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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情, 야쿠자 동원 DJ암살 계획”

    |도쿄 박홍기특파원|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가 1973년 일본 야쿠자 조직을 동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다고 교도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통신은 한국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중정이 이 계획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납치 쪽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옛 중정의 직원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이같이 증언했다.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이 20여명에게 납치를 지시했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김 전 대통령은 73년 8월8일 도쿄의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피랍, 선박을 통해 서울로 압송돼 5일 만에 풀려났다. 한편 이 위원회는 이달 하순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14일 알려졌다. 이들 사건의 조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2004년 11월 출범한 위원회는 7대 사건의 조사를 마무리하고 임무를 종결하게 된다. hkpark@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대화 어제와 오늘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대화 어제와 오늘

    남북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10·3 남북정상회담’까지 수많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의 기반을 다져왔다.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남북관계 연혁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구조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던 1970년대 이전까지는 남북간에 실질적인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분단 이후 최초의 ‘7·4 남북공동성명’ 1971년 8월20일 남북간 최초의 대화인 적십자회담이 성사됐다. 이후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됐다.‘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 당국이 국토분단 이후 최초로 통일과 관련해, 합의·발표한 공동성명이다. 서울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평양의 박성철 제2부수상이 평양과 서울을 비밀리에 오가며 대화를 시작한 결과 7개 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통일 원칙으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에 합의하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과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그러나 1973년 8월에 남북대화는 다시 중단되고 말았다. ●1980년대, 남북간 다양한 대화채널 확보 1980년대 초반부터 전두환 정부는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쳤다.1981년 6월5일 남북 당국 최고책임자간의 직접 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나 1983년 9월1일 소련 전투기에 의한 KAL기 격추사건,10월9일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 등으로 한반도 평화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던 중 북한은 1984년 3월 LA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을 제의, 대화의 물꼬를 이어나갔다. 이어1980년대 남북은 상호 적대의식 속에서도 대화를 지속했고, 전 시기에 비해 대화채널을 다양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0년대‘남북기본합의서 채택’ 1990년대 남북관계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게 된다. 특히 1990년 9월부터 1992년 9월까지 여덟차례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남북은 이 합의서에서 정치와 군사·교류협력 등 3개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5개 공동위원회(화해, 군사, 경제교류협력, 사회문화교류협력, 핵 통제)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도 채택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 추진의지에 북측이 호응했지만,1994년 7월8일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됐다. ●2000년‘6·15선언’발표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남측 일행은 6월13일부터 15일까지 북한을 방문,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두 지도자는 공동선언을 통해 5개 항에 합의했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나가기로 했으며,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실현과 경제협력 및 제반 분야의 교류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산가족의 상봉과 남북장관급회담이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이제 2일부터 4일까지 열리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 안정적인 대화와 협력의 시대가 이어지게 될지 주목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인혁당 유족 이영교씨 “배상금으로 추모사업 벌일 것”

    “고교생이던 큰 아들은 ‘빨갱이’라는 놀림에 세 차례나 전학다녔고, 두 아들은 장성한 뒤에도 신원조회에 걸려 취업조차 못했습니다. 전 화병에 시달렸어요.” 32년간 긴 악몽을 꾸었던 것일까.21일 법원이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배상을 판결한 뒤 고(故) 하재완씨의 미망인 이영교(70)씨는 “돈을 얼마나 받든 남편의 목숨과는 바꿀 수 없다.”면서 “(국가의 항소 없이) 이번 판결로 종료되길 원하며 배상금으로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주축이 된 사단법인을 만들어 추모사업 등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판결 직후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날 배상판결은 올해 초 재심에서의 무죄판결에 이어 유족들에게 정신적·물질적 피해회복을 의미한다. 이씨는 “앞서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간 국정원(전 중앙정보부)조차 남편이 고문을 당했고, 인혁당사건은 조작됐다고 인정해 명예회복은 됐다.”면서 “괴로웠던 지난날을 더이상 돌이켜 보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그저 사법부가 이제야 제 구실을 다했다는 게 좋고, 앞으로 이런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간첩가족’으로 낙인찍힌 30여년의 삶은 이씨의 몸과 마음을 황폐화시켰다. 참기름 행상 등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덕분에 고혈압과 불면증, 관절염까지 잔병치레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무릎관절치환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15살,3살이던 두 아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함이 앞선다. 이제 47살,35살 장년으로 장성했지만, 두 아들은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쓴 채 취업조차 할 수 없었다. 이씨는 “큰아들이 판결 뒤 ‘죽이지나 말지 돈은 무슨 돈이냐.’고 하더라.”며 잠시 울먹였다. 이씨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회 운영계획은 이미 유족들 사이에 합의가 됐으며, 국민들이 통일을 위해 힘쓰다 누명을 쓰고 죽은 남편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여생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어떻게 지내십니까] 베트남에 5년 억류 이대용 前 주월공사

