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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임 은행장들 ‘가시방석’

    ◎“이번 인사 비정상” 박지원 대변인 발언 파장/“대부분 이사들에 부실책임 전가” 질타/“개혁의지 부족” 평가… 추가 인사 불가피 은행 주총과 관련한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킬 조짐이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은 1일 “최근 은행권 주총에서 임원들만 책임지고 물러나고 행장은 대부분 유임됨으로써 큰 책임자는 괜찮고 작은 책임자만 책임지는 비정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나 본다”며 “그럼에도 새 정부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은행의 책임경영을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가 먹혀들어가지 않았음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주총 전 “은행 인사에 개입해서는 안되며 은행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부실경영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은행권이 주총을 통해 부실경영 책임을 철저히 물어 스스로 개혁의지를 보여줄 것으로 주문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주총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는 평이다.부실경영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행장들은 자리를 지키는 데 연연했으며,전무나 상무 등 임원들만 대폭 물갈이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줬다.26개 일반은행 가운데 주총과정에서 책임지고 물러난 행장은 아무도 없다.국민 상업 장기신용 평화은행 등 4개 은행장만 주총 전에 스스로 물러났을 뿐이다. 특히 이규증 행장은 국민은행이 지난 해 1천억원 이상의 흑자를 냈음에도 중임 임기를 남겨둔 상태에서 용퇴했으며,정지태 행장도 상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6대 시중은행에서는 가장 높음에도 3연임 도중 물러났다.재벌 연쇄부도 여파로 부실의 정도가 심각해진 은행의 행장들은 아직 임기가 남아있다는 이유를 들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금융계는 박대변인의 발언을 계기로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행장들이 확실히 져야 한다는 청와대의 뜻을 이제서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은행권이 개혁의지가 부족했음을 질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따라서 일부 행장의 경우 올 상반기 이전에 부실경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감독당국 관계자는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하지 못해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은행의 행장들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즉 이들 은행들은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확충을 위한 자구계획을 오는 4월 은감원에 제출해야 하며,오는 6월 은감원의 승인을 받을 때 이행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정받는 은행들은 임시 주총을 열어 행장을 갈아치울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은감원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은행은 제일·서울을 포함,14개다.
  • 서울·제일은 임원 15명 퇴진/오늘 주총서

    ◎부실경영 책임물어 대폭 물갈이 은행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27일 열릴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의 정기 주총에서 임원들이 대거 퇴진한다.서울은행은 임기가 끝나는 3명을 포함해 10명이,제일은행은 5명의 임원이 물러나게 된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서울은행은 주총에서 13명의 임원 가운데 신복영 행장과 김현기·김규연 이사 등 3명만 유임시킬 방침이다.서울은행 관계자는 “대주주인 정부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묻기 위해 표순기 전무를 비롯해 임원이 된 지 1년 밖에 안된 이사까지 퇴진시키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외환전문가를 임원으로 영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제일은행도 주총에서 13명의 임원 중 임기가 끝나는 이종선 박해룡 신문식 상무와 박용이 감사,임기가 남아있는 권우하 상무 등을 퇴진시킨다.신상무는 다음 달 초 미국 시카고에 있는 교포은행인 포스터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한편 조흥은행은 28일 열리는 주총과 확대 이사회에서 복수전무제를 도입하고,12명인 임원 수를 1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임기가 끝나는허종욱 전무와 위성복 송승효 변병주 상무는 유임되나 이종근 최종근 구영치 김학수 상무는 퇴임할 것으로 전해졌다.중임 임기가 끝나는 위성복 상무는 전무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
  • 김 당선자 휴일 움직임/공식일정 없이 안가서 각료 인선자료 검토

    ◎주말엔 미사 참석… 이회씨와 기념촬영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토요일인 14일에는 ‘나라와 김대중 당선자를 위한 미사’와 ‘이북 5도민 신년 하례식’에 잇따라 참석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으나 휴일인 15일에는 일체의 공식 일정없이 삼청동 안가에 머물렀다. ○…김중권 비서실장내정자는 이날 “오늘 정도면 각료인선과 관련된 자료가 모두 모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해 김당선자가 각료인선 자료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한 측근은 “김당선자는 지난번 청와대 수석인선때 낙마한 사람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해 이번에는 단수후보로 일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중임을 시사했다. 김당선자는 또 대통령 산하에 기획예산처 설치와 관련,“일 하자는 것인데…”라며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당선자는 14일 상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명동성당에서 ‘한국천주교 평신도 사도직협의회’ 주최로 열린 미사에 참석했다.김수환 추기경은 이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기도했다. 김당선자는 미사가 끝난 뒤 평신도 자격으로 참석한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를 추어올리면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당선자는 하오에는 이북5도민 하례식에서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 주총 앞두고 국민은 상업은행장도 사의

