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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서 살인모의·미수 ‘12년刑’

    인터넷을 통해 범행을 공모,강도행각을 벌이고 증거를 없애려고 불까지 질러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한 일당에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철)는 21일 인터넷 ‘범죄사이트’에서 만나 강도,살인을 모의한 뒤 이를 실행한 정모(30)·이모(29)씨에 대해 강도살인미수와 현주건조물방화죄 등을 적용,징역 12년을 선고했다.공범 이모(28·여)씨와 김모(19)군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됐다. 정씨는 2003년 12월10일 인터넷 D포털사이트 ‘클럽한탕’카페에 ‘한탕하실 분 연락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려 만난 이씨에게 “내가 400만원을 빚진 사람이 있으니 돈을 빼앗고 살해하자.”고 제안했다.즉석에서 범행에 합의한 이들은 정씨에게 돈을 빌려준 서울 서초구 양재동 박모(40.여)씨의 집에 찾아가 현금 61만원 등을 훔친 뒤 쇠파이프로 박씨를 10여차례 내리쳤다.이들은 박씨에게 의식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집은 전소됐지만 가까스로 박씨는 목숨을 건졌다. 며칠 뒤인 20일 오후 2시쯤 이씨는 커뮤니티에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며칠 전 범행을 함께 한 정씨와 새로 여성회원 이씨,김군이 동참했다.이씨는 이들에게 “우리 이모네 집을 털자.”고 제안,다음날 오후 9시40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2동 김모(59)씨의 집에 들어가 현금 46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유영규기자 whoami@˝
  • 중화뉴타운에 포함 검토

    상습 침수지역인 서울 중랑구 ‘중화뉴타운’에서 제외된 중화2동·묵2동 주민들이 뉴타운 추가 지정을 요구하며 연대서명에 돌입하는 등 사업추진에 비상이 걸렸다. 중화뉴타운은 지난해 11월 상습 침수지역 해소 차원에서 중화3동 312와 묵동일대 15만 4430평이 지정됐다.지구지정 목적은 수해와 침수에 대비하는 재해예방형 주거단지를 만드는 것.사실 이 지역은 인접 중랑천 수위보다 낮은 저지대 특성상 비만 오면 물이 빠지지 않아 극심한 침수피해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상습 수해지역인 묵2동과 중화2동 주민들은 “현재 뉴타운안은 침수지역 대부분이 빠진 것”이라며 “이 안대로 시행될 경우 반쪽짜리 뉴타운에 불과할 것” 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묵2동 뉴타운추진위원장 이재춘(53)씨는 “묵2동의 경우 1만 9000여평만 뉴타운에 포함됐고 나머지 14만 9000여평은 제외됐다.”며 “이번에 빠진 곳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침수피해 지역인 만큼 추가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중화2동 박해원 통친회장도 “뉴타운지구 지정에서 제외된 6만 6000여평이 추가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중랑구는 당초 목적인 수해예방형 주거중심의 뉴타운이 실현되려면 이들 지역의 추가 지정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개발기본계획안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15만여평인 중화뉴타운의 경우 면적이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 최하 수준이다.주민들의 요구를 모두 반영한다 해도 37만여평으로,서대문·마포구 35만평,용산구 33만평과 비슷하다. 서울시의 유연한 입장도 확인됐다.서울시 뉴타운총괄반 한광훈씨는 “추가 지정은 가능하다.”면서 “해당 자치구에서 협의를 요청해 오면 적어도 3차례의 검토 과정을 통해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시는 우선 주민들과 구가 협의해 타당성이 인정되면 개발기본구상안 검토시점인 5월,개발계획 수립단계인 7월과 9월에 자치구의 의견을 반영할 방침이다. 문병권 중랑구청장은 “명실상부한 중화뉴타운 건설을 위해 서울시와 추가 지정 문제를 협의해 조정하겠다.”며 해당 주민들의 실력행사 자제를 당부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중랑구 공공근로 40% 확대

    중랑구(구청장 鄭鎭澤)는 내년 1월부터 공공근로 인력을올해보다 최고 40%까지 늘려 운용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공동작업장 인력도 같은 비율로 늘릴 계획이다. 장기불황 및 동절기 건설공사 중단 등으로 늘어날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서다. 중랑구는 우선 올해 최고 500명으로 운용해 온 공공근로인력을 최고 700명까지 40% 가량 늘릴 계획이다. 지난 99년 관내 중화2동에 설치한 중소기업 공동작업장에 투입하는 공공근로 인력도 현재 50명에서 70명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4년간 3만8,000여명의 연인원을 투입해 온 공동작업장 인력이 내년말에는 6만여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중랑구는 공동작업장에 파견된 공공근로자들의 재취업을 역점적으로 추진,재활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지금까지 이곳에서 기능을 익혀 재취업한 공공근로자는 모두 150명이다. 한편 중랑구는 지난 98년부터 행정정보화와 공동작업장,중랑천 둔치 전원조성사업 등 4개 분야,26개 사업에 연인원 120여만명의 공공근로인력을 투입했다. 심재억기자
  • 수재민들 도로점거 격렬시위

