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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에 첫 노인요양시설 새달 개관

    서울 도심에 국내 최초로 간호대학이 운영하는 선진국형노인전문요양기관이 들어선다. 서울여자간호대학은 14일 노인성 만성질환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에게 전문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진국형 노인간호센터인 ‘실버 케어스’를 설립,다음달 문을 연다고 밝혔다. 실버 케어스는 치매 중풍 등 노년기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에게 24시간 전문 간호서비스,각종 재활치료,품격있는 생활 공간을 제공해 노인들이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노인전문요양시설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지상 4층,지하 1층 규모로 들어서는 이 시설은 간병인 등 비전문인의 간호 대신 전문화된 간호서비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노인 50명이 이용할 수 있으며 이용료는 보증금 1,500만원에 월 200만원. 김용수기자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2)삼천리사와 최정희

    ‘삼천리’사 김동환에게 찾아갔을 무렵의 최정희는 매우어려운 처지였다.“저쪽에서 인적 사항에 대해서 물어올 때어떻게 대답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더라도 처녀 행세를 하면서까지 직업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법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의 아내로서 임신까지 하고 있는 사실을,남을 속이기 위해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서영은,‘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櫓)로’)는 표현 그대로의 심경이었다.연보마다 틀리기에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최정희의 젊은 시절은 중앙보육학교 졸업 후 경남 함안유치원에 잠시 근무,곧 도일(1929),도쿄에서 유치원(三河)에 근무하면서 유치진·김동원이 주축이었던 ‘학생극예술좌’에참여,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김유영과의 사랑과 결혼으로 점철된다. 1907년 선산에서 태어난 김유영은 대구고교(현 경북고)에서 서울 보성고교로 전학,졸업(1925) 후 ‘조선영화예술협회’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 중 영화촬영소와 기술 견학을위해 1929년 도일,귀국하여 최정희와 결혼한 것은 1930년 3월 5일이었다.부부관계와 경제적 여건이 다 나빴던 최정희는 1931년 9월부터 ‘삼천리’사에 근무하면서 한국문단의귀염둥이로 부상했지만 그 운명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당장 아들 익조(益祚,1932.3.5∼1974.9.27)를 낳고자 근무 6개월만에 퇴사,출산 석 달 뒤 재입사,또 퇴사를 거듭하면서카프 제 2차 검거로 전주형무소 투옥(1934),조선일보 출판부를 비롯한 잡지사를 전전하다가 1938년에 ‘삼천리’에재입사했다. 최정희는 이 무렵의 참담했던 생활 속에서도 낙천성으로많은 문인들과 문학지의 기자라는 신분으로 폭넓은 교우관계를 가졌는데,역시 그 중심에는 파인 김동환이 위치한다. 아명이 삼룡(三龍)이었던 김동환은 ‘삼국지’의 패장(覇將) 유비(劉備)가 파촉(巴蜀)에서 대망을 이뤘다는 고사에서“인세(人世)의 고행이란 고행의 맨 밑바닥 길을 순교자와같은 걸음으로 묵묵히 파 들어가 보자”(‘독자 제현에 보내는 편지’)는 취의를 가진 ‘파인’을 아호로 삼았다.그는 고행자처럼 독학으로 자수성가,문화분야 뿐이 아니라 사회부의 명기자로 나도향·김팔봉과함께 이름을 떨치며 언론자유를 위한 철필(鐵筆)구락부,노동운동 현장 취재 등에투신했다.1929년 9월 12일∼10월 31일간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할 때 총독부는 공개적으로 기자들에게 2천5백원(당시 쌀 한가마에 13원이었다)이란 촌지(寸志)가 아닌 거지(巨志)를 분배했는데, 여기에다 도쿄 관광에 안 간대신 현금으로 챙긴 돈으로 파인은 ‘삼천리’를 창간했다. 아호 ‘파인’에 걸맞게 고행의 인생행로를 선택했던 그가홀연히 “파촉 정신은 이제는 싫어졌습니다”면서 “내 몸에 정열이 있으니,이 정열이 끄는 대로 자꾸자꾸 먼 곳으로훨훨 날고 싶습니다”(위와 같은 글)는 구실을 달아 ‘취공(鷲公)’으로 호를 바꾼 게 1937년,즉 중일전쟁이 나던 해정초였다. 이어 1939년 11월 10일 총독부령 제19호 민사령(民事令) 개정으로 촉발된 ‘창씨개명’ 때 김동환은 강릉김씨 문중이 결정한 가나에(金江)란 성 대신, 시로야마(白山靑樹, 태백·소백의 푸른나무란 뜻)로 정했는데 그 속내는 이해됨직하다.‘삼천리’는 사세가 어려워져 ‘삼천리문학’(1938년에 2집 발간)은 아예 정간했고,사업 확장을 위해 주식회사로의 전환을 시도(1940)했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정진석 ‘언론인 파인 김동환’).그런 와중에도 최정희에게 위로차 휴가를 줬을 테고,그녀는 내키지 않지만 석왕사(釋王寺)로 떠나,여관에서 파인에게 편지를 보낸 건 1939년인 것 같다.“피서라고 하오나 제 마음은 도무지 한가하지 못합니다.…종종 좋은 자연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앉아서 비오는 밖을 내다보는 일이 있습니다”는 구절은 최정희의 착잡한 심경이 표상된다.인정 후한 파인은 우선 최정희에게 두둑한 여비도 못 줘서 보내 놓고는 곧 돈을 마련해부치마고 약속했는데,“이렇게 비가 와서는 오래 못 있을것” 같기에 “부쳐 주신다던 것은 조금도 염려 말아 주십시오”,“금강산이랑 부전고원(赴戰高原)이랑 죄다 보기로했는데 틀린 것 같습니다”는 언급이 저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문맥으로 보면 예사롭지 않은 낌새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둘 사이가 밀착한 것 같지는 않는데,이런 미묘한 감정적인 교류는 1940년 12월 진주에서 파인이 최정희에게 보낸엽서에도 그대로 드러난다.“촉석루도 서장대도 논개사(論介祀)도 일순(一巡)하고 부윤(府尹·현 시장)의 안내로 지금 여사(旅舍)에 앉은 자리외다.옛 고적이 어떻게도 많고,또 마음을 흔드는지요”란 구절에 담고 싶었던 속마음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오른쪽에 남강을 끼고 왼쪽 촉석루가바라보이는 풍경은 비록 대일본제국이 만든 2전짜리 엽서일망정 망국의 한을 품기에 모자람이 없다. 더구나 파인의 발길은 단순한 소일이 아니었다.1939년 10월 29일 오전 10시40분 부민관(府民館·현 서울시의회 청사) 중강당에서 결성된 ‘조선문인협회’는 이듬해 12월 ‘총후(銃後)사상운동을 위한 전선(全鮮)순회강연회’를 열기로 했다.제1반(경부선)은 파인·유진오 등이 참가,부산(12월 8일),마산(9일),진주(10일),대구(11일),청주(12일),공주(13일)를 순회했고,제2반(호남선)은 정인섭·이헌구 등,제3반(경의선)은 백철·최재서 등,제4반(함경선)은 이효석·함대훈 등이 참여했다(임종국 ‘친일문학론’). 김동환의 시국강연은 여러 정황으로 볼때 선동적이기보다는 인정미에 초점을 맞춘 대중위무(慰撫) 형식이었다는 게정평이었지만,‘삼천리’를 ‘대동아(大東亞)’로 개제(1942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하는 등 잡지와 단체의 역할때문에 개인적인 미덕이 평가절하 당했다.이 무렵 파인은안서 김억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울에 빈 객사가 많으니 1인의 괴테,1인의 소크라테스가 나와서 우리 젊은이 갈길 가르쳐 좋을 때 아니리까.”(‘삼천리’ 1938.10)라는 내면적인 갈등을 담아내고 있는데,문학인의 내면적인 고뇌가 일상성으로부터의 일탈을 유도하는 예는 허다한지라 최정희와의관계도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의 점강법을 탄 것으로 보인다.이에 비하면 최정희는 매우 낙관적이다. 그녀는 처음 ‘삼천리’에 입사(1931)했을 때 사무실엔 전화기가 없어서 원고 청탁은 직접 방문이나 편지로 이뤄졌다고 회고하면서 몇몇 재미있는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다(‘조광·삼천리 시절’). 바로 이 말을 뒷받침 주는 글들이 박태원, 이태준의편지이다.둘 다 정동 ‘중앙방송국 최정희 선생’으로 보낸것인데, 1940년 5월부터 그녀는 방송국 제2방송부에서 일한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삼천리’원고청탁인가 하고 의아할 것이지만,여전히 파인의 일을 함께 했던 것으로보인다. 회고록에서 최정희는 이태준과의 관계를 맨 먼저꺼낸다. 최정희는 입사(1931) 직후 이태준에게 소설을 청탁(단편‘불우 선생’이 ‘삼천리’ 1932.4월호에 게재)한 이후 여러차례 편지 왕래가 있었음이 드러난다.이태준은 그녀에게 성북동 248번지(지금의 상허문학관.1933년 이곳으로 이사,1943년 철원 안협으로 낙향했다가 8·15후 상경하여 이듬해 여름 월북할 때까지 거주)에서 최정희에게 편지를 썼는데, “언문소설 꾸준히 쓰셔야 합니다”란 끝구절이 인상적이다. 최정희와 이태준의 친밀성을 알려주는 임옥인의 편지를 이대목에서 함께 읽는 게 좋을 듯하다. 그녀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주소가 세 가지로 나뉜다.‘신당동 304의 152’와,삼천리사,그리고 ‘동숭동 5-1’인데,맨 뒤의 것은 1949년 1월 20일∼1957년의 최정희 거주지이기에 해방 후 편지들이다.문제는 앞의 두 주소인데,여러 정황으로 볼 때 최정희가 방송국과 삼천리사 일을 동시에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또 “언젠가 원산여관(바로 파인에게 편지를 썼던)에서만나 뵈온 후 글이라곤 처음으로 올리게”되었다는 구절로봐서 이 편지가 1940년 4월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임옥인은 함북 길주 출신으로 나라여고사(奈良女高師,여자사범대학) 시절부터 습작을 하면서 ‘문장’지로 등단하고싶다고 보챘는데,최정희는 흔연히 이태준에게 소개해 줄 정도로 가까웠으며,그 효험도 있었던 것으로 편지에 드러난다.물론 이태준은 작품선정이 까다로워 고쳐 쓰게 했는데,특이한 것은 3회나 추천을 거치도록 등단 관문이 까다로웠다는 점이다.박태원과 최정희의 옥상 노래자랑 일화는 너무유명하다.하도 노래 잘 한다고 뽐내기에 내기를 먼저 신청한 쪽은 최정희였다.출근 시간에 맞춰 나타난 박태원과 옥상에 올라가 서로 노래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를 몇 시간,드디어 남자 쪽이 패배를 자인하여 다과점에서 푸딩을 샀다는회상기를 연상하면서 그의 편지를 읽으면 더 운치가 있을것이다. 박태원은 교북동에 살다가 바로 1940년 ‘돈암동 487-22’에다 대지를 사 집을 지어 이사했기에 미처 원고를 쓸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6·25때 월북,학창시절의 친구 정인택의 미망인과 재혼(1955),중풍으로 전신불수와 실명 사태(1977)에서 대작 ‘갑오농민전쟁’을 남긴 그는 한국의밀턴이란 칭송을 받을만 하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파인아들 김영식씨 공개 작고문인 서한의 의미

