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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무원장 8년… 「종단의 얼굴」/서의현원장의 면모와 행적

    ◎5공때부터 최고위급 인사와 교분/상무대 비리·사생활 관련 구설수도 5일 조계종 원로회 회의에서 전격 불신임된 서의현총무원장(58)은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의 종권을 9년동안 굳건히 지켜온 불교계 최대의 실력자다. 86년 8월 제25대 총무원장에 선출된 뒤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최초로 임기 4년을 다 채운데 이어 90년에는 재임에도 성공,종단 제1인자의 아성을 지켜왔다. 그러나 독선적이며 친정부적인 종단운영으로 개혁파들로부터 계속 도전을 받아왔으며 사생활과 관련된 구설수와 함께 최근에는 상무대 비리에까지 연루돼 3선연임을 목전에 두고 사면초가의 곤경에 빠진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의 3선연임을 결정할 중앙종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터진 조계사 폭력사태를 배후 조정한 의혹까지 받게되면서 그의 거취가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그는 36년 대구에서 출생했으며 52년 해인사에서 김상월화상을 은사로 득도한 뒤 같은해에 사미계(사미계),55년 비구계(비구계)를 수계했고 62년 해인사 대교과를 거쳐 67년 대승사 주지를 시작으로은해사와 동화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 66년 2대 종회부터 현재의 10대 종회까지 중앙종회의원직에 오르는등 최다선의원으로 화려한 이력을 더해 왔다. 그는 종단내에서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정계를 비롯,각계 최고위급 인사들과도 폭넓은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정치로비자금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5공말기인 86년 행정수반격인 총무원장에 처음 선출된 당시 집권층의 다수를 이루던 소위 TK세력과의 친분등으로 인해 친정부적인 성향을 띠면서 실세였던 전경환씨와 가깝게 지냈으며 이때부터 호국불교를 외치며 정부를 위한 조찬기도법회를 여러차례 주선했다. 전두환전대통령이 퇴임후 백담사에 은둔중일 때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방문,전씨에 대한 「의리」를 은연중 과시하기도 했다. 또 91년 5월에는 서울롯데호텔에서 노태우전대통령 내외와 불교신자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를 갖고 법어를 통해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을 찬양하는 발언을 해 교계 일각에서빈축을 샀다. 91년 9월 종정추대를 둘러싸고 종권다툼이 벌어져 총무원이 강남과 강북으로 양분되는등 분종의 위기까지 치달으면서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으나 양측간의 극적인 화해로 위기를 넘기는 등 남다른 생명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거의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지향적인 그의 성향은 92년 3월 당시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내부 반발에 직면했으며 퇴진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상무대 비리와 관련,공사대금 80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받기에 이르면서 조계사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최익현의 상소와 농산물개방/지명관(시론)

    지난해 말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한창 진행중일 때 얘기다.1876년 한일수호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체결될 무렵에 최익현선생이 도끼를 들고 궁궐앞에 엎드려 이 조약을 반대하는 소장을 올렸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다섯가지 불가를 말했지만 그안에는 일제의 경제적 침략을 우려하는 대목이 있었다.그들의 「물질」이란 「음사기완」하고 그 양이 「무한」하다는 것이었다.그들이 우리 강토를 상품시장화하려고 하는데 그 물건은 우리를 매혹시킬 기이한 노리개이며 그 생산이 무한하다고 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물질」은 「백성의 목숨이 달린 것」(민명소기)으로 그것은 「유한」한 것이라고 했다.우리의 생산품인 미곡을 비롯한 농산물이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것이며 또 한없이 생산되는 것도 아닌데 그것을 팔아 공산품을 산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려한 것이다. 그로부터 1백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 다시 우리는 「민명」이 달려있는 우리의 「물질」을 문제삼게 되었다.물론 오늘 20세기 말에 있어서는 그때와아주 다른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무엇보다 우리도 오늘의 국제정세 속에서는 「음사기완」하고 「무한」한 것을 생산해서 수출해야하므로 이제는 도리어 「백성의 목숨」이 여기에 달려 있는 셈이다.국제경쟁에서 이겨야 살 수 있다는 구호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농업에 민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한 최익현 선생의 말은 오늘도 그대로 진리라고 해야 하겠다.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농촌과 산림이 황폐해 진다면 우리의 생명은 지탱할 도리가 없다.지금같은 인구의 도시집중이면 나라의 장래는 어둡기만 하다.도시에서 문화와 기술이 발전하고 도시가 인류의 번영을 이끌어온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게오르크 짐멜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버스·철도·전차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서 몇시간 동안이나 마주보고 앉아있어야 하는 일이란 없었다』 사실 비행기 여행시 십여시간 동안이나 옆사람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묵묵히 앉아있는게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이것이 도시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무서운 고립이다.우리 모두가 남이 알아서는 안될 큰 비밀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는 모두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고용주와 피고용인 또는 채권자와 채무자로 대립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도시속에서 심한 경쟁으로 치달으면서 우리는 서로가 경계하고 대화하기를 꺼리고 있는 것같다.그러니까 동일한 민족을 말하면서도 우리마음 속에서는 일체감이 결여돼있는 것처럼 느껴진다.이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전원 농촌 산간을 필요로 한다. 우루과이라운드 후의 농촌을 살린다고 농촌특별세를 신설하려 하고 있다.여기에 대해서 아마도 원론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줄로 안다.그러나 지금 외국 쌀이나 농산물이 들어오니까 우리농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족하다고 할 것인가. 국토전체 국민전체를 안중에 두고 생각하는 비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농사를 짓는 것으로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그만이라고 만의 하나라도 생각해서는 안된다.지금도 고령화돼 있는 5백70여만명의 농민을 땅에 매어두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농촌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토전체의 균형을 생각하고 국민전체의 삶과 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생각해야할 때다.농촌과 도시는 떼어 놓을수 없는 하나다.농촌에도 문화가 꽃피어야 하고 거기서 더욱 건전한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자라나고 있어야 한다.도시의 젊은이들을 거기에 유학보내고 싶어지도록 말이다. 예를 든다면 이런 꿈은 어떨까.저 산간 깊은 곳에 우수한 고등학교나 대학이 서게 되고 모두가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 고장 농산물을 애용하게 된다면….거기서 문화제나 때로는 국제적인 예술제전이 있어서 도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건전한 지방자치의 발전과 더불어 하루속히 이런 꿈도 펼쳐질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 「블루 시걸」/첫 성인 만화영화 해외진출 노린다

