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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군 어제 해상훈련 돌입/동북부서 4일간

    ◎중 미사일 발사 맞물려 주목 【대북 AFP 연합】 대만 북부 공해상에 대한 중국의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양안 사이에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대만 해군은 25일 나흘간 일정으로 함포를 동원한 군사훈련에 들어갔다고 집권 국민당 기관지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중국의 미사일발사 훈련 종료일인 오는 28일까지 계속될 이 훈련은 동북부 소오항에서 약 20해리 떨어진 해상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삼성전자 부사장/정보통신본부장 송용노씨

    삼성전자는 6일 공석중인 정보통신본부장(부사장)에 송용노 중앙일보 부사장(50)을 임명했다.
  • 서예가 여초 김응현(이세기의 인물탐구:77)

    ◎비학과 첩학을 접목한 온자한 서풍/우리 전통서예 존중,「옛것」 부활 노력/동방연서회 설립… 후학 7천명 양성/보통학교때 붓글씨 시작… 단 1점의 타작도 안써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즉 『글자마다 생동미 넘치는 운필은 자연스러운 리듬과 균형미에 따라 「중화의 기」가 흐른다』는 뜻이다.이는 여초 김응현 서법에 대한 종명선 교수(서안교대)의 평이다.종교수는 현재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평론가,중국서법대가의 한 사람이다.지난 92년 한·중건교기념 김응현서법전에 붙여진 이 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경사범대 교수이며 당대 명서법가로 명성을 떨치는 계공은 여초의 서법을 전대의 대가인 추사와 비유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우선 두 사람이 모두 「금석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비학과 첩학의 접목을 중시하여 자재로운 천취를 얻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단지 추사의 글씨가 「바람을 끼고 비를 몰고오듯 유유자적하게 걸어나오는 데 비해 여초의 서법은 유고유아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70년대 북경서 초대전 널리 알려지다시피 여초는 우리 서예계에서 옛것을 존중하여 전통을 부활시키며 이를 연구하여 마침내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데 전생애적 노력을 기울여온 원로다. 그는 일찍이 국제무대로 눈을 돌려 70년대 중반에 대북과 도쿄에서 각각 초대전을 가졌고 80년대말에는 본격적으로 중국본토에 진출하여 북경의 계공,상해의 사치유·왕북악등과 교분을 트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에서 개인전을 개최,연변·장춘·심양등을 순회하여 그곳 서예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중국여행중 발표한 「당대의 해서가 동국에 미친 영향」 「안진경이 한·일서법에 끼친 영향」제하의 논문은 「중원시대의 문자와 단군시대의 문자,중원서법과 고구려의 인연관계」를 정밀하게 파헤쳤고 「동방의 금석은 자발적으로 진전됐으며 서체 또한 중국 영향권에만 있어왔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여 한·중 학자간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그러나 「심도 있는 견해와 견실한 입론,광활한 사로로 펼쳐진 그의 문장은 추호의 빈틈 없는 치학태도」로 평가되어 오히려 중국 서법가들의 공감과 호감을 산 바 있다. 여초의 초기의 서법은 주로 진의 왕희지,당의 구양순,원의 조맹부에 영향을 받아 「새벽바람 속의 잔월(효풍잔월) 같은 청려,대해파도 같은 웅호,뜬구름 스치듯한 표일,고하고 졸하며 기하고 위한 여러 글씨체를 지나」비학을 통한 광개토왕비체와 훈민정음체를 탐구하면서 「화려와 아첨(유미)을 몰아낸 강건한 주경을 성취」한 것으로 대찬되고 있다. 그는 18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대부명가의 후손이다.그의 증조부는 구한말 종일품벼슬을 지내다 경술국치때 순국한 김석진 학자이며 조부는 비서원승직을 지낸 동강 김영한,창문여고 설립자인 김윤동씨의 5남3녀중 3남으로 태어나 숭인보통학교에 다니면서 그는 벌써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고 휘문중시절 동몽선습과 명심보감,율곡의 격몽요결 등 옛명현의 시문에 접근해 있었다.그러다가 1944년 아무 연고없이 일경에 연행됐다가 풀려나온 데 대한 후유증으로 도봉동 초가에 묻혀 그때부터 법첩으로 독학한 것이 친형인 김충현·창현 등과 함께 서예의 길을 걷게 된 동기다. ○불의에 타협않는 성품 성품이 꼿꼿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는 50년대 중반 「평론 없는 분야는 독립된 분야로 성립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60년대초까지 스스로 필봉을 휘둘러 「붓에 먹을 찍어서 종이에 긋기만 하면 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문의 뜻도 모른 채 쓰거나 글씨를 그림그리듯 하거나 남의 글씨를 임서하거나 손끝의 재주로 숙달된 필체」가 아닌,「오랜 서법에 의해 연마되고 탁마된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온 작품」을 주장해왔고 국전 서예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선현의 가언경구나 명문장을 선택하여 민족의 나갈 바를 열어주는 진취성 있고 주체적인 내용」,그리고 「아무리 원로라도 공부하지 않는 원로」는 심사위원으로 추대할 수 없으며 「추호의 사정이 깃들이지 않은 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심사원 선출」을 역설하여 서예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서예계의 난맥상을 쇄신한다는 차원에서 56년 체계적인 서예연구와 보급을 위해 지금의 동방연서회를 창립,전예해행초 오체의 철저한 연구와 훈련끝에 그동안 배출한 서예인만도 7천여명,서예전문지 「서통」을 지난 30년간 개인의 힘으로 꾸준히 발간해오고 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신조로 삼는 것은 노자의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라는 글귀다.「스스로의 만족됨을 알게 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아니하고 그칠 바를 알아서 위태롭지 아니하여 오랠 수 있다」는 경구다. 그런 그에게 사욕이란 있을 수 없다.더구나 지난 91년 봄 손위 형인 창현씨가 「대화도중 갑자기 쓰러져 타계」하는 것을 보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생」에 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그해 여름 자신의 사재 18억원을 출연,「사람은 사라져도 세상에 무엇인가 의미있는 것」을 남긴다는 취지와 함께 동방연서회를 재단법인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는 지금도 새벽이면 도봉동에 있는 그의 집을 나와 아침 8시 서실이 있는 동방연서회에 도착,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서실은 글씨를 쓰는 책상외에 방안 가득히 서법에 관한 서적이 산적해 있고 행길가인데도 난향과 수석과 녹차향 때문일까,온자한 서풍이 감도는 속에서 그는 「오늘은 심선이 그려질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엄숙히 자문해본다.낙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는 한점의 타작도 용납치 않으려는 주의다.그래서 한평생 붓을 잡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 때나 기분내키는대로 가볍게 붓을 잡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한다.심기가 평화롭고 사방이 청결하고 날씨가 화창하면 그날은 왠지 일점일획에도 오차가 없는 「정수」가 탄생될 것을 기대해 볼 뿐이다. ○세속적 취향과는 멀어 전보다 많이 옳은 말을 줄이고 일체의 세속적 취향에 타협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골프를 하고 싶어도 「자연을 훼손하는 일에 일조」하는 것같아 철저히 외면한다.물론 서예와 관련된 모든 잡사에도 끼어들지 않는다.하오에는 문중 사람을 더러 만나지만 특별히 친분 있는 사람도,그렇다고 서로 소원할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시기다.다만 그의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주선해온 동방화랑의 서정철사장과는 30여년간 난향 같은 청교를 나눈다.가족은 부인 강영순 여사와 5남매,서예를 잇는 자녀는 없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안되는 것이 글씨다.서법은 쓰는 사람의 내면의 성숙과 외율의 조화이기 때문에 천질만으로도 부족하고 노력만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따라서 서예는 미숙만이 있을 뿐 영원한 프로는 있을 수 없다」.이는 여초의 변이다. 그러나 그 서체가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천외천,예술외 예술」로 찬사되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명지대 진태하 교수의 평처럼 「고희를 내년으로 앞둔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이제 그로서는 「예술이상과 예술도에 이른 자신의 지음을 눈부신 지면에 향기로 뿌리는 일만이 남았다. □연보 ▲1927년 서울 출생 ▲46년 휘문중 졸업 ▲51년 고려대 졸업 ▲50∼61년 국회보 주간,국회도서관 창설참여 ▲56년 동방연서회 창립멤버 ▲60년 국전 추천작가 ▲69년동방연서회 이사장 ▲70년 숙대·홍대·성균관대 강사 ▲71년 동방연서회 회장 ▲74년 방화전(중국국립 고궁박물원) ▲75년 국전 초대작가,한중 서법학대회 대회장 ▲76년 현대화랑초청 개인전 ▲78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79년 국제서도연맹초청 개인전(도쿄),중국국립 역사박물관 초청 개인전(대북) ▲80∼현재 한국전각학회 회장 ▲82년 동방화랑초청 개인전 ▲83년 신가파 중화서화협회고문 ▲84년 이마미술관 초청 개인전 ▲86년 중앙일보사 초청 개인전 ▲89∼현재 사단법인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 이사장,동방연서회 서법교류 방중단단장 ▲90년 김응현서법전(중국북경 천안문광장 혁명기념관),신가파 제1회 국제서법교류대전 ▲91년 염황예술관이사회 명예이사,절강성박물관·서호서원 명예원장,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종남인사 예술고문,서안서학원 특격원위 ▲92년 김응현·김종길시화전,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의전(추모의전),김응현서법전(서안 중국서법예술박물관 및 상해) ▲93년 산동대학 동방서화연구원 고문겸 교수,김응현서법전(정주 하남성서화원),하남성서화원 고문 ▲94년 김응현·계공서법전(북경 영보재) 김응현서법전(서울 동방화랑) ▲95년 7월3일부터 8월7일까지 한·중·일 산경 서법전(한국 김응현·중국 계공·일본 임금동 일본 동경 선샤인문화회관)예정
  • 소설가 김동리씨 별세

