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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서초 세 모녀 살인사건’ 가장의 범행 이유는

    [기획] ‘서초 세 모녀 살인사건’ 가장의 범행 이유는

    서울 강남에 11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40대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서초 세 모녀 살해 사건’은 절대적 빈곤 못지않게 ‘상대적 빈곤’ 또한 한국 사회에 균열을 일으킬 위험요소임을 드러냈다. 피의자 강모(48)씨가 살던 서울 서초동 R아파트는 검찰청·법원 등이 인접해 ‘주민의 3분의1 이상은 법조인’이란 말이 나올 만큼 손꼽히는 주거지다. 인근 W초등학교의 학업성취도가 서울의 공립초등학교 중 최상위권인 데다 S중, B고로 이어지는 학군은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도 선망의 대상이다. 주식투자 실패에도 8억원 안팎의 자산이 남은 강씨가 살해 동기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언급한 데 대해 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9일 만난 R아파트 주민들은 강씨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카페를 운영한다는 A씨는 “이곳 사람들의 기본 생활비는 월 500만원”이라며 “월급쟁이들은 많아 봐야 한 달에 1000만원 남짓 벌 텐데 500만원을 생활비로 쓰고 그에 못지않게 가족 해외여행 등 품위유지비를 쓰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주민 B씨는 “(강씨는 실직 이후) ‘바닥을 치는 기분’을 느끼기 싫었을 것”이라며 “예컨대 집을 팔아 강남을 벗어나 치킨집을 한다면 수치스럽다는 게 이곳의 정서”라고 전했다. 사는 곳과 타는 차, 직업 등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왜곡된 문화 탓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산층은 비단 강씨뿐이 아니다. ‘부촌’인 도곡동의 T 주상복합아파트에도 상대적 빈곤층은 존재한다. 한 공인중개사는 “‘T 주민’이란 이름에 혹해 무리해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주로 17평(56㎡) 등 작은 평수를 찾는다”며 “사람들이 T아파트에 사는 게 중요하지 몇 평에 사는지까지는 물어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상대적 빈곤층’이 늘어나는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위소득(전체 가구의 소득순위를 매긴 뒤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하는 가구의 소득)의 50~150%’를 뜻하는 중산층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을 뜻하는 ‘체감 중산층’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수치상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경제적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는 걸 보며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김수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강씨에 대해 ‘그 정도면 잘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특히 고도 성장 과정에서 풍족하게 성장한 40~50대는 후퇴에 익숙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식교육이나 체면 때문에 무리해서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신분상승 등 강남의 허상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중산층 붕괴, 권력 소수 배불리기 정책 탓

    중산층 붕괴, 권력 소수 배불리기 정책 탓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도널드 발렛·제임스 스틸 지음/이찬 옮김/어마마마/328쪽/1만 5000원 미국에서 중산층이라면 대개 세 가지의 조건을 충족시켜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복지 혜택, 그리고 내 집 소유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이 중산층으로 도약하기 위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살았지만 이제 대부분 빈곤 노동층에게 아메리칸드림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아메리칸드림의 실종은 바로 중산층 붕괴로 압축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는 중산층 붕괴를 정색하고 파헤친 보고서다. 미국에서도 이름난 탐사보도팀인 저자들이 중산층 붕괴의 심각한 실상과 원인을 솔직하게 짚어 냈다. 아메리칸드림이 어떻게 사라지게 됐는지를 추적해 곳곳에서 얼마나 비참한 추락과 몰락이 진행됐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2011년 광고업계 잡지 애드에이지는 ‘미국에 막대한 부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이에 앞서 2005년 월스트리트에선 부유층(plutocrat)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플루토노미(plutonomy)가 등장했다. 수입과 부가 극도의 불평등을 이룬 국가이며 계층의 등장, 득세를 알린 것이다. 책은 이 용어 그대로 중산층 붕괴를 권력을 가진 소수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한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스스로를 살찌우면서도 미국의 가장 큰 자산인 중산층의 생존 기반은 허무는 정책을 줄곧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책에선 그 지적이 허튼소리가 아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현재 미국 가구의 상위 1%가 16조 달러 이상을 좌지우지하며, 이는 하위 90%가 소유한 재산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된다. 그리고 ‘누구든 경제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누구든 내려갈 수 있다’는 것으로 바뀐 상황이다. “40년 동안 미국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조사하고 그에 관한 책을 써 왔지만 지금처럼 미국 장래에 관해 걱정했던 적은 없었다. 미국 중산층을 해체하고 있는 힘은 무자비했다.” 책 말미에서 저자들은 공공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가 없다면 다가올 미래는 미국인에게 암울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중산층 집단을 지탱했던 경제적 지원망을 해체한 지배층은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그 목표가 달성되면 중산층은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 경고는 책 추천사를 쓴 희망제작소 부소장의 지적에 얹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한국은 경제성장의 혜택이 가계소득으로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정도가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다크호스 이인영, 문재인·박지원 넘을까

    다크호스 이인영, 문재인·박지원 넘을까

    새정치민주연합 2·8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로 문재인·이인영·박지원(기호순) 후보가 확정됐다. 박주선·조경태 후보는 7일 치러진 예비경선(컷오프)에서 고배를 마셨다. 최고위원 컷오프에서는 경기 수원시의원인 노영관 후보가 탈락, 유승희·박우섭·문병호·이목희·정청래·주승용·전병헌·오영식 후보가 5자리를 놓고 겨루게 됐다. 본선 후보가 확정됨으로써 당 대표 경쟁이 기존 ‘문재인 대 비문재인’ 구도에서 한층 복잡해진 형태로 진화할지 주목된다. 고 김근태계 재야파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출신으로 486계 지지와 선거 막판 정세균계 도움을 받았다고 알려진 이 후보는 “리더십·세대 교체”를 내세우며 다른 두 후보 대 자신의 ‘2대1 구도’를 이식하는 데 주력했다. 이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박 후보를 향해 “지역을 당 대표 당선의 발판으로 삼을 일이 아니라 사심 없는 통일 전략을 제시해 전국·대중 정당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문 후보를 향해 “총선 불출마 선언이나 대세론을 말하기에 앞서 패권 포기와 계파 해체 선언을 통해 사심 없는 집권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컷오프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반드시 낡은 정치·패권주의와 싸워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으로 발돋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제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고, 2대1의 구도로 싸워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후보의 지지기반인 당내 486 내부에서조차 “재선·3선급인 486이 리더십 교체를 거론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는 자성이 나오고 있어 이 후보의 ‘세대교체론’이 뒷심을 발휘할지 의구심도 많다. 한 달 동안 진행될 본선에서 ‘비호남·노무현·(대권) 선수용’으로 상징되는 문 후보 대 ‘호남·김대중·(대권) 관리형’으로 분류되는 박 후보 간 대결 구도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486이란 지지기반을 갖춘 이 후보가 국회의원·지역위원장·상임고문 등 전략투표에 능한 선거인단이 주도한 컷오프를 통과한 것을 이변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당심(75%)과 여론조사로 표출되는 민심(25%)이 반영되는 본선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이 후보에게 특단의 카드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빅2’로 분류된 문·박 후보는 컷오프 직후부터 서로를 향한 신경전에 들어갔다. 문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앞서는 민심의 흐름이 당심으로 연결되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대세론’을 설파했다. 전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컷오프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선거인단 387명 중 유효표 326표(투표율 86.2%) 가운데 40~50%를 문 후보 지지표로 보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박 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아닌 당 대표를 뽑는 전대”라며 ‘문재인 대세론’을 견제한 뒤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를 떠나 통합과 단결의 길을 찾기에 제가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가 대표가 되면 당을 떠나겠다는 분도, 당이 정부·여당에 끌려다닐 것으로 걱정하는 분도 없다”며 비노계 표심에 구애를 폈다. 컷오프를 통과한 후보들은 10일 제주 합동연설회를 시작으로 본선 행보에 들어간다. 한편 미국에 체류 중인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이날 투표에 불참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최근 일부 후보의 당명 변경 주장을 제지하는 등 전대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민낯을 봤다”…‘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뜨거운 공감