    ◎은행 임원진 ‘물갈이 태풍’ 가능성/신한·보람 등 흑자은행 이외는 마음 뭇놔/김 당선자 불간여 불구 환란인책 못피할듯 올 은행 주총에서 행장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질까.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은행인사에 간여하지 말라”고 지시한 이후 이규징 국민은행장이 11일 사퇴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고민하던 상업은행 정지태 행장도 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고 이날 사퇴를 공식발표했다.정행장의 조기퇴진이 이번 은행인사를 태풍권으로 몰아넣는 계기가 될지 관심거리다. 금융계에서는 국민은행 이행장의 사퇴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대신 상업은행 정행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금융당국 관계자는 “이행장은 지난 96년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문책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오는 7월 중임 임기가 끝난 뒤 은행장 후보로 다시 추천되더라도 결격사유에 해당된다”며 “때문에 후진들을 위해 중임 임기를 채우지 않고 5개월 빨리 물러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이행장도 ‘은행장 용퇴의 변’이라는 자료에서 “지금과 같은 튼튼한 기반 위에서라면 후진에게 은행경영을 맡기는 것이 은행을 지속적으로 성장·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확신에서 임기 만료 전에 퇴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이행장의 사퇴로 후임 행장에는 송달호 부행장이 사실상 내정된 상태다. 오는 2000년 2월 3연임 임기가 끝나는 상업은행 정행장은 중도 사퇴로 고민하다 결국 명예퇴진을 택했다.정행장의 퇴진은 오랜 파트너이며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오는 2월 중임 임기가 끝나는 배찬병 전무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금융당국 관계자는 “정행장은 은행장으로서 하자(흠)가 없고,경영도 잘해왔기 때문에 그가 임기를 채우지 않고중도 사퇴키로 한 것은 은행권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비슷한 입장에 있는 은행장들이나,개혁을 원하는 정권교체기의 분위기와 맞물려 비슷한 사례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그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상업은행은 지난 10일 이사회를 열어 은행 부실채권과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감 및 비용절감 등을 위해 13명이 정수인 임원의 수를 11명으로 2명 줄이기로 했었다.정행장의 결단으로 주총에서 상무 2명을 줄여 임원진을 뽑는 과정에서도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에서는 김 당선자가 은행인사에 간섭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은 정치권 등이 인사에 간여하지 않되,외환위기로까지 몰고 온 은행권의 부실경영과 관련된 임원진의 책임은 물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지난 해 흑자경영을 한 주택 국민 신한 하나 보람은행 등을 제외한 은행들의 임원들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제일과 서울은행이 13명인 임원정수를 각 10명으로 줄이기로 했으며,조흥 등 다른 은행에서도 2∼3명 줄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임원승진이 바늘구멍인 것은 말할 나위없다.다만 유시열 제일은행장과 신복영 서울은행장은 사태수습 차원에서 투입돼 자리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 이규증 국민은행장 사의

    오는 7월 29일 중임 임기(6년)가 끝나는 이규증 국민은행장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전격 사임의 뜻을 밝혔다. 은행감독원 관계자는 “이행장이 최근 이수휴원장에게 임기를 채우지 않고 2월 주총에서 사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 외환협상 챙기며 새 정부 진용 구상

    ◎김 당선자의 설연휴 ‘집권플랜 가다듬기’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설 연휴기간 동안 청와대와 시내 모처에 각각 머물며 정국 구상을 가다듬는다. 김당선자는 27일부터 연휴 사흘동안 집권플랜을 가다듬기 위한 장고에 들어간다.시내 모처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보내면서 새정부 출범을 위한 구상을 총정리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당선자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의미는 별반 없을 것으로 보인다.오히려 “생애에서 가장 무겁고 바쁜 연휴가 될 것”(고재방 비서실차장)이라는 전언이다.당선자가 단안을 내려야 할 과제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측근들에 따르면 연휴기간중 매듭지어야할 구상은 크게 세 갈래다. ‘발등의 불’은 역시 외환협상 구상이다.한 측근은 “우리야 연휴지만 미국은 아니다”며 뉴욕 외환실무협상이 계속중임을 상기시켰다.그러면서 “연휴중에도 당선자가 수시로 김용환 협상대표나 유종근 경제고문 등을 불러 지시를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단기외채의 중장기외채로의 전환에 따른 이자율 조정을 위해서다. 새정부진용 구축도 초미의 관심사다.당선자는 ▲2월초 청와대 수석비서진 내정 ▲2월중순 각료 내정 ▲2월말∼3월초 국민회의 당직개편 등 3단계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한 측근은 이와 관련,“스케줄상으론 3단계지만 인선구상은 전체적으로 하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여권 진용갖추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탓이다. 정리해고제에 대한 묘수찾기도 빼놓을 수 없는 숙제다.당선자로선 이에 대한 노·사·정 합의도출에 앞서 재벌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듯하다.또 재벌기업간 ‘빅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편 김대통령은 연휴동안에도 청와대에 머물 예정이다.지난 신정때도 청남대에 가지 않았다.경제난 등을 감안,청와대를 지키면서 외환위기 극복 등 퇴임때까지의 정국운영 구상을 정리할 예정이다. 구정 연휴에 마산에 거처하는 부친 홍조옹이 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 얼룩진 헌정(대한민국 50년:4)

