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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너 빅3 입국… 오늘 ‘꿈의 콘서트’

    ‘세계 3대 테너 초청 콘서트’를 하루 앞둔 21일 플라시도 도밍고,루치아노 파바로티,호세 카레라스 3인 모두 서울에 도착했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날 오후 5시30분 흰색 전용기편으로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난 도밍고는 10분 뒤 도착할 예정이었던 호세 카레라스,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나란히 귀빈실에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카레라스 일행을 실은 항공기도착이 1시간여 늦어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측은 이들의 입국을 환영하는 뜻으로 흰색 백합과 빨강색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으나 ‘테너 빅3’합동공연 주최측으로부터 ‘3명 모두 백합 알러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백합을 서둘러 흰색 장미로 바꿨다. ■몸무게 150㎏인 거구 파바로티가 잘 걷지도 못한다는 소식에 장애인용 전동차를 대기시켰다가 역시 몸집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취소하기도 했다.파바로티는귀빈실을 나서 수행비서의 어깨를 짚고 간신히 주차장으로이동, 서울 ××허 7777번 번호판을 단 에쿠스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그는 비만한 몸을 가리기 위해 흰색 중절모를 쓰고 목과오른쪽 어깨에 큼직한 스카프를 둘러 눈길을 모았다. ■동료들과 함께 인천공항 명예 홍보대사 위촉패를 받아든도밍고는 공항공사 강동석(姜東錫) 사장에게 “상공에서 내려다 본 공항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인상 깊었다”면서 “오늘은 약간 흐린 것 같은데 우기(雨期)가 언제냐”고 물어공연일 날씨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회색겨울의 패션포인트…빨·주·노·초 ‘벙거지’

    모자가 ‘떴다’.자칭 멋쟁이라면 올 겨울 모자 구입이 ‘필수’다. 이번에는 챙이 짧은 ‘등산 모자’형의 ‘벙거지’가 유행이다. 이화여대 앞이나 ‘동대문 패션’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벙거지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올 여름에는 끈달린 ‘탐험용 모자’와 ‘카우보이 모자’가 유행했고,겨울을 맞아 모자인기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10대 학생부터 30∼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자를 좋아한다. ■소재와 가격 소재는 니트와 직물 두 종류가 있지만,니트류가 단연우세하다. 각 의류 브랜드에서도 10대와 20대를 겨냥해 연두 빨강 보라 등 현란한 색깔이 눈에 확 뜨이는 니트 모자와 머플러,장갑을 세트로 내놓았다. 모자 전문업체인 ‘세모’의 황문하 영업부장은 “2만∼3만원 가격대의 니트 모자 생산이 늘었다”고 밝혔다. 시중에 나와있는 모자는 소재별로 다양하다. 100만원대를 호가하는여우털 등 모피류,20만∼40만원대의 짧은 양털과 토끼털로 가공한 정장용 모자,2만∼7만원대의 100% 울로 짠 니트·직물류가 있다.20만∼30만원대는 대부분 수입품이다. ■어떻게 코디할까 유행을 좇는 장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해도 감각적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칭찬해준다는 점.그러나 멋쟁이라면 결코 그래선 안된다.옷과 잘 어울리는 모자를 선택해야 한다. 탐스럽고 풍성한 느낌의 모피 모자는 모피 의류를 착용했을때 효과가최고다. 패션전문 인터넷 방송국 에프채널(www.fchannel.co.kr) 최진하씨는“올해 파스텔톤으로 염색한 모피를 덧댄 코트가 인기인 만큼,인조모피모자도 고려해볼만하다”고 조언한다. ‘벙거지’는 캐주얼·정장 차림 모두에 어울린다.단 전체적인 분위기를 맞춰야 한다.스포티한 정장이나 니트를 입었을 때는 털실로 엉성하게 짠 원색의 벙거지가 멋스럽다. 귀엽고 여성스런 정장차림에서 모직으로 짠 단색의 벙거지가 잘 어울린다.이때 챙의 앞부분을 살짝 위로 제껴주면 귀여운 느낌이 강조된다. 한편 지난 9월에 열린 ‘2001년 파리 봄·여름 콜렉션’에서중절모 등이 선보여 모자는 내년까지 세계적으로 유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소영기자 symun@
  • 鄭周永 중절모 300만원에 낙찰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쓰던 중절모가 300만원에 팔렸다. 한국지역사회교육협의회(회장 李相周)가 11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기금마련을 위해 가진 바자회에서 정 명예회장의 중절모가 경매를 통해 이같이 팔렸다.한 관계자는 “회원들이 소장했다 내놓은 12점의 물품 가운데 정 명예회장의 모자가 처음 20만원부터 출발해 300만원에 낙찰됐다”고 밝혔다.매입자는 충북 청주에 사는 50대로 평소 정 명예회장을 존경,소장하기 위해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모자는 정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통해방북할 때 쓰던 회색 중절모이다. 또 이날 경매물품 가운데 조각가 정관모씨의 나무조각이 300만원,미술가 김원숙씨의 40호짜리 묵화가 260만원,한국화가 이건걸씨의 산수화가 210만원,도예가 김기철씨의 작품이 100만원에 각각 팔렸다.총 경매대금 1,700만원은학교도서관과 좋은 가정가꾸기 사업에 쓰인다. 박선화기자 psh@
  • 鄭周永 회장 訪北­판문점 가는길

