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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실종 109명/대부분 지리산 계곡서 희생/남부 폭우

    ◎8,000명 동원 수색… 흙탕물에 유속 빨라 어려움 지난달 31일부터 지리산 일대를 포함한 영·호남 지역에 시간당 150㎜가 넘는 기습폭우가 쏟아져 2일 현재 46명이 숨지고 63명이 실종되는 등 모두 10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이는 본사가 취재망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지역별로는 ▲경남 79명(사망 37,실종 42) ▲전남 18명(사망 5,실종 13) ▲전북 7명(사망 1,실종 6) ▲대구·경북 4명(사망 2,실종 2) ▲울산 사망 1명 등이다.인명피해는 실종자 신고가 이어지고 사체 수색작업 또한 계속돼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이날 현재 사망 33명,실종 62명 등 9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잠정 집계했다.또 경남·전남 지역에서 주택 100여채가 붕괴되고 농경지 4,443㏊가 물에 잠겼으며 곳곳에서 도로와 교량,철도,하천이 유실되는 등 594억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재해대책본부는 덧붙였다. 피해 지역에는 해당 지역 119구조대와 공무원,경찰,군인,주민 등 1,500여명이 나서 실종자에 대한 밤샘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흙탕물과 빠른유속 때문에 큰 애를 먹었다. ▷사망·실종◁ 지리산 일대의 대원사 계곡,피아골,뱀사골에서만 15명이 죽고 28명이 실종되는 등 4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 계곡에서는 1일 상오 6시쯤 金종국씨(42·거제시 옥포2동 혜성아파트)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는 등 9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다. 이날 상오 0시30분쯤에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연곡사 피아골 계곡에서 야영을 하던 洪원석씨(31·전북 고창군 해리면)등 5명이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숨지고 洪씨 부인 金정미씨(27) 등 11명이 실종됐다. 1일 상오 4시쯤에는 경남 합천군 삼가면 덕진리에서 산사태가 발생,姜병호씨(38·합천군 삼가면 덕진리 726)의 집을 덮쳐 姜씨와 아들 이훈군(12),어머니 洪복달씨(73),아내 유위숙씨(32)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 ▷수색 및 구조작업◁ 2일 하루동안 긴급 지원된 행정자치부 소속 119중앙구조대원 30여명을 비롯,지역 119구조대 및 군·경 등 1,500여명이 동원돼 계곡 하류를 중심으로 고무보트와 잠수기구 등을 이용,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이날 100∼200㎜의 많은 비가 내려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섬진강의 유속이 7∼8노트나 돼 수색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흙탕물 때문에 시계마저 제한돼 잠수 수색작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날 하오 2시30분쯤 경남 진주소방서 119구조대와 진주경찰서는 진주시 수곡면 원외리 덕천강 덕천교 밑에서 남자 어린이 1명과 어른 남자 2명,여자 2명 등 5명의 시신을 인양했다. 11명이 실종됐던 덕천강의 경우 하동군 옥종면 대곡리 창촌다리에서 북방리에 이르는 4㎞에 걸쳐 소방대원과 공무원 등 100여명이 정밀 수색작업을 벌였다. 한편 지난 1일 하오 6시30분쯤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덕천강변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던 사천소방서 소속 李정근 구조반장(46·지방소방장)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고 李내원 구조구급대장(35·지방소방위)은 중상을 입었다. □특별취재반 ▲사회팀 金煥龍 朴峻奭 기자 ▲전국팀 李正珪(부장급) 林松鶴(차장급) 姜元植 崔治峰 金守煥 南基昌 기자
  • 李康來 정무수석 문답/“낮은 투표율이 더 큰 문제다”

    李康來 청와대 정무수석은 22일 재·보선 결과에 대해 “해석하기 나름이나 무승부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패보다는 낮은 투표율에 더 큰 우려를 표시했다. ­선거결과 분석은. ▲여권이 3석을 추가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여권이,야당의석이 1∼2석 더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야당의 승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낮은 투표율,특히 수원 팔달의 26.5%라는 투표율은 정치권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안정을 꾀하는 게 급선무다. ­선거운동 평가는. ▲흑색선전이 치열했고,금품과 향응제공도 눈에 띄게 전개됐다. 선거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지나친 상호비방과 중상모략을 못하도록 해야한다. 돈안쓰는 선거를 위한 제도개혁도 필요하다. ­향후 정국운영은. ▲선거결과는 국민들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강력하게 펴나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제2의 건국’ 정신을 체계화하고 통합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여권 내부정비 필요성은. ▲趙世衡 대행이당선되지 않았다면 전반적인 상황점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지도부 개편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 궁중의 중상(秘錄 南柯夢:17)