    ◎52년 첫 개헌… 87년까지 9차례 뜯어 고쳐/이승만 이어 박정희도 종신집권 노려 헌법손질/69년 3선 개헌­72년 유신 선포… 대통령 간선 고착/전두환 쿠데타 집권… 87년 6월 항쟁 직선제 확립 이승만은 1954년 2차개헌으로 종신집권에의 길을 텄다.그러나 이는 몰락을 재촉했다.1960년 4·19혁명은 마침내 이정권의 무한권력 추구를 좌절시켰고 6월15일 3차 개헌을 가져왔다.큰 골격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다.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률유보조항을 손질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폐해를 정리하는데 촛점을 맞췄다.그러나 내각제 도입으로 3·5부정선거범 등에 대한 처벌근거인 정·부통령선거법이 소멸되자 혁명 주체세력들은 거세게 반발했다.학생들의 의사당 난입 등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집권민주당은 11월29일 이승만 정권하의 반민주행위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 근거규정을 헌법 부칙에 설치하는 4차개헌을 단행했다. 헌법의 수난은 갈수록 심화됐다.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군사쿠데타는 헌정파괴라는 극단적사태를 몰고왔다.국회는 즉각 해산됐다.이듬해 12월16일엔 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의한 5차 개헌이 단행했다.이 개헌안은 인권규정을 보강하고 미국식 사법심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외견상으로는 3권분립을 강화하는 것이었다.그러나 핵심 골자는 부통령제 폐지와 정당설립 규제 등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몰아주었다. ○6차 3선개헌 날치기 처리 박정희는 5차개헌으로 부활된 새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중임제한 규정에 부닥치자 전에 이승만이 걸었던 전철을 답습했다.영구집권의 획책한 것이다.중임제한 폐지 개헌안이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디ㅊ치자 1969년 10월21일 새벽 국회 제3별관에서 야당의원들을 따돌린채 여당과 일부 무소속 의원들만으로 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3선개헌으로 불리는 6차개헌이 그것이다. 개헌뒤 실시된 1971년 선거에서 박정희는 대통령 3선에 성공했다.그러나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했음에도 박정희 634만표,김대중 539만표로 나타난 개표결과는 영구집권에 대한 위기감을 증폭시켰다.그래서 영구집권을 확실하게 제도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이것이 바로 헌정 수난의 절정판인 이른바 유신헌법이다. 유신은 1972년 7월17일에 선포됐다.이날은 아침나절 약간 흐렸으나 낮부터는 전국적으로 맑았다.시민들의 생활은 평온했으며 각 관청들만 막바지에이른 국정감사로 다소 부산했다.이날 상오까지만 해도 국체변혁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나 물밑에서는 이를 위한 시나리오가 극비리에 착착 진행됐다.상오9시 국무총리 김종필은 우시로쿠(후궁호랑) 주한일본대사와 만나 약 20분간 요담한데 이어 10시 15분부터는 필립 하비브 미국대사와 40분간 요담을 가졌다. 유신을 통보한 자리였지만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그러나 하오가 되면서 여기저기서 이상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서울 소공세무서에 대한 국정감사를 행하던 재무위에서는 “야당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회가 해산될지 모른다”는 협박투의 발언이 여당의원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날 상오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는 박정희 주재로 마지막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박정희는 둘러앉은 보좌관과 비서관들을 응시하다가 서랍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모두 한번씩 읽어보고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시오” ‘하오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 선포,헌법 정지,국회 해산,정당 및 정치활동 중지,개헌,….’달리 의견이 있을수 없었다.너무도 엄청난 일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이어 외무장관 김용식은 하오5시 주한외교사절 23명을 불러 유신단행을 설명했다. 계엄선포 H아워를 1시간 앞둔 하오6시 청와대에서는 영문도 모른채 소집돼온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령을 의결했고 같은 시간 시내 전역의 주요 공공건물에는 계엄군이 포진하기 시작했다.중대뉴스가 예고된 하오7시,라디오에서는 헌법의 효력을 2개월간 중지시키겠다는 박정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유신이 일단 선포되자 개헌작업은 미리 짜인 각본에 맞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작업은 신직수 법무·이경호 보사·서일교 총무처장관과 유민상 법제처장,헌법학자 한태연·갈봉근 교수로 구성된 법무부 헌법심의회에서 맡았다.하지만 실상은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팀으로 구성된 일명 ‘기획소위’가 건네준 골자를조문화하는 것에 불과했다.이때 심의회의 역할이 어땠는지는 “이 헌법의 기본골격은 이미 고위층에서 만든 것이므로 골격 자체에는 일체 손을댈 수 없습니다”고 한 신직수의 발언이 입증하고 있다. 개헌안은 유신선포 25일만인 11월21일 국민투표로 확정됐다.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간선과 대통령의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국회의원 3분의1과 대법원장 등 전법관 임명권 보유 등 사실상 대통령 1인의 무한권력 창출이었다. 박정희에게 유신헌법은 종신집권을 담보해주는 안전판이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종말로 향하는 단초이기도 했다.국내 상황은 팽팽한 긴장으로 치달았고 최대우방 미국과도 갈등이 깊어갔다. ○80년 8차개헌 간선제 유지 서울신문이 최근 입수한 미국 국무부의 ‘한미관계의 조사’라는 보고서는 당시 한미관계가 급속하게 악화돼 갔음을 보여준다.유신 직후인 73년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를 토대로 국무부가 작성한 이 문건에서 이미 미국이 경제원조 중단과 미군철수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안팎으로 시련을 겪던 유신은 끝내는 1979년 박정희의 피살과 함께 또한번의 헌정중단 및 개헌을 초래했다.공백상태의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1980년 10월27일 복지규정 보강 등으로 위장한 8차 개헌을 실시하지만 권력획득의 핵심인 대통령 간접선거는 그대로 유지했다.전두환 군사정권은 강압적 통치로 일관하다 직선제 개헌 요구로 상징되는 전국민적 저항에 굴복하고 말았다.그래서 87년 6월29일 개헌을 수용하기에 이른다.이 9차 개헌의 결과물이 현행 헌법이다. 헌정 50년을 맞는 올해는 그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가 정권을 인수인계하는 뜻깊은 해다.하지만 헌법은 또다시 개정의 고비를 맞고 있다.내각제 공약을 내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정권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미,73년부터 “유신철회” 압박/본사특별취재반,미 하원보고서 입수 확인/“주한미국 철수” 일방선언­‘코리아게이트’ 돌출 유신이 절정을 이뤘던 1970년대 중반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급기야 1977년 3월9일 주한 미지상군의 철수를 일방선언했고 6월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의 청와대 도청사건이 불거졌다.한국내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한국정부의 항의가 거세자 미국은 박동선 사건으로도 불리기도 했던 코리아게이트를 돌출시켜 한국정부를 더욱 옥죄었다. 모두가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철회를 겨냥한 미국정부의 압박전술이었다.그런데 미국은 이처럼 유신에 대해 명백하게 거부태도를 보이기 훨씬 전부터 유신의 몰락을 예견한 교포들의 지적들을 주목했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수단도 강구했었음이 최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문건에서 확인됐다. 이 문건은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가 1978년 작성한 ‘한미관계의 조사’(Investigation of Korean­American Relations)라는 보고서에 포함된 것으로 1973년 9월 미연방수사국(FBI)의 정보보고를 토대로 하고 있다. 문건은 김대중 등 미국내에서 반한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과 교포들의 증언을 인용한 것이다.문건은 “남한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성으로 인해 아시아권에서 점차고립되는 상황이고 대미관계에서도 원조와 군사지원을 둘러싸고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문건은 이어 “한국인들은 만약 미국이 일본과의 공조아래 경제원조 및 권사지원 철회로 압력을 가할 경우 박정희 정권은 급격히 붕괴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부터 미국내에서 한국 중앙정보부의 활동에 대한 FBI의 사찰이 강화됐다.이와 더불어 한미 정부간에 인권침해와 내정간섭을 놓고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됐던 사실에 비추어 이 보고서는 미국정부의 정책결정에 큰 작용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열 문화부 차장급 김종면 문화부 기자 박정현 문화부 기자 서정아 문화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한·일 어업협정 동시 파기/일 외상,한국에 통보 검토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 일본 외상은 17일 난항중인 한·일 새 어업협정 체결 협상과 관련,현행협정의 양국 동시 파기 통보를 검토중임을 시인했다. 오부치 외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측 모두 일단 (현행협정을) 백지화한 뒤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빠르면 다음주 파기 통보를 각의에서 결정할 의향임을 밝혔다.
  • 김 당선자·미 재무부 장관 대화록

