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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TV게임기 놀이중 발작/일서도 1백21명 발생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 업체들이 만든 TV 게임기로 전자 게임을 하다 일본 국내에서만도 1백20명이상이 경련이나 의식 불명 등 발작을 일으켜간질 등으로 진단받은 사실이 자체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 23일 일본교도통신이 보도해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교도 통신은 일본제 TV게임기에 의한 피해가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전국의 대학 병원,국공립 병원 등 약 3백개의 병원을 대상으로 TV 게임중 간질 등의 증상을 일으켜 병원을 찾은 예를 조사해 본 결과 「TV 게임에 의한 분명한 간질 등의 발작」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람이 1백21명이나 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통신은 특히 1백 21명이외에도 「발작이 있었으나 말할 수 없다」 「발작은 있었으나 간질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는 등의 대답을 한 사람도 많아 실제 게임중발작을 일으켰거나 몸의 이상을 호소한 예는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고 보도했다. 발작 환자의 대부분은 초·중학생으로 빛과민성 간질 환자가많은 연령과 일치하고 있으나 개중에는 자식에게 사 준 게임에 열중하다 발작을 일으킨 30대 후반의 주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대부분의 환자들은 게임 시간을 제한하거나 투약으로 대부분 치료됐으나일부 학생들의 경우는 1년에 몇번씩 발작을 반복해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29)

    ◎소년시절:10/화성의숙 전학 전후/“당시 만주에 공산주의 팸플릿” 필자 「평가」에/“소학교때 「레닌일생기」 읽었다” 92년판 날조/학업 비정상적… 면학문제 언급없어 김일성의 유소년 시절에 대한 우상화의 하나는 그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는가를 과장하는데 있었다.그런데 무송소학교 시절부터는 이 방향을 계급적 관점으로 더 강화한다.예를 들어 회고록에서 전기작가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나는 무송에 있을 적에도 「레닌의 일생기」나 「사회주의 대의」와 같은 책을 몇권 읽었다』라고 말하게 하고 있다. ○계급적관점 강화 그런데 우리는 이와같은 주장은 1992년에 출판된 「세기와 더불어」이전에는 그 어떤 김일성 전기에도 실린 적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기작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런 조작을 했을 것이겠는가. 필자는 85년에 일본에서 「김일성평전」을 출판하고 87년에 이것을 한국에서 번역출판하였다.이 책에서 필자는 김일성이 소년시절에 마르크스 레닌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엉터리 주장을 철저히 비판한 일이 있었다.일례로 여기에 그 문장의 일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공산주의문헌은 많지 않았다.1924년에 일본 경찰이 동남만에서 입수한 「불온문서」에는 공산주의 자체를 정면으로 해설한 책은 거의 없었다.1925년에는 이 간도에서 대량으로 공산주의 관계문헌이 압수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선전팸플릿이나 신문이었다.…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얄팍한 팸플릿으로는 레닌의 이름을 붙인 전기·역사·공산청년회역사·공산역사 등이 있었고 그 외에 「공산독본」「노서아 노동역사」「사회주의대의」「공산당의 선언」등이 있었다.이 팸플릿류는 모두가 소련에서 발행되었고 간도지방에서조차 1∼2점씩밖에 압수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에서 필자가 「외무성경찰사」란 극비문서를 찾아내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여기에는 「레닌의 이름을 붙인 전기」「사회주의 대의」란 어구가 보인다.북한의 전기작가들은 필자가 낸 평전의 이 일절을 표절하여 김일성이 무송에서 「레닌의 일생기」「사회주의 대의」를 「읽었다」는 새로운 날조를 하게 된 것이다. ○얄팍한 선전신문 김일성은 이 시기 학교생활이 비정상적이었다.그 때문인지 종래의 전기에서는 면학문제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좌익서적 읽기」신화의 날조에는 엉뚱하게도 필자가 자료를 제공해 준 것으로 되었다. 다음부터는 무송소학교를 중퇴한 후의 일로 넘어가겠다. 1926년 2월14일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 달에 정의부 중앙의회에서 금년 4월1일부터 군인을 모집하기 위하여 정의부 군인이 될만한 청년을 모집할 위원을 선정하여 만주 각 현에 파견하리라는데 일본과 중국경찰의 주목을 피하기 위하여 중학생을 모집하는 형식으로 할 것이라 하였다」 이 기사는 화성의숙이 창설되는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여기에는 이때 정의부에서 각 현에 파견될 위원의 명단도 실려 있다. 따라서 그 위원중 누군가가 김형직의 가정에 와서 3∼4월에 김일성을 화성의숙에 입학시킬 것을 상의한 것도 추측이 가능하다.그러나 박만포선생의 의견에 의하면 김일성은 3월이나 4월에는 입학하지 않았었다.필자는 4월 입학설이었으나 이러한 6월 전학설도 앞으로는 고려해 나갈 것이다. 일본 영사관에 계출된 기록에 의하면 화성의숙은 화어연구학교로 수업연한이 1년6개월이며 교원이 2명,생도가 30명으로 26년 3월에 설립 인가가 난 것으로 되어있다. 26년도는 1학년생만이 입학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의부의 진짜 목적은 이 학교를 교포 자제에게 중국말이나 가르쳐주는 정착준비 학교가 아니라 항일군인을 양성하는 군관학교로 경영하는 것이었다.숙장이 최동오,재무가 강제하로 정의부는 유하현 삼원포에 교과서를 찍는 인쇄소까지 마련하여 학업을 보장하였다. 이번 회고록에서는 화성의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화성의숙은 독립군의 간부를 키워낼 목적으로 1925년 초에 세운 정의부 소속의 2년제 군사정치학교였다.화성의숙의 입학대상은 정의부산하 중대들에서 선발된 현역군인들이었다.우에서 입학생수를 쪼개어 내려보내면 중대별로 우수한 청년들을 뽑아 보내는데 2년동안의 학습과정을 마치면 성적에 따라 새 직급을 주어 출신 중대에 되돌려 보내었다.독립군 밖에서도 개별인사들의 소개로 입학하는 청년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설립연도 등 조작 여기서는 화성의숙이 26년에 설립된 것을 25년으로,1년 반인 수업기한을 2년으로 바가지씌운 일이 눈에 띈다.화성의숙은 25년에 설립될 계획이었지만 26년으로 지연되었다.그리고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그 명칭도 26년 8월 경에는 화림학교로,28년 6월경에는 화흥학교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김일성이 자기 스스로 화성의숙 전학은 특수한 케이스였다고 인정하고 있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의 전학은 역시 비정상적이었다. ①「세기와 더불어 1」156면 ②평전127∼128면 ③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8)72∼73면 ④평전 73면 ⑤「세기와 더불어1」136면 ⑥평전 74면
  • 과학꿈나무들/방학잊고 실험에 몰두