    한국인 23명을 납치한 탈레반 세력의 인질극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미 2명이 희생된 가운데 여성 피랍자 일부가 가까스로 풀려났으나, 나머지 인질의 석방은 아직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국민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낭보가 들려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이대용(83) 전 주월공사를 만났다. 그는 월남 패망 후 공산 베트남 정권에 만 5년간 억류됐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제3국에서의 ‘최장기 인질’이었다. 그로부터 아프간 인질들을 구해 낼 묘책과 근황을 들어봤다. ●“그들도 탈레반이었다.” 월남이 사실상 패망한 1975년 4월30일. 이 주월 경제공사는 운명처럼 대사관 직원과 교민을 본국으로 안전 귀환시키는 철수 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김영관 당시 주베트남 대사 등 대부분의 공관원과 교민들이 이미 사이공을 떠난 뒤였다. 사이공 공항까지 북베트남군의 포격을 받는 위기일발 상황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안전하게 귀국시키려 안간힘을 쓰다 베트남 정보공작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에 체포됐다. 그는 “생각해 보니 그들은 아프간에서 무고한 외국인들을 납치·감금하는 탈레반과 다름 없었다.”고 회상했다. 치화 형무소에 수감된 그에게 외교관의 치외법권을 규정한 빈협정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1평도 안되는 독방에서 10개월 동안 햇빛 한번 못 보고 지낼 때도 있었다. 체중이 78㎏에서 42㎏으로 줄어들 정도로 참기 어려운 고통에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이 전 공사는 “아프간 한인 인질들이 기습적으로 납치되는 바람에 충격이 클 것”이라면서 “국가가 구출할 것이라고 믿고 침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건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강요하는 사상전향 요구였다. 그는 공산 베트남 측의 ‘가이따우’(인간개조) 공작에 꿋꿋이 버텼다.‘극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거짓 전향은 무죄’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를 알았더라도 전향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납치세력들로부터 이슬람교로 개종 압박을 받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인 피랍자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개종하는 척이라도 하며, 생명을 보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이 전 공사와 서병호·안희완 두 영사가 억류되자 본국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와 외교 공관망을 총동원해 석방교섭을 펴도록 독려했다. 하지만 베트남과 외교관계가 단절된 데다 냉전하의 남북관계가 큰 걸림돌이 됐다. 북한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통일후 ‘남조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가운데 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노동당 제3호 청사가 북송 공작에 뛰어든 것이다. ●석방 교섭, 그때와 지금 78년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과 베트남간 비밀 3자회담이 열렸지만,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다. 북한이 이 전 공사 등의 북송을 최대치 목표로, 여의치 않으면 남한내 수감 간첩과의 교환을 추진하려 한 까닭이었다. 이 전 공사는 “탈레반이 피랍자와 탈레반 죄수들을 맞교환하려는 것과 너무 유사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당시 북측은 “중남미 테러세력들도 자국내 미 외교관들을 인질로 잡고 수감중인 도시게릴라들과 맞교환을 요구한다.”고 억지 사례를 들었다.“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외교관과 간첩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란 남측 주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는 금언과 함께 석방의 전기는 왔다. 베트남이 미제 및 소련제 무기 등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이 견제에 나서면서다. 중국과 입장을 같이한 북한도 베트남에 캄보디아 철수를 요구하며 틈이 벌어졌다. 이때 한국정부는 거상 아이젠버그를 활용해 석방교섭을 성공시켰다. 그는 베트남의 외자유치를 도우며 커미션을 챙기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물론 이는 이 공사가 생지옥 같은 긴 수감생활을 견뎠기에 가능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이 비밀 루트를 개척해 억류 외교관들과 접촉선을 유지하려 한 한국정부의 노력도 주효했다. 부패한 베트남 관리들을 구워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탈레반과의 공식 접촉 못지않게 다양한 비공식 통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프간뿐만 아니라) 파키스탄·사우디 등의 이슬람기구와 단체를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하다면 장사꾼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베트남에도 현지 공장이 있는 한 기업체의 이사로 있다.(주)선진의 장학재단 고문격으로 일선에선 한발 비켜나 있다. 그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노선인 도이모이 정책과 관련,“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웬반린이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반세기 동안 외세 배격을 부르짖던 원로급들을 예우하면서 은퇴시킨 것은 사실상의 쿠데타”라고도 했다. 반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선 얼마간 비관적 전망을 했다.“주체사상을 포기, 개혁·개방하면 체제가 무너질 판인데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북한의 웬반린’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그는 누구인가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난 이대용 전 주월 공사는 고향의 인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리자 목숨을 걸고 월남했다. 이후 육사 7기로 임관한 뒤 한국전쟁을 맞아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유엔군 참전으로 북진이 시작된 이후엔 압록강에 맨 먼저 손을 담근 제6사단 7연대 1중대장으로 활약했다. 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의 굴곡 많은 인연이 시작된다. 소장으로 예편한 그는 67년 베트남 대선서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그 이듬해부터 주베트남 대사관 정무공사로 4년간 근무한 것이다.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부공관장격인 경제공사로 부임해 베트남과의 질긴 인연을 확인했지만,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된 직후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특별경찰과 사이공의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전향과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이때 나중에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해진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국장과도 악연을 맺었다. 박 전 부국장은 억류 중인 그에게 투항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의 정보원이었다. 80년 4월12일 베트남서 풀려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99∼2003년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다.96년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아 베트남과 이어진 악연의 고리를 끊었다. ■즈엉 찐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와의 인연 이대용 전 주월공사가 베트남 억류 후유증을 털어내고 있던 2002년 초 어느 날. 생지옥 같았던 수감생활의 악몽을 되살릴 일이 생겼다. 그를 치화 형무소로 밀어넣은 장본인 중의 한 명이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주한 베트남 대사로. 즈엉 찐 특 제3대 주한 대사.1975년 월남 패망 당시 베트남의 특별경찰조직인 안녕내정국 요원으로서 이 공사를 신문했던 인물이었다. 이 전 공사는 한국말이 능통하고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를 ‘튀기’라는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전 공사는 걸핏하면 “총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만나면 죽이고 싶다.”는 게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특 대사가 이 전 공사가 회장을 역임했던 서울남서로타리클럽의 조찬특강 연사로 나오면서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27년 만에 만난 이 전 공사에게 특 대사는 “(신문을 받을 때)‘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하셨는데, 참으로 선견지명이었다.”고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이미 한-베트남 관계가 북한-베트남 관계보다 더 밀접하게 됐으므로 원한을 누그러뜨리려는 공치사만은 아니었다. 이 전 공사도 “양국이 철천지 원수였던 당시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개인적 원한은 없었던 게 아닌가.”라고 화답했다. 이후 두 사람은 평생지기처럼 지내며 서로를 돕는 사이가 되었다. 구본영 논설위원
  • 朴측 “李캠프-국정원 간부 연계” 李측 “3류 추리소설”

