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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 “2與공조도 국민에 대한 약속”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는 23일 “내각제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라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주당측에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그 쪽에서도 무슨 리액션(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내각제 강령 문제를 놓고 2여간 물밑대화가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김 명예총재는 “내각제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자 공동정권의 기반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면서 “5년이고 10년이고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내각제도 국민에 대한 약속이지만 2여공조도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에 공조는 분명하게 할 것”이라고 밝혀 자민련의 공동정권 철수가능성을 일축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美디트로이트 모터쇼 대우차 인수전 가열

    [디트로이트 김환용특파원] 모터쇼가 열리고 있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대우자동차 인수를 둘러싸고 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경쟁이 가열되고있다. 잭 스미스 GM회장은 12일(현지시간) “대우차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광범위한 문제인만큼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스미스 회장은 이날 모터쇼가 열리고 있는 디트로이트시 코보홀에서 한국기자들과 만나 “대우차를 입찰로 처리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부채상환 시기가 임박하고 대우차의 해외부문은 특히 심각한 문제에봉착해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수에 성공하면 대우차 국내부문은 그대로 유지하되 우즈베키스탄,루마니아,우크라이나 등 시장이 좁고 적자가 나는 해외사업은 합작상대와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드는 대우차와 쌍용차의 국내외 사업장을 일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웨인 부커 포드 부회장은 디트로이트 포드 본사에서 가진 한국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포드는 대우차와 쌍용차를 하나로 보고 있으며,대우의 국내외 모든 부분에 관심이 있다”고 밝혀 일괄 인수를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GM이 대우의 해외사업장 일부를 제외한 대우차 전 부문을 인수하겠다는 입장과 유사하다. 포드의 기아차 인수전을 주도했던 부커 부회장은 “포드가 기아인수에 실패했으나 한국시장에 여전히 매력을 갖고 있다”면서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못했으나 대우차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사전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의 컨소시엄 구성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업체와도 컨소시엄구성에 대해 논의해 본 적이 없으며,현대와의 전략적 제휴도 결정된 사항이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대우차의 부채처리에 대해서는 “어느 회사도 부채 전체를 떠안고 해결할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채권단의 부채 구조조정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GM과 마찬가지로 대우차의 부채 일부를 떠안을 의사가 있음을 비쳤다. dragonk@
  • 삼성·대우車 매각 본격화

    새해들어 대우자동차와 삼성자동차의 매각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우차의 입찰에 응할 것으로 알려진 미국 포드사의 협상대표단이 4일 밤입국한 데 이어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르노도 5일 삼성차와 인수협상중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해외 자동차업체들의 이같은 적극적인 행보는 올 상반기중 부실업체의 정리작업을 마치려는 정부 및 채권단의 의지와 맞물려 매각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르노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르노와 삼성그룹은 르노가 삼성자동차의 지분을 전부 또는 일부 인수하기 위한 단독 협상을 지난달 30일 시작했음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의 르노-닛산(日産) 제휴관계와 함께 이번 협상이 성공할 경우아시아 시장에서의 거점 확보,특히 한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협상에는 2∼3개월 가량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르노의 이같은 움직임은 삼성차 조기매각에 청신호로 여겨지고 있다.다만매각대금 문제를 둘러싸고 양측이 이견을 보이는 점이 변수다. 대우차를 탐내는 포드도 폴 드렌코 아시아태평양 담당이사를 팀장으로 협상단을 한국에 보냈다. 포드는 특히 대우차 전 부사장인 울리히 베츠씨를 최근 영입하는 등 인수에적극성을 보이고 있다.협상단은 6일 정부와 채권단을 방문,인수의지와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산업은행 등 대우차 채권단도 상반기중 매각작업을 끝낼 방침이며,곧 인수후보들에게 입찰 요청서를 띄우는 등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계획을 갖고있다. 이밖에 GM,다임러크라이슬러 등도 다음주 개막되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국내외 언론에 대우차 인수와 관련한 계획을 밝힐 것으로 알려져 대우차 입찰은 속도를 더 할 전망이다. 업계는 인수 희망업체와 가격,채무정리 등에 대한 이견만 좁히면 대우와 삼성차의 조기매각은 의외로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육철수기자 ycs@
  • ‘파업’ 보고서 관계자 사법처리 검토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수사중인 강원일(姜原一) 특별검사팀은 13일 조폐공사 파업유도에 정부기관이 개입한 것처럼 각종 보고서를 작성한 검찰 및노동부 관계자들을 검찰이 사법처리하거나 자체 징계토록 요구하는 방안을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특검은 이날 “구속은 아닐지라도 보고서 작성자들에 대한 처리방향과 관련해 법률검토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해 이들을 불구속기소하는 방안도 검토중임을 내비쳤다. 강특검이 지난 주말까지 ‘강희복(姜熙復) 전 조폐공사 사장 외에 사법처리대상이 없다’고 밝힌 점에 비춰볼 때 특검팀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주목된다. 특검팀은 이날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 공안부장을 다시 소환해 조사한데이어 강 전 사장을 14일 다시 소환,보강조사한 뒤 17일 사법처리 대상자를일괄기소하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다. 한편 옷로비 의혹사건의 최병모(崔炳模) 특검팀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국회에 최종 수사결과를 제출키로 한 15일 또는 16일쯤 수사결과를 발표키로 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수사결과 보고서를 다듬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유전자변형 두부’ 법정비화

    국내 최대의 두부생산업체인 풀무원(대표 南承祐)은 시판중인 풀무원두부에서 유전자변형(GM) 성분이 검출됐다고 최근 발표한 한국소비자보호원을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106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18일 밝혔다. GM식품을 둘러싼 법적 소송은 처음이다. 풀무원은 소장에서 “풀무원두부를 자체 검사한 결과 GM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소보원이 잘못된 분석결과를 일방적으로 공표함으로써 기업이미지가 추락하고 매출이 급감하는 손해를 입었다”며 “소보원의 부정확하거나잘못된 발표로 인한 소비자들의 혼동과 오류를 방지한다는 공익적 차원에서객관적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풀무원은 특히 “소보원의 발표내용과 관련,식품의약품안전청이 ‘공인검사기법이 개발되지 않았고 GM식품의 비의도적 오염에 대한 최저 허용치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보원의 단정적인 발표는 소비자들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으나 소보원측은 이를 무시한 채 발표를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소보원은 “농진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과 공동개발한 DNA증폭반응법은 4,000회 이상의 실험과정에서 한번의 오류도 나타나지 않았을 만큼 신뢰할 수있는 방법”이라며 “소비자보호원의 명예훼손 여부는 별도의 조치를 강구할것”이라고 밝혀 법적 대응을 검토중임을 시사했다. 소보원이 지난 3일 콩 가공식품의 GM성분 함유여부에 대한 판별방법을 국내 최초로 확립했다며 풀무원을 포함,시판 두부의 82%에서 GM콩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하자 두부 판매가 격감했다. 함혜리 김균미기자 lotus@
  • [사설] 고엽제 살포 진상밝혀야

