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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손자와 7명이 ‘집콕’… “일도 쌀도 끊겼는데 1m는 사치”

    아들·손자와 7명이 ‘집콕’… “일도 쌀도 끊겼는데 1m는 사치”

    조부모가 일용직 전전하며 생계 부담 반지하서 전기 아까워 낮엔 불도 안 켜 수급보호 대상 아니라 물품 지원 못 받아 정부 지원금 50만원으로 네 가족 버텨 16평에서 3代 7명이 생활하는 가정도“당장 먹을 쌀도 없는데, 3000원짜리 마스크를 산다는 건 사치예요. 그냥 집 밖에 안 나가요.” 중학생, 초등학생 손녀 2명을 키우는 이모(65·여)씨는 23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다음달 5일까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나선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 이들은 물리적으로 고립되며 바이러스뿐 아니라 가난과 싸우고 있다. 특히 주 경제활동 인구가 없고 일용직 등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조손가정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씨는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손녀 2명을 키우고 있다. 그는 “남편은 몸이 안 좋고 손녀들은 너무 어려 일을 할 수가 없다”면서 “원래는 하루에 1~2시간씩 식당에서 일했는데, 코로나19 이후 그마저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가족이 받는 지원금은 월 50만원 정도가 전부다. 이씨는 “반지하 방에 사는데 전기요금이 아까워 낮에는 불도 안 켠다. 아이들은 볕이 드는 창가에서 공부한다”며 “당연히 마음이 아프지만 돈을 아끼려면 어쩔 수가 없다”고 밝혔다. 마스크도 다 떨어졌지만 그조차 수급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물품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아들 2명, 손녀 3명과 함께 사는 안모(58·여)씨 부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평소 안씨가 붕어빵 장사를 하고 남편이 설비업체 등에서 일용직으로 일했지만 최근 일감이 뚝 끊겼다. 안씨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붕어빵, 떡볶이 등을 파는데 손에 쥐는 건 2만~3만원이다. 가스비도 못 낸다”며 “정말 죽지 못해 산다”고 호소했다.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서 퍼지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집에만 계속 있어야 하는 상황도 고역이다. 현재 안씨네는 가족 7명이 약 16평의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투룸 빌라에서 방 하나는 안씨 부부, 하나는 손녀 3명이 쓰고 아들 2명은 거실에서 지낸다. 안씨는 “학교 개학이 미뤄지고, 학원도 도서관도 문을 열지 않으니 아이들이 갈 곳이 없어 종일 집 안에 있다”면서 “성인 4명에 아이들 3명까지 있으니 너무 갑갑하다”고 말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조손가정을 포함한 취약계층에서 지원 신청이 이어지고 있다. 재단은 향후 순차적으로 900여명에게 긴급지원비 10억원 정도를 배분할 계획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아내·아들 살해’ 50대, 범행 시인했지만 수사엔 비협조적

    ‘아내·아들 살해’ 50대, 범행 시인했지만 수사엔 비협조적

    부부 싸움 중 흉기를 휘둘러 아내와 아들을 숨지게 하고 딸을 크게 다치게 한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를 받는 50대 가장이 14일 범행 사실을 시인했다. A씨는 지난 12일 오전 6시쯤 경남 진주시 상평동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휘둘러 아내(51)와 중학생 아들(14)을 살해하고 고등학생 딸(16)에게는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직후 경남 함양에 있는 자신의 다른 집으로 도주했다가 인근 야산에 들어가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다 14일 오후 5시 50분쯤 함양의 빈 집 창고에서 비닐 포대를 이용해 몸을 덮은 채 숨어 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숨어 있던 빈 집은 A씨의 함양 집에서 300여m 떨어진 곳으로 확인됐다. 그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체포 당시 A씨는 도주했을 때 착용했던 검은색 패딩과 면바지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진주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서로 이송된 A씨가 범행에 대해 시인하면서도 수사에는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행 동기 등 A씨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뱃속에 동생 가진 엄마 살해한 폭탄테러범 둘 15년 만에 만났어요”

    “뱃속에 동생 가진 엄마 살해한 폭탄테러범 둘 15년 만에 만났어요”

    엄마를 숨지게 한 폭탄테러범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얘기를 나누면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인도네시아의 17세 소녀 사라 살사빌라는 지난해 10월의 어느날 자바섬 연안의 누사캄방간 섬에 마련된 교도소 두 곳을 찾아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테러범 둘을 만나러 가면서 이런 질문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라의 아버지 이완 세티아완은 지난 2004년 9월 9일 모터바이크를 운전해 자카르타 주재 호주대사관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뒷좌석에 둘째를 임신한 아내 하릴라 세로야 다울라이가 자신의 등에 몸을 착 달라붙이고 있었다. 산달이 몇 주 앞으로 다가온 산모의 진단을 받으러 가던 길이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하릴라가 허공으로 붕 날았다. 이 공격에 3명이 죽고 50여명이 다쳤다. 이슬람 과격 단체 알카에다와 연계된 자생적 조직 제마 이슬라야마가 2002년 발리섬을 시작으로 202명의 목숨을 빼앗은 일련의 폭탄테러에 당한 것이었다. 이완은 눈에 금속 파편이 날아들어 시력을 잃었고, 하릴라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지자 수술대에 올랐고, 분만에 들어갔다. 이완은 “신에게 감사하게도 아내는 자연분만을 했다”고 말했다. 그날 밤 리즈퀴가 태어났는데 이름은 “은총”이란 뜻이었다. 이완과 첫딸 사라는 “엄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면서 “뼈들이 부러진 상황에도 동생을 자연분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의 투병 끝에 하릴라는 사라의 다섯 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완은 지금도 눈물이 글썽해 “날 완성시킨 사람을 잃은 것은 지금도 얘기하기조차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그 역시 복수를 별렀다. “살아남은 테러범들이 죽었으면, 그것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었으면 하고 바랐다. 끔찍한 고문을 당해 살가죽이 벗겨지고 상처에 소금이 뿌려져 그들이 폭탄 때문에 다른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깨닫게 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나나 우리 아이들이나 믿을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시간을 버텨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15년이 흘러 아빠와 곧 고교를 마치는 사라, 중학생인 리즈퀴는 사형수 둘을 만나러 갔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는 테러범과 희생자 가족을 만나게 하는 독특한 재활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서였다.영국 BBC 레베카 헨슈케 기자가 이들의 만남에 동행했다. 4개월이 지나 17일에야 보도한 것은 이들의 만남을 다큐멘터리 ‘폭탄테러범과의 대면(Facing the bombers)’으로 제작해 오는 22일과 23일 밤 9시 30분(한국시간 다음날 새벽 6시 30분) BBC 뉴스채널을 통해 방송하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섬 안으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여느 10대처럼 휴대폰에만 달라 붙어 있었지만 헨슈케 기자가 몇 마디 물어보자 “그들이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이유를 물어보겠다”고 결연하게 답했다.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은 이완 다르마완 문토(일명 로이스)는 손과 다리에 수갑을 찬 채 휠체어에 앉아 이들 가족을 만났다. 유죄가 확정된 법정에서 주먹을 쥐어 흔들며 “사형을 선고해줘 고맙다. 순교할 수 있게 해줘서”라고 외쳤던 로이스를 향해 이완이 “아이들이 어머니를 잃게 만들고 아버지의 시력을 잃게 만든 사람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겠다고 한다”고 입을 열었다. 로이스는 폭탄이 터졌을 때 이완이 어디에 있었는지 물어봤다. 이완은 답한 뒤 “테러가 일어난 밤, 아이가 태어났는데 바로 이 아이”라고 손만 쳐다보는 리즈퀴를 가리켰다. 그러자 로이스는 “나도 아이가 있다. 몇년 동안 아내와 아이를 보지 못했다. 너무 보고 싶다. 내가 당신보다 나쁜 상황일 수도 있다. 당신은 아이들이 있지만 우리 아이는 내 얼굴도 모른다”라고 답했다. 모두가 사라를 바라봤다. 말할 게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사라가 울음을 터뜨렸고 아버지가 그녀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그녀가 힘겹게 품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느냐고? 로이스는 “나이가 들면 이해할 것”이라며 “내가 무슬림들을 희생시켰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옳지 않다. 난 무슬림을 죽일 수 없다. 그냥 다치게 할 뿐. 옳지 않다”고 답했다. 헨슈케 기자가 끼어들었다. “무슬림들은 희생되지 않았다는 거냐.” 그는 재빨리 “어느 쪽이든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대꾸했다. 그는 급진적인 설교자 아만 압두라흐만과 함께 수감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압두라흐만은 이슬람 국가(IS)와의 연계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은 인물이다. 둘은 감옥에서도 2016년 자카르타 테러를 함께 꾸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완 가족이 떠나기 전 로이스는 자신을 향해 기도해달라고 했다. “모든 인간은 실수를 저지른다. 내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들을 망가뜨렸다면 사과한다. 나도 고통스럽다. 정말 그렇다.” 이완은 눈물을 참다가 밖으로 나와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는 여전히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구나. 기회가 생기면 다시 그럴지 몰라 두렵구나. 정말 실망스럽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야기해놓고 인정조차 안하려 한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그 섬에는 다른 교도소도 있어 아마드 하산을 보러갔다. 그는 하릴라를 숨지게 한 폭탄 매설에 더욱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 역시 법정에서 주먹을 쥐어 흔들고 취재진을 향해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봤는데 이날은 완전히 딴 사람처럼 보였다. 이완은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고, 아이들이 만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드는 “신에게 감사하게도 아이들을 만나 얘기할 수 있어 고맙다. 난 너희 아버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지나가길 바랐는데 마침 폭탄이 터진 것이다. 폭탄을 옮긴 내 친구도 그 순간 희생됐다. 이완의 자녀들이 날 용서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난 결점 투성이 인간이다.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덧붙였다. 사라는 조용히 바라보다 결연하게 “왜 그딴 일을 저지른거냐? 이유가 뭐냐”라고 물었고 그는 “친구들과 난 잘못된 교육과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다운 지식을 얻거나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전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답했다. 사라는 오후 4시에 만나 자신의 다섯 살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던 기쁨에 들떴던 날, 어머니를 잃어 얼마나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 늘 엄마는 어디 있는 거냐고 아빠에게 물었어요. 그러면 아빠는 알라의 집에 계신다고 했어요. 난 그게 어디냐고 물었고요. 그러면 모스크라고 하셨어요. 모스크에 달려가면 할머니가 집에 가면 엄마가 올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 또 집에 가서 기다렸지만 엄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요.”하산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벌려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고 계속해 알라의 용서를 구하는 주문을 외었다. 겨우겨우 “알라 신이 너희를 만나 어떻게든 설명해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너희들에게 설명할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 사라를 내 자식마냥 삼겠다. 제발제발 용서해주렴. 네 손에 맡기겠다”고 말을 이어갔다. 리즈퀴, 하산, 이완, 사라 넷이 손을 잡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교도소를 나와 페르미산 해변 백사장을 셋은 함께 손잡고 내달렸다. 사라는 그제야 밝게 웃었다.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사진 BBC 홈페이지 캡처
  • [단독 인터뷰]허구연 “정치할 걸 그랬나… 체육 예산 너무 부족해”