    朴측 “李캠프-국정원 간부 연계” 李측 “3류 추리소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은 7일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 등에 게재돼 논란이 된 ‘최태민 보고서’는 국정원이 만든 문건이 아니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 문건을 언론 등에 유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간부 박모씨를 직위해제한 상태다. ●유출 혐의 국정원 간부 직위해제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경선 후보 캠프 소속 의원 8명은 이날 “이명박 후보 캠프가 국정원과 짜고 정치공작을 펴고 있다.”며 국정원을 항의 방문, 김 원장과 1시간30분 동안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국정원장은 국정원 자체 조사 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이혜훈 캠프 대변인은 “국정원이 문서 작성부서와 관리부서 등 관련 부서를 모두 조사했지만,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최태민 보고서를 만든 부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김 국정원장의 말을 전했다. 박 후보가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하던 시절인 1977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A4 용지 반쪽 분량으로 최태민씨 관련 횡령·사기 의혹을 정리한 적은 있지만, 최근 유통되는 보고서는 국정원이 만든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측,“이 후보 사퇴 의사 없나?” 이날 1시간 남짓 이뤄진 국정원장 면담에서 박 캠프측 의원들은 사건 전모를 밝히고 관계자들을 엄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만복 국정원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고 박 후보측 이 대변인이 전했다. 동행한 엄호성 의원은 김 원장이 국정원 내부조사를 통해 문제의 문서를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서와 문서 관리부서, 문서수발부 등을 조사했으나 문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은 선거대책위 명의로 된 기자회견문에서 “겉으로는 국정원 정치공작을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국정원과 내통, 제2의 김대업을 배후조종, 상대후보를 음해한 이 후보 캠프에 환멸을 느낀다.”면서 “한나라당 경선 역사상 가장 추악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를 향해서는 “추악한 정치공작에 책임을 지고 후보를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고, 이 후보 캠프에는 “캠프인가, 범죄집단인가.”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 후보측은 ‘최태민 보고서’ 유출 사건과 관련해 검찰수사를 받는 국정원 간부 박모씨와 고위간부 K씨가 이 후보 캠프의 국정원 출신 비선팀과 연계, 최태민 보고서 등을 생산하고 유출시켰다고 주장했다.“박씨가 이 후보 캠프 박창달 전 의원과 60여차례 통화한 기록을 검찰이 확보했고, 박씨는 이 후보 측근 J 의원,K 전 의원,S 전 언론인 등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는 제보 내용도 공개했다. 박 후보 비방 기자회견을 했다가 구속된 김해호씨와 이 후보측 핵심 인사 임현규씨의 연계 의혹에 대해서도 물고 늘어졌다. 박 후보측은 “이 후보 캠프 핵심 의원들이 김해호씨를 매수하기 위해 정치공작 자금을 건넨 정황도 김씨 본인의 메모에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대구대·청구대 비리 의혹 기자회견에도 임씨가 개입했다는 추가 의혹도 제기했다. 박 후보측은 검찰에 이번 주말까지 수사 결과 발표와 음해공작 배후자 색출 및 사법 처리를 촉구했다. ●이측,“박측 몸부림이 애처롭다.” 이 후보측 박희태 공동선대위원장은 “야당과 국정원이 공모했다는데 ‘소가 웃을 일’이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면서 “어떤 국민이 박 후보측의 모독적 발언을 믿겠느냐.”고 비판했다. 장광근 대변인도 “결정난 판세를 뒤집어 보려는 박 후보측의 몸부림이 차라리 애처롭다.”면서 “범죄집단 운운한 데 대해 책임질 각오를 하라.”고 반박했다. 국정원 직원과 60여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지목된 박창달 전 의원은 “인척인 데다, 의원직을 상실해 취업 문제로 전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골프회동을 가졌다고 지목된 J의원은 “5∼6월쯤 국정원 동향 후배 주선으로 박씨 등 4명이 골프를 쳤지만, 이후 한번밖에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S 전 언론인도 “어떤 경로로도 (박씨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박근혜 후보 관련 의혹 제기 김해호씨 기자회견에 “李캠프 핵심의원 보좌관 개입”

