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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교육부, 서울시교육청, 대구시교육청(중등), 대구시교육청(유·초·특수)

    ■ 교육부 △ 장관비서실장 이윤홍 △ 혁신행정담당관 김정연 △ 운영지원과장 이영찬 △ 교육부 김현주 김홍순 △ 충북대학교 국제교류본부 행정실장 박종필 △ 한국교통대학교 학생과장 배기주 ■ 서울시교육청 ◇ 유치원 원감 인사 <교사에서 원감 승진>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고현주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경아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원감 전직> △ 북부교육지원청 서유현 ◇ 유아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강미정 △ 유아교육과 김민정 △ 유아교육과 김성민 △ 중부교육지원청 김수진 △ 유아교육진흥원 김재순 △ 서부교육지원청 김진옥 △ 남부교육지원청 김희선 △ 유아교육과 도완숙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박신정 △ 동부교육지원청 박해영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손선미 △ 북부교육지원청 이선희 <원감·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 유아교육과 심지은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정윤희 ◇ 초등학교 교장·교감 인사 <교감에서 교장 승진> △ 길동초 김미영 △ 남정초 김세령 △ 세륜초 김송연 △ 망원초 김영택 △ 천일초 김용숙 △ 신봉초 김찬영 △ 남사초 남순영 △ 갈현초 박현숙 △ 오금초 송성심 △ 세곡초 심향순 △ 방학초 윤순종 △ 연신초 이덕희 △ 고명초 장은녕 △ 영일초 장현숙 △ 송화초 정영화 △ 수서초 조성숙 △ 한강초 최인숙 △ 정곡초 한숙경 △ 화일초 현연옥 <공모교장 임용> △ 용강초 김은영 △ 묘곡초 김정주 △ 남부초 마귀숙 △ 석관초 박석구 △ 경수초 박종달 △ 휘봉초 서정석 △ 조원초 석승하 △ 구룡초 소양호 △ 숭미초 우숙경 △ 동신초 이녹범 △ 덕암초 장진혜 △ 용원초 정경찬 △ 난향초 정태성 <공모교장에서 교장 임용> △ 남천초 강신호 △ 문백초 고대석 △ 남산초 김경미 △ 신묵초 김용석 △ 청담초 김은경 △ 녹번초 박용서 △ 이수초 신명숙 △ 성자초 오언석 △ 송파초 이강미 △ 영화초 이옥희 △ 대치초 이정우 △ 태릉초 정용훈 △ 양명초 정혜경 △ 중동초 진순희 <교장 중임·전보·유예·복직> △ 명덕초 김영철 △ 신영초 김인옥 △ 새솔초 김현숙 △ 동의초 변창환 △ 신남초 안경미 △ 봉화초 이은주 △ 면일초 이정미 △ 잠전초 이정심 △ 원효초 정한주 △ 한남초 조혜천 △재동초 박광수 △우신초 이성미 △ 금양초 강경숙 △ 홍파초 민창규 △ 소의초 신미애 △ 영원초 장영숙 △ 창원초 전옥희 <교육전문직원(관급·사급)에서 교장 전직> △ 전농초 김재환 △ 미성초 나용주 △ 구의초 박혜자 △ 광장초 양희두 △ 흥인초 유재준 △ 개봉초 손창호 △ 아현초 심영면 △ 온수초 성광모 △ 사당초 최미숙 △ 면동초 한미라 △ 이태원초 강민경 △ 고척초 김대준 △ 가양초 박성기 △ 금옥초 주윤숙 <교사에서 교감 승진>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강은모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강필종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권영진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권은주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권형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금란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기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미영 △ 북부교육지원청 김병호 △ 서부교육지원청 김보영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복실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김영미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은경 △ 서부교육지원청 김지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희경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남수극 △ 동부교육지원청 남정석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노현숙 △ 북부교육지원청 박순옥 △ 북부교육지원청 배민정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서강배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염동석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윤혜진 △ 동부교육지원청 이방석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상선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임성훈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장동운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정영선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정영신 △ 남부교육지원청 조성근 △ 중부교육지원청 