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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정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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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파견 IO 철수 명문화… 과학정보 전담 3차장 승격

    기관 파견 IO 철수 명문화… 과학정보 전담 3차장 승격

    국내 정치 관여 직원 처벌 입법 마무리명칭 변경도 해외·대북 정보 집중 의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추진하는 국정원 개혁은 국내 정치 개입 금지 원칙을 입법을 통해 마무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에 따라 1961년 중앙정보부로 출발해 국가안전기획부, 국정원으로 바뀌었던 명칭도 21년 만에 국내 정보와 거리를 두는 의미의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뀔 예정이다. 박 원장은 30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협의회에서 “국정원 개혁의 골자는 국내 정치 개입 근절과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국회에 의한 민주적 통제 강화”라고 밝혔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에서 관련 법안에 ▲직무 범위상 국내 정보 및 대공 수사권 삭제 ▲국회 정보위원회·감사원 외부 통제 강화 ▲감찰실장 직위 외부 개방 및 집행통제심의위 운용 ▲직원의 정치 관여 시 형사처벌 강화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안은 정보위 여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발의하기로 했다. 국정원은 그동안 안보 정책 수립을 뒷받침하는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해 왔으나 국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직무 범위에서 국내 보안정보를 삭제하고 대공 수사권 이관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박 원장의 구상은 전임인 서훈 원장 시기 국내 각 기관에서의 국정원 정보 담당관(IO) 철수 등 자체적으로 이행한 개혁을 입법으로 확정 짓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국정원 조직개편도 예상된다. 박 원장은 지난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북과 해외 정보 수집 기능을 1차장이 모두 맡고 2차장이 방첩을 맡는 구상을 설명했다. 그동안은 1차장이 해외, 2차장이 대북과 방첩을 총괄했다. 또 박 원장은 과학정보본부를 3차장으로 승격·개편할 계획도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박정희 정권 전복 모의’ 고(故) 원충연 대령, 징역 15년 확정

    ‘박정희 정권 전복 모의’ 고(故) 원충연 대령, 징역 15년 확정

    민주국가 건설을 목표로 박정희 정권 전복을 모의해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던 고(故) 원충연 육군 대령이 재심을 통해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원 전 대령의 아들이 낸 재심 사건 상고심에서 원 대령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원 대령은 1965년 2월 박 전 대통령이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기로 한 ‘5·16 쿠데타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며 다른 군인들과 반란을 모의했다. 그해 5월 16일 대통령과 중앙정보부장, 국방장관 등을 체포하고 새 정부를 수립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모의는 시행 전 발각됐고, 원 대령은 군에 체포돼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1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지만, 모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04년 사망했다. 원 대령 사망 후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의 유죄 판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원 대령 등이 꾸민 계획은 국민의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쿠데타 모의가 맞다고 판단했다. 다만, 계획이 실제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고 수사 당시 원 대령에게 가해진 가혹한 고문 등을 감안해 기존의 ‘사형’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했다.2심은 1심 판단을 대부분 유지하면서도, 반란음모죄·반국가단체구성죄의 법리 적용이 일부 잘못됐다고 보고 형량을 징역 15년으로 줄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라며 재심 사건을 마무리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43년 만에… ‘재일교포 간첩 사건’ 피해자 무죄

    43년 만에… ‘재일교포 간첩 사건’ 피해자 무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의해 조작된 ‘재일교포 사업가 간첩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법원은 이들의 억울함을 43년 만에 무죄로 증명해 줬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이 사건 피해자 11명 모두 누명을 벗게 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원익선)는 최근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고 김기오·고재원·고원용·김문규씨 등 4명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기오씨 등은 영장 없이 강제 연행돼 불법 구금된 상태로 고문·가혹행위를 당해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들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기오씨 등 10명은 1977년 ‘북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재일교포 사업가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고 강우규씨의 공범으로 지목돼 불법 감금과 모진 고문을 받았다. 강씨는 계속된 구타와 고문 등에 못 이겨 일본에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위해 잠입했다고 인정했다. 김기오씨 등도 강씨에게 포섭돼 간첩 활동에 대한 활동비 등을 제공받았다고 진술했다. 재판에서 강씨 등은 “고문에 못 이겨 혐의를 인정했다”며 진술을 번복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은 주범으로 몰린 강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기오씨는 징역 12년, 고재원씨는 징역 7년, 고원용·김문규씨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강씨는 11년 동안 복역하다가 19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2007년 사망했다. 김문규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받다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의 억울한 사연은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로 재조명됐다. 이후 재심이 열리면서 강씨를 비롯한 6명은 2016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고 장봉일씨도 2018년 서울고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그대로 확정됐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소금 솔솔 수원… 양념 풍덩 포천… 갈비 열전 경기