    박근혜 후보 관련 의혹 제기 김해호씨 기자회견에 “李캠프 핵심의원 보좌관 개입”

    검찰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경선후보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구속된 김해호씨의 기자회견에 이명박 후보 캠프 인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5일 박 후보와 고(故) 최태민 목사의 부정축재 의혹 등을 제기한 김씨의 기자회견문을 대필한 혐의로 이명박 후보 캠프 정책특보인 임현규(43)씨를 구속하는 한편 이 과정에 이 후보 캠프내 핵심 의원의 보좌관으로 알려진 K씨가 개입한 정황을 잡고 K씨를 수배했다. 앞서 법원은 임씨에 대해 “공범간의 진술이 엇갈리는 점에 비춰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다. 임씨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제보가 들어왔는데 그 중 일부를 김씨에게 전해줬을 뿐이다. 배후나 공모는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또 김씨가 이 후보 캠프 측 인사로부터 ‘100만원을 받았다.’는 메모와 관련해 김씨를 상대로 배후·공모 여부를 추궁하고 있다. 김씨는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다.”면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3일 박 후보 캠프에서 공개한 김씨와 김씨 후배 간의 녹취테이프와 녹취록도 입수, 김씨가 ‘2002년부터 이 후보·정두언 의원과 함께 의형제를 맺었다.’고 발언한 내용의 진위 및 배후 여부도 조사 중이다. 한편 검찰은 시사 월간지에 최 목사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간부 박모씨의 차량과 자택에서 ‘중앙정보부의 최 목사 비리 보고서’와 각종 국정원 기밀문건이 다량 발견된 사실을 국정원으로부터 통보받아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박씨는 최태민 보고서는 정치인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이며 언론사에 자료를 넘기지 않았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규 오상도기자 cool@seoul.co.kr
  • “최태민목사 육영재단 개입 박근혜후보 몰랐을리 없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 운영에 고 최태민 목사가 전횡을 했다는 주장이 31일 또 제기됐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한나라당 검증청문회 이후 세 차례 만나 취재한 박정희·육영수 숭모회장 이순희(78·여)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989년 2월 최 목사 전횡으로 육영수 기념사업회 이사진이 일괄 사퇴하고 최씨 측근들이 대거 이사를 맡았다는 주장도 했다. 이는 최 목사가 고령이라 예우만 해줬을 뿐 재단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박 후보의 지난 19일 검증청문회 증언과 대비된다. 이씨는 “1989년 4∼5월쯤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을 만났더니 ‘기념사업회 직원들이 박근혜 당시 이사 부탁이라고 얘기해서 결재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최태민씨가 박 이사 핑계를 대고 결재를 받아간 것이더라. 이호 이사장 등 기념사업회의 나머지 이사진들도 이를 알고 화가 나 지난 2월 박 이사를 제외하고 모두 사퇴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박 후보가 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데 청문회에서는 딱 잡아떼더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측은 이에 대해 “당시 유족으로서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아 직접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이사진이 사임했던 것”이라면서 “최씨가 어떤 경위로든 결재하거나 또는 서류를 보내어 이사장과 이사진으로 하여금 결재하게 한 사실은 전혀 없었으며, 그런 방식으로 업무에 개입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특별취재팀
  • 신동아 ‘최태민’ 취재기자 국정원직원과 수차례 통화