    베트남 전쟁때 사용돼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고엽제가 주한(駐韓)미군측에의해 우리나라 휴전선에도 살포된 사실은 충격적이다.더욱이 고엽제 살포가우리나라와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이뤄졌으나 30여년동안 이런 사실이 은폐되어온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지난 68년 미국 화생방사령부에 보낸 비밀문서인 ‘고엽제 살포작전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은 1·21사태 이후 ‘식물통제계획’을 세워 한·미 합동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이남 2,200만평에 고엽제를 집중 살포한 것으로 드러났다.사용된것은 베트남전에서 쓰였던 ‘에이전트 오렌지’등 3가지로 2만1,000갤런인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살포작전 계획은 미군이 세웠고 살포작업은 한국군장병들이 했다는 것이다.당시 작전에 동원됐던 7만명의 장병들은 단순히 제초제를 뿌리는 정도로 알고 아무런 사전교육이나 방독면 등 보호장비 없이고엽제를 살포해 이들은 지금까지 이유도 모른 채 후유증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미국이 베트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고엽제를사용한 적이 없다고 강조해온데다 현재 베트남전 피해자 1만7,200명이 제조회사를 대상으로 5조원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중인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고엽제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호주·뉴질랜드의 베트남전 고엽제피해자 20만명이 이미 84년 다우케미컬 등 미국제조회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2억4,000만달러의 배상을 받았음에도 국내 피해자들은 과거 관계당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제야법적절차가 진행중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암을 유발시키는 다이옥신이 포함된 고엽제 사용은 이를 금지한 제네바의정서를 위배한 만큼 제조회사 뿐만아니라 미국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미국정부는 지금까지 ‘군복무중 발생한 우발적 사고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는 연방대법원의 이른바 ‘페레스원칙’에 따라 정부차원의 배상을 거부해왔으나 휴전선일대 고엽제 살포작전은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정부에 건의해 딘 러스크 국무장관의 승인을 받은 만큼 ‘우발적 사고’로만 보기 힘들다하겠다. 이같은 사실과 관련,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사실 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해 국방부가 구체적인 확인작업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조처이다.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를 철저히 파악하고 이들의 치료와 보상대책을 세워야 한다.또 베트남 참전 고엽제 피해자들의 보상과도 연계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낙동강 하류 회동등 발암성 환경호르몬 첫 검출

    낙동강 하류 일대 등 부산지역 취수원에서 내분비계 장애물질(환경호르몬)로 규정된 비스페놀A가 검출돼 충격을 주고 있다.이 발암성 물질의 영향으로 수컷 잉어의 암컷화 현상이 진행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사실은 경성대 류병호(柳炳昊·56·식품공학)교수의 ‘낙동강 수질오염중 비스페놀A 오염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의 연구조사 중간결과에서 15일 밝혀졌다. 류교수는 “회동수원지와 명장정수장 등 5곳에서 원수를 채취,고체상 미량추출법(SPME)으로 수질을 분석한 결과 비스페놀A가 5개 지점에서 모두 검출됐다”고 말했다. 명장정수장의 경우 비스페놀A가 0.171ppb로 가장 높은 농도로 검출됐으며회동수원지(0.170ppb),하구둑(0.159ppb),매리취수장(0.083ppb),덕산정수장(0.056ppb)순으로 나타났다. 또 낙동강 하류에서 암·수컷 잉어 61마리를 잡아 20여마리의 혈액조사를실시한 결과 수컷 7마리에서 암컷화 현상을 일으키는 여성 호르몬계인 ‘비테로게닌’이 각 0.88∼1.76㎍/㎖ 검출됐다. 류교수는 “비테로게닌이 수컷에서 검출됐다는 사실은 낙동강 유역의 수컷물고기가 암컷으로 변하는 현상이 상당히 진행중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말했다. 류교수는 올 연말까지 연구조사를 마무리짓고 내년 2월쯤 일본에서 개최될일본 환경과학회에 최종 연구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세계 교역질서‘지각변동’

    [워싱턴 최철호특파원·홍콩·베이징외신종합]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위한 미국과 중국의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 중국의 WTO가입이 확정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세계각국의 기업들은 신흥 거대시장 중국진출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지난 11일부터 베이징에서 막바지 협상중인 양국 대표팀은 13일 주룽지(朱鎔基)중국 총리의 막판 가세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협상타결이 임박했다고 홍콩 언론들이 14일 일제히 톱뉴스로 보도했다. 일간 명보(明報)는 베이징 소식통을 인용,주 총리가 협상 결렬을 눈 앞에둔 13일 오전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접견,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돌파구를 열었다고 전했다. 스광성(石廣生)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장과 룽융투(龍永圖) 부(副)부장도주총리와 바셰프스키 대표의 예정에 없던 1시간여 회동이 끝난 후 2시간 가량 미국 협상팀과 만났으며 양국 실무 협상팀도 이날 밤 10시까지 별도로 만나 서비스 시장개방 및 섬유 쿼터 조정 등 세부사항에 대한 기술적 토의를계속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바셰프스키 대표는 14일 오전에도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로 들어가 협상을 계속,협상타결 임박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톰 트립 미협상팀대변인은 14일 낮 브리핑을 통해 “현재 협상이 진행중이나 특별히 발표할사안은 없다”고 말해 막바지 조정작업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당초 중국 신문들은 중국정부가 14일 정오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고 전했으나 협상 타결과 관련된 중대발표는 이날 정오 이루어지지 않았다.회담 관측통들은 양국이 오는 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되는 WTO 뉴라운드 협상시작전까지 협상타결을 마무리짓기를 원하고 있어 이번 베이징 협상에서 큰틀에대한 합의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경우 중국 소비시장은 자동차,통신,서비스등 선진 외국제품들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져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반년에 걸친 협상기간중 자국 소비시장 보호와 이후 야기될 고실업등 부작용을 이유로 시장 개방폭을 놓고 미국측과 줄다리기를 계속해왔다. hay@
  • 금융계 물갈이‘인사 태풍’