    ◎실향민 1,000여명 통일대교 환송/鄭 회장 “고향가서 기뻐… 돼지꿈 꿨다”/北送트럭 소요 기름값만 1,000여만원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6일 상오 8시15분 임진각을 떠나 환송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판문점으로 향했다. 뒤에는 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등 북한방문단 일해 7명이 탑승한 버스가 따랐다. 이어 소 500마리를 실은 트럭 50대가 줄을 지어 길이 900m의 통일대교를 가득 메웠다. 鄭 명예회장은 통일대교를 지나는 순간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고 트럭 운전사들도 손을 흔들며 통과했다. ○…이에 앞서 상오 8시쯤 통일대교 앞 도로에서 열린 환송 행사는 실향민과 시민 1,000여명,취재진 5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북5도민회와 한국근우회,재향군인회 등 많은 단체들이 버스를 전세내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근우회 회원 50여명은 ‘서산 우공(牛公)발걸음,민족번영 첫걸음’이라는 피켓과 무궁화 꽃을 흔들며 鄭 명예회장 일행을 환송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평화통일사 尹日善 스님(67)은 “소가 서산을 출발할 때부터 이곳에 나와 통일대교를 돌며 불공을 드렸다”면서 “북한으로 가서 병들거나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고 말했다. 상오 8시5분쯤 행사장에 도착한 鄭 명예회장 일행은 암소의 목에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소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는 새벽부터 직원 1,000여명이 나와 태극기와 적십자 깃발을 흔들며 鄭 명예회장 일행을 환송했다. 鄭 명예회장은 상오 6시50분쯤 鄭順永 성우그룹 명예회장과 鄭世永 현대자동차 명예회장, 鄭相永 KCC 명예회장, 鄭夢九 현대회장 등 8명과 함께 승용차 4대에 나눠타고 사옥을 출발했다. 이에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에 들러 방북증명서 확인과 휴대품 검사 등 간단한 절차를 밟은 뒤 자유로를 따라 ‘소떼’가 있는 임진각으로 향했다. ○…鄭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상오 6시10분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나서면서 “고향에 가서 기쁘다. 돼지 꿈을 꿨다”면서 즐거워했다. 베이지색외투에 흰색 중절모를 쓰고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검은색 다이너스티 승용차에 올랐으며 건강은 좋아 보였다. ○…이번 북송 트럭 50대의 운행에 들어간 경유는 100드럼(2만ℓ)으로 시가로 약 1,000여만원에 이른다고 현대정유가 발표. 이들 트럭은 서산농장에서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 집결지인 임진각까지 261㎞를 달린 뒤 강원도 통천 등 북한 지역으로 떠나기에 앞서 추가로 경유를 공급받았다. ◎鄭 회장 수행 홍일점 李恩奉씨/현대건설 비서실 과장/95년부터 鄭 회장 전담/訪北중 행사 사진촬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단 15명 가운데 李恩奉 과장(34)은 홍일점. 현대건설 비서실 소속으로 미혼이다. 李씨는 7박8일의 방북기간 동안 鄭 명예회장의 모든 공식 비공식 활동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 일을 한다. 李과장은 鄭 명예회장과는 별도로 15일 李益治 현대증권사장 등 일행과 함께 북경을 거쳐 북한 전세기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李과장은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으로 88년 현대그룹 홍보실에 입사한 뒤 그룹 행사 사진을 찍었다. 鄭 명예회장은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李씨의 사진을 골라 들고 “누가 찍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촬영기술을 인정받은 李씨는 이후 鄭 명예회장의 행사 때마다 전담하다시피 했다.
  • 마이클잭슨 극비 내한/무주리조트 투자협의

    미국의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18일 하오 2시48분 도쿄발 대한항공 702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잭슨은 경호원 3명과 한국계 미국인 변호사 1명 등 4명과 함께 출국장을 빠져나온뒤 공항 국제선 2청사 귀빈실 6호실에서 1시간여 동안 머물다 한국항공 헬기편으로 전북 무주에 도착,2박3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검은 안경에 중절모를 쓰고 얼굴을 가린 잭슨은 경호원들과 함께 공항을 빠져나갔다.그의 변호사는 잭슨의 방한목적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체 답변하지 않았다. 잭슨은 최근 쌍방울그룹이 자금난으로 부도위기에 몰려 있다는 소식을 듣고 쌍방울 소유의 무주리조트 어린이동산에 대한 투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내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참새 줄어 허수아비도 허전하다네(박갑천 칼럼)

    요즘 허수아비는 해지지도 않은 양복을 입었다.더러는 머리에 중절모 눈엔 안경을 걸치기도 한 몸맨두리.그러니까 심청이 치마저고리같이 누덕누덕 덕지덕지 기운 한복으로 들피지고 꾀죄죄했던 ‘허수할아버지’시대의 ‘가난’에서는 벗어났다는 말이다. 장유는 〈계곡만필〉에서 〈시경〉에 나오는 바 상호(되샛과에 딸린 콩새)가 곡식 먹는 것에 빗대면서 군자도 세속을 따라 변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한다.군자가 그러할 때 하물며 허수아비겠는가.그렇긴 해도 도깨비 짝꿍같이 외발로 서있는 점만은 예그대로.다만 걸태질한 큰도둑집 개가 도둑을 보고도 짖지 않듯이 허수아비 머리위에도 참새가 앉아 짹짹거리게 된 세상이다. “나는 돈의 허수아비/나는 권력의 허수아비/나는 명예의 허수아비/나는 허욕의 허수아비…”.허수아비 연작시를 쓴 문충성시인의 눈에는 이승의 명리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얼빠진 허수아비로 비친 것이리라.그렇다.허수아비에게도‘허수’라는 아들이 있고‘허수어미’라는 아내도 있다는 것이니 조화옹으로 보자면 얼빠진 사람과허수아비를 굳이 구별할 것도 없을 법하지 않은가. 〈장자〉에서는 이런 처지의 사람을 위형(위탁받은 형체)이라 했다(지북유편).순임금 물음에 승(임금보좌역)은 사람의 몸이란 천지로부터 잠시 위탁받은 형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지락편에 나오는 가차(빌린것)란 말도 같은 뜻.그렇다 할때 명리와 이욕에 초연한 허수아비쪽이 사람보다는 더 나은‘위형’이며‘가차’라 해야할건지 모르겠다. 참새가 사라지고 있다 한다.전국 평균서식밀도가 88년 100헥타르에 467.6마리였는데 지난해에는 254.5마리로 45.6%나 줄어들었다고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환경오염 때문이다.모르긴 해도 참새들 또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위암 유방암 같은 것 앓다가 가고 있고 불임증따위로 번식률이 떨어짐에 따라 인구감소 아닌 작구감소현상을 보이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런 현상에 허우룩해지는게 허수아비 아닐까 한다.참새떼가 이리 날고 저리 몰리는 가운데 훠이훠이 소리까지 메아리져야만 허수아비도 신명나고 살맛 나는 터.한데 참새가 없어진다면 허수아비 신세는 그야말로 허수아비 신세로 되고 만다.허수아비는 탄식한다.“어허,내 외발 설 땅도 사라지는가”.〈칼럼니스트〉
  • “옷차림은 「인격의 거울」이다”/타이콘 패션연「남자의 옷이야기」

    ◎수트·재킷 등 전체분위기가 멋쟁이 판정/신분상징 구두·모자 등 액세서리도 소개 조끼의 맨 아랫단추는 채우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남성상의의 라펠(Lapel)은 왜 V자 모양이며 사용하지도 않는 단추구멍은 무엇때문에 있을까.남성의 옷차림 문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실용·교양서 「남자의 옷 이야기」(1·2권,타이콘 패션연구소 엮음)가 도서출판 시공사에서 나왔다. 슈트에서부터 재킷,코트,셔츠와 타이,예복 등 남성 옷차림의 기본 항목을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다루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옷을 잘 입는 것과 유행에 따라 옷을 입는 것은 별개라는 관점에서 볼때,이 책은 전자의 입장에 무게를 둔다.경박한 유행흐름을 타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올바로 드러낼 수 있는 「인격의 거울」로서의 옷을 입으라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의 멋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영국 윈저공(공)의 경우,멋쟁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데 비해 옷가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중요한 것은 옷 전체의 분위기를 어떻게 풍요롭게 연출하느냐 하는 점이다. 이 책은 먼저 교과서처럼빈틈없는 옷차림은 펭귄이 걸어가듯 부자연스러울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우리나라 남자들은 깃에 심지가 들어간 빳빳한 드레스 셔츠를 즐겨 입는다.또 좋은 넥타이를 제대로 매면 매듭 바로 밑에 홈이 패게 마련인데 이것을 애써 펴 버리려고 한다.넥타이 매듭의 홈이야말로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신사복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정신적 여유공간」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1권이 「신사복문화」를 다뤘다면 2권은 남성 「액세서리문화」에 초점을 맞춘다.이 책은 특히 구두나 모자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풍부한 실례를 들어 밝힌다.고대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나 종려 잎으로 짠 샌들은 고승이나 귀족 등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신었으며,일반평민들은 맨발로 다녔다.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 가죽신발은 일부 양반계층만 신을수 있었으며 상민들은 짚신을 신고 다녔다.그런만큼 신사라면 옷의 격식에 따라 구두의 종류도 골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모자 역시 마찬가지.공식적인 자리에서 쓰는 「탑 햇」,중후한 미가 돋보이는 「홈버그」,보통 중절모라고 불리는 「페도라」,비공식적인 옷차림에 어울리는 「트릴비」,비가 올때 쓰는 「아이리시 피셔맨 햇」,스포티한 옷차림에 적합한 「드라이빙 캡」 등 다양한 쓰임새에 따른 자기연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남성의 옷입기에 관한 불문율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옷을 알고 입는 것이야말로 「자신감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 패션모자를 쓴 당신은 ‘겨울 멋쟁이’

