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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운동 상징 아웅산 수치의 삶

    민주화 운동 상징 아웅산 수치의 삶

    15일 오후 11시 10분 방영되는 EBS 다큐 10+는 ‘아웅산 수치’ 편을 내보낸다. 지난 4월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도자 수치 여사.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나 세계적인 티베트학 연구자가 되었지만 평범한 연구자이자 주부에서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그리고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삶을 조명한다. 지난 4월 1일 세계의 시선은 미얀마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쏠렸다. 관심의 초점이 된 이유는 단 하나. 수치가 입후보해서다. 물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다는 소식이 곧 널리 퍼졌다. 정치활동 내내 탄압받아 지금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수치가 진짜 정치무대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과 독립 협상을 병행해 가던 아웅산 장군은 1947년 암살당했는데 이때 수치 나이가 겨우 2살이었다. 15살의 나이로 영국 유학을 떠났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72년 영국인 마이클 애리스와 결혼했다. 학문적 성과도 차곡차곡 쌓아나가 옥스퍼드대 교수로 임명됐고 티베트학에서는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게 됐다. 결혼 뒤 15년 동안 수치는 두 아들을 키우며 성공한 학자이자 주부로서의 평범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 1988년 잠깐의 귀국이 수치의 인생 행로를 바꿨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귀국했는데 당시 조국 미얀마에는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로 조국에 대한 무한한 의무감을 느꼈다는 수치는 그 길로 미얀마에 눌러앉아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하고 민주화운동 최전선에 나섰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눈엣가시인 수치를 가만 둘 수 없었다. 온갖 정치적 탄압과 언론을 동원한 중상모략을 일삼았다. 남편 애리스는 이때부터 암으로 세상을 등진 1999년까지 해외에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원했고, 아내를 대신해 노벨평화상이나 사하로프 인권상 등을 수상했다. 계속된 민주화운동과 국제적 압력으로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은 2010년 11월 해제됐고 이제 정식 국회의원이 됐다. 수치가 정치권에서 어떤 활동을 보여줄지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강한 보편적 복지·4대 성장 추진

    강한 보편적 복지·4대 성장 추진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17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상생과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내세웠다. 문 상임고문은 “지나친 경쟁과 소외, 양극화의 살벌한 세상 대신 사람들이 서로 믿고 협력해 함께 더 큰 성장을 이루는 나라, 그 결과를 공유해 지속가능한 삶의 토대를 만드는 나라가 제가 꿈꾸는 나라”라면서 “북한과의 신뢰와 협력의 토대 위에 평화와 공동번영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문 고문은 이날 큰 틀의 6대 공약을 발표했다. 문 고문은 “모든 시민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공평’과, 반칙과 특권,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정의’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강한 보편적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복지가 포퓰리즘이라는 새누리당의 중상모략을 거부한다. 복지는 낭비가 아니고 투자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문 고문은 6대 공약 중 ‘4대 성장 전략’을 ‘포용적 성장·창조적 성장·생태적 성장·협력적 성장’ 등으로 세분해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무게를 뒀다. ‘상생’을 위한 복지를 강조하면서도 ‘복지=퍼주기’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는 “분배와 재분배를 강화해 중산층과 서민들의 유효수요와 구매력을 확대함으로써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이 포용적 성장”이라면서 “‘생활임금’ 개념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생활임금은 2008년 영국 런던시장으로 당선된 보리슨 존슨이 채택한 제도로 특정지역에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뜻한다. ‘창조적 성장’을 위해서는 ‘입시를 위한 과잉 학습’ 대신 ‘평생학습 체제’를 내세웠고, ‘생태적 성장’을 위해서는 “에너지 수급 구조를 석유 녹색 신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또 ‘협력적 성장’을 위해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겠다.”고도 했다. 이 밖에 문 고문은 ‘일자리 혁명’을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매월 일자리점검 범정부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했고, 가족 돌봄의 공적 서비스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북 정책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을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6자회담과 남북관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日 이지메는 학교 - 폭력은 경찰 ‘분리대응’… 학교폭력 잡았다

