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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영훈대표·이인제위원장 문답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와 이인제(李仁濟)선대위원장은 25일 ‘국민의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년간의국정개혁 성과와 정치현안 등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지난 2년동안 국정개혁을 추진하면서 반성할 점은 없는가. (서대표)소수여당의 한계를 딛고 780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달성하고 200만명이 넘던 실업자도 100만명으로 감소시키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물론총리인준이 6개월 정도 늦춰지고 정치개혁이 안되는 등 많은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총선을 통해 바로잡아지기를 기대한다. ◆자민련의 공조 파기선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위원장)총선은 각당이 정책과 인물을 내세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구하는선의의 경쟁이 돼야 한다. 현재 민주당은 원내 제2당이며 집권당의 프리미엄도 없다.자민련과 공조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 왔다.총선에서 각자 정책과 이념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고 16대 총선이 끝난 뒤 차원 높은 공조가 이뤄져야한다. (서대표)자민련까지 야당이 돼 3개 야당이 민주당과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나서는 등 당리당략적 선거를 우려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신의를지킬 것이다. ◆제4당에 대한 견해와 ‘1여3야’ 구도에 대한 전략은. (이위원장)솔직히 혼란스럽다.그러나 민주당은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있는만큼 특별한 전략은 없다.분명한 것은 제4당은 한나라당 내부의 모순에 의해파생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신당을 ‘민주당 2중대’로 비난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중상모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신당도 무조건 ‘반(反)DJ,반(反)이회창’만 주장하지 말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신당 인사들이 앞다퉈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을 찾아가고 있다.김전대통령의 정치복귀를 어찌 생각하나. (이위원장)김전대통령의 정계복귀 여부를 잘 모른다.그러나 한국정치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미래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강동형기자 yunbin@
  • 러 軍部 움직임 심상찮다

    러시아 군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특히 체첸 사태와 관련,군부내 강성파와 온건파간의 내분이 감지되고 있는가하면 크렘린궁과의 불화설까지 터져나오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휴가중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지난 3일 급거 모스크바로 귀경한 이유가 군부와 대통령 행정실(크렘린궁)의 불화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군부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군부를 들쑤시고 있는 가장 첨예한 문제는 체첸 사태.아나톨리 크바쉬닌 군 참모장(육군대장)을 비롯,군부내 강경파들이 체첸공격에 대해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일부 온건파들은 크렘린궁과 함께 서방의 부정적 시각을 의식,한발 물러서고 있는 입장이다. 실제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지는 지난 5일 크렘린궁쪽에서 “조만간크렘린과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간에 회동이 있을 것”이라면서 체첸 작전 중단을 군부에 암시,크바쉬닌 참모장과 일선 사령관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고 전했다. 더욱이 당시 크바쉬닌 참모장이 옐친과 긴급통화를 가져 이같은 지시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옐친이 일단 이를 수락해 더이상의 사태악화는 무마됐지만 추후 옐친이 크바쉬닌 참모장을 해임할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불씨가 남아있음을 암시했다. 이에대해 강성파 발레리 마닐로프 참모차장은 “크바쉬닌 참모장의 해임설은 군부의 분열을 노린 거짓말이며 모략”이라고 지적한 뒤 연방군의 체첸철수는 대테러 작전이 종료될때 이뤄질 것이라고 못박아 기존 군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크렘린궁과의 이해와 얽혀 군부의 내부 갈등이 이처럼 밖으로까지 비쳐지자 세르게예프 국방장관과 크바쉬닌 참모장도 6일 군의 결속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뒤늦게나마 수습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이날 언론에 보낸 성명에서 “국방부 내부에 갈등이 있다는 일부 언론보도는 정부와 군부의 분열을 가져와 결속을 해침으로써 특정 정치목적을달성하려는 중상모략”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옐친 대통령의 퇴임후 후계자 선택 문제를 둘러싸고 엄청난 암투가 진행되고 있으며후계자로 평가되고 있는 푸틴 총리와 세르게이 쇼이구 비상대책장관은 이번 체첸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선거전에 나서고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경옥기자 ok@ *러機, 그로즈니 猛攻 [그로즈니 AP 연합] 러시아 전투기들이 6일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집중 공습을 단행해 적어도 3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체첸자치공화국 정부는 러시아측에 평화협상을 가질 것을 재차 촉구했다. 그러나 러시아정부는 평화협상 제의를 일축하면서 우선 체첸 이슬람반군이청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슬람 마스하도프 체첸 대통령은 지난 9월 러시아 지상군 개입이후 민간인 4,1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으며 카즈베크 마하셰프 체첸 부총리는“전쟁종식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형태의 평화협상에도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 李康來 전수석 반박 회견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정무수석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의 언론관계 문건 폭로와 관련,26일 국민회의 여의도당사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가졌다.다음은 회견문과 일문일답. 회견문 요지 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을 작성한 적도 본 적도 없다.정무수석 재임 중 대언론관계 업무는 공보수석실에서 관장했다.때문에 언론에 관한 어떤 문건도 만든 적이 없다.퇴임 후에도 비공식적인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더구나 언론관계에 관한 문제는 본인의 관심사항이 아니다.정 의원의 폭로는 전혀 사실이 아닌 황당무계한 중상모략이다.언론과 현정부를 이간질시키려 계산된정치공작이다. 그 근거로 첫째,문건의 신뢰성이다.내가 이 문건을 작성,대통령 측근 인사를 통해 보고했다는 게 정 의원의 주장이다.그러나 정 의원은 근거를 대고있지 못하고 있다.보고서의 조잡함,대통령 문건과의 상이함 등에 대해서는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문제를 제기했다.둘째,대통령께 올리는 보고서는 그렇게 장황하지 않다.7쪽에 걸쳐 같은 내용을 중언부언 반복했다.셋째,정 의원은우리나라 공작정치의 제1인자이다.그가 과거 숱하게 정치공작을 해왔다는 것은 상식이다.넷째,동 문건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과거 정권에서 언론탄압을 위해 사용했던 공작기법들이 망라되어 있다.이는 정 의원 자신이 과거에 사용했던 내용들과 같은 것이다. 종합해볼 때 이번 문건 파동은 정의 원측에서 꾸며낸 자작극이다.공작의 일환이다.이처럼 악의적인 목적으로 현정부를 음해하고 명예를 훼손한 정 의원 문건파동에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을 밝히고 다음을 요구한다.첫째,정 의원의 발언은 사생활이 포함된 부분으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를 벗어난다.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묻고 형사 소송상의 결과에 따라 헌법소원을 제기,강력 대응할 것이다.둘째,당인(黨人)으로서 당에서 국회윤리특별위원회와본회의를 통해 정 의원의 제명 의결을 요구한다.셋째,정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이회창(李會昌)총재도 공당(公黨)의 총재로서 소속 의원의 폭로 공작정치를 책임져야 한다. 일문일답 정 의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는데 국회의원은회기 중 발언에 대해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 면책특권이 있다.그러나 나의 사생활 관련 부분,특히 기본권을 침해한 부분에 대해 형법상형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다.기본권 침해라는 측면과 면책특권 사이에 충돌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준비하겠다.물론 민사상 명예훼손 관련 부분은 소송을 제기해 실추된 명예를 보상받고 회복할 결심이다. 정무수석직에서 물러난 뒤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없나 한번도 없다.나는 평소 공식 지위에 있지 않는 한 비공식 활동은 자제해야한고 생각한다. 이 전 수석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문건을 작성했다는 주장인데 터무니없는 악의적 발상이다.문서 작성시점은 6월로 알고 있다.그러나 사무실 개설은 7월이다.여의도 사무실은 순전히 개인적인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정치적 활동은 일절 없었다. 학자,전문가등 소그룹에서 언론관련 문건을 전달한적없나 전혀 없다.언론관계는 나의 관심사항이 아니다.언론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한다. 평소 문건에서 ‘김 대통령’ 등의 표현은 잘 안쓰나 나는 야당 시절에는 ‘KDJ’라는 이니셜을 사용했다.현정부 들어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했다. 주현진기자 jhj@
  • 朴총재 국회연설…‘정치개혁=역사적 소명’역설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의 국회 대표연설의 핵심은 정치개혁이다.그중에서도 중선거구제다.박총재는 정치개혁의 완수를 역사적 소명이라고까지 했다. 그만큼 정치개혁에 온 체중을 싣겠다는 뜻이며, 국민회의측에도 중선거구제관철과 완벽한 선거공영제 도입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줄 것을 주문한 것으로보인다. 박총재는 “지금의 정치제도가 그대로 있는 한 정당과 정치인이 아무리 바뀌어도 국민의 질책과 탄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치는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지는’ 로마제국식 격투기가 돼서는 안된다”고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먼저 보스정치의 폐단과 지역갈등 구조를 들었다.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보스의 성(姓)씨만 바뀔 뿐 보스체제는 청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또소선거구제가 불법 타락선거의 온상이라는 점도 꼽았다.‘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의 만연으로 온갖 타락선거가 자행되고 있고,이같은 폐단은 곧바로 중앙정치로 연결돼 대화정치의 실종과 사생결단식 극한대결,흑백논리와중상모략이 판치는 각종 발언과 성명,지역감정을 촉발해서라도 특정지역의당선자를 독점하겠다는 정략적 발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 많이 드는 선거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도 중선거구제가 도입돼야 한다는게 박총재의 판단이다. 나아가 유권자 표의 50% 이상이 사표(死票)가 되는 ‘원초적인’ 문제점도짚었다.이로 인해 유능한 신진인사들의 정계입문도 좌절될 수밖에 없다고 박총재는 지적했다. 중선거구제에 대한 박총재의 강한 ‘집착’은 “자민련은 건전보수세력의대변자로서 맡겨진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합당반대를 표명한것과도 맥이 닿는다.이는 곧 당의 정체성 확립으로 받아들여진다.안보문제에서 이 부문은 특히 두드러졌다. 박총재는 이밖에 경제전문가답게 금융시장 불안,재벌개혁,물가 등 제반 경제현안을 진단하면서 해법을 제시했다.또 “문화예산은 문화산업보다 문화의토양 가꾸기에 더 많이 투자돼야 한다”며 ‘문화토양론’을 주장한 것은 이채롭다. 한종태기자 jthan@
  • 강연차 서울 온 金昌準 前美의원