    한국문단의 거목 김동리씨가 17일 하오11시20분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5의 24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2세.김씨는 90년7월31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1년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후 집에서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한 김씨는 35년 중앙일보에 소설 「화랑의 후예」로 등단한 이후 「황토기」「무녀도」「사반의 십자가」「등신불」「을화」등 1백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김씨는 서라벌예대학장·문인협회장·예술원장등을 역임하며 후진양성과 문예창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유족으로는 87년 결혼한 부인 서영은씨와 아동문학가인 재홍씨등 5남1녀.21일 상오9시 청담동성당에서 장례미사를 갖고 10시에 문인장(장례위원장 곽종원)으로 영결식을 치른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신현리 가족묘지.541­1219. ◎김 대통령,빈소에 조화 김영삼 대통령은 18일 전날밤 별세한 소설가 고 김동리씨 빈소에 조화와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 대통령은 조전에서 『한민족의 토속적 사상과 역사적 현실을 바탕으로 인생의 근원적 본질을 문학적으로 추구하며 우리 문학사에 있어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기고 떠나신 고 김동리선생의 별세를 진심으로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 「순수문학」 외길 걸은 문단거인/타계한 김동리 선생의 문학과 생애

    ◎생명·인간성 탐구 중시… 문학의 도구화 반대/한국적 샤머니즘 담은 「무녀도」·「황토기」 남겨 17일 타계한 김동리(본명 김시종)씨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들을 남긴 우리 문단의 거목이었다. 작가로서의 그는 60여년의 작품활동을 통해 1백여편에 이르는 중·단편소설을 남긴 빼어난 글쟁이였다.이른바 「순수주의」를 지향한 그의 소설들은 해방이후 우리 문학의 큰 줄기로 이어져 내렸다.뿐만 아니라 그는 참여주의 논객들과의 지속적인 논쟁을 통해 이같은 자신의 문학관을 적극 옹호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1913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김동리씨가 처음 문단에 나온 것은 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한 시 「백로」를 통해서였다.그러나 35년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에 「산화」 등 두편의 소설이 잇따라 당선되면서 그의 재능은 산문쪽으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의 문학적 지향은 30년대말 발표된 「무녀도」와 「황토기」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기독교신자인 아들과 갈등을 빚는 무당,가공할 힘을 지닌 장사의 사연을 다룬 이 단편들엔 한국적 샤머니즘과 신화의 세계에 대한 지은이의 본능적인 이끌림이 나타나 있다. 이무렵 그는 자신의 창작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평론작업을 병행하기 시작했다.문학의 사회·역사의식 회복을 촉구한 임화·유진오의 글에 맞서 「순수이의」(39년)「신세대의 정신」(40년) 등의 평론을 발표한것.이런 글에서 그는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개성적인 삶의 탐구여야 한다』며 정치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순수문학이야말로 문학의 본령이라는 주장을 폈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이같은 순수문학 옹호는 그후 그의 창작에 일관되게 깔리는 철학적 기조가 된다.해방공간의 좌­우 논쟁,70년대말 순수­참여 논쟁 등을 거치면서 그는 문학의 도구화에 반대하고 생명과 인간성 탐구를 문학 고유의 역할로 여기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이때문에 리얼리즘 문학이 성했던 80년대엔 삶의 현실이나 인간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문단 한켠의 거센 비난에 맞닥뜨리기도 했다.그러나 그와 이념적으로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시인 고은씨조차도『동리문학은 한국소설의 원점』이라고 평할 정도로 그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그는 한국문인협회장·예술원회장·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학장등을 거치면서 이념과 사상을 떠난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른바 「김동리 사단」을 거느리는 문화예술계의 대부로 군림하기도 했다.장용학·손창섭·박경리·이범선·최일남·한말숙·정을병·이문구·서영은·문순태씨등이 그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고 천승세·김원일·송상옥·유현종·오정희씨등이 서라벌예대 제자들이다. 문학과 삶의 동반자였던 부인 손소희씨가 작고한지 얼마 안된 지난 87년 30세 연하의 문단 제자 서영은씨(52)와 결혼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나 90년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념의 시대가 지나가고 90년대에 접어들어 동리문학의 짙은 문학성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그의 단편 대표선집이 나오고 연구논문들이 책으로 묶이는 가운데 민음사에서는 「김동리 문학전집」을 7월부터 2∼3차에 걸쳐 펴낼 예정이다.여기에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을화」를 포함한 그의 모든 소설들과 문학평론,에세이들이 수록된다.한국 토속정서에서 인간의 보편적 구원문제로 확대돼온 그의 문학적 지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이 책이 유작이 되는 셈이다. □연보 ▲1934년 조선일보 시 「백로」,35년 중앙일보 단편 「화랑의 후예」,36년 동아일보 단편 「산화」 각각 신춘문예당선. ▲36년 「무녀도」,39년 「황토기」,41년 「소년」발표후 8·15까지 침묵. ▲1946년 한국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초대회장,「윤회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위원장,장편 「해방」. ▲1950년 문교부 예술위원,서울시 문화위원,「인간동의」 ▲1954년 예술원회원,「마리아의 회태」. ▲1955년 「흥남철수」「밀다원시대」「실존무」. ▲1957년 장편 「사반의 십자가」 ▲1961년 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신불」. ▲1966년 「까치소리」「송추에서」「백설가」. ▲1967년 3·1문화상 수상,대표작선집 전 5권 간행. ▲1968년 국민훈장 동백장,중편「극락조」. ▲1971년 장편 「아도」. ▲1973년 중앙대 예술대학장 장편「삼국기」 수필집「사색과 인생」 ▲1974년 장편 「이곳에 던져지다」. ▲1978년 장편 「을화」 수필집 「취미와 인생」. ▲1981년 예술원회장. ▲1983년 5·16민족 문화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예술원 원로 회원.