    ◎“외채연장보다 투자유치 더 중요”/김 당선자­“우리 경제체제 국제관행 맞게 개혁”/서머스­“부실은행·기업정리 신속한 결단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로렌스 서머스 미재무부부장관과의 16일 면담은 간혹 조크가 오가는 가운데 1시간10동안 진행됐다. 김당선자는 우리 정부의 IMF 협약이행 의지와 투명성 확보를 강조했고,서머스 부장관은 신속하고 강력한 대처를 희망했다.이 과정에서 G­7에서 들어오기로 된 80억달러에 대해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긴장감도 빚어져 아직도 외환위기의 파고가 힘겹게 진행중임을 반증했다. ○미와 강력한 안보협력 ▲김당선자=IMF와의 협상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데 우리 국민도 동의하고 이해한다.이번 주말 김용환 비대위위원장을 단장으로 우리 사절단이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할 것이다.외채의 연장은 그대로 빚으로 남고 앞으로 갚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출증대와 외국의 투자유치다.이를 위해 한국이 외국자본가에게 유리한 투자국이 되도록 개혁해 나가겠다.우리의 모든 경제체제를국제관행과 조약에 맞게 하겠다.또 우리는 경제 재도약을 위해 안보를 강력히 유지할 것이며,국제사회에서의 위상강화는 물론 우리 자신을 위해 미국과 강력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부실기업 조속 정리를 ▲서머스 부장관=(클린턴 미 대통령의 축하 메세지를 전하면서)‘아시아의 만델라’가 되기를 기원한다.(한국정부의) 모든 조치가 신속하고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조건도 중요하지만 빨리 해야한다.미국이나 IMF는 한국정부의 과거 실수에 대해 벌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부실은행과 부실기업에 대한 신속한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김당선자=우리는 지난해 11월과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인도네시아,태국의 경우와 다르다고 말하지 않겠다. ▲서머스 부장관=고통은 빨리 처리하고 해결의 위치로 나가야 한다.김당선자도 초반 국민지지가 함께 할 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제신임 인사 추천을 ▲김당선자=(저서 ‘대중경제참여론’에 서명한뒤 전달하며)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신임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추천해 달라.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국제신인도 확보가 중요하다.립튼 차관 방문후 IMF에서 20억달러,G­7에서 80억달러이 들어오기로 되어있는 데 아직도 G­7에서 80억불이 들어오지 않아 단기외채에 큰 문제가 있으므로 협력을 바란다. ▲서머스 부장관=G­7의 80억달러는 미국 금융계의 지원과 동시에 들어오게될 것이다.먼저 들어오면 혹시 시중은행에서 사용할 우려가 있다. ▲김당선자=80억달러가 먼저 들어와야 국제 금융계에서 무리한 조건으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기 때문에 먼저 들어올 수 있도록 협력해달라.
  • 제헌헌법 탄생과 훼절의 발자취(대한민국 50년:3)

