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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국도극장

    서울 을지로 4가 국도극장은 1913년 황금연예관(黃金演藝館)으로 개관해 광복 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어 국산영화 전문 개봉관으로 자리잡은 한국영화 발전의 메카이다.1935년 개축되었어도 대리석 로비와 양날개 계단등 르네상스풍의 고풍스런 골격이 그대로 남아 있는 궁전식 영화관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몇 안되는 역사적 건물중의 하나이다. 50년대 이규환감독의 ‘춘향전’,60년대 정소영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70년대 ‘별들의 고향’등 대중들을 웃기고 울린,시대를 대표하는 국산영화들이 이곳에서 개봉돼 민족의 정서가 아직까지 숨쉬는,의미 있는 대중문화 공간이다.단성사가 이보다 6년 앞서 개관했으나 수차례 보수로 원형이 크게 바뀌었고 신파극의 본산이었던 서대문 동양극장이 10년전 철거돼 중장년층이 국도극장에 대해 느끼는 향수는 남다른 데가 있다. 그런데 이 역사적 문화공간이 지난해 10월말 소리소문도 없이 철거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국도극장이 헐린 터에 20층짜리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서는 재개발사업이 추진돼 현재는 ‘국도주차장’이란 임시 팻말만이 국산영화의 메카 자리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 근·현대 영화사의 중심공간이 헐리는 운명을 영화관계자들은 물론 많은 시민들도 철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문화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서울시는 철거가 한창 진행중일 때 “국도극장과 같이 유서깊은 근대건축물의 재개발을 금지하고 문화재로 지정할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뒤늦게 철거중인 사실을 알고 이를 취소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동을 벌였다니 문화재에 관한 무신경을 반성할 일이다. 최신 복합상영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건물주가 낡을대로 낡은 극장을 헐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대중문화의 넋이 숨쉬는 역사적 건물을 보존해 민족의 정서를 후대에 알리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일이다.사전에 건물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 건물을 확실히 보존하든지 최소한 다른 장소로 이전해 영화박물관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이 본래의 가치를 간직하려면 유서깊은 고건물과 최신식 콘크리트 건물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아직 남아있는 몇 안되는 역사적 건물들이 개발이라는 명분앞에 어느날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에놓여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명동의 옛 국립극장 건물과 성북구 삼청각이 그렇고,신세계백화점·승동교회·미문화원 건물등이 장래가 불확실한 상태다.이들 건물의 확실한 보존대책을 미리 마련해야 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이기백 논설위원
  • [독자의 소리] 다쓴 공중전화카드 보상제 부활 바람직

    몇년전까지만 해도 다 쓴 공중전화카드를 새 카드로 교환해주거나 장당 50원씩 교환해주는 제도가 있었다.그러나 별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한국통신은 카드할인율을 올리는 대신 이같은 제도를 폐지해 버렸다. 이 제도가 폐지된 것에 대해서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제도가 시행중일 때는 비록 다 쓴 한장의 공중전화카드라도 50원의 가치가 있기에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하지만 지금은 10원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해서인지 함부로 카드를 구겨 버리거나 길바닥에 버리는 경우를 흔하게 볼수 있다. 휴대전화의 확산에 따라 전화 씀씀이가 헤퍼졌고 요금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비록 다 쓴 한 장의 공중전화카드라도 소중하게 여겨 간직하고 또 재활용할 수 있도록 폐공중전화카드 보상제를 부활했으면 한다. 안우준[부산시 동래구 온천3동]
  • 김수환 추기경에 들어본 새천년의 덕목과 가치

    새천년의 첫날 새아침이 밝았다.많은 날 중에서도 새해 첫날의 다짐과 기대는 더욱 새롭다.특히 올해는 새천년이 시작되는 원년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올해 역시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이 예상된다.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새 날들에대한 전망과 함께 새겨야 할 덕목과 가치 등에 관해 들어보았다. ◆먼저 새천년을 맞는 자세를 말씀해주십시오 새천년에는 정보화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지구촌이란 말이 더욱 실감나게될 것입니다.사람과 사람의 관계,국가간 사이도 더 좁혀지게 될 것입니다.새천년에는 빈부의 차,성별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이같은 희망은 우리가 어떤 마음,어떤 가치관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현재와 같은 물질만능주의로는 곤란합니다.우리는 지금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있습니다.하나님과 함께 하는 천년이냐,하나님 없는 천년이냐,이것이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가치관이요 잣대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계는 새해를 대희년으로 삼아 의미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대희년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모든 민족,국가가 공존 공영하는 것이 인류의 이상이라고 할때 사랑은 바로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확립돼야 합니다.인간이 신없이 자주권을 주장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신을 배제하면 인간의 존엄성이나 기본인권도 없어지고 삶의 의미도 없어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지금 중요한 것은 인간성과 사랑입니다.대희년의 의미는 바로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모든것을 하나님께 돌리고 인간성과 사랑을 통해 생명의 길로 나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성직자와 종교인들이 먼저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겠군요 그리스도는 병든 이웃,고통받는 이웃,버림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모든 인간을 구하기 위해 당신을 희생의 제물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죠. 종교인들은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리스도의 사랑,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우리 하나하나가 비탄만 하지말고 앞장서 사랑의 촛불을 밝혀야할것입니다. ◆해방이후 숱한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우리가 21세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 우리 민족은 약점이 많은 민족이지만 나름대로 힘을 갖고 있습니다.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운명이 좌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존자원 대신 사람을 주셨습니다.따라서 머리를 잘 써 노력한다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민족이 주어진 여건이 나쁜데도 이만큼 이룬 것은 힘을 가진 민족이기 때문입니다.거짓과 허영,이기주의를 버리고 정직과 성실,이웃과 더불어 사는 검소한삶을 앞세우는 그런 가치관을 갖고 2000년의 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새해에는 총선도 예정돼 있고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지역감정 극복 등 화합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되는데… 우리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왜 서로 헐뜯기만 합니까.지금 국민들이 가장 아쉽게 느끼는 것은 화해와 협력입니다.역사적으로 거듭됐던 민족 내부의 갈등이 언제쯤 모두 깨끗하게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실은 진실대로 밝히되 서로 용서하고화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옛 일을 되씹는다면우리민족의 화해에 결코 도움이 안됩니다.대범하게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려고 접근할 때 평화스런 공존이 가능할 것입니다.전쟁도 서로 화해할 줄 몰라서 오는 것입니다.함께 사는 우리 이웃과 먼저 화해하고 먼저 손잡을 때 남북간에도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탈북자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대두되는 등 북한상황이 심각합니다.북한을보는 시각과 접근방식도 바뀔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우선 탈북자들의 난민지위 부여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난민문제는 정부간 이해가 얽혀 있어 정부차원에서 섣불리 접근할 수 없는 미묘한 문제입니다.탈북자 문제도 기본적인 인권문제인만큼 NGO가 세계의 NGO들을 움직여 UN에서 해결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북한문제를 놓고 볼 때 우리 국민중일부는 북한은 반응이 없는데 왜 우리만 일방적으로 돕느냐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같은 동포이기 때문에 우리 선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즉각 보이지 않더라도 끝까지 화해와 대화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봅니다.실제로 북한은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이북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남한의 도움을 알고 있습니다.비록 당장은 만족할 순 없어도 희망을 갖고 계속노력해야 합니다. ◆통일을 위해 남북 당국자들에게 촉구하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자긍심을 가진 자주독립국가가 되려면 우선 남북한이 하나가 돼야합니다.남북한이 동족의식 속에 모든 갈등과 미움을 청산하고 협력한다면 어느 강대국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남북한 당국자들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화해와 협력을 통해 하나가 되도록 떳떳하게 마주앉아 대화해야 합니다. ◆희망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모든 가정과 일반인들도 새 세기를 맞는 각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국가는 우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가난한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자세가 필요합니다.또 가정의 중요성은더욱 커지고 있습니다.가정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기틀이기 때문입니다.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죠.일각에선 결혼이 마치 인간을 구속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결혼이 구속’이라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인간 개개인의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사회가 공허해질 것입니다. 또 돈과 성이 이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추세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매우 어둡습니다.따라서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합니다.직장인들도 더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한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살면서 느낀 점을 편지로 보내왔는데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기 일에 열심인 일본인들을다시 보게 됐다는 것입니다.흔히 한일 축구경기에서 일본에 져선 안된다고생각하는데 직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갖고 일하는지 궁금합니다.또 우리 젊은이들에게 3D직종 기피현상은 사라졌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형제도와 낙태,유전자 조작 등 생명문제가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도 자기생명을 잃으면 이 세상을 다 얻어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습니다.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점차 잊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인간의 복지를 위해 복제인간 같은 것도 연구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정말 하나님과 함께 가는 과학이냐,하나님 없이 가는 과학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아인슈타인도 과학을 할수록 하나님의 존재를깊이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오늘의 세계는 하나님 없이 하는 과학이 진정한 과학인양 생각하고 있습니다.지금 윤리관·가치관 없이 어떤 공포를 갖다줄지도 모르는 그런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인간의 가치가 빠진채흉기화하고 있는 연구가 과연 인간을 위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지난해에는 각종 부정부패 사건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새해엔 잡음과 파행없는 한해가 되기를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정직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것입니다.따라서 개개인 모두가 정직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물론 문제를 다루는 당국자들이 솔선수범해 정직의 미덕을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대담=김성호차장 kimus@
  • 趙亮鎬회장 혐의시인 ‘대한항공 탈세’ 첫 공판

