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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하)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

    인생의 큰 변화는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외교관을 꿈꾸던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이 군인의 길로 들어선 것이 첫 터닝 포인트였다면,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지내면서 태권도와 인연을 맺은 것이 두 번째 변화의 계기였다. 김 전 부위원장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지만 체육회 1년 예산은 문교부에서 나온 1억원이 전부였다. 돈이 없는 경기단체의 장에 정치적 실력자를 배정하다피시 했다. 사격은 박종규(대통령 경호실장), 복싱은 김택수(국회의원), 축구는 장덕진(농수산부 장관) 하는 식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들어간 건 아닌데 좌우간 (경호실 차장으로) 힘이 있을 때니까 호주머니 털어서 (선수들을) 여관에 합숙시키곤 했다”고 돌아봤다. 태권도와 어떤 접점도 없었던 그가 이런 행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비전 때문이었다. ‘체력은 국력’이란 강령 아래에선 국위 선양할 것이 태권도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만 사범이 10명 있을 정도로 해외에 사범들이 많았지만 국내에는 중앙 도장도 없고 세계연맹도 없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1971년 1월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협회에 체계라곤 없었다. 30개 파로 나뉘어 제각각 단증을 발급하는가 하면 사범 교육 제도도 전무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어수선하던 태권도계에 국기화, 세계화, 국위 선양의 기수, 호국의 기수란 네 가지 비전을 제시하고 기틀을 잡아 나갔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70년대를 관통한 불도저식 개발은 태권도계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협회장 취임 일성으로 중앙 도장인 국기원 건립을 내세운 그는 막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청와대 경호실 차장이란 직함이 그 추진력에 연료를 제공했을 터. “호주머니 털고 친구에게 용돈 뜯어다가 지었다. 땅은 양택식 서울시장에게 빌렸는데 그것도 옥신각신했고. 돈이 없으니까 여기저기서 기부도 받았다. 이병철 삼성 회장 300만원, 정인영 현대건설 부사장 200만원 등등…. 청와대 경호관 월급이 2만원일 땐데, 그때 그 돈이면 굉장한 거다. 철근은 인천제철에서, 지붕은 벽산에서 슬레이트를 갖다 놨다. 동창들 찾아가서 (사정해서) 지었다. 시멘트 한 포가 270원, 철근 1t이 2만원 할 때다.” 72년 중동 오일쇼크가 덮쳤지만 국기원은 그해 11월 3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취임한 지 1년 10개월 만의 일이다. 다음 목표인 세계화를 위해 73년 5월 국기원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대회 직후 국기원에 20개국 대표가 모여 세계태권도연맹이 만들어진다. 이로써 태권도의 국내 보급을 맡은 대한태권도협회, 세계 각국에 태권도를 전파하고 외국 협회를 관리하는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란 무도의 본산으로서 두 단체를 지휘하는 국기원이란 지금의 체계가 비로소 갖춰졌다. 태권도의 기반을 닦은 주인공이기에 지난 2월 태권도의 올림픽 핵심 종목 잔류 결정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그는 “스위스 로잔 집행위원회 전에 (주변에) 전화로 물어보니 ‘레슬링은 총회에 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태권도는 그런 염려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태권도가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들어갔을 때 찬성 85표, 반대 0표로 들어갔지 않았나. 최근에는 찬성표만큼 반대표가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그때의 힘이) 아직은 남아 있다. 현재 IOC 부위원장인 세르 미앙 능(싱가포르), 토마스 바흐(독일), 크레이그 리디(영국)와 존 코츠(호주) 집행위원은 그때 모두 태권도를 도와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레슬링은 힘이 하나도 없다. 겉으로 내세우지는 않지만 (이런 일은) 힘을 갖고 하는 것”이라고 은근히 자신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태권도가 계속 살아남으려면 복싱에서 헤드기어를 따온 것, 펜싱을 보고 전자호구를 도입한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는 개혁을 해야 한다. 마케팅과 국제적 감각이 아직은 부족하다.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가 세계태권도연맹을 도와줘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태권도에서 외연을 넓힌 그는 74년 2월 대한체육회 부회장 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으로 취임, 스포츠 외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영화 제목을 본뜬 ‘동방불패’(東方不敗)란 말을 들을 정도로 굵직굵직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국제 스포츠 무대의 요직을 차지한다. 83년 암으로 사망한 김택수 IOC 위원에 이어 2년 뒤 박종규씨마저 같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그는 86년 10월 1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91차 IOC 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출된다. 일주일 뒤 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으로 선출된 이후 그는 88년 IOC 집행위원, 92년 IOC 부위원장으로 뽑혔고 97년 무주·전주 유니버시아드,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느라 숨 가쁘게 세계를 누볐다. 그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 이어 2000년 시드니 대회를 통해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것으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것을 최고의 업적으로 손꼽는다. 시드니 대회에서는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까지 성사시키며 99년에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스캔들(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IOC 위원 매수와 금전 살포가 있었음이 밝혀져 위원들이 대거 제명되고 개혁안이 통과)로 인한 타격을 만회하는 노련미를 발휘한다. 그러나 자신의 지지기반이 상당히 떨어져 나간 이 스캔들 때문에 김 전 부위원장이 30년 동안 쌓아 온 명성과 입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2001년 IOC 위원장에 도전했다가 자크 로게 현 위원장에게 밀려 쓴잔을 마시고, 이듬해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 실격 사건’에도 불구하고 대회 조직위원회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여기에 더해 2003년 프라하 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실패한 일은 조금씩 그의 쇠락을 부채질한다. 결정타는 2003년 12월에 시작된 검찰 수사였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 등의 공금 38억원을 2000년쯤부터 빼돌렸고 각종 청탁과 함께 8억여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2004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억 8800여만원이 선고된 뒤 이듬해 1월 대법원에서 원심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치소에서 그는 “정치적 누명을 쓴 것”이라며 IOC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노력을 했지만 IOC는 2005년 2월 그를 제명하는 권고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해 7월 총회에서 제명될 움직임이 보이자 그는 두 달 전에 부위원장직을 자진 사퇴한다. 6월 30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그는 지금도 자신을 몰락시킨 검찰 수사를 “평창 유치 실패의 책임을 돌리기 위한 정치세력의 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IOC 위원들 얼굴만 보면 ‘태권도’, 또 보면 ‘평창’, 이러고 다녔다. 체육회장을 하면서 ‘한국이 스포츠 강국이 되려면 동계올림픽도 유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한국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쇼트트랙밖에 없었다. 평창(을 위한) 테스트로 시작한 게 99년 용평 동계아시안게임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밴쿠버와 평창의 시설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나 따라온 국회의원들은 나만 믿고 되는 줄 알았는데 (실패하니) 내용도 모르고 내가 부위원장 (재선)하려고 (유치에) 방해를 놓았다고 했다. 나는 평생 태권도, 올림픽 하면서 한국 체육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사람인데 방해를 놓았다고 하니 말이 안 된다고 했지만 정치세력 힘이라는 게 사람을 잡더라.” 세간의 시선과 그의 입장에는 이렇게나 큰 간극이 있다. 정치권에 대한 커다란 피해 의식을 감추지 못했다. “평창이 2007년 과테말라 총회에서 세 번째로 도전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지철씨와 변양균씨를 시켜 (현장에) 오지는 말고 팩스와 전화로 도와달라고, 그러면 사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사면을) 안 해 주고 나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특별사면) 했다. 정치하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다.” 한국 스포츠와 함께 격동의 40여년을 보낸 뒤 그는 활동하던 단체들의 고문직을 맡으며 2선으로 물러난다. 최근에는 집필과 특강에 전념하고 있다. 1년에 절반은 집을 떠나 세계를 떠돌던 현역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노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농을 던졌다. “이제는 명예회복도 많이 되고 (사람들이) 업적도 많이 알게 되고…. 편하다. 일본과 한국의 여러 대학에 특강도 나가고 가만히 있어도 석좌교수 해 달라는 데(명지대·조선대)도 있다.” 소년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는 좋아하는 피아노 덮개도 다시 열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 시절 독주도 많이 했는데…. 쇼팽을 가장 좋아한다. 집사람도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나왔고 우리 딸(차녀 혜정씨)도 피아노를 전공했다.” 겉으로 보면 세계 무대를 향한 열정의 파랑(波浪)은 잦아든 듯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IOC 무대와 한국 스포츠 외교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나간 뒤 스포츠 외교를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해야 한다며 체육인재육성재단(2007년 설립)이라는 게 생겼던데 그게 잘 되겠나? 인재가 저절로 키워지나? 현장에서 커야지. 인품도 있어야 하고 교양도 있어야 한다. 상대방 문화도 알고 우리 문화와의 차이를 초월해 마음을 끌고 와야 하는 게 스포츠 외교다. 나는 누가 키웠나?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 뛰고 IOC에서 올림픽 치르면서 사람 사귀면서 커진 거지 누가 돈 대줘서 키운 게 아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제2금융 연대보증 이달말 폐지 추진