    日 이지메는 학교 - 폭력은 경찰 ‘분리대응’… 학교폭력 잡았다

    집단 괴롭힘·따돌림(이지메)의 원조 격인 일본이 이지메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07년 이후 ‘이지메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강력한 단속에 나서면서 한동안 주춤했지만 최근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적발 즉시 경찰 등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학교 폭력은 뚜렷하게 줄어들어 한국 교육 현장에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이후 학교 붕괴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집단 괴롭힘은 물론 교사 폭행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지메가 사회문제가 되자 교육당국은 이지메를 ‘학생이 일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심리적·물리적인 공격을 받은 것에 의해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정의하고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사법당국과 공조해 엄격하게 처벌을 했다. 특히 2007년에는 일본 정부가 이지메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이지메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까지 가해자로 규정했다. 또 아이와 부모가 희망하면 이지메에 따른 전학을 인정하기로 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험담을 하거나 중상모략하는 것이 추가됐고 이지메 건수도 발생 건수에서 인지 건수로 변경했다. 반면 1990년대 이후 생명의 소중함과 죽음의 엄숙함 등에 관한 인성교육을 늘리는 한편 사회성을 키우는 체험활동과 봉사활동 시간을 확대하는 등 유화책도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상담사와 ‘학부모 상담원’을 배치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의 이런 노력에도 일본의 집단 괴롭힘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가해 학생들이 엄한 처벌을 받았지만 같은 사건이 반복됐고 계속해서 보다 엄격한 처벌이 이어지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2010년 3월 일왕의 손녀인 아이코 공주(당시 8세)가 남학생들에게 발로 차이는 괴롭힘을 당해 5일 동안 등교를 거부했고 왕실은 발칵 뒤집혔다. 아이코 공주는 6일 만에 마사코 왕세자비와 함께 학교에 다시 나간 뒤 2년 동안 모녀가 동반 등교를 할 정도였다. 이지메를 당하는 아이를 ‘집단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로 간주해 이지메를 피해자 책임으로 돌리는 일본 특유의 사회문화도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지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감추려는 교육 현장과 교육당국의 관료적 발상이 이지메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변호사인 나카지마 히로유키는 “괴롭히는 아이들을 학교 안에서 지도하려는 생각이 피해자에 대한 구제를 소홀히 하게 만든다. 피해자를 지키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지메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가해 학생을 프리스쿨 등 학교 밖에서 카운슬링을 통해 지도하는 미국식 지도방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 내에 이지메 제보함을 설치해 제보자의 비밀을 지켜주면서 이지메 신고 제도를 정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지메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지만 학교 폭력은 현저히 줄고 있다. 이는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을 나누어 다룬 결과다. 일본 교육당국은 학교 폭력은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개인마다 폭력에 대한 정의가 다를 수도 있지만 때리거나 돈을 갈취하는 폭력 및 공갈은 범죄 행위이므로 경찰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한다. 이지메는 교육 현장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지만 폭력은 학교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엄연한 범죄 행위이고 교사가 해결할 수 없는, 경찰이 다뤄야 할 영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폭력을 행사할 경우에는 바로 사법당국에 고발되고 법적인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인식이 퍼진 결과 일본 내 학교 폭력 건수는 감소 추세다. 2009년 초·중·고등학교 폭력과 관련해 교사에 대한 폭력이 8304건, 학생 간 폭력은 3만 4279건, 학교 밖 다른 대상을 상대로 한 학생의 폭력은 1728건이었다. 일본의 학년당 전국 학생 수는 약 100만명으로 초중고 전국의 학생 수는 1200만명가량이다. 평균적으로 500명당 한 명, 즉 한 학교에서 한두 명만이 무력행사를 하거나 침을 뱉거나 하는 등의 각종 폭력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사이버보안 관련법령 정비 서둘러야/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사이버보안 관련법령 정비 서둘러야/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2년 12월 19일 오전 6시,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A정당 대통령후보 공식사퇴’라는 공지사항이 게시된다. 또한 그 후보의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같은 내용의 성명서가 발표된다. 이 내용이 전파되면서 유권자들은 매우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해당 후보는 TV 기자회견을 통하여 후보 사퇴 및 비리 연루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지만 일부 유권자들은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믿고 투표를 포기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선택한다. 개표 결과 박빙의 승부 끝에 상대방 후보가 1% 포인트 차로 승리한다. 무슨 삼류 정치소설 같은 이야기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반추해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며 전자정부 세계 1위라는 대한민국에서 선관위 서버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두고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그 배후가 있는 것인지, 또한 윗선이 있다면 어디까지인지에만 쏠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사이버테러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한지를 이번 사건이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올해만 해도 3·4 디도스 사건, 농협전산망 사건, 네이트 개인정보 유출사건 등 각종 대형 사이버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18대 국회에서 ‘국가 사이버위기 관리법’, ‘악성프로그램 확산방지법’ 등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법안을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였다. 이번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것은 수사당국에 맡기고,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사이버 보안과 관련한 법 제도를 정비하고 사이버 테러에 대해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선관위 사이버 공격을 반면교사로 삼아 현행 ‘전자정부법’을 개정, 지금은 정부의 보안조치대상에서 제외되어 각자 개별적으로 보안대책을 수립·시행하는 국회·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등과 같은 헌법기관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의 종합적인 사이버 보안 관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 사이버위기관리 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 과제로는 향후 시행이 예상되는 사이버 선거에 대해서도 미리 철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선거는 단순히 종이에 도장을 찍고 득표 숫자를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갈수록 지능화되고 첨단화되는 사이버 영역에서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서는 ‘사이버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 및 기능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당연히 사이버 보안 전문인력의 확보와 양성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사이버 선거 관리에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불법선거운동을 색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킹·바이러스 등과 같은 사이버 테러에 대한 예방 및 대응활동도 당연히 포함된다. 유언비어 유포·중상모략 등 사이버 불법선거운동을 없애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후보자들의 개인 홈페이지를 선관위의 홈페이지와 연계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년 선거에는 약 200만명의 해외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해외 유권자에게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선관위의 홈페이지만으로는 부족하고 후보자들의 개인 홈페이지가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관리되는 개인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격에 취약할 수 있기 때문에 선관위가 후보자의 개인 홈페이지 관리를 지원한다면 보안관제 모니터링을 통하여 후보자에 대한 불법선거운동을 색출할 수 있고 사이버 공격에 대한 예방·대응 활동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관위 디도스사건은 사이버 공격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매우 초보적 수준이었다. 그러나 실제 사이버 테러는 이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다. 여당도, 야당도 피해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제라도 여야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버리고 오로지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사이버 보안을 위한 법제 정비 및 추진체계 개편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 무소속 후보 이면합의 남원시장 재보선 혼탁

    10·26 재·보궐선거의 전북 남원시장과 순창군수에 출마한 후보들간에 은밀한 뒷거래와 이면 합의각서가 공개되면서 선거판이 혼탁해지고 있다. 남원시장 재선거에서는 후보 간에 시장직과 국회의원직을 나눠갖자는 이면 합의각서가 공개된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무소속 김영권 후보는 최근 지역언론이 주최한 후보자 초청토론회에서 지난해 6·2지방선거 때 최중근(무소속·전 남원시장) 후보와 ‘국회의원과 시장 선거 때 서로 도와주자’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공개했다. 합의서에는 최 후보는 지방선거 때 김 후보를 도와주고, 김 후보는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최 후보를 돕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 후보는 “캠프에 있는 사람이 그 쪽(김 후보측)과 합의한 것”이라며 “나와는 전혀 무관하며 이번 선거에서 나를 떨어뜨리려는 중상모략”이라고 해명했다. 순창군수 재선거에서도 이홍기(무소속) 후보가 조동환(전 순창교육장) 예비후보자를 매수한 혐의로 앞서 검찰에 구속됐다. 이 후보는 조 예비후보에게 지원을 부탁하며 “인사권·사업권 등 군수 권한의 3분의1을 주겠다.”며 매수를 시도했다.
  • [서울시장 보선 D-8] 박원순 “지지율 역전? 끝까지 시민 믿어”