    *학국문학사 빈공간 메워줄 귀중한 자료””. 한국문학사는 흔히 ‘겨울언덕에 홀로 서 있는 나목(裸木)’으로 비유된다.작가들에 대한 작품론은 풍성한 편이지만,작가들이 활동한 시대와 작가들의 개인적 여건 등을 알 수있는 연구는 미흡하기 때문이다.이는 서류 등 자료를 소홀히 하는 경향에다,사생활에 관한 자료를 노출하기 꺼려 하는 풍토 탓이다. 최근 김영식씨가 공개한 문인 48명의 사신(私信) 214통은 한국문학사의 이같은 ‘빈 공간’을 메워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계와 문단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그동안 더러 문인들의 육필서한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수량이 적었다.아울러 특정문인에 한정된 것이어서 한국문단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반면 김영식씨가 내놓은 서한들은 수량도 방대하거니와 일제하 민족진영과 친일성향의 작가는 물론 해방후 월북작가 등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어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편지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오고간 것이 대부분이다. 김영식씨는 이달말 파인(巴人) 김동환 시인의탄생 100주년에 맞춰 기념행사를 갖기 위해 8년여전부터 각종 자료를모아왔다.이 편지는 자신이 소장해오던 것과 최정희 여사에서 태어난 이복형제들이 갖고 있던 것들이다. 김영식씨는 “문인들의 편지 속에서 선친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하고 반가움과 함께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면서 “가치있는 자료는 수요자,특히 연구자에게 자유롭게활용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편지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편지들은 첫 공개되는 것이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단교류기의 편린들로 당대의 문예사조,동호인관계,특정 문인의 개성,송수신자간의 내밀한 사연까지 고루 다루고 있다”면서 “이번에 밝힌 편지 말고도 60여통이더 있으나,관련자들 가운데 여럿이 생존해 있어 추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문인들의 사신은파인 김동환 시인이 부인 신원혜에게 보낸 32통을 제외하면,나머지 182통은 모두 문학사적 가치가 큰 ‘사료’들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주로 소설가 최정희 여사인데,이는 그가 당시 파인 김동환 시인이 운영하던 삼천리사의 기자로근무하면서 문인들에게 원고청탁 등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파인 김동환 시인의 편지가 적은 것은 1946년 12월 당시 파인 가족이 서울 종로구 적선동 183번지(현 정부세종로청사자리)에 살고 있을 때 집에 불이 나 각종 자료 등이 모두없어졌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에 대해 “우리 근대문학사 한 세기를 담아낸 기록”이라면서 “문인 몇 사람의 사신 차원을 넘어 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사료”라고 평가했다.임헌영씨는 또 “외국의 경우 문인들의 개인 전집에 작품은 물론 그가 주고받은 사신도 전부 수록하고 있다”면서“문인 인물연구는 물론 그동안 숨겨진 우리 문단사의 상당부분을 되살릴 수 있을 만한 자료”라고 말했다. 임헌영씨는 이 편지들은 ▲일제 때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KAPF)-비(非)카프계열 문인들의 교류 파악 ▲남북한의 주요 문인 망라 ▲파인에서부터 학생시인 박봉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 포함 ▲최정희-모윤숙-노천명 등 당시 여류문인의 인간적 관계와 사생활 이해 ▲김남천의 문학비평 소개 ▲김사량의 편지를 통한 재일조선인 문단의 활동상 파악 ▲문단과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육사의 문단 교류 등의 사실을 처음 또는 재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임헌영씨는 대한매일에 이 편지를 토대로 한 시리즈를 연재하기 위해 지난 한달여동안 기존 문단사와 비사 등을 확인하고 김영식씨로부터 가족사 등에 대해 청취했다. 정운현기자 jwh59@. ■파인 김동환·최정희는. 파인 김동환(1901∼1950년 납북후 사망 추정).그는 ‘국경의 밤’으로 우리 문학사에 굵은 획을 그은 작가이다.장편서사시와 민요시 창작을 주도했다.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하는 등 한때 계급문학에 관심을보였으나 주된 정조는 민족정신이었다.고전에 몰두해 가사문학 등 전통문학과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민요시를 왕성하게 발표했으며,1929년에는 종합 대중잡지 ‘삼천리’를 창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열한 현실 의식의 부족으로 30년대 말부터 친일문학의 늪에 빠져들었고,1941년8월 친일단체를 망라한 ‘임전대책협의회’의 발족에 앞장서기도 했다.1931년쯤 ‘삼천리’에 입사한 최정희와의 ‘관계’가 1942년에 알려져화제가 된 뒤 43년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소설가 최정희는 1931년 ‘정당한 스파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주로 일제하 지식인 여성의 고통을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인간문제’로 유명한 당대의 여류소설가 강경애가 민족의 수난과 정면대결을 시도한 작가였다면 최정희는 여성의 문제에 일찍 눈을 뜬 작가였다.‘지맥’‘인맥’‘천맥’ 등의 대표작에서 신여성의 진보적 의식이 당대의경제적 사회적 관습에 어떻게 짓눌리는가를 주로 다뤘다. 이종수기자 vielee@. ■편지 주인공들. 파인 김동환 시인과 최정희 여사가 보관해오던 편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우리 근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거목’들이다. 이들 중에는 국권상실기에 문학을 통해 일제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던 사람도,친일성향을 띠었던 사람들도 있다. 또한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사람들도 제법 많다.이는 우리 역사의굴곡을 여실히 보여준다.이들은 편지에서 생활의 애환을 털어놓거나,문학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모습을 보여주는 등 문인의 각종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우선 편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내에 비교적 자료가 적은 월북시인 및 작가들의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이들에대한 문학적 연구는 지난 90년대초 월북문인 해금조치로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사료가 적은 탓에,학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지를 남긴 월북 시인 및 작가는 박태원·한설야·이태준·김남천·이현욱·안회남·박찬모·이용악·김사량 등이다.박태원은 말년에 중풍으로 전신불수,실명상태에서 ‘갑오농민전쟁’을 탈고해 ‘한국의 밀턴’으로 불린다.한설야는 북한에서 교육문화상·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을,김남천·이태준은 각각 문학가 단체에서 요직을 지냈다.또 이현욱은 임화의 두번째 부인으로,지하련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편지를 남긴 사람들 가운데는 친일성향의 작품이나 글을 남겼거나,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인사들도 적지 않다.김동환을 비롯해 백철·이헌구·정인택·박종화·유진오·정비석·노천명·모윤숙 등이 그들이다.박종화는 학병권유 글을 썼고,노천명은 일제의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시를 썼다. 다른 여러 인사들도 친일성향의 글을 몇 편씩 남겼다.그러나 ‘민족시인’ 이육사의 엽서 1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최근까지 활동했던 소설가 김동리(95년 작고)와 황순원(2000년 작고)의 편지도 포함돼 있다.또 말년까지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한 설창수 시인의 편지도 있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의 항일운동 공로로 지난 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특히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 최정희인지라 같은 여성인 모윤숙(22통),노천명(21통)등과 나눈 편지가 많다.이들 3명은 당시 문단에서 ‘쌈바가라스’(‘삼총사’의 일본식 표현)로 불릴 만큼 정이 도타웠다.편지에는 이들의 사생활과 개인적 친분관계가 숨김없이 드러나 자못 흥미를 끈다. 정운현기자
  • [건강칼럼] 우울증(2)

