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중의원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전쟁터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취업률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박범계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 평검사
    2026-06-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071
  • [외언내언] 일본의 국기·국가법

    어느 나라나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를 가지고 있다.국내외 행사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며 국민들의 애국심과 단결심을 높이는 구심점이다.올림픽 시상식에서 국기가 게양되면서 국가가 울러퍼지는 순간의 감격이 없다면올림픽 금메달의 가치는 아마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일본 중의원이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와 기미가요(君が代)를 국기와 국가로 정한 ‘국기·국가법’을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켜 주변국들의 우려와경계를 사고 있다.주권 국가가 자기네 국기와 국가를 정하는 일에 다른 나라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공식 인정이 단순한 국기와 국가 제정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가 배어 있다.히노마루를 앞세우고 기미가요를 부르며 일본이 벌였던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아시아 이웃국가들에는 일본 군국주의가 자행했던 ‘과거사’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특히 최근 일본의 급속한 군사대국화 행보와 궤를 같이하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공식화는 ‘군국일본’의부활을 걱정하게 만든다. ‘천황의 치세는 천대 만대로/작은 돌이 바위가 되고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로 천황 치세의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는 기미가요는 천황·국가 절대주의를 강조하고 있다.천황은 곧 일본이고 천황폐하와 일본을 위해 일본국민들은 기꺼이 전장에서 몸을 바쳤다.패전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자연히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보아 일본 내에서도 공식행사에서의 게양과 제창을 자제해 왔다.군국 일본이 저지른 침략행위와 인간성 말살에 대한자성과 사죄의 뜻이 담겨 있었다. 국기·국가법 법제화는 지난 2월 교육위원회의 국기게양·국가제창 지시와교사들의 반발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 고교교장의 자살로 빠르게 추진됐다.메이지(明治)유신 이후 관행적으로 사용돼 왔으나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일어나고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해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그러나 전국교원노조인 일교조(日敎組)와 사회단체들은 법제화 강행이 침략전쟁기였던 메이지·쇼와(昭和)시대로의 복귀라며 적극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변 국가들이 경계하고 우려하는 것은 결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법제화가 아니다.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급격한 군사대국화와 우경화(右傾化)다.이웃 나라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일본의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 [대한시론] 헌법과 국가적 상상력

    대만이 더 이상 중국과 ‘같은 나라의 한 부분’이라는 정치적 원칙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국가적 선언에 북경은 즉각적이고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리덩후이(李登輝) 대만 총통은 ‘하나의 중국’ 및 그 필연적인 재통합이라는 개념의 우산을 벗고 ‘이국론(二國論)’으로 가겠음을 확실히 하였다.대만은주권국가라는 것이다. 리 총통은 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하여,‘각자는 다른 나라의 정당한 통치자’라는 허구에 기초한 일국론(一國論)이 아니라 ‘특수한 나라와 나라간의관계’이다.대륙 정책은 불변이다.하지만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교류·대화는 계속하겠다.현실,법률,역사 등 각 방면을 적극 정리하겠다고 하였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론을 선의로 받아들여 그 틀 속에서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으려 했다.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를 국제적으로 대만을 압착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왔으며 그러니 더 이상 계속할 필요가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다.‘헌법’을 가진 주권국가의 실질적인 독립선언이다.용기와 자신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중국에 복귀한지 3년째인 홍콩은 주권은 없어도 ‘1국 2제도’하의 홍콩기본법을 지닌,중국과 다른 3권분립에 기초한 법의 지배를 지닌 실체로서 아시아 국제금융의 중심 인프라를 형성했다고 믿었다.그러나 중국과 홍콩 관계에서의 ‘홍콩기본법’은 허구였다. 기본법에 따르면 양친 중 일방이 홍콩 영주권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도 영주권이 있다.중국으로부터 몰래 월경한 아이들이 그러하다.그렇지만 중국 정부는 이들을 강제송환할 것을 요구하였다.홍콩 최고재판소는 지난 1월 29일 기본법에 쓰여 있는 대로 영주권을 인정했고 사실상 중국측의 요구를 거부했다.중국 정부는 격하게 반발하였다. 홍콩기본법에 따르면 헌법의 해석권은 우리의 국회 격인 전인대(全人大) 상무위원회에 있다.그런데 홍콩 최고재판소는 헌법을 해석하였다.이것이 월권이라는 것이 중국의 판단이다.전인대는 지난 6월 재판소의 결정이 ‘기본법의 입법취지에 반한다’하여 이를 부정하였다.홍콩은 주권국가가 아님이 명확해졌고,그러니 홍콩기본법은 ‘헌법’이 아니다.중국을 방문중인 오부치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중국 정부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北朝鮮)의 미사일(대포동) 재발사 억지에 협조하여 줄 것을 요청했다.‘일·미·한’ 3국의 보조도 언급하였다.하지만 북조선은 주권국가가 아니더라도무력을 보유한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의 성격은 홍콩기본법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일본은 7월 중의원과 참의원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하였다.