    “민낯을 봤다”…‘서울신문 특별기획-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뜨거운 공감

    서울신문의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에 대한 반향이 뜨겁게 일고 있다. 이길영 한국외국어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서울신문의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1회인 절대빈곤층의 자녀교육 편<1월 6일자 4면·아래에 해당 기사 붙임>을 보고 기사에 소개된 극빈층 학생 영훈(12·가명)군의 영어 교육을 돕겠다는 뜻을 7일 밝혔다. 이 교수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초등학교 6학년인 영훈이가 올해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대학 영어교육과 학생과 멘토링을 맺어 선생님이자 큰형, 큰누나 같이 품고 돕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영어교육과 학생들과 함께 10년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영어 강습 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 교수는 “예비 교사인 우리 학과 학생들 입장에서도 저소득층 학생을 만나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육적 사명감을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의 제안에 영훈 군의 어머니인 김혜진(39·가명)씨는 “아이가 똑똑해 초등학교 때는 사교육 없이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면서 “교수님과 대학생들이 나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기쁘다”고 말했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김씨는 매달 130만원씩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영훈 군, 3살과 1살 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지방의 현직 중학교 교사라고 밝힌 H씨는 서울신문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서울신문에 보도된 절대빈곤층의 자녀교육을 읽고 시골의 교사로서 공감한다”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 아이들의 어휘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1) 절대 빈곤층의 자녀 교육…평생 과외비 0원 열 살에 한글 깨치다 -1월 6일자 4면 경기도 안산에 사는 싱글맘 김혜진(39·가명)씨에게 큰아들 영훈(12·가명)군은 가장 큰 자부심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영훈군이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이기 때문이다. 매달 130만원씩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중 40만원을 15평 빌라의 월세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김씨와 영훈군, 3살과 1살 된 두 딸이 간신히 끼니를 때우며 산다. 이 때문에 보습학원은커녕 과목당 매달 3만~4만원 하는 학습지 한 번 사주지 못했다. 친구들 다 가는 영어·수학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를 만도 하지만 가난 앞에 일찍 철든 영훈군은 한 번도 떼쓴 적이 없다. 김씨는 “입학 전 어린이집 보낸 것 말고는 특별히 교육시킨 게 없고 입학한 뒤에는 내가 전과를 펴놓고 수학, 영어를 가르친 게 사교육의 전부”라며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김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이 곧 중학교에 진학하면 더이상 비상한 머리에만 기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김씨는 “이런 속도 모르고 동네 엄마들이 매달 30만~40만원씩 드는 그룹과외를 같이하자고 제안하면 나는 ‘애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면서 “담임 선생님은 형편을 아니까 학원 등 돈드는 교육에 대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체의 사교육 없이 공부를 잘하는 케이스는 취재차 만난 극빈층 수십명 중 영훈군이 유일할 만큼 극히 희박하다. 그나마 영훈군은 본격적인 입시경쟁이 시작되기 전인 초등학생이어서 확정적인 예로 꼽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극빈층 부모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이 미신일 뿐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앉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각자 다른 출발선에 서 있음을 눈치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빈부 격차에 따른 수준차가 뚜렷한 과목은 무엇일까. 영어만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국어 실력의 격차가 아주 크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A양은 3학년 때까지 ‘까막눈’이었다. 한글로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 A양의 어머니(33)는 학교에 가면 배우겠거니 믿었다. 하지만 1학년 교실은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돌아갔다. 반 아이 10명 중 8~9명꼴로 입학 전 한글을 미리 배워 오는 현실에서 담임교사는 A양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이 불러 주는 준비물을 받아 적지 못해 반에서 혼자 준비물을 못 챙겨 가기도 했다. 국어를 못하면 다른 모든 과목을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공부 전체가 엉망이 된다. 다행히 3학년 담임 교사가 방과후 이양을 붙잡고 자음·모음부터 가르친 덕에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저소득층 자녀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빈약한 어휘력 탓에 교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말 전문가인 서보건 인천대 산학협력단 전담교수는 “임대아파트촌의 고교에 가면 간단한 사자성어조차 모르는 학생이 허다하다”고 했다. 소득 격차는 학습의 밑바탕이 되는 독서 습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불안정한 환경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부모로부터 독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읽는 책은 귀신 나오는 공포물이나 만화 등 스트레스 해소용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고1 큰딸과 중2 작은딸에게 지금껏 책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B(42·여)씨는 “딸이 나처럼 ‘책만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하기에 사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면서 “만화책이나 인터넷만화(웹툰)를 읽는 게 딸이 하는 독서의 전부”라고 했다. 도서 구매력이 없는 것도 자녀의 독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C(여·42)씨는 동네를 걸을 때마다 이웃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책이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14살과 7살인 두 딸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다 읽은 책은 C씨에게 건넨다. C씨는 매달 10만원씩 충전되는 문화누리카드(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의 영화 관람, 도서 구입 등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 카드)를 주로 애들 문제집 사는 데 쓴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교육특구’에서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이미 대학 입시 준비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하교 후 학원에 다니기 바쁘지만 극빈층 아이들은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지역아동센터 등 무상교육기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간섭받는 것을 싫어해 지역아동센터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또 ‘드림스타트’ 사업(12세 이하 저소득층 아동에게 무상으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사업) 등은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혜택이 끊기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저소득층 자녀들은 거주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거나 아예 대입을 포기하고 특성화고(옛 실업계고) 진학을 택하는 게 일반적 코스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대학 진학 등 진로에 대한 목표가 없는 고교생은 방과후 PC방에서 3년을 보내다가 졸업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게 되는 일이 많고 여학생 중에는 남학생과 놀다가 임신해 싱글맘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면서 “심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공부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극빈층 부모들은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가 돈이 드는 진로를 택할까 겁이 나기도 한다. 싱글맘 D(45)씨는 한동안 첫째 딸(16)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이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D씨는 자신도 모르게 “그 직업 가지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아느냐”는 말을 내뱉었고 딸은 “자식의 꿈을 짓밟는 엄마”라며 한동안 어머니에게 등을 돌렸다. 고1인 큰딸과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인 두 아들, 유치원생인 7살 막내딸을 키우는 싱글맘 E(45)씨도 교육비 탓에 아이가 커 가는 게 두렵다. 현재 그가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두 아들 태권도 학원비인 19만원이 전부다. E씨는 간호조무사 일로 월 150만원을 버는 게 고작이어서 이 학원비조차 부담스럽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이 더 큰 걱정이다. 방과후 집이 비어 있는 낮 동안 오빠들과 태권도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여유가 없다. 월 30만원인 집세 등 생활비를 지출하면 한 달 벌이가 모두 빠져나간다. 2년 뒤 대입 수능을 봐야 하는 큰딸조차 과목당 20만원 하는 영어·수학 보습 학원을 보내지 못한다. E씨는 “부담스런 교육비 때문에 아들에게 ‘나중에 기계공고에 진학해 곧장 취업하거나 혼자 힘으로 대학을 가라’고 얘기했는데, 엄마로서 못할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가난을 직시한 아이들이 돈 들어가는 학습 요구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F(42)씨는 최근 중2인 맏딸이 초등학교 1학년 여동생을 꾸짖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학원에 가고 싶어도 엄마한테 말하지 마. 네가 그러면 엄마가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큰딸은 비싼 준비물을 살 돈이 없어 끙끙대다가 어렵게 ‘이 준비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효녀”라고 했다. 가난 때문에 영재가 범재로 남는 사례도 많다. 서울의 중학교 2학년인 G(14)양은 음악 시간 민요를 부르던 중 교사의 눈에 띄어 ‘국악 영재’로 추천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대학교수로부터 무상으로 국악 강습을 받게 됐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는 G양의 부모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결국 “국악이 돈이 되느냐. 음악을 시키려면 언젠가는 큰돈이 들지 않겠느냐”며 영재 교육을 중단시켰다. 아이들의 빈곤한 행색이 배울 의욕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보인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H(12)양의 어머니는 지난봄의 ‘악몽’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린다. 교실에서 딸의 친구가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소리치며 H양의 머리를 가리킨 것이다. 머릿니였다. 이후 급우들은 H양을 따돌렸다. H양은 엄마에게 “학교 가기 싫다”며 울었고 엄마는 딸의 긴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스포츠형으로 싹둑 잘라 줘야만 했다. 반면 극빈 상황을 오히려 자녀 교육에 활용하려는 사례도 발견됐다. 극빈층 부모 중 대학의 저소득층 특별전형이나 장학금 혜택 등을 위해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부러 직업을 갖지 않고 기초수급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세 아이의 엄마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 I(39)씨는 한 달 130만원씩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나가는 게 너무 힘들다. 생후 1년 된 막내가 2~3년 뒤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식당에서 일해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초등학생인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참는다.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66만원) 이상의 소득인정액이 잡히면 수급권을 잃게 되는데 이러면 자녀가 자립형사립고나 대학을 갈 때 저소득층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I씨는 “큰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수급권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서초동 용의자 검거 “집 팔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데…” 왜?

    서초동 용의자 검거 “집 팔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데…” 왜?