    우울증은 매우 흔한 병이지만 그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물학적 원인들과 심리적 원인,사회적 원인,신체적 원인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풍·뇌종양·당뇨·신장 질환 등이 생기면 우울증이 생길 수 있고,가족 중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증상이나타날 위험성이 보통사람보다 두세배쯤 높다는 사실 등은잘 알려져 있다. 이는 우울증이 생물학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증거들이다. 또한 평소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남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완벽주의자,히스테리,집착이 강한 사람,의존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대인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도 우울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생각되고 있는데 사별·이혼·실직·학업의 실패 등과 같이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울증이 생길 위험이 높다. 우울증 환자의 약 절반은 6개월 이내,75%는 2년 이내에회복된다. 그러나 재발도 매우 흔해서 그 비율이 50%에 이르며 특히 3번 이상 재발할 경우 그 다음 재발의 위험은 90%나된다. 재발이 반복될 경우 병의 기간이 길어지고 그정도가 깊어진다.이렇게 재발이 흔한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증상이 좀 호전되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약의 복용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로 나뉜다. 약물치료는 우울증을 빠르게 치료할 뿐 아니라 우울증의재발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환자들이 약의 부작용을 염려하지만 최근에 개발된 신약들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정신치료는 심리적 갈등, 부정적 사고방식,대인관계의 문제 등을 면담을 통해 치료하는 것이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더 심한 정신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제대로 받는 것이 중요하며 가족들의 도움도 필수적이다.가족들은 질병으로 인해 절망감에 빠져있는 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도록 권유해야 한다. △전우택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 중산층·서민 생활대책 내용/ 경로연금 연차적 상향