    ◎고종 총애 지극하니 궁궐축출 모략이…/정환덕 상감모시기 10년… 정적들 시기받아 감기로 며칠 쉬는 틈타 지방으로 좌천 공작/“시골군수가 소원” 거짓주청에 임금도 속아 “일주일만 참으라” 했으나 한달넘게 무소식 이튿날 정오 상감 부자께서는 신(정환덕)을 급히 입궐하라 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鄭가 성을 가졌다해서 모두 나라에 해를 끼쳤다고 할 수 없다.필시 경(卿=정환덕)을 몰아내기 위한 계책이었으니 사퇴하지 말 것이며 정가성을 가진 사람으로 추방당한 모든 사람을 다시 입궐,근무토록 하라”고 분부하시니,환호의 소리가 하늘에 닿고 궁중에 화기가 넘쳐 났다.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치란 반칙투성이의 축구시합이라 했다.권력의 속성 가운데 가장 더러운 부분이 바로 권력투쟁이다.권력투쟁에는 반드시 중상모략이 오가게 마련이라 선비가 권력의 주변에 가까이 가면,온갖 수모를 당하고 물러서게 마련이다. 정환덕 이하 모든 정씨가 궁중에서 숙청당한 사건은 장지동의 군함사건을 계기로 당대의 세도가 길영수(吉永洙)와 말다툼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남가몽 15회 참조). ○길영수와 말다툼 화근 길영수로 말하면 본래 지관(地官)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더니 1889년 과천군수를 거쳐 일약 13도부상도반수(十三道負商都班首)로 뛰어 올라 전국의 보부상을 지휘하여 황국협회(皇國協會)를 조직,야당인 독립협회의 개혁요구를 몽둥이로 진압한 국가유공자(?)였다.광무정권을 수립하는데 가히 일등공신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거물을 상대로 일개 시종이 싸우기란 벅찬 일이었다. 다행히 1903년 한 선비의 상소로 “육군부령 길영수는 간사한 무리로서 성총을 빙자하여 민재(民財)를 약탈하고 관직을 매매하는 등 나라를 병들게 한자”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정환덕의 다음 정적은 길영수보다 더 엄청난 거물 이용익(李容翊) 이었다.이용익은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도와 매일 서울∼장호원간을 달려서 왕래한 충신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어 광무개혁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이었다.그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지방수령(군수) 331명에 대해 일제 수사를 벌였다. 이용익이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재무장관)으로서 열읍의 포흠 (浦欠:부정행위)낸 수령을 조사하고 보니 전국 360 고을(郡) 가운데 단 한 면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이 때문에 포흠을 낸 관찰사(도지사)와 수령들이 도망쳐 피신하였는데,경남 산청의 단성(丹城)군수도 역시 그 가운데 들게 되어 사촌 정환기가 도망치고 말았다. 저번에 이용태(李容泰)의 주선으로 정환기를 내장원(內藏院)의 산림기사(山林技師)로 취직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이 꼴이 되고 말았으니 모두 빈 공중의 꽃이 된 것이다.한탄한들 무엇할까. 정환덕이 출세했다 하여 시골에서 일가친척들이 무작정 상경해 한 자리 청탁하는 사람이 많았다.요즘같은 세상에도 상경한 시골의 일가친척을 냉대하였다가는 크게 욕을 먹는데,그때야 더했다.서대문 정환덕의 집에는 쉴새없이 일가친척이 찾아 왔는데,단성군수와 운봉군수를 시켜준 사람은 멀지 않은 사촌들이었다. ○사천군수 재기용 호소 사천(泗川) 군수 정환기(鄭煥琦)는 단성군수로 가게 되었는데 길영수가 들어서서 자기가 추천한 윤치일(尹致日)을 사천군수로 삼았기 때문에 정환기가 좌천된 것이다.얼마 안되어 정환기는 또다시 영양(英陽)군수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정환기의 군수 자리가 길영수의 훼방으로 이렇게 좌천되게 되니 정환덕이 참다 못해 상감에게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황상께서 물으시기를 “단성군수 정환기가 너에게 4촌이 되느냐” 하시었다.대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또 말씀하시기를 “영양군수가 단성군수보다 낫지 않느냐” 하시었다. 대답하기를 “네,그러하옵니다.두 곳의 군수 자리 중 어느 곳이 나은지는 우열을 가리지 못하오나 소신의 천박한 생각으로는 단성군이 사천군만 못하고 영양군이 단성군만 못하오니 본래의 사천군으로 돌려 주시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상감께서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라” 하시었다. 이로써 알수 있듯이 정환덕에 대한 고종의 총애는 지극하였다.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정환덕에 대한 모략은 더욱 극성스러워 마침내 궁궐에서 물러나 시골에 가서 군수를 살게 되었다. 간사한 무리들이나를 대궐에서 축출할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했으니 다시 무슨 일을 가지고 헐뜯을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내가 잠시 병들어 누워 있는 동안에 상감에게 아뢰기를 “정환덕은 10년 가까이 상감마마를 지척의 자리에서 모셔 오면서 더 부지런하고 더 힘써서 밤을 낮으로 삼고 공경하고 경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을 하루같이 충성하다보니 지쳐 병이 들었습니다.그러니 이제는 산수 좋은 고을을 택해서 잠시 소풍하듯 고을살이를 하게 하면 어떠하오리까”하고 아뢰었다.황상께서 이들의 말을 옳게 여기시어 드디어 충남 대흥(大興)현감을 제수하시었다.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환덕이 잠시 감기로 대궐에 나가지 못한 틈을 타서 길영수 일파로 보이는 정적들이 그를 지방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니,눈뜨고 코베어 가는 세상이었다. 하루는 비서장(秘書長) 김하영(金夏榮)이 우리집에 찾아와 문병하고 상감이 나를 충남 대흥군수로 제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물론 이것은 저들의 공작이었다.이튿날 늦게 대궐에 들어가 입대했더니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병은 완쾌되었느냐.그동안 누가 와서 네가 지방의 외읍(外邑)을 맡아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 하여 내가 너를 대흥군수로 제수했는데,너의 의향은 어떠한가” 하시었다.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성상의 은총이 이와같이 융성하고 흡족하오니 참으로 송구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대흥군수로 나가고 싶다는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옵니다.10년을 하루같이 모셔온 이 몸이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멀리 귀향가듯이 대궐을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신이 비록 보잘 것없는 사람이오나 바라옵건대 해타(咳唾:바로 턱앞)에 두시어 부리신다면 그보다 더 영광이 없겠습니다”고 하였다.황상께서 들으시더니 “내가 한번 더 저들에게 속았구나.그러나 기왕 발령을 냈으니 잠시 내려가 군수로 부임했다가 일주일 이내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턱앞 두시어 부려달라” 정환덕이 대흥군수로 내려간 것은 1903년 3월7일이었다.일주일 뒤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겠다던 말씀을 믿고 임지로 내려갔으나 한달이 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임지에 부임한지 한달이 넘도록 올라오라는 분부는 없고 내부(內部=내무부)로부터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훈시만 날아왔다.
  • 아시아/불황 여파 범죄·부패로 얼룩

    아시아 경제위기가 장기화면서 그동안 치안 모범국이던 일본과 홍콩에서 재산형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금품을 노린 강도사건이 전국적으로 빈발하고 있다. 일본 경찰청은 올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가 늘었다고 9일 발표했다. 홍콩에서는 부정·부패 범죄가 극성이다.반부패위원회가 적발한 사례는 1,78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가 급증했다. 일본 경찰청이나 홍콩의 부패방지위는 실업자 증가 등 1년이상 계속되고 있는 경기침체가 사회문제화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일본/금융기관대상 강도사건 작년의 2배 발생/총기무장 등 수법도 흉포화 ‘철통 치안’ 흔들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이 자랑해온 세계 제1의 ‘철통 치안’이 무색해지고 있다. 일본경제가 장기 불황에 허덕이면서 뭉치돈을 털려는 강도사건이 일본 열도를 휩쓸고 있는 탓이다. 9일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 1월부터 5월까지 일본 전국의 강도사건은 모두 1,348건에 이르렀다. 연간 발생수에서 사상 최다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8%나 늘어난것이다. 사건의 양상도 종전보다 훨씬 흉포해지는 경향이다. 은행의 현금 수송차나 수금중인 신용금고 직원을 대낮에 습격하는 등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강도사건은 금년 1∼6월중 벌써 전년도의 배가 넘는 101건이 발생했다. 8일에도 도쿄 우에노(上野) 번화가의 도쿄도민은행 지점 앞에서 한 신용조합 직원이 헬멧을 쓴 2인조에게 현금 1억1,000만엔을 강탈당했다. 강도사건이 빈발하는 주무대는 단연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 2월 오사카에서 산탄총으로 현금 수송차를 덮쳐 경비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1억4,000만엔(14억원)을 빼앗은 무장 괴한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일본 경찰은 “강력 범죄의 급증이 경기 불황의 장기화와 무관치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한탕주의식 범죄심리도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홍콩/15년만에 실업률 최고… 민간·관가 비리 급증/작년보다 24% 늘어 ‘동방의 진주’ 명성 퇴색 홍콩사회가 경제침체에 따른 부패로 급속히 오염되고 있다. 때문에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한 기업환경으로 ‘동방의 진주’로 불리던 홍콩의 이미지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홍콩의 독립 부패방지기관인 반부패위원회는 8일 올 상반기중 부패 사례가 급증했다는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1∼6월 적발된 부패 사례가 1,780건으로 97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4% 늘어났다. 건설관리,무역,운송서비스,요식업,연예오락,금융,보험 등 민간 경제분야가 부패의 최대 온상이었다. 부정·부패 사례가 지난해 보다 174건 많은 909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진급뇌물’을 포함한 경찰부정은 같은 기간중 243건에서 295건으로 증가했고,관공서 부패도 101건이었다. 마치 홍콩 당국의 부패 감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결과다. 지난해 7월1일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 귀속 이후 홍콩특별행정구측은 중국 본토식 뇌물­부패 사슬에 물들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번 조사에서 15년래 최고인 4.2%의 실업률이 상징하는 경제난이 부패 급증의 주요인으로 드러났다. 기업 연쇄 도산과 실업자군 증가와 비례해 사기,뇌물수수,독직 등 각종 비리 사례도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는 셈이다.
  • 빗길 교통사고 잇따라/8명 사망 5명 중상