내년 1월 정기국회 때부터 기능한다.전후 55년 체제를 정한 일본국 헌법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한 광범하고도 종합적인 안을 만들 것이다. 21세기 일본의 국가적 상상력과 창의력의 결정체인 ‘겐뽀’(憲法)의 성안이 국회에 맡겨졌다.국권의 최고기관은 국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어떤가?동아시아의 중심국가인 우리 주권국가의 뼈대인 헌법의 기틀을 이루는 권력구조를 둘러싼 논의가 국가적 수준이 아니라 몇 사람 자연인에 의하여 재단되고 있다.국회는 뒷전에서 선거구라는 밥그릇에 연연해 있다.동아시아 정치인들이 ‘자기 나라’ 밥그릇에 눈을 부라리고 있을 때 우리는수저 싸움에 명운을 걸고 있다.“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헌법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이 ‘헌법정국’에서 여당은 특검제고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라면 모두 포기할 마음이다.헌법이 최소한 동아시아라는 밥상에서 차지할 수 있는 밥그릇의 크기를 좌우하는 기재(器材)임을 잊고 있는것이다. 한국의 법치국가,국제적 신인도,그리고 국가적 창의력의 표상인 헌법을 우리가 홀대하고 있다.7월 17일은 제51주년이 되는 제헌절이다.21세기 비전의국가적 상상력을 헌법에 주어야 한다.우리 모두가. 강경근 숭실대교수·헌법학
  • 日열도 총체적 보수화 急流/보수화 움직임들

    일본 열도가 총체적 보수화로 치닫고 있다.곧 탄생할 보수 3당 연립정권,개헌을 다룰 헌법조사회 설치,국기(國旗) 국가(國歌) 법제화 추진 등 보수 우경화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이런 보수화 흐름은 일본내 어떤 세력도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을 형성,21세기 초 일본을 규정짓고 해석하는주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일본의 보수화가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의 급격한 보수화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내각 때 단초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자민 사민 사키가케 연정이 무너지고 98년 여름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이 경제실정(失政)으로 참패하면서 ‘헤쳐 모여’가 가속화됐다. 참의원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자민당은 ‘체질’이 비슷한 자유 공명등 야당을 끌어들여 안정적 국회운영을 노렸다.첫 열매가 올 1월 자민 자유연정이었다.늦어도 올 가을전까지는 공명당이 가세한 3당 연립정권이 출범할 것 같다. 새 연정은 중·참원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보수연정은 장기적으로는 제1야당 민주당과의 연합까지 상정하는 ‘보수대연합’의 구도를 그리고 있다.보수를 견제할 대칭축으로는 군소야당인 사민 공산당 밖에는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보수화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풀이가 있으나 거품경제 붕괴후 시작된 10년가까운 장기 불황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불황이 보수화를 촉진하고 있는 특이한 경우다. 불안한 미래에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기성 정치,특히 이념정당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게다가 유권자들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속속내놓는 자민당의 인기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의 지지도 추이는 보수화의 일단을 엿볼 수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98년 7월말 출범 당시 바닥세였던 내각 지지율은 보수연정을 추진하면서 상승세로 돌아섰다.20%대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은 최근 50% 전후로 뛰어올랐다. 정치의 이런 보수화는 다른 한면으로는 국가의 통합을 급속히 강화하는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국회통과 이후 일본 정부는 자위대의운신을 넓히는데 더욱 애쓰고 있다.일장기(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국기 국가 추진,교과서 검정기준강화,개헌론 등은 보수화와 더불어 나타난 움직임이다. 민족주의를 바탕에 깐 국가체제강화는 국수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중국 등 주변국들이 경계하는 점도 바로 이런 대목이다. 20세기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 보수화를 고리로 국가체제강화,군사대국화로연결돼 자행됐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주변국들의 우려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보수화 움직임들 일본의 보수화 움직임과 관련해 올해 눈에 띄는 일들이 유난히 많았다.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가능케한 미·일안보협력지침이 제정됐다.헌법조사회 설치법안이 중의원에서 통과됐고 국기와 국가 법안도 국회 심의가 진행중이다. [헌법조사회 설치]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한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교전권을 갖도록 한다는게 개헌론의 골자.일본 헌법은 미 군정시절인 46년제정됐다. 자민당은 55년 ‘자주성을 갖춘 헌법개정’을 정강(政綱)으로 채택,개헌논의를 주도해왔다.내년 국회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면 45년만에 자민당 뜻대로 개헌논의가 공식화되는 셈이다. 초점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9조의 개정.주변국들이 개헌론에 끊임없이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바로 교전권을 가지려는 일본의 속내에 대한의심 때문이다. [국기·국가 법안] 6월11일 일본 정부는 일장기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하는 법안을 각의에서 통과시켰다.일본교원노조등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심볼로 삼으려는 저의가 있다”고 맹반발했다.일장기와 기미가요는과거 군국주의 일본에게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종전직후 미 군정이 일장기 게양을 허가제로 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여당인 자민 자유당이 법안에 찬성하고 있고 민주 공명당도 동의하고 있어 심의만 끝나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사회 문화분야] 극우 사관이 공공연히 세력을 얻어가고 있다.‘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대표적이다.지금의 역사책이 미국의 강요로 기술됐다며 ‘새로운 사관’에 서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미 군정하전범재판을‘날조극’이라고 비판한다.96년 결성돼 지난해와 올해 부쩍 회원을 늘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전쟁을 미화하고 신 대동아공영을 부르짖는 책자들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전쟁론’이나 4월 지방선거에서 도쿄도지사에 당선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선전포고,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경제’ 등은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황성기기자