    고(故)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중앙정보부의 수사보고서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29일 국가정보원 직원 P씨가 일명 ‘최태민 보고서’를 외부에 유출한 정황을 잡고,월간지 신동아가 6·7월호에 게재했던 내용과의 연관성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 인사로부터 받았다면서 최 목사 관련 보고서를 보도했던 신동아 측 기자 2명과 P씨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결과,이들이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P씨의 이메일 계정을 조회해 분석 중이며 27·28일 신동아 측 기자들의 이메일 계정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신동아측의 반발로 하지 못한 상태다. 서울중앙지검 신종대 2차장검사는 “보고서 내용 자체 뿐 아니라 보고서의 진위 여부나 불법적 유통도 수사 대상이다.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한 정당한 법집행을 거부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과잉수사에 대한 통제는 법원이 하는 것이지 (언론사가) 취재원 보호를 위해 영장을 거부할 헌법적·법률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후보 가족의 주민등록 초본 부정발급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박근혜 후보 캠프측의 네트워크위원장인 홍윤식(55)씨가 전직 경찰 권오한(64·구속)씨에게 초본 발급을 의뢰했다는 혐의를 잡고 홍씨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캐고 있다. 홍성규 이경원기자 cool@seoul.co.kr
  • ‘초본유출’ 홍윤식씨 사전영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의 주민등록초본 유출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7일 전직 경찰관 권모씨로부터 이 후보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아 불법 유출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전 대외협력위원회 전문가네트워크위원장 홍윤식(55)씨에 대해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앞서 권씨와 홍씨, 그리고 두 사람을 소개시켜 준 중앙일보 이모 전 부장 등을 대질조사했다. 검찰은 최근 홍씨를 소환해 조사했으나, 권모씨한테 이 후보에 대한 개인정보를 부탁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귀가조치시켰다.이와 관련, 검찰은 이 후보와 친인척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열람한 국정원 직원 K씨를 이날 소환, 밤샘 조사했다. 한편 고(故) 최태민 목사와 관련한 중앙정보부의 수사보고서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27일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의혹을 보도한 월간 ‘신동아’ 기자 2명의 이메일 계정 조사를 위해 동아일보 본사 전산센터를 압수수색하려 했으나, 기자들의 반발로 하지 못했다. 앞서 이 후보의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출두 요구를 받은 이 후보의 맏형 상은씨는 이날 오후 일본에서 귀국했다.홍성규 오상도기자 cool@seoul.co.kr
  • “이상은씨 오늘 검찰 출두”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의 부동산 차명 소유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995년 이 후보 처남 김재정씨와 맏형 상은씨 명의의 도곡동 땅을 매수한 포항제철의 실무담당자였던 김광준 전 상무를 불러 조사했다고 26일 밝혔다. 검찰은 김 전 상무를 상대로 당시 매입 과정 등을 캐묻고 소문의 진위에 대해서도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또 이날 일본에 체류하며 검찰 출석을 거부하고 있는 이씨에 대해 공식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 후보측의 박희태 선거대책위원장은 “이씨가 27일 검찰에 출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개인정보 유출 파문과 관련, 서울 신공덕동사무소에서 부정발급된 이 후보 가족의 초본을 유통시킨 전직경찰 권모(구속)씨와 박근혜 후보 캠프의 홍윤식씨, 두 사람을 소개해준 중앙일보 전직 이모 부장을 25일 대질 조사한 데 이어 조만간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이날 한나라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와 관련한 옛 중앙정보부 보고서 유출 의혹과 관련, 박 후보의 성북동 자택 취득 의혹을 보도했던 ‘신동아’ 기자 2명의 이메일 계정 압수수색에 나섰다가 자료 협조 약속을 받고 되돌아왔다고 밝혔다. 검찰이 대선 경선 후보들의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긴 이번이 처음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한나라 오늘 검증청문회 쟁점은

    한나라 오늘 검증청문회 쟁점은

    한나라당이 19일 여론지지율 1·2위인 이명박·박근혜 대선경선 후보를 상대로 실시하는 검증청문회는 정당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대선후보 청문회다. 무엇보다 향후 경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분수령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청문회의 성패는 당 내외 인사로 구성된 청문위원들이 이·박 후보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 청문위원들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후보별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이 후보,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등 새로운 의혹 눈길 이 후보의 경우,‘옥천땅’‘도곡동땅’‘다스’‘천호동 개발 특혜 의혹’‘위장전입’ 등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외에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우신토건 하청 특혜, 병역 면제 등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들도 제기될 것으로 알려졌다. 우신토건은 이 후보의 장인이 지난 1981년 설립한 회사로 현대건설 하청업체였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이 후보가 현대건설에 재직하는 동안에는 매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다 퇴임한 뒤에는 급격히 감소했다. 이 후보가 현대건설 최고위직에 있으면서 이 회사가 현대건설로부터 하청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느냐가 공방의 초점이다. 병역 면제와 관련한 의혹도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이 후보는 지난 1963년 신체검사에서 고도기관지 확장증과 축농증이 발견돼 귀가 조치된 데 이어 65년에는 ‘기관지 확장고도와 폐활동 결핵 경도’를 이유로 최종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기관지 확장증은 사실상 기관지가 파괴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완치가 불가한 병이다. 방사선 촬영을 하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이 후보측은 지난해 1월 국립암센터의 X선 촬영에서 기관지 확장증 및 폐결핵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해명했다. 건강보험료 고의 축소 납부 의혹도 검증 대상이다. 이는 이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본인 소유의 서초동 영포빌딩의 임대관리회사인 ‘대명통상’을 만들어 대표로 있을 때 얘기다. 당시 본인의 월급을 2000년 99만원,2001년 133만원으로 신고해 건보료를 2만여원밖에 납부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관한 것이다. 이 후보가 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자동차부품회사 다스에 매각한 양재동 빌딩, 김씨에게 판 충북 옥천 땅 등 이 후보와 처남 김씨 사이의 부동산 거래들도 검증 대상이다. 이 후보가 서울시장 재임 당시 개발정보를 친인척들에게 미리 ‘흘려’ 부당 이득을 보도록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검증도마에 오른다. 다스 계열사인 홍은프레닝이 2003년 3∼9월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부지를 매입, 주상복합건물 ‘브라운스톤 천호’ 분양 사업을 시작한 2개월여 뒤 인근에 천호 뉴타운이 지정됐다는 점과, 애초 주상복합건물을 지을 수 없는 지역임에도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사업이 가능하게 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박 후보, 정수장학회·영남대 관련 의혹 집중 추궁 박 후보의 경우 이 후보에 비해 검증 항목은 적다. 하지만 고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와 정수장학회 및 영남대 관련 의혹만큼은 청문위원들의 질문 공세가 예정돼 있다. 지금까지 제기되지 않은 의혹으로는 10·26 사태 직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청와대 금고에 있던 9억원을 박 후보에게 전달했고, 박 후보는 일부를 김재규 사건 수사 격려금으로 되돌려줬다는 내용이 청문항목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민감한 사안은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4년 사망한 최 목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박 후보와 함께 ‘구국여성봉사단’을 운영했고 이후 새마음봉사단·육영재단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최 목사가 사기와 횡령 등을 저질렀다는 내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박 후보가 이를 알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최 목사 일가가 서울 강남 일대에 수백억원대의 부동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재산 형성 과정에서 박 후보와 관계가 있는지 여부도 풀어야 할 의문이다.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취 및 정수장학회 관련 부정 의혹, 영남대 강취 및 비리 관련 여부 등에 대해서도 청문위원들의 추궁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광삼 김지훈기자 hisam@seoul.co.kr
  • 홍윤식씨 체포 밤샘조사