    집중호우로 침수된 지역의 주민들이 정부기관의 수재 책임을 따지는 항의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17일 오후 8시5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1동과 양천구 신월2동 주민 60여명은 신월2동 450 신월국도 서울∼인천방향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침수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벌이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30여분만에 해산됐다.이들 중 10여명은 서울 방면 반대차로로 건너가 차로 일부를 점거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도로 점거를 주도한 김모(40·서울 강서구화곡1동)씨 등 4명을 연행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이날 점거로 서울에서 인천방면 도로가 경인고속도로 입구에서부터 심하게 밀렸고 반대 방향 차선도 구경하는 차량들도 인해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이 일대도로가 약 1시간에 걸쳐 극심한 교통 혼잡을 겪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7시30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침수피해 주민 300여명도 “구청측의 피해보상이 미흡하다”며중화동 태릉시장 인근 복개천 도로 점거를 시도했으나 경찰에 의해 제지당하자 오후 9시30분까지 복개천 굴다리 부근과 망우리인도상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양천구 신정2동 주민 100여명도 이날 오후 8시20분께 ‘침수피해 보상’과 ‘구청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양천구청에서 농성을 벌였다. 주민들은 허완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밤늦게까지 농성을 계속했으며 구청측은 실무국장들을 내세워 주민대표와의대화에 나섰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구청 주위에 경찰병력 1개중대 120여명을 배치했다. 조현석 안동환기자 hyun68@
  • 독자의 소리/ 상해진단서 발급 수수료 일반의 5~10배

    병원에서 발급하는 상해진단서의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대부분의 병원에서 상해진단서의 수수료를 3주미만 진단의 경우 5만원,3주이상은10만원을 받고 있다.일반진단서의 수수료 1만원에 비해 너무 비싸다. 그러나 상해진단서가 일반진단서와 특별히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내용이라고는 인적사항 및 의사소견 몇자가 전부이다.결국일반진단서와 이름만 다를 뿐 상해진단서 발급에 특별한 비용이 드는것도 아닌데 5만∼10만원을 받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병원측은 상해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형사사건과 관련해 병원 출두할때 예상되는 비용 때문에 일반진단서보다 수수료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하지만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하는경우는 거의 없다.따라서 상해진단서만 유독 비싼 것은 불합리하다. 시민들의 부담을 고려하여 병원들이 상해진단서의 수수료를 인하하도록 관계기관에서 유도했으면 좋겠다. 김성중[서울 중랑구 중화2동]
  • ‘공동작업장’ 공공근로 새모델로

    중랑구가 공공근로사업으로 인력중개방 기능을 겸한 공동작업장을 운영,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공공근로사업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평가를 받고 있다. 자치단체가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공공근로사업 형태의 공동작업장을 운영하기는 전국에서 중랑구가 처음이다. 중랑구는 지난 3월 옛 중화2동사무소를 공공근로 공동작업장으로 개조,80명의 상주인력을 투입해 올해 1,2단계 사업기간중 관내 중소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봉제 가공 포장 조립 등 모두 253만7,016점의 일감을 처리했다고 31일밝혔다. 이같은 처리규모는 1일 4만4,000여점에 이르는 작업량으로 이 기간에 48개중소기업이 공동작업장에 일감을 의뢰했으며 작업내용은 실밥 제거와 전자부품 조립 및 포장,절단 등이다. 공동작업장 운영으로 봉제가공업 등 영세 중소기업의 제조원가 부담을 줄여 경쟁력 강화를 도왔는가 하면 일감이 마땅치 않았던 공공근로인력 활용면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작업장과 함께 취업 알선창구도 운영,이 기간에 작업장에 투입된 10명의 실직자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32건의 인력 중개업무를 처리하는 성과도 거뒀다. 중랑구는 공동작업장 기능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중소기업 후견인과 구정소식지 등을 통해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공공근로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한 교육을 강화,업무의 효율성을 높여 나가기로 했다. 정진택(鄭鎭澤) 구청장은 “처리하는 일이 단순작업이지만 이곳에 일감을의뢰하는 기업은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고 작업 참여자들은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며 “앞으로 공동작업장의 기능을 한층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정신분열 30代 “혼자 죽기싫다” 놀이터 어린이에 칼부림