    빗길 교통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8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다. 25일 하오 4시30분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옥녀탕 앞길에서 금강운수 소속 강원77아 1192호 직행버스(운전사 金영덕·47·강원도 홍천군)와 강원14아 7013호 레미콘트럭(운전사 高장옥·43·인제군 북면 원통7리)이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金씨와 高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승객 金인혁씨(20·군인)등 3명이 크게 다쳐 인근 중앙병원과 한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앞서 하오 3시50분쯤에는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하양혈리 7번 국도에서 강원1고 9464호 세피아 승용차(운전자 정세진·36·속초시 교동 삼환아파트)와 강원27누 3456호 레간자 승용차(운전자 강승규·25·고성군 현내면 죽정리)가 정면 충돌,양쪽 승용차 운전자를 포함해 모두 6명이 숨지고 유문수씨(24)가 크게 다쳐 인근 연세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비운의 세살배기/親父 1살때 불구 만들고 母동거남이 때려 숨지게

    서울 남부경찰서는 23일 동거녀의 반신불수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徐在然씨(33·공원)에 대해 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에 앞서 아들의 머리를 때려 반신불수로 만든 친아버지 金永光씨(33·공원·경기 부천시 오정구 오정동)도 중상해 혐의로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숨진 아들을 몰래 화장한 金京玉씨(29·여)는 사체유기 혐의로 수배했다. 徐씨는 지난 4월6일 동거녀 金씨가 사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 월세방에서 반신불수인 金씨의 아들(3)이 칭얼거리며 자주 운다는 이유로 뇌수술을 받았던 머리를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벽에 던져 숨지게 한 뒤 金씨에게 경기 고양시 벽제에서 화장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궁중의 숙청(秘錄 南柯夢:16)

    ◎“궁궐안 정씨 모두 해직” 어명/황제총애 받는 시종자리 이권·인사청탁 쇄도/오적 이지용 상중에도 여인보내 벼슬 부탁/“모든 정씨 국가에 유해” 상소에 “나가 기다려라”/시종 정환덕 궁내사건 예언시 적중하자 복직 1899년 8월에 선포된 대한국제(大韓國制)는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다.이 법에 따르면 황제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였다.말하자면 서양의 절대왕권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셈인데 고종을 루이 14세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누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당시의 세계 대세로 보아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시종원 막강권부 부상 이처럼 모든 권력이 고종황제에게 집중되었으니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이 권력의 핵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종의 최측근인 시종원 시종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정환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권과 인사청탁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지방 군수나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대신 자리까지도 일개 시종에 지나지 않는 정환덕을 거쳐야만 성사되었다.군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였다. 전 군부대신 이지용은 평양의 명기 죽향(竹香)을 소실로 삼고 있었는데 광무 6년8월 생부가 죽어 상중에 있을 때 죽향을 우리(정환덕)집으로 보냈다.내외를 하느라 나는 발을 치고 죽향을 만나 보았는데 용건은 다름 아니라 “영감께서는 우리 대감(이지용)을 모르십니까? 대감께서는 방금 거상(居喪)중이시라 한번만 문상을 와주시면 천만번 다행이라 하옵니다”는 것이었다.이에 대답하기를 “이 몸이 국사(國事)에 바빠 밤낮없이 함녕전 대청에서 폐하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여가를 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예까지 부인을 보냈으니 한번 짬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옛부터 부모의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바깥 출입까지 삼가하여야 했는데,감투욕에 불탄 이지용은 정한덕에게 미인계를 써서 기어이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을 하는 것)하려 했던것이다. 이지용은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이지용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를 예전에 대감이 군부대신으로 계실 때 한번 찾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마당에는 수레와 말이 벌려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문정(門庭)이 적막하고 포저(예물)가 뚝 끊기어 있으니 보기에 민망스럽습니다”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감투란 것은 쓰고 있을 때 즐거울 뿐 벗고나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한자리 하려고 버둥거리고 그것이 역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다.이지용은 이름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요 탐관오리였다.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미인계를 써서 벼슬을 하여 집안의 불효자가 되었고 나라를 팔아 매국노가 되었다. 물론 정환덕은 이지용이 그런 인물이 될 줄은 모르고 그를 임금께 천거했던 것이지만 어느 해 추상같은 상소가 올라와 궁중 숙청이 단행되었다.전 동부승지(同副承旨) 홍병섭(洪丙燮)의 소장(疏章)이었는데 거기에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소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시었다. 아뢰기를 “궁궐안을 숙청하라는 내용입니다”하였다.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상소는 금후 궁내부에서 받아 물리쳐 버리고 짐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하시었다. 이때 문득 생각하기를 상감의 총애가 날로 융성하고 흡족해지고 있는데 나라일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보필하는 신하로서 한자 한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 여겼다. 이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하는 것이라 자책하였다.그래서 대궐문 밖으로 나가 사모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상감께 사죄하니 상감께서는 “네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하시면서 만류하시었다. “소신은 본래 초야에 있어야 할 몸이온데 이처럼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밤낮으로 대전을 모시다가 이렇게 탄핵을 받게 되었으니 마땅히 소신에게 과실이 있사옵니다.그러하오니 소신을 초야에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하였다.그러나 상감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국가를 배반하지 않았고 임금에게숨긴 일이 없었다.너는 또 재주를 부려 남을 헐뜯거나 어진이를 투기하여 중상모략한 일도 없었다.너는 아래 사람에게 통통촉촉(洞洞燭燭)하였고 윗사람에게 주야로 성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너는 참으로 충신이라 할 것이다”하시면서 도리어 정삼품직을 하사하셨다. ○“초야로 돌아가겠다” 주청 그러나 시종원 시종 자리란 그렇게 늘 쉽사리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난데없이 궁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정씨(鄭氏)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해직시킨다는 어명이 떨어졌다.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다.아무 죄도 없이 정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궁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다.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날 궁중에 “鄭씨 姓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쫑아내야 합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尙宮)이 여섯 명이고 내시(內侍)가 열명이고 무감(武監)이 세명,주사(主事)가 세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63명이나 되었다.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안에서 내쫑아 버린다는 것인데 나(鄭煥悳) 역시 거기에 끼여 있었다. 상감 부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는 잠시 너의 본집에 가서 머물러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라.너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시었다.그리고 “혹시 내가 너에게 문의할 일이 있으면 봉서(封書=임금의 私信)로 통지할 터이니 어느 놈이 우리 군신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었다.이에 나는 “예식관 이용태(李容泰)를 통해 하명하시면 즉시 올라와 뵈옵도록 하겠습니다”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 ○“군신 이간질 가당찮다” 상감 부자께서는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상궁과 시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없이 물러나는 나를 지켜 보았다.나도 또한 여러 해 동안 밤낮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가 까닭없이 사퇴하게 되니 옛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杜工部)가 지은 시 “성상께서 늘 사랑하심이 있는데 조정을 물러나니 의지할곳이 없네”는 귀절이 가슴을 쳤다.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한번 앉았던 자리를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물러나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요 인생의 비애이기도 하다.하물며 무상의 권부를 물러나는 정환덕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대궐을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였다.이에 글 한줄 지었으니 “내일 모레 사이 서늘한 밤 자정 달이 서산에 숨을 때 동쪽 정원에 꽃 한송이 떨어질 것입니다(明再明間 凉夜三更 月隱西山之時 花落東園中). 이 글을 봉투에 넣어 이용태에게 주어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아니나 다를까 궁중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야밤중에 김상궁이 측간(厠間=변소)에 빠져 죽은 것이다.정환덕은 이 예언 때문에 다시 궁안에 들어와 복직되었다. 상감께서는 “과연 수(數)를 맞히기는 정환덕만한 사람이 없도다“하시면서 나를 칭찬하셨고 궁녀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 한번 수(數)보기를 바랐으나 상감이 엄히 금지하셨다.
  • 새벽 단란주점에 살인 떼강도/여주인 등 3명 살해

