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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주변국들의 시각(북한핵:3)

    ◎동북아안보 위협 「화약고」 간주/중·일·러시아,“핵개발 포기” 한목소리/수교조건·비핵화 요구등 압력 가중 북한의 핵보유를 우려하는 시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중국·러시아등 한반도 주변 열강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일본의 정책은 북한이 남북상호사찰을 수용하고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폐기하지 않는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일본외상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한 북한과 수교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한바 있다. 일본의 이같은 정책은 최근들어 두만강유역개발등 북한과 관련한 경제적 측면이 고려돼 다소 후퇴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나 미국의 압력이 워낙 거세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은 이달초 가네마루 신(김환신)등 정계 실력자들이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분야에서의 협력은 어느 정도 허용돼도 무방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제시,미국측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미국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세계예서 유일하게 핵폭탄의 공포를 직접 경험한 나라라는 점,핵탄두를 장착한 북한미사일의 사정권에 들어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개발에 심각한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이 한중관계 및 중일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아래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또 남·북한간에 적절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국의 한반도정책,나아가 동북아정책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의 세력균형을 파괴시킬 수 있는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가 눈앞에 다가옴에 따라 61년 체결된 중·북한상호원조 조약상의 군사동맹부분의 실질내용을 다소 약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그러나 주변에 같은 사회주의국가가 남아 일종의 방패역할을 해주기를 은연중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일은 꺼리고 있다. 소련및 소련의 정책을 대부분 계승한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에 관해 갖고있는 우려는 지난 90년 9월 이후 북한에 대한 핵연료 공급중단에서 잘 나타난다. 북한이 핵사이클공정을 갖추려 하는 이유도 과거 최대 우방이었던 소련의 이같은 태도변화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은 지난 88년 9월16일 고르바초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주장했다. 소련은 지난 89년 제42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문제에 있어서 외국군과 핵무기의 철수에 대한 갈망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한반도에서 북한및 한국,일본등의 핵보유를 막고 미국과의 핵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는 동북아의 현존하는 세력균형구조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의 군비경쟁의 중지를 강조하고 있다. 61년 소련과 북한간에 체결된 조소우호및 상호원조조약은 소련의 해체로 사실상 사문화됐을 뿐아니라 조약상의 의무를 승계한 러시아가 국내정치 이외의 다른 부분에 관심을 기울일만한 여력이 없어 북한이 핵개발에 있어 러시아로부터 조언이나 협력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안드레이 코지레프 외상의 방한때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한국에 전달한 바 있고 오는 9월 옐친대통령의 방한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핵개발에 관한한 외부세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원자력단지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열강들은 물론 전세계가 북한에 대한 핵개발포기압력을 행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머지않아 북한이 타의에 의해 핵개발을 중단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것이다.
  • 뚝심과 결단의 역정40년… “정치거산”/김영삼후보가 걸어온 길

    ◎한번 만나면 “내사람”… 뛰어난 친화력/반독재투쟁 선봉… 숱한 박해 받기도/요즘도 아침조깅으로 건강다지고 경제공부에 열중 김영삼대표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불굴」과 「좌절」이 교차됐던 기나긴 영욕의 정치터널을 지나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로 우뚝 선것이다. 긴세월,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이제 실현됐다. 그가 집권여당의 대권후보로 거듭나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사실,또 내부적으로 극적인 반전효과를 지닌다는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중학시절 하숙방에 써 붙였다는 대망대로 그는 꾸준히 걸어왔다.특유의 뚝심으로 목표를 향해 밀어붙였다. 따라서 그는 격변하는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출발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목표와 그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자리에 이르기까지는 핍박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단해졌고 또 그의 표현대로 『결과에 승리가 있을뿐 패배를 생각해본적 없다』는 자기 암시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40대기수 김영삼」「독재타도 김영삼」「군정종식 김영삼」「문민정치 김영삼」「큰정치 김영삼」. 그의 40년 정치역정을 대표하는 수사들이다. 「40대 기수론」도 그가 제창했던 구호였다. 또 반독재투쟁을 벌이면서 여러차례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국회의원직 제명,야당총재 직무정지등 숱한 고난을 겪었다.심지어는 가택연금중 자신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인간적인 비애도 감수해야 했었다. 집권여당 대표로 변신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경쟁자들과 싸워왔고 이제 승리자로 남겨졌다. 그의 정치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타고난 감(감)의 정치인」「뛰어난 결단의 승부사」라는 그의 별칭에 그 기원을 둘수 있다. 또 40년 정치역정중 남달랐던 친화력을 꼽을수 있다. 여야로 나뉘어상대방 헐뜯기에 열중하던 시절,야당총재이던 YS를 남보다 앞서 비난했던 한 여권인사는 『가까이에서 보니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그의 정치적 투쟁과 소신이 새삼 돋보였다』고 지지로 돌아선 배경을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려했던 정치경력은 그가 정치 거목이었음을 입증한다. 의정사상 최연소인 26세로 3대국회의원 당선(54년 경남 거제)이후 5·6·7·8·9·10·13·14대 당선 기록은 현존하는 정치인중 최다선이다. 그의 정당생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화려하다.의정단상에 오른뒤 원내총무 5회,대변인 2회,4차례의 야당당수,13대대통령후보,여권의 2인자 등을 거치면서 「최연소 의원」「최장수 원내총무」「최연소 당수」등 거듭 신기록을 경신했다. 야당시절 투쟁경력도 그의 무게를 뒷받침하고 있다. 유신반대,80년이후 두차례에 걸쳐 2년간 가택연금,83년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87년 6월항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투쟁이다. 그가 당시 인용했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말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들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화려했던 야당시절,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전과 87년 대통령선거 낙선,88년 4월총선 패배등 뼈아픈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신민당 대통령후보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했던 그는 후보경선 전날밤 승리를 낙관,후보수락 연설문을 다듬다가 마지막까지 대의원 포섭을 벌였던 김대중씨에게 2차결선투표에서 역전패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또 87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실패후 대통령선거에서도 낙선했고 뒤이은 총선에서도 제1야당의 자리마저 평민당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결국 민정·평민·민주·공화등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통합을 결행,집권당 2인자 자리를 확보했다. 지난 89년 6월 당시 민주당총재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한데 이어 90년 3당통합후 민자당대표자격으로 미수교국이었던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한소수교의 물꼬를 트는등 정당외교사에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했다. 그는 여당으로 변신한후 「감각과 이론」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특히 경제전문가들로부터 거의 매일 경제강의를 받는등 국가의 경제활력제고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27년 12월20일생으로 금년 65세인 그는 요즘도 새벽 5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 올라 4㎞씩 조깅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는데 조깅을 시작한지 25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해외출장중일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어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늘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만큼 「독기」도 있다. 김대표는 6남매중 외아들로 부인 손명순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고 있으며 마산에 거주하는 부친 김홍조옹(81세)에게 매일 아침저녁 문안전화를 드리는등 극진한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무튼 김대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과거도 현재도 중요하다.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오늘보다는내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더 중요한 내일을 위한 출발인 것이다. ○김영삼후보 연보 ▲54∼58년 제3대 민의원 ▲60∼61년 제5대 민의원 ▲63년 신민당 부산시 당위원장 ▲63∼67년 제6대 국회의원,민정당 선전부장,민중당 원내총무겸 대변인 ▲67∼72년 제7대 국회의원,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 ▲71∼72년 제8대 국회의원,한국문제연구소 소장 ▲73∼79년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부총재,정무회의 부의장,총재겸 지도위원회 의장,정무회의 의장 ▲74년 미타우슨 주립대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76년 신민당고문 ▲79∼80년 제10대 국회의원,신민당총재 ▲79년 총재직무집행 가처분,의원직제명 ▲80년 정치활동규제 ▲81년 민주산악회 결성 고문 ▲82∼83년 2년동안 가택연금 ▲83년 단식투쟁(23일간) ▲84∼87년 민추협 공동의장 ▲85년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86∼87년 신민당 상임고문 ▲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 ▲87년 통일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87∼88년 통일민주당 총재,대통령후보 ▲88년 제13대국회의원 ▲88∼90년 통일민주당 총재 ▲90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91년 윤봉길의사 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장 ▲92년 제14대 국회의원 ­40대 기수론(71년)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87년) ­민주화 구국의 길(87년) ­나의 결단(87년) ­지도자의 길(몽고메리저) ­생을 뜻있게 보내려면(윌리엄 J 래이리 저)
  •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 탐색 급피치/임란 4백년… 거북선찾기 본격화