    ◎48년 7월17일 대통령제·단원제 공포/48년 5·10총선후 헌법­정부조직법 기초위 출범/대통령제­내각제·단원제­양원제 17차례나 격론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대한민국 50년’이 지니는 가장 값지고 유별난 의미는 그것이 헌정의 역사라는데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그 탄생부터 굴절과 훼절로 출발했고 이는 곧 헌정의 비극,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948년 5·10총선은 정부수립 작업에 탄력을 붙여놓았다. 그 선거를 통해 개원한 제헌국회는 5월 31일 개원날부터 무엇보다 급한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초안을 만들어낼 기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을 선출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다음날 기초위원을 선출할 전형위원 10명이 선정됐고 6월 1일에는 서상일을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헌법학자 유진오 등 전문위원 10명도 위촉됐다. 헌법 초안 작성의 중추역을 맡은 유진오는 양원제,내각책임제,농지개혁,중요 기업의 국영화 등을 골자로 한 안을 내놓았다.이때 미군정 사법부장이던 전문위원 권승렬이 예고없이 독자안을 제출,위원회는 두 안을 각기 원안과 참고안으로 삼아 심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헌법 굴절의 역사는 곧바로 시작됐다. 1차독회 국회 부분에 이르러 한민당계와 조봉암이 양원제 반대론을 폈다. 이어 곧바로 다수위원의 반대로 확산,양원제는 졸지에 단원제로 바뀌었다. ○기초위선 내각제 원안 통과 여기서 유진오의 헌법초안 작업 참여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국회가 공식으로 제헌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회,김성수의 한민당 등 정부수립의 3대 주축세력으로부터 각각 초안작성을 의뢰 받았다. 이때 그는 앞의 중요 골자들을 수용할 것을 요구,3대 세력으로부터 동의를 받아놓은 터였다. 따라서 기초위의 단원제 채택은 의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묵시적으로 담합한 성격이 강했다. 유진오안이 근본적인 변질의 길로 들어선 것은 6월 16일 제2차 독회때부터다. 국회의장 이승만은 이날 부의장 신익희를 대동,심의장소인 중앙청 회의실에 예고없이 나타났다. 유진오의 내각제 옹호설명을들은 뒤 연설을 시작한 이승만은 자신은 내각책임제를 반대하며 반드시 대통령책임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마친뒤 휭하니 나가버렸다.바로 한달전 신익희를 통해 유진오에게 “내각책임제가 되면 대통령은 할 일이 적어지지만 부득이한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내각책임제가 대세였다. 오히려 내각제 반대를 주장하던 허정도 지지쪽으로 돌아설 정도였다. 이승만의 뜻에 관계없이 기초위는 관련조항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승만은 잠시 유진오 등을 상대로 회유에 나서봤지만 여의치 않자 며칠뒤 다시 기초위에 찾아와 협박을 가했다. 단순한 반대 표시가 아니라 만일 초안이 국회에서 그대로 채택되면 어떤 지위에도 취임하지 않고 국민운동이나 하겠다는 선언이 그것이다. 이 말을 던진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 이에 기초위원들은 허정과 유진오,전문위원 윤길중을 이화장에 보내 이승만을 설득하는 등 내각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내각책임제의 버팀목은 이내 무너져갔다. 한민당이 먼저 굴복했다. 22일 계동 김성수의 집에 모인 백관수 김도연 서상일 조병옥 등이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제로 바꾸는 초안수정 작업을 벌였던 것이다. 그 수정안은 이튿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본회의는 17차례나 토론을 벌였지만 대세가 이미 이승만쪽으로 기운데다 핵심 골간이 결정된 터여서 대통령중심제가 우세하게 돌아갔다. 그래서 안건상정 20일만인 7월 12일 내각책임제는 만세삼창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승만은 만장일치로 공화국 헌법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만장일치라는 이승만의 표현은 잘못된 것이었다. 이날 표결방법은 기립이었다. 당시 대동청년단 소속의원이던 생존 제헌의원 김인식(현 제헌동지회장)은 “이문원 의원이 의원석 중간쯤에 기립하지 않고 끝까지 앉아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승만은 당시 대통령제를 택할 경우 초대 대통령이 확실시되는 사실상의1 인 권력자였다. 대중적 지지면에서 그와 겨룰수 있는 김구와 김규식은 5·10 총선을 거부,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어떠한 정치행위에서도 입지가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윤길중은 나중 “제헌당시 한 사람의 고집으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했던 것이 그후 우리 헌정사에서 독재,장기집권,정통성문제 등에 대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어떻든 대한민국 헌법은 7월 17일 이승만의 서명 공포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그탄생의 내력은 윤길중의 증언처럼 장차 전개될 헌정사의 불행을 예고하는 서막이기도 했다. ○이승만 고집 대통령제로 이를 입증하듯 1952년 7월 7일 제1차 개헌이 이른바 발췌개헌이라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달여 전 총선 참패로 국회에서 선출하는 대통령재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승만의 자유당은 직선제를 시도했다. 그것도 국회제안 개헌안과 행정부제안 개헌안 가운데 일부를 발췌,국회에 공포분위기를조성한뒤 기립표결로 통과시켰다. 1954년 11월 29일의 2차개헌(사사오입 개헌)도 헌정사에 얼룩을 덧칠했다. 자유당은 직선제의 문은 열었지만 대통령 중임제한규정에 부딪치자 이 벽을넘기 위해 다시 개헌을 꾀했다. 국회 투표결과는 의원정수 203명중 가결에 필요한 찬성표가 136명에서 1명 모자라는 135표로 나왔다. 부결이 선포됐지만 자유당은 사사오입이라는 해괴한 계산원리를 끌어들여 가결로 밀어붙였다. ◎증언/“대통령제였지만 내각제 요소 많아”/김인식 제헌동지회장 1948년 7월 제헌헌법의 탄생과정을 지켜본 제헌의원은 현재 5명만이 생존해 있다. 그중 3명은 병석에 누워있어 당시 상황을 기억할수 있는 사람은 김인식 제헌동지회장(85) 등 둘뿐이다. 김회장은 당시 헌법이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책임제로 급변한 상황을 “하룻밤 사이에 역사가 뒤바뀌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본회의에서 헌법초안축조토론을 많이 했지만 대통령제에 대한 토의는 활발하지 않았어요. 모두들 이박사(이승만)가 고집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들 믿었지요.” 김회장은 그러나 제헌헌법은 문제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으며 의원들의 자부심도 컸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제였지만 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가미돼 권력집중을 막을수 있었어요. 실제로 제헌국회때는장관도 국회에서 불신임 가결만 하면 곧바로 바뀌었고 이승만 대통령도 정기적으로 국회에 나와 국정에 대해 설명하고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데 2대국회 중간쯤부터 이대통령이 국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헌법도 자기 뜻에 맞춰 갈아치우기 시작하더군요.” 김회장은 우리 헌정사의 불행의 출발이 바로 여기서부터 싹텄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개인도 자기가 지은 집에 대해서는 애착이 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자기가 지은 멀쩡한 집을 자기 손으로 허물었어요. 나라의 장래가 이상한 방향으로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그 생각이 맞아들어갔어요.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고요.” 김회장은 제헌의 주역으로서 헌정사 50년을 통해 얻은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위정자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정부를 수립하고 헌법을 만들던 그때의 건국정신과 제헌정신만 지켰다면 그런 불행들은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도 그렇고요.”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문화부 차장 최병렬 문화부 차장급 김종호 문화부 기자 박정현 정치부 기자 서정아 정치부 기자 강선임 DB부 기자
  • 한은 김영대 이사 중임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8일 정기회의를 열고 한국은행 김영대 이사를 오는 13일자로 중임 발령했다.
  • 공교육 정상화 대수술 시작/인수위,위성과외 등 전면 재검토 배경

    ◎연 4조∼5조원 육박 사교육비 절감/중고생 불법 해외연수 바람도 차단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대통령직인수위 활동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인수위는 휴일인 4일에도 이종찬 위원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출근,재경원이나 대통령 비서실 등 주요 정부부처에 대한 업무보고를 토대로 취임초 100대 과제 선정작업에 박차를 가했다.특히 이날 인수위가 사회문화 분과위회의를 통해 위성과외방송과 조기영어교육을 전면 재검토키로 한 것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첫 단추로 여겨진다.한해 4∼5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를 삭감함으로써 사회 저변에 깔린 부정부패 요인을 척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한길 대변인은 상오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사회문화분과위 회의에서 “위성과외는 대표적인 실패작이라는 것이 위원들의 결론”이라고 발표했다.옛 신한국당이 여당시절 충분한 사전 검토·준비 작업없이 대선용으로 졸속 시행하는 바람에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분과위는 특히 위성과외 방송의 시청률이 예상보다 훨씬 낮아효과가 의문시되고 과외를 과외로 치유하겠다는 발상자체가 비교육적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조기영어교육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었다.그동안 교육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겠다는 것이 분과위의 견해다.교육강사나 시설 등 치밀한 준비작업없이 졸속 시행된 조기영어교육이 조기영어 사교육 바람을 부추겼다는 것이 분과위의 판단이다.중·고생들의 불법·탈법적인 해외 어학연수나 무자격 외국인 강사의 대량유입도 정부의 무원칙적인 외국어 교육정책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지역민방이나 케이블TV 등도 연쇄부도로 교통정리가 될 전망”이라며 “특히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적어도 절반은 인원을 감축하고 나머지 절반도 연봉제 등으로 구조가 바뀔 것”이라고 언급,인수위 차원에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극복방안을 모색중임을 시사했다. 인수위는 다음주부터 인수업무가 본격화됨에 따라 이날 인수위 건물에 출입자를대상으로 한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청와대 경호팀과 탐지견을 동원,건물전체를 샅샅이 훑는 등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상(미국의 대통령 문화:3)

