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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靑·3당 대표 분기별 회동… 첫발 뗀 ‘협치’

    靑·3당 대표 분기별 회동… 첫발 뗀 ‘협치’

    朴대통령, 보훈처에 ‘임을 위한 행진곡’ 해결 방안 지시 가습기 살균제 필요시 국회에 여야정 협의체 구성 제안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은 13일 청와대에서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과 3당 대표 간 회동을 분기당 1차례씩 정례화하고,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3당 정책위의장 간 민생현안 점검회의를 조속히 열기로 합의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김광림 정책위의장,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변재일 정책위의장,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김성식 정책위의장 등 7명은 20대 총선 이후 처음 만나 여·야·청 소통방안과 북핵 문제,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조선·해운 구조조정, 가습기살균제, 세월호특별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협력방안을 논의한 끝에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 ‘여소야대’ 20대 국회 개원을 앞둔 첫 시험대에서 협치의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82분 동안 진행된 회동에서 청와대와 여야는 북핵 등 안보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공유하기로 했다. 우상호·박지원 원내대표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 지정을 요구한 데 대해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가 야당을 동반적 관계로 인정하고 소통 강화를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3당 대표와 분기 회동 외에 필요하면 더 자주 만나겠다”고 호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습기 살균제 파문과 관련, 박 대통령은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엄중수사 중인 만큼 필요시 국회에 여야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이와 관련, 청문회를 요구해 온 우 원내대표는 회동이 끝난 뒤 브리핑에서 “(여야정협의체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야당이 요구한 세월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국회가 여론을 감안해 잘 협의해 달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회담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진전된 안이 나오리라 예상 못했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도 “협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면 우 원내대표는 “성과도 있었고 한계도 있었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도 “몇 가지 좋은 결과를 도출한 회동”이라면서도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또 다른 견해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최유정 영장 ·홍만표 곧 소환… ‘전관’에 칼 뽑은 檢

    최유정 영장 ·홍만표 곧 소환… ‘전관’에 칼 뽑은 檢

    정운호(51)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법원 쪽’ 로비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온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6·여) 변호사에 대해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법조인 중 첫번째 사법처리다. 검찰은 정 대표의 ‘검찰 쪽’ 로비 통로로 지목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57) 변호사에 대한 수사의 고삐도 바짝 죄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이날 최 변호사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변호사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다가 지난 9일 전주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아왔다. 최 변호사는 정 대표와 투자사기 업체인 이숨투자자문의 실질 대표 송모(40)씨 등 2명으로부터 각각 50억원씩 100억원대의 수임료를 부당한 용도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최 변호사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12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최 변호사는 정당한 변론 활동이 아니라 정 대표와 송씨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와 교제하거나 청탁한다는 목적으로 수임료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최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 대표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액 수임료 반환 문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두 사람의 대질신문을 검토 중이다. 1300억원대 투자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숨투자자문 송씨 사건에서는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은 채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 선처를 요청하는 이른바 ‘전화 변론’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또 홍 변호사를 조만간 조세 포탈과 변호사법 위반 등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지난 10일 실시한 홍 변호사의 사무실·집에 대한 압수수색과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정 대표가 2013~2014년 검·경의 원정 도박 사건 수사에서 이례적으로 세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고, 지난해 10월 검찰로부터 횡령·배임은 제외된 채 도박 혐의로만 기소되는 데 홍 변호사가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법연수원 17기인 홍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과 대검찰청 중수부 중수2과장, 수사기획관 등 특수수사 계통으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연루됐던 한보그룹 비리 수사 등에 참여했다. 2009년에는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계기였던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수사 상황이 실시간으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망신 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 변호사는 2011년 검사장 직책인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이후 홍 변호사는 ‘돈 잘 버는 변호사’로 변신했다. 2013년 한 해에만 수임료로 91억여원을 신고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충격 털고 다시 뜨는 ‘ELS’ 잘하면 年 5% 이상 수익

    충격 털고 다시 뜨는 ‘ELS’ 잘하면 年 5% 이상 수익

    코스피200·유로스톡스50 ELS 상품 1분기 발행 前 분기보다 28~34% ↑ 변동성 낮은 주식·지수 기초자산 상품 녹인 기준 낮고 조기상환 쉬워야 유리 원금보장형·분산투자 원칙 지키면 OK 올해 초 홍콩발 쇼크로 주춤했던 주가연계증권(ELS)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증권사들이 앞다퉈 상품을 내놓고 있고,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졌다. 한때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불린 ELS는 원금 손실 위험이 있지만 잘 굴리면 연 5%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처임에 분명하다. ELS 투자 시 위험을 줄이려면 원금 손실(Knock-In·녹인) 기준이 낮거나 조기 상환 조건을 충족하기 쉬운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또 변동성이 낮은 주식이나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품을 활용하고, 분산투자 원칙을 지키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원금보장형 상품도 경우에 따라서는 쏠쏠한 수익률을 안기기 때문에 고려할 만하다. 1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3월 ELS 발행액은 4조 2454억원으로 2조원대에 그쳤던 1~2월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달에도 3조 5059억원어치가 발행되는 등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HSCEI) 급락으로 원금 손실 공포가 강타했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시된 상품들은 상환 기간을 줄이거나 원금 손실 위험을 낮추는 등 안정성에 중점을 둔 것이 많다. 예컨대 미래에셋증권이 내놓은 ‘리자드 스텝다운형 ELS’는 3년 만기 상품이지만 가입 후 1년까지 기초자산이 55% 미만으로 하락한 적이 없으면 조기상환된다. 도마뱀(Lizard)처럼 위기상황에서 꼬리를 자르고 ‘탈출’할 수 있다는 뜻에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ELS는 녹인이 보통 50~60%에서 형성되지만 최근에는 30%대로 떨어뜨린 상품도 등장했다. 하나금융투자의 경우 녹인을 38%까지 낮춘 상품을 출시했는데, 만기까지 기초자산이 가입 시점 대비 62% 이상 하락한 적이 없으면 원금과 이자를 챙길 수 있다. 만기 시점까지 기초자산 하락 폭을 따지지 않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수익률을 보장하는 노 녹인(No Knock-In) 상품도 있다. 또 변동성이 낮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품 발행도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코스피2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는 6조 4433억원어치가 발행돼 지난해 4분기 대비 28.6% 증가했다. 유로스톡스5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ELS도 34.1% 늘어난 5조 5592억원어치가 발행됐다. 홍콩항셍지수(HSI)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 역시 1월 1854억원, 2월 3148억원, 3월 4856억원으로 증가 추세다. HSI지수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종목을 대상으로 발표하는 지수로 H지수보다 수익률은 낮지만 안정성이 높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ELS는 그간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인식됐으나 올해 초 H지수 사태가 불거졌을 때는 고위험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며 “유럽 증시의 유로스톡스50 등은 중국에 비해 선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시장의 지수인 만큼 원금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ELS는 원금보장형과 비보장형으로 나뉘는데 기대 수익률이 높은 비보장형의 인기가 아무래도 더 높다. 올해 1분기 원금 비보장형 ELS 발행액은 지난해 4분기보다 28.3% 증가한 7조 2866억원인 반면, 보장형은 63.2% 감소한 2조 5675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원금보장형이 무조건 수익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03년 이후 발행된 모든 ELS를 대상으로 지난해 말까지 상환된 상품을 분석한 결과, 원금 보장형의 실제 수익률은 3.81%로 비보장형보다 0.88% 포인트 높았다. 비보장형이 손실을 낸 종목 위주 투자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또 ELS는 손실 확률은 낮지만 발생 시 규모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분석 대상 ELS 중 7.65%가 손실 상환됐으며, 평균 -37.28%의 수익률을 보였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대 40%까지 원금 손실을 감내할 수 없는 투자자는 ELS 비중을 줄이는 게 맞다”며 “ELS 투자 시에는 1~2개의 상품에 몰입하는 것을 피하고 가입시점도 분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핵 공포 위에 세운 방사능 방호기술… 체르노빌 재앙의 역설