    홍윤식씨 체포 밤샘조사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측의 개인정보 불법 유출 사건 등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1부는 지난달 7일 서울 마포구 신공덕동사무소에서 이 후보측의 주민등록 초본을 전직 경찰관 출신 권모(64·구속)씨로부터 넘겨받은 박근혜 후보측의 홍윤식(55) 전문가네트워크위원장을 16일 체포해 밤샘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홍씨를 상대로 누가 초본 발급을 주도했는지, 초본이 박 후보 캠프나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 측에 전달됐는지,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 등을 캐물었다. 검찰은 이날 오전 홍씨가 청사에 자진 출두하자 법원으로부터 미리 발부받은 체포영장을 집행, 홍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구속된 권씨와 홍씨가 서로 먼저 주민등록초본 발급을 제의했다고 함에 따라 초본 발급 경위와 시점 등에 대한 진술을 비교·조사하는 한편 대질조사도 검토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서울 녹번동과 방배3동에서 이 후보 가족의 초본을 떼간 나모(69)씨를 상대로 조사하는 한편 초본 발급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 사무장 박모(수배 중)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후보의 주민등록 초본이 박 후보 지지자의 요청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6동사무소에서도 열람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자 한나라당 당원인 최모(55·무역업)씨가 지난달 4일 이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중학교 동창 김모(55) 계장에게 이 후보의 주민등록 초본 발급을 부탁했으나 발급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당원으로서 궁금하던 차에 현충원 참배를 갔다 만난 사람으로부터 이 후보의 주민등록번호를 우연히 받았고 친구인 김 계장에게 사업상 필요하니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면서 “김씨가 전산망에서 열람한 뒤 이 후보의 초본임을 알고 곤란하다고 하기에 그냥 놔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국정원 직원 K씨가 지난해 8월 행정자치부 전산망을 통해 이 후보 가족의 부동산 현황 자료 등을 조회했다는 의혹과 관련, 최근 자체 감찰한 결과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국정원측에 요청했다. 검찰은 국정원 감찰 보고서를 검토한 뒤 K씨의 신병을 인도받아 어떤 의도로 정보에 접근했는지, 이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어디로 유통시켰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관련 의혹 규명을 위해 국정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방안도 적극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검찰은 옛 중앙정보부가 박 후보와 관련한 ‘고(故) 최태민 목사’,‘성북동 자택’ 보고서 등을 만들어 불법 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이 김만복 국정원장 등을 상대로 수사의뢰한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하고 관련 의혹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홍성규 오상도기자 cool@seoul.co.kr
  • “국정원 李 X파일 없다”

    “이명박 X파일을 정말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나.”(김정훈 한나라당 의원) “그게 뭔지 실체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국정원은 이명박 X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김만복 국가정보원 원장) 한나라당과 김만복 국정원장은 12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이명박 X파일을 둘러싼 공방전을 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박 X파일 존재 여부에 대해 김 원장을 거세게 추궁했다. 김 원장은 “현재 국정원이 갖고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의원들의 공세를 피해 갔다. 김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그런 자료가 있다는 이야기는 있었다.”면서 “취임 후에 국장들에게 X파일과 유사한 것이라도 있는지 점검해 보고하라고 했지만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국장들에게 X파일이 없다는 확인서도 일일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 이해찬 의원 홈페이지에 오른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보고서’에 대해 “검찰이 X파일 존재 여부를 물어왔다.”며 “수사 협조 차원에서 실제 자료가 존재하는지와 유출됐는지, 만약 유출됐다면 누가 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박명광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 국정원이 개입한 것인지 진실규명을 위해 당장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 원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업무에 큰 지장은 없는 상태로 알고 있다.”면서 “독일 의료진 7∼8명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심장수술을 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국정원이 지금처럼 정치중립 운운하며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국정원의 내년도 국내파트 예산을 전면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진실화해위 ‘KAL858기 폭파’ 조사 착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고 11일 밝혔다.2005년 KAL기 사건을 조사했던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당시 안기부가 특정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 ‘무지개 공작’이란 이름으로 사건을 활용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KAL 858기 사건’은 1987년 김정일 당시 북한 노동당 비서가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바그다드발 서울행 비행기를 폭파시킨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그동안 유족과 시민단체, 언론 등을 통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돼 왔다. 진실화해위는 “폭파범 김현희와 당시 안기부 핵심 간부들을 조사하지 않아 의혹을 풀지 못했다.”면서 “안기부의 사전인지와 개입여부,KAL 858기의 폭파·추락·실종 여부, 김현희의 북한 공작원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또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인 ‘8·15 저격사건’과 유신 반대발언을 했다며 중앙정보부가 가혹행위를 한 ‘오종상 긴급조치 위반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직권조사와 조사개시 결정을 내렸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검증자료 유출 공방