    ◎백화점 매출급증… 털모자·베레모 등 붙티 패션모자 바람이 불고 있다.여름에는 햇빛 가리개용,겨울에는 방한용이라는 1차적인 용도보다도 필수 액세서리로 각광받고 있다.여성뿐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겨울에 대비,세일기간에 미리 모자를 마련한 알뜰파가 적지 않다. 여성용의 경우 여름용 못지않게 종류도 다양하다.가격은 그러나 원단 등이어서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다.대부분 순모이거나 혼방,가죽 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털모자에서 캡,베레모같은 캐주얼에서부터 정장에 이르기까지 구색을 갖췄다.남성용도 중년을 대상으로 한 중절모와 헌팅캡,융커모(독일의 사냥모 일종),마도로스 등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모자에 대한 관심은 지난주말 끝난 백화점 정기세일에서 잘 나타났다.하루 평균 매출이 70만∼80만원이었던 롯데 백화점 명동점의 모자코너는 세일기간중 5∼6배가 많은 평균 4백만∼5백만원의 매출을 올렸다.신세계 미아점이나 영등포점도 매출규모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추세는 비슷하다는 것이 백화점측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백화점 잡화매장이나 남·여성복 코너에 모자 매장이 따로 마련돼 있다.백화점에서 취급하는 모자들은 직수입품과 해외 유명브랜드 라이선스 제품이 주종을 이루지만 국산품도 더러 있다.여성모자의 경우 정장용과 캐주얼로 크게 나뉜다.정장용은 예복이나 격식을 갖춘 정장에 맞춰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재도 순모에서 가죽,밍크에 이른다.웬만한 옷 한벌 값에 버금갈 정도로 가격도 만만치 않아 정장용 여성모자는 10만∼20만원대를 호가한다.뜨게모자와 베레모등 캐주얼 모자는 3만∼5만원선,중성용인 야구모자는 2만5천원선이다.국산의 경우 2만원선의 비교적 저렴한 제품도 있다. 남성용의 경우 40∼50대 중년 남성들의 발길이 잦다.
  • 잠실벌 뒤흔든 “비바 월드컵”/유치 축하 「열린 음악회」 대성황

    ◎어린이서 할아버지까지 10만명 열창/대형태극기 피날레 장식땐 “감격물결” 「비바 월드컵!」 2002년 월드컵 한국·일본 공동개최를 축하하는 「KBS 열린 음악회」가 열린 1일 하오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환희의 함성이 절반유치의 아쉬움을 뛰어넘어 한국승리의 축제로 승화됐다. 이날 하오 5시30분부터 시작된 음악회를 찾아온 관중은 어림잡아 10만여명. 경기장 관람석을 다 메우고도 모자라 잔디구장까지 가득 메웠다. 지난달 31일 밤 스위스 취리히에서 월드컵 공동개최가 결정된 순간을 떠올리며 감격과 흥분을 다시 나누었다.얼굴에 우리나라 지도를 물감으로 그린 젊은이들과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월드컵 코리아」를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쳐 드넓은 경기장을 내내 휘감았다. 음악회는 축구 응원가인 「우리는 챔피언」이 울려 퍼지면서 흥겹게 시작했다.관중은 「올레 올레」를 연호하며 막대풍선을 흔들고 양손을 번쩍 들어 한껏 즐거워하는 분위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솔리드,박정운,걸,신승훈 등 가수들의 노래에맞춰 어린이 축구단 2백명과 대학응원단들이 힘찬 응원쇼를 펼쳤다. 후반부에는 국민가수로 불릴만한 패티김,조영남,김건모가 출연했으며 미국 컨트리가수 존덴버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반주에 맞추어 「애니의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무대에서 소프라노 홍혜경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열창,관중의 환호성을 자아냈다.무대가 막을 내리면서 KBS교향악단의 「한국환상곡」,민요메들리 연주가 어둠이 깔린 잠실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순간,대형태극기가 게양되고 축포가 터져 까만 밤하늘을 수놓았다. 음악회를 찾은 박소영씨(31·서울 성동구 금호동)는 『당초 열린음악회 도중 FIFA의 개최지 결정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한국이 제외되면 관중 사이에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공동개최 결정이 난 뒤 열린 공연이라서 기쁨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서정아 기자〉
  • 「벼농사의 대부」 황용세(압록강 2천리:17)