    30대 남자의 정신분열증이 철모르는 어린이의 죽음을 불렀다.선진외국의 사례처럼 지역별로 정신보건사업을 체계적으로 활성화시켜 중증의 정신질환자를 특별관리하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16일 오전 9시50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2동 세화공원내 놀이터에서 이지형(李智亨·34·서울 노원구 월계2동)씨가 미끄럼틀 아래에서 흙 장난을 하던이 동네 조영은군(4)과 강민석군(4),유효정양(4)을 흉기로 마구 찔러 조군은 숨지고 다른 2명은 중태다. 이씨는 범행 직후 인근 홍모씨(29·여)의 집으로 찾아가 “자살하려고 했는데 못하고 아이들 3명을 죽였다”고 말한 뒤 경찰에 신고해줄 것을 자진 요구,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붙잡혔다.홍씨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피묻은 칼을 보여줘 10시쯤 신고했다”고 말했다. 부상한 아이들은 119 차량으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조군은 병원에 도착한직후 숨졌다. 이씨는 지난 79년부터 우울증과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왔으며 최근까지 월계동 Y병원과 노원구 보건소에서 정신분열증 치료약을 받아복용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경찰에서 “정신분열증에 걸린 뒤 살기 싫어 자살하려고 했으나 혼자 죽기는 억울했다”면서 “아이들을 죽이면 사형선고를 받아 세상을 뜰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이날 오전 9시쯤 흉기를 지니고 자신이 졸업한 중화동 M초등학교에들어가려다 경비실 직원의 제지로 실패한 뒤 곧바로 이웃 세화공원으로 가범행을 저질렀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별다른 직업 없이 생활해 왔고 지금은 어머니(74)와 단둘이 살고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이씨에 대해 살인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하는한편 정신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한편 복지부 관계자는 “정신질환자는 우선 보호자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관리해야 하지만 이씨처럼 보호자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으면 돌발적인 상황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면서 “중증의 정신질환자를 공주 치료감호소에보내는 방안 외에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미경 전영우기자 chaplin7@ kdaily.com
  • 서울 중랑구,中企지원 공공근로작업장 별도개설

    서울 중랑구(구청장 鄭鎭澤)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공공근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공공근로자 일터를 오는 10일부터 개설,운영한다. 구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소업체 공공근로자 지원이 활성화되면서 업체의인력 지원 요구가 늘고 있으나 대부분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는 영세한업체여서 별도의 공공근로자 공동작업 공간을 마련했다.공공근로자 일터는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는 지상2층 규모의 전 중화2동사무소 건물에 조성됐다. 이번에 새로 투입되는 공공근로자 110명은 앞으로 이 공동작업장에서 봉제포장 조립 등 단순한 일감을 받아 관내 32개 중소업체를 지원하게 된다.
  • “人災다” 주민들 집단訴 준비

    ◎우이천변­“지하철 물막이벽 뚫려 침수… 건설사 책임”/중랑천변­“구청이 준설토 야적장 만들며 제방 낮춰” 인재(人災)냐 천재(天災)냐. 폭우피해 지역주민들이 이번 수재가 명백한 인재라며 집단민원과 손해배상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석계역 앞에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성북구 석관1동과 장위3동 주민 400여명은 건설사와 지하철건설본부로부터 보상을 받을때까지 단체행동을 하겠다는 태세다. 주민들은 침수 피해가 전적으로 지하철 6호선 6∼10공구 시공사인 LG건설의 책임이라며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이천에서 범람한 물이 지하철 공사장으로 유입된 뒤 공사장 물막이 벽을 뚫고 마을을 덮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LG건설측은 그러나 노후한 하수관이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침수됐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석관1동 수해보상대책위원회 대표 許太植씨(40)는 “이번 수해는 인재가 명백한 만큼 소송 등을 통해 반드시 피해를 보상받겠다”고 말했다. 노원구 공릉1·3동 주민들도 인재로 규정,공동 대응할 방침이다. 주민들은 노원구청이 중랑천가에 하수구 준설토 야적장을 건설하면서 1m 높이의 제방을 허무는 바람에 2,00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고 주장한다. 반면 구청측은 제방은 건드리지 않고 공사를 했기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항의가 거세지자 李祺載 노원구청장은 지난 12일 주민들과 만나 신뢰할 만한 기관에 피해원인 조사를 의뢰하자는데 일단 합의했다. 강북구 번동 4단지 입주자대표회(대표 安圭栢)도 구청에 집단 민원을 제기했다. 노면 배수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아파트 지하에 물이 차는 등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공공하수도가 터져 반지하층 가구 대부분이 침수된 중랑구 면목1∼8동,상봉1동,중화2동 주민들도 하수도 공사 부실을 이유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청측은 홍수에 대비,가정마다 펌프 등 역류방지기구를 구입하라고 계도해 왔는데도 주민들이 따르지 않아 피해가 났다는 입장이어서 충돌이 불가피하다. 중랑천 범람으로 최대 피해를 입은 노원마을 주민들도 하수도가 제대로 준설되지않아 물이 역류,피해를 당했다며 택지개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이다.
  • 재산다툼끝 아내·장모 살해/이혼요구 30대… 자신도 자해 중태