  • 日本 헌법조사회 설치…전쟁포기 ‘평화헌법’개정 될듯

    일본 헌법의 개정 논의 등을 다룰 헌법조사회가 내년 정기국회 때부터 설치된다. 일본 중의원은 6일 본회의를 열어 헌법조사회 설치를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을 자민 자유 민주 공명당 찬성다수로 가결시켜 참의원으로 보냈다.사회 공산당은 법안에 반대했다. 참의원 운영위는 참의원에도 헌법조사회를 설치토록 법안을 수정할 계획으로 개정안은 이번 국회 안에 확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헌법조사회는 의안제출권이 없기 때문에 내년에 국회에 설치되더라도 당장헌법 논의가 정치일정에 등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민 자유당 등 보수정당이 주장해온 헌법개정론이 국회내에서 본격화되는 길을 텄다는 점에서 중국 등 주변국의 경계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조사회는 5년간 헌법에 대해 폭넓고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되 의안제출권은 갖지 않는다. 조사회의 활동에 따라서는 ‘전쟁이나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이른바 ‘평화헌법’이 46년 제정이후 처음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日, 北 미사일 재발사설에 긴장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설에 일본이 속을 태우고 있다. 특히 6월말 북한을 다녀온 아카시 야스시(明石康) 전유엔사무차장이 3일 베이징(北京)에서 “북한측이 발사준비를 끝냈다고 밝혔다”고 전해 긴장의 도를 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에 직접적인 공식반응을 내지 않고 있다.다만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은 2일 중의원 외무위에 출석,“발사의 징후가 포착되면한·미·일이 협력,경고하겠다”고 밝혔다. 현단계로선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 방지를 위해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가 최선이라는게 기본입장이다.이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북 미사일 대응방침과도 일치한다. 일본은 9일로 예정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와 장쩌민(江澤民) 중국주석의 정상회담 때 ‘북의 자제’를 강력히 요청한다는 방침. 그러나 실제 북한이 발사를 강행한 뒤 사후 대응에서는 한·미와 일본에 틈새가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대한 협력이그것이다. 한·미 정상은 북한이 미사일을 재발사하더라도 북한 핵개발포기를 골자로한 ‘제네바합의’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반면 일본은 상황에 따라 KEDO 협력을 유보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비치고 있다. 고무라 외상은 “재발사는 일본국민을 감정적으로 만들어 KEDO 협력을 어렵게 한다”고 밝혔다.외무성 간부도 “정부의 뜻과는 별도의 정책판단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발사 직후 흐트러졌다 간신히 수습된 한·미·일 3국의 대북 공동보조가 다시 삐그덕거릴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대한시론] 새로운 천년과 국가의 기초

    히노마루와 기미가요. 일장기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일제(日帝)’의 국기가 히노마루이고 그패전 직전까지 우리의 소학교 조회 때마다 불린 노래가 기미가요이다.일본을떠올리게 하는 이 두 상징물은 전쟁을 체험한 일본인들에게조차 침략전쟁의상징물로 각인되어 있다. 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가 ‘법률’의 수준에서 ‘일본(日本)’의 국기와국가로 인정될 것 같다. 지난 6월29일 정부·여당이 제출한 ‘국기·국가법(안)’에 대한 첫번째 심의가 중의원에서 있었고 7월8일까지 그 통과를 공언하고 있다.법안이 의결돼시행되면 권장 사항에 불과하던 국기게양과 국가제창이 학교 등에서 구속력을 갖게 된다. 기미가요를 국가로서 제창케 하는 일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일본에서도중론이다. 기미가요의‘기미(君)’는 주권을 총람하는 천황을 상징하는데,이는 상징적인 천황제하의 국민주권국가인 일본국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이 지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헌의 법리 이상으로 이를 강제하는 정부와 받아들여야만 하는 국민간의 틈새 또한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모를까. 지난 2월28일,히로시마현(縣)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졸업식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부르도록 강제한 현의 직무명령에 항의하면서 자살하였다. 정부는 당황하였다. 하지만 대응은, 오히려 이러한 혼란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법 제정을 서두르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 속뜻(本音)은 무엇일까. 1947년 제정된 현재의 일본국 헌법은 맥아더 헌법을 별칭으로 하고 평화 헌법을 그 미칭(美稱)으로 한다.이는 일본의 헌법이 완전한 주권성에 기반하여얻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자위대를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으로 캄보디아에 파병하여 군대의 보유의 금지를 규정한 헌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핵 물질인 플루토늄을 프랑스로부터 굳이 해상으로 가져오면서 대서양,인도양을 건너 현해탄에 이르기까지의 주변 국가들에게 현시하기도 했다.일본은사실상 이때 맥아더 헌법 체제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것이다. ‘국기·국가법안’이 통과된다면 일본국 헌법 체제는 실질적으로 변천되었다고 해야 한다. 거창한 구호 없이 일본은 패전국가에서 거대국가의 터를 완벽하게 닦고 새로운 천년을 항해할 채비를 끝낸 것이다. 일본이 패전으로부터 경제국가로서의 자립을 마련한 것은 한국전쟁의 덕분이라고 한다. 일본이 미국 흑선(黑船)의 함포에 놀라 개항을 하여 칼을 버린대신 대포가 있는 배를 구하고,그렇게 하여 명치유신을 이루어 기른 ‘근대’국가의 힘을 시험해 본 곳 역시 조선이었다. 