    14일 상오 2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바이단란주점에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3명이 주인 鄭영희씨(40·여)와 朴만덕씨(37·택시기사),손님 柳한숙(41·여·요식업) 등 3명을 목과 가슴 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달아났다.柳씨와 함께 있던 朴현숙씨(43·여·식당종업원)도 목을 찔려 중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朴씨에 따르면 14일 상오 2시쯤 옆 방에서 술을 마시던 범인들이 주인 鄭씨,택시기사 朴씨와 심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렸으며 곧이어 이들을 전기줄로 묶어 자신들이 있던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朴씨와 鄭씨는 이미 가슴과 얼굴 등에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어 범인 가운데 1명이 柳씨의 목걸이를 뺏으려다 柳씨가 반항하자 흉기를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범인들은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바지를 벗기는 등 한동안 난동을 부린 뒤 흉기를 갖고 달아났다.
  • 카다피 암살위기 모면/이집트 방문길 총격받아 경호원 다수 死傷

    ◎리비아 언론 강력 부인 【카이로 AP 연합】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지난주 이집트 방문길에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이집트에 도착한 리비아 여행자들이 11일 전했다. 이들은 전화통화에서 익명을 전제로 “카다피가 지난 1일 이집트를 공식방문하기 위해 육로로 출발,이집트 국경을 250여㎞ 앞둔 디르나 지역에 도착했을 때 회교 무장반군으로 보이는 괴한들이 그를 암살하려고 기습공격을 가했다”고 전했다.이 과정에서 카다피는 팔꿈치에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며,아샤라는 이름의 여자 경호책임자가 숨졌고 7명의 경호원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더 많은 사망자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카다피가 암살기도를 당해 다쳤다는 보도는 “거짓말이며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리비아의 자나 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카다피의 암살시도 보도는 “뇌물을 먹은 대리인”에 의해 유포된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도 ‘내집마련’ 걱정/국가 주택배분제도 50년만에 폐지

    ◎서민들 집값부담 늘어 생계난 우려 중국대륙이 술렁이고 있다.사회주의 국가에서 내집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이다.중국은 49년 정권수립 이후 시행해온 주택배분제도를 오는 7월1일부터 폐지하기로 했다. 각자가 생활해 나갈 집을 자본주의 국가에서처럼 목돈을 주고 사든지 아니면 예전보다 10배 가까이나 많은 월세를 내라는 것이다.지금까지는 국유기업이나 각급 기관에서 집을 지어 거의 공짜에 가까운 임대료를 받고 빌려 주었다. 극소수 부유층이야 차제에 저택를 마음대로 구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반가운 조치가 될 것이다.그러나 대다수 일반 서민들이 집값을 치를 목돈을 마련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비록 현 거주자들에게 우선 주택 매입권을 준다지만 값은 제대로 내야 한다. 따라서 가계지출의 3%선에 불과했던 주택비 부담이 20%에서 많게는 30%까지 늘어났다.때문에 집걱정 따위는 아예 없었던 다수 중국의 도시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게다가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도시지역에서는 집값이 이미 올랐다.주택과 땅값의 오름세가 불을 보듯뻔하니 미리 사두는 게 유리함은 중국사회라고 예외가 아니다.중국이 주택분배제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정부와 국유기업의 부담과 적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한마디로 적자재정구조를 뜯어 고쳐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주택경기의 활성화도 부수적으로 노리는 효과다. 새 제도는 주민들간의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면서 나아가 위화감을 조장할 것이다.국유주택의 판매가격은 일반 민간주택의 3분의 1수준이다.그만큼 서민적이라는 얘기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유주택이라도 살 수 있는 계층은 중상층 이상에 한정될 형편이다. 중국정부가 파생되는 부작용을 모를 리가 없다.그러나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하라는 대로만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먹여 주고 재워 준다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한 고비를 맞고 있는 셈이다.
  • 서울신문제정 제8회 마약퇴치대상 수상자/마약없는사회 만들기 앞장