    ◎연말까지 남해안 12해역 탐사/94년 1월부터 인양작업 돌입 임진왜란 발발 4백주년과 이순신장군 탄생 4백47주년을 맞아 충무공해전유물 발굴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89년 노태우대통령의 지시로 그해 8월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이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창설된 이후 해군은 심해잠수요원 8백16명과 탐사정·소해함·시추장비 등을 투입해 탐사작업을 벌인 결과 거북선이 매몰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 1백87㎦의 해역 가운데 30%인 44.5㎦에 대한 정밀탐사를 완료했다.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 황동환단장(해군대령)은 27일 이번 탐사에서 거북선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물체 6개가 확인되고 화살촉·선체목편·도자기 등 51점이 발굴됐다고 밝혔다. 황대령은 『올해말까지 충무공의 활동해역이던 진해만에서 한산도·노량·사천·광양·여수·목포·보령까지 12개해역을 중심으로 정밀탐사작업을 마친뒤 94년 1월부터 발굴및 인양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해군은 충무공의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거북선이 모두 3척이며 임진왜란이 끝난뒤에도 10여척을 건조한 기록이 있어 수군이 활동하던 남해와 서해에 분명히 매몰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탐사작업을 확대해가고 있다.그러나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이미 4백년이나 지났으며 침몰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당시의 해안선도 항구의 축조와 매립등으로 크게 바뀌어 남해바다에서 거북선을 건져내기는 한강밑에서 바늘을 찾아내는일 만큼이나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발굴단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유일하게 대패한 칠천량해역(현 거제군 북쪽)에 대한 앞으로의 탐사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충무공이 모함에 의해 투옥되고 원균이 후임으로 임명된후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아 1백50척의 배가 침몰하는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외국의 예를 보면 지난 60년대에 덴마크와 네덜란드 해역에서 1천2백년전의 바이킹배 3척을 인양한바 있고 70년대에는 영국근해에서 6백년전의 목제 군함을 원형 그대로 발굴,인양한 적이 있다. 해군관계자들은 앞으로 본격적인 인양작업이 이루어지면 거북선을 찾아낼 수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 23일 이중형국방부 제1차관보를 위원장으로하는 거북선발굴추진위원회를 구성,정부차원에서의 적극 지원을 결정함으로써 앞으로 발굴작업은 보다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 원로학자 김재근씨,저서 「거북선」서 처음밝혀