더 멀리 일본이라는 이름도 갖지 아니한 ‘야마토’(倭)시기 ‘고대’국가의 터전을 마련하여 준 것도 백제인들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3국인들이었다. ‘일본서기’를 통하여 일본이라는 국호를 갖게 하여 준 것 역시 백제계의도래인이었다고 말해진다. 옆 나라는 이미 새로운 국가의 터를 닦았다.항진하려고 한다.우리는 또 보조자의 역할에 머물 것인가.그 한 바로미터가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와 우리의 국가인 애국가에 대한 자세이다. 헌법에서 이를 정하는 프랑스나 독일은 그렇다 치자.그렇지만 법률에서 이를 정하겠다는 일본의 그 속뜻을 우리는 유의하지 못하고 있다.대통령령으로‘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두고 행정자치부의‘정부의전편람’이라고하는 내규로써 국가를 정하는 현실에 우리는 둔감하다. 새로운 천년의 직전에 우리는 행사성·일회성 이벤트에 정신을 맡기고 있다. 국가 성격의 전환기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기능은 거대한 빙산의 유유한 흐름을 놓치고 있다. 새로운 국가를 위한 ‘국가 인프라 스트럭처’를 기초부터 짤 때이다. 姜 京 根 숭실대 교수·헌법학
  • [특별기고] 金대통령 訪러와 보완적 동반자관계

    세계가 얼마나 좁아졌나.서울에 머물고 있지만 나토 유고 공습의 반향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러시아 정책은 발칸위기를 평화적·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동북아를 포함한 아·태지역과 다른지역에서의 분쟁도 똑같은 해결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넓은 시장과 잠재력 있는 인력을 가진 아·태지역은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유라시아 국가인 러시아는 여기서 이뤄지고 있는 발전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역내 세력균형이 변화되는 가운데 군사블록 형성을 방지하고극동지방의 국경 안전 보장에 노력할 것이다.러시아는 세계 안보,위기사태공동대응,새로운 대륙횡단의 도전에 적당한 답을 찾아내 아·태 및 동북아동반자들과 협력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지역 정세는 아직도 복잡하다.오랜 영토분쟁,분리주의 운동,종교 및 인종 갈등,깊은 역사적 뿌리를 가진 불신,최근의 무역분쟁 등이산적해 있다.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군사·정치적 야심들도 심각한 불안정을 야기한다.동북아의 대미사일 방위 전술체제를 만들려는미·일의 무리한 방안도 이런 야심들과 무관하지 않다.이는 러·미 조약을 손상시키는 것일 뿐더러 다른 나라를 협박할 군사·기술적 우위 확보 의도라는 평가가 있다.이것은 당연히소모적인 군비경쟁을 일으킬 것이다. 일본의 군사 역할과 범위가 확대될 때 결과가 염려스럽다.일본 중의원에서채택된 미군 작전의 후방지원은 지리적으로 애매한 ‘일본과 인접한 지역’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경우도 해당된다.물론,러시아 영토가 이런 지역에 포함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태,동북아 지역 나라들이 다각적인 협력을 기울여온 것도 사실이다.아·태지역에서는 다단식의 ‘안전망’이 생기고 있다.러시아는 이 모든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많은 나라가 세계의 다극적 모델을 지지한다.한국 러시아 일본 중국 미국아세안국가들이 참가하고 있는 ARF(아·태 안전 및 협력을 위한 아세안 지역 포럼)는 최근 국제무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북아 경제에 특히 주목하며 이 지역에서 21세기 인프라 프로젝트의 기초가 마련되고 있다.러·중 에너지 프로젝트,러시아 남북한 일본 몽골 등이 참가하는 대규모 경제체제,두만강 자유경제지대,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체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개발,아·태 경제와의 조화가 시급하다.동북아는 경제이익 중심지를 마련하기 위한 조건을 갖췄다.경제이익을 결합시킴으로써 정치안정까지 도모할 수 있다.‘경제를 통한 안전’은 군사·정치의 신뢰 및 투명함을 만든다. 서울에 있으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1884년 7월 7일조·러간의 조약이 체결됐고 이후 100년이 넘었다.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6·25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분쟁을 겪은 20세기의 역사는 비극적이다.한국의 분단도 너무 길어졌다. 1992년 두 나라 정상이 체결한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에 의해 한·러는 계속 우호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다.국제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데 유엔의 역할을높이기 위해 협력할 것이다. 옐친 대통령은 92년 방한 때 극동지방과 시베리아 자원개발을 가장 강조했다.이와 관련,야쿠티아 천연가스 개발,북한영토를 통한 가스관 공사,나홋카기술센터 설립을 주장했다.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도 양국 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상호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러시아의 대한 정책의 핵심이다. 한·러간 무역 경제 과학 기술협력 공동위원회 활동도 많은 결과가 기대된다.지난해 양국 교역이 24억달러에 이르렀고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차 한·러포럼도 성공적이었다. 러시아는 한반도 정책을 균형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러·북 관계도 우호적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북한과 지난 3월17일 평양에서 러·조간 우호관계 및협력에 관한 조약에 가조인했다. 남북 관계는 아직도 답보상태다.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은 협력과 화해를통한 한반도 통일에 목적을 두고 있다.21세기를 바라보면서 한반도 정세를완화시킬 포괄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상화는 남북한 국민들의 의지와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이것은 러시아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러시아가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할 것이다. 러시아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가하는 4자회담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실체적인 결과는 없다.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국가가 참여하고 넓은 차원의 안전문제가 논의되는 대화가 바람직하다. 20세기는 이제 역사적 고비와 고난을 마치고 있다.다음 세기가 모든 나라국민들에게 평화적인 세기가 되길 바란다.