    핵 공포 위에 세운 방사능 방호기술… 체르노빌 재앙의 역설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칠흑 같은 그 밤에 벨라루스의 국경과 가까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북서쪽 18㎞ 원자력 발전 지구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곤히 잠든 사람들의 잠을 깨울 정도로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었다. 20세기 최악의 원전 사고로 기록된 ‘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는 그렇게 시작됐다. 1971년 착공돼 1978년 5월부터 상용운전을 시작한 체르노빌 원전의 공식 명칭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공산주의 기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로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였다. 이 원자로는 감속재로 흑연을, 연료로 농축우라늄이 아닌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며 압력관 개수만 늘리면 원자로를 크게 만들 수도 있고 운전 중에도 연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동이 쉽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문제는 경수용 원자로나 중수용 원자로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시 체르노빌 원전의 부소장 아나톨리 다틀로프 수석엔지니어는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될 경우 대형사고를 막기 위한 냉각펌프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제 시간에 공급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기획했다. 그러나 실험 도중 안전장치에 공급되는 전력까지 차단되면서 원자로의 출력이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다. 원자로 안에 들어 있는 냉각수가 한꺼번에 끓어올라 압력이 높아지면서 1차 폭발이 발생했고, 수증기와 감속재인 흑연이 반응하면서 수소가 만들어져 2차 수소 폭발이 발생했다. 반응로 뚜껑과 원자로 콘크리트 천장까지 날려보낼 정도의 강력한 2차 폭발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누출됐다. 그 결과 20만명 이상이 방사선에 피폭됐다. 그중 2만 5000여명이 사망했다. 방사성 물질의 위험성이 사라지기까지는 9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1992년부터 원자력 사고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을 도입해 0~7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0등급은 사건이 발생했지만 안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는 척도 미만 등급이며, 1~3등급까지는 사고 영향이 원전 시설 내부에 국한된 ‘사건’, 4~7등급은 위험이 외부로 확대된 ‘사고’ 단계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전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원전 건설 기획단계부터 부지 선정, 설계, 제작, 건설, 시운전 및 운전, 해체 및 폐쇄는 물론 방사능 물질 수송과 폐기물 관리까지 안전규제와 방사능 방호기술 개발이 가속화됐다. 원전 안전 관리의 핵심은 ▲원자로 출력 제어 ▲핵연료의 지속적 냉각 ▲방사성 물질의 격납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원자로가 정상운전을 하는 중에는 원자로 출력 조절이 가능해야 하고, 정상상태를 벗어날 경우에는 원자로를 안전하게 정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원자로가 정지된 후에도 핵분열 물질들이 끊임없이 붕괴되면서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핵연료 냉각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뿐 아니라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핵연료 냉각에 실패하면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뿐 아니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와 같이 노심 용융이 일어나 원전 부지 외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원전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가 ▲이런 사고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 것인가 ▲사고의 결과는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답을 내리는 ‘확률론적 안전성평가(PSA)’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원전 PSA는 발전소 계통과 기기의 작동 실패나 운전원 실수 등 내부요인으로 인한 안전성을 평가하는 ‘내부사건 PSA’와 지진, 홍수, 화재 등 자연재해로 인한 ‘외부사건 PSA’로 구분해 분석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진해일(쓰나미)이라는 외부요인으로 시작돼 발전소 계통의 작동실패로 이어진 복합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檢, 부영그룹 탈세 혐의 수사 착수… 파장 어디까지

    檢, 부영그룹 탈세 혐의 수사 착수… 파장 어디까지

    대형 건설기업인 부영그룹과 이중근(75) 회장에 대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될 예정인 가운데 사태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4·13총선이 끝나면서 검찰이 그동안 자제해 왔던 기업 수사를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일 검찰과 국세청 등에 따르면 부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지방국세청으로부터 특별세무조사를 받아 왔다. 조사에는 ‘국세청의 대검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동원됐다. 조사4국은 비리나 횡령, 탈세 등의 혐의점을 포착하고 예고 없이 세무조사를 벌인다. 이번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퇴직한 임직원들의 비리 제보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부영주택에 대한 세무조사는 심각한 수준까지는 염두에 두고 이뤄지지 않았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중한 탈세 혐의가 나타나면서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세범칙조사란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한 행위가 발견되는 경우 등에 취해지는 사법적 성격의 조사를 말한다. 향후 검찰 수사는 그룹 주력사인 부영주택의 수십억원대 법인세 포탈 여부의 규명과 이 과정에 이 회장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수사의 외연이 그 이상으로 넓어질 수도 있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검찰 수사가 소소한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국세청에서 밝혀낸 혐의 외에 향후 수사 과정에서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주택사업을 하면서 건설 부지를 많이 사들였던 부영그룹이 실제 토지 매입가보다 비싼 가격에 산 것처럼 계약서를 꾸미고, 거래 금액과의 차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해외법인에서 매출을 올리면서 일부 환차익을 숨겼다는 주장도 업계에서 제기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의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개성 있는 서점, 도시 밝히는 별빛이죠”

    “개성 있는 서점, 도시 밝히는 별빛이죠”

    100년 된 뉴욕 ‘아르고시’ 등 38곳 탐방 “한국 서점의 위기, 문자이탈 현상 때문”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당대의 사유가 담긴 곳이자 도시를 밝히는 별빛 같은 존재입니다.” 전 세계 주요 서점을 둘러본 탐방기를 ‘세계서점기행’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낸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11일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김 대표가 1년 6개월가량 준비해 펴낸 이 책은 전 세계 서점과 서점거리 38곳을 둘러본 탐방기다. 미국 뉴욕의 100년 된 고서점 ‘아르고시’, 워싱턴DC의 ‘폴리틱스 앤드 프로즈’, 헤르만 헤세가 도제 수업을 했다는 독일 튀빙겐의 ‘헤켄하우어’, 대만의 고서점 ‘주샹쥐’, 중국 상하이의 ‘지펑서원’ 등 명문 서점들이 등장한다. 부산의 ‘영광도서’와 보수동 책방골목 등 국내 서점도 소개했다. 그는 “세계 언론에서 좋은 책방이라고 소개된 곳, 독립서점으로 자체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는 곳, 저만의 개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역을 변화시킨 서점 위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등장으로 국내 서점이 위기에 내몰린 것은 스마트폰 등 우리 사회의 문자이탈 현상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폐허가 된 극장에 들어선 미국 펜실베이니아 해리스버그의 ‘미드타운 스콜라’는 낙후된 지역을 재생하는 기적을 낳았다. 영국 북단의 작은 마을 안위크에 있는 중고서점 ‘바터북스’는 기차역을 개조한 독특한 공간으로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나 뉴욕의 ‘스트랜드’는 명문 서점을 넘어 이미 세계인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외관부터 독특한 중국의 ‘중수거’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손꼽히며 주말에만 관광객이 1만명씩 몰려든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 서점도 저만의 개성을 구축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종이책의 미학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쓴 616쪽 서적에 직접 촬영한 사진 수백여장을 컬러로 담아 화려함을 뽐냈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도 겸하는 그는 2002년 문을 닫은 종로서적 복원 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글 사진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천경자 유족, ‘미인도 위작 논란’ 현대미술관에 새달 소송

    ‘미인도’ 위작 논란과 관련해 지난해 말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소송을 예고했던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거물급 변호사들이 포함된 무료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유족 측은 4월 20일쯤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를 대리해 온 배금자 변호사 등은 28일 “한국 현대미술사에 비극이 더이상 재발해서는 안 되며 작가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공감한 뜻있는 변호사들이 모여 공동 변호인단을 발족하게 됐다”고 밝혔다. ‘위작 미인도 폐기와 작가 인권 옹호를 위한 공동 변호인단’에는 배 변호사 외에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위철환(동수원종합법무법인 대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오욱환(한원국제법률사무소 대표),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영수(법무법인 강남 대표), 이삼 전 서울고검 검사 등 10명이 참여했다. 변호인단은 발족 취지문에서 “위작 미인도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위는 국가기관이 개인에게 가하는 인권유린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우환 화백 위작 논란에 대해선 작가가 ‘진작과 위작을 결정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천 화백과 관련해선 작가 존중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부고]

