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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매니지먼트 회사 찾는 미술가들

    [이주헌의 캔버스 세상] 매니지먼트 회사 찾는 미술가들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미술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시장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오고 있다.무엇보다 전통적인 ‘작가-갤러리’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독립적으로 작가의 비즈니스를 대행해 주는 매니지먼트 활동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최근 기존 갤러리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독립적인 에이전트와 계약한 영국미술가 키스 타이슨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국 미술계 최고 권위의 터너 상 수상자인 타이슨은 세계의 상대성과 우연성에 대한 나름의 탐구를 회화와 조각으로 표현해온 미술가다.그동안 국제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뉴욕, 런던, 파리의 화랑들과 긴밀한 거래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리처드 웨덤스라는 전담 에이전트를 고용해 그 틀을 깨고 독자적인 마케팅과 세일즈에 나섰다. 타이슨은 ‘아트 뉴스 페이퍼’와 가진 인터뷰에서 “(갤러리들이) 소속 연기자들을 꽉 쥐고 다른 곳과 공유하려 하지 않았던 1930년대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 같다.”며 “그런 제약으로부터 탈피해 작품을 세계에 활발히 배분할 에이전트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작가가 갤러리와 전속계약을 맺으면 갤러리는 작가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갖게 마련이다.이는 연예기획사가 없던 시절,연예시장에서 방송국이 연기자,가수와 맺던 전속계약과 유사한 형태의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급격한 미술시장의 팽창과 더불어 생존 작가의 작품이 수억원을 넘어 수십억원,심지어 수백억원에 이르는 현상이 나타나자 인기 작가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더욱 공고히 해줄 독립 에이전트나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거나 설립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이는 연예인들이 기획사를 찾거나 설립하는 것에 비견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작가를 비즈니스와 관련한 세세한 문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한편,작가 스스로 마케팅과 세일즈의 최종 결정권자가 되게 한다.일종의 CEO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이와 관련해 매니지먼트 활용의 선구자로,프랭크 던피라는 유능한 회계사와 10년이 넘게 팀워크를 다져온 데미안 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돈에 대해 개의하지 않았다.아니 그런 척했는지 모른다.돈을 두려워했던 것이다.하지만 프랭크가 돈에 대한 나의 관념을 바로잡아 주었다.” 현재 던피의 도움으로 허스트가 쌓은 부는 최소로 잡아 3000억원에 이른다.과거 갤러리와 5대 5로 수익을 나눴지만,던피 등장 이후 7대3~8대2, 경우에 따라서는 9대1로 그 배분율이 높아졌다.연예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기획사의 대표다운 수완이었다. 현재 타이슨과 허스트 외에도 트레이시 에민,채프먼 형제,레이철 화이트리드,개빈 터크 등 주목받는 여러 현대미술가들이 전담에이전트 고용하는 매니지먼트 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다.미술시장이 바야흐로 연예시장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술 평론가>
  • 입법전쟁 ‘크리스마스 휴전’ 속내는

    한나라당의 ‘25일 시한부’ 대화 제의에 야당은 선뜻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진정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한편으론 비판 여론을 희석시키고,다른 한편으론 야당을 압박하는 양동작전을 한나라당이 구사하고 있다는 시각이다.이에 민주당은 속도전의 배후로 지목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세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자유선진당은 틈새에서 당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물고 물리는 여야의 속내를 들여다 본다. ■ 한나라 양동작전 한나라당은 오는 25일까지 야당과 대화하겠다고 밝혔지만,연내 법안처리를 마무리한다는 당초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대화를 강조하면서도 기한을 정해 민주당을 압박하는 양동 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22일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니 ‘직권상정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면서 “(민주당이) 연내 협의처리를 약속해야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예산안 처리와 마찬가지로 기한을 못 박아 놓고 야당과 협의되지 않으면 한나라당 단독으로 법안처리를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론 25일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고 대화의 노력을 계속한다는 방침도 유효하다.주호영 원내 수석부대표는 이날 “상임위가 열리면 열리는 대로,안 열리면 안 열리는 대로 대처할 것”이라면서 “우리가 제출한 법안중 문제점이 있는 것은 수용할 수 있으며,법안 처리 일정과 범위 등은 끊임없이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대국민 홍보전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박희태 대표는 이날 서울 신대방동 전문건설회관에서 건설업계의 고충을 청취하며 ‘경제살리기’,‘민생’,‘위기극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도 수시로 기자실을 찾거나 논평을 내고 상임위를 거부하고 있는 민주당을 비판하며 위기극복을 강조했다.한 핵심 당직자는 “이제부터는 홍보전”이라면서 “여론을 선점하는 쪽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자신감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법안처리 과정에서 “한번은 도와줄 것”이라는 전망도 깔려 있다.여야 협의가 안 되면 김 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하지만 김 의장은 직권상정에 대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대신 그는 여야 원내대표가 빨리 만나 대화로 풀 것을 요구했다.김 의장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헌정회 초청 강연회에서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은 내일(23일)까지 무조건 만나야 할 것”이라면서 “여야 원내대표들까지 만남이 없다면 내일 오후 만남을 직권중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민주 ‘MB 압박’ 여야가 치열한 입법전쟁의 한 가운데서 시한부 휴전에 돌입했지만 민주당의 결기는 갈수록 날이 서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제안한 ‘25일까지 잠정휴업’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위한 명분쌓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때문에 민주당은 22일 예정된 국회 11개 상임위 일정을 거부하고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와 정무위,행정안전위 등 쟁점 상임위에 대한 점거를 풀지 않았다.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라는 전제로 국회 파행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을 내걸었다. 특히 입법전쟁의 주 전선을 청와대와의 대결에 맞추는데 주력하고 있다.이날 지도부의 메시지도 ‘반(反) 이명박’임을 분명히 했다. 정세균 대표가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의 일방통행 배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대통령은 국회에서 손 떼라.”라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정 대표는 아예 이 대통령을 “한나라당의 당수”라고 표현했다. 민주당은 당초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법안의 단계별 처리 방침을 밝혔지만 이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의 당청회동 뒤 강행 처리로 선회한 것을 두고 청와대의 개입을 확신하는 분위기다.입법전쟁의 키를 이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여야가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연말까지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입장이 드러난 만큼 휴전협정 자체가 의미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경고 메시지는 사전 압박용으로도 들린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하더라도 여론에 호소할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원혜영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야당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라.”고 주문한 것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여기엔 국회 파행과 여론 악화에 따른 부담도 작용하고 있다.만에 하나 한나라당이 법안을 강행처리한다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야당으로서 명분도 실리도 다 잃을 수 있다.민주당으로선 이 대통령에게 주파수를 맞추게 되면 정쟁의 책임론에서 비껴갈 수 있고,청와대의 강경 드라이브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을 할 법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선진 ‘실속 찾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극한 대치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지만 ‘캐스팅보트’를 쥔 자유선진당은 오히려 느긋한 입장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타협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선진당의 협조가 각 당에 ‘명분’을 부여하는 주요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선진당은 쟁점 사안별로 여론의 방향에 따라 유연하게 입장을 정리하면서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지난 21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한나라당의 법안 심사 강행과 민주당의 폭력 저지를 싸잡아 비판하고 양당의 사과와 한나라당의 법안 일방처리 재고,상임위 정상화 등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때마침 한나라당은 25일까지 법안 심사 일정을 연기하고 민주당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김정권 원내대변인도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총재의 중재안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선진당은 쟁점 법안 처리 문제에서도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국민의 여론을 봐가면서 당론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선진당 핵심 관계자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우선 처리가 시급한 민생법안 등에 대해서는 정부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 주겠지만 출총제 등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법안은 오히려 민주당과 의견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안에 따라 어느 당과도 공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한나라 쟁점법안 직권상정 논의” 국토해양위 문건 파문 ’국회 난장판’ 온라인게임으로 패러디한 네티즌의 센스
  • 美 CEO들 뻔뻔한 돈잔치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의 임원들이 경영 악화가 가시화된 지난해에는 물론 최근까지도 ‘돈잔치’를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AP통신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된 연차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은 116개 은행 임원 연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600명이 모두 16억달러(약 2조원)를 받았다. 이 가운데 최고경영자(CEO)들은 평균 260만달러를 받았다.이들이 누린 혜택은 보너스 외에도 스톡옵션,회사 전용기와 기사 딸린 승용차 운행비용,자택 보안시설,골프 회원권 등이 포함돼 있다.이 은행들이 받은 구제금융 규모는 1880억달러다. 1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골드만삭스의 경우 로이드 블랭크페인(사진 왼쪽) CEO는 지난해 5400만달러를 받았다.역시 100억달러를 받은 메릴린치사의 존 트레인(가운데) 회장은 1500만달러의 보너스와 6800만달러 상당의 스톡옵션을 챙겼다.일부 은행에서는 일반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고도 임원들은 거액을 손에 쥐었다.캐피털 원 파이낸셜사의 리처드 페어뱅크는 연봉 100만달러와 170만달러의 스톡옵션을 가져갔다. ‘자동차 빅3’ CEO들이 의회에 지원을 요청하러 가면서 전용기를 탔다가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월가에서는 여전히 전용기가 ‘애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구제금융을 받은 업체 중 AIG를 포함한 6곳이 전용기를 보유하고 있다.특히 2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JP모건의 경우 제임스 디몬(오른쪽) 회장이 시카고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적 용무’에 전용기를 이용해 21만 1182달러를 사용,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외국인노동자 옭아맨 ‘고용허가제’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내국인과 동등하게 해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용허가제는 한국 고용주가 필요한 외국인 인력을 신청하고 정부가 해외에서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선별해서 연결해주는 것으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고용허가제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오히려 옭아매고 있다고 지적한다.고용허가제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가 하면 재계약·재고용 과정에서 사업자에게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에게 ‘칼’을 쥐어준 고용허가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인정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지만 세부제도들은 그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변경 ▲재계약·재고용 등의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사업체의 휴·폐업,사용자의 정당한 근로계약 해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가하도록 돼 있다.국내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지적이다.  정 변호사는 이 같은 방침은 “사업자에게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종속시키는 것”이라며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조건 하락은 물론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는 길을 막아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재계약·재고용시 사업자에게 거의 전권을 부여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 변호사는 “현 고용허가제는 마지막 고용자에게 막강한 재계약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그는 “정부는 3년간 일한 뒤 본국으로 귀국했다 다시 들어오면 2년간 보장해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2년은 사업자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뿐”이라고 덧붙였다.불법체류자가 줄지 않는 것에는 사업자가 재계약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남는 외국인들이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사업자에게 칼자루를 쥐도록 한 현 고용허가제는 문제 있다.”며 “차라리 재계약 기간 2년을 없애고 처음 계약할 때 5년을 보장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에 숙식비까지 포함시키다니…  정부는 최근 고용허가제에서 한발 더 나가 ‘비전문 외국인력정책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외국인 고용정책 전반의 틀을 새로 짰다.이 방안에는 기업들이 부담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숙박비와 식대를 ‘본인 부담’으로 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이 방안대로라면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정훈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게 근무지 근처 컨테이너 박스에서 집단생활 하는 등 근무·생활환경이 열악하다.”며 “거기에 최저임금 대우를 받는 것도 모자라 임금에서 숙식비를 뺀다면 노동 환경은 더 열악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기숙사건물이나 가건물을 제공해서 별도의 숙박비용이 지출되지 않는 사업장의 경우에도, 숙박비 및 식대를 추가 공제할 여지가 다분하다”며 악용 가능성을 지적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조건 문제가 국내 노동자들에게도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정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하락하는 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하락은 전체 노동자의 연쇄적인 지위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前보좌관이 본 현실