    ◎휠체어 앉아 ‘미국’을 일으킨 영웅/맥빠진 국민에 “무엇이든 해보자”/노변정담 설득… 공황극복 견인/국민신뢰 대단… ‘대통령학’ 모델/정계입문 초기 잇따라 선거 패배/소아마비로 “정치생명 끝장” 중평/목발 짚고 민주 전대 웅변 감동적 “나는 여러분에게 맹세합니다.또 나 스스로에게 맹세합니다.미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펼 것을 말입니다” 1932년 7월2일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장.대통령후보지명 수락연설에 나선 프랭클린 루즈벨트 당시 뉴욕주지사가 처음으로 ‘뉴딜’을 외쳤을때 아무도 그 한 단어가 미국을 절망에서 구출하고 세계최고의 번영으로 인도할‘키워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후 ‘뉴딜’은 ‘대공황’의 반대어로 자리매김했으며 미국민의 자존심과 긍지를 나타내고 승리를 대표하는 어휘가 됐다. 루즈벨트는 선거운동과정에서도 대공황 여파로 자신감을 상실한 채 무기력해져 있는 미국민들을 향해 외쳤다.“어떤 방법이든 택하여 그것을 해봅시다.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른것을 해봅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해보자는 것입니다” 워싱턴 중심의 몰공원 남쪽 포토맥강가에 지난 여름 개장된 프랭클린 루즈벨트 기념공원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들까지 하루종일 수많은 관람객들로 붐빈다.미 역사상 훌륭한 대통령 빅3에 들면서도 수도 워싱턴에 이렇다할 기념관 하나 마련돼 있지 않아 워싱토니안(워싱턴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도 많은 아쉬움을 불러일으키던 참이어서인지 더욱 찾는 사람이 많다. 이 공원에는 그의 재임 4기를 시기별로 네개의 공간에 나누어 각종 상징적 조형물을 세우고 또한 대표적 어록을 벽에 새겨놓아 당시의 시대상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업적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미시간주에서 관광온 테드 모간씨(74)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국민 설득을 위해 자주 사용했던 라디오연설을 들은 기억이 있다”면서 한 실업자가라디오 앞에서 대통령의 방송을 듣고 있는 상징물 앞을 떠날 줄 몰랐다.‘노변정담’(fireside chats)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시도됐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당시 절망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있는 복음이었다고 모간씨는 회상했다. 1차대전 이후 호황기의 절정에 다달았던 29년 말부터 갑자기 몰아닥친 대공황은 3년동안 5천개의 은행을 문닫게 했으며 그에 따른 기업과 공장들의 연쇄도산이 뒤를 이었다.근로자들이 땀흘려 저축한 돈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전체 노동력의 40∼50%에 달하는 3천4백만의 실업자가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거리를 배회했다. 이같은 암흑기를 지나면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눈덩이처럼 커진 미국민들에게 루즈벨트는 공황의 종식을 위한 ‘뉴딜’을 외치며 균형예산과 실업자 구조,금주법의 폐지 등을 공약으로 제시,무기력한 후버 행정부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특히 루즈벨트가 실의에 빠진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선거공약의 내용및 실현성 여부를 떠나 ‘의욕’이라는 심리적인 자극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그는 희망이 사라진 곳에 희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확신이 상실된 곳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결국 선거결과는 루즈벨트가 유효표의 57%를 득표,선거인단 472명을 확보함으로써 40% 득표에 선거인단 59명을 확보한 후버 현직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했다.이렇게 해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세계 최강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4선 대통령 루즈벨트시대가 개막된 것이다.초대 워싱턴 대통령 이래 불문율로 지켜져온 중임 전통에도 불구하고 미국민들로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직을 부여받을 정도로 그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으며 그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경제위기와 전쟁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미현대사에 있어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모델로 기록되고 있다. 1882년 뉴욕주 업스테이트의 허드슨강변 동쪽 언덕에 위치한 하이드 파크에서 출생한 루즈벨트는 부유한 가정형편 덕분에 개인교습을 받고 사립학교에 다녔으며 어려서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는 등 풍족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그의 성장기에 대통령으로 명성을 날리던 테오도어 루즈벨트(26대)는 먼 친척 형(12촌)뻘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그의 부인이 된 일리노어 루즈벨트는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카로 부친을 일찍 여의였기때문에 1905년 그들의 결혼식에는 현직 대통령이 신부를 데리고 입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바드 대학과 콜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191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정계입문한 루즈벨트는 각종 선거에서 여러차례 낙선을 경험하는 등 초기에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우드로 윌슨 대통령(28대)에 의해 해군성 차관보로 임명돼 1차대전 당시 중요한 해군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이같은 1차대전때의 그의 경험은 대통령으로 2차대전을 맞았을때 십분 활용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했으며 1920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제임스 콕스 대통령후보의 런닝메이트로 출마해 고배를 마시는등 중앙정치무대와는 인연이 없는듯 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잠시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정치를 떠나 있을때 그는 엄청난 개인적 불행을 당하게 된다. 이듬해 8월 캐나다 해안에서의 휴가중 찬물에 빠져 감기에 걸린 것이 척수성 소아마비로 발전,양다리를 못쓰게 됨은 물론 팔과 손에까지 부분 마비가오게 되었다.당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조지아주의 웜스프링스로 가서 3년동안 기적적인 투병으로 그는 스스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일 수 있었다. 1924년 그가 휠체어를 타고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나타났을때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으며 그가 목발에 의지해 단상에 기대서서 연설할 때는 그의 인간승리 모습에 감동적인 환호를 보냈다.결국 그는 1928년 뉴욕주지사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루즈벨트 도서관 사서 레이몬드 타이크만/“항상 국민과 함께한 지도자”/4연임,전쟁 마무리 위한 국민의 선택 FDR(프랭클린 D.루즈벨트의 약자 애칭)학의 권위자인 뉴욕주 하이드파크 프랭클린 루즈벨트 도서관의 선임 사서레이몬드 타이크만 박사는 그가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과 함께 하려고 노력한 대통령이었다고 소개했다. -FDR이 미국민들로부터 빅3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공황으로 잃은 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그는 국민들과의 직접대화를 택했다.라디오 연설시간인 ‘노변정담’을 통해 그는 정부정책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이해를 구했다.국민들은 그가 국민편에 있다고 생각했다. -뉴딜정책이 국민들에게 어필한 이유는. ▲후버 대통령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제퍼슨적인 자유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면 FDR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해밀튼적인 보수주의 입장에서 있었다.대공황으로 의욕을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에게 정부와 대통령의 적극적인 유도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불문율로 돼있던 중임 전통을 깨고 3연임에 도전하게된 이유는. ▲FDR도 처음에는 주저했다.그러나 대공황의 그늘이 아직 걷히지 않은 가운데 2차대전이 발발했고 불과 수개월만에 프랑스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의연임은 국민적 합의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연임 역시 전쟁의 성공적 마무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 때문이었다. -FDR에게 4연임까지도 허용했던 미국민들이 1951년대통령 임기를 중임으로 제한하는 22차 헌법수정안을 서둘러 마련한 이유는. ▲국민들이 경제위기및 전쟁위기 상황하에 있을때는 강력한 정부,강력한 지도력을 원했지만 일단 모든 것이 정상상태로 회복된 후에는 큰 정부의 필요성도,집중된 권력의 필요성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견제와 균형의 기본원칙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 한은 총재 임기 4년중임/재경위 의견접근