    “처음 하는 지방자치임을 감안할 때,크게 발전했다고 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미국 연방의회에 진출했던 金昌準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은 8일 “자치제도에 많은 문제가 있으나 일단 시작한 게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월5일로 6년간의 미 의회생활을 끝낸 金전의원은 지난달 귀국,10일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지방자치에 대한 특강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보내고 있다.강의는 지난 1월 당시 행자부장관으로 있던 金正吉정무수석이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강연을 권유해 이뤄졌다고 한다. 金전의원은 한국의 자치제도에 대해 “지자체가 생기고 나서 합중국이 된미국과 달리 한국은 중앙정부가 생기고 나서 도입돼 미국과는 배경이 다르다”고 지적한 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기초자치단체 의회는 필요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후보의 인물 됨됨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아무나 찍게 되는 식이 돼서는 안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지방경찰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金전의원은 “강연을 다녀보니 경찰 문제를 주민들이 구청장에게 얘기하더라”면서 “경찰의 범죄척결도 중요하나 지역주민에 대한 봉사도 필요한 만큼경찰서장 임명권한을 시장에게 넘겨 지방자치와 경찰행정이 주민생활과 밀착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金전의원은 최근 연공서열 파괴를 주요 내용으로 한 공직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개인은 돈이 목적인 반면,공무원은 대국민 서비스가 목적이어서 서로 다르다”면서 “공무원의 경우 서비스를 잘 하려면 경험이 필요한 데다 능력과 실적위주의 인사로 자칫 사기가 떨어지면 결국 국민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 만큼 연공서열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선거자금 불법모금 등의 혐의로 4선 고지점령에 실패한 金전의원은 “불법모금은 90%가 중상모략이었다”면서 “내년 3월 예비선거에 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정치재개 의욕을 불태웠다. 金전의원은 9일 청주,10일 강원도 공무원들에 대한 특강을 끝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5월에 재귀국,객원교수로서 명지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10월까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할 예정이다.
  • [독자의 창] 민원공무원 제1덕목은 합리적 자세

    대한매일 행정뉴스 ‘공무원 불친절 신고전화 전국 각 관공서에 설치’제하의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국민이 행정기관을 상대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사항을 요구해 법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것을 민원이라 한다. 정부에서는 요즘 신속하고 친절한 민원처리와 규제 철폐,불친절 사례를 접수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애쓰고 있다. 민원담당 공무원은 민원인의 입장에서 민원을 처리하려고 하지만 괴로운 경우도 종종 있다.민원인의 입장에서 민원이 잘 처리되면 친절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친절하다며 불평과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위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자고라는 제자가 재판관이 되어 어떤 사람에게 빈형(다리를 자르는 형)을 가해 궁궐의 문지기가 되었다.그런데 공자가 중상모략으로 쫓기게 되자 자고도 성문을 통해 탈출하게 됐는데 빈형을 받은 문지기가 자고를 도와주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자고가 문지기에게 “나는 국법을 어길 수 없어 그대를 빈형에 처했소.나는 이런 은혜를 입을 만한 이유가 없소”라며 도와준 이유를 묻자 “나리께서는 어떻게든 죄를 면해 주려고 애쓰셨습니다.그리고 판결을 내리실 때 괴로워 하셨던 표정은 나리의 천성이 어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빈형도 감수를 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자고와 같이 민원담당 공무원은 합리적이고 긍정적으로 민원인 입장에서 민원처리에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일화다.자신의 위치에서 최대한의 노력과 친절로 민원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 민원 공무원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한다.
  • [제2공화국과 張勉](10)신구파 대립과 分黨(中)