    ◎황무지 수십만평 논으로 개간/중국 장작림 군벌 정부의 수리국장 설득/수로공사 지원받아 혼하물길 끌어들여/장작림 위기때 군량미 500가마 보내 보답 「만주땅 넓은 들에/벼가 자라네 벼가 자라/우리 가는 곳에 벼가 있고/벼 자라는 곳에 우리가 있네/우리가 가진 것 그 무엇이냐/호미 바가지 더 있는가/호미로 파고 바가지로 담아/만주벌 거친 땅에 볍씨 뿌려/우리네 살림 이룩해 보세」 중국 조선족에게 유전되던 1920년대 민요다.이 노랫말처럼 중국 동북땅 어디를 가나 논이 있는 마을을 들어서면 조선족이 살았다.그러니까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의 벼농사 효시는 조선족인 것이다.방죽 만들어놓으면 물고기 생긴다고 물이 있는 황무지에는 으레 조선족이 몰려들어 벼농사를 지었다. 압록강유역의 벼농사도 역사가 꽤 오래되어 거의 한 세기에 이르고 있다.18 95년 요령성 집안 팔왕조촌에서 처음 시작했다.이어 무순일대에서는 평안북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와 포가둔에 자리잡은 송병주·김만리가 처음 논에 볍씨를 뿌렸다.19 06년에는 평안북도 벽동사람인 김시정이 시작한 이래 19 23년에는 심양일대로 벼농사가 번져 5천ha의 개간답에서 해마다 15만섬의 벼를 거두었다. ○연간 순수익 6∼7만원 오늘날 요령성에서도 벼농사 하면 조선족이 꼽힌다.요령성 안산시의 삼대자조선족진 형양기조선족진에 사는 박행관(37)씨는 소문난 벼농사꾼이다.자그마치 5백무(약 1만5천평)나 되는 논을 빌려 광작을 하고 있는 그는 요령성의 우수한 청년농민 10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해마다 비료값과 품삯이 뛰어오르고 국가의 수매가격이 보잘 것 없는데도 불구하고 연간 6만∼7만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요령성의 조선족 농촌을 도는 동안 새로운 인물 한분을 주목하게 되었다.벼농사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황용세라는 인물이다.해방 이태전에 작고했는데,그의 아들인 수복(수복·63)노인이 심양시 우홍구 조화향의 영수촌에 살고 있다.수복노인은 황용세의 넷째아들이다.맏이와 둘째는 중국에 살다가 고인이 되었고 서울에 살던 셋째는 영수촌을 다녀간 이후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수복노인은 유일하게 남은 황용세의 아들인 셈이다.영수촌에서 처음 만난 수복노인은 거두절미하고 아버지 황용세의 마지막 죽음부터 장황하게 털어놓았다.아버지의 죽음이 원통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마을에서 십여리 떨어진 마전자마을에 수레거(차)자를 쓰는 차씨네가 살았다.그런데 논물을 가지고서리 우리집과 그집이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네다.마침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일군 헌병대에 근무하는 차씨네 아들이 있어서리 우리를 걸고 넘어졌습네다.우리 아버지가 팔로군이었다는 것이었디요.그래서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 숱한 매를 맞고 석달만에 나왔디만 곧 돌아가셨지 뭡네까.차씨네는 광복이 나자 한국으로 들어갔디요.헌병대에 있던 아들은 한국에서 장관을 지냈다고 기래요』 황용세는 드라마틱한 일생을 살았다.1990년 평북 벽동에서 태어나 한일합병 이듬해 부친을 따라 요령성 홍경헌 홍묘자로 이주했다.이후 봉천(오늘의 심양)교외로 이사했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아주 눌러앉은 지역이 조화향 영수촌.개간할 황무지는 얼마든지 있었으나 주위 늪지대 물을 끌어올릴 재간은 없었다.그래서 수십리 밖 훈하(혼하)의 물을 끌어오기로 결심했다.그러나 수로를 내는 데 필요한 자금은 막상 한푼도 없었다. 그래서 당시 중국 동북지방을 장악한 봉천의 군벌인 장작림(18 73∼1928년)정부 수리국에 「수전개발에 관한 청구서」를 냈다.수리국장은 성공이 불투명한지라 깔아뭉갰다.황용세는 수리국장을 직접 찾아나섰다.보잘 것 없는 조선족 농사꾼을 만나줄 리 만무했다.황용세는 생각다 못해 화려한 마차를 타고 집에서 나서는 수리국장의 출근길을 네활개를 펴고 누워서 막았다. ○수리국장 출근길 막아 그의 생떼질은 주효했다.수리국장은 황용세를 자기 사무실에서 만나준 것이다.수전개발의 타당성을 인정한 수리국장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작성했다.자금은 수리국에서 대고 공사를 실패할 경우 황용세가 죽음까지도 감수한다는 서약서를 붙였다.공사를 착공했을 때 한족지주들이 봇도랑을 낼 땅을 내주지 않는등 방해했으나 장작림 군벌정부에서 군대를 풀어 결국 완공했다.깊이 2m,너비 10m의 봇도랑으로 물이 흘러들어 영수촌일대 황무지는 옥토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1924년 북경의 군벌 오패부(오패부·1872∼1939년)가 3개군단을 풀어 장작림을 치는 사건이 일어났다.황용세는 조선족이 만주에서 살려면 장작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군량미 5백가마를 장작림군벌에 보냈다.중국인 지주와 자본가가 두 군벌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여서 황용세의 군량미 기부는 장작림의 환심을 샀다.감동한 장작림은 『그 고려인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해서 황용세를 불러들였다. 황용세는 회색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차림으로 장작림을 만났다.훤칠한 체구의 황용세는 당당했다.그가 황씨라는 것과 요령성 홍경현 산골에 살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장작림은 더욱 감격하고 말았다.왜냐하면 장작림이 비적 두목시절 다른 패거리에 쫓겨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밭에서 들일을 하던 황용세 부자가 감춰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이후 중국 동북3성 도독이 된 장작림은 홍경현을 참빗질하듯 황씨 부자를 찾았지만 찾아내지 못했다.그런 판에 황용세를 만났으니 장작림의 기쁨이 컸다. 장작림은 황용세에게 소원을 물었다.황용세는 의형제를 맺는 것이라고 했더니 장작림은 껄껄 웃었다. 『내,자네 나이 보다 열여덟이 많으니 아버지뻘이 아니겠는가.내 큰아들 학량과 의형제를 맺도록 하세』 장작림이 아들 학량과 황용세의 결의형제의식은 대단했다.당시 「성경일보」도 이를 크게 실었다.황용세의 세력도 막강해져 동북3성 실력자가 되었다.1928년 장작림이 일본군 소행으로 폭사하고 나서 학량이 동북군 총사령관 자리에 올랐다.그리고 1936년 장개석을 서안에서 감금하는 서안사변을 일으킨 학량은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붙잡혔다.그런 와중에 몰락한 황용세는 친일파 차씨네와의 불화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새옹지마라고나 할까.황용세의 몰락은 공산당이 심양을 해방한 1948년 이전에 가문을 알거지로 만들었다.그래서 성분을 해방전 3년까지 본다는 공산당도 황용세의 아들들을 빈농으로 분류했다.
  • 「노­정」긴장의 대면 2시간/한보 정태수 회장 전격구속 이모저모

    ◎“재벌구속 확대 아니냐” 촉각 곤두/정씨 “왜 두번 처벌하나” 불만 표출 「5·18 특별법」파장으로 주춤한 분위기를 보이던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29일 밤 재벌 기업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이 전격 구속되고,한양그룹 배종열 전회장에 대해서도 사전영장이 발부되면서 검찰주변은 긴장감을 더했다. 특히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노 전대통령까지 대검 청사로 극비에 소환,정총회장과의 긴장의 대질신문끝에 혐의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지자 검찰주변에서는 『나머지 재벌총수에대해서도 사법처리의 수위가 높아 지는게 아니냐』며 재벌총수의 향후 사법처리방향에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초췌한 모습에 중절모를 쓴 정총회장은 이날 하오 10시45분쯤 서울구치소로 떠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재판정에서는 승산이 있다』면서 구속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 정총회장은 또 『수서사건은 당시에 끝났다.왜냐하면 사업승인이 취소됐기 때문이다.그후 뇌물을 주었어도 혜택을 보지 못했다.일사부재리 원칙인데 왜 두번 처벌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앞서 검찰은 이날 밤 정총회장의 전격 구속을 두고 경제계주변등에서 『재벌 회장중 구속되더라도 파장이 적은 정총회장을 선택한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보내자 『예정된 수순에 따른 것이지 특별한 고려에 따른 선택은 아니다』고 강조. 그동안 재벌총수 가운데 「구속대상 1호」로 점쳐지던 정총회장이 불구속 기소된데 의아해하던 검찰주변에서도 『공소시효 문제로 시간이 없어 불구속했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면서 나머지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예외없이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 ○…검찰은 이날 하오 노씨 비자금 수사의 주임검사인 문영호 중수2과장과 김진태 대검연구관을 서울구치소로 보내 2시간여 조사한뒤 하오 4시30분쯤 노씨를 대검 청사로 데려와 다시 2시간동안 정총회장과 대질 신문을 벌인 것으로 확인. 검찰은 특히 정총회장외의 몇몇 재벌총수에 대해서도 대질신문을 통해 범죄 사실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추가 구속자가 나올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견이분분. 한편 검찰 관계자는 『범죄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재벌 총수들을 구치소로 데려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앞으로도 여러차례 대질신문을 해야 하는데 노씨를 검찰청에 소환된 사실이 알려져 조사가 어렵게 됐다』고 수사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 미 첫 흑인여성 주상원의원 파우어스 자서전 화제(해외출판)