    ◎용성시네콤,새달초 촬영/세계수준의 기술인력 동원/제작비 15억원… 미·일 하청 탈피계기로/여성미 영상화… “대의와 사랑 보여줄것” 국내 최초로 성인용 만화영화가 제작된다.용성시네콤(대표 김종성)과 만화영화제작사 애니피아(대표 오중일감독)가 손을 잡고 제작에 착수한 「블루 시걸」(Blue Seagull)이 화제의 작품.직역하면 「외로운 갈매기」이지만 우리말로는 「고독한 영웅」이라는 뜻이다. 미국으로 밀반출된 조선시대의 보검을 찾기위해 마피아와 전쟁을 벌이는 하일이라는 청년과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그의 연인 채린이 주요 등장인물.이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대의와 사랑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제작의도다. 오는 2월초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가 추석쯤 개봉하고 해외영화제에도 출품한다는 계획.제작비는 15억원 안팎을 예상하고 있다.작가 김경우씨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수십차례 수정작업을 가졌으며,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 홍콩 일본 현지를 답사했다. 제작 초기단계부터 이 영화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아무래도「성인용」이라는데 있다.이에대해 오중일감독(46)은 『상상력이 가미되는 만큼,일반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체의 아름다운 굴곡과 연인들의 품위있는 사랑을 볼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포르노영화를 연상하면 곤란하다』고 밝혔다.또한 어린이용 만화영화에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는 미국·일본작품과의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또다른 이유는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수준있는 만화영화를 만들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때문인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오중일감독은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단지 자본뿐이었다』고 단언하고 있다.지금까지 우리는 세계수준의 제작기법과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자금이 없어 외국의 하청작업에만 참여해왔다는 것이 오씨의 설명이다.그는 사실 지난73년부터 20여년간 미국과 일본의 TV만화영화 제작에 참여해오면서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하튼 이 작품은 그 성공여하에 따라 우리 영화계가 해외시장 개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2조8천억원 규모로 평가되는 만화영화시장은 일본이 65% 정도를 잠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또 이처럼 일본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동양인 배우가 출연하는 극영화로는 세계시장 개척에 어려움이 많다는 판단아래 만화영화제작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때문에 우리도 이 분야에 정성을 쏟으면 세계시장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 서방의 「중국 괴롭히기」/최두삼 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영국은 오는 97년의 홍콩반환문제를 놓고 중국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반환전에 식민지 홍콩의 민주화를 이룩해놓겠다며 입법원(의회)선거문제를 놓고 중국과 협상을 해오다가 최근 협상포기를 선언,독자적인 민주화추진계획을 발표했다.그러나 민주화라는 명분뒤에는 『땅은 돌려주되 그 위에 이룩한 부를 송두리째 넘겨줄 수는 없다』는 속셈이 깔려 있는 것같다. 중국을 괴롭히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다.특히 지난 89년 천안문 유혈사태이후 최근까지 거의 5년동안이나 서방 강국들은 경쟁적으로 중국을 질타해왔다.그중에서도 미국은 최혜국대우 부여를 비롯한 각종 문제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고 올림픽개최마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았었다. 서방세계의 중국괴롭히기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청일전쟁 중일전쟁등을 비롯,지금까지 1백50여년간 지속됐다.그동안 중국대륙을 침탈해오면서 끝없이 중국인들을 능멸해왔다.심지어 외국인 전용구역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내걸어두는가 하면 중국인들이 씻기를 싫어해 몸이 더럽다는 사실을 과장해서 다음과 같은 우스갯소리도 만들어냈다. 『중국 한국 일본등 3나라 사람들이 모여 더러운 곳에서 얼마나 오래 견디는 지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기로 했다.방법은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와 함께 얼마나 오래 견디는 지를 견주자는 것이다.일본사람은 불과 3∼4시간만에 손을 들고 뛰쳐 나왔다.은근과 끈기의 한국인도 만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돼지에게 욕설만 퍼부으며 빠져 나왔다.마지막으로 중국인이 들어간 지 한시간도 안된 때였다.이번에는 중국인이 아닌 돼지가 우리를 뛰쳐나오면서 「저런 인간과는 한시도 같이 지낼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이같은 서방측의 대중국 핍박이 있을 때면 생각나는 게 영국의 세계적인 석학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관이다.그는 서양측에 짓밟혀 온 중국이 잠에서 깨어 날 때 거대한 보복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며 황화론을 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미국과 영국은 마치 태평양시대의 도래를 촉구라도 하듯 자꾸만 중국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아무래도 요즘 서방 지도자들은 토인비의 역사관 따윈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 미,「북핵 포괄적 타결」 시사