    정부는 제2금융권에 남아 있는 연대보증 관행이 ‘무책임한 처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저축은행, 상호금융, 할부금융사, 보험사 등 2금융권의 연대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약 2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위원회는 4일 2금융권의 연대보증 규모를 대출 연대보증 51조 5000억원, 이행 연대보증 23조 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대출 연대보증은 돈을 빌려주면서 신용이나 담보를 보강하라고 요구할 때 이뤄진다. 이행 연대보증은 서울보증보험 등 보증보험사가 계약 불이행이 발생하면 책임지겠다고 보증하면서 부족한 보험료를 연대보증으로 메우도록 하는 것이다. 금융위는 대출 연대보증자가 약 141만명인 것으로 파악했다. 1인당 3700만원꼴이다. 보증을 서 준 채무자가 대출 만기를 연장하면 연대보증 채무도 자동 연장된다. 특히 대출금액이 많은 중소기업 등 법인 대출자가 대출금을 늘리거나 대출 방식(신용대출, 담보대출 등)을 바꿔도 연대보증인은 따라간다. 이행 연대보증에는 55만 4000명이 매인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4200만원씩 보증보험사에 연대보증을 선 셈이다. 앞서 금융위는 금융감독원, 업계, 학계가 참여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TF는 이달 말까지 연대보증 폐지 방안을 구체화한다. 금감원이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형태로 각 금융회사의 여신업무관리규정에 연대보증 폐지를 원칙적으로 담되 불가피한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신용이 부족한 서민이 생계에 필요한 돈을 빌리는 것은 예외로 허용하지만, 금융회사가 연대보증 책임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보증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표준약관을 만들 방침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삼성·LG TV ‘美친환경 인증’ 삼성 71·LG 53개 모델 획득

    삼성전자와 LG전자 TV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정부기관의 친환경 제품 인증을 대거 획득했다. 삼성전자는 2일(현지시간) 스마트TV를 비롯한 71개 TV 모델에 대해 미국 전자제품 환경평가인증인 EPEAT(Electronic Product Environmental Assesment Tool) 등록을 완료했다고 3일 밝혔다. 37개 모델이 최고 등급인 ‘골드’, 34개 모델이 ‘실버’ 등급을 획득해 각각 EPEAT로부터 환경 마크를 부여받았다. LG전자는 53개 모델에 대해 EPEAT 인증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6개 모델이 ‘골드’, 나머지 47개 모델은 ‘실버’ 등급이다. 올해 처음으로 TV 제품에 대해 친환경 인증 절차를 시행한 EPEAT는 전자업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친환경 인증 기관으로 유명하다. EPEAT는 에너지 저감, 재활용이 쉬운 제품 설계, 친환경 포장재 사용 등은 물론 기업의 친환경 정책까지 일괄적으로 평가한다. 미국 정부는 EPEAT 인증을 받은 제품만 구매하기 때문에 파급 효과도 크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검사 합의종용, 변호사 이중수임” 윤씨의 ‘수상한 재판’