    [서울시장 보선 D-8] 박원순 “지지율 역전? 끝까지 시민 믿어”

    박원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가 17일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선거전에 맞서 전방위 반(反)네거티브전을 본격화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 서울시장 10년 실정에 대한 심판론을 거론하며 후방 지원에 나섰다. 박 후보 측 선대위와 민주당은 이날 하루에만 한나라당과 나경원 후보를 공격하는 논평과 브리핑 15건을 쏟아냈다. 박 후보는 오후 민주당 김수영 양천구청장 후보와의 정책협약식에서 “흑색선전은 한나라당의 실체이며 구태정치를 없애야 한다.”면서 “오세훈 전 시장은 이명박 전 시장의 아바타, 나 후보는 오 전 시장의 아바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최근의 지지율 정체에 대해 “아직 지지율이 역전됐다고 믿지 않는다. 끝까지 시민을 믿는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앞서 고려대에서 열린 대학생 간담회에서도 “서울광장이 마치 시청과 경찰의 것인 양 행동한다.”며 두 전 시장의 시정을 비판했다. 이는 한나라당의 공세를 네거티브 선거전으로 몰아붙여 20~30대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이 조직적인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증거자료’도 공개했다. ‘나경원 후보 선거 유세정보’라는 제목의 휴대전화 메시지에는 ‘하버드 로스쿨 객원 연구원 명단에 ‘원순박’ 이름이 없다’ 등의 내용이 나 후보 캠프 조직본부장의 이름으로 보내져 있었다. 우상호 선대위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거짓 선전을 조직적으로 당원들에게 보내 구전 홍보하라고 지침을 보낸 게 네거티브 선거가 아니면 무엇이냐.”며 나 후보 측의 해명과 사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나 후보가 이날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한 의혹 제기에 “아버지에 대한 말씀은 드릴 필요가 없고 시장 후보는 바로 저 나경원”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공세를 폈다. 양순필 선대위 부대변인은 “남의 작은할아버지까지 악용하면서 자기 아버지는 빼라고 한다. 특권 의식에 빠진 어처구니없는 이중적 태도”라고 몰아붙였다. 민주당도 가세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근거 없는 흑색비방과 중상모략을 자행한 정치세력은 민형사상 법적 대응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1560년, 수년간 ‘진짜’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한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한 재판이 파리 고등법원에서 진행되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책과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이 희대의 사건은, 재판 말미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출현하는 대반전을 거쳐 가짜 마르탱 게르가 처형당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당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면서 이 사건을 전해들은 몽테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짜 마르탱 게르는 최선을 다해 진짜 마르탱 게르로 살았고, 진짜의 죽마고우도 아내도 모두 가짜 마르탱 게르를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법이 진실을 판단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가. 몽테뉴가 보기에 마르탱 게르 사건은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 루터파냐 칼뱅파냐를 기준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가짜 마르탱 게르’처럼 온전히 자신의 행위와 말과 정신으로 자립(自立)하기를 갈망했던 자. 삶의 진실을 신에게 묻지 않고 자신의 걸음 속에 담고자 했던 자. 스스로 미친 자가 되어 길을 떠난 돈키호테보다 조금 앞서, 여기, 자신을 탐색함으로써 광기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 몽테뉴가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장차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몽테뉴는 ‘전도서’의 구절을 12개나 발췌하여 서재 천장에 명문으로 새겨 놓았다고 한다. 몽테뉴가 인용한 유일한 성서 구절이다. 살벌한 ‘종교의 시대’에 몽테뉴는 대담하게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고전 속에서 자기 시대와 인간을 읽었으며, 고전을 통해 전란의 늪에서 재생(Re-naissance)할 수 있었다. 흔히 르네상스를 찬란한 빛과 색의 시대로 상상하지만, 정작 16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과 죽음이다. 1598년에 낭트칙령이 공포됨으로써 기나긴 종교전쟁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가톨릭과 이에 ‘항의’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를 내세운 왕과 귀족들의 대규모 살육경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 기근과 페스트까지, 16세기는 흡사 태피스트리처럼, 화려한 문예부흥의 뒷면에 상상할 수도 없는 상처와 모순을 깔고 있었다. 휴머니즘? 그런 건 헛되고 헛된 이상에 불과했고, ‘그리스도의 이름’은 살육에 필요한 명분일 뿐이었다. “기독교의 적개심만큼 격렬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신앙심은 우리의 증오심, 잔혹함, 야심, 탐혹, 중상모략, 반역의 성향을 조장할 때는 참으로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종교는 악덕을 근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악덕을 감추고 키우고 부추기고 있다.” 전란의 한복판에서 몽테뉴는 그리스, 로마인들의 절제된 태도를 견지한 채 광신의 결과를 묵묵히 응시했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주의 교육을 신봉하고, 칼 대신 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간파한 부친은 몽테뉴에게 두 살 때부터 라틴어를 교육시킨다. 우리로 치면, 모두가 한글을 쓰는 시대에 한문으로만 말하고 쓰게 하는, 기이한 조기교육을 실행한 셈이다. 몽테뉴가 어떤 종교나 정파와도 거리를 두며 보신(保身)할 수 있었던 데는 부친의 이런 ‘반시대적’ 조기교육이 공헌한 바가 크다. 청년기에 파리 왕립교수단에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한 몽테뉴는 유학을 마치고 고향 보르도로 돌아온 1557년부터 고등법원에서 조세심의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어떤 절차로 법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법관이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법률이 신뢰를 얻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법률이 가진 권위의 불가사의한 근거이고, 그 밖에는 아무 근거도 없다. 어쨌든 늘 공허하고 판단이 불안정한 인간이 법률을 만든다.” 몽테뉴의 ‘몽테뉴다움’이 여기 있다. 그는 한번도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을 확신한 적이 없다. 법관으로 근무할 때는 법의 판단력을, 파리 궁정에서 왕의 시종무관으로 근무할 때는 국가와 군주권력의 토대를 의심했다. 가톨릭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에 적대적이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새것’을 만들려는 일체의 개혁주의에 진저리를 쳤다. 확신으로 움직이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주의 깊은 거리감 때문인지, 후대는 그를 비겁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몽테뉴는, 모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유토피아’를 상상한 대가로 처형된 토머스 모어보다는, “우리 인간은 얻어맞거나 걷어차이면서도 왜 이처럼 참을성 있게 폭군의 굴레와 족쇄를 감수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던 에티엔 드 라 보에시에 주목한다. 나는, 인간은 왜 이토록 무력한가. 인간이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고, “자신에 대해 절대적으로, 단순하게, 결정적으로, 혼란이나 혼동 없이, 단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끔찍하게 미워했던 어머니와, 동생과 바람난 아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음경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 신장결석증을 앓으면서도 병원 한번 찾지 않고 고통을 감내한 것도, 어떤 것도(그것이 심지어 병이나 죽음일지라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내쳐서는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일생의 화두는 이런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1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마흔 살이 된 몽테뉴는 고향으로 내려가 이 문제에 대한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에세’, 전장에서의 산책 “무언가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찾아냈다’, ‘찾을 수 없다’, ‘아직 찾고 있다’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귀착한다.” 몽테뉴가 주목한 것은 ‘아직 찾고 있는 중’이었던 회의론자들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입증될 수 없다. 판단의 주체도, 판단의 대상도 끊임없는 변화와 동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을 필요로 하는 건, 결정하고 선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전제를 의심하기 위해서다. “회의론자는 온갖 의견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반대되는 판단은 나를 분개시키지도 흥분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눈뜨게 하고 단련할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 식의 회의였고, 때문에 그의 회의는 가볍고 명랑하다. 1572년부터 거의 죽기 직전까지 수정과 첨삭을 거듭하며 집필한 ‘에세’는 그의 명랑하고도 예리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흔히 ‘수상록’으로 번역되는 ‘에세’(Les Essais)는 몽테뉴 자신의 말을 빌리면 “정신의 잡동사니”이자 사유 시험(essai)이라고 할 수 있다. 몽테뉴는 “평화가 그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 일이 전혀 없던” 전쟁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즉흥적 사유를 기록하는 일에 몰두한다.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내 타고난 능력의 시험(essai)일 뿐,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의 시험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남들이 내 무지를 공격해도 별로 곤란할 건 없다.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가장 아름답고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흐트러진 걸음걸이라도 평소의 자연스러운 내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싶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침착함과 단순함, 종종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명랑한 어조 때문에 ‘에세’를 읽으며 화약냄새와 총포 소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몽테뉴는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는, 판단을 중지한 채 의심하고 회의한다. 그는 신 앞에서 맹세의 언어를 남발하는 권력자보다는 시장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기록하는 은자(隱者)가 되길 꿈꿨다. 무도한 세상이 종종 그의 판단과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갔다가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펜으로 걸었다”. “인생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가 인생에 마련해 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과 자연과 이성을 사유한 몽테뉴가 터득한 지혜다. ●니체·푸코가 회의주의 본받아 세상을 편히 사는 법을 알아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몽테뉴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던 니체는, 손을 떨게 하거나 눈물을 글썽거리게 하지 않는, 겸허하면서도 용기 있는 그의 사상을 예찬했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 인간의 본질이라든가 의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푸코 역시 몽테뉴의 회의주의를 한편에 늘 품고 있었다. 우리 자신의 최고 걸작품은 “떳떳하게 살아가는 일”이라며, 과(過)도 부족도 없이 “분수에 맞는 평이하고 건강한 지혜”를 최고의 지혜로 삼았던 몽테뉴. 이 죽음과 불안의 시대에, 나 역시 그의 가르침을 본받고 싶다. “나는 그날그날을 살고 있다. 그리고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단지 나만을 위해 살고 있다. 내 목적은 그것뿐이다.” 채운 남산강학원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키신저 前 美국무 회고록서 한국전쟁 비화 공개

