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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늘어나는 귀화자] “애국가 밤새워 외웠는데 한국인 되기 어렵네요”

    시험 3분전.“첨성대를 만든 사람이 누구죠?”파키스탄인 돌루 시이드(37)씨의 질문에 기자는 “신라 시대 석공이 아닐까요.”라며 궁색한 대답을 했다.“이것봐.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른다니까….”타박하면서도 시이드씨의 손은 예상 문제지를 뒤적였다. ●“3번밖에 기회 없는데…”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정부과천청사 안내동 지하에는 귀화시험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귀화신청을 냈다. 한번에 100명을 웃도는 귀화신청자들이 필기시험을 치른 뒤 합격하면 면접시험을 본다. 지난 10일의 시험장에도 80여명이 모여 시험을 봤다. 귀화신청자 대부분은 중국동포 2∼3세대. 부모를 따라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시험을 본 것이다. 오전 10시30분.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녀들을 배웅하기 위해 부모들은 문앞까지 몰렸다. 자녀들이 시험장 안에서 주관식·객관식 문제(20문항)의 답을 찾는 20분이 부모들에게는 20년처럼 느껴진다. 다들 처음 본 사이지만, 금방 서로를 격려한다. “애국가를 밤새워 외웠는데 잘 쓸 수 있겠죠.”“우리 애는 한국말이 서툴러요. 그래도 세종대왕이랑 이순신은 외웠는데….”“3번밖에 기회가 없으니 이번에 떨어지면 큰일이에요.” 시험장 안에 있는 신청자들은 모두 긴장한다. 우리말로 된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옆 응시자가 손을 번쩍 들고 감독관에게 질문하는 동안에도 신청자들은 시험지에만 집중했다. 책상 오른쪽 위에는 외국인등록증이 놓여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외국인등록증은 없어지고 주민등록증 수여와 함께 부모의 호적에 오른다. ●“군대 가야 한다면 가겠습니다.” 신청자들의 편의를 위해 30분 동안의 즉석 채점이 끝나고 필기시험 합격자가 발표된다. 이날 합격률은 52%로 60% 정도 되는 평소 합격률보다 낮았다. 탈락자들은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가며 복받치는 감정을 토해냈다. 부모들이 항의하지만,“애국가는 다 맞았다는데요.”라는 말이 전부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의 면접시험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치른다. 한국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는지 종합 검토를 하는 절차다. 중국에서 1년 전쯤 입국해 국내 인터넷 바이크 동호회에도 가입한 안용철(23)씨는 면접관 앞으로 가자 시킨 사람도 없는데 쓰고 있던 모자를 얼른 벗었다. 면접관이 “애국가 문제를 많이 틀렸다.”고 지적하자 얼굴이 붉어진다. 20대 남성 귀화 신청자에게 빠지지 않는 질문이 군입대에 관한 것이다. 면접관은 “국내 법령이 바뀌어 귀화자들도 모두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그렇다면 가겠다.”“의무도 중요하다.”고 대답한다.“지금 대답을 기록해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라도 하면 부모들도 “국민이 되면 의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선다. 중국군으로 5년 동안 복무했던 최광욱(24)씨는 “중국군 경력도 있고 중국이 지금보다 발전할 가능성도 높은데, 중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네.”라고 했다. 사실 귀화 신청자보다 더 긴장하는 사람들은 부모들이다. 한국에서 미용 학원에 다니고 있는 김려화(23·여)씨는 10년 전에 한국인과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그동안 태어난 동생도 처음 봤다. 면접관이 “90년대 초반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사시니 보기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를 데려오는데 10년이나 걸렸네요.”라며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김철명(26)씨도 김려화씨와 같은 이유로 어머니와 10년을 떨어져 지냈다. 면접관이 “어린 마음에 원망스럽지는 않았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묻자 김씨는 “원망할 처지가 못됩니다.”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한 신청자들은 보름에서 한달이 지나면 최종 통보를 받는다. 면접에서 불합격되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면접을 볼 수 있다. 이날 돌루씨 등 시험을 본 파키스탄인 6명은 아쉽게도 모두 필기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들은 한국에서 5년 이상 산 외국인들이다. 돌루씨가 마지막까지 궁금해 한 예상문제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에 만들어졌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고 귀띔하며 아쉬워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법따로 현실따로] (4) 유명무실 학교폭력예방법

    [법따로 현실따로] (4) 유명무실 학교폭력예방법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학교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시행된 지 2년 6개월째를 맞았지만 학교폭력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여학생의 학교폭력이 급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법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 사례1 지난 연말 경기도 안산에서 여중생 네 명이 동료 여중생을 100여 차례 손찌검하고 강제로 교복을 벗기는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졌다.“제발 찍지마. 잘못했어.”라고 비는 피해 학생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사회에 충격을 줬다. 피해학생은 동영상 사건에 앞서 지난해 6월에도 폭행을 당했고, 이 모습을 학생부장이 적발했지만 담임교사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담임교사가 폭행사실을 미리 파악해 대처를 했더라면 두번째 사건은 막을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 사례2 지난해 6월 서울 양천구 한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김모(13)군은 친구들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성추행 동영상을 우리끼리 돌려볼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머리를 때렸다. 김군은 이 충격 때문에 요즘 대인기피증으로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여학생 폭력 7년새 3배↑ 학교폭력은 증가하고 있지만,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른 조치는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신순갑 정책위원장은 “사이버 폭력은 학교폭력예방법 범주에 들지도 않아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아 유포해도 학교에선 처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초대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어린이·청소년포럼대표는 “학교장은 폭력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면서 “학교장은 사건을 은폐하려 들지 말고 공개적으로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위원장을 학교장이 맡게돼 있고 위원회 소집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교장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도, 은폐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폭력예방법 시행 이후 경찰청이 학교폭력 자진신고·피해신고 기간에 접수받은 신고건수는 지난해 2385건으로 전년의 1961건보다 늘었다. 경찰청 생활안정국 관계자는 “법 시행으로 감춰져 있던 학교폭력 신고가 늘어난 면도 있지만 학교폭력은 증가하고 흉폭해지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피해자 “차라리 경찰에…”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피해율은 17.8%, 중학생 16.8%로 100명 가운데 17∼18명이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생은 8%로 낮았다. 특히 여학생의 피해율이 1999년 4.4%에서 2006년 13.9%로 3배 이상 늘었다. 중앙대 신광영 교수는 “최근 여학생이 학생 대표와 폭력 서클 등 과거에 남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진 역할을 맡게 되면서 덜 여성적이면서 폭력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는 “여학생 폭력 증가는 요즘 TV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남성적·활동적인 모습이 반영되는 부작용”이라고 지적했다. 기획탐사부 tamsa@seoul.co.kr
  • [생각나눔] 개헌카드로 레임덕 줄였다

