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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통신,「불통」 축소­책임전가 급급

    ◎광 케이블화재/두절 34만회선을 “9만회선” 발표/“화인 고압선” 한전에 떠넘겨/전산망 마비 안알려 은행·시민 불편 종로5가 지하통신케이블 화재로 국민들이 엄청난 재산피해와 불편을 겪고 있는데도 한국통신측은 정확한 피해상황과 대처방안을 신속히 알리기보다는 불통된 전화회선수를 몇번씩 축소발표한데다 화재원인규명보다는 발뺌에 급급하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한국통신은 사고발생 직후인 10일 하오 전화 9만회선이 불통되고 있다고 발표했다가 11일 상오에는 당초 발표보다 4배에 가까운 34만3천여회선이라고 수정했다. 또 이날 현재 불통되고 있는 전화회선수도 상오8시30분까지 7천여회선으로 발표했다가 30분후에는 2만6천6백여회선으로 바꾸는등 피해를 축소하는 데만 급급했다. 이밖에도 소방본부가 불에 탄 통신케이블길이를 5백여m라고 밝혔으나 한국통신은 2백여m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사고후 한국통신측이 피해규모와 피해범위및 시민들의 대처방안안내등을 전혀 하지 않아 피해가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 시민들의 지적이다.사고후 대부분의 시민들은 화재가 발생해 전화가 불통되는 정도로만 인식했을뿐 각종 전산망·무선통신망·팩시밀리전산망·은행과 증권사의 온라인망등은 물론 교통신호체계까지 모두 마비된 줄을 몰랐다. 더욱이 이번 사고의 첫번째 책임은 마땅히 한국통신이 져야 하는데도 초반부터 한국전력·서울시지하철공사등 관련기관과 책임떠넘기기 논쟁을 벌이다 발화지점이 통신구내로 밝혀지자 뒤늦게 책임을 인정하는등 볼품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선 한국통신측은 한국통신 직원이 『사고직전 통신구의 배수펌프 작동계기판에 이상램프가 켜져 통신구문을 여는 순간 고무타는 냄새가 났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는 점과 사고지점에 6천6백◎이상의 고압선유도전압이 흐르고 있었다는 점등을 들어 화재책임이 한국전력과 지하철공사측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력측은 『지하통신선로 화재사고의 원인이 한전의 고압전력케이블 때문』이라는 한국통신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사고가 난 지하철1호선에는 고압케이블이 매설된 전력구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특히 통신케이블 옆으로 10m에 6천6백◎선로가 매설돼 있으나 지중전력케이블은 생산당시부터 동케이프로 둘러싸여 있어 유도전압으로 인한 사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지하철공사측은 사고직후 서울시에 낸 보고서에서 『한국통신 직원이 이대부속병원앞 케이블 연결작업중 토치램프 작동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국통신측 책임임을 주장하고 있다.지하철공사측은 또 인근 지하철역의 직원들이 『7일부터 한국통신직원들이 통신케이블 용접공사를 벌여왔다』는 점을 중시,이번 사고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풍수/남산이 누에머리… 잠실에 뽕나무 심어(서울 6백년 만상:3)

    ◎백두산기 응집된 국토의 중핵이 한양/전국 산수의 정기 모인 북악이 중심부 남산의 형상은 누에머리와 흡사하다.그 남산의 지기를 왕성하게 만들기위해 입쪽인 지금의 잠실에 누에의 먹이가 되는 뽕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사평리로 불리던 이 땅은 그래서 잠실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서울을 대표하는 숭례문,흔히 말하는 남대문의 현판을 세로로 세웠다거나 광화문앞에 물짐승인 해태 석상을 세워둔 것도 모두 풍수에서 유래한다.숭례를 세로로 세워놓고 보면 불길을 제압하는 모양이요 물짐승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모양의 화산인 관악산의 불길이 한양 혈터인 경복궁에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막아 준다고 믿은 풍수에서 비롯됐다. 한양땅 지금의 서울은 한마디로 풍수에서 말하는 탐랑목성래용의 천하대길 명당이다.역성혁명으로 어렵게 왕위에 오른 이태조가 종묘사직과 자손만대의 평안을 약속받기위해 심사끝에 정한 도읍지이다.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한 맥이 수백리를 내달아 솟아올라 도봉산 만장봉이 된다.여기서 남서쪽으로 달려가다가 우뚝일어선 것이 삼각산 백운대요,남으로 내려온 지맥이 백악(북악산)이다.동·남·서 세방향이 강이고….여러 강이 얽힌 사이에 위치한 백악은 전국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이 펴낸 「동국산수록」은 「국토지맥의 원천인 백두산 기가 응집된 국토의 중핵이 한양이며 그 가운데서도 북악은 중심부」라고 한양 맥세를 설명하고 있다. 한양의 도시건설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청룡은 동쪽의 낙산(종로구 동숭동일대 뒷산),백호는 서쪽의 인왕산,주작은 안산인 남산과 조산(주산과 마주보는 손님산)인 관악산이라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풍수지리적 해석의 틀속에서 이루어졌다. 정도 당시 정도전등 이론주의자와 무학대사등 실용주의자들은 풍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무학은 정도전등과 달리 인왕산을 주산으로 궁궐은 남향이 아닌 동쪽으로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만약 무학의 주장이 받아들여 졌더라면 서울중심부와 주요도로는 세종로(당시 관청들이 늘어서 있던 육조거리)가 아닌 종로3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서울의 중심은 서북쪽에 덜 치우쳐 보다 균형적인 공간배열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악을 주산개념으로 볼때 서울은 두가지 약점을 갖는다.그 하나는 주산 북악이 규모가 작은데다 손님격인 관악산이 훨씬 크고 높다는 것이다.이런 맥락에서 경복궁을 주궁으로 하는 서울이란 터는 운명적으로 손님,즉 외세의 간섭·신하의 모반·하극상 사건을 잉태하고 있다는 풍수지리적인 해석에 도달한다.또 서쪽의 우백호인 인왕산 맥에 비해 장손을 상징하는 좌청룡 낙산지맥이 너무 짧고 빈약해 조선왕조내내 맏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경우가 오히려 이례적이었다는 해석이다.이 때문에 4대문중 동대문만이 「지」자를 더 넣어 흥인지문 4글자로 만들었으며 여느곳과 달리 전투를 위한 옹성으로 동대문을 쌓은것도 지세의 허약을 보완하고 동쪽의 외세(일본)의 기운을 막아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풍수지리는 전쟁을 위한 병법에서 나와 도시개발·건축등 민간생활에 응용된 것으로 땅을 살아있는 생명,유기체로 보았다.이런관점에서 볼때 북악산근처는 머리,세종로등 관청가는 가슴,용산과 강남쪽은 복부가 된다.또 여의도는 서울의 지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경비원이며 시녀역할인 나성이 된다.이러한 위치때문에 국회와 증권으로 상징되는 경제가 북악 즉 정치의 시녀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속설도 있다.청와대의 터가 풍수적으로 좋은 터가 아니며 상징적으로도 높은곳에 밑을 내려다보는 위압적인 상태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풍수지리적으로 이렇듯 기가 뭉쳐있는 북악과 경복궁사이인 속기처에 일제총독의 숙소와 총독부를 지은 것은 기가 몸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목을 꽉 움켜잡고 있는 형상이다.국토의 핵심지에 점령자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일일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는 왕조와 국가의 멸망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양이라는 천년왕도로서의 권위와 신비가 모든 백성들의 가슴속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바로 그러한 사건으로 일제도 그점을 노렸을 것이란 해석이다. 오늘의 풍수전문가들은 실용과 경관적인 아름다움이 풍수지리의 양대 기둥이라고 말한다.자연적 입지가 인간들의 심성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 추곡수매/부처·당정입장 여전히“팽팽”/양·가격결정 늦어지는 속사정

    ◎기획원 “동결”·농수산부 “소폭” 주장/“냉해피해 보상” 농민요구도 거세/쌀 실수확량 파악되는 중순이후 확정될듯 올해 추곡수매가및 수매량 결정작업이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 이는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안,농협및 농민단체의 요구수준과 정부입장간에 큰 격차가 있는데다 부처간 또는 당정간 시각차마저 여전히 좁혀지지않고 있기때문이다.따라서 「10월말 정부안 확정,11월초 국회동의 요청」이란 당초 농림수산부의 추곡구매시간표는 이미 물 건너간 셈이고 현재 추세대로 가면 정부 최종안의 결정시기마저 이달말까지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건의안 즉각 거부 추곡수매를 둘러싼 논쟁은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현상이긴 하나 올해의 경우 냉해라는 특수한 변수가 작용하는등 예년과는 달리 상황이 복잡하기 그지없다.더욱이 예산당국인 경제기획원이 농림수산부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에서 정부건의안을 내놓자 바로 수매가 동결을 주장하며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식발표하고 나선 것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고있다. 경제기획원이 양곡유통위원회 건의안을 놓고 이처럼 즉각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예년의 경우 추곡수매가 및 수매량은 양곡유통위원회의 건의안을 토대로 주무부서인 농림수산부와 경제기획원이 쌀 생산비와 물가수준등을 고려,양곡유통위 안에 최대한 근접한 정부안을 내놓았던 것이 전례였다. 이처럼 올 추곡수매문제를 둘러싸고 전례없는 진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 점 때문이다. ○11%인상 너무 높아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은 올해산 쌀부터 적용되는 양정개혁정책의 취지와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쌀값의 계절진폭을 7∼10%까지 허용,민간유통 활성화를 꾀한다는 양정개혁정책이 시행되는만큼 수매가 인상폭과 수매량을 예년보다 점차 낮춰나가야 한다는 기본인식을 갖고있다. 이 부문에 있어 경제기획원은 이같은 논리를 내세워 수매가 인상폭에 대해 보다 냉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반면 농림수산부는 시행 첫해인만큼 원칙보다는 조금 아량을 베풀 수 밖에 없지않느냐는시각을 갖고있는 것 같다.즉 추곡수매 주무부서인 농림수산부로선 만약 내년에 쌀 민간시장이 의도대로 활기를 띠지못할 경우 농민들로부터 쏟아져나올 원성을 걱정하지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농림수산부는 따라서 경제기획원의 수매가 동결주장에 대해 공식입장은 아니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시각을 갖고있다.그렇다고 양곡유통위원회의 9∼11% 인상안이나 그 이상인 농협및 농민단체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요구수준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크게 신경을 쓰고있지 않는 것 같다. ○수매재정 이미 확보 농림수산부는 다만 올해 5%인상된 가격으로 6백만섬을 수매하는데 필요한 재정 1조4천억원은 양곡관리기금 3천억원과 양곡증권발행 9천4백억원,양곡판매수익 1천7백억원으로 이미 확보해놓고 있는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또한가지 요인은 냉해피해를 추곡수매와 연계시키느냐 하는 대목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아직 정부부처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 보완책 시급 정부의 기본인식은 시장기능을 왜곡시킨다는등의 이유로 냉해피해를 고려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농민마음에 들만큼 별도의 특별지원대책을 마련하려니 예산문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농림수산부는 쌀의 실수확량이 파악되는 이달 중순이후에 이를 토대로 수매가 및 수매량을 결정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어쨌든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때 앞으로 국회동의과정에서 또 한차례 논란이 예상되지만 정부안은 수매가는 소비자물가상승률(5%선)정도에,수매량은 9백만섬에서 9백60만섬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 추곡수매를 둘러싼 진통이 연례행사화 하는것을 막기위해선 양정개혁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게 지배적인 시각인 것 같다.