    ◎“임란때 거북선길이는 21.5m”/너비 7.36m로 정조때것보다 작은 규모/“철장식을 붙인 목선… 철갑선 아니다” 임진위란 발발 4백주년을 맞아 당시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거북선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성과가 칠순이 넘은 노학자에 의해 최근 단행본으로 발표됐다. 한선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원로조선공학자 김재근서울대명예교수(72·학술원 부회장)가 30여년간의 연구결과를 정리한 책 「거북선」(정우사간)을 충무공 이순신 탄신 4백47주년(4월28일)에 즈음하여 펴낸 것. 김교수는 이 책에서 임란당시 거북선의 크기를 처음으로 밝혀내 눈길을 끈다.즉 임란당시 거북선은 선체의 길이가 21.5m,저판의 길이 15.3m,선체의 너비 7.36m,상장의 너비 9.2m,노의 수는 14자루로 정조대의 거북선 크기보다는 약간 작다는 주장이다.이는 광해군 당시 한선의 크기·치수가 나와있는 문헌들을 근거로 추정해낸 것이다. 김교수는 또 이 책에서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소나무로 만들어진 철장식이 된 목선으로 임란 당시 주력 군선이었던 판옥선을 바탕으로 개량된특수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거북선철갑선설」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오직 일본문헌뿐이며 정조때 충무공 관련자료들을 모아 편찬한 「이충무공전서」등 한국사료에는 한군데에도 언급된 곳이 없어 신빙성이 없다면서 대신 거북선은 상갑판에 왜구의 접근을 막기 위해 칼송곳을 꽂고 선수부와 상장의 요소요소를 철로 장식하고 보강한 특수전함으로 오히려 「장갑선」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또 「난중일기」「당포파왜병장」「이분의 행록」등을 들어 임란 당시 해전에서 활동한 거북선은 모두 세 척뿐이었다는 최영희전국사편찬위원장의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이밖에 「영귀선」「방답귀선」「순천귀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북선 세 척의 건조장소를 비교적 상세하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지난 57년 「대학신문」에 「구선고」라는 글을 발표한 뒤 줄곧 한선을 연구해온 김교수는 20년전부터 거북선은 판옥선을 개량해 만든 특수전선이라는 주장을 펴오고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제는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판옥선은 비전투원인 노군을 집안에 들여놓아 전사들이 상갑판에서 방해받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종전의 군선에 비해 몸집이 월등히 크며 16세기에 개발돼 임란때 거북선과 함께 맹활약을 했던 우리 수군사의 대표적인 군선이다. 김교수는 『거북선이 당대의 판옥선과 똑같은 방식으로 건조되었으나 상갑판을 없애고 그 대신 둥그런 개판을 덮어놓은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거북선은 튼튼한 송재를 써 구조부의 치수도 넉넉하게 잡는 한선구조법의 기본적인 특성에 따라 아주 강건하게 건조돼 이와 같은 강인한 선체구조로 적의 선단속에 뚫고 들어가 적선을 충파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반면 판옥선은 포의 발사 위치가 상갑판에 있어 명중률이 높아 적을 멀리 떼어놓고 발포할 수 있어 서로 상이한 역할을 담당했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현재 거북선에 대한 개괄적인 연구는 어느 정도 완성된 단계에 이르렀지만 예를 들어 거북선에 비치됐던 비품목록등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한 연구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요즘 젊은 학자들이 한문을 잘 몰라 원문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연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72세라는 나이에 전문서를 펴내게 돼 무엇보다도 기쁘다』는 김교수는 그동안 「조선왕조군선연구」「거북선의 신화」「우리배의 역사」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으며 앞으로도 세계의 희귀한 배들을 소개하는 「배이야기」등 책 2∼3권정도는 더 펴낼 계획이다. 『거북선은 우리겨레의 탁월한 창조물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앞장섰던 무적함인 만큼 긍지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거북선에 대한 불필요한 신화나 수수께끼를 갖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거북선과 같은 민족적 유산은 좀더 성의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뤄야하며 일반국민들이 거북선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마지막으로 『임란당시 해전에서의 승리가 단순히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거북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이보다는 우리 수군의 우수한 전통과 조직,판옥선과 같은 뛰어난 전선과 일본수군으로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우리 수군의 우수한 화포술이 합쳐져 이루어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 김옥균 대국기보 일서 발견/1886년 슈에이본인방과 6점 접바둑

    ◎흑쥐고 불계승… 한인 최초의 현대식 대국보 구한말의 풍운아 고균 김옥균선생(1851∼1894)이 당대 일본바둑계의 최고봉이던 슈에이(수영)본인방과 둔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바둑기보가 10일 공개됐다. 고서연구가인 안영이씨(59·전 현현각대표)가 공개한 이 기보는 1910년 9월5일자 동경기계신보사가 발간한 「기계신보」와 1952년 9월12일자 국광서방발행 「위기세계」에 실린 총보및 각보·해설로 되어 있다.이 자료는 갑신정변에 실패한 고균이 일본에 망명하면서 슈에이본인방과 오랜 교분관계를 나눴다는 바둑계의 구전야사를 증명하기위해 안씨가 지난27년동안 발굴작업을 벌인끝에 최근 일본기원자료실과 일본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기보는 1886년 2월20일 일본 도쿄의 본인방가에서 대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지금까지 최초의 현대식바둑기보로 알려져 있던 1918년6월9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당시 국수 백남규와 일본의 사이토4단의 경성위기대회 기보 보다 68년을 앞선 것이다.대국자를 고균의 일본이름인 이와다슈사쿠(암전주작)로 표기하고 있는 이 기보에는 슈에이 본인방과 6점접바둑끝에 2백30수만에 흑을 쥔 고균이 불계승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 자료를 검토한 김인9단은 『고균의 바둑은 실리위주이면서 치밀한 수읽기를 바탕으로 하는 공격적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고 우선 평가했다.그러면서 『일본바둑계에서 「명인중의 명인」으로 칭송받던 당대의 최고기사 슈에이를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김9단은 이 기보로 미루어 고균의 실력을 요즘 아마추어 초단∼2단정도일 것으로 추측했다.다른 바둑전문가들도 당시로서는 본인방과 6점접바둑을 두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며 당시국내에서 유행하던 순장바둑(바둑알을 미리 16점을깔아 놓고 두는 우리나라 고래의 바둑)을 배웠던 고균이 이 정도의 기력을 보인 것만도 대단한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바둑을 두던 당시 고균은 36세,본인방은 35세였다.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도피하고 있던 망명객과 일본최고의 바둑명문가의 주인이던 제17·19대 본인방 슈에이가 나눈 10년에 걸친 바둑을 통한 수담은 지금까지 한·일 바둑계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 왔다.고균이 일본명치정부에 의해 요시찰인물로 낙인이 찍혀 요코하마에서 1천㎞나 떨어진 절해고도 오가사하라(소립원)에 유배중일때도 슈에이는 고균을 직접 찾아가 3개월동안 함께 기거하며 1만여개의 포석을 만들어 낼 정도로 두사람은 절친한 사이였다.
  • 강택민 왜 일본에 가나/중국 「개혁돈줄」 구하기 행보