    이르면 이번 주부터 연말까지 금융계의 물갈이가 이뤄질 전망이다.이번 주부터 새로운 은행연합회장과 생명보험협회장 손해보험협회장 등 금융기관장이 잇따라 나오는데다 다음 달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의 최고 경영진 교체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폭적인 금융계 물갈이 7일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연합회장 생보협회장 손보협회장에는 새인물이 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은행연합회는 오는 12일 이동호(李同浩)은행연합회장의 후임을 선출한다. 이 회장의 임기는 14일까지다. 중임인 이석용(李錫龍)손해보험협회장의 임기는 18일 끝난다.또 지난 4일대한생명 회장에 선임된 이강환(李康煥)전 생명보험협회장의 후임 선출도 이번 주에는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또 연말까지 한국·대한 투신에 모두 3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부실경영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이헌재(李憲宰) 금감위원장도 최근 “한투와 대투 부실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었다. 이에 따라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연말 쯤에는 한투와 대투의 사장도 교체될것 같다.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다른 투신사와 증권사의 경우에도 대우채권에 따른 손실을 대주주가 증자 등으로 메워주면서 역시 경영진 교체가 예상된다. ?떠오르는 하마평 은행연합회장에는 이용만(李龍萬) 전 재무부장관이 유력하다는 말도 한때 나돌았지만 현재는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는 “관료출신보다는 은행장 출신 중에서 선임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신복영(申復泳) 전 서울은행장,배찬병(裴贊柄) 전 상업은행장,나응찬(羅應燦) 신한은행 부회장이 거론된다.유시열(柳時烈) 제일은행장은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있다.제일은행 매각을 마무리하기 전에 은행연합회장으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손보협회는 지난 4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인선작업에 들어갔다.손보업계쪽에서는 박종익(朴鍾翊) 동양화재 사장을 적임자고 보고 있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있다.동양화재의 모(母)그룹인 한진그룹에서는 광주고 출신인박 사장이 동양화재 사장으로 남아줄 것을 희망한다는말도 나오고 있다. 생보협회장에는 생보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김영석(金榮石) SK증권 부회장(전 교보 부회장)과 황학수(黃學壽) 전 삼성생명 사장이 후보로 거론된다. 이상일 곽태헌기자 bruce@
  • [인터뷰] ‘노근리 사건’첫보도 말誌 오연호기자

    * “인간을 인간으로 보면 비극은 없어” 최근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세계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노근리 사건’을 첫 보도한 곳은 국내언론이었다.그러나 그 매체가 월간지였다는 이유로 ‘노근리 사건’은 그동안 국내 주류언론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지난 94년 ‘노근리 사건’을 처음으로 현장취재해 진상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월간말’의 오연호(35)기자.88년 ‘말’지 기자로 취재활동을 시작한 이래 10여년간 주한미군범죄를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그런 연유로 ‘반미기자’라는별명을 얻은 오 기자가 최근 자신의 ‘10년농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노근리 그 후’를 월간말에서 출간했다.이 책은 주한미군범죄 55년사를 집대성한 것으로 ‘20세기 야만과의 결별을 위한 현장보고서’라는 독특한 부제가 눈길을 끈다.“해방직후이든 90년대의 것이든 노근리사건을 포함한 모든미군범죄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것입니다.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는다면 그건 모두 야만입니다” ‘양민의 죽음’을 뉴스로 만든 AP가 진짜로 기여한것은 특종보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데 있다고 오 기자는 말했다. 오 기자가 주한미군 범죄사 추적을 ‘내 일’로 여기게 된데는 ‘사연’이있다.86년 연세대 총학생회 교육부장 시절 중고등학생 2만 여명에게 보낸 ‘편지사건’이 그것이다.그가 쓴 편지속에는 “미국은 6·25때 한국을 지원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수한 동포를 죽였다”는 귀절이 포함돼 있었는데이 ‘편지’는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 톱을 장식하였다.이 사건으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 때 내가 쓴 편지내용이 사실로 확인돼 명예는 회복한 셈입니다.다만 AP가 노근리를 ‘해방’시킨 날 왠지 씁쓸했습니다.외세에 의한 8·15해방이다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88년 1월 ‘말’지의 기자가 되면서 그의 ‘미국(주한미군)탐구’는 본격화 됐다.그 해 6월 ‘르포-용산 미군기지’를 취재하면서 ‘탈선미군들’의 범죄행각을 접했고 이후 그는 현장취재를 통해 밝힌 미군범죄사를 ‘식민지의아들에게’‘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마라’‘실록소설 살아나는 임진강’이라는 이름의 책들로 엮어 고발해 왔다.오직 그만의 외로운,‘우리현대사의 숨은 그림찾기’였다.그런 그가 ‘한국속의 미국찾기’의 마지막에서 만난것이 바로 ‘노근리사건’이었다.94년 ‘말’ 7월호에 그가 게재한 ‘6·25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백여명 학살사건’보도는 노근리에 대한 최초의 심층적 현장취재였다.당시 국내 언론은 아무데서도 주목하지 않았고 그는 금년 6월호에 다시 이를 다루었다.AP통신의 보도가 터져나오기 불과 석 달전의 일이었다. ‘반미기자’인 그는 95년부터 2년반가량 미국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미국속의 한국’을 알아야 ‘한국속의 미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귀국한 후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출간했는데이는 내가 ‘반미기자’에서 ‘반미와 친미를 능숙히 배합하길 원하는 기자’로 바뀌고 있는 중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오 기자는 “국익보다 사실(인권유린)보도를 우선시한 AP의 편집철학에 찬사를 보낸다”며 한국언론의 ‘외신사대주의’를 다시한번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한나라, 대통령 중임제 추진