    한나라당은 6일 이명박·박근혜 대선경선 후보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의혹의 배후에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고 있다며 대선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국정원은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따라 실체가 불분명한 일로 국가정보기관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한나라당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위원장 안상수 의원)는 이날 오전 국정원을 방문, 김만복 원장을 면담하고 이-박 후보와 관련된 ‘정보 유출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투쟁위는 최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홈페이지에 올랐던 고(故) 최태민 목사 수사보고서와 한 언론에 보도된 박 후보의 개인 신상 관련 보고서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투쟁위는 또 이 후보와 이 후보 친·인척의 과거 부동산 관련 기록들도 정부나 정보기관에 의하지 않고는 사실상 확보가 불가능하다며 당 대선경선 후보들에 대한 정권 차원의 ‘음해공작’ 중단을 촉구했다. 안상수 위원장은 이날 국정원 방문에 앞서 CBS 라디오에 출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야당 후보 흠집내기 태스크포스(TF) 구성’ 의혹을 제기했다. 안 위원장은 “권력기관이 아니면 도저히 접근을 할 수 없는 자료로 의혹을 퍼뜨리고 있다.”면서 “이런 권력기관이 국정원이고 이를 청와대가 보고받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투쟁위 박계동 간사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정원 자료에 접근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면 된다.”며 “특히 이런 정도의 자료는 국정원에서도 ‘톱3’ 정도가 아니면 접근·유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나라당이 제기한 ‘당후보 흠집내기 TF(태스크포스)’나 ‘국정원 역할론’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정치공세”라고 반박한 뒤 “국가정보기관을 더이상 정치에 이용하거나 개입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국정원은 특히 일부 야당 경선 후보와 관련된 ‘옛 안기부 보고서’에 대해서도 “실체가 불분명한 자료에 대해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 자체로 정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어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李·朴자료 유출’ 대검수사 의뢰키로

    한나라당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위원장 안상수)는 5일 이명박·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각종 의혹 자료들이 유출된 경위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수사의뢰키로 했다.언론에 보도된 이 후보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투기의혹 자료 입수 경위와 박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한 의혹 자료가 이해찬 전 총리 홈페이지에 게재된 배경이 수사의뢰 대상이다.당내 유력 대선 후보들을 겨냥한 의혹이 정권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추가적인 의혹 제기를 막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안 위원장은 “이 후보의 처남 김재정씨가 10년 동안 사들인 전국 47곳 땅의 소재지를 일반인은 도저히 알 수 없다.”면서 “자료를 어디서 입수했고 유통경로는 어떤지 밝혀야 한다.”고 수사의뢰 배경을 설명했다.박계동 의원은 “최태민 목사 관련 자료는 중앙정보부에서 작성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국정원에 유출경위를 엄정하게 따져야 한다.”면서 “국정원에서도 상당한 직급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열람·복사·유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박 의원은 또 “홈페이지 아이디를 추적, 최초 게시자를 확인하면 유출 경로를 쉽게 알 수 있다.”며 “이를 은폐하려 한다면 정부가 각종 자료를 악용하도록 방조 또는 협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투쟁위는 ▲이 후보의 주민등록 자료 유출 ▲한반도운하 보고서 작성·유출 ▲이 후보 및 친인척 부동산 자료 유출 ▲최태민 목사 관련 중앙정보부 기록 및 유출 경위 등을 ‘야당 죽이기 4대 공작 사건’으로 규정했다.투쟁위는 수사의뢰와는 별도로 6일 오전 11시에 국정원을 찾아 자료 유출 배경을 조사하고 9·10일에는 국세청과 행정자치부를 방문할 예정이다.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금발’ 사내의 가슴아픈 한국사랑