    ◎일왕초청등 관계개선안 타진 중국의 강택민 공산당총서기가 89년 천안문사건이후 중국수뇌론 처음으로 6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을 방문한다.그의 방문목적은 중일국교정상화 20주년을 기념하고 양국간의 우호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인권문제·무기수출문제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 이번 강의 방일 초청을 실현시켰다.일본은 중국의 방대한 시장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을뿐만 아니라 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정치대국이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중국도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중국대륙에 등소평의 「개혁바람」이 다시 불면서 중국은 일본의 경제지원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다.일본으로부터 8천1백억엔의 제3차 엔차관을 받고 있는 중국은 7천억엔의 에너지차관을 더 요청하고 있다.일본은 강총서기에게 「경제지원」선물을 안겨줄 가능성이 있다. 중일 양국은 이같이 서로를 필요로하고 있다.하지만 양국간에는 조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일본의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전쟁배상등 민감한 현안들이 남아있다. 강총서기 방문중 가장 미묘한 이슈는 일왕의 중국방문 문제이다.강총서기는 일왕의 방중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일본도 한때 일왕의 방중을 공식화할 예정이었다.그러나 지금은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일왕의 중국방문으로 2차대전에 관한 책임문제와 배상문제가 다시 부상,오히려 양국관계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없지않다고 판단하고 있다.일본은 또 일왕이 중국을 방문할 경우 한국방문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일왕의 중국방문 문제는 미묘하지만 강총서기의 방일을 계기로 양국은 보다 성숙된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 “중·일전쟁 민간피해 대일배상 청구 인정”/전기침외교부장

    【도쿄=이창순특파원】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은 23일 중일전쟁때의 민간피해에 대한 중국 민간인들의 대일 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도쿄신문이 북경발로 보도했다. 전외교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야기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일본정부는 당연히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해 사실상 중국 민간인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투표통지표 교부/“본인 선거일 2일전까지” 원칙(투개표 이렇게)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투표통지표를 수령해야 한다. 구·시·읍·면의 장은 선거일 2일 전까지 선거인명부에 등재된 유권자에게 투표통지표를 교부해야 한다. 투표통지표는 유권자 당사자에게 교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본인이 불재중일 때는 호주·세대주·가족·동거인의 순으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에게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구·시·읍·면의 장은 투표통지표 교부후 수령증을 받아 투표구별로 교부록을 작성,수령증 및 교부하지 못한 잔여투표통지표를 투표구 선관위에 송부하여야 한다. 투표구 선관위는 잔여 투표통지표를 선거일 전일까지 수령증을 받고 2차로 유권자에게 교부해야 하며 그때까지도 교부되지 않은 투표통지표에 대해서는 교부록에 그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선거법은 「투표통지표를 지참치 않은 선거인이라도 선거인 명부에 등재돼 있음이 확인된 때는 투표용지를 교부해야 한다」고 규정,사정상 투표통지표를 교부받지 못했거나 통지표를 분실했더라도 선거권자는 주민등록증만제시하면 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다.
  • 운동장은 「교실」의 연장이다(사설)

    국민학교 운동장을 유설장으로 쓰는 무신경한 관행을 우리는 아직도 못 고치고 있다.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또다시 국민학교 운동장이 합동유설장이 되고 정당연설장이 되는 통에 국민학교의 수업에 지장이 많다는 소식은 우리를 몹시 우울하게 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나라 어디에서 수업중인 학교 운동장에 확성기를 대놓고 어른들이 선거연설을 하고 청중이 꾸역꾸역 들어와 소요스럽게 굴겠는가.한쪽에서는 운동원들이 세를 올린답시고 풍물패놀이를 하고 서툴고 요령부득하며 상대방 비방하기에 목청만 높인 후보들의 고성이 교실에서 수업받는 어린이들을 제대로 공부할수 없게 만드는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연설회가 끝나면 마구 버린 홍보물과 깔고 앉았던 종이,음식물 찌꺼기들로 쓰레기가 산더미같아서,학교측은 그것을 치우기에만도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잡상인까지 몰려들어 학교환경이 일시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게된다.이런 일을 평일에도 예사로 벌이는 통에 오전수업을 끝내고 학생들을 귀가시킬수 밖에 없는 것이 학교측 형편이라니 그 「후진적」인 관행이 부끄럽다.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어쩔수가 없다는 것이 선관위측 해명이지만 반드시 그런것은 아니리라고 생각된다.찾아보면 대안은 있을 것이다.어른들이 조금 귀찮고 잠깐 불편한 것을 감내한다면 찾지 못할리가 없다. 문제는 안역한 발상법에 있다고 생각한다.만만한 조무래기들이 교실에서 재잘거릴뿐,널따란 운동장이 「텅텅 비어있는데」그걸 쓰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데서 나온 해묵은 나태함이다.학교 운동장이란 벽이 없는 교실이다.신성한 교육의 현장인 것이다.어른들의 정치놀이 소요에 휘말릴 장소가 아니다.기껏해서 보여준다는 것이 어른들끼리 원색적인 비방을 하고 무질서한 어른들의 추태나 보이기 위해서 사용될 공간이 결코 아니다. 이른바 선진한 나라의 거리를 지나다 보면 학교는 보이지도 않는 자동차도로에 학교부근 표시와 함께 경적을 울리지 말라는 경고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을 목격할수 있다.공부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일은 자동차 경적까지도 조심시킨다. 학교주변이 유해환경에 오염되지 않도록 정화에 나서는일을 일년내내 힘쓰고 있는 우리가 선거철이면 아예 「유해환경」을 학교안에 설치하는 셈이 된다는 것은 어떤 설명으로도 합리화시킬수 없는 어른들의 사려깊지 못한 타성적 행위일 뿐이다. 접전중인 도시에서는 전선이 학교와 인접중일 때에는 서로가 휴전을 요구하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릴만큼 「수업중인 학교」는 신성하게 여겨져 온 것이 세계인의 교양이고 묵시적 약속이다.커피에 라면에 온갖 간식장사가 들끓고 소주까지 파는 난장판 속에서 후보이름 지원인사 이름을 연호하며 소음이 낭자한 합동유세장을 학교안에 계속 끌어들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우리의 국민의식은 선진화했다고 말할수 없다.제발 학교아닌 곳을 찾아 보도록 하라.
  • “국제수지 94∼95년엔 흑자”