    ◎과학고생 등 57명,올림피아드 출전 채비/대학 1학년과정 이론배우며 실습/물리부문 5명 선발… 7월 대회참가 과학의 꿈나무들이 겨울방학동안 과학실험과 이론을 배우며 뜻있는 방학을 보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이 지난 5일부터 20일까지 개설한 과학 겨울학교에 중3과 고1학년학생 57명이 입교,세계 청소년들의 과학 올림픽인 국제 물리학,정보올림피아드를 위해 추위도 아랑곳없이 과학의 기초를 닦고 있다. 과학고에 재학중이거나 과학고 입학예정인 중3학생들인 이들은 모두 지난해 7월 교육부가 실시한 전국 중·고 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물리학부문에는 중3학생 27명과 고1학생이 14명,정보부문에는 고1학생 4명과 중3학생 12명등이 3∼4명씩 조를 짜 연구 실험등을 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이 강의를 듣거나 실험하는 교육과정은 단진자실험·관성모멘트측정·알고리즘등 일반대학 1학년과정이며 경우에 따라 대학2∼3년과정도 배우고 있다. 브리지회로를 이용한 온도측정 실험을 하던 경기과학고1년 유경식군(17)은『이 실험은 4개의 저항기가운데에 설치한 전류계가 온도의 변화에 따라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오차가 커 실험이 끝난 뒤에 남아 다시 해보겠다』고 말했다. 정보부문의 중학생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컴퓨터에 나타난 표면의 점들을 떼거나 중복하지 않고 이으며 원위치로 되돌아오는 「한붓그리기」실험을 하느라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상오에 이론,점심후에 실험및 토론,저녁식사뒤에 문제풀이등 하루 평균8시간의 교육을 받고 있다. 특히 실험뒤에는 결과를 반드시 보고서로 제출,담당 조교들의 지도를 받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두차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김기봉씨(31·과기원 물리학박사과정)는 『학생들의 교육을 받는 태도는 정말 진지합니다.대부분의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부족한 실험실습을 스스로 하고 있을 정도』라며 흐뭇해 했다. 물리부문을 책임지0? 있는 김수용교수(40·과기원)는 『해마다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면서 『이 학생들가?諍?에서 심사를 해 5명을 선발,오는 7월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옵서버자격이 아닌 정식으로 참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동네선배가 뭇매/중학생 1명 숨져

    13일 하오 5시30분쯤 서울 관악구 봉천4동 1586의14 창안당구장에서 김모군(17·D상고1년)등 고교생 7명이 이원형군(15·S중3년)등 같은동네 후배 3명의 얼굴과 배를 주먹으로 마구 때려 이군이 숨겼다. 숨진 이군과 함께 폭행을 당한 박모군(15·S중3년)은 『당구를 치고 있는데 선배들이 들어와 「왜 학교주변에서 후배들의 돈을 뺏고 못살게 구느냐」면서 무릎을 꿇린뒤 주먹으로 얼굴과 배를 때리던중 이군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고 말했다.
  • 연료용가스 흡입/중학생 질식사망

    6일 상오10시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 순천가든(주인 김일남·48)1층 부엌방에서 김씨의 둘째아들 종성군(14·○중2년)이 연료용가스를 마시다 질식해 숨져있는 것을 김씨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 각자 맡은일에 최선을/손상규(소리)

    일전에 손님이 찾아왔다는 민원실 근무자의 연락을 받았다. 친구들은 특별히 급한 일이 아니면 집으로 연락을 하는데 혹시 잘못 찾아온게 아닐까 싶어 재차 확인을 해도 맞는다는 것이다. 학교동기들도 만난지가 오래 되어 내가 구치소에 근무하는지도 잘 모를텐데 누가 불쑥 찾아왔을까 싶어 궁금증을 더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상도 하지 않은 중학교 동기동창생 3명이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몇번이나 동기들의 모임에 참석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근무여건상 시간맞추기가 어려워 건성으로 간다는 대답만 한지도 오래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만난 동기생들이라 벌써 20년도 넘은 긴 세월이다. 육군소령,건축사,토건주식회사 대표의 신분을 가지고 찾아왔다. 강산이 두번 변한 세월에 까까중머리 중학생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중년이 된 것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인 친구들의 말로는 모임에 참석하면 서너 명만 제외하고는 전부 승용차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공무원생활 10년만에 겨우 셋방살이를 면한 나와 비교하면 승용차란 단어조차도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짧은 시간에 그동안의 회포를 푼다는 것은 불가능하여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니 착잡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시골 고향의 읍내에서 중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남녀공학이라 재미있는 일도 많았었다. 단발머리의 소녀들도 지금쯤은 모두 중년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모처럼 동기생들을 만나고 나니 새삼스럽게 20년전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올해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나이 한살을 더 먹는 것과 함께 동기생들의 의식도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각자 맡은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정과 사회,나아가서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하)