    ◎클린턴/“한·중·일이 워싱턴 정책 지지”/강택민/“남북대화 통한 핵해결 희망” 【시애틀=특별취재반】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19일 한국·일본·중국이 북한핵에 대한 제재조치가 역효과를 야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고 북한과의 모든 견해차이를 해소하는 「보다 포괄적인 해결방안」을 여러 대안중의 하나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강택민중국국가주석과 개별정상회담을 가진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해 시한을 설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클린턴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핵과 수교문제의 일괄타결방안을 대안의 하나로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클린턴대통령은 한중일 3국은 북한의 핵보유를 원하지 않고 있으며 그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들 3국이 대북한 제재조치가 역효과를 가져올지 여부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제,『우리는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재개와 핵사찰수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이견을 해소하는,아마도 보다 포괄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것 등 몇가지 다른 대안들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아야 한다는데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국제원자력기구가 더 이상 북한의 핵개발 여부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강택민주석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한반도의 비핵화를 중국이 원하고 있으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희망한다고 말하고 특히 북한과 미국,북한과 IAEA,그리고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핵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기자회견에서 전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에앞서 호소카와 일본총리와 개별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호소카와총리는 북한핵문제를 첫번째 의제로 거론했다. 미일양정상은 또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노력의 중요성에 의견을 같이했다고 서방관계자가 전했다.
  • 이장영선생(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1920년대 만주항일투쟁 주도/청산리대첩뒤 10개 독립단체 통합/대한독립군단 창설… 초대 참모장 역임 무장독립단체의 통합체인 대한독립군단 참모총장을 역임한 백우 이장령선생은 1881년 5월20일 충남 천원군 목천면 서리에서 태어났다.어릴 때부터 결단력이 유달리 강했던 선생은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에 입학,1903년 육군부위로 승진했으나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군해산령이 내려진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의 조국광복투쟁을 결심하고 1907년 11월20일 중국 동북지방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했다.1905년 을사조약후 최초의 국외망명자가 된 것이다. ○충남 천안서 출생 선생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삼원보에 정착한 이회영형제를 비롯한 신민회 간부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선생은 이씨형제와 신흥강습소를 창설하고 교관이 돼 애국청년들의 군사훈련과 독립정신 고취에 헌신한다.1920년 8월 일제의 강압으로 학교가 폐교될 때 까지 2천1백여명의 독립군이 배출된 데는 선생의 공이 컸다. 선생은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난 것을 기점으로 대종교의 지도자 서일·신규식·김헌·김성주를 중심으로 결성된 군정부(일명 대한군정서)의 참모장으로 임명됐다.대한군정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면서 북로군정서로 개칭된다. 북로군정서 소속 군은 북간도지방의 군사주력부대로서 군인을 모집,훈련시키고 무기를 구입하여 임전태세를 확립하는 한편 곳곳에 정보연락기관을 설치했으며 근거지는 왕청현 십리평 일대의 30여리에 걸친 심림지대였다. 북로군정서 군은 소련령의 블라디보스토크등으로부터 최신 무기를 구입,무장하고 전투훈련을 계속했으나 이 사실을 탐지한 일본군은 독립군 대토벌작전을 계획하고 중국에 은근한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중일 양국은 우호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영토내에 독립군 대부대가 무장하고 일본에 항전하고 있는 것은 중국당국에서 독립군을 보호하는 결과이므로 일본은 중국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일본의 내정간섭을 불쾌하게 여겼으나 싸울 능력이 없었던 중국은 독립군을 공격하는 척 하면서 독립군에게는 산중피신을 권고하기도 했다.북로군정서 군은 좀 더 실력이 증강될 때 까지는 일본군과의 정면전쟁은 피할 생각이었다.그러나 1920년 9월20일 이범석을 단장으로 이동준비를 서두르던 중 예기지 않았던 훈춘사건이 발생했다. 일본군의 조종을 받은 마적 4백여명이 훈춘성을 공격하면서 일본영사관을 일부러 습격하고 일경간부 가족 부녀자 9명을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킨다.일본은 이 자작극을 구실삼아 중국당국의 양해도 받지 않고 연대병력을 전격적으로 출동시켜 한국인 부락을 모조리 습격했다.일본군은 북로군정서 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협공작전을 폈으나 북로군정서 군이 이를 인지,서로군정서와 합류하고 백두산지역에 새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안도현으로의 이동을 개시한다.그러나 일군의 집요한 작전으로 일전을 불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청산리 계곡은 동서로 25㎞에 달하는 긴 터널과 같은 계곡으로 좌우에는 울창한 삼림지대로 겨우 인마통행만이 가능할 정도였다. ○1천2백명 사살 북로군정서 군은 1제대장 김좌진장군과 2제대장 이범석장군의 지휘로 요충지에 군사를 매복시키는등 전투준비를 완료했다.1920년 10월20일 상오 9시 안천소좌가 이끄는 일본군이 지형정찰도 하지 않고 계곡의 좁은 길을 따라 이범석부대의 매복지점에 들어서자 독립군은 일제사격을 가해 일거에 패퇴시켰다.일본군 본대까지 달려와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으나 유리한 지형을 이용,포진하고 있는 독립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10월20일부터 25일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된 이 전투가 독립운동사에 가장 빛나는 청산리대첩이다.일본군은 연대장을 포함,1천2백여명이 사살됐으나 독립군은 불과 1백여명만이 전사했을 뿐이다. 1920년 12월 북로군정서 군의 주도아래 대한독립군·대한국민회·대한정의군정사등 10개 독립군단체는 대한독립군단으로 조직된다.선생은 이 단체의 참모총장으로 임명됐는데 병력은 3천5백명이었다. 대한독립군단은 이후 일본군의 예봉을 피하고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해 소련영토로 이동,러시아혁명의 와중에 있던 공산계열인 소련군과「동상이몽」식이었으나 한동안 손을 잡는다.속뜻이 달라 소련군과 갈등관계를 유지하던 독립군은 소련과 캄차카반도연안의 어업협상을 벌이던 일본이 『소련영토에 한인혁명단체를 육성하는 것은 양국 우호관계상 적절치 못하다』는 근질긴 항의때문에 무조건적인 무장해제를 통고받는다. 1921년 6월28일 소련군은 통보를 무시한 독립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독립군은 이 싸움에서 3백여명이 전사하고 2백50여명이 행방불명이 되는등 큰 피해를 입었다.흑하사변으로 불리는 이 참변후 선생은 중국 동북지방으로 피신했다. ○건국훈장 추서 대한독립군단 재편으로 1924년 3월 대한독립군정서군이 조직되자 선생은 다시 적극 참여했으며 7월 길림에서 전만통일의회주비회를 열어 독립단체가 통합되려 할 때 윤각과 함께 참가,회의의 주비회장으로 추대되면서 신민부를 조직했고 신민부의 참의원으로 선임됐다. 일제의 압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더욱 가혹해졌으며 선생이 있던 중국 동북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활동의 폭도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평생조국광복을 위해 같이 싸웠던 김좌진이 공산당원에게 살해당하면서 독립운동무대를 상해로 옮기려던 선생은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마적에게 피살되는 불운을 맞게 된다.선생의 나이 51세였다. 정부는 1963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불,조선문화재 조직적 약탈”/로즈제독 행적 분석 최석우신부 증언

    ◎병인양호때 수집팀 설치,강화도 수색/선교사들도 중요자료 상당수 빼내가/불발표 2백97권은 일부… 개요 파악뒤 반환요청을 『프랑스에서 반환하겠다고 한 고서 2백97권은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 가운데 일부에 불과합니다.원론적으로 보면 프랑스가 가져간 우리 문화재는 전체적으로 그 개요가 파악된뒤 우리측의 요청에 의해 되돌려져야 합니다』 서울 가톨릭 교구의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신부(71)는 최근 프랑스가 미테랑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되돌려 주겠다고 한 고서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면서 『그들이 일방적으로 되돌려 주겠다고 한 문화재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신부는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해 병인양요를 일으켰던 로즈제독이 당시 본국의 해군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한글 번역문이 실려있는 「교회사 연구 제2집」을 보여주었다. 79년에 발간된 이 책에는 1866년 10월20일,11월 17일,11월30일 등 병인양요 당시 로즈제독이 정박중인 선상에서 쓴 것으로되어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본인은 강화에 도착하자마자 위원회를 조직해 역사적 과학적 견지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물건들을 수색하고 수집하기 위한 일을 맡겼습니다.…청컨대 이것을 황제 폐하께 받쳐 주십시오…」 이 책은 또 로즈제독일행이 강화도에서 입수해 본국에 보낸 물건들의 목록을,가체된 큰책 3백권,가체된 작은책 9권,한중일 지도,평면 천체도,족자 7개,대리석판 3개,소상자 3개,은괴 19상자,3개의 갑옷과 투구,가면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프랑스에는 우리의 초창기 사회사와 교회사등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그것들은 대부분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해 넘어간것 들입니다』 예컨대 김대건신부가 프랑스 선교사들의 비밀입국 경로를 그린 「조선전도」라든가 직지심체요절,왕오천축국전등은 프랑스에서보다는 우리쪽에서 더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유산이라는 주장이다.50년대 말부터 한국교회사연구를 위해 프랑스를 오가며 그쪽 사정에 정통한 최신부는 우리 정부의적극적인 대응과 프랑스 정부의 양해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당시 프랑스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가져간 우리 문화재가 적지 않은데다 현재 우리 문화재 대부분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창고등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부는 특히 『우리 정부로서도 외교적인 경로등을 통해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문화적 가치에 따라 반환을 요청하는 것이 양국의 실질적인 우호증진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 도굴꾼들(외언내언)

