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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이런 박빙승부 처음”… 롬니, 강경 보수층 비토 넘어설까

    [美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이런 박빙승부 처음”… 롬니, 강경 보수층 비토 넘어설까

    “이렇게 박빙의 승부는 본 적이 없다.” 3일 밤(현지시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 시내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아이오와 코커스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공화당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이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를 펼친 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날 코커스는 앞으로 경선 초반전이 혼전 양상을 띨 것임을 예고했다. ●론 폴 급진적 이미지로 성장 한계 롬니 입장에서는 간신히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대세론에 일정 부분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보수색채가 강한 아이오와에서 온건 보수성향인 그가 압도적 1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애초부터 있긴 했다. 하지만 순위보다는 롬니가 얻은 지지율이 중요하다. 그는 이번에도 아이오와에서 4년 전 경선 득표율과 같은 25% 지지에 그쳤다. 이는 공화당 주류인 강경 보수층의 롬니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이번 아이오와 경선에서는 롬니가 잘했다기보다는 비(非)롬니 진영의 후보가 난립하면서 표가 분산된 데 따른 반사이익이라고 봐야 한다. 롬니의 우위가 예상되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1월 10일)에서 승리하더라도 곧바로 사우스캐롤라이나(1월 21일)와 플로리다(1월 31일) 등 선거인단이 많은 보수성향 지역의 경선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 그에게는 녹록지 않은 ‘도전’이다.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이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이어서 모르몬교 신자인 롬니에게는 경선 초반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 1위와 다름없는 2위를 차지하며 혜성같이 떠오른 샌토럼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우선 샌토럼은 모아 놓은 선거자금이 적기 때문에 6개월이나 되는 긴 경선전에서 우위를 끌고 가기 역부족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반면 롬니를 싫어하는 공화당 주류의 표와 선거자금이 샌토럼에게 급속히 쏠리면 대세를 형성할 수 있다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 등 비롬니 진영 후보들이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둘씩 사퇴한다면 그 지지세가 샌토럼에게 결집될 가능성이 크다. 론 폴 하원의원은 21%의 득표율로 선전했지만, 그의 주장이 무정부주의에 가까울 만큼 급진적이라는 점에서 추가 성장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아직은 우세하다. ●플로리다 프라이머리 이후 윤곽 따라서 경선 초반 판세는 이달 하순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프라이머리를 거치면서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즈음 하위권 후보들이 ‘정리’된다면, 롬니와 샌토럼의 양강구도 내지 폴까지 포함하는 3파전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디모인(아이오와)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새해맞이 행사 생중계를 나온 한 방송 기자가 자신을 밀치는 인파들에 화를 참지 못하고 한 소년을 향해 들고 있던 마이크를 휘두른 장면이 잡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장면을 당시 생방송으로 파키스탄 일대에 보도됐으며, 지난 2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서도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시티 42’의 방송기자 아사드 사히라는 한 남성 리포터는 왼손에 스튜디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오른손으로 파란색 마이크를 쥐고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여느 나라와 같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기자 뒤에도 방송에 얼굴을 비취려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 기자는 많은 인파가 자신을 밀치자 방송에 어려움을 느꼈는지 자리를 바꿔가며 상황을 보도했다. 그래도 인파는 그의 뒤로 따라왔다. 그런데 한 십대 소년이 펄쩍펄쩍 뛰면서 사히 기자의 방송을 방해했다. 이에 그 기자는 그만 이성을 잃고 자신이 쥐고 있던 마이크로 그 소년의 얼굴을 때린 뒤 방송을 이어 갔다. 그 소년은 잠시 화면에 모습이 비치지 않았지만 잠시 뒤 기자보다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소 얌전해진 모습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후 스튜디오에 있던 여성 앵커 역시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미소를 띠는 모습이 잡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새해를 맞아 방송 기자가 시민에게 마이크를 휘두른 소식은 메트로, 텔레그래프 등의 주요 외신을 통해 소개됐다. ▶ 새해맞이 방송중 마이크펀치 날린 기자 영상 보러가기  사진=시티 42(유튜브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美 대선 레이스 개막… 첫 코커스 아이오와 현장을 가다

    美 대선 레이스 개막… 첫 코커스 아이오와 현장을 가다

    2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국제공항. 워싱턴DC발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기자는 디모인행 비행기를 갈아탈 시간이 빠듯했다. 헐레벌떡 긴 환승로를 달려 겨우 탑승 마감 시간에 비행기에 올랐을 때 CNN 인기 앵커 앤더슨 쿠퍼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탑승객 거의 전부가 낯익은 방송기자와 미국 내외 언론인들인 듯했다.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의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미국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그런데 막상 디모인에 도착하고 보니 거리는 예상과 달리 한산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이나 푯말 등을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새해 연휴 마지막 날이라 거리엔 행인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 지지율 선두주자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선거사무실에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벽에 롬니 지지 구호가 온통 닥지닥지 붙어 있고 먹다 남은 피자가 한쪽 테이블에 놓여 있는 등 선거사무실 특유의 어수선한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한 중년 남성이 서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고, 20여명은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있었다. 그 남성은 롬니의 측근인 짐 탤런트(미주리) 전 연방 상원의원, 경청자들은 롬니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탤런트 전 의원이 “이 나라를 변화시키는 일은 여러분 손에 달렸다. 막판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선 투표 등록자 명단을 쥐고 전화기 앞에 앉아 있던 자원봉사자 폴 에릭슨(50)은 “여기에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오늘 2000여명의 투표 등록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내일 투표에서 롬니 후보를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면서 “휴일이라 집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 전화 선거운동에는 더 유리하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내가 전화한 유권자 중에는 귀찮게 한다며 고성과 함께 전화를 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마음을 못 정하고 있었는데 알려 줘서 고맙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고 했다. 탤런트 전 상원의원은 “2008년 경선에서도 롬니 후보를 도왔는데, 올해는 4년 전보다 지지세가 더 강한 느낌”이라며 “아이오와에서 승리할 것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고 말했다. 롬니의 사무실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컨벤션센터에 도착하자 주변 길가에 방송용 중계차량이 벌써 줄지어 정차해 있었다. 3일 밤 코커스 투표 결과가 발표되는 이곳 내부에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이 자리를 잡고 결판의 날을 준비 중이었다. 인근 식당 종업원 제시카 하워드는 “며칠 전부터 손님이 평소보다 2배 정도 늘었다.”고 말해 ‘첫 코커스’ 특수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식당 앞에서 만난 시민 제임스 슈밋은 “디모인에서 코커스가 열린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몇 시에 하는지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른다.”고 말해 어디까지나 공화당 지지자들의 축제라는 점을 떠올리게 했다. 거리로 다시 나섰을 때 추운 날씨임에도 “코커스를 점령하라.”(Occupy Caucus)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대 10여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날 도심에서 본 거의 유일한 행인들이었다. 디모인(아이오와)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코커스-당원만 투표권 부여 / ●프라이머리-당원과 일반유권자 함께]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주별로 코커스와 프라이머리 둘 중 하나의 방식을 채택한다. 코커스는 당원에게만 투표 자격을 주지만, 프라이머리는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도 신청만 하면 투표권을 준다. 코커스가 광범위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프라이머리를 채택하는 주가 느는 추세다. 프라이머리는 각 선거구의 학교나 체육관, 공공기관 등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비밀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일반 선거와 비슷하다. 반면 코커스는 독특하다. 코커스에 참여하는 당원은 투표일에 그 지역 코커스 회의의 토론에 참여한 뒤 투표해야 한다. 각 후보의 공약, 비전이나 본선 승리 가능성 등을 놓고 토론하는 이 회의는 짧게는 몇분 만에, 길게는 몇 시간 만에 끝나는데 최근엔 저녁 7시쯤 시작해 2시간 안에 종료되는 추세다.
  • 소 굶겨 죽이는 축산농가 ‘피눈물’