    정부가 19일 발표한 ‘중산층 육성 및 서민생활 향상대책’은 중산·서민층의 주거생활 안정 등을 꾀하면서 노인과장애인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새로 도입되는 제도와 분야별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임대주택조합제도=보통 무주택자들이 직장이나 지역에서자기 집을 소유하기 위해 주택조합에 들었다면 앞으로는 주택 소유 여부에 관계없이 임대사업을 하기 위해 조합을 만들겠다는 것이다.현행 주택조합은 조합원 1명당 1가구씩만돌아가게 돼있지만 신설되는 임대주택조합에 들면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주택을 분양받아 임대주택사업을 할 수 있게된다.올 하반기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면 가능해진다. ◆노인요양보험제도=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자에게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식사,목욕,대·소변 수발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장기간 제공해주는 보험으로 고령사회에대비한 노인요양대책이다.일본의 경우 지난 96년 개호보험법을 제정하고 노인인구가 18%를 초과한 지난해 4월부터 시행했다.현재 우리의 노인인구는 전체인구의 7.4% 정도. 정부는 지난해부터 노인장기요양보호정책기획단을 구성,고령사회의 노인의료비 증가와 가정의 노인부양 기능 약화에대처하는 장기요양보호 종합대책을 마련중이다.장기요양보험의 형태로는 일본·독일과 같은 사회보험 방식과 조세 방식,민간보험 방식 등이 있다.우리 실정에 맞는 ‘한국형 장기요양보험’의 형태와 서비스 종류,제공방식,재원조달,시행시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장애아동 부양수당 신설=18세미만 1급 장애아동을 상시보호하는 보호자에게 1인당 월 4만5,000원을 지급하는 제도이다.예산만 확보되면 곧바로 실시할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대책=2003년까지 3만개(내년까지1만개 이상) 중소기업의 IT(정보기술)화 등 전통제조업의고부가가치화를 차질없이 추진한다.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을 위해 하반기 중 고양과 용인에 소프트웨어지원센터 두곳을 개설하고 소프트웨어타운 세 곳을 추가 조성한다.훈련비 지급을 전산화하는 등 훈련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직업훈련카드제’를 올해 중 전국으로 확대한다. ◆사회보장체계 강화=주민등록 미취득자라도 실제 거주지가 명확한 경우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한다.비정규직 근로자를 복지사업 수혜 대상에 포함시키고 내년 1월부터는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신용보증제도를 도입한다. 내년부터 저소득층 노인의 경로연금 지급액을 단계적으로상향 조정한다. 김성수기자 sskim@
  • 중풍,뇌세포 이식 수술 中서 세계 첫 성공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에서 자신의 뇌신경간세포를이식하는 방법으로 뇌졸중(일명 중풍) 등 뇌혈관계 질환을완벽하게 치료하는 수술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공했다.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학 부속 화산(華山)의원의 신경외과 주젠훙(朱劍虹) 박사팀은 최근 뇌손상을 입은 성인 여성환자의 뇌신경간세포를 끄집어내 이를 정상적으로 배양·증식시켜 다시 뇌속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북경청년보(北京靑年報)가 18일 보도했다. 뇌신경간세포는 뇌신경세포 가운데 중추 역할을 하는 세포.이 세포가 손상될 경우 뇌졸중 등 뇌혈관계 질환이 발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주 박사팀은 뇌속에 10㎝ 가량의 상처를 입은 40대 여성환자의 뇌조직에서 뇌신경간세포를 끄집어내 세척한 뒤 염색체를 분리,체외에서 이 간세포를 정상적으로 배양했다.이어 정상화된 뇌신경간세포를 체외에서 지속적으로 증식·분화시킨 뒤 환자의 뇌속에 500만개의 뇌신경간세포를 다시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khkim@
  • 부음/ 탈북자 김경호씨

    96년 12월 17명의 대가족을 데리고 남한에 온 김경호씨(66)가 10일 지병인 중풍으로 별세했다.김씨는 함북 회령군 영예군인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중 아내 최현실씨(62) 등일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남한으로 왔다.유해는 서울 송파구 강동성심병원에 안치돼 있으며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용미리 서울시립공원묘지에 있는 탈북자 전용묘역이다.유족으로는 미망인 최씨와 2남4녀가 있다.
  • “노모 돌보지 않은 아들 물려받은 땅 돌려주라”

    봉양을 조건으로 아들에게 땅을 줬던 노모가 아들이 봉양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내 승소했다. 서울지법 민사항소1부(부장 李東明)는 22일 “봉양 등의 조건으로 땅을 물려줬는데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K씨(65·여)가 아들 M씨(39)를 상대로 낸 소유권 말소등기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아들에게 땅을 물려준 것은부양 등을 조건으로 하는 증여 행위이기 때문에 피고가 의무를 저버렸다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K씨는 지난 98년 중풍이 들자 둘째아들 M씨에게 “간병과봉양을 해달라”며 서울 용산에 있는 땅을 넘겨줬으나 아들이 땅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한 다음부터 자신을 냉대하자 땅을 되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조태성기자
  • 北서 널리 이용되는 민간요법

    홍수,가뭄 등 자연재해의 영향으로 북한 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93년 73.2세에서 99년 66.8세로 6년사이에 6.4년이나단축됐다는 보고서가 지난 15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제출됐다.특히 95년부터 98년까지 4년간 계속된 식량난으로 22만명이나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식량난에다 열악한 북한의 보건·의료체계에 따른 어쩔 수없는 결과라는 게 탈북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북한 주민들은 질병에 걸렸을 때 의약품의 태부족,낙후된 의료장비등으로 인해 현대의학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채 예로부터전해오는 민간요법에 크게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신문·방송·잡지 등은 60년대 이후 4만6,000여건의 민간요법을 발굴,정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북한 주민들이 많이 활용하는 대표적인 민간요법을 간추린다. ■노화방지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 ‘천리마’는 지난 1월호에 ‘노화를 막는 10가지 방법’을 소개했다.가족이나 벗들과 적극적으로 교제하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고,다른 사람을 많이 도와주여야 한다는 대목이 흥미롭다.하는일 없이 한가하게 보내지 말고 신문과 책,잡지를 많이 보는등 마음가짐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감기 생강을 달인 물을 한사발 마시고 한잠 자고 나면 몸이 거뜬해지고 감기증상이 가신다.말린 귤껍질 10g을 2홉의물에 넣고 절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달여 식사 30분 전에 마셔도 즉시 효력이 나타난다. 솜에 식초를 묻혀 직접 코 안에 넣어도 금방 낫는다.식초50g,또는 식초 원액을 물과 1대8의 비율로 섞은뒤 끓여 먹으면 효과가 크다. ■피부 습진 잘 여문 큼직한 감자를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겨 짓이긴 다음 습진이 난 곳에 붙이고 붕대로 감싼다.7일간 하루 3차례 갈아 붙인다.피부가 갈라 터졌을 때는 푹 삶아 찧은 감자 한개를 바셀린과 버무린뒤 하루 1∼3차례 발라준다. ■메스꺼움 감자즙 한잔에 생강즙과 귤즙을 약간씩 섞어 하루 3차례,이틀 정도 빈속에 먹는다. ■눈 관련 질환 백내장이나 녹내장,안구출혈 등에는 잉어쓸개로 만든 건강식품이 특효약이다. ■변비 배춧잎의 푸른 부분 100g을 잘게 썰어서 즙을 낸뒤하루 한차례 식사 전에 먹는다.섬유질이 많은 옥수수도 위장운동에 자극을 주며,대변 배설을 촉진한다. ■발목 타박상 타박으로 발목이 부었을때 무를 채쳐 즙을짜 찜질하면 하룻밤 사이에 부은 부위가 내린다. ■식중독 녹두,도토리 등을 날 것으로 갈아 마시거나 감자전분을 풀어 마신다. ■질병 예방에 좋은 음식 칼슘이 풍부한 감자를 매주 평균5∼6개씩 먹으면 중풍에 걸릴 위험이 40% 줄어든다.데운 사과는 몸안의 콜레스테롤을 제거,동맥경화증이나 고콜레스테롤 증상을 예방한다.콩나물은 대장암 예방에 효과가 있고,강냉이 기름은 고혈압과 관상동맥성 심장병을 예방한다. 박찬구기자
  • 농산물 인터넷 ‘뻥튀기 홍보’