    629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대한항공 회장 조양호(趙亮鎬)피고인에 대한 첫 공판이 16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李根雄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이날 공판에서 조 피고인은 “외국 항공기 구매과정에서 받은 리베이트 중일부를 세금 납부 등 개인용도로 빼돌려 법인세 등 629억원을 포탈했다”는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한국민족학회·한양대‘세계종말과 새시대’심포지엄

    새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종말론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종교문화에 배어있는 종말론은 원천적으로 위험한 사상과 이론에 불과한 것인가. 한국민족학회와 한양대 민족학연구소가 19일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장에서 마련한 ‘세계종말과 새 시대’심포지엄은 동아시아 각 종교에 담겨있는 종말론의 의미를 조명하면서 새 천년의 가치관을 정리해 관심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후천개벽 사상’과 불교의 ‘말법론(末法論)’,한국의 샤머니즘에서 종종 거론되는 종말론 논의 등은 일견 세상의 끝을 알리는 서구의 종말론과 같은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와 다른 내용으로 새로운 이해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명지전문대 황선명 교수는 ‘종말론과 후천개벽’이란 발제를 통해 “2000년의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후천개벽 사상이 일종의 종말론으로 인식됨은 큰 잘못”이라고 못박았다.황교수는 “서구의 종말론은 신의 전지전능한힘에 의해 역사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하는데 반해 후천개벽은 우주론적인 그것도 동양의주역의 사상에서 유래하는 우주의 스스로의 내재율에 의거해 스스로 생성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상으로 서구의 것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따라서 후천개벽설은 시간적인 범주에서 볼때 하나의 영원회귀 사상이며,서양의 일직선적인 역사관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므로 그리스도교적 종말론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동국대 고영섭 교수는 ‘불교의 말법론’ 발제에서 “불교의 삼시론에서의말법시에 대한 담론은 불교의 무상적 시간론을 일탈한 해당 시대의 비관적역사관일뿐 불교 일반의 논의가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교수는 “인과가 둘이 아니고 자타가 둘이 아니라고 보는 불교적 관점에서 볼때 시간을실체화해 시작과 끝을 설정하는 종말론은 현실적 고통을 소멸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 희론(戱論)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따라서 시간의시작과 끝을 기다리지 않는 무상의 시간관에서 볼때 한중일 삼국에서 전개된 말법사상은 해당시대의 교단의 박해,도덕적 타락등에서 비롯된 지극히 제한된 역사관이며 하나의 변주일 뿐이라는 것이다.불교의 3시론,즉 불교의 황금시대,형식적 불교시대,불법의 멸망시대로 나눈 말시론은 도리어 불교의 황금시대였던 황금시대로의 회귀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불교 교단 안팎에서 자행된 폐불과 훼불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형성된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역사관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양대 조흥윤 교수는 ‘한국 샤머니즘과 세계종말’에서 “제주도 지방의‘천지왕본풀이’신가와 함경도 함흥 지역의 큰 굿에서 불리는 ‘창세가’에 부분적인 세계종말의 위기와 말세가 나타나지만 여기에 영웅과 성인이 개입해 신화적 시간이 펼쳐지고 세계종말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전환되고 있다”고 해석했다.또 경주 함월산 기림사에 전해오는 사찰 연기(緣起)설화나 여러 안락국 이야기에 꽃밭이 시드는 세계종말의 위기론이 등장하지만 여기에서 등장하는 종말론은 다른 어느 종교와 신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을갖고 있다고 주장했다.즉 구원이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기독교에서는 예수가 하늘로 올라가고 구원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의 샤머니즘의 구원론은 현실에서 강하나를 건너 도달하는 그런 곳이라는 설명이다.조교수는 “샤머니즘은 한국 사회문화의 기층이자 오늘날 그 주변을 이룬다”면서 “샤머니즘은 흔히 비합리적이고도 부정적인 현상으로 취급받고 있으나 이는 오해”라고 주장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공정위 발탁人事 대폭 확대

    우수한 인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몰려들자 공정위가 11일 발탁인사를 대폭 늘리는 내용으로 인사규정을 전면 개편,주목을 끌고 있다. 공정위에는 지난해 행정고시 일반행정직과 국제통상직의 1등 합격자,올해는법무직 1,2등과 재경직 5,10등 합격자가 각각 지원했다. 또 다른 부처의 과장급 이상 16명이 공정위 전출을 희망하며 대기중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공정위는 새 인사규정을 통해 ▲직무능력과 업적을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평가해 보직과 승진을 결정하고 ▲전문적 능력이 있거나 각종 교육성적이 우수한 직원에게는 가점을 주기로 했다. 이상일기자 bruce@
  • [대한시론] 安重根 의사 의거 90주년

    이달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이토(伊藤博文)를 ‘포살’한지 꼭 90년이 되는 날이다.그의 의거는 당시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세계를긴장시켰다. 안 의사의 의거는 20세기 초,동아시아가 일제의 침략적 야욕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전개되었다.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하려던 야욕을 노골화하였다.1907년부터 일본과 러시아는 한국만주 외몽고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는데,그 일괄타결을 위해 1909년 10월말하얼빈에서 이토와 러시아 재무상 코코후초프 사이에 회담이 계획돼 있었다. 이 회담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만주분할을 논의할 참이었다.또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그간 한일간에 맺은 제반협약을 확인시켜 기정사실화하려 했고,러시아는 일본으로부터 외몽고에 대한 러시아의 복수이권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런 시점에서 10월 26일 아침 하얼빈에 도착한 이토는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의장대의 사열을 받다가 안 의사에게 포살된 것이다.안 의사는 곧 체포돼 적법하지 못한 재판에서 사형에 언도되고 여순감옥에서 복역중 1910년 3월26일,거사한지 꼭 5개월만에 순국하였다. 그는 옥중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의연한 자세로 의거의 사상적 배경이라 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그러나 일제가 사형을 조기집행하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했다.안 의사는 이 글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과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일제의 침략논리를 반박하였다. 올해로 안 의사가 하얼빈 역두에서 대의를 결행한 지 꼭 90년이 되지만,의거지를 돌아보는 이들은 아직 그곳에 기념표지 하나 세우지 않은 후예들의무성의를 부끄러워 한다.일제하에서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를 되찾은지 50년이 넘었건만 남북의 정권들은 이제껏 그 역사적인 유적지에 한 점의 표지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중국이 자기의 영토 안에 그런 기념물을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변명되지 않는다.안의사의 의거가 한국인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 중국의 반제운동사에도 큰 충격과 파장을 미쳤던 만큼 항일 반제의연대를 굳건히 한다는 점에서 중국정부를 설득,기념물을 건립했어야 했다.이런 점에서 북한이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있을 때 왜 그런 기념물 하나를 남길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그 뿐인가.내년 3월 26일이면 안 의사가 순국한지 꼭 90년이 된다.그는 순국하기에 앞서 그의 두 동생에게 조국광복이 이루어질 때 유해를 고국으로옮기라는 유언을 남겼다.그런데도 아직 그의 무덤이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남북 당국은 중국의 비협조를 핑계대면서 자신들의 무성의를 합리화했고,상대방이 안 의사의 유해를 어떻게 하지 않나,서로 의심만 하면서 중국정부를상대로 남북한이 합의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정말 부끄럽고 한심한 작태다.국권이 회복됐으면 가장 먼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유해를찾아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 후손들의 마땅한 도리이거늘,남북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와 정통성 과시에 도움이 되는데만 선열의 유해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남북은 안 의사 의거지 기념사업과 그의 유해발굴을 위해서라도 함께의논하여 합의된 의견을 가지고 중국정부를 상대로 교섭해야 한다.이것은 중국이 안 의사의 의거지 기념사업과 유해발굴 문제를 두고 더이상 남북한의눈치를 보거나 저울질하는 자세를 갖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도 있다.남북한이 안 의사 문제를 두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다면,중국과의 교섭통로를 단일화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이 일이 실마리가 되어 남북의 논의구조가 해외에있는 다른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와 선열들의 유해발굴 보존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면,아직도 조국의 안식처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을 헤매는 선열의혼령들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안 의사는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인들도 숭모하고 있다.안 의사의거지에 기념물을 세우고 그의 유해를 찾아내는 데에 남북한 당국이 계속무성의하게 대처한다면,중국이나 일본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벌이는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이런 연대는 20세기 초반 동아시아에서 풍미했던 침략주의 강권주의가 더이상 기를 펴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안 의사가 주장했던 한중일 3국이 평등과 호혜를 기초로 한 진정한 ‘동양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李萬烈 숙명여대 교수·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 러軍, 그로즈니 서부 장악