    서초동 용의자 검거 서초동 용의자 검거 “집 팔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는데…” 왜? ”부모님보다 먼저 가는 것도 죄송한데 집사람과 애들까지 데리고 가는 죽을죄를 지었다. 나는 저승에 가서 죗값을 치르겠다.” 서울 서초구 세 모녀 살해사건은 실직 후 마지막 보루로 삼았던 주식투자마저 실패하자 절망한 40대 실직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비극으로 드러났다. 6일 새벽 3시쯤 법조인들이 많이 사는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146㎡ 넓이 아파트에서 강모(48)씨는 유서 작성을 마무리했다. 아내와 두 딸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작성한 노트 두 장 분량의 유서에는 사후 남는 돈은 연로한 부모님과 장인, 장모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될 때 보태라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강씨는 혼자 자살하는 대신 가족을 모두 데려가는 편을 택했다. 그는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30분 사이 아내(44)와 맏딸(13), 둘째딸(8)을 잇따라 살해한 뒤 도주했다. 그는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시도하고 흉기로 손목을 긋는 등 최소 두 차례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결국 이날 낮 12시 10분쯤 경북 문경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비극의 시작은 3년 전 컴퓨터 업체에 다니던 강씨가 실직하면서였다. 강씨는 가족 중 아내에게만 실직 사실을 알린 뒤 백방으로 새 직장을 물색했지만, 40대 중반 남성에게 취업시장의 문은 좁기만 했다. 강씨는 두 딸에게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실직 후 2년간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지자 최근 1년간은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 고시원을 얻어 낮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강씨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고집하며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결국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보이자 강씨는 2012년 11월께 자신이 살고 있던 대형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려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주식투자 대박으로 재기하겠다는 꿈을 꿨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대출금으로 아내에게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면서 “하지만 투자는 성공적이지 못해 2년여가 지난 현재 남은 돈은 1억 3천만원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그 동안 지출된 생활비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4억원 중 2억 7000만원을 날린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2004년 5월쯤 이 아파트를 구입했고 현재 시가는 대략 8∼10억원 수준”이라면서 “강씨는 5억원 외에 다른 빚도 없는 상태여서 집을 팔고 생활수준을 낮추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씨는 온 가족이 죽는 쪽을 택했다. 경찰은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탓에 시련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다”면서 “양쪽 부모는 모두 강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강씨가 가족을 살해한 뒤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을 보인 까닭도 정신적 공황 상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찰은 “강씨가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온 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달렸다”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검거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표창원(49) 전 경찰대 교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 “절대적으로는 생활고라고 볼 수 없으나, 스스로 그 이전의 생활수준이나 교제하던 이웃, 같은 부류였던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박탈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남은 것은 몰락뿐이란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강씨가 자존감 하락을 견디지 못하는 등 성격적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고, 대인·사회관계 폐쇄성 등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1) 절대 빈곤층의 자녀 교육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 (1) 절대 빈곤층의 자녀 교육

    경기도 안산에 사는 싱글맘 김혜진(39·가명)씨에게 큰아들 영훈(12·가명)군은 가장 큰 자부심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영훈군이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수재이기 때문이다. 매달 130만원씩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중 40만원을 15평 빌라의 월세로 내고 나머지 돈으로 김씨와 영훈군, 3살과 1살 된 두 딸이 간신히 끼니를 때우며 산다. 이 때문에 보습학원은커녕 과목당 매달 3만~4만원 하는 학습지 한 번 사주지 못했다. 친구들 다 가는 영어·수학 학원에 보내 달라고 조를 만도 하지만 가난 앞에 일찍 철든 영훈군은 한 번도 떼쓴 적이 없다. 김씨는 “입학 전 어린이집 보낸 것 말고는 특별히 교육시킨 게 없고 입학한 뒤에는 내가 전과를 펴놓고 수학, 영어를 가르친 게 사교육의 전부”라며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김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아들이 곧 중학교에 진학하면 더이상 비상한 머리에만 기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김씨는 “이런 속도 모르고 동네 엄마들이 매달 30만~40만원씩 드는 그룹과외를 같이하자고 제안하면 나는 ‘애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면서 “담임 선생님은 형편을 아니까 학원 등 돈드는 교육에 대한 조언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체의 사교육 없이 공부를 잘하는 케이스는 취재차 만난 극빈층 수십명 중 영훈군이 유일할 만큼 극히 희박하다. 그나마 영훈군은 본격적인 입시경쟁이 시작되기 전인 초등학생이어서 확정적인 예로 꼽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극빈층 부모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믿음이 미신일 뿐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앉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각자 다른 출발선에 서 있음을 눈치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빈부 격차에 따른 수준차가 뚜렷한 과목은 무엇일까. 영어만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국어 실력의 격차가 아주 크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A양은 3학년 때까지 ‘까막눈’이었다. 한글로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 A양의 어머니(33)는 학교에 가면 배우겠거니 믿었다. 하지만 1학년 교실은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돌아갔다. 반 아이 10명 중 8~9명꼴로 입학 전 한글을 미리 배워 오는 현실에서 담임교사는 A양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이 불러 주는 준비물을 받아 적지 못해 반에서 혼자 준비물을 못 챙겨 가기도 했다. 국어를 못하면 다른 모든 과목을 제대로 배울 수 없기 때문에 공부 전체가 엉망이 된다. 다행히 3학년 담임 교사가 방과후 이양을 붙잡고 자음·모음부터 가르친 덕에 겨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저소득층 자녀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빈약한 어휘력 탓에 교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말 전문가인 서보건 인천대 산학협력단 전담교수는 “임대아파트촌의 고교에 가면 간단한 사자성어조차 모르는 학생이 허다하다”고 했다. 소득 격차는 학습의 밑바탕이 되는 독서 습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가난한 집 아이들은 불안정한 환경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데다 부모로부터 독서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읽는 책은 귀신 나오는 공포물이나 만화 등 스트레스 해소용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고1 큰딸과 중2 작은딸에게 지금껏 책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 B(42·여)씨는 “딸이 나처럼 ‘책만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하기에 사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면서 “만화책이나 인터넷만화(웹툰)를 읽는 게 딸이 하는 독서의 전부”라고 했다. 도서 구매력이 없는 것도 자녀의 독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C(여·42)씨는 동네를 걸을 때마다 이웃에서 버리려고 내놓은 책이 있는지 유심히 살핀다. 14살과 7살인 두 딸에게 가져다 주기 위해서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도 이런 사정을 알기에 다 읽은 책은 C씨에게 건넨다. C씨는 한해 10만원씩 충전되는 문화누리카드(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의 영화 관람, 도서 구입 등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 카드)를 주로 애들 문제집 사는 데 쓴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등 ‘교육특구’에서는 초등학교 이전부터 이미 대학 입시 준비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하교 후 학원에 다니기 바쁘지만 극빈층 아이들은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지역아동센터 등 무상교육기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간섭받는 것을 싫어해 지역아동센터에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또 ‘드림스타트’ 사업(12세 이하 저소득층 아동에게 무상으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사업) 등은 중학교 진학과 동시에 혜택이 끊기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저소득층 자녀들은 거주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와 일반계 고등학교에 가거나 아예 대입을 포기하고 특성화고(옛 실업계고) 진학을 택하는 게 일반적 코스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대학 진학 등 진로에 대한 목표가 없는 고교생은 방과후 PC방에서 3년을 보내다가 졸업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게 되는 일이 많고 여학생 중에는 남학생과 놀다가 임신해 싱글맘이 되는 경우도 꽤 있다”면서 “심성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공부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극빈층 부모들은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가 돈이 드는 진로를 택할까 겁이 나기도 한다. 싱글맘 D(45)씨는 한동안 첫째 딸(16) 때문에 가슴앓이를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딸이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D씨는 자신도 모르게 “그 직업 가지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아느냐”는 말을 내뱉었고 딸은 “자식의 꿈을 짓밟는 엄마”라며 한동안 어머니에게 등을 돌렸다. 고1인 큰딸과 초등학교 6학년, 5학년인 두 아들, 유치원생인 7살 막내딸을 키우는 싱글맘 E(45)씨도 교육비 탓에 아이가 커 가는 게 두렵다. 현재 그가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두 아들 태권도 학원비인 19만원이 전부다. E씨는 간호조무사 일로 월 150만원을 버는 게 고작이어서 이 학원비조차 부담스럽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막내딸까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이 더 큰 걱정이다. 방과후 집이 비어 있는 낮 동안 오빠들과 태권도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여유가 없다. 월 30만원인 집세 등 생활비를 지출하면 한 달 벌이가 모두 빠져나간다. 2년 뒤 대입 수능을 봐야 하는 큰딸조차 과목당 20만원 하는 영어·수학 보습 학원을 보내지 못한다. E씨는 “부담스런 교육비 때문에 아들에게 ‘나중에 기계공고에 진학해 곧장 취업하거나 혼자 힘으로 대학을 가라’고 얘기했는데, 엄마로서 못할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가난을 직시한 아이들이 돈 들어가는 학습 요구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F(42)씨는 최근 중2인 맏딸이 초등학교 1학년 여동생을 꾸짖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학원에 가고 싶어도 엄마한테 말하지 마. 네가 그러면 엄마가 힘들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큰딸은 비싼 준비물을 살 돈이 없어 끙끙대다가 어렵게 ‘이 준비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효녀”라고 했다. 가난 때문에 영재가 범재로 남는 사례도 많다. 서울의 중학교 2학년인 G(14)양은 음악 시간 민요를 부르던 중 교사의 눈에 띄어 ‘국악 영재’로 추천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대학교수로부터 무상으로 국악 강습을 받게 됐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는 G양의 부모는 이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결국 “국악이 돈이 되느냐. 음악을 시키려면 언젠가는 큰돈이 들지 않겠느냐”며 영재 교육을 중단시켰다. 아이들의 빈곤한 행색이 배울 의욕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보인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H(12)양의 어머니는 지난봄의 ‘악몽’만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린다. 교실에서 딸의 친구가 “벌레가 기어다닌다”고 소리치며 H양의 머리를 가리킨 것이다. 머릿니였다. 이후 급우들은 H양을 따돌렸다. H양은 엄마에게 “학교 가기 싫다”며 울었고 엄마는 딸의 긴 머리를 남자아이처럼 스포츠형으로 싹둑 잘라 줘야만 했다. 반면 극빈 상황을 오히려 자녀 교육에 활용하려는 사례도 발견됐다. 극빈층 부모 중 대학의 저소득층 특별전형이나 장학금 혜택 등을 위해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일부러 직업을 갖지 않고 기초수급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세 아이의 엄마인 기초생활보호대상자 I(39)씨는 한 달 130만원씩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살아나가는 게 너무 힘들다. 생후 1년 된 막내가 2~3년 뒤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식당에서 일해 조금이라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초등학생인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 참는다.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66만원) 이상의 소득인정액이 잡히면 수급권을 잃게 되는데 이러면 자녀가 자립형사립고나 대학을 갈 때 저소득층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I씨는 “큰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수급권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경기회복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새해 벽두부터 업계 25위인 동부건설이 자금난에 시달리다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장기 불황의 긴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으며 올 한 해도 재계는 힘든 시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전조로도 보인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어제 내놓은 신년사를 봐도 새해 경영 환경을 낙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의 거센 추격으로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우려했다. ‘위기’, ‘혁신’, ‘기필코’, ‘절체절명’ 등의 단어에서 보듯 생존을 걱정하는 다급함과 절실함이 묻어났다. 예년과 달리 미래 먹거리에 대한 언급이 신년사에서 아예 사라진 것도 주목된다. 당장의 위기 타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재계의 걱정처럼 대내외적인 경영 여건이 금방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집권 3년차를 맞는 2015년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물론 서민, 중산층 등 모든 경제 주체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올 한 해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국 경제가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재도약이냐 아니면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문제는 경기회복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최경환 경제팀이 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면서 경기회복에 총력전을 펼쳤지만 부동산 시장이 반짝 회복세를 보였을 뿐 다시 침체 국면에 빠졌다. 1000조원이 넘는 가계빚은 여전히 급증 추세다. 서민들이 지갑을 꼭꼭 닫고 있어 소비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업 투자도 쌩쌩 찬바람만 분다. 나라 밖 사정도 심상치 않다. 우리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의 공세는 지속적인 위협 요소다. 유럽은 경기침체가 이미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미국이 올 상반기쯤 금리를 올리면 국내에서 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반 토막이 난 유가가 계속 떨어지면 러시아와 자본 신흥국이 경제위기를 맞게 되고 국내 경제 회복에는 또 다른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철강, 화학 등 우리의 주력 산업도 과거와 달리 성장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저성장, 저물가 속에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우리 경제의 활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2.3%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는 경기도 살리고, 구조개혁도 동시에 추진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구조 개혁이 없이는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올해가 경제 체질을 성공적으로 개선할 유일한 시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개혁이 없으면 일자리도, 성장도, 복지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공공, 금융, 교육 부문의 개혁도 중요하지만 최우선 과제는 노동시장 개혁이다. 정년 연장, 통상임금, 비정규직 보호, 고용유연성 제고 등 민감한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경기 회복의 실마리는 여기서부터 풀어 나가야 한다.
  • [사설] 광복 70주년, 국가 중흥의 원년으로 만들자