    ◎대상­유관기관 실무대책반/89년 출범 마약류 퇴치 정책총괄/관련부처 유기적 공조체제 확립/韓­中 마약대책회의 창설에 온 힘 제8회 마약퇴치대상에서 영예의 대상(단체상)을 수상한 ‘마약류단속 유관기관 실무대책반’(반장 文孝男 대검찰청 마약과장)은 국내 마약퇴치의 명실상부한 중추기관이다. 유관부처간의 효율적인 정보교환,협조체제 구축 및 범정부적 종합대책 강구·조정 등을 위해 지난 89년 4월 출범했다.마약류를 퇴치하기 위한 정책의수립 및 추진을 담당한다. 대검을 비롯,외교통상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세청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청 안기부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의 실무 책임자들이 참석한다. 매월 열리는 실무대책반 회의에서는 ▲외국산 마약류의 국내 밀반입 차단 ▲마약류 공급조직 분쇄 ▲청소년 약물남용 확산 방지 ▲국제협력활동 지원 ▲치료·보호제도 활성화 및 대국민 홍보·계몽 등이 논의된다. 96년 12월에는 서울 등 6개 지방검찰청에 ‘검찰·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외국산 마약류의 밀반입 차단에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실무대책반은 해마다 6월에 대검 주최로 열리는 ‘마약류단속 국제협력회의’(ADLOMICO)에 적극 참여,마약류의 유통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유엔이 정한 ‘세계 마약류 퇴치의 날’(6월26일) 관련행사의 기본계획을 협의·확정해 언론기관과 국민운동단체 등의 참여를 유도하고 마약류퇴치 국민대회,마약류 불법사용자 자수기간 설정·운영,마약류 포스터 전시회 등을 개최하기도 한다.앞으로는 국내에 밀반입되는 히로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중국측에 제의해 놓은 ‘한·중 마약대책회의’ 창설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文 대책반장은 “건전한 사회에는 마약이 침투할 수 없다”면서 “경제파탄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더욱 준동하고 있는 마약사범을 뿌리뽑는데 앞장 서겠다”고 다짐했다. ◎특별상­관세청 특수조사과/국내외 수사기관 협력체제 구축/작년에 4만g 373억원어치 압수 전국 세관에 42반 2,534명의 마약전담반을 설치,97년에만 34건 4만2,208g,373억원 상당의 밀수 마약을 압수했다. 미국에서 탐지견 30마리를 도입,전국 주요 공항과 항만에 배치하고 김포 부산 인천 김해 제주세관에 첨단 과학수사장비를 설치해 수사 능력을 배가시켰다. 지난해 6월에는 법원으로부터 마약 밀수 혐의자에 대한 통신제한 허가서를 발부받아 감청을 통해 관련자를 검거하는 등 새로운 수사기법을 개발했다. 국내외 마약수사기관과 협력 체제를 구축해 마약 관련 정보교환을 활성화했다.특히 미국과 독일 등의 정보 제공으로 대마를 밀반입하는 이란인 등 37명을 검거하고 대마와 에페드린을 다량 압수했다. ◎본상­단속=의정부지청 수사반/7명이 혼연일체… 1년간 270명 적발/도시 유흥가 마약류 유입 방지 기여 李기동 마약전담검사 등 7명이 혼연일체가 돼 97년 6월부터 1년동안 마약류 사범 270명을 적발,143명을 구속함으로써 급격하게 도시화되고 유흥지역이 확대되고 있는 경기 북부 지역의 마약류 확산 방지에 기여했다. 97년 6월에는 일본 야쿠자 조직과 연계해 일본산 히로뽕을 국내에 반입,기업체 및 여행사 대표,디자이너 등 중상류층에 팔아온 19명을 적발했다.같은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히로뽕을 흡입하고 러브호텔을 전전하며 불륜을 일삼은 기업체 대표,자영업자,호스테스 등 히로뽕 밀매 및 흡입사범 51명,대마초 상습 흡입자 13명 등 64명을 적발,54명을 구속했다. 특히 98년 3월에는 히로뽕 밀매로 거액을 치부한 조성탁의 아파트와 차량,예금 등 4억원의 재산을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처분함으로써 마약사범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본상­단속=부산서부署 崔東甲/작년 21건 적발 34명 구속 실적/도주범인 쫓다 전치 16주 부상도 지난해 6월7일 부산시 사상역 앞에서 시가 5억원 상당의 히로뽕 밀매 현장을 급습했다가 달아나는 범인들의 차량에 치어 전치 4개월의 상처를 입고도 권총을 쏴 3명을 붙잡았다. 당시 부상으로 지금까지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목발에 의지해 출근하고 있다. 지난 1월에도 수영구 수영로터리 부근 주차장에서 히로뽕 판매범을 검거하는 등 지난해 6월부터 21건에 34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73년에 경찰에 투신해 92년에는 전국에서 절도범을 제일 많이 잡아 포도왕상을,93년에는 청룡봉사상 용상을 받았다. 96년 3월부터 부산 서부경찰서 형사과 강력반장으로 근무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고 강력 및 마약 범죄 근절에 힘썼다. ◎본상­학술=國科搜 마약분석과/논문 15편 발표… 9,000건 감정/히로뽕 성분 모발에 잔류입증도 불과 10명의 인원으로 지난해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향정신성의약품 환각물질 부탄가스 등 마약류 사건 9,453건을 감정 처리했다. 지난해 5월에는 히로뽕 성분이 소변에서는 발견되지 않더라도 모발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경찰에 통보했다. 6월에는 변사자 2명의 피를 분석해 치사량에 가까운 히로뽕을 복용한 사실을 확인,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토록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열린 제35차 국제법학회에 참석,‘메스암페타민에 존재하는 불순물 분석에 의한 제조원 추적’을 내놓는 등 1년간 15편의 논문을 발표해 마약류 퇴치를 위한 학술 연구 분야에 공헌했다. ◎본상­계몽=식의약청 金炳昱 과장/벌칙·벌금 균형이루게 法 개정/200병상 중독자 진료소 개원 마약법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대마관리법을 개정해 마약류 관련 법률의 벌칙과 벌금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마약류 중독자들이 보다 전문적인 치료와 재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200병상 규모의 국립부곡정신병원 부설 마약류 중독 진료소를 개원했다. 마약류 오·남용 방지를 위한 표어와 포스터를 공모해 우수작 1편과 가작 2편을 선정,전국에 각 7만부씩 배포하는 등 대국민 홍보 및 계몽 활동을 펼쳤다. 97년 11월에는 교육부 안기부 대검찰청 경찰청 등 마약류 관련 공무원 120명이 참석하는 ‘마약류퇴치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업무 협력과 능률향상 등에 기여했다. 이번 달에 개최되는 유엔마약특별총회에서 채택될 ‘마약수요 감축지침선언문’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는 등 국제사회의 공동대처 방안 수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본상­보도=조선일보 方聖秀 기자/동남아 ‘쿤사’ 국내 침투 보도/IMF 이후 급증 사회실상고발 96년 10월부터 검찰청을 출입하며 히로뽕 대마초 헤로인 아편 등 마약류의 확산 추세와 문제점을 심층보도했다. 지난해 6월에는 동남아 최대의 마약 생산·밀매 조직인 쿤사의 국내 조직이 적발됐다는 기사를 게재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 4월에는 마약사범의 4억원대 재산을 검찰이 처음으로 기소전 몰수 제도를 적용해 몰수했다는 기사를 실어 검찰의 적극적인 대처 의지를 전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고 朴正熙 대통령의 아들 朴志晩씨의 불행한 삶과 인생유전을 상세하게 보도함으로써 마약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전했다.지난 4월에도 IMF 이후 히로뽕 등 마약류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소개했다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낯 뜨거운 비방전/朴大出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정치가 추락하고 있다.서로를 헐뜯는 데만 열심이다.IMF(국제통화기금)도,국민의 고통도 안중에 없다.한표를 위해서라면 꺼리낌이 없다.흑색선전이나 비방을 해대고,고발을 주저하지 않는다.여야 모두 선거에서의 승리만이 유일 선(善)인 탓이다.그 과정이 악(惡)이 되어도 관심없다는 태도다. 6·4지방선거전이 뜨겁다.화상을 입을 정도다.누구든지 근처에 가면 상처투성이가 될 판이다.여야가 서로에게 불덩이를 던져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매사에는 도(道)가 있다.자기 위치에서 지켜야 할 기본이다.정치인은 그 기준이 더 높고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시정잡배 수준과 별로 다를 게 없다.한심함을 넘어서 분노마저 일게 한다. 한나라당 金洪信 의원의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공업용 미싱’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그 충격은 이중으로 와닿는다.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더 신중해야 한다.金의원은 시정잡배들도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그런 말은 친구에게 해서도 안된다.상대는 대통령이다.물론 “최고통치자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권위주의 내지 성역(聖域) 시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하지만 金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했어야 했다.그 정도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능력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金의원의 발언은 자신의 변명처럼 확대 해석됐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지금쯤이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에게 합당한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여야의 이전투구는 잘못된 표 계산법에서 시작됐다.상대방의 ‘-1’은 나의 ‘+1’이라는 계산만 있다.상대에 흠집을 내지 않고 ‘+1’을 생산하려는 노력은 안중에 없는듯 하다.‘-1’을 위한 중상모략과 폭언만이 판을 치고 있다.‘+1’을 얻게 할 정책과 비전은 실종됐다. 우리의 정치인에게 공민(恐民)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국민을 두려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들에게 위민(爲民)이나 애민(愛民)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느낌이다.그 지름길은 6·4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는 것이다.상대의 ‘-1’은 나의 ‘+1’이 될 수 없음을 구태에 젖은 우둔한 정치인에게 깨우쳐줘야 한다.
  • 6·4 지방선거 D­6/與,흑색선전 강경대응

    ◎“추잡한 선거판 더이상 못본다” “野 인신공격 위험수위 넘어 통치권 도전”/악선전 출처 끝까지 추적… 선거풍토 개혁 여권이 칼을 빼들었다.종반에 접어든 6·4 지방선거전이 야당의 흑색선전과 인신공격으로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한나라당 ‘金洪信 의원의 정당연설회 발언’이나 ‘호남향우회 조직설’ 등은 통치권자에 대한 중대 도전인 동시에 막판 반전을 겨냥한 야권의 ‘진흙탕 전략’으로 규정했다. 사법대응은 물론 金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당론으로 결정,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초강수’를 던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28일 열린 중앙선대위 집행위간담회는 국민회의의 ‘격앙된 분위기’가 여과없이 전달됐다.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金의원의 발언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해 이 땅에서 음해와 중상,폭언의 풍조가 사라지도록 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선거와 상관없이 끝까지 철저히 규명할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이날 청와대 주례회동에서 당의 결정을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강력한선거풍토 개혁의지를 전했다. 팩스와 구전홍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는 林昌烈 후보 부인 朱惠蘭 여사에 대한 각종 음해성 선전에 대해서도 발끈했다.국민회의 辛基南 대변인은 “우리의 포지티브(긍정) 선거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며 대야(對野) 공세 전환을 선언했다.趙대행도 “터무니없고 낯뜨거운 악선전에 대해그 출저를 철저히 규명해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각종 음해성 흑색선전이 담긴 것으로 규정한 한나라당 호외당보(26일자)에 대해,趙淳 총재와 徐淸源 사무총장 등 4인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키로 했다. 하지만 강경 맞대응에 따른 ‘후유증’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자칫야권의 ‘진흙탕 전략’에 말려 투표율 하락이나 대량 기권사태를 우려한 것이다. 趙대행은 “국민들이 선거 자체에 낙담해 선거를 기피하려는 생각을 갖게되면 한나라당이 더 좋아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대신 “환란과 경제파탄의 책임에다가 이번 선거과정에서 추태를 보인 한나라당을 엄정하게 심판해달라”며 적극적인 투표참여를 호소했다.남은 기간 동안 선관위와 공동으로 기권방지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벌일 계획도 세웠다.
  • 16회 矯正大賞/재활 의지 부축 영광의 얼굴

