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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 TV 하이라이트]

    ●마왕(KBS2 오후 9시55분) 오수는 옛 생각을 떠올리며 영철에게 용서를 빌지만 영철은 오수를 피한다. 영철에게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오수는 반팀장과 광두를 만나게 되고, 광두에게 또 다른 용의자로 지목받는 태훈의 동생 태성의 소식을 듣게 된다. 하지만 태성과 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에 오수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클로즈업(YTN 오후 1시30분) 조병돈 이천 시장을 통해 국방부가 발표한 군부대 이전에 반대하는 이천시의 의견을 들어본다. 현재도 이천시는 여의도 3배 면적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있어 재산권 제약과 중복규제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반면 국방부는 군부대 이전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단순 비염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코 찡그림 현상. 하지만 아이의 이러한 행동은 비염이 아니라 ‘틱’증상 이라고 한다. 그 증세가 더욱 심해지면 목을 뒤로 젖히는 행동까지 함께 보이기 시작한다. 더 늦기 전에 그 원인을 알아보고 싶다며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에 도움을 요청한 엄마의 사연을 들어본다.   ●뉴스추적(SBS 오후 11시15분) 아버지가 딸을, 아들이 아버지를, 그리고 손자가 할머니를 살해하는 등 올해 들어서 발생한 패륜범죄가 30건을 넘어서고 있다. 부모나 아내, 남편, 자녀 등 가족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 뒤에 남겨진 가족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취재한다. 갈수록 잔혹해지는 가족간 패륜범죄의 문제점과 대안을 살펴본다.   ●잡지왕(MBC 오후 6시50분) 세계에서 가장 바쁜 도시 뉴욕. 뉴요커들의 최신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이 바로 한국식 사우나인 `찜질방´이다. 황토방, 옥방, 육개장, 맥반석 계란 등 한국식으로 운영되는 찜질방. 한국인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데, 외국인들이 말하는 한국 찜질방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한 조사결과 자신의 혈압 수치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45.2%가 알고 있지만, 콜레스테롤 수치는 2.9%만이 알고 있을 정도로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질병과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살펴보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없애는 방법을 알아본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5)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Ⅱ

    광해군은 성공적인 분조 활동을 통해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부왕 선조의 견제 때문이었다. 왜란 초반,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의주까지 파천하기에 급급했던 선조는 지존(至尊)으로서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더욱이 강화협상을 통해 전쟁을 매듭지으려 했던 명군 지휘부는 ‘광해군 즉위’를 들먹이며 선조를 계속 압박했다. 위기에 처한 선조는 왜란을 치르는 동안 모두 15번이나 양위(讓位)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진심이 아니었다. 명의 압박에 맞서고, 광해군과 신료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아내기 위한 정치적 몸짓이었다. 명의 이중적 태도도 광해군을 괴롭혔다. 명 조정은 광해군이 유능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정작 그를 왕세자로 승인해 달라는 요청은 거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해군은 안팎 곱사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1593년 1월 벽제전투에서 패한 직후, 명군의 최고책임자인 병부상서 석성은 심복 심유경(沈惟敬)을 서울의 일본군 진영으로 보냈다. 심유경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협상 끝에 일본군이 남쪽으로 철수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강화협상에서 드러난 명의 본심 이후에도 4년이나 더 계속된 강화협상에서 양측이 내세웠던 요구조건은 복잡했다. 고니시는 ‘명나라 황녀(皇女)를 천황의 후궁으로 주고, 조선 영토 가운데 4도를 떼어주고, 무역을 허락하고, 조선의 왕자를 일본에 인질로 보내야만’ 조선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심유경은 ‘일본군이 조선에서 완전히 철수해야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한다.’고 했다. 도저히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의 차이였다. 하지만 명군 지휘부는, 벽제전투 패전과 갈수록 불어나는 전비(戰費) 부담에 대한 명 내부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군이 서울에서 철수했다.’는 가시적 성과가 필요했다. 일본군 또한 일단 남해안 지역으로 물러나 숨을 고르면서 명의 태도를 지켜볼 심산이었다. 일본군의 서울 철수는 양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일시적 성과’였다. 이윽고 1593년 4월20일, 한강변에서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남쪽으로 철수하는 일본군을 ‘보호하기 위해’ 명군 장졸들이 조선군을 막아서고 있었다. 명군 지휘부는 일본군을 추격하던 조선 장수 변양준(邊良俊)을 붙잡아 목을 쇠사슬로 묶은 뒤 난타했다.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추격전을 지휘하던 전라감사 권율(權慄)은 이여송에게 소환되었다. 명군 지휘부의 지침을 어기고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추격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명군의 ‘에스코트’ 아래 서울을 무사히 빠져나온 일본군은 남해안에 머물면서 철수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명군도 삼남의 요충지에 병력을 배치하여 일본군을 견제하려 했을 뿐 전의(戰意)를 보이지 않았다. 전쟁은 이상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광해군, 무군사를 이끌며 민심을 파악 그것은 석성을 비롯한 명군 지휘부에게도 수렁이었다. 황제에게는 ‘심유경의 활약’ 덕분에 일본군이 곧 물러나고, 전쟁이 끝나 동정군(東征軍)이 개선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일본군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삼남에 주둔해 있는 명군 지휘관들은 군량과 군수물자가 모자란다고 아우성이었다. 그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조선 민중이었다. 싸울 의지는 없이 그저 장기 주둔에 들어간 명군의 민폐가 극심했다. 곳곳에서 군기가 풀어진 명군 장졸들에 의해 약탈과 강간이 자행되었다. 한편에서는 일본군에게 시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명군에게 곤욕을 치러야 했다.‘우리 편’으로 여겼던 명군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컸다. 민중들 사이에서 “명군은 참빗, 일본군은 얼레빗”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명군 주둔지역의 민심은 불온해졌다. 지방에 주둔한 명군들이, 조선의 지원이 미흡하다고 하자 명군 지휘부는 선조와 조선 조정을 쪼아대기 시작했다.1593년 10월, 명군 지휘부는 광해군에게 삼남으로 내려가 명군에 대한 접대업무를 총괄하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배경에는 ‘무능한 선조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깔려 있었다.1593년 윤 11월, 광해군은 다시 남행길에 올랐다. 그는 1594년 8월,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무군사(撫軍司)라는 조직을 이끌며 충청도와 전라도의 곳곳을 순행했다. 특히 1593년 12월, 전주에서 왕자 시절 사부(師傅)였던 박광전(朴光前)으로부터 전라도 지역의 전황(戰況)과 민심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박광전은 광해군에게 위기에 처한 전라도의 실상을 알렸다. 일본군이 비록 거제도 일대에 주둔해 있지만 진해와 고성을 거쳐 섬진강으로 진입할 경우, 전라도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박광전이 특히 강조했던 것은 ‘민심 수습’이었다. 그는 당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전라도에서 징발하고 있던 현실, 각종 세금과 노역 때문에 도망하는 백성이 속출하고 있던 상황을 알린 뒤, 포악한 지방관들을 처벌하여 지역 민심을 위로하라고 촉구했다. 비록 명군 지휘부에 떠밀려 이루어졌지만, 전란의 고통에 신음하는 민초들의 참상을 직접 보았던 것은 광해군에게 소중한 체험이었다. 그가 즉위 이후 명과 누르하치 사이의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려 노력했던 것은 분명 그 같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 광해군을 흔들다 무군사 활동을 통해 왕세자로서 광해군의 위상은 확고해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명 조정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은 1594년부터 광해군을 왕세자로 책봉해 달라고 명 조정에 주청(奏請)했다. 광해군이 전란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워, 온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명 조정은 조선의 요청을 거부했다. 광해군이 맏이가 아니라 둘째이므로 그를 책봉하면 ‘장유(長幼)의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자 선조는 다시 보낸 주문에서 ‘맏아들 임해군은 자질이 평범한 데다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후 놀라는 증세가 생겨 왕 노릇을 하기 어렵다.’는 정황을 들어 광해군을 승인해 달라고 호소했다. 명은 다시 거부했다.1604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주청사(奏請使)가 베이징에 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명 예부(禮部)는 조선에 보낸 답신에서 ‘광해군은 현명하다. 현명한 사람은 차례를 뛰어넘는 참월(僭越)한 행위를 하지 않는 법’이라고 운운하며 광해군에게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명 조정이 광해군을 거부했던 데에는 물론 속사정이 있었다. 당시 명의 신종이 정귀비(鄭貴妃)와의 사이에서 난 주상순(朱常洵)을 염두에 두고 맏아들 주상락(朱常洛)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것을 미루고 있던 상황과 연결되어 있었다. 명 예부는 차자 광해군을 섣불리 승인해 줄 경우 신종이 맏아들을 밀어내고 주상순을 황태자로 책봉하는 데 명분을 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명의 태도는 조선을 흔들기 위한 ‘의도된 것’이기도 했다. 이미 1418년 태종이 맏아들 양녕대군을 밀어내고, 셋째 아들 충녕대군(뒤의 세종)으로 왕세자를 교체했을 때 명은 군말 없이 그것을 승인했었다. 충녕대군의 전례를 볼 때 명의 태도는 분명 이중적이었다. 조선의 요청대로 따라주는 것이 관행이었던 ‘왕세자 책봉’ 문제에서도 ‘상국(上國) 행세’를 톡톡히 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승인 요청을 계속 거부해 광해군의 애간장을 녹일 대로 녹인 뒤, 큰 은혜나 베푸는 것처럼 책봉을 허락하여 생색을 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군대를 보내 조선을 ‘구원’해 주고,‘자격도 안 되는’ 광해군을 인정해 준 자신들의 ‘은혜’를 강조하여 조선을 길들이려는 속셈이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명이 조선에 과거보다 훨씬 버거운 존재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실제 누르하치의 도전이 거세짐에 따라 ‘길들여진’ 조선을 이용하고픈 명의 유혹도 커져만 갔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反FTA’ 분신 허세욱씨 끝내 숨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1일 협상장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분신을 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허세욱(54)씨가 15일 오전 11시23분쯤 화상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허씨의 치료를 맡았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성심병원 측은 “허씨가 오전부터 갑자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숨졌다.”고 밝혔다.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대책위)는 “장례식을 사회장으로 치르기 위해 유가족들과 협의에 나섰지만 허씨의 가족들은 시신을 경기 안성시 성요셉병원으로 옮겨 놓고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기를 원해 장례 절차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한강성심병원 앞과 전국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부에 허씨의 빈소를 차려 놓고 한·미 FTA 무효화와 노무현 정권 퇴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책위가 이날 공개한 허씨의 유서에서 허씨는 자신이 일했던 서울 H운수 동료들이 넉넉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모금은 하지 말아 주세요. 전부 비정규직이니까.’라고 당부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서 밤새도록 미국놈들 괴롭히게 해 주십시오. 효순ㆍ미순 한(恨) 갚고 (미군 기지에 유해를 뿌려서 내게 될) 벌금은 내 돈으로 부탁합니다.”고 적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봄철 조개 ‘독’ 조심하세요