    [모스크바 AFP AP 연합] 러시아 연방군이 11일 체첸 북부 3분의 1 지점의자연 장애물인 테레크강을 넘어 수도 그로즈니 서부지역을 장악했다.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은 모스크바에 평화협상을 제의했으나 묵살당했으며 체첸 군부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는 러시아군의 공세에 대한 보복으로 테러 공격을 단행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카프카스 주둔 러시아 보안군의 한 대변인은 이날 러시아군이 처음으로테레크강 남쪽으로 진출,체첸 수도 그로즈니 서부에 인접한 나드테레츠니 지구에 교두보를 구축했다고 확인했다. 체첸 대통령 대변인은 러시아측 주장을 즉각 반박하면서 러시아 연방군은분쟁지역에 산재한 40여개 마을 가운데 12개 마을을 점령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94∼96년 체첸 전쟁에서 야전사령관으로 명성을 떨친 체첸 군부지도자 바사예프는 이날 아침 러시아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조만간 러시아에 대한 무차별 테러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 가자·西岸 안전통로 17일 개통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연결하는 팔레스타인 안전통로가오는 17일 공식 개통된다. 자밀 타리피 팔레스타인 내무장관은 이스라엘과 서명한 안전통로 개설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통과,요르단강 서안과 가지지구 사이를 통행할 수 있는 안전통로를 개통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이에 따라그동안 큰 불편을 겪었던 250여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보다 폭넓은 통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다. 안전통로는 가자지구 북쪽의 에레즈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요르단강 서안 남쪽의 헤브론 인근 타라쿠미야까지의 44㎞구간.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 개방되며,유대교의 특정 공휴일에는 개방되지 않는다.두지역을 잇는 또다른 안전통로인 에레즈-라말라구간은 앞으로 4개월 안에 개설될 예정이다. 안전통로의 개통은 지난달 5일 체결된 샤름 엘-셰이크 평화협정의 주요 현안중 하나를 해결했다는 점 외에도 이산가족의 재회 등 팔레스타인인들에게주는 상징적 의미는 크다.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가자지구와요르단강 서안을 지리적·인구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스라엘정부는 10일 요르단강 서안에 최근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중일부를 불법 거주지로 결정,철거하기로 함으로써 중동평화를 향해 한걸음씩나아가고 있다. 김규환기자 khkim@
  • [20세기 문명기행] (1) 지구촌의 탄생

    *과학이 이룬 지구촌 한가족 시대 대한매일은 새 천년 D-100일이 되는 23일부터 금세기를 정리하는 ‘20세기문명기행’을 연재합니다.이 시리즈는 매주 월요일 10회에 걸쳐 금세기 1백년동안에 이뤄진 인류의 진보와 거대사건들을 분석,정리하게 됩니다.독자여러분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주] 1901년 12월12일 캐나다 뉴펀들랜드.22세의 이탈리아 청년 귈레모 마르코니는 자신이 만든 한 기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로 정오가 되는 순간.“톡톡톡”작은 반응이 기계를울렸다.수초도 걸리지 않은 짤막한 신호.2∼3m 떨어진 곳에서라면 들리지도않을 작은 소리였지만 마르코니에겐 지축을 흔드는 희망의 함성으로 귓전을울렸다.1,600마일 떨어진 대서양너머 영국에서 보낸 전파신호가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이날 수신한 전파는 모르스 부호로 S자.무선통신 시대의 개막이었다.물리적인 ‘거리공간’을 압축시키면서 인류문명 사상 최초로 전지구를 하나로 묶어나가는 신호였다.지구촌 시대의 서곡은 이렇게 울려퍼졌다. “타임스 빌딩의 타임스 캐논이 힘차게 종을 12번 쳤다.지난해와 지난세기의 종언을 알리고 새해와 새로운 세기를 반갑게 맞아들였다.이를 신호탄으로 종소리와 휘파람 소리,총소리가 폭죽처럼 울려 퍼졌다.군중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환호와 박수로 새해와 새 세기를 환영했다.”(LA타임스,1900년1월 1일자). 무선통신의 발명은 20세기 역사의 출발점에서 온 인류가 걸었던 기대와 희망에대한 작은 반영이었을 뿐이다.스페인의 노벨상수상 과학자인 세베로 오초아는 “20세기의 가장 근본적 특징은 엄청난 과학의 진보”라고 말했다. 인류는 1백년을 통털어 시간과 공간을 획기적으로 압축시켜 나갔다. 1900년 체펠린,1901년 화이트 헤드,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노력에 이어 1927년 5월20일 아침 8시 지구촌시대의 가시화를 위한 또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린드버그는 ‘세인트루이스 정신’을 타고 뉴욕을 떠나 파리로 향했다.결과는 대성공.33시간 30분 후 그는 파리의 루 부르제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그로부터 12년뒤 판 아메리칸 항공이 미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최초의 상업비행을 시작,전 세계인의 거리개념에 통렬하게 메스를 가했다. 앞 세기말까지 지구를 한바퀴 돌기위해서는 천재의 머리속에서마저 최소 80일이 걸려야했다. 런던-수에즈 7일(철도나 우편선),수에즈-봄페이 13일(우편선),봄페이-캘커타 3일(철도),캘커타-홍콩 13일(우편선),홍콩-요코하마 6일(우편선),요코하마-샌프란시스코 22일(우편선),샌프란시스코-뉴욕 7일(철도) 뉴욕-런던 9일(우편선 및 철도).1872년,미래학자이자 공상소설가였던 쥘 베른이 그의 소설‘80일 간의 세계일주’에서 제시했던 지구일주의 가장 빠르고 기발했던 타임테이블이다.그러나 이 천재의 구상도 이미 20세기 초입에 전설의 화석속에 매몰되고 만다. 육지에서 시속 300㎞까지 달리는 고속전철,시속 1,000㎞를 오르내리는 대형여객기 덕택에 지구촌은 1일 생활권이 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구상중인 하이퍼 X계획이 실현되면 제트여객기는마하 10,시속 9,000km의 속도로까지 비행하게 된다.토요일 점심때 김포공항을 출발하면 오후 2시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1박2일간 마음껏 즐긴후 돌아온다.그래도 서울은 아직 일요일 오후 3∼4시인게 이 계획의 목표인셈이다. 시·공간적 압축 (time-space compression)이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않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은 1962년 펴낸 ‘과학혁명들의 구조’에서 패러다임(Paradime)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다.이 말은 한 시대,한 공간의 가치 체계의 총체적 구조를 의미하며 ‘인식의 틀’로 번역된다.지금 가장 널리쓰이는 어휘다.패러다임은 금세기들어 지구의 총체적구조가 변화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숱한 지식인들은 지구촌의 존재의미에 대해 의문 부호를 던진다.‘지구촌 시민은 단지 첨단 전자게임을 즐길 뿐이다‘‘전세계와 연결된 컴퓨터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 인간 생존의 최소단위인 가족간 단절까지를 야기한다’고 말한다. 석학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에서 문화적,인종적 다원주의에 기초한‘세계주의적 민족’을 부르짖었다.지구촌의 인류라면 금세기가 가기 전에그 의미만은 다시 한번 새겨 봐야 할 것 같다. 김병헌기자 bh123@ *인터넷 여권·비자없이 세계를 맘대로 전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묶은데는 ‘제3의 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통신 발달의 힘이 컸다. 이중 위성통신의 발달은 제도,이념,국경,장소의 제한없이 지구를 하나로 연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57년 10월4일 소련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1945년 영국의 과학자 A.C 클라크가 ‘무선세계’라는 논문에서 인공위성을 무선통신에 이용하자고 한지 12년만의 일이었다. 위성의 등장은 지구상에 더이상 ‘공간적 개념’의 오지를 남겨놓지 않게 되었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밀림탐험을 안방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됐다.남극과 북극의 동물생태계에 관한 현장 다큐멘터리 역시 TV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게됐다.미 CNN방송이 24시간 전세계를 커버하면서 인도네시아 한 섬에서 일어나는 유혈사태를 현지시간으로 생중계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위성의 위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성에 의한 통신발달은 현재 지상망의 모든 통신망이 두절되어도 어느 누구와도 통화가능한 세계최초의 단일통신서비스 개인휴대통신(이리듐 서비스)의 개막,바로 그 코앞까지 와있다. 정보통신 혁명은 문명사의 새 지평까지도 열고 있다.인터넷은 지구촌을 하나의 그물망으로 엮으며 세계화의 ‘첨병’노릇을 하고 있다.30년전 미국의군사정보통신망이 시초가 됐던 인터넷은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유일무이한지구촌 통신망으로 자리잡았다. 지구촌 통신망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터넷은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PC안에서 ‘전세계’를 실시간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혜택을 부여했다.외국인 회사에 투자를 해놓은 사람이 미국의 다우존스에서 제공하는 주가(株價)정보를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고 지구 반대편 유럽소식이 궁금한 이는 그쪽 미디어의 홈페이지만 찾아가면 쉽게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원하는 정보를 찾아 전세계를 여권과 비자없이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인터넷 세상’.그 것이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지구촌의 모습이다. 이경옥기자 ok@ * '새즈믄해' D-100일 실행체제로새천년준비위원회(위원장 李御寧)가 새천년 D-100일인 23일을 기해 실행체제로 완전 전환한다. 지난 4월12일 발족한 준비위는 그간 평화,환경,새인간,지식창조,역사 등 5대분야의 천년화(기념) 사업을 구체적으로 기획하면서 이의 실천을 위한 기구 정비에 힘써왔다.60개가 넘는 5대분야의 사업은 10월 초쯤 최종 결정될예정이지만 몇몇 사업은 이미 공식적인 발표 단계를 거쳐 진행중에 있다. 사업시행이 거의 확정된 주요사업 가운데 평화의 열두 대문 건립,비무장지대 문화특구 선포,한중일 반도성 회복 문화회의 개최 등이 평화 부문에 들어 있다.하남 국제환경박람회장 안에 ‘새천년의 숲’을 개관한 환경부문에는새천년을 기념하고 살아있는 생활공간인 도시와 거리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새즈믄해(새천년) 거리’ 조성 사업이 포함된다. 새인간 부문사업의 핵심은 2,000명의 ‘사이버 프런티어’ 선발사업으로 새천년의 미래 주역인 젊은이들을 비트 공간인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모집한다. 이 프런티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 활동 등을 통해 세계화,천년화의 인간고리로 육성된다.지식창조 부문에선 문자가 없는 민족인 인디언 오난다가족 추장인 라이어스 교수와 연계해 한글을 발음기호로 보급하여 한글의 세계화,정보화 사업의 인프라로 삼으며 예술인과 창조적 지식인을 보호육성하고 새천년을 의미있게 준비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조성을 위해 ‘밀레니엄법’ 제정을 추진한다. 역사 천년화사업에선 국가기록보존의 디지털화를 위해 10만명의 주부들이시범적으로 디지털 가계부 작성을 선언한다. 준비위는 1999년 12월31일 일몰,자정 및 2000년 1월1일 일출 의 ‘새천년맞이’ 국가 공식행사를 주관한다.이때 초박막 액정화면 카드섹션과 일몰·일출지역 햇빛 채화 등을 통해 국민단합의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특히 준비위는 새천년 기념사업의 핵인 평화의 열두 대문(‘천년의 문’)건립에 힘을 쏟고 있다.월드컵이 열리는 서울 상암동 근처 옛 쓰레기 매립지인 난지도에 2000년을 시작으로 10년마다 한개의 대문을 세워나가 한 세기 백년 동안 모두 12개(통일되는 해 하나 추가)의 문을 완성하는 이 사업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지난달 말 재단법인 ‘천년의 문’을 설립했다.이 새천년 기념조형물 ‘천년의 문’ 설계시 참고자료로 활용할 아이디어를 D-100일부터일반으로부터 받는다. 준비위는 지난 8월 상임위원회를 설치했다.정부 17개 부처와 16개 시·도에 이관,실행해 오고 있는 사업에 대해 조정,기획지원 및 자문활동 등의 업무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김재영기자 kjykjy@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8)해상왕 장보고