    한나라당 뉴밀레니엄위원회(위원장 金德龍)는 14일 전체회의를 열고 대통령의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위원회는 이날 합의된 사항을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건의키로 했다. 박준석기자
  • 李총재, 金德龍의원 ‘월권’ 제동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김덕룡(金德龍)부총재 사이에‘세(勢)싸움’조짐이 보이고 있다. 김부총재는 지난달 당내 ‘뉴밀레니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후 본격적으로 세확산을 시도하고 있다.당초에는 이총재도 ‘제2창당’을 이끌 선두주자로 평가,상당한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위원회가 ‘월권(越權)’ 움직임을 보이자 이총재가 바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총재는 8일 총재단·주요당직자 연석회의에서 경고성 일침을 가했다.위원회가 얼마전 대통령중임제 등 개헌문제를 논의한 것과 관련,“어떤 논의든할 수 있지만 그것이 마치 당론으로 결정된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곤란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부총재를 직접 겨냥하진 않았지만,‘월권’에 대한 자제를 요구하면서 그 권한 범위를 명확하게 획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총재측은 또 위원회의 자체적인 영입활동에 대해서도 걱정스런 눈초리를보내고 있다.김부총재는 최근 방송인 L씨를 비롯,K·P·S씨 등 대학교수와전문가그룹을 꾸준히 접촉하며 영입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총재의 한 측근은 “영입대상자가 확답을 하지 않아 총재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며 애써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경계심은늦추지 않고 있다. ‘차세대주자’로 거론되는 김부총재의 세확산 움직임은 다른 여러 곳에서도 감지된다.지난달에 단행된 당 인사에서 김부총재는 자신의 계파로 분류되는 맹형규(孟亨奎)·이사철(李思哲)의원을 각각 총재비서실장과 대변인 등요직에 앉혔다.잦은 계파모임을 통해 당내 어느 중진보다 확실하게 ‘자기사람’을 챙긴다는 평이다. 박준석기자 pjs@
  • 취임18개월 맞은 金成勳농림

    김성훈(金成勳) 농림부장관이 3일로 취임 1년6개월을 맞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최장수 장관이다.교수 출신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일정도로 탁월한 행정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김장관은 “과분할 정도로 자리를 누리고 있다”면서 “새 천년 농업기반의 틀을 다진 데 무엇보다 보람을느낀다”고 말했다.기존 농업기본법을 지난 2월 새 시대에 맞게 농업·농촌기본법으로 바꾼 것을 말한다.농업을 경제적·공익적 기능을 하는 국가기간산업으로 새삼 자리매김한 데 뜻이 있다.오는 2004년 쌀시장 개방에 대비,농민에게 소득보상을 해주는 ‘직접지불제도’의 내년도 도입이 정부의 의지를 가늠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달 말까지 기획예산처와 협의해 2,500억원의 예산을 반영토록 하고,여의치 않으면 국회에서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각오이다. 김장관은 또 50년만에 농·축협을 통합하는 기틀을 마련한 개혁입법이야말로 농민을 위하는 농정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라고 강조했다.오는 10일쯤 통합설립위원회를 구성,통합에 따른 실무작업을 차근차근 추진할 계획이다. 통합에 반대한 축협도 이제 통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협조가기대된다고 말했다.특히 김장관은 “그동안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많이 받다가 통합법 처리가 끝난뒤 처음 ‘수고했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털어놨다.그는 농·축협 통합을 공정하게 추진하기 위해 1급 이상 간부에게 받았던 사표를 이날 되돌려줬다.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공을 세운 국·과장을한 직급 승진시키는가 하면 자택에 찾아와 인사청탁을 하던 과장은 전보조치하는 신상필벌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김장관은 “태풍이 다 물러간 뒤인 10월5일에 작황전망을 발표키로 했다”고 말을 아꼈으나 올해 쌀 3,600만석 수확이 무난할 것으로 기대했다.또한주곡자립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과 관련,“준농림지역의 확대가 러브호텔의 난립과 채소·과실류값 폭락 등 영농환경을 해치고 있다”면서 농지의52%에 달하는 준농림지역의 축소방안을 검토중임을 내비쳤다. 김장관은 재임중 일일명예장관,이동장관실 운영 등 실천하는 농정을 펼쳐농정의 신뢰성을 크게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최근 조용히 회갑을 치른그는 “끝나면 학교로 되돌아갈 것”이라며 정치권의 영입설을 일축했다. 박선화기자 psh@
  • [義烈 독립투쟁](4)송학선 의사