    ◎정치역정/정치사 고비마다 대세 이끌어/창랑 만나 정치투신… 25세 의원당선/민주화 일념 야당 40년에 숱한 고난 정치거산 김영삼 ­. 한국정치사와 함께 성장해온 그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결단의 정치인」 「소신과 용기의 소유자」 「대세와 순리를 중시하는 지도자」등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많다. 그는 만25세의 어린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난과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38세에 원내총무에 올라 5회연속 피선되었으며,우리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국회의원 9선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야당총재 4번,여당총재 한번의 신기록도 갖고있다. 그러나 그를 정치지도자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화려한 경력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국정치의 큰변화를 주도해온 결단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한국현대정치사의 대세를 주도했다고 할수있다. 1950년 그는 처음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49년 정부수립 기념웅변대회에서 외무부장관상을 타게되었고 이때 외무부장관인창랑 장택상씨와 인연을 맺게되었다.50년5월 국회의원선거에 장씨가 출마하자 그의 선거운동을 도왔고 51년부터 53년까지 장씨가 국회부의장·국무총리시절 비서관으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25세가 된 김영삼은 제3대 국회의원에 출마,최연소나이로 고향인 거제에서 당선됐다. 이때 그는 자유당소속의원이었다.그는 경무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승만대통령에게 3선개헌의 부당성을 제기했으나 오히려 이대통령으로부터 무안을 당했다.이에 자유당의원이면서도 3선개헌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고 7개월만에 자유당을 탈당했고 이후 소장파의원들과 사사오입개헌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김영삼은 90년1월 3당합당 때까지 37년간 오로지 야당외길을 걸었다. 4·19와 5·16은 김영삼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4·19후 재선의원인 김영삼은 당시 신민당소장파의원을 중심으로 정치정화운동서클인 「청조회」를 구성하는등 청년정치지도자로서의 활약이 돋보였다.5·16이후 신민당이 해체되고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치정화법에 묶여있는 상태에서도 그는 「군정종식」과 야당전열재정비를 위해 힘썼으며 63년3월 군정연장반대시위로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는 수난도 겪었다. 김영삼은 63년12월 제6대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 최고득표로 당선되었다.이후 그는 제1야당에서 5차례의 원내총무에 피선되면서 군사정권과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했다.3공화국정권에 대항하여 야당을 진두지휘하던 원내총무시절 그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와 결단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1970년 그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하여 일약 야권의 지도자로 발돋움하게된다.그의 나이 42세였다.김영삼은 70년 신민당대통령후보지명전에서 1차투표에서는 이겼으나 결선투표에서 김대중씨에게 패했다.그는 패배후 깨끗이 승복하고 김씨의 당선을 위해 힘을 아끼지않았다. 72년 유신헌법선포당시 김영삼의 행동은 그가 국민적지도자임을 나타내준다. 당시 그는 미국을 방문중이었다.그를 초청했던 라이샤워 코헨 교수와 미국무부관리들은 그의 투옥을 우려해 귀국을 만류했으나 그는 『국민과 동지들이 겪고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며 곧바로 귀국하는 용기를 보였다.귀국후 그는 곧바로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유신헌법 개정운동에 착수,기나긴 반유신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74년 유진산총재가 별세하고 그는 40대나이에 만장일치로 신민당총재에 당선됐다.정계투신 20년만의 야당당수취임이었다.총재 김영삼은 이후 개헌투쟁을 진두지휘했고 이때 그가 인용한 「닭의 목은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암울한 시대에 민주화의 희망을 안겨준 명언으로 회자되고 있다. 김영삼은 77년 2번째 야당총재에 취임,반유신투쟁의 선봉에 섰다.총재취임후 경찰의 신민당사난입,총재직무정지가처분,의원직제명등 온갖 박해가 계속됐다.그러나 그는 『잠시살기위해 영원히 죽는길을 택하지 않을것이며 잠시 죽는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길을 택할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반유신투쟁을 강화해 나갔다.김총재의 의원직제명에 항의해 신민당의원들은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고 부산과 마산에서는 소요사태까지 발생,마침내 10·26으로 유신체제가 막을 내렸다. 80년 서울의봄을 거쳐 신군부의 등장으로 그는 81년5월까지 두번째의 가택연금을 당했다.김영삼은 이때 1년간의 연금기간을 「자신과 싸운 분노의 1년」이었다고 술회한다. 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그가 결행한 23일간의 단식은 그동안 숨죽여온 민주화투쟁에 불씨를 당겼다. 84년 민추협결성→85년 신민당창당→2·12총선돌풍→직선제개헌운동→87년6월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김영삼은 6·29선언으로 맞은 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했다.야권분열로 인한 패배라고 그는 솔직히 시인했다.이후 총선에서는 헌정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정치·사회전분야는 혼란이 계속됐다.김대통령당선자는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단행했다.헌정사상초유인 여당과 야당의 통합을 추진한 것이다.그에게는 가장 힘든 결단이었다.일각의 비난도 거셌지만 그는 극복했다. 3당합당이후 김영삼대표의 행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내각제파동을 겪었고 이질적인 계파간의 갈등은 끊임없이 그를 뒤흔들었다.그는 합당후 2년간을 야당생활 40년보다 힘들었다고 술회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정면돌파식 승부로 기어이 민자당대통령후보 경선에 승리했고 이제 대통령선거에도 당당히 승리했다.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41년간 정치행로의 총결산이었다. 그는 『역사에 단순히 기록되는 대통령이 아니라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고싶다』고 말해왔다. 국민들은 지금 그의 경륜과 탁견·소신과 의지에 큰 희망을 걸고있다.
  • 중학생때의 꿈 대통령 되기까지(김영삼 결단·돌파 40년:상)