    봄철 조개 ‘독’ 조심하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12일 봄철에 주로 발생하는 마비성 패독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식약청은 패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개 독에 대한 정보를 담은 팸플릿을 만들어 일선 보건소 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패독이란 유독성 플랑크톤을 잡아먹은 조개나 굴 등을 섭취했을 때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로 마비성 패독, 기억상실성 패독, 설사성 패독, 신경성 패독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마비성 패독 독성이 가장 크다. 마비성 패독은 우리나라에선 주로 남해안에서 매년 2∼3월에 발생해 4월 말에서 5월 초에 최고치에 이르렀다가 5월 말에서 6월 초에 자연 소멸한다. 독이 있는 조개 등을 먹은 뒤 30분쯤 지나면 발병한다. 입술, 혀, 안면마비 등에 이어 목과 팔 등 전신마비 등의 증세를 보인다. 냉동, 냉장하거나 끓인 음식물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식약청 관계자는 “마비성 패독은 심한 경우, 호흡 마비로 사망할 수 있다.”면서 “패류 채취가 금지된 지역에서는 아예 조개를 잡거나 섭취하지 않는 게 최고의 방지책”이라고 설명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뇌성마비 수영선수 김지은

    [스포츠 라운지] 뇌성마비 수영선수 김지은

    그녀가 알려진 건 지난해 10월 울산에서 열린 장애인체전 4관왕에 오르면서다. 말간 피부, 맑은 눈동자, 오뚝한 코 등 ‘얼짱’의 자격을 두루 갖춘 용모 덕도 있었겠다. 하지만 12월 남아공에서 열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세계선수권에 참가, 현재 세계랭킹 7위에 오를 정도로 그녀는 빼어난 실력도 갖췄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내년 베이징 패럴림픽 메달권 진입을 목표로 자맥질에 열심인 장애인 수영선수 김지은(24·신라대 체육학과 대학원)을 만나봤다. ●IPC 세계랭킹 7위… 미모에 실력까지 겸비 정말 예쁘다는 말에 그녀는 “얼짱이라고 봐주시니 고맙지요. 그런데 이젠 수영 실력으로 기억됐으면 해요.”라고 답했다. 어릴 적 1년 정도 배우다 ‘남들 눈에 띄는 게 싫어’ 그만둔 물에 다시 들어간 건 지난해 2월 남자친구 손에 이끌려서다. 김지은은 뇌병변 장애(뇌성마비, 뇌졸중, 뇌경색을 총괄하는 개념)를 갖고 태어났다. 지금도 걸을 때 다리가 꼬여 상당히 뒤뚱거리는 편이다. 어릴 때 곧잘 넘어져 아이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단다. 짓궂은 사내애들은 뒤에서 그를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고 그때마다 어머니가 속상할까봐 상처를 보듬고 울음을 삼킨 적도 많았다. 6살 연상의 태권도 사범인 남자친구는 재활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수영을 권했고 이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불투명한 앞날과 ‘뭘 할 수 있겠느냐.’란 무력감에 가벼운 우울증세를 보이던 그의 일상도 달라졌다. 지은은 두 달 뒤 대구에서 개최된 장애인수영연맹회장배에서 우승(장애 7등급),7월 태극마크를 달았다. 선수로 뛰어든 지 1년도 안 돼 IPC 세계랭킹 7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급성장한 것. 자유형 50m 개인기록은 38초대. 베이징 패럴림픽에서 세계기록(33초53)을 뛰어넘거나 적어도 메달권 진입을 이루고 싶은 게 꿈이다. 대구 연맹회장배 기록이 45초대인데 이만큼 당겨놨으니 무리한 목표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휴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수영 2시간, 근력강화 훈련 2시간씩을 하고 그때마다 남자친구가 그의 손발이 돼 준다. 그녀는 “솔직히 제게 맞는 영법이 무언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리고 하체로 힘이 제대로 전달 안 돼 어깨랑 팔만을 이용해 킥의 힘이 없는 게 진짜 고민”이라고 밝혔다. ●“박태환 선수처럼 전담코치 있었으면…” 그녀가 요즘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호주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태환(18·경기고). 어느 날 박태환의 전담팀 기사를 읽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그럼 네 남자친구는 혼자서 도대체 몇명 역할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대표팀에서 합숙할 때 지도를 받기는 하지만 전담 코치에 대한 갈망이 클 수밖에 없다. 지은은 “태릉선수촌에라도 가서 유명한 감독님들께 짧은 시간이라도 조언을 듣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고 털어놨다. 남아공에서 자신보다 훨씬 기형 정도가 심한, 상상할 수도 없는 장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그리고 유명 스포츠용품을 몸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가족들의 열렬한 응원을 등에 업으며 실력을 뽐내는 선진국 선수들을 바라보며 부러움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다른 나라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자고 하는데 손짓과 몸짓까지 동원해 ‘유니폼이 한 벌뿐이라 그럴 수 없다.’고 설명하느라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요.”라고 씁쓸하게 웃었다.“하지만 힘을 내야지요. 저보다 더 좋지 않은 여건에서도 힘을 내시는 분들이 얼마나 더 많은데요.” 지은은 패럴림픽에서 메달 꿈을 이룬 뒤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장애인 체육교육을 전공,30대에 은퇴한 뒤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지은은 지난 4일 장애인이 대통령 면전에서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된, 청와대에서의 ‘장애인차별금지법 서명 및 수요자 관점 업무보고대회’에 국민참여단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 프로필 ●출생 1983년 8월19일 부산생 ●체격 170㎝,48㎏ ●학력 부산 개포초-개금여중-대연정보고-영산대 디자인학과-신라대 대학원(체육학과) ●취미 피아노, 그림 그리기 ●경력 2006년 4월 대구 장애인수영연맹 회장배 우승.7월 장애인국가대표 선발.10월 울산 장애인체전 여자 S7(장애 7등급) 4관왕. 12월 남아공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세계선수권 참가. 현재 IPC 세계랭킹 7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가정용 김치시장 잡아라