    BC330년 알렉산더대왕은 부하장교들을 죽은지 2백년이 지난 사이러스대제의 무덤에 보내 보존상태를 살펴보도록 했다.그리고 그로부터 6년후에는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보고는 무덤이 파괴된채 보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것을 알았다.유골을 모아 다시 안치한후 자신의 문장으로 봉인했지만 그후 수차례 도굴로 무덤속은 완전히 텅비어 버렸다. 고대 이집트 왕들의 시신이 있던 피라미드도 마찬가지다.아무리 정교한 미로를 만들어도 도굴꾼들은 비장된 장소를 예외없이 알아내 부장품들을 발굴해갔다.파라오들은 그 방지에 고심한 끝에 BC16세기 투트메스1세는 1천7백년전부터 계속되어온 피라미드조영을 단념하고 산골짜기 암굴에 왕들의 시신을 매장했으나 도굴꾼들은 미소띠며 고분을 파헤쳐버렸다. 지난 76년 신안앞바다에서 1만여점의 주옥같은 보물이 인양되고 있을무렵 그곳 감시초소일지에는 선박통행이나 어로사실이 전무한 것으로 되어있음에도 도굴범들이 창궐하여 신안앞바다는 한때 「도굴범들의 황금어장」으로 불렸었다. 대체로 도굴범들의고분식별 안목은 전문가 뺨치는 실력이다.그들은 사냥개처럼 냄새맡고 번개처럼 파헤친다. 충남 당진 영탑사에 있던 금동삼존불상도난사건은 지난 68년 현충사 이충무공의 「난중일기」를 훔쳤던 거물급 문화재절도범이 배후조정한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대학에서 사학과 전공후 공주에서 미술교사를 지낸 인텔리로 문화재 식별안목이 「귀신같다」는 평이다. 이번 전남 함평에서 미발굴의 백제 신덕고분을 파헤친 도굴범들의 안목 또한 문화재 관련자들을 앞지른 결과가 돼버렸다.그들은 「전국 곳곳에 발굴되지 않은 고분이 널려있다」느니 「경주의 한 고분도 자신들의 도굴이 계기가 되어 발굴된 예」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문화재가 한낱 도굴범들의 사유재산이나 문화재 발굴개가의 공적으로 치부될순 없다.만인 공유재산인 문화재를 좀더 철저히 지키고 가꾸는 효율적인 관리정책이 요구된다.
  • 조성기작 「욕망의 오감도」(이작가 이작품)

    ◎성폭력을 심리적으로 조감/어린이 추행·인신매매등 실상을 생생하게 묘사/“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성찰 촉구 종교적 인간,제도속의 실존등 인간내면을 무게있게 탐구해온 소설가 조성기(42)가 외도를 했다.강간,어린이추행,인신매매같은 이땅의 음지에서 발호하는 갖가지 성폭력을 심리적으로 조감한 4권짜리 성폭력 연작소설 「욕망의 오감도」를 통해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성폭행의 추악함을 폭로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우리시대의 가장 부끄러운 구석을 부끄러운 방식으로 펼쳐보이는 이야기』라며 『여기서 부끄러운 방식이란 소설의 형식을 가리킨다』고 털어 놓았다.그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성폭력의 실상과 그 세계를 몸서리쳐질 정도로 냉혹하고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의 성찰을 촉구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욕망의 오감도」는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의 시「오감도」를 염두에 둔 작업이다.시대의 병적인 징후를 읽어낸 「오감도」의 시인이 오늘의 성폭력실태를 목격했다면 『더 충격적인 「오감도」를 썼을 것』이라는게 작가의주장이다. 『여자가 어둠속을 질주한다.어둠속에서 질주하는 것은 그 여자만이 아니다.…모두 남자들에 쫓기고 있다.제1의 여자가 무섭다고 그런다.제2,제3의 여자가 무섭다고 그런다.여자들이 질주하는 거리는 온통 공포로 뒤덮여 있다…』 소설의 첫째권 「질주와 공포」는 폭력배들로부터 윤간을 당한 주부가 「완전범죄」를 위장한 「완전복수」의 형식을 통해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보복을 스스로 집행해 나가는 내용이 남편의 또다른 타락상과 함께 맞물려 전개된다.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둘째권 「아버지의 아버지들」은 더욱 끔찍하다.국민학교6학년때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처녀가 10년이상을 그 사슬속에서 고통받는 과정을 다중일인칭 전환기법으로 서술했다.이땅의 모든 추행하는 어른들과 고통받는 어린이의 이야기다. 세번째 주제인 인신매매편 「전락하는 몸들」은 작가의 빈틈없는 취재가 르포처럼 펼쳐진다.지금까지 나온 어떤 르포보다 인신매매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24살난 미모의 처녀가 납치돼 포르노영화촬영장으로 끌려가면서 일어나는 사건과 양공주로 전락하는 과정을 심리추적으로 고발했다. 조씨는 경기고,서울대 법대출신으로 등단이후 「라하트하헤렙」「우리시대의 소설가」「가시둥지」등 일련의 문제작을 통해 문단의 비중있는 작가로 자리를 잡은 지성파.그의 이번 성폭력 연작작업은 창작소재로서의 성폭력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작가의 소설적 방향전환으로까지 비춰지는 이 소설은 현상만 존재할뿐 정체를 드러내지않는 성폭력의 실체를 소설화함으로써 성폭력은 더이상 감춰질수도 덮여질수도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이 타락한 시대의 타락한 거울이라고 할진대,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라면 이와 같은 종류의 작업도 감당하여야할것』이라며 『시의 형식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하고 부끄러운 소설의 형식을 택한 것은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 한·중,40년단절 단숨에 메우다/오는24일 수교1주년…평가와 전망