    농산물 판매를 위해 개설된 인터넷 홈페이지의 홍보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농산물이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의약품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과대광고가 난무하고 있어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최근 일선 자치단체에 보낸 공문을통해 농산물을 유통하기 위해 개설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농산물이 의약품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효능 부분은 삭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과의 경우 주산지인 충청도와 경기도에 개설된 홈페이지 대부분에는 변비를 예방하고 설사를 치료하며 동맥경화와 고혈압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사과라는 문구를 집어넣고 있다. 포도 역시 동맥경화와 중풍·뇌졸중을 예방하고 각종 장(腸)질환을 치료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고 홍보되고 있다.이밖에 채소나 축산물을 위한 홈페이지에도 각종 질병에 대한 치료효과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식약청은 농산물을 홍보하는데 고혈압 동맥경화비만 변비 등 질병의 명칭이 들어가고 이들 질병에 치유의 효과가 있다고 밝히는 것은 약사법과 식품위생법상 과대광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식약청 관계자는 “인터넷의급속한 보급을 예측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하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식품을 의약품처럼 묘사하는것에 대해서는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식약청의 입장에 대해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인터넷 홈페이지를 최근 개설한 경기도 평택 배 재배농민 김모씨(47)는 “단순히 ‘몸에 좋다’는 말로만 어떻게 소비자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겠느냐”며 “검증된 효능은 인터넷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주장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北노모에 보낸 이후성翁의 애끊는 서신

    “통일이 되면 어머니를 꼭 모시러 갑니다.꼭,꼭 살아만계셔주십시오.사랑합니다 어머님!” 남북한 1차 서신 교환 편에 북쪽에 있는 93세 어머니께 고향과 가족을 그리는 애끊는 사연을 띄운 이후성(李厚成·75)씨는 15일 TV 뉴스를 통해 판문점에서 편지가 담긴 행낭이교환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엉엉 울었다. 이씨는 지난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 때 휠체어에 중풍으로불편한 몸을 싣고 평양에 가 어머니 장오목(張五木), 부인김선녀(金仙女·73),아들 인수(仁洙·56),막내 여동생 순금씨(56) 등을 만난데 이어 1차 서신 교환자로도 뽑히는 행운을 안았다. 며느리 박현옥(朴賢玉·34)씨가 받아쓴 편지에는 1·4후퇴 때 헤어진 가족과 고향인 황해도 평산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어머님,남쪽의 산과 들은 봄을 맞이하고자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그 곳 역시 봄맞이에 분주하겠지요.어머님을 뵈옵고 지금까지 꿈이런가 하고 너무 기쁜 나머지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의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씨는 상봉 때 치매로 의식이 희미한 아흔셋 되신 노모가“인수 아버지 왔다”는 소리에 “정말? 인수 애비가 왔어?어디 보자”하고 10년 만에 말문을 열었던 기적 같은 일을되새기면서 눈을 꼭 감았다. 이씨는 “일부러 고향과 가까운 파주에 자리잡고 통일이되면 가족들을 데려오려고 집도 2층으로 크게 지었다”면서“적십자사로 편지를 부친 뒤 답장이 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전영우기자 anselmus@
  • [대한광장] 재활병원 너무 부족하다

    ‘나의 왼발’이라는 제목의 명화가 있다.지체 가운데 오직왼발만이 자유로운 한 영국인의 재활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영화의 장면 중에 주인공이 재활의학 전문의에게서 치료받는모습이 나온다.처음에 주인공 크리스티는 재활치료를 거부하며 전문의를 향해 “꺼져!”라고 외친다. 그런데 그 발음이정확하지 못하다.재활의는 크리스티에게 외친다.“내가 당신에게 ‘꺼져!’라는 그 말 한마디만이라도 정확하게 발음하도록 해주고 떠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재활의학이다.제 힘으로 또렷하게 발음을 못하는 장애인을 거듭 애정으로 훈련시켜,해독이 가능한 발음으로 교정시켜 주는 것,이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환자가 의사와 간호사·물리치료사·가족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기 연습을 한다.일주일 전에는 막대기를 짚고 겨우 설 수 있었던 그 환자가 막대기 없이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러 사람들의 손에 땀이 고인다.드디어 그 환자가 완전히 두발로 서는 데에 성공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터지는 큰 박수. 이것이 재활의학이다. 자기 입으로 제대로 의사표현이 불가능하던 사람이,어눌하지만 의사표현이 가능해지는 일,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수 없던 사람이 혼자서도 식사가 가능해지는 일,혼자서는 돌아누울 힘도 없어 욕창방지를 위해 보호자까지 잠 못 자게 하다가,최소한 누운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누울 수 있게 되는 것,이거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통상적인 의료가 그게 그것 아니냐며,장애인이나 중풍노인의 그 절박한 고통을 외면해 온 반면에,재활의학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구조된 생명을 살 가치가 있는 생명으로.” 이것이 재활의학의 철학이다.의학의 발달이 장애인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의료기술의 발달로 이제 인간의 생명은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구조 받는다.그 다음이 문제인 것이다.인간이 인간다운것은 자유·자립에 있거늘, 살려놓고 지옥같은 생활 속에 방치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죽도록 버려둠이 옳지 아니한가? 라고 장애인은 외친다. 사고를 당한 환자,뇌성마비 장애인,뇌졸중노인은 간절하게도 재활치료를원하건만,우리나라에는 이들을 만족시켜줄 재활병원이 너무 부족하고 재활의학 전문의가 너무 부족하다. 서울대학병원에조차 재활병동은 따로 없다.가까운 일본이나미국과 비교하면 너무나 후진적이다. 의사 중에서도 재활의학이 무슨 기능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다.지방으로 내려오면,사정은 더욱 심각하다.재활병동이 따로 설치된 국립재활원,연세재활병원에는 만성적으로 대기환자가 몇달씩 기다린다. 재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애의 조기발견과 조기치료인데,우리네 상황은 조기치료 시기를 놓쳐 만들지 않아도될 장애인만 자꾸 양산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소위 장애인 재활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있다.사회연대책임의 이념을 반영하여 장애인을 고용하지 아니하는 사업주로부터 고용부담금을 징수하여 그 기금으로 각종 장애인 고용지원 사업을 한다.이미일산 대전 부산에 장애인직업전문학교를 설립하여 장애인직업교육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취업이전에고쳐주는 것이다.제발 치료에 조금 더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장애인의 신체기능이 향상되고 건강을유지하는 것은 직업교육과 취업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는 현재 대구와 광주에도 추가로 직업전문학교 설립을 계획중이다.나는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재활병원 설립으로 방향을 바꾸기를 희망한다.직업전문학교의내실있는 운영을 위해서는 계속 추가예산이 요망되지만,재활병원은 수익성도 기대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장애인을 돕겠다는 기관이라면 장애인 입장에서,그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은수 변호사
  • 3차 이산상봉/ 이모저모