    사회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성 접대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건설업자 윤모(52)씨의 상가 개발비 70억원 횡령 사건을 둘러싸고 과거 검찰 수사에 대해 석연치 않았다는 소송 당사자들의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윤씨를 고소한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피분양자들은 “(상가 개발비 횡령사건과 관련한) 2011년 형사사건 재판 당시 담당 검사는 압수수색 등 수사를 모두 하고도 재판 말미에 갑자기 합의를 종용해 왔다”면서 “윤씨의 혐의를 일부 인정한다면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 자체가 수상했다”고 주장했다. 피분양자 김모(61)씨는 “윤씨가 합의를 하러 찾아왔길래 담당 검사에게 ‘윤씨가 합의를 하러 왔다’고 알렸는데 되레 담당 검사가 ‘내가 (합의하라고) 보냈다’고 했다”면서 “사건 중간에 검사가 바뀐 것도 찜찜했는데 결국 우리가 패소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담당 검사는 윤씨가 2011년 7월 서울중앙지검장 앞으로 낸 탄원서가 받아들여지면서 그해 8월 교체된 검사다. 윤씨는 탄원서에 “수사관이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치 횡령범인 것처럼 (나를) 몰아가고 있다”면서 “담당 검사를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검찰이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면서 밝힌 불기소 이유서에 대한 법조계의 해석 또한 분분하다. 검찰은 윤씨의 횡령 혐의는 일부 인정하나 공소시효(7년)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한편 2008년 피분양자들의 항소심을 대리한 B법무법인 변호사가 같은 해 윤씨가 추진한 목동 재개발 아파트 건축 과정에서 불거진 소유권이전 등기말소 소송에서 윤씨 측 법률대리인을 맡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윤씨는 그해 목동재개발 아파트 건축이 지연되면서 땅을 맡긴 주민들로부터 땅을 돌려 달라는 요지의 민사 소송을 당했다. 해당 변호사인 K씨는 피분양자들에게 밝힌 자료에서 “당시 윤씨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윤씨가 목동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린) S저축은행에서 수임료를 받았다”면서 “윤씨의 회사가 (이중 수임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용두동 상가 분양대금 항소심에 걸려 있는 곳과 동일한 회사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피분양자 정모(69)씨는 “윤씨 회사가 허위 광고를 했다는 증언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에 대해 변호사가 우리 몰래 증인 신청을 취하했다는 사실도 패소 후에 알았다”고 주장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명사가 걸어온 길] (8) 한국 스포츠외교 산증인 김운용 前 IOC 부위원장(상)