  • ‘대화와 억지’ 對北전략 합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3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대화와 억지’ 전략으로 대응키로 합의했다.양국 정상은 또 세계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의 경기부양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통신분야 등에서 일본정부의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확대키로 했다. 그러나 잇따른 덤핑제소 등으로 마찰을 빚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일본의 철강 대미(對美)수출 등 통상문제에 대해 양국은 이견을 보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회견에서 “양국은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에 우려를 공감했다”면서 “한반도문제는 중국,러시아와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미·일·중·러간 한반도문제 협력을 강조했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유보해오던 10억달러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차관공여협정에 3일자로 서명했다”며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검토하고 있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대북정책 접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간에는 대화채널이 있지만 일본과 북한간은 그렇지 않다”고 일·북간 대화창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편 클린턴 대통령은 일본 중의원을 통과한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과 관련,“이제 아시아 지역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평가하면서 “(가이드라인이)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hay@
  • 日 군사대국 재무장하나-국회 통과 배경과 전망

    가이드라인은 96년 4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가 발표한 ‘신 안보공동선언’을 구체화한 것으로 두 나라 군사동맹관계의 강화가 골자였다. 당시 일본에선 안보 불안과 미군기지 철수여론이 높아가던 시점이었다.반미감정의 확산 속에서 양국은 무역불균형에 따른 마찰도 확대되고 있었다. 일본으로선 자위대의 군사행동범위의 확대요구 등 우경화 물결 속에서 미국의 동맹강화 요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듬해인 97년 9월 두 나라 정부차원에서 새로운 방위협력지침으로 확정됐다.지난달 중의원을 통과한 관련법안은 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신 안보공동선언’의 실현을 위한 결정판이다. 이로써 두 나라는 더한층 강화된 군사동맹관계를 확보하게 됐다.미국에겐냉전종식이후 일본을 축으로 하는 아시아지역 안보의 틀을 확립하게 됐다. 96년 타이완(臺灣)해협에서의 중국군 무력시위,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및 실험 등 동북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긴장상황은 일본의 군사적 대응능력 강화라는 명분에 힘을 실어주면서 여론을 부채질해왔다. 그러나 대내외적인 파장과 갈등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전망이다.우선 일본국내적으로 “주변지역의 유사시 등 전쟁상황에 일본이 끌려들어가는 것이아니냐”는 비판도 있다.미군기지문제로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오키나와(沖繩) 지자체 등은 주변사태때 협력거부를 이미 선언했다. 후방지원이란 단서가 있지만 공격을 받으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시 상대국과의 교전행위 발생가능성도 있다. 일본 자위대의 활동영역도 크게 확대됐다.‘평화헌법’을 비롯,각종 규정에 묶여 부자유스러웠던 자위대의 손발을 풀어준 것에 비유된다.종전(終戰)후일본을 무장해제시킨 미국이 반세기만에 군사대국 일본의 길을 터줬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대한매일을 읽고-뮤추얼 펀드 허점 지적 시의적절

    지난달 대한매일 26일자 10면 ‘뮤추얼 펀드 낭패볼 수도 있다’ 제하의 기사는 투기과열 현상을 보이는 증권시장의 요즘 시점에 적절한 착상이었다고생각한다.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투기과열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보다는 낭패볼 수도 있다는 식으로 자제를 요구하는 느낌을 주었다는것이다.뮤추얼 펀드는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펀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까지세세하게 지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지난달 27일자 5면 하단 기사에 ‘미·일 안보지침법안 중의원 통과’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기사의 개요는 일본 자위대의 지위문제와 역할에 대한것이다.가볍게 바라본다면 별 문제가 없는 듯 보이나 주변사태는 극단적인상황시 일본의 자위대가 유사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표현이 있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아직 더 지켜보아야 할 입장이지만 이와 관련된 후속 기사를 계속해서 내 주었으면 한다. 이승경 [학생·전북대 정치외교학과]
  • 美·日 ‘新 방위협력’ 주변국 반응

    최근 일본 중의원을 통과한 ‘신(新)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놓고 주변국들의 ‘손익 계산’이 한창이다. 일본의 가상 적국(敵國)으로 분류된 북한은 극렬한 반응을 보였다.향후 북-일 관계의 급속한 냉각이 점쳐진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일본 반동들의 군사적 위협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것이며 일본의 재침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북한 중앙통신도 “이번 일본의 주변사태법은 일본의 재침을 자극하는 전쟁법안”이라며 최고조의 비난을 퍼부었다. 당사자인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역할(보통국가론)’에 한걸음 전진했다는 분석이다.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일본내 보수파들의 주장이 점차 현실화되는 분위기”라고 평했다. 잠재적 위협국가인 북한을 직접 겨냥하면서 동북아 패권다툼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이중효과를 노린 것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우려와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동북아에서의 미·일의 독주를 우려한 탓이다. 중국은 최근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일협력 강화는 시대조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중국 내정인 대만문제에 간섭함으로써 중·일 관계를 손상시켜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도 최근 “미·일이 규정한 ‘주변 사태’에 러시아 문제가 들어가면안된다”는 의사를 일본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미·일 동맹을 통한 ‘안정자 역할’이라는 세계 전략을 관철하면서 ‘비용경감’이라는 실익을 얻었다는 시각이다. 한국 외교부도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선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 ‘가이드라인’ 통과 이후 고개드는 日 헌법개정론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일본 중의원 통과직후 일본 정가에서 헌법 개정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개헌론의 요지는 헌법 9조를 고쳐 자위대가 교전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어서 주변국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집권 자민당 야마사키 다쿠(山崎拓)의원은 28일 요미우리(讀賣)와 회견에서 “헌법 개정을 자민당 총재선거의 공약으로 내걸겠다”고 밝혔다. 