    ◎KID,7차5개년계획 주요정책 세미나/선진국 경기회복… 내년이 재도약 호기/통화긴축·물가안정 유지 긴요/경제성장률 7%안팎 바람직/92∼93년 내년에는 미일등 주요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본격화돼 우리 경제가 흑자기조를 회복하고 균형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기회를 잡아 우리 경제가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올해부터 내년까지 재정과 통화를 긴축운용하는등 경제안정화시책을 강도높게 추진,경제성장률을 7% 또는 그 이하로 억제하고 물가를 안정시켜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3일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과 송희년KDI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속초에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7차5개년계획기간중의 주요정책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내수긴축정책이 더욱 강화되지 않을 경우 올 경제성장률이 7.5% 혹은 그 이상에 이르고 내년에도 수출증가세의 가속화로 경제성장이 8%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이 경우 물가불안이 심화되고 국제수지는 93년중일시적으로 개선됐다가 다시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KDI는 따라서 주요선진국의 경기가 회복되는 93년이 국제수지개선과 물가안정을 이룩하고 수출주도형 경제를 재현시킬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라고 지적하고 92∼93년중 재정과 통화의 긴축기조를 강화,경제성장률을 7%선에서 억제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금과 인력을 산업간에 적정히 배분하고 민간건설및 서비스활동을 적절히 억제해 나가며 임금안정화 노력을 병행,대기업은 총액기준 5%수준에서,전산업은 7∼8%수준에서 억제돼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KDI는 특히 「오너」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상속·증여세강화 ▲기업공개유도 ▲금융기관의 주식보유확대 ▲국민기업화등 소유분산책을 일관되게 실천하고 현행 여신관리제도와 출자규제를 소유분산과 연계하여 운영하되 상호지급보증축소를 비주력기업까지 확대해 자기자본비율에 따라 탄력 운용하며 불공정한 내부거래에 대한 공정거래법과 법인세법의 적용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중­일,「조어대 분쟁」재연 조짐/전인대서 중국령규정 법 승인

    ◎“명치 29년 편입” 일,강력 항의 【홍콩 연합】 중국은 이미 일본과 대만간에,그리고 중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및 베트남간에 영토분쟁을 빚어온 조어대열도와 동사군도,서사군도,중사군도및 남사군도 등을 중국의 영토로 정하고 이들 도서지역을 중국의 영해범위에 포함시키는 「영해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앞으로 이해 당사국들과의 본격적인 영토분쟁에 말려들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의 명보와 성도일보가 27일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중국 제7기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24차 상무위원회가 지난 25일 폐막되기 앞서 영해법을 통과시켜 중국 최초로 영해에 대한 주권과 관리권을 입법화하는 한편 남중국해의 조어대열도와 동사·서사·중사및 남사군도등 여러 도서지역을 중국의 영해로 정했다고 밝혔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이같은 영해법의 통과로 중국은 앞으로 영해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고 부속도서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국가안전과 해양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이 영해로 정한 수역에 위치한 도서들을 둘러싼 외국과의 영토분쟁을 군사적 수단으로 해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도쿄 연합】 일본 정부는 중일 양국간의 영유권분쟁 사항으로 돼있는 센가쿠(첨각)열도를 25일 폐막된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국 영토로 규정한데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센가쿠열도는 오키나와(충승) 본섬 남서쪽 3백㎞에 위치해 있는 어조도(중국명 조어도) 등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뤄진 섬으로 일본측은 명치 29년에 일본령으로 편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오건민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많은 역사적 사실은 조어도가 중국에 속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으며 국제법상으로도 중국의 주장에는 반론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 한인 종군위안부/육군대신이 관할/일서 새 자료 발견

    【도쿄 연합】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당시에 도조 히데키(동조영기)육군대신을 비롯한 일본육군이 전면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운영을 통괄하는등 한인 종군창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새로운 자료가 일방위청 방위연구소에서 발견됐다고 교도(공동)통신이 6일 보도했다. 이토 히데코(이동수자)중의원의원(48·사회당)이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부로부터 입수한 이 자료에 의하면 한인은 물론 중국·필리핀인도 종군위안부로 있었던 사실이 확인됐다.
  • “올 설엔 가족끼리 전통놀이를”