    가정용 김치시장에 한바탕 시장쟁탈의 회오리가 몰아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식품업계의 양대산맥인 대상과 CJ가 김치사업을 본격화하는 첫 해다. 대상과 CJ는 지난해 말 각각 두산 식품사업부문(종가집 김치)과 하선정종합식품(하선정 김치)을 인수했다. 김치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태세다. 풀무원·농협·동원 등 다른 업체들도 이에 맞춰 치열한 시장확대 전략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CJ는 하선정 김치를 ‘CJ하선정 김치’로 새롭게 단장하고 포기김치, 남도식포기김치, 맛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백김치, 깍두기 등 7개 제품군을 내놓았다. CJ는 “전통의 브랜드 하선정 김치에 지난 7년간 햇김치 사업을 해오면서 쌓은 원료구매, 절임, 염도관리, 발효숙성 등 노하우를 결합시켜 질 좋고 값 싼 김치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CJ는 발효숙성 기술을 적용한 ‘햇김치’ 제품을 만들어 왔으나 백화점 등 프리미엄 시장에서만 판매해 시장 점유율이 1∼2%선에 그쳤다. 이번에 CJ하선정 김치로 대중적인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연간 2000억원 규모인 국내 김치시장은 대상 ‘종가집’이 60∼70%대(시장조사에 따라 차이)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반면 CJ는 ‘햇김치’와 ‘하선정’을 합하더라도 3∼5%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치를 향후 주력 신선식품 사업으로 정한 CJ가 기존 유통·배송망과 마케팅 노하우, 브랜드 파워, 연구개발(R&D) 능력 등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경우 상당한 세력확대가 예상된다. 자금력을 앞세워 매장 수와 판매면적을 대폭 늘리고 다양한 할인 및 끼워주기 판촉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CJ는 올해 매출 150억원으로 가정용 김치시장에서 3위에 오르고 2009년에는 2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상 “당장은 판도변화 있을 수 없다.” 대상은 아직은 느긋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 차이가 20배 수준에 이르는 데다 종가집 김치의 맛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워낙 높아 당장 CJ가 판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 2위는 풀무원으로 11∼12%를 차지하고 있다.2005년부터 지역 단위농협의 김치를 ‘아름찬’이라는 브랜드로 통합운영해 온 농협과 1995년부터 김치사업을 해 온 동원F&B는 각각 4∼5%대의 시장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간 경쟁 얼마나 가열될까 현재 김치시장은 발전요소와 한계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소비자 요구에 맞춰 국산 농산물을 써야 돼 원가부담이 높고 철마다 가격 변동도 크다. 또 가정에서의 김치 소비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들고 있다. 김치 수입량은 2003년 2만 8915t에서 2005년 10만 9317t으로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김치시장(2005년 말 2조 2400억원 추정)의 절반 이상인 1조 2730억원이 집에서 직접 담가먹는 시장이어서 향후 상품김치로 전환할 잠재 수요층이 두껍다. 된장·고추장 등 장류가 그랬듯 빠르게 사먹는 추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또 중국산 김치는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커서 가정용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낮다. 업계는 전통적인 포기김치, 맛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등 외에 보쌈김치, 백김치, 갓김치, 파김치, 고들빼기, 나박김치, 깻잎김치, 볶음김치, 양파장김치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업체들간 가격할인, 무료증정, 신제품 출시경쟁 등이 가열되면 소비자들로서야 선택과 혜택의 폭이 넓어지니 반길 일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그때 먹은 마음, 잊지 않을게