    ◎“나는 킹모사 연인이었다”/“킹은 헌신적이며 뛰어난 달변가” 회고 흑인 여성으로서 미국 최초로 주상원의원을 지낸 조지아 데이비스 파우어스여사가 저명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와 교제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나는 꿈을 함께 나눴다」를 출간,미국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캔터키주 상원에서 지난 68년부터 88년까지 20년간 의정활동을 펼친 그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정치활동 뿐만 아니라 여러명의 유부남과 사귄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파우어스여사는 킹과 관계를 가진 시간은 도난당한 순간들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회상했다.킹은 그녀에게 연인도 아니었고 꼭 결혼하고 싶은 상대도 아니었다는 것. 그녀는 킹목사를 지난 64년 처음 만났다.그가 캔터키주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공항에서 마중하는 임무를 맡았다. 킹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 「매우 헌신적이며 뛰어난 달변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원고를 읽는 것을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설할 때 메모조차도 참고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고 파우어스여사는 밝혔다. 두 사람의 관계는 킹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공개된 비밀이었다. 그녀는 킹이 암살되기 직전인 68년 4월4일 저녁 그로부터 자기에게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녀가 모텔의 한 방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다듬고 있을 때 킹이 저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녀는 방밖으로 뛰쳐나갔고 곧 핏물이 흥건히 괴어 있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킹의 모습을 목격했다. 파우어스 여사의 책은 중절모를 쓴 킹이 그녀와 함께 시위행진하는 모습을 담은 표지사진으로부터 호텔방에서 은밀하게 만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킹과 그녀와의 사이를 보여주는 사진들이 실려 있다.
  • 귀환뒤 “이제야 살것 같다”/안호상씨 귀환 이모저모

    ◎당국 “방북기간 종교행사 치중” 판단 대북 경수로문제로 남북관계가 미묘한 시점에서 정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방북을 강행했던 대종교 안호상총전교 일행이 16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해 정부의 처리방향이 주목된다. 정부는 이번 사안이 앞으로 유사 사례에 대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불법방북혐의 등에 대해서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른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안씨가 민족주의적 성향의 원로인사인 점을 감안해 인신구속이나 국가보안법 추가 적용여부 등은 신중히 결정한다는 입장이어서 법적용의 가장 큰 잣대가 될 그의 방북행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신구속 어려움 ○…안호상 총전교와 김선적 종무원장은 16일상오 11시30분 검은색 벤츠승용차편으로 판문점 북측 판문각앞 광장에 도착,북측 관계자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군측에 인계. 중절모에 검은 색 코트를 입은 안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으나 표정은 굳어 있었으며 군사분계선을 지나 우리측으로 넘어올 때도 북측 안내인들과 일절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들은 차량편으로 비무장지대밖 헬기장까지 이동해 관계기관이 준비한 헬기에 탑승,서울 가락동 경찰병원으로 출발. ○…이들은 경찰병원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은 뒤 방북 행적등에 대한 조사를 받았으나 당국이 청취한 북한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비교적 종교행사에 치중한 것으로 판명. 안씨 일행은 11일 평양비행장에서 『통일은 사상과 이념이 아니라 단군민족이라는 공통점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요지의 도착 기자회견을 가진뒤 방북일정에 들어갔으나 당국은 방송상으로는 명백히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언행이 아직 노출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후문. ○보안법 신중 적용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북한방송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김일성 동상을 참배하는 식의 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례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사법처리 방향은 이들의 방북행적에 대한 정밀조사를 마친뒤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 ○…안씨는 헬기에서 내려 승용차를 타고 경찰병원으로 가면서 갑자기 혼잣말로 『이제야 살 것 같다』고 말했다고.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은 안씨가 원하던 단군릉 참배를 마치고 돌아와 흡족하다는 뜻이거나 북한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벗어나 안심이 된다는 의미일 것으로 해석. ○신도들 선처 호소 경찰은 안씨가 경찰병원에 도착하자 병원 정문과 1층 로비 등에 전경 2백여명을 배치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 ○…대종교 「전국교우회」(회장 김방경)소속 신도 50여명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임진각 망배단 앞에서 안총전교와 김종무원장의 귀환 환영 행사를 갖고 이들에 대한 당국의 선처를 호소.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 “정문에 외교관차” 연막… 뒷문 출입/오진우 진찰 이모저모

    ◎검진30분… 부축받고 겨우 승차 병색 뚜렷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27일 파리시내 라에넥병원에서 「007작전」을 펼치면서 30분만에 전격적으로 폐암검진을 받았다. ○…오진우부장이 검진을 받은 병원측은 이른 아침부터 경찰병력을 동원하는등 경비를 강화.병원측은 환자나 출입자의 신원과 방문목적을 일일이 확인후 들여보내는등 취재진이 병원 구내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 특히 오부장의 진료예약시간인 상오10시30분이 다 되자 정문에는 정복경찰 4명이 추가로 배치돼 출입을 통제. 북한측 관계자 3명은 10시20분쯤 정문앞에 외교관용으로 대여해주는 렌터카를 세워놓고 오부장이 정문으로 도착할 것처럼 보이게 하는등 「성동격서」 작전을 전개. 북한측 관계자는 『오진우부장이 파리에 왔느냐』고 반문하면서 능청을 떤뒤 건강이 좋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김일성수령의 사망 1백일행사에 건강한 몸으로 나왔다』며 건강하다고 주장. 그는 『우리는 장사꾼으로 40일전쯤 파리에 왔다』며 『오부장이 암을 앓고 있다는 남한 신문보도를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딴소리. ○…그러나 회색바바리에 검은색 중절모를 쓴 오부장은 북한관계자들이 대부분의 취재진이 몰려있는 정문앞에서 시선을 끄는 동안 후문을 통해 병원에 도착. 오부장은 상오 10시30분 정각에 후문에 도착했으며 병원측은 평소에 열어두던 후문을 닫아놓았다가 오부장이 도착하자 문을 열어줘 신속히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 오부장은 이날 은색 벤츠 승용차를 타고 경호원등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갔으며 간호원으로 보이는 여인 1명은 별도의 승용차에 탑승.오부장이 탑승한 승용차는 파리주재 북한 일반대표부의 박동춘 상주대표의 외교차량으로 확인. 정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했던 북한관계자들도 10시40분쯤 승용차를 타고 정문을 통해 병원으로 입장. ○…오부장은 당초 검진이 하루종일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에벤박사를 팀장으로 한 의료진으로부터 검진을 받고 30분만인 상오11시 승용차를 타고 다시 병원 뒷문을 통해 출발. 오부장은 다리가 불편한 때문인지 북한측관계자가머리를 눌러줘서야 승용차에 탑승할 수 있었고 그의 얼굴은 창백해 보여 병색이 완연한 모습. 이날 오부장 일행의 선두에는 프랑스의 요인경호대가 앞장서 경호를 했는데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점을 감안한듯 모두 사복경찰이었고 오토바이 경호는 하지 않았던 것.
  • 정재석부총리(신춘정가/주역들의 행보는…:7)