    ‘生年未祇奉 久承高風 伏增欽仰(생년미기봉 구승고풍 복증흠앙: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습니다.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 갑니다)’. 840년 2월 17일.당에서 천신만고 끝에 신라배로 귀국한 일본의 승려인 옌닌(圓仁)이 장보고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존경과 감동의 마음이 철철 흘러넘치고 있다.그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덕분에 그나마 신라의 해양사,장보고의 활동,그리고 그의 동아시아적 위상을 알 수 있게 됐다. 장보고는 단순한 군인이나 상인,더욱이 야심찬 정치가는 아니었다.그는 변화된 동아지중해의 본질을 꿰뚫고 신질서의 핵심으로 뛰어든 인물이었다.장보고 선단의 활동범위는 매우 넓었고,바다와 육지에 걸쳐있었다.신라와 당,일본은 물론 간접적으로 발해와 동남아국가들,아라비아에까지 이어져 있었다.대운하의 주변에 포진한 신라방들과 연계하면서 산동반도의 여러 지역들,청도만입구의 연운,그리고 절강성 영파와 주산군도 등 황해의 서안,한반도의서해안,남해안,제주도,일본 규슈의 하카다,우사(宇佐)지역(金文經설)를 거점으로 황해와 동해북부를 제외한 동아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이 광범위한 활동의 중심지는 남부해안에 828년 설치한 청해진(완도)이었다.청해진은 한중일을 연결하는 항로가 경유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동아시아의 해적을 퇴치하는 해군력을 키우고,선단이 대기하는 군사도시이었다.때문에 완도나 장도(將島)외에 주변 섬들에 소규모의 군항을 만들고,방어체제를 구축해 공수를 유기적으로 엮은 나폴리같은 대규모 해양요새였다.또 국제교역을 국내산업과 연결시키는 수륙교통의 요지로써 배후에 생산과 소비,운송을 담당한 강진 해남 등이 있는 해양폴리스였다. 장보고는 이 도시에서 사무역과 공무역과 산업을 관장하는 한편 해적의 퇴치,신라내정의 참여 등 사업을 벌였으며,곳곳에 황해 연안 포진한 신라방들을 관리하며 연결시켰다.때문에 라이샤워는 장보고를 해외조계지(colony)를지배한 총독(commissioner)으로 평가했다. 그로 하여금 경이적인 활동과 역사적인 역할을 하게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해양활동 능력이었다.신라인들은 항해술이 매우 뛰어났다.옌닌의 책에 따르면 신라배들은 산동반도에서 신라땅까지 바람이 좋을 때는 2∼3일이면 닿을 수 있다고 하였다.847년 옌닌이 귀국할 때 탄 배는 음력 9월 2일 정오 적산포의 모야도를 출발해 황해를 건너 다음날 아침 육지를보았다.직횡단거리가 200㎞ 정도가 된다. 신라인인 절강의 대항해가 장우신(張友信:조영록 설)은 명주를 출발해 3일만에 일본의 서부까지 항해하였다.동중국해의 북부를 사단으로 항해하는 고난도의 원양 항해이다.신라배에는 ‘암해자’,즉 뱃길을 숙지한 항해사와 풍부한 경험의 선원들이 다양한 항해도구를 사용했다.9세기초 일본열도에는 신라인이 자주 오고,신라배가 해안에 출몰하여 불안을 조성하였다.장보고의 사후에는 신라인들이 일본해안에서 들끓었다.이런 사실은 신라인의 항해술이뛰어났음을 알려준다. 장보고의 선단은 다양한 항로로 바다를 누볐다.황해중부 횡단항로는 산동반도의 적산 등주와 밀주 등 여러 지역에서 출발해 횡단하다가 백령도 등 황해도 연안의 섬들을바라보면서 서해근해를 남하해 청해진에 도착한 뒤 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출항한다.가장 안전하고 많이 사용하던 항로이다. 두번째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절강성의 명주(영파)나 그 아래를 출발하여 동중국해를 근해항해로 북상한 다음에 상해만 부근에서 황해남부를 사선으로 항해,제주도 해역에 진입한다.한라산은 원양항해시 선박의 위치를 확인하는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이어 청해진으로 들어가거나 남해(사천:서영교설)나 동해(울산)부근으로 항해한다.또는 일본 서부의 고토(五島)열도로 항해한다. 세번째로는 절강에서 일본열도로 항해하는 또하나의 항로는 동중국해 사단항로이다.당시 이 항로들은 계절풍을 이용했는데,특히 동중국해 사단항로는당나라를 출발할 때는 봄에서 초여름까지는 남풍을 활용하고,다시 당으로 돌아갈 때는 북풍계열을 활용해야 한다. 신라인의 조선술은 매우 뛰어났다.신라는 752년에 일본의 나라 동대사에서대불의 개안식을 하였는데,이때 축하겸 사절 700명을 7척의 배에 태워보냈다.1척에 약 100명이 탄 것이다.839년 일본조정은 장보고가 교역하던 태재부에 우수한 신라배를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이 무렵 태재부에는 6척의 신라배가 있었다.일본은 가야 백제 신라 등으로부터 조선술을 배워 왔으며,당과 교류할 때는 사신,승려,상인들이 신라배를 타거나 신라선원을 고용하였다. 양주의 신라상인 왕청(王淸)은 일본무역으로 부자가 되었는데,일본에 다녀오기도 하였다.839년에 당에서 귀국하던 일본사신은 신라배 9척을 고용하여무사히 귀국한 일도 있었다.신라인들은 당나라 대운하주변과 항구에서 조선업을 하였다.847년에는 옌닌이 타고온 신라배가 현재 비파호 근처 히에이산의 명덕원(明德院)에 그림으로 남아있다.쌍돛대에 활대가 9개인 사각돛은 물레를 이용하여 움직이고,닻이 8개 이상이었고,누각이 있다.그런데 당나라에가는 일본사신선들은 길이 20여m,폭은 7m 전후로,백 수십톤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대선들이 수십척씩 그물같이 뻗은 항로를 이용해 황금의 바다에서 사람과 각종의 진귀한 물건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장보고는 해양을 매개로 ‘동아지중해 환류(環流)시스템’을 완성시킨 전무후무한 사람이었다.그러나장보고의 죽음과 함께 이 시스템은 붕괴되어버렸고,바다는 배반의 공간이 되었으며,신라의 해양시대는 종언을 고하였다.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일부가 해상호족으로 기사회생하여 후삼국시대와 고려라는 새질서의 주인이 되고자 꿈틀거리고 있었다. 21세기 신질서속에서 분단한국은 중국와 일본에 비해 열세이다.우리가 생존할 길은 장보고를 모델로 신 해양질서의 본질을 인식하고,해양력을 강화시켜동아지중해의 중핵조정역할을 추진하는 것이다. [尹明喆 동국대 겸임교수]
  • [義烈 독립투쟁] (6) 윤봉길 의사