    다음은 김대중(DJ)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02년 1월 이맘때 서울신문 1면을 장식했던 기사 제목들이다.1월10일자→‘박준영씨, 윤태식 만났다’/1월11일자→‘박준영·김정길씨 곧 소환’/1월12일자→‘이용호 특검, 신승환씨 오늘 영장’ 이번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년인 요즘 신문 1면 톱 제목이다. 1월10일자→‘노 대통령,4년 연임제 개헌 제안’/1월11일자→‘청와대, 개헌 국민설득에 총력’/1월12일자→‘노 대통령, 개헌 도움되면 탈당 고려’ 차이점은?2002년에 잇따른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한 가운데 DJ가 조연 내지는 엑스트라로 전락한 반면,2007년엔 현직 대통령이 ‘당당히’ 무대 전면에서 주연을 꿰차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1일 ‘민주평통 발언’을 시발점으로 레임덕을 거부하고 정국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던 노 대통령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민주평통 발언→개헌 제안으로 이어지는 연속타에 온 언론과 정치권이 떠들썩하게 반응하면서 대통령이 지금 정국의 정중앙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노 대통령의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12일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따르면 민주평통 발언 이후 노 대통령 지지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개헌 제안 직후인 10일 조사에서 지지율은 17.9%로 4주전에 비해 5.3%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수치는 얼마나 유(有)의미한 것일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일단 ‘불이 붙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활활 타오를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그렇게 보기엔 상승폭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국민대 김형준 교수는 “이 정도의 상승률은 과거 노 대통령 지지자 가운데 일시적으로 유보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지지의사를 표명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며 “적어도 20∼30%포인트 정도가 올라가야 국민전체에 파급력을 갖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왜 활활 타오르지 않는 것일까. 역시 ‘여론조사’에 해답이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은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시기와 방법엔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제안을 다분히 정략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차라리 노 대통령이 지난 9일 개헌 제안을 하는 자리에서 탈당 의사와 임기단축을 안한다는 의사를 함께 밝히는 등 진정성을 과시했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분석도 나온다. 느닷없이 꺼낸 개헌 제안에 정략적 의도가 부각되면서 민심이 부정적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앞으로 주연으로서 노 대통령의 성패는, 상처입은 ‘진정성’을 어떻게 복원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노대통령 개헌 기자간담회] 개헌정국 대선주자들 손익계산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로 정국이 일시에 개헌정국으로 변했다. 대선 경선 및 정계개편 해법을 놓고 분주하던 여·야 대선주자들의 개헌정국에 대한 시각과 손익계산은 어떨까. ■ 최대수혜자 개헌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독주하고 있는 이 전 시장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전 시장은 11일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서도 청와대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 일체의 언급을 피했다. 다만 이 전 시장의 측근이 “경제살리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중대한 시기에 또다시 개헌논의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며 짤막하게 언급했다. 이 전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시장이 일방적인 독주를 달려 상대 후보들의 공격과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릴 시점인데 개헌정국이 터져 향후 2개월간은 상대방의 공세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며 짐짓 여유까지 보였다. ■ 절반의 성공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손익평가는 엇갈린다. 박 전 대표가 개헌을 제의한 노 대통령에 대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해 청와대와 여권에 각을 세움으로써 ‘반노’세력들을 지지층으로 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감정대응으로 오히려 손해를 입었다는 시각이 혼재한다. 박 전 대표는 이날도 “정권 말에 개헌을 얘기하는 것은 질책 받아 마땅하다.”며 노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4년 중임제를 지지했던 박 전 대표가 입장이 바뀐 것에 대해 논리적인 설명없이 감정적으로만 대응해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기존의 시각을 확인시켜 줬다.”며 오히려 개헌정국에서 박 전 대표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 최대 피해자 전문가들은 개헌정국에서 최대 피해자로 고건 전 국무총리를 꼽았다. 김윤재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개헌제안에 대해 야당이 말려들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 주자들의 입지만 약화시켰다.”면서 “특히 통합신당을 통해 주도권을 쥐려는 고 전 총리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고 전 총리측은 개헌논의의 민감함을 의식해 이날 “개헌은 정치적·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기존의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종락 구혜영기자 jrlee@seoul.co.kr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카피바라형제 홀로서기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카피바라형제 홀로서기

    어미없는 어린 동물들이 함께 사는 인공포육장은 쉽게 말해 ‘동물 고아원’이다. ●카피바라 형제 구하기 “어쩌지…. 간밤에 얘들 어미가 죽었어.”지난해 11월17일 오전 서울대공원 인공포육장. 사육사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전날 새끼 두마리를 낳은 암컷 카피바라가 허기에 사료를 급하게 먹은 탓인지 장이 꼬여 죽어버린 것이다. 우리엔 채 탯줄자리도 아물지 않은 형제 ‘머털이(♂·2006년 11월16일생)’와 ‘개털이’(〃)가 죽은 어미의 마른 젖을 빨고 있었다. 문제는 새끼였다.4개월간은 어미젖에 의지해야 하는 새끼에게 어미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가장 급한 것이 우선 모유를 대신할 분유를 찾는 것이지만 쥐의 일종인 설치류에게 맞는 분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우선 개과에게 주는 지방성분이 많은 분유를 만들어 제공했지만 효과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긴 앞니 탓에 젖병꼭지는 물릴 때마다 터지기 일쑤였다. 결국 인공포육실 사육사 3명은 머털이와 개털이를 하나씩 품에 안고 주사기로 한 방울씩 분유를 먹여야 했다. ●아들 이유식이 보약 이렇게 20여일. 야근 후 집에서 쉬고 있던 사육사 김권식(35)씨의 머리에 갑자기 당시 6개월 된 자신의 아들이 즐겨먹는 이유식이 떠올랐다. 김씨는 당장 애가 먹는 모 업체의 이유식을 통째 챙겨들고 동물원으로 향했다.“놀랍게 카피바라들은 제 아들의 이유식을 핥아먹기 시작했어요. 그땐 마치 내 새끼 목에 젖 들어가는 것처럼 기쁘더라고요.” 그 후 카피바라 형제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이제 3㎏에 육박할 정도.11일 만난 머털이와 개털이는 먹성도 좋아져 사육사에게 ‘삑삑’ 소리를 내며 먹이를 달라고 달려들었다. 취재를 마칠 쯤 김 사육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한마디 건넸다.“저…하루에 몇 시간 동안 우유병 물렸단 애긴 빼주시면 안돼요. 아내가 자기 아들에게도 그렇게 하라며 혼낼 것 같거든요.” ●카피바라 남아메리카 북동부의 안데스 산맥에 사는 현존하는 설치류 중 가장 큰 설치류. 일명 슈퍼 쥐. 몸길이 106∼134㎝에 몸무게가 35∼66㎏ 정도. 뭉뚝한 주둥이에 동그란 눈망울이 귀여워 서울대공원 남미관에서 인기짱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4년연임 개헌’ 정국] “개헌카드 2년전부터 준비한 시나리오”