    [단독 인터뷰]허구연 “정치할 걸 그랬나… 체육 예산 너무 부족해”

    30대 때부터 정치권 영입 제안 이어져고 정주영 전 회장 사업 제의도 거절해“체육 등한시하는 정치권 보면 화나…정치 통해 입법화 했어야 하는 생각도” (1회에서 이어집니다.) 허구연(69) MBC 해설위원은 1982년 출범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미디어 스타’였다. 지금이야 그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 구수하게 들리지만, 38년 전 31세의 젊은 보이스와 함께 지적인 내용이 듬뿍 담긴 그의 해설은 매우 참신하고 현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과 35살에 청보 핀토스라는 약체팀의 감독을 맡게 된 배경에도 ‘똑똑한 해설가 허구연’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 위원은 30대 때 야구계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으며,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등 기업인들로부터도 사업하자는 제안을 받았었다는 비화를 밝혔다.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현장해설을 하는 걸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청보 핀토스 감독에서 물러나 만 40세의 나이에 미국에 가서 마이너리그 코치를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다. 흔히 권력, 명예, 돈으로 인생이 나뉜다고 하는데 나는 명예로운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가치관이 정립되니 권력이나 돈에 대한 유혹을 많이 뿌리쳤다. 정치권에선 30대 때부터 영입제의가 왔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가치관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 같다. 사업쪽으로 정주영 회장한테도 제의가 왔었지만 야구하겠다고 거절했다. 몇 천억원을 줘도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지 못한다면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나는 여야도 아니고 작게 보면 ‘야구당(黨)’ 이다. 그게 좋았다.” -인생에는 실패와 좌절이 있다.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청보 핀토스 감독에 올랐다가 성적이 안나와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사람들이 나보고 금수저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실패해서 어려웠던 적도 있고, 한창 야구 잘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4차례 수술한 뒤 선수생활을 그만두기도 했다. 이후 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해서 대학원에 가게 됐고 교수를 하려는데 프로야구가 생겼다. 그때 청보에서 감독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결국 하게 됐다. 청보에서 실패는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젊었을 때 많은 도전을 해봐야지 50살이 넘어가면 겁이 나서 도전을 못한다. 만약 그때 감독을 안했다면 40살 넘어서 감독을 1~2번 더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만뒀을 거다. 미리 좋은 경험을 했다. 현장 지도자는 할 사람이 많았고, 좋은 조건의 제의가 들어와도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해설을 오래하게 됐다.” -살아보니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것 같나, 아니면 우연히 일어날 뿐인가. “이유가 다 있다. 다리 다쳤을 당시 일본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내가 1, 2차전 모두 홈런쳤다. 3차전에 가니 7월 말이라 너무 덥기도 해서 감독에게 쉬게 해달라고 했는데 ‘제일 잘하는데 빠지면 어떡하느냐’고 해서 결국 뛰었다가 다쳤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뭔가를 해야하니까 공부를 했고, 그러면서 해설을 하게 됐다. 운명적으로 묘하게 맞았다. 안 다쳤으면 해설을 안했을 테고 현장에서 선수, 코치, 감독하다가 잘렸을 것 같다. 청보 시절에도 계속 감독을 했다면 잘리고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청보 감독 이후 롯데에서 수석코치를 한 뒤 미국에 갔고 그때 마음에 선을 그어서 이렇게 해설을 하고 있다.”-인생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젊은이들도 따라가지만 말고 도전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기성세대 중에서도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에도 애국자가 많아야 한다. 애국이라는게 단순히 나라 사랑 뿐 아니라 국민들 사랑, 젊은이들 사랑까지 포함돼 있다. 정치인들이 인기만 좇아가지 말고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학력을 보니 고대 법대 학사라고 나온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공부했다. 고대 법대 대학원도 시험쳐서 붙었었다. 공부를 잘 했는데 덩치도 크고 야구도 잘하니까 학교에서 권유했다. 시합 뛰면서도 한 번도 후보인 적이 없었다. 운동선수들이 보통은 공부한 친구들이 없는데 나는 정치인들도 친구고 정세균 국무총리하고는 대학 때부터 40년 친구다. 아까도 말했지만 휩쓸리지 말고 자기 뜻을 바로 세워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된다. 권력, 돈, 명예를 다 가지려면 감방에 가야한다. 야구, 축구, 농구를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지 않나. 또 지금은 이념 대립, 빈부 대립, 세대 대립 등 너무 대립하는 시대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을 만나면 늘 당신들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너무 갈라놓는다.” -지금도 정치 쪽은 관심 없나. “30대 때부터 제안이 왔어도 거절했는데 요즘엔 화가 나서 ‘그때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체육 예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체육 예산이 너무 적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처럼 국민들에게 미치는 스포츠의 중요성이 있는데 정부도 법도 예산 편성도 너무 지원이 없다. 입법화를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돔구장 같은 프로구장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추어 시설을 더 많이 주장한다. 4대강 사업 때 다 축구장만 짓는 걸로 돼있었는데 건설본부장한테 가서 야구장 지어주지 않으면 1년 내내 따지겠다고 했더니 야구장이 몇 개 생겼다. 인프라가 없으면 야구는 특히 안 된다. 교실없이 학생들 오라면 오겠나. 10년 전에 야구 발전위원장 할 땐 160 몇 개였는데 지금은 400개가 넘는다.” 대담 김상연 체육부장 carlos@seoul.co.kr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①[단독 인터뷰]69세에도 팔팔한 허구연 “좋아하는 일 하는 게 젊음의 비결”(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81&aid=0003062689)
  • “소극장 공연 보고 꿈꾸던 소년, 대극장 책임지는 배우로 자랐죠”