    소값은 떨어지고 사료값은 오르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축산농가가 먹이를 제대로 주지 못해 소가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전북도에 따르면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 문모(56)씨가 지난해 10월부터 사육 중인 육우(젖소 수컷)와 한우 54마리에 사료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지난달 26일부터 최근까지 육우 10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문씨는 굶어 죽은 소들을 축사에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가 전북도와 순창군이 폐사축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다섯 차례에 걸쳐 설득하자 이날 오전 농장 인근에 묻었다. 전북도는 소값 폭락과 사료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문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료량을 점차 줄이다가 최근에는 물밖에 주지 못해 소들이 영양실조로 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육우는 하루 평균 4㎏의 사료를 먹어야 하는데 최근 1년 동안 사료값이 17%나 오르자 문씨네 소는 수개월 동안 사료를 1㎏ 정도밖에 먹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씨가 소를 굶겨 폐사하게 한 사실은 지난달 26일 구제역 예방백신을 주사하기 위해 순창군 관계자들이 농장을 방문했다가 처음 알게 됐다. 문씨는 “수십년 동안 소와 함께 살아왔는데 사료값을 대지 못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면서 “형편이 어렵다고 소를 내다 팔 수도 없어 자식 같은 소와 운명을 함께하겠다.”며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농장 안에 칩거하고 있다. 지난 2일 황숙주 순창군수와 전북도 관계자 등이 문씨 농장을 방문해 “남아 있는 소를 팔 수 있도록 해 주겠다.”며 남은 소들에 사료를 다시 먹일 것을 설득했으나 문씨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순창군은 남아 있는 소를 처분하고 축산업을 포기할 경우 산불감시원이나 공공근로 등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생계 대책 방안을 제시했으나 문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문씨는 축사 2동과 1997㎡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16세부터 40여년간 소를 키워온 문씨는 한때 150마리가 넘는 소를 사육했으나 사료값 5000만원 등 1억 5000만원의 빚을 질 정도로 경영이 급격히 악화돼 최근 논을 팔고 각종 보험 등을 해약해 1억원가량의 빚을 갚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창군 관계자는 “건강도 악화돼 최근 들어서는 이웃이나 친인척과도 접촉을 피할 만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남아 있는 소를 처분하도록 권유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농장 출입을 막아 도무지 접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씨가 현재 사육 중인 육우는 400㎏ 큰 소 한 마리에 최고 150여만원밖에 받을 수 없어 살아 있는 44마리를 모두 처분해도 빚을 청산하고 나면 사실상 손에 쥐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한편 한우는 전국적으로 사육 마릿수가 늘어난 반면 소비가 줄어 600㎏짜리 큰 소 한 마리 가격이 430만원으로, 1년 전 530만원보다 100만원이나 떨어져 사육을 포기하거나 사료 공급량을 줄이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육우도 생후 1주일 된 초유떼기 송아지 1마리가 1년 전 19만원 하던 것이 최근에는 1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입식하려는 농가가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등장인물 무영(30대 초반·공무원시험 준비 중) 약희(20대 후반·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방역업체 직원 1(40대·제로버그 팀장) 방역업체 직원 2(20대·제로버그 사원) 집주인(40대·중반 여성) 매니저(소리·화장품 매장 관리인) 무 대 왼쪽에 침실과 작은 거실이 딸린 반지하 공간. 햇살을 느낄 수 없으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이다. 거실 벽면 위로 창이 있으나 방충망은 찢기고 구멍도 뚫려 있다. 거실 한편에는 컴퓨터, 벽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고 밑에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걸려 있다. 침실에는 침대와 화장대, 구석에는 아기 침대와 모빌이 달려있다. 중장비의 굉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중장비 소음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할 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크고 뚜렷하게 들린다. 중장비 소음이 들릴 때마다 무영은 귀를 후비는 습관이 있다. 희미한 침실 조명이 켜져 있고 ‘탁’ 하는 짧은 박수소리 한두 번 들린다. 조명 밝아진다. 무영 저희가 안 나가겠다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아무리 월세를 제때 못 낸다 해도 그렇지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약희의 눈치를 보며)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사모님께서 먼저 계약서대로 모기부터 해결부터 해주세요. (사이)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영은 수화기를 휙 던지며 클렌징을 하는 약희의 눈치를 살핀다. 약희 뭐래? 무영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알았대. 약희 (순간 울컥함을 참고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것 봐, 이것 보라구. 어! 여기도 물렸네. 아이 가려워. 에이 정말, 여름만 되면 이놈의 집구석은 모기가 온통 벽에 온통 도배를 해요, 도배를… 얘네들은 날개를 폼으로 달았나? 날개가 있으면 날아올라야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요 앞 40층짜리 탑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놔두고 (무영을 보며) 바닥보다 낮은 이런 곳으로 기어 들어와서 피곤한 사람, 잠도 못 자게 한담. 무영, 약희를 힐끗 보다 다시 허공에 시선을 응시하며 손뼉을 친다. 약희 잡았어? 무영 어 (씩 웃으며 약희에게 빈 손바닥을 펴 보인다.) 약희(다시 거울을 보며) 그 한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모기를 도대체 언제 다 없애겠어? (사이) 다 없앨 수나 있겠어? 좋아, 설사 집안의 모기를 다 잡았다고 쳐. 그럼 뭐해, 좀 있다가 집 밖에 있는 모기들이 주택청약 대기자처럼 얼씨구나 들이댈 거 아냐? 무영 미안해. (표정을 바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기필코 밤을 새워서라도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약희 허구한 날 또 그 소리 (무영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테이프 같으면 벌써 늘어져서 내~~가 책~임진~다. 책임이 뭔지나 아나? 무영 뭐!? 약희 됐어. 그건 그렇고, 난 정말 못 참겠어. 가뜩이나 모기소리가 나면 불면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이젠 편두통까지, 앵앵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구. 이번 여름, 아니 딱 일주일만이라도 모기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무영 (혼잣말로) 난, 자기 잔소리 없는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 약희 뭐야! 잔소리? 그럼 지금 당장 짐 싸. 무영 아니, 내 말은… 약희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잔소리 안 하게 생겼니? 무영(한참 동안 약희의 눈을 피하며) … 약희 이제 집은 어떡할 거야? 이제 보름도 안 남았어. 무영 … 약희 (울컥 치솟는 것을 참으며) 아이 참, 오늘 밤은 또 왜 이리 덥담. 무영 (약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미안해, 여봉~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약희를 안으며)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자기하고 울 희망이, 내가 밤 새워서라도 모기들한테서 지켜줄게. 약희 (무영을 뿌리친 후) 더워 더워, 끈적거려, 붙지 말래두.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어! 빨리 손 안 치워? 무영 (머쓱한 듯 손을 빼며) … 약희 그리고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라는 말 도대체 몇 번째야.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먼저 모기 다 없애기 전까지 내 몸에 손도 대지 마. 무영 (약희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이놈의 모기들 오늘 밤 다 (목소리를 낮추며) 죽었어. 무영은 약희를 계속 쳐다보다가 ‘앵’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탁’ 하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잠시 광기 어린 무영의 얼굴이 살짝 비친 후 조명 꺼진다. 조명 켜지면 창밖에는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보다 커진 중장비 소음이 들려온다. 반바지 차림에 부스스한 몰골의 무영은 처음에는 귀를 후비다가 나중에는 귀를 막는다. 이후 한참 만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약희 지금까지 잔 거야? 무영 아, 아냐, 진작 일어났지. 지금 기출 문제 동영상 강의 듣고 있어. (사이) 정말이야. 자 들어봐. (아이 젖병을 꺼내면서, 목소리를 바꿔) 네, 지난 5년간의 기출문제 유형을 종합하여 정리한다면, 이번 10월에 있을 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7주차 강의는~ 약희 됐어, 됐어. 소리 좀 줄여. 무영 거봐, 날 뭘로 보구. 흠 약희 잊지는 않았지? 자기가 한 약속,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무영 또 또 시작이다. 알았어요. 남자로 아니 가장으로, 아니 좋다. 울 희망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약희 애는? 무영 엉, 지금 분유 타서 먹이려… 때마침 아이 우는 소리 약희 뭐야, 애 분유는 시간 맞춰 먹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알고 있지? 유아들한테 전자 모기향이나 에프킬라, 절대 안 되는 거. 무영 알아 알아. 약희 그저 말로만… 저기 그런데, 오늘 연락… 왔어? 무영 … 약희 (울컥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아이 진짜, 그보다 먼저 진짜 집에 있는 모기 좀 당장 어떻게 좀 해봐. 나 지금 코끝을 물려서 완전 딸기코야. 며칠째 모기가 앵앵거려 잠을 설치니까, 얼굴이 부어서 화장으로도 안 가려지잖아. 무영 … 약희 (갑자기 너스레를 떨며) 그것 때문에 고객들하고 상담할 때 자꾸 얼굴을 숙이니까 매니저가 자꾸 눈치 주는 거 있지. 내가 말했지? 그 사람 성질 더러운 거. 뭐냐, 뉴월드 백화점의 얼굴인 슈넬화장품 직원 태도가 뭐냐구… (사이) 내말 듣고 있지? 무영 … 어. 약희 그리고 집주인이 많이 삐친 것 같으니까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어떡해서든 집주인 비위 잘 맞추고 우리 사정을 잘 말해봐. 무영 (말없이 잠시 침묵하다가) 저기 자기야, 사실… 약희 어? 무영 사실은, 자기 출근하고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었어. 약희 그래! 뭐라구 해? 아니, 자긴 뭐라고 했어? 무영 먼저 모기를 싹 없애 주겠대. 약희 야! 진짜? … 무영 그리고… 약희 그리고? 무영 이번 달까지… 약희 …나가래? 무영 … 약희 그러‥면, 결국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떡하구. 완전히 길바닥에 나앉아 죽으라는 거잖아. 그래서 자긴 뭐랬어? 무영 … 그, 그래도 우리집 구조상 모기를 싹 없애긴 쉽지 않을 거야. 그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사이) 그럼 작성한 계약서대로 모기를 다 없앨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버텨봐야지 뭐. 약희 (끓어오르는 것을 다스리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리고 집주인이 집안에 있는 모기를 진짜 다 없애면 그땐 어떡할 거야? 무영 그땐, … 사정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약희 당신, 분명히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 그럼 이번에야말로 가장의 책임감이 뭔지 보여줘. 아니면 우리 가족 모두 그냥 확! 무영 … 약희 아 네~ 팀장님. (목소리를 낮추며) 나 오늘 저녁에 늦어. 무영 어! 잠깐 …안 되는데. 전화가 끊기자 무영은 뚜뚜뚜뚜 소리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듣다가 전화를 끊는다. 이후 젖병을 든 채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와 창문 등,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아기 침대 쪽에서 모기 잡는 시늉을 하며 한참 동안 좁은 거실을 서성거린다. 이때 귀를 후비면서도 전화기에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 후 결심한 듯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전화기를 내던진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무영 (조심조심 다가가 전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목소리 이무영씨 댁 맞습니까? 무영 그, 그런데요. 목소리 집주인이 김수영씨 맞으시죠?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제로버그? 그런데… 목소리 이 집 주인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당황한 무영이 문을 열자 방역업체 직원1, 2 등장. 방역업체 직원은 빨간 모자에 동일한 유니폼(모기 박멸 프린팅)과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였고, 직원1은 고글을 쓰고 지시봉을, 직원2는 특이한 가방을 들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제로버그입니다. 고객님,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고객님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타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해충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바퀴벌레, 개미, 진드기, 거미, 모기, 집게벌레, 이, 좀벌레, 파리 등등을 박멸하는 곳이죠. 직원1이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2는 무영을 가볍게 밀치며 돋보기를 들고 분주히 집안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무영은 그런 직원2를 힐끗 보다가 다시 직원1을 다시 본다. 무영 (벙벙한 표정으로)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벌써… 방역업체 직원1 (말을 자르며) 스피듭니다, 저희 팀 모토는 스피드 앤 퍼펙트, 다시 말해서 신속 완벽. (명함을 주며) 저희는 스카~이 파트입니다. 무영 스카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하늘, 다시 말해서 날아다니는 해충 중, 피를 빠는 모기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죠. 무영 모기를요? 방역업체 직원1 (고글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들은 바대로 이곳은 모기들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무영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짧게) 아! 걱정 마십시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 집에는 모기가 23마리, 파리가 12마리, 바퀴벌레가 44마리, 그리고 쥐 4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래, 위치는? 방역업체 직원2 다 파악됐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바로 시작하지. 방역업체 직원1과 2. 가방에서 정체 모를 장비와 파리채를 꺼낸 후, 집안을 돌아다니며 체크한 후 구석구석에 커다란 모기박멸 스티커를 붙인다. 그 후 갑자기 책을 꺼내 천장으로 던지고, 파리채를 마구 휘두른다. 이때 무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과 불안한 몸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무영 어어, 저저, 저걸 (이때 방역업체 직원1과 눈이 딱 마주치자) 저, 저기요… 혹시 살충제 같은 것을 뿌리나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방역업체 직원1 (순간 단호한 표정으로) 걱정 마십시오. 저희 회사는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는 두세 차례 손뼉을 치며,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다. 무영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2 어어, 거기 팀장님. 순간 방역업체 직원1, 재빠른 동작으로 손뼉을 친다. (손뼉을 칠 때의 동작은 전통 무예의 한 동작과 유사하다.) 잠시 후 손바닥을 펴 무영에게 보여주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무영도 마지못해 웃음을 짓는다. 방역업체 직원1 (약간 고압적인 자세를 띠며) 잠깐만요, 이무영씨. 이 집에서 모기를 완전히 뿌리를 뽑고 싶으시죠? 무영 무물, 물론~이겠죠. 방역업체 직원1 음, 현실적으로 이 집의 구조상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영 (화색을 띠며) 그, 그런가요? 방역업체 직원1 하지만, 저희가 누구입니까? 해충박멸의 신화 제로버그의 스카이팀. 괜히 스카이가 아니죠. 저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영 아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먼저 이무영씨에게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첫째, 모기는 우리 가족의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영씨, 지긋지긋한 모기를 박멸하고 싶지 않으시나요? 무영 그, 그렇긴 하지만…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그렇다면 마지막은 복창해 주세요. (굳은 표정으로)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지그시 응시하며) 피 무영 (고개를 순간 돌리며) … 방역업체 직원1 (아주 낮은 저음으로) 피 무영 피, 피 방역업체 직원1 피를 빠는…적이다. 무영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피이…를 빠는 적이다. 방역업체 직원1 (분위기를 바꿔 경쾌하게) 일부 모기가 나와 가족의 피를 머금었다고 해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는 감상적인 생각이나 동정은 금물입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개심만이 필요하죠. (다시 힘 있게 주먹을 조금 치켜들며) 둘째, 모기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강압적인 어투로) 애, 애 무영 애, 애 방역업체 직원1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동작마저 따라하며) 애완동물, 애완동물이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취향이 아주 아주 독특한 일부 사람들 중에는 개와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애완동물에 싫증을 느껴, 모기를 애완용 곤충쯤으로 여기고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영을 보며) 자기 몸으로 말이죠.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하하하. 무영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큰 동작으로 손끝을 하늘로 뻗다가 날갯짓을 하며) 셋째, 모기는 천사가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노려보며 힘을 주며) 천사가… 무영 천, 천사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가끔 자신의 옥탑방을 천당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중에는 모기의 앵~ 하는 소리를 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살짝 무영을 응시하며) 이런 사람의 특징은… 무영 (멈칫하다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에요. 방역업체 직원1 넷째, 모기는 여자가 아니다. 무영 (조금 놀라며) 여자, 여자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알고 계시죠? 흡혈을 하는 것은 모두 암컷들인 거. 무영 (어색한 웃음)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그들의 정신세계는 아주 독특해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암컷들에게만, 그래서 모기를 아내나 애인처럼 생각하죠. (몰입하며) 모기가 자기의 몸에 빨대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을 즐기죠. 무영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1 마지막으로… 모기는 집주인이 아니다. 무영 (침을 삼키며) 모기는 집주인, 이…다. 방역업체 직원1 (가늘게 실눈을 뜨며) 흠… 극히 일부의 세입자 중에는 집안에 모기를 대할 때 당황하거나 조금 심한 경우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마치 집주인을 대하듯 말이죠. 지난달에는 모기에게 안방을 내주고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세입자를 봤습니다. 물론 그와 반대인 상황도 있습니다. (무영을 지그시 응시한 채로 점점 다가가며) 그럴 경우 모기소리와 집주인의 목소리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모기소리만 나면 히스테리를 부리죠. 그간 당했던 설움과 쌓였던 분노를 집주인에게 마구마구 쏟아 내듯 말이죠.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며) 네, 고객님께서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기는 100% 박멸 가능합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제 모기를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무영 벌, 벌써요? 방역업체 직원1 스피드 앤 퍼펙트, OK? 방역업체 직원2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들며) 이게 끝까지 남아 있던 놈으로 23마리째입니다. 방역업체 직원1 음, 좋아. (무영을 보며) 그럼 여기 점검 내역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영 … 무영이 마지못해 받은 내역서를 살피며 서명을 망설이자 방역업체 직원1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무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자, 방역업체 직원들의 태도가 서서히 위압적인 태도로 바뀐다. 이에 무영은 마지못해 서명을 하고, 방역업체 직원1은 뭔가를 해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역업체 직원2에게 서류를 건넨다. 무영 그런데, 저기… 방역업체 직원1 네? 무영 (쭈뼛쭈뼛 머뭇거리다가) 아! 쥐나 바퀴벌레 같은 거는… 방역업체 직원1 음. (단호한 표정으로) 스카이, 아까 말씀드렸죠, 저희는 모기 전문입니다. 무영 아하! 스카이 방역업체 직원1 혹시 다른 해충을 박멸하시려면, 바닥 쪽이나, 구멍 쪽으로 연락주세요. 그 팀들도 프롭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저희 제로버그는 과학적이고 완벽한 서비스를 통해 100%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이) 물론 완벽하겠지만요. 방역업체 직원1, 2 목례 후 바로 퇴장하자 전체 조명이 어둡게 깔린다. 무영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후 잠시 우스꽝스럽게 모기 흉내와 함께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 후 한참 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무영은 갑자기 귀를 후비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게 귀를 후빈다. 이때 오른쪽 조명이 들어오면 백화점 유니폼을 입은 약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약간은 울먹이며 매장 매니저에게 경고를 받고 있다. 매니저 이것 보세요. 김약희씨, 이게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매장에서는 절대 기대거나 의자에 앉으면 안 되는 거, 사적인 통화 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주얼, 비주얼 관리, 잘 아시잖아요. (사이) 그런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술 마신 사람 마냥 코끝이 벌겋게 부풀어 있어요? 약희 그게 모기가… 매니저 그 핑계 그만, 이게 벌써 며칠쨉니까? 고객들이 퉁퉁 부은 코에 억지 웃음을 짓는 당신을 보고 우리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싶겠어요?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사이) 죄송 죄송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해보세요. (사이) 요즘 김약희씨를 보니까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아주, 정말, 매우 필요한 것 같군요. (사이) 계약서 내용은 잘 알고 있죠? 약희 …네 매니저 계약 위반 시에는… 약희 … 매니저 됐어요. (사이) 이만 됐구요, 서로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이만 하죠. 다음 주부터는 서로 볼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약희 네!? 매니저 제 말 뜻 아시죠? 김약희씨. 흐느끼며 털썩 주저앉는 약희,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 그리고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무대가 점점 밝아지면 무영은 헤드셋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 현관 문소리가 나면서 약희가 들어온다. 현관 문소리에 무영은 순간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거실로 나온다. 무영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벽시계를 돌아보며) 어! 뭐야, 오늘 늦는다며 일찍 왔네? 약희 (모든 의욕을 상실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무영 뭔 일 있나? 아님, 땡땡이! 약희 (고개를 떨구며) … 무영 (살짝 건드리며) 내가 보고 싶어서 땡땡이 쳤구나. 그렇구나, 맞지? 약희 (말을 끊고 매섭게 노려보며) 나한테 말 시키지 말랬지. 무영 (움찔하다가 눈치를 보며) 왜 그래? 약희 당신은 도대체 뭐야? 마누라는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데, 가장이란 사람이 1시가 넘도록 잠이나 퍼질러 자고, 그러고도 당신이 우리집 가장이라고 할 수 있어? 울 희망이 아빠냐고? 무영 약희야,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약희 됐어. 오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무영 자기,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일하다 말고 집에 와서 약희 듣고 싶지 않다고 했지. (몸서리를 치며) 당신은 몰라. 아무도 내 맘 모른다구. 무영 (순간 당황하며) 아 참, 낮잠 좀 잤다고 그러는 거야? (약희를 달래며) 오늘 동영상 강의 듣다가 너무 졸려서, 알잖아. 며칠째 밤새 자기랑 울 희망이 옆에서 모기 잡은 거. (사이) 매일 힘들게 고생하는 자기하고 울 희망이한테 남편과 아빠로서 해줄 게 있어야지. (가슴을 두드리며) 나만 믿어.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때 이상한 야릇한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러자 무영과 흐느끼던 약희, 동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영이 컴퓨터 앞으로 뛰어간다. 허둥거리며 마우스를 잡는 무영. 잠시 후 무영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약희. 무영 아니, 그게 말이야. 있잖아. 아이 참 (표정을 바꾸며) 자기야 미안. 약희 (이를 악물고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 하지도 마. 당신, 나한테 아니 우리 희망이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무영 (머뭇거리며) 약희야,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렇잖아, 내 사정이… 내가 자기한테 붙으면 덥다고, 피곤하다고,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석 달은 된 것 같다. 그래서 동영상 강의 듣다가 잠깐, 머리 식히려고… 그냥… (살짝 웃으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러잖아. 약희, 어이없는 표정 후 분을 삭이는 표정을 짓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때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약희는 눈물을 훔치며 젖병을 챙겨 아이에게 물리나 칭얼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약희 아가 아가, 괜찮아, 괜찮아. 무영 (약희에게 다가가며) 그러니까… 약희 가까이 오지 마, 당신 불결해. 무영 약희야, 저기… 약희 말하지도 마. 다, 당신, 말소리, 굶주린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무영 (더 가까이 다가가며) 미안해, 내가 약희 (조금 더 악을 쓰며) 가까이 오지 말랬지. 피를 노리는 굶주린 모기…아니 모기보다도 못한… 무영 (멍한 듯 말을 잇지 못하며) 아무리 그래도… (순간 쓴웃음 지으며) 남편한테 모기는 너무, 너무했다. 약희 (어이없는 표정으로) 너무하다고, 너무하다고, 내가 너무하다고. 김약희 내가? 으흐…흐…흑 난 처음에 당신이 생각이 깊은 줄로만 알았어, 또 누군가를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사이) 생각이 깊어? 흐… (손가락을 흔들며) 오, 노~ 당신은, 당신은 우유부단했던 거야. 다른 사람을 배려, 흐흐, 당신은 원래 당신의 밥그릇조차 지킬 용기나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어. 