자민당내 4번째 파벌인 야마사키파를 이끌고 있는 그는 9월 총재선거에 입후보할 예정으로 안보문제에 보수적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국제적 안전보장에 일본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이는 헌법해석의 확대가 아닌 개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마사키 의원이 개헌론을 들고 나온 것은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호헌(護憲)입장인 당내 2위파벌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의원 등 유력 총재후보들과의 ‘차별화 전략’때문. 지난해 북한 미사일 발사와 3월 북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작선 침범사건 등을 계기로 일고 있는 ‘강한일본만들기’의 여론을 등에 업고있다. 요미우리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개헌하는 쪽이 좋다’가 53%로사상 최고지지율을 보인 것도 이런 일본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2차대전 패전뒤인 46년 제정된 일본 헌법은 9조에서 ‘육해공군의 군사력을 갖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점령군 지시로 제정된 헌법을 자주헌법으로 개정한다’는 내용을정강으로 채택하고 있는 자민당 등 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개헌론이제기돼왔다.최근 사민 공산당을 뺀 여야4당이 헌법논의를 맡을 헌법조사회의 국회내 설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미국이 개입하는 국제분쟁에 가담할 수 있도록 한 가이드라인 법안 통과 이후 군사대국화에 발맞춘 개헌논의,유엔평화유지군(PKF)파병,유사법제 제정논의는 한동안 봇물처럼 터질 전망이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사설] 日의 방위관련법 주목된다

    새로운 미·일(美·日)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법안의 일본 중의원 통과는 여러 면에서 우려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27일 중의원을 통과한 주변사태법 및 자위대법 개정안과 미·일 물품 용역상호제공협정 개정안등 3개법안은 일본 주변에 유사(有事)사태가 발생했을때 일본이 미국을 후방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지금까지 일본영토의 전수(專守)방위에 국한했던 자위대의 군사활동을 주변사태로까지 합법적으로 확대한 것이다.군사활동의 범위를 비록 탄약·무기수송과 미군의 수색·구조등 후방지원으로 한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후방의 개념이 모호한 현대전의특성상 군사개입의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법이 동북아의 안보상황,그중에서도 특히 한반도사태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군사지원이 가능한 유사사태의 범위에 무력분쟁이 발생했을 때만 아니라 무력분쟁이 임박하거나 내란·내전이 발생했을 경우,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했을 경우,유엔안보리가 경제제재를 결의했을 경우 등을 폭넓게 포함하고 있는 점도 한반도 유사시 미국을 돕기위한 일본의 개입 가능성을 뜻하고 있다. 미·일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에 일본의 역할분담을 겨냥한 96년의 미·일안보공동선언을 뒷받침하는 조치이다.미·일의안보협력 강화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그러나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중국등 주변국들을 자극하여 이 지역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군대와 전쟁의 영구적 포기를 선언한 평화헌법에위배될 뿐만아니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꾀한다는 이유로 일본 국내에서도반대의 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이 불가피하다.얼마전부터 시작되고 있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아울러 신가이드라인 관련법이 한반도안보에 미칠 영향을 철저히 분석하여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북한도 일본에게 군사력 강화의 빌미를 주는 도발행위는 중단해야한다.국내외의 반발로 1년이상 끌어왔던 가이드라인 관련법이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공작선침투를 계기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을 북한은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 오부치 日총리 오늘 訪美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29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지난해 11월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의 일본방문에 대한 답방(答訪)으로 일본 총리의 공식 미국방문으론 87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12년만이다. 10여년만의 방미(訪美)인만큼 이번 방문은 21세기 양국의 결속을 다지는데초점이 맞춰져 있다. 5월3일의 정상회담에선 미일이 ‘공통의 가치관’을 갖는 동맹국임을 확인한다.공통의 가치관이란 미국이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자유주의,인권존중,시장경제 등 3대 이념이다. 이런 공감대에서 지구 환경보존과 군비축소,과학기술 발전 등 인류 공통의과제에 대한 정부 및 비정부기구(NGO)차원의 교류촉진을 표명한다.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최대 현안은 안보와 경제다. 안보에 있어서 오부치 총리는 ‘선물’을 안고 간다.미국으로부터 조기통과 압력을 받아온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27일 중의원에 이어 5월중 참의원 통과가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새 가이드라인으로 동북아에서 미국은 일본에 파수꾼으로서의 일정한 역할을 떠맡긴 셈이다. 한반도 정세도 주요이슈다.‘페리 보고서’가 나오기 전 대북(對北)정책을최종조율하고 한미일 3국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을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저지도 미국측에 요청할 것으로 점쳐진다. 경제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본의 경기부양책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재정과 금융면에서 추가대책을 요구할 태세다. 일본은 추가경정예산에 경기대책을 반영한다는 방침이나 그 규모가 적을 경우 미국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오부치 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0.5% 달성과 산업구조개혁,규제완화 등도 클린턴 대통령에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잇따른 반덤핑제소로 빚어진 양국의 ‘철의 전쟁’을 두 정상이 어떻게 풀 지도 관심사다. 황성기기자 marry01@
  • 美-日 방위지침 관련법안 가결 의미

    26일 일본 중의원 특위서 미일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가결됨으로써 법안 제출 이후 1년여를 끌었던 가이드라인 논란은 일단락됐다. 자민 자유 연립여당 의석만으로는 참의원 통과가 어려웠으나 제2야당 공명당이 가세해 수적 우세를 확보,5월안 중·참 양원 통과가 확실시된다. 가이드라인은 일본 주변국에서 발생하는 비상사태 때 미국과의 협력을 담은 일종의 군사지침이다.중국과 한국 등도 일본의 군사 대국화와 연관시켜 일본이 내리는 주변사태의 정의나 미군 지원활동에 자위대가 얼마나 깊숙이 가담할 지 등을 예의주시해왔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주변사태를 ‘방치하면 일본 직접 무력공격으로 이어지는 사태’로 규정했다.일본 열도 유사시에 버금가는 ‘준유사’의 개념으로끌어올려 미군에 협력하는 주변국 비상사태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주변사태가 발생하면 자위대는 미군을 돕기 위해 탄약수송 등 후방지역 지원 및 미군의 수색구조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후방지원 지역에서 정당한 방위를 위해 자위대원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됨은 물론이다.이러한 대미 협력의 기본계획은 일본 국회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나 긴급할 때는 사후승인도 가능하게 했다.한편 자민 자유 공명 3당협의의 막바지 초점이 됐던 자위대의 선박검사 조항은 삭제됐다. 미국으로부터 ‘조기통과’ 압력을 받아온일본 집권 자민당과 정부는 29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의 미국 방문길에 큰 선물을 안겨준 셈이 됐다. 황성기기자 marry01@
  • [정직한 역사 되찾기](33)재일 친일파 거두 박춘금