    “소극장 공연 보고 꿈꾸던 소년, 대극장 책임지는 배우로 자랐죠”

    “아~멋있다. 나도 저거 해야지.” 연극 초대권이 생긴 중학생 정환이는 150원이던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지물포를 하는 아버지가 도배일을 하고 받아 온 초대권이었다. 하지만 극장 측은 초대권만 들고 온 정환이에게 ‘팸플릿을 사야 연극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갈 교통비만 있었던 정환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극장 직원은 신나서 혼자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초대권만 받고 연극 관람을 허용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본 연극은 곧바로 정환이의 꿈이 됐다. “기국서 선생님의 연극 ‘햄릿4’였어요. 배우가 캄캄한 무대 위에서 톱조명 받으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사를 치는데 심장이 막 뛰고 ‘저거다! 내 눈앞에서 하고 있는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 들더라고요.” 헝클어진 백발 머리를 흩날리며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배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된 대학로에서 인터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지만 길이 막혀 늦었다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배우는 꽃이고, 무대에서 활짝 핀다”는 배우 박호산(48)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났다. 15살 정환이의 꿈은 딱 10년 뒤 현실이 됐다. 1997년 뮤지컬 ‘겨울나그네’로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물론 이름 없는 배역, 앙상블이었다. 그는 긴 시간 대학로 극단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위해 몸 쓰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육체의 고달픔보다는 무대 위 희열이 더 컸다. 그런 그를 대중에 알린 건 무대가 아닌 TV 드라마였다.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주목받았고, 이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인지도를 굳혔다. 그리고 고향인 무대로 돌아와 뮤지컬 ‘빅 피쉬’ 초연의 주역 에드워드 블룸 역을 맡았다.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은 건 23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얼굴과 이름이 얼마나 알려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조금 더 알려졌다고 해서 예전 힘들었던 생활을 반추하지도 않고요. 다만 작품의 퀄리티를 책임지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박호산은 대니얼 월리스 동명 원작 소설과 팀 버턴 감독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위대한 허풍쟁이’의 삶을 택한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을 연기한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그린 작품을 최근 박호산의 아버지와 세 아들이 다 함께 지켜봤다. 노년의 아버지는 아들 호산의 눈을 보며 말없이 씩 웃을 뿐이었고, 장성한 두 아들은 역시 감정 표현에 인색했다. 관람 제한 연령에 걸려 대기실 모니터로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본 막내아들만 울며 “아빠 이제 친구들 못 만나는 거야?”라며 무대에서 내려온 호산의 품에 안겼다. ‘호산’이라는 예명은 그가 마흔이 되던 해 그간 인생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선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를 그대로 따왔다. 무대 공연을 향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그에게 최근 연극 화제작 ‘환상동화’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배우 강하늘이 지난해 말 드라마 성공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이미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오는 3월 1일 폐막 공연까지 모두 매진됐다. 박호산은 “강하늘의 선택이 너무 고맙다”면서 “특정 배우에게만 관심이 쏠리더라도 배우에게 객석이 찬다는 건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고 했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 주연배우이자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빅 피쉬’는 꼭 보셔야 할 작품은 아니지만, 보고 후회하지 않을 절대적으로 유익한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죠.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 보기’가 되지만 무대 공연은 인생처럼 그 순간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코비 부녀와 함께 비운에 스러진 7명의 안타까운 사연

    코비 부녀와 함께 비운에 스러진 7명의 안타까운 사연

    2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41)와 딸 지아나(13)와 함께 추락 헬리콥터에 동승했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개됐다. 브라이언트의 전용 헬리콥터 시코스키 S-76 모델은 시야가 가려지는 안갯속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서쪽으로 48㎞ 떨어진 칼라바사스 언덕에 추락해 탑승자 9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온라인 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27일 경찰이나 당국의 공식 신원 확인에 앞서 코비 부녀와 함께 비운을 맞은 7명의 신원을 공개했다. 농구를 하는 세 소녀와 부모, 농구 코치, 조종사 등이다. 먼저 오렌지코스트 칼리지 야구 감독 존 알토벨리(56)와 부인 케리, 딸 알리사(13)다. 알리사는 브라이언트가 코치로 일하는 AAU 농구 팀에서 지아나와 함께 뛰는 사이였다고 일간 휴스턴 크로니클은 전했다. 이들은 브라이언트가 세운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에 경기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유족으로는 딸 알렉시스와 아들 JJ를 남겼는데 JJ는 미국프로야구(MLB)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존은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제프 맥닐(뉴욕 메츠)을 비롯한 수많은 메이저리그 예비 스타들을 길러낸 지도자였다.AAU 팀에서 지아나와 알리사를 지도하는 크리스티나 마우저 수석 부코치도 비운을 당했다고 LA 타임스가 보도했다. 그녀는 LA로부터 남쪽으로 64㎞ 떨어진 코로나 델 마르에 있는 하버 데이 학교 코치이기도 했다. 남편 매트의 페이스북 글도 부인의 죽음을 확인했다. 사라 체스터와 중학생 딸 페이튼도 희생됐다고 ESPN과 CBS 뉴스가 전했다. 아울러 전용 헬기 조종사 아라 조바얀이 숨졌는데 그는 안갯속에서도 비행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었다고 폭스5 샌디에이고가 보도했다. 그는 후배 조종사들을 열성적으로 교육시키기도 했다.경찰이나 당국은 여전히 안개가 짙게 깔린 상황에서도 경험 많은 아라가 왜 비행을 강행했고, 헬리콥터를 추락시키게 됐는지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기종은 헬리콥터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모델로 정평이 나 있고, 생전의 코비는 팀 동료들이 의사 진찰을 받으러 간다고 하면 타고 가라고 내줄 정도로 안전에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초대권 들고 홀로 소극장 찾은 소년, 대극장 무대 책임지는 ‘대어’로 우뚝