    24일 하오 5시15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2동 318의 110 김봉희씨(59·여)집 지하방에서 김씨와 딸 박경숙씨(32·중화2동 299의 154)가 박씨의 남편 신영수씨(35·상업)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신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 이웃집 보일러실에서 흉기로 자신의 배를 찌르는 등 자해소동 끝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현장에서 범행을 도운 신씨의 동생 동기씨(34·무직·중랑구 면목6동)는 이웃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신씨는 이혼을 요구하며 부인 명의로 된 3천만원 가량의 통닭집과 2천만원짜리 전세집의 등기를 자기 앞으로 바꿔달라고 하다 거절 당하자 흉기를 휘둘렀다.
  • 서재필 박사 동상 약력 “엉터리”/역사연구가 시정요구

    ◎독립협회 창설시기 등 틀리게/서울시 유족과 협의 수정키로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에 있는 송재 서재필 박사의 동상에 새겨진 박사의 약력이 엉터리다. 역사연구가 김보영씨(68·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1)는 29일 신문협회에 이같은 잘못을 지적,정정을 요구했다. 서박사의 동상은 지난 90년 4월7일 언론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이 성금을 모아 독립공원에 세웠고 개막식과 함께 서울시에 기부 채납했다.3.25m의 입상으로 조각가 김경승씨의 작품이다. 개화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독립신문의 발행인인 서박사는 1864년 1월 전남 보성에서 출생했다.그러나 동상에는 충남 논산군 구자곡면 출생으로 써있다.김씨는 박사가 독립협회를 창설한 뒤 독립문을 만든 시기가 1898년 11월임에도 동상에는 1897년으로 잘못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독립문은 그 전부터 있던 영은문을 개축한 것으로,그때 착공식을 갖고 이듬해 준공했으나 별도의 준공식도 없었기 때문에 이때를 건립시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박사가 51년 1월5일 미국에서 별세했음에도,동상에는 51년 11월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는 신문협회가 수정을 요구하면 유족회와 협의해 바르게 고치겠다고 밝혔다.
  • 미군정의 공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4)