    ◎인간면모/활달했던 성장기… 항상 긍정적/“역사·국민앞에 떳떳이/신의·약속 중시… 친화력도 겸비/유복한 가정 외아들… 돈에 초연 제14대 대통령당선자 「김영삼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정치인으로서 너무나 뚜렷한 족적을 보여주었다.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으로 출발,민주화 투쟁·반독재투쟁의 선봉에 항상 앞장서 있던 그는 이제 집권당총재를 거쳐 대통령당선자가 되었다.화려하면서도 영욕이 교차했던 그의 정치경력 때문에 국민들이 거는 새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김영삼당선자의 인생과 정치비전을 상·하로 나누어 재조명해 본다. 1992년 12월19일­. 긴세월 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실현됐다. 대통령은 정치인의 꿈이다.그는 그 꿈을 성취했다. 이제 그의 앞에 놓인 것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다. 그가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진운이 결정된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도 이날 새벽 5시에 어김없이 아침운동길에 나섰다.마산에 계신 부친 김홍조옹에게 안부전화도 잊지 않았다. 어제 아침과 다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 상도동야산을 달리는 그의 머리속에는 ” 늘 기도/이자리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으리라.지난날의 어떠한 난관보다도 더 힘들고 막중한 대통령의 자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도동쪽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태어났다.부친 김홍조옹(82)은 어장주로 거제에서는 알아주는 갑부였고 모친 박부연여사(60년 작고)는 대가집 며느리답게 포용력이 크고 자식들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한다.김영금씨 충정공파 28대손인 김당선자는 여동생만 다섯인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이러한 성장과정은 그가 돈문제에 초연한 점이라든가 숱한 역경에 부닥쳐서도 대담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심성의 바탕이 되었다. 어머니 박여사는 60년 고정간첩에 의해 살해돼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꿈많은 어린시절 그는 섬소년으로 바다를 벗삼아 자랐고 지금도 그는 바다만 보면 불행하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포근했던 모성을 떠올리며 가슴이 저민다고 한다. 그는 장목소학교 통영중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그는 정의감이 강했으며 수영·축구등 운동에도 만능이었다고 동기생들은 전한다.통영중시절 김영삼학생이 한국인학생을 차별하는 일본인교장을 골탕먹여 무기정학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동기생들 사이에 일화가 되고 있다. 또 어머니로부터 하숙비를 더타내 가난한 동급생을 돕는 따뜻한 면모도 가졌다고한다.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정치적 고비를 헤쳐온 그의 행동양식은 활달했던 학교생활 과정에서 쌓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에게도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이 있다.서울대학생시절 하숙집 이웃의 박모라는 여학생을 짝사랑했고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6·25전쟁으로 연락이 끊겼다.다시 서로의 소식을 알게됐을때는 이미 각각 가정을 가진 남이었고 그녀가 남편과 사별한뒤 만나자고 했을때 그는 고민끝에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24세때인 51년 이화여대약학과3학년에 재학중이던 손명순여사와 결혼,슬하에 2남3녀를 두었다. 김당선자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처음에는 장가를 가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결국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번 선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향에 갔었다』고 무뚝뚝하게 당시를 회고하지만 손여사는 『멋쟁이같고 의리와 뚝심이 있어보여 마음에 들었다』고 감격적인 젊은날을 회상한다. 그의 성격은 「한번 한다면 한다」는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다.대통령의 꿈도 중학시절부터 비롯됐다.「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하숙방에 써붙였던 목표는 이후 50여년간 그를 채찍질했고 그를 결국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약속을 중시하는 그의 신의와 상대를 편하게하는 친화력이 그를 「정치거산」으로 또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정적에 대해서는 서릿발같은 단호함으로 살아왔지만 자신의 품을 찾아드는 인사는 기꺼이 품어주는 포용력도 그의 돋보이는 점이다.이같은 그의 신의와 포용력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충성심을 갖게한다고 한다.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좌동영 우형우」중 한사람이었던 고금동영정무장관은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누가 될까봐 내색하지 않고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김당선자를 보필했다. 김당선자가 고금장관의 병상에서,묘소에서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 지금도 남은 동지들의 가슴을 적시게 한다. 늘 웃는 동안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했을때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 만큼 「독기」도 지녔다. 그는 무서운 결단과 포용력을 아울러 갖춘 정치지도자이지만 부친에게 매일 아침문안 전화를 드리는 효자이며 또 손자들에게는 자상한 할아버지이다. 그는 항상 『역사와 국민앞에 떳떳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는 기도로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있다.
  • 김영삼정권의 정통성(사설)

    김영삼 민자당대통령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그의 당선은 중학생시절부터 「미래의 대통령」꿈을 키워온 집념에 찬 한 정치인의 인간승리이다.또한 헌정사상 가장 공명한 선거를 마침내 이룩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킨 온 국민의 승리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끝까지 선전했던 다른 후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선거결과에 대해 이들이 보인 깨끗한 승복은 정말 반가운 것이었다.지난 수십년간 선거가 끝날때마다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갈구했던 승부의 미학이었던가! 이번 선거결과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김영삼 제14대 대통령당선자가 우리 정치사상 가장 깨끗하고 선명한 정통성을 부여받았다는 점일 것이다.정권의 정통성이 확보·유지되려면 권력형성과정에서부터 정치적·사회적·윤리적 하자가 없어야 한다.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신기원을 이룩했다.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관권개입이 배제된 가운데 공정선거가 치러짐으로써 정통성 시비의 소지가 없어진 것이다.금권선거·흑색선전 등의 얼룩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유권자들이 이를 배격함으로써 선거결과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더욱이 차점 낙선자인 민주당 김대중후보와 국민당 정주영후보를 비롯한 패자들이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한 전례없는 일은 새 정부의 정통성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김영삼시대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개화를 뜻한다.이제 우리는 5·16군사혁명이래 30여년간 계속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진정한 문민정치시대로 진입한다.김영삼대통령 정부는 국민의 안정희구를 받들면서 21세기를 향한 민족의 진운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질화된 부패를 척결하고 정체된 경제와 국민기상에 신풍을 불어넣으며 대망의 민족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내년 2월25일 출범할 새 정부가 명실상부한 정통성을 가진 민주정부이기에 눈치를 보거나 주저하지 않고 강력하게 개혁과 발전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이와 관련해 김당선자에게 정통성을 도전받을 수 있는 소지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권력의 형성과정에서 정통성이 확립됐다하더라도 권력의 행사과정에서 민주성과 효율성을 상실하면 정통성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패자를 적극 포용하고 그들의 경륜과 지식을 최대로 수용해야 한다.타후보의 공약이라도 타당성이 있는건 과감하게 채택해야한다.민자당에 표를 던지지 않은 58%의 국민을 항상 의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씨의 몫까지 함께 담당한다는 각오도 가져야 할것이다. 인사정책과 경제정책 특히 지역개발사업및 사회간접자본투자에 있어선 소외계층·소외지역을 보살펴야 한다.그것이 민주 대화합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김당선자가 야당생활 30여년간의 고난을 회상하며 국정을 이끌어 갈때 민주대화합의 길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 자필세대 주권(외언내언)