    김운용(82)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건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자신의 발자취를 오롯이 모아둔 ‘김운용닷컴’(www.kimunyong.com)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었다. 약속 시간 10분을 앞두고 그가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남색 캐시미어 코트, 맞춰 두른 고동색 에르메스 목도리는 현역 시절 그대로였다. 이날은 택시법의 재의결을 요구하며 택시업계가 총파업을 벌인 날이었는데, 그는 기자에게 “택시 스트라이크 때문에 오는 길은 괜찮으셨소”라고 영어를 섞어 말을 건넸다. 말투와 몸짓 하나하나에서 한국 스포츠 외교의 첨병으로 오래 활약한 세월이 묻어났다. 1971년 대한태권도협회장에 취임하며 체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1986년 IOC 위원, 1988년 IOC 집행위원, 92년 부위원장에 당선돼 활동했다. 그동안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유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 입장, 1994년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승인 등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들을 진두지휘한 그다. 좌절되긴 했지만 2001년 유색 인종으로는 최초로 IOC 위원장직에 도전, 세계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인생을 함축한 ‘올림픽 30년, 태권도 40년’ 문장 속에는 한 사람이 일궜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성취와, 딱 그만큼의 시련이 녹아 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운동과 영어를 유난히 좋아했던 한 소년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를린올림픽이 열린 1936년, 다섯살 나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대구 만경관에서 ‘민족의 제전’이란 올림픽 기록영화를 본 것은 마치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 느낀 강렬한 두근거림은 어쩌면 훗날 그가 올림픽 무대의 중심에서 일하리라는 자기암시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다섯 살 위의 형은 “동아일보가 손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큰일이 났다”고 말해줬다.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친 김도학(1936년 별세)씨의 영향으로 어린 형제는 또래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대구 조선민보사 기자였다가 서무부장 겸 경리부장으로 일했던 부친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를 즐겼고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부친을 닮아 그는 다재다능한 소년으로 자라난다. 서울 욱구중학교(1945년 해방 후 6년제 경동중학교로 변경, 현 경동고)에서 공부 말고도 복싱·스케이팅·공수도 등 운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연마했고, 피아노도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나는 과목별 편차가 심했다. 영어는 월등히 뛰어났지만 수학은 형편없었다. 그러나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면서 5등 하는 게 1등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저서 ‘미련한 사람은 자기 경험에서 길을 찾고 현명한 사람은 선배에게 길을 찾는다’ 중에서) 특히 영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 “내 꿈이 외교관, 피아니스트, 국제법 학자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원래 영어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엔 방학 때 다음 학년도 책을 미리 읽고 4학년 때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크리스마스 캐롤’(찰스 디킨스), ‘스케치북’(워싱턴 어빙) 같은 문학 작품도 많이 읽었다.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을 때는 그들이 주둔한 동숭동 서울대에 찾아가 보초들과 회화 연습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선교사가 세운 연희대(현 연세대)를 택하게 됐다. “그때는 (연희대가) 국제적인 학교라 외국 교사가 많아서 성경도 영어로 1주일에 3시간, 회화도 언더우드 부인이 직접 가르치는 3시간, 영어강독 3시간 등 일주일에 영어만 9시간 공부했다.” 그러나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소용돌이는 그가 외교관의 꿈을 이루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대학 2학년이던 1950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 3부(현 외무고시)에 응시한다. 응시원서 마감일인 6월 20일 대학 1학년 수료증과 인지세 2000원을 들고 고시회관에서 원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불과 닷새 뒤 전쟁이 터졌다. 시험은커녕 목숨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인생은, 특히 그런 격동기를 통과하는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고향인 대구로 피란가지 못해 서울에 갇혀 있던 그는 9월 말 서울이 수복되고 나서 육군본부에서 국제연합 연락장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병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라 징집 공고가 곳곳에 나붙었는데, 국군과 미군의 공조를 위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 역시 절실했던 것이다. 당시 19세이던 그는 연희대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가서 2학년 재학증명서를 뗀 뒤 이를 4학년으로 고치고 나이도 응시 자격인 21세로 올리는 ‘문서 위조’를 감행하면서 지원한다. 1951년 12월 그는 보병 중위로 임관해 동해안을 지키는 5사단의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발령받는다. 인생의 항로는 바뀔지언정 목적지를 바꾸지 않는 것은 그의 영민함 덕이었다. 영어가 나침반이 됐다. 엉겁결에 군인이 됐지만 그는 좋아하는 영어책을 놓지 않았다. 외교관이 될 수 없다면 군사외교 분야에서 활동하면 됐다. 기회는 적극적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왔다. 1953년 1월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미국 보병학교 훈련 시험에 합격해 조지아주 포트 베닝의 보병학교를 다녀온 것을 비롯해 세 차례나 군사유학을 다녀왔다. “요즘 한창 얘기하는 드론(첨단 무인폭격기)을 1955년에 벌써 공부했다. 산 영어를 많이 하니까 (나를) 써먹기 좋잖아. 직업군인도 아닌데 (군대에서) 내보내지를 않았다.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참모총장의 전속부관으로 일했다. 참모총장이 미8군과 매일 접촉해 탄약이나 기름을 지원받던 때였으니….” 1960년 4·19 혁명 당시엔 계엄사령관이었던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으로 일했고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 이후 송 장군이 내각수반(총리)에 오르면서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3년 8월 주미대사관 참사관이 돼 워싱턴으로 갔지만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사건,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청와대에서 미국담당 1급 비서관으로 일하라는 전갈을 받고 귀국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가 맞물리면서 경호실 보좌관(차장 1급)으로 발령이 난다. 그 뒤 6년 동안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한다. 조금 길지만 그의 육성 증언을 옮겨본다. “장군을 맨 처음에 뵌 건 1954년 2군단 소속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포병사령관을 할 때였다. 나는 막 미국 유학을 다녀온 상태였다. 세 번째 유학을 마치고 1군사령부 비서실에 있을 때 그분은 작전참모부장이었는데, 비서실이 참모장 소속이었다. 그때 장군들은 주말이 되면 자유당에 ‘사바사바’하러 다녔는데 박 장군은 안 그랬다. 휘하에 소령이나 대위들 데리고 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 우리를 만나면 ‘김 소령 어디가, 한 잔 할래?’ 하고 말도 건넸다. 인정이 많은 분이셨다. 판공비를 본인이 안 쓰고 다 나눠줬는데, 나도 많이 얻어 썼다. 그분의 성품이 드러나는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상관이었던 송요찬 장군이 1963년 동아일보에 ‘군은 민정이양하고 복귀하라’는 성명서를 낸 뒤 구속됐잖나. 그걸 풀어주고 송 장군이 나온 뒤에 딸을 하버드 법대에서 공부시키는 걸 도와줬다. 자신이 한 번 친 사람들도 후에는 명예회복을 해줬다. 순경 시켜서 ‘누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가족에게 갖다주라’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러니까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도 있는데, 내가 출장 다녀오면서 여비를 털어서 카디건 같은 걸 사오면 ‘이런 거 왜 사왔어’하며 나무라셨다. 선물 같은 건 당연한 건 줄 알고 ‘좀 더 사오지’ 할 법도 한데, 그 정도로 인정이 있는 분이었다. 5·16 후에는 박 장군이 내각 수반으로 왔을 때 의전비서관으로 있었다. 1968년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가서 6년간 모시다가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나왔다. 경호실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었지만 막상 가보니 (경호실이) 권총만 차는 데가 아니고 미국 식으로 서비스, 즉 공공 업무를 하는 곳이었다. 다른 기관들과 협력도 해야 하고 사전 경비를 위한 장비도 준비해야 하고…. 경호실에 있으면서도 다른 심부름(군사원조 관련)도 많이 했다.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나가지 않아도 됐지만 책임지고 나왔다. 사표를 냈더니 박 대통령이 부르더라고. 장례식 때문에 좀 가다듬고 나서 부르는 거라면서 봉투를 줬다. ‘다시 부를 테니까 가 있어’ 했다. 그런데 그 후에 자신이 암살당했으니…나는 (청와대를) 나와서 태권도만 열심히 했다. 1971년에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 제의도 들어오긴 했는데 내가 고사했다. 4·19 때 자유당이 하루저녁에 무너지는 걸 다 봤는데…절대 안한다고 했다.” 육 여사 묘소에 참배를 하고 청와대를 떠난 김 전 부위원장은 1971년 태권도협회 회장에 취임하면서 스포츠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또 뒤집힌 ‘시신없는 살인’… 결국 유죄