    ◎효율·변화 중시… 「경제팀 질운영」 리드/자칭 “이코노미스트”… 형식 과감히 타파/물가·노사문제 해결­경기회복 솜씨 기대 단구에 까무잡잡하고 주름진 얼굴,숱이 많은 백발 등….정재석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얼른 보면 시골 논두렁에서 만나는 촌로의 인상이다. 지난 연말 취임 이래 기존의 격식과 관행을 깨는 거리낌없는 언행과 깐깐한 성격은 이미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졌다.그는 「장관 삼수생」이다.「박정희경제스쿨」의 우등생으로서 79년 상공부장관을 지낸 것을 비롯,지난 해 13년 동안의 야인생활을 청산하고 교통부장관으로 재입각해 두달 만에 경제부총리가 됐다. 정부총리는 스스로를 「이코노미스트」라고 부른다.효율과 변화를 중시한다.취임과 함께 기획원의 격식타파와 혁신을 주장한 것은 이런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다.그의 새해 포부는 경제팀을 ▲질 ▲참(진) ▲멋 등 3개 면에서 새롭게 운영하는 것이다. 「질운영」은 기존의 관행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다.장관실에서 선 채로 일하는가 하면회의도 대회의실에서 커피잔을 들고 서서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과천청사 구내에 있는 홍재형재무·김철수상공·김우석건설부장관실을 예고없이 방문,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 그의 경제팀 질운영 방침은 삼성그룹 이건희회장의 『아내와 자식만 빼고는 모두 바꾸자』는 「질경영」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흥미롭다. 「질운영」이 경제팀의 스타일과 컬러의 변화라면 「참운영」은 경제조직과 정책 운용에 변화를 가져왔다.정부총리는 감량경영 차원에서 기획원의 조직개편과 기구축소를 먼저 들고 나왔다.다른 행정조직 전체의 군살빼기로 연결되는 파급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셋째,「멋운영」이다.취임초 직원들에게 『밝은 색상의 양복을 입으라』고 권유했던 그 스스로가 휴일이면 중절모에 핑크색 남방을 입고 나오는 멋쟁이이다.어둡고 답답한 관청을 밝고 멋있게 바꿔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미있게 살자는 소박한 꿈을 강조한다. 6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사무관보다도 더 싱싱한 생각이 용솟음치는 정부총리는 교통부장관 재임 때도 「돌아온장고」로 불릴 정도의 두둑한 배짱으로 화제를 뿌렸다.기획원 사람들은 그를 집념과 일 욕심,그리고 기행으로 갖가지 일화를 남겼던 3공 시절의 김학렬부총리와 견준다. 그러나 정부총리는 김 전부총리 보다는 신현확 전총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지금도 정초에는 신전총리에게 꼭 세배를 간다.인쇄물의 글자크기도 자로 재는 등 완벽주의자에다 학구적이고 논리적인 그가 유달리 정치감각이 뛰어나고 호방한 성품을 지닌 것은 신전총리가 부총리 시절 기획원 차관으로 보필하며 보고 배운 듯 싶다. 그러나 현실경제의 두터운 벽은 그에게 시련을 안겨 주고 있다.가격 및 유통구조의 정상화를 통해 대외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공공요금 현실화 방침이 다른 공산품 및 서비스가격의 동반인상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국제화,개방화의 대세를 견지하며 농어촌 대책과 노사문제 등 각종 난제를 풀어가는 책임도 그의 몫이다. 정부총리가 취임초 『기획원이 다른 부처 위에 군림하지 않고 해결사(케어 테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은 과거와 달라진현실을 읽은 한 차원 높은 경륜이다.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는 그의 경륜이 기대 된다.
  • 남장 도우미 자원활용관 안내 “눈길”(엑스포 이모저모)

    ◎기념품 꿈돌이 인형·셔츠 판매 1위/자원봉사 마친 세자매 “평생의 추억” ○정부에서 운영 ○…상공자원부에서 운영하는 「자원활용관」에는 중절모와 흰색 수트를 빼입은 훤칠한 남장미인들이 관람객을 안내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남장여인들은 자원활용관에 배치된 도우미들로 짧은 스커트의 유니폼을 차려입은 다른 전시관의 도우미와 정부에서 운영하는 전시관과는 뭔가 다르다는 차별화를 보여주려는 신성철 관장의 아이디어로 등장한 것. 61명의 남장도우미중 환경관련퀴즈부스를 안내하는 유진주양(24)은 『많은 관람객들이 사진촬영을 원하는등 관심을 보여줘 기쁘다』면서 다른 전시관의 도우미들도 부러워한다며 자신들의 이색유니폼을 은근히 자랑. ○초청관람 활발 ○…낙도어린이초청관람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18일 전남 여수와 제주도 산간벽지에 사는 낙도어린이 2백40여명이 엑스포박람회장을 찾아 관광을 즐겼다. 전남 여수에서 3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초도 어린이들은 한국과학기술원의 봉사단체인 한우리회의 초청으로 지난17일 하오 대전에 도착해 이날 하룻동안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인간과 과학관」을 비롯,「정부관」등을 관람했다.한진그룹도 제주도 산간벽지의 어린이와 교사등 1백81명을 2박3일일정으로 초청,대한항공 미래항공관등을 관람시켰다. ○다수가 아이쇼핑 ○…대전엑스포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높은 기념품은 꿈돌이인형,꿈돌이티셔츠,엑스포모자등인 것으로 나타났다.박람회장내에 설치된 기념품판매점에 따르면 많은 관람객들이 기념품점을 찾고 있으나 대부분 「아이쇼핑」에 그칠뿐 실제 구입하는 물건은 1만원미만의 이들 기념품이 대부분이라는 것. 서문기념품판매점의 정성미씨(26)는 『외국인들도 하루평균 10여명이 오고 있지만 기념엽서나 기념우표등 간단한 물품만 사간다』며 주석으로 만든 한빛탑모형등 고가품은 거의 나가지 않고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아쉬움만 가득” ○…엑스포행사와 관련된 각종 화제가 연일 만발하는 가운데 지난 7일부터 자원봉사활동을 함께 해온 세자매가 12일 동안의 봉사활동을 끝마치고 18일 서울 집으로 올라가게 돼 또 하나의 화제거리로 등장. 이정민씨(25·성남 낙생중교사),영민(22·동덕여대 일문과3년),경민(21·덕성여대 의상과2년)등 세자매는 『다른 친구들은 취미생활을 하거나 학원에 다니며 방학을 보냈지만 우리가 보낸 엑스포자원봉사활동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것』이라며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아쉽다는 표정. ◎5개 전시관 25일부터 시간제한/문예관 등 하오 1시 이후나 가능/학생단체·외국인 관람 편의위해 대전엑스포조직위는 오는25일부터 정부관,자원활용관,재생조형관,시도관,문예전시관등 5개 전시관의 일반관람객 관람시간을 제한키로 했다.이는 초·중·고교단체관람객및 바이어등 외국인관람객에게 관람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조직위 장석환사무1차장은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는25일부터 폐장일인 11월7일까지 전기간동안 조직위가 직접 관장하는 이들 5개관의 경우 상오9시30분부터 하오1시까지는 학생단체및 외국인관람객만 입장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일반관람객들은 하오 1시이후에관람해 줄것을 당부했다. 조직위의 이같은 조치는 여름방학이 끝남에 따라 이 기간동안 2백20여만명의 학생단체관람객들이 엑스포를 찾을 것으로 예상돼 이들과 일반관람객이 함께 섞일 경우 큰 혼잡이 예상되며 교육효과도 기대할 수 없을 뿐아니라 50만명선에 이를 외국인관람객들의 불편도 클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취해진 것이다.
  • 영 전통춤 모리스댄스 복원