    1960년 민주당은 좌절 속에서 출발한다.대통령후보인 趙炳玉이 신병치료차미국에 갔다가 2월 15일 현지에서 별세한 것이다.선거법상 후보를 교체할 수 없었으므로 민주당은 4년 전 申翼熙의 서거에 이어 또다시 대통령후보 없는 선거를 치르게 됐다. 홀로 남은 張勉부통령후보는 ‘3·15 부정선거’에서 자유당 李起鵬후보에게 패한다.득표 결과가 ‘李起鵬 833만표,張勉 184만표’라는,자유당 사람들 스스로도 너무 심했다고 인정한 부정선거였다. 분노한 국민은 ‘3·15 마산시위-4·11 제2차 마산시위-4·19 전국시위-4·25 대학교수단시위’로 이어진 4월혁명을 이룩해냈다.4월 27일 李承晩이 국회에 낸 대통령직 사임서가 수리돼 許政 외무장관을 수반으로 한 과도정부가 들어선다. 이 무렵 민주당 신·구파는 또다시 미묘한 갈등에 부딪친다.내각책임제로의 개헌문제였다.내각책임제는 원래 민주당이 창당때부터 내세운 주요 목표였다.그런데도 이를 채택하는 일이 새삼 논란이 된 까닭은 정파간 이해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사실 내각책임제 개헌은 59년 초한 차례 추진된 적이 있었다.추진세력은자유당 내 온건파와 민주당 구파였다.59년 2월 자유당 온건파를 대표하는 李在鶴국회부의장이 柳珍山민주당원내총무를 방문해 내각책임제 개헌을 제의한다.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여야의 격심한 대립을 그냥둔 채 60년 정·부통령선거를 치르다가는 끝내 국민이 피를 흘리는 사태를 초래할 것 같아서”였다. 柳珍山은 물론 흔쾌히 받아들였다.이후 李在鶴과 柳珍山은 李起鵬·趙炳玉의 승인을 얻어 극비리에 개헌을 추진한다.그러다가 趙淳(자유당)·金義澤(민주당)·梁一東(무소속) 세 사람이 4월 6일 수안보에서 만나 개헌을 논의한 사실이 보도되는 바람에 만천하에 공개된다. 추진 사실을 몰랐던 민주당 신파는 큰 충격을 받고 반발한다.신파는 자유당과 구파가 손잡은 개헌 논의를 ‘張勉부통령의 대통령 승계권을 박탈하려는음모’로 보았다.개헌 추진은 자유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해 흐지부지된다. 그러나 1년 후인 60년 4월의 내각제 개헌은 전혀 양상이 달랐다.먼저 4월혁명을 이룩한 국민의 여론이 독재를 방지하려면 내각책임제를 해야 한다는 데로 모아졌다.민주당 구파와 자유당도 개헌을 당연하게 여겼다. 문제는 민주당 신파에 있었다.일각에서 “4월혁명의 원인이 3·15 부정선거에 있는 만큼 정·부통령선거를 먼저 하고 개헌은 그 다음에 해야 한다”는주장을 들고 나왔다.이른바 ‘선(先)선거 후(後)개헌’론이었다.정·부통령선거를 다시 하면 張勉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파 쪽의 이같은 주장은 곧 무너진다.李承晩의 하야 성명이 나온 4월 26일 국회는 ‘내각책임제 개헌-국회 해산-즉시 총선거’라는 일정을 담은 시국수습결의안을 채택한다.내각책임제 개헌안은 6월 15일 국회 투표에서 찬성 208표,반대 3표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다. 신·구파 대립은 뒤이은 7·29 총선에서 극단적으로 표출됐다.내각책임제로 개헌한 이상 정권은 민의원을 많이 낸 쪽으로 가게 돼 있었다.총선일이 확정되자 신파는 중앙당에,구파는 삼각동 전업회관에 지휘본부를 차려 치열한경쟁에 들어간다.공식적인 당 후보는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선정했지만 사실은 신파 따로,구파 따로 공천했다. 심지어 張勉이 출마한 용산갑구,尹潽善의 종로갑구,金度演의 서대문갑구에도 자파 후보를 내세웠다.이들이 다른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서지 못하도록발목을 잡으려는 의도였다. 이와 함께 분당론(分黨論)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때구파의 중진인 蘇宣奎가 전주에서 “우리는 보수양당제를 실현하기 위해 총선거 후 분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柳珍山·徐範錫 등 구파 중진들의 지지발언이 이어졌다.총선 결과 민주당은 민의원 219석(재선거 대상 제외)가운데 17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신·구파는 소속의원의 수를 계산하며 각각 자파가 승리했다고 공언했다. 구파는 실제로 신파를 앞섰다고 자신한 듯하다.지난해 작고한 高興門은 회고록에서 “대충 표계산을 끝내니 구파 우세가 분명해 보였다.진산 등의 계산으론 구파의 3∼4표 우세였다”고 기술했다. 8월 3일 민의원 부의장 선출을 놓고 신·구파는 처음으로 표대결을 벌인다. 신·구파는 민의원 의장에 신파의 郭尙勳,부의장 한 석에 구파의 李榮俊을추대했다.무소속 몫으로 남긴 부의장 한 자리가 표대결의 대상이었다.투표결과 구파가 지지한 徐珉濠(무소속)가 신파에서 민 李載灐(무소속)을 114 대 99의 15표차로 눌렀다.구파의 우세가 숫자상으로 확인된 셈이다. 이에 고무된 구파는 8월 4일 신파와의 결별을 선언했다.이어 6일에는 비슷한 시각에 신·구파가 당선자대회를 따로 가졌다.신파 모임에 민의원 75명,구파 모임에 83명이 참석했다. 尹潽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구파는 내친 김에 총리까지 독점할 양으로 金度演을 지명하지만 실패한다.총리 자리는 여론의 지지와 무소속 일부의 동조에 힘입은 張勉에게 돌아갔다.張勉이 총리 인준을 받은 다음날 구파는 민·참의원 총회를 열어 국회에 별도의 교섭단체로 등록할 것을 결의한다. 한편 張勉총리는 8월 21일 청와대에서 4자회담을 갖고 신·구파를 아우르는 조각(組閣)을 논의한다.이 자리에는 張총리와 尹潽善대통령,郭尙勳민의원의장,柳珍山이 모여 신파에서 5명,구파에서 5명,무소속 2명으로 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한다.구파는 이튿날 총회를 열고 7시간의 격론 끝에 張勉내각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신·구파 연립내각은 끝내 성립되지 않았다.구파 모임을 마친 金度演과 柳珍山이 자정 가까운 시각에 구파 각료 명단을 들고 張총리를 찾았을때 張총리의 입장은 그새 바뀌어 있었다.“구파가 별도의 교섭단체를 포기해야 받아들이겠다”는 새로운 조건을 내건 것이다. 신·구파 연립내각 구상은 깨졌다.張총리는 8월 23일 신파 10명,구파 1명(鄭憲柱교통),무소속 2명(朴濟煥농림,吳天錫문교)으로 구성된 각료 명단을 발표한다.조각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신·구파는 더이상 화합할 수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다. - ‘分黨' 세력은 역사의 죄인 10대 국회 부의장으로서 국회의장 직무대행을 지낸 閔寬植씨(81)는 1954년12월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해 자유당을 뛰쳐나온 ‘자유당 탈당파’ 12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무소속으로 남아 58년 5월 선거에서 재선 의원이 된 그는 그해 9월 1일 민주당에 들어가 趙炳玉의 참모로 구파에서 맹활약했다.그런데도 구파가총리로 金度演을 지명했을 때와 분당(分黨)을 추진할 때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끝까지 반대했다. “내가 상산(金度演의 아호) 총리 지명을 반대하자 상산이 창신동 집으로세 차례나 찾아왔습니다.‘유석(趙炳玉의 아호) 생전에는 열심이더니 왜 그러느냐’면서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閔전의장은 그때마다 金度演을 오히려 설득했다고 한다.민주당에는 엄연히신·구파가 있으니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하나씩 나눠가져야 할 것 아니냐,그런데 구파가 힘이 약해 대통령을 맡았으면 총리는 당연히 신파에게 넘겨야 한다고 했다는 것.閔씨는 “하지만 상산의 귀에는 내 얘기가 전혀 들리지않는 모양이었다”고 회고했다. 張勉이 총리가 되고 나서 농림장관으로 입각하라는 교섭을 받지만 거절한다.“개인적으로 나이 50이 되기 전에는 당에서건,행정부에서건 큰 감투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데다,어쨌든 구파의 결정을 무시하고 개인행동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張勉내각 명단이 발표되니까 제외된 사람들이 일제히 ‘도각(倒閣)운운’하며 공격에 나서더라”면서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정말 가능한가’라는 회의가 들어 서글펐다”고 말했다.구파에서 분당 움직임이 확연해지자 閔전의장은 뜻을 같이하는 동료의원들을 이끌고 분당 반대 운동에 적극 나선다.‘합작파’라고 불린 이들은 한때 그 숫자가 30명쯤에 이를 정도로 세를 모았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閔전의장은 “분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은 합작파가 張총리에게서 공작금을타다 쓴다느니,장관 자리를 약속받았다느니 온갖 중상모략을 해댔다”면서“신파는 신파대로 합작파를 냉대했다”고 술회했다. 합작파 의원 가운데 20여명이 민주당 교섭단체에 가입하고 일부는 구파의신민당에 들어가 사실상 해체된 뒤 그는 61년 2월 신민당에 합세한다.“유석(趙炳玉)선생을 따르던 대부분의 동지들이 이미 신민당에 들어가 있어 다수에 복종한다는 의미에서”였다.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였다고는 하지만 몇달 가지 못했고 게다가 신·구파 싸움으로 제대로 운영해볼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閔전의장은 “지금 국민이 내각책임제에 관해 좋다,싫다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리고는 “신·구파가 힘을 합쳐 내각책임제를 잘 운영해 민주주의를 멋지게 꽃피우고 경제건설도 완성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아쉬워하면서 “분당에 앞장선 정치인들은 역사의 죄인”이라고 단정했다.張勉총리와 尹潽善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해 달라고 하자 閔전의장은 “제2공화국이 무너지는 데 두 분 다 책임이 크다”고 운을 뗀 뒤 “더이상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싶지않다”고 말문을 닫았다.
  • 북,지하시설 투명해야(사설)

    핵시설로 의심받고 있는 북한 영변 인근 지하시설의 사찰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입장이 점점 경직되고 있어 자칫 제네바 핵합의가 깨질까 우려된다. 북한은 지난 9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하시설에 대한 미국측의 사찰은 중상모략이며 난폭한 내정간섭이라면서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강변까지 했다. 북한의 이같은 입장은 지난 8월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측의 지하시설 사찰요구에 대해 ‘민수용 시설이며 보여줄 수 있으나 핵시설이 아닐경우 북의 권위를 실추시킨 데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지하시설 사찰에 대한 북한의 강경입장 표명은 16일부터 예정된 찰스 카트먼 미 핵대사의 방북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북한의 사찰거부 움직임에 대해 미국은 11일 북한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제네바 핵협정’을 파기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고 나섰다. 영변 지하시설이 핵시설이라는 상당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북한은 ‘제네바 핵협정’에 따라 당연히 사찰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불응할 경우 미국도 핵협정 준수의무를 포기할 권리가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핵파기는 물론 대북경제제재 완화,그리고 식량원조등도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의 대북 강경 메시지의 의미도 카트먼특사의 방북협상에서 북한측의 사찰수용을 유도하는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한 사전포석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북한 지하핵시설 의혹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공화당의 거센 반발로 대북정책의 수정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 의회는 내년도 대북 중유지원예산 3,500만달러를 승인하면서 지하핵시설 의혹 해소및 미사일 수출금지 약속과 연계시켜두고 있다. 분명한 것은 북한 지하시설의 핵 관련여부는 반드시 확인돼야 한다는 점이다. 설령 북한의 주장대로 지하시설이 군사시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북·미 핵합의 정신에 따라 사찰은 수용해야 한다. 제네바 핵 합의는 북한 핵활동즉각 동결,관련시설 해체,일정시점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안전조치의무 전면이행 조건으로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중유를 공급하기로 한만큼 북한 지하시설의 사찰은 당연한 조치다. 북한은 북·미 핵합의 이후에도 IAEA의 정규 및 특별사찰을 8차례나 기피한 사실이 있는만큼 이번에는 사찰에 응해서 지하시설의 투명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 李康來 정무수석 문답/“낮은 투표율이 더 큰 문제다”