    ●염진오(삼일회계법인 상무보)씨 부친상 23일 순천향대 부천병원, 발인 25일 오전 5시 (032)327-4002 ●이감열(한국전자기술협회 회장)씨 모친상 예현(외교부 서기관)씨 조모상 2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2227-7580 ●이재성(전 서울대 공과대학장)씨 별세 태용(홍익대 교수)씨 부친상 박중수(전 테트라팩 부사장)박길순(사업)김창현(포항공대 교수)씨 장인상 한혜령(서원대 교수)씨 시부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3151 ●이효찬(삼성SDI 품질실 수석)은미(인지어스 근무)씨 모친상 양재필(전 대전예술고 음악부장)박기현(인창 팀장)씨 장모상 2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오전 5시 30분 (02)2227-7584 ●송영근(세코 고문)씨 별세 종섭(세코 전무이사)용섭(세코 대표이사)씨 부친상 재호(현대다이모스 연구원)재현(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원)씨 조부상 2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5일 오전 (02)2227-7569 ●양진성(한국경제TV 카메라기자)씨 장인상 23일 강북삼성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30분 (02)2001-1096 ●박진수(전 부산일보 논설주간)씨 별세 23일 부산 해운대백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30분 (051)711-4400 ●손지훈(전북 현대모터스 과장)씨 부친상 23일 전북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63)250-2451
  • 삼성 비자금 수사 검사, 삼성가 이혼소송 맡아

    삼성 비자금 수사 검사, 삼성가 이혼소송 맡아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검사 출신 변호사가 삼성가의 이혼소송을 맡게 됐다. 조선일보는 24일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 소송 중인 임우재(46) 삼성전기 상임고문이 항소심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임 고문은 2003년 삼성 비자금 수사를 담당한 특수부 검사 출신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을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부진 사장이 제기한 이혼 소송에서 임 고문은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맞서고 있다. 지난 1월 1심은 “두 사람이 이혼하고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 모두 이 사장이 갖는다”고 판결했다. 임 고문은 즉시 항소했고 변호인단을 대거 교체하면서 남 변호사가 합류하게 됐다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대검 중수부 1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장 등을 거친 남 변호사는 2003년 중수부 1과장 시절 대선자금 수사에서 삼성그룹을 담당했다. 당시 수사에서 삼성이 이회창 캠프에 340억원, 노무현 캠프에 30억원을 각각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를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를 구속 수사하는 주장을 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남 변호사를 ‘삼성에 찍힌 검사’로 거론했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남변호사는 재벌 저격수로 알려졌다. 서울서부지검장 시절인 2011년에는 태광그룹과 한화그룹을 수사하다 법무부와 마찰을 빚자 “살아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이혼 사건을 맡는 것이 드문 사례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임 고문이 남 변호사의 이력을 생각해 도움을 청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영입 1호도 줄줄이 탈락…명암 엇갈린 ‘여의도 법조인’

    영입 1호도 줄줄이 탈락…명암 엇갈린 ‘여의도 법조인’

    여야 각 정당의 4·13 총선 공천 일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금배지’에 도전한 법조인들의 명암도 엇갈리고 있다. 당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경선 없이 단수 공천된 법조인도 있는 반면, 총선을 대비해 당이 외부에서 영입한 ‘1호’ 법조인들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을 이틀 앞둔 23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친 법조인은 모두 138명이다. 이는 검사, 판사, 변호사 출신 전·현직 국회의원까지 모두 포함된 규모로 이 가운데 이번 총선을 통해 처음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일부 정치 신인들은 ‘국회 물갈이’ 여론이 맞물리면서 실제 공천 여부가 유권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히 여론의 관심은 여당인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안대희(61·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에게 집중됐다.  ●새누리의 검사들, 친박과 진박의 진격 새누리당 입당 이후 줄곧 고향 부산의 해운대 지역에서 정치 기반을 다져왔던 안 전 대법관은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따라 지난 1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직으로 있는 서울 마포갑 출마를 선언했다. 대검 중앙수사부장 재직 당시 ‘국민검사’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과거 국민의 지지를 받았고 대법관까지 지낸 안 전 대법관이라면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부산 지역구보다는 야당 강세 지역으로 공천하는 게 유리하다는 당의 계산과 안 전 대법관의 자신감도 깔린 결정이었다. 이후 새누리당은 지난 15일 안 전 대법관을 경선 없이 서울 마포갑 지역에 단수 추천했고, 19대 총선에서 노 후보에게 패한 뒤 지역 기반을 닦아 온 같은 당 강승규 후보는 당의 결정에 반발하며 탈당, 무소속 출마했다.   새누리당에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전직 검찰 간부급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의 이목도 집중됐다. 검찰총장에 이어 검찰 서열 2위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의 최교일(54·15기) 전 검사장, 곽상도(57·15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석동현(56·15기) 전 부산지검장, 강경필(53·17기) 전 의정부지검장 등이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또 권태호(62·9기) 전 춘천지검장과 영화감독 곽경택씨의 동생인 곽규택(45·25기) 전 부장검사도 새누리당에 합류, 총선에 도전했다.   검찰 출신이라고 해서 공천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최 전 중앙지검장과 ‘진박’(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인사로 분류되는 곽 전 민정수석은 각각 새누리당의 텃밭인 경북 영주·문경·예천과 대구 중·남구 공천이 확정됐지만, 석 전 지검장은 더민주에서 새누리당으로 옮겨 온 조경태 의원에 밀려 부산 사하을 경선에서 떨어졌다. 제주 서귀포에 출마한 강 전 검사장과 청주청원 선거구의 권 전 지검장, 부산 서구의 곽 전 부장검사도 경선에서 탈락했다. 반면 지난 19대 총선 서울 광진을 선거구에서 추미애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패한 정준길(50·25기) 전 검사는 이번에도 서울 광진을 출마가 확정됐다. 정 전 검사 역시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위원을 지낸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총선을 위해 영입한 1호 인사들의 성적표는 더욱 초라하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외부에서 영입한 6명의 인사를 소개했다. 1차 인재 영입에는 최진녕(45·33기) 변호사와 변환봉(39·36기) 변호사, 김태현(43·37기) 변호사, 배승희(여·34·41기) 변호사가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성남수정에 출마한 변 변호사만 공천이 확정됐을 뿐, 나머지 3명은 모두 경선에서 탈락됐다.  ●‘안철수의 남자’에서 더민주 ‘전략’된 특수부 검사 제1 야당인 더민주는 새누리당에 비해 법조인 쏠림 현상이 덜한 편이다. 더민주 측에서 주목하고 있는 법조 출신 인사는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의 남자’로 불렸던 금태섭(49·24기) 변호사다. 대검 중수부 출신의 금 변호사는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뒤 서울대 법대 86학번 동기인 정준길 전 검사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대선 이후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 공동대표의 당내 소통 부재 등을 비판해 온 금 변호사는 안 전 대표의 탈당에도 더민주에 남았고, 더민주는 금 변호사를 탈당한 신기남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단수 공천했다.   수원을 선거구에서는 검사 출신의 백혜련(여·49·29기) 변호사가 더민주 후보로 확정됐다. 백 변호사는 2011년 11월 대구지검 검사 재임 당시 검찰 내부 전산망에 “검찰이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되는 큰 사건들을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지키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사표를 냈다.   이 밖에 더민주는 ‘세월호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박주민(43·35기) 변호사와 미국법과 중국법에 정통한 통상·투자유치 전문 오기형(50·29기) 변호사를 각각 서울 은평갑과 서울 도봉을에 전략공천했다. 판사 출신인 김관기(52·20기) 변호사와 총선을 앞두고 더민주가 영입한 이헌욱(48·30) 변호사는 경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핫뉴스] 이해욱 갑질 ‘안 편한 세상’…“속도 떨어지면 뒤통수 맞고 욕설” [핫뉴스] [속보] 김종인, 대표직 유지 “고민끝에 이 당 남겠다 생각”
  • 서늘한 자락, 아직은 보내지 못했다