    前보좌관이 본 현실

    “국회의원에 대한 보좌관의 종속성과 정치문화의 후진성이 빚어낸 현상이다.” 최근 여야의 극한 대치에 보좌관이 동원되고 있는 현상을 ‘제3자’로서 지켜본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 애널리스트의 진단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청와대 행정관,행정부 기획분야를 두루 거친 그는 난장판 국회의 악순환 속에서 보좌관의 바람직한 역할 모델에 주목했다.그는 우리 국회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이 하루이틀된 문화는 아니지만 보좌관이 정치적 행위자가 되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러나 의원이 보좌관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현행 구조상 제도적 해결책은 요원한 것 같다는 우려가 이어졌다.그는 “보좌관이 별정직 공무원이지만 임면 전권을 의원이 쥐고 있어 의원의 개인비서에 가깝다.”고 말했다.의원의 의정활동에 필요하다면 보좌관은 어떤 현장이든 ‘동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보좌관의 본령인 정책 전문성을 보장받는 것도 의원 편차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고 그는 지적했다.그러면서 여야간 타협없는 정치문화가 이를 더욱 부추긴다고 꼬집었다.그는 우리 국회가 끊임없는 충돌의 구태를 벗어나기 위해 “보좌관은 전문성을 강화하고 의원은 보좌관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50)양반의 기생 놀음

    몇 해 전 우연히 TV 사극을 보는데,이상한 장면이 나왔다.사극의 배경은 임진왜란 훨씬 이전,곧 조선 전기였다.광통교 부근에 기방이 있었고,그 기방에 고관대작 몇이 모여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쓴 웃음을 지었다.과문한 탓인지 나는 조선 전기의 서울 시정에 기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앞에서 누차 언급했듯 기방은 기생이 손님에게 가무(歌舞)와 술,그리고 성(性)을 판매하는 공간이다.그리고 기방과 기생은 기부(妓夫)가 지배한다.이런 형태의 기방은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끝난 뒤에 서울 시정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물론 기방의 성립 과정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이런 이유로 해서 임진왜란 이전 시대에 고관대작들이 기방에 드나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박정희 시대 때의 요정 정치를 조선시대 속에서 애써 찾다 보니,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기방은 역관·의관·서리 등 중간층이 주로 찾아 조선 후기에 기방이 시정에 출현한 뒤에도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하지 않는다.기방은 주로 역관이나 의관 등의 중인,각 관청의 하급관리인 서리,시전상인,군교(軍校),별감,승정원 사령,의금부 나장 등 중간층들이 주로 찾는 곳이었다.게다가 전에 소개했듯 기방에는 까다로운 규칙들이 있어서 어길 경우,시비가 벌어지고 때로는 주먹질이 난무하였다.이런 까닭에 양반들은 기방 출입을 꺼렸고,만약 기방 출입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뒷날 벼슬을 하는데 적지 않은 흠이 되었던 것이다.한데 양반 중 문반만 그렇다는 것이고,무반은 꼭 그렇지도 않다.무과에 합격하여 무반관직을 지내려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하기에 한량으로 무예를 익힐 때부터 기방에 드나드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이런 무반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반들은 기방에 출입할 수 없었다.꼭 기방에 들어가려면 어느 집 ‘청지기’라고 말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양반이 기생과 즐기고 싶다면,기생을 불러와야만 하였다.관청에서 부르는 경우도 있고,때로는 개인이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개인이 부를 경우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이제 그 광경을 신윤복의 ‘연못가의 가야금’(그림 1)에서 확인해 보자.이 그림의 화제(畵題)를 보자.“자리에는 늘 손님이 가득하고,술단지는 비어본 적이 없으니,나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座上客常滿, 尊中酒不空, 吾無憂矣).이 그림에는 술단지가 보이지 않지만,벗이 있고 음악이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으니 흥겹지 않겠는가. 그림에는 남자 셋,기생 셋이 등장한다.기생 셋을 부른 것이다.남자들은 모두 지체 높은 양반들이다.두 사람은 갓을 쓴,말하자면 의관을 제대로 갖춘 정장 차림이고 맨 왼쪽의 양반은 갓이 없다.이 남자는 원래 갓을 썼던 것이 아니고 정자관을 쓰고 있다가 옆에 벗어 놓고 있다.서 있는 남자와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도포의 빛깔이 다른데 중국에서 수입한 고급 비단으로 지은 것이 분명하다.갓끈 역시 호사스럽기 짝이 없다.서 있는 사람의 갓끈은 밀화(蜜花),곧 호박으로 만든 것으로 당상관 이상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사내의 벼슬은 적어도 정3품 당상관인 것이다.이런 것으로 보아 연못가에 모인 사내들은 모두 고급 관료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금기(琴妓)이고 누가 가기(歌妓)일까 이 그림의 공간은 어디인가? 먼저 오른쪽을 보자.소나무 아래에 기와담장이 보인다.그리고 그림 상단부에는 돌로 축대를 이단으로 쌓아 나무를 심었다.그 너머에 다시 돌각담이 보인다.아래로 오면 단정하게 다듬은 돌로 마무리를 한 연못이 있다.이곳을 관청의 정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18세기 이후 서울의 거대한 양반가문이나,역관이나 상인으로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의 저택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면,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맨 왼쪽의 정자관을 벗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아마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관을 벗고 풀어진 자세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당연히 기생이다.담뱃대를 쥐고 있는 여자가 쓰고 있는 것은 가리마다.가리마는 기생들이 큰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오른쪽의 악기는 거문고가 아닌 가야금이다.거문고는 현을 뜯는 짤막한 대나무 막대기,곧 술대가 있어야 하지만,이 그림에는 그것이 없고,직접 손가락으로 현을 뜯고 있다.가야금인 것이다.가야금을 특기로 삼는 기생을 금기(琴妓)라 하고,노래를 특기로 삼는 기생을 가기(歌妓)라고 한다.세 기생 중 어떤 기생은 가기일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에 등장한 3남 3녀 중 가장 웃기는 사람은 맨 왼쪽의 남자다.왼쪽 발을 보건대 남자는 두 다리를 둥글게 벌리고 자신의 몸 위에 기생의 둔부가 올라오도록 앉힌 것이다.그리고 오른손은 기생의 아랫도리에 가 있다.이 양반은 눈동자가 약간 풀린 채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그 일이 정말 어떤 일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이제 신윤복의 그림 중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 ‘검무(劍舞)’(그림 2)를 보자.기생 둘이 공작 깃털을 단 벙거지를 쓰고 붉고 푸른 화려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구경꾼들의 면면을 보자.그림의 왼쪽 중간에 있는,왼손에 부채를 쥐고 갓끈을 단정하게 묶고 있는 사람이 이 연회의 주최자일 것이다.아니면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것이다.왜냐고? 이 사람이 앉아 있는 돗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것보다 훨씬 고급스럽고,죽부인에 기대어 앉아 있는 품이 당당해 보이기 때문이다.이 사람 바로 위의 무릎을 세우고 손깍지를 끼고 있는 사람 역시 양반이다.다시 그 위의 갓을 쓰고 있는 앳된 얼굴은,장가를 간지 얼마 안 되는 이 집안의 자제인가 보다.이 햇병아리의 옆에 기생 둘이 있고,다시 그 오른쪽에 초립을 쓴 장가를 가지 않은 젊은이가 앉아 있다.그림 오른쪽의 담뱃대를 들고 오는 아이는 상노다.담뱃대가 없는 기생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아니면 갓을 젖혀 쓴 양반에게 가져다 주려는 것인가? ●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 있던 춤 춤을 감상하는 양반 관객들은 모두 그림의 상단에 있는데,유독 하단의 악공들이 앉는 줄에 양반 한 사람이 끼어 있다.하단 맨 왼쪽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사내다.이 사내는 왜 구차하게 악공들과 같은 줄에 앉아 있는 것인가? 이 양반이 왼손에 쥐고 있는 물건이 실마리를 제공한다.이 물건은 사선(紗扇) 또는 차면(遮面)이라는 물건으로 남녀가 내외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다.상주가 외출할 때 관원이 길을 나설 때 결혼식을 할 때 남성이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무언가 자기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할 사정이 있는 것인데,춤 구경에 그 사정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아래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사선을 쥐고 있는 양반을 제외하면 모두 악공이다.맨 왼쪽은 해금을 연주하고 있고,그 오른쪽 두 사람은 자세를 보아 아마도 피리를 불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그 다음은 젓대,그 다음은 장고,그 다음은 북이다. 조선후기에는 장악원의 악공과 기생들이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을 받아 영업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이름이 알려진 팀도 있다.예컨대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했던 가기(歌妓) 추월(秋月)과 역시 가곡창(歌曲唱)의 달인이었던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거문고의 명인 금객(琴客) 김철석(哲石),그리고 또 다른 기생인 매월(梅月) 계섬(桂蟾) 등으로 구성된 팀이 가장 유명하였다. 기생 둘이 추는 검무는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더욱이 두 기생의 복색은 색채가 선명하게 대조된다.왼쪽은 청색 벙거지,녹색 저고리,붉은 치마인데,오른쪽은 흑색 전모,청색 저고리,푸른 치마이다.지금 검무는 진주 검무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검무는 18세기에 가장 인기가 있는 춤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 검무는 칼이 작고 또 칼날과 자루가 분리되어 움직이지만,18세기의 검무는 보다시피 그냥 칼이다.어떤 사정이 있어서 바뀌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박제가(1750-1805)는 ‘검무기(劍舞記)’란 글을 써서 검무의 동작을 세밀히 묘사하고,또 밀양 출신 기생 운심(雲心)이가 당시 검무의 제일인자로서 가장 인기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혹 아는가,위 검무를 추는 두 기생 중 하나가 운심인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보좌관 ‘몸싸움 동원’ 언제까지