    날이 새파란 회칼로 생선회를 기막히게 뜨는 일식집 주방장 아저씨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아저씨는 마음을 정하셨습니까?』그러자 굵직하고 큰 목소리로 『대통령요?물론이지요.나는 지조지키는 분으로 결정했습니다』묻지도 않는 부분까지 서슴지않고 대답하는 바람에 이쪽이 당황하고 말았다.음식을 날라주는 예쁘고 명랑한 여자종업원에게 같은 질문을 또 해보았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전 그래도 아파트 싸게 준다는 분이 좋은 것같아요』역시 막힘이 없었다.이윽고 저녁나절,이번에는 우아한 저녁모임에서 피아노를 아름답게 치던 무대위의 피아니스트를 좌석으로 초청하여 역시 「결심」이 섰느냐고 물었더니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역시 안정을 선택하기로 했어요』하고 대답했다. 이런 과정에서 놀랍고 새롭게 생각되었던 것은 온 유권자가 한결같고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점이었다.그저 단지 「결심」을 물었을 뿐인데도 자신의 정해진 마음을 쾌쾌히 털어놓고 그 이유도 당당하게 펼치곤 했다.전시대와는 다른 점인것 같았다. 80년대초에 중학생이었던 자녀를 둔 두동료는 같은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그중 A씨네 아들은 부모의 의견에는 아무 구애도 안받고 자신은 『검은 두루마기를 선택한다』고 선언했다는 것이었고 B씨네 딸은 엄마가 아무리 달래도 『나는 바바리코트 입은 신사의 말이 마음에 든다』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더라는 것이다.그 두집 아이들에게 공통되는 것은 그들이 똑같이 「교복자율화시대에 성장한 첫 유권자라」라는 점이었다. 다 자란 신체를 교복 안에 구겨넣어 부모들과 교사들이 감시하기 좋은 상태로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규격화된 학창생활을 보내던 세대와는 다른 그들도 드디어 유권자로 성장한 것이다.이렇게 다양하고 분방한 의견들이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예상을 허락해 주지않은 선거가 오늘 드디어 결판이 난다.긴장이 엄습해온다.어쨌든 지금 할 일은 투표장으로 가는 일이다.그리고 심판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 총무처 여직원 친목단체 「총아회」(이런모임)

    ◎작은 힘 모아 이웃돕기 솔선수범/소년소녀가장 3명에 학비·생활비 지원 총무처의 총아회는 여직원 2백30여명으로 지난 88년 구성된 친목단체이다. 그러나 단순한 친목도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연말 불우이웃돕기만 하더라도 다른 여직원모임들이 회의실등에서 소속부처직원들을 상대로 일일찻집을 운영해 행사비를 마련하는 정도지만 총아회는 꽤나 큰 행사를 기획한다. 총아회는 지난 89년부터 시작해 올해에도 9∼11일 사흘동안 정부종합청사 1층로비에서 전부처직원들을 상대로 「소년소녀가장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총무처 직원들이 기증하거나 위탁한 헌옷·그림·책·액세사리·완구류·가전제품등과 함께 백화점의 협찬을 얻어 의류·건어물·주방용품등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했다. 또 회원들이 손수 제작한 크리스마스 장식품이나 은평아동복지천사원의 고아들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등도 팔아 이번 바자회에서 7백85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총무처간부들도 이들의 취지에 적극 찬동해 성금을 내놓아 실제 수입은 이보다 더 많다. 총아회가 도와주고있는 소년소녀가장은 중학생2명,고등학생1명등 3명. 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매분기별로 등록금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내년부터는 생활비도 일부 보조해주고 지원대상자도 1∼2명 더 늘릴 계획이다. 회장 서정예씨(24·제도담당관실 행정주사보)는 총무처에 정부전자계산소가 있어 회원수가 많은데다 총무처가 종합청사관리를 맡고 있어 청사로비사용이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에 바자같은 대형행사개최가 가능했다고 말한다. 이밖에 일상활동도 활발하다. 꽃꽂이·차밍스쿨·에어로빅등 3개 취미활동반을 운영,주1∼2회씩 점심시간이나 퇴근후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 또 교양강좌모임도 수시로 개최,외부강사를 초청해 정서및 교양함양에 애쓰고 있다. 서회장은 『총아회가 비록 여직원들만의 모임이긴 하지만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려는 의욕적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면서 『지난해부터는 여름방학을 이용,우리 모임이 후원하고 있는 소년소녀가장들을 사회복지관이 주최하는 수련회에 참가하도록 주선해줌으로써 이들이생활상담이나 진로지도·학업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겨울방학 과학교육일정 확정/초·중학생에 컴퓨터·실험교실 등 마련

    ◎「서울」,부모동반 신청자에 참여 우선권 겨울방학중 청소년을 위한 과학탐구프로그램으로 정착된 대덕국립중앙과학관및 서울과학관의 올해 겨울방학과학교육프로그램 일정이 확정됐다. 올해도 과학교육프로그램은 국민학교 5,6학년어린이와 중학교 1,2학년 학생이 참여하는 과학공작교실과 과학실험교실,컴퓨터기초를 배우는 컴퓨터교실 등으로 짜여졌다. 또 과학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우리별1호」등의 과학강연회와 과학영화 상영시간도 마련된다.특히 올해는 국립서울과학관이 각 프로그램마다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부모를 동반할 신청자에게 참여우선권을 주고 있어 이채롭다. 학부모에게는 모처럼 과학마인드를 되새겨주는 자리가 될뿐만아니라 자녀의 학습태도와 적성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으로 보인다.1월중에 집중 실시되는 이 프로그램들은 재료비외에 모든 참가비는 무료이며 세부일정은 별표와 같다.
  • 모자가정 학비지원 확대/실고자녀 수업­입학금 전액 지급/내년부터