  • 양곡수매/3년단위 예시제 도입

    ◎당·정/“예측 가능한 영농 유도” 법개정 추진/양곡증권 정리기금 설치·신규발행 불허 정부와 민자당은 6조여원에 달하는 양곡관리기금 부채상환을 위해 양곡증권정리기금을 설치하고 양곡증권의 신규발행을 허용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양곡증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당정은 이날 국회에서 농수산당정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하는 한편 홍수출하 방지를 위해 벼를 담보로 자금을 지원하는 미곡담보융자제를 도입,미곡유통업자에 대한 시설자금의 융자보조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양곡매매업과 양곡가공업을 허가제에서 각각 신고·등록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당정은 또 양곡관리기금을 통해 양곡의 수매와 방출을 해오던 것을 앞으로는 정부예산의 특별회계로 수매·방출토록 하며 농협이 맡고 있는 추곡수매에 대해서는 일단 정부 수매가와 동일한 가격에 사들이도록 한뒤 산지가격과의 차액을 정부가 보상해주는 차액지급제를 신설하는 대신 양곡관리기금법을 폐지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와함께 농민들의 계획영농이 가능하도록 3년 이상 단위로 양곡수매계획을 예시할 수 있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마련,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매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양곡수매계획을 확정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두되 앞으로는 3년이상의 기간을 정해 그 기간동안 매년의 양곡매입가격과 매입량등 양곡수급계획을 예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당정은 이 개정안이 추곡수매와 관련,매년 국회에서 되풀이되는 논쟁의 소지를 줄이고 수매가격과 수매량을 사전에 예시함으로써 예측가능한 영농을 유도하기 위한 개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야당과 농민단체들은 수매계획 예시가 사실상 수매량과 가격을 결정짓도록 만들뿐 아니라 생산비 보장과 보상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 신정부 출범즉시 「극비3단계」 추진/금융실명제 나오기까지

    ◎실무자들 출장·휴가 위장… 안보지켜/한달간 최종작업 증권가서도 몰라/발표 24시간전 인쇄작업도 언론포착 안돼 금융실명제는 신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극비리에 3단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1단계 과정은 지난 2월 신정부 출범 이후 대선공약으로 나왔던 금융실명제가 언론을 통해 그 정당성을 인정받은 후 그 방법과 일정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기까지이다. 다음은 지난 3월29일 김영삼 대통령이 이러한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금융실명제는 임기내 반드시 실시한다』고 밝힌 뒤 재무부가 은밀히 작업한 기간이다.당시 재무부는 이 지침에 따라 실명제의 논의가 가라앉자 은밀히 김용진 세제실장을 중심으로 4명의 실무팀이 6월 말까지 뼈대를 갖추는 작업을 해왔다.과거 두차례의 실패경험과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감안할 때 전격적인 실시가 최선의 카드였기 때문이다.작업낌새가 새나가지 않도록 보안 제일주의를 철저히 지켰다. 7월초부터 시작된 막바지 작업은 대통령의 뜻을 간파한 청와대 보좌진과 경제팀의 지시에 따라 재무부와 한국경제연구원·국세청·법제처등 합동팀의 살붙이기 과정이다. 이 팀은 김실장을 팀장으로 재무부 실무진과 양수길박사(경제기획원장관 자문관)등 KDI 3명,국세청 전산요원 2명,법제처 1명등 14명의 실무진으로 구성됐다.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과천의 45평짜리 아파트와 서울 강남의 휘문고앞 빌딩 2층에 「국제투자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막바지 작업을 했다. 지난 72년 사채동결 조치,80년의 환율인상 및 금리인하,90년 12·12 증시부양조치와 마찬가지로 보안만이 부작용을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판단,007작전을 본떴다는 얘기다. 실무작업이 마지막 피치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28일 임지순 소득세과장과 최규연·임동빈사무관이 미·일·독일등지로 자료수집차 여비와 출장비까지 타내 해외 출장길에 오른 것처럼 꾸민 이후.이들은 공항에 마중나오려는 가족을 만류하며 두달간 세낸 과천의 안가로 향했다.일부는 진짜 여행인줄 알고 일체의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았고 출장 목적도 몰랐다.이 곳에서 합숙하며 국제전화인양 집과 사무실에 안부를 묻는가 하면 남들이 눈치챌까 창문을 기웃거리는 것조차 삼갔다. 홍재경재무장관은 두차례에 걸쳐 휴가를 연기하고 치과에 간다며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고 김실장은 허리가 아프다며 7∼9일 휴가로 위장하기도 했다. 한달여에 걸친 작업이 증권가에 포착되지 않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된 끝에 금융실명제는 일요일인 8일밤 완성됐다.이튿날인 9일 최종안은 청와대에 보고됐으며 대통령은 이때 업무가 빈 12일 전격발표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팀들은 발표 24시간 전 인쇄작업에 필요한 재무부 직원 10여명을 동원한 사실조차 언론에 포착되지 않자 발표를 지켜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 문학·문예 평론가 이어령씨(이세기의 인물탐구:32)

    ◎평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천부적 관찰력에 해박한 지식으로 언어조율/약관 22세 데뷔… 예봉·직설로 기성문단에 파문/문학의 전장르 석권… 「흙속에…」이후 한국 재발견에 몰두 전후 한국문학의 기린아·총아 타이틀과 함께 독설적 직설,명쾌의 명문으로 이어령씨가 평단에 데뷔했을 때는 온 문단은 마치 「화약고」인듯 경계의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불어온 미국의 비트제너레이션이나 서구의 누보로망 앵그리영맨처럼 한국의 뉴제너레이션이던 당시 22세의 그는 「집도 가족도,그리고 그 시원찮은 문명이란 것도 학식도 없이 가진 것이라곤 분노와도 같은,자엽과도 같은 광기와 젊음뿐」이었으며 「생존하기 위하여 문관노릇을 하던 교수님들 밑에서 반세기전의 증권같은 실력없는 낡은 노트의 학설을 베끼며 인생을 배웠고」 「모든 울분과 공허를 자취방에 드나드는 늙은쥐를 두들겨 잡는 것으로나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문학을 하고 있는 몇몇 문단선배들을 만나보고 「기절할 정도로 실망」하여 그의 데뷔작품인 「우상의 파괴」에서 문단사에 남을 만한 중견문인들을 향해 「미몽의 우상」 「사기사의 우상」 「우매의 우상」 「영예의 우상」,이미 문단의 큰 봉우리로 우뚝선 노대가들마저도 「현대의 신라인」으로 신랄하게 통박하여 문단을 온통 긴장시키기에 이르렀다.그때 그의 눈에 비친 작가·비평가들은 그 어려운 시절에 「직무유기를 하는 한가한 문사」에 불과했으며 「불난 집에서 바둑을 두고 포탄이 터지는 전선에서 자장가를 노래하는 사람같아」 「파괴돼 마땅한 우상」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그때 「황무지」나 다름없는 문학풍토에서 「한국작가는 세계의 고아」 「현대 문명의 외곽지대에서 서식하는 뿌리없는 버섯」,이런 「불모의 상황을 영구화하려는 듯한 기괴한 권위」를 젊은 그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우상의 파괴」로 비판 그러나 예절과 겸허가 없는 그의 패기는 당연히 무례로 간주되었고 이 「맹랑한 문제아의 출현」을 놓고 문단은 한때 「일진광풍」이니 「일진청풍」으로 의견을 대립하는 사태가 일기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25전 한자어세대인 제1세대는 「식민지역사에 반항하여 망명이나 감옥으로 가든지,친일적인 식민지인으로 순응하든지」의 선택의 여지에 놓였던 것에 비해 전쟁직후의 20대,이른바 제2세대들은 일본어도 제나라 말도 서툴고 한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어중간한 허공에 매달린 역사의 기예 같은 존재」라고 또한번 꼬집었다 이제 문단은 더이상 그를 좌시하거나 간과하려 들지 않았다.일부 문인들은 그로 인해 어쩌면 이제까지 쌓았던 공든탑이 무너지고 문인으로서의 생명인 명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느끼는 듯했다.그의 문재와 번득이는 지성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기성문단은 한결같이 그를 냉혹하게 외면했다. 심하게는 「전생에 그리스의 소피스트케이션」이나 견석백마의 곡론가로 매도하고 그의 날카로운 필봉을 완강하게 견제하려 들었다.그때 빛나는 재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치는 그의 적들을 향해 「알렉산드리아」의 작가 이병주씨는 『나는 동족으로서,동시대인으로서 우리에게 이만한 사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런 재능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을 거침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나섰다. 그의 절친한 후배인 작가 최인호도 「문학이라는 삼장법사를 모시고 예술이라는 구도의 길을 가는 손오공」,문학평론가 김현도 「단군이래 순발력과 기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임을 여러글에서 밝히고 있다.「그는 과연 동서예술을 천의무봉으로 전개해나갔고 문학평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최초의 한국인」이라고. 이에 대해 이어령씨 자신은 「희극과도 같은 만용을 부려야 했던 성급한 과실들은 정말 나만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가」란 글에서 「나는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많은 평론을 했다.그리고 논쟁할 때마다 옷이 찢어지고 얼굴에 흙이 묻고 코피가 흐르던 어린날의 그 주먹다짐을 생각하곤 했다.