    “초대권 들고 홀로 소극장 찾은 소년, 대극장 무대 책임지는 ‘대어’로 우뚝

    “아~멋있다. 나도 저거 해야지.” 연극 초대권이 생긴 중학생 정환이는 150원이던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지물포를 하는 아버지가 도배일을 하고 받아온 초대권이었다. 하지만 극장은 ‘팸플릿을 사야 연극을 볼 수 있다’며 팸플릿 구매를 요구했다.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있었던 정환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극장 직원은 신나서 혼자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 초대권만 받고 연극 관람을 허용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본 연극은 곧바로 정환이의 꿈이 됐다. “기국서 선생님의 연극 ‘햄릿4’였어요. 배우가 캄캄한 무대 위에서 탑조명 받으며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사를 치는데 심장이 막 뛰고 ‘저거다! 내 눈앞에서 하고 있는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팍!’ 들어왔어요. 그 마음과 꿈은 그 뒤로 한번도 변한적이 없죠.” 헝클어진 백발 머리에 골전도 이어폰을 걸치고 허겁지겁 뛰어들어온 배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지금은 삶의 터전이 된 대학로에서 인터뷰에 늦지 않게 출발하느라 서둘렀지만 길이 많이 막혀 늦었다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바로 인터뷰에 응했다. “배우는 꽃이고, 무대에서 활짝 핀다”라는 배우 박호산(47)을 그가 매일 시간여행 중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났다.15살 정환이의 꿈은 10년 뒤 현실이 됐다. 무대에 서는 배우만을 꿈꾸며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1997년 뮤지컬 ‘겨울나그네’로 그토록 꿈꾸던 무대에 올랐다. 물론 이름 없는 배역, 앙상블이었다. 긴 시간 대학로 극단 생활을 하며 그 시절 여느 연극배우가 그랬듯 생계를 위해 고층빌딩 외벽 청소부터 몸 쓰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육체의 고달픔보다는 무대에서의 희열이 더 컸다. 그런 그를 대중에 알린 건 무대가 아닌 TV 드라마였다. 2017년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문래동 카이스트’로 주목받았고, 이어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동훈(이선균 분)의 형 상훈 역으로 인지도를 굳혔다. 앞서 2014년 개봉한 영화 ‘족구왕’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 형국 역으로 얼굴을 알렸다.고향인 무대로 돌아와서는 대극장 뮤지컬 ‘빅 피쉬’ 초연의 주역 에드워드 블룸 역을 맡았다. 이미 대학로에서는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명배우’이지만, 예술의전당과 같은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얼굴과 이름이 더 알려지고 안 알려지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조금 더 알려졌다고 해서 예전 힘들었던 생활을 반추하지도 않고요. 다만, 주연과 조연 비교우위를 따지지도 않지만 배역이 커지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책임지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할 뿐이죠. ‘빅 피쉬’도 그런 고민 끝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박호산은 다니엘 월리스 동명 원작 소설과 팀 버튼 감독 영화를 무대화한 뮤지컬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위대한 허풍쟁이’의 삶을 택한 아버지 에드워드를 연기한다. 가장 가깝고도 낯선 사이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그린 작품을 최근 박호산의 아버지와 세 아들이 다 함께 지켜봤다. 노년의 아버지는 아들 호산의 눈을 보며 말없이 씩 웃을 뿐이었고, 장성한 두 아들은 역시 감정 표현에 인색했다. 아직 7살이라 관람 제한연령에 걸려 대기실 모니터로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본 막내아들만이 울며 “아빠 이제 친구들 못 만나는 거야?”라며 무대에서 내려온 호산의 품에 안겼다. ‘호산’이라는 활동명은 그가 40살이 되던 해 그간 인생을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선택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함자를 그대로 따왔고, 개명까지 생각했으나 까다로운 절차 탓에 예명으로 쓰고 있다. 그는 “대출 광고 전화가 오더라도 ‘박호산 고객님~’ 이러면 부드럽게 받게 된다”며 웃었다.무대 공연을 향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그에게 최근 연극 화제작 ‘환상동화’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배우 강하늘이 지난해 말 드라마 흥행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하면서 이미 그가 출연하는 회차는 오는 3월 1일 폐막 공연까지 모두 매진됐다. 박호산은 “강하늘의 선택이 너무 고맙다”라면서 “특정 배우에게만 관심이 쏠리더라도 배우에게 객석이 찬다는 건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일”이라고 했다. 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는 자신을 알리고 성장할 기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 주연 배우이자 세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작품 평가를 부탁했다. “빅 피쉬는 꼭 보셔야 할 작품은 아니지만, 봐서 후회되지 않는 절대적으로 유익한 작품입니다.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작품이죠. 드라마나 영화는 ‘다시보기’가 되지만 무대 공연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끝입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박완규 “생활고로 손 벌렸다” 은사에 연락 끊은 이유

    박완규 “생활고로 손 벌렸다” 은사에 연락 끊은 이유

    가수 박완규가 ‘천년의 사랑’을 불렀을 당시 생활고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서는 부활의 보컬 박완규가 중학교 시절 은사인 박성영 선생님을 다시 만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박완규는 중학교 졸업 이후에도 박성영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찾아가는 등 꾸준히 친분을 유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극심한 생활고로 은사님에게 손을 벌린 뒤 죄송한 마음에 다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박완규는 “‘천년의 사랑’을 부를 때 한 달에 100만원 밖에 못 벌었다. 계약을 잘못했다. 아이들이 있다 보니 돈이 필요했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혼까지 이르렀음을 털어놨다. 그는 당시 “너무 힘들어 선생님께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를 드렸다. 제대로 설명도 못 드리고 그런 전화를 한 것이 죄송스러워 다시는 연락을 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박완규는 박성영 선생님을 만나 과거의 무례를 사과했고, 박성영 선생님은 “완규야 고생 많았다. 네가 자랑스럽다”라며 그를 꼭 안아줬다. 박완규는 올해 나이 48세로 지난 1997년 부활 5집 앨범으로 데뷔했다. 1994년 22세 나이에 첫사랑과 결혼했지만, 2011년 이혼을 발표했다. 앞서 한 방송에서 박완규는 ‘급식비 때문에 이혼했다는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우리 부부가 이혼한 가장 큰 이유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애들한테 해 주는 것도 없는데 더 이상 애들 앞에서 싸우면서까지 상처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중학생 아들에게 ‘아빠 돈 너무 못 벌어서 너희들 학교도 못 보낼 것 같다. 급식비처럼 너희가 학교 다닐 때 드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게 엄마가 이런 선택을 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여기는 중국] 원인 모를 화재로 中 갑부 일가족 6명 사망…사업상 앙심?

    [여기는 중국] 원인 모를 화재로 中 갑부 일가족 6명 사망…사업상 앙심?

    원인 모를 화재로 일가족 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망한 가족 중에는 방학을 맞아 귀국한 아들과 인근 중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지난 22일 중국 광둥성(省) 중산시(中山市)의 고급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영국 유학 중 잠시 귀국한 20대 자녀와 10대 자녀 등 2명을 포함해 총 6명의 일가족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불이 난 곳은 24~25층을 연결한 복층 형태의 고급 빌라로,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고가의 주택이 즐비한 부촌에 자리 잡고 있다. 22일 새벽 2시 화재 신고를 받은 관할 소방서는 13대의 대형 소방차와 65명의 소방관을 현장에 파견해 화재 발생 1시간 30분 만인 3시 20분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화마를 피하지 못한 일가족은 현장에서 질식사했다. 가족의 시신은 화재 진압 후 약 2시간이 지난 오전 5시 40분쯤 24층과 25층을 연결하는 계단 및 안방에서 차례로 발견됐다. 영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22세 아들과 주중에는 줄곧 기숙사 생활을 했던 중학생 딸은 집으로 돌아온 직후 참사를 당한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모으고 있다.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이웃 주민 구 모 씨는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새벽 2시부터 불에 딴 냄새가 났고, 곧바로 일어나 집 안을 살펴봤지만 문제의 화재는 윗집에서 발생했다”면서 “화재를 인지했을 당시에 이미 윗집은 다 타고 끊임없이 창문 밖으로 깨진 유리와 불에 탄 외벽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주택가 도로에 여러 대의 고급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는데, 불에 탄 외벽 잔해들이 그 위에 쌓일 정도로 화재는 이미 진행이 된 상태였다”면서 “일부 이웃 주민들은 소방서에 신고했고, 또 다른 일부 주민들은 자동차 경적을 울리는 방식으로 화재를 알렸다”고 했다. 사망한 피해자 가족의 아버지 진 씨는 올해 47세의 부호로, 그의 명의로 등록된 법인만 약 14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진 씨는 전자, 전기, 수목사업, 농업, 녹화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해 큰돈을 벌어들여 지역 내에서 ‘큰 손’으로 불려왔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진 씨는 또 지역 내 18곳의 중대형 법인 회사의 임원으로도 등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화재로 사망한 진 씨의 아내 채 씨 역시 8개의 회사의 대표 주주로 등록돼 있다. 때문에 현지에 파견돼 조사 중인 관할 공안국은 사업상 원한을 품은 이들이 벌인 방화인지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공안국 관계자는 “큰 화재로 인해 이미 관련 물증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라면서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불에 탄 물증들 속에서도 수일간에 걸쳐서 증거들을 수집한 끝에 이미 관련 물증들을 수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화재가 있었던 주택가의 경우 24~25층을 연결한 복층 형식 주택이었다는 점에서 불법 주택 개조로 인한 화재 발생이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덧붙였다. 화재 발생 이후 해당 주택가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2대 중 한 대는 모든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 공안국은 화재 발생 이후 일반인의 현장 접근을 일체 통제하고 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최준용♥한아름 부부, 아들과 불통 위기 ‘무슨 일?’ [SSEN컷]

    최준용♥한아름 부부, 아들과 불통 위기 ‘무슨 일?’ [SSEN컷]