    내년부터 월소득 68만7천원 미만인 모자가정중 실업계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은 거주지 읍·면·동사무소에 학비지원 신청을 하면 수업료와 입학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4일 보사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에서 저소득 모자가정 지원사업관련 예산 16억6천4백만원을 추가확보함에 따라 지금까지 저소득 모자가정 중학생 자녀에게 지원해온 학비지원을 실업계고교 자녀 4천5백명에게까지 확대키로 했다. 보사부는 이와함께 7차5개년계획이 끝나는 오는 96년까지 모자가정의 가장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비와 훈련기간중의 생계비및 초·중·고등학교 자녀의 학용품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 “굶주림…절망…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요덕15호 정치범수용소:1)

    ◎북한탈출 안혁·강철환씨 수기연재 앞서 회견/5만명 가족·독신자동 나눠서 감시/탈출하다 적발되면 돌팔매질 사형/강냉이죽 연명… 사람 죽으면 옷차지 아귀다툼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죽음자체보다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죄없는 북녘 동포들이 절망과 공포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다. 함경남도 요덕군 정치범수용소는 북한에 있는 12곳의 수용소 가운데 가장 크고 처참한 곳이다. 북한 주민들은 「조선인민경비대 2915부대」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이 곳을 「15호 관리소」또는 「15호」라고 부른다. 15호는 구읍리·입석리·용평리·평전리·대숙리등 5개 리(이)가 있는 요덕군전체 지역에 설치된 거대한 「수용소군도」이다. 이 수용소에는 이른바 반동분자·사상불순자라는 누명을 쓴 북한 주민과 북송교포등 5만여명이 가족세대와 독신자세대로 나뉘어 완전통제구역과 혁명화구역에 수용되어 있다. 이곳에 9년6개월동안 가족과 함께 수용되었던 강철환씨(24·북송교포 2세)와 1년3개월간 혼자 갇혔던 안혁씨(24·전탁구선수). 강씨는 조총련 교토(경도)본부 상공회장을 지내다 지난 61년 일가족과 함께 북송된 할아버지 강태휴씨(92·생사불명)의 손자로 북한에서 결혼한 아버지 강리명씨(89년 병사)와 어머니 신도옥씨(90년 병사)사이에서 68년 출생했다.강씨 가족들은 소문난 부자였던 할아버지 덕분에 평양시 중구역 경림동 아파트에서 자가용차와 냉장고까지 갖추고 부유하게 살았다. 그러나 77년 7월 강씨의 할아버지가 영문없이 행방불명된지 한달만에 할머니·삼촌·아버지·남동생등 일가족 4명은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강씨는 당시 10살이었고 성분좋은 집안 출신인 어머니는 강제로 이혼 당해 헤어졌다. 한편 안씨는 중학생 대표 탁구선수로 중앙체육학교에 다니던 중 호기심으로 압록강을 건너가 중국의 연길등지에서 놀다 돌아온뒤 간첩으로 몰려 87년 11월부터 1년3개월간 수용되었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사지에서 풀려난뒤 지난 3월 북한을 탈출,중국을 거쳐 남한에 귀순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눈에 선한 수용소의참상을 상세히 폭로하고 싶어한다.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되찾게 된 만큼이나 비인간적인 수용소 생활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강씨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인간에게 온갖 잔인한 고통을 주어 죽어가는 과정을 처참하게 체험토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고 말했다. 1인당 하루 5백g의 강냉이알맹이가 주식의 전부이며 반찬은 굵은 소금.이때문에 수용소 사람들은 풀을 뜯어다 강냉이를 삶아 으깬뒤 죽을 쑤어 먹거나 풀범벅을 만들어 먹고 있다는 것이다. 강씨는 또 『흙벽돌과 나무판자로 지은 낡은 집은 흙방바닥이며 1년에 한번 지급되는 마대로 짠 겉옷이 의복의 전부여서 사람이 죽으면 서로 헌옷을 차지하려고 다투며 신발은 아예 지급되지 않아 나무껍질과 헝겊으로 감발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들은 『수용소안의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노역과 영양실조로 펠라그라병(단백질 결핍증으로 심한 피부병·설사증세와 정신이상을 일으켜 곤충등을 잡아 먹는 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수용소에서는 약을 구경할 수도 없어 병에 걸리면 곧바로 죽을 수 밖에 없다』면서 『폐렴·결핵등에 걸리면 치료는 커녕 산속에 있는 격리수용건물에 넣어 죽을때까지 방치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또 가족세대인 경우에는 드물게 출산을 하는 여자들도 있으나 아이들은 모두 태어난 직후 죽거나 살아도 기형아가 된다고 말했다. 수용소 생활을 견디다 못해 가끔 작업장에 나간 틈을 이용,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역이 워낙 넓은데다 제대로 걷지를 못해 모두 곧바로 붙잡히고 만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안씨는 『탈출하다 붙잡히면 수용자들이 모두 모인 공터에서 처음에는 총살을 시켰으나 얼마전부터는 총알이 아깝다며 목을 매단뒤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으며 부녀자들은 이같은 끔찍한 광경에충격을 받고 까무러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수용소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이듬해 새풀이 돋는 3∼4월까지가 가장 고통스럽다고 한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13)