    국회 재경위는 10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한국은행법 개정안중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인 한은총재의 임기를 ‘5년단임’에서 ‘4년 1차연임’으로 수정한다는데 의견접근을 이뤘다. 법안심사 소위는 또 재경원장관의 재의요구권과 관련,‘재경원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이 정부정책과 상충될 때에 한해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 내용으로 정부 원안을 수정키로 했다. 이밖에 중앙은행이 매년 정부와 협의,물가안정목표를 정해 공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조항을 삭제키로 잠정 합의했다.
  • 공선협 ‘선거문화 개혁’ 공청회 주제발표 요지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연합회(공선협)는 15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선거문화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가졌다.이날 공청회는 공선협 회원을 비롯,YMCA 흥사단 경실련 등의 단체 회원들과 홍사덕 정무1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선거개혁의 방향과 과제,미디어정치,정책선거 실현과제,여론보도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공선협은 공청회에서 제기된 개혁방안을 모아 유권자 선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다음은 박재창 숙명여대교수와 박기수 중앙선관위 선거관리관의 주제발표문 요지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대통령 임기 4년·중임제 검토를 선거운동 기간을 정해서 법적 단속을 하는 것은 선거운동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아 실효성이 적다.따라서 선거자금의 사용을 규제하는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대통령 선거의 당선자가 유효투표수의 45% 미만일 때는 최다 득표자 2명을 상대로 한달뒤 결선투표를 실시해 다수대표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되 현재의 단임제를 중임제로 바꾸고 선거일을 국회의원 선거일과 통일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단임제는 권위주의 정권하의 특수한 상황에서 정당성을 갖던 제도인 만큼 중임제를 도입해 정치적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18세가 되면 근로자로서의 납세의무와 병역의무를 부과하면서 참정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부통령제를 도입한다면 과도히 집중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견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TV토론회에서 두명의 후보자가 맞토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의 국가가 여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처럼 여론조사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타당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그리고 후보들간 무원칙한 합종연횡을 배척하고 유권자 중심의 선거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박기수 선관위 관리관/금권선거·흑색선전 개혁대상 1순위 선거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합리적인 제도의 마련과 국민의식이 갖춰져야 한다.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돈이 들어가는 요인을 최소화하고,돈이적게 드는 선거운동 방법을 개발하며,공영제를 확대해야 한다.유권자는 의식과 행동의 2원화에서 나타나는 가치관의 이중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으로 표를 구걸하는 선거행태는 선거문화 개혁대상의 1순위이다.근거없는 사실로 오직 당선만을 위한 비방·흑색선전은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가져오고 결국은 국민에게 정치 냉소주의를 불러 일으킨다.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를 위해서는 정견·정책 대결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문화개혁을 위해서 연고주의 투표행태의 국복과 정책경쟁 위주의 선거풍토를 조성해야 한다.연고주의에 의한 투표를 하게 되면 다른 처방은 백약이 무효가 된다.이 때문에 선거문화는 선거자체 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의 영향아래 놓여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선거관련 당사자 모두가 각각의 영역속에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선거문화의 개혁은 한 두사람의 의지나 특정분야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이제 국민 모두가 연말 대통령선거에서부터 공명선거 의식을 행동화해 나가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 비 대법,개헌청원 기각/라모스 연임 제동

    【마닐라 AP AFP 연합】 필리핀 대법원은 23일 대통령 중임을 위한 개헌 서명운동을 허용해달라는 시민단체의 청원을 전원합의로 기각했다. 13명의 대법관들은 5백80만명으로부터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요구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개혁과 근대화 행동을 위한 시민제안그룹’에 대해 이는 적법하지 않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에는 하자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또 국민이 직접 개헌을 발의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한 2차례의 기존 판결에 대한 재심 요구와 관련,8대5로 이유없다며 기각했다. 필리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오는 98년 5월로 예정된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라모스 대통령 지지세력의 개헌 서명운동에 사실상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보인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몰락후 1년만인 지난 87년 개정된 헌법은 독재를 막기 위해 대통령의 임기를 6년 단임으로 제한했으나 올들어 중임을 허용하자는 개헌요구가 대두되면서 큰 사회적 혼란이 야기돼왔다.
  • 여 ‘개헌여부 국민투표’ 공약 검토