    1932년 4월29일 오전 11시30분쯤 상하이(上海) 홍구(虹口)공원(현 노신공원)에서는 일본군이 상하이사변의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본국왕의 생일잔치,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이 거행되고 있었다.이날 한국의 의혈청년 윤봉길(尹奉吉)이 그 단상에 폭탄을 던져 상하이 침공의 우두머리인 일본군사령관 시라카와(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10여명의 원흉들을 쓰러뜨렸다. 당시 현장에서 러시아 여행객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사열대와 함께 엎어지고 쓰러지는 원흉들의 모습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와 세계 제국주의가 함께무너지는 장쾌함을 보였다.윤의사가 세계로부터 정의의 삶을 대변한 ‘의사'로 불리고 있는 것는 바로 이 때문이다.당시 세계의 언론들은 상하이를 주목했는데 인도주의를 지향하는 언론일수록 제국주의를 맹타한 윤의사를 높이치켜세웠고 또 한국의 독립운동을 들먹였다.국내외 동포들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특히 ‘상하이의거’를 주도한 임시정부와 한인애국단,그리고 한인애국단 단장 백범 김구(金九)를 주목하기 시작했다.임시정부가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러한 주목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왜냐하면 1차대전이 끝난 뒤에는 파리강화회의의 안정기조라고 하는 신제국주의적 질서에 온 세계가 눌려 독립운동도 외면당하고 있었으므로 그 신질서를 깨야 할 필요가 있었다.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고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때마침 뉴욕 월가(街)의 증권파동을 계기로 경제공황이 몰아쳐 왔고,일본제국주의가 만주를 침공하더니 다시 상하이를 침공하여 상하이의 한국 임시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파리강화체제를 무너뜨리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을 만들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대륙침략에 대한 반격작전을 세웠다.이봉창(李奉昌)의사로 하여금 일제의 심장인 도쿄 궁성을,최흥식(崔興植)·유상근(柳相根)의사로 하여금 만주침략의 아성인 관동군사령부를 공격토록 한데 이어 윤의사로 하여금 상하이 침공의 선봉을 꺾어놓는다는 소위 ‘삼면작전’을 세웠다.이같은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백범이었는데윤의사의 ‘상하이 의거’ 성공으로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윤의사는 원래 농민운동을 통해 고향의 부흥을 꾀하던 진보적 계몽주의자였다.고향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야학당과 청년회·체육회·부흥원을 조직하였으며 ‘농민독본’도 저술했다.그러나 경제공황까지 덮친 식민지 하에서 농민운동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다.윤의사는 마침내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즉 ‘대장부는 뜻을 세워 한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중국 대륙으로 향했다.그것이 1930년 윤의사가 23세 때의 일이다. 처음 산둥(山東)반도의 칭다오(靑島)에서 세탁부로 일하던 윤의사는 이듬해5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때마침 상하이에서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군과중국군이 싸우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어머님께 보낸 편지에서 “민족과 민족이 부닥치는 소리가 꽝꽝합니다”라고 표현했다. 그 꽝꽝하는,민족과민족이 부닥치는 소리를 들으며 윤의사는 의사가 되기 위해 꿈을 키웠다. 청년 윤봉길은 백범 김구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자신의 생명을불태워 정의를 현양하는 꿈을 실현코자 했다. 윤의사는 ‘성인군자는 살아서영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는‘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아침 윤의사는 일본식 도시락과 물통,일본 국기를 들고 홍구공원을 향해 떠났다.도시락과 물통이 바로 폭탄이었다.이 폭탄은 당시 중국군 장교로 상하이 병공창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명 王雄·전광복회장)이 만든 것이었다. 의거 당일 아침 윤의사는 백범과 살아서는 ‘마지막 식사’를 같이했다.그리고 윤의사는 자신의 시계와 백범의 시계를 바꾸어 찼다.자신의 시계는 6원짜리였고 백범의 것은 2원짜리였다.“선생님,나는 한시간밖에는 시계가 필요치 않습니다”라며.죽음을 앞에 둔 청년이 보여준 태연한 여유를 보면서 백범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렇게 떠나간 윤의사에게 시계는 아니나 다를까한 시간밖에 필요치 않았다.11시반쯤 홍구공원의 폭음과 함께 그 시계도 멈추고 말았다. 윤의사의 의거로 침체됐던 독립운동이 생기를 찾고 활기를 띠게됐다.또 국내외 동포가 다시 임시정부로 마음을 모으게 됐고 국제적으로도 한국독립을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중일전쟁 와중에서 임시정부가 중국대륙 곳곳으로 이동하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이나 1940년 충칭(重慶)에 정착,8·15광복때까지 항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윤의사의 의거로 국내외 동포들의 마음을 한 군데로 모으고 중국정부를 비롯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된 윤의사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가네자와(金澤)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일제는 윤의사의 시신을 길거리에 묻어 행인들이 밟고 다니게 했는데 이같은 야만성은 일본제국주의밖에는 없다.해방후 윤의사의 유해는 백범의 지시로 이봉창·백정기(白貞基)의사등과 함께 봉환,효창공원에 안장됐다.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 *尹의사의 사회개혁 활동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는 초창기 야학·문맹퇴치운동 등에 헌신한 개혁주의 성향의 농촌운동가였다.윤의사가 20세 되던 해인 1927년에 출간한 ‘농민독본(農民讀本)’은 윤의사의 계몽사상을 집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3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1권은 유실되고 현재 제2·3권만 전해오고 있다. 제2권은 ‘계몽편’으로 편지 쓰는 법,인사법 등 생활교양과 조선지도,백두산 등에 대한 소개 등 일반상식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8과까지만 보존돼있다. ‘농민의 앞길’이란 제목의 제3권은 농촌개혁 방향과 농민의 당면과제 등을 제시하고 있다.앞부분에는 ‘소리의 갈래’등 한글맞춤법도 소개돼 있다. 총 25과로 구성된 제3권은 현재 7과까지만 보존돼 있다. 제2권이 기초학습자료라면 제3권은 일종의 사상독본이라고 할 수 있다.당시 윤의사로부터 야학지도를 받은 예산군 덕산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 ‘농민독본’을 암송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윤의사 평전에서 “매헌은 한낱 시골의 야학당교사가 아니라 이미 이 무렵부터 사회개혁과 이상국가 건설을 꿈꾼 선각자적 지식인이었다”고 평했다. 정운현기자 jwh59@kdaily·com *윤봉길의사 직계후손들 근황 윤의사는 부인 배용순(裵用順·88년 작고)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윤의사 의거 당시 장남 종(淙)씨는 세살이었고 둘째 담(淡)은 배 여사 뱃속에 있었다.둘째 담은 두살때 영양실조로 일찍 세상을 떴다. 일제때는 일제의 방해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장남 종(淙)씨는 해방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10여년간 농수산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84년간경화로 타계했다. 윤의사의 부인 배여사는 남편없이 외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살다가 88년 82세로 작고했는데 배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윤의사 의거 50주년인 82년 배여사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는데 이 해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는 ‘배용순 효부상’을 제정,매년 윤의사 의거일인 4월29일 예산 충의사(忠義祠)에서 시상하고 있다. 현재 윤의사 직계후손 가운데 가장 웃어른은 윤의사 며느리 김옥남(金玉南·67·서울 동작구 상도동 거주)씨.김씨는 딸 여섯에 끝으로 아들 하나를 두어 겨우 윤의사의 대를 이었다.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金信)장군이 교통부장관 재직시절 김포공항에 스낵 가게를 주선해줘 겨우 살림을꾸려왔다”며 “윤의사의 후예 7남매를 모두 반듯하게 키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윤의사의 유일한 손자 주웅(柱雄·29)씨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현재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재직중인데 97년에 결혼,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주웅씨 위로 누나 여섯 사람도 모두 출가했다. [정운현기자]
  • MBC 향토색 짙은 다큐物 풍성