    ◎15세기 풍요기원 의식… 소멸 백년만에 재현 유럽의 섬나라 영국에서는 요즘 약 1세기 전에 거의 자취를 감춘뒤 관광포스터에서나 찾아볼수 있었던 모리스 댄스라는 전통춤의 복원운동이 활발히 일고있다. 꽃과 리본으로 장식된 화려한 중절모,깨끗한 와이셔츠에 십자반도를 두르고 다리에는 스타킹 위에 방울을 주렁주렁 매단 일단의 신사들이 야외풍경을 배경으로 펼치는 경쾌한 율동.아코디언,바이올린,콘서티나(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의 일종)가 어우러져 내는 포크음악에 맞춰 서로 빠르게 교차하면서 발뒤꿈치를 두드리기도 하고 나무막대기를 맞닥뜨리기도 하며 이따금씩 손수건을 꺼내 머리위로 흔들기도 한다.마치 어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리스 댄스 춤꾼들의 모습이 클레이게이트,헤딩튼,애더베리,셔본 등의 작은 마을들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모리스 댄스는 그 기록이 1458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깊은 뿌리를 갖고있지만 시대상황이 변하고 춤의 유래에 관한 해석이 달라짐에 따라 혹독한 수난을 당하다가 끝내 종적을 감췄던 이 나라비운의 전통춤이다. 이 춤의 유래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초기에는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 풍요를 기원하던 전통의식에서 파생된 고유의 춤으로 이해됐다.그 결과 이 춤의 장려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헨리7세 등 국왕들이었다.이들은 댄서들에게 재정보조를 해주고 왕궁에서 공연을 갖도록 배려했으며 상류층들의 후원을 적극 독려했다.이에 힘입어 모리스 댄스는 쉽게 대중화되어갔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댄서들은 시련을 맞기 시작했다.성직자들은 왕궁을 누비는 호화스런 차림의 이 춤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다.그리고 이에 맞물려 춤의 유래에 관한 해석도 명칭(Morris)에서 나타나듯 아프리카 북서부의 무어인들(Moorish)의 전통에서 파생된 외래춤이라는 쪽으로 바뀌었다.당시 댄서들은 얼굴을 검게 분장했는데 이는 모리스 댄스가 무어인의 춤이라는 해석의 유력한 근거가 되었다. 17세기 청교도혁명을 계기로 모리스 댄스는 마침내 불법화되고 댄서들은 음주,신성모독,춤의 난잡성 등을 이유로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그 이후로는 음성적으로 명맥만 유지되다 그나마 세기말에 들면서 거의 사라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모리스 댄스가 부활의 기회를 갖게된 것은 작고한 음악사가인 세실 샤프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그는 1899년 이 춤을 목격하고는 복원을 결심,어린시절 이 춤을 추었거나 본적이 있는 80∼90대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를 토대로 나중 포크댄스협회를 창설했다.요즘 이곳저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모리스 댄스는 이 협회의 고증과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모리스 댄스는 아직은 다양한 직업과 연령층으로 구성된 소규모 마을사람들이 아마추어수준에서 재현해내는 동호인활동차원에 머물고 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남성춤으로 인식돼온 이 춤이 여성들에게도 급속히 확산되고있고 최근에는 국내뿐 아니라 홍콩,캐나다에서도 모리스 댄스 클럽이 결성되는 등 사라질뻔한 한때의 위기를 딛고 귀중한 전통 문화유산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분·초가 아쉽다” 표몰이행보 가속(대선 유세현장)