    보좌관 ‘몸싸움 동원’ 언제까지

    최근 파행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갑다.정작 비난의 화살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폭력의 현장에 ‘동원된’ 보좌관들과 당직자들을 겨냥하고 있다.보좌관이라는 익명성을 활용해 극한 대치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감상법이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이들은 오히려 여야 정치력의 부재와 후진적 정치문화의 희생양일 뿐이라는 항변을 던지고 있다. 17년째 보좌관을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21일 “국회 의정활동의 모든 주체는 국회의원인데 여야 지도부가 대화없는 정치를 하다 보니 결국 몸싸움 같은 하위·저질문화에 우리가 동원되는 것 아니냐.”고 허탈해했다. 물론 이번 사태의 본질이 대화와 타협보다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치권의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은 여러군데서 제기되고 있다.하지만 정치적 행위의 당사자가 누구냐는 문제로 좁혀보면 극한대치의 최전선에 섰던 보좌관들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의원 정치부담 대신 짊어져 지난 예산안 투쟁부터 여야 대치전의 선발대로 나갔던 보좌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원과의 관계’를 지적했다. 의원들이 임면의 전권을 쥐고 있는 한 주종 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의원실별로 보좌진은 4급 2명,5급 1명,6~9급 3명 등 모두 6명을 둘 수 있다.별정직 공무원 신분이다.4급과 5급 보좌진은 국회의장이,6~9급 비서진은 국회 사무총장이 임면하지만 형식적이다.눈밖에 날 경우 의원이 국회 사무처에 면직요청서만 제출하면 곧 물러나야 한다. 이같은 제도적 모순은 의원과 보좌관의 바람직한 관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12년째 여의도 생활을 하고 있는 한 보좌관은 “정당 대 정당 대결구도가 될 때 보좌관들이 동원되는 것 자체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참가했던 한 보좌관은 “손에 피 묻히는 일은 보좌관에게 맡기고 이미지 관리하느라 현장에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의원도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몸싸움을 보좌진들이 아닌 의원들이 하게 되면 현재처럼 극한적인 폭력 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간 물리력이 동원된 극한대치 이후 형사처벌 대상자는 대부분 보좌관이나 당직자였다.여야가 화해모드로 돌아서면 정작 의원끼리는 고소·고발을 취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같은 분위기가 관행적으로 굳어지다 보니 보좌관들의 주된 역할인 정책 전문성에 회의를 갖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책보좌기능 되찾아야 8년차에 접어든 한 보좌관은 “우리에겐 전문성을 요구하면서도 법안심의나 정책질의 과정에서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질되는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18대 들어 자기 명함에 정책보좌관이라고 써넣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정체성에 대한 일종의 자기 최면인 셈이다.의원과 보좌진의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의원들은 보좌진을 존중하고 정치적 인프라를 공유하는 등 협력자 정신이 필요하다는 게 한 축이라면 보좌진은 정책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당 차원에서 보좌관 풀제를 운영했던 민주노동당의 사례가 모범으로 꼽힌다.민노당 한 보좌관은 “상임위별로 전문위원제를 확장시켜 보좌관이 의원 개인의 사적 비서로 전락되는 것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수(數)의 힘에 근거한 독주를 막는 것 이외엔 방법을 찾지 못하는 여야의 의사결정 구조도 이제는 극복돼야 한다. 구혜영 김지훈기자 koohy@seoul.co.kr
  • “20년 뒤에 다시 만나자”

    “20년 뒤에 다시 만나자”

    새롬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하기로 한 날,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그림책의 삽화들을 준비해갔다. 예쁜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고, 글을 써보는 경험을 해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동시를 쓰는 아이들은 함께 가준 지인 강만수 시인이 봐주기로 했기에 우리는 산문과 운문 모두를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공부방에 들어서자 나를 반겨주는 것은 구수한 음식 냄새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부방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끼니 거르는 아이들을 잘 먹이는 것이었다. 현황표를 보여주면서 하나하나 짚어주는 아이들의 삶은 정말 어린 나이에 견디기 버거운 십자가였다. 그나마 이렇게 지역아동센터에 머물면서 보호를 받는 아이들은 형편이 좋은 거란다. 16만 명 정도의 어린이들을 전국의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보는데, 이는 전체 저소득 아동의 20%에 불과하다고 했다. 나머지 80%의 아이들은 이 땅의 그늘에서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한 채 성장하는 것이었다. “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그랬다. 내가 그날 아이들에게 해줄 일은 꿈을 심어주는 일. 그러나 어떻게 짧은 시간에 그런 일을 한단 말인가. 이러구러 수업은 시작되었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준비해간 그림을 하나씩 보여주며 말문을 틔웠다. “이 그림 보면 뭐가 생각나지? 어디 한번 이야기해볼까?” 처음엔 뻔한 대답을 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누가 되었건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가져간 그림을 다 보여준 뒤 아이들에게 나는 아무 그림이나 하나씩 붙잡고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때 내 눈에 띈 아이가 용득이(가명). 글을 쓰라고 하자마자 나눠준 종이를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나갔다. 다른 아이들이 한 시간 동안 장난을 치고, 과자를 먹으며 산만해져 있는 동안 녀석은 한 편의 멋진 동화를 완성했다. 나와서 읽어보라고 하니 난생처음 해본다며 쑥스러워했지만 결국 그 긴 글을 다 읽었다. “…호랑이는 아빠 엄마가 없는 아기를 잡아먹지 않고 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얼마 전에 태어난 새끼가 병으로 죽어서 대신 아기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아기는 호랑이의 젖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가 소년이 되자 호랑이는 말했습니다. 너는 호랑이의 새끼가 아니라 사람의 아이다. 그러니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흰 호랑이가 아기를 품에 안고 포근히 잠든 한 장의 그림을 보고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 한 편을 빠르고 완벽하게 꾸미는 건 재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용득이는 나중에 작가가 되면 좋겠다.” 내 한마디 말에 고무된 용득이는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내가 차에 탈 때까지 쫓아와 지켜보았다. 총기 있는 눈매의 녀석에게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용득아, 너 문학에 소질 있어. 나중에 꼭 작가가 되어라. 그러면 20년 뒤에 선생님 다시 만날 수 있어.” 말을 마치고 나는 출판사에서 받아 차 안에 두었던 새해 달력을 녀석 손에 쥐어 주었다. 그날의 소득은 용득이의 발굴이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가난의 질곡을 끊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가 꼭 되지 않아도 성장할 동안 만날 수많은 유혹과 방황과 좌절을 딛고 멋진 어른이 되었으면 싶다. 경기 부천 약대동에 위치하고 있는 ‘새롬지역아동센터’는 열네 평이라는 협소한 공간이 정부 지원기준에 미치지 못해 그간 절반가량의 지원금만 받아오다, 다행히 두 달 전 한 독지가의 후원으로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바닥에 보일러를 놓지 못해 서른여덟 명의 아이들은 방석과 온풍기만으로 추운 겨울을 나야 합니다. CJ 도너스캠프는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온라인 나눔터’입니다. 지역아동센터, 공부방 등의 선생님들이 올린 교육 제안서들을 후원자가 보고 직접 선택해 기부합니다. www.donorscamp.org . 꿈꾸는 공부방’은 월간 <샘터>와 도너스캠프가 함께하는 지식기부 프로젝트입니다. 매달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사들이 1일 선생님으로 직접 공부방을 찾아가 아이들과 재능과 경험을 나눌 예정입니다.글 고정욱(소설가, 아동문학가) | 사진 이현정 2008년 12월
  • 텔레비전 전쟁