    ◎관직명 적은 말밭서 윤목 숫자대로 승진/승경도놀이/심심풀이 노리개/유객주/조각그림 맞추기/칠교놀이 설날을 앞두고 잊혀져가는 전통놀이들이 현대적인 놀이방법으로 재구성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부가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잇고,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놀이문화를 보급시키기 위해 펴낸 「전통놀이 모음집」에는 선조들이 즐긴 15가지 대표적인 전통놀이의 놀이요령이 실려 있다. 이 책자에 수록된 놀이들은 지금까지 전문가의 연구대상이거나 민속박물관 등의 전시자료에 머물렀던 놀이들 가운데 현대인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는 놀이들이 선별된 것이다. 이 책자에는 「유객환」과 「유객주」를 비롯,「고누」 「칠교놀이」 「산가지」 「망차기」등 비교적 생소한 전통놀이의 기원과 유래,놀이규칙의 상세한 소개와 함께 간단한 놀이의 경우 직접 놀이기구를 만들 수 있도록 기구제작방법도 실려 있다. 문화부 정태진 생활문화과장은 『가족이나 친지·동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중놀이가 워낙 드물어 이 책자를 만들게 됐다』면서 『내년 설날 때까지는 놀이사랑문화 가족을 통해 놀이기구까지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는 이 책자를 이미 관련 단체와 학교·모임에 배포했으며 개별적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책자에 실린 몇가지 놀이를 소개한다. ▷승경도놀이◁ 말밭에 관직의 이름을 차례로 적어 놓고 윤목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승진,문과를 택한 사람은 영의정을 거쳐 임금이 은퇴를 기념하는 선물로 안석과 지팡이를 선물한다는 사궤장에 이르는 사람이,무과로 택한 사람은 도원수의 자리를 거쳐 사퇴하면 이긴다.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으면 장교들과 이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양반의 자제들은 이 놀이를 통해 나아가야 할 벼슬길과 선비의 자세를 익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놀이로는 말판에 전국의 명승고적을 적어넣어 유람을 다니는 승람도놀이와 고을 이름을 적어넣은 고을모듬놀이,전국의 유명한 정자나 누각을 적어넣은 누각도놀이 등이 있는데 이처럼 말판의 내용을 시대적 맥락에 맞게 현대화한다면 누구나즐길 수 있는 생활놀이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문의 720­3816 문화부 생활문화과) ▷유객주◁ 「손님을 머무르게 하는 구슬」이라는 이름처럼 집이나 관청에 찾아온 손님을 기다리게 할 경우 다과와 함께 내놓던 심심풀이 노리개이다.매듭을 사이에 둔 두개의 구슬을 한쪽으로 모으는 놀이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결국은 넘어가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칠교놀이◁ 이미 4천년전에 발명됐다는 놀이로 요즘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그림맞추기 놀이와 비슷하다.모으면 정사각형이 되는 7개의 나무판을 칠교도라는 교본모양으로 배열하는 놀이이다.풍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쌍륙◁ 두 사람이나 두 편이 각자 15개의 말을 가지고 2개의 주사위를 굴려 말이 먼저 나는 측이 이기는 놀이로 장기와 윷의 성격을 두루 지니고 있는 놀이이다.매월당의 「쌍륙」이라는 시조와 혜원의 풍속화 「쌍륙 두는 남녀」에서 보듯이 백제시대 이후 최근세까지 전해져 왔으나 놀이방법이 제대로 전해져 있지 않았다.그러나 국제규칙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지금은전세계적으로 놀이방법이 통일되어 있다. ▷산가지◁ 수효를 세는데 이용되었던 길게 깎은 가는대를 이용하는 놀이로 매우 세심한 주의와 관찰,극도의 섬세한 손놀림이 요구된다.수십개의 가지를 흩어 쌓아놓고 다른 가지를 건드리지 않고 누가 많이 가지를 모으느냐로 승부를 가린다.색색의 가지 가운데 녹색 가지를 모으면 방해가 되는 다른 가지 하나를 떼어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 중국­이스라엘 수교

    【북경 AFP 로이터 연합】중국과 이스라엘이 오는 24일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한다. 이를 위해 다비드 레비 이스라엘외무장관은 약 30명의 정부관리 및 보도진을 대동하고 22일 북경에 도착,5일간의 공식 방중일정에 들어갔다.
  • 3인 의견/드러나는 정신대 만행에 국민분노 폭발/특별기고

    ◎“말로만의 사죄로는 안된다”/인간존엄성에 걸맞는 보상 뒤따라야/오선주 법박·청주대교수 지난 수세기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왔고 일반국민의 윤리·도덕도 삼강오륜에 바탕을 두어왔다.유교는 남성우위·남성중심사상이 중핵을 이루고 있음으로하여 남성의 혼외성관계에는 매우 관대하였으나 여성의 경우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가혹하리만큼 엄격하였다. 여성에게는 자의에 의한 혼외정사란 있을 수 없고 불가항력으로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병자호란·임진왜란등 외적의 침입으로 몸을 더럽히게된 많은 여성들이 죽음으로 그 인생을 마감하였다.자결하지 못한 경우 주위의 죽음에 대한 권고가 성화 같았고,구차히 목숨을 유지하려면 죽음을 능가하는 사회적 멸시와 천대를 감당하여야 했었다. 그 순결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던 시절인 1940년대초 일제는 우리나라 여성에게 육체적·정신적 학살을 자행하였다.일제가 저지른 갖은 만행중 우리를 분노케하는 가장 못된짓은 우리여성을 동아침략군의 성적노예로 만든 것이다. 탈출을 시도하면 총을 쏘았고,만삭임신부에게도 성폭력을 일삼았다.열두살 어린이까지도 정신대로 끌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우리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일본총리는 그간 「민간인이 한 일이므로 정부의 채임 밖」이라던 종래의 태도를 바꾸어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양심이 살아있는 일본인교수가 종군위안부는 군부의 직접 지휘 감독하에 있었음을 방위청관련 기록문서를 들어 입증하였다.또 열두살 제자를 달래 정신대로 보냈던 일인녀교사의 참회어린 고백도 이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국내에서도 각종 증빙서류들이 발굴·공개되어 정신대의 실체는 더 이상 외면할 수만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학교 재학중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징집된 여자가 벌써 1백명이 넘는다는 사실이 전국 각학교의 학적부를 통해 확인되었다.해방이후 징집된 자녀의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들끓던 비탄의 소리를 감안하면 정신대 수는 이의 열배 백배 혹은 그 몇배가 넘을지 모른다. 그 숫자는 계속 조사되어 근사치만이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그러나 육신이 살아서 돌아왔을지라도 당사자와 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그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가족 상봉의 기쁨도 잠시뿐,침략군을 상대했던 과거가 부끄러워 산사의 공양주로 일하면서 남의 눈을 피하다가 평생을 마친 슬픈 사연도 들었다.감히 엽렵한 낭군을 맞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부둣가 주모로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기구한 운명의 여성을 만난 일도 있다.그들은 지금 모두 할머니가 되었다.그 백발의 할머니들이 「내 열일곱 청춘을 돌려달라」고 절규하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있다.그래서 전범 일본이 일찍이 세계의 양심앞에 부끄럽게 여겨야 했을 비인도적 만행을 다시본다. 일본은 이번 총리 방한에 즈음하여 「정신대문제는 사법처리에 의하여」해결한다는 입장이라는 소식도 들린다.일본인들은 어린이에서부터 「혼네」(본음=주의·방침)와 「다데마에」(건전=진심)를 배우며 자란다고 한다.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어디서부터가 수식어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외교적 성공을거둔다는 일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기술협력이라는 명분으로 기술이전 문제를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기술이전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어떻게 기술을 개발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경제 향상을 도모하였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그들은 근대화과정에서 우리를 수탈하였고,한국을 식민지화 한데서 온 우리의 분단은 결국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살찌웠다. 정신대문제는 천인공노할 비인륜적 인간수탈이다.따라서 정신대보상문제는 결코 「사법처리」운운으로 회피할 수 없는 일이 분명해진다.일왕의 「통석의 염」에서 그랬듯이 총리의 「사죄와 반성」역시 한갖 「다데마에」에 지나서는 안된다.또 일본관방장관이 최근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공식담화에서 「한반도」란 말을 거침없이 되풀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의 「혼네」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도 여러 사정으로 미온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정부도 정신대실태조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우리 정부의 대응책을 기대하면서 일본에는「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걸맞는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요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독의 대유태민족 사죄 본받아야/이태영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일본인 자신들이 문화국민이라면 비인간적인 과오에 대해 가슴 아프게 느끼고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독일은 그렇지 않았다. 바이츠제커대통령은 통일독일 취임식에서 조상들이 이스라엘민족을 살해하고 주변 국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해 언제나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많은 독일 청년들이 지금도 여름이면 이스라엘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등 과거에 대해 사죄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어린 국민학생까지 강제로 끌고가 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던 일제만행에 대해 명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방법이 무엇이던간에 최대한의 위로를 보내야 한다.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과오는 백번 천번 사과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정부는 떳떳하게 보상 요구하길/이계경 여성신문 발행인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군인들의 성욕처리의 수단으로 한국의 어린 여성들을 이용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이같은 행위의 이면에는 여성천시 사상도 깔렸지만 그보다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이러한 이유로 여성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대 문제를 거론해 왔다.다만 국가적인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 너무 늦은감이 있다.하나의 사례를 남기는 일이기 때문에 일본정부 상대의 보상청구소송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여성계뿐 아니라 정부도 떳떳하게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서 사례수집과 자료발굴등 진상조사가 계속되길 바란다.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행동 절실/김천주 대한주부클럽연합회 명예회장 정신대문제가 한일간의 주요쟁점으로 떠올랐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늦었다.국민학생 제자를 정신대로 보낸 일본인 담임선생이 한국에 와서 그렇게 사장됐던 자료를 찾아내고 사죄하는 이 마당에 한일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우리 정부가 전후 보상문제를 철저히 매듭짓고 물심양면으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면 대일 무역적자문제도 오늘날처럼 심각해지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생존해있는 피해 당사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용기를 갖고 나서서 생생한 목소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부·민간차원 모두가 철저하게 진상을 파헤치는 연대의식을 가져야 할것이다.
  • “정신대 징발,최악의 전쟁범죄”/증빙자료 발굴한 요시미교수

