 우리 만화 수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작품 수출은 답보 상태지만 2000년대 이후 작가의 해외 진출은 두드러지고 있다. 선진 만화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한편으로 이는 국내 만화 시장 위축이 가져온 반작용이기도 하다. 일본 시장 진출이 가장 활발하다. 박성우, 임달영, 박무직, 양경일, 윤인완 등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프로 작가들이 앞장섰고 현지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이후에도 김동훈, 오세권, 김준형, 엄태복, 김진석, 이성규 등이 꾸준히 일본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김진태, 배준걸처럼 데뷔를 아예 일본에서 하는 작가도 나오고 있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높이 사는 유럽의 경우 변기현, 변병준, 최주연, 박경은, 이정현, 박윤선 등이 프랑스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에서는 이나래가 제임스 패터슨의 인기 소설 ‘맥시멈 라이드’를, 김영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스테파니 마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만화로 옮겨 주목받았다. 만화계에서는 우리 만화의 해외 진출과 관련한 새로운 흐름으로 리메이크를 꼽고 있다. 2009년 네스티 캣의 ‘트레이스’와 하일권의 ‘두근두근거려’ 등이 일본 월간지에서 리메이크로 연재된 바 있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도 지난해 말부터 일본 격주 만화 잡지에서 역시 리메이크 연재되고 있다. 웹툰은 아니지만 형민우의 ‘프리스트’는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다. 앞서 하성현의 ‘퀸즈’는 2007년 타이완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세계 만화계가 정체기 또는 전환기로 불리는 요즘 새로운 해외 진출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할까. 무엇보다도 최우선 과제는 전 세계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디지털 만화 시장 공략이다. 태블릿PC와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보급되며 디지털 만화 소비 환경이 여물고 있다. 만화 관련 앱 개발과 디지털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해외 독자도 우리 만화를 편리하게 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만화계에서는 디지털 만화와 관련한 기술 표준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 외국어 번역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언어 장벽이 낮아져야 해외 독자들이 우리 만화에 좀 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 기존 영미권을 넘어선 다국어 번역 작업 지원, 수출 타진을 위한 샘플 번역 지원, 전문 번역가 양성 등이 절실하다고 만화계는 입을 모은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관 산업과 함께 미디어믹스 형태의 해외 진출이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화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은 각각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동반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만화계에서는 온라인 게임을 필두로 영화, 드라마, K팝이 좋은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성공 사례도 있다. 이명진의 ‘라그나로크’는 온라인 게임과 만화 모두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박소희의 ‘궁’은 일본에 드라마가 수출되며 현지 단행본 판매 2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한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만화 ‘슬픈 연가’는 수출 사상 최고 계약 금액을 기록했다. 현재 소녀시대와 비스트 등 K팝 아이돌을 활용한 만화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김낙호 만화 평론가는 “코믹스 만화의 경우 관련 아이템과 히트 코드를 접목해 적극적으로 대중을 공략하고, 동시에 한국 현실을 담은 작품과 지식 교양 만화를 중심으로 그래픽 노블 쪽에 도전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만화는 사용 편의성, 지속적인 콘텐츠 보급과 퀄리티 관리, 팬 커뮤니티를 파고드는 이른바 ‘소셜’ 관리가 중요하다. 부실한 번역 품질로 시험개발한 앱만 만든 뒤 손을 놓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박석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략기획팀장은 한국 만화가와 해외 스토리 작가의 공동 창작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K팝이 외국 창작자의 작품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 만화가들의 그림 능력과 현지 정서에 적합한 스토리 텔링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 그는 “국내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해외에 내보내는 게 1단계였다면 이제는 우리 기술, 자본력과 외국 이야기, 외국 정서가 만나 현지에 적합한 새로운 작품을 진출시키는 2단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진출에만 목을 매다 국내 시장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만화 수출 역사의 산증인인 김남호 만화 에이전시 토파즈 대표는 “디지털 만화 유통 지원도 중요하지만 너무 앞서 가서는 안 된다. 콘텐츠가 있어야 수출도 있다.”면서 “창작 지원에 비중을 두는 한편 만화 전문 마케팅 인력 양성에 대한 지원도 곁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지 못한 채 해외 진출을 논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 만화 시장이 다양하게 발전하고 존재한다면 우리 만화는 자연스럽게 해외에 나가게 될 것”이라면서 “해외 진출 지원도 좋지만, 우선 다양한 만화를 창작하고 향유하고 연구하는 흐름들을 체계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단종 누나 경혜공주 분재기 발견