    오는 24일로 한중수교 1주년을 맞는다.냉전종식과 더불어 과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동반자시대를 함께 연 지난 1년을 서울과 북경의 시각에서 회고·평가해보고 바람직한 양국관계의 발전방향을 주중·주한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가늠해본다. ◎서울의 시각/임정요인 유해봉환 허가 큰 의미/항공협정등 미해결현안 과제도 최근 상해임정 요인들의 유해봉환이 있었다.유해봉환을 보는 외교전문가들의 시각은 남다르다. 한 외교전문가는 『상해임정 요인들의 유해봉환은 지난 80년대 초부터 북한이 중국측에 집요하게 요구한 사업』이라고 설명했다.이 작업은 상해임정의 법통을 북한정권이 잇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외에 과시,우리보다 도덕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한 전략에서 추진해왔다는 것이다.그런데도 한국전쟁 참전등 맹방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을 제치고 우리에게 봉환을 허가한 것은 『대단한 정치적 의미』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이에앞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문제로 열린 유엔안보리에서는 기권으로 우리의 입장을 간접 지지한바 있다.냉전시대의 오랜 적국과 불과 수교 1년의 변화치고는 놀랄만한 것이 아닐수 없다. 중국과의 발빠른 유대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상호의존성의 증대와 오랜 역사관계에서 생긴 동질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국 외교사령탑인 한승주,전기침 외무장관이 새정부들어 짧은 기간인데도 벌써 3차례나 만나 회담을 가진 것도 이에서 기인한다.그러나 이것으로 올 접촉이 모두 끝난 게 아니다.지난 7월말 싱가포르에서 양국외무장관이 만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앞으로 유엔총회 때,오는 10월 전외교부장의 초청으로 한장관이 중국을 방문할 때,아·태경제협의체(APEC)각료회의 때등 3번이나 더 만나게 되어있다』며 서로 웃었다 한다.물론 북핵문제라는 뜨거운 현안이 있긴했지만 미·일이 아닌 다른 나라 외무장관을 불과 10개월만에 6차례나 만난다는 것은 결코 흔치않은 일이다. 중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무엇보다도 북경 주재 한국공관의 확대이다.노재원전중국대사가 한국을 대표해 부임한 것은 지난 90년초 무역대표부 대표 자격이었다.그뒤 공관의 규모는 급속히 팽창,수교전에 이미 16명의 공관원이 상주하는 중형공관의 모습을 갖추었고 수교 이후에는 30여명이 넘는 대형공관으로 성장했다.이는 워싱턴과 도쿄공관의 규모를 넘보는 수준이다.또 지난 7월에는 상해총영사관이 설치됐고 중국도 조만간 부산총영사관을 개설할 예정이다.여기에 올해안에 중국 심양과 광주 두곳에 총영사관이 새로 설치된다. 그래서인지 공관 선호경향이 뚜렷한 외교관들로부터 인기 있는 공관으로 급부상했다.이것은 한·중관계가 그만큼 비중있는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앞으로의 역할,즉 할 일이 산적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대목이 있다.비록 상징적이긴 하지만 전부장은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런데도 중국어를 고집,통역관을 붙이고 그 통역관이 상대 장관의 대화내용을 중국어로 바꿔 전하는 동안 다음 답변을 생각한다는 것이다.외교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의 무서운 일면』이라고 말한다. 아직 항공협정을비롯,2중과세방지협정및 환경협력협정,보건의료협정등이 체결되지 못한 것도 「무서운 일면」이라고 여기고 있는 전문가들이 많다.중국의 「타임스케줄」상 적기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늦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대한반도 2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자국의 전통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확보할수 있을때 까지는 한반도의 분단현상을 타파하는 것 보다 현상유지를 통한 긴장완화에 우선 순위를 두고있는 것이다.우리의 「하나의 중국」 원칙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이는 수교 1년이 양국 관계에 많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지만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북경의 시각/최적 경협파트너 인식,교류 급증/올 교역규모 1백억불 돌파 기대 한국과 중국에 있어 지난 1년은 참으로 역동적인 한해였다.한중양국은 수교후 불과 1년만에 40년 단절의 역사를 단숨에 메우기라도 할듯 숨가쁘게 오가며 이해와 협력의 장을 다졌다. 교류와 협력이 이뤄진 분야는 문화·체육으로부터 과학기술·환경·교육·국제평화·예술·경협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활발했던 쪽은 무역·투자등 경제분야였다.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이 한국 경제가 뻗어나갈 「최후의 땅」이라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보편화 돼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중국 역시 의식구조나 경제기술수준,지리적 인접성 등의 이유에서 한국을 최적의 경협 파트너로 생각하는 가운데 양국간 수교를 만시지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국기업들은 중국행열차를 놓치면 영영 낙오자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듯 재벌총수들을 비롯,수많은 기업가들이 분주히 중국을 드나들었다.그래서 수교이전 한국에서 발붙이기 어려웠던 일부 한계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중국을 찾아들던 시절은 이젠 옛날 얘기가 됐다.투자규모만 해도 85년부터 92년 6월말까지 7∼8년간엔 중소기업 위주로 약 3백건,2억5천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 1년동안에만 4백여건,4억5천만달러로 급증했다.지금 추진중인 사업만 해도 약 1억달러 규모의 대우산동시멘트공장을 비롯,현대의 대연자동차 생산공장,동아건설의 북경지하철·고속도로공사 등 수억달러의 대형 프로젝트가 수두룩 하다. 양국간 무역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 지난해 82억2천만달러를 달성함으로써 중국은 우리의 3대 교역국으로 성큼 다가섰고 우리는 중국의 7대 교역국에 올랐다.지난 수년간 지속된 한국의 대중무역적자가 지난해 7억6천만달러의 흑자로 돌아선데 이어 올 상반기 5억9천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몇몇 전문가들은 양국교역 규모가 올해 1백억달러를 돌파한 후 2∼3년내에 2백억달러를 넘어 현재의 중일무역수준에 접근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기도 하다. 양국이 지난 1년동안 경협과 관련한 각종 제도와 장치를 거의 마무리 지은 것도 놀랄만한 변화이다.민간차원에서 체결됐던 무역협정·투자보장협정 등이 수교직후 곧바로 정부차원협정으로 전환된데 이어 지난 연초 건설협력 양해각서가 양국 건설장관에 의해 서명된 것을 시발로 해운협정,우편및 전기통신협정등이 뒤따랐고 한중무역실무회의를 비롯한 경제분야회의나 세미나,시찰단교류,각종 친선협회 결성등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북한을 의식해서인지 한국과의 접촉을 꺼리던 중국관리들도 수교 이후에는 아무 거리낌없이 접근해오고 있으며 중국의 업계 관계자,관리,학자들의 방한도 급증추세에 있다.수교이전 방한 중국인은 80%가 친지를 방문하는 조선족동포들이었으나 이제는 상용비자에 의한 방한비율이 70∼80%로 늘어나 완전 역전됐다고 주중한국대사관의 한 담당자는 밝히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아직도 중국을 특정지역국가로 묶어 방문시 특인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는 것과 중국이 국제민간항공기구가 규정한 관제이양점 수용을 거부하며 서울∼북경간 직항로개설을 미루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어쨌든 지난 1년동안 협력과 교류에 따른 제도적 장치들을 거의 매듭지은 상황이어서 이같은 틀을 바탕으로 양국간 교류와 협력을 일상화하고 정착시키는 일이 이제부터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중국,대만에 「국­공 합작」 제의/강택민,이등휘에

    ◎통일 앞당기기 공동 노력 촉구 【홍콩 연합】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이등휘 대만 국민당주석에게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합작하여 빠른 시일내에 조국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제의했다고 홍콩신문들이 20일 일제히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명의로 이주석에게 19일 재선을 축하하는 전문을 보냈으며 이 축전에서 『우리 양당이 합작하여 해협양안 각계인사와 전국 동포와 더불어 중국을 진흥시키고 빠른 시일내에 조국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강택민 총서기는 또 『「일개중국」의 원칙을 견지하고 국제무대에서 「2개중국」 및 「일중일대」를 주장하는 활동을 반대하고 양안간의 경제합작과 교류를 가속화하고 통일대업을 추진하는 것은 중국민족의 근본이익에 부합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국민당을 비롯,총통부와 대륙정책 전문가들은 그간 국민당이 양안관계 개선을 위해 해온 노력을 중국이 긍적적으로 평가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며 커다란 환영의뜻을 표시했다고 대만의 관영 중앙통신이 대북발로 보도했다.
  • 혜봉스님,「친일 불교론」 상·하 2권 펴내

    ◎일제하 불교계 친일행위 고발/「승려의 도성 출입금지」해제후 본격화/징용권장 논설 발표·군용기 5대 헌납 일제 치하 조선불교계의 친일행각을 낱낱이 파헤친 「친일불교론」 상·하(민족사간)가 나왔다. 임혜봉스님(46)이 일제하 불교간행물과 신문등 각종사료를 토대로 2년동안의 노력끝에 펴낸 이 책은 불교계는 물론 종교계 전체에 자성의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졌다.1장에서부터 4장까지는 일제의 조선침략이 시작된 1876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조선불교계의 친일종적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했다.이어 5장은 이회광 이종욱 권상로 김태흡 등 친일 거두 승려 4인의 행적을,6장은 불교계의 창씨개명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불교의 친일은 1895년 일본승려 사노(좌야전려)의 건의로 조선왕조의 「승려들의 도성출입금지」 규정이 해제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이후 조선총독부는 1911년 사찰령을 반포,조선사찰을 30본사로 분할해 불교계의 힘을 분산시키고 본사와 말사의 주지 임명권을 총독에게 부여함으로써 종무행정과 불교재산은 물론 교리까지 철저히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선불교의 친일행각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본격화돼 1941년에서 1945년에 이른 태평양전쟁때 정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당시 불교계 인사 30여명은 황도불교라는 말을 들먹이며 징병을 권장하는 논설을 171 편이나 발표했다.또 1942년에는 군용기 5대를 「조선불교호」로 이름붙여 일본군에 헌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임혜봉스님은 『이 책을 쓴 것은 개인에 대한 단죄보다는 한국불교는 물론 한국민 모두가 이같은 모멸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되겠다는 뜻』이라고 집필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책을 낸 민족사측은 『지난해 7월 이책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인물들의 후손이나 관련 인사들의 격렬한 항의와 위협으로 업무가 마비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발간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 국제행사진행 “숨은 일꾼”/영어동시통역사 서완수씨

