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외국인 주식투자 주문 “밀물”(새틀짜는 금융산업:6)
◎일 자금 등 모두 1조원 유입/투자한도 확대… 시장교란·국부유출 우려
5일 상오 8시 D증권사 국제영업부.매매팀 K팀장과 직원 5명은 출근하자 마자 밤사이 뉴욕과 런던 등에서 들어온 외국인 매수·매도 주문팩스들을 챙겼다.
매수주문서에는 T사 2만5천주,S건설 2만5천주,A제지 1만주….매도주문서에는 H건설 3만5천주,B사 1만5천주….수북이 쌓인 주문서를 바삐 정리하고 주문종목의 가격 및 거래량,매수·매도 분량을 배정했다.숨을 돌릴 때쯤 이번에는 도쿄·홍콩 등에서 전화주문이 쇄도했다.
상오 9시30분.전장 동시호가에 주문 물량을 2천∼3천주씩 나눠 주문에 들어갔다.주문 입력은 여직원 2명의 몫이다.이후 30분∼1시간 단위로 주가가 변할 때마다 모니터 요원의 지시에 따라 하루 종일 주문이 계속 됐다.장이 끝날 무렵인 하오 3시30분에는 모두가 지쳤다.그래도 주문이 제값에 됐는 지,영업수익은 얼마인지,매수대금은 제대로 입금됐는지 등을 또 확인해야 했다.
○매수 누계 8조
국내 증권사를 통한 외국인 직접 투자자금의 유출·유입이 이뤄지는 전형적인 모습이다.증권사 직원들이 이렇게 고생해 연간 2조5천억원 어치 이상 물량을 처리해야 떨어지는 수익은 고작 50억원 정도이다.
현재 외국자본은 장기 자본도입 3조5천억원,주식투자 1조원 등을 포함,7조원 이상이 들어와 있다.주식의 경우 시장이 개방되기 시작한 92년 이후 외국인 순매수 누계는 8조1천억원에 이른다.이 기간동안 외국인투자가들의 투자수익은 4조원으로 추정된다.이는 금융업을 제외한 상장사 전체 순익의 2배로 그만큼 국부가 해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대우증권 주식투자연구부의 송준덕 선임연구원은 『지금은 외국인 주식투자 지분이 15%(공기업은 10%)여서 유입자본 규모가 적지만 내년에 20%,97년 25%,98년 30%로 점차 확대되면 주식부문만 따져도 외국자본의 유출·유입 규모는 지금의 수 십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낮은 금리 메릿
우리 증시는 주가가 내재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저평가 돼 있다.따라서 개방확대 후 외국자본의 주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국내 단기금리(13%)가 미국(5%),일본(1%) 등 국제금리에 비해 높은 점도 외국인들의 국내 증시 공략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싼 이자로 돈을 빌려 투자수익을 자국내 금리 이상으로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평가주 타깃
금융시장 개방과 관련,주목을 받는 외국자본은 일본계 자금.노무라증권이 93년 1억달러 규모의 역외펀드를 설정,이미 주식매입을 완료했다.지난 9월에는 1억5천만달러의 역외펀드를 만들었다.니코증권도 1억달러 역외펀드로 주식매입을 시작했다.고쿠사이·야마이치 증권도 각각 7천만,2천만 달러의 코리아펀드로 주식을 사들이는 등 일본자금의 주식매입 여력은 이미 4억∼5억 달러에 이른다.
LG증권의 민광식 이사는 『자금은 0.1%의 금리차만 생겨도 순식간에 국경을 넘나든다』며 『금융기관 등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와 펀드산업육성이 뒤따르지 않으면 극심한 국부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멕시코의 페소화가 유입 외국자본이 빠져 나간 뒤 가치가 폭락한 사례는 이제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