최여미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최영수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최혜경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홍은숙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황은자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영미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유진 △ 남부교육지원청 배명주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안병림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유태호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경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정경식 △ 남부교육지원청 정해운 △ 남부교육지원청 지선영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한광현 △ 북부교육지원청 황정애 <교육부 등 교류(전출)> △ 서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 이승용 ◇ 초등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 △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 박래준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교육장 박은경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서경수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안상숙 △ 학생교육원 원장 이종탁 △ 참여협력담당관 강연실 △ 중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김애경 △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이양순 △ 과학전시관 기획운영부장 서형기 △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장 황혜숙 <교육전문직원(관급) 전보>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민경일 △ 초등교육과 기초학력·방과후학교 장학관 문진철 △ 중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윤영진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교육장 오명환 △ 교육혁신과장 양영식 △ 동부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김선자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박현주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안미화 △ 동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윤순단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이경숙 △ 참여협력담당관 지역사회협력 장학관 이문수 △ 교육혁신과 생태·환경·에너지교육 장학관 정지숙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한만섭 △ 남부교육지원청 교육협력복지과장 홍연호 <교감·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 전직> △ 초등교육과 김태환 △ 감사관 김혜정(반원초) △ 초등교육과 이근오 △ 초등교육과 이정훈 △ 정책·안전기획관 최경숙(화곡초)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경주 △ 남부교육지원청 김천권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해리 △ 서부교육지원청 김혜정(계남초)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모정미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문종필 △ 북부교육지원청 손나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송주신 △ 서부교육지원청 심현정 △ 동부교육지원청 양정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윤석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윤재열 △ 학생교육원 이경임 △ 북부교육지원청 이소리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이준구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정선영 △ 남부교육지원청 지광훈 △ 동부교육지원청 천윤영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최정은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병노 △ 초등교육과 김은경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경아 △ 행정관리담당관 이우범 △ 교육혁신과 강성훈 △ 중등교육과 구태진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경아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민오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김영인 △ 서부교육지원청 서보군 △ 교육연수원 양영아 △ 초등교육과 이선미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인용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정호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이희숙 △ 교육시설안전과 임채운 △ 교육연수원 