    최준용 한아름 부부가 작곡가 지망생인 아들과의 불통으로 위기를 맞는다. 27일 오후 11시 방송되는 MBN ‘모던 패밀리’ 44회에서는 ‘장위동 옥탑방’ 신혼 부부로 화제를 모은 최준용 한아름이 고2 아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공개한다. 15세 연상연하인 두 사람은 50년 넘은 장위동의 오래된 주택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신혼 살림을 차렸다. 1층에는 최준용 부모님과 고등학교 2학년생 아들 최현우 군이, 2층에는 부부가 살며 3대가 ‘따로 또 같이’ 생활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최준용 한아름 부부는 사춘기 최현우 군을 세심하게 신경쓰지만, 세대 차이로 인한 불통이 쌓이며 부자지간 대화 단절에 이른다. 최준용은 “아들이 중학생 때 힙합에 빠져서 작곡가를 꿈꾸고 있다.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작곡에 대해) 모르면서 뭐 하는지 검사한다”고 디스한 것. 실제로 최준용은 아들의 작업실에 들어와 노래를 같이 들어보다가도 “예명을 뭘로 할 거냐? ‘장위동 재개발’이 어떠냐?”고 ‘아무말 대잔치’를 늘어놓아 아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최현우 군이 “그냥 현우로 할 거다”라고 하자, 최준용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난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뜬다. 이후 최준용 최현우 부자는 한동안 말이 없고, 집안에서도 데면데면해 한아름씨를 난처하게 만든다. 한아름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현우가 어머니 없이 자라서 마음이 좀 아프다”며 “새 엄마 소리 듣는 거 보다는, 제일 친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부자지간 대화 단절이 한아름씨의 노력으로 풀리게 될지, 최준용 가족의 장위동 라이프에 관심이 쏠린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결혼 2년차 최대 ‘고부갈등’을 맞는 미나 필립의 가족 모임 이야기와, 남해에서 시금치 파티를 벌이는 박원숙 박준금 이경애의 모습이 웃음과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모던 패밀리’ 44회는 이날 오후 11시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사설] 복지 사각지대 참사 막을 대책 필요하다

    세밑에 또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제 대구시의 한 주택에서 40대 부모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찾지 못했지만 집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는 데다 개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이웃들의 말로 미뤄 볼 때 동반자살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이웃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로 한껏 들떠 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생활고를 이유로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 달 전쯤에는 서울 성북구의 70대 노모와 40대 딸 등 일가족 4명이, 경기도 양주에서는 50대 가장이 생활고를 비관해 여섯 살, 네 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10월에는 제주의 40대 부부가 사업 실패를 비관해 열두 살, 여덟 살짜리 두 자녀와 함께 목숨을 끊었고, 경남 거제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8세, 6세 아들 두 명과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는 등 일가족 사망 사건이 줄을 잇고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한 해 200조원에 달하는 복지 예산이 투입되는 나라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힘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5년 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가 복지시스템을 한층 강화했다지만 정작 도움이 절실한 가정은 놓치고 있는 게 아닌지 재차 시스템을 꼼꼼히 되짚어 봐야 한다. 복지부가 지난 9월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 원스톱 상담창구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다. 탈북 모녀가 굶어 죽은 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되는 3만 가구를 한 집 한 집 방문해 실태 조사를 벌이는 것처럼 더 적극적인 밀착 행정이 일반화돼야 한다. 더불어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통계에 기초해 차상위계층 등에 대한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사고체계를 개선하는 데도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한다.
  • 성탄절 앞두고… ‘복지 사각’ 대구 일가족 4명의 비극

    성탄절 앞두고… ‘복지 사각’ 대구 일가족 4명의 비극

    10년간 생활고… 기초수급자 지정 안 돼 집안에서 번개탄 피운 흔적… 유서 없어 경찰 “자녀 동반한 극단적 선택은 범죄”성탄절을 앞두고 대구의 한 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들은 10년 가까이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않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다. 24일 대구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A(42)씨 부부와 중학생 아들(14), 초등학생 딸(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지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편함에는 지난 10월부터 요금이 체납됐다는 도시가스요금 고지서와 주정차위반 과태료 고지서 등이 발견됐다. 일가족의 죽음은 중학생 아들이 등교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 교사의 신고로 밝혀졌다. 담임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학생이 학교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자신의 차량으로 식당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지금까지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주변에서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 친인척들도 “A씨의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았으나 자신들도 도와줄 형편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다”고 진술했다. 관할 주민복지센터는 A씨의 경우 복지 지원 대상자 자격이 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복지센터 관계자는 “복지 지원 대상자가 아니면 생활 형편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없다”면서 “본인이 센터에 복지 신청 등 도움을 요청했다면 후원자를 연계해 줄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없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식은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라면서 “자녀를 동반한 극단적 선택은 범죄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크리스마스 앞두고… 대구 일가족 4명 극단 선택

    크리스마스 앞두고… 대구 일가족 4명 극단 선택

    집안에서 번개탄 피운 흔적… 유서 없어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대구의 한 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이들은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않는 등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다. 24일 대구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A(42)씨 부부와 중학생 아들(14), 초등학생 딸(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지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가족 죽음은 중학생 아들이 등교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 교사의 신고로 밝혀졌다. 담임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학생이 학교에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자신의 차량으로 식당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지금까지 계속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주변에서 말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의 친인척들도 “A씨의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았으나 자신들도 도와줄 형편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A씨 관할 주민복지센터는 A씨의 경우 복지 지원 대상자 자격이 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복지센터 관계자는 “복지 지원 대상자가 아니면 생활 형편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없다”면서 “본인이 센터에 복지 신청 등 도움을 요청했다면 후원자를 연계해 줄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들이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수사 중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대구에서 일가족 4명 숨진채 발견

    대구 한 주택에서 일가족이 4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대구 강북경찰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주택에서 A(42)씨 부부와 중학생 아들(14), 초등학생 딸(11)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안에는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지만,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일가족 죽음은 중학생 아들이 등교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 교사가 신고로 밝혀졌다. 담임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숨진 학생이 모범생이었다, 최근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가 10여년 전에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한 뒤 배달업체 등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A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구체적인 사망 원인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확인된 외부 침입 흔적 등은 없다”라며 “친인척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사망경위를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160만원으로 4인 가족 입에 풀칠…그들은 매달 20일 전 ‘장발장’ 된다

    160만원으로 4인 가족 입에 풀칠…그들은 매달 20일 전 ‘장발장’ 된다

    생계급여만으로 가족 생활비 턱없어 다음달 수급 때까지 1~2주간 생활고 치아 다 빠지도록 치료는 꿈도 못 꿔 “보장 수준 확대 등 정책 현실화 필요”배가 고파 마트에서 우유와 사과를 훔친 ‘인천 장발장’ 부자에게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미담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만큼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고쳐 제2의 장발장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극빈층에게 지급되는 기초생계급여를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일 인천 중구의 한 마트에서 A(34)씨가 아들 B(12)군과 함께 우유 2팩과 사과 6개 등 약 1만원어치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직원에게 걸리고 말았다. A씨가 “배가 고팠다”며 눈물만 흘리자 마트 주인은 그를 용서했고 경찰은 부자에게 국밥을 대접했다. 딱한 사정이 알려지자 마트에는 식료품을 기부하겠다는 연락이 쏟아졌다. 마트 주인도 딸 결혼으로 받은 축의금 500만원을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이들 부자에게 기부했다. 17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는 기초생계급여 월 137만원, 주거급여 15만원, 아동수당 10만원 등 약 160만원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2명의 자녀와 노모까지 4인이 함께 생활하는 A씨 가족에겐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금액이다. 게다가 부정맥, 당뇨, 갑상선 질환을 앓는 A씨는 일자리를 구할 형편도 못 된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사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매달 20일 수급비를 받으면 임대료나 통신비, 가스비 등으로 목돈이 빠져나간다. 다음달 수급비가 나오기 전 1~2주는 ‘보릿고개’를 견뎌야 한다. 장발장 부자의 범행도 이 기간에 발생했다. 의료비 중 비급여 항목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건강이 악화하기 일쑤다. 마트 직원은 “A씨의 치아가 거의 다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빈곤사회연대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가구는 하루 식비로 평균 3000원을 쓴다. 중학생 자녀와 사는 C씨 부부는 각각 디스크와 간질을 앓고 있다. 매달 119만원의 지원을 받지만 쓰는 돈이 130만원 이상이다. C씨는 “두부나 콩나물 반찬으로 하루에 한두 끼를 때운다. 아이에게 맞는 옷을 사 주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빈민층 권리를 강조하는 시민단체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생계급여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계급여는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가구의 소득)의 30%로 책정된다. 지금은 가계동향조사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쓰는데, 2018년 1.16%, 2019년에는 2.09% 오르는 데 그쳤다. 내년에는 2.94% 인상되지만, 2014년 이후 매년 7~16% 오른 최저임금과 노인기초연금·아동수당처럼 문재인 정부 들어 늘어난 현금성 복지에 비해 인상 폭이 미미하다. 참여연대는 가계동향조사 대신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생계급여를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내년 4인 가구의 생계급여가 150만~167만원으로 늘어난다. 현 기준 급여액(142만 4752원)보다 최대 25만원 많다. 복지 접근성도 보완이 필요하다. 결식아동은 매끼 약 5000원의 급식카드를 받지만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인천 장발장’의 아들 B군은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급식카드가 없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을 늘려 북유럽처럼 가구별 상황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자활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할매는 손자를 거뒀지만… 가난의 굴레는 더 조여 왔다