    [‘4년연임 개헌’ 정국] “개헌카드 2년전부터 준비한 시나리오”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 대통령제’ 개헌 제안은 현 정권 실세들이 치밀하게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임시 의원총회에서 ‘정치지형 변화와 국정운영’이라는 82쪽 분량의 문건을 공개하며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가 얼마나 정략적인지를 알 수 있는 문건”이라고 밝혔다. 이 문건은 2005년 하반기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연정’ 논란 때도 시비가 됐었다. 대연정 제안이 이 문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지난 9일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으로 이 문건이 또 다시 주목받는 것은 문건 후반부에 ‘시기별 세부계획’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 6월부터 올 연말까지 시기별 ‘국정운영 기본 방향’이 제시돼 있어서다. 문건은 올해의 국정운영 기본방향으로 ‘개헌국면, 대선국면 관리’를 설정하고 있다. 고려사항으로는 ‘여·야당 대선주자 관리’와 ‘개헌 논쟁을 통한 시민사회의 민주적 사회참여폭 확대’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지난해 7월부터 올 연말까지를 ‘집권 4기’로 분류하며 이 기간의 정치구조에 대해 ‘대통령 이니셔티브 확대기’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문건에서 ‘개헌국면’으로 분류한 기간(2006년 7월∼2007년 2월)이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시기와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데다 ‘대선정국’(2007년 3월∼2007년 12월)에 여야 대선주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대목이 포함돼 있어 향후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결국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연초부터 의도적으로 ‘개헌 카드’를 내놓았을 것이라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과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이 문건은 이밖에 국내 정치지형이 여소야대, 개혁 헤게모니 약화 등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개혁여당과의 연대 구축이나 대통령이 정치개혁안을 제안하는 등 이른바 ‘대통령 정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이 문건을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안희정씨가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동준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이날 “해당 문건은 확인 결과, 안씨가 아니라 실무자가 개인적으로 작성했던 문건으로 밝혀졌다.”면서 “이미 보도된 문건을 가지고 마치 뭔가 있는 듯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與 “野 동참 기대” 한나라 “싫다”

    與 “野 동참 기대” 한나라 “싫다”

    올 대선의 주요 변수인 개헌 문제를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격 제안하자 정치권은 격랑에 휩싸였다. 여당은 노 대통령의 제의에 찬성한 반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이를 일축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은 ‘조건부·원론적 찬성’ 속에 노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현 시점의 개헌 논의를 정치적 노림수로 규정하며, 개헌 논의에 불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오후 긴급 소집된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국민 분열을 가중시키는 정략적 개헌 발언을 중단·취소하고, 국정안정과 민생경제 살리기에 전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당내 유력 대권주자들도 “차기 정권에서 논의해야 한다.”며 현시점에서의 개헌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개헌 추진을 위한 여야간 논의와 대화를 주문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야당의 대선후보들도 거시적 안목에서 동참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서 “4년 연임개헌은 다른 정치적 요소를 뺀 제안으로 국회 차원에서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고위당직자는 “모처럼 여권이 이니셔티브를 쥐게 됐다. 한나라당이 개헌논의를 거부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개헌 드라이브’의 정국 반전 효과를 기대했다. 민주당은 개헌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노 대통령의 탈당과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했다. 이상열 대변인은 긴급대표단회의와 의원총회 연석회의 직후 “개헌 논의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 정략적 의도라는 의구심을 지우고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며 이같이 주문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중대 사안을 사전 협의나 토론 없이 ‘깜짝쇼’하듯 제안하는 방식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제안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산모 양수로도 줄기세포 만들 수 있다”

    배아 파괴 등 윤리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기존의 ‘배아 줄기세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줄기세포가 발견됐다. 미국 abc방송 인터넷판은 7일(현지시간) 임신한 여성의 양수에서 추출된 새 줄기세포가 기존 줄기세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대학과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과학전문지 ‘네이처 생명공학’ 최신호(7일자)에 임신한 여성의 양수에서 배아 줄기세포만큼이나 여러 형태로 분화가 가능한 ‘다기능 줄기세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양수 줄기세포는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의 중간에 해당하며 다른 줄기세포처럼 36시간에 한번씩 2배로 증식한다. 과학자들은 이 줄기세포가 임신 순간부터 출산 직후까지 모체와 태아에 해를 끼치지 않고도 쉽게 추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앤서니 애털라 박사는 “양수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쥐에 주입한 결과, 퇴행성 뇌질환의 병변 부위에 신경세포가 재생했고 뼈세포로 만들어 주입하자 골성조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 조지 데일리 박사는 “양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냉동시켜 면역 거부반응 등 부작용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털라 박사는 “양수 줄기세포는 제한된 형태의 세포로만 자라지만 10만개의 샘플이 모아지면 전 미국인의 99%와 유전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이식용 줄기세포를 공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프로배구] 남자프로 주전들 잇단 부상… 순위경쟁 큰 변수