    동해를 솟구쳐 오른 해가 풀 죽은 대지의 기상을 재촉한다. 을미년(乙未年)의 첫날, 엄한(嚴寒)의 원단(元旦)은 온기가 퍼지고 기백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희망이 마음속에서 절로 피어올라야 그것이 새해다. 그저 새해이기 때문이다. 태양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떠오르지만 새 달력 첫 장의 의미는 다르다.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 거기서 시작되는 까닭에서다. 민초(民草)가 풀 죽은 이유는 게걸음을 걷는 경제 때문이다. 일자리 없는 젊은이들과 넝마주이 신세의 노인들이 거리를 헤맨다. 실직자들은 삭풍 속에 목숨 건 투쟁을 하고 있다. 팍팍한 서민의 삶은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탄식만 할 수 없다. 세네카는 “거친 땅 위에서 굳어진 발굽을 가진 짐승은 어떠한 길이라도 걸을 수 있다”고 했다. 쇠는 불 속에서 강해진다는 말도 있다. 역경은 이겨 내라고 있는 것이다. 을미년 새해는 일제의 침탈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다. 한 나라 한 땅이 쪼개진 지도 일흔 해가 됐다. 돌이켜 보면 파란만장한 격랑의 세월이었다. 광복과 건국의 기쁨도 잠시 동족상잔의 참극이 덮쳤고 절대 빈곤이 엄습했다. 그러나 잘살아 보겠다는 일념으로 세계에서 유례없는 고속성장의 기적을 일궈 냈다. 새해에도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드디어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에 진입한다. 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이 넘는 세계 일곱 번째의 ‘30·50클럽’ 멤버가 된다. 하지만 손뼉만 치고 있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겉은 영글었으나 속은 썩어 가고 있다. 중산층은 와해되고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고용은 쉬 늘지 않고 해고의 칼바람에 실업자가 넘쳐난다. 자영업자는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생계를 위협받는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앞은 더 어둡다. 저성장은 고착화돼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불안한 국면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저 2.3%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기세등등한 중국의 기술력은 이미 턱밑을 넘어 우리의 머리 위로 올라서고 있다. 후발국에 밀려 삼성과 LG가 소니나 노키아 같은 신세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소통은 따뜻하되 개혁은 서릿발 같아야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가 새해에 할 일은 그래서 많다. 박 대통령이 장담했던 ‘국민 행복’은 도리어 역주행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선제적으로 발굴해 기업을 이끌어 주는 등대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정부다. 장밋빛 수사(修辭)에 현혹당할 국민이 아니다. 반짝 성과, 단견책(短見策)에 집착하지 말고 먼 장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세금을 감면해 이익을 내도록 할 게 아니라 기업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어 돈을 많이 벌도록 유도해야 한다. 구조개혁과 규제완화는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생명줄이다. 마지막 날에 140건이 넘는 법안을 두들기고 끝내 ‘김영란법’을 팽개친 국회의 존재 가치는 있는가. 사사건건 막말이나 쏟아내고 화합보다 분열을 조장하는 의원들에게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나 있는가. 대오각성, 석고대죄해야 한다. 외국 언론의 조롱거리나 되는 ‘식물 국회’는 종언을 고하라. 권력 다툼, 사익(私益) 챙기기에 급급한 썩은 정치는 악살 박살 내야 한다. 진정 국민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국회와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하라. 뭉쳐도 어려울 마당에 사분오열돼서는 맞서 이겨 낼 수 없다. 통합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비생산적인 이념 갈등을 툴툴 털어내야 한다. 우리는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다. 거센 파고를 헤쳐 나갈 리더가 겸비할 덕목은 덕(德)과 용(勇)이다. 포용력과 강단(剛斷)이다.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국민을 수없이 강조했던 대통령의 초심(初心)이다. 의원, 공직자, 검사, 교사, 자영업자, 대학생, 언론인 등 국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소통해야 한다. 그런 한편 폭넓고 포용력 있는 용인술(用人術)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 소통은 따뜻하되 개혁은 서릿발처럼 차가워야 한다. 대통령과 함께 국회도 개혁의 횃불을 드높이 맞들어야 할 것이다. 무능과 부패에 빠진 탐관오리는 국가와 국민의 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인 부패를 적출하지 않고 선진국 진입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중국 시진핑의 거국적인 부패 척결을 본받아야 한다. ‘관피아’ 개혁은 시작에 불과하다. 고난을 딛고 웅비하는 데 힘을 모으자 내파(內波)만큼 외랑(外浪)도 거세다. 넋 놓고 티격태격 싸움질이나 하기엔 한반도 주변의 상황은 실로 엄준하다. 북한의 도발 근성은 여전히 잠복하며 우리를 겨누고 있다. 미국과 쿠바의 수교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외톨이가 됐지만 그럴수록 핵을 도구로 삼아 분탕질을 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런 북한을 인내심을 갖고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책임도 결국 우리에게 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프로세스가 일회성 전략으로 끝나서도 안 되는 이유는 통일이라는 긴 안목을 갖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강국에 둘러싸인 안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우적(友敵)이 모호한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처신은 갈수록 어렵다. 자칫하다간 양쪽에서 뺨 맞을 상황이다. 소신과 자신감을 겸비한 지혜로운 외교 전략이 요청되는 때다. 일본은 브레이크도 없이 우경화의 말로를 향해 질주 중이다. 그런 일본의 옷자락을 잡고 속도를 줄여 주는 것도 우리의 책무다. 특히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사의 매듭은 분명히 지어야 하지만 배일(排日)만이 능사가 아니다. 흉금을 터놓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 세월호의 비극적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참척(慘慽)의 고통은 지금도 가슴을 짓누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전쟁, 기아, 환란(換亂), 금융위기까지 시련을 이겨 낸 저력, ‘극복의 DNA’가 있다. 세상이, 세계가 우리를 부른다. 희망은 바란다고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떨쳐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해는 고난과 좌절을 딛고 웅비하는 대한민국 중흥의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 [단독] “왜 애먼 사람 잡나” 직장인 ‘연말 분통’