    소금 솔솔 수원… 양념 풍덩 포천… 갈비 열전 경기

    수도권 주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 지역 먹거리는 무엇일까. 경기도가 최근 홈페이지에서 조사한 결과 참여자 1955명 가운데 22.8%인 445명이 ‘수원왕갈비’를 꼽았다. ‘포천 이동갈비’가 314명(16.1%)으로 뒤를 이었다. 평택 간장게장(12.7%)과 이천 쌀밥정식(10.2%) 등도 이름을 올렸다. 역시 소갈비는 전국 어디서나 대접받는다. 그중에서도 수원왕갈비와 포천이동갈비는 경기 지역 소갈비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70여㎞나 떨어진 두 지역에서 갈비가 유명해진 이유가 궁금해진다.수원갈비의 역사는 조선 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조는 수원 화성을 축조하고 둔전(군량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을 꾸려가기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 유인책으로 신도시에 이주하는 백성들에게 송아지 한 마리씩을 나눠 주고 3년 뒤에 갚도록 했다. 농업 중심 사회였던 조선은 농사에 없어선 안 될 소의 도축을 엄격히 금지했지만 화성으로 이주하는 주민에게는 허용했다. 이 같은 정책이 시행되면서 점차 늘어나는 소를 팔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생겨났다. 수원은 예부터 한양으로 들어가는 물산이 모두 모이는 곳이어서, 우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든 소 장수로 성시를 이뤘다. 수원 우시장은 1940년대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로 꼽혔으며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9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우시장의 번성은 곧 소고기 음식점의 번성으로 이어졌다. 수원갈비는 1950년대 초 당시 장택상 수도경찰청장이 사흘이 멀다 하고 시흥에서 말을 타고 달려와 포식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자유당 시절에는 신익희 선생이, 공화당 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았다. 큰 갈빗대와 소금으로 양념해 숯불에 굽는 수원왕갈비의 원조는 1940년대 팔달구 영동시장 싸전거리에 있던 화춘옥이다.처음에는 소갈비를 넣은 해장국을 팔았으나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궁리한 끝에 1956년 소갈비구이를 선보였다. 화춘옥은 곧바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박 전 대통령이 화춘옥 갈비를 맛본 뒤 즐겨 찾게 되면서 대통령이 먹는 갈비로 더욱 유명해졌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관계자가 하루 전에 미리 와서 박 전 대통령에게 나갈 갈비를 점검하고 냉장고에 넣는 것을 확인한 후 봉인까지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수원에서 성업 중인 갈빗집 가운데 삼부자갈비, 가보정, 본수원갈비 등이 빅 3로 꼽힌다. 이 중 삼부자갈비가 수원 양념갈비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9년 폐업한 화춘옥의 마지막 주인인 고 김정애 선생이 원천동에 1984년 세운 갈빗집이다. 이후 수원시 곳곳에 수원왕갈비라는 이름을 내건 많은 식당이 생겨났으며 수원시는 이를 계기로 갈비를 지방의 고유 향토 음식으로 지정하고 매년 열리는 음식문화축제 등을 통해 수원갈비를 알리고 있다. 수원갈비는 전통적으로 간장이 아닌 소금을 기본으로 한다. 여러 갈빗집이 생기면서 갈비의 크기는 작아지고 양념도 간장 양념법이 일반화됐다. 그사이 갈비는 외식의 대표메뉴로 자리잡았지만 일부 갈빗집에서 취급하는 큼지막한 생갈비가 수원갈비의 원형에 가깝다. 최근에는 대부분 갈빗집이 원가와 물량 부족으로 한우 대신 수입 소고기를 사용하지만, 독특한 맛을 내는 비법만큼은 변함이 없다. 수원갈비는 대체로 갈비 1㎏에 배즙 4큰술, 다진파·양파즙·물엿·청주·소금·설탕 2큰술, 참기름 1과 2분의1 큰술, 다진 마늘·깨소금 1큰술, 버섯·후춧가루 약간씩이 들어간 양념장을 버무려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의 대형 갈빗집들은 갈비와 함께 양념게장 등 10여가지의 밑반찬을 내놔 푸짐한 한 상을 즐길 수 있다. 수원왕갈비 덕분에 수원왕갈비통닭도 뜨고 있다. 갈비소스를 통닭에 버무린 수원왕갈비통닭은 영화 ‘극한직업’에 소개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배우 류승룡의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대사는 수원왕갈비통닭의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수원 통닭거리는 왕갈비통닭을 맛보려는 타 지역 주민들이 몰려들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수원갈비가 사랑을 받는 데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 성곽 등 관광지도 거들었다. 화성행궁과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화성박물관, 행궁동 카페거리 등 곳곳에 들어선 관광지와 열기구 플라잉수원, 화성어차 등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즐긴 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수원갈비를 맛보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필수코스다.포천 하면 떠오르는 게 이동갈비다. 포천 이동갈비촌이 형성된 이동면 일대는 군부대가 많은 곳이다. 또 주변에 산정호수, 백운계곡, 국망봉 등 볼거리도 많다. 이 때문에 주말에는 관광객과 입대한 아들이나 친구, 연인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에게 이동갈비는 없어서는 안 될 먹거리다. 이동면에서 갈빗집을 처음 시작한 곳은 ‘김미자할머니집’이다. 1960년대 후반 장암리에 식당을 개업한 김미자 할머니는 갈비와 국밥 등을 팔았다. 갈비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은 장병들에게 많이 먹으라고 5000원에 10대를 주면서 후한 인심을 베풀었다고 한다. 면회객과 군인 사이에서 갈비가 푸짐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식당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유명세를 타고 30년 전부터 갈비구이 식당이 하나둘 생겨났고 최근에는 장암리에만 수십곳이 성업 중이다.이동갈비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푸짐하고 값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칼집을 넣어 넓게 편 갈빗살과 갈비를 이쑤시개에 꽂아 만든 이동갈비 대여섯 대가 1인분이다. 간장과 물엿 등을 기본으로 하는 달짝지근한 양념은 식당마다 고유의 비법으로 고기를 연하게 만들고 풍미를 더해 준다.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는 뒷맛을 잡아 주고 찌개와 밥 외에 동치미를 내어주는 것 또한 매력이다. 수원갈비와 이동갈비의 차이점은 양념이다. 수원갈비는 소금 양념을, 이동갈비는 간장 양념을 쓴다. 이동갈비에 물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동갈빗집에선 일반 냉면 대신 동치미국수나 동치미냉면이 나오는 곳이 많다. 손님들은 “동치미냉면으로 마무리해야 제대로 된 이동갈비를 먹은 것”이라고 말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발가벗고 춤춘 영상 보내라”…‘남학생 성착취‘ 중정부방 운영자 추가 범행 확인