    텔레비전 전쟁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텔레비전 리모컨부터 든 남편은 늘 그렇듯 채널 돌리기에 빠져든다. “하하하, 큭큭큭.”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남편의 웃음소리가 집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숙제를 하러 방에 들어갔던 큰아이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한마디 했다. “아빠, 너무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잖아요.” 내 속이 다 시원했다. 집에 오면 아이들하고 놀아주고, 책도 좀 읽어주고, 같이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고 그렇게 일러도 자식은 그저 낳아놓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고 있으니, 남편의 태도에 부아가 치밀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버럭 화를 내며 아이를 거실로 불러내는 것이 아닌가. “너 이 녀석! 어디서 그런 못된 걸 배웠어?” 아빠가 심하게 화를 내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아이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나와 남편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남편은 다시 “아빠 말이 우스워? 왜 대답을 안 해?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하며 아이를 다그치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를 야단칠 때는 가장의 권위와 집안의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웬만하면 참견을 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아이를 무조건 윽박지르기부터 하는 남편의 태도는 잘못된 듯했다. “뭘 잘못했는지부터 말해주고 야단을 쳐요.” 그랬더니 아이에게로 향했던 화살이 금세 나에게 돌아온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애가 저 모양이지.” 단순히 아이 문제가 아니라 부부가 풀어가야 할 문제다 싶어 나는 우선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나 쭈뼛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아이에게 남편은 다시 고함을 질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아이는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곁에 있던 작은아이도 책을 읽다 말고 따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조용히 해결하려 했는데 아이들의 눈물을 보니 나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두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기가 무섭게 남편은 내게 화를 낸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애들이 버릇이 없는 거 아니야.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는데 어디서 아들 녀석이 시끄럽다고 짜증을 내?” “그래서 내 탓이라고?” “당연하지. 그러면 하루 종일 나가서 돈 벌어오는 내 잘못이야?” “누가 당신 잘못이래? 하지만 이번엔 당신이 너무 심했잖아.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는 거 힘든 줄 알아. 그리고 고맙고. 그런데 애 공부하는 시간에 텔레비전 틀어놓고 꼭 그렇게 시끄럽게 해야 돼?” “뭣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것도 안 봐야 되는데? 아예 나가라고 해라.” “그런 뜻이 아니잖아. 낳기만 한다고 부모야? 남들은 학원 보내고 과외 시키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못 되니까 분위기라도 만들어주자 그거지. 부모 가난한 줄 알고 스스로 공부하는 애들이 기특하지도 않아?” “자식 그렇게 상전처럼 받들어 키우면 돌아오는 게 있을 거 같아? 당신이나 정신 똑바로 차려.” 텔레비전 때문에 큰소리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무리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지만, 아홉 살 아이의 집중력으로 어찌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유혹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남편에게 아이들이 공부할 때만이라도 참아달라고, 정 보고 싶으면 볼륨이라도 줄여달라고 수십 번도 넘게 부탁했다. 남편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삶의 유일한 낙이 텔레비전인 남편이 가끔 지방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면 만세삼창이라도 외치고 싶어진다. 남편이 없을 때 아이들은 학교 갔다 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숙제하고, 책 보고, 독서록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처음엔 투정도 부렸지만 이젠 텔레비전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남편이 오면 이렇게 잘 다져놓은 생활 리듬이 단번에 깨져버린다. 나 혼자 백날 발품 팔아 책 빌려오고, 생활비 아껴서 책 사주는 열성을 보이면 뭐하겠는가? 가정교육은 엄마만의 몫이 아니란 것을 남편은 모르는 걸까? 아버지의 권위는 텔레비전 리모컨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쥐었을 때 비로소 바로 선다는 것을 아버지들이여 제발 알아주시길. 주경심_ 결혼 10년차 주부이며 아홉 살인 아들 건이, 일곱 살인 딸 민이의 엄마입니다. 의류 판매업을 하는 남편은 물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순응형, 필자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도전형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남편의 짐을 덜고 싶어 공인중개사에 도전했습니다.2008년 12월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경제위기로 흑자도산 위기 처했는데…

    Q 기계 부품을 제조해 국가기간산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인데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흑자도산의 위기에 있습니다. 은행은 대출연장을 받으려면 원금 일부라도 갚거나 추가담보를 내놓으라고 하는데,이미 개인재산을 모두 회사에 내놓은 터라 막막합니다.평생 일군 사업장을 두고 저와 종업원들이 그냥 집으로 가야 하나요. - 편흥철(54세) A 먼저 앞으로 기업활동으로 얻는 현금 수입으로 제조원가와 판매비,관리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평가해 보십시오.그것이 가능하면 기업의 과실인 영업이익을 채권자,주주 기타 이해관계인 사이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가 남을 뿐입니다.즉 기업은 계속 운영하고 다만 부채와 자본구조만 재조정하면 됩니다.통합도산법 제2편의 기업회생절차는 금융채무의 상환을 일시 중지하고 기업의 조업을 계속하면서 이해관계인들에게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게 합니다. 물론 이 절차에 대해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분들도 많지만,합리적인 채권자라면 동의합니다.기업의 도산이 문제되는 상황에서는 기업의 실패로 인한 위험은 회사 경영진보다는 채권자 쪽에 있습니다.특히 기술과 설비투자를 필요로 하는 제조업의 경우에는,막상 기업주가 손을 놓아 버리면 공장과 설비 전체에 대해 담보를 쥐고 있는 은행이라고 하더라도 답답해집니다.설비가 가동되지 않으면 고철 덩어리가 되고,종업원이 지키지 않으면 설비도 제품도 도난당할 수 있습니다.그러기에 기업이 어려워지면 은행은 자신의 비용으로 경비원을 파견해 설비와 재고를 지키고 경리직원을 파견해 자금 관리를 하기도 합니다.즉 회생절차로 기업의 조업을 계속하고 영업을 정상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 주로 채권자에게 미치기에 적절한 회생계획에는 동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나아가 계속기업가치가 있는 기업의 경우에는 은행 측에서도 자발적으로 기업 쪽에 워크아웃 절차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물론 금융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나지 않는 영업이라면 사회적으로 필요없는 활동이거나 타 업체에 비해 생산비가 비싼 한계기업이므로 퇴출될 필요가 있겠습니다.그렇지만 그 판단에는 기업구조의 조정과 거래조건의 개선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 [기고] ‘과거’에 갇힌 국정원법 개정 논란/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기고] ‘과거’에 갇힌 국정원법 개정 논란/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국정원 관련법 개정논란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찬반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는 지난 정기국회 기간 내내 팽팽했다.국가정보원의 역사는 그야말로 영욕의 역사였다.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에서 안전기획부를 거쳐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자 노력해 왔다. 과거 민주화 세력은 정보기관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김영삼 정권,김대중 정권 그리고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정보기관만큼 철저한 세탁과정을 거친 기관도 없을 것이다.독재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고 조직도 바뀌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의 정보기관’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태를 보여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키기도 했다.야권에 대한 광범위한 도청이 자행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파일을 들고 선거캠프를 기웃거리는 직원들은 프로페셔널들이 아니었다.비밀이 지켜져야 할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이 대통령선거 직후 유출되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해프닝도 있었다.한때 정보기관을 해체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극단적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정권의 정보기관’은 필요없지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반드시 필요하다.양지를 지향했던 정보기관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 차 있지만,본래의 음지를 지향한 정보기관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는 초석이었다. 국정원의 안보전시관 한구석에는 48개의 별이 있다.임무를 수행하다 산화한 직원들이다.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들은 모른다.그러나 그들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도 민주화도 없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환경은 크게 변했다.핵무기를 개발하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북한이 어떻게 될지,그리고 중국의 부상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우리의 대응 하나하나가 정보에 의해 좌우된다.특히 21세기의 새로운 위협들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데 있어서 첨단의 정보력이 필요하다.9·11테러 이후 방대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내린 결론은 ‘상상력의 부재’였다. 할리우드 영화도 상상하지 못한 규모의 테러를 국가가 아닌 테러집단이 할 수 있는 시대다.동네 평범한 청년들이 어느 날 런던을 아비규환으로 만든 지하철 테러를 감행한다.우리도 테러의 무풍지대가 아니다.세계의 모든 정보기관들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의 정보력 강화는 물론 새로운 유형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정보력의 최첨단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는 ‘정보통신의 혁명’에 의해 촉발되었다.정보력은 사실상 21세기 최고의 성장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정보를 쥐고 활용할 수 있는 자만이 세계를 주도한다.그 최첨병이 바로 국가정보기관이다. 세계의 정보기관들은 진화하고 있다.그런데 우리는 한반도의 급변하는 상황과 세계화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세계 초일류의 국가 정보기관을 갖고 있는가.여전히 우리 정보기관은 과거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국정원 관련 법안 개정논의를 보면서,여전히 우리는 과거의 프리즘에서 정보기관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국정원 관련법 개정은 ‘정권의 정보기관’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 세계 최첨단의 초일류 정보기관으로 진화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美,시카고發 ‘공교육개혁 태풍’ 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6일(현지시간) 시카고 ‘다지 르네상스 아카데미’에서 가진 7분 남짓한 시간의 교육부장관 임명 기자회견에서 ‘개혁(reform)’이라는 단어를 5번이나 사용했다.장관 내정자인 아니 덩컨 시카고 교육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학교 중 하나인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 자체부터가 교육시스템 변화를 예고한다. 오바마 당선인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두번이나 교육 문제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특히 3~4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교육을 강조해 왔다.이는 빌 클린턴 정부에서 필요성이 주목받은 바 있지만 조지 부시 정부로 넘어오면서 교육의 초점이 평가로 옮겨지자 제대로 정착될 기회가 없었다. 이에 오바마는 이 부문에 100억달러(약 13조원)를 투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적지 않은 금액이다.이를 의식한 듯 오바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자리 창출과 성장은 교실에서 시작한다.”면서 “향후 몇년간 교육이 다음 세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교육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다. 사실 재정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돈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오바마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시스템’이라는 말 자체를 하기가 망설여질 정도로 현재 미 교육에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이에 오바마는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정책 조율을 담당할 대통령 직속 ‘조기교육위원회’ 개설을 약속한 바 있다. 오바마 교육 정책의 방향은 중도 개혁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그는 이날 “선진국 가운데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4학년생의 3분의1이 기본적인 산수도 못한다.”며 미국의 교육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뒤 공교육 논쟁이 대해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용납될 수 없다.”고 양분된 공교육 논쟁을 끝내고 각각의 교육 정책의 장점을 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덩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아이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는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다.”며 교육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그는 시카고 학생들의 기초 학력이 크게 신장됐다고 설명하면서 “시카고에서의 경험을 전국에 적용시키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오바마를 지원해온 교원 단체들을 의식,아이들의 질좋은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정부는 ‘하멜른 시장’이 되려는가/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정부는 ‘하멜른 시장’이 되려는가/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들끓는 쥐를 없애만 준다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드리지요.” 하멜른 시장(市長)이 말했다.사나이는 거리를 돌며 피리를 분다.쥐들은 피리소리에 춤을 추며 사나이를 뒤따랐다.이윽고 다다른 강.사나이의 피리소리는 강물을 넘고,강물 속으로 쥐들이 사라진다.피리소리도 차츰 낮아진다.하멜른에는 다시 평화가 왔다.모두가 어제의 일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돈을 주겠다던 약속도 쥐가 없어진 하멜른엔 남아 있지 않다.사나이는 다시 피리를 분다.이젠 아이들이 뒤따르고 사라진다.아이들이 사라진 하멜른엔 희망도 사라졌다.브라우닝의 독백의 묘미가 살아나서일까.그의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전하는 1284년에 사라진 아이들의 경고가 새롭다. 또다시 위기다.위기라는 말이 초라할 만큼 지금의 곤란은 크고 깊다.내수침체로 영세 상인은 끼니를 걱정하고,대기업의 하청구조에 묶인 중소기업은 휘청댄다.비정규직은 점점 늘어 모두가 비정규직이 될 판이다.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졸업을 미룬 채 기업 입맛에 맞는 ‘스펙’을 갖추느라 학원을 전전한다.공기업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감원의 공포가 사회의 근간인 삼사십대 노동자들을 위협한다.가족이라는 부양시스템이 이미 해체된 상황에서 고령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허드렛일이라도 찾아나서야 한다. 위기의 역사를 돌아보면,고통을 짊어진 이도,이를 극복한 이도 노동자·영세상인·중소기업가와 같은 서민들이었다.해마다 2000시간이 넘는 노동을 감당했고,5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을 감내했다.중소기업가들은 대기업의 횡포에도 묵묵히 제조현장을 지켜냈다.위기라는 쥐를 몰아내기 위해 나름의 피리를 열심히 불어댄 그들이 있었기에 위기는 극복되고 또 극복됐다.지난 대선에서는 경제대통령을 자처한 후보에게 자신의 한 표를 기꺼이 내놓았다.부자를 꿈꾸어서가 아니다.알뜰히 산다면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삶,그것이 이들의 희망이었을 게다.경제를 살리겠다던 경제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나름대로 열심을 다해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어리둥절하다.대기업과 부자만을 위한 감세를 신앙처럼 되뇐다.세금을 줄이면 투자가 촉진돼 고성장을 이룰 수 있단다.미국 발 금융위기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침체의 늪으로 밀어 넣는 판에 감세가 얼마나 투자로 이어질지 의문이다.더구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면 위기극복의 기반인 사회적 합의는 물 건너간다.고용대책에도 노동자는 없다.비정규직으로라도 일자리를 채우려는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1~2년 더 연장할 모양이다.내수부족이 곤궁한 비정규직의 증가에서 비롯됐을 터인데 더 늘려서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애써 합의한 엉성한 기준마저 내동댕이쳐질 마당이니 정규직의 꿈을 또 한 번 접어야 하는 비정규직의 맘은 어떠할까.최저임금제 ‘개선’도 그렇다.예순이 넘는 노동자의 몇 푼 안 되는 돈마저 깎아내리면 정말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는가. 지금 정부의 모습이 하멜른 시장 꼴이다.늦지 않았다.세금을 줄인다는 둥,하천을 정비한다는 둥 허튼 데 돈 쓸 궁리하지 말고 위기극복의 주역인 서민들을 보상하라.사회보장지출과 공공부문 일자리를 확충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연구개발과 교육훈련에 투자해 성장 동력을 다져라.그러지 않으면 이들이 피리를 불며 떠날지 모른다.피리소리를 따라 ‘희망’이라는 아이들이 사라질지 모른다. 그 뒤 절망의 쥐들이 창궐한다면 어쩔 셈인가.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 [김형준 정치비평] 대통령의 ‘리멤버 1219’