    또 뒤집힌 ‘시신없는 살인’… 결국 유죄

    부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피의자에게 살인 혐의가 인정돼 다시 1심과 같이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부장 이승련)는 27일 보험금을 노리고 노숙인을 살해해 화장하고 나서 자신의 시신인 것처럼 속여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손모(43·여)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시신을 자신으로 바꿔치기하는 등 범죄수법이 엽기적인 데다 1심 유죄, 2심 무죄, 3심 유죄취지 파기환송 등으로 법원 판결 내용이 왔다갔다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인이 사망한 것처럼 속이는 데 필요한 시신을 얻으려 피해자를 유인해 살해한 동기 등이 충분히 인정되는 데도 거짓말로 일관하고 뉘우치지 않는 등 죄질이 매우 무거워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필요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손씨는 2010년 3월부터 15억원 상당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6월 중순 대구의 모 여성쉼터에서 소개받은 노숙인 김모(26)씨를 부산으로 데려와 다음 날 새벽 확인되지 않은 방법으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손씨는 시신을 화장하고 나서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보험금 600만원을 받았으며 2억 5000만원을 추가로 받으려다 이를 수상히 여긴 보험회사의 신고로 덜미가 잡혔다. 1심 재판부는 2011년 살인 혐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지난해 2심은 “피고인이 가해자를 유인해 살해했을 것이란 의심이 들지만 구체적인 범행 방법이 적시돼 있지 않고 타살을 인정할 만한 물적 증거도 없다”며 살인죄는 무죄를 선고하고 사체 은닉죄만 유죄로 인정,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객관적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돌연사, 자살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데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흠이 있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숨진 김씨가 다닌 대구의료원 등에서 피해자의 돌연사 가능성 및 자살 가능성과 관련한 의학적 소견을 구하고, 피해자가 생활했던 쉼터에서 같이 지낸 사람을 증인으로 소환, 추가 조사 등을 벌인 결과 손씨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저지른 범행이라는 결론을 냈다. 손씨가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 대법원에서 다시 이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앞서 검찰은 손씨가 이혼,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다음 주변 사람이 찾지 않을 여성 노숙인을 살해한 뒤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꾸며 보험금을 타낼 계획을 세웠다며 손씨에 대해 살인과 사체은닉,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기소했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버티던 유통재벌 2세들 ‘뒤늦은 반성’

    버티던 유통재벌 2세들 ‘뒤늦은 반성’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가 정식 재판에 회부된 정용진(45)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지선(41)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6일 뒤늦은 반성과 함께 선처를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소병석 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정 부회장은 “본의 아니게 물의를 끼쳐서 죄송하다. 앞으로 엄격한 잣대의 책임감으로 기업 경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법원 형사9단독 성수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정 회장도 “국회의 출석 요구에 적극 협조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인데 부득이하게 불출석해 죄송하다. 앞으로 비슷한 요구가 있으면 성실히 응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면서도, 공통적으로 ‘당시 다른 임원이 대신 출석하도록 조치했고 해외 출장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성 판사는 정 회장에게 “같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 모두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를 밝히고 있다”며 “혹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검찰은 이들에게 “국회 정무위의 요청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했다”고 지적했지만, 약식기소 때와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에게 벌금 700만원, 정 회장에게 벌금 400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해 10~11월 정 부회장과 정 회장에 대해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 국감 및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들이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나오지 않자 검찰에 고발했다. 현행법상 정당한 이유 없이 국정감사 등에 출석하지 않은 증인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다음 달 11일과 18일 오전 10시에 각각 정 회장과 정 부회장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사설] 대법원 공개변론 중계 신선한 시도다

    대법원이 그제 법정 재판을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과 한국정책방송(KTV) 등 케이블방송을 통해 생중계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열린 법원 실험’의 일환이라고 한다. 재판 생중계를 위해 재판 시작 전까지만 촬영 및 녹화를 허용하는 기존의 대법원 예규까지 고쳤다. 65년간 굳게 닫혀 있던 대법원의 빗장을 열고 재판 장면을 생중계한 것은 매우 신선한 시도이며 바람직한 변화로 주목된다. 이날 재판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부부싸움 끝에 남편의 동의 없이 생후 13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출국했다가 베트남 친정에 두고 온 것을 유괴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원합의부 공개변론이었다. 다문화가정이 많아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 사회구조의 변화로 많은 사회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하지만 ‘남의 일’로 치부하며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정 재판 생중계를 통해 문제 의식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연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재판이 생중계되는 동안 인터넷 생중계를 한 네이버 중계창에 285개의 댓글이 올라와 또 다른 공론의 장이 펼쳐졌다고 한다. 사회적 파장이 크고 국민 여론이 엇갈리는 사건에 대해 재판 과정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대법원은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이처럼 여러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보편적 상식과 양심을 저버린 법관,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에게 막말을 하는 판사, 무책임한 국선변호인 등 사법부의 명예와 신뢰를 실추시키는 사례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신뢰 회복이야말로 사법부가 가진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닌가. 공정하고 공평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문제의 근본까지 파고들어 고민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신뢰 회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법원은 법정 재판 생중계를 몇 차례 시행해 본 뒤 국민적 관심을 끄는 하급심에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성숙한 사고와 품위 있는 처신을 요구하는 공개변론 중계가 사법개혁의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사이버 테러 이후] “한국 전산망 마비, 많은 이들이 北소행 추정”

    미국 하원 국토안전위원회 산하 사이버안보 소위원회 패트릭 미핸(공화) 위원장은 20일(현지시간) 한국 내 주요 방송사와 일부 금융사의 전산망 마비 사태와 관련, “많은 이들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보고 있다”면서 “이는 남북한 사이의 또 다른 긴장 고조”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소위원회가 ‘중국, 러시아, 이란의 사이버 위협’을 주제로 연 청문회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북한이 최근 핵무기 관련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사이버능력도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프랭크 실루포 조지워싱턴대 국토안보정책연구소장도 “북한은 사이버 테러의 와일드카드(예측할 수 없는 요인)”라면서 “북한은 의도를 갖고 있고, 컴퓨터 네트워크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워싱턴의 한 대북 인권단체도 이날 해킹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인권위원회(HRNK)는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해 자료가 유출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그레그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자칭 ‘히트맨 007-킹덤 오브 모로코’라는 단체가 홈페이지를 해킹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번 해킹으로 출간물, 문서 등이 유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며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공격이 한국에서 발생한 방송, 금융사들의 전산망 마비사태와 관련이 있는지, 미국 내의 다른 기관들도 피해를 봤는지 등의 여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해킹 공격이 유엔 인권위원회(UNHCR)에서 북한 인권조사위원회 설치 안건에 대해 표결을 하기 전날 발생했다는 점에서 ‘북한 연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의 성격으로 미뤄 이런 사고를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2001년 설립된 HRNK는 북한의 정치수용소 실상을 폭로하는 등 북한 정권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로 유명하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부고] 산부인과 박사 1호 배병주 전 적십자병원장