    키신저 前 美국무 회고록서 한국전쟁 비화 공개

    지난 17일 시판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저서 ‘중국에 관하여’(On China)에 따르면 1950년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과도한 자신감, 미국의 한국 중요성 무시와 판단 착오, 스탈린의 욕심과 오판, 소련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보 경쟁 등이 복합 작용해 일어났다.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1950년 1월 동아시아 미군 방어선(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북한에 ‘청신호’를 던졌다. 애치슨은 의회에서 한국이 방어선에 포함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한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고 있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실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미국의 국제안보 개념에 한국에 대한 방어는 고려되지 않았다. 김일성의 거듭된 남침 승인 요구에 대해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우려해 부정적이던 스탈린이 태도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스파이망을 통해 입수된 미국의 극비 문서였다. ‘NSC-48/2’라는 이름의 이 문서는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입안해 1949년 12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이 승인한 안보정책 보고서다. 문서는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어선 외곽에 둔다.”고 명시, ‘애치슨라인’을 반신반의하던 스탈린에게 확신을 안겨 준다. 이 문서는 이중 스파이인 영국 정보부 출신 도널드 매클린을 통해 소련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스탈린이 마오쩌둥과의 회담에서 중국이 소련에 부여해온 특혜를 곧 종료시킬 것임을 통보받은 것도 남침 승인의 한 요인일 수 있다. 스탈린은 다롄항 사용권을 잃을 경우 대안으로 통일된 한반도의 부동항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어 했을 법하다. 그러면서도 음흉하고 조작에 능한 스탈린은 나중에 혹시 일이 잘못됐을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는다. 그는 김일성에게 유럽 쪽을 방위하느라 여력이 없다며 “소련으로부터 큰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정 도움이 필요하다면 마오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마오는 타이완을 정복할 때까지는 전쟁을 피하고 싶었지만, 김일성이 스탈린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소련에 빼앗길 것을 우려해 마지못해 동의했다. 김일성은 마오가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냐고 묻자 북한군과 남한 내 빨치산의 공조만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거만하게 말했다. 애치슨라인의 목적은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소련을 견제하려는 계산이 담겨 있다. 애치슨은 중국은 소련과 분리된 독자적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같은 노선을 밟아야 한다며 스탈린의 신경을 자극했다. 스탈린은 마오에게 애치슨의 연설이 중상모략이라고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할 것을 종용했지만, 마오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목표가 부재했다.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물리치는 것까지가 목표인지,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통일을 시키는 게 목표인지 좌표가 없었다. 이에 따라 군사작전의 결과가 정치적 판단을 이끌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에야 트루먼 행정부는 한반도 통일 때까지 군사작전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택했다. 마오가 한국전 참전을 결심한 시기는 미군이 1950년 10월 38선 이북을 넘어 두만강으로 북진했을 때가 아니라 미군이 참전을 결정한 때부터였다. 미군 개입은 바로 북한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애리조나 희생자 추도식의 두 얼굴