    [김형준 정치비평] 대통령의 ‘리멤버 1219’

    이명박 대통령(MB)이 이틀 후면 대선 승리 일주년을 맞이한다.일년전 국민들은 ‘경제만은 확실히 살리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표의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를 안겨주었다.비록 이 후보가 BBK 사건과 관련된 의혹이 있었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능력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표를 몰아주었다.그런데 일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믿음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몹시 불안해하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만 매진했던 대통령에게는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지난 일년간의 행적을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우왕좌왕(右往左往)’이고,‘지리멸렬(支離滅裂)’이며 ‘아수라장(阿修羅場)’이다.놀랍게도 5년전 집권 1년을 맞이했던 노무현 정부에 내려졌던 부정적 평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현 정부는 정부 조직 개편,내각 인사,총선 공천,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을 둘러싼 일련의 파동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일년을 보냈다.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에 끌려다니면서 대통령의 권위는 집권 초기부터 힘없이 무너졌다.결과적으로 집권 초기 70%에 육박했던 대통령 지지도가 반년 만에 20%대로 급락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은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 상승이 충족되지 못하면서 MB 지지층에서 이탈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정부 출범전에는 MB를 지지했지만,지금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탈층’이 23.4%를 차지했다.이 수치는 ”정부 출범전에는 MB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지지한다.”는 ‘유입층’(5.2%)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이다.MB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40대(25.6%),중도(23.5%),화이트칼라(25.2%),수도권 거주자(26.7%)에서 이탈의 규모가 예상외로 컸다.더구나,지난 대선에서 MB를 지지했던 37.8%가 이탈하는 사태에 이르렀다.이러한 이탈층만을 대상으로 이탈 이유를 물어본 결과,“경제 살리기 능력 부재”를 지적한 비율이 39.4%로 가장 많았다.그 다음으로 “인사정책 실패” 18.7%,“정책의 일관성 부재” 14.9%,“리더십 부족” 11.1% 순으로 나타났다.이런 조사 결과는 MB에 대한 지지 철회의 근본 이유가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과 능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MB는 대선 승리 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와 같은 참담하고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백가쟁명식의 해법이 대두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대통령은 “나는 예외이며 지금은 고전하지만 결국은 성공할 것이다.”라는 근거없는 낙관주의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더욱이 서울시장 시절처럼 청계천과 교통체계 개편과 같은 정책으로 지지도를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한방 신화’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내년부터 실시되는 4대강 정비 사업이 이러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면 일찍 포기하는 것이 옳다.주먹에 쥐고 있는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집을 수 있는 것처럼 대통령도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친이명박 계파를 과감하게 해체하고,만사가 형(兄)으로 통한다는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며,정치는 더러운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더불어,대통령은 자신과 동고동락하고 있는 관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글로벌 경제위기로 온 나라가 침통한 이때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요란하고 허황된 ‘리멤버(Remember) 1219’가 아니라 조용하고 봉사하는 ‘대선 승리 1주년’ 행사를 보낼 것을 주문해 본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교포사회 ‘바이코리아’ 불붙다

    교포사회 ‘바이코리아’ 불붙다

    ‘마이너스 성장시대’ 속에서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틈새 찾기가 바쁘다.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지키기를 위한 우유부단도,돈을 날린 부자들의 탄식도 존재한다. 머릿속엔 다들 복잡한 계산이 이어졌지만 국민 대부분의 대차대조표는 마이너스다. ●환테크 목적 원화 사재기 11월 644억 불황 속 틈새 찾기에 가장 적극적인 쪽은 교포사회다.교포사회에는 ‘바이코리아’ 열풍이 거세다.환율 급등과 국내 부동산 급락 등이 자산 증식의 기회로 여겨지는 탓이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중 해외거주자가 국내로 외화를 보내는 ‘송금이전수입’은 12억 8000만달러로,9월 6억 1000만달러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역대 최대 규모다. 10월 평균 환율(1327원)을 적용하면 무려 1조 7000억원이란 돈이 국내로 유입된 셈.한국은행측은 “대부분이 교포들의 국내 송금”이라면서 “국내 자산가격이 크게 내려가면서 투자목적의 송금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반면 내국인이 해외 거주자에게 보내는 ‘송금이전지급’은 10월 3억 4000만달러로,9월 5억 1000만달러에 비해 30% 이상 급감했다. 이렇게 국내로 들어온 자금의 일부는 강남 아파트 등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GS건설사 관계자는 “몇몇 전문중개업체가 나서 교포들의 달러와 강남 부동산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해외교포가 1년 전 10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면 100만달러 이상이 들었지만 최근엔 50만~60만달러 정도면 살 수 있는 것이 이런 현상의 이유”라고 말했다.지난달엔 해외교포와 국내건설사를 연결하려는 한 부동산 투자자문회사가 국내 건설사 등을 상대로 설명회를 진행했다.또 일부 건설사는 뉴욕과 LA 등 한인 신문에 광고를 하는 등 해외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환테크’를 목적으로 원화를 사두는 교포들도 크게 늘었다.11월 중 외환은행의 원화수출액은 644억원을 기록했다.역시 2006년 원화 수출을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월별기준)다.지난 7월 외환은행의 원화수출이 56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개월 사이 무려 11.5배나 많은 원화가 해외로 팔려나갔다.원화수출이란 국내 은행이 원화 지폐를 필요로 하는 해외 금융사에 수수료를 받고 원화를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크게 오른 환율이 점차 내려가면 그 차이만큼 환차익이 생긴다. ●개미들 우유부단… 주식회전율 급락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개미를 비롯해 주식투자자들은 우유부단한 모습이다.증시급락 이후 상장 주식의 회전율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일 현재까지 유가증권시장의 주식 회전율은 274.28%로 지난해보다 57.42%포인트 하락했다.코스닥시장도 564.11%로 260.90%포인트나 떨어졌다.주식 회전율은 거래량을 전체 주식 수로 나눈 비율이다.올 들어 코스피는 1주당 2.7번,코스닥시장은 1주당 5.6번의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매수와 매도시점을 잡지 못해 주식을 손에 꼭 쥐고만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주식시장 전체를 생각하면 부정적인 현상이다. 이런 가운데 전통적으로 투자성향이 보수적인 부자들도 금융위기의 한파를 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하나금융그룹이 자체 프라이빗 뱅킹(PB) 고객 2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고객들의 평균 재테크 수익률이 ‘-20%이하’라는 답이 무려 64%를 차지했다.‘-30% 이하의 손해를 봤다.’라는 답변도 31%를 차지했다.부자들의 95% 이상이 20% 이하의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에 응한 PB 중 70%가 내년 유망한 재테크 상품으로 ‘주식 혹은 주식형 펀드’를 꼽았다.낙폭이 큰 만큼 오름 폭도 크다는 판단인데 ‘반토막의 아픔’을 안고 있는 부자들이 이 조언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는 미지수다.참고로 국내 증시의 본격 회복 시기는 ‘내년 하반기’란 응답(49%)이 가장 많았다.내년 말 코스피지수는 ‘1500선까지 회복할 것’이란 의견도 30%로 가장 많았다.단,말 그대로 이는 참고사항이다. 유영규 조태성기자 whoami@seoul.co.kr
  • [지방살리기 100조 프로젝트] 세원 수도권 집중에 불균형 우려