    □본상 ◎면려상/金相吉 목포교도소 교위/교도소 잔반줄이기 앞장 68년 9월 임용된 이래 직업훈련과 취업알선,교도행정 개선 등에 앞장섰다. 75년 수용자의 주·부식 담당으로 근무할 때 음식쓰레기 줄이기 개선안을 마련,잔반을 대폭 줄이고 음식 소비량을 10% 절약한 덕택에 식량절감 시범업소로 지정받았다. 88∼91년까지 경비교도대 소대장을 맡아 운동장 훈련장 테니스코트 등을 조성하고 유휴지를 개간해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 특히 팔순 노부모를 모시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81년에는 KBS에서 가족다복상을 수상했다. ◎성실상/閔燦洙 춘천교도소 교사/검정고시 학습지도 열성 교도관이 된 뒤 독학으로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탓에 특히 수용자들의 학습에 정열을 쏟았다. 88년 3월부터 96년 11월까지 안양 현대학원의 지원을 받아 3백90여명이 검정고시에 응시,90% 이상이 합격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학습을 지도했다.83년 안양교도소에 근무할 때는 ‘독서대학’을 운영했다. 87년에는 문제 수형자 가운데 17명을 뽑아 불교통신강좌를 통해 법사과정을 지도,모두 포교사 자격을 따게하는 등 종교를 통한 교화에도 힘썼다.이들중 4명은 승려로 출가했다. ◎창의상/鄭炯鎬 대전소년분류심사원 주사/영치금 관리 효율적 개선 18년 6개월 동안 비행 청소년의 교정 및 교화에 헌신했다. 80년에는 영치금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처우를 개선했다.24개 부서의 근무수칙을 만들어 사고를 막는데도 기여했다.84∼92년에는 50평 규모의 야외면회장을 조성하고 대덕정신수련장을 운영하며 1천9백20여명이 교육을 받게했다. 1인 1신앙 갖기 운동과 취업알선 등을 통해 내실있는 교정교육 활동을 폈다.소년소녀가장 결연사업,자선단체 성금지원 등도 적극 추진했다. ◎교화상/金在榮 순천교도소 교회사/불우 수감자 가족돕기 솔선 교육생 지도를 맡아 94년 4월과 8월 고졸 검정고시에서 경북 수석과 전국수석 합격자를 배출했다. 93년 청송 제1보호감호소에서 근무 때 불우 감호자 가족 85명을 관할 행정기관에 건의,영세민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받게 하는 등 불우 수용자 가족돕기에 솔선수범했다. 91∼93년에는 학원과출판사에서 참고서 및 문제집 4백여만원어치를 기탁받아 학습에 사용했다.무의탁자 215명을 교정참여 인사와 자매결연을 주선하기도 했다. ◎박애상/張世文 안동교도소 종교위원/17년간 무연고자 결연알선 안동 풍산교회 목사로 81년부터 교리지도,무연고자 자매결연,사회 견학 주선 등의 활동을 해왔다. 문제 수용자 984명을 상담하고 지역 교회의 도움을 얻어 2만1천여명에게 생필품 2천3백만원어치를 지원했다.건전가요 경연대회와 교화 공연을 개최하고 춘·추계 체육대회와 독후감 발표회 때 책 5백80만원어치를 기증했다. 대구 지역 중소기업인의 후원으로 불우 수용자 자녀 40명을 선발,8백여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자비상/金太鉉 목포교도소 종교위원/법회 900차례… 2천여명 수계 70년에 목포 보현정사 주지로 부임한 뒤 75년부터 불교신앙 지도와 불교법회,수계식,무의탁 출소자 지원 등에 힘을 썼다. 9백20여회의 법회를 열고 23차례 수계 법회를 봉행해 2천3백여명에게 수계를 받게 했다.해마다 독경대회를 열어 6백60만원어치의 상품을 지원하고 불탄절과 음력설에도 떡과 과일을 전달했다. 80년부터 현재까지 불우 수용자 35명과 자매 결연을 맺고 달마다 개별 상담으로 심성을 순화하며 6백여만원의 영치금을 넣어주었다. ◎자애상/金正秀 영등포구치소 종교위원/재소자 4천2백여명 영세 살레시오 나눔의 집 공동체위원장 및 사회교정사목회 위원장으로 89년 8월부터 정신교육,미사집전,교화기자재 기증 등의 봉사 활동을 펼쳤다. 84회에 걸쳐 4천2백여명에게 천주교 교리를 지도해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영세식을 집전했다.91년 9월 崔모씨가 검거 당시 입은 총상으로 고통을 받자영치금과 의류를 지원하고 출소 후에도 치료를 받게 해주는 등 무의탁자의 소외감을 해소시키는데 진력했다.중추절과 성탄절,수용자 체육대회 때는 과일과 다과류를 지원했다. ◎공로상/尹時柄 군산교도소 교화위원/매월 장애자 위로회 열어 신안염직 대표 이사 겸 군산중앙교회 장로로 79년부터 교정 교화에 참여해 현재 교화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해마다 50여명씩 무의무탁 및 불우 수용자의 자매 결연을 주선하고 1천여만원을 영치했다.90년부터 달마다 고령자와 장애자 위로회를 열어 1천5백만원을 지원하고 교육생이 검정고시에 응시할 때마다 점심을 제공했다. 83년부터 교화협의회 회의 때마다 행사비를 후원하고 집기류를 기증하는등 교화의 활성화를 위해 힘썼다. □특별상 ◎면려상/林世鎬 안동교도소 교위/무의탁 장기수 후원자로 73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뒤 25년 4개월동안 직업훈련,불우수용자 지원,교도작업 세입증대,취업 알선 등에 기여했다. 77년부터 87년까지 무의탁 장기수 呂모씨의 후원자가 돼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토록 하고 출소 후에는 종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줘 울산 H교회 목사가 되도록 했다. 95년 7월에는 명심보감 해설판을 편집해 교재로 활용하고 ‘명절 배례’‘효도 편지 쓰기 운동’을 전개해 수용자 심성을 순화했다. ◎성실상/姜鎬喆 대전교도소 교사/재소자 자녀 등록금 지원 17년 9개월동안 불우 수용자 선도,직업훈련,경비교도대 사기 진작,직원 돕기에 힘썼다. 95년부터 崔모씨의 중학생 딸에게 2회에 걸쳐 15만원씩의 등록금을 주는등 불우 수용자 가족에게 1백17만원의 학비를 전달했다.89∼94년에는 경비교도대 행정소대장으로 일하면서 컴퓨터반,운전면허취득반,무도반을 신설하고 막사 뒤 유휴지를 이용한 영농 및 가축 사육으로 사기 진작과 복지 향상에 기여했다. ◎창의상/鄭勝允 제주교도소 교사/불우출소자 취업알선 16년 10개월 동안 출소자 취업알선,불우직원 돕기,교정시설 안전관리 등에 노력했다. 89년 7월 출소자 진모씨가 오토바이 사고로 중상을 입자 무상 진료를 주선한 뒤 생계비를 주며 보살피다 건물 경비인으로 취업을 알선했다. 칠순 노모와 지체부자유자(2급)인 여동생을 처자와 함께 부양하고 있다. ◎교화상/金基大 진주교도소 교위/정신병·폐결핵 재소자 관리 24년 동안 근속하면서 불우 출소자 취업알선,정신병 및 폐결핵 환자 관리,무연고 출소자 위탁보호 등에 힘썼다. 81년부터 주로 의무과에 근무하면서 李모씨 등 4명을 응급조치로 소생하게 했다.특히 90년부터 전국의 정신질환 및 폐결핵 환자 4백여명을 진주교도소에 수용,감염 우려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박애상/金信雄 청송제2보호감호소 종교위원/무연고 재소자 결연 주선 청송 진보교회 장로 겸 진보가축병원 원장으로 83년부터 종교지도,정신교육,수용생활보조 등에 진력했다. 88년부터 신모씨 등 무의탁자 3백70여명의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출소 후에는 취업을 알선했다. 신문,방송 등을 통해 교화사업의 실태와 어려운 여건을 널리알리고 일반인의 교정 참여의 당위성과 관심 등을 촉구했다. ◎자비상/鄭英穆 김천소년교도소 종교위원/14년간 법회… 신앙지도 김천 정심사 주지로 13년 11개월 동안 법회를 통해 신앙을 지도하고 불교신자 1인당 소년원생 1명을 맡는 1인 1신자화 운동을 전개했다. 교육생 1천8백여명에게 14차례에 걸쳐 1백80만원의 학용품을 지원하고 동국대학교에 합격한 강모군에게는 학비 1백만원과 생활비 50만원을 건네 향학열을 고취했다. ◎자애상/李泰順 경주교도소 종교위원/재소자 2,550명 교리지도 경주 성동천주교회 사목회 회장으로 고충상담,교리지도,생필품 지원 등 수용생활을 뒷바라지했다. 84년부터 예배 2백50여회를 주재하고 2천5백50여명에게 교리를 지도했다.불우 수용자 3명과는 자매결연을 맺고 28명에게는 정기 상담을 통해 고충을 들어주고 3백30만원을 영치금을 지원했다. ◎공로상/金聖烈 천안소년교도소 교화위원/교도소 보이스카우트 지원 천안문화원 부설 천안향토연구소 소장으로 88년부터 교정교화 및 상담,강연,도서 기증 등을 통해 갱생 의욕과 준법 정신을 고취시켰다. 91∼96년 한국보이스카웃 충남연맹 육성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천안교도소의 보이스카웃(충의단)에 훈련장비와 교육자재를 기증하고 악대 연주회,연극공연,잼버리 대회 참여 등의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91년 4월부터 교육생 4백20여명에게 참고서와 의자 등을 지원하고 교화용도서 9천여권을 기증했다.
  • 한심한 경찰/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몇년 전 독일 뒤셀도르프에 살던 朴모씨는 귀국직전어느 날 밤,부모 모시는 문제로 부인과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손찌검하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높아지며 매우 심각한 분위기였다.그렇게 한참 싸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경찰관 2명이 웃으며 서 있더라는 것이다.그들의 손에는 포도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왔으나 집안문제인 것 같아 포도주라도 나눠 마시며 조용히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朴씨는 패전후 나치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국민의 봉사자로 다시 태어난 독일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오마와리 상’(걸어서 순찰하는사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일본경찰도 전후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다고 한다.동네 구석구석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범죄예방에 힘쓰고 아무리 하찮은 가정 일이라도 의논상대가 돼주는 ‘친근한 이웃 아저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일본경찰은 또 주민들의 전화를 받으면 먼저 끊는 법 없이 친절하게 대답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비 아저씨’로 불리는 영국경찰은 뛰거나 빨리 걷지도 않는다.경찰관이 뛰면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유에서다.2인1조인 순찰조의 유일한 무기는 곤봉이다.각종 여론조사에서 영국경찰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직업으로 꼽히며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조사에서도 3위다.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가를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의 경찰은 어떤가.21일자 조·석간을 통해 알려진 경찰에 관한 몇가지 보도는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대구에서는 강도피해자가 파출소를 찾아가 신고했으나 관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로 떠넘겨 4시간 30분동안 세군데 파출소를 옮겨다녀야했다는 것이다.그 피해자는 지친 끝에 “빼앗긴 물건 안찾아도 좋으니 제발 집에 좀 보내달라”고 애원까지 했다고 한다.서울에서는 검문하던 경찰관이 시민을 파출소에까지 끌고가 마구 때려 중상을 입히고 단순 교통사고를 음주운전사고라고 윽박지르며 돈을 받은 경찰관이 구속되기도 했다.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받드는선진국 경찰과 비교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나라의 법질서를 수호하는 경찰의 개혁없이는 우리 사회의 장래도 없다.경찰개혁,지금 당장 시작해 완전히 다시 태어날 때까지 계속하라.
  • 6·4 지방선거 D­14/유세반 투입… 상황실 24시간 가동