흐…흐 이젠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햇빛도 안 드는 비좁은 이 집, 매니저와 손님의 비위 맞추느라 짓는 억지웃음, 매일 말뿐이고 책임감도 없는 무기력한 당신, 그런 당신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미래 (팔을 휘젓다가 순간 신경질적으로 신발과 책 등을 벽과 천장에 마구 내던지며) 특히 이놈의 성가신, 성가신 모기들도, 그리고 당신도… (폭발하며) 모두 모두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사라져버리라구. 무영 … 약희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무영이 세차게 흐느끼고 있는 약희를 보며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약희가 무영의 손을 가로막으며 돌아선다. 무영은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때부터 조명은 무영의 행동에 집중되며 중장비 굉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무영은 한동안 심장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짐을 느끼며 전화를 받는다. 무영 여, 여보, 여보세요 집주인 (소리만)마침 집에 있었네. 그쪽이 사인한 것 봤어요. 그럼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제 말뜻 아시죠? 그럼 이만. 무영의 심장박동은 더욱 요동치며 점차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조명이 거의 사라질 무렵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무영에게 조명이 집중된다. 무영 그런데, 그런데,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무조건 정해진 날까지 집을 비워달라니요. 저희 세입자 입장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집주인 (소리만)계약서, 계약서, 몰라요? 무영 그래서, 그래서, 조금만 더 배려를… 배려를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번 가을까지, 아니, 다음 달까지라도… 집주인 (소리만)…… 배려라? 누굴 배려? 내가 당신들을? 난, 여태 배려했어요. 내 집에서 살도록 해줬잖아요? 물론 월세지만, 그리고 집세도 못 내는 당신들이 우긴, 그 말도 안 되는 그 요구, 그래서 이렇게 방역업체까지 불러 모기소리도 싹 없애 줬어요. 이만하면 집주인으로서의 충분한 배려 아닌가? 무영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저도 (침을 삼키며) 몇 년간 여기 살면서 집세를 올려달라면 달라는 대로, 수도세 전기세 밀린 적 한번 없이, 때 맞춰 군말 없이 해드렸습니다. 한겨울에 보일러가 터져도, 장마철에는 방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곰팡이가 온 벽을 뒤덮어도, 한여름에는 방충망이 찢겨져서 온갖 해충들이 득실거려도, 그리고 지금처럼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시달려 귀가 멍멍해져도 아무 불평 없이 지냈습니다. (사이) 작년 겨울 실직만 안 했어도 이런 부탁까지는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번 가을에 치를 시험까지라도, 아니 다음 달 우리 애 돌까지만이라도 (무릎을 꿇으며)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소리만)그래요, 듣고 보니 안타깝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를 어쩌나. 부탁은 내가 해야 되겠는 걸. 지금 공사가 지연된다고 재개발 조합에서 난리네요. 계약서대로 세입자를 내보내 집을 비우라구요. 그쪽이 용안 4동 재개발 구역에 거의 끝까지 남은 세대라는 거, 알고는 있었죠? 당신들이 나가야 우리 구역 철거가 마무리되거든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투자를 한 입장에서 손해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 당신들은 계약서대로 나가주면 되는 거예요. 내 말 알아듣죠? 배려라? 배려라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인 것 같은데 무영이 털썩 주저앉자 바로 조명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귀를 막고 머리를 감싸던 무영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소리를 집요하게 찾고, 약희는 집안을 정리한다. 무대가 점차 밝아지면 무대의 가재도구는 모두 정리가 되고 커다란 박스 두어 개와 여행용 가방이 무대 중앙에 있다. 약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달력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벽에 걸린 달력을 뜯는다. 그러자 다음 달력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보인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 귀를 후비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뭔가를 찾고 있다. 약희 (달력을 보며) 뭐해? 무영 … 약희 뭐하냐구? 무영 찾고 있어. 약희 (심드렁하게) 뭘? 무영 (잠시 머뭇거리다가) 있어, 지금 어딘가에 있어. 약희 그러니까 뭐가 있냐구? 무영 (주변을 계속 살피며) 모기 약희 (힐끗 보며) 모기? 무영 안 들려, 소리? 지금 막 몰려오고 있잖아. 봐, 앵~앵 약희 (무영을 쳐다보다가 잠시 귀를 기울이며) 도대체 무슨 소리? 무영 아, 미치겠네. 에이, 도저히 안 되겠다. 무영은 계속 구석구석 살피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약희가 전화를 바로 받는다. 약희 여보세요? 집주인 아직 있었나보네. 약희 … 네. 집주인 하긴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지금 문 앞에 있어요. 약희 네? 알이 큰 색안경에 명품가방을 든 40대 여성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이때도 무영은 집주인을 본 체 만 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집주인 (무영을 힐끗 본 후,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댁 남편한테 이야기는 들었죠? 약희 … 집주인 (색안경을 벗고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런데 갈 곳은 정해졌~ (손잡이가 쑥 들어가자) 어머! 나? 약희 걱정 마세요. 날짜 되면 알아서 나갈 테니까. 무영 (혼잣말로) 어딨더라. 여깄다. (명함을 보며) 오이제로에 제로제로제로제로.   핸드폰 발신 신호 후 제로버그회사의 경쾌한 컬러링이 들린다. 집주인은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내리깔며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집주인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며) 여기, 이사비용하고 남은 보증금, 다 까먹고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약희가 신경질적으로 봉투를 받자) 거, 세어 봐요. 약희 (눈으로 대충 보며) 맞겠죠. 집주인 그런데 모기, 이제 더 없죠? (팔목과 다리를 긁적이며) 어휴, 그런데 왜 이렇게 간지러워. 하긴 이런 구질구질한 데서 내 피부에 트러블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소리 (경쾌한 소리로) 스피디하게 모시겠습니다.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손짓을 하며) 있어요, 우리 집에 모기가 있어요. 커다란 모기떼가 몰려왔어요. 집주인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모기? 소리 네? 잠시 만요, 고객님. 담당자를 바꿔 드릴게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무영 지금 우리집에 난리가 났어요. 어마어마한 모기떼가 몰려오고 있어요. 집주인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모기떼? 방역업체 직원1 네? 이무영씨 이무영씨, 맞죠? 그런데 모기가 있다구요? 그것도 떼로? 무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네. 아주 어마어마한, 그리고 커다란 방역업체 직원1 그럴 리가요? 그럼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나요? 무영 소리가 들려요. (핸드폰을 공중에 대며)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모기떼 소리가 마구마구 들려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음… 바로 출동하죠.   무영이 잠시 큰 동작으로 모기를 쫓는 시늉을 하다가 귀를 막는다. 약희는 이런 무영의 행동에 당황하나, 그렇다고 무영을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무영의 행동에 많이 놀란 눈치이다. 그러다가 잠시 집주인과 무영의 눈이 마주친다. 이때 둘 사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갑자기 무영이 집주인에게 다가가 집주인의 뒷목을 찰싹 친다.   집주인 아! 뭐야? 무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이, 거기가 집주인 목! 모기요? 무영 그러니까 모기가 모게, 모기가 모게… 집주인 네? 모…모기!   집주인이 목 주변을 문지르며 긁다가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본다. 순간 멈추며 무영을 노려보지만, 무영은 무관심하게 계속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바로 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방역업체직원1, 2가 등장한다.   방역업체 직원2 네, 제로버그입니… 무영 빨리요 빨리. 이 모기들 좀, 정말 미치겠어요. 얘네들 좀 보세요. (손가락으로 허공과 집주인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지금도 막 나한테 달려들잖아요.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응시하다가 직원2를 힐끗 보고) 확인하지.   직원2는 바로 장비를 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무영 이놈의 모기들이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앵앵거리다가 지금은 숨어 있는 놈들까지 몰려나와 날 쫓아오는 거예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본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다고 하셨죠? 무영 그, 그럼요.   방역업체 직원1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집주인과 약희에게 동의하느냐고 묻는 손짓을 취하자 약희는 모른 척 눈길을 피하고 집주인은 계속해서 몸을 긁적이며 모기를 피하는 몸짓을 취한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직원1에게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확인 결과 이곳에는 모기는 물론 날파리 한 마리도 없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역시 (무영을 보며) 들으셨죠? 무영 그럴 리가… 지금 이 소리 안 들려요? 지금 막 앵앵거리잖아요. 와, 미치겠네. 여길 보시라니까요. 여기 여기요, 이곳에서 났다가 아니 저기서… 방역업체 직원1 어디? 여기? 도대체 어디요? 한 마리라도 잡아보세요. 무영 (주변을 마구 돌면서 구석구석을 가리키다가 직원1을 돌아보며) 한…마리? 방역업체 직원1 (검지를 흔들며 단호하게) 한 마리! 우리 제로버그 스카이팀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리콜도 없는 퍼펙~팀입니다. 무영 퍼․펙․트! 방역업체 직원1 (짧게) 네, 퍼펙트. 집주인 그, 그럼 뭐야? 아까 내 목을 내리친 것은, 일부러… 이 사람들 안 되겠네. (뒷목의 부여잡으며) 이젠 폭행까지, 아이고 목이야, 아이고 목이야. 약희 폭행이라니요? 모기 잡을 때처럼 살짝 친 것을 가지고 집주인 살짝? 이게 살짝이야?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거기 젊은 총각, 이걸 보라고, 여기 여기, 보이지? 빨갛게 손자국 난 거. 방역업체 직원2 (집주인의 목 가까이 얼굴을 대고 살펴보다가) 제가 보기에는 그냥… 집주인 그냥? 그냥 뭐? 방역업체 직원2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손톱으로 긁은 자국인데요.   어수선한 와중에 무영은 사람들의 대화에서 벗어나 있고 이러한 무영을 방역업체 직원1이 주의 깊게 살핀다.   방역업체 직원1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시, 잠시만요, 음,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무영씨에게 들리는 모기 소리는 일시적인 환청인 듯합니다. 약희 (놀라며) 화,화, 환청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맞습니다. 환청.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환각 현상이죠. 때에 따라서는 환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약희․집주인 !? 방역업체 직원1 환청은 낮은 단계의 벌레 울음소리나 소음과 같은 단순한 잡음에서부터 단계가 높아질수록 뚜렷한 내용이 있는 특정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까지 합니다. 사람 말소리인 경우에는 불쾌감을 주는 간섭이나 욕, 또는 명령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아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죠. (사이) 음… 제가 보기에는 이무영씨는 아직까지 환청의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만,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높은 단계의 환청을 넘어 마약 중독과 유사한 환각 증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약희 그, 그럼, 지금 애아빠의 귀에 헛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이에요. 방역업체 직원1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요. 약희 (무영의 모습을 멍한 듯 바라보며) 그, 그래서 아까도… 어이구, 세상에 집주인 (다리와 몸을 어색하게 긁다가 무영을 노려보며) 뭐야, 그럼 완전히 미친 거잖아? 어쩐지, 아까부터 눈빛이 퀭한 게 이상했어. 흥, 이제 정신병원에 가야겠네. 약희 (순간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이, 당신이 뭔데 남의 남편한테 미쳤다고 해요. 집주인 아니, 이 여자가 누구한테 당신이래. 그리고, 없는 소리가 난다고 우기면 그게 미친 거지. (사이) 아님 뻔한 거지. 모기 소리를 트집 잡아서 여기에 더 눌러앉으려고 하는 수작이겠지 뭐. 누가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알아. 이래 봬도 나 산전수전 겪으면서 당신들 같은 사람 많이 상대해 봤어. 흥~ 약희 눌러앉는다고? 우리가? 여기에? 아무리 없이 산다고 자존심마저 죽지는 않아요. (단호하게) 걱정 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날짜 되면 이곳에서 나갈 테니까.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래요. (무영을 보며) 당,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 집주인 뭘로 보긴, 내 눈에 보이는 데로 보지. (혼잣말로) 딱 보니,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거지네 뭐. 흥~ 약희 뭐 뭐, 뭐라고, 거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집을 빌린 거지 언제 당신한테 구걸을 했어? 집주인 구걸? 흥, 구걸은 아니어도 (무영을 곁눈질하며) 애걸은 했지. 약희 뭐,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집주인 뭐, 이 여자, 이제 갈 곳도 없는 밑바닥 주제에 집주인한테 감히,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약희 (순간 집주인에게 달려가 악을 쓰며) 그래, 그래, 나 이런 밑바닥에 산다. 이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방역업체 직원1, 2가 맞붙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진정시킨다. 그 와중에도 방역업체 직원1은 집주인 편을 간간이 든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해서 모기를 찾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자자자, 이제 그만, 그만하시고 진정하세요.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집주인 놔놔, 이것 안 놔? 깡패처럼 무조건 힘이나 써서 해결하려고 하고. 흥,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분수를 모르면 교양이라도 있어야지. 약희 (악을 쓰며 다시 집주인에게 달려들며 몸싸움을 하며) 뭐라구? 깡패? 교양? 그래, 나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한동안 엉겨 붙어 있다가 약희가 순간 엉엉 오열하며) 이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구.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들 두세요. 사모님, 사모님이 먼저 참으세요. 새댁도 진정을, 우선 진정부터 해요. (약희를 진정시키며) 그리고 새댁, 남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 괜찮아질 겁니다. (둘 사이가 조금 누그러지자) 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도 집에선 모기소리와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누라가 모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마누라를 보며 모기 때려잡는 생각을 합니다. (모기 잡는 동작을 취하며) 이렇게요. 이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죠. (직원 2를 곁눈질하며) 안, 안 그런가? 방역업체 직원2 아 아, 네. (직원 1을 곁눈질하며) 사실 저도… 가끔 작업할 때 모기소리와 팀장님 목소리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는데요, 그땐 이렇게… 방역업체 직원1 (싸늘한 미소로 직원2를 노려보며) 그래? 그래서 모기를 잡을 때 개잡듯이 후려치나? 방역업체 직원2 (뻘쭘한 표정)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방역업체 직원1 (표정을 확 달리하며) 환청은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죠. 약희 (멍한 무영을 순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기야, 무슨 말이든 말 좀 해봐. 집주인 이분들께서는 이 세상에서 배려와 관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흥~ 약희 (순간 매서운 눈매로 노려보며)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 (절도 있는 자세로) 그럼 이만, 저희 제로버그의 리콜 서비스는 고객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무제한 달려갑니다. 추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집주인 어머나! 내 정신, 어머, 시간 좀 봐. 나도 늦었네. 오늘 계모임이 있었는데… 알죠, 내일 모레까지인 거. 약속이나 지켜요. 약희 맘 푹 놓으세요. 설사 붙잡아도 더러워서 나갑니다. 흥~ 방역업체 직원1, 2 퇴장. 집주인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무영은 계속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없이 모기 잡는 행동을 취한다. 그런 무영을 약희는 흐느끼며 바라본다. 이 와중에도 중장비의 소음은 계속된다. 얼마 후 무영은 축 처진 채로 의자에 앉는다. 약희 (맥이 풀린 듯 울먹이며) 그런데 자기야, 이제 우리, 우리, 어떡하지? 무영 진짜 들렸는데… 지금도, 지금도 분명히 들리는데 약희, 망설이다가 무영의 뒤로 가서 조용히 어깨를 감싸자, 잠시 후 무영은 약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명이 꺼진다. 공사장 착암기 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울린다. 실내조명이 켜지자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고 시간이 갈수록 중장비 소음은 커지면서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약희 (몸을 일으켜 무영을 보며) 소리 들려? 무영 뭐? 약희 이 소리? 잘 들어봐. 무영 … 약희 이거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벌써 가을이 오려나? 무영 (심드렁하게) 나도 알아. 모기소리가 아닌 거, 귀뚜라미 소리인 거. 약희 (사이) 삐쳤어? 무영 뭐가? 약희 아니다. 무영, 약희…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실내 연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영 맞다. 조금 전에 하려던 말, 뭐야? 약희 (망설이다가 잔기침을 하며)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무영 뭐? 약희 (뜸을 들이며) 엊그제… 자기한테 모기 같다고 말하고 확 뛰쳐나간 거. (사이) 그때는 모든 게 자기 탓 같았어. 자기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원망스러워서 울컥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자기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라도 당신 편이 되었어야 했는데… (기침을 하며) 그래서 환청이 들렸나 싶어지구… (속삭이듯) 미안해. 무영 (홱 돌아서 등을 보이며) 스트레스가 확 더 쌓인다. 약희 (의아한 듯) 뭐? 무영 (귀를 파며) 환청이 들려. 예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가 방금 내 귀에 들렸거든. 약희 (무영의 몸을 뒤집으며) 뭐야? 무영, 휙 뒤돌며 약희를 안는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애정이 담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무영이 기침을 하자 약희의 구토가 시작된다. 약희 (구토를 참으며) 나… 나, 괜찮아. 무영 미안해. 약희 … 무영 고마워, 함께해 줘서… 약희 난 편안해. 아무 말 (기침을 하며) 하지 마. 무영, 약희… 약희 아, 덥다. … 우린, 우린 그 약속은 지킬 수 있을까? (사이) 집주인한테 무영 (한참 생각하다가) 아마도 이때 무영과 약희는 한참 동안 기침과 구토를 반복한다. 한참 후 쪼그려 앉아 있던 무영이 무엇에 집중을 하며 귀를 기울인다. 무영 소리 들려? 약희 … 뭐? 무영 그러지 말고 잘 들어봐. 약희 (기침을 하며) … 무영 자자, (기침을 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우리의 처음을 생각해봐. 약희 처음? (사이) 처음이라… (기침 후 구토를 하며) 우리한테도 처음이 있었나? 무영 생각 안 나? 5년 전쯤에, 왜 있잖아, 강촌으로 동아리 MT 갔었을 때, (기침 후 헛구역질을 하며) 전혀? 음… 무영이 한참 헛구역질을 한 후, 엎드려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손가락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자 연기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비눗방울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한다. 무영 그럼 이 소리 좀 들어봐. 약희 소리? 무슨 소리가 나? 무영 잘 들어봐. 약희 (짧지만 심한 구토 후 웃으며) 혹시 자기, 또 환청 아냐? 무영 (진지하게) 지금 장난 아니야, (기침을 하며)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그리고 찾아봐. 약희 (조금 진지하게 살짝 눈을 감으며) 음… 들려. 물 떨어지는 소리랑, 계량기 돌아가는 소리, 음… 위층에서도, 어? 그 사람들, 그거 하나 부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침을 하며) 에이, 부럽당~ 무영 참, 그런 소리 말고. 자, 마음을 편하게 눈을 감아. 그리고 천천히 집중해봐. 약희, 잠시 망설이다가 심호흡 후 진지하게 몰입한다. 점차 몽환적인 음악이 들릴 듯 말듯 울려 퍼지고, 이와 함께 환상적인 조명이 시작된다. 약희 음… 어! 이게 뭐지? 뭔가 들려, 음… 물소리랑, 바람소리 (일어나며) 어어, 잠깐 이건… 무영 들리지? 그럼 좀 더 주위 소리들을 찾아 봐, 그리고 느껴 봐. 약희 (다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 귀뚜라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 어~어, 새소리도 들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순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좀 더 깊이 빠져들며) 이 소리 이 느낌, 왠지 낯설지 않아. 무영 이제 그럼 눈을 감고 소리가 느껴지는 곳을 찾아가 봐. 약희 (무영의 어깨를 짚은 채 천천히 일어나 걸으며)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편안함, 그리고 설렘… 그러면, 그러면, 여기는… 아! 조명이 꺼진다. 환상적인 조명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사라지면서 앳된 약희의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는 희미한 조명이 비춘다. 이때 분위기는 아늑한 꿈결 같은 분위기이다. 그 후 점차 계곡 물소리와 개구리소리, 새소리가 뒤섞인 자연의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다. 새소리는 뻐꾸기 소리이다. 약희 (황홀함과 나른함이 교차한 느낌, 그리고 혀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여, 여, 여긴, 그러고 보니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 새소리도 들리네. 음, 이게 무슨 새더라? 딱따구리 소린가? 아니면… 부엉이? (이때 ‘뻐꾹’ 하는 소리가 들리자 손뼉을 치며) 아, 맞네요. 뻐꾸기. 역시~ 무영 선배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근데… 저기요, 선배님. 자꾸 선배님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그, 그러니까, 저기… 저는, 위로 오빠가 셋인데요, …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요, 그러니까, 저기 (사이) 그냥 오빠라고 하면 안 돼요? … 왜, 왜 말씀이 없으세요? … 네에! 진짜, 진짜루요? (한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하늘을 보며) 무영, 무·영·오·빠. 그런데요, 하늘에 별이, 별이 보여요. 아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영 (소리)약희야! 야, 김약희, 너? 너! 약희 어… 어! 내 속에서 뭔가,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아. 잠깐만 여기서, 여기서 잠시 쉴래요. 약희 가 서서히 쓰러진 채로 눈을 감자 조명이 꺼진다. 잠시 후 급한 소방차의 경적소리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무전소리 오전 02시 18분, 용안 4동 재개발 B-02지구 상황 발생. 도로 사정으로 소방차는 진입 불가능하며, 가스중독으로 인한 일가족 3명은 현재 후송 중, 이상. 조명이 꺼진다.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소설 당선작 - 홍루/김가경(본명 김숙희) 녀석이 톱밥 속으로 숨어들었다. 녀석은 밀크셰이크처럼 어감이 달콤한 밀크스네이크 종이다. 먹이 줄 것과 따뜻하게 해 줄 것, 간단한 러시아 단어로 적어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았다. 이반이 출항하기 전 남긴 글이다. 이반은 녀석의 등을 쓰다듬고 마지막 선물처럼 케이지를 앞에 내려놓았다. 한국 사람과 러시아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아, 이반은 러시아 사람들도 개나 고양이, 새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라니, 나는 검정 바탕에 노랑, 빨강 줄무늬가 있는 이국의 낯선 뱀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뱀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과 같다고 생각해. 녀석을 보고 놀란 나에게 위로라도 하려는지 이반은 한국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는 걸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명자, 이반은 내 이름을 부르고 입으로 휘이휘이 휘파람 부는 흉내를 냈다. 그러면 집안이 텅 비게 돼, 녀석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종종 휘파람을 불던 내게 이반은 러시아 속담을 빗대 말했다. 나는 멀찍이 녀석을 내려다보며 이반의 익살에 웃음을 내보였었다. 이반을 만난 것은 클럽 로즈에서였다. 로즈는 P시에서 속칭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리에 있었다. 예전에는 주로 미군들이 드나들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날도 나는 로즈에서 맥주를 마시며 립스틱이 번지지 않았는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젊은 러시아 청년 하나가 보드카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마담 장 앞에서 한국 얘기를 듣던 선원 중 하나였다. 술을 마실 때 거울을 보면 안 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귓불에 입술을 갖다 대며 그가 속삭였다. 흔한 작업멘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나긋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반이라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처음 출발하는 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다. 나는 시베리아 열차가 끝없이 달리는 드넓은 숲과 초원을 떠올렸다. 그에게 러브 오브 시베리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 올려 내 얼굴을 길게 그려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왼쪽 손목에 새겨진 푸른색 돛이 펄럭였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내가 여주인공과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얼굴이 허공에 그대로 떠 있는 것처럼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러시아 사람과 첫 대면을 할 때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영화 속 여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이국의 여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대개 영화 속 지명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들먹이는 선에서 끝이 났다. 러시아말로도, 한국말로도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순간에 이르면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가 턱을 괴고 조용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여행지처럼 나를 설레게 했다. 