    일제에 맞서 국권수호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의병·독립군·광복군·의사·열사 가운데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신돌석(申乭石)의병장을 비롯해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洪範圖)장군,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李奉昌)의사 같은 분이 그런분들이다.1926년 순종(純宗) 승하 직후 창덕궁 금호문(金虎門) 앞에서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송학선(宋學善)의사 또한 그러한 인물 가운데한 분이다. 1893년 서울 천연동에서 출생한 송 의사는 13살 때 보통학교를 1년 다닌 것 외에는 별다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다.또 극심한 가난 때문에 어려서는가족이 흩어져 방랑생활을 하였으며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구상점·사진관 등을 전전하며 호구(糊口)를 해결하기도 하였다.말년에는 영양실조로 각기병까지 걸려 고생한 송 의사였지만 조국에 대한 애정은 배운 사람 못지않았다. 1926년 ‘금호문 의거’로 체포된 후 일본인 판사가 “피고는 어떤 주의자(主義者)인가,사상가(思想家)인가?”라고 묻자 송의사는 “나는 주의자도 사상가도 아니다.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다만 우리나라를 강탈하고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놈들은 백번 죽어도 마땅하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다.총독을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답변하였다.송 의사는 사상·주의는커녕 배후세력이나 후원자조차 없었다.굳이 송 의사를 평가하자면 순수한 애국심에서비롯한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송 의사의 의거는 1926년 4월 26일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승하가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대한제국의 마지막 임금으로 망국의 쓰라림을 경험한순종의 승하 소식은 많은 조선인들에게 망국의 슬픔을 절감하게 했던 것이다.이 소식을 접한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머리를 풀고 엎드려 궁성을 향해망곡(望哭)하였으며 서울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창덕궁으로 몰려들어 통곡하기도 하였다.고종 승하후 3·1의거를 경험한 일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군경(軍警) 총동원 채비를 갖춘 채 창덕궁 일대에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평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안중근(安重根)의사를 흠모해오던송 의사는 사이토 총독을 처단키로 결심하고 의거에 사용할 칼을 구입,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그러던 차에 4월 26일 순종이 승하하자 송 의사는 사이토가 조문차 순종의 빈소가 있는 창덕궁을 찾을 것으로 확신하고창덕궁 입구에서 처단키로 작정하였다.이튿날 송 의사는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군중들 틈에 끼여 사이토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사이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장소를 바꿔 돈화문 서쪽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를 기다리고 있던 송 의사는 오후 1시 10분경 고관 차림의 일본인 3명을 태운 자동차가 창덕궁으로 들어가자 그 중 1명이 사이토일 것이라고 판단하였다.얼마후 그들이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나오자 송 의사는 비호같이 자동차에 뛰어 올라 왼쪽에 앉은 자의 오른쪽 가슴과 왼편 허리를 찌른 후 다시 중앙에 앉아 있는자의 가슴과 배를 찔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송 의사는 차에서 내려 인근 재동(齋洞) 방면으로 내달렸다.현장을 목격한 일경들이 추격하여 송 의사를 에워쌌으나 이들은 송 의사를붙잡기는커녕 오히려 육탄전에서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송 의사는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당시 신문보도에 따르면,일경 5,6명은 칼을 빼들고는 달려들지도 못한 채 한참 서서 송 의사를 바라보다가 돌멩이를 집어던졌다고 한다(‘동아일보’,1926.5.2).송 의사는 일경 수 명과 대치 와중에도 의연한 기개를 잃지 않았다. 한편 송 의사가 처단한 자들 가운데 사이토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그들은경성부 평의원 다카야마 다카유키(高山孝行)·사토 도라지로(佐藤虎次郞)·이케다 조지로(池田長次郞) 등 3인이었다.이들 가운데 칼을 맞은 다카야마는 즉사하고,사토는 중상을 입었다.또 육탄전 와중에 송 의사의 칼을 맞은 조선인 순사 오환필(吳煥弼)과 일본인 기마경찰 1명도 중상을 입었다. 일제에 피체된 송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 거사 이듬해인 1927년 5월 19일서대문형무소에서 34세의 나이로 순국하였다.송 의사의 의거는 비록 목표로삼았던 사이토를 처단하지는 못했지만 그 반향은 실로 대단했다.3·1의거 이후 급격히 활성화되었던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192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일시 소강상태에 빠져 있었다.또 일부 조선인들은 사이토의 교활한 ‘문화정치’ 전략에 일시적으로 말려들어 현실에 안주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바로 이러한 때 서울 한복판에서 한 순박한 애국청년의 의거를 계기로 조선민족은 다시 민족의식을 회복하게 되었고 비록 3·1의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이는 다시 6·10만세 의거로 불타오르게 된 것이다. 1962년 정부는 송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하였다.송 의사피체 후 보도된 신문기사에는 가족으로 부모와 동생 2명만 언급돼 있을 뿐처자에 대한 얘기는 없는 것으로 봐 의거 당시 송 의사는 미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현재 송 의사 관련 기념사업회나 추모모임이 없는 것은 물론 보훈처에서 유족의 근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나라를 위해 목숨을바친 순국선열이 가신 지 한 세기도 채 못돼 벌써 잊혀지고 있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노릇이다. 채영국 독립기념관 연구원·문학박사*의거 현장 금호문 앞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좌우에는 작은 문 두 개가 있다.오른쪽으로는 단봉문(丹鳳門),현대그룹 사옥쪽인 왼쪽으로는 금호문(金虎門)이 있다. 바로 이 금호문 앞이 송학선 의사가 조선총독 사이토를 처단하려 했던 현장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왕조 궁궐 가운데 창덕궁은 조선왕조의 멸망을 지켜본 궁궐이라고 할 수 있다.이는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망국을 맞았기 때문이다.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으로부터 양위를 받은 순종은 황제 즉위 후 덕수궁에서 이곳 창덕궁으로 옮겨 기거하고 있었다. 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일제는 순종을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시킨 후 ‘이왕(李王) 전하’ 혹은 창덕궁에 기거한다고 해서 ‘창덕궁 전하’라고 부르곤 했다. 일제는 ‘망국의 임금’인 순종을 위로한다는 미명하에 망국 이듬해인 1911년부터 인근 창경궁에 동물원·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을 훼손하였다.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송 의사의 의거 현장인 금호문 앞 일대는 창덕궁 관광객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현재 이곳에는 송 의사의 의거현장임을 알리는 표지석은 물론안내판 하나도 서 있지 않다.창덕궁 관계자는 “최근 일본인 관광객이 부쩍늘었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사이토총독 어떤 인물인가 일제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처단 대상으로 지목했던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일본 해군대장 출신으로 제3·5대 조선총독을 역임했다.재임기간은 10년 1개월로 역대 조선총독 가운데 중임한 사람은 사이토가 유일하다.1856년 일본 이와테(岩手)현에서 태어난 사이토는 해군병학교를 졸업하고 25세인 1882년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이후 해군에서 승승장구,41세인 1898년에는 해군차관,1906년에는 49세의 나이로 해군의 수반인 해상(海相)에 올라 8년여 동안 자리를 지켰다.이어 1919년 8월부터 두 차례나 조선총독을 역임했고,1932년 5월 일본 내각의 수상에 취임하였다. 일본 군국주의 체제하에서 정치엘리트로 내각 수반직에까지 오른 사이토는두 얼굴을 지닌 대표적인 인물이었다.사이토는 3·1의거 후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이 가장 고조되어 있을 때 조선총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총독 취임 후 소위 ‘문화통치’라는 슬로건 아래 문관(文官)총독제허용,헌병경찰제 폐지,지방자치제 실시,산미증산계획 등을 내걸었다.그러나이러한 사탕발림식의 제도는 그의 재임기간 내내 거의 실현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강화된 무단통치로 나타났다.즉 문관출신 총독은 해방이 될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임명된 적이 없고,경찰은 이름만 바뀐 채 이전보다 더 늘었으며 증산된 쌀은 한국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대신 모두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한편 사이토는 부임 초부터 한국 독립운동가들로부터 처단 대상으로 지목됐었다.경성(현 서울)에 부임하는 날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64세의 노 투사 강우규(姜宇奎)의사로부터 폭탄세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924년 5월에는만주의 독립군단인 참의부(參議部) 대원들이 압록강을 순시하는 그와 그의일행을 공격,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는 결국 귀임 후 1936년 2월 26일 소위 ‘2·26사건’때 후배 청년장교들에게 암살당했다. 채영국 연구원
  • 金대통령,동강댐건설에 ‘부정적’ 견해 피력 안팎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6일 개인적인 생각임을 들어 영월 동강댐 건설에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사견임을 전제했지만,지난 3월 모 방송이 환경단체의 주장을 빌려 일방적으로 동강댐 건설 반대 특집보도를 했을때 ‘격노’했던 것에 비하면 입장이 달라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강원지역 4개 지방MBC와의 공동회견에서 현재 숙고중임을전제,“개인 의견으로는 안할 수만 있다면 건설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환경보전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을 정부가굳이 할 필요가 없다”며 과학적인 조사결과를 통해 최종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자세 변화는 정부 정책의 급격한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아니다.김대통령이 그동안 환경단체나 건설론자,어느 일방의 주장에 따르지말고 종합적이고 과학적인 검토를 지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다만 5·24 개각 이후 신임 장관들의 업무보고때 이건춘(李建春)건교부장관으로부터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를 받고나서부터 부정적인 생각을갖기시작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기호(李起浩)청와대경제수석도 “김대통령의 생각은 처음부터 물 수급과홍수조절에 대한 대처방안이 있으면 동강댐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물부족,홍수 등 제반문제를 원점에서 검토,연말까지(6개월 이내에) 최종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어 지난달 말 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 산하에 환경단체와 시민단체가 참여한 ‘영월댐 건설 타당성 종합검토를 위한 공동조사단’을 구성,작업중이라고 전했다. 실제 정부는 물 수급에 대한 대처방안은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우리나라 1인당 물소비량은 하루 409ℓ로 미·일보다 훨씬 많은 편이어서 절수를 통해 물부족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김대통령도 “절수방법은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강이 남한강 수계지역이어서 집중호우때의 수도권 홍수조절기능이 관건이다.김대통령은 이에 대한 조사단의 결과가 나오면 최종결론을 내린다는 생각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金대통령, 코언 면담…휴가지서 이례적 접견