    남북한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은 26일 서울과 평양에서반세기 만에 감격적인 혈육 상봉을 했다. 곱던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검은 머리가 하얗게 세 반백이됐어도 이산가족들은 피붙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헤어짐을강요당한 분단의 역사에 대한 원망과 만남의 기쁨이 뒤섞여눈물바다를 이뤘다. ■ 북측 방문단과 서울 표정. ■집단 상봉 “어머니,불효자식이 50년만에야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애비 노릇도 못한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다오” 오후 4시부터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단체상봉은 이산가족의 한을 한순간에 녹였다. 원산 경제대학 교수인 조원영(68)씨는 남측 어머니 김서운(87)씨가 “나이가 들었는데도 머리가 검구나”라며 머리를쓰다듬자 “하얀 머리로 오면 어머니 기분이 상할 것 같아일부러 젊게 하고 왔다”고 말해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남의 어머니 어문례(90)씨를 만난 북의 리승용(69)씨는 큰소리로 “엄마,나 건강하지”라며 ‘재롱’을 피며 반세기의간격을 좁히려 애를 썼다.김풍기(72)씨의 남측 가족들은 73년과 84년 각각사망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정을 놓고 대화를 나눠 주위를 숙연케 했다. ■기록에 애쓰는 이산가족 1,2차 상봉과 달리 남북 가족들은 가족 목소리와 상봉 순간을 담기 위해 녹음기와 캠코더,즉석 사진기까지 동원해 재회의 기쁨을 기록했다. ■휠체어 상봉 중풍과 병마도 반세기만의 만남을 막지 못했다.휠체어에 의지해 충남 부여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온 강항구(80·충남 부여)씨는 북의 동생 서구(69)씨를 만났다.중풍으로 말못하는 그는 준비한 꽃다발을 동생에게 힘겹게 건네며 눈시울을 적셨다.어머니 모기술(84)씨를 만난 북측 최경석(67)씨는 “어머니,저 만났으니 오늘부터 식사 많이 하시고 건강하세요”라며 동생들과 함께 휠체어에 탄 어머니 주위를 돌면서 북한 노래 ‘사향가’를 불러 기쁨을 대신했다. ■ 남측 방문단과 평양 표정. ■집단상봉 남측 이산가족은 오후 4시부터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상봉을 시작했다. 최고령자인 이제배(94)씨는 북에 두고 온 아내 김복여(79)씨와 아들 창환(63),딸 명실(56),순옥(53)씨를 만나 “이제와서 미안하다”고 울먹였고 임재화(85)씨는 1·4후퇴 때 헤어진 큰딸 효선(62)씨 등 4남매를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말자”며 끌어 안았다.치매 증세의 손사정(90)씨와 중풍을앓고 있는 이후성(84)씨 등 거동이 불편한 방북단 4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리운 가족들과 상봉했다. 51년 헤어진 남편 이기천(76·전남 나주)씨를 만난 림보비(71)씨는 “가만히 앉아서 찬찬히 뜯어보니까 남편인 줄 알아보겠다”며 한동안 남편 얼굴만을 바라보며 ‘잃어버린 세월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환영 만찬 이날 저녁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선 남북 모두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강조했다. 장재언 위원장 등 북적 관계자들은 환담 도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남한에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사람들이 있느냐”며 회고록을 둘러싼 남한 내부의 논란을적극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평양 공동취재단·최여경 이송하기자 kid@
  • 북측 방남단의 면면

    북측은 3차 이산가족 방남단에 2차 방문단 후보에 들었으나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던 99명을 포함시켰다. 지난해 1차 명단에 올랐으나 탈락했던 72명이 2차 때 온 것보다 많다.후보명단에서 탈락하면 생사·주소확인을 하는 데 그치고 새로뽑힌 사람을 보내는 남측과는 완전히 다르다. ◆방남단 면면 북측 방문단 중 유명 인사는 김수조(69) 피바다가극단 단장과 작곡가인 정두명씨(67) 정도다.성공한 월북자 대다수가 1·2차 방문단 교환 때 다녀가 이번 3차 방문단은 평범한 중류층 중심으로 이뤄진 것같다. ◆서울 종로구 출신인 김단장은 지난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 5·1경기장에서 관람한 대규모 집단체조(매스게임)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연출한인물이다.‘공화국 영웅’‘인민예술인’ 칭호를 받은 그는조카 복겸씨(53) 등을 만난다. ◆서울 마포구 출신인 정두명씨는 ‘공훈예술가’로 경기중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나면서 가족과 헤어졌다.그가 취주악으로 편곡한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94년 7월 김일성(金日成) 주석영결식장에서 연주되면서 유명해졌다.남측에동생 두환(62)·두호씨(55) 등이 있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정지용(鄭芝溶) 시인의 아들 구인(求寅·67)씨도 이번에 서울을 방문한다.구인씨는 2차 후보자명단에 포함됐다 최종명단에서 탈락했다.당시 아버지의 소식을 물어와 정시인의 행적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냈다.남한에형 구관(求寬·73),여동생 구원(求苑·66)씨가 있다. ◆평양을 방문할 남측 방문단 중에는 어머니 강오옥씨(93)의생존을 확인한 이후성씨(76)가 눈에 띈다. 유일하게 부모 상봉의 기회를 얻었지만 북측은 강씨가 운신을 못한다고 알려왔다.이씨 자신도 9년 전부터 앓아온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 상봉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방문단 특징 연령별로 보면 북측은 60∼70대가 95명으로대다수를 이루고 80대는 5명에 불과하다.반면 남측은 80세이상이 40명,70대가 60명으로 고령자 중심으로 이뤄졌다. 전경하기자 lark3@
  • “건망증 퇴치약 어디 없나요”