정은아 △ 중부교육지원청 정효숙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조성주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최경숙(남부)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최은규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홍봉권 △ 남부교육지원청 황영호 ◇ 중등 교장·교감 인사  <공모교장에서 교장> △ 삼성고 강요식 △ 면목중 박진석 △ 창천중 복영숙 △ 대왕중 손원석 △ 양강중 신원식 △ 대청중 안정찬 △ 용산중 이상배 △ 고척중 한중호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 △ 문현중 고원철 △ 신원중 권오채 △ 선린중 권종원 △ 수송중 김기옥 △ 숭인중 김상규 △ 신양중 김환 △ 광장중 나태영 △ 서울산정 마종락 △ 신사중 안재학 △ 연천중 안창원 △ 북서울중 오정근 △ 장위중 유정근 △강남중 이명희(현 잠실중) △ 문창중 이명희(현 신도고) △ 원묵중 이선규 △ 천왕중 이우열 △ 등명중 조연 △ 양동중 지향 △ 문성중 최병섭 △ 경일중 최승연 △ 장승중 한승수 <공모교장> △ 휘봉고 김창수 △ 신도림중 김홍배 △ 삼정중 마윤종 △ 서울도시과학기술고 이만희 △ 상신중 한현근 <교장 중임> △ 청운중 김옥남 △ 노원고 김종학 △ 구암중 류지헌 △ 방산중 심동희 △ 언남고 이수성 △ 구일고 이용식 △ 명일여고 이점순 △ 영신고 장상술 △ 녹천중 정광인 △ 청량고 정성학 <교육전문직원(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 △ 신창중 남정란 △ 종암중 류장경 △ 중암중 박병용 △ 문정고 성철 △ 신서고 송재범 △ 인왕중 신명숙 △ 경기기계공고 신승인 △ 금호여중 여미성 △ 광남고 유대환 △ 온곡중 이주경 △ 여의도고 전병화 △ 하계중 최영규 △ 신연중 한성희 <교장 전보> △ 관악고 강성철 △ 성동글로벌경영고 김우섭 △ 서초고 모상기 △ 성수공고 백수길 △ 수락고 신남수 △ 덕수고 안윤호 △ 영등포여자고 이성숙 △ 방산고 이원실 △ 서일중 정낙영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서중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선희 △ 동부교육지원청 김성숙 △ 북부교육지원청 김성훈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성희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김태봉 △ 개포고 김태원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문영두 △ 금천고 박진화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배현배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신상란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신승현 △ 북부교육지원청 양희관 △ 서부교육지원청 오병옥 △ 서초문예정 오성훈 △ 한강미디어고 윤요림 △ 경기기계공고 이기우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래용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이미영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이민숙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영숙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혜경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홍섭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희성 △ 남부교육지원청 임춘희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장영신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전영희 △ 북부교육지원청 정복선 △ 동부교육지원청 정상호 △동부교육지원청 정성애 △ 북부교육지원청 조종철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최재천 △ 북부교육지원청 최필수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표영수 △ 남부교육지원청 홍숙한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으로 전직> △ 영등포고 김덕진 △ 서부교육지원청 김상헌 △ 중부교육지원청 김소영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김영주 △ 덕수고 김원준 △ 경인고 김은주 △ 신서고 서효현 △ 성동고 엄익주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승은 △ 신도고 이원렬 △ 청담고 임윤희 △ 남부교육지원청 장성택 △ 영등포여고 정나미 △ 중경고 조영주 △ 여의도고 조은경 △ 자양고 조정훈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조흠관 <교감 전보> △ 문현고 김광호 △ 동부교육지원청 김옥란 △ 중부교육지원청 박태율 △ 서울체육고 백형훈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석기호 △ 북부교육지원청 송희숙 △ 용산공고 안상철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오지은 △ 북부교육지원청 유기성 △ 관악고 윤병선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이근한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임창빈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전영복 △ 서울고 전용주 △ 동부교육지원청 