    그때 먹은 마음, 잊지 않을게

    저는 꽃다운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입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가장 즐겁고요, 취미는 책 읽기와 노래 부르기랍니다. 지금까지 제 소개를 조금 해드렸는데, 역시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았습니다. 제가 여느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뭔가가 친구들과 달랐거든요. 친구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저는 항상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그러다가 주저앉고 매일같이 넘어져서 무릎은 성할 날이 없고. 그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나는 뛰지 말아야겠구나. 운동이란 건 내겐 좀 힘든 건가 봐’ 하고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같았습니다. 저는 정말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얼음 땡’을 할 때마다 저는 깍두기만 해야 했거든요.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 하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신촌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제가 다리를 저는 건 태어날 때 조금 잘못 태어나서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병명은 ‘뇌성마비’였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멍해졌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뇌성마비 아이들이 나오면 팔다리가 꼬이고 어버버버 말도 잘 못해서 진짜 불쌍하다, 좀 징그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병명이 뇌성마비였다니…‘….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체르니 40번까지 쳤다고 하니 의사선생님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시더군요. 저 같은 뇌성마비 아이들은 팔다리가 꼬이니까 피아노를 절대 칠 수 없다면서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건을 들면 손을 떨고 잘 건네지 못한다는 것을요. 전 그냥 “나 수전증인가봐, 그치‘?” 하고 친구들과 웃고 지나갔었는데 그것이 뇌성마비의 증세였다니…‘…. 의사선생님은 저에게 똑바로 서보라고 하셨습니다. 제 딴에는 정말 학교에서 배운 차렷 자세로 섰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나온 제 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양쪽 발이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차이 나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제 왼쪽 발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더군요. 저는 왼쪽 발 면적의 1/5 정도만 딛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왼발을 잘 딛지 않으니까 발이 자랄 수 없었고, 뼈도 휘어져 있고 발 모양이 많이 이상했습니다. 병원에서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고 와서 며칠간 저는 밤마다 베갯잇을 적셨습니다. 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 잘 못 걷잖아. 나 장애인 아냐‘?”라고 물으면 친구들은, “네가 왜 장애인이냐‘? 넌 좀 다르게 걷는 것뿐이잖아.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지희야 힘내!” 이렇게 대답해주었거든요. 친구들은 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저는 그 말들이 떠올라 더욱더 가슴이 아렸습니다. 내가 진짜 장애인이구나, 보통 사람과는 정말 다르구나 하고요. 저는 1989년 11월 24일 생입니다. 원래 예정일은 1월 중순 정도였지만 일찍 엄마의 양수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우스갯소리처럼 ‘미끄러져’ 나온 것이죠. 막상 태어나고 보니 저는 탯줄을 목에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0분간 여느 갓난아이처럼 ‘응애’ 하고 울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의사선생님은 저를 뇌성마비라고 진단하셨고, 왼쪽 다리의 신경에 이상이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전 세 살이 지나도록 걷지 못했습니다. 돌이 되기 전부터 걷는 아이들도 있는데 말이죠. 제가 했던 걷는 연습은 왼쪽 다리의 일부분만 딛고 걷는 것이었고, 그 연습이 잘 되지 않아 어렸을 적 자주 넘어졌던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는 잘 넘어지지 않았거든요. 며칠간 남몰래 울고 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뭐 어때‘? 난 경미한 뇌성마비일 뿐이잖아. TV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스스로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손발도 꼬이지 않았고 얼굴이 뒤틀리지도 않았고 발표도 똑똑히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의사선생님 얘기와는 다르게 글씨도 예쁘게 쓰고 피아노도 남들만큼 치고 공부도 그 정도면 잘하는 거잖아‘?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른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죠. 이렇게 마음을 먹은 뒤 초등학교 생활을 잘 마치고 인근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제 성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뒤 한 다짐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조금씩 활기찬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힘들어할 땐 옆에서 위로도 하고 웃긴 농담도 건네는 그런 친구.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분식집으로 몰려가고, 시험기간이 끝나는 날이면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저에게 있어서는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제게는 잊히지 않는 날이랍니다. 저는 체육시간에는 할 수 있는 부분만 따라하고 못 하는 부분은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거든요. 그날은 매트 위에서 구르기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의 매트 구르기를 봐주기 위해 운동장 저편으로 가 계셨고, 그동안 여학생들은 운동장 한쪽에서 구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12월 초순이라 날이 추워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친구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곁에서 “지희야, 너도 해볼래‘?” 하더군요. 날도 춥고 몸이 뻑적지근했던 터라, “아니야. 난 안 할래” 하는데 친구가 저를 매트 위로 끌어당겼습니다. 순간 저는 매트 위로 퍽 하고 넘어졌고, 거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저는 몽롱한 상태로 양호실까지 걸어갔고, 놀라서 달려오신 체육 선생님과 근처 병원에 갔습니다. 오른쪽 쇄골이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막상 다친 것을 알고 나니 너무너무 아프고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옆에서 아이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군요. 하지만 고통을 참으면서 친구들에게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짜증난다. 나 쌍병신 되는 거 아냐‘? 팔이랑 다리.” 아이들은 제 말에 더 충격을 받아 난리였습니다. 우스갯소리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구요. 진짜, 저를 사랑하는 친구들 앞에서 그런 심한 소리를 하다니 전 정말 나쁜 아이인가 봐요. 놀라서 달려온 엄마, 고모와 함께 종합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가 시에서 주최하는 학력고사더군요. 저는 담당 선생님께 수술을 늦추자고 말씀 드리고 병원에서 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친 어깨 부근에 단단히 압박붕대를 감고 등교해 교무실 한켠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수술을 잘 마쳤고, 1년 뒤에 핀 제거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했지요. 지금 저는 인천에 있는 연수여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2학년이 되네요. 고등학교에 와서도 여전히 그때 먹은 마음, 잃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약간 다를 뿐이다. 나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남들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야지’라고 매일 아침 제 방에 있는 전신거울을 보며 다짐합니다. 거울에 비춰지는 제 다리는 약간 굵기가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예요. 제 꿈은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국문과 08학번 대학생이 되는 것이랍니다. 고1 때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그분 덕분에 국문학도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일 2학년 반 편성을 위해 학교에 갈 텐데, 내일 아침에도 머리를 빗으면서 거울 속의 나에게 말하렵니다. “모든 승자들의 공통점은 열정이래. 열정enthusiasm, 내 안에 신을 둔다는 뜻이잖아. 오늘 하루도 잘 해낼 수 있지‘? 아자아자 파이팅!”(2006) ‘지희‘_ 올해 고3이 되는, 꿈 많고 웃음도 많은 소녀입니다. 가끔 엉뚱한 말을 던져서 친구들을 포복절도하게 한다고 하네요. 열심히 공부해서 08학번 멋진 국문학도가 되는 것이 올해의 소망입니다. 책이 출간되면 고1 때 담임선생님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희망예보 <오늘은 맑음>
  • [여의도 IN] 임종인 FTA단식중 실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 무효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9일째 단식농성하던 무소속 임종인 의원이 4일 급성 위출혈 증세로 실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인 임 의원은 이날 낮 12시40분쯤 국회 본청 앞 농성 천막에서 일어서다 갑자기 입 등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병원측은 “의식을 회복했지만, 지혈을 하는 데 고생했다.”면서 “며칠 입원해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서 비롯된 난맥상은 명의 발목을 잡았다. 환관(宦官)들의 발호가 심각했고, 당쟁은 격화되었다. 재정은 고갈되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증세(增稅) 조처가 취해졌다. 민원(民怨)이 높아지고, 반란을 꾀하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은 편성했지만 영 미덥지 못했다. 명은 결국 조선과 예허에 손을 내민다. 병력을 내어 원정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누르하치의 도전으로 촉발된 불똥이 조선으로 튀기 시작했다. ●광세( 稅)의 폐단, 명을 병들게 하다 만력제가 오랫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고, 신료들을 접견하지 않으며, 그들의 상소나 건의에도 답하지 않자 자연히 환관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황제의 생각이나 명령이 오로지 환관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만력제는 향락과 토목공사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환관들을 시켜 긁어 모았다. 환관들에게 흠차태감(欽差太監)이란 직함을 주어 전국으로 파견했다. 광감( 監), 세감(稅監), 염감(鹽監), 주감(珠監) 등 다양한 명칭의 태감들은 각지에서 백성들에게 명목도 없는 세금을 마구잡이로 강탈했다. 영세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에게 상세(商稅)를 긁어내고, 약간의 은화를 빼앗기 위해 민가를 철거했으며 무덤까지 파헤쳤다. 반항하는 백성들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 환관들이 각지에서 참혹한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베이징에 갔던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백성들은 아우성을 쳤다. 분노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호북(湖北)에 파견되었던 환관 진봉(陳奉)의 패거리가 폭력을 휘두르며 수탈을 자행하자 백성들은 궐기했다. 그들은 진봉의 부하 16명을 붙잡아 강물에 던져버렸다. 운남(雲南)에서는 성난 백성들이 환관 양영(楊榮)의 숙소를 습격하고, 폭력을 자행한 양영의 패거리 200여명을 살해했다. 환관들의 발호는 요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603년 환관 고회(高淮)는 부하 수백명을 이끌고 요양(遼陽), 진강(鎭江), 금주(金州), 복주(復州) 등 요동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은 민간에서 수십만냥의 은화를 강탈했고, 그 때문에 여염이 텅 비어버렸다. 17세기 초, 만력제가 환관들을 시켜 자행했던 수탈을 보통 ‘광세( 稅)의 화(禍)’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수탈 때문에 전국 각지의 상공업은 위축되고, 국가의 공적 세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심은 조정으로부터 떠나고, 민변(民變)이라 불리는 저항운동이 각지를 휩쓸게 되었다. ●명, 고민 끝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꾀하다 푸순의 함락과 장승음의 패전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명 조정에서는 누르하치를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 편성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광세의 폐’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여의치 않았다. 나라의 공식 금고인 태창(太倉)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병력을 징발하고 군수를 조달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만력제는, 내탕을 풀어 군자금에 보태라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1618년 4월27일 직예순안(直隸巡按) 왕상항(王象恒)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장수들 가운데 가정(家丁)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병(總兵), 부장(副將) 등의 직책을 주어 요동으로 보내자고 했다. 가정이란 국가에 소속된 정규병력이 아니라 장수 개인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군사를 말한다. 일종의 사병(私兵)인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 사령관인 이여송(李如松)도 다수의 가정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 왔었다. ‘퇴역 지휘관’들이 거느린 가정을 활용하자는 왕상항의 주장은, 정규군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던 명의 실정을 잘 보여준다.16세기 후반의 척계광(戚繼光)처럼 의지할 만한 현직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물러난 장수들이라도 불러들여야 했다. 윤 4월이 되자, 물러나 있던 지휘관들을 불러들이라는 만력제의 조칙이 내려졌다. 양호(楊鎬), 유정(劉綎), 이여백(李如栢), 왕국동(王國棟), 시국주(柴國柱) 등이 줄줄이 불려와 다시 기용되었다. 양호는 정유재란 당시 명군 사령관이었고, 유정과 이여백도 조선에 참전했던 장수들이었다.‘어제의 용사’들이 전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은 달 17일 호과급사중(戶科給事中) 관응진(官應震)이 ‘오랑캐를 제어하기 위한 세 가지 방책(禦奴三策)’을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방책의 핵심은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해 조선과 예허를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관응진은 후금이 북으로는 예허와, 남으로는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는 예허가 과거부터 누르하치와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사실,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두 나라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예허로부터 군사들을 빌려 후금의 오른쪽을 치고, 조선으로부터 조총수(鳥銃手) 3000명을 징발하여 후금의 왼쪽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이었다. ●조선과 예허는 고분고분한 오랑캐로 지칭 이이제이란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로아키(橫山宏章)에 따르면 이이제이책은 중화(中華)가 와해될 위기에 처할 적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막강한 북방민족의 공격에 시달렸던 송(宋)의 왕안석(王安石)과 사마광(司馬光), 서구와 일본의 군사적 도전에 쩔쩔맸던 청말(淸末)의 이홍장(李鴻章)은 물론 2차 대전 이후 소련을 이용하여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이이제이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위기탈출 전략이었다. 관응진은 ‘어노삼책’에서 조선과 예허를 가리켜 ‘고분고분한 오랑캐(順夷)’라고 지칭했다. 명에 ‘고분고분한 오랑캐’를 이용하여 ‘도전을 일삼는 사나운 오랑캐’를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그같은 발상은 관응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1618년 푸순 함락 이후, 명 조정에는 조야(朝野)의 지식인들로부터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한 방책들이 빗발쳤다.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 오늘날 전하는 ‘주요석획(籌遼碩)’이다.‘요동을 도모하기 위한 큰 계책’ 정도의 뜻을 지닌 이 책에서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조선을 이용하자고 강조했다. 이윽고 1618년 윤 4월27일 조선 조정에는 병부좌시랑(左侍郞) 왕가수(汪可受)가 보낸 격문이 도착했다. 왕가수는 먼저 명나라와 조선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이 사람의 몸이라면 명은 그 머리이고, 조선이 나무라면 명은 그 뿌리’라고 했다. 이어 임진왜란 시기 명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 일본군을 격퇴시킨 ‘은혜’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부터 조선의 식자들과 명의 인사들 가운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군이 원군을 보냄으로써 ‘망해 가던 조선을 다시 살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왕가수는 ‘재조지은’을 상기시킨 뒤, 본론을 이야기했다. 명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누르하치를 공격하는 데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격문을 받는 즉시 군병을 정돈시켜 대기하다가 기일에 맞춰 나아가 토벌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겉으로는 ‘요청’인 것 같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왕가수의 격문을 받은 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 광해군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왜란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명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 악연을 맺을 것인가? 거부하여 ‘재조지은’을 배신할 것인가? 푸순성을 삼켜버린 누르하치의 불길이 바야흐로 조선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타미플루’ 정신계통 부작용 조심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오상도기자|일본에서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심각한 부작용이 잇따라 보고되면서 투여 금지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국내에서도 지난해 이 약을 먹은 환자가 부작용을 호소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관계자는 지난해 6월 타미플루를 복용한 환자 3000명에 대한 표본 조사 결과 1명이 악몽을 호소하는 등 정신신경 계통의 부작용을 알려왔다고 21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당시 타미플루와 정신신경 계통의 부작용의 정확한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현재로선 일본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아직까진 투약 금지 조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식약청에 따르면 스위스 제약사인 로슈가 생산하고 있는 타미플루는 지난 2001년 2월부터 국내에 수입 판매되고 있다. 현재 국내는 100만명분이 수입돼 비축돼 있으며, 이 가운데 7% 정도가 일반 병원 등을 통해 투약된 것으로 식약청은 추정하고 있다. 근 일본에서는 이 약을 먹은 10세 이상 미성년 환자들이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면서 일본 후생성은 지난 20일 이 약의 투여를 금지했다. 지난달에는 타미플루를 먹은 남녀 중학생 2명이 뚜렷한 이유 없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hkpark@seoul.co.kr
  • [닥터 ‘이지’의 발칙한 치아 얘기] 명화속 여인들 입술 꾹 다문 이유는