    북한이 미사일 재발사 기미를 보이면서 ‘미사일 공조’문제가 한·미간 초미의 과제가 되고 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9일 하계휴가중임에도 코언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데서 분위기가 읽혀진다.면담은 이날 오전 이례적으로대통령 휴가지인 청남대에서 우호적 분위기 속에 1시간40여분간 진행됐다. 김대통령과 코언장관은 두가지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북한 미사일재발사 억지와,한국산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문제가 그것이다.북한 미사일문제가 주된 토픽이었다.북측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억지하는 방안은 물론 사후문제도 거론됐다. 배석한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이 한·미·일 3국의 긴밀한공조를 역설했다고 전했다.즉,“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발사전은 물론 발사 후에도 3국이 철저히 공조하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물론 강조점은 발사를 사전에 막는데 있었다.김대통령은 이를 위한 당근과채찍을 제시했다.“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북한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것이며, 발사를 하지 않을 때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것이다.코언장관도 이에 동의했다. 박대변인은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경우 한·미의 구체적 제재방안에대해선 절제된 자세였다. 다만 그는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는물론 미국의 확고한 ‘대한 안보협력’을 확인한다”는 코언장관의 발언을소개했다.대북 제재국면으로 갔을 때 한·미 공조 ‘방향’의 일단을 내비친것이다. 한·미간 미묘한 현안인 한국산 미사일 사거리 연장문제에 대해서도 박대변인은 언급을 자제했다.다만 사거리 500km 연구개발문제는 양국의 실무전문가들이 가급적 빨리 협의해 나가기로 하는 선에서 조율이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다.김대통령의 최근 방미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논의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접견에는 한국측에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과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이,미국측에서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배석했다. 구본영기자
  • 北 앉기전 시비‘가시밭 對坐’예고

    베이징 구본영특파원 난산(難産)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21일 베이징 남북 차관급회담은 북한측의 두차례 연기 통보로 초반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향후 험난한 ‘회담 파고’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북한측은 우리측이 제시한 회담시간(오전 10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돌연 오전 8시쯤 오후 3시로 회담 연기를 요청해 왔다.회담이 임박한오후 2시20분쯤엔 추후 회담 시간도 정하지 않은 채 다시 연기를 통보,우리측 대표단을 아연 긴장케 했다. 북한측은 권민 참사관 명의로 전화통보를 통해 “남측이 회담전 20일까지인도키로한 10만t 비료수송약속을 안지켰기 때문에 회담을 할 수 없다”고일방통보했다. 이에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 통일부차관은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비료 2만2천t을 실은 11항차 수송선이 오후 1시10분 여수항을 출발,저녁8시30분 북방한계선을 지나 내일 새벽 2시께 북한 남포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면서 “비로 수송선 출발이 다소 지연됐다는 설명을 했음에도 북한측이 회담을 연기시킨 것을 이해할수 없다”고 밝혔다.그는 이어 “북한측이 회담에 즉각 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측은 회담연기를 통보하면서 “비료 10만t이 도착한 이후 적당한 시기에 회담을 한다”고 밝혀 회담을 완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양영식(梁榮植) 남측 수석대표는 이날 오전 “북측이 공식으로 회담일정에 관한 입장을 알려오면서 오후 3시에 회담을 개최할 것을 요청해왔다”고 가자들에게 전했다.그는 이어 “이산가족 문제는 반백년동안 기다려 온 사안인데 몇 시간 기다리지 못할 입장이 아니다”며 수용의사를 밝혔다.그러나 오후 다시 회담을 연기해오자 “북측이 회담일정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고 다소 난감해했다.양수석대표는 “주재관을 통해 북측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겠다”고만 말해 비공개 접촉라인은 정상가동중임을 시사했다.다른 한 당국자는 북측이 회담 개최 시점을 미룬 것과 관련,“부정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북측의 변칙 움직임이 회담 파국의 예고편은 아니라고 애써 강조한 것이다.그러나 일부 관계자는 서해 교전 사태 이후 북한의 대남 자세 경직화와 무관치 않다며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 북측이 회담을 오전에서 오후로 연기하면서까지 대표단 명단을 통보해주지 않자 우리측 대표들은 황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통일부 베이징 주재관을 통한 비공개 채널로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이 수석대표로 정해진 사실만 겨우 전해들었을 뿐이었다.우리측은 북측 박영수 일행이 베이징역에 도착할 때 찍은 스틸 사진을 입수,북측 대표단에 대한 역추적 작업까지 벌이기도 했다.그러나 뚜렷한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는 후문.다만 권민 아·태평화위 참사가 회담 대표로 나올 가능성을 주목.그는 지난 97년부터 중국을 여러차례 드나들면서 99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노동자 축구대회 준비회담 북측 대표를 맡았었다. 권씨의 나이는 40세 가량으로 베이징에서 일부 국내언론사의 방북 사업을성사시키는 거간꾼 역할도 했으나 해당언론사들도 정확한 신원을 파악하지못하는 베일속의 인물.99년 4월 엄대우 국립공원 관리공단 이사장과 금강산솔잎 혹파리 방제 대책협의를 논의하는 등 남북 민간급 교류에 폭넓게 참여해 온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실향민들은 흥분감을 감추지못하면서 베이징 남북회담 전개과정을 초조히지켜보다가 회담이 계속 지연되자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김성재(金成在) 이북도민회 황해도지부 사무국장은 “회담이 잘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kby7@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비소실험’소개도