    ◎“바쁜 일정이지만 나라위한 일… 기뻐” 대전엑스포에서 국가의 날 행사때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진행을 맡고 있는 서완수씨(27·여).우리말로도 하기 어려운 국제행사의 진행을 서씨는 매끄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엑스포조직위의 동시통역사로 일해온 그는 『전세계인들의 축제인 엑스포에서 일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88올림픽때도 유도경기장에서 영어아나운서로 일한 그는 『각국의 사회및 문화적 배경이 달라 행사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따로 그나라의 역사도 공부한다』고 했다. 가끔 다음날의 행사일정이나 원고가 늦게 알려져 밤새워 연습을 하기도 한다는 그는 『남들이 「도우미」냐고 물을 때가 가장 섭섭하다』면서 엑스포에는 도우미 말고도 숨은 일꾼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씨는 국가의 날 행사의 진행 말고도 해외귀빈들의 오찬이나 의전행사에서 통역까지 맡아 1인3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는 『나라를위한다는 일념으로 즐겁게 일한다』고 다부진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은 주로 통역만 해왔으나 앞으로는 행사진행도 하겠다는 그는 한국식품개발연구원 서중일원장의 1남3녀 가운데 막내딸이다. 월급은 비밀이지만(2백만원이상)혼수를 마련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밝히는 서씨는 엑스포가 끝나면 다시 프리랜서로 일할 계획.취미는 테니스로 수준급이다.
  • 학력 허영심 파고든 “상혼”/학위논문 대작 어떻게 했나

    ◎유명대 출신 대학원생 수백명 고용/“논문지도” 신문광고후 희망자 모아/석사 2백만원·박사 1천만원대… 대부분 심사 통과 10일 검찰에 적발된 석사학위논문 대작사건은 실력보다는 학벌과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풍토와 그릇된 인사들의 지적허영심,일부 특수대학원의 형식적인 논문심사,그리고 이를 교묘히 파고든 상혼이 함께 만들어 낸 합작품으로 볼 수 있다. 구속된 대관자료개발원장 최석봉씨는 명문인 서울법대 출신으로 학원강사를 거쳐 경찰관 승진시험 및 대학입시 교재를 출판하는 「대관문화사」를 설립,운영하다 90년부터 독학사제도가 생긴뒤 사업영역을 확장,학사고시 교재까지 만들기 시작했다.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사업이 되지않자 생각을 바꿔 다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석·박사학위취득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한 학위논문대작사업에 뛰어들었다. 최씨는 이 사업의 일단계로 지난 4월부터 9개 중앙일간지에 광고를 내 서울대·파리대·나고야대·대만대·모스크바대등 국내외 유명대학 출신 1백98명을 논문대작을 위한 「옵서버」로 채용했다. 「옵저버」들의 모집을 마친 최씨는 지난 5월 동작구 노량진동에 「대관자료개발원」이라는 업소를 차려놓고 다시 두달여동안 중앙일간지에 90여차례(7천만원어치)나 「2백명의 석·박사학위 소지자가 논문자료를 수집해주고 지도해줌」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집중 게재,주로 직장을 가지고 있는 특수대학원생들을 끌어들였다. 석사논문은 2백만∼2백30만원,박사논문은 1천2백만원씩을 받아 두달남짓에 5천여만원을 거뜬히 챙긴 최씨는 검거 당시에도 70여명의 의뢰자와 상담중일만큼 호황을 누렸으며 이번에 검찰에 잡히지 않았으면 논문의뢰 성수기인 8월부터는 「떼돈」을 벌었을 것으로 검찰수사관들은 짐작했다. 최씨는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서울뿐 아니라 부산·창원·대전 등 3개지역에 지사를 두고 지방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려다 적발됐다. 인덕전문대 출신의 이규철씨(30)는 기존 논문과 자료등을 짜집기만 해도 학위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대작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대학가 주변에 논문작성작업을 도와준다는 전단등을 배포해영업을 시작한 이씨는 점차 전문 대작요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고교후배 소개로 한국과학기술원 경영정책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김선민씨(28·구속)를 논문 1편당 60만원씩 주기로 하고 전문요원으로 채용했다. 이씨는 특히 논문의뢰자가 바쁘다는 구실로 논문대작자를 대학에 보내 논문지도까지 대신받게하는 대담성을 보여 22편의 대작논문 가운데 21편이 무사히 심사를 통과,석사학위를 받아내게 했다. 또 임원택씨와 한재희씨도 각각 「미래사회과학연구소」와 「논문자료센타」라는 그럴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대학가 주변에 홍보전단을 돌리거나 대학원생 주소록을 입수,매학기초 학위논문 제출예정자 집으로 전단을 보내 논문의뢰자들을 유인해 톡톡히 재미를 보다 이번에 덜미를 잡혔다.
  • 「정신대」매듭 아직 멀었다/박용옥 성신여대교수 사학(일요일아침에)