    ◎자국입장 살리며 한국군정 수립에 큰 기여/기득권층 흡수… 일제잔재 청산의 걸림돌로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공식출범하는 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1945년 9월9일 미군정이 시작된지 3년여만에 군정이 종식된 것이다.미군정은 이보다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으로부터 경찰과 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포함한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는 모든 직무에 대한 이양요청을 받았다.주한미군사령관은 8월11일 이에 동의하고 이양절차를 신속히 밟기 시작했다. ○좌우익대립 평정 공헌 그러나 미군의 완전철수는 다음해인 1949년 6월29일에 이루어졌다.5백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겼으나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이렇듯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미군정 3년여는 이 땅에 많은 것을 남겨 놓았다.그렇다면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의 공과는 무엇일까.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한국현대사,이른바 해방정국사를 푸는 중요한 키 노트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평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다만 자국의 입장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에서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을 추진한 미군정은 결국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단독정부를 수립시켰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해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미군정은 이승만을 전면에 부상시킬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래서 5·10선거 직전까지도 김규식에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실제 국회의원 선거(서울 동대문 갑구)에서 이승만을 낙선시키려는 공작도 했다. 어떻든 미군정은 이승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규식이 정계은퇴 의사를 분명히 하는 바람에 싫든 좋든 간에 이승만의 등장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이승만과 경선하기 위해 밀었던 전 미군정 경무국장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이에따라 5·10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승만은 확고한 정치적 발판을 굳히고 국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이 등장한 마당에서 미국이 그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동서대립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그만한 인물을 찾기도 실상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미군정이 좌우익 대립을 어느 정도 평정한 것은 군정의 공헌쪽에다 비중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이렇듯 혼미한 해방공간에서 45년 12월 경찰이 창설된데 이어 46년 1월에는 국방경비대가 창군되었다.미군정의 병력과 경찰력의 확보는 정치세력,특히 좌익의 극단적 움직임과 연관성을 갖는다. ○한민당계 인사 큰 혜택 군에는 광복군 출신을 비롯,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들이 포진했다.이 가운데 일본군 출신들이 두각을 드러내 군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버렸다.경찰의 경우도 조선총독부 시절의 인물들이 그대로 끼어들었다.이는 미군정이 일제치하의 경찰을 좌익색출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폭동,3·1절 좌우충돌,3월 총파업,4·3사태를 진압하는데 공헌했다.또 일본군 출신을 주축으로 한 군 역시 46∼50년까지 발생한 반란사건 진압과 토벌의 주력이 되었다. 미군정은 정부수립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걷는데 일제시대 기득권층을 그대로 흡수한 측면이 없지 않다.이는 정부수립 후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해방 원년 일본인 관리들이 물러난 자리에 7만5천여명의 한국인을 앉혔다.그 과정에 미군정의 인사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일제하의 관료를 우대했는데,한민당계의 인사들이 큰 혜택을 입었다.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지원할 무렵에는 안재홍과 같은 인물이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한민당계에 밀렸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일본이 침략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악법을 19 45년 10월9일 법령11호에 따라 폐기해버렸다.여기에는 정치범처벌법,예방검속법,치안유지법,출판법,정치범보호관찰령,경찰의 사법권 등이 포함되었다.미군정은 이 악법들의 폐지 이유를 「한국인들에게 정의의 정치와 법률상의 균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미군정은 소련의 한반도 적화정책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유를 안겨주었다.초기에는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한 것은 물론 출판언론의 자유도 열어주었다. 패전국 일본이 남겨놓은 재산은 기업의 경우 전체의 90%,토지는 전 국토의 12·5%나 되었다.이 재산은 일제가 36년 동안 착취한 것이어서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이른바 적산으로 분류한 이들 재산을 법령 제33호에 따라 우선 군정청 소유로 했다.적산을 한국인들에게 매각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명문화했는데,이는 뒷날 한국에 세워질 정부에 맡긴다는 방침이었다.특히 토지의 경우는 여론조사에 붙였다.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이 정부수립 이후의 처리를 희망했다. 토지(농지)문제는 특히 북한으로부터 공격적 선전자료가 되었다.북한은 소련의 조정에 의해 1946년 초 토지개혁을 단행한 터여서 미군정을 호되게 비판했다.하지만 미군정은 적산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재정재산협정에 따라 한국에 넘겨주었다.미군정은 다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 소작인이 수확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규정하는 법령 제9호를 해방 원년에 제정했을 뿐이다.특히 미국의 입장은 재산처분에 관한 한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남조선과도정부를잠정적으로 만들었다.1946년 3월 법령 제64호를 적용하여 군정청기구의 국을 부로 바꾸고 군정체계를 확립했다.각 부처장으로 한국인을 채용하여 한미 양부처장제를 실시한 것도 이무렵이다.이해 9월 군정장관 A L 러치는 특별발표에서 행정권 이양의사를 밝혔다.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고문자격으로 부결권만 행사하는 가운데 두 나라 국어를 사용한 종래의 모든 문서가 한국어로 단일화되었다. ○적산 한국정부에 이양 남조선과도정부가 한국의 정부수립을 대처한 미군정의 조치였다면 1946년 12월에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주주의 예행이라 할 수 있다.입법의원은 김규식을 의장으로 한 관선 45명,민선 45명으로 구성되었다.민선의원의 경우 인구비례에 따라 각 도에 정원을 배정했다.이 민선의원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그래서 입법의원은 국민대표기구이자 입법기구로서 초보적이나마 현대적 의회였다. 이 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의 좌우합작운동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다시 말하면 미군정은 좌우합작운동을 초기부터 지원하는 대신 이를 과도입법의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어떻든 입법의원은 입법기구로서 남조선과도정부 및 그로부터 분리 독립한 법원과 더불어 3권분립 관계를 이루어냈다.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웨드마이어중장 연설」 벽보/트루먼의 특사 “공가주의 투쟁 자제” 역설/“권리쟁탈의 욕망 제일 큰 문제” 지적/「조선의 인권·재산권 보장」 방침 천명 1947년8월 미군정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대통령(H S 트루먼)의 특사 A C 웨드마이어 중장(1897∼1990년)의 연설요지를 실은 벽보가 발견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서울 중랑구 중화2동 김보영씨(67)로부터 제공받은 이 벽보는 한국에 대한 당시 미국 정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벽보는 서두에 「현 세계의 여러가지 문제중에 권리쟁탈의 욕망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이는 아마도 동서냉전체제 아래서의 갈등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그가 1947년 8월26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10여일 한국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이 벽보는 9월쯤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가 한국에 머물 무렵은 제2차 미소공동위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선동하는 군중대회가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없애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 욕망을 군사적이 아니고 화가나 문학가의 붓으로,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로 없애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아주 낭만적인 표현을 썼다.그리고 「욕망을 없애거나 줄이면 더 좋은 목적을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말로 공산주의 투쟁의 자제를 당부했다. 이 벽보에는 「조선이 완전 자유독립국가를 만들도록 인권과 재산권 보장,자유기업을 장려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그의 재산권보장 발언은 미군정이 토지개혁을 장차 수립될 한국정부에 넘겨주겠다는 확고한 방침으로 나타났다.패전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적산도 처분하지 않고 뒷날 한국정부에 이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웨드마이어 장군의 조선여행중의 연설」요지를 전제로 한 이 벽보의 크기는 가로 28.5㎝,세로 50.5㎝.그는 한국을 방문한뒤 냉혹한 판단으로 일관한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썼다.오하마 태생의 육군중장이었던 그의 보고서는 미국 대한정책의 골격이 되었다.
  • 사노맹 영남총책 보안법위반 구속