    ◎유연시절:1/이용목적 따라 이름 바꾸어 사용/호적에 오른 본명은 중학생때의 “성주”/일제시대엔 보신위해 “성주”로도 표기/최근 우상화목적,유명 ‘성주’로 선전 성균관대 이명영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김형직의 동생인 김형록의 아들 중에도 김영주가 있었다.그래서 필자의 추측이지만 김형직과 김형록 두 형제의 아들에 각각 영주가 있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두 가정중 어느 한 가정이 자식들의 이름을 바꾸어야 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인다.결국 김형직 쪽이 자기 아들을 성주·철주·영주로 고쳤다.실제로 북한에서는 지금 철주·영주라 하지 않고 철주·영주로 표기하고 있다. ○김형직쪽서 개명 따라서 호적상으로 보면 김일성은 김성주가 아니라 김성주일 것이다.중학시절의 그의 이름이 바로 김성주였다. 그러나 김성주는 자기 이름을 꼭 그렇게만 고집하지 않았던 증거도 몇가지 있다.1930년 3월에 그가 관계한 동성농민총동맹의 일본기록은 김성주가 되어있고 30년 9월 이후에 그가 활동한 회덕현 오가자에 있었던 최형우는 자기 저서에서그를 김성주로 표기하고 있다. 따라서 김일성은 자기 본 이름의 표기를 때와 장소에 따라 바꾸었다.과거의 독립운동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보신의 방법을 그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그가 중학시절에 사용하고 있었던 김성주를 버리고 유명인 김성주만 고집하는 것은 부자연하다.보통 같으면 그 반대가 정상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김성주만 선전하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적어도 해방후라는 때와 북한이라는 장소에서는 호적명 보다 유명쪽이 보신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그는 김성주를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김성주를 사용하여 유리한 점이 과연 무엇인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년시절이란 부모의 행적에 따라 유아의 생활이 결정되는 자아 없는 시절이다.따라서 보통 같으면 자서전에서 유년시절 같은 것은 취급하지 않더라도 그 주인공에게는 별로 어떻다 할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의 경우에는 그저 이렇게 상식적으로 보고 그의 유년시절을 생략할 수가 없다.왜냐하면 북한에서는 태어나서 몇살 안되는 유아들을 탁아소에 집어넣고 그 유아들을 낳은 부모 대신에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면서 「김일성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주입식으로 가르치게 하기 때문이다. ○주입식교육 강요 필자는 1976년에 평양을 방문하여 그곳의 전시시설인 「9·15 주 탁아소」를 참관한 일이 있었다.나는 지금도 그 강당에서 3살난 어린 여자아이가 무대에 나오고 혀 짧은 말로 「아버지 김일성원수님께서는 1912년 4월15일에 만경대에서 탄생하시었습니다」라고 하면서 고사리 같은 양손을 들어 배경에 있는 「만경대 초가집」을 가리키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생아버지도 양아버지도 망각시키고 「김일성아버지」를 억지로 어린아이의 머리에 박아넣는 세뇌작업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아버지 뿐 아니라 어머니까지도 독점하여 양친을 의미하는 「어버이」를 써서 북한주민에게 「어버이 수령 김일성원수님」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시키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까지 빼앗아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현실을 거꾸로 보면 김일성은 북한의 어린이를 세뇌시키기 위하여 부단히 「자기의 어린시절」을 교재삼아 가르쳐주어야 한다.어렸을때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이 자기를 어떻게 가르쳤으며 그 가르침을 어떻게 소화하였는가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년시절이란 자아 없는 시절이므로 그때 들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이 때문에 그는 그가 들었다는 기억도 없는 일들을 「들었다」고 하여 그 어린시절의 「사적」을 날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유년기사적 날조 물론 이러한 날조는 처음에는 김일성 자신만이 한 것은 아니었다.해방후 최초로 김일성의 유소년시절을 「만경대」란 단행본으로 발간한 사람은 작가 한설야였는데 그는 김일성과 그외 일가친척을 두루 찾아 가 김일성의 유소년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미화하였다. 이 책은 62년에 한설야가 숙청됨에 따라 김일성이 전부 불살라버렸다.「만경대」가분서의 대상이 된 것은 그 내용이 벌써 당시의 우상화의 수준에 훨씬 못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①평전 33면 ②평전 389면
  • 끽연/중고생 45.4%가 경험

    ◎「청소년대화의 광장」,서울시내 695명대상 실태조사/고3 남학생 61%­여학생도 6%나/23%는 골초… “기분전환” 이유 많아/83%가 “끊고 싶다”… 학교·가정 지속적 지도 필요 서울의 중고등학생 10명중 4∼5명은 흡연경험이 있고 2명정도는 현재 담배를 피우고 있어 학교와 가정에서 청소년흡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청소년대화의 광장(원장 박성수)이 최근 서울시내 중·고등학생 6백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과 흡연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학생의 45.4%가 담배를 피워본 경험이 있으며 요즘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학생이 23.4%에 달했다. 그러나 청소년흡연에 대한 인식을 보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학생이니까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35.1%) 「건강에 나쁘다는데 피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16.4%) 「흡연 충동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다」(8.9%) 「학생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8.2%) 등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부정적인 생각을 보였다. 흡연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보면 이들은 대체적으로(58.7%) 중학생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남학생이(39.8%) 여학생보다(5.9%) 그리고 학년이 높을수록(남자중3 7.5%,고1 21.6%,고2 54.5%,고3 61.0%) 흡연자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담배를 구입하는 곳에 대해서는 56%가 담배가게를 꼽았고 그 다음이 담배 자판기(11.7%)로 나타났으며 흡연 계기로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가 46.7%,「호기심으로」가 35.2%로 나타났다. 또 학교에서 친구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43.7%인 반면 「전면적 허용」(6.2%) 「일정한 장소에서 피우도록 허용」(31.9%) 「묵인하는 것이 좋다」(10.8%) 등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48.9%로 더 많았다. 이와함께 흡연이유로는 「기분전환」(37.7%)과 「정신적인 안정」(15.6%)을 들었으며 71%가 흡연의 폐해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폐암이 걸리더라도 계속 피우겠다고 대답한 학생도 35%나 됐다. 그러나 흡연 학생들은 대부분(82.9%) 건강에 나쁘기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싶다고 했으며학교에서 금연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경우 과반수(59%)가 「참여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 중학생 88% “외설만화 본다”/서점·가판대통해 급속 확산