    인류사를 돌이켜 볼때 피정복지의 여성들은 정복자들에 의한 강간으로 인하여 2중적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러나 그 강간행위는 대개 인면수심한들 개개인에 의한 것이지 일본처럼 국가가 주관자가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가 않다.그런 점에서 볼때 강제 연행되어 일본군의 성적 노예가 된채 자유없는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던 정신대의 문제는 인류사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야 하며 행위 발의 및 주관자는 그에 대한 백배사죄와 처벌을 받아야 한다.또한 고통당한 생존자에게는 마땅히 응분의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명백한 국가주도 한국인에게 있어 여성의 정절문제는 여성 자신에 한하는 것이 아니었다.이것은 실로 민족정신과 문화의 우뚝한 긍지였다.일본의 무력에 어쩔 수 없이 문호를 개방해야 했던 1876년 대표적 위정척사론(위정척사론)자인 최익현선생은 목숨을 걸고 조약체결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반대이유의 하나가 『저들이 우리의 재물을 빼앗고 부녀들을 겁탈할 것』이라는 이유였다.이것은 우리의 민족정신과 문화가 유린되고 말것을 예언한 것이다.그러나 최익현선생조차도 일본이 국가적 주관아래 한국여성을 유린할 것이라는 것까지는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4일 일본정부가 내놓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방장관의 담화및 조사결과의 발표문은 작년 7월에 「강제성을 인정할 자료는 없었다」고 발표하였던데 비한다면 상당한 진전이 있는듯 보이나 과거 반성의 진실된 태도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하겠다. 정신대 문제의 중요 쟁점은 첫째 「강제성」의 인정이다.이들은 이에 대하여 「종군위안부 모집이 감언 강압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는 지극히 우회적 표현을 썼으며 위안소 생활에 대해서도 「강제적인 상황」이라는 소극적 표현을 쓰고 있다. ○용서못할 비인도 둘째 종군위안부의 규모인데 이에 대하여 「충분한 자료가 없어 위안부 총수를 제시할 수는 없으나 많은 수의 위안부가 존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표현함으로써 정확한 숫자발표에서 오는 막중한 죄의 책임을 희석하고 있다.1930년대초 이래 패전 직전까지 강제 연행된 한국여성의수는 줄잡아 20만명인 것으로 그동안의 조사연구자에 의해 밝혀져 있다.일본에는 우리가 아직 접하지 못한 보다 많은 자료가 있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다.자료가 없다고 하는 것은 무성의한 태도이며 오만한 태도이자 더 나아가 자신의 죄를 아직도 감추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셋째는 일본정부의 사죄의 태도이다.이에 대하여 담화문에서 「상처입은 모든 사람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한다」고 했다.강간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가장 막다른 길에 든 자나 하는 행위이다.그렇다면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인류의 평화적 삶의 권리를 강탈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그런데도 그들이 작은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때 행해지는 정도의 용어인 「사과」라고 표현한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행위인 것이다.일본 신생당의 하타 쓰토무 당수가 말한 것처럼 영어의 「Apologize」에 해당하는 용어인 「사죄」라는 용어를 겸허한 자세로 썼어야 했다.그렇지 않고서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언급의 진실성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 교훈 돼야 정신대 문제에 대한 이번의 일본측 발표를 통해 양국 정부는 외교적 차원의 논란을 매듭지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러나 정신대의 문제는 한일 양국 국민에게 다같이 큰 역사적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보다 철저한 자료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일본에는 전범자로서의 만행과 죄악상이 얼마나 끔찍하고 인류사에 수치스러운 것인가를,또 한국인에게는 나라 잃은 슬픔과 참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철저히 깨닫게 하는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볼때 자료의 발굴조사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과감히 이루어져야 한다.민간 연구자는 물론 국사편찬위원회와 같은 공공기관을 통해서도 책임있는 자료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일본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원자탄 피폭 박물관이며 평화공원을 세워 해마다 그날을 기념함으로써 일본2세로 하여금 전쟁피해자가 바로 일본인 것처럼 착각케 하는 사업을 행하고 있는데 자신의 죄를 진정 반성한다면 전쟁중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 희생된 영령들에게 사죄하고 위로하는 기념관 내지 사죄사업을 행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중·러·일 견제(외언내언)

    「남북한은 지금상태 그대로 통일되어도 쉽게 중요한 국제적 존재로 부상될 수 있으며 아마도 지역강대국이 될수 있을 것이다.세계 12위의 GNP대국에 14위의 인구대국으로 아시아 제3의 거인이 될 것이다」.얼마전 미국신문에 실렸던 기사의 한대목이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도 지난 3월 비슷한 기사를 쓴일이 있다.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인구7천만에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GNP 약4천억달러의 일본·중국다음가는 아시아 제3의 경제대국이 될것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그것은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중일등 주변국들이 원치 않는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21일 르피가로지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했다.무언가를 생각케하는 보도들이 아닐수 없다.일본,중국,러시아등 주변국들은 일반적 찬성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도 되기전에 미리 주변의 새로운 강대국부상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반도를 지배했던 일본이 특히 심하다는 것이었다. 통일과 관련한 우리의 냉엄한 주변현실이 어떤것인지 보여주는 보도들이 아닐수 없다.우리는 미일중러가 모두 우리의 분단에 책임이 있고 때문에 당연히 한반도통일을 적극지원해야 하고 할것이라 생각해왔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지정학적으로 미·러는 몰라도 일본·중국은 원하지 않을수 있는 조건들이 있다고 할수 있다.특히 일본은 반일의 통일한국가능성을 가장 경계한다. 일본이 우리의 통일을 공공연히 반대혹은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그러나 내심의 반대나 방해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그것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일본 신보수세력의 방향이기도 하다.미러중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적극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지정학보다 중요해진 지경학차원에서 최소한 반대는 못하게 해야 한다.우리통일외교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다.「누구에게도 적의를 품지않고 모두에게 자선을…」독일통일외교 모토의 하나였다고 한다.
  • 지도층 2,499명 자제 병역 특별관리/연예인·운동선수 등 포함

    ◎신장·체중연계 판정제 폐지/병무청/19세부터 입영허용 앞으로 사회지도층·고소득층·유명 연예인·운동선수·병무관련직원의 자제들은 병역자원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돼 병역 신체검사때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또 신장·체중을 연계한 병역판정제도가 폐지되고 신장·체중이 과다하게 초과되거나 미달된 사람만 병역면제처분을 받게 된다. 김광석병무청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병무부조리를 뿌리뽑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병무행정개선안을 마련,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병무청은 병역자원 중점관리대상으로 ▲차관급 이상인 공무원 1백30명 ▲중장급이상 장성 46명 ▲대사 47명 ▲검사장급이상 검사 40명(이상 행정부) ▲국회의원 2백99명(입법부) ▲법원장급이상 판사 33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이상 사법부) ▲병무청직원(1천7백95명) ▲국세청 자료에 의한 고소득층 1백명등 2천4백99명을 선정했다. 앞으로 이들의 자제들은 징병검사등 병역처분을 할때 외관상 처분에 명백할때를 제외하고는 군통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며 입영때는 물론 정밀검사의뢰때에도 중점관리대상임이 사전통보된다. 병무청은 또 신장과 체중을 결부시킨 병역판정제도가 문제점이 많아 체중일시초과로 병역면제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 제도를 폐지하고 신장은 1백58㎝미만 또는 1백96㎝이상일때,체중은 45㎏미만 또는 1백23㎏이상일때만 병역면제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병무청은 이와함께 징병검사를 받은 다음해부터 입영시키던 관행을 폐지,본인이 원할 경우 징병검사를 받는 19세부터 입영이 가능토록 해 최소 1년에서 최장 2년까지 입영시기를 기다리는 폐단을 없애기로 했다. 병무청은 이밖에 징병검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오는 8월1일부터 징병검사 수검자들에게 건강진단내용이 기록된 신체검사서(진단서)를 검사현장에서 교부해 주기로 했다.
  • 박성수교수 주해 「저상일월」 상·하(서평)