    [단독] “왜 애먼 사람 잡나” 직장인 ‘연말 분통’

    올해 연말정산 환급액이 크게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이면서 이제는 ‘13월의 보너스’가 옛말이 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13월의 세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갈수록 환급액은 줄어들고 토해 내는 세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행 연말정산 제도가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어 손을 보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바뀐 규정이 처음 적용된 올해 연말정산 분석 결과 총급여(연봉-비과세소득) 8000만원 이하 중산·서민층의 환급액이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제도 개편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으로 바뀐 데는 기재부가 2012년 9월부터 매달 월급에서 떼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율을 10% 포인트 내린 영향이 컸다.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해 가계소득을 높여 준다는 취지였지만 당시에도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판이 거셌다. 세금이 줄어든 만큼 연말정산 환급액도 줄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월급봉투가 약간 두툼해지는 것보다 한꺼번에 몰아 받던 연말정산 혜택이 크게 줄어든 것에 불만이 컸다. 기재부는 2013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20%에서 15%로 깎았다. 한도가 없었던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등 일부 소득공제에 대해서는 ‘최대 2500만원’이라는 상한선도 만들었다. 내년 2월에 받을 연말정산은 올해보다 환급액이 더 줄고 토해 낼 세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고소득층의 과도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소득공제는 연간 소득에서 공제액을 뺀 금액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긴다. 예를 들어 최저 소득계층은 소득공제액 100만원당 최저세율인 6%를 곱한 6만원을 환급받지만 최고 소득계층은 100만원당 최고세율인 38%를 곱해 38만원의 세금을 돌려받는다. 세액공제는 100만원의 공제액이 발생할 경우 12% 또는 15%의 일정 공제율을 곱한 금액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공제액이 같다면 소득에 관계없이 환급액도 같다. 하지만 기재부의 의도와 달리 저소득층 근로자 중 일부도 연말정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연봉 2360만~3800만원 사이 미혼 직장인의 경우 세금이 최고 17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내년 연말정산 소득공제 규모는 올해보다 8761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 연말정산을 받은 근로자(1124만명)를 기준으로 하면 1인당 7만 8000원씩 줄어드는 셈이다. 기재부 측은 “소득공제 규모는 8761억원 감소하지만 서민·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로소득 세액공제 한도를 최대 16만원 늘렸다”며 “이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연말정산 때 부담할 세금은 올해보다 총 4361억원 증가하는 데 그친다”고 해명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단독] 연말정산까지 부익부빈익빈

    [단독] 연말정산까지 부익부빈익빈

    올해 2월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총급여) 8000만원 이하인 중산·서민층의 세금 환급액은 줄고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층의 환급액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3월의 보너스’도 양극화 시대인 셈이다. 세제 개편 영향으로 세금을 ‘덜 돌려받고 더 토해내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돌려받은 환급액은 지난해보다 1342억원 감소했다. 반면 토해낸 세금은 2747억원 증가했다. 내년 2월 연말정산에서는 환급액이 올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30일 국세청의 ‘2014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월 연말정산에서 직장인들이 돌려받은 세금은 4조 5339억원으로 지난해(4조 6681억원)보다 1342억원(2.9%) 감소했다. 근로소득 구간별로 보면 2000만원 이하 직장인은 환급액이 297억원, 2000만~4000만원 872억원, 4000만~6000만원 667억원, 6000만~8000만원은 247억원 각각 줄었다. 특히 소득 2000만~4000만원 구간에서 환급액이 가장 많이 깎여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소득 8000만원 이하 구간에서 줄어든 총환급액은 2083억원이다. 반면 소득이 8000만원이 넘는 직장인의 환급액은 지난해보다 741억원 증가했다. 연봉이 1억원 넘는 직장인들은 지난해보다 576억원이나 더 돌려받았다. 올 초 ‘세금 폭탄’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던 일반 샐러리맨들의 원성이 실제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세금을 돌려받은 직장인도 938만 4119명으로 지난해(989만 8750명)보다 5.2% 감소했다. 세금을 돌려받기는커녕 되레 토해낸 직장인도 433만 1268명으로 전년(354만 7690명) 대비 22.1%나 급증했다. 토해낸 세금은 1조 6983억원이다. 지난해(1조 4236억원)보다 2747억원(19.3%) 많다. 이처럼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세금’으로 바뀐 까닭은 정부가 2012년 9월부터 월급에서 일괄적으로 떼는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액을 평균 10%씩 줄이고 신용카드 공제율도 축소한 탓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소비를 늘리기 위해 매달 월급에서 떼는 세금을 깎은 것이 연말정산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왜 애먼 사람 잡나” 직장인 ‘연말 분통’ 고소득층 소득공제 잡으려다 저소득층까지 세금 토해 낼 판 올해 연말정산 환급액이 크게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이면서 이제는 ‘13월의 보너스’가 옛말이 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13월의 세금’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갈수록 환급액은 줄어들고 토해 내는 세금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행 연말정산 제도가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어 손을 보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지만 바뀐 규정이 처음 적용된 올해 연말정산 분석 결과 총급여(연봉-비과세소득) 8000만원 이하 중산·서민층의 환급액이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제도 개편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국세청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말정산이 13월의 세금으로 바뀐 데는 기재부가 2012년 9월부터 매달 월급에서 떼는 근로소득세 원천징수세율을 10% 포인트 내린 영향이 컸다. 침체된 소비를 살리기 위해 가계소득을 높여 준다는 취지였지만 당시에도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비판이 거셌다. 세금이 줄어든 만큼 연말정산 환급액도 줄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월급봉투가 약간 두툼해지는 것보다 한꺼번에 몰아 받던 연말정산 혜택이 크게 줄어든 것에 불만이 컸다. 기재부는 2013년부터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20%에서 15%로 깎았다. 한도가 없었던 보험료, 의료비, 교육비 등 일부 소득공제에 대해서는 ‘최대 2500만원’이라는 상한선도 만들었다. 내년 2월에 받을 연말정산은 올해보다 환급액이 더 줄고 토해 낼 세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고소득층의 과도한 소득공제 혜택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로 바꿨기 때문이다. 소득공제는 연간 소득에서 공제액을 뺀 금액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긴다. 예를 들어 최저 소득계층은 소득공제액 100만원당 최저세율인 6%를 곱한 6만원을 환급받지만 최고 소득계층은 100만원당 최고세율인 38%를 곱해 38만원의 세금을 돌려받는다. 세액공제는 100만원의 공제액이 발생할 경우 12% 또는 15%의 일정 공제율을 곱한 금액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공제액이 같다면 소득에 관계없이 환급액도 같다. 하지만 기재부의 의도와 달리 저소득층 근로자 중 일부도 연말정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연봉 2360만~3800만원 사이 미혼 직장인의 경우 세금이 최고 17만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5년 조세지출예산서에 따르면 내년 연말정산 소득공제 규모는 올해보다 8761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올해 연말정산을 받은 근로자(1124만명)를 기준으로 하면 1인당 7만 8000원씩 줄어드는 셈이다. 기재부 측은 “소득공제 규모는 8761억원 감소하지만 서민·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로소득 세액공제 한도를 최대 16만원 늘렸다”며 “이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연말정산 때 부담할 세금은 올해보다 총 4361억원 증가하는 데 그친다”고 해명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단독] 연말정산까지 부익부빈익빈