    李康來 청와대 정무수석은 22일 재·보선 결과에 대해 “해석하기 나름이나 무승부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승패보다는 낮은 투표율에 더 큰 우려를 표시했다. ­선거결과 분석은. ▲여권이 3석을 추가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여권이,야당의석이 1∼2석 더 늘어났다는 점에서는 야당의 승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낮은 투표율,특히 수원 팔달의 26.5%라는 투표율은 정치권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안정을 꾀하는 게 급선무다. ­선거운동 평가는. ▲흑색선전이 치열했고,금품과 향응제공도 눈에 띄게 전개됐다. 선거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 선거법을 고쳐서라도 지나친 상호비방과 중상모략을 못하도록 해야한다. 돈안쓰는 선거를 위한 제도개혁도 필요하다. ­향후 정국운영은. ▲선거결과는 국민들이 강력하고 지속적인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된다.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강력하게 펴나가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다. ‘제2의 건국’ 정신을 체계화하고 통합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여권 내부정비 필요성은. ▲趙世衡 대행이당선되지 않았다면 전반적인 상황점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지도부 개편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 궁중의 중상(秘錄 南柯夢:17)

    ◎고종 총애 지극하니 궁궐축출 모략이…/정환덕 상감모시기 10년… 정적들 시기받아 감기로 며칠 쉬는 틈타 지방으로 좌천 공작/“시골군수가 소원” 거짓주청에 임금도 속아 “일주일만 참으라” 했으나 한달넘게 무소식 이튿날 정오 상감 부자께서는 신(정환덕)을 급히 입궐하라 명하시고 말씀하시기를 “鄭가 성을 가졌다해서 모두 나라에 해를 끼쳤다고 할 수 없다.필시 경(卿=정환덕)을 몰아내기 위한 계책이었으니 사퇴하지 말 것이며 정가성을 가진 사람으로 추방당한 모든 사람을 다시 입궐,근무토록 하라”고 분부하시니,환호의 소리가 하늘에 닿고 궁중에 화기가 넘쳐 났다.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정치란 반칙투성이의 축구시합이라 했다.권력의 속성 가운데 가장 더러운 부분이 바로 권력투쟁이다.권력투쟁에는 반드시 중상모략이 오가게 마련이라 선비가 권력의 주변에 가까이 가면,온갖 수모를 당하고 물러서게 마련이다. 정환덕 이하 모든 정씨가 궁중에서 숙청당한 사건은 장지동의 군함사건을 계기로 당대의 세도가 길영수(吉永洙)와 말다툼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남가몽 15회 참조). ○길영수와 말다툼 화근 길영수로 말하면 본래 지관(地官)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더니 1889년 과천군수를 거쳐 일약 13도부상도반수(十三道負商都班首)로 뛰어 올라 전국의 보부상을 지휘하여 황국협회(皇國協會)를 조직,야당인 독립협회의 개혁요구를 몽둥이로 진압한 국가유공자(?)였다.광무정권을 수립하는데 가히 일등공신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거물을 상대로 일개 시종이 싸우기란 벅찬 일이었다. 다행히 1903년 한 선비의 상소로 “육군부령 길영수는 간사한 무리로서 성총을 빙자하여 민재(民財)를 약탈하고 관직을 매매하는 등 나라를 병들게 한자”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정환덕의 다음 정적은 길영수보다 더 엄청난 거물 이용익(李容翊) 이었다.이용익은 임오군란 때 민비(명성황후)를 도와 매일 서울∼장호원간을 달려서 왕래한 충신으로 고종의 신임을 얻어 광무개혁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이었다.그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지방수령(군수) 331명에 대해 일제 수사를 벌였다. 이용익이 탁지부대신(度支部大臣=재무장관)으로서 열읍의 포흠 (浦欠:부정행위)낸 수령을 조사하고 보니 전국 360 고을(郡) 가운데 단 한 면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이 때문에 포흠을 낸 관찰사(도지사)와 수령들이 도망쳐 피신하였는데,경남 산청의 단성(丹城)군수도 역시 그 가운데 들게 되어 사촌 정환기가 도망치고 말았다. 저번에 이용태(李容泰)의 주선으로 정환기를 내장원(內藏院)의 산림기사(山林技師)로 취직하게 만들어 주었더니 이 꼴이 되고 말았으니 모두 빈 공중의 꽃이 된 것이다.한탄한들 무엇할까. 정환덕이 출세했다 하여 시골에서 일가친척들이 무작정 상경해 한 자리 청탁하는 사람이 많았다.요즘같은 세상에도 상경한 시골의 일가친척을 냉대하였다가는 크게 욕을 먹는데,그때야 더했다.서대문 정환덕의 집에는 쉴새없이 일가친척이 찾아 왔는데,단성군수와 운봉군수를 시켜준 사람은 멀지 않은 사촌들이었다. ○사천군수 재기용 호소 사천(泗川) 군수 정환기(鄭煥琦)는 단성군수로 가게 되었는데 길영수가 들어서서 자기가 추천한 윤치일(尹致日)을 사천군수로 삼았기 때문에 정환기가 좌천된 것이다.얼마 안되어 정환기는 또다시 영양(英陽)군수로 좌천되었다. 그런데 정환기의 군수 자리가 길영수의 훼방으로 이렇게 좌천되게 되니 정환덕이 참다 못해 상감에게 하소연을 했다.그러자 황상께서 물으시기를 “단성군수 정환기가 너에게 4촌이 되느냐” 하시었다.대답하기를 “그러하옵니다”.또 말씀하시기를 “영양군수가 단성군수보다 낫지 않느냐” 하시었다. 대답하기를 “네,그러하옵니다.두 곳의 군수 자리 중 어느 곳이 나은지는 우열을 가리지 못하오나 소신의 천박한 생각으로는 단성군이 사천군만 못하고 영양군이 단성군만 못하오니 본래의 사천군으로 돌려 주시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상감께서 “그렇다면 그렇게 하기로 하라” 하시었다. 이로써 알수 있듯이 정환덕에 대한 고종의 총애는 지극하였다.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정환덕에 대한 모략은 더욱 극성스러워 마침내 궁궐에서 물러나 시골에 가서 군수를 살게 되었다. 간사한 무리들이나를 대궐에서 축출할 계획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했으니 다시 무슨 일을 가지고 헐뜯을 것인가. 그런데 그들은 내가 잠시 병들어 누워 있는 동안에 상감에게 아뢰기를 “정환덕은 10년 가까이 상감마마를 지척의 자리에서 모셔 오면서 더 부지런하고 더 힘써서 밤을 낮으로 삼고 공경하고 경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을 하루같이 충성하다보니 지쳐 병이 들었습니다.그러니 이제는 산수 좋은 고을을 택해서 잠시 소풍하듯 고을살이를 하게 하면 어떠하오리까”하고 아뢰었다.황상께서 이들의 말을 옳게 여기시어 드디어 충남 대흥(大興)현감을 제수하시었다.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 아니었다. 생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환덕이 잠시 감기로 대궐에 나가지 못한 틈을 타서 길영수 일파로 보이는 정적들이 그를 지방으로 보내려 했던 것이니,눈뜨고 코베어 가는 세상이었다. 하루는 비서장(秘書長) 김하영(金夏榮)이 우리집에 찾아와 문병하고 상감이 나를 충남 대흥군수로 제수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물론 이것은 저들의 공작이었다.이튿날 늦게 대궐에 들어가 입대했더니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병은 완쾌되었느냐.그동안 누가 와서 네가 지방의 외읍(外邑)을 맡아 나가는 것이 소원이라 하여 내가 너를 대흥군수로 제수했는데,너의 의향은 어떠한가” 하시었다.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성상의 은총이 이와같이 융성하고 흡족하오니 참으로 송구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대흥군수로 나가고 싶다는 말은 제가 한 말이 아니옵니다.10년을 하루같이 모셔온 이 몸이 어찌하여 하루 아침에 멀리 귀향가듯이 대궐을 떠날 수 있단 말입니까.신이 비록 보잘 것없는 사람이오나 바라옵건대 해타(咳唾:바로 턱앞)에 두시어 부리신다면 그보다 더 영광이 없겠습니다”고 하였다.황상께서 들으시더니 “내가 한번 더 저들에게 속았구나.그러나 기왕 발령을 냈으니 잠시 내려가 군수로 부임했다가 일주일 이내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라고 하시었다. ○“턱앞 두시어 부려달라” 정환덕이 대흥군수로 내려간 것은 1903년 3월7일이었다.일주일 뒤에 다시 올라오도록 하겠다던 말씀을 믿고 임지로 내려갔으나 한달이 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임지에 부임한지 한달이 넘도록 올라오라는 분부는 없고 내부(內部=내무부)로부터 자리를 비우지 말라는 훈시만 날아왔다.
  • 궁중의 숙청(秘錄 南柯夢:16)