    MBC는 이달중 각종 다큐멘터리를 풍성하게 내보낸다.매주 월·화 오전 11시에 방송하는 ‘특선 다큐멘터리’로,지방사들이 제작했다.따라서 지방별 특성을 잘 알 수 있다. 2,3일에는 마산 MBC에서 제작한 ‘남해안의 식물’이방송된다.1부 ‘벼랑끝의 상록 활엽수’는 한반도 남부지역 고산생물을 다룬다.이 프로는 “남해안 일대는 식물분포상 상록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는 곳이지만 인간의 생활이 자연생태를 바꿔놓고 있다”고 고발한다.2부 ‘숲정이에 깃든 삶’은 선조들의 식물자원 활용방식과 현재의 것을 비교한다. 둘째주인 9일에는 여수MBC가 만든 ‘차와 차문화’편이 나간다.이 프로는지역 특산물인 녹차의 유래와 효능을 살펴보고,한중일 3국의 차문화를 비교한다.이 프로는 차문화가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전통’임을 확인시켜 준다.10일에는 대구MBC의 ‘공룡의 땅 경상분지’.신생대 공룡의 낙원이었던 영남지역을 둘러보고,이 곳과 일본최대의 공룡화석 단지인 후쿠이시 지역이 함께 붙어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다. 세째주인 16일에는 마산MBC의 ‘우토로 사람들’편이 방송된다.일본에 있는 한국인 징용마을 ‘우토로’.이 곳 주민인 재일교포들은 최근 일본법정의‘토지명도소송’에서 패소해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야 하는 위기를맞고 있다.이 사건을 통해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17일은 ‘고려장은 있었는가’로,충주MBC가 제작했다.일흔살이 넘은 노인을 산속에 버린 고려장의 역사적 근거를 파헤친다.이 프로는 고려장이라는 악습이 한국에없었으나 일본인들이 이를 날조해냈다고 주장한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이어령의 새 천년읽기]정보가치의 변화