    할매는 손자를 거뒀지만… 가난의 굴레는 더 조여 왔다

    광주에 사는 최금옥(59)씨의 하루는 열아홉 살 손녀 수영이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뇌병변 중증 장애인인 수영이는 내년이면 성인이 되지만, 식사나 목욕 같은 일상생활조차 스스로 할 수 없다. 생후 일주일이 갓 지났을 무렵 수영이를 안고 있던 아빠가 차 뒷좌석에 수영이를 떨어뜨리면서 뇌에 영영 손상이 갔다. 수영이 엄마는 그 뒤로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고, 아빠는 돈을 벌겠다며 해외로 나가 새살림을 꾸렸다. 그렇게 돌도 되기 전 수영이는 할머니와 둘만 남았다. 수영이네처럼 조부모와 손자녀로 이뤄진 조손가정은 국내 15만 가구를 넘어섰다(2015년 기준). 외환위기를 거치며 ‘가족 해체’라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 조손가정은 2000년대만 해도 5만 가구도 안 됐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인구 고령화, 가정불화, 이혼 증가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변화를 정면으로 맞으며 그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 가구 추계에 의하면 이들은 2030년이면 30만 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조손가정은 노인 빈곤과 아동 빈곤, 세대 갈등 등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안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10년째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손가정 관련 정부 공식 조사는 2010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서울신문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국내 조손가정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이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살펴봤다. 주위 시선에 부담을 느끼는 사례자들의 요청으로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썼다. ●손자 키우다 빈곤 절벽에 내몰린 노인들 최씨네 비극이 시작된 건 수영이가 태어난 직후다. 한순간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지만, 수영이가 뇌병변 장애라는 진단을 받으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홀로 남은 수영이를 돌볼 사람은 친조모 최씨뿐이었다. 최씨 역시 교통사고와 수술, 남편의 학대까지 겪으며 왼쪽 무릎뼈가 없어질 정도로 건강이 나쁘지만, 아픈 몸에 복대를 맨 채 168㎝, 73㎏의 수영이를 매일 먹이고 씻긴다. 월 소득은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 수당을 포함한 120만원 남짓. 그나마도 물리치료비와 병원비, 교통비, 월세가 빠져나가면 관리비조차 낼 수 없어 숨이 턱턱 막힌다. 최씨는 “평생 얼마나 울었던지 이제는 눈물도 안 나온다”면서도 “나도 너무 가난하고 서럽게 살았는데, 한 번 부모한테 버려진 손녀를 다른 데 또 맡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조손가정은 원래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이 아동까지 양육하게 되면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 갇힌다는 특성을 띤다. 가정에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수급비나 정부지원금에만 기대지만, 생활을 꾸리기엔 역부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조손가정 15만 3000가구의 연간 평균 소득은 2175만원에 불과하다(2016년 기준). 전체 가구(4883만원)의 절반이 안 되고, 다문화가족(4328만원)이나 장애인 가구(3513만원)보다도 낮다. 현재 조손가정은 한부모가족지원법이나 아동복지법에 따라 각각 한부모·조손가족 또는 가정위탁 세대로 분류되면 별도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양육자가 대부분 노인이라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직접 신청해야 하는 등 한계가 크다. 안태정(76)씨는 남편과 아들이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친손자인 민지(16)·민국(14) 남매를 키우게 됐다. 채무자들에게 쫓기던 아들은 두 아이를 안씨에게 맡긴 뒤 연락이 끊겼고, 며느리는 우울증과 조현병 등으로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됐다. 거주지에도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으면서 갈 곳 잃은 안씨가 찾은 곳은 어느 교회 건물 구석이었다. 이들 가족을 안쓰럽게 여긴 목사가 동사무소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그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실제 전국 조손 가구 중 수급 비율은 겨우 5%다.●핏줄이라 떠맡긴 했지만… 공황장애까지 조부모 대부분이 손자녀를 떠맡는 건 핏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2010년 여가부 조사에서 조부모는 손자녀를 양육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부모의 이혼·재혼(53.2%), 가출이나 실종(14.7%), 질병·사망(11.4%), 실직·파산(7.6%) 등을 꼽았다. 이렇듯 많은 나이에 억지로 손자녀를 양육하는 데서 오는 버거움은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몸과 마음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7년 제주국제대 연구진이 연구한 논문을 보면 조부모는 손자녀 양육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와 양육자의 역할에 대한 압박감이 컸는데, 이는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가부 조사에서도 70% 이상의 조부모가 건강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긴급 의료비나 생계비를 걱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안씨 역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으며 4년째 약을 먹고 있다. 최근에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는 “주위에서 본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왜 애들을 키우느냐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면서 “젊을 때는 그래도 애들 덕분에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온몸이 쑤시고 아파 아이들에게 자꾸 화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자녀가 손자를 버리고 간 친부모라는 데서 오는 괴로움도 크다. 자녀의 실종이나 가출, 이혼 등은 이들에게도 큰 충격이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손자녀가 입을 상처 때문에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못한다. 고등학생 태혁(18)이를 홀로 키우는 박순영(72)씨는 20년째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다. 태혁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됐을 무렵 “동창회에 간다”며 집을 나선 뒤 돌아오지 않는 며느리와 덩달아 떠나버린 아들이 언젠가 연락을 해 올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박씨는 “며느리와 팔짱을 끼고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딸이냐’고 물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간 뒤 십수년째 감감무소식이라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서 “태혁이한테 미안해서 애 앞에서는 이런 얘기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숙자(72)씨 역시 외손자 동우(16)를 낳자마자 돈을 벌겠다고 떠나간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이씨는 “자기도 힘드니까 나한테 애를 맡기고 간간이 연락만 했는데, 평생 고생하다 지난해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면서 “아직도 길을 가다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을 보면 딸 생각이 난다. 나는 딸이 너무 보고 싶은데, 동우는 엄마 얘기만 나오면 듣기 싫다고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보호자’ 있지만 ‘보호’ 못 받는 아이들 어릴 때부터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극심한 빈곤에 노출된 아동 역시 성장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장 큰 문제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가족과의 애착 관계가 또래와 학교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할머니, 누나와 함께 사는 우석(12)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벽 증세를 보였다. 주위 친구의 영향으로 문방구에서 물건을 하나둘 훔치기 시작하던 우석이는 돈에도 손을 댔고, 결국 지난해 7개월간 치료시설까지 갔다 왔다.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산만하게 돌아다니는 등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증세를 보여 심리 치료도 받고 있다. 외조모 김길녀(62)씨는 “처음 우석이가 물건을 훔쳤다는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면서 “학교와 아동센터 등에서 아이가 마음이 허전하고 그리울 때 그런 증상을 보인다더라”고 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더 어릴 때 엄마와 잠깐 살았는데, 밥도 안 주고 용돈 500원만 줘서 자판기 율무차 두 잔으로 하루를 버텼다는 얘기를 최근에야 했다”면서 “아이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인지 할머니가 아무리 잘해 줘도 친모가 아니라고 눈치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에 제대로 돌봐 줄 양육자가 없는 조손가정 아동은 편부모 가정, 저소득층 가정과 함께 게임중독 위험 집단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전인 아동은 가정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인데도 오히려 자신이 조부모를 대신해 성인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인 민지는 “중학생 때 할머니가 쓰러져 119에 신고했는데, 너무 당황해 주소를 잘못 불러서 구급대원들에게 혼났다. 이후로 신고하는 게 무섭다”면서 “할머니가 최근 영정사진이나 장례 절차도 알아 보시는데 앞으로 동생과 둘만 남으면 어떡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태혁이는 “할머니는 당신 이름조차 읽고 쓸 줄 몰라서 어릴 때부터 대신 편지를 읽어드리거나 동사무소에 같이 가서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많게는 60살까지 벌어지는 나이 탓에 자연스레 생기는 세대 차이나 양육의 빈틈도 크다. 고령의 양육자가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서 아동의 사회성이 떨어지고, 또래 집단에서 계속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등학생 대현(18)이는 최근까지 면도하는 법을 몰랐다. 집에는 치매에 걸려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누나뿐이었다. 지역아동센터 담당자가 면도기를 사 주며 손수 시범을 보일 때까지 대현이는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을 깎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라고 깨우는 사람도 없어 지각하거나 결석하기 일쑤고, 학업 성적 역시 낮다. 그나마 대현이네는 양호한 사례다.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조부모가 아동에게 “누구를 닮아 이 모양이냐”고 폭언하거나 빨리 돈을 벌어 오라고 재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방치와 학대가 반복되면 아동 대부분이 학업을 중단하는 등 방황하고, 심한 경우 자해 시도를 하기도 한다. 관련 사례를 상담한 어린이재단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박하나 대리는 “아동을 책임지고 키우는 주 양육자가 없으면 의식주 해결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교통카드 환승제도 같은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조손가정에서도 고모, 삼촌, 이모 등 보조 양육자가 있으면 조부모가 모르는 부분까지 해결해 주는 등 양육 환경이 훨씬 낫다”면서 “어쩔 수 없이 조부모와 아동만 생활해야 하는 경우에는 세대 간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사회서비스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열린세상] 초연결시대의 기술 유감/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열린세상] 초연결시대의 기술 유감/하대청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초중등 학부모들 앞에서 대중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 중에 중학생 아들과의 실랑이 끝에 집의 무선인터넷 가입을 해지했다는 말을 우연히 했는데, 그 반응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부모들은 강연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과 박수로 뜨겁게 지지 의사를 보냈고, 함께 온 아이들은 마치 끔찍한 폭력 현장을 본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온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인터넷 사용 시간 규칙을 합의한 바로 다음날 약속을 어기며 새벽까지 인터넷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지만, 이른바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안에 들어온 컴퓨터와 통신 인프라스트럭처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을 누리게 되었지만, 함께 치른 희생이 만만치 않다.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읽어 내려가던 집중력은 먼일처럼 여겨지고 이제는 가벼운 책 한 권 읽는 데도 지루함과 각종 주의분산 시도와 싸워야 한다. 소셜미디어, 이메일, 뉴스 등은 수시로 스마트폰 푸시 알림을 보내며 우리의 주의와 집중력을 빼앗고, 콘텐츠 소비의 숱한 유혹은 수면시간까지 침투하고 있다. 오죽하면 강제로 스마트폰 앱들이 열리지 않도록 막는 앱이 인기리에 판매될 정도가 되었을까. 디지털 기술로 우리의 주의와 집중력이 방해받는 이 현실을 두고 캐서린 헤일스와 같은 학자는 다른 세대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 한 가지 일에 지루하게 몰두할 수 있는 ‘깊은 주의’(deep attention)를 가진 세대에서 짧은 시간 동안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고 동시에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들뜬 주의’(hyper attention)를 가진 세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SF 드라마 시리즈의 어떤 에피소드에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 소셜미디어 기업의 대표가 등장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무것과도 연결되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묵언 명상 중이다. 그와 통화하길 원했던 그 기업의 이사는 마치 파발을 띄우듯 무선통신 기기와 함께 직원을 그곳으로 보내야 했다. 항상 인터넷에 연결돼 실시간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정작 이 시대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한 주인공은 아무것도 연결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 설정은 의미심장한데, 자신의 주의를 디지털 기술에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이들은 이 기술을 잘 알거나 부유한 이들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많은 엔지니어와 기업인들이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모든 것이 다 연결된 초연결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없는 이들이 자유롭게 이 연결에서 분리되기는 어려운 듯하다.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택배원들은 배송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데도 거친 숨을 쉬며 다음 배송지를 검색하느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직도 많은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도 카카오톡으로 전송되는 회사의 업무 지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어린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는 부모는 아이에게 태블릿 PC를 쥐여 주고 집안일을 하거나 집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한다. 자신이 원할 때 연결하며 원하지 않을 때 연결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은 점점 예외적인 혜택이 돼 가고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들은 소수가 돼 간다. 5G 무선통신기술과 사물인터넷으로 우리 시대가 점점 더 완전한 초연결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인터넷 속도는 빨라지고 지연 시간은 짧아지며 개목걸이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된 이 세계에서 기술혁신은 점점 상투적인 것이 돼 가는 듯하다. 더 빠르고 더 많이 연결된 세계를 실현하는 것.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이 더 빠른 곳이 아니라 안 되는 곳이 필요하다. 주의와 집중력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들과의 오랜 논쟁 끝에 밤 10시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무선인터넷을 다시 설치했다. 집에서 인터넷이 되는 공간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면 합의가 좀더 쉬웠을 것 같다. 우리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있고 기술은 이 권리를 실현하는 데도 책임을 느꼈으면 한다.
  • “격려는 ‘언어 표현’으로 충분” 제자 추행 교사 항소심 유죄