    “발가벗고 춤춘 영상 보내라”…‘남학생 성착취‘ 중정부방 운영자 추가 범행 확인

    인천지법, 29일 첫 공판서 변호사 “별도사건 2개 더 있다” 성착취 영상물을 구하려던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외려 성착취 영상물을 찍게 한 이른바 ‘중앙정보부방’ 운영자의 추가 범행이 2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지법 형사13부(부장 고은설) 심리로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등학교 2학년생 A(17)군의 변호인은 “별도의 사건 2개가 인천지검에 또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추가 사건을 기소하면 기존 사건과 병합해 (재판을 진행해) 줬으면 좋겠다”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다만, 변호인은 A군이 혐의 인정 여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흰색 마스크를 쓰고 법정에 출석한 A군은 생년월일 등을 묻는 재판장의 인정신문에 비교적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난 12일 재판에 넘겨진 그는 첫 재판을 하루 앞둔 전날 처음으로 반성문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A군은 올해 3월 15일∼27일 10대 남학생 등 피해자 5명을 협박해 동영상과 사진 등 성 착취물을 만들게 한 뒤 자신이 운영한 텔레그램 대화방인 ‘중앙정보부방’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게임 채팅창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인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준다’고 광고하고서 제작을 의뢰한 피해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만들어 해당 대화방에 올리도록 했다. 빨개벗고 춤을 강요하고, 컴퓨터에 간장을 붓게 하는 등 엽기적 행각을 10대 청소년들에게 강요했다. A군은 피해자들이 지인 사진 합성 사진을 의뢰하며 밝힌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을 빌미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지인들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 A군에게 끌려다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중앙정보부방에 마치 자신이 ‘자경단’(자율경찰단)인 것처럼 ‘우리는 사이버 성범죄를 처벌한다’는 공지 글을 올려 두기도 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40년 만에 김재규 유족 재심 신청… “10·26은 반역 아닌 혁명”

    40년 만에 김재규 유족 재심 신청… “10·26은 반역 아닌 혁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10·26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유족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사법부 선고 및 형 집행이 이뤄진 지 40년 만이다. 김 전 부장의 유족과 재심 변호인단은 26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심 청구 의사를 밝혔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살해한 혐의(내란죄)로 기소된 지 6개월 만인 이듬해 5월 사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국가원수 피살 사건이었다. 김 전 부장은 당시 법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리한 것이었다. 아무런 야심도, 어떠한 욕심도 없었다”고 말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변호인단은 “최근 언론 보도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통해 보안사령부가 쪽지 재판으로 재판에 개입하고, 공판조서에 피고인들의 발언 내용 등이 그대로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며 다시 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입장문에서 “재심을 통해 구하고자 하는 바는 판결이 아닌 역사”라며 “10·26과 김재규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논의의 수준이 진화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은 “그동안 재심을 청구해 보라는 권유는 많았지만 정식으로 재심을 청구한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재심이 받아들여질 경우 김 전 부장에게 내란죄를 확정해 사형을 선고한 재판에 전두환 신군부가 개입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호인단은 “유신의 취지를 사법적 의미에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면서 “김 전 부장에게 적용된 내란목적 살인 혐의에서 ‘내란목적’만이라도 무죄를 밝혀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범죄 사실에 대해 8대6으로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변호인들조차 대법원 판결문을 열람하지 못했다”며 “은폐된 사실을 다시 다투겠다”고 덧붙였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12·12 직후 전두환 만난 美 대사 “全, 군부 장악에 미 도움 원해”

    12·12 직후 전두환 만난 美 대사 “全, 군부 장악에 미 도움 원해”

    “12·12는 ‘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쿠데타”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 직후 주한미국대사와 면담에서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불안감에 미국의 도움을 원했던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미 대사는 당시 본국에 보낸 보고에서 전두환과 신군부를 1908년 터키에서 군사혁명을 일으킨 젊은 장교들을 의미하는 ‘Young Turks’(젊은 투르크)로 지칭하며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원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당시 상황은 미국 국무부가 한국 외교부에 제공한 43건의 140쪽 분량 5·18 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정부는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해 미 정부 측 기밀문서가 필요하다는 5·18 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11월 미 국무부에 5·18 관련 문서를 요청한 바 있다.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최근 관련 문서 43건이 우리 정부에 제공돼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공개됐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미 정부에 5·18 진상 규명 관련 기밀 문서 해제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가 비밀해제된 기록물은 미 국무부 문서로 주한미국대사관 생산 문서가 포함됐다. 대부분 1990년대 중반 기밀이 해제돼 부분 공개된 내용이나, 이번에는 가려진 곳 없이 전체를 볼 수 있게 됐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의 군사 쿠데타 직후인 12월 13일부터 이듬해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재판이 끝날 때까지인 1980년 12월 13일까지의 기록 일부다. 특히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체포한 12·12 군사반란 직후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미국대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면담 내용도 포함됐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 보고한 1979년 12월 14일 면담 내용에 따르면, 대사는 한국군의 분열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질 위험 등에 대해 경고했다. 그러나 전 사령관은 자신의 행동이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려는 노력이며, 개인적 야심이 없고 최규하 대통령의 자유화 정책을 개인적으로 지지한다고 해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 사령관이 12·12 사태를 사전 계획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으며, 이 사태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위험이 커진데 대해 매우 방어적으로 대응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또 “전두환은 현재 상황이 표면적으로는 안정됐지만, 군부 내 다수의 정승화 지지자가 향후 몇주 동안 상황을 바로잡으려 행동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어 “당연히 전두환과 동료들은 (반대 세력의) 군사적 반격을 저지하는 데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한다”며 “우리가 향후 몇주, 몇 달 간 매우 곤란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적었다. 전 사령관은 미국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하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가벼운 형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글라이스틴 대사는 미국의 개입을 강하게 부인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면담 전날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12·12 사태를 ‘젊은 투르크’ 장교들의 치밀한 계획에 따른 사실상의 쿠데타로 규정했다. 그는 5·18 전날인 1980년 5월 17일에는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령을 완화하고 새 정부 구성 등 정치 일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실장은 “최 대통령이 며칠 내에 현 상황에 대한 중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군부가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온건적인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라 최 대통령이 계엄령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18 당일에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면담했다. 이 사령관은 시위에 나선 학생들의 공산주의 사상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베트남과 유사한 방식으로 공산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사령관은 “최 대통령의 계엄령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병력을 뺄 경우 북한의 공격 위험이 커진다는 주장이 그를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 대통령이 압력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엄령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간 미국 기자들이 정보 공개를 요구해 한국이 받았던 자료들은 사실상 많이 지워져서 온 자료들인데, 이번에는 전문이 공개됐다”며 “미국이 전향적으로 협조한 것은 사실상 의미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재심 무죄’ 故 조영래 변호사 유족에 1억원 국가배상