    주부 김모씨(39·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최근 열린 여고동창회의 기억이 아직도 찜찜하다.김씨는 지난번 모임때 동창생들의 옷차림에 기가 꺽여 애써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갔다.자기가 봐도 멋진 정장이었다.반지,목걸이를 고르는데만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치장에 완벽을 기했다. 그러나 친구로부터 “얘,너 머리 손질안했니”라는 지적을 받고는“아차,그걸 빠뜨렸구나.내가 왜이러지”하고는 낙담했다. 회사원 Y씨(43)도 건망증이 보통 심한 게 아니다.얼마전 같은 부서사람들과 회식을 하고난 뒤 귀가해서야 식당에 휴대폰과 가방을 놓고온 사실을 알았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 찾았지만 Y씨는 이같은 일이종종 발생해 걱정스럽기만 하다. 각 병의원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요즘 건망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한다. 건망증이 있는 사람들은 전화번호나 물건 등을 기억하지 못하거나친구와 만날 약속 등을 깜박잊을 경우 이를 나이나 바쁜 생활 탓으로돌린다.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원인 한림의대강남성심병원 이중서 교수(정신과)는 “기억능력은10대 후반∼20대 초반에 최고에 달한 뒤 점차 쇠퇴해,40∼50대가 되면 기억력 저하가 두드러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건망증은 복잡하고 바쁜 생활에 시달리거나 심리적 갈등이심한 경우에 곧잘 발생한다”면서 “완벽하고 꼼꼼한 성격에 건망증이 잘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연세의대 전우택 교수(정신과)는 “건망증은 유전과는 무관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지적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에게서 많이나타난다”고 밝혔다. 전교수는 “특히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은 뇌세포의 피로를 촉진시켜 건망증을 증가시킨다”면서 “우울,초조 등의 심리적인 요인도지각력을 떨어뜨려 건망증을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예방 및 퇴치 건망증을 퇴치하려면 두뇌도 신체처럼 운동을 해야한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나덕렬 교수(신경과)는 “하루 1시간쯤 독서나 바둑,장기,컴퓨터 게임 등 두뇌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운동을하면 기억력 감퇴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지적인 자극을 가하면 뇌신경세포의 회로가 두꺼워지고 넓어져 뇌의 용량이 커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건망증이 심하다고 생각되면 메모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메모를 하는 동안 집중할 수 있으며 기억이 희미해질 때 메모를 보면 기억을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을 겹쳐 하지 않는 것이 건망증 예방을 위해 좋다.요리를 하면서 TV를 보고 전화를 하면서 물건을 정리하는 등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하면 집중력이 떨어져 기억활동에 방해가 된다. 을지병원 배희준 교수(신경과)는 “손발을 열심히 사용하는 것도 건망증을 퇴치할 수있는 좋은 방법”이라면서 “손가락 발가락의 말초신경이 자극되면 뇌신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중풍환자들이 물리치료 등을 통해 마비된 손발을 열심히 움직이는 것도 같은이치라고 그는 설명한다. 또 건망증 예방을 위해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반복훈련을통해 기억을 재저장해야 한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통해 두뇌활동에 좋은 뇌파의 ‘알파파’를 증가시켜도 건망증 예방에효과가있다.유연하고 긍정적인 사고도 뇌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킨다. 유상덕기자 youni@. *건망증은 치매 초기증상?. ‘아무 생각없이 전화기를 냉장고에 집어넣고,속옷차림에 코트를 입고 외출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증세들은 단순한 건망증인가.아니면 치매인가. 전문가들은 건망증은 단기기억장애나 뇌의 일시적 검색능력장애로보지만 치매는 단기기억뿐 아니라 기억력 전체가 심각하게 손상됨은물론 판단력과 언어능력,작업능력도 떨어진 것으로 진단한다. 뇌기능 영상사진을 찍어봐도 치매환자의 뇌세포는 상당히 죽어있는반면 건망증은 뇌손상이 없는 정상으로 나타난다.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증상만 보면 건망증이 있는 사람은 생활에 큰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이지만 치매의 경우 중증환자는 혼자옷을 입지 못하고 심한 환각 및 의심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치매 초기에 단기기억의 감퇴현상만 주로 나타나는 경우에는건망증과의 구분이 어렵다. 삼성서울병원의 나덕렬 교수(신경과)는 “특히 알콜중독 등으로 뇌세포활동에 일시적장애가 생겨 발생하는 건망증은 단어가 순간 떠오르지 않는 언어장애,시간·장소의 혼돈과 판단력 장애 등 치매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하다”면서 ”건망증이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치매로 진행될까봐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전한다. 유상덕기자
  • 운보 김기창화백 타계/ 운보의 생애·작품세계

    끝없는 실험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예술혼을 불살라온 한국화단의 거목.운보 김기창 화백이 영원히 화필을 놓았다.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세상, 그 침묵의 언어를 화폭에 옮겨온 60여년의 세월을 뒤로 한 채운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운보의 삶은 한 편의 휴먼 드라마다.1914년(호적상으론 1913년)서울종로구 운니동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운보는 승동보통학교에입학한 7세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후천성 청각장애가 됐다.어린시절 날마다 듣던 돈화문의 보초 교대 나팔소리도, 단성사 날라리 소리도 아득한 침묵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30년 신여성인 어머니 한윤명의 손에 이끌려 이당(以堂)김은호 문하에 들어가면서 그의 운명은 전기를 맞는다.입문 이튿날부터이당에게 수묵 농담법을 배운 운보는 그날 이후 47년동안 매일같이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운보는 입문 이듬해 18세에 ‘판상도무(板上跳舞)’란 널뛰기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약칭선전)에 입선, 일찍이 대가로서의 소질을 보였다.37년엔 선전에서 ‘고담(古談)’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아 입지를 확고히 했다. 운보가 진정 거장인 것은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조형정신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그는 전통주의와 현대적 조형실험을병행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다.그의 예술은 크게 10년을 주기로변모를 거듭했다.첫 시기는 이당 문하에서 전통화법을 공부한 때부터50년대 초반까지.전통 한국화의 평면구성에서 벗어나 입체구성을 시도한 ‘노점’‘복덕방’같은 수묵담채화와 ‘성화’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선보인 시기다.운보가 입체파의 선구적 작가로 나선 것이 바로이 때다. 60년대 들어선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세계를 추구했다.전통 가면극을 작품화한 과감한 동세(動勢)의 ‘탈춤’,흥겨운 악공들의 모습을 힘찬 필치로 그려낸 ‘아악의 리듬’등이 대표작이다.야생마의 움직임을 격정적인 구도로 담아낸 ‘군마도’(69년)는 운보 작품의 스케일을 유감없이 드러낸 작품.굵고 검은 윤곽선과 대담한 형태의 포착은 그의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백을 보여준다.이 시기는 또한 운보가 추상작품을집중적으로 그린 때이기도 하다.‘태고의 이미지’‘청자의 이미지’등이 그것.운보의 추상세계는 자연에의 통찰과 애정이 낳은 직관의 세계다. 운보 그림은 70년대 ‘청록산수’와 80년대 ‘바보산수’로 이어진다.‘청록산수’가 우리 산하에 깃든 충만한 생명력을 윤기흐르는 초록으로 표현했다면,‘바보산수’는 조선민화의 멋과 해학,여유 등이 녹아 있는 편안한 그림이다.특히 바보산수는 관념산수가 판친 18세기겸재 정선이 만들어낸 진경산수와 견줄만큼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평가된다.운보는 ‘엿장수’‘일장(日長)’‘오수(午睡)’‘비오는 날’‘행려(行旅)’‘호수’‘관폭(觀瀑)’‘십장생’‘장생도’‘바보화조’‘바보수렵’등 80여점의 바보화풍 그림을 불과 두달새에 그려내는 활화산같은 창작열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만년에 개척한 바보산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바보’란 무엇인가.그것은 천진함과 무위에 기초한 원초적인 순수의 세계요 무심의 세계다.바보라기보다는 차라리 현실의 굴레를 벗어난 천재성이 빛나는 세계라할 수 있다.운보는 평소 “바보와 천재는 너무 통하는것이 많아.종이 한장 차이야”라고 말하곤 했다.바보화풍은 운보의부인이자 동지인 우향(雨鄕)박래현(76년 작고)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기도 하다.90년대 들어 운보는 봉걸레를 이용한 ‘걸레그림’을 선보이는 등 또한차례 변신을 시도했다.그는 이 글씨추상을 ‘심상(心象)예술’이라 불렀다. 그러나 작품 경력에서 운보에게는 친일화가란 ‘업’이 따른다.‘님의 부르심을 받고서’‘노인’‘총후(銃後)병사’등의 삽화가 친일작품으로 꼽힌다.운보는 이를 솔직히 인정,“역사와 민족 앞에 사죄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운보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한 것은 박애행(博愛行)이다.농아복지에남달리 관심이 많은 운보는 세계스케치 여행 때면 으레 선진국의 농아복지시설을 둘러봤다.낙후된 국내 농아복지시설을 개선하고자 회장으로 있는 한국농아복지회를 국제농아연맹에 가입시킨 공은 전적으로그의 몫이다. 운보는 80년대 중반 외가가 있던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세웠다.그리고 그옆에나란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운보공방을 조성했다.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한 것이다. 예술과 장애인을 위한 거대한 삶은 그에게 ‘천연기념물’‘바보인간’이라는 호칭을 안겨줬다. 타계하기 전 운보는 다행히 작은 소원을 하나를 풀었다.북한에서 공훈화가로 활동중인 동생 기만(71)씨를 최근 병상에서 만난 것이다.패혈증과 고혈압으로 다리까지 부어오른 운보는 중풍으로 고생하는 동생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50년전 이념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진 형제의 상봉은 가족사의 차원을 넘어 예술가의 비극을 말해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백의민족의 정신을 들날리기 위해서라며 병상에서도 흰 고무신에 빨간 양말만을 고집한 운보.그는 화선(畵仙)이 되어 하늘로 갔지만 예술은 남아 넓직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봉사의 참뜻 느끼는 방학을…