    정부가 15일 발표한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지방소득세·소비세 신설이다.대부분의 세원과 세수를 쥐고 있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필요한 재원을 파악해 나눠주는 방식에서 탈피,지방 스스로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그러나 자칫 세원이 집중된 수도권에 혜택이 많이 돌아가면서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지방소득세·소비세를 도입하려는 목적은 지방 재정 여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종합부동산세의 대폭 축소에 따라 지방에 내려보내는 부동산 교부세 규모가 줄고,지방이전 기업의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분권교부세가 내년 말 기한이 만료되는 만큼,이를 지방 자주재원 강화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는 지역 간 재정 불균형과 집행상 문제점,국가 장기 조세정책 등을 종합 고려하여 검토하고,내년 3월까지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을 거쳐 5월 중 최종안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안은 지방소득세·소비세를 새롭게 부과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국민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정부 역시 난색을 표하고 있다.재정부 구본진 정책조정국장은 “현 정부의 기조는 국민의 부담을 낮추는 것”이라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원이 조정되는 것이지 세금 부담이 추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세 중 일부 세원을 지방소득세·소비세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현재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부가가치세율 10%에서 8%로 인하 ▲세율 인하분 지방소비세로 전환 방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원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역 간 재정 불균형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부산과 울산광역시,경상남도 등을 관할하는 부산지방국세청이 지난해 거둔 부가세는 690억원으로,서울시 부가세 7조 9667억원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단순히 부가세의 20%를 지방소비세로 돌리면 지방 재정이 오히려 어렵게 될 수 있다. 수도권에서 거둔 세금을 단순히 지방으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지방자치단체들이 거둔 지방소득세·소비세를 모아 서울과 지방에 1대 5 정도로 나눠서 보낸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현재의 지방교부세와 같은 방식으로 지방 자주재원 강화와 거리가 멀다.구 국장은 “지방 자주재원 강화는 지역에서 스스로 걷어서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징수 방법 등을 고려하면 지방소득세·소비세 도입이 쉽지 않다.”면서 “지역 간의 이해가 다르고 도입의 문제점이 많은 경우 도입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방소득세·소비세 신설과 별도로 지방세율·과세 대상 등을 지자체 조례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최저세율과 최소한의 과세 대상만 지방세법에 정하고 구체적 세율과 과세 대상,비과세,감면 등은 지역의 여건에 맞게 지자체 조례로 정하는 방안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낙후도 상위 30% 50개 시군 특별관리 163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기초생활권 개발 계획도 시선을 끈다.큰 방향은 ‘주민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대책’에 있다.전국 어디에서 살든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고,소외지역의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인구와 소득,서비스 접근성 등을 고려해 도시형,도농연계형,농산어촌형 등으로 유형화해 개발하기로 했다.도시형은 광역도시권 개발과 구시가지를 정비하는 것이고,도농연계형은 중심도시와 농촌지역간 통합개발하며,농산어촌형은 인접 군단위 지역을 통합적으로 연계해 개발하는 것이다. 시장이나 군수 또는 인접지역 시장·군수가 기초생활권 계획을 자율 수립하게 되며 중앙 정부는 계획수립 매뉴얼 등 컨설팅을 제공하게 된다.지방의 의료복지 서비스의 기반도 확충한다.‘살고 싶은 정주공간의 형성과 삶의 질 향상’ 차원에서 선진형 지방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현재 200여 기초생활권 개발 관련 사업을 7개 정책군(群) 21개 포괄 보조금 사업으로 통합·단순화하면 예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동시에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구분해 분권적 지역개발을 유도하기로 했다. 낙후도 상위 30% 수준인 50개 시군은 ‘성장촉진지역’으로 지정해 기반시설을 확충하고 국고보조율을 높여주며 접경지역 등 특수 지역에는 별도 지원책이 마련된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82개校 기숙형 공립고로 내년 전환 정부의 지역발전방안에 포함된 지방교육 종합대책은 지방교육 자치를 내실화한다는 게 기본골자다.이를 통해 교육문제 때문에 수도권으로 기업과 사람들이 몰리는 현상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학교 다양화와 시·도교육감 권한 강화다. 교과부에에 따르면 전체 86개 군단위 지역에서 82개교가 내년에 기숙형 공립고로 바뀐다.기존 학교에 기숙사를 신·증축하는 방식이다.82개고는 2010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받는다.이어 내년에는 추가로 60개교를 선정한다.정부는 전국의 지방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2011년까지 150개교를 기숙형 공립고로 만든다는 방침이다.이를 통해 도·농간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교육과정 운영이나 교원인사에 있어 학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율형 사립고도 2012년까지100개교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에 선정한다.서울 은평뉴타운에 들어서는 자립형 사립고와는 개념이 다르다.시·도별 지역특색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정책기능 강화 등 시·도교육감의 권한강화 작업도 계속된다.교과부 관계자는 “그동안 중앙부처에서 교육사업계획을 수립했는데 시도교육청에서 학교급별 교원배치기준이라든지 학교평가 실시권을 교육감이 행사함으로써 지역실정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전국 100개 문화시설에 전문인력 파견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문화예술·체육활동·관광자원 개발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역의 문화사업은 거의 백지상태”라며 보고용 파워 포인트의 첫 장을 백지로 올려놓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눈길을 집중시킨 뒤 “방방곡곡에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게 해 누구나 장벽없이 문화를 누리는 지역문화를 조성하고,미래와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이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문화예술·체육활동의 지원을 확대하고 ▲문화·체육 기반시설을 확충해 삶의 질을 높이며 ▲지역특성에 맞는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문화창조 거점도시를 조성해 지역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사업에서는 구체적으로는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가동 인력을 확대하기로 했다.국립극단 등 11개 국립예술단체가 70개 시·군 문예회관을 방문하고,우수 민간예술단체가 문화시설이 없는 산간벽지를 찾아가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이 진행된다. 전국 100개 박물관·미술관·문예회관 등에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도 파견한다.전국 4700개 초·중·고교에는 예술강사를 지원하고,전국 600개 초등학교에는 방과 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농식품펀드 2011년까지 1000억으로 정부가 2012년까지 농어촌 정주(定住) 여건 개선에 4조원,산업 활성화에 2조원 등 총 6조원을 투입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선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농어촌 정주여건 개선 및 산업 활성화 방안’을 통해 내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 53곳에 농어촌형 뉴타운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50~300가구 규모의 뉴타운은 각종 생활편의 시설을 갖춘 전원주택 단지 형태로,교육여건 개선을 위해 기숙형 공립고등학교 설립과 함께 추진된다.연말까지 시범 사업단지 5곳을 선정하고 내년에 1148억원(국고 900억원)을 투입한다. 농어촌 산업육성을 위해 농업인 공동투자 식품기업 설립과 한과·전통주 등 향토 식품업체의 시설 현대화 등도 지원한다. 올해 500억원 수준인 농식품 분야 전문 투자펀드 규모도 2011년까지 1000억원으로 늘린다. 또 경사율 15% 이상의 한계농지의 소유규제를 폐지하고 농지 전용(轉用) 절차를 대폭 완화해 각종 산업·휴양시설,녹색에너지 사업 투자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전국 56개 농산업 관련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광역 농식품 클러스터 등 정책을 적극 연계해 기업활동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中 개혁 개방 30년 (中)]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론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개혁·개방의 이론적 출발점은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론이랄 수 있다.“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잡초론’이 한 세대를 풍미한 뒤의 일이다. 그는 ‘고양이론’을 통해 “왜 시장이라 하면 곧 자본주의이고,계획이라 하면 사회주의라고 말하는가.일본에도 기획청이 있고 미국도 계획을 한다.계획과 시장은 모두 필요하다.”며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이데올로기와 계급 투쟁에 젖은 중국인에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회복시킨 중요한 전환점이다.이어 “일부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먼저 부유해지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선부론(先富論)을 제시했다.사회주의 평등의 상징 ‘다궈판(大鍋飯·한솥밥)’을 깬 것이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정치 파동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등은 개혁·개방에 회의적 시각을 부추겼다.앞서 8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경제특구 설치의 필요성과 가능성 모색 등에 대해 치열한 사회 논쟁도 불러일으켰다.1990년대 중반에도 향후 방향성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개혁·개방의 성(姓)이 사회주의의 ‘사씨’냐 자본주의의 ‘자씨’냐를 묻는 ‘사씨자씨’(社氏資氏) 논란도 이때 빚어진다.덩샤오핑은 “오늘날 세계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지금 문을 닫고 되돌아가서는 과학기술은 따르려 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며 개혁·개방의 당위성을 끊임없이 설파했다. 1992년 덩은 선전,주하이(珠海),상하이(上海) 등을 돌고“개혁·개방을 견지하지 않고 인민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의 길밖에 없다.기본 노선은 백년이 가도 동요될 수 없다.”며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내놓는다.이는 지금까지 ‘사회주의 시장주의’ 노선이 견지될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의 하나로 꼽힌다. jj@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9) 춤추는 남녀