    일제강점기 친일파는 조선내는 물론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만주사변 이듬해인 1932년 수립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나 일본 본토도 그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이들은 대개 군부나 행정기관 등 일제의 권력기관에서 일제통치의 수족으로 활동하였다.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사를 나와 고급장교로 활동한 친일 군인들이 이에 속하며 또 일본이나 만주국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고급엘리트 관료로 활동한 자들을 들 수 있다.한 단계 낮은 직급에서는 밀정이나 행동대원 등 앞잡이로 활동한 자들을 거론할수 있겠다. 일본 본토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친일파로 박춘금(朴春琴·1891∼1973)을 들수 있다.그는 조선인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두 번씩이나 대의사(代議士·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그의 친일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극력 친일파 가운데 일제말기 일제가 임명한 귀족원 의원을 제외하면 일제통치 전 기간을 통해 일본 국회에 진출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박춘금은 여러 형태의 친일파 가운데서상당히 드문 유형에 속한다.친일파 가운데는 지식을 팔아 일제에 아부한 집단이 있는가하면,경제적 기반을 일제통치에 제공한 대가로 기득권을 보전하고 일제와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부류도 있다.그러나 박춘금은 그도저도 없는 자였다.그는 오직 몸뚱이 하나로친일대열에서 성공한 자였다.그는 수하에 폭력조직을 거느린 소위 ‘정치깡패’ 집단의 우두머리였다.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하수인으로 폭력집단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식민지시절에도 이같은 집단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주먹으로 친일배의 정상에 오른 그의인생역정을 더듬어 보자. 박춘금은 1891년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도 밀양이다.부 박금득(朴今得)과 모 박차연(朴且連)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청년시절 그는 일본인 술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본말을 배운 것을 밑천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판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일본으로건너간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자세하지가 않다.다만 그가 한 연설에서 토로한 말에 따르면,일본에 도착할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원 49전뿐이었으며 당시 일본에는 관비유학생 50명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했다. 1920년경 그가 이기동(李起東) 등과 함께 도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을 모아 ‘상구회(相救會)’라는 단체를 조직한 사실은 확인된다.이기동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 활동한 대표적인 재일 친일파다.상구회는 1921년말 ‘상애회(相愛會)’라는 사회사업단체로 개편되는데 23년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에 지부를 조직,조직을 확대하였다.그럴듯한 이름의 간판을 내건 이 ‘상애회’가 바로 박춘금 일당의 일본내 친일활동의 모태가 된다. 막노동판의 주먹패 박춘금이 일제로부터 인정을 받아 재일 조선인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인근 지역을 강타한 ‘관동(關東)대지진’이었다.수 십만 명의 인명피해는 물론 재산피해도 엄청났던 이 천재(天災)를 맞아 일제는 동요한 민심을 수습하고 조선인을탄압할 목적으로 당국의 개입하에 유언비어를 유포하였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거나 방화를 일삼는다는 것이 그것이다(여기에는 미즈노(水野鍊太郞) 당시 내무상의 조선인에 대한 개인감정이 개입됐다는 지적도 있다.미즈노는 1919년 9월 사이토(齋藤實)총독을 따라 정무총감으로 조선에 부임하기 위해 서울역에 첫 발을 디뎠다가 강우규(姜宇奎)의사의폭탄세례를 받은 인물). 이에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관헌과 함께 조선인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와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최소 6,000명이 이때 희생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로 이때 박춘금은 상애회 회원 300여명을 동원,‘노동봉사대’를 조직하여 조선인 희생자 시체처리와 복구작업을 자청하였다.이 무렵 박춘금 일당은이미 일제당국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상호 자연스레 교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일을 계기로 박춘금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상애회 본부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입지를 넓혀갔다.28년 박춘금은 상애회를 재단법인으로 만들고는 이사장에 총독부 경무총감 출신의 마루야마(丸山鶴吉)를 영입했다.회장에는 이기동을 앉히고 자신은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실권을 행사하였다.이 무렵 상애회는 일본내 주요도시에 지방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원수도 2만명을 헤아렸다.이듬해 29년 상애회관을 지어 사무실도 독립하였고 마루야마 취임 1주년때는 사이토를 기념식 행사장에 초청하는 등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세력가로 부상한 그는 상애회 조직을 바탕으로 정계진출을 추진하였다.32년 2월 실시된 제18회 총선때 그는 도쿄 5구(區)에 출마,처음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다.놀라운 것은 조선인 유권자가 1,236명뿐인 이곳에서 6,966표를 얻었다는 점이다.그의 열렬한 친일성이 일본인 유권자들을 설득시킨 점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일본정계 실력자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직후인 2월 23일자로 그가 사이토 전 조선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불초 이번에 중의원 의원에 당선의 영관(榮冠)을 얻게 된 것은 모름지기 귀대(貴台,손위사람의 높임말)의 두터운 정과 성원을 입은 것이라 여기며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한데서 이같은 점을 엿볼 수 있다.이후 그는 한 차례 낙선했다가 40년 제20회 총선에서 재선하였으나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이후 그는 활동무대를 조선으로 옮겨 친일대열의 선봉장을자처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그의 친일활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학도병 징집이 시작되자 그는 매일신보 주최 학병격려대연설회에 참석하여 “고이소(小磯)총독이 (조선)군사령관 시절 군사령부를 방문,내선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도인에 대한 병역의무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밝히고는 “(학도병)4천이나 5천이 죽어 2천5백만 민중이 잘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고 외쳤다(매일신보 1943.11.19). 당시 일제가 학도병을 전선으로 내몬 것은 그 이면에는 조선의 미래의 지식분자를 제거하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었다.그가 이같은 일제의 의도를 대변한 것인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에게는 그런 혐의를 둘만한 사건이 하나 있다. 8·15 해방을 불과 50일 앞둔 1945년 6월 25일.그는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청사)에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친일파들을 동원,대의당(大義黨)을 결성하고 그 자신이 당수에 취임하였다.당시 전세는 이미 기울어 일본은 패퇴를거듭하였고 미군의 일본 본토공격이 임박한 시기였다.대의당은 바로 이 때‘최후결전’의 자세로 결성된 것이다. 