정구헌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정명희 △ 성동공고 조자희 △ 동부교육지원청 한희찬 ◇ 중등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육전문직원(관급) 승진> △ 교육연구정보원장 임유원 △ 과학전시관장 이화성 <교육전문직원(관급) 전보·전직>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양신호 △ 중등교육과 고교교육과정 김영선 <교장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으로 전직> △ 중부교육지원청 교육장 권혁미 △ 중등교육과장 고효선 △ 진로직업교육과장 이조복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백미원 △ 교육연구정보원 기획평가부장 장윤선 △ 교육연구정보원 교육과정진로진학부장 이긍연 <교감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으로 전직> △ 중등교육과 중학교교육과정 정순미 △중등교육과 원격교육 김남희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생활교육 정인숙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민주시민교육기획·운영 정진권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평화·세계시민·다문화교육 권미숙 △ 진로직업교육과 진로교육 박재식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교육협력복지과장 윤여천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학교통합지원센터장 김석균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교육협력복지과장 김태진 △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정책연구소 김정숙 <교사에서 교육전문직원(사급)으로 전직>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강창식 △ 중부교육지원청 강희규 △ 교육연구정보원 권남희 △ 남부교육지원청 권유라 △남부교육지원청 김성범 △북부교육지원청 김영남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김영혜 △ 북부교육지원청 김용선 △ 교육연수원 김은미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의진 △ 중등교육과 김지광 △ 서부교육지원청 김진아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김형남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형만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김혜진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박승철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박정희 △ 학생교육원 소인철 △ 교육연구정보원 손태진 △ 성북강북교육지원청 양현경 △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윤정남 △ 북부교육지원청 윤태연 △ 교육연구정보원 윤태영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윤태호 △ 교육연구정보원 이수진 △ 동작관악교육지원청 조성백 △ 서부교육지원청 조은영 △ 학생교육원 조해진 △ 남부교육지원청 최선미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최승규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최승봉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홍은정 △ 교육연수원 황안나 <교육전문직원(사급) 전보·전직> △ 정책·안전기획관 곽호원 △ 교육혁신과 김귀선 △ 남부교육지원청 김세호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김신정 △ 서부교육지원청 김용연 △ 남부교육지원청 김은령 △ 참여협력담당관 김지영(현 성동광진청) △ 남부교육지원청 김현준 △ 중등교육과 김희영 △ 교육혁신과 박은주 △ 교육연구정보원 송지연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송현미 △ 교육연수원 안경화 △ 중등교육과 안수진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오민정 △ 교육혁신과 유다하리 △ 성동광진교육지원청 이상철 △ 중등교육과 이선희 △ 과학전시관 이수정(현 예산담당관)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주석 △ 중등교육과 이치형 △ 예산담당관 이형주 △ 강동송파교육지원청 이호석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전흥수 △ 과학전시관 정득실 △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최태원 △ 감사관 한민 △ 중부교육지원청 한선 △ 중등교육과 한재숙 △ 진로직업교육과 허선영 △ 중등교육과 황경희 △ 체육건강문화예술과 황은숙 <교육부에서 전입> △ 경기상고 교장 이대우 △ 서울국제고 교감 박상화 ◇ 특수학교 교장·교감 인사 <교장 중임·전보> △ 서울정진학교 김현진 △ 서울정문학교 함미애 △ 서울다원학교 허충구 <교육전문직원(사급)에서 교감 전직> △ 서울광진학교 이재섭 <교감 전보> △ 서울경운학교 허진 ◇ 특수 교육전문직원 인사 <교감에서 교육전문직원(관급) 전직> △ 민주시민생활교육과 통합교육 장학관 오승근 ■ 대구시교육청(중등) ◇ 교장 [승진] ▷ 교감(공모교장)에서 교장 △ 왕선중 강태봉 △ 운암중 김성열 △ 동평중 이삼식 △ 학남중 강애남 △ 사수중 김미리 △ 신당중 신향숙 △ 달성중 권갑순 △ 서재중 이정혜 [중임] △ 경일중 박준용 △ 관천중 장병재 △ 경혜여중 안영희 △ 논공중 임이숙 [전보] △ 와룡고 이상훈 △ 성산고 최정화 △ 안심중 