    남자 프로배구판에 비상이 걸렸다. 부상 때문이다. 이제 2라운드 중반이지만 예상치 못한 주전들의 부상에 각 팀 감독들은 남은 경기 전략까지 바꿔야 할 처지다.3월 중순까지 치러질 정규리그에서 최소한 플레이오프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선 현재 부상으로 인한 전력의 공백을 누가 효과적으로 메우느냐가 관건이다.●“바꿔, 다 바꿔!” 정상 탈환을 벼르는 삼성화재의 신치용 감독은 7일 LIG와의 경기에서 그동안 ‘안 하던 짓’을 했다. 경기가 안 풀리자 레프트 레안드로를 센터로 돌린 것. 이후에는 역시 레프트 김정훈(25)까지 보직을 변경시켜 높이를 보충했다.“삼성의 올해 센터진은 최약체”라면서 “신선호(29)가 부상으로 언제 나올지 모르는 데다 최근엔 김상우(34)까지 발목을 접질려 최소 3주는 빠져야 한다.”는 신 감독의 말은 더 이상 ‘엄살’이 아니다. 고희진(27)의 짝으로 내세운 건 상무에서 복귀한 조승목(26). 그러나 눈에 차진 않는다.“승목이의 플레이가 안정감은 있지만 팔을 추켜세운 전장이 짧은 약점이 있다.”면서 “승목이를 선발로 내세우되 상황에 따라 레안드로나 김정훈을 센터로 돌리는 처방도 계속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연습생 꼬릴 떼주마.” ‘엎친 데 덮친 격’이라면 현대캐피탈을 두고 한 말이다. 지난 시즌 정상으로 이끈 숀 루니가 아직 제 기량을 못 찾은 데다 ‘수비의 핵’ 오정록(27)마저 발목이 부러져 큰 구멍이 뚫린 것. 대안이 있다면 연습생 출신의 김정래(24)뿐이다. 하지만 김호철 감독은 “정래를 쓰는 건 결코 울며 겨자먹기가 아니다.”면서 “만약에 대비해 꾸준히 연습시켜 왔고, 지난 6일 상무전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경우에 따라서는 은퇴가 예정된 이호(34)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는 게 또 다른 복안. 지난달 27일 삼성전에서 손가락을 다친 LIG 세터 이동엽(30) 대신 토스를 맡은 원영철(28)도 연습생 출신.“동엽이보다 속공토스는 훨씬 낫지만 팀 조율 면에선 아직 부족하다.”는 게 신영철 감독의 평가다.●나, 지금 웃고 있니? 대한항공의 문용관 감독은 화장실에라도 가서 웃고 와야 할 판이다. 이렇다 할 부상 선수가 없는 데다 ‘예비군’까지 넉넉하다. 만년 후보 이영택(30)이 센터진을 이끌고, 신영수(25)와 강동진(24)을 받쳐줄 김학민(24)이 있기 때문이다. 드래프트에서 ‘세번째 1순위’로 데려온 거포다. 문 감독은 “학민이는 아직 쓸 단계가 아니다.”면서 “3라운드 이후 체력이 떨어져 갈 때 투입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며 비밀 병기임을 드러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연두 업무보고에 일반국민 참석

    올해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연두 업무보고가 달라진다. 핵심은 ‘열린보고’ 방식이다. 첫째 대통령과 장관 등 공무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참석한다. 둘째 청와대나 해당 부처가 아닌 민생현장 등 제3의 장소에서 이뤄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4년째인 올해부터 다른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이고 있는 행보와 맥을 같이 한다. 노 대통령은 모든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기 시작했고, 경제계 신년 인사회도 참석하지 않았다. 임기 말 정국 주도권을 쥐고 국정 운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국무조정실은 4일 ‘수요자 관점의 2007년 연두업무보고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올해 부처별 연두업무보고에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분야별로 관련단체 관계자나 이해관계자 등 ‘국민참여단’을 구성해 2∼3월 중 차례로 ‘대국민보고회’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국민보고회에는 노 대통령 주재로 한명숙 국무총리, 해당 부처 장·차관 및 관련 공무원 등도 참석할 예정이다. 수요자 중심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보고회 장소도 청와대나 정부청사가 아닌 고용안정센터, 여성개발원, 대덕연구단지, 공단지역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직접 이같은 아이디어를 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각 부처는 대통령 대면(對面) 업무보고를 서면 업무보고로 처음으로 대체해 1월 말까지 마무리했다. 이어 2월부터는 관련 부처 끼리 핵심 국정 의제를 선정해 합동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연두업무보고를 진행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후세인 이후 이라크 어디로] ‘벼랑끝’ 말리키 정권 기사회생할까

    [후세인 이후 이라크 어디로] ‘벼랑끝’ 말리키 정권 기사회생할까

    벼랑 끝의 말리키 정권이 기사회생의 문고리를 잡을 수 있을까. 이라크 내전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누리 알 말리키 총리 정권의 유지 여부가 관심사다. 미국이 수렁 탈출을 위해 ‘말을 갈아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후세인 처형 전까지는 더더욱 그랬다. 미국의 지원 아래 시아파ㆍ수니파·쿠르드족의 연정형태로 정권을 잡았던 말리키를 밀어내고 새 판을 짤 것이란 평가였다. 이라크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측면도 있었다. 말리키 총리는 3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분위기를 파악한 듯 “임기 만료 전 사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 그만둘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미군 주도 군사대응이 너무 느리다고 비판했다. 말리키가 오히려 후세인 처형을 밀어붙이는 강단을 보이고 시아파의 단결을 다지는 발판을 마련하면서 불명예 퇴진의 위기를 모면했다는 분석도 있다. 학살과 탄압의 공동 피해자이자, 지금은 주요 연정 파트너인 쿠르드족의 환영도 얻어냈다. 일단 분위기 전환에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라크 TV들이 지난달 30일 후세인의 목에 밧줄을 거는 모습을 보여 주거나, 정장 차림으로 사형집행 명령서에 붉은 글씨로 서명하는 말리키 모습을 방영한 것도 과단성있는 지도자란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란 분석이 있다. 그는 구심점이 사라진 수니파에 대해서는 회유의 손을 내밀고 있다. 최근 잇달아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히지 않은 옛 정권의 추종자들이 입장을 바꾸고 이라크 재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6일 열린 ‘국가통합회의’에서 후세인 정권의 군인들은 새 보안군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하며 연금제공 등의 ‘당근’도 제시했다. 후세인 처형에 따른 혼란과 폭력사태를 진정시키고 후세인의 바트당 지지자 일부라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미국도 그에게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후세인 아래서 권력을 쥐었다가 추락한 수니파들의 분노와 반격을 무마시키면서 연립정권을 유지시켜 나갈지가 그의 과제이자, 이라크 미래를 결정할 변수다. 말리키를 둘러싼 미국과 이라크내 정파간의 거래가 후세인 사후 물밑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깔깔깔]

    ●남편의 소원 남편의 60번째 생일 파티 도중 한 요정이 부부 앞에 나타나 말했다. “당신들은 60살까지 부부싸움을 한번도 안 하며 사이좋게 지냈기 때문에 소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먼저 부인의 소원은 뭐죠?” “그동안 우리는 너무 가난했어요, 남편과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요.” 그러자,‘펑’소리가 나며 부인의 손에 세계여행 티켓이 쥐어져 있었다. “이제 남편의 소원은 뭐죠?” “저는 저보다 30살 어린 여자와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90살이 되었다.●사흘 지난 밥 자식들이 배고프다고 울어대자 흥부는 하는 수 없이 놀부 집을 찾아갔다. 마침 놀부 마누라가 밥을 푸고 있었다.“형수님, 애들이 배고파 울고 있어요. 밥좀 주세요.” “흥, 우리 먹을 밥도 없구만.” “찬밥이나 눌은밥도 괜찮아요.” “그렇다면 사흘 지난 밥도 괜찮수?” “물론입니다. 형수님.” 그러자 놀부 마누라가 하는 말, “그럼, 사흘 뒤에나 오슈!”
  • 통신업계 CEO들의 새해설계