    필자의 치과에는 유난히도 여성 환자들이 많다. 그 가운데 적잖은 분들이 필자에게 털어놓는 얘기가 있다.“치과에 가서 입을 벌리는 느낌은 꼭 산부인과에 가서 질을 보여 주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잠재적일지라도 많은 여성들이 ‘입’을 성적인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서양의 대표적 미인도인 ‘모나리자’는 너무나 단아하고 우아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모나리자의 치아를 본 적이 있는가. 초상화, 특히나 고전주의의 영향을 받은 여성의 초상화 중에서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신윤복이나 고 김기창 화백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성들 역시 절대로 치아를 드러내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이 이런 현상을 두고 ‘화가들이 여성의 입을 성적인 심벌리즘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전염성 질환인 ‘헤르페스’를 예로 들어보자. 헤르페스 바이러스에는 1형과 2형 두 가지가 있다.1형 바이러스는 주로 구강 헤르페스의 원인이 되고,2형 바이러스는 주로 성기 헤르페스의 원인이 된다. 구강 헤르페스는 주로 키스를 통해 전염되며, 성기 헤르페스는 성교를 통해 전염된다. 또 있다. 일종의 다발성 질환인 ‘베체씨 증후군’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환자가 안질환과 함께 입안 점막의 궤양, 입안이 아프고 물집이 생기는 증세나 외음부의 생식기 부분에 궤양이 생기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남성에게 있어 구강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에는 연인과 헤어질 때 사랑의 정표로 치아를 뽑아주는 발치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배비장전’에 보면 여주인공 애랑이 떠나가는 배비장에게 “분벽사창에 마주 앉아 서로 보고 당식당식 웃으시면 앞니 하나 빼어 주오.” 라고 호소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것을 보면 남성들도 치아를 결초의 상징으로 보았음은 물론 여기에 더해 아주 강한 성적 의미를 부여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격은 성적 관심에 중점을 두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5단계를 거쳐서 발달한다고 보았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인간의 욕망 특히 성적 욕구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으며, 성적 에너지가 성감대를 찾아 신체의 부위로 옮아가는 과정을 발달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마냥 비판할 일도 아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5가지 발달 단계는 이렇다. 구강기(0∼1세), 항문기(1∼3세), 남근기(3∼6세), 잠복기(6∼12세), 생식기(12세 이후)이며, 이 가운데 구강기에 대해 그는 ‘유아의 성적 관심이 입, 혀, 입술 등 구강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먹는 행동을 통해 만족과 쾌감을 얻는다. 결국 기능적 측면에서 볼 때 구강은 인체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부위이며,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성적 ‘도구’가 되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동·서양의 미인도에서 굳게 닫혔던 입이 근래에 오면서 활짝 벌어진 입매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자, 이제 새하얀 미소, 충치나 잇몸질환이 없는 청결한 구강으로, 이성을 사로잡는 섹시한 매력을 한껏 내뿜는 건 어떨까. 이지영(치의학 박사·서울 강남 이지치과 원장 www.egy.co.kr)
  • 꽃차로 봄을 마셔요

    꽃차로 봄을 마셔요

    기자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활짝 핀 봄꽃 내음을 앞서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봄 내음을 가득 담은 꽃차를 마시는 것.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차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으면, 어느덧 내 안에 봄이 찾아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서핑을 하던 중에 꽃이 피는 차를 보고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바로 구입했다는 직장인 서미숙 씨(28세). 투명한 유리 티포트에 차를 한 송이 넣고 끓는 물을 부으니 차가 우러나면서 안에 감춰져 있던 꽃이 피어났다. 천천히, 잎이 벌어지고 그 속에 있던 붉은 꽃잎이 피어나는 모습에 그만 반해버렸단다. 피로가 찾아오는 오후 시간, 꽃차를 앞에 놓고 그 향기를 맡다 보면 뻣뻣했던 몸도 이완되고 그 향만큼의 여유가 찾아온다.꽃차는 시각, 후각, 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차이다. 꽃차를 마실 때는 먼저 눈으로 꽃을 즐긴 다음, 코로 향기를 음미한다. 코로 향을 마시는 동안 꽃잎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이때 혀끝을 차로 가져간다. 혀끝을 통해 온몸으로 향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시각과 후각을 거쳐 마지막에 미각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꽃차의 묘미이다. 야생차 전문가 송희자 씨는 <마음 맑은 우리 꽃차>라는 책에서 꽃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맨처음 꽃차를 우릴 때는 화려함으로 마시고, 두 번째는 그윽함으로 마시고, 세 번째는 빛바랜 아름다움으로 마신다. 네 번째는 순수함으로 마시고, 마지막으로 자연이라 생각하고 마시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만 마시지 말고 여러 번 우려 꽃이 변하는 과정과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라고 당부한다. 꽃차를 집에서 제대로 즐기려면 꽃이 우러나면서 피는지 잘 알아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찔레꽃, 국화꽃, 매화꽃 등은 맛과 향, 색이 모두 있어 좋으나, 향이 안 나는 꽃차도 있기 때문이다. 꽃차는 두세 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는데, 뜨거운 물을 부으면 더욱 잘 우러난다. 워머 위에서 온도를 떨어뜨리지 말고 데우면서 우리면 더욱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다. 꽃차는 잎녹차와 달리 거름망이 따로 필요하지 않으므로 눈으로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유리 티포트를 권한다. 티포트를 들어올려 아래에서 봤을 때 꽃차가 우러나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고. 일은 많은데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머리만 복잡한 날,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 녹차 대신 꽃차 한 잔으로 소박하지만 화려한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복잡하고 긴 문장 속의 쉼표처럼, 우리 삶의 아름다운 쉼표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참, 몸이 차가워서 녹차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꽃차가 더욱 좋다. 널 향한 내 마음이야_ 꽃이 피는 차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꽃이 피는 차를 함께 마셔보는 건 어떨까. 잎이 벌어지고 그 속의 꽃잎들이 하나 둘 피어날 때, 이렇게 말해보자. “널 향한 내 마음이야.” 이 차는 공예차라고도 부르는데, 꽃을 녹차잎 등으로 둥글게 말아놓아, 물을 부으면 꽃이 피어나도록 한 것이다. 쟈스민, 참나리꽃, 한련화, 황국화 등 구성이 다양한데, 그 배합에 따라 금상첨화, 단계표향, 한련만화, 말리백화, 백화쟁염이라 부른다. 과음한 다음날 해장국 대용_ 매화차 술 먹은 다음날 물을 마시고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 매화차를 마시자. 매화차는 갈증을 해소하고 숙취를 없애며 기침, 구토 증세를 다스린다. 황사 때문에 기관지가 답답하거나 신경과민으로 소화가 잘 안될 때, 목에 이물질이 걸려 있는 것 같은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_ 백화차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가까운 이에게 배신 당했을 때,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안의 화가 불쑥불쑥 솟아오를 때 이 차를 마셔보자. 백화차는 봄의 동백꽃과 매화로 시작해 개나리, 진달래 온갖 과수의 꽃과 긴 여름의 붉은 홍화, 가을의 노란 국화, 겨울 문턱의 녹차꽃으로 마무리하는 100여 가지의 꽃을 배합한 차이다. 사계절 피고진 꽃들이 모두 모여 내는 오묘한 맛과 향은 달면서 쓰고, 매우면서도 시원한 삶의 맛을 닮았다. 또 손으로 집을 때마다 비율이 달라지니 그 맛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닮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피로 회복과 혈액 순환, 피부 미용, 면역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차다. 미녀는 장미를 좋아해_ 장미꽃차 장미꽃차는 어혈을 풀어주고 간과 위의 통증을 완화시켜 준다.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어혈성 생리통에 좋다고 하니 여성들에게는 딱 좋은 차다. 장미는 비타민 C가 레몬의 17배나 된다. 장미꽃차는 몸 안의 활성산소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해소시켜 주고 공복에 마시면 변비에 효과적이다. 내여자의 두통을 없애고 싶다_ 국화차 ‘내 여자의 두통을 없애고 싶다’면 약국으로 달려가는 대신 정성껏 우린 국화차 한 잔을 내어주자. 국화꽃은 몸을 가볍게 하고 위장을 평안하며 하고 감기, 두통, 현기증에 좋다. 말린 국화꽃을 베갯속으로 하는 것은 두통에 좋아서다. 또한 혈압을 낮추고 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서 한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월간[샘터]2007.3
  • 5명에 새삶 주고 떠난 ‘아홉살 천사’