시집 「패랭이꽃」. ▲1987년 장편 「자유의 역사」(59년 신문 연재작). ▲1990년 소설가 협회장.7월 30일 뇌졸증으로 쓰러짐. ◎한국문학의 영원한 큰별이시여…/고 김동리 선생 영전에/한승원 작가 이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선생님 혼자서만 아시는 그 깸없는 무상한 오랜 잠 주무시더니,그 잠 깨시기 바쁘게 선생님 어디로 떠나가시려 합니까.간밤 검은 구름장들 지붕머리 짓누른채 궂은비 흩뿌리고,그 습한 어둠속에서 허리 꼬며 강물 슬프게 앓아대고,북한산 지빠귀 한 마리 제 잠 설치게 하더니,신새벽의 푸른 빛살 속에서 선생님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고무줄처럼 잡아당기기도 하고 보석처럼 단단하게 앙금지게 해놓기도 하고,몇 천억겁을 찰나로 오그라들게 하기도 하고 그 찰나를 다시그 몇 만억겁으로 늘어나게 하기도 하는 혼자서만 아는 시간을 주무르고 노시다가 그 시간을 서리서리 호주머니에 넣으시고 가시는 거기가 어디입니까. 영화도 많았고 욕됨도 많았던 이 땅,이곳에서의 머무름은 얼마만한 잠시였습니까.이제 가시는 그곳은 「달」속의 달이와 「무녀도」의 을화가 있는 곳입니까.「황토기」와 「등신불」속의 그들이 살고 있는 그곳입니까. 30년 저쪽의 어느 늦은 가을날,저희들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뚝섬으로 소풍을 갔을 적에,저는 폭음을 하고 취한 척하고는 선생님께 건주정을 하였고,호래자식인 저를 유도하는 한 친구가 못됐다면서 모래밭에 내리 꽂았었습니다.이튿날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찾아간 저에게 싱긋 웃으시며 어깨를 두들겨주시던 선생님의 그 인자스러운 동안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속된 저로서는 지루하게만 느껴진 그 깸없는 신비한 잠을 주섬주섬 사려담고 문득 떠나가시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제 가슴을 쓰라리게 하지만,저는 결코 슬퍼 울지 않습니다.이 밤,저는 북한산 위의 별들을 보고 있습니다.지금 선생님께서 이르게 되는 그곳은 선생님께서 신비롭게 형성해놓은 세계일터입니다.제가 쳐다보는 별처럼 떠있는 비가시적인 커다란 시공. 우리들의 우주안에서는 가는 것은 없고 오는 것만 있습니다.헤어지는 것은 헤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사실은 긴긴 강의 하구에 잇닿은 바다에서 다시 만나 어우러지게 됩니다.그것을 굳게 믿는 저는 별로 오래지 않은 시간안의 즐거운 회후가 예정되어 있음도 믿습니다.선생님 그곳에 먼저 가셔서 큰 예술학과 하나 마련해놓고 계십시오. 저 선생님의 그 학교에 또 입학하겠습니다.선생님,명명한 그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 행정절차심의위 발족

    총무처는 31일 행정절차법의 제정을 위해 박윤흔 전환경처장관등 각계 인사 20명으로 구성된 행정절차법안심의위원회를 발족하고 그 첫 회의를 개최했다. ◇심의위원명단 ▲위원장=박윤흔 전환경처장관 ▲위원=김이열 전중앙대법대교수 최송화 서울대법대교수 김남진 고려대법대교수 천병태 부산대법대교수 최창호 건국대행정학과교수 한창규 성균관대법대교수 이상돈 중앙대법대교수 양승두 연세대법대교수 김철용 건국대법대교수 이재후 변호사 김경회 변호사 황우려 감사원감사위원 유승삼 중앙일보논설위원 우승용 문화일보논설위원 이용환 전경련이사 조한천 한국노총정책실장 최경선 대한상의조사이사 박용환 총무처소청심사위원 김홍 대법제처법제조사실장 ▲실무위원=오준근 한국법제연구원수석연구원 홍준형 서울대행정대학원교수 문동후 총무처조직국장 오강현 통상산업부산업정책국장 최재범 서울시도시계획국장
  • “「한국형 복지」청사진만들라”/김대통령,「국민복지기획단」출범에당부

    ◎“성장·복지 균형이루게” 김영삼 대통령은 18일 『이제는 국가의 발전된 수준에 걸맞게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가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지속적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 국가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 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이홍구 총리와 이성호 보건복지부 장관등 관계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복지 기획단」의 운영계획을 보고 받고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루는 한국형 생산적 복지의 청사진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삶의 질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도 개선되어야 하고 사회 안전체계도 확립되어야 한다』면서 『앞으로 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 저소득 불우계층과 노인과 여성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기획단에 총괄및 재정,보험제도,복지프로그램 등 3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21세기 우리나라 국민복지제도의 청사진과 합리적인 추진전략을 제시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 3월23일 「삶의 질의 세계화」를 위한 복지구상을 밝히면서 중장기 국민복지 청사진 제시를 위해 「국민복지기획단」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기획단 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단장 이성호 보건복지부장관,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 ▲위원조건호 총리실제3조정관,장승우 재정경제원1차관보,정태수 내무부차관보,김동태 농림수산부농업정책실장,인경석 보건복지부사회복지정책실장,안영수 노동부고용정책실장 문옥윤·김상균(이상 서울대),최 광(한국외국어대),성경륭(한림대),윤정석(중앙대) 연하청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김대모 한국노동연구원장,이계식 한국개발연구원재정복지팀장 고학용 조선일보논설위원,유승삼 중앙일보논설위원 인명진 행정쇄신위위원,황정현 전경련부회장,이주완 한국노총사무총장
  • 서울소재 10개 신문사/불공정행위 여부조사/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는 6일 주요 일간지들이 독자확보를 위해 과다한 경품을 제공한다는 소비자단체의 신고에 따라 8∼20일 조선일보 등 10개 일간지를 대상으로 실태파악 조사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조사결과 불공정 행위가 드러나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불공정행위 기간 중 매출액의 최고 1백분의 2)부과 조치를 받게 되며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치된다.조사대상 일간지는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등이다. 공정위는 10개반,총 40명을 투입해 신문사의 ▲신문판촉을 위한 부당한 고객유인 ▲부당한 경품제공 ▲부당한 판촉활동과 관련된 일반 불공정거래 행위를 집중 조사한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등이 신고한 내용에 따르면 일부 신문사들이 위성안테나를 달아주거나 쓰레기봉투 및 체중계 등을 제공하면서 구독을 강요하는 것으로 돼 있다며 관련 규정을 위반했는 지를 면밀히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북경발언 파문」 이후 20일/삼성 발빠른 「수습행보」