    ‘재심 무죄’ 故 조영래 변호사 유족에 1억원 국가배상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재심의 무죄 판결로 고 조영래 변호사의 유족이 1억 1000여만원의 국가배상을 받게 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9부(부장 이민수)는 조 변호사의 부인 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위자료 1억 14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이 고인을 피고인으로 한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재심에서 4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내린 이후 나온 후속 판결이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해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조 변호사와 부모의 정신적 손해에 대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조 변호사의 형제자매 역시 정신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므로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1년 중앙정보부가 기획해 발표한 대표적 조작 사건 중 하나다. 당시 사법연수생이던 조 변호사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서울대생 4명과 함께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후 징역 1년 6개월 선고가 확정됐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고교2년생에게 20대 성인 까지 성착취 당해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게 한 뒤 이를 텔레그램에 올리게 한 대화방 운영자는 고교 재학생으로 확인됐다. 인천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텔레그램 대화방 ‘중앙정보부방’ 운영자인 인천 모 고교 2학년생 A(17)군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군은 지난달 중순 10대 남학생 등을 협박해 동영상과 사진 등 성 착취물을 만든 후 ‘중앙정보부방’이라는 이름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A군은 게임 채팅창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인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준다’고 광고한 뒤 제작을 의뢰한 10대 남학생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만들어 해당 대화방에 올리도록 했다. A군은 피해자들이 지인 합성 사진을 의뢰하며 밝힌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을 빌미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지인들에게 알려질까 봐 두려워 A군에게 끌려다녔다”고 진술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자경단’(자율경찰단)인 것처럼 ‘우리는 사이버 성범죄를 처벌한다’는 공지 글을 올려 두기도 했다. 경찰은 이런 공지글을 토대로 A군이 지인 사진을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려고 시도한 10대 남학생들을 혼내준다는 취지로 성 착취물을 찍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경찰은 이 대화방 참여자 수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자는 모두 6명이며 이들 중 5명은 10대, 나머지는 20대 남성”이라”고 설명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남학생 협박 성 착취물 공유한 ‘중앙정보부방’ 운영자는 고교생

    남학생 협박 성 착취물 공유한 ‘중앙정보부방’ 운영자는 고교생

    텔레그램에서 10대 남학생들의 성 착취물을 공유하는 대화방인 이른바 ‘중앙정보부방’을 운영한 고등학생이 경찰에 구속됐다. 인천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인 고등학교 2학년생 A(17)군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A군은 지난달 중순부터 10여일간 10대 남학생 등을 협박해 동영상과 사진 등 성 착취물을 만들도록 한 뒤 ‘중앙정보부방’이라는 이름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이를 유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지인들의 사진을 합성한 음란물을 만들어주겠다고 광고한 뒤 제작을 의뢰한 10대 남학생 등에게 이를 빌미로 성 착취물을 만들도록 협박하는 방식으로 범행했다. A군은 해당 대화방에서 자신을 ‘자경단’이라고 소개하며 성범죄자를 단죄하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경찰은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대화방과 관련한 의혹을 접한 뒤 실제 운영이 이뤄진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방에서는 1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나체 차림으로 종이에 반성문 형식의 자필 메모를 들고 찍은 사진이나 영상들이 공유됐다. 이들의 사진·영상과 함께 이름, 나이, 연락처, 주거지, 직장 등 신상정보도 함께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의 사진을 음란 사진에 합성하는 ‘딥페이크’를 통한 이른바 ‘지인 능욕’ 역시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지만, 이를 빌미로 나체 차림의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 공개하는 행위도 ‘정당한 응징’이 아닌 범죄에 해당한다. 경찰은 해당 대화방 참여자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한 피해자는 모두 6명으로 이 중 5명은 10대”라며 “현재는 해당 대화방이 ‘폭파’된 상태로 운영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9년 3개월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 김정렴 별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역대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96세. 고인은 재무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거친 뒤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1924년생으로 1944년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에 입사한 뒤 강제징집돼 일본 히로시마에서 광복을 맞았다. 6·25전쟁에 참전한 뒤 1952년 한국은행으로 돌아와 1차 화폐개혁에 참여했고 이후 1959년 재무부로 옮긴 뒤부터는 계속 경제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상공부 장관이던 1969년 ‘3선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후임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고인은 회고록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에서 청와대로 불려 간 자신이 “각하, 저는 경제나 좀 알지 정치는 모릅니다. 비서실장만은 적임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이 “경제야말로 국정의 기본이 아니오.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등이 따뜻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국방도 튼튼히 할 수 있지 않소”라고 답했다고 썼다. 이후 비서실장으로서 중화학공업 육성 등 산업 고도화 정책을 주도했고 산림녹화, 새마을운동, 고속도로 건설, 의료보장제도 도입 등에도 관여했다. 10·26사태 당시에는 주일대사로 근무했다. 유족으로는 희경·두경(전 은행연합회 상무이사)·승경(전 새마을금고연합회 신용공제 대표이사)·준경(전 한국개발원장)씨와 사위 김중웅(전 현대증권 회장, 현대그룹 연구원 회장)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발인은 28일. (02)3410-6923.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10대 남학생 성 착취물 공유 텔레그램 대화방도 수사