    애리조나 희생자 추도식의 두 얼굴

    “우리 이제 말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해 나가도록 합시다. 지난 토요일 사건으로 희생됐거나 다친 사람들의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시민의식을 존중하는 새로운 정치 문화를 열어 갑시다.” 12일 저녁 7시(현지시각) 애리조나주 투손시의 애리조나대학 농구경기장에서 열린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식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섰다. CNN 등을 통해 미 전역과 세계 각지로 생중계된 추도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배려’와 ‘존중’ 그리고 ‘희망’과 ‘단합’을 강조했다. 나날이 거칠어져 가는 미국 사회의 정치문화의 일대 전환을 호소했다. 32분간 진행된 추도 연설에서 오바마는 미국 정가를 달구고 있는 독설문화를 직접 거론하며 이번 비극을 서로 비난하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아니라 미국민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존의 인식을 새롭게 다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9살 나이에 희생된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뤘다. 발레와 수영, 야구를 좋아했던 그린을 회고하면서 오바마는 “그린이 품기 시작한 위대한 미국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저버려선 안 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도식장을 가득 메운 1만 4000여명은 1분 가까이 이어진 기립박수로 그린을 애도하고, 오바마의 호소에 화답했다. 연단 아래서 남편의 연설을 지켜보던 미셸 여사도 눈물을 훔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연설 말미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기퍼즈 의원이 눈을 떴다.”고 기퍼즈 의원의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갈음했다. 오바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추도 연설에 앞서 이날 미국 정가에서는 보수진영의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진보 진영으로부터 독설과 선동적인 언행으로 이번 총격사건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아 온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사흘 만에 침묵을 깨고 “중상모략을 중단하라.”며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특히 항변과정에서 ‘피의 비방’(blood libel)이라는, 또 다른 독설을 퍼부어 유대인 단체들을 한껏 자극했다. 새로운 독설 공방을 일으킨 셈이다. 페일린 전 주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8분짜리 동영상을 통해 “비극이 발발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기자와 전문가들이 ‘피의 비방’을 꾸며냈다. 이는 그들이 비난하는 증오와 폭력을 그대로 불러일으키는 일일뿐”이라고 언론을 비난했다. 그가 말한 ‘피의 비방’은 근거 없는 비난을 일컫는 표현으로, 중세시대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을 위해 기독교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고 그 피로 빵을 만들었다는 비방으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기도 했다. 논란은 확산될 조짐이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피의 비방’ 발언이 페일린의 2012년 대권 도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 kmkim@seoul.co.kr
  • 사르코지 ‘로레알 스캔들’ 정면돌파

    “그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로레알로부터 15만유로에 달하는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측근 지키기’로 끝났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공영방송 프랑스2와의 단독 인터뷰를 갖고 로레알의 대주주인 릴리앙 베탕쿠르 측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돼 사퇴 위기에 직면한 최측근인 에리크 뵈르트 노동장관에 대해 “정직하고 유능해 나와 총리가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신임을 재확인했다. 그는 베탕쿠르의 별장에 갔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생각해 봐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른 손님들 앞에서 돈을 받았다는 거냐.”고 되물은 뒤 세간의 의혹을 ‘중상모략’으로 규정했다. 또 “돈이 인생의 주요한 목표였으면 정치인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했을 것”이라면서 정치 자금 수수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사르코지는 뵈르트 장관의 구체적인 거취에 대해 “당 재무위원장 자리에서는 물러날 것을 권고했다.”면서 “(노동장관으로서) 연금 개혁에 특별히 전념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 자금을 관리하는 측근과 정부 최대 현안 모두 포기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사르코지 정부는 퇴직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상향 조정하는 연금 개혁을 추진 중이다. 인터뷰에 앞서 프랑스 경찰은 이날 베탕쿠르의 파리 교외 주택과 사무실 등 7곳을 압수 수색했다. 이처럼 수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지휘하고 있는 검사 필리프 쿠로이에가 사르코지와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야당 등으로부터 수사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사르코지는 “‘판사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독립이라고 믿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사법 독립의 개념과 다르다.”라고 응수했다. 이처럼 저녁 황금 시간대 TV 인터뷰를 통한 대국민 호소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여론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날 발표된 LH2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7%가 뵈르트 장관을 불신임한다고 답한 반면 28%만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사르코지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 불똥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프랑스 최대 여성 갑부인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대주주 릴리앙 베탕쿠르한테서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스캔들에 휘말렸다. 경찰은 6일(현지시간) 의혹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상모략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장 프랑수아 코페 원내대표 등 당내 유력인사들까지 대통령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AFP통신은 이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가 내각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최근 발표된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율이 26%로 역대 최저수준까지 떨어졌다.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은 당초 베탕쿠르와 외동딸 사이에 벌어진 재산 다툼 도중 베탕쿠르의 전 집사가 비밀리에 녹취한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베탕쿠르와 재산관리인 사이의 대화를 담은 이 녹취록에는 베탕쿠르한테서 정치자금을 받은 인물들 중 사르코지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에리크 뵈르트 노동장관이 등장한다. 최근 프랑스의 탐사보도 인터넷매체인 ‘메디아파르’는 베탕쿠르의 회계사였던 ‘클레르 T’의 발언을 인용, 사르코지 대통령이 파리 근교 뇌이시 시장으로 일할 당시 베탕쿠르의 집에서 여러 차례 현금 봉투를 직접 받았다고 보도했다. ‘클레르 T’는 이어 뵈르트 장관이 200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대중운동연합 재정담당 책임자로 있으면서 현금 15만유로(약 2억 3000만원)를 건네받았다고 폭로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美 오보역사에 비친 오늘의 언론