그러나 그 아픈 상처자국을 통해서 나는 그 논쟁이 실은 하나의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애정이라는 의미를 확인했다」고 부연하고 있다. ○“언어 연금술사” 찬사 그후 그는 어린시절의 추억을오늘의 문화에 비쳐본 에세이와 한국문화·문명에 눈을 돌려 「흙속에 저바람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같은 주옥의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했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워준 문명비평가」로서 재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독일에서 돌아온 전혜린은 센세이셔널한 언어의 풍운을 몰고온 그를 보고 「놀라운 기지,번득이는 혀,해박하고 비상한 두뇌와 창의력」은 마치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에 못지 않다고 찬탄해마지 않아 그는 다시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반짝거리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원고청탁을 피해 신문사 캐비닛속에 숨어야 하는 행복을 누렸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흙속에…」는 1년만에 10만부,지금까지 60만부이상.한림출판사가 펴낸 영어판은 미컬럼비아대 동양학교재로 채택되는가 하면 대만 원성문화도서 공응사가 번역한 「사토사풍」표지에 쓴 영문이름자인 Lee o young으로 인해 한국에 온 중국문인들이 「이오양」을 찾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제로부터 거칠 것도 걸릴 것도없이 이어령문학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자 그는 소설 「장군의 수염」 「환각의 다리」 「무익조」,희곡 「기적을 파는 백화점」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등 소설·희곡·시·수필에까지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해 나갔다. 그를 새삼스럽게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노릇이다.신문에 연재되는 글 또는 강의·강연에서 보면 그는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일초일목도 놓치지 않고 그속에 깃든 심오한 뜻과 사색의 깊이를 20 00년대를 향한 민족성 구성에 치밀하게 연결시켜 나간다.그의 천부적 관찰력은 하잘것없는 단서 하나에도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가해져 어느부분에서든지 문화의식의 실체와 만나게 되는 기쁨을 활짝 열어준다. 그의 강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불란하게 정리되어 그 말속에는 그때마다 현목과 일총의 영롱함이 실려 있다. 그는 어떤 강연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준비자체가 불편한 걸림돌이다.다만 청중의 눈빛 하나만으로 모두에서부터 결론을 예고해버린다. 이른바 「이어령문체」로 지칭되는 그의 글은 「말이 혹은 문체가 물이라면 또는 불이라면 또는 바람이라면 또는 화살」이라면 글속에서 「물은 위안과 씻김의 언어,불은 개혁과 새로운 건설의 언어,바람은 몽상과 생성의 언어」이고 「화살은 허무의 허공을 날아가서 마침내 사물의 핵심을 쏘아 떨구는 관통력 높은 사냥꾼의 언어」이며 「시정과 미사에 감싸인 지성의 광휘」로 그 명중률이 정확하다고 평받고 있다. ○「레인맨」 보고도 눈물 그의 창의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손꼽힌다.88서울올림픽때의 「벽을 넘어서」와 텅빈 그라운드에 은빛 굴렁쇠장면은 여백과 침묵속에서 팽팽하게 긴장감 감도는 매화 한송이를 그리는 동양화 이미지를 살려 신아시아 미학추구의 극치로 찬사된 바 있다.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일본인과 일본문화를 비평한 「축소지향의 일본인」충격이후 그는 아사히,요미우리신문과 NHK방송이 주최하는 강연에 자주 초청되어 회장은 언제나 지성의 관객들로 넘치고 있다. 「독자를 시험하는 경구」 「서구에 치우친 일본으로 하여금 문화에 대한 반성」을 하게하는 그의 강연은 재치와 기발한 장단점 지적,상상치도 못한 한국 습속과의 비교론으로 언제나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아산의 유교적인 지주집안에서 5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보타이에 양복,구두와 바스켓같은 가방을 들고 자주 서울나들이를 하는 도련님으로 성장하면서 막내답게 장난이 심했고 얼굴엔 노상 상처투성이,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 두자리이상의 보태기 빼기등 숫자놀음은 딱 질색,그러면서도 컴퓨터광이라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끝없는 원고청탁으로 하루 3∼4시간 컴퓨터앞에 앉아 실은 물흐르듯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처럼 어렵게,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정도다. 집필의 산실인 보고와도 같은 서재는 수천수만권의 서적,그가 좋아하는 CD·LD,필요한 것은 다 갖춰져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고 갑자기 쓰고 까다롭게 다듬는다. 냉기와 온기,감성과 지성을 동시에 갖춰 남보기엔 지나치게 도시적이고 세련되어 숨막힐 듯한 완벽주의로 보이지만 그는 영화 「레인맨」을 보고 눈물짓고 수많은 넥타이중에서도 강의가 잘되던 넥타이를 다시 골라낼만큼 천진한 면이 천성이다. 흘겨보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는 그의 책 제목인 「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처럼 바람불지 않아도 언제나 앞을 향해서만 똑바로 달려왔다.그리고 그는 더이상 아르튀르 랭보의 언어의 연금술사이기를 원치 않는다.자신의 푸른 생명을 증명하는 언어의 슬기,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언어탐색을 위해 그는 단지 쉬지 않고 여전히 똑바로 달려나갈 뿐이다. □연보 ▲1934년1월(음력19 33년11월15일) 충남온양 출생 ▲1956년 서울대문리대 국문과 졸업 ▲1960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1958∼60년 경기고교사 ▲1960∼66년 서울대강사 ▲1966∼67년 성균관대강사 ▲1960∼72년 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 경향신문 구미지역특파원 ▲1970∼71년 미국무성초청 도미 ▲1972∼73년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1967∼89년 이화여대교수 ▲1972∼86년 월간「문학사상」주간 ▲1986∼89년 이대 기호학연구소장 ▲1987년 단국대 대학원(문학박사학위) 일외무성초청 동경대 비교문학과교수(81∼82년) ▲1989년 일본대 국제문화연구원교수,환기재단초청 뉴욕체류 1982∼현재 일본생산성본부,일본문화디자인협회,NHK,일본대판JC,신일본제철,독매신문,아사히신문 초청 강연 수차 ▲19 90∼91년 초대 문화부장관 ▲1956년 「비유법논고」「카타르시스 문학론」으로 월간 「문학예술」지등단.「현대문학의 위기와 출구」「문학적 혁명기를 위하여­우상의 파괴」(한국일보)발표이래 「흙속에 저바람속에」(62년 경향신문연재) 「나르시스의 학살­이상의 시와 난해성」 「모래성을 밟지 마시오­문단 선배들에게 말한다」「조롱을 여시오­시인 서정주선생에게」 「영원한 모순­김동리씨에게 묻는다」 「자유문학상을 향하여」 「잠자는 거인­뉴 제너레이션의 위치」등 화제의 비평 1백50여편. 「저항의 문학」(59년) 「지성의 오솔길」(60년) 「고독한 군중」(61년) 「오늘을 사는 세대」(63년) 「흙속에 저 바람속에」(63년) 「이어령에세이 옴니버스」(66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75년) 「이어령 신작집(12권)」(78년) 「이어령전집(20권)」(85년) 「축소 지향의 일본인」(82년 일본 학생사) 「축소 지향의 일본인」(한국어판·영어판·불어판)(82년) 「배구□ 일본□ 독□」(PHP 일본)(83년) 「하이구(배구)문학의 연구」(한국어판 홍성사)(84년)문장대백과사전 강연집「그래도 바람개비는 돈다」(92년)소설집「둥지를 나는 새」 상하권(93년) 79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
  • 공개협의로 바뀐 재무부의 금융정책(국정탐방)

    ◎금리낮춰 개방경제 활력 부축/규제에서 자율화로/12%선까지 내려 기업경쟁력 제고/2단계 자유화 빠르면 3월께 실시 금리인하문제가 우리경제 최대의 현안과제가 되고 있다. 하반기 성장률과 설비투자증가율이 예상밖으로 둔화되는등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급격한 임금상승·기술개발 부진·금융기관 차입증가에 있으며 특히 과도한 금융비용부담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1월 1단계 금리자유화가 시행된 이후 시장실세금리는 정부의 꾸준한 노력에 따라 올초 연19% 수준에서 현재 13%대로 떨어졌다. ○연 19%서 13%대로 그러나 정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실세금리를 12%이하로 낮춘뒤 2단계 금리자유화를 조속히 실시할 계획이다. 요즘 이같은 금리낮추기는 거의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관계자들은 금리인하 절차가 비밀작업에서 공개적 협의로 바뀐 분수령을 80년대 후반으로 보고 있다. ○밀실작업이 대부분 그 전까지 금리문제는 재무부·한국은행의 일부직원이 장관들의 밀명을 받고 대개 공휴일 하오에 호텔방을 빌려 실무작업을 펼쳤고 다음날 전격적으로 발표하는 극비사항이었다. 80년 후반까지 모두 30여차례에 걸친 금리조정이 대부분 그랬다. 지난 81년 11월9일 금리를 1%포인트 인하할 때에도 현 재무부차관인 이수휴 당시 이재국장이 혼자서 과장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호텔방에서 비밀작업을 끝마치고 장관의 결재를 받았다.또 현 이재국 정건용금융정책과장은 지난 89년 11월14일 대출금리를 1%포인트 내릴때 금리와 관계없는 산업금융과장으로 있으면서도 장관의 지시로 몰래 실무작업을 펼쳤다.정과장은 『재무부에 들어온 이후 서너차례 밀실작업을 했다』면서 『보통 하오5시쯤 위의 지시를 받아 밤샘작업을 하고 다음날 임시 금통위를 열어 처리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같이 비밀작업을 하게된 것은 모든 금리가 철저히 규제돼 미리 소문이 날 경우 몇몇 사람만 금리차·증시차액 등을 거둬 큰 이익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밀실작업 시대는 90년대 들어 끝나고 요즘은 거의 공개화됐다. 다만 실세금리와 1단계로 자유화된 1년미만 단기공금리에 대해 관련 금융기관과의 업무협의,간접적인 행정지도를 통해 금리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다. ○간접적인 행정지도 실제로 올해 꾸준히 내린 실세금리는 단자사등 2금융권이 담당임원회의를 열어 인하폭을 결정했다. 