    국내 의료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산부인과 박사 1호 배병주 전 적십자병원장(배병주산부인과 원장)이 18일 새벽 별세했다. 91세. 고인은 우리나라 산부인과 영역을 개척하고 각종 임신 질환에 대한 임상과 연구를 활성화해 ‘산부인과의 대부’로 불렸다. 192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1961년부터 적십자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재직했다. 1975년부터 7년간 적십자병원장을 지낸 고인은 임신조절 장치를 개발, 국내 최초로 산부인과 분야 의료기기 특허를 획득했다. 1958년 서울 회현동에 문을 연 배병주산부인과를 최근까지도 운영했다. 개원 당시 40평 정도였던 병원을 55년 동안 단 한 평도 확장하지 않고 오직 진료와 연구에만 몰두했다. 차남인 배광범 보라매병원 교수는 “돈을 추구했다면 대형 병원 몇 개를 세우고도 남았겠지만 이면지 한 장도 아껴 쓸 정도로 근검절약을 생활화하신 분”이라면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의 진료비는 받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의사 글쓰기 동호회에 참여해 50여년 동안 활동하며 써 온 글을 한 데 묶어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100여편의 논문과 30여편의 저서를 출간한 그는 1960~70년대 가족계획협회, 불임관리협회 회장을 맡는 등 산부인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국민훈장 모란장과 박애금장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지화(전 이화여대 교수)씨와 아들 용범(변호사)·광범(보라매병원 교수)·상욱(연세의대 교수)씨, 딸 상경(수원대 교수)씨, 며느리 이혜숙·이명희(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장)·정병화(KIST 센터장)씨, 사위 박세원(다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 (02)2227-7556.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차관 인사] 공항건설의 산증인 별명

    여형구 국토교통부 2차관 국토해양부 안팎에서 인정해 주는 교통 분야 전문가. 신공항 개발과장, 신공항 계획과장, 국책사업기획단 신공항기획과장 등을 역임한 공항 건설의 ‘산증인’이다. 교통정책실장, 항공정책실장에 이어 기술고시 출신으로 기획조정실장도 맡았다. 겉으로는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이지만 일 처리는 논리적이고 꼼꼼하다는 평을 받는다. 부인 윤혜림(47)씨와 1남 1녀.
  • “부인에게 마약 먹여 결혼했나요”

    판사와 검사의 막말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과 검찰이 물의를 빚은 판·검사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대법원은 부장판사가 재판 도중 피고인에게 ‘마약’을 들먹이며 막말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7일 밝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근무했던 최모 부장판사는 마약관리법 위반 전과가 있는 A씨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재판 도중 A씨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장판사는 현재 수도권 지방법원 지원에 근무 중이다. 대법원은 윤리감사관실에 즉각 진상 파악을 지시하는 한편 소속 법원장의 징계 청구가 있을 경우 신속하게 법관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사기 사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심문하던 중 진술이 불명확하게 들리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서울동부지법 유모 부장판사에 대해 견책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검찰도 이날 서울남부지검 이모 검사가 성폭행 피해 여고생에게 2차 가해 발언을 한 사건과 관련해 감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이 검사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대검찰청과 협의하에 감찰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검사는 지난해 8월 의붓아버지에 의한 성폭행 사건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인 고등학생 A양에게 “솔직히 말해야 해. 너 아빠랑 사귄 거 맞지? 카톡(카카오톡 메신저) 내용 보니까 아빠랑 사랑한 거네”라고 추궁했다. A양과 변호인 등이 항의하자 이 검사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아시죠. 그것도 알고 보니 딸이랑 아빠랑 사랑한 거였어요. 혹시 걱정이 돼서 물어본 겁니다”라고 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고 ‘법정언행 컨설팅’ 제도를 올해 안에 전국 법원에 도입하기로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시스터 액트(KBS1 밤 12시 20분) 카지노에서 삼류 가수로 일하는 들로리스는 암흑가의 거물인 빈스의 범죄 현장을 목격한다. 잡히기만 하면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그녀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경찰에 신고한 들로리스는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부탁한다. 경찰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수녀원에 들로리스를 숨기는데…. ■유희열의 스케치북(KBS2 밤 12시 20분) 신곡 ‘드림 걸’(Dream Girl)로 가요 차트 1위를 휩쓰는 샤이니가 유희열과의 특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유희열과 샤이니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사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목욕 가방을 든 유희열의 모습과 매번 자신의 집으로 놀러와 같이 밥을 먹을 것을 권유하는 평소 베일에 싸인 유희열의 사생활을 폭로한다. ■코미디에 빠지다(MBC 밤 11시 25분) 심혈을 기울인 새 코너 ‘하루살이’가 공개된다. MBC의 대표 미녀 개그우먼 김주연과 SBS 공채 개그맨 김범용, 박재석이 합심해 선보이는 코너로 하루살이의 하루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설정해 웃음을 선사한다. 시종일관 ‘우리는 시간이 없어’라며 허둥대는 모습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아이들은 왜 뭐든지 입으로 가져갈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손에 닿는 건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는 건희 때문에 엄마는 온 종일 건희 뒤만 졸졸 쫓아다닌다. 혹여 위험한 걸 삼키거나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초보 맘 육아일기’에서 구강기 아이들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공개한다. ■하나뿐인 지구(EBS 밤 7시 30분) 통영에서 남쪽 18㎞ 해상에 있고 모두 88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섬 연대도가 탄소 제로를 목표로 에코 아일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명품섬 베스트 10’, ‘공간문화대상’이라는 화려한 이력과는 다른 소박함이 있는 섬 연대도. 전국의 모범 사례가 된 에코 아일랜드의 희망 편지를 받아 본다. ■OBS 금요 시네마-방가? 방가!(OBS 밤 12시 5분) ‘내추럴 본 동남아 삘’ 외모를 자랑하는 낙방의 달인, 굴욕의 지존 방태식은 취업을 위해 부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방가로 위장취업한다. 그렇게 최강 백수의 타이틀을 벗게 된 태식. 글로벌 시대를 정복한 변신의 달인 방가의 성공을 위한 눈물겨운 좌충우돌 취업 성공기가 펼쳐진다.
  • 檢 ‘4대강 국감 증인 불출석’ 대우·현대건설 사장 수사 착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조상철)는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아 국회로부터 고발된 서종욱(64) 대우건설 사장과 정수현(61) 현대건설 사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은 지난 1월 국감 등에 나오지 않은 유통업계 재벌 오너 2, 3세들을 약식기소했다가 법원에 의해 정식 재판으로 바뀐 적이 있어 이번에는 어떻게 할지 관심이 쏠린다. 서 사장 등은 지난해 10월 4대강 사업 담합 의혹과 관련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이들을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사설] 日 동북아 상생 위한 지혜와 용기 필요하다