    [단독] 연말정산까지 부익부빈익빈

    올해 2월 연말정산에서 근로소득(총급여) 8000만원 이하인 중산·서민층의 세금 환급액은 줄고 8000만원이 넘는 고소득층의 환급액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3월의 보너스’도 양극화 시대인 셈이다. 세제 개편 영향으로 세금을 ‘덜 돌려받고 더 토해내는’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직장인들이 돌려받은 환급액은 지난해보다 1342억원 감소했다. 반면 토해낸 세금은 2747억원 증가했다. 내년 2월 연말정산에서는 환급액이 올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30일 국세청의 ‘2014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월 연말정산에서 직장인들이 돌려받은 세금은 4조 5339억원으로 지난해(4조 6681억원)보다 1342억원(2.9%) 감소했다. 근로소득 구간별로 보면 2000만원 이하 직장인은 환급액이 297억원, 2000만~4000만원 872억원, 4000만~6000만원 667억원, 6000만~8000만원은 247억원 각각 줄었다. 특히 소득 2000만~4000만원 구간에서 환급액이 가장 많이 깎여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소득 8000만원 이하 구간에서 줄어든 총환급액은 2083억원이다. 반면 소득이 8000만원이 넘는 직장인의 환급액은 지난해보다 741억원 증가했다. 연봉이 1억원 넘는 직장인들은 지난해보다 576억원이나 더 돌려받았다. 올 초 ‘세금 폭탄’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던 일반 샐러리맨들의 원성이 실제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세금을 돌려받은 직장인도 938만 4119명으로 지난해(989만 8750명)보다 5.2% 감소했다. 세금을 돌려받기는커녕 되레 토해낸 직장인도 433만 1268명으로 전년(354만 7690명) 대비 22.1%나 급증했다. 토해낸 세금은 1조 6983억원이다. 지난해(1조 4236억원)보다 2747억원(19.3%) 많다. 이처럼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세금’으로 바뀐 까닭은 정부가 2012년 9월부터 월급에서 일괄적으로 떼는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액을 평균 10%씩 줄이고 신용카드 공제율도 축소한 탓으로 풀이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당시 소비를 늘리기 위해 매달 월급에서 떼는 세금을 깎은 것이 연말정산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희망 없어도 행복해!

    희망 없어도 행복해!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이언숙 옮/ 민음사/385쪽/1만 9500원] 일본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비용의 증가, 경직된 기업 조직과 노동시장으로 인한 청년 실업 등을 고려하면 일본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잃어버린 20년’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경제활동인구 대비 고령자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극심한 취업난은 비정규직과 프리터(프리랜서와 아르바이터의 일본식 조어)를 양산했다. 고용 상황이 불안하니 결혼과 출산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했다. 이리저리 뜯어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이 힘든 사회적 상황 속에서 20대 젊은이들의 75%가 “지금 나는 행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1년 일본 내각부의 ‘일본 국민 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다. 해당 조사가 실시된 이래 최고치이자 일본 경제가 악화일로에 접어든 상태에서 나온 뜻밖의 결과에 일본은 충격에 휩싸였다. ‘득도의 경지’에 오른 듯 초연한 자세로 살아가는 일본 신세대 젊은이들을 지칭해 ‘사토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일본의 신예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29)의 책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장기 불황이 낳은 역설적인 인간형 ‘사토리 세대’의 정체를 파헤친다. 2011년 일본에서 책을 낼 당시 26세였던 저자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이 절망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왠지 가슴은 찡한데 그럴듯하다. 그의 주장은 막연한 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때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는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미래에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으며 공부에, 직장에 목숨을 걸었고 그래서 현실은 불행했다. 물론 20대의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주변 상황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설문조사의 다른 항목을 보면 ‘생활하면서 고민이나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응답이 1980년대 후반부터 계속 상승해 2010년 63.1%에 달했다.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의 자국 사회에 대한 만족도가 1993년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한다. 이처럼 ‘불안하지만 행복하다’는 모순적인 태도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후루이치는 거품경제 붕괴와 불황 장기화의 책임을 젊은이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며 기성세대가 내놓는 ‘젊은이론’도 비판한다. ‘요즘 젊은이들’ 운운하며 불행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는 태도, ‘젊은이에게 희망이 있다’는 식으로 찬양하는 것 모두 그들을 타자화(他者化)하는 담론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책에서 출세나 명예, 돈벌이에 욕심이 없이 자기 주변의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특징을 하나씩 거론하며 이들 삶의 방식이 결코 자포자기 혹은 자기 파괴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한때 당연시되던 ‘일류대 진학, 대기업 입사, 중산층 가정’이라는 꿈 같은 시나리오가 폐기 처분된 지금 시대에 젊은이들이 취할 수 있는 삶의 태도란 어려운 상황에 안주하고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 것이다. 그들이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행복이 바로 그것이니까. 일본 젊은이들의 현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현실은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과 비슷하다.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자본주의 신화가 깨진 지 오래인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혁명 대신 현실 안주를 택하는 현상은 가까운 미래, 어쩌면 현재인 한국을 읽는 것 같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사토리 세대 일본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태어나 현재 10~20대 중·후반 나이대로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사토리는 ‘득도’ ‘깨달음’이라는 뜻으로 버블경제 붕괴 후 닥친 장기 불황 속에서 성장해 물질적 풍요에 집착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국가보다는 인류애 실현을 위해 기꺼이 뭉치기도 하며 대도시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지내는 것을 선호한다.
  • [사설] 대형마트 영업제한 말고 동반성장 대안 뭔가

    대형마트에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고 영업 시간을 제한한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파문이 일으키고 있다. 기업형슈퍼마켓(SSM)을 운영하는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6개 유통회사가 서울 동대문구 등을 상대로 낸 영업정지·제한 등 처분 소송에서 서울고법이 지난 12일 원고 측의 손을 들어 주면서다. 중소 상인과 대형마트의 상생을 도모하려는 지자체 조례의 취지가 빛이 바랜 점은 애석한 일이다. 그러나 골목상권 보호에 실효성이 없다는 게 판결의 함의라면 동반성장의 대의를 제대로 살릴 대안을 찾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자체들의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결 그 자체보다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가 없다는 판결문의 취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만 ‘점원의 도움을 받지 않는’이라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자구 해석에 매달려 이마트·홈플러스 등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판결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점포들의 임대매장 업주 또한 중소 상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판결문의 자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규제가 골목상권의 부활로 이어지지 않고 대형마트의 근로자나 여기에 납품하는 중소 업체들에 피해만 입힌다면 말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사회적 약자인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할 당위성은 넘친다. 지자체 조례에 이어 지난해 국회가 관련법을 고쳐 대형마트의 휴일 의무휴업을 못 막은 이유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을 실현하지 못하고 중산층·서민의 편익만 줄이는 헛발질이라면 재고해야 한다. 서울시는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매출 증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판결 취지를 반박했다. 지난 1월 의무휴업 적용 일요일과 비적용 일요일의 전통시장 매출액 등을 한 차례 비교한 결과가 근거다. 그러나 이를 객관적 현상으로 보기엔 미심쩍다. 대형마트 규제 이후에도 전통시장·소매업의 매출액이 감소 추세라는, 한국SCM학회 등의 장기 조사 보고서와 배치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정책 당국은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기만 기다려선 안 된다. 대형마트 영업 제한이 유지되더라도 소비자들이 구멍가게나 재래시장 대신 영업 제한이 안 되는 시간대에 대형마트를 찾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아닌가. 규제에 불편을 느낀 소비자들이 인터넷몰이나 해외 직구로 눈을 돌리는 일도 더 늘 게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시장의 변화 추세에 맞는, 보다 적실한 동반성장 대책을 고민할 때다.
  • [사설] 개인소득자 절반이 연 천만원도 못 버는 현실