    ‘나의 작은 봉사가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됩니다’ 서울 중랑구는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이 가족과 함께 복지관의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부모와 함께 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운영한다. 청소년들이 장애인과 무의탁 노인,노약자 등 어려운 이웃들의 수발을 드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해 ‘나의 작은 봉사가 그들에게는큰 기쁨’이라는 봉사활동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이를 위해 중랑구는 15일부터 중랑 노인종합복지관 등 관내 6개 복지관을 통해 봉사활동에 참여할 학부모와 중·고교생 10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하기로 했다. 이들을 각 복지관에 15∼20명 단위로 배치,장애인 현장학습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상보여드리기 사업’ 지원은 물론 빨래와 청소 등 다양한 도우미활동에 나서도록 할 계획이다. 청소년들에게 봉사활동의 필요성을 가르치기 위해 각 복지관별로 운영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다양화했다.원광 장애인복지관에서는 심리·언어·뇌졸중·자폐증치료 과정을,중랑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물리치료·재활운동·중풍·치매치료 및 관리과정을,면목사회복지관에서는 가정문제 및 취업알선 상담·교양교육과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중랑구는 이들이 성실하게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봉사활동 소감과 활동내용 등을 일지형식으로 기록하도록 해 다른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의 의미를 깨닫는 교재로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중랑구 관계자는 “갈수록 봉사활동에 참가하겠다는 청소년들이 늘어 봉사활동의 내실화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짰다”며 “모든 참가자들이 봉사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지속적으로 사회봉사에 나섰으면하는게 바람”이라고 말했다.문의 중랑자원봉사센터(02-490-3842∼3). 심재억기자 jeshim@
  • 칠순할머니 평생 가꾼땅 대학 기증

    남편과 사별한 뒤 60여년을 독신으로 살아온 70대 할머니가 손수 개간한 과수원과 임야 등 평생 모은 2억여원대의 재산을 경북 영주 동양대에 기증했다. 정위연(鄭僞蓮·78·영주시 풍기읍 성내4리)할머니는 스물살에 남편과 사별한 뒤 자식도 없이 홀로 60평생을 살면서 직접 개간한봉현면 오현리 일대 과수원 3,672평과 임야 9,525평 등 토지 1만3,197평(시가 2억원 상당)을 11일 동양대에 기증했다. 동양대는 오는 13일 학교에서 정 할머니와 학교 관계자,학생 등이참가한 가운데 장학금 기증식을 갖는다. 정 할머니는 “배운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농사일 밖에없지만 평생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왔다”면서 “보잘 것 없는 땅이지만 안 입고 안 먹으며 모은 재산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양대 관계자는 “할머니의 고귀한 뜻을 기리기 위해 기증받은 땅을 매각하지 않고 경작 등을 통해 거둔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정 할머니는이번에 기증한 땅 가운데3∼4평만 자신이 죽은 뒤 무덤으로 사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영주 김상화기자 shkim@
  • 이산가족 상봉 후유증 근본적 대책만이 해결책

    50년만에 혈육을 만난 2차 상봉가족들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떠나보낸 부모형제가 눈앞에 아른거려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등 심한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이산가족들과 전문가들은 1차 상봉때에도 나타났던 이같은 후유증을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단발적인 만남이 아닌 면회소 설치, 서신교류등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북녘의 오빠 권태성씨(88)를 만난 남녘의 누이 태운씨(85·여)는 “오빠를 본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으나 막상 만나고 나니 모든 사람이다 오빠 얼굴로 보인다”고 말했다.태운씨는 오빠를 만난 뒤 중풍이더 심해졌다. 북녘의 조카 조성명씨(65)를 만난 고모 조상교씨(86·여)는 “언제다시 볼지 기약도 없이 떠나보내고 나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걱정만앞선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카의 북쪽 주소를 적어놓긴 했지만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석씨(78)는 북녘의 동생 득씨(69)를 만난 뒤 “마치 꿈속에서 죽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서 “자주 소식이라도전할 수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하소연했다. 동생 성두원씨(70)를 만난 남녘의 누나 금원씨(76·여)는 “무사히잘 갔는지,고생스럽지는 않을지,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돼 시간이갈수록 심란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다. 신경과전문의 김정일씨(43)는 “50년 동안 기다리며 가슴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대상을 막상 만나게 되자 삶을 지탱해주던 힘을잃게 되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이산가족들은 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만남과 교류의폭을 넓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면서동시에 면회소 설치와 편지교환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밝혀 1,000만 이산가족들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박록삼 이송하기자 youngtan@
  • 2차 남북이산상봉/ 서울온 김히락씨 형님 사망소식에 통곡

    “형님,아,형님….왜 닷새를 못기다리셨나요.” 북에서 온 김히락씨(69)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울먹이며 더이상말을 잇지 못했다.히락씨의 형 주락씨(76·미국 뉴욕)는 지난 25일만리타향에서 동생 히락씨를 애타게 찾다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지난 95년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낙심했지만 형님이 살아 계신다 해서 만날 날을 손꼽아가며 기다렸는데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히락씨는 북받쳐오르는 슬픔에 여동생 귀연씨(67)와 조카 창모씨(47)등 피붙이들을 만난 기쁨은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김주락씨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입대한 것을 마지막으로 헤어진동생 히락씨(69)를 눈을 감기 전까지도 못잊어했다.전쟁이 끝난 뒤함께 군에 다녀왔던 동생의 친구들로부터 ‘히락이가 죽었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씨는 지난 85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에서 향수와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리던 김씨는 건강도 나빠졌고 지난해부터는 약간의 치매증상까지 보였다.그러던 지난 7월 1차 상봉대상 예비명단에 동생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김씨의 건강은 급속히 회복됐다.주변 사람들에게 동생의 옛이야기를 하고 선물을마련하며 귀국준비를 하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동생이1차상봉자에서 탈락하자 김씨의 건강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당시 김씨는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을 이제야 만나나 싶었는데,동생을 또 잃어야 해”라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김씨는 그뒤 숨지기 전 네달동안 치매와 중풍에 시달리면서도 눈만뜨면 ‘헛소리’로 동생을 찾았다.“동생을 만나야 되는데….짐싸.빨리 한국에 들어가야 돼.” 결국 꿈에도 그리던 동생이 지난 13일 2차 상봉자명단에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그러나 기쁨도 잠시.김씨는 정신을 회복한 듯했으나 결국 50년을 풀지 못한 한(恨)만 품은 채 눈을 감고 말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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