    통신업계 CEO들의 새해설계

    올해 통신분야는 각종 서비스가 결합된 차세대(3세대) 상품들이 꽃을 피우는 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통신 3사의 경우 벌써 3세대 시장 선점 경쟁에 들어선 상태다. 일각에선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지각변동 수준의 통신시장 변화를 예고한다. 인터넷TV(IPTV),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초고속이동통신(HSDPA), 인터넷전화(VoIP)가 대상 서비스다. 이들 상품은 차기 성장동력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몇년간 사업이 지연돼 안타까움을 샀다. 최근 주춤거리는 IT시장에서 이들 서비스가 화려한 꽃을 피워줄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체들의 올해 주요 사업 전략을 CEO의 신년사와 함께 알아본다. ●KT IPTV와 와이브로가 게임장에서의 ‘잭팟(jackpot)’처럼 복주머니를 터뜨려 줄 전망이다. IPTV는 통신측과 방송측의 이해 관계로 지연됐지만 지난해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상용화가 기대된다. 와이브로는 4월쯤 서울과 경기 일부에 서비스망 구축을 끝낼 계획이다. 또 올해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결합상품이 허용될 전망이어서 ‘통신+방송+인터넷’을 결합한 보다 싼 상품 출시가 예정돼 있다.KT로선 이들 신규 서비스가 시내·외전화, 초고속인터넷시장의 정체로 어려웠던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SK 텔레콤 HSDPA, 위성DMB는 올해 회사 주력 사업 대열에 올라선다.HSDPA는 상반기에 서비스를 전국화한다. 지난달 30% 내린 무선인터넷 이용료도 같은 선상에 있다. 위성DMB는 지난해 말 1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SKT는 무엇보다 올해를 실질적인 해외진출의 원년으로 삼았다. 지난해 5월 미국에 진출한 이동통신사업인 ‘힐리오’가 성과를 낼 전망이다. 차이나유니콤과 진행 중인 중국사업도 최근 3G(3세대) 이동통신사업부문에서 협력 관계를 이끌어내는 등 성과를 조금씩 내고 있다. 베트남 ‘S폰’ 이동통신사업도 글로벌의 한 축이 돼 활기를 띨 전망이다. ●KTF KTF는 HSDPA에서 승부수를 띄운다. 조영주 사장은 3세대인 ‘비동기식 IMT-2000’ 업체인 KT아이컴 사장을 역임하는 등 노하우가 많다. 그는 지난해 연말 SKT를 제치고 HSDPA에서 주도권을 쥐겠다고 공언했다. SKT보다 앞서 3월에 HSDPA 전국망을 깔고, 노키아 제품 등 단말기 라인업을 다양화한다. 조 사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는 유·무선 통합 등 결합서비스와 컨버전스 분야가 본격화한다. 새로운 서비스를 성장 엔진으로 삼아 향후 10년 비전을 만드는 초석을 다지겠다.”며 이동통신시장 1위 쟁탈을 위한 전의를 다졌다. ●LG텔레콤 LG텔레콤은 올해 가입자 50만 유치를 목표로 정했다. 지난해 700만 가입자 돌파 여세를 몰아가겠다는 전략이다. 보다 나아진 단말기 라인업을 무기로 삼을 계획이다. 3세대 서비스 경쟁에도 뛰어들었다.HSDPA와 같은 ‘CDMA EVDO 리비전A’를 상반기에 수도권에서 시작한다. 정일재 사장은 신년사에서 “올해는 차세대 서비스 도입이 본격화돼 경쟁 양상도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강한 소매 역량’을 경쟁력으로 만들고 ‘요금제’와 ‘생활가치 혁신 서비스’를 더욱 차별화하자.”고 당부했다. ●하나로텔레콤 하나로텔레콤은 지난해 7월 서비스 시작후 20만 가입자로 성공 모드에 진입한 TV포털 ‘하나TV’로 세몰이하겠다는 전략이다.100만이 목표다. 하나TV는 IPTV 전단계로 인터넷상에서 실시간 방송을 하지 않고 주문형비디오(VOD) 형태로 서비스한다. 올해말쯤 IPTV가 상용화하면 이를 곧바로 접목할 계획이다. 수년간 준비한 결합상품도 내놓는다. 박병무 사장은 “지금은 네트워크로 사업하는 ‘빨랫줄 장사’ 시대가 아니라, 이를 활용한 컨버전스 서비스를 내놓아야 성공하는 시대”라고 신년사에서 강조했다. ●LG파워콤 LG데이콤의 자회사이자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업체인 LG파워콤은 지난해 100만 가입자를 넘겼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광랜 광풍’을 잇겠다는 전략이다. 도시 아파트단지를 주요 목표로 삼았다. 하반기에 트렌드로 부상한 결합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모회사인 LG데이콤은 인터넷전화,BCN,IPTV 등에 지난해보다 20% 증가한 4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정식 LG파워콤 사장은 “목표가 다소 도전적이지만 올해는 가입자 200만명을 확보하고, 흑자 전환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정기홍 박경호기자 hong@seoul.co.kr
  • [중계석]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더 커졌다/김대중 前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2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망과 관련,“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조건을 풀어줘 어디서든 만나겠다고 했기 때문에 상당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불교방송 ‘조순용의 아침저널’에 출연, 이같이 말하면서 “문제는 북한의 태도이며 북한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남북관계 진전을 정략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선거는 선거이고 남북관계는 남북관계일 뿐”이라며 “남북이 계속 협력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선거 때문에 그러지는 않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동산 정책의 신뢰회복 방안과 관련,“좋은 정책의 잦은 변경보다는 나쁜 정책의 일관성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있다.”며 “일단 한번 정하면 그대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을 국민이 알아듣게 쥐어주듯이 설명하고 정책을 세우면 일단 세운 대로 가야 한다.”며 “국민이 잊어버리지 않게 되풀이해주고 국민과 같이 가는 정책을 집행하면 국민이 안심하고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 방안에 대해 “경제 여건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과 중소기업이 튼튼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며 “대기업은 자기 힘에 맡기되 중소기업, 부품소재 기업 육성에 힘써야 하고 사회적 불안요인인 사회 빈곤층과 주택문제는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금년 대선에서도 내가 개입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나이도 많고 건강도 안 좋은 점이 있는 사람이라 국내 정치까지 개입할 짬이 없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길섶에서] 어떤 민원인/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인천시청 1층에 있는 씨티은행에는 50대 후반 아주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난다. 오전 10시면 모습을 드러내 오후 7시 이후까지 은행창구 앞 자리를 지켜 “시청에서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청 일이나 은행 일 때문에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무 하는 일 없이 항상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때문에 시청에서는 그녀의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어느날 그녀에게 사연을 물어보니, 뜻밖에도 공채증권, 채권납입 등 어려운 용어들이 줄줄 나온다. 손에는 ‘납입완납증명서’라는 꼬깃꼬깃한 서류를 쥐고 있어 은행과 관련된 해묵은 민원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그녀는 무언의 시위를 1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민원은 납득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논리에 대한 강한 집착이 그녀를 한 공간에 머물게 하는 것 같았다. 집착이 무뎌지지 않는 한 그녀의 ‘시청행’은 계속될 것이다. 사람의 집착이란 상식을 거부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기에.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희망 2007 새벽을 여는 사람들] (3) 응급실 근무 인턴 의사 박현주씨