    중국의 돈황(敦惶)유적지에서 1만개가 넘는 고대의 목간(木簡)이 발견됐을때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그것은 이 지방을 관장하던 관리가 매일같이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놓은 근무일지였다.한(漢)나라 때는 흉노들의 침입이 없어 변방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그래서 수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관리는 200년동안 5,6대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상 없음”이라는 말을 계속 기록해 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그 광대한 중국을 떠받쳐온 힘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 된다.기록할 것이 없는 것까지도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 관료주의의 고지식함이다.오늘날의 관직에도 서기(書記)라는 말이 있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최고의 권력자를 서기장(書記長)이라고 부른다.한 국가는 문자를 적는 관료에 의해서,그리고 문자를 통해 축적된 그 정보에 의해서 통치된다. 이른바 중화(中華)의 빛이 변방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한자’라는문자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전설에 의하면 한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창힐(蒼힐)이었다.그가처음 새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창안했을 때 밖에서는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문자는 빛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깁슨의 주장대로 모든 정보는 빛속에 존재한다.그러므로 어둠 속에서 사는 귀신은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그래서 옛날사람들은 창힐의 눈이 네 개나 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변방의 관리들이 “이상 없음”이라는 말 대신에 그날 그날의 기상변화에 대해서 적었더라면,혹은 계절의 변화와 자신의 심정을 적었더라면 그 산더미처럼 쌓인 200년동안의 목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었겠는가.그 문자들이야말로 과거를,그리고 미래를 밝히는 창힐의 네 눈이 되었을것이다. 그러나 근무일지에 사사로운 기록을 쓴다는 것은 직무유기와 같은 행위이다. 변방의 관료가 맡은 일은 오직 흉노들의 침범 유무만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이외의 정보는 모두가 노이즈로 처리된다. 그것이 바로 관료의 언어이며 관료주의에 의해 처리된 정보시스템이다.그러고보면 ‘이상 없음’이라는 똑같은 문자를 적으면서 200년 동안이나 먹고 살아간 관료주의의 그 ‘이상 있음’에 우리는 또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산더미처럼 쌓인 돈황의 목간은 오늘날 중국의 관료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산회해(紙山會海:서류종이가 산처럼 쌓이고 회의가 바다를 이룬다)란 말속에 그대로 살아 숨쉰다. 돈황의 유적지에서 현대의 사이버 스페이스로 눈을 돌리면 어떠한 일들이벌어지고 있는가.거기에서도 우리는 한나라때 변방 관리가 근무일지를 쓰듯이 매일 매일 무엇인가를 기록해가고 있는 이상한 홈페이지 하나를 발견하고놀랄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고 관리가 아니라 대학생이며 “이상 없음”이 아니라 매일 매일 자신이 먹는 음식 메뉴를소상히 기록해 놓은 것이다.대학생 역시 수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정보적 자료를 창출해 낸 것이다. 왜냐하면 식료품회사,영양학관계자,의학자와 경제학자,그리고 미국의 식(食)문화와 청년문화를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에게 있어서 그 홈페이지는 일찍이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정보자료를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관료들이 기록하는 공공의 문자는 오로지 큰 이야기에만 매달려왔다.어느 통계국도 한 사람이 먹는 음식을 끼니마다 그렇게 집요하게 추적해 간 적은 없었다.또 그렇게 추적할 수도 없는 일이다.오히려 국가 통계국의 관료적인 시스템에서 보면 그 대학생의 홈페이지는 무의미한 노이즈의 쓰레기더미에 불과할 것이다.실제로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쓰레기 바다라고 비웃는 사람들일수록 관료적인 문자정보에 익숙한 사람이다. 하지만 종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점으로 검색해 보면 그 쓰레기더미들이 예상치 않던 금맥과 장미꽃이 되는 수가 많다.옛날에는 정부의국세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수 천만원의 자료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들을통해서 돈 한푼 안들이고 간단히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헛된 말은 아니다. 심지어 자기 집 빗물을 받아 산성도를 분석한 초등학교 학생들의 숙제라해도 인터넷으로 연결하면 연방정부도 못해내는 미국전역의 정확하고 정밀한산성비의 최신 분포지도를 얻을 수가 있다.인쇄물이든 전파든 종래의 매스미디어는 공공적인 한 발신처에서 그 정보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다.그래서‘출판’을 뜻하는 영어의‘퍼블릭캐이션’은 공표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방송’을 뜻하는 ‘브로드캐스트’는 널리 살포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네트워크나 웹 속의 개인은 이미 정보의 살포대상이나 수신자가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구하고 발신하는 정보의 생산자인 것이다.개인개인이 만들어 내는 홈페이지를 합치면 그것이 바로 사회나 나라 전체의 방대한 정보자료를 축적해놓은 매머드 도서관이 되는 셈이다. 인터넷 정보시대가 아니라도 우리는 가끔 묻는다.만약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가 없었더라면,백범이나 안네 프랭크가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그리고 우리의 아녀자들이 규방에서 혜경궁 홍씨처럼 ‘한중록’을 쓰지 않았더라면어떤 세상이 되었을까하는 상상이다.이러한 개인의 기록들이 관가나 공식문서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역사적 정보와 다양한 삶의 자료가 되어준다는 것을누구나 한번쯤은 체험했을 것이다.거기에서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이야기나일제와 나치의 폭정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정치적 정보를 얻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큰 이야기와 상관없는 사소한 작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정보의 노이즈라고 할만한 군더더기 말 속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정보를 발견할수 있다. 백범일지에는 인천 형무소에서 사형직전 전화 통보에 의해 간발의차이로 풀려나게 되는 삽화가 기록되어 있다.전화가 없었더라면 백범도 백범일지도 태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백범일지의 이 대목은 독립운동의 사료만이 아니라 한국 통신사에 있어서도 빼놓은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결국 지난 천년을 관료들의 문자기록에 의한 정보축적 시대라고 한다면 앞으로 오는 새 천년은 개인의 디지털 기록에 의한 정보발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관료가 개인으로,아날로그가 디지털로,그리고 정보축적이 이제는 정보검색의 데이터 베이스로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30만이나 넘는 동 활자를 만들었으면서도 그것으로 찍은 조선왕조의 실록은 고작4부에서 5부를 넘지 않았다. 역사의 기록은 관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 기록은 세상사람의 눈에서 멀리 떨어진 네 개의 사고(史庫)속에 숨겨진다.왕조차 볼 수가 없는 이 기록들은 읽히기 보다는 단지 역사의 기록으로 영구히 보존해 간다는데 가치를 둔 것이다.불교의 경전 역시 사경공양(寫經供養)이라 하여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탑신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오늘날 도서관 서고 안에 소장되어 있는 그 많은 서적들 역시 근본적으로는 불탑이나 사고 안에 들어있던 다라니경이나 왕조실록과 다를 바 없다. 새 천년의 디지틀 사회란 지난 천년동안의 기록 방법과 그 보존의 의미가근본적으로 달라진 세상을 뜻한다.2000년이 되면 지금 우리가 컴퓨터에서 쓰고 있는 개인기록 저장장치인 플로피 디스켓은 그 크기와 두께가 거의 10분의 1로 줄어든 스마트 미디어로 바뀌게 될 것이다.그러면서도 그 저장량은 2메가를 넘는 것으로 300페이지 짜리 책 열권을 웬만한 우표 한 장 정도의 크기에 담는다.그러면 개인이 워드 프로세서로쓴 글이 출판사나 인쇄소의 과정을 거칠 것 없이 그대로 전자 책을 배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정으로 저장된 기록물들은 공적인 것이던 사적인 것이던아무 구별없이, 네트워크에 의해 연결되고 하이퍼 텍스트와 검색 프로그램에의해서 자유자재로 검색된다.모든 기록물들은 문서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데이터 베이스로서 수시로 검색 조합되어 가면서 새로운 정보자료로 변신해 간다.저장이 곧 생성인 것이다.그러고 보면 새 천년을 ‘기록의 원년’이라고하는 말은 단순한 연대기 상의 문제만을 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아무리 기록장치와 저장 기기의 변화가 일어나도 기록 자체에 대한 마인드가바뀌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중세의 낡은 성을 허물어뜨린 ‘26명의 납 병정’이되게 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만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성서를 읽을 수있게 개혁한 마틴 루터요,그 큰 책들을 오늘날과 같은 사이즈로 만들어 들고 다닐 수 있게 고안한 마누티우스였다.그것처럼 디지틀 기술이 세상을 바꿀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2000년을 기록의 새 창세기로 만들어 가는 정책과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2000년이 새로운 기록문화의 창세기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간단한 지표가 있다.만약 새천년을 맞는 여성지 신년호 부록이 옛날과마찬가지로 책자로 된 가계부라면 그것은 2000년 1월호가 아니라 1999년 13월호라고 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부록이 CD로 바뀌어지고 컴퓨터에 인스톨할수 있는 가계부 소프트웨어라면 문자 그대로 2000년은 기록의 원년이 되는셈이다. 가계부의 문자가 디지털로 바뀌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인가는 장황한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미국 대학생의 음식메뉴를 적은 일지가 그러했듯이만약 10만명의 한국 주부들이 적은 가계부는 나라나 사회 각 분야에서 다시없는 데이터 베이스로 정보의 보고가 되어 줄 것이다.항목별로 분류된 자료와 통계숫자는 개인에게는 가족사요,민족에게 있어서는 민족사,그리고 세계에 있어서는 세계사로 변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처럼 묵을수록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자료들은 더욱 값진 것이 되어갈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지속성과 호환성이다. 개인자료가 공공의 자료 구실을 하려면 산재해 있는 개인자료들이 호환성을 갖고 취합되어야 하며 꾸준히 그 자료들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공기관에서 할 일이다. 가계부의 소프트웨어를 검색할 수 있는 항목으로 데이터 베이스화하고 주부들이 일년동안 쓴 가계부들을 한데 모으는 제도적 장치들이 강구돼야 한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개개인의 참여에 의해 국가의 보존기록과 대등한 무게로보존되기 위한 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지표 문화지표 생활지표 등으로 활용될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정보강국, 정보부국으로떠오르게 될 것이다. 가계부에 적힌 사소한 기록들과 그 통계는 국가의 어떤공공기록이나 국세조사의 통계자료보다도 값진 것이 되어 미래의 비전과 그방향을 알려주는 역사의 레이더암이 될 것이다. 어찌 가계부만의 일이겠는가.아날로그로 된 문자자료를 디지털자료로 바꾸면 그것이 바로 국가의 자산, 이른바 디지털 자원이 된다. 이제는 한 나라의부를 땅의 크기나 지하에 묻힌 자원으로 평가하던 시절이 아니다.싱가포르와같은 작은 나라, 홍콩과 같은 섬의 도시가 디지털 사이버 세계에서는 광활한중국 대륙과 맞먹는다. 쓰레기라고 내버렸던 그 많은 개인기록들을 어떻게 공공의 사회적 역사적자료로 활용하느냐로 21세기의 새로운 부(富)인 ‘디지털 어세트’의 새 자원이 마련된다.왕이나 위인전에 나오는 개인 전기가 이끌어갔던 큰 이야기의역사가 아니라 새 천년은 무명의 개인들이 엮어내는 작은 이야기들이 역사를지배하게 되는 시대이다. 가계부처럼 한국인들이 기록하는 민족이 되어 모든사람들이 컴퓨터 상에서 일기를 쓴다면, 그리고 아날로그로 된 먹물의 문자들을 빛(비트)으로 바꿔간다면 우리는 정말 창힐처럼 네 개의 눈을 가진 신화의 인간들이 될 것이다. “이상 없음”이라고 빈 칸으로 남겨졌던 변방의 그 200년이,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수백 수천 개의 목간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사막의 모래알하나 하나가 푸른 잎이 되어 초원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난다. 새 천년은 사상 최고의 폭죽을 쏘는 축제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며 천문학적 돈을 들여 거창한 돔을 만드는 데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아주 평범한하나의 기획-10만의 주부가 종이로 된 가계부를 컴퓨터의 디지털로 바꾸는기록의 개혁-그 작은 이야기에서 새 천년의 꿈은 현실이 된다.(새천년 준비위원회에서는 현재 10만 주부의 디지털 가계부 쓰기와 그 자료를 ‘평화의대문’에 보존,활용하는 안을 준비하고 있다)
  • 주류·비주류문화의 공존과 ‘프린지 페스티벌’ 전형 모색