    얼굴도 모르는 5명에게 새 생명과 빛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아홉살 소년의 사연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20일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뇌종양으로 세상을 등진 안우석(9·경기 부천 계남초등학교 2년)군이 숨진 뒤 2명에게 신장,1명에게 간,2명에게 각막을 기증했다. 안군은 지난해 2월 눈에 사시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2학년에 올라가자마자 학교를 휴학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지난 4일 병세가 악화된 뒤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안군은 지난 9일 오후 9시45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최종 뇌사 판정을 받았고 다음날 오전 1시40분 5명의 환자들에게 신장과 간, 각막을 넘긴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안군의 아버지 안항일(41·교사)씨는 “우석이에게 마지막으로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어렵게 장기 기증을 떠올리게 됐다.”면서 “우석이가 못 다한 삶을 내가 대신 살아 준다는 마음으로 베풀며 살겠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어 “태국 메솟 지방에 우석이의 이름이 붙은 우물을 파 맑은 물이 없어 복통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함께하면 할인혜택]

    ●AIG손해보험,AIG실버보험 부부가 함께 가입하면 10% 할인해 준다.50∼75세면 가입할 수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월 보험료는 1만 9930원이다. 만기환급금이 없는 소멸형이다. 보장기간은 80세인데 치매간병비 2000만원은 50∼69세 가입,75세까지 보장이다. 이 특약은 활동불능 및 인식불명(기질성 치매)으로 진단확정되고 180일 이상 그 증세가 계속됐을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상해사망시는 2500만원(장례비 포함), 골절이나 화상, 뇌·장기 손상시 최고 1800만원까지 보장한다. 월 910원을 더 내면 골절수술시 수술비 100만원, 재활보조비용 최고 3000만원, 일상생활 배상책임 최고 1000만원까지 등 다양한 보장이 가능하다.●대한생명, 마이키즈변액유니버셜보험 자녀 학자금 마련을 위한 투자형 상품으로 가입 자녀가 형제자매가 있으면 보험료를 1% 깎아 준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주피보험자, 자녀가 종피보험자다. 자녀가 24세 또는 27세가 되기 전에 주피보험자가 사망하면 이후 보험료를 내지 않고 가입 자녀에게 매년 최고 500만원의 학자금, 중·고등·대학교 입학금, 보장기간이 끝날 때 자립금 1000만원 등이 지원된다. 계약이 끝날 때 주피보험자를 자녀로 바꿔 건강보장형 상품으로 쓰거나 연금보험으로 바꿔 노후자금으로 쓸 수 있다. 펀드 운영실적에 따라 추가보험금을 받을 수 있고 투자성향에 따라 채권형, 혼합형 등 6가지 펀드 중 고르거나 분할투자가 가능하다. 보험료 추가납입이나 중도인출도 가능하다.●농협, 우리농산물사랑예금 전국 지역 농협에서 팔고 있는 ‘우리농산물사랑예금’에 들면 예금 가입기간 동안 농협e쇼핑 인터넷몰(shopping.nonghyup.com)에서 농산물을 5∼14% 할인된 값으로 살 수 있다. 계약기간은 6개월 이상이며 이자율은 지역 농협마다 조금씩 다르다.6개월짜리 예금은 4% 내외,1년짜리는 4.5∼5.5%의 금리가 주어진다. 세금우대종합저축, 생계형비과세저축, 세금우대예탁금 등 절세상품으로도 가입할 수 있다. 또 2000만원 이상으로 50번째마다 가입하는 고객 2000명에게 5만원 상당의 지역농특산물을,140명을 추첨해 PDP TV, 대형 냉장고, 김치 냉장고, 디지털카메라 등을 증정하는 사은행사를 한다.
  • 미래 잃은 이라크 아이들

    미래 잃은 이라크 아이들

    패자만 있고 승자없는 전쟁. 그러나 분명한 최대 희생자는 어른들의 전쟁에 연약한 몸과 정신을 고스란히 앗긴 이라크 어린이들. 미국의 이라크전 침공 4주년을 이틀 앞둔 18일(현지시간) CNN방송은 ‘전쟁과 어린이들’이란 제목의 기획물을 보도했다. 사드르시 시아파 난민촌 황폐한 길거리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고함소리. 그들은 하나같이 장난감 총을 들고 ‘무장세력 죽이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를 코너에 몰아넣고 “죽여!”를 외친다. 저항세력을 붙잡은 미군의 모습 그대로다. 이라크 인구 2600만명의 절반이 18살 이하다. 지난 4년간 어린이들은 고아가 되고, 길거리에서 혹은 시장통에서 학교에서 폭탄테러와 미군의 공습을 받아 공중으로 흩어졌다. 지난 2월 말 라마디의 한 공원에서 축구공을 차던 소년 18명이 차량 폭탄테러로 숨졌다. 폭발음과 폭력, 납치, 피의 보복전은 그들에겐 일상의 게임처럼 비쳐지고 있다. 난민촌에서 땀을 흘리며 ‘저항세력 죽이기 게임’을 하던 무스티카 하림(8살 정도)은 “미군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며 “가장 좋아하는 놀이”라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이 수니파 무장단체에 의해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모습을 설명하던 무스티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바그다드의 정신과 의사인 사이더 알 하시미 박사는 “이라크의 어린이 특히 바그다드 시내 어린이들은 대부분 평생 장애로 남을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CNN이 소개한 어린이들의 심리 상태는 충격적이다. 여덟살 된 자하는 이웃집에 폭탄이 터진 뒤 발작증세에 시달리고 있고, 열세살 소녀 키타는 폭발음이 들릴 때마다 엄마를 때리는 증세를 보인다. 열여섯살 소녀 사만의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학교앞에서 무장 단체에 9일 동안 납치됐다가 풀려났다. 사만은 함께 납치된 20명의 소녀들과 창문없는 방에서 지냈다. 사만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친구 시체 옆에서 잠을 자야 했다. 부모는 거액을 주고 사만을 구했다. 그 뒤 사만은 밤마다 울부짖고 고함을 친다. 극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의 BBC는 얼마 전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바드다드 시내의 아이들, 텅빈 놀이터의 그네를 통해 이라크 어린이들의 실상을 보여줬다. 아침밥을 먹다가 졸지에 폭탄세례를 받고 병원으로 실려간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도 소개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했느냐.”며 울부짖었다. 지난 20년 동안 이라크는 세차례 전쟁을 치렀다.1980년대 이란과의 8년 전쟁,1991년 걸프전, 그리고 4년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걸프전 이후 계속된 12년간의 유엔경제제재 희생자들도 역시 어린이들이었다. 지금 이라크 어린이들이 당하는 고통은 ‘5세 이하 어린이 25%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8분의 1이 5세가 되기 전에 사망한다.’(유엔아동기금)는 통계를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 탈출할 능력이 없이 인간사의 가장 추악한 전쟁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들. 그들의 희망과 이라크의 미래는 폭탄 소리가 한번 터질 때마다 파괴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22) 소아 뇌성마비