최근 재무부와 한은의 대립양상으로 비쳐졌던 공금리인하 논쟁은 재할인등 현재까지 규제되고 있는 금리를 대상으로 일어난 것으로 이런 논쟁도 2·3단계 자유화가 시행되면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 정부는 2단계 금리자유화를 올 3월이전에 시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재국과 역대국장/한은감독 등 「돈줄관리」파워 막강/재무장관 7명 배출… 거물 수두룩 재무부 이재국.조직상으로는 재무부의 7개국 2개실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대단하다. 60년대까지 재무부에는 국고·이재·세제등 3개부서만 있었고 이재국은 은행·증권·보험·국제금융업무를 모두 맡고 있었다.그러나 7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면서 증권·보험·국제금융업무가 독립하고 금융의 자율성이 부각됨에 따라 권한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재국은 우리나라 돈줄을 맡고 있어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나 힘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이재국 소속 5개과의 업무내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주무과인 금융정책과는 정부의 통화신용정책을 책임지는 부서로 재정·금융자금 및 국외금융의 운용 조정기능과 통화관리·금리정책·여신관리등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특히 한국은행과 은행감독원의 업무지도 감독권한을 갖고 있다. 업무가 중요한 만큼 금융정책과의 현안은 우리 경제의 과제나 다름없다. 재정융자과는 재정융자계획을 세우고 정부의 각종 기금을 관리하며 농축수산금융을 총괄한다. 산업금융과는 산업·주택은행과 각종 특별지원자금을 맡고 있다. 은행과는 시중은행의 경영지도와 은행제도·대출관련제도의 조사·연구를 수행한다. 끝으로 중소금융과는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지원 업무를 맡고 있으며 국민은행 금고협동조합등을 지도 감독한다.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이 과의 소관이다. 이같이 방대한 업무를 취급하는 이재국의 국장 자리는 모든 경제관료들이 한번쯤 앉고 싶어하는 「꿈의 자리」이다. 따라서 이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중에는 거물이 많다. 역대 이재국장 출신중 재무장관이 7명이나 나왔으며 다른 부처장관도 상당수다. 현재의 이정재국장까지 32대인 이재국장 중 재무장관이 된 람은 김유택(작고)송인상 김정렴 김원기 김용환 정영의씨와 현재 이용만장관 등 7명에 이른다. 재무부 고참직원들이 기억하는 이재국장중 대표적인 사람은 장덕진씨와 김용환씨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장국장은 은행장들을 마음대로 주무른 파워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아직까지 고참직원의 뇌리에 생생하다.그가 축구를 좋아하자 은행들이 다투어 축구부를 창설했을 정도였다. 김용환씨는 쓸만한 직원들을 자기 사람으로 키운 「재무부사단」의 창설자로 전해진다. 현 이용만장관도 이재국장 시절 이치에 맞지않는 상부의 지시를 끝내 따르지 않는등 대단한 뚝심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장관은 80년 당시 세도가인 이규광씨의 면회요청을 거절했다가 옷을 벗었으나 끝내 장관으로 되돌아왔다. 앞으로 이재국은 금융자율화가 진행됨에 따라 차차 역할과 권한이 많이 변화할 수밖에 없따.한 관계자는 『이재국은 금융제도와 금융산업개편에 치중하고 통화신용정책의 추진은 한국은행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해 통화량 신축적 하향조정”/“중기엔 신용대출 적극 확대”/이용만 재무부장관(인터뷰) 『최근 우리 경제는 많은 변화에 직면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재무부의 책임이 무거워지고 있습니다.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재무부는 앞으로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기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1년7개월 동안 우리나라 돈줄관리를 맡아온 이용만재무부장관은 『한국경제라는 거대한 선박의 엔진』이라며 재무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 경제가 받고 있는 도전은. ▲우리경제는 안팎으로 변화를 맞고 있다.대외적으로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체결,미 클린턴의 신경제정책,미·EC간 무역마찰등으로 경제전쟁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국내적으로도 거품경제가 해소되는 가운데 성장률,설비투자증가율등이 둔화되고 금융시장개방,금리자유화의 시행일정이 잡혀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추진할 금융정책방향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안정기조를 계속 다지되 경제에 다소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접근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내년 통화증가율을 올해보다 하향조정하되 통화증가율 목표범위를 넓게 설정,통화를 신축적으로 운용하겠다.또 설비투자의욕을 북돋우기 위해 최근 13%대인 시장실세금리를 12%대로 낮추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도록 유도해 2단계 금리자유화 시행여건을 조속히 조성하겠다.금리자유화 여건은 실세금리가 12%대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본다.개인적으로는 10%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소기업 부도가 늘고 있는데 그 대책은. ▲중소기업은 산업의 저변이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육성이 필수적이다.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내년에 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보증기관의 신용보증 규모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기업 외에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 지원책은 무엇인가. ▲소득의 계층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에 국민은행을 통해 가계대출자금을 2조5천억원 공급하되 저소득층에 중점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또 무주택서민의 내집 마련을 돕기 위해 주택은행의 주택자금도 2조3천5백억원을 공급하고 세제를 개편해 근로소득자의 세금이 자산등 비근로소득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도록 하겠다. ­어려운 경제 현실을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기업들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기술개발에 힘써야 한다.우리 기업의 자금차입의존도는 대만의 24%,일본의 33%에 비해 훨씬 높은 46%에 이르고 있다.따라서 금리가 같더라도 금융비용부담이 크게 된다.특히 국가경쟁력의 75%가 기술능력에 달려있다는 분석 처럼 기술개발애 노력해야 한다.또 은행들도 규모축소등경영합리화를 통해 예대마진을 줄여 금리를 낮추어야 한다. ­최근 새로운 경제여건에 맞춰 경제부처 기능조정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다.이에 대한 견해는. ▲지난 30여년간 정부 주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해왔으나 이제는 개방화,민주화,다원화 추세로 종전의 정부조직을 바꾸는 것도 의미가 크다.즉 정부조직의 비효율·저생산성을 제거해 경제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 경제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경제 자율화·국제화속 「제몫찾기」분출/민주화대가불구 한해평균 9%성장/1인당 국민소득 5년새 2배로 늘어/주택 2백만호 건설로 부동산투기 잠재워/근소세 부담 크게 줄여 서민생활 안정 도모 6·29선언이후 5년,경제분야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엄청나게 변했다.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이 당초 관주도로 추진돼왔기 때문에 경제의 모든 부문을 지배해 오다시피했던 정부의 입김이 6·29선언의 자유화정신에 의해 민간자율에 맡겨졌다.농·수·축협등 농어민단체의 장들을 직선으로 뽑고 거의 모든 산업에의 참여가 기업들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다.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다소 떨어지고 과소비가 생기는 등 많은 대가도 치렀지만 궁극적으로는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자유경제체제의 기반을 착실히 다졌다는 평가이다.경제분야의 변화를 경제부 기자들의 방담으로 정리해 본다. ▷경제부기자 방담◁ 정 신 모 차장(부장급) 염 주 영 기자 박 재 범 〃 권 혁 찬 〃 우 득 정 〃 박 선 화 〃 육 철 수 〃 오 풍 연 〃곽 태 헌 〃 ­6·29선언 이후 전반적인 민주화 추세 속에서 경제분야에도 개방화·자유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속도가 너무 빨라 경제적효율이 걱정된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성장이나 국제수지 물가등 거시지표의 모습이 다소 나빠졌지만 실업률이 완전고용이랄 수 있는 2% 수준에 계속 머문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요즘 물가가 불안하다고 야단이지만 그동안 물가보다 소득이 훨씬 더 올랐기 때문에 국민생활이 윤택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완전고용에 육박 ­완전고용이라는게 경제정책의 최종목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업적이지요.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도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노조결성의 증가와 함께 급격한 임금인상이 이루어지며 고임금시대로 접어든 것도 중요한 변화입니다.87년 4·4분기 이후 89년 1·4분기까지 근로자의 명목임금이 62.5%나 올랐어요.