    2007년 새해를 축복하는 축제가 벌어지던 구랍 31일과 지난 1일 새벽 사이. 서울 양천구 목동 이화여대 의과대학부속 목동병원 응급의료센터는 ‘야전 병원’을 방불케 했다. 응급센터 밖에는 긴박함을 알리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센터 내부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다급한 목소리와 환자들의 신음 소리만이 감돌았다. 전국이 새해를 맞느라 들떠 있었지만 응급센터는 1분 1초의 여유도 느껴지지 않았다. ●“1주에 비번은 단 7시간 뿐” 응급센터에서는 긴장된 표정으로 정성껏 환자를 돌보는 한 의사가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6년 과정의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박현주(27)씨. 그는 지난해 2월 인턴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의사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할아버지가 호전돼 저에게 손 흔들며 일반 병실로 옮기실 때, 보호자 분이 제 손을 꼬옥 쥐고 고맙다고 할 때는 쌓인 피로가 싹 사라지죠.” 그는 응급센터 생활에 대해 조금만 방심해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 떨어진 이등병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말했다.1주일에 세 번은 ‘24시간+α’ 근무를 하고 나머지 세 번은 15시간을 일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다.1주일에 한 번인 ‘오프(비번)’도 7시간뿐, 밀린 잠을 보충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밤이 깊어지자 응급센터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소아 응급실의 갓난아기 울음소리는 안쓰럽도록 계속됐다. 성인 응급실에는 구급차가 쉬지 않고 환자들을 토해냈다. 밤 10시 45분,119구급차가 들어오자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행히 배에 가스가 차고 혈변이 나오는 평범한(?) 50대 환자로 밝혀지자 “말리그네.”라며 담당의를 제외한 나머지는 고개를 돌렸다.“원래 이 날씨에 119차 타고 오면 심근경색 환자 정도인데…”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리그는 ‘악성(malignancy)’에서 나온 은어로 ‘별 것 아닌데 유난을 떠는 환자(혹은 캐릭터)’를 뜻한다. 자정이 되자 곳곳에서 문자메시지를 알리는 ‘삐리릭∼’소리가 울렸다. 병원 안에서 종일 사투를 벌이는 그에게도 바깥 세상과 이어진 끈이 있었던 셈이다. 짬을 내 문자 메시지에 대한 답장을 보내던 그는 “제일 친한 친구도 3주일 전에 만난 게 전부예요. 물론 다른 친구들이 부럽진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데요.”라고 말했다. ●“두경부암 권위자가 되는 날까지 잠은 아껴둘래요.” 이날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응급실에서 발바닥이 퉁퉁 부르트도록 뛰어다닌 그는 1시간 동안의 꿀 같은 휴식을 뒤로하고 내과로 올라갔다.1일 오후 6시까지 당직근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동에서 호출이 오면 총알처럼 튀어가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쏟아지는 잠을 쫓아 가며 환자를 돌보던 그는 “가장 힘든 기억이요?내과를 돌 때였는데 새벽 4시에 호출받아 두 시간 동안 심폐소생술하고 나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어요. 왜 아무도 알아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서럽기도 했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로 그의 응급실 근무는 끝났다.1월부터는 내과로 옮기게 된다. 응급실에서 일한 지난 한 달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배 아파서 오신 분을 ‘배돌이’‘배순이’라고 불러요. 신경은 많이 쓰이지만 괜찮은 편이에요. 문제는 ‘술탱이(술에 취해 온 환자들)’들이죠. 링거를 놓으면 맘대로 주사 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리니 기피 대상 1호예요.”라고 귀띔했다. 그의 꿈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미개척 분야에 해당하는 ‘두경부암(頭頸部癌·구강이나 후두에 발생하는 암)’의 최고 권위자가 되는 것. 유난히 도전 정신이 강한 그에게 딱 떨어지는 목표란 생각이 들었다. “새해 소망이요.2월말부터 인턴 딱지 떼고 레지던트 1년차가 되는데 더 열심히 뛰어야죠. 이제 꿈을 향한 첫 계단에 올라섰을 뿐인데요.”라며 활짝 웃었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누가 좋아서 삥땅을 하나