    우리나라의 전체 개인소득자 3120여만명 가운데 한 해 소득이 1000만원도 채 안 되는 사람이 48.4%로 절반에 육박한다는 우울한 분석이 나왔다. 또 상위 소득자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에 가까운 48.04%를 차지한다는 내용도 같이 나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열린 ‘불평등과 경제성장에 대한 경제사적 고찰’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자료 보강이 쉬운 2010년 국세통계연보와 연보에서 빠뜨린 근로소득 과세 미달자와 일용직 근로소득, 사업소득, 4000만원 미만의 금융소득, 미신고 사업소득 등의 자료를 보완해 분석했다. 개인소득자의 평균소득은 2046만원이고, 중위소득은 평균소득의 52.5% 수준인 1074만원이었다. 평균소득은 부자와 빈자의 소득을 모두 합한 뒤 나눈 소득이고, 중위소득은 개인소득자 전체 중 가장 가운데 있는 소득이다.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를 중산층, 150% 초과를 보통 상류층이라고 한다. 그동안 중산층 기준으로 제시되던 ‘연봉 6000만원, 2000㏄ 이상 승용차’와 같은 기준은 상위 소득 10%에 포함된다. 중위소득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등 낮은 소득의 일자리 종사자가 상당히 많은 게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소득이 많지 않은 농촌의 노년층이 있는 것도 중위소득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지니계수는 통계청의 0.3대보다 높은 0.4대라고 주장했다. 지니계수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통계청은 국세청 자료에서 누락된 소득 등을 보정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통계청과 김 교수 중 어느 쪽의 수치가 맞는지 왈가왈부해도 실익은 별로 없다. 국민은 소득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전체 개인소득자 중 한 해 소득이 1000만원도 안 되는 개인이 절반이나 된다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비정규직이 많다는 뜻과 다를 게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불평등과 성장’이란 보고서에서 “소득불평등이 오히려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면서 “양극화를 해소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을 정부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서민들의 암울한 소득 수준을 감안해 담뱃값 인상과 같은 서민 증세가 아니라 소득불균형을 해소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 韓·베트남 FTA 28개월만에 타결

    한국과 베트남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이 2년 4개월 만에 타결됐다. 부산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과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는 10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양국 간 FTA 협상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했다. 베트남은 인구 약 9000만명의 신흥시장으로 매년 5∼6%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향후 중산층 대상 소비재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아세안 FTA에서는 개방하지 않았던 승용차(3000㏄ 이상), 화물차(5~20t), 화장품, 전기밥솥·냉장고·에어컨·TV 등 생활가전 등이 개방됐다. 이번 FTA 체결로 일본보다 2.1% 포인트 높은 수준의 자유화에 합의해 타이어와 면직물, 철도차량부품 등에서 유리한 경쟁이 가능해졌다. 600달러 이하 물품 원산지 증명서 면제 조항 등을 넣어 우리 진출 기업의 애로사항도 해소했다. 우리나라는 새우에 대해 최대 1만 5000t(1억 4000만 달러)까지 무관세 대우를 부여하기로 했다. 마늘, 생강 등은 파쇄되거나 건조·냉장된 품목 위주로 개방했으며 쌀은 협정에서 완전 제외했다. 양국은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법률 검토 및 가서명을 추진하고 이어 정식 서명과 국회 비준을 진행할 계획이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새로운 기회의 땅, 역동적인 아세안 신흥국의 힘

    새로운 기회의 땅, 역동적인 아세안 신흥국의 힘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도움의 손길만이 필요한 지역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면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지로 깨어나고 있다. KBS와 아세안 10개국 방송사는 지난 5개월 동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의 모습을 포착했다. 11~12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되는 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원 비전’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세안의 역동적인 힘을 들여다본다. 아세안 10개국은 내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를 출범시킨다. 인구 6억명, 국내총생산(GDP) 2조 3000억 달러의 거대 단일시장이 출범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기회이기도 하다. 50년 만에 빗장을 연 미얀마는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콩강의 수혜를 입은 라오스는 관광과 수력개발로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금융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고, 브루나이는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동력을 창출하고 있다. 1인당 GDP가 5만 달러를 넘은 싱가포르는 아세안의 리더로 또 한번 도약에 나선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두 번째 교역 상대이자 투자 대상으로, 아세안경제공동체가 출범하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태국은 K팝을 넘어 미용과 음식 등 한국 문화가 산업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소비력을 갖춘 중산층이 급증하면서 가전제품과 식음료산업까지 한국 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넓은 시장이 형성됐다. 아세안을 단순히 한국의 생산 기지나 소비 시장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경제 동반자로서 공영을 추구해야 함을 제언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오스트리아 빈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유럽의 중심에 있었던 도시 곳곳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이 가득하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등 유명한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의 도시’로서 이 도시가 지닌 진짜 매력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부딪쳐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에너지에서 비롯된다. 고전적 회화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자유롭게 펼쳤던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빈 분리파 작가들, 호화로운 고전양식을 비판하며 순수하고 합리적인 건축을 탐구한 근대건축의 선구자 아돌프 로스 등이 이런 에너지를 만들어 낸 주인공들이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선구자들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인물이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다. 그가 설계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빈 시가 운영하는 임대주택임에도 여느 미술관이나 역사적인 건축물 못지않게 많은 사람의 발길을 모으며 빈의 이미지를 풍요롭게 한다. 창조적이고 선구적인 마인드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을 주창해 온 독특한 예술가의 영감과 철학을 그대로 담은 거리의 살아 있는 미술관이다. 그의 회화작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낸 듯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52가구의 주택과 다섯 개의 상업 시설 그리고 어린이 놀이터와 윈터가든 등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진 집합주택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집합 주택과는 너무 다르다.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건축물로 가득한 빈 중심가에서 걸어서 15분가량 떨어진 헤츠가세역 근처에 있는 이곳은 큰길에서 벗어난 약간 후미진 길의 모퉁이에 있지만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띈다. 그만그만한 베이지색의 단조로운 건물들 사이에서 알록달록한 색깔로 칠해진 외벽에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의 옥상, 초록빛 자연으로 뒤덮인 건물이다.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도 “저건 뭐지?”하면서 멈춰 서 올려다보게 될 정도로 독특하다. 어린아이가 찰흙을 주물러서 만든 것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에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원색의 물감을 발라 놓았다. 건물 높이는 3층부터 9층까지 높낮이가 다르고 창문도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다. 동화의 나라에 나오는 왕궁처럼 금빛을 칠한 둥근 탑도 보인다. 창문과 벽면을 타고 식물이 자라고 건물 꼭대기에도 나무들이 푸릇푸릇 자라고 있다. 1980년대 초 빈은 중산층을 위한 주택이 부족해 싼값의 임대주택을 대량 건립하고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적게 들여 세운 대규모 공동주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딜레마에 빠진 시 당국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인간적인 건축을 주장한 미술가·건축가 겸 생태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에게 새로운 공동주택의 설계를 맡겼다. 중산층을 위한 이상적인 주택을 지어 보자는 시 당국의 제안을 받은 훈데르트바서는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꿨을 아름다운 왕궁 같은 집을 구상했다. 강렬한 색채와 자연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이 조화를 이루는 인간적인 집, 자연이 함께 살아 숨쉬는 생태적인 집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각과 회화에서 사용한 개념과 철학을 건축 디자인에 그대로 적용했다. “삶을 담는 건축(집)은 삶의 한 부분으로 어우러져야 하며 이를 위해선 가능한 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는 ‘건축은 네모’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가장 자연에 가까운 나선형을 도입했다. 다름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창틀에 변화무쌍함을 주었다. “우리는 개개인이 모두 다른 모습과 취향을 갖고 있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뤄가는 것처럼 집도 각자 다른 모양이 하나의 집합 주택을 이루는 것이다. 집은 벽으로 이뤄진다고 하지만 나는 집이 창문들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창문은 사람이 각자 다르듯이 다른 모양이어야 한다.” 1986년 2월 완공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의 52가구 중에는 정말로 같은 집이 하나도 없었다. 각 주택의 규모는 30~150㎡로 다양하고 바닥, 벽, 창문, 계단, 손잡이 등까지 각양각색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겉으로 볼 수 있는 창틀만으로도 그 변화무쌍함을 알 수 있었다. 각자 다른 모습의 작은 덩어리들이 모여서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듯 인간적인 건축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중시한 훈데르트바서는 개별적인 녹지공간이 없는 서민용 공동주택에서 가능한 한 자연과 가까이 하도록 배려했다. 집 주변과 옥상은 물론이고 창가, 테라스 등 공간마다 화초들이 자라고 있다. 개인적인 파티나 휴식을 취하도록 윈터가든도 두었다. 훈데르트바서는 그는 건축 콘셉트를 설명하면서 “인간은 세 겹의 피부를 갖고 있다. 하나는 실제 피부, 두 번째는 의복이고 세 번째 피부는 그가 살아가는 거주지다. 세 개의 피부는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고 자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생물체는 살아갈 수 없다”면서 거주자들이 외벽과 내벽 어디든 손이 닿는 곳은 원하는 대로 장식하고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그의 작품을 상설전시하는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빈이 있다. 원래 1892년에 지어진 가구공장을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으로 리모델링해 1991년 오픈한 쿤스트하우스 빈은 그의 철학과 생태운동을 보여 주는 회화작품, 그래픽 아트, 건축, 태피스트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선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쿤스트하우스 빈은 건물 내부까지 들어가 그의 건축 철학과 신념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벽에 알록달록한 타일을 붙여 놓고 창문틀이 제각각인 미술관 건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구불구불한 곡선이다. 안뜰에 있는 테라스 카페의 의자 등받이도 구불구불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나선형이다. 공간마다 나무와 풀이 자라고 곡선으로 된 복도는 바닥까지 울퉁불퉁하게 만들어 놓았다. 화장실의 거울도 자유로운 곡선이다. 전시실의 조명은 어두운 편이다. 작품의 색이 바래지 않도록 최소한의 조도를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작품들은 벽에 바짝 붙어 있지 않고 약간 사이를 두고 걸려 있는데 이는 벽과 그림이 숨을 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처음엔 무척 낯설었지만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지어진 공간에 이내 익숙해졌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그의 믿음대로였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영화 多樂房] ‘버진 스노우’