    ◎그룹분리 2단계 대책 곧 발표/이건희 회장 일 장기체류 “주목” 지난달 13일의 「북경발언」파문 주인공인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은 국내에 없다.그는 지난달 26일의 삼성승용차 기공식을 마치고 1개월 예정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18일 닛케이신문 주최인 「아시아의 미래」라는 포럼에서,삼성의 경영과 21세기의 비전을 주제로 발표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룹의 설명이다.닛산자동차를 비롯한 재계인사를 만난다는 것도 방문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목적도 있지만,이회장은 특별한 목적없이 서둘러 일본에 갔으며,또 장기 체류한다는 인상을 준다.그의 도쿄구상과,돌연한 일본행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예상대로」 북경파문 수습을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왔다.삼성은 1단계 조치에 이어 빠르면 주중에 수습 2단계 조치로,중앙일보와 제일모직·호텔신라의 계열사 분리절차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에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이회장과 삼성생명 등이 제일합섬의 주식을 새한미디어에 처분,제일합섬을 이회장의 형인 고이창희가에 완전히 넘겼다. 삼성은 1단계로,지난달 27일에는 전자소그룹 계열사와 거래하는 중소기업에게 어음 대신 7천8백억원을 현금 결제하고,협력업체에게는 6천2백억원의 지급보증을 서주는 것 등의 중소기업 지원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삼성은 모두 1조5천억원의 지원이라고 발표했지만,삼성이 어음 대신 현금지급에 따른 금리비용 90억원 등을 고려하면 삼성의 실부담은 연 3백억원 정도에 불과하다.삼성이 부풀려졌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으면서도,중소기업 지원대책을 서둘러 발표한 것은 정부와의 관계개선을 위해서였다는 게 중론이다.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이 지난달 25일 30대그룹의 기조실장들에게 중소기업 지원을 촉구하는 등 정부가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부익부 빈익빈에 곤혹스러워 한다는 것을 아는 삼성이 정부에 도움을 주는 뜻에서 지원책을 내놓았다는 얘기다. 삼성은 또 이날 하오에는 이수빈 전 비서실장과 소병해 전 비서실장을 각각 생명 회장과 신용카드 부회장에 선임하는 등 옛 실세를 경영일선에 복귀시켰다.박경팔 전 전관 부사장은 전자 부사장에 선임됐다.이 역시 분위기 일신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특히 이수빈 회장과,박부사장이 TK(대구·경북) 출신이라는 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눈여겨 볼 대목이다.
  • 조작가 문신(이 세기의 인물탐구:73)