음악이 흘렀고, 클럽 로즈는 마치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품고 있는 대합실 같았다. 그의 손목에 새겨진 푸른 돛 때문이었을까, 나는 문득 그라면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월요일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좋아요, 월요일 여행은 불행하거든요, 러시아 속담이에요. 느닷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나는 벽면에 붙은 러시아 달력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마치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손을 잡고 아무 손님도 잡지 못한 나타샤를 지나쳐 거리로 나왔다. 밤하늘에는 만국기가 꽃잎처럼 나풀거렸고 만국기의 행렬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두 블록 떨어진 내 숙소로 걸어올 때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도 이반이 러시아 속담을 말하며 내 입술에 입을 맞출 것만 같다. 시계가 밤 아홉시를 넘겼다. 녀석은 원색의 몸을 감춘 채 아직 기척이 없다. 나는 열선을 펴서 케이지 크기만큼 접었다. 그 위에 타월을 깔고 케이지를 얹었다. 사람 옷 입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판매원이 열선 까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겨울철, 스스로 온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 열선은 생명줄과 다름없다고 했다. 녀석에게 25도의 체온으로 이국의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불행일 수 있었다. 나는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 케이지에서 멀찍이 물러섰다. 거실의 불을 낮추고 이반이 남긴 메모지를 냉장고에 붙였다. 주방 창가로 가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북향으로 나 있는 주방에서 밖을 보면 아래층에 있는 중국집 ‘홍루’의 뒤꼍이 훤히 보였다. 홍루 뒤꼍에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새들었다. 쥐라도 쫓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담자락을 타고 지나간다. 지난봄, 가게의 주인이 바뀌면서 홍루(紅樓)라는 간판이 내걸렸다. 홍루는 붉은 다락방이라는 뜻이지만 이곳에 사는 화교들은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별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변두리 사거리의 허름한 중국집 이름 홍루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거리는 스산할 정도로 빛이 꺼져 가고 휑하니 바람만 몰아 불었다. 멀리 텍사스 거리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등 뒤로 손을 넘겨 자주색 민소매 드레스의 지퍼를 올렸다. 목선이 등 뒤로 깊게 파인 드레스였다. 이반을 만났을 때 이 드레스를 입었다. 이반이 긴 허리를 굽히고 마른 등에 입술을 댈 때면 나는 수줍은 소녀처럼 간지러움을 참아내곤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빨강 립스틱을 덧바르고 귓불 뒤에 향수를 뿌렸다. 구제를 구입해 수선한 밍크를 꺼내 걸치고 자투리로 만든 밍크 모자를 머리에 비스듬히 얹었다.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장갑을 꼈다. 은색 스팽글이 촘촘하게 박힌 카우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몹시 차가웠다. 텍사스촌에 접어들자 겨울 내내 공중에 걸려 있던 해진 만국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 아래, 술에 취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이 러시아 혁명가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지나갔다. 나는 시애틀 노래주점을 지나고 캄차카 노래방을 지나 클럽 로즈로 걸음을 옮겼다. 로즈에는 러시아 민요인 백만 송이 장미가 흐르고 있었다. 낮고 고혹적인 중년 여가수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와 흐린 불빛에 섞여 들었다. 손님이라고는 한국 선원 두 명과 러시아 선원 두 명이 전부였다. 마담 장이 표정 없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얹었다. 한국 선원과 함께 있던 나타샤가 다가와 서툰 한국어로 언니, 마셔? 라고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러시아 닭 꼬치인 샤실릭을 시켰다. 담배를 피워 물고 천천히 로즈 안을 둘러보았다. 마담 장이 무료하게 하품을 해댔다. 필리핀에서 온 구잘은 러시아 선원과 섞여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무렵 나타샤가 보드카와 샤실릭을 내왔다. 나는 담배를 끄고 보드카를 한 잔 따랐다.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자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목까지 치닿았다. 이반은 보드카를 마시는 순간이면 고향을 떠났다는 것도, 추운 바다 위를 떠돈다는 것도 모두 잊는다고 했다. 나는 열기가 되뿜어져 나오는 목을 진정시키기 위해 샤실릭 꼬치에서 닭 가슴살 한 점을 빼 마요네즈에 찍어 입에 넣었다. 내가 보드카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미군이 철수하고 나서였다. 러시아 선원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거리의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짐을 꾸려서 떠났다. 고작 러시아 선원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마담 장도 미군을 따라 미국으로 갔던 여자였다. 나는 미군 대신 러시아 선원을, 맥주 대신 보드카를,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몸에 익혔다. 이 거리에 나타샤와 구잘이 찾아들었다. 나타샤는 러시아에서 발레리나였고 구잘은 필리핀에서 가수였다고 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꿈을 찾아 이곳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또 다른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텍사스촌으로 되돌아 온 사람들은 좀체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지 못했다. 마담 장이 러시아 민요 대신 빠른 행진곡으로 음악을 바꾸었다. 선원들이 경쾌한 해군의 노래에 맞춰 무릎과 팔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드카 병이 순식간에 비어 갔다. 시계는 벌써 열한 시를 넘겼다. 한국 선원이 나타샤의 뺨을 비비며 등줄기를 훑었다. 선원 하나가 그녀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순간 그녀가 마담 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담 장이 전화를 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아가씨가 클럽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는 여자였다. 계산을 마친 그들이 클럽 안을 빠져 나갔다. 손님은 이제 러시아 선원만 남았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살집이 많은 러시아 선원 하나가 보드카를 마시며 계속 나를 주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선원은 보드카 병을 쥐고 일행을 벗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구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비틀거리는 선원보다 구잘이 먼저 내 테이블 앞에 와 선다. 러시아 선원이 들으라는 듯 러시아말로 이번에도 손님을 채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선원이 멈칫거리는 사이 구잘이 밖으로 나갔다. 선원이 내 앞에 앉는다. 그는 잔에 보드카를 따르며 자신의 고향 이야기로 말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이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깨를 추켜올리며 자신이 이반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색 드레스가 마음에 든다며 슬쩍 어깨를 감싸 쥐었다. 해군의 노래가 끝나고 러시아 혁명가가 시작되었다. 구잘이 필리핀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구잘의 친구가 러시아 선원의 팔을 꿰찼다. 멍청이! 저 언니 나이 많아, 주름 많아, 구잘이 선원에게 하는 말이 들려왔다. 구잘의 말에 선원이 내 앞에 앉은 선원에게 손짓을 보냈다. 동료가 만류하는 손짓을 무시하듯 선원이 지갑을 꺼내 보드카와 샤실릭 값의 두 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지켜보고 있던 구잘이 거칠게 다가왔다. 언니 년 나빠! 그녀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놀란 선원이 성급히 일어났다. 그리고 테이블의 돈을 챙겨 일행 쪽으로 가버렸다. 망할 년! 어린 년이! 마담 장이 구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언니 년, 나빠! 구잘이 악다구니 끝에 손을 풀었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샤실릭 꼬치가 꾸들꾸들 말라갔다. 러시아 혁명가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손님이 없는 밤이었다. “이 짓도 이제 지긋지긋해, 러시아 년들을 한국 놈들에게 붙이고 필리핀 년들은 러시아 놈에게 붙이고, 이렇게 갈보 년들 불러대는 것도 신물이 난다구!” 그녀가 보드카를 마시며 넋두리를 해댔다. 쿨럭쿨럭, 천식 때문인지 잔기침이 뒤따랐다. “그래도 옛날에 이 바닥에서 명자, 하면 알아줬는데, 사내들을 홀리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먹물 튄 년이 드문 때였으니…….”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흐릿한 불빛을 타고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거에 혹해서 사내놈들이 많이 찝쩍댔지…… 그때 한 놈 잡아 떠나지, 무슨 미련이 있다구…….”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위에 홀로 앉은 재즈가수의 독백처럼 한없이 낮았다. “너나 나나, 진즉에 이 바닥을 떴어야 하는데……, 사나운 팔자는 이래도 저래도 막히니…….” 그녀는 마치 거울을 보듯 나를 보고 있었다.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코트를 걸쳤다. 카우치 백을 열어 계산을 마치고 조용히 로즈를 나왔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홍루 앞에서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모자를 반듯하게 썼다. 보드카 때문인지 속에서 열이 올랐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 2층 현관문을 열었다. 녀석은 아직도 톱밥 속에 파묻혀 있다. 녀석에게 다가가 케이지 밑에 조심스럽게 손을 갖다 댔다. 따뜻했다. 월요일에 길을 떠나면 여행이 불행하게 된다고 했던 이반은 정작 월요일에 떠났다. 이반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그가 월요일에 떠났기 때문이리라. 나는 욕실로 들어가 화장을 지우고 드레스를 벗었다. 거울에 깡마른 몸이 드러났다. 이반이 명자, 라고 이름을 부른 뒤 커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려 보이면 나는 러시아 회화 책을 뒤지듯 그가 허공에 그려낸 그림을 꼼꼼히 살폈다. 이반은 종종 그렇게 자신이 탈 배가 지나갈 곳을 손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이반의 손목에 새긴 푸른 돛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깡마른 몸에 샤워기의 물을 뿌렸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문득 녀석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나는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케이지에서 멀찍이 떨어져 톱밥 위를 보았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반이 떠나고 녀석은 줄곧 톱밥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일까, 나는 케이지 안을 살폈다. 톱밥의 곡선이 흐트러짐 없이 처음 그대로였다. 나는 냉동실 문을 열고 이반이 사 놓은 먹이를 하나 꺼냈다. 먹이는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었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 포장된 먹이를 그대로 담갔다. 재스민 차를 우려내 창가로 간다. 눈이 흩날렸다. 홍루 지붕에는 엘피 가스통 4개와 물탱크,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작업복과 면장갑, 깨진 그릇이 나뒹굴었다. 그 낡은 지붕 아래 자장면과 짬뽕 옆으로 적힌, 익숙하나 한 번도 맛을 본 적 없는 횡서 끝자락의 낯선 메뉴를 떠올린다, 어쩌면 남자가 만들어 본 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메뉴 밑으로 삐뚤삐뚤하게 적힌 러시아 음식들. 흑빵과 함께 홍루의 남자는 육개장과 비슷한 쌀단까나 빈대떡과 비슷한 블린 같은 러시아 음식도 만들었다. 종종 러시아 사람들이 중국 음식 중에 끼어 있는 러시아 음식을 주문하였다. 눈이 내려앉는 홍루 뒤꼍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양파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내가 보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등이다. 남자는 마치 그림 속에 들어 있는 사람처럼 묵묵히 앉아 양파를 깠다. 넓은 고무 대야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물에 붇고 있는 양파 껍질을 벗겨 낸다. 인조털이 달린 두툼한 점퍼에 가려진 남자의 양 옆 어깨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나는 껍질과 뒤섞인 혼탁한 물에 한 쪽 손을 깊숙이 집어넣고 남은 양파 알을 찾는 남자의 기울어진 어깨를 본다. 언뜻언뜻 삐져나오는 남자의 붉고 물에 불은 손. 남자는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는 법이 좀체 없다. 남자의 등 뒤로 살금살금 나타샤가 다가간다. 그녀는 고양이처럼 허리를 익살스럽게 굽히고 남자의 등 뒤에 몰래 다가섰다. 나타샤가 두 손으로 남자의 눈을 가린다. 남자가 양파 껍질이 묻은 젖은 손을 차마 나타샤 손에 포개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나타샤가 손을 풀었다. 나는 뒤돌아보고 멋쩍어하는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식어가는 찻잔을 볼에 대고 눌렀다. 나타샤가 남자 앞에 턱을 괴고 앉는다. 분홍색 털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은 그녀의 모습이 클럽에서와는 달리 앳돼 보였다. 남자가 양파 껍질을 벗기는 일을 멈추었다. 나타샤가 일어서더니 뒤꿈치를 모으고 양발을 벌려 발레의 폴리에 자세를 취한다. 두 팔을 뻗어 머리 위로 올리고 천천히 발 앞굽을 세워 잔걸음으로 뒤꼍을 옮겨 다녔다. 한눈에 봐도 그녀가 백조의 동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타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뒤꼍을 돌아 남자 앞에 섰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동그랗게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남자를 향해 웃고 있는 나타샤를 보며 식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개수대에 던져놓은 녀석의 먹이가 녹았다. 먹이를 건져서 접시에 담고 알루미늄 포장지를 벗겨냈다. 손가락 한 마디를 좀 넘긴 연한 핑크색 먹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는 숨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쥐가 녀석의 먹이라니. 처음 기지촌에 왔을 때처럼, 처음 러시아 선원을 만났을 때처럼 무섭고 낯설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집게로 새끼 쥐를 집어 올려 녀석에게로 갔다. 톱밥 위는 아직도 텅 비어 있었다. 케이지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먹이를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분다. 녀석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휘파람을 분다. 어릴 적 나는 늘 혼자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아무도 없는 집 마루에 앉아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어대곤 했다. 설령 어른들의 말처럼 뱀이 나온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휘파람을 불면 곁에 누가 있는 것처럼 무서움이 가셨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어서 집이 비었는지 집이 비어서 휘파람을 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케이지에서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앉아 여행자를 위한 러시아 회화 책을 폈다. 90쪽 ‘거리’에서부터 120쪽 ‘모자 가게’까지는 이반이 떠나기 전 러시아어로 읽어주었다. 151쪽 기차여행 편을 한글로 따라 읽는다. ‘그제야 마구 쎄스츠 나 보예즈제?’ 어느 기차에 타야 합니까? 홍루 뒤꼍으로 함박눈이 쌓였다. 나는 눈을 밟으며 홍루로 갔다. 홍루에는 나타샤와 한국인 두 명만이 앉아 있었다. 주방 안으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종업원에게 이반이 즐겨 먹었던 쌀단까와 흑빵을 주문했다. 종업원 대신 나타샤가 내 쪽을 힐금거리며 주방 입구로 갔다. 그리고 주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주문을 받아 전해준다. 나는 낮은 선반 위에 펼쳐진 러시아 회화 책을 잠시 쳐다보았다. 남자도 틈틈이 회화 책을 뒤지며 러시아 말을 익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폴리에 자세로 발을 벌리고 서 있는 나타샤의 뒷모습이 왠지 서글퍼서 고개를 돌렸다. 쌀단까와 흑빵이 나왔다. 이반은 홍루의 쌀단까 맛이 고향의 맛과 같다고 했지만 홍루의 쌀단까 맛은 육개장과 별반 다름없는 맛이었다. 천천히 흑빵을 뜯어 입에 넣었다. 흑빵이 입안에서 거칠게 씹혔다. 나는 반쯤 뜯어 먹은 흑빵을 남기고 홍루를 나왔다. 케이지 안에 먹이가 그대로 있었다. 녀석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케이지의 뚜껑을 열고 먼지떨이를 거꾸로 찔러 넣어 천천히 톱밥을 휘저었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막대기로 커다랗게 원을 그은 뒤 안으로 조금씩 좁혀가며 톱밥을 감아 올렸다. 녀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반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도 내가 휘파람을 불어 모든 게 텅 비어버린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눈이 녹고 있었다. 녀석이 사라진 지 일주일째, 부두에 배가 들어왔다. 텍사스 거리는 러시아 선원들과 보따리 상인들로 붐볐다. 나는 클럽 문을 열었다. 로즈도 러시아 선원들로 북적였다. 여전히 러시아 음악 백학이 흘러나왔고 조명은 더 흐려 있었다. 나는 이반을 만났던, 거울이 걸린 자리에 앉았다. 장갑을 벗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카우치 백에서 담배를 꺼냈다. 언니 머? 구잘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보드카와 샤실릭을 주문했다. 마담 장이 새로운 선원들을 앞에 두고 예전 텍사스 거리에 몰려들었던 미군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선원들이 이야기를 채근하듯 마담 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시절 마담 장의 사랑을 구하려는 한 미국 병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사다가 거리에 뿌렸노라고 말하자 선원들이 속았다는 듯 몸을 털며 허탈한 웃음을 웃었다. 러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백만 송이 장미에 얽힌, 가난한 화가의 슬픈 사랑이야기란 것을 이내 알아챈 모양이었다. 마담 장은 배가 들어올 때마다 선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했다. 선원들은 이국의 낯선 이야기에 자신들 나라의 이야기가 섞여 든 것을 알아채자 긴장이 풀렸는지 보드카를 연거푸 마셨다. 마담 장이 의자를 돌려 몸을 반쯤 틀고 있는 러시아 선원들을 달래듯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다독였다. 선원들이 다시 마담 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타샤는 한국인 선원들 사이에 섞여 있었고 이미 취해 보였다. 한국인 선원이 길고 곧은 나타샤의 등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다 허리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마담 장이 재빠르게 나타샤와 눈길을 주고받았다. 나타샤와 한국인 선원이 계산을 마치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홍루의 남자가 클럽에 들어선 것은 내가 두 번째 담배에 막 불을 붙일 때였다. 남자는 이곳이 처음인 듯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소 들뜬 표정으로 구잘에게 주문을 했다. 그의 테이블에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려졌다.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마담 장이 음악을 바꿨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었다. 러시아 선원들이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러시아인들의 춤은 마치 목각 인형이 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처럼 무릎과 팔이 절도 있게 꺾어졌다. 격렬하면서도 율동 사이사이에 강한 매듭이 있는 러시아 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춤이 격렬하면 할수록 더 그랬다. 나는 선원들이 원무를 이뤄 추는 가팍을 보며 이반을 떠올렸다. 이반도 어디선가 함성을 지르며 저들처럼 가팍을 추고 있을까, 나는 보드카를 마시고 샤실릭을 한입 베어 물었다. 바에 앉아서 계속 몸을 흔들고 있던 마담 장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육중한 그녀의 몸이 빠른 리듬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였다. 선원들의 함성이 추임새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다. 음악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의 춤은 자정까지 계속될 것이다. 구잘이 나타샤가 없는 빈자리를 대신하여 분주히 움직였다. 마담 장은 점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갔다. 가끔 이렇게 마담 장이 흥에 취해 선원들과 춤을 추면 그녀가 어김없이 해 오던 일, 러시아 아가씨를 한국 선원에게 붙이고 필리핀 아가씨를 러시아 선원에게 붙이는 일을 잊었다. 더불어 나의 존재도 잊었다. 그녀가 잊는 것은 단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천식처럼 오래된 이 거리의 모든 것들, 그녀를 되돌아오게 만들었던 익숙한 모든 것들, 그녀의 생 모두를 잊을 것이었다. 이반의 말대로 휘파람을 불면 무언가 텅 비게 되는 것처럼 그녀도 텅 비어가는 것이리라. 원무에 끼어 점점 격렬하게 몸을 흔들 때마다 그녀가 한줌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라도 할 듯 깡마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홍루의 남자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남자는 무릎 사이에 손을 찔러 넣고 눈은 줄곧 나타샤를 찾았다. 나는 마지막 보드카를 입에 털어 넣었다. 남자가 취했는지 점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문득 잊고 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거짓말처럼 녀석을 찾은 것은 소파 밑에서였다. 환전소에 가기 위해 러시아 동전을 지갑에 넣는 중이었다. 소파 밑으로 굴러들어간 동전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누렇게 바랜 벽지에 노랑 빨강 검정 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소파 안쪽 벽 틈에 일자로 붙어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녀석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먹이를 꺼내 따뜻한 물에 담근 다음 물기를 닦아 소파 입구에 놓았다. 집게를 들고 소파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녀석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숨을 삼켰다. 먹이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녀석이 고개를 들며 혀를 날름거렸다. 녀석의 여린 혀가 재빠르게 입속을 반복해서 드나들었다. 녀석이 먹이 앞으로 다가가 먹이를 덥석 무는 순간 집게로 녀석을 집어 케이지에 넣었다. 녀석의 입에는 삼키다 만 새끼 쥐의 여린 몸이 반쯤 물려 있었다. 로즈 앞에는 며칠째 클로즈라는 안내판만 달려 있었다. 겨울이면 도지는 마담 장의 천식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다고 했다. 나타샤도 가끔씩 목욕탕이나 환전소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한국 선원을 따라 이곳을 떠났다는 말도 있었고 임신을 해서 로즈에서 쫓겨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텍사스 거리는 다 해진 만국기를 걷어내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나는 만국기가 끝나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이반을 처음 만났던 날, 이반의 달콤한 입술이 나의 입술에 닿던 순간, 나는 내 여행이 이대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이반은 지금 어느 바다를 지나고 있을까? 나는 만국기가 걷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표 판매소를 지나 환전소로 갔다. 마지막 남은 먹이를 녀석에게 넣어주었다. 녀석이 조심스럽게 먹이에 다가간다. 잠시 목을 추켜세우더니 슬그머니 방향을 틀었다. 또 먹이를 먹지 않을 모양이었다. 온수에 목욕을 시키면 좀 도움이 될 겁니다. 수의사는 전화로 간단하게 처방을 내렸다.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정상적으로 탈피를 하기 힘들어진다고도 했다. 대야에 온수를 받아 케이지 옆에 놓았다. 케이지 뚜껑을 열고 널브러지듯 몸을 길게 풀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집게를 들다가 내려놓았다. 녀석의 외피에 손을 조심스럽게 갖다 댔다. 녀석의 차가운 체온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천천히 선을 그으며 머리 쪽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녀석의 입을 지나 턱쯤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녀석이 감미로운 몸동작으로 손에 감겨든다. 소름인지 전율인지 무언가 몸속으로 울려들었다. 나는 녀석을 안듯 들어올려 온수에 담갔다. 녀석이 천천히 물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보다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미끄러지듯 내 손을 비켜나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가며 손을 저어 작은 물보라를 일으켰다. 녀석이 점점 생기를 찾은 듯 작은 원을 그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뒤 작은 수건으로 민첩하게 손아귀를 벗어나는 녀석을 떠내 마른 수건을 깔아놓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녀석을 재빨리 수건 위에 굴린 뒤 케이지 안으로 털어 넣었다. 명자, 아주 잘했어, 이반이 보았더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홍루를 지나고 로즈를 지나 도로 건너편에 있는 수족관으로 갔다. 파충류 먹이 있음. 간판 옆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햄스터 케이지를 열다가 내 쪽을 본다. “뭘 드릴까요? 손님.” 점원이 케이지 안에서 햄스터를 꺼내며 물었다. “밀크스네이크 종인데……먹이 좀 사려고요.” 나는 나무토막을 기어오르는 비단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뱀을 키운 지 오래되셨나 봐요. 처음 키우는 사람은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든요.” 점원이 손에 쥔 햄스터를 비단뱀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이렇게 한창 클 때는 녀석도 산 먹이를 찾아요, 그래야 탈피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요.” 나무막대를 기어오르던 녀석이 슬그머니 방향을 틀며 혀를 날름거렸다. 케이지에 던져진 햄스터가 꾸물꾸물했다. 움직임을 감지한 녀석도 먹이를 견준 채 꼼짝 하지 않다가 입을 벌리고 먹이를 물어 삼켰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점원에게 휘파람을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 속담이 있었나요?” 점원은 손에 묻은 햄스터 털을 털어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 냉동 쥐로 드릴까요?” 점원이 물었다. 나는 햄스터의 하얀 몸이 비단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케이지에서 꿈틀거리는 분홍색 새끼 햄스터 한 마리를 꺼냈다. “녀석들이 종종 냉동 먹이를 먹지 않는데…… 그건 아마도 탈피를 하려고 그럴 겁니다. 제대로 크고 있다는 증거죠.” 나는 점원에게서 새끼 햄스터를 받아 골목으로 돌아왔다. 날이 풀리고 있었다. 곧 부두에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문이 닫힌 로즈를 지나 홍루에 들러 쌀단까와 흑빵을 시켰다. 남자는 여전히 등을 보이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탁자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러시아 회화 책과 비닐도 뜯지 않은 발레 슈즈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흑빵을 뜯어 쌀단까에 적셔 먹었다. 맞은편 거울에 흑빵을 씹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밥을 먹을 때 거울을 보면 안돼요, 아름다움까지 먹어버리거든요, 이반이 내 귓불 뒤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일 것 같았다. 홍루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 [씨줄날줄] 블랙 드래건/최용규 논설위원