    ‘○○호 폭발하다’ ‘○○호 폭발은 폭탄, 또는 어뢰 때문인가?’ ‘○○호, 적의 비밀 병기에 두 조각 나다’ ‘○○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모독하다’ ‘○○호 병사들의 용맹에 대한 중상모략’ 많은 이들이 ‘○○’을 보고 ‘천안’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에 들어갈 단어는 ‘메인’이다. 1898년 2월 카리브해에서 의문의 사고로 폭발한 미국 해군 소속 ‘메인호’에 대한 당시 신문 기사의 제목들이다. 메인호 폭발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지만 당시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은 해군 사문회(査問會)를 통해 선내 탄약고에서의 우발적인 폭발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진실로 대할 수 없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전쟁을 원하는 군부와 언론의 부추김 탓이었다. 당시 100만부 안팎의 부수를 자랑하던 ‘뉴욕 저널’ 발행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를 미국이 소유하기를 원했다. 마침 미국이 군사 개입의 단골 메뉴로 쓰는 인권 문제가 쿠바에서 제기되자 미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 명분으로 6682t짜리 전함 메인호를 쿠바 아바나 앞으로 보낸다. 스페인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데 ‘뉴욕 저널’은 어찌어찌 워싱턴 주재 스페인 공사의 사신(私信)을 입수해 이를 대서특필했다. 매킨리 대통령을 비난하는 편지 내용을 꼬투리삼아 ‘미 합중국 역사상 최악의 모욕을 당하다’라고 제목을 달며 정부와 국민들을 자극했다. 폭발 이후에는 아예 ‘물 만난 고기’였다.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명제를 달고 온갖 거짓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해군부 차관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을 가리켜 “기골이 초콜릿 과자처럼 말랑말랑한 사람”이라고 비아냥댄 것도 한몫 거들었다. 결국 매킨리 대통령은 스페인에 선전 포고를 했다. 허스트는 뜻을 이뤘지만, ‘황색 저널리즘의 창시자’라는 후대의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385명의 미군이 죽고, 1660명이 다친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메인호를 기억하라’(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책보세 펴냄)는 이 밖에도 날조와 왜곡으로 얼룩져 있는 미국 언론의 사례들을 하나씩 꼼꼼히 제시한다. 100년 훨씬 전의 미국에서 벌어진 언론과 기자들의 거짓말 사례들이건만, 오늘날의 한국 언론도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진실을 외면한 언론이 동서고금에 걸쳐 그려 낸 부끄러운 자화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만 7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르헨 야당 시의원, 여당대표에 권총결투 신청

    아르헨 야당 시의원, 여당대표에 권총결투 신청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를 받아들이겠는가.” 21세기에도 이렇게 도전장을 보내 결투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르헨티나 정계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결투를 신청한 사람은 현직 야당 지방 시의원, 도전을 받은 사람은 같은 지방 시의원 여당대표다. 17일 아르헨티나 언론에 따르면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진 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州)의 자치도시 엔세나다라는 곳. 엔세나다의 시의원이자 지방정당 ‘공화제안’의 대표인 미겔은 최근 여당인 페론당 엔세나다 시의회 원내대표 루이스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도전장에는 “목숨을 건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의 조건과 사용할 권총을 선택해 알려달라.”고 적혀있었다. 도전장을 받은 여당 대표는 “여야 간 차이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인데 이런 장난 같은 리얼리티 쇼가 과연 필요한지 모르겠다. 야만의 극치다.”라고 불쾌해 했다. 하지만 권총 결투를 신청한 야당 대표는 “여당이 야당이 중상모략하고 있는 데다 우리 당 소속 여자의원의 명예까지 훼손했다.”면서 여당대표와 대결하겠다는 뜻을 꺾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엔세나다 시의회에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건 야대여소에서 여소야대로 시의회 구성이 바뀐 지난해 12월부터다. “시가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건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던 야당의 책임”이라고 여당이 공세를 편 게 발단이다. 야당 소속의 한 여성의원이 임신으로 오랜 기간 시의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여당은 “시의원의 책무를 소홀히 한다.”고 공격을 퍼부었다. 야당 대표 미겔은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게 여당인데 공공부채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는 게 말이 되는가.”라면서 “여당이 엉뚱한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결투로 사생결단을 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신 때문에 불가피하게 등원하지 못하는 우리 당 여성의원을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억울하게 공격을 당한 여성의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결투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 현행법이 권총 등 무기를 사용한 결투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현지 언론은 “도전장을 보낸 것도 위법”이라며 “야당대표에게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아르헨티나 네티즌들은 “아무리 정치판이 싸움판이 됐다지만 권총결투가 웬말이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시아 분쟁, 종교인이 해법 찾아야