    [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22) 소아 뇌성마비

    간혹 뇌성마비를 이긴 ‘인간 승리’의 드라마틱한 소식을 접한다. 뇌성마비의 고통을 이겨내고 큰 성취를 이뤄냈다는 말이다. 이런 소식이 반가운 것은 그 만큼 뇌성마비가 무섭기 때문이다.“정상인에게는 쉬운 고개 가누기와 앉기, 서기, 걷기 등의 기본 동작들을 힘겹게 배워나가야 하는 뇌성마비 환아들과 그 부모들의 심적 부담과 경제적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국내 뇌성마비 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연세대의대 재활의학교실 박은숙(재활병원장) 교수는 소아 뇌성마비의 고통을 이렇게 설명했다. 뇌성마비란 임신 중이나 출생 후 미성숙한 뇌의 손상으로 인해 인체의 운동 및 자세조절 장애를 통칭하는 질환이다. 뇌 손상이 있더라도 운동 및 자세조절 장애가 없으면 뇌성마비로 보지 않는다. 뇌성마비는 뇌 손상 부위와 손상 정도에 따라 정신·언어·시력장애 등이 동반될 수도 있다. 박 교수가 설명하는 뇌성마비의 요인은 이렇다.“뇌성마비의 고위험 요인은 출산전·주산기·출산후 요인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출산전 요인이 전체의 70∼80%가량을 차지하며, 주산기 및 산후 요인은 20∼30% 정도입니다. 출산전 요인은 출산시 2500g 미만의 저체중아, 임신 기간 37주 미만의 미숙아, 임신 중 감염과 심신의 충격, 지나친 흡연 및 음주 등이며, 주산기 및 출산후 요인으로는 난산, 호흡곤란, 양수 및 태변 흡입, 경련, 황달, 뇌염, 뇌막염, 외상성 뇌출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원인이 다양한 데다 환자 개인별로도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뇌성마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 환자 개인별 원인을 꼬집어 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국내에서 이런 뇌성마비가 출생인구 1000명당 2∼3명 정도에 이른다. “이런 뇌성마비 환아의 신체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조기치료가 매우 중요하며, 그런 만큼 조기진단이 중요합니다. 조산 및 저체중 등 고위험 요인을 가졌다면 당연히 정밀한 검진이 필요하지만 이런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고개를 뒤로 심하게 젖히거나 한쪽으로 기울게 고개를 들어올리며, 팔다리와 몸통이 축 늘어지는 느낌, 몸통 좌우의 움직임이 다르고, 양손의 주먹을 항상 꼭 쥐고 있다면 서둘러 전문 병원을 찾는 것이 현명한 대응입니다.” “물론 운동발달 지연도 중요한 증상인 만큼 알아둘 필요가 있지요. 정상 아동의 경우 머리 가누기는 출생후 3개월, 뒤집기는 4∼6개월, 기는 것은 6∼8개월, 잡고 서기는 9∼10개월, 혼자 걷는 것은 12∼15개월 사이에 가능한데, 이보다 많이 늦어지면 뇌성마비 여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뇌성마비는 뇌의 손상의 정도 및 손상 부위에 따라 증세 유형과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운동이상 유형에 따라 경직형, 이상운동형, 혼합형으로 나누는가 하면, 병증이 나타나는 부위에 따라 사지마비, 삼지마비, 하지마비, 단마비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경직형은 움직임이 적고, 타인이 관절을 움직일 때 저항감이 느껴지며, 팔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 운동이상형은 움직일 때 안면과 사지가 불규칙하게 뒤틀리거나 자꾸 꿈틀거리는 동작을 억제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이며, 혼합형은 경직형과 운동이상형이 혼재해 있는 경우이다. 이 중 경직형이 전체 뇌성마비의 70∼80%를 차지한다. 사실, 뇌 손상이 심한 중증의 뇌성마비는 조기치료를 해도 회복의 정도가 미미하지만, 대부분은 조기치료 여부에 따라 예후가 큰 차이를 보인다. 중요한 뇌 발달기에 다양한 감각 및 운동을 경험하도록 해 뇌 발달 장애요인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곧 치료 과정이기 때문이다.“환아에게 필수적인 여러가지 감각 및 운동경험을 습득하게 해 뇌 발달을 돕는 것이 조기치료의 주된 목적이며, 여기에 더해 비정상적인 근골격계의 변형을 예방하거나 관리해 운동기능을 향상시키는 것도 치료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원되는 치료법은 무척 다양하다. 근력강화와 운동범위를 넓히기 위한 전기치료를 비롯해 석고고정, 보조기나 보조장구 사용, 약물치료, 보톡스 및 신경차단 주사요법 등을 환아의 상태에 따라 적용한다. 여기에다 환아가 가진 동반 장애에 따라 인지교육, 언어치료, 심리치료 등을 병행한다. 수술도 중요한 치료법이다.“수술치료는 신경외과 분야의 ‘선택적 척수후근 절제술’과 정형외과 분야의 ‘근골격계 교정술’이 대표적인데, 척수후근 절제술은 경직을 유발하는 후근을 선택적으로 절제해 경직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나 수술 후 근 긴장도가 떨어지고, 근력이 약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 근골격계 교정술은 관절의 변형이나 탈구, 회전 변형 등을 치료하는 수술로, 수술 후 비정상적인 보행습관을 교정하는 치료를 따로 받아야 하고요.” 이렇게 다양한 치료를 하지만, 환아가 성장함에 따라 증상의 양상이 변하기 때문에 학령기 이후에는 그때까지 치료로 얻은 기능을 잘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사실, 뇌성마비는 완치를 겨냥한 치료라고는 할 수 없으며,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가능한 기능을 최대한,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주된 치료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기적인 재활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며, 또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거지요.” 다행인 것은 경직 치료에 효과적인 고가의 보톡스 주사요법이 건강보험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만2∼5살 환아에게 이 치료법을 적용할 경우 1회 시술비가 이전의 120만원선에서 14만∼38만원 수준으로 줄었다.“그렇지만 환아들 중에는 대퇴부 근육의 문제로 보톡스 주사요법이 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아직 이런 부위는 보험 적용을 못받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박 교수는 특히 뇌성마비 환아를 보는 일반인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뇌성마비 환자의 75∼80%는 독립 보행이 가능하며, 최근에는 중증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중등도의 환자 57%, 중증 환자의 35%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이런 점을 비춰 우리도 환자들을 위한 각급 교육기관 증설,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 결성 등의 문제에 정부와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 주기를 당부합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죽음 부른 쌍꺼풀 성형

    수면 마취주사를 맞고 쌍꺼풀 성형수술을 받은 20대 여성이 수술 직후 돌연사했다.13일 오후 8시15분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은 최모(21·여·회사원)씨가 갑자기 구토와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대형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수술을 집도한 이 병원 윤모(35) 원장은 “오후 5시30분쯤 수술을 시작하기 전 최씨가 원해 고통이 덜한 수면마취를 한 뒤 집도에 들어갔다.”면서 “수술 뒤 의식이 돌아와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제와 항생제 등을 투여한 직후 최씨가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이며 산소지수가 급감해 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대형병원 구급차를 불렀다.”고 말했다. 최씨의 여동생(19)은 “언니는 평소 아주 건강했다.”면서 “보통 30∼40분밖에 걸리지 않는 쌍꺼풀 수술이 한 시간 정도 더 소요된 걸 보면 분명 의료사고가 발생한 뒤 자체 수습을 위해 시간을 쓰다 화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15일 최씨의 시체를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낸 뒤 윤 원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관절의 압박’ 세대별 대처 이렇게