    “북한에서는 저에게 CIA가 아니냐고 하고, 남한에서는 빨갱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도대체 왜 한국인들하고 사느냐고 묻지요. 북한에서는 핵무기 만들고, 남한에서는 밤낮 반미 시위를 하는데 말이죠. 그럴 때는 무인도에 가고 싶었습니다.” EBS ‘시대의 초상’은 26일 오후 10시50분 ‘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인요한’을 방송한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라도 순천 촌놈’ 바로 그 사람이다. 인요한은 세브란스 병원 외국인 진료소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두번 놀란다.190cm의 큰 키와 육중한 몸집에 놀라고, 푸른 눈에 금발의 사내가 내뱉는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한번 더 놀란다. 그의 본래 이름은 린튼 존. 전라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미국인이다. 1980년 5월26일. 광주에서는 내외신 기자와 광주 시민군 사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 회견이 열렸다. 당시 연세대 의대 1학년생였던 인요한은 통역을 맡았다. 이날 광주에서 보낸 단 하루 때문에 주한미국대사관은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통지했다. 떠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인요한은 한국에 남아 2년 동안이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다. 그는 외국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문무대’에서 대학생 병영훈련도 받는 기록도 세웠다. 1997년, 인요한은 북한 곳곳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요한의 가족이 설립한 북한 지원 단체인 ‘유진벨 재단’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결핵 퇴치 사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요한은 외부인에게 좀처럼 개방되지 않는 북한에서 의료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요한이 만난 북한은 어떤 곳일까? 아침에 두만강을 보고, 점심때 백두산 보고, 저녁에 압록강을 보았던 인요한의 북한 이야기도 펼쳐진다.‘한국 말 잘하는 백인’으로만 취급하는 사람들 속에서 인요한이 겪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글·사진 육명심

    늦가을인지, 초봄인지, 아니면 어느 겨울날인지 모를 1970년 무렵의 어느날 미당 서정주 선생이 멀리 듬성듬성 눈이 내려앉은 산등성이가 잘 내다보이는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비슷한 무렵 박두진 시인은 집필실에서 원고를 앞에 두고, 두꺼운 안경까지 벗어둔 채 두 손으로 턱을 감싸안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윤기 흐르는 머리칼은 멋들어지게 뒤로 넘겨져 있다. 70년 여름쯤 되었을까, 이번엔 박목월 시인의 집이다. 집 거실에 가슴이 다 드러나는 여름 내의 차림으로 걸터앉은 시인 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길게 빼 주둥이 언저리를 핥으며 시인을 빼꼼히 쳐다보고 있다. 섬돌에는 몇 켤레의 고무신과 또 한 마리의 강아지가 흩어져 있다. 어색하게 웃는 시인의 표정과 하나가 된 이 풍경은 아홉 켤레의 신발, 미소하는 내 얼굴, 아홉마리의 강아지가 등장하는 그의 시 ‘가정’과 매우 흡사하다.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열음사 펴냄)에 담겨 있는 한국 대표 작가들의 표정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듯 생생하다. 책에는 1999년 서울예대에서 정년퇴임한 사진작가 육명심(74)씨가 포착한 한국 대표작가 71명의 사진과 그 사진에 얽힌 육씨의 회고담이 실려 있다. 게재된 사진은 모두 120여컷. 육씨가 1970년을 전후해 모두 직접 찍은 것들이다. 40년 가깝게 흘러간 시간을 되돌려 현장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진들을 지켜보노라면 그대로 ‘한국 문학사’를 접하는 듯하다. 찌들고 고통스럽던 일상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천상병 시인의 우울한 얼굴, 황량한 벌판을 뒤로 하고 선 ‘젊은 시인’ 신경림, 중앙정보부에 시달리던 시기에도 호탕하게 웃어젖히던 고은 시인…. 책 속에 등장하는 작가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이미 세상을 등졌고, 당시 문단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던 청장년 작가들은 지금 모두 원로 대접을 받고 있다. 육씨는 67년 은사인 박두진 선생의 시집 출간 때 사진으로 동참하면서 문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현대시학’과 작업을 함께 했기 때문에 소설가보다는 시인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저 예쁘게, 아름답게만 찍으려고 하지 않아서인지 여류 문인들로부터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71명의 작가 가운데 여류 문인은 시인 강은교·김남조·김후란·모윤숙·홍윤숙씨 등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다. 육씨는 문학작품처럼 여기에 실린 사진 전부가 소중한 문학 유산으로 문학박물관에 자리잡길 고대하고 있다.2만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진실화해위 “부일장학회 中情서 강탈”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재산 등 강제헌납 의혹사건’에 대해 강압에 의한 재산 헌납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강탈한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중앙정보부의 수사권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와 상관없는 김지태씨를 구속 수사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된다.”면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여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MBC),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침해 행위”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헌납 토지에 대해서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울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라.”면서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헌납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언론사 주식을 정수재단의 경비 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공익성에 반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는 “강탈 당한 언론 3사는 단순한 재산권 침해에 머물지 않고 언론기관의 존립 근거에 속하는 공공성 또는 중립성 등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정수장학회는 현재 MBC 주식 30%, 부산일보사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차남 영우(65)씨는 지난해 1월27일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국내재산 도피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한 뒤 처벌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부일장학회와 아버지 소유의 땅 10만평, 부산일보 등 언론 3사를 강제로 헌납시켰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용어클릭 ●부일장학회 1958년 11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던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가 토지 10만 147평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한 장학회다.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몰수돼 5·16장학회로 바뀌었다.8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이사장으로 있었으며 최필립씨가 현재 이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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