    ◎“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예술가”/우주를 향한 기운응축… 작품마다 생명력 넘실/푸른창공·지평을 배경할때 절묘한 조화 이뤄/유별난 애향심… 지난해 마산에다 「문신미술관」건립 개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며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말없는 조상들의 세계에 파묻혀 속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이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문신은 그의 문신미술관과 함께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머물러있다. 마산시 추산동 52번지,합포만이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문신미술관에 들어서면 그가 왜 「프랑스의 영광」으로 불리게 됐는지를 한눈에 당장 알아볼수 있게 된다.10여년전 그곳에 들렀을 때만해도 주변은 황폐한 황무지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산마다 온통 작가의 숨결과 손길이 깃들여 추산동 산기슭은 고매한 명작으로 빛나고 있다. ○추산동 기슭에 정착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흑단이나 브론즈나 스테인리스스틸을 막론하고 형체외의 형체와 색채외의 색채를 구사하면서 우주의 섭리에육박하려는 의지가 강하다.수직으로 치솟은 구조는 자연스러운 시메트리를 성립하고 유성과 같은 순환의 동작은 견고한 타원형을 유지하고 있다.원과 고와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를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 음률의 시각화라 할 수 있다.그래선지 그의 작품들은 푸른 창공과 바다를 배경으로한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서 있을 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그의 제작노트에 보면 「인간은 엄연한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은 현실의 대지에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영토를 조성한다.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올림픽 88」은 맴돌듯 창공을 차고 오르는 미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꿈의 상징일 것이다. 프랑스의 국제예술평론가인 자크 도판은 「이 예술가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라고 지적한바 있다.그의 예술의 독창성과 세련미와 영감에 가득찬 천재성으로 인해 「문신은 미래가 기억해야할 예술가」이며 알렉산더 칼더나헨리무어 자코메디의 작품이 저마다 특성이 다르듯 문신의 작품은 그것이 「문신적인 포름」임을 명확하게 과시하고 있다고 단정한다.일찍이 근원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의 개인전」이란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우주를 향해 성장하는 기운을 응축하면서 유기적인 생명을 지속시키는 예술작업에 놀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그는 또한 「예술가는 흉중에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녀야하며 세파와 척박한 시속기에 타협하지 않는 「문신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찬사해 마지않았다.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이나 허명에 들뜨지 않아 반듯하게 자신의 행동을 지켜왔고 예술원 같은데서 동료작가들이 그의 영입을 권유할 때도 일별하지 않는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을 지켰다.오죽하면 소설가 이병주씨는 그의 인생과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격렬한 인간을 말하다보니 나의 말에 빈곤을 느낀다」고 고백했을 정도다.밤낮을 통해 이미 신비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절세의 예술가를 짧은 지면에 거론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서 석공·목수일도 그는 파란의 굴곡이 심한 운명속에서 유목처럼 흘러버리지 않고 자신의 풍모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버린 천성의 예술가다.예술가가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고집과 정열과 기품이 융합되어 어둠속에서도 광명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고 곤경에 처한 경우에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세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태어날때부터 순탄치 않았으나 예술을 하기 위해 이미 설정해논 배경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는 당연하게 감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그는 일본 규슈의 탄광에서 일하던 문찬이(56년 작고)씨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와 헤어져 외롭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열여섯살 되던 해 혼자서 일본에 밀항,구두닦이 극장 포스터붙이기 산부인과조수 영화사잡일등 안해본 일이 없지만 결단코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다.오히려 자신이 나가야할 방향과 내부에 도사린 무수한 광맥을 예지하고 있었고 심재인 흑단을 발견하면서 줄기차게 창작을 잉태시켰다. ○24세 연하와결혼 그 시절 그가 그린 자화상은 목덜미 부분이 벌겋게 술에 취한 색깔이 나타날 정도였으나 주변에서는 이 초상화를 보고 「자신의 화업에만 열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풍겨나는 자기선언이며 앞날이 보장된 재능의 표출」로 해석해 주었다. 그는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해방과 함께 귀국, 주로 서양화·채화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각오로 61년 도불, 처음 3년간은 고성의 보수 수식작업을 맡아 석공 목수 미장이로 일했고 그의 이런 기간은 곧잘 석공 목수를 거쳐 조각가가 된 로댕에 비유되기도 한다. 70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의 국제심포지엄에서 13m 높이의 거대한 목조각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그는 유럽 각지의 유수한 조각전에 초대되는등 굳건한 형태적인 조형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마산에 정착한 것은 프랑스에서 영구귀국한 80년부터다.유난히 애향심이 강했던 그는 「고향은 멀리 떠나서 살면 더욱 잊을 수 없는 곳」이며 그를 낳아준 고향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미술관건립을 계획,이거대한 작품이 고향의 번영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57세 되던해 5월, 지금의 부인인 최성숙씨와 결혼,서울대미대출신의 그는 노래하는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 그들은 24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동반자로 낙을 나누면서 미술관 건립에 힘을 합쳐왔다. 지난해 문신미술관의 화려한 개막행사와 함께 서울에서 「문신예술 50년 회고전」을 열때까지 그는 하루 10시간의 작업을 할만큼 건강체로 보였으나 실은 몇년전부터 위암을 앓아왔고 최근 다리를 다쳐 치료받는 과정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어 식이요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더구나 혼신을 다한 미술관부근에 경관을 가로 막는 아파트공사로 우울할대로 우울해 있다.그리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었던 보람찬 결실을 서로가 아끼고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무참하게 훼손시킨 것에 실망감과 상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경남대가 그의 미술관건립과 관련,「향토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마산시민들에게 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데 공헌」했다는 이유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주는 자리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나와 좌중을 숙연케 했다.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장엄하게 산화하고자 한다」면서 「나의 전생애가 집약된 미술관을 민족예술의 성지로 가꾸고 싶다」는 내용이 그것이다.물론 훌륭한 예술가가 품은 어떤 상념은 한낱 시류에 휩쓸려 소침해 질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널리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예술가다.따라서 그의 거대한 작품은 이미 「결정된 신전」이며 우주를 향해 예술가가 도달해야할 궁극의 목적은 「청명」일 것이다.또 그의 작품은 진흙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단엄하고 간경하며 염려하고 정결하다. 자크 도판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미술관은 「매혹적인 거대한 보석」으로 수목같은 싱그러운 숨결과 시적인 서정의 향기마저 흩뿌린다.「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작가」인 그는 눈을 감으면 이제 우주가 보이는 경지다.결국 별빛같은 그의 작품들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을 이룬 그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머리위에서 눈부신 광휘로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일 것이다. □연보 ▲1922년 마산출생 ▲1938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졸업 ▲1945년 귀국 ▲1949년 서울 개인전(동화화랑) ▲1961년 도불,파리 라버넬성 수식작업 ▲1965년 일시귀국,홍익대 교수,재도불전(신세계화랑) ▲1967년 파리정착 ▲1970∼72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 국제심포지엄서 13m의 토템제작,스위스 발르 국제예술시장전,파리 현대미술관 살롱 드메,파리 크라반화랑 개막전등 살롱전 그룹전참가 ▲1974년 서독 함부르크 개인전(맨슈화랑),이탈리아에서 국제야외조각전 ▲1976년 서울 진화랑 초대전,파리 메트르알베르 화랑 개인전 ▲1979년 파리 오를리슈드 국제공항 예술화랑및 서울 현대화랑초대전 ▲1980년 부산 국제화랑 수도화랑초대전,마산문화회관 작품전 ▲1981년 서울 개인전(미화랑) ▲1983년 서울 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5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서울 개인전(예화랑) ▲1987년 회화작품초대전(한국화랑) ▲1988년 88서울 올림픽 예술의 올림피아드 25m「올림픽 88」제작 ▲1989년 동구라파 순회전 ▲1990∼92년 유럽순회 회고전(자그레브 프로스토박물관,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파리 현대미술관,로마 뒤브로브니크), 프랑스 예술문학영주상 ▲1993년 중앙일보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년 문신미술관 개관 「불빛 조각축제」, 「문신미술 50년 회고전」(조선일보 미술관) ▲1995년 경남대서 명예문학박사
  • 신문판매 부당경품 조사/공정위/구독료 인상담합도

    ◎「중앙」·「세계」월간지에 과징금 부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사들의 부당한 경품제공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곧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조사 결과 불공정 행위가 드러나면 시정명령 또는 과징금을 부과받게 된다. 김선옥 공정위 사무처장은 26일 『그동안 신문사들의 과다 경품제공에 관한 구두 제보는 들어왔으나 서면신고는 접수되지 않아 당장 조사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며 『그러나 최근 신문사들의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고 일부 단체 등에서도 서면신고 의사를 전해와 가까운 시일내에 조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 처장은 『그동안 신문사들의 과당경쟁에 대해 주시하면서 정황파악 정도는 계속해 왔으나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조사착수에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었다』며 『서면신고가 접수되면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많은 신문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게 되면 일단 신문사들이 부수확장 과정에서 독자에게제공하는 경품이 경품고시의 기준에 위반되는 지부터 시작해 구독료 담합인상 등 다른 불공정거래 행위가 드러날 경우 조사범위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시정명령도 함께 공정거래위원회는 월간지 구입 고객에게 기준 이상의 경품을 제공한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사에 각각 시정명령과 함께 3천만원과 2천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26일 공정위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3월에 창간된 여성 월간지 「칼라」(판매가격 5천원)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권장 소비자가격이 1만2천5백원인 립스틱을 주었고 세계일보는 「클라쎄」(6천원)를 매입한 고객에게 소비자가격이 1만8천원인 야채팩을 제공했다.
  • 한국신문의 반사회성/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서강대 언론대학원 특강