    서양과 달리 동양 문화권에서 용(龍)은 성스럽고 신비로운 존재다. 구름과 바람을 만들고 그 속에서 뿜어내는 무궁무진한 조화는 봉황, 기린, 거북 등 4영(靈) 가운데 용만이 가진 신묘함이라 하겠다. 권위와 상서로움의 상징인 용은 쥐부터 돼지까지 12지(支) 중 유일하게 상상 속의 동물이다. 이에 명나라 이시진은 자신의 유명한 약학서 본초강목에서 용을 ‘비늘을 가진 것들의 우두머리’로 묘사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기에 용은 군왕과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앉는 평상을 용상, 임금의 옷을 용포, 임금의 즉위를 용비라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2년 임진년은 용의 해다. 그것도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黑龍)의 해다. 주역에서 말하는 10간(干) 중 임(壬)은 물(水)에 해당하고 성질은 진흙땅, 검은색에 해당한다. 12지 중 용(辰)과 결합해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황룡, 청룡, 백룡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용이 부정적인 의미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흑룡에 대한 해석과 의미는 엇갈리기도 한다. 흑룡의 해는 길(吉)할까. 역사적으로 보면 큰 변란이 흑룡의 해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420년 전인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했다. 임란, 왜란으로도 불리는 임진왜란이 그것이다. 가깝게 1952년 흑룡의 해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럼 흑룡은 복(福)과 거리가 먼 것일까. 흑룡은 난세에 신묘한 조화를 부려 이순신 장군과 같은 성웅을 만들어냈다. 2012년 임진년은 어느 때보다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국내에선 총선과 대선이 예정돼 있다. 김정은 체제로 개편된 북한을 비롯, 주변 국가들의 권력 변화도 점쳐진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신년사에서 “세계 경제의 둔화로 올해 우리 경제는 쉽지 않은 상황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박희태 국회의장도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가 여전하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위기를 기회와 재도약으로 승화시킨 민족의 저력을 끄집어 냈다. 박근혜, 안철수, 손학규, 문재인…. 그러나 이들은 아직 잠룡이다. 주역에 ‘잠룡(潛龍)이니 물용(勿用)이니라.’라고 했다.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므로 쓰지 말라는 뜻이다. 스스로를 연마한 잠룡들은 곧 세상에 나와 출사표를 던질 것(見龍在田)이다. 그럼 하늘에 있을, 하늘을 날 용(飛龍在天)은 누구일까.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지구촌 권력교체 격동] 유럽