    비주류 언더 문화집단의 잔치인 ‘독립예술제 99’가 오는 9월17일∼26일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이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열리는 것이다.지난해 8월 대학로에서 ‘독립예술제 98’이라는 타이틀로 열린 첫 행사에는 84개 단체가 참여,22일의 행사 기간중 모두 5만명의 관객이 찾아왔다. 독립예술제 사무국은 올해 두가지 새로운 시도를 한다.하나는 고급예술 전용공연장으로 여겨져온 예술의 전당과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것.얼마전개관 11년만에 처음으로 언더그룹에 자유소극장을 개방한 예술의 전당은 한발 더 나아가 자체기획 프로그램인 밀레니엄축제의 하나로 독립예술제를 끌어들였다.밀레니엄축제는 2000년을 100일 앞둔 9월23일을 기준으로 전후 10일간 오페라페스티벌,유네스코국제무용제,한중일 타이포그라피전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독립예술제는 이 행사들이 열리는 동안 예술의전당 실내외 10여개 공간에서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독립예술제 집행위원장 이규선씨는 “주류문화와비주류문화가 서로 긴장관계 속에서 공존을 도모하는,의미있는 실험의 장이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한국적 프린지페스티벌의 전형을 모색하는 자리라는 점.프린지(fringe·주변부)는 1947년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에서 행사에 초청받지 못한 작은 공연단체들이 행사장 주변에 자생적으로 모여,공연을 하면서 시작된 대안문화축제이다. 프린지의 가장 큰 특징은 보통 축제 프로그램과 달리 예술적 기준에 따른 심사나 선정과정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는 것.또 행사에 참가하는 단체들이 공연의 주제와 형식의 자유를 보장받는 만큼 공연을 위한 필요조건이나 재원조달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독립예술제 사무국은 이번 행사에서 이같은 프린지의 운영원리와 방식을 도입,자유참가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참가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오는 8월14일까지 사무국으로 신청하면된다.(02)512-6903∼4이순녀기자
  • 수영복 올바른 관리법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수영장이나 바닷가를 자주 찾게된다. 그러나 근사한 수영복도 잘못 취급하거나 보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색이 바래거나 옷감이 빨리 상해 보기 흉하다. 수영복 전문업체인 스피도의 이현실 실장 도움말로 수영복의 올바른 관리법을 살펴본다. ?수영중일 때 선탠오일을 바를 때는 수영복에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오일은 고무줄을 느슨하게 하고 밝은 색 옷일 경우 얼룩을 만들수 있다. 풀장 소독액은 표백제가 섞여 있어 변색의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풀에서나와 쉴 때는 가능하면 자주 샤워를 하여 몸과 수영복에 묻은 소독액을 제거하는 것이 좋다. ?수영복을 벗은 직후 맑은 물로 헹궈 소독액이나 소금기를 씻어낸다.바닷가에서는 헹굴때 촘촘히 박힌 모래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제거한다. 젖은 수영복은 비닐팩이 아닌 타월로 싸서 집으로 가져간다.비닐팩에 넣어햇볕이나 더운 곳에 두면 탈색하거나 원단이 상하기 쉽다.차트렁크에 넣지말아야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탁과 보관 중성세제를 푼 미지근한 물로 세탁하고 소독액과 소금기가 완전히 제거되도록 충분히 헹군다.(10분정도)비틀어 짜지말고 차곡차곡 접은다음 눌러서 물기를 없애거나 타올을 이용 물기를 빼고 그늘에서 말린다.바닷가를 다녀온 경우 수영복을 마지막 헹굴 때 식초를 한두방울 타서 씻으면소금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남아 있는 모래는 수영복을 말린 후에 모래가 있는 부분을 양쪽으로 잡아당겨 완전히 털어낸다. 보관할 때는 컵두개를 겹쳐 밑에서 말아올린 수영복을여기에 넣으면 컵모양이 일그러지지 않는다. 강선임기자
  • 향후 남북관계 전망

    금강산 관광객 억류사건의 파장이 가라앉을까,아니면 더 번질까.정부합동조사반이 29일 민영미씨 억류사건의 전말을 발표함으로써 제기되는 의문이다. 이 사건은 그동안 남북관계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켜 왔다.다만 이날 발표로 그동안의 구구한 억측이 일단 잠재워진 측면은 있다. 하지만 여진은 꽤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합동조사반의 조사결과에서도 그 기미는 감지된다.민씨가 무심코 행한 발언을 북측이 문제삼아 의도적인‘귀순공작’으로 몰아간 사건으로 결론내렸기 때문이다.우선 유의해야 할대목은 북한이 ‘확전’을 시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이다.민씨에게 강요한 사죄서를 이용,선전전을 펼 것이라는 얘기다.북측은 민씨의 사죄서 낭독장면을 비디오로 담아뒀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이같은 선전 공세는 어차피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금강산관광이 재개되지 않을 때 북측이 감수해야 할경제적 손실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현대측도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순항하던 금강산관광선이 커다란 암초를 만난 격이기 때문이다. 사건 이후 유람선을 띄우지 못해 입은 손실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일 수도 있다.문제는 다시 금강산관광 붐을 일으키기까지 유·무형의 비용이다.한번 식은 관광마인드를 되살리려면 지금까지 소요된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다른 경협사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민씨사건으로 남북 경협사업의 불가측성과 이에 따른 부담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남북간 ‘기브 앤드 테이크’인 상호주의를 더 엄격히 적용하는양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이를 테면 신변안전보장조치 마련 전까지 금강산관광을 잠정 중단하는 등의 조치다. 이 사건은 단기적으론 남북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다만 장기적으론 당국간 투자보장협정 체결,신변안전보장장치 마련 등 남북관계의 현안을 재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구본영기자 kby7@
  • 北침범은 對서방 협상용…NYT 서해사태 배경 분석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은 서방과의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위해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대치를 조성하고 있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도쿄(東京)발 기사를 통해“미국이 북한에 대해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면 제재조치 해제 및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일본과 북한은 수교회담 재개쪽으로 나아가고 있어 협상 전략용 군사대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북한이 서방과의 협상을 앞두고 한반도의 전쟁이 아직 실질적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것이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북한이 식량난으로 단순히 꽃게를 잡기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남한측의 의지를 시험중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한편 타임스는 유엔사령부가 북한의 영해 침범을 도발로 간주하고 있으나경계태세에 들어간 병력은 없다고 칼 크로프 유엔사 대변인이 밝혔다고 전했다. hay@
  • ‘휴대폰 규제법안’ 4개월째 낮잠

    안전하고 건전한 휴대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추진됐던 ‘휴대통신기기의 사용제한에 관한 법률’이 정치권의 눈치보기와 일부 부처의 행정 편의주의로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9일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에 따르면 올 초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던 이 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정보통신과학기술)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 2월9일 국민회의 김병태(金秉泰·서울 송파병)의원 등 국회의원 25명은 병원·공항·항공기 등 휴대통신기기의 주파수가 통신교란을 일으킬 수있는 곳을 비롯,차량운전중일 때와 지하철·극장 등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사용을 못하도록 규정하고,이를 어길 경우 최고 10만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탓에 “여론조사 결과 이동전화 소유자의 60% 이상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발의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도 단속이 어렵고 위반자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경찰청 관계자는 “적발대상자 수가 적은 음주운전 등과 달리 휴대폰은수많은 사람들이 적발대상이 될 것으로 보여 공평하고 효율적인 적발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특히 도로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경범죄 단속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에 비춰 자칫 법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있다”고 말했다. 이동전화사업자들과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법안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각계에 로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부 관계자는 “의료기기,항공기 주변 및 차량운전중 통화 등은 대형 인명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규제가 시급하다”면서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명시적인 법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휴대폰 사용규제에 관한 법률은 이미 외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우리나라처럼 마구잡이식 휴대폰 사용이 심각하지 않은 대만에서도 휴대폰을 통화금지장소에서 쓸 경우 최고 5년의 징역에 처해지고,싱가포르에서는 두번째 적발되면 휴대폰을 압수당한다. 아이다호·하와이·위스콘신 등 미국의 일부 주와 프랑스,호주 등에서도 관련 법규가 마련돼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외언내언] 휴대폰輪禍와 전자파공포

    우리는 문명의 이기 덕분에 질 높은 삶을 다양하게 누리고 있다.그중에서도 휴대폰의 발달은 어떤 피해나 방해가 될 수 없는 모든 기능을 보충하고 있다.부재중을 알리거나 상대방의 메시지를 친절하게 전해주고 음성기억장치로원하는 상대방과 자유롭게 연결된다. 우리의 휴대폰 보급은 인구 3명당 1대꼴인 1,500만대.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운전자 78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운전중 휴대폰 사용으로 접촉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11.3%.또 운전중 휴대폰 사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73% 이상이 차 안에서 전화를 받거나 걸고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휴대폰통화로 차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지체시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아무리 핸즈프리 장치가 돼 있어도 다이얼을 누르기 위해 1초라도 방심할 경우 얼마나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싱가포르는 휴대폰 급증과 함께 폐해가 나날이 늘어나자 지난 1월부터 운전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적발되면 최고 1년징역과 2,000싱가포르달러(약 140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강도 높은 규제법안을 통과시켰다.대만에서도 비행기가 운항중일 때 휴대폰을 사용하면 대만돈 15만달러(미화 4,500달러)의 벌금 또는 최고 5년의징역에 처해진다. 휴대폰이 이처럼 교통의 중대한 위험요소라는 점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가운데 이번엔 휴대폰 사용이 뇌종양이나 뇌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와 큰 충격을 주고 있다.스웨덴 암전문의 렌나르트 하르델 박사는 영국 BBC방송의 기획프로인 ‘파노라마’에서 ‘뇌종양환자중 휴대폰 사용자의 발병확률이 보통 사람에 비해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확실한 검증은 미지수이긴 하지만 ‘전자파가 인체면역 체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80년대 아날로그 휴대폰 등장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당국도 운전할 때 휴대폰 사용이 교통사고 등의 위험을 부를 수 있는경우를 위해 ‘휴대 통신기기의 사용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운전중이나 정밀작업중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또한항공기와 병원 등에서는 전파 차단장치를 의무화하는 전파블록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문명의 이기도 잘못 쓰면 때로는 일생을 망치는 흉기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그처럼 애용해 마지않던 휴대폰 자체가 경고하고 있다.온통 휴대폰에 얽매여 예절감각도 잊은 채 휴대폰 없이 살 수 없는 노예가 되기 전에 여유와자제로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는 세련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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