    【부산=김정한기자】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는 10일 사회주의이념구현을 주장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한 사회주의노동총연맹 영남위원회 총책 박진섭씨(30·전 한국외대 민민투위원장·서울 중랑구 중화2동 318의3)를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조계종 총무원 곧 압수수색

    ◎조계사폭력 수사/양심선언 스님2명 출석요구/보일승려 등 2명 사전영장/폭력배 6명 검거·15명 지명수배 조계사 폭력사태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서정옥서울경찰청형사부장)는 6일 법원으로부터 조계종 총무원 규정부장 보일스님과 고중록조사계장(37)등 2명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또 이날 재지휘가 내려진 무성스님과 총무원건물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간 혐의로 입건됐던 하유스님(30·속명·김영진·경북 문경군 봉암사)등 「범종추」 승려 3명을 포함,나머지 4명에 대해서도 관련서류를 보완,조속한 시일안에 사전구속영장을 다시 신청,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이와함께 전북 김제군 금산사 소속 여산스님(40·전 상주사주지)과 선봉스님(49·전 동화사재정국장)의 양심선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금산사와 범종추 앞으로 여산스님및 선봉스님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발송하는 한편 검찰이 서의현총무원장의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함에 따라 서원장의 소환에 대비,소재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이와 관련,『폭력배들의 호텔숙박비를 지불하도록 서원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폭로한 여산스님과 주지임명때 서원장이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고 주장한 선봉스님의 발언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서원장에 대한 수사도 당연히 병행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해 서원장 소환조사가 곧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경찰은 아울러 조계사 폭력사건 현장의 사진채증 등으로 이미 신원이 확인된 동원폭력배 12명 외에 서울시내에서 활동중인 황모씨(21·전남 광주시 서구 슬하동)등 5명의 폭력가담사실을 추가확인하고 이들 17명을 지명수배하는 한편 사진이 확보된 12명의 얼굴사진을 부착한 공개전단을 제작,전국에 배포했다. 경찰은 또 폭력배 동원에 사용된 자금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해 조계사 총무원 건물및 경주 불국사,법보신문사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회계및 경리장부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밖에 경찰은 조계사 폭력사태에 가담한 폭력배 김정원씨(21·중랑구 중화2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서울 강동구 길동 B여관에 투숙중이던 주모씨(35·전남 고흥군 도덕면 용동)등 4명을 종로경찰서로 연행,조계사 폭력사건 관련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 서원장 빠르면 내일 소환/조계사 수사