    ◎성폭행·살인 등 내용… 정서 크게 해쳐/서울YWCA 조사 성인용 저질·외설 주간만화가 범람하고 있는 가운데 중·고교생의 대다수가 매주 1권이상의 성인만화를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성인만화가 청소년층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시내서점과 학교주변·신문가판대등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1천5백∼2천원수준이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이들 만화에는 「청소년들에게 대여·판매해서는 안된다」는 문구가 표지에 적혀 있지만 판매과정에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어 저질주간만화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주간성인만화는 대부분 혐오스런 성폭행장면·살인장면에다 선정적인 대사로 가득차 있어 청소년에게 인명경시풍조의 조장은 물론 성범죄에 대한 불감증까지 낳을 우려마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관계전문가들은 성인용 주간만화의 무분별한 판매에 대한 적절한 규제는 물론 유통구조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서울 YWCA(대한기독교청년여성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주간 성인만화는 「주간만화」「매주만화」「천하만화」「만화선데이」「스트리트 파이터」등 20여종으로 나타났다. YWCA가 조사분석한 「천하만화」의 내용중 스트리트 파이터 연재물은 1호와 4호에 여자를 번갈아 폭행하는 장면이 있는 것을 비롯,노출적인 정사장면이 많고 목을 베 살인하는 장면에다 『생명의 존폐는 책임 안진다』는 폭력적이고 생명을 경시하는 대사 일색이라는 것이다. 또 D문화사는 영구보존용 일러스트판을 만들어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우편배달방식으로 판매까지 하고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 만화는 서울시내 3천여곳의 오락실에서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것인데다 이미 단행본으로 나와 있어 청소년층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울 YWCA가 시내 중·고교생 5백99명을 대상으로 실시,발표한 만화구독실태조사결과 중학생의 88%,고등학생의 78%가 매주 1권의 주간만화를 구독한다고 응답해 성인만화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를잘 말해주고 있다. 학생들은 이 조사에서 그림이 추하고(30·9%),내용이 선정적·퇴폐적이다(25·4%)고 말하면서도 재미있다(26·7%)고 대답했다. 이모군(17·S고3년)은 『심심해서 보게됐는데 내용이 선정적이어서 감춰놓고 본다』면서 『그러나 대입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만한 출구가 없고 교과서이외에는 읽을거리가 없어 자주 사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YWCA만화모니터모임 회원인 이상수교사(29·신창중)는 『폭력과 섹스이외에는 주제가 없는 성인만화에 어린청소년을 무방비상태로 노출시킨 것은 자라나는 학생들의 정서함양에 알맞은 환경을 마련하지 못한 학부모등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면서 『또한 우리의 윤리개념에 맞는 주제를 개발하지 못한 만화가들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 교복 마련못해 비관/중학생 목매 자살

    【부산】 가정형편이 어려워 교복을 맞춰입지 못한 중학생이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일 상오 7시쯤 부산시 사하구 괴정1동 1033 김막녀씨(48·여)집 작은방에서 김씨의 셋째아들 손용주군(14·S중 3년)이 넥타이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같은 학교 2학년 이용진군(13)이 발견했다.어머니 김씨에 따르면 손군은 지난 8월20일 서울 구의중학교에서 전학와 지난달 5일부터 겨울교복을 입어야 하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한달이 다 되도록 교복을 마련하지 못해 담임인 박모교사(52)로부터 꾸중을 들은뒤 이를 비관하며 2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 교육투자 GNP 5%로 확대/3당,교육정책 공약 제시

    ◎대학정원 자율화·중학의무교육 확대 민자·민주·국민 3당은 30일 교총주최 전국교육자대회에 대표 및 선거대책위원장을 참석시켜 격려사를 통해 대학입학정원제의 자율화 등을 공약했다. 민자당은 정원식 선대위원장은 이날 『94년부터의 새 입시제도 시행후 자율역량을 갖춘 대학부터 학생선발과 정원관리를 완전 자율화하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또 『전문대정원도 4∼5년안에 9만∼10만명정도를 증원토록하겠다』면서 『개방대·방송통신대의 정원증원과 학과신·증설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밖에 ▲현행 GNP(국민총생산)대비 3.6%인 교육재정비율을 5%로 확대,현수준 8조원에서 20조원으로 증액 ▲중학의묵육을 95년부터 전국시지역으로 확대 ▲영재교육확대를 위해 5세이하 아동 조기입학과 월반·유급제 도입 ▲인문고·실업고비율을 50대 50으로 조정 ▲독학학위 취득과정 확대 등을 공약했다. 민주당의 김대중대표는 교육투자를 GNP의 5% 이상으로 늘리고 국교 전면급식실시와 중학교 의무교육 전면실시 등을 교육정책 5대지침으로 제시했다. 김 대표는 또 『대학입학정원제를 철폐하고 졸업을 엄격히 하는 새로운 대입시제도를 강구하는 한편 학력보다 실력위주의 사회기풍을 진작시켜 임금과 승진에도 이같은 기풍이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당의 정주영대표도 『대학입학 정원제를 폐지하겠다』며 『각 대학이 교육시설·교수정원에 따라 입학정원을 완전자율로 증원할 수 있게 하고 엄격한 학년별 유급제와 졸업자격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학교 의무교육 및 국민학생·중학생 무료급식실시,기능인양성을 위한 전문실업학교를 집중육성하겠다』며 『이를 위한 교육투자예산은 정부의 토목·건축공사 발주과정에서의 부정을 없앰으로써 절감할 수 있는 2조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성폭행 피해자 고소취하 해도 가해자 상해죄로 처벌 가능”

    ◎인천지법 판결 【인천=김학준기자】 강간 피해자의 고소취하에 관계없이 가해자를 상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인천지법 형사합의부(재판장 박성철부장판사)는 28일 중학생인 의붓딸을 상습성폭행해온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진식피고인(42·상업·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박씨에게 상해죄를 적용,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비록 피해자측이 고소를 취하해 친고죄인 강간죄를 적용할수는 없더라도 박피고인이 피해자를 임신시켜 중절케 함으로써 신체적 손상을 입혔으므로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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