    아시아 분쟁, 종교인이 해법 찾아야

    23년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분쟁, 미국의 침공 이후 심각한 사회 파괴의 후유증을 앓는 이라크, 팽팽한 긴장 속에 내전을 이어가는 필리핀 민다나오, 분단된 한국…. 정치, 사회, 혹은 종교적 원인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 분쟁들을 끝내기 위한 평화로운 해결책은 과연 없는 것일까. 아시아의 분쟁들을 종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종교인의 역할을 논의하는 국제 세미나가 열린다. 사단법인 종교평화국제사업단이 분당샘물교회 봉사단의 아프간 피랍 1주년을 맞아 17∼20일 소피텔앰버서더호텔서 마련하는 ‘갈등지역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아시아 종교인의 역할’ 세미나. 이라크,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해 분쟁 지역 종교인들이 대거 참석, 세계 평화를 위한 화해자로서의 역할찾기에 머리를 맞댄다. ●종교 본연의 가르침 복귀 메시지 이번 세미나는 아프간 피랍 사태를 계기로 마련한 자리답게 참석자들이 이슬람 분쟁지역의 해법찾기를 놓고 집중 토의할 예정. 필리핀 민다나오지역의 이슬람·가톨릭 충돌 사례를 비롯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의 심각한 종교갈등 사례가 자세히 소개되며 불교, 기독교, 이슬람 종교인들의 토론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발제는 아프간에서 불교 포교 활동에 나섰던 유정길 JTS 에코부다 대표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충돌: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와 미르 나와츠 칸 마르와트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의장의 ‘충돌과 대화:이슬람지역의 평화정착과 아시아 종교인의 역할’. 유정길 대표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분쟁과 전쟁, 내전의 역사는 영국이나 소련 등 강대국이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이해가 아프간의 역사 속에 노정되어 전란의 참화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종교의 본래 가르침은 이러한 파괴적인 문명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임에도 아프간에서의 종교는 오히려 야만적인 문명의 한 부품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유 대표는 특히 “소련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는 투쟁의 힘과 죽음을 불사하는 신념은 바로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됐다.”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을 벌였고,3번의 영국 침략과 소련의 침공을 물리쳤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종교적 에너지가 탈레반을 만들었고, 또 다른 종교적 교의가 아프간 내의 수니파와 시아파로 구별되는 종족간의 비극적인 내전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은 종교로 하여금 종교 본연의 가르침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종교인 스스로 깊은 참회와 회개를 통해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종교인들의 평화유지군 구성 제안 마르와트 의장은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 캐시미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태국 남부지역, 한반도 그리고 스리랑카의 폭동 등 해묵은 분쟁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종교인들 특히 중도적인 학자, 지식인, 지도자들이 공통의 평화유지군을 형성할 것”을 제안했다. 마르와트 의장은 특히 “중도주의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종교인들은 세계와, 특히 아시아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진정시킬 중대한 책임이 있다.”며 국제연합에 각 종교, 예언자,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중상모략과 모욕적인 행위를 범죄로 규정, 적절한 응징의 틀과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美 대선 후보경선] ‘매케인 스캔들’ 파문 확산

    |워싱턴 이도운특파원|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지난 1999년에 여성 로비스트 비키 아이스먼(iseman)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 뒤따라 보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케인은 뉴욕타임스와의 ‘전쟁’까지 선포했지만 이번 파문이 매케인을 위기로까지 몰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매케인 캠프의 찰리 블랙은 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신문이 보수진영의 후보를 흠집내기 위해 만든 기사”라면서 “잘못된 루머와 가십거리를 갖고 중상모략을 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CNN·워싱턴포스트 등 NYT 비판 CNN과 워싱턴포스트 등도 이번 뉴욕타임스의 보도 시점과 내용 등을 볼 때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는 정치전문가들의 비판적인 시각도 소개했다. CNN은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I-리포트 프로그램을 통해 ▲10년 가까이 지난 얘기여서 긴장감이 떨어지며 ▲매케인과 부인 신디, 로비스트 아이스먼 모두가 부인하기 때문에 스캔들이 형성되질 않으며 ▲진보적인 뉴욕타임스가 민주당을 지원하기 위해 이같은 보도를 한 것으로 추측되나 ▲오히려 매케인의 ‘젊음’을 돋보이게 해줬으며 ▲공화당이 매케인을 중심으로 뭉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들을 소개했다.CNN은 공화당원 뿐만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서도 이번 보도에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소문의 당사자인 로비스트 아이스먼은 입을 다물고 있다. 아이스먼을 만났던 매케인 캠프의 존 위버는 “아이스먼이 매케인 참모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다녀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보도가 로비스트를 멀리해온 소신있고 윤리적인 정치인이라는 매케인의 긍정적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매사추세츠 주의 유권자인 크리스토퍼 휴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전형적인 워싱턴의 위선적 행태가 드러난 것”이라며 “매케인도 워싱턴의 다른 정치모리배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번 보도의 파문이 확산되자 뉴욕타임스는 빌 켈러 명의의 성명을 내고 이번 보도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이뤄진 것으로 문제될 게 없다고 반박했다. ●힐러리·오바마 텍사스서 TV 맞짱토론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다음달 4일 ‘미니 슈퍼화요일’의 대회전을 앞두고 21일 두번째 ‘맞짱 토론’을 벌였다. 토론 장소는 다음달 4일 경선이 열리는 텍사스 주의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으로 CNN과 히스패닉 방송인 유니비전이 공동주최했다. 오바마와 클린턴은 이라크전, 쿠바와의 대화 등 대외정책과 의료보험, 경제 등 국내 주요 현안을 놓고 불꽃튀는 공방을 벌였다. dawn@seoul.co.kr
  • 靑 “국정원장 거취 더 검토”

    청와대가 김만복 국정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에 대해 “사건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따라서 김 원장의 거취 문제가 이번주 안에 결론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6일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은 “김 원장의 사표 수리 여부는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결론내야 한다.”면서 “청와대 내부의 검토와 외부의 의견을 듣고 논의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신중한 검토를 거듭 제기하는 데는 최근 김 원장의 방북과 청와대의 사표 수리 시기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천 대변인은 “인수위와 한나라당이 이번 사안을 국기 문란 행위로 규정하는가 하면, 김 원장의 방북을 대선용이라고 하고, 나아가 (청와대의 사표 수리 여부가 늦어지는 것이)검찰 수사가 이루어지면 정상회담 속사정이 드러날 것이라는 식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김 원장의 문건 배포는 부적절했지만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 계속되고 있다. 당장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건의 내용을 기밀이라고 규정하고 김 원장의 사표 수리를 요구하는 상황 때문에 청와대는 보다 종합적이고 신중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오세인 부장검사)는 전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팩스를 보내 김 원장이 대선 전날 방북한 경위 등과 관련해 인수위에 보고한 대화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이 사실상 법리 검토 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면담록 내용을 파악한 뒤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공식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문건을 확보하는 대로 김 원장의 대화록 유출 행위가 사법처리 대상인지, 문건에 ‘국가기밀’ 등의 비밀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것이 적절한 조치였는지 등을 검토한 뒤 수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구혜영 홍성규기자 koohy@seoul.co.kr
  • [BBK 수사 발표] 李 “진실 밝혀졌다”

    [BBK 수사 발표] 李 “진실 밝혀졌다”