    [지구촌 권력교체 격동] 유럽

    유럽 각국 정부들이 올해에는 ‘집권당 패배 도미노’라는 악몽을 피해갈 수 있을까. 지난해 유럽에선 8개국이나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핵심 쟁점이 경기침체와 실업 등 민생문제였다는 점에서 2012년 선거전망도 집권세력에겐 대단히 암울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프랑스 세계가 주목하는 선거는 단연 4월 22일 실시되는 프랑스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5월 6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대선 직후인 6월 10일 총선이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은 집권 다수당과 함께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 등이 대선 경쟁에 뛰어든 주요 후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유럽 재정위기 극복 노력을 주도하고 리비아 내전에 앞장서 개입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재선을 노리지만 상황이 썩 녹록지는 않다. 지난달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랑드 후보가 지지율 30% 안팎을 기록한 반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26~29%에 머물러 있다. 극우파인 르펜 후보가 16.5~19.5%를 기록하는 것도 사르코지 대통령 입장에선 지지층 분산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각종 선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이 거둔 성적표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선 사회당 등이 압승을 거뒀다. 이어 9월 25일 상원 절반인 170석을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 집권 대중운동연합은 72석에 그친 반면 사회당 등 좌파연합이 85석을 차지하면서 제5공화국 수립 이래 처음으로 모두 합해 절대다수인 177석을 차지했다. ●핀란드 첫 선거는 오는 22일 핀란드에서 열린다. 핀란드는 의원내각제이긴 하지만 대통령에게도 일정한 권한이 있다. 임기 6년인 핀란드 대통령은 3선을 금지하기 때문에 현재 연임중인 사회민주당 소속 타르야 할로넨 자리를 두고 자유주의적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국민연합당 후보 사울리 니니스토, 중도좌파 사민당 후보 파보 리포넨, 포퓰리즘 성향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진짜 핀란드인’ 당대표 티모 소이니 등 후보 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니니스토 후보가 4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는 반면 나머지 후보 중에는 지지율 10%를 넘긴 후보가 한 명도 없다. 이밖에 3월 10일 슬로바키아 총선, 6월 30일 아이슬란드 대선, 10월 8일 슬로베니아 대선, 11월 30일 루마니아 총선 등이 예정돼 있다. 그리스에선 당초 2월 19일 총선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물러나고 거국내각이 구성되면서 향후 총선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세대갈등 넘어 소통으로] 110만 청년실업자의 항변