임상훈 △ 신아중 김성호 △ 지산중 손애향 △ 범물중 이근호 △ 동도중 최남길 △ 신기중 오명희 △ 제일중 박해숙 △ 경운중 박은행 △ 산격중 김원식 △ 구암중 박경용 △ 용산중 유지홍 △ 성곡중 신종열 [공모] △ 서부고 김학근 △ 경북기계공고 김종구 △ 대명중 문희정 [전직] ▷ 장학관(교육연구관)에서 교장 △ 경대사대부중 윤서화 △ 관음중 이근식 ◇ 교감 [승진] △ 대곡고 김명옥 △ 서부공고 강철현 △ 황금중 김선영 △ 동도중 허혜숙 △ 학남중 김민자 △ 성서중 김정주 △ 월배중 박세옥 △ 대곡중 이혜경 △ 유가중 백찬 △ 구지중 서혜련 [전보] △ 포산고 박정미 △ 덕화중 김영화 △ 대진중 김만환 [전직] ▷ 교육연구관에서 교감 △ 함지고 김학수 ▷ 장학사에서 교감 △ 도원고 김원교 △ 대진고 정현욱 △ 호산고 이용호 △ 경일중 전우경 △ 와룡중 강희관 ◇ 교육전문직 [승진] ▷ 시교육청 과장에서 교육장 △ 달성교육지원청 교육장 조성철 ▷ 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관 △ 낙동강수련원 운영부장 최병도 [전보] ▷ 장학관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김동호 ▷ 장학사(교육연구사)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정은주 △ 시교육청 체육보건과 차진이 △ 시교육청 생활문화과 문미양 △ 동부교육지원청 배중수 △ 동부교육지원청 이현아 △ 해양수련원 이상석 △ 낙동강수련원 송성민 △ 교육연수원 김선혜 [전직] ▷ 공모교장에서 장학관 △ 서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 이상현 ▷ 교감에서 장학관(교육연구관) △ 시교육청 융합인재과 유호선 △ 서부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장 박일환 △ 교육박물관 교육학예부장 신황규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시교육청 중등교육과 황수진 △ 학생문화센터 이세헌 △ 교육부 교원정책과 이미영 △ 중앙교육연수원 교원능력개발과 손영태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사(장학사) △ 시교육청 미래교육과 조영미 △ 시교육청 행정안전과 류형석 △ 서부교육지원청 권영륜 △ 서부교육지원청 김기선 △ 달성교육지원청 박규서 △ 창의융합교육원 박세진 △ 미래교육연구원 김윤희 △ 미래교육연구원 이태수 △ 시교육청 미래교육과 최정아 △ 시교육청 생활문화과 최덕민 △ 서부교육지원청 양치구 ■ 대구시교육청(유·초·특수) ◇ 교장(원장) [승진] △ 구지세현유 황은숙 △ 옥빛유 권정희 △ 남양학교 장경희 △ 시지초 김미향 △ 수창초 오세영 △ 송정초 이상기 △ 북비산초 최송이 △ 내당초 라순자 △ 평리초 박종두 △ 월성초 배연옥 △ 한샘초 서영삼 △ 성서초 정종만 △ 천내초 최성식 [중임] △ 범어초 김광순 △ 방촌초 김대희 △ 이곡초 김주석 △ 금계초 김태동 △ 한솔초 오순화 △ 동일초 이금녀 △ 남부초 이임락 △ 감삼초 정화련 △ 용지초 천민해 △ 도남초 황미자 [전보] △ 숙천유 금후자 △ 세명학교 이숙희 △ 하빈초 권세황 △ 동문초 권오수 △ 대곡초 권옥희 △ 대덕초 김재희 △ 지봉초 박숙희 △ 교동초 반해정 △ 송현초 유선향 △ 유천초 유재향 △ 삼덕초 이옥희 △ 금포초 이태훈 △ 용산초 정상영 △ 동성초 정은향 △ 동대구초 채영기 [전직] ▷ 장학관에서 교장 △ 용계초 박영애 △ 관천초 황정문 [공모] △ 논공초 곽이섭 [전출] △ 대구교대부설초 김영호 ◇ 교감(원감) [승진] △ 옥빛유 차금주 △ 범일초 박재희 △ 포산초 이상문 △ 현풍초 이상우 △ 호산초 차순미 △ 사수초 최금희 [전보] △ 동대구초 병설유 박정숙 △ 신천가온유 양정화 △ 숙천유 권옥희 △ 남양학교 강대식 △성보학교 배숙자 △ 반야월초 서금원 △ 범물초 김월연 △ 청림초 이명호 △ 대서초 김준석 △ 경진초 최정원 △ 강동초 손병철 [전직]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감(원감) △ 비슬유 안영희 △ 서동유 김경아 △ 세명학교 추대엽 △ 동호초 변부경 ◇ 교육전문직 [승진] △ 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박종환 [전보] ▷ 장학관 △ 시교육청 초등교육과장 정병우 △ 서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이옥정 △ 남부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장 최규열 ▷ 장학사 △ 시교육청 유아특수교육과 조현정 △ 시교육청 초등교육과 신민식 △ 시교육청 체육보건과 최재호 △ 시교육청 기획조정과 강혜숙 △ 서부교육지원청 장용석 △ 남부교육지원청 오영재 △ 남부교육지원청 진해영 [전직] ▷ 교장에서 장학관 △ 시교육청 생활문화과장 이점형 ▷ 교육연구관에서 장학관 △ 달성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박재의 ▷ 교감에서 교육연구관 △ 팔공산수련원 운영부장 김택호 ▷ 장학사(교육연구사)에서 교육연구사(장학사) △ 달성교육지원청 도선미 △ 미래교육연구원 강세정 △ 서부교육지원청 김현지 △ 남부교육지원청 최윤정 ▷ 교사에서 장학사(교육연구사) △ 유아교육진흥원 조화영 △ 교육연수원 김애경 △ 달성교육지원청 홍선미 △ 교육연수원 나현남
  • “레바논 고위층 질산암모늄 위험성 알고도 방치… 6년간 경고 묵살”

    “레바논 고위층 질산암모늄 위험성 알고도 방치… 6년간 경고 묵살”

