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3인 e메일 긴급 진단/ 외환보유 많아 충격흡수 충분
미국 증시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국내 증시도 불안하다.이근모(李根模) 굿모닝증권 전무,신성호(申性浩) 우리증권 이사,김영호(金永鎬) 대우증권 투자분석팀장 등 3명의 전문가들이 미 증시의 폭락 배경과 전망 등에 대해 긴급 e-메일좌담을 가졌다.
◇이 전무=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고 봅니다.달러화 약세 등으로 주식투자자금이 미국시장을 떠나고,아랍권의 추가 테러설,중동사태 위기 고조 등이 확산되면서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신 이사= 미국 기업의 실적 악화가 가장 큰 요인입니다.올 초만 하더라도 2·4분기의 IT(정보통신)산업 실적이 전년동기 대비 25% 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그러나 최근들어 6∼7% 증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증시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김 팀장= 기업실적은 낮은데 주가는 턱없이 높게 평가돼 있다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주가수익률(PER)이 30∼40배로,적정수익률보다 2배 이상 고평가됐다는 것입니다.현재 주가가 바닥국면에 이르렀다고 하지만,한 단계 더 떨어질 여지가있습니다.나스닥지수의 1400선 붕괴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신 이사=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가 1000포인트 이하로 떨어진 것은 예사롭지 않은 조짐입니다.S&P지수는 미국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많은 500대 기업의 주가추이를 시가총액 비중을 감안해 산정된 것인데,다우·나스닥지수와는 또 다릅니다.S&P지수가 9·11사태 때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미 경제 회복의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미국발 금융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바로 그것입니다.그러나 아직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 있어 예단하기는 어렵습니다.낙관론자들은 하반기부터 기업이익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고 말하고,비관론자들은 앞으로 2∼3년간 기업이익이 2.5% 이상 증가하기는 힘들다고 말합니다.문제는 위기에 대처하는 미국의 능력입니다.개인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봅니다.미국은 시장자율기능이 강화돼 있습니다.미국이 일본의 침체를 닮아 갈 것이라고 말하지만,미국은 금융기관들이 철저히 리스크관리를 하기 때문에 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전무= 미국시장의 불안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측면도 있습니다.각종 경제지표들을 보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소매매출이 감소하고 있지만,재고감소·생산증가가 이를 상쇄하고 있습니다.이른바 더블딥(침체국면에서 잠깐 상승했다가 다시 침체로 빠져드는 현상)이나 세계시장의 패닉(공황상태)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신 이사= 미국의 4월 무역수지적자는 359억달러로 전월의 325억보다 크게 늘었고,5월 재정적자 역시 806억달러로 확대돼 5월 적자로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올들어 소비자신뢰지수가 100∼110대,공장가동률도 75%선을 유지하고 있는 등 지난해보다 대부분의 경제지표들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김 팀장= 소비자신뢰지수 경기선행지수 등 거시지표로 볼 때 미국이 경기확장 국면에 진입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도 시장이 불안한 것은 지표로 잴 수 없는 불안요인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1990년대부터 128개월간 확장만 계속해 온 미 경제의 대세는 이제 감소세로 돌아섰다고 봐야 합니다.작년 3·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률(-1.3%)을 기록한 뒤 일시 상승세를 보였지만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실제 50년대 이후 미국은 6번의 경기사이클 중 90년대 초반에 더블딥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능력보다 많이 소비해온 미국이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더블딥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전무= 미국발 악재가 국내 증시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아직도 우리시장은 미 증시와의 동조화가 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이는 국내투자자들이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최근 해외펀드들은 불안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시장을 떠나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시장 쪽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자본이 유출되다 지난 주에는 10억달러 이상이 순유입돼 이같은 조류를 반영했습니다.미국시장이 좋지 않더라도 동남아 시장은 나쁘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죠.우리시장은 그 가운데서도 주식이 저평가돼 있고,내수비중이 높으며 경기가완만한 회복세를 타고 있어 매력적입니다.현재 외국인 매도의 상당 부분은 급매물에 가깝고,‘보유’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기관과 개인에게는 저가매수의 기회입니다.
◇김 팀장= 지금까지 국내 증시를 버텨온 것은 민간소비와 건설경기 호조였습니다.따라서 추가 확장의 모멘텀을 수출과 설비투자에서 찾아야 하는데 미 증시가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어렵습니다.한때 외국인 매물을 기관이나 개인이 받아내며 탈동조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지금의 증시상황으로 보면 탈동조화는 당분간 쉽지 않습니다.
◇신 이사= 세계 금융자금의 50%가 미국계이고,주식시가총액의 30%가량이 외국계 자금인 점을 감안하면 미 증시의 등락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달러화의 약세도 걱정입니다.
◇김 팀장=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1000억달러가 넘는 데다,구조조정도 마무리되고 있는 상태여서 달러화 약세의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지금의 한국경제는 당시와 같은 충격이 오더라도 그 때처럼 금방 쓰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요즘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남미문제 역시 우리 시장에는 변수가 될 수 없을 겁니다.앞으로 달러는 2∼3년내 20∼30% 가량 평가절하될 것으로 봅니다.절하 속도가 가파르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전무=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되더라도 우리 기업들은 달러부채를 안고 있어 영업이익의 감소를 상쇄해 줄 것입니다.물론 폭발적인 수출증가율을 기록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러나 수출업체들의 이익구조가 단단해 환위험 영향을 덜 받고,이미 잠재적 악영향이 시장에 먼저 반영됐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주병철 손정숙기자 bc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