    서늘한 자락, 아직은 보내지 못했다

    사람 마음만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게 있을까. 겨우내 춥다고 앙앙불락이다가도 막상 겨울이 간다 하니 그게 못내 아쉽다. 그러다 난데없는 눈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운다. 강원 고성 쪽에 큰눈이 내렸다는 것. 어쩌면 올해 마지막 설경과 마주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뿐이랴.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곁에 있고, 거진항 등에서 싱싱하고 맛있는 아침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고성 찾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미시령을 넘어 고성으로 간다. 일반적으로는 진부령을 넘지만, 눈 내린 날씨엔 봄철이라 해도 미시령 터널을 지나는 게 안전하다. 화암사에 먼저 들른다. 열에 아홉은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는 절집이다. 속초 쪽 미시령에 매달려 있지만 행정구역으로는 고성에 속한다. 원래 가을철 단풍 명소로 이름 높은 곳. 하지만 흰 눈에 싸인 자태도 그보다 못할 건 없다. 절집은 금강산 1만 2000봉의 남쪽 첫 봉우리라는 신선봉 아래 터를 잡았다. 흰 눈에 덮인 수바위가 웅장하고, 금강산을 병풍 삼은 절집의 자태도 빼어나다. 절집에서 100여m 떨어진 산자락에 미륵대불이 서 있다. 절집 뒤편을 둘러친 산자락들은 물론 멀리 속초 시내까지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특급 전망대다. 바닷가 나들이에 나선다. 첫 목적지는 청간정. 저 유명한 관동팔경의 하나다. 청간정은 청간천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의 해안절벽에 자리를 잡았다. 창간연대는 뚜렷하지 않지만 조선 명종 10년(1555)과 현종 3년(1662)에 각각 중수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의 청간정은 1980년에 중건된 것이다. 예전엔 우암 송시열의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이 쓴 한시 현판도 함께 걸려 있다. 청간정은 들머리에 늘어선 소나무들의 기세가 특히 볼거리다. 바닷바람 맞으면서도 옹골차게 솟은 자태가 멋들어지다. 정자 위에 오르면 너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초도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성 최북단 대진항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해안선 모퉁이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포구마을이다. 워낙 작은 포구여서 일부러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초도항은 성게로 유명하다. 방파제에 해녀상과 함께 성게 조형물을 세운 것도 그런 이유다. 대진항과 초도항에선 아직도 해녀 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두 조형물 사이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의 버튼을 누르면 1960년대 인기를 끌었다는 이시스터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낭랑한 옛 가수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도처럼 찰랑댄다. 포구 너머는 금구도(龜島)다. 주민들이 광개토왕릉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섬이다. 사람은 살지 않고 화강암으로 축조된 성벽과 보호벽 등의 흔적이 섬 반대편 쪽에 남아 있다. 현지의 한 역사학자가 394년(광개토대왕 3년)에 화진포 거북섬에 광개토대왕의 왕릉 축조를 시작했고 414년(장수왕 2년)에 광개토대왕을 거북섬에 안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며 ‘금구도 광개토대왕릉설’을 제기했으나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해넘이는 초도항 아래 화진포에서 맞는다. 이승만과 김일성, 이기붕 등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세 인물의 별장이 남아 있는 호수다. 저물녘이면 호수 뒤 산자락 너머로 해가 진다. 호수도 노랗게 물드는데, 그 모습이 제법 빼어나다. 화진포는 호수 앞 해변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화진포 바닷가는 이른바 모나즈 성분의 모래 해변이다. 수만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는데, 모래를 밟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나고 개미가 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해질녘이면 너른 백사장 너머 하늘이 순차적으로 연분홍, 보랏빛으로 물든다. 바다도 비슷한 색을 띤다. 20분 가까이 이어지는 태양의 붓질이 경이롭다. 일출 명소도 몇 곳 된다. 공현진 해변의 옵바위, 아야진 해변 등이 해돋이 명소로 이름을 얻고 있다. 사실 너른 동해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이 달라 본들 얼마나 다르랴. 그저 해 앞에 놓이는 풍경들이 어디가 좀더 낫냐를 견줘 ‘명소’라 부르는 것일 터다. 이번 여정에선 송지호 해변을 해돋이 포인트로 삼았다. 마을 앞 작은 섬 위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명소’ 소리 듣지는 못해도 외려 그래서 더 호젓하게 해와 나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송지호 해변을 찾은 것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해변에서 4㎞ 떨어진 곳에 있는 송지호 때문이다. 송지호도 화진포처럼 호수와 해변의 이름이 같다. 석호(潟湖·해안사구가 바닷물을 막아서 생긴 호수)란 점도 같다. 해가 떠오를 무렵이면 바람도 잦아든다. 이때가 호수를 감상하기 최적의 시간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 위로 설악의 산군들이 고스란히 잠긴다. 수많은 철새들이 군무를 펼치는 시간도 바로 이때다. 밤새 호수 가운데서 쉬던 철새들은 이른 아침 일제히 날아오른다.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기 위해서다. 가창오리 군무에 견줄 수는 없지만, 흰 눈 덮인 설악산 너머로 철새들이 떼지어 나는 모습은 그에 못지않게 장관이다. 송지호 일대에 ‘송지호 산소길’이 조성돼 있다. 송지호 철새관망타워에서 출발해 북방식(함경도식) 전통가옥 보존지구인 왕곡마을까지 약 2.2㎞를 걷는다. 호숫가를 자박자박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호수 한가운데 송호정에 올라 전망을 굽어볼 수도 있다. 자작나무 숲길도 있다. 송호정 진입로 맞은편에 들머리가 있다. 갯가산 정상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산정에 서면 송호정보다 빼어난 전망을 만날 수 있다. 배산임수 형태로 송지호를 끌어안고 있는 왕곡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은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 집성촌이다. 14세기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골짜기에 터를 잡은 왕곡마을은 외부와 차단된 구조인 데다 이른바 풍수지리적 ‘길지’여서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이 덕에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가옥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마지막 여정은 미시령 자락이다. 고성 쪽의 토성면 원암리와 속초 노학동 학사평 일대가 목적지다. 최근 박물관, 미술관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새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다. 속초 쪽의 시립박물관, 발해역사관, 국립산악박물관, 테디베어뮤지엄 등과 고성 쪽의 조각미술관 ‘바우지움’ 등 공공과 민간에서 개설한 전시·체험시설들이 운영 중이다. 최근엔 실내형 테마파크 ‘얼라이브 하트’(www.aliveheart.co.kr)와 ‘다이나믹 메이즈’가 문을 열었다. 착시 미술과 미로가 결합된 이색 체험 공간이다. 건물 1층은 착시미술, 이른바 ‘트릭 아트’ 작품들로 구성된 ‘얼라이브 하트’다. ‘트릭 아트’는 극사실주의 미술 작품 위에 특수 도료를 씌워 관람객이 평면을 입체로 착각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 마치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한 신기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다이나믹 메이즈’는 여럿이 협동해 미션을 수행하면서 미로를 탈출하는 놀이 공간이다. 테마는 ‘해저 미로 대탐험’이다. 모두 16개의 미션을 수행하며 바다 밑 도시를 찾아간다는 게 미로의 전체적인 얼개다. 신비한 ‘거울 미로’와 6만개의 볼 풀장을 건너는 ‘볼 풀 탈출’ 등 재밌는 미션들로 가득하다. 글 사진 고성·속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맛집:복성식당(631-2944)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집이다. 생선조림을 잘한다. 열기, 임연수어 등 현지에서 나는 생선들을 말린 뒤 맛깔나게 졸여 낸다. 속초항 인근에 있다. 고성 쪽에선 성진회관(682-1040)을 권할 만하다. 생태찌개 등 제철 생선 음식을 정성껏 끓여 낸다. 계절 진미로 꼽히는 도치알탕은 3월 말까지 먹을 수 있다. →잘 곳:설악동의 켄싱턴 스타 호텔(635-4001)은 영국 왕실을 콘셉트 삼은 테마 호텔이다. 객실 발코니에서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호텔 입구의 빨간색 이층버스는 영국에서 공수해 왔다. 프러포즈 이벤트 등이 열린다. 층마다 국내외 유명 스타, 주한 외국대사, 스포츠 스타 등의 소장품과 사진들로 꾸며진 명예의 전당이 마련돼 있다. 매일 오전 10시 ‘하우스 투어’가 무료로 진행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휴가를 즐겼다던 55평(약 182㎡)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도 관람할 수 있다.
  • 부산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미국 수질검사 통과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이 미국국제위생재단(NSF)의 수질검사 기준을 모두 통과했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1월 21일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을 미국국제위생재단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방사성 물질 등 수질기준을 모두 통과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검사는 해수담수화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는 일부 주민들의 우려에 따른 것이다. 검사는 일부 주민이 우려를 제기했던 전알파(플루토늄, 토륨, 라돈 등), 전베타(삼중수소, 스트론튬), 라듐, 우라늄 등 방사성 물질 6종을 포함한 191개 항목에 대해 이뤄졌다. 미국국제위생재단은 1944년 설립됐으며 제품검사와 제품품질 보증 등을 하는 세계적 수준의 검사·인증기관이다. 기장군 해수담수화 수돗물은 2014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미국국제위생재단, 부경대,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5개 기관에서 131회에 걸쳐 방사성 물질 검사를 했으나 자연방사성인 라돈을 제외한 모든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시 상수도사업본부는 현재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 안에 방사성 물질 분석감시센터를 설치하고 전문인력을 상주시키는 등 방사능 감시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 한편, 부산시는 기장군의회가 주민통합을 위해 요구한 공정한 수질검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범시민 합동수질검증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합동수질검증으로 해수담수화 공급 논란과 주민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향후 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모든 절차와 방법에 주민참여를 보장해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평택 실종아동 신원영군 신상 공개