    ◎“궁궐안 정씨 모두 해직” 어명/황제총애 받는 시종자리 이권·인사청탁 쇄도/오적 이지용 상중에도 여인보내 벼슬 부탁/“모든 정씨 국가에 유해” 상소에 “나가 기다려라”/시종 정환덕 궁내사건 예언시 적중하자 복직 1899년 8월에 선포된 대한국제(大韓國制)는 대한제국의 헌법이었다.이 법에 따르면 황제는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였다.말하자면 서양의 절대왕권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한 셈인데 고종을 루이 14세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누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당시의 세계 대세로 보아도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체제였다고 할 수 있다. ○시종원 막강권부 부상 이처럼 모든 권력이 고종황제에게 집중되었으니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이 권력의 핵심부가 될 수밖에 없었고 고종의 최측근인 시종원 시종들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정환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모든 이권과 인사청탁이 그를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었다.지방 군수나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대신 자리까지도 일개 시종에 지나지 않는 정환덕을 거쳐야만 성사되었다.군부대신 이지용(李址鎔)의 경우가 그 좋은 사례였다. 전 군부대신 이지용은 평양의 명기 죽향(竹香)을 소실로 삼고 있었는데 광무 6년8월 생부가 죽어 상중에 있을 때 죽향을 우리(정환덕)집으로 보냈다.내외를 하느라 나는 발을 치고 죽향을 만나 보았는데 용건은 다름 아니라 “영감께서는 우리 대감(이지용)을 모르십니까? 대감께서는 방금 거상(居喪)중이시라 한번만 문상을 와주시면 천만번 다행이라 하옵니다”는 것이었다.이에 대답하기를 “이 몸이 국사(國事)에 바빠 밤낮없이 함녕전 대청에서 폐하를 모시고 있는 처지라 여가를 낼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예까지 부인을 보냈으니 한번 짬을 내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옛부터 부모의 상중에는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요 바깥 출입까지 삼가하여야 했는데,감투욕에 불탄 이지용은 정한덕에게 미인계를 써서 기어이 기복(起復=상중에 벼슬을 하는 것)하려 했던것이다. 이지용은 이층 양옥집에 살고 있었다. 문상을 마치고 이지용에게 인사말을 건네기를 예전에 대감이 군부대신으로 계실 때 한번 찾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때는 손님이 집에 가득하고 마당에는 수레와 말이 벌려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문정(門庭)이 적막하고 포저(예물)가 뚝 끊기어 있으니 보기에 민망스럽습니다”하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감투란 것은 쓰고 있을 때 즐거울 뿐 벗고나면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줄 알면서도 한자리 하려고 버둥거리고 그것이 역사의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게 마련이다.이지용은 이름난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요 탐관오리였다.부모가 돌아가셨는데도 미인계를 써서 벼슬을 하여 집안의 불효자가 되었고 나라를 팔아 매국노가 되었다. 물론 정환덕은 이지용이 그런 인물이 될 줄은 모르고 그를 임금께 천거했던 것이지만 어느 해 추상같은 상소가 올라와 궁중 숙청이 단행되었다.전 동부승지(同副承旨) 홍병섭(洪丙燮)의 소장(疏章)이었는데 거기에는 무서운 말이 들어 있었다. 상감께서 물으시기를 “소장의 내용은 무엇이냐” 하시었다. 아뢰기를 “궁궐안을 숙청하라는 내용입니다”하였다.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상소는 금후 궁내부에서 받아 물리쳐 버리고 짐에게는 보이지 말라”고 하시었다. 이때 문득 생각하기를 상감의 총애가 날로 융성하고 흡족해지고 있는데 나라일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어 보필하는 신하로서 한자 한치의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 여겼다. 이야말로 시위소찬(尸位素餐: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하는 것이라 자책하였다.그래서 대궐문 밖으로 나가 사모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고 상감께 사죄하니 상감께서는 “네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하시면서 만류하시었다. “소신은 본래 초야에 있어야 할 몸이온데 이처럼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아 밤낮으로 대전을 모시다가 이렇게 탄핵을 받게 되었으니 마땅히 소신에게 과실이 있사옵니다.그러하오니 소신을 초야에 돌아가 살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하였다.그러나 상감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본래 국가를 배반하지 않았고 임금에게숨긴 일이 없었다.너는 또 재주를 부려 남을 헐뜯거나 어진이를 투기하여 중상모략한 일도 없었다.너는 아래 사람에게 통통촉촉(洞洞燭燭)하였고 윗사람에게 주야로 성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너는 참으로 충신이라 할 것이다”하시면서 도리어 정삼품직을 하사하셨다. ○“초야로 돌아가겠다” 주청 그러나 시종원 시종 자리란 그렇게 늘 쉽사리 지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그 뒤 얼마나 지났을까.난데없이 궁안에서 종사하는 모든 정씨(鄭氏)는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해직시킨다는 어명이 떨어졌다.청천병력과 같은 일이었다.아무 죄도 없이 정씨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궁궐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니 어처구니 없는 처사였다.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날 궁중에 “鄭씨 姓을 가진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국가에 유해하니 모조리 해직하여 쫑아내야 합니다”라는 상소가 올라왔다.내사해 본 결과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은 상궁(尙宮)이 여섯 명이고 내시(內侍)가 열명이고 무감(武監)이 세명,주사(主事)가 세명이었는데 거기다 노비 28명을 합하면 궁중에정씨 성을 가진 사람이 63명이나 되었다.이 사람들을 모두 해직시켜 일시에 궁안에서 내쫑아 버린다는 것인데 나(鄭煥悳) 역시 거기에 끼여 있었다. 상감 부자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는 잠시 너의 본집에 가서 머물러 있다가 처분을 기다리라.너무 바깥 출입을 하지 말도록 하라”고 하시었다.그리고 “혹시 내가 너에게 문의할 일이 있으면 봉서(封書=임금의 私信)로 통지할 터이니 어느 놈이 우리 군신 사이를 이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었다.이에 나는 “예식관 이용태(李容泰)를 통해 하명하시면 즉시 올라와 뵈옵도록 하겠습니다”하면서 절하고 물러났다. ○“군신 이간질 가당찮다” 상감 부자께서는 서운해 하실 뿐만 아니라 상궁과 시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없이 물러나는 나를 지켜 보았다.나도 또한 여러 해 동안 밤낮으로 가까이 모시고 있다가 까닭없이 사퇴하게 되니 옛날 당나라 시인 두공부(杜工部)가 지은 시 “성상께서 늘 사랑하심이 있는데 조정을 물러나니 의지할곳이 없네”는 귀절이 가슴을 쳤다.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한번 앉았던 자리를 물러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물러나 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요 인생의 비애이기도 하다.하물며 무상의 권부를 물러나는 정환덕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대궐을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였다.이에 글 한줄 지었으니 “내일 모레 사이 서늘한 밤 자정 달이 서산에 숨을 때 동쪽 정원에 꽃 한송이 떨어질 것입니다(明再明間 凉夜三更 月隱西山之時 花落東園中). 이 글을 봉투에 넣어 이용태에게 주어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아니나 다를까 궁중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야밤중에 김상궁이 측간(厠間=변소)에 빠져 죽은 것이다.정환덕은 이 예언 때문에 다시 궁안에 들어와 복직되었다. 상감께서는 “과연 수(數)를 맞히기는 정환덕만한 사람이 없도다“하시면서 나를 칭찬하셨고 궁녀들은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 한번 수(數)보기를 바랐으나 상감이 엄히 금지하셨다.
  • 낯 뜨거운 비방전/朴大出 기자·정치팀(오늘의 눈)