대의당은 ‘강령’에서 “모든 비(非)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해서는 단연이를 분쇄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비결전적 사상’이란 ‘반전·반일’의 총칭이다.해방후 친일파들의 죄상을 조사,폭로한 ‘민족정기의 심판’에따르면 대의당은 항일·반전 조선민중 30만명을 학살하려 했던 ‘살인단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당시 총독부 경무국이 세운 ‘요시찰인에 대한조치계획’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해방후 그는 살길을 찾기 위해 수하를 시켜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돈봉투를보내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밀항하였다.이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의 체포,조사를 피할 수 있었다.특위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 그를 송환하려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모두 3번 결혼했는데 첫째,둘째 부인은일본여자였고 66년 75세때 세번째로 결혼한 여자는 당시 60세의 한국여자(82년 사망)였다.두번째 일본인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장남 박춘남(朴春男·89년 일본에서 사망)은일본 릿교(立敎)대학 3학년 재학중 자진하여 학도병에 출진했었다. 일제당시 일본에서 박춘금과 교류한 적이 있다는 한 일본군 장교출신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그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은 마약중독으로 거의 폐인이돼버렸다고 한다.73년 3월 31일 박춘금은 일본 게이오대학 병원에서 사망,현지에 묻혔다.친일 반민족자 박춘금의 일생은 그제서야 막을 내렸다.죽어서도 그는 고국보다 일본을 택한 것인가,아니면 죽어서도 고국으로 올 수가 없었던 탓일까. 정운현기자 jwh59@
  • 日 강성 지방지도자 시대 예고

    일본 열도에 강성 지도자들의 부상과 함께 우경화 바람이 불고 있다. 11일 치뤄진 일본지방선거에서 카리스마와 ‘강한 일본’을 내세운 후보들이 당선돼 향후 일본 정계의 보수화와 강성 지방지도자 시대를 예고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66)씨의 도쿄도(東京都)지사 당선은 이같은경향을 대표한다.극우성향의 보수파 논객인 그는 정책논쟁대신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선거민들을 사로잡았다. 당장 도쿄 서쪽의 요코타(橫田) 미군기지를 반환받아 민간용 비행장을 건설하겠다는 그의 공약은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전망이다.한·일 외교당국간에 무르익고 있는 ‘재일 한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논의에도 비상이 걸린것은 물론이다. 미국 국채의 매각,아시아지역의 엔화 블럭형성,미군기지 반환,헌법 개정을통한 자위권 확보 등 그의 주장들이 앞으로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그의 당선은 일본국민들사이에서 극우적인 논리와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일본인들의 정서가 이런 지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중앙정계의 보수화와 우경화에 요인이 될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경제침체와 사상 최악의 실업률로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파벌싸움으로 지리멸렬한 집권당에 염증을 내고 있는 일본국민들이 기존 정책권에 불신을 표시한 것으로도 해석된다.이번 선거를 계기로 집권 자민당이 차기 중의원선거를 앞두고 체제 정비를 앞당기는 될 것이란 진단도 이 때문이다. 도쿄도(東京都)를 비롯,12개 지방자치단체장 전원이 무소속 인사였다.이점은 주요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와의 갈등 확대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日침투 괴선박은 北공작선”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 해역을 침범한 괴선박은 선체의 특징 등을 근거로 북한 공작선으로 확인됐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 21일 괴선박을 최초로 발견,이틀간 선박의 무선교신을 해독한 뒤 나포키로 결정했다”고 전하고 24일 오후 괴선박 1척이 북한 나진(羅津)항으로 입항한 사실이 미군 정보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괴선박을 인도받기 위해 베이징(北京) 주재 대사관과 뉴욕 유엔대표부를 통해 북한측에 접촉을 요청했으나 북측은 25일 밤까지 응답이 없었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방위청장관도 이날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괴선박이 고도의 통신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간첩행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산케이는 또 북한 공작선이 일본해를 침범한 목적에 대해 배 위에 덮개를씌운 화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입수한 군수 기자재를 몰래 북한으로 운반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관측했다.한편 24일 오전 북한의미그 21 전투기와 일본 자위대의 F15기가동해상에서 공중전을 벌이기 직전상황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괴선박에 경고사격을 하고 있을 때 북한은 미그 21 전투기 2대를 출격시켰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이를 레이더로 포착,북한 미그기가 일본의 공중 방위경계선을 표시하는 방공식별권에 접근하고 있어 F15기 2대를 긴급 발진시켰으나 곧 미그기가 모습을 감춰 F15기도 귀환했다고 산케이는 전했다. marry01@
  • “日, 금창리 核사찰 참여 희망”오부치총리 밝혀

    ┑도쿄 黃性淇 특파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18일 일본도미국이 실시하는 북한핵사찰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오부치 총리는 이날 중의원 방위지침 특별위원회에서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금창리 지하핵의혹시설의 사찰과 관련,“일본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면일본 국민에게 북한 경수로 건설 지원에 대한 협력을 부탁하는 것이 손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외국의 사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용하고 있는 대표적 나라는 일본과 독일이다.뉴질랜드와 이탈리아,러시아 등 적지않은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사표(死票) 양산 등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전문화되는 사회 추세에 맞춰 각계의 전문가그룹을 국회로 진출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1인 2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비례대표제로 선출되는의원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독일의 경우 연방하원 총 656석 중 50%를,일본은 총 500석의 중의원 중 40%인 200석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양국은 또 ‘구속식 정당명부’를 채택하고 있다.유권자가 후보자 개인에게 투표하여 직접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정당이 사전에 우선순위를 정한 후보를 결정하는 식이다.군소정당 난립을 막기 위한 ‘봉쇄규정’을 둔점도 마찬가지다.지역구에서 3석 이상,총 유효득표의 5% 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동시에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입후보가 가능한 ‘중복입후보제’를도입했다. 독일식과 일본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석배분방식이다.독일식은 비례대표병용식(竝用式)을,일본은 병립식(竝立式)을 채택하고 있다.병용식은 정당별득표율에 따라 총 의석수를 나눈 뒤 지역구 당선자를 제외한 의석수를 비례대표로 충원한다.병립식은 미리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을 정한 뒤 권역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하지만 양국은 비례대표 의원 배분의 상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吳一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