    ◎분별없는 증면경쟁… 광고수익 증대만 급급/일 보다 신문면수 많아… 용지난에 연 3천억어치 수입해야/배달 안되는 신문이 발행 부수의 20% 넘어/수백억 흑자 「대기업언론」은 세계화 선도·정보 전달기능 소홀 서울신문사 손주환 사장은 지난 22일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원장 최창섭)주최 「95춘계세미나」에 초청받아 「한국언론의 세계화과제」를 주제로 특강을 실시했다.손 사장은 이 자리에서 현재 일부 언론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무절제 무한경쟁으로 신문들의 면수는 늘었지만 주임무인 정보전달기능은 오히려 후퇴했다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발행부수공사(ABC)제도를 하루속히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손 사장의 특강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경어는 평어로 바꾸었다. 본인은 만26년동안 언론계에서 일했던 전문 언론인으로서,정계와 정부에서 8년여를 봉사하면서 언론을 관찰한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다시 언론계로 돌아와 지난 3개월동안 보고 느낀바가 적지않다.그중 한국언론의 문제점 가운데 바깥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야 할 대목으로 여겨지는 내용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87년 11월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그러고서,88년 2월 6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신문등 정기간행물의 등록이 완전히 자유화됨으로써 양적인 측면에서 우리 신문들의 경쟁시대가 시작됐다.그것이,다시 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이후 개방화 시책에 편승해서 신문부수의 경쟁,그리고 신문의 증면경쟁에 돌입하면서 지금과 같은 신문계의 무한경쟁시대로 바뀌었다.93년에 중앙일보가 1일발행 면수를 24면으로 늘리고 94년 9월1일에 다시 하루 48면을 최초로 발간함으로써 증면경쟁은 대단히 위험한 수위로까지 높아졌고 중앙일보가 지난 4월15일 조간화 됨으로써 우리나라 신문들은,특히 4개신문의 주도로 걷잡을 수 없는 무절제의 무한경쟁시대에 들어갔다. 신문사간의 경쟁이 시장경제원칙에 부합하고 또 명실상부하게 공정한 페어플레이라면 그것은 권장할 만하다.그러나 현재 이 신문들이 보여주고 있는 무절제하고 무제한적인 불공정 과당경쟁은 국가차원의 부작용과 반사회적 역작용을 가져올 수 있으며 그 폐해는 국가발전과 사회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광고점유율 60% 지난 62년에 우리신문의 면수는 8면 체제였다.그후 81년에 언론기본법에 묶여서 12면 체제로 유지되었다.87년 정기간행물 등록의 자유화가 법제화된 이후에 면수의 변동을 보면 88년 4월에 16면,90년에 24면,93년에 32면으로 점차 확대되어 가다가 94년 9월1일 중앙일보가 처음으로 40면대 체제로 발행을 시작했다.이어서 94년말부터 조선·동아·한국이 48면 발행체제에 들어가면서 무한경쟁은 가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이들 일간지는 페이지수 늘리는 경쟁과 더불어 TV연예중심의 주말부록을 발행해서 현재 각 신문들,특히 4개 신문의 면수경쟁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처럼 질주하고 있는 양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이렇게 면수를 늘리는 우리 신문들의 질은 어떠한가.우리사회의 정보량과 일반독자의 신문열독률이 하루 10분에서 20분정도밖에 안된다는 통계수치를 종합해 보면 하루 48면은 낭비라고 말할 수 있다.일본의 유력 전국지는 조간과 석간 양간제지만 조간 석간을 합쳐서 40면내외이다.조간으로만 말하면 아사히(조일)와 요미우리(독매)·마이니치(매일)가 다 28면이다.일본과 우리의 국력을 대비해 본다면 GNP가 10분의1,그리고 1인당 GNP는 우리가 8천5백달러,일본은 3만달러를 훨씬 넘는다.무역량도 4대1의 비율이다.어디를 보더라도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정보량이 많을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량이 적은 우리가 일본의 신문 보다도 지면이 더 많다면 이것은 합리성과 타당성이 결여되었다고 일단 지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신문의 질과 관련해서 우리가 관찰해야 할 대목은 증면경쟁하고 있는 신문들이 독자에게 뉴스의 양과 질면에 있어서 얼마나 서비스를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우선 기사와 광고량 비율의 변화추이를 살펴보면 동아일보가 88년에 46.2%였던 광고점유율이 94년에 58.4%로 뛰었다.이것은 거의 40면대의 체제가 될 때이다.그리고 금년 1·4분기는 56.6%이다. 조선일보는 88년 45.5%에서 94년에는 60.1%까지 뛰었고 금년 1·4분기는 55.4%였다. 한국일보는 88년 44.5%에서 94년에 55.6%까지 뛰고 금년 1·4분기는 56.1%였다. 중앙일보는 88년 45.5%,94년 50.2%,그리고 금년 1·4분기 48.0%로 되어있다. 참고로 서울신문은 88년 41.2%가,94년 40.7%,그리고 금년 1·4분기에는 41.9%로서 40%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4개지의 광고점유율은 88년에 45%내외 선에서 지금은 60% 선까지 확대 되었음을 알수 있다.날짜별로 보면 매우 유감스럽게도 65%의 광고점유율을 보인 때도 있다. ○대규모 용지 파동 우리나라 신문들의 광고수입 의존도를 보면 지대수입과 광고수입비율이 3대7로서 광고수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다.일본은 6대4로 지대수입이 높은 것과 대조적이다. 종합적으로 얘기하자면 신문의 면수는 늘고 주임무인 정보전달 기능은 반대로 후퇴했다고 할수 있다.더구나 광고에 있어서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는 3페이지 연속으로 전면광고를 내는 사례가 다반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매우 유감스러운 것은 4페이지까지 전면광고가 연속으로 게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이것은 신문들이 얼마나 뉴스전달의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그러한 3∼4페이지 전면 연속 광고의 효과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4개 신문의 증면경쟁은 광고수입증대가 목표이자 목적일 뿐 독자들을 위한 정보전달 기능의 질적향상에는 역행하고 있다고 할수있다. 혹평한다면 신문들은 정보화·국제화시대에 다양한 정보를 공급해야 할 언론의 시대적 사명을 스스로 망각하고 오로지 신문시장의 석권을 통해서 광고수입만 증대해 보겠다는 상업주의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과연 이렇게 증면경쟁을 해도 좋은가.이같은 4개 신문의 증면경쟁으로 초래되는 신문용지 수요폭등은 벌써 대규모 신문용지 파동으로 나타나고 있다.95년 신문용지 수요는 1백20만t으로 추계된다. 이는 4개 신문이 동시에 48면 경쟁체제로 들어가기 이전의 수치이기 때문에 실수요는 이 보다도 더 높을 것이다.그런데 현재 국내 공급능력은 90만t에 불과하다.1백20만t 그대로본다 하더라도 30만t의 수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수입에 드는 돈은 금년 4월의 수입용지값 기준으로 무려 2천7백억원에 이른다. 그리고 용지 생산에 필요한 펄프와 고지의 국제가격이 계속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30만t의 수입총액은 이 보다도 더 높아질 수 있다.여기에 지난 여름 계속된 가뭄으로 제지업계는 신문용지공급량을 10% 줄였다.거기에 국내 최대 제지회사의 화재로 해서 추가로 15%의 공급감소가 되었기 때문에 신문사는 물론,용지를 사용하는 전 업체가 초비상 상태이다.국내 제지업계는 주로 대수요자인 4개 신문의 용지공급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특히 지방지와 특수지들의 용지사정은 사상 유례가 없는 최악의 상태에서 고전하고 있다.이 수치는 신문증면 경쟁이 얼마나 엄청난 액수의 외화를 낭비하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면 이렇게 신문 용지의 공급이 달려서,엄청난 외화를 들여서 수입을 해오는 이런 상태에서 면수를 늘린 신문들의 경쟁은 과연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그리고 광고주들은 자신들이 낸 광고료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는가. 48면의 증면과 일부 신문의 조간화로 신문들은 많은 확장지를 살포하고 있고 기존 신문판매망이 교란되고 있는 실정이다.돈은 안받더라도 독자들에게 신문이 배달된다면 그래도 괜찮다고 할수도 있다. 돈을 받느냐 안받느냐는 신문사와 독자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그러나 한국신문의 고질적 병폐는 신문사에서 전국 보급소로 보낸 신문뭉치들이 띠도 풀지않은 그 상태대로,배달되지 않고 바로 제지공장으로 가고 있는 신문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이다.작년에 어느 국내 한 신문이 다른 여타 신문의 배달상황을 암행조사한 적이 있었다.그 회사의 간부로부터 들은 조사결과는 찍은 신문의 40%가 배달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ABC제도 시급 이와같은 수치는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문에 있어서 배달 안되는 신문의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려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가 있다.인쇄후에 배달되지도 않고 곧바로 제지회사나 고지수집상(으로 폐지로 들어가는 신문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발행부수의 20%가 넘는다는 것이 신문업계의 공통된 추정이다. 발행부수의 20%만 보더라도 하루에 약3백만부의 신문이 독자 손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폐지로 제지공장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것을 94년말 현재의 면수를 기준으로 해서 양으로 본다면 연간 약13만t으로 추산된다.거기에 증면경쟁의 결과 4만t이 추가된 것으로 추계된다.결국 독자들 손을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제지회사로 들어가는 수치는 17만t이 된다. 국내 용지값 기준으로만 해도 무려 1천1백억원이상이나 되는 돈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이것이 우리 신문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막대한 국가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이것이야말로 한국신문이 우리 사회에 저지르는 최대의 죄악이라고 혹평받을 일 아닌가.그렇다면 광고주들은 그것도 모르고,찍히고 있는 신문부수만 보고서 그것이 모두 독자들 손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고 광고료를 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광고주들은 정확한 배달부수를 확인해야 하며 확인해야 할 권리가 있다.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ABC제도의 정착은 오늘의 중요한 시대적 과제의 하나라고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신문이 어떤 내부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를 솔직하고도 정직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신문이 안고 있는 내부적 문제의 가장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신문들이 그 재력을 배경으로 불공정 경쟁을 가속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엄청난 광고수익으로 연 수백억원의 흑자를 내는 몇 개의 대기업 신문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대기업 신문사와 재벌소유 신문사들이 무절제하고 무제한적인 경쟁을 벌임으로써 여러가지 반작용과 역작용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신문들은 독자를 위한 증면이 아니라 패권주의 경쟁으로 기업윤리마저 망각한채 그들끼리의 다툼에만 열중하고 있다.이런 결과는 언론의 공적기능과 전문직업으로서의 사회적 신뢰에 치명적 타격을 주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자율기능도 상실 세번째는 한국 언론계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율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신문협회가 증면억제권고 결의를 한 바 있다.이 결의를 해놓고 그 결의의 대상이 되는 어느 신문사도 그것을 존중하지 않았다.존중하기는 커녕 오히려 증면경쟁만 가열시켰다.제지회사들이 1년에 무려 25%나 신문용지값 인상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수밖에 없을 정도로 신문사들의 결속력은 사라졌다.오로지 동업끼리의 부당경쟁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신문 1백년사에 오늘만큼 큰 위기의 시대가 있었는지 동업의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한국신문이 언론자유를 만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문직업으로서의 권위와 막중한 시대적 사명,그리고 공적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
  • 삼성/북경파문 진화/「깜짝 카드」 준비/이건희 회장 오늘 귀국