    정치가 추락하고 있다.서로를 헐뜯는 데만 열심이다.IMF(국제통화기금)도,국민의 고통도 안중에 없다.한표를 위해서라면 꺼리낌이 없다.흑색선전이나 비방을 해대고,고발을 주저하지 않는다.여야 모두 선거에서의 승리만이 유일 선(善)인 탓이다.그 과정이 악(惡)이 되어도 관심없다는 태도다. 6·4지방선거전이 뜨겁다.화상을 입을 정도다.누구든지 근처에 가면 상처투성이가 될 판이다.여야가 서로에게 불덩이를 던져대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다. 매사에는 도(道)가 있다.자기 위치에서 지켜야 할 기본이다.정치인은 그 기준이 더 높고 까다로울 수 밖에 없다.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시정잡배 수준과 별로 다를 게 없다.한심함을 넘어서 분노마저 일게 한다. 한나라당 金洪信 의원의 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공업용 미싱’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그 충격은 이중으로 와닿는다.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더 신중해야 한다.金의원은 시정잡배들도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그런 말은 친구에게 해서도 안된다.상대는 대통령이다.물론 “최고통치자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권위주의 내지 성역(聖域) 시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하지만 金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했어야 했다.그 정도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능력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金의원의 발언은 자신의 변명처럼 확대 해석됐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지금쯤이면 서 있는 자리가 자신에게 합당한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야 한다. 여야의 이전투구는 잘못된 표 계산법에서 시작됐다.상대방의 ‘-1’은 나의 ‘+1’이라는 계산만 있다.상대에 흠집을 내지 않고 ‘+1’을 생산하려는 노력은 안중에 없는듯 하다.‘-1’을 위한 중상모략과 폭언만이 판을 치고 있다.‘+1’을 얻게 할 정책과 비전은 실종됐다. 우리의 정치인에게 공민(恐民)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국민을 두려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들에게 위민(爲民)이나 애민(愛民)을 기대하기는 아직 이른 느낌이다.그 지름길은 6·4 지방선거에서 ‘표’로 심판하는 것이다.상대의 ‘-1’은 나의 ‘+1’이 될 수 없음을 구태에 젖은 우둔한 정치인에게 깨우쳐줘야 한다.
  • 6·4 지방선거 D­14/유세반 투입… 상황실 24시간 가동

    ◎고건­중상모략 멈추고 정당한 정책대결 촉구/최병렬­“지금은 열세지만 조만간 역전할 것” 기염 후보등록 마감일인 20일 여야는 유세반을 본격 투입하고 24시간 선거상황실 가동하는등 필승을 위한 총력체제에 돌입했다. 또 선거초반 기선 제압을 위해 각 당 유휴 인력을 지역별 ‘별동대’로 동원,각 후보의 취약지구 지원에 나섰다. ○…국민회의의 고건 서울시장·임창열 경기지사 후보 등은 이날 일제히 거리유세와 정당 연설회를 갖고 “지난 5년간 국민에게 고통과 빚더미만을 안긴 한나라당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리자”며 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고후보는 이날 상오 방송 3사 합동의 서울시장 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영등포역과 총신대 입구 역,서울대 입구 역 등지를 찾아 거리유세를 펼쳤다. 고후보는 “6·25이후 최대 위기에 누가 나라를 구할 인물인가 결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병역 미필을 문제삼는 한나라당을 겨냥,“중상모략을 중단하고 정책대결의 장으로 나와 줄 것”을 촉구했다. 임후보도 이날 하오 경기 안양시 아울렛 2001 건물 앞에서 첫 정당 연설회를 갖고 “전국제조업체의 27.1%가 집중해 있는 경기도의 경제활성화는 국가 경제에 직결돼있다”며 경제관료를 지낸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자민련의 박태준 총재는 이날 경남 통영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서 “5년전 민자당 최고위원시절 4백억달러에 불과했던 외채가 지금은 1천5백억달러로 증가했다”면서 “이런 지경으로 만든 한나라당을 심판해 국제신인도를 높이자”고 목청을 높였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후보등록 마감과 함께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수도권과 부산 등 권역별로 나눠 지원유세 총력전에 나섰다.조순 총재와 이회창 명예총재,이한동 부총재 등은 이날 하오 각각 국회 의원회관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지부 후원회와 서울시 선대위원장인 김덕룡 부총재 후원회 행사에 참석,당의 대동단결을 통한 최병렬후보의 승리를 다짐했다.최후보도 “지금은 비록 열세지만 얼마되지 않아 승리의 분기점을 마련할 것으로 본다”고 자신감을 피력,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받았다. 손학규 경기지사 후보는 이날 부천 북부역 광장에서 개인연설회를 가진데 이어 부천의 자유시장,상동시장,원종 제일시장을 돌며 상인과 시민을 상대로한 득표활동을 벌였다. 손후보는 임창열후보를 겨냥,“지난해 11월19일 IMF행을 발표했다면,우리 경제는 외환 방어를 위해 아까운 외화를 더 이상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상수 인천시장후보도 이날 아침 동암역광장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한표를 부탁한뒤 저녁 인천방송 후보토론회에 참석,경제전문가 이미지 부각에 주력했다.
  • “부정선거 철저 단속”/2기 노사정위 바로 출범해야/金 대통령

    金大中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지방선거와 관련,“이번 선거는 민주선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따라서 관권선거를 없애고 위법사항을 철저히 다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또 “선거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장하는 것과 부정,혼란선거를 방조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지적하고 “금품제공 중상모략 흑색선전폭력행위를 철저히 단속하도록 검·경에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경제를 살리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2기는 바로 출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근로자와 기업 모두 노사정 1기 합의사항 실천에 불만이 있는 만큼 2기는 실천사항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활동을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金대통령은 그러나 “필요하다면 (1차 합의사항의) 골격도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여 근로자파견제,노조의 경영권 참여 금지 등 노사의 불만사항을 수용할 뜻을 시사했다. 金대통령은 “국민연금은 생활안정,복지,노후를 위해 중요한 것이니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올바른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金대통령은 아울러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합의되지 않은 사항조차 함부로 발표해 부처간 대립인상을 주지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 ‘릴리스 2.0’(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인터넷 시대 살아갈 자질 등 기술/문명의 변화에 따른 현명한 대처·판단도 제시/사용자 스스로 자율규제·책임있는 행동 역설 【뉴욕〓이건영 특파원】 다가오는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이 책은 새 인터넷 문명이 기업·정부·교육·공동사회·개인생활 등 모든분야에 가져올 변화를 현명하게 판단하고 인간의 삶을 보다 풍족하게 하기 위한 제안들을 담고 있다. ‘전자시대에서의 삶을 위한 설계’라는 부제를 단 ‘릴리스 2.0’의 저자 에스터 다이슨(Esther Dyson)은 유명한 미국의 첨단산업 분석가.미국의 언론들로부터 컴퓨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 평가받고 있다.세계적 미래과학 학자인 프리먼 다이슨의 딸이기도 하다.그는 책의 발간 목적에 대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은 전자시대에서 더욱 사회적·지적·상업적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세계를 어떻게 만드는 가를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터넷의 자율규제를 주창하면서 ‘가상공간’에서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위한 권리와 규칙을 세우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다이슨은 조만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보고있다. 창의성이 보상받고 힘없는 사람들이 힘을 갖는 ‘사회’를 기대하는 그는 인터넷속에서 만이 이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이상주의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속에서 정부는 힘을 갖지 못할 것이므로 인터넷 사용자 스스로의 통찰력 있고 책임있는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그는 “인터넷은 사람들에게 가공할 힘을 주지만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과 자신이 만든 가상세계에 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경제시장의 신봉자이기도 한 저자는 법으로 컴퓨터통신을 규제하는 어떠한 시도도 반대하면서 자율규제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언로를 침해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음란물 규제도 현재의 내용등급 규제를 광범위하게 활용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으며,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해를 끼칠 내용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악을 막을 수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제기된 대부분의 법적·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각종 조사를 통해 제법 설득력있는 논리를 펴고 있다.웹사이트에 올려진 정보는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인가.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예’이지만 허가없이 멋대로 복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익명으로 정보를 올리는 것은 허용돼야 하는가.이에 대해서도 그는 거짓정보나 중상모략 내용에 대한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익명게재가 법으로 금지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정치적 박해자나 선의의 고발자들이 부당하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나아가 범죄활동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치안당국이 반대하고 있는 암호메시지의 경우도 향후 보험회사들의 암호사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의 허용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한다. 저자는 인터넷 시민으로 살아갈 자질 등을 11장으로 나눠 책에 담았다.인터넷 확산으로 인한 개인과 사회이익 간의 갈등,안보와 언로의 자유 간의 갈등,정부의 단속과 개인적 자율간의 갈등,창의성과 지적재산 보호간의갈등 등도 거론하고 있다.모두 쉬운 용어를 사용했다.또 “전자사회는 생산자와 소비자,정부와 시민,언론기관과 독자들 사이의 힘의 균형에 큰 변동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도전과 기회는 이러한 갈등 및 기존관계를 풀려는 사람들에게 있다”며 개인의 진취적 의지를 독려한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언로의 자유와 사회규범과의 충돌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다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최근 신나치주의자가 컴퓨서브 온라인을 이용,반체제적 내용을 전파한 행위에 대해 독일의 바이에른주 정부가 엄격히 대처한 것처럼 언론자유 인식과 사회질서유지 인식간에는 심각한 마찰이 수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사용의 부작용과 관련,그는 인터넷이 가져다 주는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사람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인터넷 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성’적 측면이 크게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가상공간’을 오가는 시간은 많고 과거처럼 사람들과의 정을교환하는 시간이 적어 생겨날 수 있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현실처럼 다가오는 컴퓨터상의 ‘가상현실’의 유혹 앞에서도 인간애를 잃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터넷 시대에서 균형적이 삶을 구가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어느 사회에서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의 폐쇄집단속으로 자신을 국한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듯 인터넷 시대에도 이같은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오게 마련이며,사회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는 이들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넷의 사용에 따른 긍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이같은 부작용에 따른 보완마련도 아울러 호소하고 있다.이와함께 인터넷 사용이 일반화되는 날에도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들이 겪는 또 하나의‘불평등’ 현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촉구라는 메시지도 던져주고 있다. 원제 Release 2.0;A Design for Living in the Digital Age.브로드웨이 북스(Broadway Books).307쪽.25달러. 미 첨단산업 분석가 에스터 다이슨
  • 누굴 찍을 것인가(김호준 정치평론)