    10대 남학생 성 착취물 공유 텔레그램 대화방도 수사

    텔레그램에서 10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물이 제작돼 공유되는 대화방이 운영된 사실을 경찰이 확인하고 수사에 나섰다. 인천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 개설된 ‘중앙정보부 방’이라는 이름의 대화방은 10대 남학생들을 협박해 동영상과 사진 등 성 착취물을 만들도록 한 뒤 이를 유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인 능욕’ 의뢰 빌미로 협박해 ‘나체 반성문’ 사진·영상 공개 해당 대화방은 지인들의 사진을 합성한 음란물을 만들어주겠다고 광고한 뒤 제작을 의뢰한 10대 남학생 등에게 제작 의뢰 사실을 약점 잡아 도리어 성 착취물을 만들도록 협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화방에서는 1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나체 차림으로 종이에 반성문 형식의 자필 메모를 들고 찍은 사진이나 영상들이 공유됐다. 이들의 사진·영상과 함께 이름, 나이, 연락처, 주거지, 직장 등 신상정보가 함께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의 사진을 음란 사진에 합성하는 ‘딥페이크’를 통한 이른바 ‘지인 능욕’ 역시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지만, 이를 빌미로 나체 차림의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 공개하는 행위도 ‘정당한 응징’이 아닌 범죄에 해당한다. 경찰은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해당 대화방과 관련한 의혹을 접하고 내사를 하다가 실제 대화방이 운영된 것을 확인하고 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대화방 운영자와 참여자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피해 사례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해당 대화방이 ‘폭파’된 상태로 운영에 가담한 사람이나 피해자 숫자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남북회담 ‘김정일 대역’ 김달술씨 별세

    남북회담 ‘김정일 대역’ 김달술씨 별세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실전 대비’ 모의회담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상대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역으로 나섰던 김달술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임연구위원이 7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90세. 고인은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들어가 남북협상에 관여했다. 1972∼1978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겸 남북회담 사무국장, 1985년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 자문위원, 1992∼1996년 남북회담사무국 상임연구위원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박영순씨와 2남 1녀.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9일 오전 8시. 유족들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취중생]‘박사방’ 조주빈, 한낱 성범죄자일뿐…처벌 강화가 범죄근절 관건

