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과 한국의 역할(사설)
제4차 아시아·태평양협력(APEC)각료회의의 성과는 지역경제 협력기구로서 면모를 갖춘 점이다.지난해 서울회의에서 제기된 상설사무국을 싱가포르에 두기로 함으로써 APEC는 지금까지 「토론의 장」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89년 출범한 APEC는 아세안(ASEAN)국가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그 전도가 매우 불투명했었다.그러나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3개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면서 아·태지역국가들의 협력문제가 다시 부상했고 특히 아시아국가들의 북미블록경제에 대한 우려가 APEC를 「협력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 중장기적 과제인 역내무역자유화의 전망을 연구할 저명인사그룹(EPG)의 설치와 통관절차 간소화,행정조치개선,투자정책의 명료성제고 등 단기과제 추진에 회원국들이 합의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APEC가 역내무역자유화 등 경제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면 그 시장 규모,경제적 잠재력 및 상호의존도 등으로 미루어 그효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아·태지역은 다양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와 가장 적은 나라,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와 가장 느린나라,서양문화와 동양문화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병존하고 있는 지역이다.동질성에 바탕을 두고 추진중인 EC경제통합에 비하면 아·태국가들간에 어떤 공통된 경제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이러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내국가들이 다른 지역보다도 더 많은 협력을 필요로 한다.그 점에서 우리정부가 이번 회의에서 제시한 APEC활동에 민간부문 참여확대와 한국의 중재자적 역할론은 시의적절한 제안이다.
특히 앞으로 APEC활동의 중심이 될 사업 가운데 저명인사그룹 설치부분에서 한국이 경제개발을 바탕으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교량역할을 맡도록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이것은 우리정부 경제외교의 성과이자 역내국가간 협력증진을 위해 바람직스런 역할 분담으로 평가된다.
APEC의 협력강화는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보완관계를 어떻게 강화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먼저 역내 선진국들이 기술이전 및 경협기금 제공 등을 통한 협력인센티브를 확충시켜 나감으로써 ASEAN의 참여를 적극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특히 APEC발족 당시 일본독주를 막으려고 이 기구에 가입한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자세가 요구된다.
미국이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경제블록화를 강화해 나갈 경우 APEC의 일본주도는 불가피해질지도 모른다.미국은 이번회의에서 회원국들의 NAFTA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렇게 하는 것이 APEC 회원국들이 지향하고 있는 공동목표를 앞당기는 주요한 길이자 미국이 걱정하고 있는 「일본주도」를 저지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