    단종 누나 경혜공주 분재기 발견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된 남편과 동생 단종을 비명에 잃은 경혜공주(敬惠公主·1436~1473)가 죽기 직전에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눠 준 문서, 분재기(分財記)가 발견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은 최근 해주 정씨 대종가에서 제공받은 1300여 점에 이르는 고문서에서 ‘경혜공주인’(敬惠公主印)이라는 붉은색 도장이 찍힌 분재기를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김학수 한중연 장서각 국학자료연구실장은 “조선시대 공주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자기 인장을 찍어 남긴 고문서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해주 정씨 대종가는 지난해 방영된 KBS 2TV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실제 주인공인 정종의 종가다. 가로 66㎝, 세로 70.5㎝인 이 분재기는 성화(成化·명나라 헌종의 연호) 9년(1473년) 12월 27일 유일한 혈육인 정미수(鄭眉壽·1455~1512)에게 재산을 나눠 준 내용을 담았다. 문서에서 공주는 “내가 불행히 병이 들어 유일한 아들인 미수가 아직 혼인도 못 했는데 지금 홀연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며 “노비는 갑작스러운 사이에 낱낱이 기록해 줄 겨를이 없어 정선방(貞善坊·조선시대 한성부 중부 8방 중의 하나)에 있는 가사(家舍·집)와 통진(지금의 경기 김포시)에 있는 밭과 땅을 먼저 허락해 준다(물려준다).”고 적었다. 아울러 공주는 정선방에 있는 집은 자기가 죽은 뒤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받들어 자손에게 전하고 오래도록 지니고 살라고 당부했다. 경혜공주는 분재기를 작성하고 사흘 뒤인 12월 30일 별세했다. 문서 작성에는 문종의 서녀인 경숙옹주(敬淑翁主·1439~?)의 남편 반성위(班城尉) 강자순(姜子順) 등 증인으로 참여한 3명의 수결(手決·서명)이 있다. 한편 이번 분재기를 통해 경혜공주가 순천이나 장흥의 관노(官奴)가 됐다는 조선 후기 일부 문집이나 야사의 기록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공주 신분을 계속 유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미수는 이후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이 돼 가문을 일으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1) 인천 홍예문 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1) 인천 홍예문 길

    인천 홍예문(虹霓門)길은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의 영욕과 굴곡을 간직하고 있는 근대사의 무대다. 인천항이 1883년 개항한 뒤 조계지(租界地)로 몰려들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유입과 확대 속에 생겨나고 번창했다. 해방 후에도 1990년대 남동구에 신도심이 생기고 시청 등 주요 기관들이 옮겨가기 전까지 늘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인천의 명동’으로서 100년간의 영화를 누렸다. 이 길은 인천항과 청나라 및 일본 조계지로 이뤄진 개항장을 비롯해 옛 인천 중심지의 한 축으로서 대표적 상권을 형성했다. 지금도 청국영사관 회의청,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제1은행 등 일본 은행건물, 조선식산은행 터 등이 주변에 남아 있고,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에 포함돼 있다. 홍예문길에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중구청은 개항기 일본 영사관과 일제강점기 인천부청으로 쓰였고, 1995년까지 시청으로 사용됐다. 홍예문길은 인천항과 지금의 동인천역을 끼고 있는 전동, 동인천동 지역을 최단거리로 잇는 지름길이다. 인천항 부두에 맞닿아 있는 제물량로에서 시작해 중앙동, 관동을 거쳐 송학동을 통해 동인천의 참외전로로 빠져나오게 된다. 총연장은 1㎞ 남짓하지만 오르막길로 시작해 내리막길로 이어져 훨씬 길게 느껴진다. 그 중간쯤에 홍예문이 서 있다. 1908년 응봉산 남쪽 마루턱을 깎은 뒤 세운 홍예문으로 이 길은 홍예문길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마루턱 9m가량을 깎은 뒤에 양쪽 편에 석축을 쌓고, 마루턱 정점에 세운 아치형 돌문인 홍예문은 인천항을 동인천과 이어주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인천역에서 동인천역 쪽으로 걸어가려면 이 길을 넘는 것이 가장 빠르다. 70m 남짓한 응봉산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인천항에서 동인천 방향으로 가려면 에둘러 빙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물량로에서 시작해 홍예문 직전까지 2차선 너비로 이어지다가 홍예문에서는 차가 한 대씩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진다. 