    [영화 多樂房] ‘버진 스노우’

    1988년 가을 한 가정주부(이브 코너)가 열일곱 살 된 딸(카트리나)과 남편(브룩 코너)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아무런 말도 자취도 없이 축복받은 그녀의 육체만큼이나 우아하게 증발해 버린 엄마를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당차고 솔직한 카트리나는 엄마의 돌연한 부재에 대해 크게 슬퍼하거나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다. 일상생활에서 그녀의 관심은 남자와 성(性)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꿈’을 통해 현현(顯現)되는 카트리나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엄마에 천착한다. 과연 이브는 누구였으며,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엄마의 부재로 인한 딸의 지난하고도 아련한 성장통이 섬세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사라진 가족을 찾는 이야기가 이처럼 자주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데이비드 핀처의 ‘나를 찾아줘’에서는 아내가 잠적해 버리고, 나카시마 데쓰야의 ‘갈증’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찾아 헤매더니, ‘버진 스노우’에서는 딸이 종적을 감춘 엄마에 대해 회상한다. 장르도, 주제나 성격도 다르지만 세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나의 아내와 딸, 그리고 엄마의 문제를 건드린다는 것이다. 한 집에 살면서도 각자의 삶과 감정에만 매몰돼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하는 현대의 피상적 가족 관계에 대한 경고 혹은 묵시(默示)이리라. ‘버진 스노우’의 이브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삶을 안정된 결혼 생활로 보상받고자 했던 그때 그 시절의 평범한 주부 중 하나다. 그러나 갈수록 자신의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닮아 가는 열일곱 살의 카트리나를 보면서 오히려 자괴감과 우울증에 빠져든다. 이러한 엄마의 퇴행은 딸의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미련을 둔 이브는 어린 남자의 싱그러움을 탐하고, 성인식 너머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카트리나는 나이 많은 남자의 야성에 끌린다. 이렇듯 이브와 제대로 교감하지 못했던 카트리나가 엄마를 찾게 되는 공간은 꿈속이다. 설경을 배경으로 되풀이는 카트리나의 꿈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보여 준다. 눈처럼 흰 옷을 입은 카트리나는 ‘버진 스노우’(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에 파묻힌 이브의 변해 가는 모습을 대면하면서 그녀의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한결같이 집안일을 하던 엄마가 왜, 어떻게 그 백색의 어둠 속으로 희미해져 갔는지. 한편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이브는 세계 초강대국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름의 격동과 위기를 겪었던 1970~80년대 미국의 그림자를 상징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보수주의의 귀환과 자본주의의 모순은 여느 평범한 가정에서도 그 민낯을 드러냈던 것이다. 다혈질의 질투심 강한 이브의 남편 브룩, 그와의 결혼을 통해 중산층 주부로서의 삶을 영위했던 이브의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대사처럼 “과거의 유령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법”. 현재의 우리네 가정은 또 어떤 방식으로 역사의 그늘을 비춰 내고 있을까. 1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2년 전엔 빚 없던 가구 10곳 중 3곳 빚 생겼다

    2년 전엔 빚 없던 가구 10곳 중 3곳 빚 생겼다

    지난 2년 새 빚이 하나도 없었던 열 가구 중 세 집에 빚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의 ‘빚 권하는’ 경제정책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소득 사다리’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서민층에서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간 집은 10가구 중 3가구도 안 됐다. 부자(富者)는 계속 부자, 빈자(貧者)는 계속 빈자로 남아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본 가구의 동태적 변화 분석’에 따르면 2012년에 부채가 없었던 가구 중 30%는 그 사이에 빚이 생겼다. 반면 빚을 다 갚아 ‘부채 제로’가 된 가구는 16%에 불과했다. 같은 집(총 1만 6973가구)을 대상으로 2년 전후를 조사했다. 연령별로는 30대 이하 젊은 층의 빚이 많이 늘었다. 2012년에 빚이 없던 39세 이하 가구주 중 41.9%가 빚이 생겼다. 40~59세는 38.9%, 60세 이상은 15.8%로 낮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40세 미만이 주택 구입비, 전세 자금, 생활비 등을 위해 빚을 많이 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빚을 내 집 사고 전셋값을 충당하라며 각종 대출 상품 출시와 규제 완화를 병행한 여파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빚이 많을수록 ‘부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2012년에 1억원 이상의 빚을 졌던 가구 중 75.5%는 올해도 빚이 1억원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5000만~1억원 사이의 빚을 갖고 있던 가구의 21.1%는 빚이 1억원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가난 탈출도 안 됐다. 2011년에 저소득층(소득 하위 20%)이었던 가구 중 75.9%는 지난해에도 저소득층에 머물렀다. 소득이 조금 늘었다고 해도 ‘하위 20~40%’에 진입(18.7%)한 것이어서 중산층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 부자 구간(소득 상위 20%)에 진입한 경우는 0.4%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소득 상층 가구의 71.2%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저소득층으로 추락한 경우는 0.8%였다. 소득 20~40%로 내려간 가구도 2.7%에 그쳤다. 2011년에는 가난하지 않다가(1만 4223가구) 2년 새 빈곤 가구로 떨어진 비율(빈곤 진입률)은 7.4%였다. 빈곤함의 기준은 중위소득(2011년 연소득 2024만원, 지난해 2240만원)의 50% 미만이다. 즉, 2011년에는 연소득이 그래도 1012만원을 넘었으나 지난해 1120만원 밑으로 떨어진 집이 1052가구라는 의미다. 특히 60세 이상의 빈곤 진입률이 15.8%로 40~50대(6.4%)나 30대 이하(5.5%)보다 높아 ‘가난한 노년층’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심각성을 말해줬다. 유병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면서 “정부가 기업에 대해 저소득층 의무고용제를 실시하고, 무작정 나눠 주는 복지보다 어려운 계층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교육, 훈련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亞 신흥국으로 눈을 돌려라

    亞 신흥국으로 눈을 돌려라

    올해 들어서도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90만명(10월 현재)으로 이 가운데 중국인은 260만명,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일본과 동남아 등 다른 나라 관광객 비중은 10% 약간 넘은 30만명에 그쳤다. 이 같은 중국 관광객의 제주 행렬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 제주본부는 4일 제주경제 보고서를 통해 제주 관광의 새로운 수요자로 아시아 신흥국의 중산층을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제주는 외국인 관광객의 중국 편중이 심화돼 외부여건 변화 발생 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중 장기적으로 아시아 신흥시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 신흥국인 인도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은 풍부한 젊은 노동력, 낮은 임금수준, 높은 저축률을 기반으로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 중산층 규모가 확대 중이다. 또 이들 국가의 중산층 성장에 따른 소득향상으로 해외여행이 점차 일반화되고 있고 해외여행비 지출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중·단거리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의 등장 등으로 제주를 포함한 주변국 중심의 역내 해외관광도 활성화되고 있다. 더구나 관광형태도 정보기술(IT) 보급과 이용이 빠르게 늘어나 관광객 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관광정보 획득·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지는가 하면 온라인 여행상품 구매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주본부 관계자는 “중국 일변도의 제주 외국인 관광시장은 취약점이 많다”며 “동남아 신흥국 중산층의 소득수준 향상 등으로 앞으로 해외여행이 늘어나게 되고 제주를 찾는 이들 관광객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중기적으로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제주 여행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그 시점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000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보이는 2020년을 전후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저비용항공사의 신규노선 취항 확대를 통한 동남아 지역의 새로운 관광영역 개척, 쇼핑아웃렛 조성, 제주 고유의 생활양식과 문화 등에 기초한 새로운 관광산업 활성화 등을 주문했다. 김의근 제주 국제대 관광학 교수는 “중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개별 관광을 유도하고 동남아 신흥국 중산층의 구미에 맞는 관광객 유치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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