    『삥땅?』유식한 체하기 좋아하는 친구를 그거 혹시 「프랑스」의 유명한 「샹송」가수의 원산지 발음이 아닐까 넘겨 짚을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낱말이고 그것도 국어사전을 뒤져 보아야 나오지 않는 개운찮은 뒷맛을 가진 치사한 낱말. 4월 28일 서울 YMCA 강당에서 열린 색다른 모임-「버스」여차장의 「삥땅」의 정의와 그 슬프기조차한 내력을 들어보면-. 「버스」차장을 3년동안 해온 한 아가씨가 어느 날 한국노사문제연구협회 회장 박청산(朴靑山)씨를 찾아와 눈물겨운 호소를 했다. 『저는 3년 동안 「버스」차장을 해 온 19세의 여차장 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믿고 있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매일 죄악과 양심의 갈림길에서 괴로와 하고 있읍니다. 차장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지 않으면 안되는 「삥땅」 때문입니다. 하루 3백여원 씩을 회사의 눈을 피해서 빼 가지는 「삥땅」 수입이 없으면 저의 집안은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런 도둑질을 하면서 제가 어떻게 하느님의 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래도 저는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하겠읍니다. 양심상 괴로워서 도저히 더 이상 나갈수가 없읍니다』 이 애절한 소녀의 호소를 들은 박씨는 그냥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찾아가 의논한 사람이 천주교 원주 교구장으로 있는 지학순(池學淳) 주교이었다. 이 두사람이 뜻을 모아 마련한 것이 YMCA 에서 가진 『여차장의 「삥땅」에 대한 심포지움』이라는 색다른 모임이었다. 우선 「삥땅」 의 정의부터 내려보면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얻어지는 조그만 소득」 쯤으로 풀이 할 수가 있다. 차장의 경우 승객으로부터 받은 요금 중에서 얼마를 빼서 실례해 버리는 것을 뜻한다. 「택시」운전사의 경우에는 그날의 수입 중에서 차주에게 입금시키기로 돼있는 액수(대개 하루 6천원 정도)를 제한 나머지를 뜻한다. 그러므로 「택시」운전사의 경우 영업이 부진한 날이면 자칫 자기 주머니의 돈 까지 보태서 차주에게 입금시켜야 할 때도 있게 된다. 「삥땅」의 어원은 화투노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섰다에서 「삥」이라고 하면 송학 즉 1자를 이른다. 이 「삥」자만 갖게되면 이른바 족보축에 끼는 「9삥」「장삥」「4삥」「1·2」「삥땅」(1땅) 등이 될 확률이 많아서 노름꾼에게는 행운의 패. 그리고 「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섰다판에서는 임금이다. 이 「삥」과 「땅」이 합해서 「삥땅」이라는 묘한 발음의 복합어를 만든것. 일설에는 「삥땅」의 「삥」은 남의 것을 가로챈다는 뜻의 은어이고 「땅」은 「일당(日當)」의 「당」이 강하게 발음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즉 그날의 정당한 보수와 부수입을 뜻한다는 것인데 어느 설이든 간에 정당하지 못한 수입이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삥땅」의 역사는 멀리 1·4 후퇴 직후로 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그때는 운수업 한 사람치고 돈 벌지 못하면 병신이라고 할 만큼 운수업계의 황금기. 군용「트럭」을 헐값에 불하받아 「드럼」통을 펴서 얹어놓으면 갈데 없이 「버스」가 되었고 그렇게 해서 굴린 「버스」가 석달만 지나면 어김 없이 또 한대의 「버스」를 만들만큼 돈이 굴러 들어 왔다는 「기막히게 좋은 시절」이었다. 눈사람처럼 돈이 불어나는데 신이 난 차주들이 운전사와 차장 조수에게 몇푼씩의 막걸리 값을 쥐어주곤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이 몇푼의 막걸리값 「선심」이 「삥땅」의 초기 형태였다. 이 차주의 「선심」은 운수업의 기업화와 함께 서서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대신 그때까지 수동적으로 「선심」을 누려 오던 종업원들이 능동적인 방법에 의해서 수입을 가로채는 형태로 발전해갔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삥땅」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버스」의 차장은 남자들로서 그들은 「삥땅」에 대한 욕심보다는 운전기술을 배우겠다는데 더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남차장의 시대가 가고 여차장의 시대가 오면서부터는 갑자기 「삥땅」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여자의 경우 남자와는 달리 오로지 보수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 하루 18시간을 일해야 하는 고달픈 중노동에 비해 월급은 고작 6천~7천원. 그것도 식비 숙박비 등을 제하고 나면 4~5천원밖에 손에 쥘 수 없는 실정이니 어쩔수 없이 「삥땅」에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없으면 도저히 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없는 형편이다. 「삥땅」을 눈 감아 준다는 조건으로 정기적인 여감독들이 「세금」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삥땅」은 비단 운수업계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이날 「심포지움」에서 연세대의 이계준(李桂俊)목사는 『큼직한 부패에 비한다면 여차장의 「삥땅」쯤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다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있는 여차장들이 죄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어 장래의 어머니가 될 그들의 정신위생이 크게 염려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 주장한 「삥땅」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1)적정시간의 근로 (2)적정임금 (3)경영자의 합리적인 기업운영 (4)환경시설의 개선 (5)여감독제도의 폐지 (6)운수업의 대기업화내지 공영화 (7)노동조합의 강력한 단결력 등이었다. [선데이서울 70년 5월 10일호 제3권 19호 통권 제 84호]
  • [후세인사형 파문] 교수형 직전 “나를 희생물로 바친다”

    30일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재판정에서도 당당함과 고집스러움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이라크의 대통령”이라며 판사를 준엄하게 꾸짖고 “총살형을 바란다.”고 주문했다. 아랍어로 ‘맞서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중동의 패자로 미국에 대항하다 몰락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남긴 말들이다.●나는 나를 희생물로 바친다. 내 영혼이 순교자의 길을 걷는다면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교수형 직전)●당신들은 이라크 국민이 아닌 점령자의 이름으로 재판하고 있다.(2006년 8월 쿠르드족 학살 첫 재판에서)●나는 35년간 당신들의 지도자였는데, 나가라고 명령하느냐.(2006년 1월29일 재판에서 퇴정명령을 받고)●우리의 적은 미국인이 아니라 이라크를 파괴하고 있는 미국 정부다.(2005년 12월21일 재판에서)●내 이름은 사담 후세인이다. 나는 이라크의 대통령이다. 협상을 하자.(2003년 12월 체포된 뒤)●범죄자인 아들 부시가 인간성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2003년 3월 미국이 침공한 첫 날)●미국은 중동 석유를 손에 쥐기 위해 이라크를 파괴하려 한다. 궁극적으로 전 세계의 원유와 경제뿐 아니라 정치까지 손에 넣으려고 한다.(2002년 9월 유엔 총회의 경고 메시지에 대해)●미국은 그동안 자신의 지도자들이 세상에 뿌린 가시를 거두고 있다.(2001년 9ㆍ11테러에 대해)
  • [北核시대 한반도를 말한다] “신뢰 회복이 우선…北, 核포기 쉽지 않을 것”