    ◎고건­중상모략 멈추고 정당한 정책대결 촉구/최병렬­“지금은 열세지만 조만간 역전할 것” 기염 후보등록 마감일인 20일 여야는 유세반을 본격 투입하고 24시간 선거상황실 가동하는등 필승을 위한 총력체제에 돌입했다. 또 선거초반 기선 제압을 위해 각 당 유휴 인력을 지역별 ‘별동대’로 동원,각 후보의 취약지구 지원에 나섰다. ○…국민회의의 고건 서울시장·임창열 경기지사 후보 등은 이날 일제히 거리유세와 정당 연설회를 갖고 “지난 5년간 국민에게 고통과 빚더미만을 안긴 한나라당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자”며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후보는 이날 상오 방송 3사 합동의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영등포역과 총신대 입구 역,서울대 입구 역 등지를 찾아 거리유세를 펼쳤다. 고후보는 “6·25이후 최대 위기에 누가 나라를 구할 인물인가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병역 미필을 문제삼는 한나라당을 겨냥,“중상모략을 중단하고 정책대결의 장으로 나와 줄 것”을 촉구했다. 임후보도 이날 하오 경기 안양시 아울렛 2001 건물 앞에서 첫 정당 연설회를 갖고 “전국제조업체의 27.1%가 집중해 있는 경기도의 경제활성화는 국가 경제에 직결돼있다”며 경제관료를 지낸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자민련의 박태준 총재는 이날 경남 통영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5년전 민자당 최고위원시절 4백억달러에 불과했던 외채가 지금은 1천5백억달러로 증가했다”면서 “이런 지경으로 만든 한나라당을 심판해 국제신인도를 높이자”고 목청을 높였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후보등록 마감과 함께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수도권과 부산 등 권역별로 나눠 지원유세 총력전에 나섰다.조순 총재와 이회창 명예총재,이한동 부총재 등은 이날 하오 각각 국회 의원회관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지부 후원회와 서울시 선대위원장인 김덕룡 부총재 후원회 행사에 참석,당의 대동단결을 통한 최병렬후보의 승리를 다짐했다.최후보도 “지금은 비록 열세지만 얼마되지 않아 승리의 분기점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피력,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받았다. 손학규 경기지사 후보는 이날 부천 북부역 광장에서 개인연설회를 가진데 이어 부천의 자유시장,상동시장,원종 제일시장을 돌며 상인과 시민을 상대로한 득표활동을 벌였다. 손후보는 임창열후보를 겨냥,“지난해 11월19일 IMF행을 발표했다면,우리 경제는 외환 방어를 위해 아까운 외화를 더 이상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상수 인천시장후보도 이날 아침 동암역광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한표를 부탁한뒤 저녁 인천방송 후보토론회에 참석,경제전문가 이미지 부각에 주력했다.
  • 대형트럭·봉고 정면충돌/5명 사망·8명 중상