    ◎근세 1백여년 가족·향촌사 집대성/세시·농사·예절·향토사건까지 담겨 일기는 역사연구에 있어서 1차적 사료이다.우리는 조선왕조시대 사관이 매일매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적은 「사초」가 역대왕조실록편찬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었음을 기억하고있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임진왜란을 이해하는데 더없는 자료였으며 매천 황현의 「야록」이 한국근대사연구에 필수적인 문헌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이같이 일기는 그 시대 역사적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저상일월」은 경북예천의 산골 큰맛질(현 경북례천군용문면대저동)에서 대대로 살아안 박씨가문 5대가 18 34년(순조34)부터 19 50년까지 117년간 쓴 대하일기이다.저상이란 큰물윗동네라는 뜻이며 일월은 문자그대로 세월을 뜻한다.이 일기의 원본은 시헌력에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여 42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이며 한문체의 순년체로 되어있으며 서술내용은 천기의 음청,세시의 풍흉,자가의 출입,농사의 경작과 수확,예절의 길흉과 이변,인이와 향토의 사건,조정·시중 및 포구항구에서 일어난 사건등을 기록하고 있다.그러므로 이 일기는 가주사이며 문중사이며 향촌사이며 나아가 시대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5대에 걸친 이 방대한 일기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성수교수가 주해를 하였으니 상권은 제1장 세도정치하의 시대상에서 제4장 밀려드는 개화의 물결까지,하권은 제1장 을사년의 대성통곡에서 제4장 일제의 발악과 8·15광복등 전8장으로 나누어 다시 일기내용에서 소제목을 뽑아 엮어놓았다.박교수는 그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안목으로 소제목의 일기를 묶고 시대적 상황 역사적 배경,일기내용의 분석,오류의 시정,용내의 구체적 설명,현재적 의미부여등을 주해하여 이 일기가 살아숨쉬는 생동감있게 만들었으며 한번 보면 끝까지 다 읽어야 눈을 떼게만들어 놓았다. 이 일기를 통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첫째 한 가문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이해할 수 있다.시골 반촌의 유가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과 그들이 본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통하여 100년전부터의우리 가정생활의 적나라한 모습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둘째 마을을 중심으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향촌사회사를 이해할 수 있다.향약·향규·동설등을 통한 상부상조의 모습,동제·당제등 민간신앙을 통한 정신세계를 살필수 있다.셋째 이 일기는 민중사로서 우리의 민족사의 폭을 넓혀 놓았다.5대가 관계에 진출하지않고 향촌에서 그때 그때마다 일어나는 정치적 상황을 유가의 입장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역사의 뒤안길을 보다 넓게 열어놓았다.
  • 돌아온 최형우의원…거취에 촉각/「13일간 방중」마치고 조용한 귀국

    ◎“개인자격” 불구 「실력자」 예우/의회차원 한·중협력방안 모색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최형우 민자당전사무총장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최전총장의 방중은 57일간의 은둔생활을 마치고 재개한 첫 외부활동으로 앞으로의 거취와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개혁의 일선으로 복귀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관측도 성급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그의 방중 일정에 대해 일단 주목하고 있다.중국에서 보여준 활동상이 곧바로 현재의 위상으로 직결됨은 물론 앞으로의 역할을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최전총장 본인은 이번 방중에 대해 애써 단순한 개인차원의 외유로 치부하고 있다.그는 국회의원의 입장내지는 개인차원에서 안중근의사가 처형 당한 여순감옥소,상해임시정부 청사,북경대학 등을 다녀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밖의 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외유에는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려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그는 중국에 13일동안 머물면서 중국정부로부터 「상당한」 예우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한국의 일개 국회의원으로서는 다소 과분할 정도로 「귀한 손님」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상해·청도·대연·북경 등 4개 도시를 순방하는 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한인교포와 중국인 통역관 2명을 줄곧 수행토록 해 「편안한 여행」을 배려했다.주용기부총리를 비롯,전기운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상임부위원장,등소평의 사위인 장굉중국과학기술총공사 부총재 등 실력자와도 만났다. 중국측은 앞으로 구성될 한중의원친선협의회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그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세심함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중일의원친선협의회 부회장의 경우 외무·국방위의 부위원장인데 비해 우리측과의 협의회는 주양외무·국방위 위원장이 회장직을 맡아 격이 한층 높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또 중국정부가 자국민은 물론 웬만한 국가원수급에도 쉽게 공개하지 않는 명소에도 초청받았다는 후문이다.한국의 「특사」내지는 「실력자」에 걸맞는 예우를 했다는 반증이다. 그는 귀국하기에 앞서 중국측에서 보여준 배려에 대한 보답으로 그곳의 거물급 실력자에게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비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전총장은 귀국후 기자들과 만나 『당분간은 자숙하며 의회차원의 한중협력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당장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아울러 시간이 지나면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을 수 있지않겠느냐는 기대의 표시라는 분석도 가능하다.따라서 그가 개혁의 전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그 시기는 언제가 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 지면서 이기고 이기면서 진다(박갑천칼럼)

    바둑두는 사람이라면 느껴본 일이겠지만 이번만은 반드시 이기겠다고 벼른 판치고 이긴 경우는 드물다.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허점이 생긴다는 것일까.아마추어만 그러는게 아니라 프로도 그러는 모양이다.얼마만큼 마음을 비운채 최선을 다할수 있었느냐에 따라 승패는 갈리는 듯하다. 그건 바둑에 국한되는 얘기만은 아니다.세상사일반에 적용된다.고층아파트에서 떨어진 아기가 살수 있었던 가닭이 무엇인가.생사에 대한 무념이었다.「필사칙생,필생칙사」라는 구절이 이충무공의「난중일기」에 보인다.죽으려들면 살고 살려들면 죽는다는 뜻이다.저 유명한 명량해전을 하루 앞둔 정유년9월15일 예하장수들을 모아놓고 한말로서 읽는 마음에까지 비장감을 일으키는 대목이다.죽고살고를 넘어서서 최선을 다함이 곧 사는 길이라는 뜻이다.사실 총알은 숨거나 도망가는 병사를 쫓아간다는 말도 있긴하다. 「장자」(달생편)가 비유했던 나무닭(목계)의 우화도 그것이다.강자일수록 승부를 잊은듯이 무심해 뵈는 법이라는 얘기로서 기성자라는 싸움닭 기르는 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다.그가 왕의 명을 받고 싸움닭을 기른다.열흘이 되자 왕이 물었다. 『닭은 쓸만하게 되었느냐』 『아직 안됐습니다.공연히 뽐내기만 하고 제기운을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상대를 보면 산울림이 소리에 응하고 형태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덤벼들려고 합니다』 열흘은 또 지났다.왕이 물었다. 『아직 덜됐습니다.아직도 상대를 보기만 하면 노려보고 혈기에 끌리는 점이 있습니다』 한번더 열흘이 지난다음 왕이 와서 묻자 기성자는 대답한다. 『이젠 됐습니다.다른닭이 울어도 움직이는 빛이 안보이고 먼데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조각한 닭과도 같습니다.자연의 덕을 완전히 갖춘 것이 확실합니다.어떤닭도 감히 덤비지 못할 것이며 아마 바라보기만 해도 도망치고 말 것입니다』 당연히 영맹해야 하는 것이 싸움닭이다.하건만 그 영맹함이 밖으로 나타나보이는 동안은 아직 멀었다고 했던 기성자의 말이 함축한바는 크다.마음을 비운 강자란 사실인즉 안이 충실하다.안이 충실할수록 밖으로는 고요해 뵈는 법이다.나무닭과도 같이.영맹함이 나타난자의 범접할바가 못된다. 지면서도 이기고 이기면서도 지는 경우가 세상사에는 얼마든지 있다.죽으면서 살고 살면서도 죽는 경우는 또 어찌없다 하겠는가.다만 그걸 깨단못하는게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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