    ◎계열사 분리·중앙일보 독립 등 검토/내부지분 축소 가능성도… “새달 발표” 「북경발언」파문을 몰고온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18일 하오4시 귀국한다.그동안 파문을 조기에 진화하기 위한 조치를 준비해온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귀국후 「깜짝카드」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삼성그룹 비서실은 이 회장의 회견이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이같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재계의 안전기획부」로 불릴 정도로 정보력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삼성그룹이 이번의 「북경파문」에도 각종 안테나와 정보망을 동원해 손익계산을 해본 결과다.재계에는 분위기전환용으로 「굵직한」 발표를 준비중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승용차에 진출하기 전에도 구조조정계획 발표,사회봉사단 발족,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이건희회장의 특강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선보이며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드는데 노력해 왔다.언론과 사회분위기에 신경을 써왔다는 얘기다.이번 대책도 분위기 전환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홍석현 중앙일보사장이 지난 16일 매형인 이회장과 만나기 위해 중국민항편으로 급거 중국으로 떠난 것도 이번 사태의 파문과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삼성이 준비중인 「깜짝 카드」는 무엇일까. 준비중인 비장의 카드로는 우선적으로 ▲계열사분리 조기 구체화 ▲중앙일보의 확실한 분리 등이 꼽히고 있다.우선적으로 이같은 내용이 검토되는 것은 그동안 언론과 국민에 호감을 주기 위해 발표한 구조조정계획의 실천의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고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삼성그룹은 지난해 10월27일 제일합섬을 비롯한 16개 계열사를 그룹에서 분리하고 삼성건설을 삼성물산에 합병시키는 등 10개 계열사를 합병,정리하는 내용의 「제3차 계열사정리 및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그러나 아직까지 이 계획의 구체적 추진 흔적은 많지 않다. 삼성그룹이 계열사의 분리 및 정리보다 한발 앞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내부지분율 축소 등보다 파격적인 안을 발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국면전환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빠르면 다음달중에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삼성의 대응조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삼성 시시각각 「말뒤집기」 자동차업계 “발끈”

    ◎“상용차만 전념”→“타사인력 안써”→“스카웃 왜 막나”/“스스로 각서쓰고 딴소리” 거센 비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13일 북경 특파원들과의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북경발언」 중 승용차 부문 내용에대해 현대·기아·대우·쌍용자동차 등 기존 업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가까스로 진정국면에 들어 선 삼성의 승용차시장 진입파동이 재연되는 조짐이다.이회장은 『정부가 사람 데려오는 것을 막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어떤 부품은 누구만 해야된다는 등 기업의 특정업종 진출을 규제하는 것도 시장경제를 원리로 하는 국가에서 헌법위반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는 삼성이 지난해 12월 「말 많은」승용차사업에 진출하면서 상공자원부(현 통상산업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이행 각서내용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이 회장은 『기존업체의 현직 및 퇴직자 중 2년이 지나지 않은 인력을 스카우트하지 않고,기존 완성차업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공급을 희망하는 업체로부터 부품을 조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5개항의 각서를 제출한 바 있다.「삼성그룹의 명예를 걸고」사업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이날 발언은 삼성의 신뢰성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이 회장의 회견내용이 전해지자,기존 업체는 즉각 반발하면서 삼성그룹과 이회장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있다. A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각서를 썼는데도 이렇게 말한 것은 삼성의 도덕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것』이라며 『삼성은 지난 92년 상용차에 진출할 때에도 승용차에는 진출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린 바 있다』며 『원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B자동차의 한 관계자도 『삼성은 항상 사업확장을 위해 약속해 놓은 뒤에는 딴소리를 해왔다』며 『스스로 각서를 제출한 뒤,정부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그는 『대그룹의 총수가 말을 바꾸는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앞으로의 사태를 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C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지금도 기존 자동차업체 직원을 유학시켜준 뒤 스카우트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며 『삼성이 각서내용을 지키지 않더라도,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뿐 법적인 제재는 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D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이행각서를 쓸 때부터 지킬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삼성의 잦은 말 뒤집기를 꼬집었다.기존 업체들은 이회장의 말에 따라 인력 스카우트가 지금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문제가 확산되자,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전체적으로 행정규제가 심하다는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예를 든 것에 불과하다』고 파장 축소에 노력하고 있다. ◎삼성그룹 분위기/“당분간 입조심”… 여론 동향에 촉각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귀국 여부 조차 밝히기를 꺼리는 분위기.파문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급적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15일 열린 삼성그룹 회장실 임원회의에서도 이같은 분위기는 역력했다.비서실과 홍보실 임원들은 16일로 예정된 이회장의 귀국에 정확한 언급을 않기로 했다.귀국할 수도 있고 늦출 수도 있다는 식이다.중국에서도 이렇다 할 통보는 없었다고 말한다. 다만 이 회장의 해외 출장은 한 달 남짓 연장되는 게 보통이라고 강조한다.이 회장의 장기 체류 가능성을 흘리며 여론을 떠보자는 것이다.재계의 반응이 친 이회장 쪽으로 기울 때까지 연막을 치자는 속셈인 것 같다. 전경련 임원들은 이날 이회장을 두둔했다.재계의 할 말을 대신했다며 시원스럽다고까지 말했다.정부의 경기 진정책을 비판한 최종현 전경련 회장의 발언보다 수위가 낮다며 오히려 언론의 무책임성만 성토했다. 그러나 삼성은 처음같은 강경한 대응을 자제했다.이 회장이 크게 당황한 데다 괜히 재계와 정부의 대결 구도로 비쳐지면 삼성 만 손해본다는 「삼성식」해답이 나온 셈이다.따라서 재계는 이회장이 당분간 중국에서 머물 공산이 크다고 본다.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중국 방문설이 나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 언론사 임원 1일 교사로/신문의 날 맞아 중학교에서