    [취중생]‘박사방’ 조주빈, 한낱 성범죄자일뿐…처벌 강화가 범죄근절 관건

    지난달 24일 텔레그램 n번방 제보자 만나 텔레그램 단체방 들어가 보니 ‘일간베스트’와 비슷 가해자 노예로 삼아 박사와 똑같이 성착취한 ‘중앙정보부’ 익명 단체방엔 본질 없는 수사적 말들만 넘쳐 현실은 초라한 성범죄자일 뿐, 이들에 대한 처벌 강화 필요성착취물 제작·판매·유포가 이뤄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하면서 제보자 김재수(가명·25)씨를 만난 건 지난달 24일입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습니다. 30대 중반쯤으로 생각했는데, 앳된 대학생의 모습이어서 다소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도 지난해 n번방과 관련해 성착취물 동영상을 유포하는데 기여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경찰 수사를 받았고 재판을 받기 전, 지난날 자신의 범죄 행위를 반성하며 언론에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제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를 만나 작성한 기사가 25일 출고된 <“조주빈? 갓갓? 공짜 영상 뿌린 ‘똥집튀김’이 실은 더 위험”> 기사입니다. 텔레그램은 수년 전부터 가입하긴 했지만, 사용을 잘 하지 않았습니다. 카카오톡에 익숙해섭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을 통해 성착취물이 제작·판매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실체를 쉽게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은 누가 만들었으며, 그 방에는 어떻게 들어가는 것이며, 온라인 커뮤니티도 아닌 메신저에 불과한 텔레그램에 그렇게 많은 단체방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지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이러한 성 착취 행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독자분들도 저와 비슷한 느낌일 거라 생각합니다.제보자 김씨에게 단체방 링크를 받아 들어갔을 때 받았던 인상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일간베스트’에 처음 입장했을 때 느꼈던 인간 내면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제가 들어갔던 방은 ‘불타는 다락방’과 ‘최고인민법원’ 등 여러 곳입니다.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힌 이후 실제 성착취물이 오가는 단체방은 대부분 ‘폭파’됐다고 합니다. 이러한 단체방은 과거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 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방들에서 성착취 영상이 오가진 않았습니다. 외려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과거 박사방이 활개치던 시절을 회상하며 “다들 잘 살아있느냐”는 안부를 묻기도 하고, n번방, 박사방 활동했던 이들을 욕하거나 그때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텔레그램 단체방, ‘일간베스트’와 성격 유사 이들의 큰 특징은 일베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어미를 ‘노’로 끝내고, ‘운지’(자살)를 비롯한 다양한 일베 용어를 쏟아냅니다. 또 고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희화한 사진과 엽기 사진, 각종 비속어를 쏟아냅니다. 하루에만 한 대화방에서 수천 건의 대화가 오고 가지만, 대부분 큰 의미 없는 대화이며 여성 비하도 상당합니다. 처음 이 단체방에 들어온 이틀여 동안 대화 내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였습니다. ‘중앙정보부’라는 단체방은 특히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범죄는 박사방 조주빈이 했던 행태와 비슷합니다. 착취 대상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지인능욕’(지인의 얼굴과 여성 나체 사진을 합성해 배포)을 원하거나 미성년자 성착취 동영상을 요구하는 남성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이러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 협박한 뒤 그들을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미성년자였는데, 나체인 상태에서 춤을 추게 한다거나, 성기가 적나라하게 보이도록 사진을 찍게 한다거나, 컴퓨터 메인보드를 소독한다며 간장을 붓게 하는 등 엽기적인 행태를 강요했습니다.이 단체방의 운영자 김재규(닉네임)가 쏟아내는 말들도 조주빈과 비슷합니다. “성범죄자를 예술에 이용한다는 게 얼마나 멋있느냐”, “협박할 거리 하나 잡고 천천히 죽여가는 게 예술이지”, “나는 금전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정의를 위해서 그랬다고 당당히 밝힐 수 있다”, “박사는 죄 없는 XX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나는 예술을 하는 거예요. 박사와 같은 평범한 인격 살인이 아니라”라는 허세 가득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이 단체방에 대한 언론보도가 시작되자 결국 이 방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경찰도 성착취물 영상이 제작되는 곳이 있다면,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따지지 않고 모두 조사하겠다고 발표하자 김재규가 성급히 단체방을 닫은 듯합니다.조주빈은 경찰에 붙잡히고 나서도 허세 가득한 말들로 주변을 흐렸습니다. 그가 구치소에서 쓴 ‘악마는 갑니다’로 시작되는 글은 온갖 수사적 표현으로 가득합니다. 본질이 없고 초라할 때 이를 감추고자 늘어놓은 거품들입니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 마냥 잔뜩 몸을 부풀렸지만, 거품이 빠져나간 현실은 25세 무직 남성, 그리고 성범죄자였습니다. 익명의 세계에서 자신의 두 번째 인격을 지닌다는 건 매력적인 일입니다. 현실이 초라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익명의 단체방에서 자신을 과대포장하며 더 약한 사람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텔레그램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다고 이러한 범죄를 근절하기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n번방 성착취 영상을 판매하는 이들은 텔레그램을 떠나 미국 메신저 ‘디스코드’로 망명했듯 디스코드를 압박하면 또 언제든 새로운 익명의 지대를 개척할 것입니다. 텔레그램 범죄 근절하려면 처벌 강화가 우선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익명에 기댄 채 범죄를 저질렀다간 ‘인생이 끝날 수도 있구나’라는 인식이 생겨나야 합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인격 살인과 마찬가지입니다. 텔레그램에서 ‘네임드’(유명인)라고 불렸던, n번방과 박사방, 그리고 그 아류 방들에서 활동했던 이들이 죄에 걸맞은 처벌을 받을 때 이러한 범죄가 근절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2일 경찰청 관계자들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내용을 소개하며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익명에 기댄다고 해서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환상은 사라졌으면 합니다. “박사방하고 n번방하고 수사 되느냐고 물어보는데, 수사 다 됩니다. 그러니까 조주빈도 검거했잖아요. 문화상품권도 핀 번호만 전달하면 마치 안 잡힐 것처럼 자기들끼리 거래하는데, 우리가 꼭 핀 번호만 가지고 추적하는 게 아니에요. 수사기법이라 구체적 언급은 못하지만, 그들이 생각지 못한 연결고리는 분명히 나옵니다. 익명의 세계라고 수사가 안 될 거로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회적 거리’ 두며 도심 속 힐링하기

    ‘사회적 거리’ 두며 도심 속 힐링하기

    서울관광재단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서울 강북구에서 자연과 더불어 휴식할 수 있는 힐링 명소들을 선정, 발표했다. 독립을 염원하는 함성으로 가득 찼던 1919년의 봄을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명소도 포함됐다. 강북구는 3·1 만세운동 발상지인 봉황각과 국립4.19민주묘지 등 근현대사 관련 유적지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강북구는 이 명소들을 트레킹 코스로 엮어 ‘너랑나랑우리랑’ 역사 탐방길을 조성했다. 들머리는 우이동 만남의광장이다. 봉황각을 거쳐 북한산둘레길 1구간 ‘소나무 숲길’의 솔밭근린공원, 북한산둘레길 2구간 ‘순례길’의 국립4·19민주묘지 전망대를 지나 근현대사기념관까지 걷는다. 거리는 약 4㎞.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이 코스의 원픽을 꼽으라면 단연 봉황각(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호)이다. 3·1 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의암 손병희(1861~1922)가 항일독립운동을 이끌 천도교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1912년에 건립한 교육시설이다. 봉황각은 역사적 가치 못지않게 풍광도 수려하다. 봉황각 뒤로 백운봉, 인수봉, 망경봉, 노적봉, 영봉 등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오전 10시~11시 사이에 방문하면 북한산 능선이 가장 잘 보인다.봉황각 아래는 북한산둘레길 1구간 ‘소나무 숲길’이다. 평탄한 길이어서 아이들과 산책하듯 함께 걸을 수 있다. 솔밭근린공원에는 늙은 소나무 971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산다. 솔숲의 공기가 청량하다. 이어 국립4·19민주묘지, 이 일대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 근현대사기념관 등과 만날 수 있다. ‘선운각’은 인증샷 명소다. 옛 중앙정보부에서 지은 전통 한옥 건물로 드라마나 결혼 사진 촬영 명소로 입소문 났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이병헌 “자유로울 때 가장 창의적인 연기 나오죠”