    지난 5일 방송된 SBS ‘문성근의 다큐세상 그것이 알고 싶다’는 수년전 ‘기적의 암치료제’로 화제를 모은 ‘천지산’을 중심으로 암치료의 새로운경향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부제는 ‘기적의 암치료제인가,신물질 X’. 이 프로는 3년전 ‘천지산’을 처음 만들었던 배일주씨가 약의 성분이 ‘비소의 변형물’임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됐다.배씨는 당시 무면허 의료행위로구속됐었다.또 ‘천지산’을 복용하고 암이 치료됐다는 사람과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사람 등 양쪽의 증언을 고루 다뤘다. 이어 미국 의료계의 비소실험 장면 등을 보여주면서 외국에서 비소의 암치료효과를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 프로는 천지산의 효능을 무어라고 정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비소로 만들어진 천지산의 효능을 일정부분 인정한 셈이 됐다. 이 프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의 저명한 의학잡지에는 ‘비소,옛 독에서 새 생명을’이란 워렐박사팀의 연구논문이 실렸다.워렐박사팀은 비소로백혈병을 치료,특정암에서 효과를 보았다고 밝혔다. ‘천지산’이 화제를 모을 당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뒤 국내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 비소를 연구하고 있는 어느 박사를 전화인터뷰하기도 했다.그는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할 것을 주문,TV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아울러 현재 국내의료진의 입을 빌려 국내에서도 비소 실험이 한창 진행중임을 시청자에게 알렸다. 이 프로는 암치료의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미국의 의학계와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비교, 국내 의료계와 정부차원의 의식·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프로를 만든 장경수PD는 “두달 후 비소실험 결과가 논문으로 나올 전망”이라면서 “그 때 후속프로를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스크린쿼터 어긴 극장 처벌 진통

    스크린쿼터(국산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어긴 극장에 대한 처벌여부를 놓고전국극장연합회 등 극장측이 처벌의 유예를 정부에 요청하자 스크린쿼터 감시단 등 영화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는 등 진통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스크린쿼터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처벌수준을 융통성있게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처벌수위의 조정을 검토중임을 시사해 자칫 지난연말 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에 따른 대대적인 반발이 재연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이같이 스크린쿼터 위배 극장에 대한 처벌문제가 영화계의 현안으로 대두된 것은 지난해 스크린쿼터를 어긴 극장이 사상 최대에 이른 탓이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스크린쿼터를 어긴 극장은 전국 527개 스크린가운데 18.5%인 98개 스크린에 이른다.96년에는 55곳,97년에는 33곳에 머물렀다. 극장 측은 “지난해 스크린쿼터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상 유례없는 제작편수의 감소 탓”이라면서 “작년에 지키지 못한 일수를 올해 스크린쿼터에 포함시켜 운영하도록 행정처분을 유예해달라”고 문화관광부에 요청했다. 지난해 국산영화제작편수는 전년의 59편에 비해 16편이나 줄어든 43편. 현행 영화진흥법에 따르면 전년말까지 스크린쿼터를 지키지 않은 극장은 위배일수가 20일 이하이면 그 날짜만큼,20일을 초과할 경우 다음해 그 두배만큼 관할 시도로부터 영업정지처분을 받도록 돼있다. 스크린쿼터 감시단은 극장측의 ‘처벌유예’주장에 대해 “상황논리에 따라 법 적용을 달리 하면 그 법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는 극장측의 불가피한 사정을 양해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한 관계자는 “관객의 영화향수권,극장측의 불가피한 사정,처벌 유예 때의 법의 일관성 훼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지난 94년 금융실명제가 시행됐을 당시 스크린쿼터 위배에 따른 처벌을 규정의 4분의 1수준으로 감경해준 선례도 있어 이같은 점을 모두 감안해 처벌수위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는 극장에 대한 처벌을 확정할 경우 극장가의 비수기인 4∼6월과 11월을 택하되 가급적 빨리 매듭지을계획이다. 현재 스크린쿼터는 원칙상 146일이지만 각종 경감조치로 극장측은 106일동안 한국영화를 상영토록 돼있다.
  • [제2공화국과 張勉]- (9) 신구파 대립과 分黨(상)/비교