    사망자 135명… 항구직원 가택연금 요청악취로 화학물질 위험 알고도 조치 안 해정치인 무능·관료사회 부패에 비난 고조‘무기 밀수 통로화’ 헤즈볼라 연관 가능성도레바논 정부가 5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의 항구에서 전날 발생한 폭발 대참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질산암모늄의 부실 관리를 규명하는 조사에 착수했다. 6일 오후 현재 사망자는 135명, 부상자는 5000여명으로 늘었으며, 30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을 도우려는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졌다. 피해 규모가 150억 달러(약 17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마날 압달 사마드 레바논 공보장관은 5일 “군 지도부에 질산암모늄 저장 업무에 관여한 항구 직원 전원의 가택연금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강력한 인화 물질이 인구밀집지역 바로 옆 항구의 낡아 빠진 창고에 6년이나 보관돼 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뉴욕타임스 등은 현지 관료들의 구조적 부패와 무능을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레바논 고위 관료들이 이미 6년 전부터 질산암모늄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알자지라는 인터넷에 공개된 서류를 근거로 “베이루트 시민들은 몰랐지만, 고위 관료들은 질산암모늄 2750t이 항구 12번 창고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과 위험성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AFP는 “지난해 항구 주변 악취로 인해 보안당국이 창고 속 ‘위험한 화학물질’을 알아냈지만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도 했다. 질산암모늄의 출처는 몰도바 국적 화물선으로 지목됐다. 이 선박은 2013년 9월 모잠비크로 향하던 중 베이루트에 정박했다가 배 소유주 관련 분쟁으로 억류되며 질산암모늄이 하역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14년부터 현지 세관이 법원에 최소 6차례 공문을 보내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묵살됐다는 것이다. 미 조지타운대 파이살 이타니 교수는 “레바논 관료 사회에 부패 및 책임 떠넘기기 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현지 정치인들은 무능과 공익 경멸로 정의되는 계급”이라고 말했다. 현지 민심은 분노로 들끓고 있다. 올 들어 80%나 평가절하된 파운드화로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책임자를) 교수형에 처하자”는 아랍어 해시태그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뜨리고 있다.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항구를 장악, 이스라엘 공격용 무기 밀반입의 통로로 삼고 있는 점도 사고와 연관됐을 수 있다. 미국 우주기술업체 ‘맥사테크놀로지스’의 위성사진에 따르면 폭발 충격으로 인해 부두의 건물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창고 앞에는 축구장보다 큰 지름 124m짜리 분화구가 생겼다. 이재민들은 임시 개방된 수도원, 미션스쿨에서 밤을 지새우거나 야외에서 지내고, 기부된 생수와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이동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소개 작업을 돕는 가운데 세계 각국에서 보낸 의료진과 수색팀, 구호물자가 속속 도착했다. 유럽연합은 27개 회원국의 소방관 100여명을 비롯해 구호인력·장비를 급파했다. 네덜란드, 체코, 그리스, 폴란드 등도 의료진, 경찰 등 지원인력을 제공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레바논 보건부 장관 요청에 따라 의료품을 공수했고, 세계은행(WB)은 성명에서 “폭발 사고 피해 규모를 평가하고 재건·복구를 위한 공공·민간자금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세계식량계획(WFP)·적십자사를 통해 130만 달러 상당 지원을 약속했다. 레바논을 한때 식민지로 뒀던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6일 레바논을 직접 방문해 하산 디아브 총리 등과 지원책을 논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일 밤늦게 레바논을 위한 기도를 집전했다. 적대국들도 인도적 지원을 앞세웠다. 레바논과 적국 관계인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는 시청사 외벽을 ‘백향목’ 문양의 레바논 국기로 점등하며 인류애를 강조했다. 헤즈볼라의 막후 지원 세력으로 알려진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 역시 “의료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구호활동을 명분으로 중동 지역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서방 세계나 갈등 국가들의 속내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베를린 인싸 되기? 베지테리언으로 살아 봐

    베를린 인싸 되기? 베지테리언으로 살아 봐