    이병헌 “자유로울 때 가장 창의적인 연기 나오죠”

    “부담감을 털어내고 자유로웠을 때 가장 창의적인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에서든지 자신을 한단계 내려놓고 자기만의 스타일로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 이병헌. 그는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백두산’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데 이어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실존 인물의 감정선을 살려 몰입시키는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력에 대한 호평, 흥행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은 없을까. “후배들이 롤모델로 꼽거나 하면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생기는데, 그런 감정이 배우에게 꼭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부담감이 짓누르면 배우로서 점점 경직되기만 하거든요. 이를 악물고 연기한다고 해서 잘 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고요. 멋있게 보이려고 할 때가 아니라 뭔가 털어내고 자유로웠을 때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이병헌은 관객 400만명을 돌파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는 10.26 사태를 토대로 한 이 작품은 근현대사의 가장 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만큼 다양한 정치적인 해석이 나올 소지가 다분하다. 그는 “자칫 영화가 무언가를 왜곡시키거나 역사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 과연 대의 또는 소의를 위한 것인지, 계획적 또는 우발적인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영화가 끝나고서도 의견이 분분하기를 바랐어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 영화가 정치적으로 한쪽의 시선혹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객관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그는 “이를 위해 관련 자료를 많이 모아 사실 고증을 섬세하게 했다”면서 “정치적으로 커다란 사건이지만,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와 심적인 갈등이 초점을 맞춘 것을 차별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권력의 2인자였다가 대통령을 암살하기에 이르는 인물의 감정의 극단을 능숙하게 표현한다. 김규평이 실존 인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토대로한 만큼 부담이 될 수도 있었을 터. 그는 철저히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며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규평은 전반적으로 억눌린 감정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폭발시켜야 했어요. 객관과 주관이 혼돈스럽게 왔다가면서 혼돈의 끝으로 달려가는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이 영화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말투, 표정, 걸음걸이까지 동일하게 재현한 박통 역의 이성민을 비롯해 곽도원, 이희준 등 연기파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니까 너무 신나기도 하고 긴장도 됐어요. 함께 연기하면 제 호흡도 살아나니까 어떻게 시너지가 날까 기대감도 생기구요. 이성민 배우가 박통 분장을 하고 나왔는데, 포스 자체가 놀라웠고 리허설 때 첫 대사를 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그는 배우들끼리의 경쟁 심리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지엽적으로는 그런 욕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잘할 때 더 신나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 (경쟁심은)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을 깨기 때문에 배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작 배우에 속하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과 재미를 가장 우선시 고려한다는 이병헌. 그는 매 작품마다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실 어떤 장르의 어떤 캐릭터든 저를 통과해서 나오기 마련이죠. 다작을 함에도 자기 복제를 교묘하게 잘 빠져나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담긴 그릇마다 모양이 달라지는 물처럼 매번 형태를 바꾸는 배우가 있는가하면 색깔은 비슷한데 매 작품의 캐릭터마다 농도가 다른 배우가 있어요. 매 작품마다 깊이를 더하면서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남산 다크투어 뜨나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남산 다크투어 뜨나

    4일 현재 누적 관객 숫자 430만명을 기록 중인 영화 ‘남산의 부장들’로 남산 다크투어가 조명받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태를 영화화한 ‘남산의 부장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성이 다분한 소재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작품은 오히려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한 한국적 느와르에 가깝다는 평가다. 영화 제목은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역대 부장들을 가리키는데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시대 ‘대한민국의 2인자’로 군림했다. 남산에는 중앙정보부의 본관 외에도 별관과 사무동, 체육관, 중앙정보부장 공관 등 수많은 시설이 있었다. 박정희 시대에 거대한 남산은 바로 중앙정보부와 같은 말이었기에 ‘남산의 부장’이란 책이자 영화 제목이 나올 수 있었던 셈이다.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남산에 세워진 중앙정보부 본관은 1994년 국가안전기획부(옛 중앙정보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가 인수했다. 서울시는 본관을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재 서울연구원)으로 이용하다 서울유스호스텔로 용도를 변경했다. 중앙정보부 6별관은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사무동은 대한적십자사, 실내체육관은 남산창작센터, 5별관은 서울시청 남산청사, 중앙정보부장 공관은 문학의 집으로 각각 이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중앙정보부의 흔적들을 이어 ‘민주길’로 이름붙이고 남산 탐방코스로 조성했다.기자가 찾은 날에도 남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중앙정보부 5별관을 무심히 지나쳐 소릿길 터널로 들어섰다. 뮤지컬 연습 등에 이용되는 연습실을 갖춘 남산창작센터와 서울시청 남산청사를 잇는 소릿길 터널은 84m로 통로 끝에는 대형 철제문이 달렸었다고 한다. 서울시청으로 이용되는 5별관은 중앙정보부 건물 가운데 가장 악명높은 곳으로 지하실에서 고문이 자행됐다. 중앙정보부 당시에는 4~5평 넓이의 취조실이 10여 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지하광장으로 그 흔적만 남았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모습이 등장한다. 소릿길 터널에는 공포를 낳았던 철문을 제거하고 대신 버튼을 누르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등을 차례로 들을 수 있는 체험장치를 설치했다. 서울유스호스텔 관계자는 “‘남산’은 고문을 당하고 간첩으로 낙인찍힌다는 의미였기에 중앙정보부 이후 만들어진 국가안전기획부도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자 내곡동으로 옮겼다”며 “영화 개봉 이전부터 역사현장을 순례하는 답사단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배우 이태형,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신스틸러로 감초 역할 ‘톡톡’