    ◎용인 등 5곳서 유권자 “피부접촉”/김영삼/충북·경북 2개도 순회 “세다지기”/김대중/중소규모집회 충북권 집중공략/정주영/“새정치” 첫 공식포문/이종찬/세대교체·개혁 역설/박찬종 ○초반 기선잡기에 전력 ▷김영삼후보◁ 이날 전용버스편으로 용인 이천 양평 하남시등 경기 한수 이남지역 4곳과 서울 강동구 천호시장등 5곳을 방문,중소규모의 유세 또는 유권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유세초반의 유리한 국면 조성에 진력. 이날 유세장에는 각각 2천∼1만여명의 유권자와 당원들이 참석,김후보가 연설하는 도중 20차례이상 「김영삼」을 연호하는등 열기있게 진행됐으며 유세장 주변에는 경호경비버스이외에 유권자들을 동원한 차량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등 새로운 유세풍속도를 반영. 또 청년당원들은 유세장 입구에서 1백m쯤 양쪽으로 도열,수기를 흔들고 「김영삼」을 연호하며 무개차를 타고 들어오는 김후보를 맞이한데 이어 유세가 끝난뒤에도 같은 방식으로 분위기를 고조. 김후보는 이날 「용인은 거의 10대로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 「이천은 6·25때 제가 피란을 내려와 3개월을 숨어산곳」 「양평의 용문산은 정치규제시절 민주산악회회원과 함께 자주 오르 내린 곳」이라며 각 지역에 대한 친밀감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세를 시작. 특히 이천에서는 6·25 피란때 신세를 졌던 지역주민 임재춘씨(60)등 지역주민 10여명과 국밥으로 점심을 같이한뒤 임씨와 함께 유세장에 등단해 『이곳은 저의 제2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다』며 연대감을 강조.김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특히 신경제론과 농촌문제해결을 중점 거론. 김후보는 『신경제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최대한 줄이는 한편 농촌을 잘살게 하자는 것』이라면서 『지난 40년동안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바쳐왔던 정열을 경제발전에 다바쳐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역설. 그는 또 『우리 농촌을 일등 농촌으로,농촌출신들이 떠나가는 농촌에서 되돌아오는 농촌으로 만들겠다』고 다짐. 김후보는 특히 이날 양평역전에 열린 간이유세에서는 경기도 남양주군이 고향인 다산 정약용선생을 인용,『선생의 사상은 한마디로 학문의 중심을 추상적인윤리문제로부터 백성의 복리증진을 위한 문제로 바꿔나간 실사구시의 개혁사상』이라면서 『이점이 바로 제가 펼치고자 하는 실용적인 변화와 개혁정책』이라고 설명. ○도경계 넘나들며 유세 ▷김대중후보◁ 이날 충북 충주·단양을 거쳐 경북 풍기·영주·안동등 5개지역에서 잇따라 유세를 갖고 지지를 호소하는등 하룻동안 2개도를 넘나들며 표밭갈이를 계속. 김후보는 이날 상오 수안보관광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약지인 충북지역 첫 유세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른 당과 달리 청중동원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정당보다 사람이 더 많이 모이고 호응도도 열기띤 분위기였다』며 『우리당이 초반전에 리드를 잡고 있고 희망적인 출발을 하고 있는게 틀림없다』고 자평. 김후보는 이어 단양 선착장앞에서 『우리 농민은 1년의 3백64일은 야당인데 선거일 하루만은 여당』이라면서 『이번만은 농민을 위해 싸워온 민주당과 본인을 지지해달라』고 호소. 김후보는 또 입시철이 다가온 점을 감안한듯 『내년부터 교과서중심의 입시제도로 바꿔 과외를 필요없게 하겠다』고 말하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실력만 있으면 삼성이든 현대든 대우든 공무원이든 아무곳에나 취직이 될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 김후보는 이날 가는곳마다 지역 개발공약을 대거 제시했는데 충북지역에선 ▲충주댐 단양팔경 등지를 연결하는 중원문화권개발 적극추진 ▲중부내륙고속도로 조기착공을,경북지역에선 ▲영주·안동·상주 등지에 무공해첨단기계산업등 내륙공업벨트조성 등을 약속. 김후보는 이날 안동에서 숙박할 예정이었으나 이날밤 서울에서 열리는 긴급 간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를 이용,귀경했으며 앞으로도 유세가 끝나면 지방에 머물지 않고 서울로 돌아와 그날 그날의 유세결과를 분석하고 다음날의 선거전략을 숙의하는 회의를 주재할 계획. 김후보는 또 이날 유세버스안에서 수행정책팀과 정책회의를 갖고 그동안의 「뉴DJ플랜」이 성공했다는 평가에 따라 앞으로의 연설내용은 부드러운 기조를 유지하되 말투와 몸짓은 확신과 자신에 찬 모습을 보여 변화를 강조하는 느낌을 전달한다는새로운 유세전략을 마련. ○“농정실패 정치오류 탓” ▷정주영후보◁ 헬리콥터로 음성·제천·충주등 3곳을 차례로 돌며 지난 3·24총선때 민자당 강세지역이던 충북권 표밭갈이에 본격돌입. 정후보는 이날 하오 음성 읍내리장터에선 소규모로,제천 역전광장과 충주실내체육관앞 광장에서 중규모 집회를 잇따라 갖고 정부의 농정실패와 양금씨의 「소모적 정치행태」를 강도높게 비난하면서 농민표와 반양금표 획득에 주력. 정후보는 음성유세에서 『땀흘려 농사지은 쌀·고추를 제값을 못받고 팔아야 하는 것은 썩은 정치탓』이라며 기성정치권에 포문을 열고 『집권하면 여러분 모두가 잘사는 새시대를 열겠다』고 장담. 정후보는 제천·충주유세에서 『정치를 하려면 10년앞을 내다보고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그러나 「모래성」 민자당과 미사여구뿐인 민주당은 지역패권주의로 눈멀어 한치앞을 못본다』며 국민당 선택의 당위론을 강조. 정후보는 이날 날씨가 비교적 화창해지자 외투를 벗고 대신 중절모를 쓰고 다니며 평소 7∼8분 남짓 짧게 하던 연설을 15분 가량으로 늘리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여 눈길. ○“새정신운동 필요” 강조 ▷이종찬후보◁ 경기 구리와 양평에서 첫 공식유세를 갖고 「새정신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수도권공략을 시작. 이후보는 『정치가 혼란하고 경제는 침체되고 사회가 무질서한 것은 국민들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이 믿고 흔쾌하게 참여하는 새정치를 펴겠다』고 다짐. 이후보는 이어 『국가의 근본 국기를 흔드는 간첩단사건이 정치권에까지 파급됐다고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돌고 있다』면서 『현승종총리는 정치인 관련성을 시인하면서도 진상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간첩단사건의 진상을 선거실시전에 반드시 밝히고 관련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 ○전철역 돌며 지지호소 ▷박찬종후보◁ 박후보는 이날 청량리역광장·경동시장등 서울시내 일대와 의정부전철역광장등을 돌며 양금구도타파와 한글세대에 대한 역할부여등을 호소. 박후보는 청량리역 유세에서 『대권욕에 사로잡힌 양금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국민염원인 문민정부수립에 역행한 실패자들』이라고 비난한뒤 『대통령의 직무를 책임있게 수행하려면 정직하고 깨끗해야 한다』고 강조. 박후보는 이어 『개혁을 추진력있게 이끌기 위해서는 정치적 세대교체와 체질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술맛도 유지되는 법』이라고 세대교체를 통한 개혁의지를 피력.
  • 연극배우 박정자씨 후원회모임/「꽃 봉지회」 한마당 큰 잔치

    ◎연극애호가 250여명 참석… 축하행사 풍성/반평생 지켜온 무대… “생애 최고의 날” 만끽 연극배우 박정자(50). 26년동안 연극무대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지난 29일 그녀는 그야말로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을수 있었다. 박정자와 그녀의 연극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인 후원모임 「꽃봉지회」가 마련한 잔치.이날 한국의 집 앞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오랜 지인들마냥 요즘 그녀가 출연중인 연극 「신의 아그네스」와 문화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정취를 함께 즐겼다.청바지 차림의 20대 젊은이에서부터 정장차림의 중년여인들,중절모에 흰머리를 날리는 노년신사등 2백50여명의 연극애호가들이 한결같은 기분으로 잔치무드에 젖어들었다. 하오6시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는 「꽃봉지회」회원들이 마련한 촌극「헬로,변사또」공연과 김덕수패 사물놀이,가수 한영애·김수철,지미필름의 진성만씨의 축하노래로 이어졌으며 박정자씨의 숨은 노래실력이 나오면서 절정을 이뤘다. 한 연극배우를 위한 모임에서 출발해 새로운 연극운동으로 터잡아가는 이같은 「꽃봉지회」의 활동은 한순간 반짝했다 스러져가는 「하루살이 스타」의 양산풍토에서 「진짜 스타」의 출현을 알리는 청신호가 되고있다. 반평생 무대를 지켜온 한 직업배우의 자존심이 발단이 돼 1년전 20여명의 지인들이 모여 만든 「꽃봉지회」는 이제는 일반회원이 1백50명을 넘어섰다.연극표사주기운동이라는 소극적인 후원활동에서 벗어나 관객개발운동에까지 일반관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한 한 중견여배우의 「매력」의 실체와 회원들의 열정을 다시 생각케한 즐거운 이색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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