노동계는 그동안 억눌렸던 임금상승요인이 현실화됐다고 주장하는 반면 기업들은 가파른 임금상승으로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야단입니다.분명한 것은 그동안 저임금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우리 경제가 기술위주의 산업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국면을 맞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득향상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비해 정부의 권한은 크게 약해져 물가관리가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권위주의 시절에 쓰이던 정부의 강압적 억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고,5공 이후 누적된 공공요금 인상요인과 정책대응이 불가능한 외식비 및 교양오락비등의 지출이 늘면서 정부의 물가관리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그런데도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여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부동산투기가 수그러들면서 집값이 안정돼 서민들이 내집마련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이는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이득세·개발부담금제등 선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고 다소 초법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토지공개념 관련법에 힘입은 것입니다.일본도 우리의 공개념법을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렇습니다.주택 2백만호 건설및 토지공개념의 도입은 대단한 사건입니다.다소 무리한 계획을 단기간에 추진하느라 건자재파동,건설경기 과열,인력난등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만성적인 주택난과 주기적인 가격폭등등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또 자력으로 내 집마련이 불가능한 법정영세민을 위해 재정에서 85%를 부담하는 영구임대주택을 19만호나 지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요. ­소득세법을 여러차례 개정해 근로소득세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준 것은 월급쟁이에게 커다란 선물입니다.5인가족 기준으로 한달에 70만원을 받는 근로자의 경우 88년에는 월급에서 4만7백50원을 근로소득세로 뗐지만 89년에는 1만9천9백10원으로,91년에는 6천30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근로소득세 면세점 또한 89년에는 4백4만원이었으나 90년에는 5백13만원으로 1백9만원이 높아졌습니다.올해에도 연내 면세점을 인상하거나 세율을 내리는 방안 중 하나를 택해 세법을 또 고칠 예정이기 때문에 세부담은 앞으로 더 가벼워집니다. ○재벌탈세등 응징 ­권력과 재계와의 관계 변모도 특기할만하지요.5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은 재벌과 협조관계를 유지해왔고 이를 통해 기업들은 확장을 해왔습니다.이런 밀월관계는 6·29선언에 따른 개방화·민주화로 상당부분 무너져버렸습니다.90년의 5·8조치와 대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여신관리 강화,현대그룹 탈세에 대한 거액의 추징 이후 누적된 재계의 불만은 재계의 대표주자였던 정주영씨의 국민당 창당에 이은 14대 총선참여로 집권여당에 대항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됐지요. ­6·29선언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경제민주화 여론을 배경으로 6공의 두번째 부총리겸경제기획원장관으로 등장한 조순씨는 재임 15개월 동안 토지공개념 관련제도를 도입한데 이어 금융실명제의 도입을 추진하는등 개혁에 힘을 쏟았습니다.금융실명제는 여러가지 이유로 실명되고 말았지만 개혁조치들은 사사건건 재계와의마찰을 초래했고 그 결과 기업인들의 투자의욕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탈냉전시대에 맞추어 북방경협이 활성화된 것도 커다란 변화입니다.88년 7·7선언(대사회주의국가 문호개방)이후 구 소련및 동구국가와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북방교역이 연평균 30%씩 증가해 지난해 81억달러에 달했습니다.북방투자도 지난해말까지 1백83건,2억1천7백만달러가 허가돼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북방국가와의 경협추진은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우회적으로 촉진함으로써 장차 남북한 민족경제공동체의 기반조성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6·29이후의 경제를 증시와의 힘겨운 투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초기 한때 1천대를 돌파했던 종합주가지수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며 5백선까지 떨어졌습니다.종합주가지수는 집권당 치적에 대한 종합평점이라는 인식 때문에 정부는 증시를 떠받치는데 안간힘을 쏟았습니다.이 결과 나온 89년의 12·12조치는 경제논리를 무시한 정치적 결정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마다 자기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국민적 동의없이 강압적으로는 아무일도 추진할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5년동안 GNP가 연평균 9%이상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배이상 늘어났다는 것은 모두 6·29선언의 경제민주화·자유화의 값진 결실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기계·전자·철강·석유화학등 8개 업종별 공업법이 모두 폐지돼 민간자율을 강조하는 공업발전법으로 통합되고 산업합리화 조치마저 풀리면서 업계를 좌지우지하던 상공부의 권한이 크게 축소됐습니다.이전까지는 이런 개별공업법에 따라 새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공발법에 따라 신고제로 바뀌며 신규 참여가 자유로워졌습니다.지금은 오히려 정부의 간섭이나 중재를 바라는 실정입니다.최근 삼성중공업의 특장차 생산참여가 대표적 예입니다.법적 근거가 없는데도 기존 업체들이 정부에 삼성의 신규 참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석유화학업종에 진출하던 재작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은지위 높아져 ­한때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까지 불렸던 한은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88년 한은법 개정에 관한 재무부와 한은의 논쟁 이후부터 양측의 저울추가 대등한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특히 조순총재 취임을 계기로 양측의 업무협의가 보다 원활하고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조총재는 최근 『한은 독립을 명문화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관행상으로 실질적 독립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양측의 공조체제가 형성됐음을 시사했습니다. ­6개사가 과점하던 생명보험 시장이 대·내외적으로 개방돼 회사수가 33개로 늘어났고 동화·대동·동남·하나·보람은행등이 신설됐으며 외국 증권사의 진출이 허용되는등 금융시장이 폭넓게 개방됐습니다.금리자유화도 국제화·개방화에 따른 조치입니다. ­증권업계나 투신업계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어 과거 당연한 관행으로 치부되던 재무부나 증권감독원의 말발이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인천에 있는 한일투자신탁은 지난 2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무부가 부사장으로 뽑아줄 것을 요청한 전덕순씨(전대한투자신탁부사장)의 선임을 부결했습니다.가히 혁명적인 변화이이지요. ­농어민의 권익도 크게 신장됐습니다.농·수·축협중앙회와 산림조합중앙회장및 각 단위조합장을 농어민이 직접 뽑게 되자 이들 단체들이 말 그대로 농어민을 위한 단체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조합원이 반대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사업은 하지 못하고 농어민의 소득증대로 연결되는 각종 유통·가공사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중수 국민경제교육연구소장/노사분규등 민주화초기 난관 극복/시장경제 창달위해 직업의식 확립 절실 먼훗날 우리 경제를 돌이켜 본다면,지난 수년간만큼 경제체제 및 정책운용의 변화가 컸던 시기도 없을 것같다.권위주의의 몰락과 민주화의 추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정부주도형 성장전략을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의 창달로 전환시키게 하였다.또한 지금까지 양적 성장을 목표로 하던 경제발전전략이 질적 내실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이는 60년대초 이후 지속되어온 고도성장정책이 계층간 불형평및 부문간 불균형이라는 경제구조의 모순을 낳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경제제도의 개선 및 경제가치관의 정립을 통하여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정책결정의 민주화란 정책입안부터 국민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민주화의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여건에서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개인 및 집단의 이기주의적 행동을 불러일으킬 측면도 없지 않다.