    “낮은 자세로 국민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 5일 오전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 이명박 후보의 혐의가 없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자 한나라당은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도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명박 후보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 선대위 회의에서 겸손한 자세와 당의 단합을 당부했다. 이 후보는 “진실이 밝혀져 제가 좀 위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수사 결과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이어 “경선 이후 하나가 됐지만 늘 이리저리 마음 아파하는 분들이 있었을 줄로 안다.”면서 “이제 털어버리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번 주말 포항과 울산 등 영남권에서 3일 입당한 정몽준 의원과 동반 유세에 나설 계획이다. 다음 주엔 박근혜 전 대표와 영남·충청 지역에서 세몰이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BBK 꼬리표’가 떨어진 상황에서 하나된 당의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한다는 전략이다. 이 후보는 BBK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고 대선까지 남은 기간 세 차례의 TV토론회와 정책 유세에 전력을 쏟을 전망이다. 홍준표 당 클린정치위원장은 “오늘로 네거티브 공방을 끝내자.”면서 “신당 정동영 후보도 끝까지 완주하려면 이제라도 대통령이 됐을 경우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며 ‘정책경쟁’을 촉구했다. BBK 공방을 매개로 한 정치권의 ‘반이(反李) 연대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공카드로 맞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그동안의 수세적 자세를 버리고 법적 대응을 포함한 적극 공세로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그동안 중상모략과 흑색선전을 일삼아온 정동영 후보는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고 후보직을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영선, 정봉주, 김현미 등 그동안 이 후보를 음해한 신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한편 이 후보는 6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을 세웠다가 취소했다. 한나라당은 “국민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의 뜻을 밝히고 남은 선거운동 기간 포지티브·정책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할 생각이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6일 새벽 에리카 김씨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 관련 추가 의혹이 제기될 것에 대비, 회견을 취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모함·모략 세력과 타협·양보 없다”

    “모함·모략 세력과 타협·양보 없다”

    출마 선언 사흘째인 9일 무소속 이회창 후보는 예의 그를 떠올리게 하던 짙은 색 양복 대신 점퍼를 입었다. 언론 기피증이라는 말까지 듣던 그는 기자들과 5000원짜리 도시락을 시켜 점심을 함께했다. 파격으로 비칠 정도로 ‘2002년 이회창’과는 달라진 모습이다.40일밖에 남지 않은 대선에 임하는 임전무퇴의 자세다. ●“발로 뛰면서 낮은 곳에서 출발” 그의 결연한 자세는 보수적 안보관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모함하고 중상모략하는 세력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비판 수위를 높인 한나라당에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또 “중도 사퇴 가능성은 없다.”며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오전 즉석 연설에서부터 이 후보는 ‘파격’을 선보였다.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 2층에 임시로 마련된 기자실에 들어선 이 후보는 공간이 좁아 연설하기에 여의치 않자 구둣발로 책상 위에 올라갔다. 이 후보는 “선대위 조직이 없고, 앞으로도 두지 않을 것이다. 순전히 발로 뛰면서 낮은 곳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이제부터 나를 총재라고 부르지 마라. 나도 동지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변화의 의지를 피력했다. 이 후보는 이어 “나는 한나라당과 싸우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목표는 정권교체 하나고, 우리는 바로 곧게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는 “우리를 중상모략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라며 “그런 세력은 양보 없이 엄중히 싸워 나갈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발로 뛰자.”,“아래서 위로”,“미래의 창을 열자.”는 구호로 연설의 끝을 맺었다. 오후가 되자 이 후보는 2002년 서해교전 전사자인 고 황도현 중사의 부친 등이 살고 있는 경기 남양주를 방문,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 후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두고 영토선 문제 등 논쟁이 많은데, 국가 지도자가 목숨 걸고 지킨 것을 무색하게 하니 속이 많이 상했다.”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면, 역사와 국민의 마음 속에 영웅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후보 대북관 애매모호” 그는 “북핵폐기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태도가 애매모호하다.”면서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도를 평가할 때 북핵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북한이 위험하면 경제 기반이 다 무너진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이명박 후보는 어느 인터뷰에서 햇볕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햇볕정책은 북 체제의 개혁개방과 연계할 수 없는 정책”이라면서 “정권교체가 되어도 햇볕정책을 승계하고 대북관계를 이끌어 간다면, 정권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연극 ‘변’… 같은 독재자·정치 풍자

    연극 ‘변’… 같은 독재자·정치 풍자

    춘향에게 눈이 먼 베스트셀러 시인 변학도, 비자금 챙기기 바쁜 아전과 기생. 연극 ‘변’(31일∼9월1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의 주인공들이다. 시인 황지우가 극본을 쓰고 이상우가 개작·연출을 맡은 ‘변’은 독재자를 ‘똥’으로 알라고 충고한다. 독재자와 지식인을 조롱하는 이 난장에는 연출자 이상우를 중심으로 극단 차이무의 배우들이 헤쳐모였다. 변학도 역은 문성근, 강신일이 맡아 전라도, 경상도 버전인 변라도, 변상도팀의 ‘변’이 된다. 최용민, 정석용은 그의 충실한 비방(비밀중앙정보방), 박광정, 김승욱은 이방 노릇을 한다. 때는 조선 왕조 중기 혹은 20세기말 대한민국 어디쯤. 배우들과 연출은 “정치쪽으로 몰면 재미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권력의 중심, 변학도의 ‘헛짓’과 그 하수인들의 중상모략을 보면 현실정치가 빤히 들여다보인다. 맨발에다 연방 하품을 쩍쩍 하며 의자에 기대앉은 문성근표 ‘변’은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간다. 강신일은 무게감 있는 변학도에 충실한 편. 그는 “권력자의 생존 법칙을 담았지만 한마디로 난장”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최용민은 “1인자보다 더 악랄한 2인자가 비방”이란다. 연출자 이상우는 “우리도 독재자가 있는 세상이 있었다.”면서 “그걸 기억해야지 잊어버리면 독재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세상은 달라질 것 없어. 사람들은 빨리 잊어버리니까. 그리고 나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라는 변학도의 마지막 대사가 뜨끔하다.(02)3673-558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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