    ◎“폭력배동원 개입” 전측근 폭로/보일승려에 사전영장 발부/폭력배 8명 연고지에 형사대 급파 조계사 폭력사태를 수사중인 특별수사본부(본부장·서정옥서울경찰청 형사부장)는 서의현총무원장이 폭력배 동원에 직접 개입했다는 불교계 내부의 폭로가 잇따라 진상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폭력사태의 배후인물을 가리기 위해 서총무원장을 소환키로 하고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경찰의 고위관계자는 『서원장을 소환하지 않고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힐 방법이 없다』면서 『소환시기는 빠르면 7일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서원장이 총무원장의 상좌인 규정부장 보일스님(49·강화 보문사주지)에게 폭력배들의 숙박비를 결제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여산스님(38)의 폭로내용을 중시,사실여부를 가리기 위해 자진출두 형식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여산스님이 자진출두하는대로 정확한 당시 상황을 조사하는 한편 구속된 도오스님과의 대질신문도 할 예정이다. 경찰은 또 보일스님이 자진출두를 거부함에따라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보일스님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총무원 규정부 조사계장 고중록씨가 조계사 경내에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계사 총무원 주변에 검거전담반을 고정배치하고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지난 4일 하오 사진채증을 통해 사건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확인돼 붙잡힌 김정원씨(24·중랑구 중화2동)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가담경위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상오4시10분쯤 고향친구 박모씨(24)로부터 무선호출기로 연락을 받고 신촌에서 만나 이날 하오 조계사에서 다른 폭력배와 함께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있다. 경찰은 또 오일씨(23·노원구 중계1동 103)등 신원이 확인된 나머지 폭력배 8명의 연고지등에 형사대를 급파했다.
  • 매일신보/부록 펴내 민족의식 일깨워/역사연구가 김보영씨 첫 공개

    ◎1983년 6월부터 월1회 8차례 발간/금기인물 이순신장군 소개/광개토대왕비 등 유적 실려 일제하 총독부기관지로서 친일논조의 반민족지 역할만 한것으로 알려진 매일신보가 부록을 통해 민족문화를 소개,자각을 일깨우려 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이는 역사연구가인 김보영씨(65·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1)가 193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매월 1회씩 8차례에 걸쳐 발간,배포했던 매일신보 「부록」을 18일 공개함으로써 확인됐다. 부록에는 주로 한국의 역사인물 및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내용이 실려있다.이들 부록에는 5∼6인의 저술 및 친필 휘호등을 싣고 그 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한문으로 기록했으며 작품의 소장자까지 밝혀놓았다.특히 소개된 인물 가운데는 일제시 한국인들에게 금기시되던 이순신장군이나 광개토대왕등도 포함돼있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부록은 희고 얇은 모조지에 매월 말일자로 발행됐으며 크기는 폭38·5㎝ 길이107·5㎝.그 하단에는 「소화13연 6월30일 매일신보 일만일천칠십오호 부록 발행인 이상협 편집겸인쇄인 김선흠 경성 종로 보진재 인쇄」라고 발행시기 및 지령 인쇄처등을 명백히 밝혀놓았다. 1938년 6월30일에 발행된 첫 부록에는 황해도 해주 광조사에 있는 고려초의 명승 진철대사의 보월승공탑비와 충북 중원군 정토사에 있는 신라말의 명승 법경대사의 자등탑비등 6편의 명승추모탑의 탁본을 싣고 자세한 해설을 곁들였다.그 내용을 보면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때 전라좌수사로 옥포·당포·한산해전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며 정유재란때 재기,통제사가 되었다』고 적었다.또 『전쟁지휘중 날아오는 탄환에 전사했는데 시호는 충무공』이라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이 부록에는 그밖에도 이퇴계 양사언 한석봉등 조선시대의 대학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한편 8월31일자로 발행된 세번째 부록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등 만주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싣고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그밖에 이규보 정몽주 성삼문 안평대군 서거정 김시습 박▦ 정약용 김정희등 역사적 인물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자료를 검토한 언론사학자 정진석교수(한국외국어대)는 이 부록이 발간된 시기에 대해 우선 주목했다.1938년 4월 경성신문에 예속돼 있던 매일신보가 최린을 사장,이상협을 부사장으로 한 한국인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제호도 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로 바꿔 새로 출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정교수는 『매일신보가 재출범하면서 새로운 기획으로 이 부록을 만들기 시작한것 같다』면서 『이제까지 친일 반민족신문으로 한국언론사연구에서까지 제외되다시피 했던 매일신보의 긍정적 측면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불가귀의 앞둔 30대/한쪽신장 기증 희망(조약돌)

    ○…불자가 되겠다는 김경환씨(33·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0의78)는 신장기능 이상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왼쪽 신장을 기증하겠다고 서울신문사에 의뢰. 김씨는 『곧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불가에 귀의하려 한다』면서 『신장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부처님의 자비심으로 장기기증공양을 해 각오를 새롭게 하겠다』고 밝히고 절대 대가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 김씨의 혈액형은 O형이며 연락처는 437­4736.
  • 청룡 환경봉사단장 홍만섭씨(파수꾼)