    평택 실종아동 신원영군 신상 공개

    경찰이 계모로부터 버림받고 실종된 지 20일째인 신원영(7)군의 신상을 공개하고 수색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경기 평택경찰서는 10일 언론에 신군의 얼굴 등을 공개했다.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상습 가출 전력이 없는 아동이 실종된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실종경보를 내릴 수 있다. 경찰은 이날 탐지견과 기동대 1개 중대 및 수중수색팀 등 100여명을 동원해 신군 자택 주변을 수색했다. 또 전날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신모(38)씨 부부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할 계획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후쿠시마 사고 5년… “日, 안전 신화 사로잡혀 해외 공동연구 소홀”

    후쿠시마 사고 5년… “日, 안전 신화 사로잡혀 해외 공동연구 소홀”

    “첨단 안전기술에 소홀히 했다…갑상선암 증가는 여전히 의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9의 강진으로 40m 높이의 쓰나미가 덮치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침수됐다. 이로 인해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노심 용융이 발생, 반경 20㎞ 내 15만명의 주민이 대피하는 등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986년 구 소련 체르노빌 폭발 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을 맞은 가운데 세계적인 양대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관한 기사와 논문을 내놨다. 일본 도쿄대 정책연구소 스기야마 마사히로 교수팀은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2일자에 “후쿠시마 사고 이전인 2010년까지만 해도 일본 에너지 정책은 2030년까지 원전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에너지의 53%를 원자력에서 얻자는 것이었지만, 사고 직후부터는 장기적으로 원전 폐쇄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자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내용의 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스기야마 교수팀은 “일본 내 원전 연구자들도 안전 신화에 사로잡혀 외국이나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에 소홀했던 것이 사고의 또 다른 원인”이라며 “미국이 1995년부터 도입해 많은 원전 선진국들이 연구하던 ‘확률론적 위험평가’(PRA) 같은 첨단 안전기술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했던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과학저널 ‘사이언스’도 표지기사로 사고 후 5년 동안 제염(除染) 등 원전 안전 및 해체기술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다뤘다. 사이언스는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하루 150t의 냉각수가 발생하는데 연구자들은 오염된 물이 지하수에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하에 울타리를 치고 방사능 오염수에 포함돼 있는 삼중수소를 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이언스는 녹아내린 연료봉을 회수하는 것이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원자로 내에 남아 있는 연료봉의 상태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소립자 붕괴로 만들어지는 중성미자의 뮤온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과학자들의 노력과는 별개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고 사이언스는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인근 청소년들과 어린이들 사이에 갑상선암이 증가했다. “원전 사고와 직접적 영향은 없다”고 과학계 등은 주장하지만, 정확한 발병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소개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부산 기장 해수담수 수돗물 공급 주민투표관리위 출범

    부산 기장 해수담수 수돗물 공급 주민투표 관리위원회가 22일 출범했다. 이규정 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주민투표관리위원장을 맡았고 종교계, 법조인, 환경단체, 주민 등이 주민투표관리위원으로 참여했다. 김정우 기장군의회 의장 등 군의원 5명은 고문으로 위촉됐다. 주민투표관리위는 “기장해수담수 수돗물 공급문제는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민투표법상 주민투표 사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기장군과 부산시가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주민투표 사무를 거부했다”며 “이에 시민사회가 주민 요구를 직접 받아 주민투표 사무를 수행할 것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민투표관리위는 다음 달 19일부터 이틀간 주민투표를 할 계획이다. 23일 주민투표 공고를 시작으로 투표일 전까지 2차례 주민설명회를 열고 다음 달 15일 투표인명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기장군은 행정자치부에 주민투표 추진을 위한 자치단체의 권한 유무를 질의했고, 해수담수화 시설이 국가사업이란 이유 등으로 ‘권한 없음’ 회신을 받았다. 부산시는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사업은 국가사업으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며 민간주도 주민투표에 반대했다.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은 2009년에 국비 823억원 등 모두 1954억원을 들여 착공, 2014년 하반기에 준공됐지만 인근 고리원전에서 방출되는 삼중수소가 수돗물에 섞일 수 있다는 환경단체, 주민 주장에 밀려 공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
  • [新국토기행] 강원 삼척시