    “격려는 ‘언어 표현’으로 충분” 제자 추행 교사 항소심 유죄

    여자 중학생인 제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40대 교사가 항소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교사는 칭찬이나 격려의 의미로 다독여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원은 학생들에 대한 칭찬은 언어적 표현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수원고법 형사1부(노경필 부장판사)는 1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중학교 교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및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3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4월까지 경기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중학교 3학년인 제자 13명의 머리와 등, 어깨, 팔 부위 등을 쓸어내리는 행위로 40여차례에 걸쳐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3월 말부터 A씨의 신체접촉에 대해 불만을 공유하다가 한 달 뒤 학년 부장 교사를 찾아가 피해 사실을 알린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A씨의 행위가 학생들의 성적 자유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침해한 경우라고 단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만진 부위는 성적 민감도 내지 내밀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위이고 일반적으로 이성 간에도 칭찬, 격려 등의 의미로 접촉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피고인이 단순히 친근감 등을 표현하기 위해 신체 접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피해자들이 느낀 감정 역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이 아니라 단순한 불쾌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신체 접촉은 중년의 성인 남성인 교사가 사춘기 여중생들에게 친근감이나 격려를 표시하는 정도로 보기 어려운 과도한 행동이었다”며 “그 신체 부위가 일반적으로 성적 민감도가 아주 높은 부위가 아니라고 해도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접촉된 신체 부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10대 여중생인 피해자들은 이성과의 신체 접촉을 민감하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것이고, 설령 피고인 주장처럼 (당시의 신체 접촉이) 칭찬, 격려, 친밀감 등을 표현한 것이라면 보통은 언어적 표현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함포사격으로 무너진 건물… 고향후배 입대한 지 3개월만에 세상 떠나