    춤을 지나치게 좋아한다거나 그래서 ‘춤바람’이 났다면,무언가 온당치 않은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다.그 이유는 아마도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기 위한 가부장제에 있을 것이다.추측건대 ‘춤바람’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20세기 후반 사교춤이 유행하고 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춤을 즐기는 것은 원래 한국인의 오랜 전통이었다.아니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모든 민족은 모두 춤을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각설하고,신윤복의 ‘춤’(그림 1)을 보자.그림의 윗부분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고,아래쪽 넓은 공간에 춤을 추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있다.그림 오른쪽에 네 명의 악공이 있는데,장구를 치는 사람이 하나,피리를 부는 사람이 둘,해금을 켜는 사람이 하나다.춤을 추는 여성은 아마도 이 악공과 한 팀을 이루고 있는 기생일 것이다.조선 후기에는 악공과 기생이 한 팀을 이루어 민간의 초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았다.여기서 이 악공과 기생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될 터인데,당연히 지금 춤을 추고 있는 양반과 그 왼쪽의 두 사내다.짙은 나무 잎사귀로 보아,계절은 여름이 틀림없다.어느 여름날 시원한 산그늘을 찾아가 풍악을 잡히고 기생과 춤을 추면서 보내는 한때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양반들이 잔치에서 춤추는 건 흔한 일 그런데 그림 왼쪽에 있는 두 사내의 포즈가 가관이다.한 사내는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 있고,아래쪽 사내는 비스듬히 누워 있다.둘 다 검은 갓끈을 하고 있고,또 아주 젊은 얼굴로 보아 벼슬하지 않은 젊은이다.근엄한 양반들이 어찌 갓끈을 풀고 갓을 젖혀 쓰고는 비스듬히 누운 채로 남녀 한 쌍의 춤을 감상하고 또 직접 춤을 출 수 있다는 말인가.조선시대 양반에 대해 지금 사람들은 오해가 많다.즉 양반이면 모두가 예를 지키고 법도를 따라 근엄한 표정으로 행동을 삼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옛날 양반이 지금 사람들보다는 유가가 요구하는 윤리와 도덕,그리고 예를 더 지킨 것은 사실이겠지만,그것이 모든 양반들에게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된 것은 아니었다.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도 조광조나 율곡이나 퇴계,남명 선생 정도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고,이 그림에서처럼 더우면 갓끈을 풀고 비스듬히 기대기도 하고 기생과 어울려 춤도 추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찾아보면 춤에 관한 기록은 결코 드물지 않다.예컨대 ‘실록’에는 그런 자료가 적지 않게 나온다.여기서는 조선 후기의 ‘실록’을 몇 구절 읽어보도록 하자.‘사변록’이란 책에다 주자와 다른 경전 해석을 써서,정적들에게 사문난적으로 찍혀 곤욕을 치렀던 박세당은 1703년 귀양살이가 결정되지만,제자 이인엽이 숙종에게 입이 닳도록 간청하여 겨우 유배를 면하고 곧 세상을 뜬다.그날조 ‘숙종실록’의 사신은 박세당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박세당은 젊은 시절 국구(國舅) 김우명(金佑明)의 집안 잔치에 참석했을 때 일어나 춤을 추기까지 하였으므로,사론(士論)이 비루하게 여겨 그를 전랑(銓郞)에 추천하는 것을 막았다.”박세당이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양반들이 잔치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었음은 ‘풍산김씨세전서화첩(豊山氏世傳書畵帖)’에 실린 ‘해영연로도(海營宴老圖)’(그림 2·작자 미상)를 보아서도 알 수 있다.1529년 김양진이란 분이 황해도 감사가 되어 감영에서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었을 때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전문화가가 그린 것이 아니라서 그림은 미숙하지만,기생 두 명의 춤과 노인들이 일어나서 일제히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조실록’ 49년 8월 9일 기로소 의정부 중추부 주원(廚院)에서 진찬(進饌)하였을 때다.잔치가 무르익자 영조는 영의정 한익모 부자,판서 조영진 부자,조창규 김사목에게 대무(對舞)하라고 명한다.그들은 왕명에 당연히 일어나 춤을 추었다.왕과 신하가 참석한 잔치에서 신하가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은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물론 깐깐한 사신은 한마디 한다.“한익모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소매를 들고 너울너울 악공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또 아버지와 아들은 짝을 지어 춤을 출 수 없는 법인데도 경솔하게 일어나 춤을 추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비웃었다.”한익모가 영의정이라서 비난을 받은 것이지 춤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자는 소매 떨치고 여자는 손 뒤집어 사정이 이러니 조선조의 양반들 역시 당연히 춤을 즐기고,또 여성과도 춤을 출 수가 있는 것이다.‘영조실록’ 18년 9월 3일조를 보면,대간(臺諫)은 함안군수 이휘진이 악기를 쥐고 악공들과 어울려 연주를 하고,기생과 마주보고 춤을 추었다고 하여,대간 후보에 오른 것을 빼 버리라고 요청하고 있다.여성,특히 기생과 춤을 추는 것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또 영조가 대간의 청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기생과 춤을 추는 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춤을 어떻게 추었던가.유득공의 ‘경도잡지’는 남녀의 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춤은 반드시 대무(對舞)인데,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대무를 춘다는 것은,춤을 추면 으레 남자와 여자가 같이 춘다는 것을 의미한다.‘경도잡지’는 서울의 풍속에 대해 쓴 책이니, 유득공이 살던 시대,즉 18세기 서울에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이다.그림(1)이 풍습의 증거가 된다.‘경도잡지’의 “남자는 소매를 떨치고 여자는 손을 뒤집는다.”는 구절의 원문은 ‘男拂袖,女?手’인데,무엇이 소매를 떨치고 손을 뒤집는 것인지,또 이 춤이 어떤 춤인지는 견문이 짧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하지만 그림(1)을 보면,남자의 옷소매는 손을 감출 정도로 길고,여성은 손을 드러내고 있으니,‘경도잡지’가 말한 바의 춤인 것이다. ●조선전기 여진족의 춤 ‘목후무´ 유행 조선 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만난 여성과 춤을 춘 경우도 발견된다.남효온(南孝溫·1454~1492)은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인데,그는 1485년 친구들과 개성 일대를 유람하고 ‘송경록(松京錄)’이란 기행문을 남긴다.그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양절 날 동서남의 여러 산 곳곳마다 남자 여자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여 자못 태평한 기상이 있었다.…첨성대로 갔다가 우연히 야제(野祭)를 지내는 남녀를 건덕전 터에서 만났다.남녀가 다투어 우리를 맞이했는데,백원(百源·李摠)을 윗자리에 앉히고 우리들은 그 다음 줄에 앉았다.자용(子容)이 맨 처음이었고,정중(正中·李貞恩)이 그 다음,회녕(會寧·宋會寧)이 그 다음,석을산(石乙山)이 그 다음,숙형(叔亨)이 그 다음,내가 그 다음이었다.…백원이 정중을 돌아보며 비파나 금을 타라고 하였다.회녕은 피리를 불고,석을산은 노래를 불렀으며,자용은 일어나 춤을 추었다.비파와 노래와 피리가 각기 그 오묘함에 이르자,자용이 남녀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여자와 마주 보고 춤을 추었다.춤이 끝나자 목후무(沐?舞)를 추었는데,모든 동작이 음악에 맞았다.그것을 보고 주인 남녀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목후무란 여진족의 춤이다.성종 당시 공경대부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어쨌거나 좋다.남효온 일행은 개성의 첨성대를 찾아갔다가 굿을 하는 한 무리의 남녀를 만났던 것이고,그 자리에 끼어서 같이 춤을 추며 놀았던 것이다.특히 자용이란 사람은 가장 젊은 여자를 파트너로 하여 춤을 추었고,그 춤에 모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하니,모르는 여자와 춤을 추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춤을 추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되었다.공원에서 얼후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대한민국에는 그런 풍경이 없다.생활에 여유가 없어서인가? 춤은 모두 어두운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으로 퇴각해 버린 것인가.가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으로 소문이 난 한국인이 어찌 이리되었는가?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 유일 돌다리 연구가 손광섭