    ◎차기대통령 임기 1년뒤 실시 약속 제시/이 대표 “현제도 권력집중에 문제”… 대안모색 시사 신한국당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필요한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다음 대통령 임기 1년뒤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대선공약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와 관련,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21일 구기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차기정부에서 개헌추진의사를 묻는 질문에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게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4면〉 이대표는 이어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현재의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말해 내각제,이원집정부제,대통령 4년 중임제 등 다양한 형태의 대안이 모색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신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이날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연합을 확실히 하기 위해 내각제를 당론으로 수용할 수 있으나,오는 12월18일 대통령선거 전에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라,공약을 통해 개헌과 관련된 국민의사를 묻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다음 대통령 임기개시후 1년이 되는 99년 2월 국민투표를 실시,개헌논의가 시작되면 15대 국회 임기만기인 2000년 5월까지는 내각제 채택 등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한국당은 특히 권력구조 개편은 정당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국민투표 방안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 “개헌 열린마음으로 검토”/이회창 대표 ‘대통합 정치’ 회견

    ◎‘대통령제’ 정강 삭제여부 당론 수렴/대통합론은 ‘보수대연합론’ 아니다/대통령 중임제·책임총리제 필요성 인정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21일 상오 구기동 자택에서 보도진과 만나 최근의 정치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보수대연합론’에 대해 반발하는 인사들도 있는데. ▲나는 그동안 대통합의 정치를 얘기했지,보수대연합에 대해서는 얘기한바 없다.대통합의 정치는 보수와 개혁,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 함께 가는 것이다. ­차기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할 생각이 있는가.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당내 일각에서 15대 국회 임기중 내각제 개헌을 통해 범여권의 결속을 도모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데. ▲그런 의견이 다수인지,아닌지는 봐야지….어찌됐든 그런 얘기도 있으면 들어봐야지. ­얼마전 TV토론에서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바 있는데. ▲미국의 경우도 대통령이 재선된 이후에는 권력누수현상이 나타난다.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취임한 지 2년만 되도 권력누수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를 기본 전제로 하는것인가.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된 현재의 제도는 문제가 있다.지금과 같은 대통령제가 과연 헌법의 취지에 맞느냐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지금과 같은 대통령제로는 책임총리제 밖에 할 수 없다. ­정강정책 전문중 ‘역사 바로세우기’ 문구를 삭제할 예정인가. ▲사실 무근이다. ­정강정책중 ‘대통령중심제’라는 용어를 삭제할 생각인가. ▲당론을 수렴해 봐야지. ­대통합을 위한 권력분담의 정신은 당 지도체제 개편에도 적용되는가. ▲그렇다. ­이한동 고문을 만나 차기 당대표직을 제의했는가. ▲(웃으며)그건 그쪽에 가서 물어보는게 좋지 않겠느냐….
  • 이 대표 최후의 승부수 뭘까

    ◎30일 전대서 지지율 회복 특단대책 발표/‘집권후 권력구조’ 신축적 태도 표명 검토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총재직 이양을 위한 9·30 전당대회에서 회심의 승부수를 내보일 작정이다.특히 이대표는 총재직 수락연설을 통해 정치·경제·사회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윤원중 대표비서실장은 18일 상오 기자들과 만나 “전당대회때 국민이나 언론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지켜볼 사안이 있을 것”이라며 이대표가 모종의 지지율 회복 대책을 준비중임을 시사했다. 이대표는 전당대회에서 처리될 정강정책 개정안에서 ‘대통령중심제’ 조항을 변경,집권이후 권력구조 개편 논의에 신축적인 태도를 보이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국민대통합 정치의 기본틀 속에서 다른 정파와의 연대를 활발히 모색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이대표는 또 기본정책중 ‘금융실명제 정착’ 조항을 없애는 대신 정책 차원에서 대대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표는 특히 당헌당규상에 집단지도체제 조항을 삽입,당내 비주류에 대한 포용 노력을 명시화할 방침이다. 지도부는 정강정책과 당헌당규 개정 작업을 다음주초까지 마무리한뒤 당무회의의 의결을 거친다는 계획이다.이와관련 이대표는 이날 구기동 자택 조찬회동에서 이상득 신경식 박희태 김동욱 유흥수 의원 등에게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한 계기가 될테니 좋은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이대표의 복안에는 의원직 사퇴와 외부인사 영입 카드도 포함돼 있다는 전언이다.특히 당 일각에서는 전당대회의 대국민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 영입 인사들을 무대 전면에 등장시키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그러나 외부인사 영입 일정은 “지지세가 회복된 10월말 이후 고려할 카드”라는 이견이 만만찮아 이대표의 지지율 회복추이와 맞물릴 전망이다.
  • JP “합종연횡 국민이 결정”

    ◎야 후보 단일화 상황에 따라 달라질것/대여 내각제연대 포기않고 계속 추진 합종이냐,연횡이냐.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18일 대선행보를 둘러싼 속내를 공개했다.야권후보 단일화와 여권과의 내각제연대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놓은 것이다. JP(김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합종연횡론을 털어놓았다.그는 “인생은 자의반 타의반이며 상호규정이 교호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리고는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뺐다.추이를 지켜본 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JP는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게 찬물을 끼얹는 언급을 주저하지 않았다.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에 대해 “9월말은 1차 시한이지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못박았다.또 “상황 진척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딴마음’을 숨기지 않았다.국민회의 김총재와의 담판도 회피했다. 그는 지난번 제의했다가 거부당한 김영삼 대통령과의 내각제 연대에 대해 “조금 더 두고보자”고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지난번 신한국당측 밀사와 나눈 얘기들을 간접 소개하면서 이런 속내를 보였다. JP는 여권측이 제의했던 책임총리제에 대해서는 “권력은 나눠줄 수 없는 마성이 있는 것”이라며 내각제를 강조했다.이어 “그쪽에서 시간이 없다고 하기에 왜 시간이 없느냐,한달이면 된다고 했다”고 소개했다.여권측이 16대 내각제 개헌 수용의사를 내비친 것을 말하는 듯 했다. 그는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이 없다”며 “누군가,어디선가 노력하고 있을거야”라고 말해 여권측과의 물밑접촉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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