    배우 이태형, 영화 ‘남산의 부장들’ 신스틸러로 감초 역할 ‘톡톡’

    지난 1월 22일 개봉해 현재까지 37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호평 속에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40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이병헌과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 등 연기파 배우가 총출동해 압도적인 기세로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 조연 배우들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와 중앙정보부에 관련된 사람들을 교란해 김규평을 난처하게 만드는 파리대사관 중앙정보부 요원 유동훈 역을 맡은 배우 이태형은 연극계에서 쌓은 탄탄한 연기력을 발휘해 신스틸러로 인정받고 있다. 극 중에서 이태형은 미국 대사관 중정용원 함대용(지현준)과 박용각(곽도원) 납치작전으로 방돔광장에서 대적하며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쳤다. 배우 이태형은 2016년 서울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준비된 배우로, 그동안 연극 ‘과부들’, ‘햄릿아비’, ‘엘렉트라 파티’ 등에 출연했다. 영화 ‘블랙머니’, ‘1987’, ‘판도라’, ‘명량’, 드라마 ‘리갈하이’, ‘골든타임’ 등에서도 조연과 단역으로 등장하며 얼굴을 알렸다. 현재는 영화 ‘경호원’, ‘정상회담:스틸레인’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드라마 ‘스토브리그’와 ‘오마이베이비’에 출연하며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드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소속사 ARK 엔터테인먼트(ARK Entertainment) 김용 본부장은 “이태형은 그동안 범죄와 스릴러, 누아르, 액션 등의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낸 실력파 배우다”라며 “평소 성격이 코믹이나 멜로, 드라마 장르와도 잘 어울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이아고와 김재규/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아고와 김재규/박록삼 논설위원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주인공은 당연히 오셀로다. 아프리카 무어인으로서 베니스의 용병이면서도 전쟁 영웅이었던 오셀로는 사랑과 질투 등 욕망에 범벅이 된 인물이다. 자신의 부하 이아고가 꾸민 계략에 사로잡혀 부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아고 역시 질투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악의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중요한 조연이며, 결국 교수형에 처해지는 또 다른 비극적 인물이다. 개봉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 400만명을 바라보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비극적 서사를 담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이 400여년 시간의 간극과 함께 유럽과 한국이라는 지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이아고를 호출한 것은 총에 맞은 대통령, 대통령을 쏜 뒤 사형당한 부하라는 관계를 감안하면 얼핏 절묘한 비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사건을 곧이곧대로 재구성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역사 해석을 둘러싸고 절묘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영화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개인적 동기로 암살했다는 뉘앙스로 묘사하면서도 곳곳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신념을 가진 인물로 암시한다. 영원할 것만 같던 유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던 1979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이었다. 처음엔 독재 상층부의 권력 다툼으로만 여겨졌고 박정희 정권을 이은 또 다른 군부정권이 등장해 때때로 간과되기는 했지만, 그 변곡점을 만들어 낸 힘은 그해 10월 있었던 ‘부마항쟁’과 같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국민의 지향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김재규가 그날 궁정동에서 ‘박통’에게 총을 쏜 것이 개인적 욕망에 눈먼 ‘이아고적 행동’이었는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의 대리자 역할’이었는지 40년이 지난 지금껏 평가는 엇갈린다. 누군가는 그를 ‘의사’로 높게 평가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대통령 시해범’쯤으로 치부한다. 부질없는 가정을 해 본다. 김재규가 아닌, 부마항쟁의 결과로 유신정권이 무너졌다면 어땠을까. 경호실장 차지철의 말처럼 탱크로 밀어붙여 200만, 300만의 희생을 치렀을까. 1980년 광주항쟁의 비극은 없었을까.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가 진행됐더라면 전두환처럼 권력을 탐하는 정치 군인은 비빌 자리가 없었을까. 최소한 2020년 서울 광화문 복판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흔들어 대며 ‘불쌍한 영애님’ 운운하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고무적인 건 15년 전 똑같은 소재를 영화로 만든 ‘그때 그사람들’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긴 한 걸까. youngtan@seoul.co.kr
  • 설연휴 1위 지킨 ‘남산의 부장들‘

    설연휴 1위 지킨 ‘남산의 부장들‘

    182만 관객 동원···2위는 ‘히트맨’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이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의 자리를 지키면서 182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26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남산의 부장들’은 지난 25일 69만 401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했다. 누적관객수는 182만 1769명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후 4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고, 하루동안 69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히트맨’은 32만 6943명의 관객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누적관객수는 76만5 176명이다. ‘미스터 주: 사라진 VIP’는 10만 1661명을 동원해 3위에 올랐고 지금까지 관객 28만 5946명이 봤다.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 40일 전 청와대와 중앙정보부, 육군 본부에 몸 담았던 이들의 관계와 심리를 면밀히 따라가는 영화다. 기자 출신 김충식 작가의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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