    3·1운동 94돌의 아침이다. 한반도를 침탈한 일제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한민족의 기개를 떨친 날이건만 이 아침을 맞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흔쾌하거나 명징할 수 없다. 굴곡진 역사의 증인이자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오늘도 한 분 두 분 생을 마감하고 있기 때문이며,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우익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고, 후대에게조차 그릇된 역사를 가르치는 일본 중등교과서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1945년 광복 이후 6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에선 11명의 대통령이, 일본에선 42대 스즈키 간타로 이후 현 96대 아베 신조까지 54명의 총리가 나와 한·일 양국의 미래를 모색해 왔지만 주름진 두 나라의 관계는 좀처럼 펴질 줄 모르는 상황이다. 아니 일본의 장기불황과 이에 따른 우경화, 그리고 이에 편승한 일본 정치권의 소아적 행태로 인해 한·일 관계는 날로 뒷걸음질치고 있고, 양국민의 감정 또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패전국과 신생국으로 출발한 두 나라는 불과 70년도 안 돼 세계 3위와 15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과거사의 매듭을 풀지 못해 공동번영과 상생의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지구촌 거의 모든 대륙에서 경제공동체가 꾸려지고 있건만 유독 동북아만은 해묵은 영토분쟁으로 군사 충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깡그리 망각한 일본의 행태 때문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3·1절을 하루 앞둔 어제만 해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독도 문제에 대해 “하루 저녁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끈질기게 대응할 것”이라고 몽매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중국의 시진핑 체제, 일본의 아베 내각이 새롭게 출발하는 올해는 동북아의 향후 안보지형을 가를 중차대한 분수령이다. 북한의 핵전력이 현실적 위기로 등장한 시점에서 한·중·일 3국의 안보 협력과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있어서도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아베 내각의 지혜와 용기가 절실하다. 독도를 제멋대로 다케시마라 칭하고,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 정부 고위 관료를 보내 우경화한 민심에 부화뇌동하는 한 한·일 관계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한·일 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일본내 양식있는 목소리에 일본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3월이면 고개를 드는 역사교과서 왜곡부터 삼가기 바란다.
  • 美하원 다음주 북핵 제재 청문회

    미국 연방 하원이 다음 주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제재 방안과 관련한 청문회를 개최한다. 27일(현지시간) 미 의회에 따르면 하원 외교위원회는 오는 5일 ‘북한의 불법 활동-북한 정권에의 자금 유입’이라는 주제로 청문회를 연다. 올해 초 개회한 미 의회 제113대 회기에서 북한 관련 청문회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특히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청문회에는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자문관과 조지프 디트라니 전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터프츠대학 이성윤 교수 등 3명이 증인으로 참석한다. 국제금융, 법률, 테러 전문가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북한 정권의 불법 활동을 통한 자금 유입을 차단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애셔 전 자문관은 2001~2005년 국무부에서 북한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해 조사 활동을 벌였던 전문가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에드 로이스(공화당) 하원 외교위원장은 외부 자금의 북한 정권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대북 금융제재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하원은 지난 15일 본회의를 열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상원도 25일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촉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미 외희가 잇따라 대북 제재 강화를 행정부에 압박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상원과 하원이 대북 규탄 결의안뿐 아니라 대북 제재 강화를 행정부에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청문회까지 여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라면서 “그만큼 북한의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을 미 의회가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 의회의 이 같은 강경 드라이브는 행정부의 대북 제재 방안 마련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비행 경력 무려 53년…72세 스튜어디스 은퇴

    비행 경력 무려 53년…72세 스튜어디스 은퇴

    젊고 단정한 용모, 친절한 서비스의 상징인 스튜어디스 중 무려 70세 넘는 할머니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최근 유명 항공사의 72세 스튜어디스가 53년 간의 비행을 마치고 은퇴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60년 처음 비행기를 타고 스튜어디스를 시작한 할머니의 이름은 미국 아메리칸 항공의 바바라 베킷(72). 그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미국 마이애미 공항으로 오는 비행을 끝으로 동료들의 축하 속에 은퇴 파티를 가졌다. 무려 53년을 하늘에서 일한 그녀의 비행 횟수는 무려 8000회로 안가본 나라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 또한 그녀는 미 항공 산업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처음 베킷이 일을 시작한 것은 1960년 7월로 당시 스튜어디스가 되기 위해서는 몸무게 및 나이 제한, 싱글 등의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여권 신장과 함께 차례차례 이같은 규정이 없어지면서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 베킷은 “어릴시절 아버지가 공항에 데려갔을 때 처음으로 스튜어디스를 보았다.” 면서 “그때부터 스튜어디스는 나의 꿈같은 직업이었다.”고 술회했다. 이어 “평균 한달에 5번 꼴로 비행 했는데 주요 나라들은 다 가보았다.” 면서 “비행 중 출산하는 승객, 심장마비 승객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덧붙였다. 한편 베킷의 은퇴 파티는 가족, 동료, 친구는 물론 승객들까지 참석해 성대하게 열렸으며 은퇴 후에도 계속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닐 것으로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친형 특혜 수주’ 여야 공방… 유정복, 장관 후보 첫 국회 통과