    ◎“우리들 삶의 터전 스스로 지켜야”/요염된 산 보고 안타까워 자연보호 활동/사재로 홍보물 제작… 전국돌며 캠페인도 홍우섭씨(62·청룡환경봉사단 단장)씨는 집에서 내놓은 사람이다.환경보호활동을 하느라 그의 하루는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기 때문이다. 환경보전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환경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민간단체들이 많이 생겼지만 청룡환경봉사단처럼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순수민간단체는 드물다. 『인간에게 삶의 터전과 생존의 근원을 제공하는 모체인 자연이 깨질경우 인간도 근원을 잃고 병들어갈 수 밖에 없는만큼 자연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홍단장이 청룡환경봉사단을 설립한것은 지난해 9월16일.산을 좋아했던것이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산에 갈때마다 우리의 자연이 쓰레기로 오염되고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그런가운데 낙동강 페놀사건이 터지는것을 보고 작은힘이나마 환경보전에 보태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자신의 군대 동기인 해병 1기생들을 중심으로 뜻을 모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자 환경오염문제를 피부로 느끼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사실 청룡환경봉사단은 1년남짓한 짧은기간 동안에 서울 대전 경기 충북등 4개 시도지부에 30여개 시군구지회까지 결성돼 회원이 1천4백여명이나 되는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회원들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것도 아니면서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홍보물도 만들고 한달에 1차례정도는 자신들의 차량으로 전국을 일주하며 캠페인도 벌입니다』 홍단장도 전국순례홍보에 직접 참여한다.지난3월에는 경기도 이천 행사장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한적도 있었다.그리고 어디에서 지원을 받는것도 아니어서 전국순례때는 경비를 아끼기위해 천막을 가지고 가 야영을 하면서 활동을 벌인다. 본부도 서울 중랑구 중화2동 301의29 주택은행지점신축부지 한귀퉁이에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이를 사무실로 쓰고있다. 『재정적인 면을 비롯,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전국을 돌다보면 지역유지들이 좋은 일을 한다며 도와주기도 하고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주며 수고한다는 말을 잊지않습니다.그럴때 보람을 느끼죠』 이들은 홍보활동외에도 주말이면 지역별로 부근 유명산들을 찾아 쓰레기줍기운동도 한다.그리고 공단지역등 공해배출업소가 몰려있는 지역을 찾아 계도활동도 벌이고 있다. 『앞으로는 해양정화활동도 할 계획입니다.이에따라 지난달말에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회원들과 함께 아산만에서 수중쓰레기 수거작업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홍단장은 거의 1년중 3∼4달은 지방에서 보내고 서울에 있는날도 자정이 돼야 귀가한다.
  • 여관에 3인조 강도/주인 묶고 금품털어 도주

    29일 상오3시30분쯤 서울 중랑구 중화2동 296의4 청원장여관(주인 손정임·50)에 20대 청년 3명이 들어가 주인과 종업원을 흉기로 위협,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 등 10만4천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들은 『방을 달라』면서 들어가 종업원 이황년씨(30)가 3층으로 안내하자 갑자기 흉기를 이씨에게 들이대고 테이프로 손발을 묶은뒤 1층 내실로 내려와 주인 손씨에게 돈을 빼앗고 반항하는 손씨의 얼굴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 의사면허 없는 전과자 2명 고용/환자 1천3백명 수술시켜

    ◎2억 챙긴 원장등 3명 구속 서울지검 수사2과는 23일 서울 중랑구 중화2동 301 성심의원 원장 안중성씨(51)와 김화옥(59·간호조무사)·이종기씨(52) 등 무면허의사 2명을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원장 안씨는 지난 84년부터 병상 40개 규모의 성심의원을 운영해 오면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 89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등 전과 3범인 김씨를 산부인과 의사로,마약법 위반 등 전과 4범인 이씨를 대장항문과 의사로 고용해 지난해 1월부터 1천3백여명의 환자에게 임신중절 및 치질수술 등을 시켜주고 2억8천여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다. 또 무면허의사 김씨는 89년7월 한달에 1백50만원씩을 받기로 하고 이 병원에 고용된 뒤 지난해 1월부터 모두 8백67명에게 임신중절 및 제왕절개 수술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 병원에서 잡일을 하다 지난 74년 마약법 위반으로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받기도 한 이씨는 지난88년 7월부터 한달에 80만원씩을 받고 의사로 채용된 뒤 1년동안 4백88명에게 치질·치루 수술을 해왔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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