더구나 정부부처조차 정책조정 과정에서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부처간 할거주의가 나타나게 되었으며,실제로는 민주화된 사회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같은 일들이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더욱이 민주화를 촉진하게 된 시점을 전후하여 우리 경제는 3저효과 등 대내외 요인에 힘입어 미증유의 국제수지 흑자를 시현하고 있었다.하지만 그후 흑자에서 적자로의 반전 역시 민주화의 대가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경제운용관행의 급격한 변화가 물적 생산측면에서의 효율성을 과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춘 결과를 초래하였다고는볼 수 있다.그러나 그 효과를 계량화할 수는 없으나 시장경제의 각 경제주체들로하여금 시장경제운영의 기본원리 및 정책선택의 현실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경제민주화의 가장 큰 이득은 아마도 우리 국민의 공동체의식함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권위주의 시대에서는 경직된 조직운영으로 말미암아 구성원들의 대립의식이 형성되었으며 민주화 초기단계에서 일어난 집단이기주의,격심한 노사분규 등이 그 결과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장에서의 각 경제주체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아울러 예전처럼 과격한 주장이나 행동으로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명시적으로 추구하려는 추세는 사라져가고 있다.작년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었을때 사회적으로 일어난 과소비억제 캠페인은 국민 각계각층으로하여금 건전한 경제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우리 산업의 경쟁력제고를 위한 최근 언론주도의 캠페인 등도 실로 경제민주화의 긍정적 부산물인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자율화와 분권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이는 시장경제의 창달로써 이룰 수 있다.각 경제주체의 건전한 직업정신의 함양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실히 느껴야 하며,이러한 경제정의의 확립이야말로 선진경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 투신사의 정상화 처방(사설)

    투신사문제가 특융지원으로 매듭지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투신사 지원문제가 재무부와 한은사이에 이견을 보이면서 지방 투신사의 예금인출사태로 번졌고 이를 방치할 경우 증권공황의 우려마저 있었다.정부가 이를 감안,2조9천억원의 특융을 투신사에 지원키로 한 것이다. 이번 지방 투신사의 예금인출사태는 투신사지원문제가 조기에 매듭 지어지지 않을 경우 증권파동의 개연성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증시의 중추적 기관투자가인 투신사가 폭락하는 주식값을 떠 받치기 위해 6조원가량의 빚을 지고 이로 인해 자본잠식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다. 투신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경우 문제는 이들 회사의 불실화로 끝나지 않는다.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 증권공황 내지는 김융공황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재무부와 한국은행이 투신사 지원에 대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원방법면에서 재무부는 한국은행이 특융으로 처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고 한국은행은 국고에서 부담할 것을 제의해왔다.한국은행은 특융의 대상기관이 예금은행으로 되어있어 투신사에 대한 특융은 어렵다고 주장해왔다.이에 반해 재무부는 통화신용질서가 중대하게 위협받을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투신사 지원은 두 기관의 상반된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왜냐하면 지방투신사의 예금인출사태로 미루어 투신사 지원문제는 아주 급박한 상황이다.한은 주장대로 국회심의를 거쳐 국고지원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한은은 정부로부터 투신사의 나머지 부채에 대한 지급보증을 받아냈다. 또 재무부와 한은이 종래의 주장을 한발짝씩 후퇴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두 기관은 지금까지 소모적인 논쟁을 벌임으로써 국민들로부터 경제행정의 공백을 비판하는 소리가 높았다.두 기관이 국민여론을 수렴하여 조화와 절충점을 찾은 것은 앞으로 다른 행정에도 파급효과를 줄 것이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이번 투신사 지원문제가 재무부와 한은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다.이번 특융결정에 있어서 두 기관 뿐이 아니고 경제기획원등 관계기관이 협력,신속히 대처한 것도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이번 투신사지원 문제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중대한 문제임을 감안,범정부적인 대처를 한 것도 다행스럽다. 앞으로 투신사들은 자구노력을 통해서 투신경영을 정상화 할뿐 아니라 기관투자가로서 기능과 역할에 더 한층 분발하기 바란다.아울러 투자가들도 루머나 허위정보에 부화뇌동하는 일은 자제하기를 촉구한다.
  • 미 대통령 선거 막 오르다(무엇이 쟁점인가:4·끝)

    ◎「경제회생 처방」 경쟁적 제시/경제불안감 덜어줄 묘안짜내기 골몰/교육혁신·「국민개보험제」도 논란일듯 미 대통령선거의 최대 쟁점은 경제문제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누가 어떤 처방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가 더 큰 의문이다. 미 국민들은 어쩌면 그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해줄 후보를 끝내 찾아내지 못하고 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확실한 진단이 나와있지 않은데 바른 처방이 있을리 만무하다. 경제전문가도,후보들도 오늘의 미국 경제를 진단하는데는 제가끔 장님 코끼리만지기 식이다. 한 나라의 경제상태를 진단하는 지표가 되는 증권시장 경기는 계속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플레율은 지난 5년 동안 최저치를 유지하고 있다. 은행 이자율은 지난 27년만의 최저이다. 실업률이 6.8%를 넘어섰으나 10년전 불경기때의 10.4%에 비교하면 아직도 여유가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계수상의 각종 경제지표와 국민들이 느끼며 실제 겪는 체감경제 사이의 격차이다. 이런 격차때문에 최근엔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이 과연 경제지표로제대로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런 경제지표상의 문제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경제의 실패」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고심끝에 내놓은 연두교서의 경제대책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불경기는 19개월째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30년대초 대공황이래 가장 긴 것이라는 새로운 기록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잃은 일자리가 자그마치 1천2백만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국민들이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초 갤럽여론조사가 조사한 것을 보면 미 유권자들의 71%가 미 경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심리적 요인까지 겹쳐 돈이 있는 사람까지 불안한 미래에 대비,돈을 쓰려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써야 돌아가도록 돼있는 미국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의 미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을 제시하고 불안해진 미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갖게할 후보가 나타난다면 그가 42대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후보들은 제가끔 열심히 「경제」를 말하고 국민들은 끝내 「천사」를 찾아내지 못하는 허전한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의 쟁점은 교육문제가 될것이다. 미국은 최근 「아메리카 2000」이란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서기 2천년까지 시행할 4가지의 구체적 목표를 채택한 바 있다. 그중 중요한 것들은 앞으로 8년내에 미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성적이 세계 제1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며 성인교육을 실시,성인문맹률을 낮추고 아동들의 향학열을 높이기 위해 전국에 5백35개 특수학교를 만든다는 등 교육정책의 일제 쇄신을 단행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재건을 위해서도,일본사람들로부터 더이상 수모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시의적절한 아이디어이지만 구체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수학·과학 1차목표만 해도 미국의 학부모들이 한국의 학부모만큼 갑자기 「극성」이 되지 않는한 어려운 일일 것이다. 서구 선진국중 국민개보험제도가 실시되지 않는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의료보험에 들어있지 않은 사람이 자그마치 3천4백만명이나 된다. 의료수가가 세계최고이면서 3천4백만명이 보험에 들어있지 않다면 작지않는 문제다. 캐나다와 같은 개보험제도를 도입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치열할 것이다.