    함포사격으로 무너진 건물… 고향후배 입대한 지 3개월만에 세상 떠나

    일시 1998년 2월 8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박종근(인천학도의용대 5대대 부대대장) 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나다 1950년 6·25 사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인천공업중학교 5학년생이었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전에 전국학생연맹(우익 학생 조직)으로 같이 학생운동(學生運動)을 하던 이기관, 정연옥 등과 함께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하였다. 처음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했던 장소는 신흥국민학교 옆 답동 로얄 아파트자리에 있었던 일본식으로 지은 일본 절터였고 우리들은 이끈 의용대장은 인천상업중학교 출신 이계송 형으로 당시 고려대 2학년이었다. 1950년 7월 3일 6·25 사변이 발발하고, 전(全)인천학생의용대를 조직하여 며칠간 정신없이 활동하는 중에도 7월 3일이 닥쳐왔다. 1950년 7월 3일 이날 오후 늦어서인가 숭의동 쪽에서 포 소리가 나면서 인민군 탱크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때 알아보니까 경찰은 이미 철수했는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충청남도 공주까지 피난 가서 친척집에 몰래 숨어서 지냈다. 그러던 중에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중학생들이 인민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실종되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1950년 9월 15일 친척 집에 숨어서 지내기를 2달이 지나자 인천에서 9·15 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즉시 답답하게 숨어 지내던 도피 생활을 끝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7월 3일 인천을 허겁지겁 떠난 지 2개월 반 만이었다. 인천학도의용대 창설 이렇게 어려웠던 피란에서 돌아와 수복된 고향 인천에 돌아와 보니까 인천 시가는 미군이 쏜 함포사격으로 건물들이 무너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시민들의 살림살이도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우리가 활동했던 멤버들은 다시 모여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학도의용대가 부활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 지역에 지대(支隊)를 설치하고 지대 안에 분대(分隊)를 두었다. 이때 나는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 5대대 부대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50년 12월 18일 중공군의 참전과 국군과 UN군의 후퇴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가 인천을 철수하여 남하(南下)하는 날이 닥쳐왔다. 나는 1950년 12월 18일 인천축현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5대대 대원들과 합류했다. 곧 남녀 대원들과 같이 인천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우선 안양을 거처서 수원까지 가게 되었다.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대원들을 인솔하여, 먼저 부산을 향하여 남하(南下)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구를 거처 결국 마산에 도착하였다. 인천학도의용대 대원들 자원입대 후 참전 마산에 도착해서 구마산 삼일여관에 여장을 풀고 그곳을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본부로 정하고 연대본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 인천학도의용대 이계송 연대장은 대구 육군본부에 인천학도의용대 진로 관계로 출장 중이어서 마산에는 없었다. 그때 해병대에서는 해병 모집을 하였는데 인천학도의용대에서 많이 지원하였다. 처음 지원한 대원들 50여명은 해병대 제5기 특채로 입대하였으며 나중에 지원한 대원들 600여명은 해병대 제6기생들이었다. 그래서 6기생들은 인천기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통영으로 가서 방위군 수용소에 며칠 지내다가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육군 제2 훈련소에 입소 후 훈련을 마치고 정식 군인이 된 후 나는 통신학교로 가서 무선통신 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후 571부대 화랑중대 4소대에 배치되었고 1953년 5월 23일 나는 군에서 제대를 하였다.6·25 전사 인천학생 김길태 1934년 인천 동구 송림동 122번지에서 출생해 인천해성중학교(현 인천 남중학교, 인천남고등학교의 전신) 3학년 재학 중에 인천에서 출발하여 부산진국민학교(육군 제2훈련소)까지 걸어가서, 1951년 1월 10일 자원입대해, 1951년 4월 15일 참전 3개월 만에, 16세로 전사하였다. 남기고 싶은 말 9·15 인천상륙작전 후 인천학도의용대는 호국(護國) 활동하다가, 1950년 12월 18일 남하하여 자원입대해서 고향(인천)을 위하여 피 흘리며 6·25 전쟁을 치렀다. 이제는 70에 가까운 노령인데, 아직도 인천학도의용대 역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기록을 남기지 못한 일이 마음 아팠다. 고향 송림동 후배 김길태는 과묵하고 심성이 곧아서 장래가 촉망되었던 우리 동네의 인재였다. 그런데 나와 같이 자원입대한 후, 참전을 하게 되고 입대한 지 겨우 3개월 만에 전사하여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늦었지만 다행히 ‘인천학생스승6·25참전사편찬위원회’ 라는 참전자들의 가슴에 와 닿는 문구를 보고 이제야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가 빛을 찾나 싶어 반갑기 그지없다. 이경종, 이규원 2부자(父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 내 증언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좋은 열매를 거두시기를 빌 뿐이다. 글 사진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박종근 ▲인천학도의용대 5대대 부대대장 1932년 8월 19일 인천 동구 송림동 출생 1950년 6월 25일 전인천학생의용대를 이계송,이기관, 정연옥 등과 창립 1950년 9월 20일 인천학도의용대 제5대대 부대대장으로 활동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을 향해 20일간 걸어서 내려감 1951년 1월 10일 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1951년 1월 20일 부산 육군 통신학교 입교 군번 : 0241045 (통신병) 1953년 5월 23일 명예 제대
  • [데스크 시각] ‘플렉스’ 대한민국/이두걸 경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플렉스’ 대한민국/이두걸 경제부 차장

    힙합은 여전히 익숙지 않다. 디지털 음향에 대한 거부감에 일부러 찾지 않는 데다 그 흔한 TV 경연 프로그램도 즐겨 보지 않아서다. 이러한 선입견에 균열이 생긴 건 올해 중학생이 된 큰아들 덕분이다. 친구들 따라 힙합의 세계로 입문한 아이는 제 방에서 곧잘 힙합 동영상을 보곤 한다. 가족이 함께 탄 차 안에서 선곡을 요청하기도 한다. 힙합 뮤지션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늘었다. 그러나 얼마 전 ‘플렉스’라는 힙합 용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자기 과시’를 뜻하는 ‘스웨그’와 쌍둥이인 이 단어의 뜻은 ‘돈 자랑’이었다. “구찌 루이 휠라 슈프림 섞은 바보…나랑 같이 쇼핑 가자 용돈 갖고 와”(키드밀리의 FLEX) 등의 식이다. 아이에게 ‘플렉스를 아냐’고 물었다. “가사를 따로 챙겨 보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책을 가려 읽어야 하는 것처럼 음악도 가려 들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영 찜찜했다. ‘부자 되세요’라는 20년 가까이 된 한 신용카드사의 광고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에 대한 욕망은 사유재산이 등장한 후기 신석기시대 이후 인류의 DNA에 새겨진 유산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것’에 대한 희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그러나 꼰대와 먹물스러움의 조합 탓인지 몰라도 ‘돈 많은 내가 부럽지?’라는 식의 극단적인 배금주의가 날것으로 생산되고, 이게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 정도까지 폭넓게 수용된 적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자본의 투입을 전제로 하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기호를 벗어나서는 향유될 수 없어서다. 정작 가슴 아픈 건 플렉스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다수 젊은층들의 상황이다. 이들의 미래 꿈이 공무원과 건물주인 걸 두고 기성세대들은 ‘편한 길만 찾는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런 괴물 같은 현실을 만든 건 전적으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전체 임금근로자 3명 중 1명(올 8월 기준 36.6%)은 비정규직이다. 최근 1년간 비정규직은 36만명 이상 늘었고, 반대로 정규직은 35만명 줄었다. 올해 취업자 증가 수가 20만명대 중반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규직 일자리를 갖는 청년은 얼마나 될까. 창업으로 성공할 확률도 매우 낮다. 우리나라 창업 3년 생존율은 40%, 5년 생존율은 27.5%에 불과하다. 자산 불평등은 무간지옥 수준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제시한 ‘β(베타)값’은 자본의 가치를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부의 편중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β값은 2000년 5.8에서 2015년 8.3으로 치솟았다. 선진국 수준인 4~6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3년 사이에 가격이 두 배 이상 오른 아파트가 서울 강남 등을 중심으로 부지기수다. 이런 현실에서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는 건 또 다른 플렉스에 불과하다. 정치권은 ‘조국 대전’에 이어 총선 승리를 놓고 아귀다툼할 시간에 일할 수 있어도 취업을 하지 않고 그냥 노는 20대가 왜 1년 전보다 22.6%(10월 기준)나 늘었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전태일 힙합 음악제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광장에서 울려 퍼진 가사를 소개한다. “페이 못 준다고 대신 밥 산다고…유명하지도 않네 넌 우리 빨로(우리 덕에)/이런 무대 서는 거야/그니까 감사로 열심히 해.”(오진명의 무제) 수많은 ‘전태일’들이 제 하고 싶은 대로 노래하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마냥 손 놓고 있으면, 어른으로서 좀 ‘쪽팔린’ 일 아닌가.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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