    ◎“일정부 한때 부인,양국민 모독/피해보상·자료공개·반성 마땅” 『일본의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 강제연행은 제2차 대전중 저질러진 최악의 전범행위로 일본인들은 이같은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한국여성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군자료를 최초 발굴한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 요시아키(길견의명) 교수는 14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요시아키 교수는 당시 일본군은 중국 등지에 파견된 일본군이 빈번하게 강간사건을 저질러 반일감정이 악화되자 자구책으로 정신대를 모집했음이 이번 방위청 자료를 통해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번 자료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진 비밀이었다. 일본정부만이 이를 부인해왔을 뿐이다. 그러던중 지난해 한국인 종군위안부였던 김학순(67)씨 등 3명이 처음으로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적극 자료발굴작업을 펴오다 이번에 방위청 도서관에서 당시 보병 제41연대 진중일지,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문서 등 5가지 군자료를 발견케 된 것이다. ­일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일본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은 이 문제가 일정부로서는 그만큼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역사왜곡 행위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대정부 불신감만 증폭시켰다. ­일 정부는 이번 군자료 발굴을 계기로 일군이 정신대문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인정했다. 이같은 자세전환에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담겨 있다고 보는가. ▲일본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자료발견자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정부가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군자료가 발견됐지만 외무성,후생성,노동성들에 보관돼 있는 자료는 아직도 미공개로 남아있다. 외무성에는 30년이 지난 자료는 공개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침략행위 및 보상관련 자료는 30년이 지났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보상 등을 포함,앞으로 어떤 후속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정부는 진정한 사죄와 함께 물리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성의있는 보상을 해야한다. 양국 정부간의 보상문제는 마무리됐지만 개인에 대한 보상책임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 일군 「정신대 개입」 문서 발견/방위청 보관