    ‘친형 특혜 수주’ 여야 공방… 유정복, 장관 후보 첫 국회 통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첫 번째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27일 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행안위는 청문보고서에 이날 인사청문회의 내용과 함께 “직무수행에 있어서 결격사유가 없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보고서가 20일 이내 국회 본회의 보고를 거쳐 대통령에게 송부되면 대통령은 유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게 된다. 앞서 이날 열린 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의혹을 캐려는 야당과 후보자를 방어하려는 여당의 공방전 양상으로 펼쳐졌다. 야당 측은 ‘세금 부당 환급 의혹’, ‘친형 정부사업 수주 특혜 의혹’, ‘구제역 파동 대응 미흡 논란’, ‘골프장 증설 로비자리 주선’ 등을 검증대에 올려 집중 추궁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같은 당 의원 출신인 유 후보자를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방어막을 치기에 급급했다. ‘행전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야 의원 대다수가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정치후원금을 소득공제에 반영해 세금 환급을 받은 것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하자 유 후보자는 “어제(26일) 643만원을 수정 납부했다”면서 “실무자의 착오였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며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또 2003년 아파트 ‘다운계약서’ 논란에 대해 “2005년 이전에는 법무사가 다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고 시인한 뒤 “거기까지 챙기지 못한 것은 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이상규 통진당 의원은 2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었던 유 후보자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유 후보자는 “결과에 책임지는 차원에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김포군수 재직 당시 군사시설보호구역 안에 있는 땅을 모친 묘소로 허가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묘지설치 허가는 적법하게 받았다”고 해명했다. 유대운 민주당 의원이 지난 25일 대통령 취임식 전날 소방요원들을 동원해 취임식장 의자에 쌓인 눈을 치운 사실을 언급하며 “증원이 필요하고 처우 개선이 시급한 마당에 어찌 눈을 치우게 했느냐”며 유 후보자에게 호통을 쳤다. 유 후보자는 굳은 표정으로 “적절치 못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측은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며 유 후보자를 치켜세웠다. 황영철 의원은 “유 후보자의 친형이 운영하는 건설사의 사업 수주가 급성장한 사실이 있느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느냐”라고 물었고 유 후보자는 “잘 알지 못한다.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으며 결백하다”라고 답했다. 유승우 의원은 후보자의 자질이나 의혹 검증과는 동떨어진 좌우명과 장점을 묻는가 하면, “국민 행복시대 박근혜 대통령과의 철학과도 맞다”며 유 후보자를 옹호했다. 유 후보자는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로 한 차례 인사청문회를 경험한 바 있다. 한편 골프장 김포CC 대표인 한달삼씨와 전 해병2사단장인 홍재성씨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유 후보자의 로비 주선 의혹에 대해 증언했다. 한씨는 2009년 군사보호구역에 골프장 증설과 관련해 허가권을 갖고 있던 당시 사단장이었던 홍씨에게 허가를 요청하기 위해 로비를 했으며 그 자리를 유 후보자가 ‘중매’했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하지만 홍씨는 유 후보자의 주선으로 한씨와 음식점에서 만난 사실은 인정했지만, “부관이 건넨 금거북이는 돌려줬다”고 해명했고, 유 후보자도 “부적절한 처신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성관계 수치심에 존엄성 잃지 마세요” 재판 과정서 위로받은 성폭행 피해자

    “성관계 수치심에 존엄성 잃지 마세요” 재판 과정서 위로받은 성폭행 피해자

    지난해 3월 14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 성폭력 피해자 A씨가 증인석에 앉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김종호(46·사법연수원 21기·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판사는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 줄까요”라며 A씨를 다독였다. A씨는 2011년 6월 친한 남자 선배 B씨와 둘이서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B씨는 A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 다음 날 아침 A씨는 B씨 휴대전화에서 옷이 벗겨진 자신의 사진과 이를 다른 친구들에게 전송한 기록을 발견하고 B씨를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B씨는 합의하에 맺은 성관계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A씨는 수치심을 못 이기고 “이 사건 이후 제 자신이 존엄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 판사는 A씨에게 “유무죄를 떠나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인간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픔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B씨는 이후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준강간 사실이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이날 재판을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한 우수 사례로 선정하고 김 판사에게 디딤돌상을 수여했다. 김 판사는 24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판사는 피해자 배려가 쉽지 않은 만큼 수사기관에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軍 내부 김병관 퇴진론 확산

    軍 내부 김병관 퇴진론 확산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오자 군 내부에서는 “의혹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대로는 장관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군 수뇌부는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행여나 육사 28기 동기인 김관진 현 국방부 장관, 김 후보자가 2사단장 시절 부하로 데리고 있던 조정환 육군참모총장 등에게로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군의 이 같은 기류는 김 후보자가 설령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체면이 구겨진 상태에서 64만 대군을 통솔할 영(令)이 설 수 있겠느냐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20일 김 국방부 장관 주재로 군 수뇌부들이 참석한 합동참모회의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무기수입 중개업체 유비엠텍의 고문을 맡으며 K2 전차의 핵심 부품 ‘파워팩’이 지난해 독일산으로 결정된 것과 관련해 김 장관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이에 대해 “독일업체의 선정은 국내 업체의 기술 개발 지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제조업체가 아닌 중개업체의 자문을 맡은 예비역 장성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라면서 “실무를 맡은 방위사업청과 전문가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라며 펄쩍 뛰었다. 육군은 김 후보자가 2사단장 시절인 1999년 부대위문금을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관리하고 부하 장교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업무처리로 경고조치를 받았다는 점과 관련, 사단 참모장이던 조 참모총장이 청문회 증인으로 소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52만 육군의 수장이 옛 상급자의 의혹 때문에 증언대에 선다는 것은 사기를 고려해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군의 다른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현역 복무 당시 군의 ‘비밀병기’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우수한 군인이었으나 예편 후 처신 때문에 구설수에 올라 안타깝다”면서 “후배들의 명예를 위해 용퇴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국민들이 장성으로 전역하면 (김 후보자처럼) 방산업체에 취직하는 것을 관행으로 볼까봐 걱정”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여태까지 제기된 의혹 중 주소지 이전 문제 등 일부 신중하지 못한 점은 불찰”이라면서 “정상적이고 문제가 없는 것까지 의혹으로 부풀려 저와 주변인들의 인격이 훼손되고 있음은 유감”이라면서 인사 청문회에서 검증받겠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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