    【삼척=趙誠鎬 기자】 10일 낮 12시18분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무사리 38주유소 앞길에서 강원88바 8807호 25t 트럭(운전사 金광현·31·강릉시 노암동)과 울산 70라 1394호 봉고승합차(운전자 金진곤·45·경남 울산시 남구 야음2동)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합차 운전자 金씨 등 일행 5명이 숨지고 조종욱씨(울산시 남구 무거동) 등 8명이 크게 다쳐 이웃 삼척의료원과 영동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高麗河의 비극(黑龍江 7천리:32·끝)

    ◎母國人 사기 4,000여명 피해/초청 사기 작년부터 시들해지자 이번엔 피라미드 판매 속임수/전재산 잃고 우수리江서 고기잡이 흑룡강답사의 마지막 코스는 무원현 우수진(烏蘇鎭)이다.중국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이 한 점에서 흑룡강은 우수리강과 합수하여 러시아 국토로 흘러간다.우수진에서 가목사시까지는 육로로 400㎞이고 러시아 하바로프스크까지는 수로로 63㎞이다. 우수진에서 2㎞ 더 가면 흑룡강과 우수리강의 합수목에 이른다.바가이촌에 살던 8호의 조선족들이 몇년까지만 해도 5월 단오가 되면 합수목에 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즐겼다고 한다. ○조선족 대거 이민 개척 당시 조선족들이 이 곳을 개척했다는 증거를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하나는 우수진에서 20㎞ 떨어진 곳을 흘러서 우수리강과 합류하는 작은 지류를 고려하(高麗河)라고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원현성에서 우수진에 7㎞ 못미처 있는 조길향 바가이촌(八盖村) 이름이다. 20여호가 살고 있는 바가이촌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는데 북은 한족들이 한전(旱田)을 부치고 남은 8호의 조선족들이 집을 짓고 수전을 일구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조선족 6호가 이사를 가고 남쪽 역시 한족들의 차지가 되었다.남쪽의 맨 앞에 가지런히 지은 아래웃집이 조선족인데 그나마 아래 집은 부부가 한국으로 가고 아들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다. 서쪽 집의 주인은 최영근(崔永根·34)씨인데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하는 미혼처 조춘실(趙春實·24)씨,어머니 곽분녀(郭粉女·60)씨,여동생(25)까지 모두 네식구가 살고 있었다. 세발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다는 말은 아마 이 집을 두고 한 비유같다.한족식 구조의 집인데 중간의 부엌은 초라했다.부엌에서 값나가는 물건이라면 물펌프였다. ○날씨 괴팍 여름엔 매일 비 오른켠 침실은 젊은 부부용인 듯 구식 재봉틀 한 대와 나무 궤 하나가 놓여 있고 궤 위에는 이불 한 채가 얹혀 있다.벽과 천장은 신문지로 도배를 하고 유리가 깨어진 창문은 비닐을 댔다. “이사오기 전에 밀산현 계림조선족향(密山縣 桂林朝鮮族鄕)에 살았수.조선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겨우 살아 돌아온 애 아버지가 83년도에 병으로 세상을 떴지요.빚은 무겁고 논은 적고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딸 둘은 시집을 보내고 아들을 앞세우고 이리로 왔어유.고생인들 얼마나 했겠수.87년 3월에 이사를 와서 막을 치고 살았지요.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려면 물독의 물이 한뼘씩 얼더라구요.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먹었답니다.자고 일어나면 코와 눈썹에 성에가 하얗게 붙었답니다.첫해에 수전 5㏊를 부쳤는데 소출이 벼로 25마대를 거두었어유.이곳 기후가 괴팍하다구요.여름이면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우.지금은 벼종자가 이곳에 잘 적응해서 ㏊당 만여근씩 납니다” 모친의 말이다.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집을 짓고 살만해졌다.그런데 지난 93년 한국으로 간다고 사위를 통해 하얼빈 사람한테 수속비를 냈다.그리고 논을 남한테 양도했다.당장 내일 같이 한국으로 가서 뭉치돈을 벌텐데 고생스럽게 농사를 지어서 뭘하느냐는 짧은 생각이었다.그런데 돈도 떼이고 논도 사라졌다. “제가 나이는 어려도 산전수전 다 겪었답니다.한국행이 일장춘몽으로 끝나자 집을 뛰쳐나갔습니다.처음에는 천진에 가서 일하기도 했지요.그러다가 골동품에 손을 댔습니다.내몽골에 가서 묘를 파기도 하고.그래서 좀 벌었는데 그 다음번에 그만 들통이 나서 7만원을 까먹고 말았습니다.좀 남은 돈으로 다단계판매를 했던 겁니다.” ○고기잡고 삯일로 살아가 한국초청 사기가 한물 간 지난 97년에는 한국 사기꾼들의 다단계판매 붐이 일어났다.다단계판매로 속은 사람만 해도 200여명이고 사기당한 돈은 무려 3백만원이라고 한다.여름까지 연변에서 다단계판매에 말려든 사람이 4천명이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올해는 집에 와서 고기를 잡기도 하고 삯일을 하기도 합니다.요령성 영구시에 가서 한국회사에 다니는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한달에 800원을 준답니다.한두번 술 먹으면 없어질 돈으로 어떻게 삽니까” 최영근씨가 저녁상을 물리고 이야기했다. 우수리강에서의 물고기 잡이는 수입이 많다고 한다.고무배를 타고 줄낚시를 놓거나 그물을 치기도 한다.봄이면 붕어,구어(狗魚),잉어 등속이고 여름이면 복어,메사구,백어,백련어(白蓮魚) 등속,가을이면 연어가 주이고 겨울에는 미꾸라지,기름개구리 등을 잡는다. 아침 닭우는 소리에 깨니 창이 훤히 밝아왔다.해돋이 구경을 나갔다.중국에서 제일 동쪽,그날의 해돋이를 중국에서 제일 먼저 본다는 뿌듯함은 없었다. 집집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예전에는 조선족들이 살았다고 한다.그런데 그들은 마을을 세우고 논을 파고는 떠나갔다.이유는 단하나,우물을 파서 논에 관개를 해야 하는데 기계를 돌리는 디젤유 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키넘게 자란 무성한 새밭 저 멀리 지평선이 빨갛게 물들더니 쟁반같은 겨울해가 서서히 솟아올랐다. 우물쪽으로 뻗은 능수버들 휘늘어진 가지에 매달린 사람,갑자기 그가 우리 민족의 운명처럼 생각되기도 했다.이제는 지쳐서 당긴 가지를 잡은 손을 놓아버릴 것만 같다.바로 발밑은 깊은 우물,그 우물속에 빠진 목숨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 “부정선거 철저 단속”/2기 노사정위 바로 출범해야/金 대통령

    金大中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지방선거와 관련,“이번 선거는 민주선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관권선거를 없애고 위법사항을 철저히 다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또 “선거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하는 것과 부정,혼란선거를 방조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하고 “금품제공 중상모략 흑색선전폭력행위를 철저히 단속하도록 검·경에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경제를 살리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2기는 바로 출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근로자와 기업 모두 노사정 1기 합의사항 실천에 불만이 있는 만큼 2기는 실천사항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활동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金대통령은 그러나 “필요하다면 (1차 합의사항의) 골격도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여 근로자파견제,노조의 경영권 참여 금지 등 노사의 불만사항을 수용할 뜻을 시사했다. 金대통령은 “국민연금은 생활안정,복지,노후를 위해 중요한 것이니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올바른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아울러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합의되지 않은 사항조차 함부로 발표해 부처간 대립인상을 주지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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