    제15대 대통령을 뽑는 투표일이 13일 앞으로 다가왔다.20세기를 마감하고21세기의 새로운 1천년을 열 새 지도자를 선출하는 역사적인 날이다.그 희망에 찬 선거를 우리는 어이없게도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긴 이후 최대국치로 일컫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신탁통치’ 아래서 치른다.이 치욕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려면 향후 5년간 이 나라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부터 똑바로 뽑아야 한다.나라의 조타수를 잘못 뽑아놓고 후회하는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이 시대 이 상황을 이끌어 갈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각계원로들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은 지난 10월 대통령 바로뽑기운동을 벌이면서 다음 다섯가지를 기준으로 제시했다.첫째,국민에 대한 약속과신의를 지키고 둘째,민주적 원칙과 절차를 존중하며 셋째,음해성 중상모략이나 인신공격을 일삼지 않고 넷째,국정운영의 비전과 실천방안을 뚜렷이 제시하며 다섯째,지역감정이나 세대·계층간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시된 선택기준은 다양 다섯개 기준 모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그러나 누가 이 기준에 맞는지를 가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첫째는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한 김대중 후보,둘째는 경선에 불복하고 출마한 이인제 후보를 각각 겨냥한 인상을 주나 나머지는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해당되는 것 같아 딱히 누구를 적임자라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헌법에 규정된 국민 기본의무의 준수여부를 척도로 삼자는 주장도 있다.납세·병역·근로·교육의 의무와 재산권을 공공복리에 맞게 사용할 의무,기타법질서 준수 의무를 후보들이 얼마나 성실히 이행했는가에 대한 검증결과를 선택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이에 따르면 이회창후보는 군대에 안간 두 아들문제가,김대중 후보는 납세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음성정치자금문제가 각각 감점요인으로 작용한다. 3당이 케치프레이즈로 내건 ‘3김청산’ ‘정권교체’ ‘세대교체’도 나름대로 다 정치적 의미가 있어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정치발전을 위해 3김청산과 세대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노령의 김대중후보가 배제될테고 그렇지 않고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중시하면 김대중 후보가 우선적으로 선택될 것이다.그러나 이 구호들은 후보자신의 주장만을 정당화할 뿐 후보들의 자질과 역량을 비교할 수 있는 척도는 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무래도 경제대통령이 이번 선거는 심각한 경제위기의 와중에 실시된다는 점에서 과거 선거와 크게 구별된다.새 대통령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정치적 이유보다는 시급한 경제문제의 해결역량을 잣대로 삼지 않을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전문가들은 이번 경제위기의 해소에 최소한 3년이상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경제난 수습은 새 대통령이 임기의 절반이상을 매달려서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경제위기가 아니더라도 이 무한경쟁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제1의 리더십은 ‘경제대통령’이다.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간 경쟁은 군사력보다 경제력 경쟁이며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릴 견인력도 바로 경제발전에 있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유력 후보들이 모두 “경제를 살리는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전문성 보다는 리더쉽을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는 무려 7명이나 되지만 아무도 국민들에게 ‘메시아’로서의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자처하는 후보조차 한치 앞의 ‘나락’을 예견 못하고 한가롭게 “경제5강 도약” 운운했으니 나머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하지만 싫든 좋든 그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택할수 밖에 없듯이 현 후보 가운데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소유자가 없다면 ‘가능성’을 갖고 비교,선택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대통령은 경제전문가라야 된다는 인식은 잘못이다.불합리한 경제구조에 대한 확고한 개혁의지와 국정운영에서의 경제중시,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경제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다.항간에서 경제의 ‘갱’자도 모르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 경제를 망쳤다는 소리가 있지만 핵심을 찌르는 지적은 못된다.사실 지금과 같은 총체적 경제난국에는 경제만을 보는미시적 접근보다 거시적 시각의 정치적 접근이 문제해결에 더 중요하다.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특정한 경제지식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법을 국민적 동참속에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다.이번 대통령후보 가운데 경제전문가가 없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교우위 가늠할 잣대를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경제대통령의 가능성을 어느 후보가 더 많이 지니고있느냐는 비교우위일 것이다.이를 판별할 수 있는 첫번째 열쇠는 경제난 타개에 대한 ‘열정’이다.어느 후보가 얼마나 합리적인 대안과 얼마나 큰 집념을 갖고 호소력을 발휘하느냐를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두번째 열쇠는 자질이다.우리 경제가 재기하려면 많은 개혁이 요구된다.또 우리의 시장경제가 잘돌아가려면 좋은 정치,즉 시장지향적 민주주의가 긴요하다.투명성,예측 가능성,정보화는 바로 시장지향 용어들이다.그것은 바로 바람직한 경제대통령의 상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거기에 열정과 개혁을 덧붙여 새 대통령선택의 기준으로 삼자.그리고 후보들을다시 쳐다보자.
  • 여야 모두 “환영”… 속내 제각각/정치권 반응