    지난해 8월 서울에 있는 S대 법학과를 졸업한 서모(28)씨는 1년 넘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대기업 법무팀 입사를 목표로 독서실에 다니면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한 달 식비와 교통비, 수강비 등을 합쳐 65만원을 쓰는데 대부분 부모님이 주는 용돈에 의존한다. 식당 아르바이트도 나가지만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5만원에 불과하다. 서씨는 “나이는 먹어 가는데 취업문이 쉽게 열리지 않아 초조하다.”면서 “나름대로 시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청년 실업자들의 고통이 나날이 깊어 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청년 실업률이 6.8%로 1년 전보다 0.4% 포인트 올랐다. 청년실업자 수는 27만 9000명이었다. 그러나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연말 보고서를 통해 취업준비자와 실업자, 구직단념자, 취업무관심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의 청년 실업자’가 110만 1000명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통계청의 공식 집계보다 4배가량 많은 것이다. 서울 시내 10여개 대학과 노량진 고시촌, 정독도서관 등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의 노력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년 세대를 나약하다고 치부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4)씨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평균 학점은 B 이상이며 토익점수도 925점이다. 남들보다 모자라는 스펙(학점, 외국어 성적, 자격증 등 구직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건)이 아닌데도 걸맞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정부와 사회가 청년 일자리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K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스포츠단체 취업을 희망하는 이모(29)씨는 “40~50대들은 경제부흥기에 취직해 쉽게 사회에 진출해서인지 지금 청년 백수들이 고생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중장년층은 어려운 시대를 지나와 생활력이 강하지만 지금 20대들은 편하게만 살아서 나약하다고 보는 시선이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S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모(24)씨도 “은행 창구 텔러가 되려고 해도 금융자격증 여러 개가 필요하다. 기업과 사회가 20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부모 세대는 청춘의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회 구조적인 잘못도 개인이 떠맡아야 할 부분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청년 실업자들의 분노가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씨는 “기존 정치권은 일자리 창출 등 청년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주제로 치고받고 싸운다.”면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를 지지해주고 적어도 공감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어 호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떠나간 독재자들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떠나간 독재자들

    장기 집권으로 악명 높았던 전세계 독재자들이 공교롭게도 올해 잇따라 세상을 떠나거나 권좌에서 물러났다.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장악했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민주화 시위대에 쫓기다 지난 10월 20일 고향인 시르테에서 시민군에 붙잡혀 살해됐다. 시신이 정육점에 방치돼 구경거리가 되는 등 비참한 최후였다.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37년간 북한을 통치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운명을 달리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지난 17일 야전열차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랍국가를 휩쓴 민주화 혁명의 여파로 어쩔 수 없이 권력을 내놓은 독재자들도 적지 않다. ‘아랍의 봄’의 발원지인 튀니지를 23년간 집권했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튀니지 법원은 그에게 35년형을 선고했다. 30년 독재자인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도 지난 2월 권좌에서 축출된 뒤 부패와 권력남용 혐의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197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33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지난 11월 면책특권을 조건으로 대통령직 이양에 합의했다. 반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이후에도 권력을 쥐고 있는 유일한 독재자로 남아 있다.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전 대통령은 10년 집권도 모자라 지난 11월 대선 결과에 불복, 유혈사태를 촉발한 혐의로 전범재판을 받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삼성전자-LG전자, 새해 벽두부터 OLED TV 전쟁

    삼성전자-LG전자, 새해 벽두부터 OLED TV 전쟁

    액정표시장치(LCD) TV보다 선명도가 뛰어나면서도 두께는 얇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가 새해 1월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쇼인 ‘국제전자제품전시회(CES) 2012’에 공개된다. ‘CES 2012’의 최대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르면 새해 상반기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TV 시장 판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3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새달 10일(현지시간)부터 13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12’에서 나란히 55인치 OLED TV를 공개한다. OLED TV는 스스로 빛을 내는 현상을 이용해 제작하기 때문에 LCD TV에는 필수적인 광원(백라이트)이 필요 없다. 이 때문에 두께가 얇으면서도 선명도는 훨씬 좋다. 투입되는 재료의 양이 적다 보니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면 LCD 패널보다 생산비도 낮출 수 있다. 삼성과 LG가 선보일 55인치 OLED TV가 주목받는 것은 본격적인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고 만드는 첫 번째 제품이기 때문이다. OLED TV의 경우 LG전자가 2009년 말 15인치 제품을 내놨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CES 2012’에서 새 제품을 공개하며 상반기 실제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생산량은 양사 모두 월 최대 4만~5만대 수준으로 잡고 있다. OLED TV가 아직은 고가이다 보니 당장 시장의 주류가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양사가 본격적인 출시 경쟁에 나서는 것은 스마트TV나 3차원(3D) 입체영상 TV처럼 차세대 TV 시장을 선점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전문업체 골드만삭스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OLED TV가 연평균 104%의 빠른 속도로 성장해 2020년에는 TV 4대 중 1대꼴(25.7%)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CES 2012’를 계기로 두 회사가 OLED TV의 기술구현 방식과 관련해 또 한 차례 대대적인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경우 빛을 내는 유기발광 입자들을 직접 붙이는 이른바 ‘RGB OLED’ 방식으로 패널을 만든다. 적색·녹색·청색(RGB) 발광 입자가 직접 빛과 색상을 내는 만큼 진정한 의미의 OLED 패널이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반면 LG는 삼성과는 다른 ‘백색 OLED’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기판에 백색 인광 발광 소자를 백라이트 광원으로 사용하며, 색상은 LCD 컬러 필터로 구현한다. 기존 LCD 생산라인을 그대로 쓸 수 있어 투자 부담이 적고 제품 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게 LG의 판단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OLED 본질의 기술을 개발해 제품을 생산하는 정공법을 택했다면, LG는 실현 가능하고 경제적인 기술로 제품을 값싸게 먼저 내놓아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측면 공격 전략을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용어클릭] ●OLED TV 형광성 화합물에 전류를 흘릴 때 생기는 발광현상을 이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디스플레이 소재로 만든 TV를 말한다. 화질 반응 속도가 액정표시장치(LCD) TV보다 1000배 이상 빨라 차세대 TV로 주목받고 있다. 소니가 2007년 10월 세계 최초로 11인치 OLED TV를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했지만,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대화면 패널 양산을 포기해 삼성과 LG의 양강 구도로 좁혀진 상태다.
  • 신종플루 예방 백신 뚱뚱하면 효과 감소

    뚱뚱한 사람에게는 신종인플루엔자(H1N1) 예방 백신이 잘 듣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바이러스감염연구단 부하령 박사와 실험동물센터 이철호 박사 연구팀은 “일부러 살을 찌운 생쥐에게 신종플루 백신을 투여하자, 약효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 감염학회지’ 12월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몸무게가 정상인 쥐와 비만인 쥐에 백신을 접종한 후 신종플루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후 약효를 살폈다. 그 결과 살이 찐 쥐는 백신을 맞아도 항체수가 크게 떨어졌고, 합병증인 폐렴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의학계에서는 2009년 유행했던 신종플루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비만이었다는 점 때문에, 체중과 신종플루 사이에 연관이 있을 것으로 여겨왔지만 실제 백신 효능 연구결과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김정은, 운구차 붙잡고 눈물… 운구행렬 평양 40여㎞ 돌아[동영상]

    김정은, 운구차 붙잡고 눈물… 운구행렬 평양 40여㎞ 돌아[동영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8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영면에 들며 37년간 북한의 절대 통치자로 군림했던 영욕의 세월을 내려놓았다. 냉·온탕을 오가는 대외정책으로 한반도 정세를 쥐고 흔들었던 1인자가 사라진 북한의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 영결식이 진행된 이날은 온종일 회색빛을 띠었다. 김 위원장 운구 행렬은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수천명의 인민군을 마지막으로 사열하며 영결식 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영정이 내걸린 선두 차량 뒤로 검은색 리무진 등이 호위하듯 따랐고, 국화와 붉은기로 장식된 영구차가 중앙에 섰다. 그 뒤로 흰색 리무진 수십여대가 꼬리를 이었다. 영구차는 1994년 7월 19일 김일성 주석의 시신 운구에 사용됐던 것과 같은 포드사의 최고급 리무진 ‘링컨 컨티넨털’이었다. ●김정은 주위 당·군 지도부 ‘호위’ 김 위원장의 셋째 아들인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검은 상복 차림으로 영구차의 오른쪽 맨 앞에 서서 영구차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눈길을 걸었다. 표정은 침통했으나 금수산기념궁전에 도열한 조선인민군 군기 종대와 육·해·공군 및 노농적위대 의장대를 지날 때는 거수경례로 자세를 바꿔 지도자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영구차의 오른쪽에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왼쪽에는 리영호 총참모장 등 군 지도부가 호위하듯 섰다. 김 위원장 ‘옹위세력’이었던 인민군과 당·국가기관 구성원들은 운구 행렬이 광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금수산기념궁전 정문으로 올 때까지 90도로 허리를 굽힌 자세를 유지하며 예를 표시했다. 운구 행렬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여성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울음을 터뜨렸고, 인민군 군관들은 눈물을 훔쳤다. 영결식을 중계하던 조선중앙TV 리춘희 아나운서는 “가장 비통한 마음과 전 세계 뜨거운 추모의 마음이 모여든 금수산궁전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영결식을 엄숙히 거행하고 우리 장군님을 생전 모습 그대로 정중히 모신 자동차가 영웅거리로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 인민군은 인터뷰에서 “하늘도 눈물처럼 눈을 끊임없이 쏟고 있다. 대국상에 하늘인들 울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군관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운구 행렬은 평양 시내를 돌았다. 개선문,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통일거리, 충성탑, 평양체육관, 조국해방전쟁기념탑, 옥류교 등 40여㎞를 돌아오는 거리였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도로에는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평양 시민들이 도열해 김 위원장을 떠나보내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록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김 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날 때마다 모자를 벗어 예를 갖췄다. 하지만 카메라와 멀리 떨어진 뒷줄의 주민들은 앞줄과 달리 덤덤한 표정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운구 행렬은 군악대, 김정은 부위원장 대형 화환, 군인들이 탑승한 모터사이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 운구차, 장의위원들이 탑승한 차량 순으로 이어졌다. 장의위원과 당 고위 간부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은 김 위원장이 즐겨 타던 벤츠가 다수를 차지했다. ●평양 시민들 도열해 오열 김 위원장 영결식은 전날 밤부터 내린 눈으로 당초 시작될 예정이었던 오전 10시보다 늦은 오후 2시에 열렸다. 북한은 아침부터 많은 인력을 동원해 제설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 운구차가 지나기로 예정된 길은 평양 시민들이 나서 깨끗하게 눈을 치운 상태였다. 북한 매체들은 특보체제를 이어 갔다. 조선중앙TV는 오전 7시부터 김 위원장의 일대기와 사진, 업적 등을 담은 방송을 시작해 사실상 종일 방송을 했다. 방송은 오후 2시 넘어 영결식 중계를 시작하며 ‘실황중계’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거리 행진을 마친 김 위원장의 시신은 오후 4시 40분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돌아와 중앙방 가운데의 투명한 유리 안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상도·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쇄신 칼날… ‘기대반 우려반’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시작부터 쇄신 드라이브를 걸고 나서면서 당내에선 기대와 우려의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비대위가 디도스 사태 관련 국민검증위 설치, 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첫 발표물로 내세우며 국민과의 소통 의지를 내세웠지만 결국 쇄신의 핵심이자 종착점은 공천 개혁이기 때문이다. 당의 눈과 귀는 벌써부터 공천심사위 구성, 기준안 마련 등 ‘공천 칼자루’를 쥐게 될 비대위원들에게 쏠리고 있다.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계 할 것 없이 긴장하는 모습이다. 친이계 핵심 용퇴론이 비대위 차원에서 나올 경우 계파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인적 물갈이론 역시 친박계가 다수인 영남권 고령·다선 의원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 비대위원이자 비대위 산하 정책·공천개혁 분과위원장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28일 자신의 ‘책임 있는 사람 퇴진론’에 대해 “청와대 주요 인사, 현 정권 핵심 인물은 물론 당을 위기로 내몬 현역 중진들도 포함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한 친박 의원은 “비대위가 공천심사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현 정부 실세나 책임을 질 만한 사람들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물갈이해야겠지만 미리 언급해 분란을 일으키는 건 자제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다른 중진 의원은 “비대위가 현재 명실상부한 최고지도부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전지전능하게 모든 걸 쥐고 흔들라는 뜻은 아니다.”면서 “당에 기여해 온 의원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전국 4만여 우체국직원 ‘파파라치’ 총동원…네온사인·가짜석유와 전면전