  • 「총통화 조정」 뜨거운 논쟁/재무부 “상향조정”주장에 한은선 반대

    ◎단자사들 전업… 2∼3% 늘려야/재무부/과열경기 진정 돕게 계속 억제를/한은/KDI 등도 반대입장… 하반기 경제현안으로 총통화(M□)증가율 억제선의 상향조정 문제가 올 하반기 경제운용에 가장 민감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단자사 업종전환에 따라 하반기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를 2∼3% 상향조정할 뜻을 내비친 이용만 재무장관의 지난 10일 기자간담회 발언 이후 재무부는 이에 대한 심각한 반대여론에 직면해 있다. 이같은 반대여론의 바탕에는 통화당국이 단자사 업종전환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실상 통화공급을 늘리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깔려 있다. 재무부의 총통화증가율 상향조정 방침에 대해 경제운용의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경제기획원은 아직까지는 매우 절제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은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노골적으로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의 상향조정에 관한 관계부처간 협의에 귀추가 주목된다. 재무부는 오는 7월부터 8개 단자사가 은행·증권사 등으로 전환됨에 따라 시중유동성의규모는 변함없이 총통화에 포함되지 않는 단자여신의 일부가 총통화에 포함되는 은행여신으로 바뀌어 총통화 수요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통화지표상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를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은행 또는 증권사로 업종이 전환되는 8개 단자사의 여신규모는 9조원에 이르며 이를 내년 상반기까지 향후 1년 이내에 모두 정리해야 한다. 이 경우 단자여신이 축소됨에 따라 은행·증권·보험 등 여타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공급이 늘어나 단자여신 축소분을 메우게 되는데 은행·증권·보험사 등에 어떤 비율로 배분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재무부는 단자여신에서 은행여신으로 대체되는 규모가 2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총통화 70조원의 3%에 가까운 규모다. 이 재무장관이 총통화증가율 상향조정폭을 2∼3%로 제시한 것은 이같은 예상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단자사의 업종전환으로 자금의 공급경로가 바뀜에도 불구하고 이에 수반되는 계수조정을 해주지 않을 경우에는 단자에서 은행으로 자금공급의 경로가 변경되는 부분 만큼 사실상 통화를 환수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재무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단자여신 축소분 9조원 중 은행창구로 몰릴 자금수요가 얼마에 이를지는 시장의 움직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정확히 그 규모를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총통화증가율 상향조정폭 안에는 단자사 업종전환과 무관하게 실질적인 통화증가를 초래하는 부분이 포함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표상의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의 상향조정만으로도 시중의 인플레 기대심리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기획원은 단자사의 업종전환에 따른 총통화증가율 억제목표의 상향조정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시하는 등 외견상 재무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기획원측은 물가불안심리 등을 감안할 때 상향조정폭은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달 하순에 열릴 관계부처간 협의과정이 순탄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한은과 KDI는 보다 직접적인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 기관은 올 1·4분기중 실질성장률이 당초 예상을 2% 가까이 앞질러 실물경기가 과열국면에 있는만큼 경기진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통화공급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 총통화 증가 안된다(사설)

    재무부가 올해 총통화 공급목표를 당초계획보다 2∼3%포인트 늘리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용만 재무장관은 지난달 30일 한 경제토론회에서 총통화 증가문제를 거론했다가 반대의견이 높자 당초 목표를 고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지 불과 10여 일이 지나자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총통화 증가목표를 늘리겠다고 다시 번복했다. 이로써 총통화 증가에 반대입장을 보여온 경제기획원·한은과 재무부간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고 재계는 재계대로 통화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한층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통화논쟁이 재연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일각에서는 정책의 일관성문제를 놓고 시비가 일 것 같다. 결론을 먼저 밝힌다면 우리는 총통화공급 목표를 늘리는 데 반대한다. 그 첫번째 이유는 현 시국불안이 민생경제 불안에서 기인되고 있고 민생경제 불안은 물가와 부동산이 크게 오른 데 있다. 당면한 물가안정을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재정과 금융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이번 총통화 목표증가는 단자회사가 은행과 증권회사로 전환하는 데 따른 계수상의 조정에 불과하고 돈(유동성)은 추가로 공급되지 않는다고 재무부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플레구조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다분히 좌우되고 있고 현재 인플레 기대심리가 상존해 있는 상황이다. 그런 때에 어떤 이유로든 총통화 공급목표를 늘리면 물가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둘째로 지난해 총통화공급 목표를 정할 때 단자회사의 업종전환을 감안하여 총통화목표를 17∼19%로 늘려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장관의 총통화 공급증가 방침은 추가적인 목표상향조정이 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건설부문 등에 의해 과열경기상태에 있어 총수요를 억제해야 할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수요를 자극할 우려가 있는 통화목표를 추가로 확대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가 않다. 오히려 통화를 축소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셋째로 현재 시중의 자금난은 증시가 갑자기 침체한 데 큰 원인이 있다. 10조∼15조원의 자금을 증시에서 조달해 쓰던 기업들이 올 들어서는 은행과 단자창구에서 돈을 빌려쓰려는 데 있는 것이다. 실제로 총통화공급량을 2∼3%포인트 늘린다고 해서 시중의 자금난이 풀릴 전망도 없다. 시중의 자금난이 풀리지 않으면 고금리현상도 시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재무부는 고금리시정을 위해서 총통화증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무부는 돈은 추가로 늘리지 않는다면서 고금리시정을 위해 총통화목표를 늘린다는 모순된 발언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통화를 늘리려고 하면서 학계 등의 반대의견을 감안하여 호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넷째로 단자회사의 업종전환에 따른 은행여신의 명목상 증가도 총통화 증가의 충분한 니유가 되지 못한다. 왜냐면 업종전환을 해도 1년간 겸업이 허용되는 유예기간이 설정되어 단자수신의 은행유입규모가 크지 않을 수가 있다. 거듭 지적하지만 지난달 대통령이 국민들과 약속한 물가안정을 위해서 재무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바란다. 장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책을 손쉽게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앞서가는 민주… 뒤쫓는 공화/1주 앞둔 미 중간선거 어찌돼가나

    ◎금융스캔들ㆍ경제악화 등 겹쳐 고전 공화/92년 대통령선거 겨냥,총력전 채비 민주 1주일 앞으로 다가선 미국 중간선거는 전국적으로 민주당의 승세가 뚜렷이 점쳐지는 가운데 막판 표다지기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부유층 과세문제를 둘러싸고 의회에서 벌어졌던 논쟁과 경기후퇴에 대한 항간의 불안심화는 공화당의 인기하락을 촉발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공화당 후보들은 민심이탈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고 실토하면서 1982년의 중간선거 때처럼 이번에도 공화당 참패가 재현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치적 2년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도 띤 이번 선거에선 연방의회 상원 1백석중 34석,하원 4백35석 전원과 50개주 가운데 36개 주지사 그리고 46개 주의회의 6천이 넘는 의석을 개선한다. 현재 민주당은 공화당에 대해 주지사에서 29대 21,상원에서 55대 45,하원에서 2백62대 1백75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개선될 36개 주지사는 민주 20대 공화 16으로 분포돼 있다. 민주당은 소속 상원의원의 전원 재선은 물론 현재보다 하원 12석,상원 1석,주지사 4석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ㆍ공화 양당은 이번 선거에서 캘리포니아ㆍ텍사스ㆍ플로리다 등 이른바 빅 스리(Big Three)와 일리노이ㆍ오하이오 등 유력주의 주지사 장악이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구 재조정과 92년 대통령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이에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주지사 탈환 목표를 세워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 미국인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10년전 이란의 미국인 인질 억류사태로 미 국민감정이 극도로 악화됐었을 때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 미국인은 22%에 불과했다. 워싱턴 포스트지와 ABC­TV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 이 수치는 그때 보다도 못한 19%다. 이란사태 때 미 국민의 71%는 미국이 잘못 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72%가 그런 답변을 하고 있다. 올해가 만일 대통령선거의 해였다면 공화당 기수 조지 부시는 끝장났을 것이다. 취임후 줄곧 상승가도를 달려온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10월초부터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예산협상의 난항,급격한 경제 악화,실업률 상승,증권시세 하락,부시의 아들도 관련된 5천억달러 규모의 금융(S&L)스캔들 그리고 세금문제가 부시에 대한 지지도를 취임후 최저로 떨어뜨린 것이었다. 중동문제는 민주ㆍ공화 양당이 초당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어 큰 쟁점으로 부상하지는 않았지만 공화당 후보들은 혹시 1958년 레바논 파병 직후의 선거때처럼 공화당 패배의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공화당은 부시 대통령의 세금신설반대 선거공약 포기가 공화당 지지자들의 사기를 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도 이번에 공화당 후보를 죽이는 건 민주당 후보의 높은 득표율이 아니라 공화당 지지자들의 낮은 투표율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시는 민주당의 중세 및 예산낭비 정책을 공격하면서 공화당 후보데 대한 지원유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금문제를 둘러싸고 왔다 갔다했던 그의 태도와 공화당의 내분표출로 인해 부시의지원이 선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의 철학빈곤,경제위기,부유층에만 혜택을 주려는 세금문제,금융스캔들,낙태 제한 등을 갖고 공화당을 공격중이다. 