    ◎신한국당­주류,단합 희망… 비주류 이 총재 비난/국민회의­일단 긍정평가… 신당지원 의혹 여전/국민신당­“고뇌끝의 결단” 여 비주류 합류 기대 김영삼 대통령이 7일 신한국당 탈당을 전격 발표하자 여야는 “공명선거를 위한 결단”으로 일단 환영했다.그러나 정파별 계파별로 속내는 엇갈렸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는 이날 여성신문사 주최 대선후보토론회에서 “대통령은 양성적이든 음성적이든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 없다”며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중립적 위치를 지켜달라”고 거듭 주문했다.특히 이총재쪽 인사들은 “비주류와 국민연대쪽 인사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며 김대통령의 탈당을 계기로 당내 분란이 정리되길 바랐다.그러면서 비주류 잔류파 인사들의 공세 강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비주류 인사들은 “명예총재가 탈당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조성한 인사들의 정치행태는 지극히 유감”이라면서 이총재쪽 인사들을 비난한뒤 “김대통령의 탈당과 우리의 거취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국민회의◁ DJP의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잘한 일”(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일단 긍정 평가한다”(자민련 이규양 대변인)이라는 원론적 환영과 함께 국민신당 지원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동영 대변인은 “김대통령의 탈당이 국민신당과의 관계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간부회의 분석결과를 전했다.요컨대 민주계의 대거 탈당과 국민신당행,범여권 주류세력의 물밑 신당지원 등의 연쇄반응을 우려했다. 특히 박지원 총재특보,장성원 기조실장 등 당직자들은 ‘주중야신’(낮에는 중립 밤에는 신당지원)이라는 표현으로 탈당배경의 순수성을 의심하며 국민신당에 민주계 색깔 입히기를 계속했다. 민주당도 강도는 약했지만 비슷한 경계심을 표출했다.민주당 권오을대변인은 “탈당이 특정후보지지나 정치적 목적성을 가진 행보로 비쳐진다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논평했다. ▷국민신당◁ 윤재걸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엄정한 대선관리를 위해 고뇌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평가하고 “남은 임기동안 공평무사한 대선관리는 물론 산적한 국정현안의 해결과마무리에 더욱 전념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또 “김대통령의 탈당이 신한국당과 국민회의의 악랄한 음해와 사실무근의 중상모략과 관계가 없는 순수한 결단이기를 바란다”고 밝혀 탈당이 청와대 신당지원설과 무관함을 애써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총재비서실장을 지낸 박범진 사무총장은 “신한국당과 국민회의가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청와대 신당지원설’ 공세를 펼친 것이 이유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국민신당측은 이날 중국에서 귀국한 이수성 고문이 탈당하는 등 김대통령의 탈당으로 신한국당 비주류 의원들의 합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대선정국 걱정스럽다”/각계원로 시국선언

    ◎국정운영 비전가진 후보 뽑아야 강영훈 전 국무총리 등 각계 원로 20여명으로 구성된 ‘나라를 걱정하는 모임’은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 시국에 대한 견해와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날 상오 11시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회견에서 원로들은 ‘대선 정국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호소’라는 성명을 발표,차기 대통령이 지녀야 할 구체적인 자질에 대해 ▲국정운영의 비전과 실천방안을 뚜렷이 제시하고 ▲민주적 원칙과 절차를 존중하고 ▲국민과의 약속과 신의를 지키고 ▲음해성 중상모략이나 인신공격을 일삼지 않고 ▲지역감정이나 세대·계층간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건국이념에 대한 신념과 차기 정권의 역사적 과제를 인식하고 ▲법치국가를 이끌어야 하며 ▲정치적 노선이나 정책의 현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당간 또는 정치인 간의 야합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선거공영제를 실시하고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말아야 하며 선거분위기를 혼탁하게 하는 비자금 의혹은 공정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최근 우리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전반에 걸쳐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국민·정부·기업 모두가 많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15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어지러운 정치현실을 보며 앞날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혔다. 국내외 상황과 관련,“경이적인 변혁이 예상되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우리는 현실을 냉정히 바라보아야 한다”며 “날로 가중되는 경제불황이나 북한에 대한 보도는 우리나라가 아직 불안하고 험난한 현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외국과의 통상마찰이나 4자회담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강한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화를 실현한 우리는 이제 또 다시 민족적 저력을 바탕으로 선진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번 대선에서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로들은 이를 위해선선거관련 당국자들이 공명정대한 대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언론은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책임과 역할을 해야하며 유권자들은 사사로운 유혹이나 연고·정실을 떠나 투표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모임에는 강 전 총리를 비롯,현승종 전 총리,채문식 전 국회의장,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대표,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조완규 전 서울대총장,백낙환 인제대 총장,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전산초 연세대 명예교수,선우종원 변호사,정진경 목사,송남헌 독립운동가,이원범 3·1운동 기념사업회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 정신문화연구원 대선후보 초청 강연회

    ◎이회창­깨끗하고 정직한 대통령 필요/김대중­세대간 통합으로 경제부활을/김종필­정치·국가 구하는 길은 내각제/이인제­세대교체 통해 정치혁명 달성/조순­3김시대 종식돼야 부패 해결 비자금 폭로전이 가열되는 가운데 여야 대선후보들은 13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과 SBS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21세기 비전과 국가경영 전략’이란 주제를 놓고 불꽃튀는 연설대결을 벌였다.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이날 강연회에서 여야후보들은 최근의 비자금 파문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해법 등을 제시하며 21세기 국정 비전을 피력했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는 이날 울산시지부 창당대회 일정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영상 녹음연설로 대신했다.이총재는 비자금 파문을 겨냥,“우리정치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신념과 스스로 정치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갖고 정치에 나섰다”고 강조한 뒤 “비자금과 정경유착을 추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깨끗하고 정직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며 포문을 열었다.이어 이총재는 “거짓없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며결코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21세기 대통령에게 바라는 가장 중요한 여망”이라며 깨끗한 정치를 약속했다. 가장 먼저 등단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야당에 대한 중상모략을 통해 여당이 올 대선을 이전투구로 몰아가려고 한다”며 여당의 폭로전을 비난한 후,“최근 여론조사에서 보듯 성숙한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만큼 여당은 반성하고 정책대결과 공명선거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이어 김총재는 ‘준비된 대통령론’을 앞세워 소신을 펼친뒤 “청년의 패기와 장년의 역량,노년의 지혜를 합치는 세대통합으로 세계5강 경제에 진입해야 한다”며 세대 교체론을 일축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비자금 등 한국정치 부패의 원천이 대통령제에 있음을 부각시킨뒤 내각제 개헌의 시급함을 강조했다.김총재는 “대통령 선거가 계속되는 한 비자금과 대선자금 문제는 해결없는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라며 “정치를 구하고 국가를 살리는 길은 대통령제를 없애고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이인제 전 지사는 비자금 공방전의 당사자인 신한국당과 국민회의를 싸잡아 공격한 뒤 세대교체를 통한 ‘한국정치의 명예혁명’을 거듭 강조했다.그는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정보공작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고 포문을 연뒤,“정경유착과 낡은 정치의 틀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치혁명을 이룩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민주당 조순 총재는 “비자금 등의 부정부패는 어떤 개인의 잘못때문이 아니라,3김시대 1인 보스정치의 필연적 산물”이라며 “따라서 3김시대가 종식돼야 정경유착의 부정부패는 근본적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 “개인이 받은 돈이라 당에 안맡겼다”/김대중 총재 관훈토론

    ◎토론자 질문 절반이상 비자금에 집중/“한달 1천만원 지출… 친구들이 도와줘”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나선 8일 관훈클럽 토론회는 때맞추어 터진 거액 비자금 의혹으로 청문회장을 방불케 했다.토론자들은 전체시간의 절반 이상을 이 문제에 집중했고,김총재는 시종일관 신한국당의 근거없는 중상모략으로 몰아부쳤다. 김총재는 이번 사건의 성격을 ‘내가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서가고 있는데 따른 신한국당의 선거전략’으로 규정하고 “그것도 이인제 전 경기지사 신당의 발기인대회에 맞추어 터뜨림으로서 신당기사가 줄어들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왜 돈을 당의 경리부서에 공금으로 맡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돈은 당이 아닌 나 개인에게 준 것“이라면서 “처조카에게 맡긴 것은 야당총재로서 재정에 대한 비밀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신한국당의 추가폭로설에 대해서도 “또 있다면 이번과 똑 같은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재는 신한국당이 이번 사건과 관련,자신의 대통령후보 사퇴를 거론하고 있는데 대해 “후보사퇴는 무책임 한일”이라고 일축했다.이번 일의 여파로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큰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비껴갔다. 김총재는 ‘현재는 정치자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조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문제가 없는 정치자금과 특별당비 등을 쓰고 있지만 많은 액수는 생각도 못하고 줄 사람도 없다”고 밝혔다.그는 “정치자금에 관한 한 여당이 1만발의 포탄을 쌓아두고 있다면 우리는 40∼50발의 형국”이라면서 “당비가 아닌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달에 1천만원 정도를 쓰며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소개했다.자신의 정치자금 관리의 원칙에 대해서는 “부정한 돈은 받지 않고,개인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으며,야당이 처한 환경때문에 도와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총재는 이번 일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후보단일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냐는 물음에는 “근거없이 모함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종필총재가 영향을 받지않을 것으로 본다”는 ‘희망사항’을 피력했다. 김총재는자신의 나이와 건강문제에 대해 “1923년 1월에 태어났으나 호적에는 1925년 12월로 되어 있다.혈당수치는 정상에서 왔다갔다 하지만 이상이 없다.혈압도 정상치에서 약간 높았다 정상이 됐다하는 그런 수준”이라면서 건강에 별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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