    [新국토기행] 강원 삼척시

    강원 삼척시는 험준한 태백산맥과 넓고 긴 해안선, 많은 항·포구를 간직한 천혜의 관광지다. 여기에 수많은 계곡과 깨끗한 백사장,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해변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5억 3000만년 전에 생성된 환선굴과 대금굴은 삼척에 신비로움까지 선사한다. 두타산 정기를 이어받고 오십천 맑은 물이 죽서루를 감돌아 동해로 흐르는 곳을 터전 삼아 제왕운기의 자주정신과 호국정신을 이어 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태백탄전과 동해공업지역의 연계 교역지로 지하자원, 수산자원, 관광자원이 풍부해 한때 산업의 근간이 되기도 했던 고장이다. 올 상반기에 삼척~동해 간 고속도로가 개통하고 2018년 포항~삼척 간 동해선 철길까지 완공하면 사통팔달 교통 요지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은 지역 경제에 생기를 줄까 벌써 기대에 부풀었다. 강원 최남단에 진주처럼 남아 있는 삼척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삼척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볼거리 ●관동팔경 제1루 죽서루 노래한 詩 500수 넘어 관동팔경의 제1루 죽서루(보물 제213호)는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태종 3년(140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터에 중창한 뒤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중수하거나 증축했다. 죽서루는 하층이 17개의 기둥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가운데 9개는 자연석에 세워졌으며 8개는 넓은 바위를 기초석으로 건립돼 건축사적 특성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건물 상층부는 20개의 기둥에 의지해 팔작지붕으로 덮였다. 죽서루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서쪽으로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오십천의 푸른 강물이 휘감아 돌아 흘러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 및 화가들이 끊임없이 찾아 죽서루를 노래했다. 현재 알려진 시는 500수가 넘는다. ●고려 마지막 왕이 잠든 공양왕릉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태동이 시작된 곳이 삼척이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일파에 의해 교살됨으로써 고려의 국운이 삼척에서 끝을 맺는다. 강원도 기념물 제71호인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공양왕릉에는 왕자 왕석과 왕우, 그리고 시녀의 무덤이 함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양왕과 그의 추종자들이 살해된 곳이 살해재이고 이곳에 한 달이 넘게 핏물이 흘렀다. 궁촌은 임금이 계신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이성계가 삼척 땅에서 공양왕을 살해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삼척은 조선의 건국이 시작된 곳이다. ●조선 왕실 가장 오래된 선대 묘 준경묘·영경묘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이안사)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 묘가 준경묘다. 조선 왕실의 가장 오래된 선대 묘로 그 터는 왕기가 서린 천하의 대길지로 조선왕조를 태동시켰다는 ‘백우금관(百牛棺) 전설’(100마리 소 대신 흰 소, 금관 대신 보리짚으로 관을 만들어 사용)이 전해진다. 이양무는 본래 전주의 호족이었다. 당시 향촌 사회를 붕괴시키는 고려 정권에 대한 불만이 관기 문제로 촉발되자 이를 계기로 170여호의 자기 세력을 이끌고 삼척에 정착했다. 이양무는 1231년(고려 고종 18년)에 죽었다. 이들은 의주로 이주하기까지 삼척에서 17년여간 살았다. 이양무 부인의 묘가 영경묘다. 역사성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 중요한 학술 가치를 인정해 강원도 기념물에서 2012년 사적 제524호로 승격됐다. ●물과 5억년 시간이 빚은 환선굴·대금굴 물과 오랜 시간이 빚어낸 삼척의 동굴은 모두 55개로 대이리 동굴지대(천연기념물 178호)를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개방한 동굴은 환선굴과 대금굴이다. 동굴 생성 시기는 고생대(5억 3000여만년 전)로 알려졌다. 동굴 내부에선 에그프라이 석순, 곡석, 종유석, 동굴진주 등 기기묘묘한 동굴 생성물이 감탄을 자아낸다. 특히 지하에는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많은 양의 동굴 수가 흐르고 있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동굴 호수가 형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백두산 천지를 닮은 천지연, 비가 오면 높이 2m까지 뜰 수 있도록 설치한 용소부잔교, 높이 8m의 비룡폭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140m의 인공터널을 지나 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덕항산 절경과 주변의 생태공원, 전나무 숲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어촌민 생활 느낄 수 있는 해신당공원 동해안 유일의 남근 숭배 민속이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공원은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어촌민속전시관, 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됐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 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동해안 따라 5.4㎞ 삼척해양레일바이크 삼척해양레일바이크는 일제강점기, 삼척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삼척에서 포항까지 철로를 놨다가 해방이 되면서 중단한 것을 삼척시에서 2010년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레일바이크 구간은 모두 5.4㎞에 이르며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다 보면 자연스레 동해안의 경관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된 새천년해안도로 이름처럼 새천년을 맞는 2000년에 만들었다. 새천년해안도로는 삼척항에서 삼척해변까지 4.5㎞에 이르는 코스로 바다와 산을 가로질러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 해안 절경과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관광도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졌지만 중간중간 차를 멈추고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소망의탑, 조각공원, 삼척해변 사랑공원 등이 있다. ●전설 깃든 조각·그림… 수로부인헌화공원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남화산 정상에 있는 수로부인헌화공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헌화가’와 ‘해가’ 속 수로부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공원이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의 부인이다. 남편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던 중 수로부인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돌산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하자 마침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칠 때 부른 노래가 4구체 향가인 헌화가다. 임해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바닷속으로 끌고 갔는데 백성이 노래를 부르자 다시 수로부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노래가 신라가요인 해가다. 공원에는 이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산책로, 데크로드, 쉼터 등이 잘 갖춰져 있어 탁 트인 동해의 비경을 감상하면서 걷기 좋다. 공원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대형 수로부인상은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 500t에 달한다. 천연 돌로 만들어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현재 임원항 방파제 부근에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운행 중이다. >>먹거리 ●버림받던 고기에서 금치 된 곰치 곰치는 다른 고장에서도 볼 수 있는 어종이지만 동해안의 곰치가 살이 더 부드럽고 담백하다. 잘 묵은 김치와 함께 푹 끓여 낸 곰치국은 살살 녹는 하얀 속살에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맛 때문에 해장국으로 최고다. 곰치국은 삼척이 원조다. 옛날 고기잡이배에 큰 곰치가 걸리면 “재수 없게 제사상에도 못 오르고 값도 없는 이놈의 곰치가 그물 찢어지게 왜 이리 걸렸냐”고 푸념하며 나룻가에 버렸다고 한다. 그런 곰치가 어느 때부터인가 삼척의 대표 음식으로 전국에 소개되며 이제는 바다에서 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줘도 먹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 됐다. ●쫄깃한 속살·담백한 맛 삼척 대게 대게는 물이 차면 살이 꽉 차는 한랭성 어종으로 겨울이 제철인 음식이다. 고려 시대 문장가인 이규보는 게를 산해진미를 초월하는 맛이라고 격찬했고,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1600년대에 지은 ‘도문대작’에서 “삼척에서 나는 대게는 크기가 강아지만 해 그 다리가 대나무 줄기만 하다. 맛이 달고 포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고 했다. 게는 삼척말로 ‘기’이므로 게 모양의 줄을 당기는 놀이인 ‘게줄다리기’ 또한 ‘기줄다리기’로 불린다. 지난해 12월 삼척의 기줄다리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인접지 경북 울진과 영덕의 인지도에 밀려 명성을 얻지 못하던 삼척의 대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삼 효능 ‘삼척 장뇌산삼’ 지리적 표시제 등록 120년 전 삼척의 하늘과 맞닿은 작은 마을인 여삼리에서 한 어르신이 산삼씨를 근처 산에 심은 게 현재 ‘삼척 장뇌산삼’의 시초로 알려졌다. 현재 대략 60여 농가가 연간 1만본 정도를 생산하는 삼척 장뇌산삼은 2010년 특허청에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등록을 하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삼척시는 이를 홍보하기 위해 삼척교 입구에 장뇌 홍보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찍 따서 말린 올미역은 산후조리 인기상품 올미역은 이른 철에 따서 말린 미역으로 허균의 도문대작을 보면 “조곽(早藿)은 이른 미역으로 삼척에서 1월에 나는 게 좋다”고 기록돼 있다. 올미역은 색깔이 온통 검은색으로 요오드 성분 함량이 높아 피를 맑게 해 주는 성질이 있어 산후조리용으로 인기가 많다. ●진한 맛과 향 한잔~ 친환경 ‘삼척 머루와인’ 삼척 너와마을에서 생산하는 머루와인은 해발 600m의 육백산 청정 지역에서 재배한 친환경 머루를 사용해 맛과 향이 진하다. 너와마을 와인공장에는 구입 및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머루는 포도에 비해 5~10배 정도 많은 칼슘, 인, 회분, 안토시아닌 성분이 함유돼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장기를 튼튼하게 하는 효과, 저혈압과 고지혈증, 부인병 예방과 치료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형리 PB의 생활 속 재테크] 사고팔기 밀당으로 중위험·중수익… ‘롱쇼트펀드’ 아시나요

    ‘옥석’ 가릴 경험 많은 운용사 택해야 코스피 상승장일 땐 되레 불리할 수도 주식시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중국 경기 불안, 유가 하락 등 대형 악재들이 버티고 선 탓이다. 변동성이 큰 장에선 투자심리도 얼어붙기 마련.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도 ‘어디에 투자할까’이다. 이럴 때 재테크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상품은 롱쇼트펀드다. 롱쇼트펀드는 시장 변동성과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이다. 롱쇼트펀드는 롱(Long)과 쇼트(Short)의 합성어로 ‘사다’(Buy)와 ‘팔다’(Sell)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사고(롱 포지션) 반대로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은 미리 팔아(쇼트 포지션) 차익을 남기는 펀드다. 일반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보다 시장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다. 특히 주식 시장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도 수익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게 롱쇼트펀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유가의 예를 들어 보자. 유가가 하락하면 유류할증료도 내려간다. 이는 곧 비행기표 가격 인하로 이어진다. 여행자들 입장에서는 경비 부담이 줄어든다. 그러면 여행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곧 항공 관련 주식에 호재가 된다.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면 원유를 가공하는 정유회사는 물론 유조선을 만드는 조선회사들은 타격을 입는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항공 관련 주식에는 ‘롱’ 전략을, 조선회사 주식에는 ‘쇼트’ 전략을 대입하면 된다. 롱쇼트펀드는 전략을 적용하는 비중과 주식 투자 비중에 따라 70, 50, 30 등 3종류로 가입할 수 있다. 예컨대 ‘미래에셋스마트롱숏70 펀드’는 지난해 10월 운용보고서 기준으로 롱 포지션 87.72%, 쇼트 포지션 12.27% 비중으로 운용되고 있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주식 투자에 대해서는 자본 차익을 과세하지 않는다. 이 상품은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으로 가입할 수 있어 추가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롱쇼트펀드 투자 시 유의할 점도 있다. 자산운용사가 충분한 시장 분석 역량과 운용 경험이 있는지 투자 전에 반드시 살펴야 한다. 롱쇼트펀드는 절묘한 매수·매도 타이밍 선택도 중요하지만 포트폴리오에 담을 주식 ‘옥석 가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이를 위해선 운영사가 지속적으로 기업을 탐방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코스피가 박스권을 벗어나 대세 상승장으로 이어질 때는 롱쇼트펀드가 불리하다. 이런 경우 다른 주식형 상품보다 수익률이 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NH농협은행 WM사업부 차장
  • 한림대 총장에 김중수 전 한은 총재

    한림대 총장에 김중수 전 한은 총재

    학교법인 일송학원은 김중수(69) 전 한국은행 총재를 한림대 제9대 총장으로 선임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신임 총장은 2007년 한림대 총장에 선임됐으나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맡으면서 1년 만에 학교를 떠났다. 다음달 초 취임할 예정이다.
  •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김현회의 축구싶냐] ‘영원한 청룡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