    ◎위안소 설치·통제등 내용담겨/“민간주도” 일 정부 종래입장 허구 입증 【도쿄=이창순특파원】 일­중전쟁과 태평양전쟁중 일본군이 위안소의 설치와 종군위안부의 감독·통제를 하고 있었던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당시의 군통달,진중일지 등 군관여 문서가 일본 방위청에 보관돼 있음이 확인됐다.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은 11일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 등에 일본군이 관여했었음을 확실히 입증하는 자료가 일본 방위청에 보관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인 위안부문제」에 대해 『민간업자가 했다,전혀 관여하지 않았다,조사해 봤으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는 등의 변명을 해왔으나 바로 군을 통솔하고 있는 방위청에서 한국인 위안부 관여 문서가 나옴으로써 오는 16일 한국 방문을 앞둔 미야자와(궁택) 총리가 심각한 부담을 안게 됐다. 이 신문은 또 문서의 발견으로 전 한국인 위안부 출신 여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출한 보상청구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지금까지 종군위안부 문제는 국회 답변 등을 통해 민간업자가 주도한 것으로 일본 정부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의 견해도 크게 흔들리게 돼 새로운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분명히 해주는 방위청 보관 「위안부 관계문서」는 일본 중앙대학의 요시미(길견의명·일본현대사) 교수가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 보관돼 있던 육군성과 중국 파견 부대 사이에 교환했던 극비문서철 「육지밀대일지」 등의 자료 가운데서 발견한 것으로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부관으로부터 북지방면 및 중지파견군 참모장 앞으로의 통첩) ▲전시순보(파집단사령부) ▲보병 제41연대 진중일지중 군대의 대주민 행위에 관한 주의의 건 통첩 등이다.
  • 일 정신대 한인관계 문서 요지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지나사변지에서의 위안부 설치를 위해 내지에서 종업부 등을 모집하면서 고의로 군부 등의 명의를 빌려 군의 위신에 상처를 입히는 동시,일반 시민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있는 자,종군기자,위문자 등을 끼어 들게 해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위험이 있는 자,모집에 임하는 사람의 인선이 적절치 못하여 모집 방법,유괴와 비슷하여 경찰당국에 검거 조사를 받은 자가 있는 등 주의를 요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장차 이들의 모집에 있어서는 인물의 선정을 주도 적절히 하고 그의 실시에 있어서는 관계지방의 헌병 및 경찰당국과의 연대를 긴밀히 하여 군의 위신을 보호함과 함께 사회문제상 실수가 없도록 배려하도록 통첩함. 육지밀 제745호 소화 13년 3월4일. ◇전시순보(후방관계)=파집단 사령부의 위안소 현황=①위안소는 소관 경비대장 및 헌병대 감독아래 경비지구내 장교 이하를 위해 개업할 것. ②근래 각종 위안설비(식당·카페·요리점 기타)의 증가와 함께 군위안소는 점차 쇠퇴의 조짐이 있음. ③현재종업 부녀자의 수는 대강 1천명 내외로 군에 의해 통제되는 사람 약 8백50명,각 부대 향토에서 불러오는 사람 약 1백50명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일선은 위안소의 설치가 곤란,현지인을 약간명 사용하고 있음. ④위안소의 배당 및 위생상태 개황 별지와 같음. 별지(구분,장소 인원수 이병률 순) 군직부대 시내(광동) 1백95명 28%,구납병단 광동시 동부 2백23명 1%,병본병단 광동시 북부 1백29명 10%,병참부대 하남 1백22명 4%,불산지대 불산 41명 2% 반전지대 해구 1백80명. ◇보병 제41연대 진중일지=①최근 산동성 방면에 교통선의 파괴가 성행하고 있음. ②치안 회복 진척 지연의 주된 원인은 후방 안정임무를 맡은 병력의 부족과 군인 및 군대의 주민에 대한 불법행위 때문으로 이는 반항의식을 유발,공산 항일계 분자의 민중선동의 구실이 됨으로써 치안 공작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중략). 강렬한 반일의식을 일으키는 원인은 각지에서의 일본군에 의한 강간사건이 전반적으로 전파돼 실로 예상외의 심각한 반일감정을 양성하는데 있다고 함(중략). ④군인 개인의 행위를 엄중히 단속함과 동시에 될수록 빠른 시일내에 성적 위안의 설비를 갖추도록 함으로써 이같은 설비가 없어 본의 아니게 금지시항을 침범하는 자가 없도록 하는 것이 필요함.
  • 대우,임원 1백26명 인사

    ◎자동차판매사장 엄길용씨/기전공업사장에 이재명씨 대우그룹은 27일 새로 설립되는 대우자동차판매(주)사장에 엄길용(주)대우부사장을,경남기업사장에 김학용 대우건설부문사장을 발령하는등 총1백26명(승진 1백19명,전보 7명)에 대한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사장전보=△대우건설부문 윤원석 △경남기업 김학용 ◇부사장→사장=△대우자동차판매 엄길용 △대우기전공업 이재명 ◇부사장(승진)=△대우중공업 윤용남 ◇전무→부사장=△대우 박종덕 염준세 최영상 △대우국민차 이관기 △대우중공업 양재신 ◇상무→전무=△대우 김욱한 장병주 김광조 진용무 최동욱 김원주 △대우국민차 김용섭 △경남기업 전장원 △대우중공업 박원재 조효상 △대우전자 남귀현 정주호 △경남금속 박병철 ◇이사→상무=△대우 이승복 이동원 김대원 이정남 현영휘 유춘식 이만진 정영우 이일쇄 최 훈 박세원 최성남 이한동 △대우국민차 오병창 김세중 △대우중공업 정완화 △대우기전공업 지기철 △대우조선공업 송춘식 △신아조선공업 전용성 △대우전자 정시창 서두칠 ◇이사부장→이사=△대우 김윤식 신무상 추호석 서재경 김주성 정희명 김준기 김대혁 이태용 장대영 노인호 김용남 이종부 △경남기업 김용조 김동철 △대우중공업 안인 최창학 김형식 △대우기전공업 김능배 △대우조선공업 송민호 인응식 김희규 서완철 △대우전자 김성흠 장기형 유시용 △대우정보시스템 홍기정 ◇부장→이사부장=△대우 권오택 김무근 장금조 배상설 정성립 이병하 이영철 김영순 최신묵 박홍 전홍기 강영원 김창한 김희 이세원 이주윤 유희원 김진환 이성목 김종철 이채철 이광성 김현중 김건희 정순석 △대우부산공장 이헌태 △경남기업 박호채 이정호 이경만 문태호 △대우중공업 김광석 신중근 조영호 조원행 나덕주 △대우기전공업 민경 △대우조선공업 김강수 김병수 박철 이영 김록창 △신아조선공업 김영국 △대우전자 송정웅 전명호 민학기 △오리온전기 김영철 △대우정보시스템 박경철 ◇승진전보=△대우무역관리부문부사장 황병순 △대우자동차 상무 전병희 △대우전자〃 김석환 ◇선임=△대우중공업이사 이윤호 △대우전자부품〃 왕중일
  • 중국,옐친 초청/구체일정 협의

    【북경 AFP 연합】 중국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빠른 시일내로 중국을 방문해 주도록 초청했으며 이에 따라 양국은 이미 옐친대통령의 방중일정을 협의중에 있다고 중국주재 러시아공화국대사관의 콘스탄틴 브누코프대변인이 2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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