    봄은 관절이 부담스러운 계절이다. 운동이나 등산, 일상적인 야외활동이 늘면서 관절에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층은 “아직 관절은 걱정없다.”며 무리하기 쉬운데, 이 때문에 병원을 찾는 젊은 층이 의외로 많다. 권용진 힘찬병원 인공관절센터 과장은 “관절염은 어느 한 순간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함께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인 만큼 젊을 때부터 꾸준한 운동으로 관절을 강화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20∼30대 # 퇴행성 관절염의 원인 20∼30대에는 퇴행성 관절염보다 외상으로 인한 관절질환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축구, 농구 등 달리거나 부딪히는 몸동작이 많은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 환자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이 때 생긴 관절 손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방치하면 나이가 든 후 퇴행성 관절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운동으로 인한 부상의 대부분은 인대와 연골 손상이다. 인대는 연골이 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운동 중 다리가 뒤틀리거나, 빨리 달리다가 갑자기 정지 또는 방향을 틀 때 무릎관절을 감싸고 있는 인대가 손상되기 쉽다. 인대 중에서 가장 손상이 많은 내측 인대의 경우 보통 인대 파열의 경우 접합수술이 필요한 것과 달리 이 경우에는 완전히 파열됐더라도 수술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이런 비수술적 치료는 수술로 인한 통증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수술 때보다 치료 후 무릎의 운동 범위가 더 넓어져 활동성이 좋기 때문에 최근에 선호하는 치료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밖에 ‘라이언킹’ 이동국 등 많은 운동선수들에게 문제가 됐던 십자인대(무릎 앞쪽 인대)파열도 흔한 운동부상이다. 이처럼 인대가 파열되어도 시간이 지나면 손상 직후의 통증이나 부기가 가라앉는데 이를 잘못 해석해 치료를 미루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인대 파열이 관절 불안정을 초래, 더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무릎을 다친 후 운동능력이 예전과 같지 않거나 때때로 통증이 느껴지면 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인대와 달리 연골은 뼈와 뼈 사이에 위치해 쿠션 역할을 하는 물렁뼈 조직으로, 점프나, 충돌 때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 파열된 연골은 보통 봉합하거나 절제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나 손상 정도가 심하면 연골판을 이식해야 관절염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 40∼50대 # 비만을 경계해야 중년 들어 노화가 시작되면서 무릎 관절에도 퇴행성 변화가 일어난다. 관절이 유연성을 잃게 되고, 관절을 지탱하는 인대와 근육이 탄력을 잃으면서 무릎에 통증이 오는 것. 특히 최근에는 중년 비만 인구가 급증하는데 이 비만이야말로 관절 건강의 적이다. 몸무게가 1㎏ 늘어나면 무릎에서 견뎌야 하는 하중은 무려 5㎏이나 늘어나기 때문. 복부나 상체 비만이 많은 이런 중년 비만은 무릎에 더 큰 부담을 준다. 그러므로 40∼50대에는 관절 건강을 위해 적절한 운동과 함께 식단 조절을 통해 체중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허벅지 근육량이 적어 무릎 관절을 지탱해주는 힘이 약하며, 따라서 무릎 연골이 더 쉽게 마모될 수 있으므로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 더 절실하다. 많은 중년들이 택하는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친 같은 관절 건강보조제도 병원 진단 후 자신의 문제를 알고 복용하면 보다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다. 특히 퇴행성 관절염은 점차 증상이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이어서 치료가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무릎에 통증이나 부기가 있거나, 굽히고 펴는 데 불편함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 60∼70대 # 관절염 치료가 삶의 질 바꿔 60대 이상 고령자의 대다수가 관절염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다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면 관절이 굳어 통증만 더 심해진다. 평소 산책과 같은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단, 등산이나 계단 오르기처럼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운동은 삼가야 한다. 일부에서는 관절염을 ‘나이 들면 당연히 앓아야 하는 노인성 질환’이라고 여겨 치료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편하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해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사람조차도 치료를 미루다가 결국 병증을 더 악화시키는 사례가 허다하다.‘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지기 전, 즉 마모가 많이 진행되기 전이라면 연골을 재생시키는 시술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자신의 건강한 연골세포를 뽑아내 외부에서 배양한 후 손상 부위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이런 자가연골 배양이식술은 자신의 세포를 배양, 이식하기 때문에 회복도 빠르고 후유증도 적어 최근 선호되는 치료법이다. 그 밖에도 증상과 정도에 따라 연골주사, 관절경 수술이나 인공관절 치환술 등 다양한 무릎관절 재생 치료법이 이용된다. 권용진 과장은 “특히 인공관절 수술은 수술 기술과 재질의 발달로 후유증이나 재수술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절개 부위도 최대한 줄일 수 있고, 감염이 적으며, 회복도 빨라 노인들이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 도움말:권용진 힘찬병원 인공관절센터 과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웰빙 강박증’ 앓는 사람들

    ‘웰빙 강박증’ 앓는 사람들

    ‘웰빙(참살이)도 지나치면 독(毒)?’웰빙 열풍에 대한 반작용으로 ‘웰빙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기농 식품과 건강보조식품, 다이어트, 요가 등 사회 전반에 웰빙이 건강의 대명사처럼 자리잡고 있지만 웰빙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운수업체에 다니는 김모(54)씨는 심한 운동 중독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남들보다 유달리 건강을 챙기던 그는 웰빙 열풍이 불면서 퇴근 후 매일 3∼4시간씩 러닝머신을 뛰고 주말에는 암벽 등반을 했다. 심지어 황사가 심한 날에도 야외 운동을 중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회사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아내와 주위 사람의 권유로 운동을 중단했다. 김씨는 “운동을 그만두자 불면증과 호흡곤란 증세에 시달려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마치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금단 현상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홍모(32)씨는 금방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에 헬스클럽과 ‘핫요가’를 병행하다 심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 헬스를 끝낸 뒤 섭씨 40도가 넘는 스튜디오 안에서 1시간30분가량 핫요가를 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과도한 운동이 건강을 해친 셈이다. ●작년 웰빙 관련 피해 접수 1만건 넘어 주부 최모(45)씨는 웰빙 음식에 빠져 최근 직장을 그만둔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다. 인터넷과 TV에 나오는 웰빙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보던 남편이 심하게 음식을 가리는 탓에 직장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최씨는 “남편이 숯불에 익힌 고기가 좋지 않다며 직화구이를 안 먹고, 육류는 기름기가 없는 샤부샤부 종류로, 외식은 채식뷔페만 고집한다.”면서 “이 때문에 직장 회식은 거의 참석 안 하고 사람도 가려서 만나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보조식품 등을 마구잡이로 섭취해 부작용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 회사원 박모(34)씨는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에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해 복용하다 심한 피부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는 “약을 복용하고 난 뒤부터 손바닥에서 입술까지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고 가려움증이 심해 피부가 많이 손상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9일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피해 사례는 7716건, 헬스와 요가, 피트니스센터에 대한 피해 사례는 3879건이나 됐다. 웰빙 열풍을 타고 등장한 건강보조식품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은 것만 해도 무려 4500여종, 시장 규모는 3조원에 육박한다. ●진정한 웰빙은 육체·정신건강의 조화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웰빙 강박증은 규범이나 가치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한 사회 현상이 투사된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먹거리·운동 등 1차적 통제가 가능한 것에 집착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몸에만 집착하는 것은 웰빙이 아니며, 진짜 웰빙은 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삶의 태도를 갖추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美 ‘이란 편집증’

    미국은 대(對) 이란 편집증(Paranoia) 환자? 미국 연방정부가 이란을 의식, 박물관에 전시 중인 퇴역 전투기까지 압수하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이란 최고위 군부 인사가 망명하는 등 첩보전까지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터키에서 실종된 전 이란 국방차관이자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창설자로 알려진 알리 레스자 아스가리(63)가 서방에 망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방 정보기관은 망명지가 미국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지낸 그는 하타미 정부시절 국방차관을 지냈다. 헤즈볼라의 테러, 요인 암살 등 구체적인 작전 내용과 이란의 미사일 구매 및 무기거래 내용, 그리고 핵개발 내부 정보 등 최고 기밀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 인터넷판은 9일 주요 정보기관이 아스가리 전 차관의 망명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첫번째 최고위 망명자가 된다. 아스가리 망명도 신빙성을 얻고 있다. 그는 지난달 7일 터키 이스탄불의 한 호텔을 예약하고도 투숙하지 않았으며 가족까지 동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 전 국장인 대니 야톰은 “현재 나타나는 모든 징후들이 치밀하게 계획된 망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연방정부가 캘리포니아의 한 박물관에 전시 중인 퇴역 전투기 F14를 압수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F14 톰캣 전투기는 영화 ‘탑건’에 나온 기종으로도 유명하다. 압수 이유는 이 퇴역 전투기 부품들이 이란에 밀매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미 세관이 지난 17개월동안 정밀한 감시 체제를 펼치고 있어 밀매 자체가 근거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란은 현재 전 세계에서 F14 비행대대를 운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로,1979년 혁명 후 미국의 수출금지 조치로 전투기 부품 교체에 애를 먹고 있다. 이란이 운용 중인 F14기 79대는 혁명 이전 미국이 수출한 것이었다. 한 유럽 공관의 대사는 “(이번 조치를) 이란에 대한 미국의 편집증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꼬집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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