민주당은 특히 「부시의 문제점은 경제에 관한 메시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대안제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월 스트리트 저널과 NBC 방송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경제와 세금문제를 더 잘 다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많은 공화당 후보들은 세금문제와 관련,부시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미칠 화를 피하기 위해 공화당의 1988년 신세반대 공약을 옹호하고 나서거나 올해 민주당이 성사시킨 부유층 중과세정책에 한 다리 끼어드는 작전을 쓰고 있다. 일부 선거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 폭풍이 선거일(11월6일)을 강타,과거 어느때보다도 많은 현역 의원들을 탈락시킬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역의원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아무리 고조되더라도 하원의석의 10% 이상이나 상원의석의 20% 이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선거구가 현역에게 유리하게 획정돼 있어 신인의 도전이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정치자금도 현역이 신인에 비해 10배는 더 모금할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출마 하원의원 가운데 약 3백75명과 최소한 16명의 상원의원 그리고 주의원의 90%인 약 5천6백명은 이미 당선권에 들어가 이 지역의 선거전은 사실상 끝난 상태다. 또한 경쟁자가 없는 상원의원 4명(민주 공화 각2명)과 하원의원 81명(민주 46,공화 35)의 선거구에서는 선거전이 개시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하원의 경우 무투표당선 예상자가 이렇게 많기는 1950년 이래 처음이다. 재출마 하원의원중 낙선 위기에 처한 사람은 16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예상이 모두 적중하더라도 그건 낙선의원 숫자가 7명밖에 안됐던 2년전과 비교할 때 재선율이 98%에서 96%로 불과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현역은 물리치기 어렵다는 일종의 정치적 체념이 확산되는 가운데 이번 중간선거 이후에도 「민주당 의회와 공화당 행정부」라는 미국정치의 역할 분담 도식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 보험차익 과세 뜨거운 찬반논쟁/재무부 부과방침발표에 보험사 큰반발

    ◎은행예금과 성격 같아… 형평상 과세 마땅 재무부/투기성 강한 증권엔 안물리고 왜 보험만… 보험사/보험 90%가 「저축성」… 실시강행땐 해약사태 예상 보험차익에 대한 재무부의 과세방침이 발표된뒤 보험업계가 이에 크게 반발하고 나서 그 입법과정 및 시행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재무부가 조세부담의 형평을 꾀한다는 「명분론」을 내세워 이를 추진하자 보험사들은 보험가입기피에 따른 자금의 대거유출로 경영악화를 가져 온다는 「실리론」으로 맞서고 있다. 보험차익이란 만기때 받는 보험금에서 보험기간중 낸 보험료를 뺀 금액. 당국은 그동안 보험상품이 갖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고려,보험기간과 보험료액수에 관계없이 그 차익에 대해 모두 비과세 해왔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무기연기된뒤 재무부는 올해 하반기 제2세제개편안을 추진하면서 저축성보험의 차익과 증권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방침안을 마련,오는 9월 정기국회 상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은행의 저축예금가입자가 이자소득세를 물듯이 보험가입자에게도 이를 적용,가입자간에조세부담의 형평을 꾀하고 제1,2금융권간의 저축자금 편재현상을 개선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험업계도 이같은 재무부의 대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저축성보험이 전계약의 90%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적」특성으로 볼때 과세시 보험상품에 대한 메리트가 상실,무려 3조∼5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빠져나가 신설사는 물론 기존사의 경영수지가 그만큼 어려워진다고 주장한다. ○…재무부는 최근 10년이하의 중단기저축성보험에 대한 과세방침안을 마련했다. 보험금이 보험료보다 1원이라도 많은 저축성보험에 대한 차익을 이자소득으로 간주,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농ㆍ수ㆍ축협ㆍ체신부의 저축성 상품에 대한 차익과세도 포함된다. 내용은 납입보험료와 계약기간을 기준으로 세율을 3단계화 했다. 먼저 5년미만의 단기상품의 경우 ▲1천만원짜리 이하에 가입하는 경우 차익의 5%를 세금으로 물리고 ▲1천만원 이상인 때는 차익에 대해 이자소득세 10%ㆍ교육세 5%ㆍ방위세 1%ㆍ주민세 0.75%를 합쳐 16.75%를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은행의 저축성예금 8백만원을 사업비와 위험부담료를 제외한 보험료 1천만원과 같은 수준으로 보고 세율을 매긴 것이다. 또 5∼10년 사이의 중기상품에 대해서는 보험차익중 절반액에 대해 단기상품의 세율을 적용하고 10년이상의 상품에 대해서는 비과세키로 했다. 예컨대 3년만기 1천만원짜리 저축성보험에 가입한 계약자가 받는 보험금은 현재 1천1백30만원 수준이다. 따라서 보험차익 1백30만원에 대한 세율 5%를 감안하면 가입자는 앞으로 6만5천원을 추가부담해야 한다. 월20만원 정도를 내는 가입자에게 이만한 세금을 물려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재무부는 이밖에 보험의 특성을 고려,보험차익과세부분에 대한 특별공제를 포함시켜 중산층이하의 계약자에 대한 피해를 줄일 것을 검토하고 있다. 유일하게 보험차익에 대해 분리과세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차익중 50만엔까지는 특별공제하고 있다. 재무부는 이같은 과세안을 손질,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킨뒤 91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보험사가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크게 증권양도차익과세를 않고 보험만 과세하려는 움직임과 경영악화를 우려한 때문. 증권차익을 제외하고 보험차익과세만 하는 것은 금융기관간의 형평에 정면 위배되며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것. 현재 유럽은 보험의 사회보장기능과 장기상품위주란 점을 감안해 증권ㆍ양도차익에만,미ㆍ가는 증권ㆍ보험차익에 대해 종합과세하고 있으며 일본은 만기보험금의 일부차익에 대해 분리과세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증권→보험순에 따른 차익과세 아니면 최소한 동시시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보험가입자 보다는 주식투자자들이 얻는 자본소득규모가 클 뿐더러 투기개연성이 높은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험사들은 차익과세때 발생한 보험가입기피현상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유난히 저축성상품을 선호하는 가입자의 성향을 감안할때 과세가 미칠 심리적 충격이 자금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저축성보험은 총수입보험료 12조원 가운데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보험가입자는 10가구에 4가구 꼴이다. 지난해 보험차익은 60만건이 발생,2천억원을기록했으나 이중 1백만원이하가 87%(1천6백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는 중산층이하 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나 보험가입기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는 통안증권ㆍ증안기금ㆍ기업대출금에 필요한 연3조∼5조원의 자금이 타금융기관으로 이탈,보험사의 재정수지악화와 함께 기관투자가로서의 기능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안정 위주의 통화관리를(사설)

    통화신용정책이 딜레마에 빠져있다. 통화증발에 의한 물가불안을 해소키 위해서는 통화를 강력히 환수해야 한다. 반면에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서는 통화공급을 늘려야 하고 증시의 주가 대폭락을 막기위해서도 통화확대가 필요하다. 주가폭락을 방지하려는 것은 금융자산 소득자의 손실을 막자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증시파탄에 의한 경제적 불안심리를 예방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통화신용정책이 갈림길에 진입하면서 통화가 크게 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난 1월중에 22.4%나 늘었다. 물론 1월중에 통화량이 크게 늘어난 것은 올해부터 통화관리가 지난해의 월별에서 올해는 분기별로 변경됐고 설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가세된 특수적 상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요컨대 경기부양및 증시관리와 정책변경및 계절적 요인이 합세되어 통화가 늘었다. 증발된 통화가 1월 한달동안에 1%나 기록한 물가를 자극하고 시민들로 하여금 인플레심리를 부추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신당의 정책브레인들은 성장우선론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않아도 12ㆍ14 경기부양조치에 따른 통화증발과 지방자치단체선거 등으로 통화팽창이 염려되고 있는 터에 성장으로의 회귀론이 대두되어 통화신용정책의 불확실성이 더욱더 높아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향후 경제정책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통화신용정책의 표류는 불가피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안정기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당정은 소모적인 정책논쟁을 지양하고 그 대신 경제정책에 대한 확고한 방향을 하루빨리 설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 정치적 변혁기이고 경제적으로는 자기몫 찾기와 인플레 기대심리가 팽배한 점을 감안하여 성장 또는 복지우선 보다는 안정우선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러한 정책궤도가 설정되어야만 통화증발에 의한 물가불안을 덜 수가 있다. 그리고 통화신용정책의 방향 또한 설정될 수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통화신용정책은 안정의 바탕위에서 종합적인 통화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통화환수를 위한 통안증권발행이이자누증으로 오히려 통화를 증발시키고 있는 악순환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단기의 통안증권 대신 장기의 통화환수용 국채를 발행하되 이자부담은 전부 재정에서 부담하여 국채발행에 따른 통화증발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외환정책면에서는 중앙은행으로의 외환집중제도를 과감히 축소하고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을 다시 사들인다는 조건으로 매각을 하는 외화 SWAP(환매조건부매각)제도를 새로 실시하기를 제의하고 싶다. 이는 중앙은행의 보유외환을 이용한 일종의 단기공개시장조작이며 우리보다 훨씬 먼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스위스와 서독에서 오랫동안 써온 전통적인 통화흡수책이다. 재정정책면에서도 긴축기조가 유지되어야 하고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세계잉여금을 한은 차입금의 상환에 돌리는 전진적인 정책집행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금융정책만으로는 통화증발에 의한 인플레를 차단할 수가 없기 때문에 종합적인 통화관리를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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