    한 명의 위대한 축구인이 세상을 떠났다. 故정병탁 감독이 지난 10일 향년 74세의 나이로 하늘로 간 것이다. 어린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일수도 있지만 고인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던 故정병탁 감독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고인이 걸어온 발자취가 곧 한국 축구의 발자취였다. ‘축구판 실미도 부대’ 양지에 간 정병탁정병탁은 1942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빠른 발을 앞세워 축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축구 명문인 배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1학년인 1964년부터는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누렸다. 이후 정병탁은 한국 축구의 역사와 같이 하기 시작했다. 군팀이 상한가를 쳤던 1960년대 해병대에 입대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간 정병탁은 대표팀에서도 주축 레프트윙으로 활약했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을 비롯한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자 체제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축구팀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축구판 실미도 부대’였다. 정권 실세인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나선 창단한 이 팀은 강제로 각 팀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이들을 뽑아 들였다. 국가대표팀도 아닌 곳에서 강제로 선수를 빼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던 중앙정보부의 지시였기 때문이다. 팀 이름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 슬로건에서 ‘양지’를 따 왔다. 물론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정병탁도 해병대에서 양지로 옮겨야 했다. 정병탁을 비롯해 김호, 김정남, 조정수, 서윤찬, 허윤정, 김삼락, 이회택, 임국찬, 이세연 등 쟁쟁한 선수들이 이렇게 양지라는 한 팀에 모였다. 쌀 한 가마니에 4000원 하던 시절에 무려 매달 2만 5000원이라는 엄청난 급여가 제공됐고 선수단 전원이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서울시 이문동에서 숙소 생활을 하며 천연 잔디 구장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양지축구단 활동을 군 복무로 인정, 병역 혜택까지 부여했다. 식탁에는 매일 고기 반찬이 올랐다. 심지어 서독과 프랑스, 스위스, 그리스 등을 도는 105일의 유럽 전지훈련도 떠났다. 물론 이 대단한 팀의 중심에는 정병탁이 있었다. 메르데카컵을 품은 청룡팀의 주장 정병탁은 소속팀 양지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1970년에 출범한 국가대표 1진 청룡의 주장까지도 맡고 있었다. 당시 대표팀은 1진 청룡과 2진 백호로 나뉘어 운영 중이었는데 청룡에 직면한 과제는 바로 메르데카컵 우승이었다. 지금은 그 권위가 떨어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최고의 대회였다. 1970년 당시 한국의 청룡을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등 만만치 않은 상대 12개 나라가 치르는 이 대회에는 전국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1차전 태국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한국은 두 번째 홍콩과의 경기에서도 비기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3차전 인도와의 경기 역시 흐름이 좋지 않았다. 먼저 두 골이나 내주며 끌려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청룡의 주장인 정병탁이 나섰다. 한 골을 따라간 한국은 후반 25분 정병탁의 크로스를 박이천이 동점골로 기록했고 10분 뒤에 마침내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정병탁이 왼쪽 구석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회택이 헤딩골로 연결, 극적인 3-2 역전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정병탁은 이날만 두 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결승 상대는 버마였는데 버마는 예선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한 강호였다. 한국으로서는 메르데카컵을 가져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전까지 공동 우승을 한 적은 있어도 단독 우승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국은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3만 5000여 명이 들어찬 가운데 버마와의 결승전이 시작되자 두 팀은 팽팽하게 맞섰다. 0-0의 균형이 이어지던 전반 33분 마침내 이 경기의 유일한 골이 정병탁의 발을 통해 시작됐다. 박이천에게서 패스를 이어받은 정병탁이 이 공을 완벽하게 이회택에게 넘겨줬고 이회택이 날린 슈팅이 버마 골문을 가른 것이었다. 후반 막판 정병탁은 중앙선을 돌파하면서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 슈팅으로 버마 골망을 한 번 더 출렁였지만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정병탁은 이날 경기에서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12번이나 메르데카컵에 나서고도 1960년 말레이시아와 공동 우승, 1965년 중국과 자유 중국과 공동 우승, 1968년 버마와 공동 우승을 차지한 게 전부였던 한국의 첫 단독 우승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대표팀 은퇴 발표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시상식이 열리는 순간 ‘청룡’의 주장 정병탁이 말레이시아 라만 수상으로부터 메르데카컵을 건네받더니 번쩍 들어올렸다. 한국이 그토록 염원하던 메르데카컵을 단독으로 품는 순간이었다. 귀국 길에도 수많은 환영 인파가 몰릴 만큼 국민들의 성원 또한 대단했다. 팀의 주장 정병탁은 모든 국민이 바랐던 메르데카컵을 들고 당당히 귀국했다. 지금이야 메르데카컵 우승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메르데카컵 우승은 아시아 정복을 뜻할 만큼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대회였으니 국민들의 함성이야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세 개나 기록한 주장 정병탁의 인기 역시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소속팀이었던 양지는 김형욱이 1970년 실각하면서 입지가 줄어 들었고 결국 흐지부지 흩어졌다. 정병탁도 양지를 떠나 신탁은행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무려 8년 동안 대표팀 생활을 했고 메르데카컵에만 6번을 출전했던 이 대단한 선수의 미래에 많은 이들이 희망을 안고 있었다. 해외 원정 경기만 18번을 치르면서 경험도 많이 쌓은 정병탁은 한국 축구를 계속 짊어지고 갈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정병탁이 한국 축구계가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이제 대표팀에서 은퇴하겠습니다.” 아무리 선수 생명이 짧았던 1970년대라고 하더라도 28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의 대표팀 은퇴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메르데카컵을 들고 금의환향하던 정병탁에게 대표팀 은퇴를 번복해달라고 매달렸다. 고별전 보기 위해 모여든 1만여 팬들그래도 정병탁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대표팀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정병탁은 이렇게 답했다. “이제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습니다. 또한 가정과 직장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병탁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없었다. 김용식이 43세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당시 청룡팀 트레이너를 맡은 우상권 또한 36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8세의 창창한 선수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대표팀을 떠난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주변의 추측이었지만 정병탁이 한창의 나이에 대표팀을 박차고 나온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청룡팀이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대우도 해주지 않았던 데 따른 불만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병탁은 메르데카컵에서 단독 우승을 차지하고 1970년 8월 19일 귀국한 뒤 닷새만을 쉬고 또 다시 청룡팀 합숙훈련에 들어가야 했다.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다 양지 시절 받던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훈련에만 전념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대표 선수 생활이 끝나면 미래에 대해 그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았고 가정 생활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상황상 애국심만을 강요하며 나머지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에 정병탁이 반기를 든 것이었다. 정병탁은 그렇게 28세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에서 물러났고 주장 완장을 김정남에게 넘겼다. 그가 애국심이 없어 대표선수 자격을 일찌감치 반납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병탁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양지에 묶여 있고 청룡에 묶인 채 모든 걸 포기해야 했었다. 그는 A매치 통산 39경기 출전에 11골의 기록을 남겼다. 1970년 9월 12일 서울운동장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간의 평가전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 비공식 경기에 모인 관중수만 해도 무려 1만여 명이 훌쩍 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청룡팀을 떠나는 정병탁이 마지막으로 청룡의 유니폼을 입고 고별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정병탁 보러 가자.” 사람들은 청룡팀의 최초 주장인 정병탁의 모습을 보기 위해 비공식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운동장으로 몰렸다. 이 정도로 정병탁은 현역 생활 내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렇게 정병탁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표팀을 떠났고 이후 신탁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오랜 시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됐다.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이 이어지자 정병탁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잊어갔다. 지도자가 돼 돌아온 정병탁의 성공시대그런 정병탁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온 건 1984년이었다. 모교인 연세대 축구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일을 냈다. 부임 후 5개월 만에 치른 제29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파죽지세로 결승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 상대인 중앙대의 수장이 바로 김기복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40대 초반인 정병탁 감독과 김기복 감독은 양지와 청룡에서 3년 가까이 활약했던 둘도 없는 선후배 사이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정병탁 감독이 이끄는 연세대는 중앙대를 가볍게 2-0으로 제압하고 무려 36년 만의 감격적인 우승을 확정지었다. 대학 무대에 첫발을 내딛은 정병탁 감독은 5개월 만에 지도자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잊혀졌던 정병탁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도 연세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김봉길 스카우트 작전’이었다. 1984년 첫 우승을 경험한 정병탁 감독은 곧바로 고교 최대어인 부평고 김봉길 잡기에 나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됐던 김봉길은 사실 고려대행이 점쳐지고 있었다. 부평고 고명수 코치와 고려대 남대식 코치의 사이가 돈독해 김봉길은 당연히 고려대행이 점쳐졌다. 그런데 정병탁 감독이 나섰다. 사실상 김봉길의 고려대행이 유력한 상황에서 정병탁 감독이 김봉길과 그의 부모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김봉길과 그의 부모 역시 고려대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정병탁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해 김봉길은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연세대 훈련이 저녁 6시에 끝나면 저녁 8시쯤 감독님께서 꼭 저희 집 앞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무려 한 달 동안 정병탁 감독은 매일 저녁 김봉길의 집 앞으로 가 그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선수층이 두터운 고려대보다는 아들이 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연세대를 선택해 달라”는 진심을 전했다. 그리고 김봉길은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결국 연세대를 선택했고 연세대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병탁 감독은 아주대 행이 유력했던 거제고의 최청일 또한 이런 식으로 설득해 연세대로 데려올 수 있었다. 김봉길은 정병탁 감독을 이렇게 기억했다. “옷도 잘 입는 멋쟁이셨고 굉장히 화끈하면서 남자다우셨어요. 한 번은 우리가 우승을 한 뒤 뒷풀이를 한다고 선수단 전체를 나이트클럽을 데려가기도 하셨죠. ‘오늘은 내가 쏠 테니 마음껏 놀아라’ 이 말에 다들 반했다니까요. 감독님 모시고 나이트클럽에 갔던 건 참 독특한 추억이죠.”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전남과의 만남정병탁 감독은 연세대에서 지도 능력을 인정받고 이듬해에는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까지도 겸하기 시작했다. 정병탁 감독의 지도자 인생도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이때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1987년 1월 개인적인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강릉을 떠나 서울로 오던 정병탁 감독의 승용차가 마주오던 고속버스와 정면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정병탁 감독은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을 차린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내가 그 자리에서 바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정 생활을 위해 이른 나이에 대표팀까지 포기해야 했던 정병탁 감독에게는 아내의 죽음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곧바로 일어섰다. 그를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털고 일어난 정병탁 감독은 1989년 또 다시 정상에 섰다. 제37회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1학년생 김도훈과 강철 등을 앞세워 이뤄낸 대단한 성과였다. 특히나 서울 대신고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던 강철을 대학 진학 후 정병탁 감독이 수비수로 전환시킨 게 ‘신의 한 수’였다. 아마도 정병탁 감독이 없었더라면 강철이라는 훌륭한 수비수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철 스스로도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정도다. 결승에서는 프로선수 네 명이 포함된 포철 아마팀을 4-1로 꺾는 등 7경기에서 20득점하는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강으로 이끈 정병탁 감독은 1992년 연세대 감독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숱한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해냈다. 그가 다시 돌아온 건 1994년이었다. 당시 전남 지역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 제8구단 창단을 앞두고 초대 사령탑으로 정병탁 감독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팀 지휘봉을 잡는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연고내에는 차경복 전 경희대 감독과 정태훈 한양공고 감독, 남대식 고려대 감독, 서현옥 중앙대 감독 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이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전남 진도 출신 허정무 감독이 가장 강력한 경쟁 후보였고 연고는 없지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이회택 전 포철 감독 또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긴 토론이 이어진 후 최종 선택은 정병탁 감독이었다. 허정무 감독이 포철 감독으로 부임하고 있어 빼오는 게 무리가 있었고 나머지 후보군 중에는 정병탁 감독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 故정병탁을 기리며청룡의 초대 주장이던 그가 이번에는 전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길조를 상징하는 용을 의인화한 전남의 마스코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팀 이름은 전남드래곤즈로 명명됐다. 전남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정병탁 감독은 박경훈 코치와 여범규 코치를 선임한 뒤 곧바로 선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드래프트를 통해 대졸 신인 9명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훗날 전남의 상징이 된 김도근(한양대)도 포함돼 있었다. 이뿐 아니라 실업팀에서 뛰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했다. 전남의 전설적인 존재인 노상래와 김태영 등도 이때 정병탁 감독이 선택한 작품이었고 기존 프로팀에서 활약하던 김봉길(유공)과 박창현(포철) 등도 데려왔다. 정병탁 감독이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노상래와 김태영, 김도근 등 ‘전남맨’들은 역사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광양전용구장이 광양시민뿐 아니라 여수와 순천 지역 주민들까지 몰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정병탁 감독 때문이었다. 여수 출신인 그가 고향에 내려와 프로팀 감독이 되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전남은 1995년 5월 7일 역사적인 K리그 데뷔전에서 전북을 상대로 김봉길의 두 골과 노상래의 한 골을 앞세워 3-1 승리를 따내는 등 신생팀답지 않은 선전을 이어나갔고 결국 8개 팀 중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비록 엄청난 성과는 아니었지만 현재 전남의 토대를 만든 건 정병탁 감독의 공이 컸다. 하지만 정병탁 감독은 1996년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사퇴하며 이 자리를 허정무 감독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정병탁 감독은 이해 마라도나가 소속된 보카주니어스의 방한 경기 때 잠시나마 한국 대표팀을 지휘한 뒤 주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다. 이후 정병탁 감독은 과거 양지팀 시절 동료들과 서울시 실버축구단에 속해 사회 공헌 활동을 하기도 했고 경기도 고양시에 ‘정병탁 어린이축구교실’을 창단해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기도 했지만 축구계 주류 무대에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저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정병탁 감독이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이자 연세대를 아마추어 최정상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전남의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빛이 날 때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故정병탁 감독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고인이 한국 축구를 위해 보여줬던 헌신을 잊지 않겠다. 이제는 故정병탁 감독이 먼저 하늘로 보낸 사모님과 행복하셨으면 한다. 청룡팀 최초의 주장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故정병탁 감독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내포평야와 합덕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내포평야와 합덕제