    전국 4만여 우체국직원 ‘파파라치’ 총동원…네온사인·가짜석유와 전면전

    정부가 네온사인 과다 사용 업소와 가짜 석유 판매 주유소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전국 4만여명의 우체국 직원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 지식경제부는 “전국 3700여곳 우체국 직원 4만 4000여명을 동원,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에너지 절약 위반 업소와 가짜 석유 판매 업소를 적발할 것”이라고 27일 밝혔다. 우체국 직원들은 에너지 사용제한 시행 기간인 내년 2월 29일까지 네온사인 사용 제한 시간대(오후 5~7시)에 업소들의 네온사인 이용 여부를 점검한다. 가짜 석유 판매 주유소도 색출한다. 지경부 관계자는 “지경부가 전국 우정청별로 신고 사례를 접수해 처분 권한이 있는 시·군·구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절전은 올겨울 전력수급의 키를 쥐고 있고, 가짜 석유 근절은 정부의 핵심 정책”이라며 “전국 조직망을 갖추고 있는 우체국 직원들이 모니터링에 나서면 업소들이 경각심을 갖고 정부 정책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경부는 향후 우체국 조직을 활용, 정부 정책이 올바르게 집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中, 北 현수준 핵개발 용인 점차 개방체제로 이끌 것”

    “中, 北 현수준 핵개발 용인 점차 개방체제로 이끌 것”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가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김정은 체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며, 6자회담 재개 및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일본 내 중국 전문가인 시미즈 요시카즈(58) 도쿄신문 논설주간은 “중국이 김 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김정은 체제의 강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중국은 현재 수준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면서 북한을 점차 개방체제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시미즈 논설주간과의 일문일답. →중국이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다룰 것으로 보는가. -김 위원장 사망 발표 다음 날인 지난 20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조문 차 방문한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북한이 김정은의 지도로 국가건설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한다.”며 구체적으로 김정은의 이름을 거론했다. 앞서 19일 중국의 조문 메시지에도 김정은의 이름을 인용한 것을 보면 김정은 체제를 지원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김정은의 나이가 27세에 불과해 김 위원장과는 급이 다르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런 점을 감안할 것으로 보나. -지도자의 나이와 관계없이 중국에 북한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 중국 군 내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를 놓고 미국·일본·한국과 함께 압력을 가해서라도 핵을 단념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해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2009년 4월 중국 공산당 외교지도그룹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핵문제는 점차 해결해 간다는 방침을 정하고 김정은 체제하에서도 북한에 대한 전면적 지원을 명확히 했다. 당분간 중국의 입장은 변화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북한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끔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중국만이 북한에 의지처가 되고 있다. 북한은 에너지, 식량 부족은 물론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다.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유지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압력을 행사해 북한이 핵개발을 해도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수준에서 묶어 두려고 할 것이다. 전면적으로 핵을 포기하게 하려고 해도 북한이 리비아 사태를 지켜봤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 차원에서 핵무기가 유일한 의지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중국도 대체로 이해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맞아 한국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남북관계를 개선해 북한이 중국만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도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점점 영향력을 확대해 지역 패권을 쥐는 것에 대해 상당히 걱정하고 있어 북·미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북·미, 북·일관계를 개선해 북한이 중국만을 의지하지 않도록 하는 국제환경을 구축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삼성전자, 소니 합작사 S-LCD 청산

    삼성전자가 7년 8개월 만에 일본 소니와의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합작사업을 청산한다. 삼성전자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소니와 합작해 설립한 패널 합작사 S-LCD를 정리하기로 의결했다. 삼성전자는 소니가 보유한 S-LCD 지분 3억 8999만여주(1조 800억원)를 전량 매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S-LCD 양산라인을 기존 TV용 패널에서 중소형 패널까지 다변화하고 소니와는 대형 패널과 중소형 패널을 일정 기간 공급하는 계약을 하고 별도로 협력 관계를 지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S-LCD는 2004년 4월 삼성전자와 소니가 TV용 대형 LCD패널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합작 설립했다. 자본금은 3조 3000억원으로, 삼성전자가 지분 ‘50%+1주’, 소니가 ‘지분 50%-1주’를 보유했다. 그러나 최근 LCD TV 수요가 급감하면서 소니의 TV사업부가 7분기 연속 적자를 보여 누적 손실액이 6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소니로서는 적자를 타개할 필요성이 커졌다. 차세대 주력제품인 스마트폰에 투자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S-LCD는 현재 충남 탕정에서 2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1조 3700억원으로 주로 40인치대 LCD TV용 패널을 생산해 삼성과 소니에 각각 절반씩 공급해 왔다. ●LCD TV 수요↓… 7년 8개월만에 정리 하지만 지난해부터 LCD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소니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세계 TV 시장에서 삼성에 이어 LG에도 판매량이 뒤지면서 S-LCD에서 생산하는 패널조차 소화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 때문에 소니는 세계 9개 시장 거점을 매각 또는 통폐합해 4개로 줄이고, 타이완 TV 업체들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위탁 생산을 늘리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하워드 스트링어 소니 회장도 “TV 사업에서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소니로서는 프리미엄·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는 S-LCD에 대한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니 ‘소니에릭슨’ 인수 나설 듯 여기에 소니는 최근 스마트폰 기획 및 개발, 생산 등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에릭슨(스웨덴)과 지분 50%씩 투자해 세운 휴대전화 합작사 소니에릭슨의 지분을 100% 보유하기로 결정했다. 가정용 게임기와 금융, 전자부품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애플과 삼성전자처럼 최고 수준의 스마트기기 제품을 내놔 또 한 번의 ‘워크맨’ 신화를 일궈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에릭슨이 갖고 있는 지분 50%(14억 7000만 달러)를 매입해야 하지만, 자금이 넉넉지 않은 소니로서는 이 금액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이번 S-LCD 매각대금을 활용해 소니에릭슨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즉 아랫돌(TV 사업)을 빼내 윗돌(스마트폰 사업)을 괴겠다는 포석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소니는 올 하반기부터 삼성 측에 합작 청산 논의를 꾸준히 제기해 왔고, 결국 두 회사는 이날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 한편 소니와의 합작 청산으로 삼성전자는 S-LCD에서 생산하는 LCD 패널의 새 수요처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소니가 삼성과의 제휴를 통해 당분간은 삼성전자의 LCD 패널을 그대로 쓰기로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지 다른 업체의 패널로 갈아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LCD 패널 시장 부진과 TV 사업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됐다.”면서 “두 회사가 다각적인 협의를 통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의 경쟁력 지속 강화를 위한 새로운 LCD 패널 동맹 구축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소니의 주식 양수도 및 대금 지불은 행정 절차를 거쳐 내년 1월 말 완료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마이웨이 vs 미션임파서블4, 승자는 누구?

    마이웨이 vs 미션임파서블4, 승자는 누구?

    2011년 대한민국 극장가는 그야말로 국내외 블록버스터끼리의 전쟁터다. 강제규 감독의 7년만의 복귀작이자 오다기리 조, 판빙빙 등 아시아 배우들이 출격한 영화 ‘마이웨이’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명사 중 하나인 톰 크루즈의 영화 ‘미션임파서블4:고스트 프로토콜(이하 MI4)의 대결은 피만 튀지 않을 뿐, 총칼없는 전쟁이나 다름없이 치열하다. 마이웨이와 MI4의 전쟁터를 포인트 3가지로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입이 떡 벌어지는 제작규모 마이웨이의 순제작비는 280억 원, 국내 영화제작 역사상 최대 규모다. 해외로케이션도 동유럽 발트해 연안 국가 리투아니아부터 중국과 러시아 등을 오가며 생생한 전쟁현장을 담아냈다. 실제 전투 장면에도 막대한 물량이 투입됐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화약과 탱크들이 등장하는 노르망디 전투 장면은 국내 전쟁영화 제작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할 만큼 ‘지독하게 잔인한’ 클라이맥스로 꼽힌다. 하지만 ‘돈 앞에 장사 없다.’ 했던가. 제작비 1억 4000만 달러(약 1620억 원)가 들어간 MI4는 자본의 위대함을 가시적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미국 LA, 체코 프라하, UAE 두바이,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인풋(Input)대비 아웃풋(Out put)의 훌륭한 예로 꼽을 만 하다. 두 작품 모두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했지만, MI4가 볼거리를 더 잘 살렸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진다. 물론 가시적인 즐거움 뿐 아니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토리도 MI4을 눈이 신나는 영화로 만든 것은 물론이다. ●참신하거나 혹은 뻔한 스토리 마이웨이의 기본 ‘무기’는 전쟁이다. 물론 MI4도 핵전쟁이라는 소재가 등장하지만, 전쟁 발발 후와 전쟁 발발 직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마이웨이는 이미 과거에 발생한 일을 그리고 있는데다, 관객을 사로잡을만한 반전 또는 극적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반전’이라면 판빙빙의 출연분량 정도일까. ‘주인공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그대로다. MI4 역시 주인공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는 점은 같지만, 마치 주인공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느낄 만큼의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 전체에 도사려 있다. 크렘린 궁에서 등장하는 4차원 시물레이션 기기,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할 수 있게 해주는 첨단 장갑, 열로 부력을 발생해 공중부양을 가능케 하는 기기는 보는 재미를 배로 높인다. 여기에 주인공 이단 헌터(톰 크루즈)가 핵전쟁을 막기 위해 펼치는 갖가지 플랜,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고난도의 액션을 보고 있노라면, 조금 과장을 더해 ‘팝콘 먹는 걸 까먹을 만큼’ 집중하게 된다. 두 작품 모두 ‘뻔하고 뻔한’ 구석이 있다면 눈에 띄게 민족주의를 강조했다는 것 정도인데, 이제 관객들도 ‘민족적 블록버스터’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져있지 않을까. ●날카로운 관객평 전쟁영화의 특성상 호불호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마이웨이는 관객평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6일 현재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네티즌은 6.93, 패널은 7.55, 전문가는 5.66을 기록하고 있다. 제작사 측은 연말과 설 특수를 노리고 있지만, 입소문이 ‘귀한 입김’으로 작용하는 국내 영화시장 특성상 이 같은 평점 성적이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MI4는 “돈 자랑이 너무 심한 영화”, “유치한 스토리” 라는 일부 관객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네티즌 8.79, 패널 8.50, 전문가 7.64의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전쟁영화를 꺼려하는 여자관객들의 표심을 사로잡은 것도 MI4가 앞서는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제작사 측은 MI4가 역대 시리즈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마이웨이와 MI4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극명한 작품이다. 때문에 승자와 패자를 가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MI4가 앞서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25일까지 마이웨이 누적관객 100만 1676명, MI4 318만 4395명). 뒤쳐지고 있는 마이웨이 측에서는 엉덩이가 바싹 타들어가는 느낌이겠지만, 관객들은 오랜만에 쟁쟁한 영화 두 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특히 수 백 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한국영화는 필히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익분기점을 넘고 손해를 보지 않아야 다음 제작을 기다리는 크고 작은 한국영화들이 제작의 전쟁터에 뛰어 들 ‘총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산영화라고 무조건적인 찬성표를 던지는 것도 유해하다. 날카로운 지적과 철저한 반성이 어우러져야 발전이 가능하다. 비록 MI4에 밀리는 마이웨이지만, 몸에는 좋지만 입에는 쓴 약처럼 건강한 한국영화 성장에 힘을 불어넣어 줄 포도당 같은 영화로 길이 남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쥐·개구리 잡아먹는 초대형 ‘엽기 식물’ 이름은…

    쥐나 개구리 등을 잡아먹는 ‘육식식물’이 학계에서 인정받고 정식 종(種)으로 채택됐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27일 보도했다. 길이가 약 2.5m에 달하는 이 식물은 1980년대 동남아시아 말레이제도에 있는 보르네오섬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이를 발견한 식물학자 롭 캔틀리는 이를 연구해오다 5년 전 영국 첼시꽃박람회에서 이 꽃을 공개해 영국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았다. 영국왕립원예협회는 다년간 연구 끝에 이 꽃을 공식 인정하기로 결정했으며, 캔틀리 박사의 이름을 따 ‘네펜시스 롭캔틀릿’(Nepenthes Robcantleyt)이라 부르기로 했다. 네펜시스는 벌레잡이통풀 종을 이르는 말이다.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새 식물종을 인정하기까지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네펜시스 전문가인 마틴 체크 박사는 “이 식물의 매우 놀랍고 드라마틱한 것이 사실”이라며 공식인정 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 식물은 표면에 얼룩덜룩한 바둑판무늬로 파리 등 작은 곤충 또는 개구리나 쥐 등을 유인한다. 사람의 소화기관과 유사하게, 먹이를 삼킨 뒤에는 강한 산성의 액체를 내뿜어 이를 소화시킨다. 식물학자들은 이 식물이 거의 멸종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것으로 여기고 탐색을 이어가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中·日 “한반도 안정이 공통의 이익”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관련국 공통의 이익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오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가진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문제와 관련, “관련국이 냉정함을 유지해 가면서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대화와 협력으로 비핵화를 실현해 한반도의 장기 안정을 도모하고 싶다.”면서 “일본 등 관련국과 긴밀한 의사 소통을 유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노다 총리는 “김 위원장의 사망이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현재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쥐고 있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다 총리는 이어 “일본과 중국이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냉정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노다 총리는 앞으로의 상황에 차분하고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양국이 북한의 움직임과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에 대해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살고 있는 일본인 피랍자 문제와 관련해 노다 총리는 “납치 문제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중국의 이해와 협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주석은 “북한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지지한다.”면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내년으로 다가온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맞아 전략적 호혜관계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친환경·금융 등에서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한·중·일 투자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도 진전시키기로 했다. 센카쿠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 문제와 관련, 양국 정상은 동중국해를 평화와 협력, 우호의 바다로 하자는 기존 합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노다 총리는 내년에 중국 정상이 일본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노다 총리는 25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간 분쟁 해역인 동중국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일본의 중국 국채 매입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양국은 동중국해 가스전의 공동개발 협상을 재개하고 일본산 식품에 대한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노다 총리는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중국 지도부와 잇따라 회담한 뒤 다음 방문국인 인도로 떠났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박홍환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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