    [北核시대 한반도를 말한다] “신뢰 회복이 우선…北, 核포기 쉽지 않을 것”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여전히 불안과 혼동 그 자체다. 그해 말에 열렸던 6자회담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 것도 이를 반영한다. 국내적으로도 대북 포용정책, 전시작전권환수 등 국가안보정책 전반에 대해 말들이 많다. 새해를 맞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는 게 바람직한지 보수·진보 진영의 두 명의 학자로부터 들어봤다. ▶박현갑 차장(이하 박)정치권 일각에서 내년 봄 남북 정상회담설이 흘러나온다. 정상회담은 과연 필요하고, 가능한가. -김연철(이하 김)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2007년은 매우 중요한 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08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중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한국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대선국면과 맞물려 정치적 논란이 일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외교·안보적 중대사를 방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지수(이하 이)회담을 하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어야 하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아직도 ‘제로섬’ 관계로 본다. 게다가 상호 신뢰가 확보돼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북한을 신뢰하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함께 군비를 축소하고 절감된 비용을 경제와 복지에 투입하는 게 최선의 대안이란 점을 알지만 상대방을 불신하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이뤄지겠는가. -김 그렇지 않다. 현재 남북관계는 불신에서 신뢰구축으로 가는 과정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얻는 것은 북한의 체제 특성으로 볼 때 어렵다. 그런데 이런 체제 특성 때문에 정상회담이 더욱 필요하다. 북한은 정책 결정과정이 중앙 집중화돼 있다. 협상권한을 가진 외교관이 사실상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 사람뿐이란 얘기다. -이 중요한 건 신뢰다. 신뢰는 하나씩 주고받으면서 쌓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받을 건 받고 수틀리면 판을 엎어 버리겠다는 식이다. 해법은 국제적 공조밖에 없다. 최근 재개된 6자회담만 하더라도 유엔에서 러시아, 중국까지 가세해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키니까 회담에 복귀한 것 아닌가. ▶박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북한에 핵은 선군(先軍)정치의 중요한 지렛대다. 리더십에 결정적 변화가 없는 한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 핵문제 역시 북한의 체제특성과 관련돼 있다. 북한은 핵을 미국·일본과의 관계개선 수단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두 나라와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완전한 핵 폐기는 어렵다. 설사 북한이 핵 폐기에 동의하더라도 사찰을 받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북한 핵이 협상용이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핵은 대내·외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국제적으로 고립되더라도 경제운용에 필요한 돈은 금강산과 개성, 신의주를 통해 남쪽으로부터 조달할수 있으리란 계산을 하고있는 것 같다. ▶박 정부의 포용정책이 북한 핵을 불렀다는 주장도 있다. -이 학문하는 사람들이 할 얘긴 아니다. 포용정책이 아니라 어떤 정책을 폈더라도 북한이 핵을 개발한 이상 책임론이 제기됐을 것이다. 중요한 건 포용정책이 없었더라도 김정일은 핵을 가지려고 시도했을 것이란 점이다. -김 포용정책의 핵심은 접촉을 통해 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역사는 1989년 노태우 정부의 7·7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까지 대북정책의 중심기조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의 지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북한과 우리 사이에 ‘합리성’에 대한 코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의있게 행동하면 상대도 성의있게 나올 것이라 예상하는 게 우리의 합리성인데 북한은 다르다. 개성과 금강산만 하더라도 개방할 때와 안 할 때의 손익을 엄밀히 따져 행동하기보다 수틀리면 뒤엎는 게 이들의 합리성 아닌가. -김 포용정책이 무조건 북측의 행동을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전술적 운용은 달리할 수 있다. 예컨대 북한이 무장간첩을 침투시키거나 미사일·핵 실험을 강행한다면 인도적 지원 유보 등 전술적 변화는 가능하다. 그러나 접촉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전략적 기조는 변할 수 없다. ▶박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많이 줄었다. -이 정책에 대한 지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 좌우되는 측면이 강하다.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가 떨어졌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 줄었다기보다 감성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얘기다. 용어도 새로 개발하고 이데올로기도 세련되게 다듬었어야 하는데 안 했다. -김 동의하지 않는다. 대북정책에 대한 총론적 공감대는 유지되고 있다. 설문을 돌려보면 상반된 결과가 나온다. 북한 행태에 대한 생각을 물을 때는 대부분 비판적인데,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물으면 70∼80%는 평화적 방법을 선호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북관계의 진척여부에 따라 북한에 대한 태도는 달라지지만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공감한다는 얘기다. -이 만약 세 번째 질문으로 “평화적 방법이 실효성이 있다고 보느냐.”고 묻는다면 또 달라진다.“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밥은 쌀로 짓는다.”는 것이나 같은 말이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대중여론을 정책수행의 잣대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박 포용정책이 북한을 바꿀 수 있을까. 회의적 시각이 늘었다. -김 정권을 잡기 전에는 대북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지만 막상 정권을 쥐고 정부를 운영하게 되면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 옵션을 고려한다고 우리도 따라가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극우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던 역대 군사정권들도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강경책을 적대정책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보라. 북측의 좋은 행동에는 좋게 보상하고 나쁜 행동에는 강하게 대응한다. 이건 적대정책과 다르다.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라는 게 아니라 채널을 단일화하고, 금강산·개성공단도 시장원리에 맡기라는 것이다. 사실 개성에 들어가는 기업들, 정부의 인센티브가 없다면 가겠는가. -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민간기업의 경협은 지금도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진행된다. 다만 개성과 금강산은 반관반민(半官半民) 사업이다. 군사적 긴장완화와 인적교류 활성화라는 공적 목적이 있기 때문에 정부예산이 투입되는 것이다. -이 1980년대 조총련 계열의 유수한 기업인들이 북한에 갔다. 조국을 살려보겠다고. 그런데 다 울고 나왔다. 북한의 과도한 요구 때문이었다. 북한은 이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배우기보다 돈만 뿌리고 가라고 요구했다. 개성도 금강산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 -김 북한 변화에 대해서는 상대적 잣대가 필요하다. 물의 온도가 100도까지 오르는 것만 변화라고 하지 않는다.10도에서 40도로 오르는 것도 변화다. 기대엔 못 미치지만 북한도 꾸준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언젠가 임계점을 돌파해 질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임계점을 넘어서도록 충격이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다. -이 글쎄다. 덩샤오핑은 원래 덩샤오핑이었지 어느 순간 각성해 바뀐 게 아니다. 김정일이 살아있는 한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건 무리다. -김 쿠바를 봐라.90년대 카스트로 치하에서도 개혁과 후퇴는 반복됐다. 지도자의 성향보다 지도자의 선택을 강제하는 구조나 환경이 중요하다. ▶박 햇볕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심각하다. 치유방법은 없나. -김 굉장히 안타깝다. 사실 대북 정강정책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막상 정치 현장으로 나오면 갈등이 증폭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튄다. -이 세계관과 감성구조, 합리성에 대한 시각차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감성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다. -김 선진국에선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초당적 협력이 이뤄진다. 미국도 민주·공화당이 이라크 스터디 그룹을 초당적으로 구성하지 않았는가. 사회 박현갑차장, 정리 이세영 나길회기자 eagleduo@seoul.co.kr ● 김연철 교수 고려대 아세아문제硏 북한경제와 남북관계론이 전공이다.1964년생으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동대학원에서 ‘북한의 산업화 과정과 공장관리의 정치’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을 거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시절(2004.7∼2006.2) 정책보좌관을 지내며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 이지수 교수 명지대 북한학과 북한정치와 북·러관계를 전공했다.1963년생.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2000년 러시아 모스크바대 대학원에서 ‘소련의 대북한 정책(1945∼1948)’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상임연구원을 거쳐 2002년부터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물론 일부 야권의 ‘냉전적’ 대북인식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2004년 ‘전향 386’들이 창립한 뉴라이트 단체 ‘자유주의 연대’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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