    李承晩독재체제에 맞선 통합야당 민주당은 1955년 9월19일 탄생한다.이날서울 태평로 시공관은 하루종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열기로 들끓었다.전국에서 모여든 민주당 대의원 2,000여명이 오전에는 발기인대회를,오후에는 창당대회를 잇달아 열었다.오전 대회에서 鄭一亨의 경과보고에 이어 張勉의 인사말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의 서두에 내걸었습니다.우리는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후의 창당대회에서는 申翼熙가 민주당 출범의 의의를 밝히는 인사말을 했고 朴順天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주세력의 집결 강화만이 국정쇄신의 방도임을 확신한다”고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창당대회 다음날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 선거에 들어갔다.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 申翼熙는 234표를 얻어 49표에 그친 張勉을 누르고 선출됐다.이어 연기명으로 실시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 趙炳玉(282표)·張勉(278표)·郭尙勳(262표)·白南薰(111표)이 뽑혔다. 이들 가운데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申翼熙,내무장관을 역임한 趙炳玉,민국당 최고위원 출신인 白南薰은 구파였고 총리를 지낸 張勉,국회부의장인 郭尙勳은 신파였다.이밖에 중앙상무위 의장은 成元慶(신파)이 맡았다. 집행기구 16부 부장은 尹潽善(원내총무격인 의원부장)·柳珍山(노동부장)·鄭一亨(섭외부장)·玄錫虎(조직부장) 등으로 구성됐다.구파는 대표최고위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세 자리와 부장 7석,신파는 최고위원 두 자리에 상무위의장과 부장 9석을 차지해 신·구파는 처음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출발했다. 민주당 창당후 처음 맞은 큰 이슈는 다음해 치르는 제3대 정·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이었다.당시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申翼熙·趙炳玉·張勉 세 사람 정도였지만 대세는 申翼熙에게 기울어 있었다.초점은 부통령후보였다.신파는 張勉을 대통령후보로 민다고 공표했으나 내심은부통령후보를 노리고 있었다.구파는 구파대로 ‘대통령후보 申翼熙’를 기정사실로하는 한편 趙炳玉을 부통령후보로 세우려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 문제는 郭尙勳이 적극 나서 해결됐다.郭尙勳은 趙炳玉을 찾아가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합시다.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해공(申翼熙)이 적격이니 그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니오? 차후에 입후보하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오”라고설득한다(郭尙勳 회고록에서). 이에 趙炳玉은 “운석(張勉)이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책임져라”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전당대회에서 申翼熙·張勉을 정·부통령 후보로 뽑은 민주당은 신·구파 구분없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에 매진한다. 56년 정·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李承晩정권을 누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절호의 기회였다.52년의 ‘발췌 개헌’과 56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진 李承晩의 영구집권 음모와 자유당의 폭정(暴政)에 이미 많은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게다가 申翼熙·張勉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이 내건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도 돌풍을 몰고 왔다. 56년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당시로서는 짐작도 못할 30만∼40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 듯하던 대통령 자리는한강백사장 유세 3일 후에 그만 손아귀를 빠져나간다.호남 유세에 나선 申翼熙가 5월5일 열차칸에서 급서한 것이다. 대통령후보 부재에도 불구하고 張勉은 李起鵬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창당 9개월 만에 수권 능력을 가진 야당으로서 당당히 자리잡는다.이같은 자리매김은 58년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연결돼 민주당은 78석을 확보한다.창당 때의 33석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민주당 위상 강화와 비례해 신·구파 대립도 점차 심해져 갔다.첫 충돌은정·부통령선거 직후에 찾아왔다.56년 7월 金度演·金俊淵·蘇宣奎 등 구파중앙위원 60여명이 연명(連名)해 최고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다.이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출을 논의하게 된다. 신파는 “국민에게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張勉부통령이 당연히 대표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파는 표대결을 요구한다.투표 결과 대표최고위원에는 趙炳玉이,최고위원에는 郭尙勳·張勉·金俊淵·金度演이 뽑힌다. 일부에서 분당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끝에 신·구 양파는 다음해부터 대표 및 최고위원을 중앙상무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는 등 몇 가지에 타협하고 수습한다.이후 구파는 부통령인 張勉에게 당의 주도권을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를 더욱 견제하게 됐고,신파는 張勉을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신·구파는 다시 한번 격돌한다.60년 정·부통령선거에 나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趙炳玉은 483대480 단 3표차로 張勉에게 신승한다.다음날 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거꾸로 張勉이 趙炳玉을 70여표차로 물리친다.최고위원에는 郭尙勳·白南薰·尹潽善·朴順天이 올랐다. 이 전당대회는 신·구파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을 파놓았다.대회를 몇달 앞두고부터 양쪽의 경쟁은 한계를 넘어서 각종 추태가 난무했다. 趙炳玉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인신공격한 ‘결격사유 10개조’라는 괴문서가 전국 지구당에 배포되는가 하면,경남도당대회가신·구파 당원 간의난투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신·구파의 격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당은 趙炳玉대통령후보,張勉부통령후보 겸 당 대표최고위원 체제로 1960년을 맞는다.56년 申翼熙의 급서로 이루지못한 정권교체의 꿈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李容遠 - 신구파 내력과 특징 비교 민주당(民主黨)창당은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자유당(自由黨)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제5차 개헌안을 마련한다. 李承晩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려는 이 개헌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찬성 135,반대 60표로 부결된다.그러나 이틀뒤 자유당은 수학의 ‘사사오입’규정을 적용하면 개헌 정족수를 통과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헌법개정을공포한다. 이후 열달동안 반(反)李承晩세력은 통합야당 결성에 노력한다.한민당(韓民黨)의 후신인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과 무소속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다.여기에는 자유당을 뛰쳐나온 ‘탈당파’의원12명도 가세한다. 당시야당으로서는 민국당이 가장 컸지만 원내의석이 15석에 불과해 다른 야당 세력을 흡수,통합하지는 못했다.따라서 민국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55년 12월 신당촉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신당추진 세력은 곧 의견대립에 부딪친다.민국당의 申翼熙 趙炳玉과재야의 張勉 등 ‘자유민주파’는 좌익에서 전향한 자,독재 또는 부패혐의가 짙은 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혁신계인 曺奉岩과 족청계 李範奭을 배제하려고 한다.반면 張澤相 徐相日 등 ‘민주대동파’는 범야세력의총결집을 주장하며 맞선다. 결국 민주당은 ‘자유민주파’만으로 출발하는데 당시 원내 의석은 33명이었다.이에 비해 자유당은 120여명,무소속은 40여명이었다.‘통합야당’을 표방했는데도 무소속으로 남은 의원이 40여명이나 된 사실은 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민주당의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당후 민주당은 다시 신·구파로 갈린다.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申翼熙 趙炳玉이 중심인물이었다.한민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金性洙가 55년 2월별세한 뒤여서 구파의 대표성은 申翼熙가 갖고 있었다. 반면 신파는 張勉을 지도자로 鄭一亨 朱耀翰 등의 흥사단계(張勉은 흥사단계로 알려졌지만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다),吳緯泳 金永善 李相喆 등의 원내자유당계,玄錫虎 李泰鎔의 자유당 탈당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마디로 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구세력’이고 신파는 이를 제외한,새로 야당에 가입한 ‘신세력’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신·구파가 출신 배경,사회활동,이념적 지향에서 어느정도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구파는 대부분 지주집안 출신에 독립운동가나 지사형이었고 상당히 보수적이었다.이에 견줘 신파는 관료·법관·금융계 출신의 전문인이 주류였다.韓昇洲 고려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구파 지도자 가운데 80%는 처음부터 정계에나섰으나 신파 지도자는 오히려 60%가 행정·관료직으로 출발했다.韓교수는또 “연령을 보아도 구파 지도층은 평균 51세,신파는 48세로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신파의 지도력이 사실상 명확히 젊었다”고 평가했다. 정치행태에서도 달라구파는 비조직적이고 점잖아 “하나하나가 모두 장성같았지만”,신파는 조직적이고 투쟁적이어서 상부의 명령에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였다.(구파 출신 閔寬植 회고록에서)민주당 신·구파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李承晩정권 타도’라는 공동목표아래 힘을 모았다.초기에는 그래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9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대립이 심해졌다.4월혁명이후 정권장악이분명해지자 그때부터는 치열한 정권쟁탈전에 들어간다. 李容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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