    우리는 옛사람의 지혜와 기술을 종종 과소평가하곤 한다. 농업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하거나, 저수지를 만드는 노력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됐다. 김제 벽골제가 백제시대 저수지라는 것은 ‘삼국유사’에도 기록이 있다. 고려가 강화도로 수도를 옮겨 오랫동안 항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간척사업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포평야서 농사짓기 위해 당진 합덕제 축조 지금의 충청남도 서북부, 이른바 내포(內浦)에서도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이 활발했고 방죽을 만들어 농업 용수를 공급했다. 이 지역의 농업 용지와 용수를 인위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은 빠르면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아직 문헌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민간 사업이어서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당평야로 불리는 당진과 예산 일대의 평야는 상당 부분이 오래전부터 간척사업으로 새로 만들어진 농토다. 당진 합덕제(堤)는 내포평야로 불리던 이곳에서 물 걱정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쌓은 인공 저수지다. 저수 면적만 103정보에 이르렀다. ●수리민속박물관·비석 통해 지역 농업 역사 파악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의 고려와 싸우고자 우물을 판 것이 시초라는 설이 그 하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면천 산천’에 나오는 벽골지가 곧 합덕제로 삼한시대나 삼국시대 축조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다른 하나다. 어쨌든 합덕제의 축조 시기는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다. 합덕제는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일대에 있다. 주변은 광활한 평야지대다. 합덕제는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됨에 따라 역할을 잃으면서 논으로 바뀌었다. 바로 옆에는 이 지역 농업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도록 2005년 세워진 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있다. 합덕제의 서쪽 끝으로는 당진과 예산을 잇는 4차로 큰길 예당평야로(路)가 지난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예당평야와 합덕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예당평야로가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곳에 합덕제와 관련된 비석이 줄지어 있다. 지금도 8개의 비석이 남아 있다.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로는 과거에는 훨씬 더 많은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선정비는 곧 합덕제를 보수한 기록이니 역사만큼이나 수리도 잦았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영조 43년(1767) 세워진 ‘연제중수비’다. 합덕제가 조선시대에는 연제(蓮堤)로도 불려졌음도 알 수 있다. 지금도 내부에는 상당한 넓이의 연밭이 남아 있다. ●1771m 석축제방 되살려 연못 다시 조성하기로 당진시는 합덕제를 단계적으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1771m의 석축제방을 되살려 옛 담수 면적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46만 769㎡의 연못을 다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인 솔뫼성지와 다블뤼 주교의 유적인 신리성지가 지척이다. 1929년 지은 합덕성당은 수리민속박물관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을 뿐이다. 김대건 신부와 다블뤼 주교도 자주 오갔을 합덕제가 복원되면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것이다. 나아가 복원된 합덕제는 관광용 연못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충남 지역의 가뭄으로 예당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금강 백제보의 물을 관로로 수송하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환경 변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예당저수지의 기능이 다시 한계에 부딪친다면 합덕제도 수리시설로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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