    개울가에 돌 하나만 툭 던져놓아도 징검다리가 된다.그리곤 개울을 건너,가지 않았던 인생길을 걷는다.태초의 어떤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을 터.너와 나의 만남,남녀간의 사랑도 말이다.헤어짐도 당연지사였겠지.올해초 2008년이라는 개울 앞에 하나 둘 돌을 놓기 시작했다.벌써 해가 저문다.지금까지 어떻게 건너왔는지 잠시 되돌아본다.아마 세가지로 분류되지 않을까. 돌다리를 두들겨보지도 않고 천방지축 손오공처럼 건넜을 테다.삼장법사처럼 신중하게 두들겨보고 건너기도 한 것 같다.또 바둑의 이창호 9단처럼 두들겨보고도 건너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겠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석두론(石頭論)을 좋아했다.개혁·개방을 설계하면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摸着石頭過河)’고 주창했다.또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내세웠다.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덩샤오핑은 이 두 가지로 중국대륙을 호령했다. 이래저래 돌다리는 인생철학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그런데 오랜 세월,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돌다리들이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사라져 가고 있다.여기서 잠깐! #문제1: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징검다리는?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 있으며 수곡리와 추포리를 연결한다.길이 2.5㎞,돌덩이가 무려 3만 6000여개에 이른다.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300여년 전인 조선시대 추포도에 사는 문씨와 장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하나 둘 돌을 던지며 연결했다.옛날에는 이 징검다리로 새색시들이 가마 타고 시집갔다.이때 가마꾼들 사이에 불려진 노래가 지금도 전해진다.‘띄었냐? 띄었다! 뒤쪽의 가마꾼이 띄었냐? 앞쪽의 가마꾼이 띄었다!’ #문제2: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이다.통일신라 때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청운교는 높이 3.82m,너비 5.11m이다.백운교는 높이 3.15m,너비 5.09m,길이 6.3m이다.이름 그대로 푸른 구름과 흰구름 다리를 뜻한다. 다리 위는 천상의 세계요,다리 아래는 속세를 표현한다.하여,이 다리를 건너면 부처의 나라로 들어간다.하지만 기원전 37년에 만들어진 청주 남석교가 가장 오래됐다.애석하게도 이 다리는 일제 때 땅속에 묻혀 여전히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아울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공사는 신라 실성왕 12년(413년)에 완성된 평양주대교(平壤州大橋)로 위치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발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문제3: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뭐니뭐니 해도 진천의 ‘농()다리’를 꼽는다.고려시대 몽골 침략 때 세워졌으며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다리 중 동양에서 가장 오래됐다. 길이 93.6m,폭 3.6m인 이 다리는 거대한 지네가 물을 슬쩍 퉁기며 물을 건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다리답게 사연도 많다.안질을 앓던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가다가 물을 마셨다는 소습천(어수천·御水川), 많은 장수들과 말발굽의 흔적 등이 남아 있다. 이렇게 돌다리만 고집스럽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손광섭(66) 청주건설박물관장.15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숨어 있는 돌다리를 찾아내 거기에 담긴 천년의 세월을 끄집어내고 있다.다리품을 모아 7년 전 청주에 다리박물관인 ‘건설박물관’을 세웠다.또 2004년 단행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를 발간했다.책에서 송광사 삼청교,강경 미내다리,함평 고막천 석교,광한루 오작교,논산 원목다리 등 전국 30여개의 돌다리를 소개했다.최근에는 돌다리 연구 완결편인 ‘천년후,다시 다리를 건너다Ⅱ’를 펴냈다.목릉 금천교를 시작으로 제주의 명월교에 이르기까지 전국 27개의 돌다리를 새로 추가했다.특히 보길도 굴뚝다리,봉화 돌다리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지거나 훼손돼 위험에 처한 다리까지 실었다.그가 국내 유일의 ‘돌다리 전문가’로 불리는 까닭이다. 청주건설박물관에서 손 관장을 만났다.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진다.전국을 찾아다니며 직접 찍은 돌다리 사진이 사방 벽으로 쭉 전시돼 있었다.유리 전시관 안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됐다는 저승과 이승을 잇는 돌다리,당시 유배지로 떠나던 선비가 사용했던 화장실,조선시대 각종 건설장비 등을 비롯해 발해시대의 석등탑과 삼족우,송나라 때 사용됐던 소뿔먹통,타이타닉 배에서 뽑았다는 못 등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박물관 3개층에 걸쳐 시대별로 진열돼 있었다.예멘의 벽돌,페루 마추픽추의 관련 흔적 등 해외자료까지 합하면 무려 수십만 점은 족히 돼 보였다.이런 소문이 나 외국인들도 이곳을 찾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떻게 해서 돌다리를 연구하게 됐습니까. “원래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자연스럽게 전국을 다니게 됐죠.그때마다 지방 마을에 있는 돌다리를 접하면서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다리의 돌 하나하나에 예술이 있고,선조의 삶과 해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1993년쯤부터는 아예 주말마다 거의 전국에 흩어진 돌다리를 만나러 도시락 싸들고 떠났지요.” →세월 속에 없어진 돌다리도 많을 텐데 자료찾기는 쉽던가요. “고서점은 물론 국회도서관에 가도 없더군요.결국 그동안 간간이 소개됐던 도지(道誌)와 군지(郡誌) 등을 뒤졌습니다.그걸 바탕으로 시골동네 어르신들에게 찾아가 밥과 술을 사드리면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암태도의 징검다리 돌덩이 숫자가 3만 6000여개인 이유도 일년 365일 평안을 기원하는 속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우리나라 돌다리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설화와 전설이 얽혀 있습니다.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의 무대가 된 남해의 돌다리,형제가 쌀 천섬을 들여 만든 거창의 쌀다리,17세기 우리 교각의 형태를 볼 수 있는 벌교 도마교 등에도 흥미로운 사연이 많습니다.이런 돌다리에 서서 천년 전,누가 무슨 일로,무슨 생각을 하면서 건넜을까 생각하면 막 흥분이 되고 그럽니다.” 처음에는 옛다리들을 보면서 달리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놈,잠 잘생겼다.예술이다.”라고 중얼거리다 보니 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술회한다.세계 어느 조각작품에도 뒤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미를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현실적으로 다리를 한 곳에 옮겨다 놓을 수 없기에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다녔다.또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피살된 개성의 선죽교 등 북한에 있는 것은 방북했을 때 어렵게 그림을 얻어다가 전시해 놨다.그는 “수십번 찾아가도 항상 말없이 반겨주는 것이 돌다리였다.”면서 남은 생애에 여건이 된다면 북한의 돌다리 연구를 꼭 해보고 싶다며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길 1943년 청주에서 태어났다.청주고와 청주대학을 나와 1968년 아버지로부터 건설회사를 이어받았다.그러던 어느 날부터 돌다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993년부터 본업보다는 아예 돌다리 연구에 매진했다.고서점이나 국회도서관 등에도 돌다리에 관한 자료가 없어 어려움도 많았다.결국 수소문하면서 도지(道誌)나 군지(郡誌) 등을 뒤져 자료추적을 했고 산골마을에 직접 찾아가 동네 어른들을 만나 돌다리에 얽힌 얘기를 기록했다.2001년 1월 청주에 국내 최초의 돌다리박물관인 ‘청주건설박물관’을 설립했다.이어 2004년 산야에 묻혀 사라져 가거나 훼손된 돌다리들을 찾아내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라는 단행본을 펴냈고 최근 돌다리 연구의 완결편인 ‘천년후 다시,다리를 건너다Ⅱ’를 추가로 발간,언론과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 [하재봉의 영화읽기]신기전

    [하재봉의 영화읽기]신기전

    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는 하나, 의심할 바 없이 <신기전>의 영화적 위치는 고양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데 우뚝 서 있다. 설계도가 남아 있는 세계 최초의 로켓 <신기전>의 흥분된 이야기는, 조선 건국 초인 1448년, 세종 30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려조의 유민이 아직 잔존해 있던 건국 초기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조공을 바치던 강대국 중국의 눈치를 보며 조선이 명나라 몰래 놀라운 병기, 세계 최초의 로켓포를 계발하려고 했다는 가설을 <신기전>의 내러티브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신기전>의 근거는 지금도 문헌으로 남아 있는 《총통도감》에 기초해 있지만, <신기전>의 피와 살을 형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내러티브는 모두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신기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30년 9월 13일, 세종은 총통등록을 각 도에 전달하며 ‘화기를 개발하고 쏘는 연습을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지금도 남아 있는 《총통등록》은 최무선에 의해 화약이 계발된 이후 화기인 주화로부터 시작된 신기전, 그리고 화기를 나르는 화차 개발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종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여진족과 싸우며 4군 6진을 만들고 영토확장을 이루는데 신기전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기전은 소·중·대 3가지 종류가 있는데 화살 끝에 화약이 장착되어 있으며 대신기전의 경우 화차에서 발사되면 약 2km 이상을 날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서양의 로켓 개발보다 무려 300여 년 앞선 과학적 쾌거였다. 임진왜란을 거쳐 영조 4년(1728년) 안성에서 반군을 제압하는데 신기전이 사용되었다는 문헌 이후 우리 역사 속에서 실종된 신기전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197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에 의해서였다. 채 박사에 의해 다시 발견된 신기전의 설계도는 세계우주항공학회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로 인정받았다. 왜 조선 역사 속에서 신기전의 존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나중에는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 중국이나 일본 등 신기전 개발을 달가워하지 않던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부국강병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신기전>은 사료에 기초해서 신기전 개발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국제역학관계를 현실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게끔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 <신기전> 속 꿈같은 이야기는 상당 부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이만희는 이러한 사료를 기초로 작가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고려 유민의 후손으로 반역죄로 처형당한 아버지의 한을 품고 상인으로 살아가는 설주(정재영 분), 최무선의 손녀딸로 신기전 계발의 핵심 역할을 하는 홍기(한은정 분), 세종의 밀명을 받고 명의 감시를 피해 신기전 개발에 힘을 보태는 호위무사 창강(허준호 분),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학계의 응축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차원에서 신기전이 개발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세종(안성기 분) 같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현실적으로 수긍할만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신기전>의 드라마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로 시작된다. 창강은 신분을 알 수 없는 홍리의 신변보호를 상인 설주에게 의뢰한다. 물론 거액의 보수가 따르지만, 창강이 특별히 설주에게 홍리를 부탁한데는 이유가 있다. 홍리는 고려 말 화약 제조자 최무선의 딸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홍리와 함께 신무기 개발을 하던 중 명나라 자객단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조선이 로켓포를 만드는 것을 경계해 왔던 명나라는 사신을 보내 세종과 궁궐 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세종은 명나라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히 신기전이 완성될 수 있도록 창강에게 명하고 창강은 신기전 개발의 키를 쥐고 있는 홍리를 설주에게 맡긴 것이다. 지금은 상인이지만 그 역시 역모혐의로 처형당한 아버지와 함께 화약 개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신기전>은 크게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설주-홍리 커플이 신기전을 개발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두 사람의 사랑, 명나라와 여진의 10만 연합군에 맞서 신기전을 이용해 조선군이 승리를 거두는 피날레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전>에는 상투적인 로맨스, 신파에 가까운 사랑 장면이 들어 있고, 국수주의적 시각도 있지만, 강대국 아래서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세종의 신기전 개발 이야기가 현재 우리 상황과 맞물려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신기전>을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이만희 작가의 튼튼한 극본 때문이다. 이만희 작가는 “침대에 누워 졸린 눈을 달래가며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꾸역꾸역 읽어 내려가다 나는 어느 대목에서 벌떡 일어나 고쳐 앉았다. 그것은 ‘발칙한 조선은 듣거라’ 라는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왕에게 칙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 말이었다.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발칙한 조선이라니…, 이런 저급한 말은 하인에게도 아니 쓴다. 아, 조선은 이랬구나.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초라하게 당했구나. <신기전>은 울분으로 쓴 작품이다. 이런 굴욕과 울분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 난 신기전을 통해 선조들이 이 강산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약속>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신기전>을 만들면서 김유진 감독은,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연출 감각을 보여준다. 웃음을 줄 때와, 긴장감을 지속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할 때의 완급조절을 부드럽게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긴장과 이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대중적 재미와 흥행력을 갖춘 영화를 만들었다. 이 감독은 “신기전은 우리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아주 명쾌하고 유쾌한 영화다. 웃음, 슬픔, 액션,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까지… 복합적인 재미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김유진 감독은 기대하고 있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신기전은 그렇게 오락영화를 추구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사실과 허구의 차이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핵심을 피해나갔다. “신기전은 사극이지만 코미디와 멜로 요소가 많이 들어 있으며, 처음부터 액션, 사랑, 웃음, 슬픔을 한 구조 속에 녹여서 가려고 생각했다. 흥행에 대한 특별한 의식 없이도 당연히 코미디와 멜로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기전>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와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들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흥행력과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야사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인 종반부 명나라와의 대결에서, 조선의 비정규군이 사용하는 신기전 발사 장면은 통쾌함을 안겨준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 그때 만약 우리가 신기전을 진짜 개발했고 그것을 이용해서 만주 땅을 되찾았다면, 혹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초토화시키고 대마도까지 정벌해 버렸다면. 이런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런 가정이 지금의 현재적 역사에 주는 교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의 국수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며 민족적 자긍심에 기대어 흥행 홈런을 노리는 <신기전>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미래의 역사라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과거의 역사가 새로운 현실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다면 충분한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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