    ◎신문 기능·교육 활용성 강의 한국신문협회(회장 최종율 경향신문사장)는 6일 신문의 날 행사의 하나로 오는 10∼15일사이에 서울신문 등 각 신문·통신사 사장 또는 논설위원·편집국장 등을 1일 교사로 지역중학교에서 신문의 기능과 유용성및 교육도구로서의 활용성에 관해 45분동안 강의를 하기로 했다. 신문협회는 이를 위해 전국 15개 시·도교육청에 학교선정등 협조공문을 보냈으며 일본신문협회가 지난해 발행한 「신문과 교육」이란 책자를 번역,각사에 제공했다. 서울소재 신문·통신사의 방문학교및 일자는 다음과 같다. ▲서울신문(인창중·14일) ▲경향신문(예원여중·11일) ▲국민일보(신수중·미정) ▲동아일보(중앙중·미정) ▲문화일보(금란여중·미정) ▲세계일보(보성여중·미정) ▲조선일보(청운중·10일) ▲중앙일보(동명여중·11일) ▲한국일보(삼선중·12일) ▲연합통신(배화여중·13일) ▲매일경제(숭의여중·10일) ▲서울경제(덕성여중·11일) ▲한국경제(환일중·미정) ▲스포츠조선(덕수중·14일) ▲코리아헤럴드·내외경제(한양중·미정)
  • “한­미­일­중 정상회담 통해/김 대통령이 「북핵」 담판을

    ◎이기택 민주총재 관훈토론서 주장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30일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면서 『김대통령이 미국·일본·중국등 한반도 주변강국과의 정상회담을 제의,담판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하오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관훈클럽(총무 김건진)초청 토론회에 참석,패널리스트들과 일문일답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평양에 가서 북한을 설득하는 위치에 서고 싶다』고 방북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총재는 또 『내각제든 대통령 4년중임제든 아직 이 문제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므로 개헌 자체를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지역할거주의가 표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 정권에 반대하는 야당세력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한 뒤 다음 단계로 야권통합 또는 정계개편 수순을 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15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택한다면 당연히 부산에서 출마할 것』이라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권도전을 할 생각이고 이를 위해 지방선거 승리는 물론 8월 전당대회에서 재신임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대권도전 의사를 밝혔다.이날 토론회에는 황병선 서울신문정치2부장,오철호 연합통신편집부국장,이수근 중앙일보논설위원,유자효 SBS해설위원 등이 패널리스트로 참가했다.
  • 이기택 민주총재 초청/오늘 관훈클럽 토론회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는 30일 하오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관훈클럽(총무 김건진) 초청토론회에 참석,지방선거 대책및 북한방문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황병선 서울신문정치2부장,오철호 연합통신편집부국장,이수근 중앙일보논설위원,유자효 SBS해설위원 등 4명의 패널리스트들이 질문에 나선다.
  • 중앙일보 사장에 홍석현씨를 선임

    중앙일보사는 2일 상오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각각 열어 대표이사 사장겸 발행인·인쇄인에 홍석현씨를 선임했다.
  • “북 남침땐 러·중 지원 않을것/남북제안땐 「대화」 중재 용의”

    ◎방한 고르비 밝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은 8일 『남북한이 제안한다면 이를 받아들여 중재에 나서겠다』고 거듭 남북대화 중재의사를 밝혔다.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이날 「동북아정세와 세계평화」라는 중앙일보 주최 특별강연에서 이같이 밝히고 『중재과정에서 남북한 양쪽의 주장이 동시에 존중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면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지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남북교류와 관련해 그는 『먼저 이산가족상봉이나 대학생교류등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며 이어 경제협력과 군비축소를 점진적으로 추진,한반도의 분위기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북한의 김정일체제는 전세계 역사가 변해온 것처럼 옛 체제를 고수하면서 점차 변화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보고 『만약 북한이 고립정책을 계속한다면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 66세 사업가 「47년만의 학사모」/대명레저대표 조동오씨

    ◎48년 서울대정치학과 입학… 6·25로 포기/언론인거친기업가… 93년 딸 권유로 복학 언론인 출신의 6순 사업가가 서울대에 입학한지 47년만에 졸업,「최고령 재학생·최장기 졸업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25일 서울대를 졸업하는 대명레저 대표 조동오(66·영등포구 여의도동)씨. 조씨는 지난 48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 4학년때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조씨는 전쟁직후인 54년부터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57년 재등록을 했으나 바쁜 업무때문에 또 다시 등록을 포기,제적됐었다.그러나 조씨는 서울대 특례재입학 조치로 지난해 2학기때 65세의 나이로 재입학하여 「비교정치론」「일본정치론」「한국정치론」 등 5과목을 막내아들뻘인 후배들과 함께 배우며 졸업이수 학점 1백40학점보다 많은 1백48학점을 땄으며 전체 학점 평균은 4.3만점에 2.12점으로 높지 않았으나 5과목에서 2.92의 비교적 높은 학점을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대학 1년 후배인 김영국(65)전 부총창의 지도로 제출한 졸업논문은「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일 고찰」. 조씨는 93년 김교수를 비롯한 동창들의 권유를 받은뒤 복학을 망설이다 맏딸 윤정(35·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일어과)씨의 설득으로 학업을 잇게 됐다고. 54년 조선일보 수습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일본특파원,중앙일보 편집국장(74년)을 엮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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