아치형 화강암 터널 격인 홍예문의 폭이 4.5m밖에 안 되는 탓이다. 한쪽에서 차가 오면 다른 방향의 차량은 홍예문에 들어서지 못한 채 대기한다. 문 안으로는 보행자들이 차들과 함께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은 지금도 학생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홍예문 상단부는 응봉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자유공원과 고급 주택가였던 내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인천 개항지역을 동서로 연결하고 있다. 홍예문 상단부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인천항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지 않았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홍예문 정상 난간에서는 인천항은 물론 팔미도, 대부도, 용유도, 영흥도 등 여러 섬들도 바라볼 수 있었다.”고 인천시의 견수찬 학예사는 설명했다. 외국인 범죄 등을 재판하던 인천감리서 터에 자리 잡은 아파트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일본인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돼 노역살이를 했던 곳이다. 홍예문 길은 예전엔 지역명문 인천여고, 제물포고, 박문여고 학생들의 주요 통학로였다.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길 곳곳에 스며 있고, 인천에서 나고 자라 1930~1940년대의 추억을 지닌 일본인 노인들이나 그들의 자손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홍예문 바로 앞에 위치한 인성여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굣길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홍예문을 지나 동인천 쪽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눈에 들어오는 제물포고도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 지역 유지는 “또 한 역사가 떠나가려 한다.”고 아쉬워했다. 1990년대 아파트 단지들과 쇼핑센터들이 남동구에 생겨나면서 구도심에 살던 시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홍예문 주변을 떠받쳤던 시청 등 주요 시설들도 이전하면서 홍예문길도 100년 영화를 접게 됐다. 지금은 대형 음식점 몇 군데를 빼놓고는 대부분 작은 규모의 음식점들과 소규모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다. 일제시대 인천항 쪽에서 홍예문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던 미두취인소(곡물 선물거래소) 터에는 국민은행 신포지점이 들어서 있었다. 옹진군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지나 홍예문 직전에 있는 인성여고 학생체육관은 일제시대 공회당이 있던 곳이었다. 일제시대 경찰서 등 주요 건물들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많은 공공시설과 학교 등이 떠나갔지만 홍예문길 주변에 남아 있는 가옥과 단독주택들은 나이 먹은 가로수들과 무성한 담쟁이 덩굴 속에서 노신사와 같은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개항장 일대가 문화지구로 재정비되고, 이곳을 찾는 중국 등 해외관광객들도 늘면서 홍예문길도 차츰 활력을 되찾고 있다. 개항장 일대와 함께 홍예문길은 인천의 역사탐방 도보 여행길인 ‘인천개항누리길’에 포함됐다. 문화재보호법과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고도제한 등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었지만 한국근대사의 대표적인 무대로서 ‘문화·역사관광의 메카’라는 새로운 발전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역예술인들의 작업장과 전시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인천 아트플랫폼은 이 지역의 변신 노력을 보여준다. 1883년 세워진 일본 우선주식회사 창고 등을 개조해 만든 아트플랫폼은 옛 인천의 현대적 변신을 상징한다. 홍예문길과 개항장 일대는 변신을 꿈꾸고 있었다. 인천시와 중구청은 문화를 매개로 한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공을 들이고 있었다. 최인선 중구 관광문화재과장은 “인천개항장 문화지구에 박물관, 공방, 전통찻집 등 권장 업종 용도로 취득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 절반을 경감하고, 재산세도 3년에 걸쳐 절반으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인천 내항 재개발구상’은 홍예문길로 상징되는 근대 인천의 다양한 모습과 근대 한국의 유산들을 보다 현대적으로 결합시켜 문화관광의 메카로 도약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인천발전연구원의 김용하 도시기반연구부장은 “인천 내항의 주요 물류기능을 외항으로 옮기고 박물관, 미술관 및 공연공간 등 문화시설과 공원 등 주민 편의시설을 건설해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한 시민개방형 항만으로 만들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항을 일본의 대표적 문화생태 관광지로 변모시킨 요코하마의 미나토 미라이 지구와 같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건설 중인 수원~인천 철도가 2014년 개통되면 경기 남부와의 접근성도 좋아져 발전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12회는 충남공주 고마나루길을 소개합니다. 글 사진 인천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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