    獨인구 10%인 800만명이 비건채식주의자 위한 레스토랑 많아밀로 만든 고기, 두유로 만든 햄맛과 멋 다 잡은 코스 요리까지 육식파도 고기가 그립지 않더라나는 고기파다. 고기는 안 가리고 다 잘 먹는다. 삼겹살을 좋아하고, 엄마가 만들어 주는 떡갈비는 일주일도 넘게 먹을 수 있다. 서울 우래옥에서 먹는 불고기를 평양냉면만큼이나 사랑하고, 아무렇게나 굽는 한우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바싹 익힌 한우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런 내가 베지테리언과 사귀게 되다니. 나를 ‘과격한 육식주의자’라고 놀리던 친구는 말했다. “고기 못 먹어서 어떻게 만나. 너 고기 못 먹으면 히스테리 장난 아니잖아. 아무래도 오래 못 가겠는데?” 나도 이 연애가 엄청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잘 지낸다. 아직까진. 베를린에선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비건(채식주의자) 레스토랑도 자주 간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비건 레스토랑은 먼저 가자고 조를 정도다. 이유는? 맛있어서다.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눈이 동그래질 만큼 맛있다. 남자친구는 치즈와 우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인데, 우리는 채식보다 더 엄격한 기준의 비건, 즉 유제품과 달걀을 재료로 쓰지 않는 레스토랑에도 자주 간다.단골로 가는 비건 레스토랑은 집에서 멀지 않은 베트남 음식점 ‘안 다오’다. 그곳에서 세이탄(Seitan·밀로 만든 식물성 고기)이 들어간 쌀국수와 비건 햄과 두부, 야채들이 들어간 카레우동과 밥을 즐겨 먹는다. 돌솥 같은 그릇에 국물이 자작하게 담긴 ‘카포’는 콩으로 만든 새우와 그린 바나나, 각종 야채, 견과류 등이 들어 있는 음식이다. 유기농 콩으로 만든 요구르트와 두유로 만든 조림 국물은 우리네 생선조림처럼 혀에 착 붙는다. 밀로 만든 고기는 진짜 고기처럼 쫄깃쫄깃하고 두유로 만든 햄도 굳이 말하지 않으면 일반 햄과 별로 다르지 않은 맛이다. 베를린에서 즐겨 가는 단골집이 비건 음식점이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일이었다.●베를린 ‘주류문화’가 된 채식 남자친구가 아니었다면 베를린에서 이렇게 채식이나 비건 레스토랑을 자주 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이고 나니 채식의 문턱이 그 어느 도시보다 매우 낮다는 걸 실감한다. 실제로 베를린은 ‘유럽 비건의 수도’로 손꼽힌다. 동물 복지와 환경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소수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채식을 일상화하고 있다. 독일 전체 인구 중에는 10% 해당하는 800여만명이 채식 인구다. 그 중심에 베를린이 있다. 베를린에서 채식은 이미 ‘주류문화’가 됐다. 진짜 베를리너가 되려면 베지테리언이 돼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당신도 베를린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혹은 그녀가 베지테리언일 확률은 반 이상이라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장담한다. 그렇다면 베를린은 어떻게 채식과 비건의 수도가 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의 시점에서 얘기하자면, 베를린에는 채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이 정말 많다. 채식주의자와 비건을 위한 전문 음식점도 많지만 일반 레스토랑도 ‘채식 메뉴’를 잘 갖추고 있다. 육식주의자인 나와 채식주의자인 남자친구가 어느 레스토랑에서나 서로 먹고 싶은 걸 사이 좋게 고르고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베를린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이 고기가 안 들어간 메뉴를 찾아 멀리 발품을 팔거나 힘들게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동네 음식점 가듯이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전 세계 비건을 위한 식당 가이드 앱 ‘해피카우’는 이런 ‘비건 프렌들리’ 식당이 베를린에 600여군데 있다고 밝혔다. 채식주의자와 비건을 위한 전문 식당은 200여군데에 달한다.●팔레스타인·이스라엘인 함께 운영하는 ‘카난’ 채식 및 비건 전문 음식점 중에는 지향하는 콘셉트나 의도가 단연 돋보이는 곳이 많다. 그중 한 곳은 채식 전문 식당인 ‘카난’(Kanaan)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의 그 ‘가나안’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건 두 오너 때문이다.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적의 두 사람이 함께 문을 열어 화제가 됐다. 이스라엘인 오즈 벤 데이비드와 팔레스타인인 잘릴 다빗이 음식을 통해 평화와 우정의 메시지를 전하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후무스와 팔라펠을 메인 메뉴로 두고 있다. 후무스는 종류만 7가지에 달한다. 우유와 달걀을 이용한 채식 메뉴가 대부분이고 우유 대신 두유로 만든 요구르트 소스의 후무스 버거 등 비건 메뉴도 잘 갖추고 있다. 이곳이 특별한 건 또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난민과 성 소수자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도 큰 이슈가 되는 난민과 인종차별, 성차별적 문제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적극 해결하고 있다. 또 팔레스타인에 필요한 식재료 공장을 만들어 어려움에 처한 현지인들을 지속적으로 돕는다. 음식도 맛있다. 강황이 들어간 매콤한 버섯 후무스와 팔라펠 플레이트는 둘이 먹어도 충분할 만큼 양도 많고 맛있다. ●쓰레기 제로 추구하는 ‘프레아 레스토랑’ 독일에선 명품이나 비싼 옷 입고 티 내는 걸 촌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부자들도 잘사는 티를 잘 안 낸다. 베를린 거리에는 그냥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뿐이다. 내가 베를린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채식을 하는 건 매우 고급스럽고 바람직한 습관이라 여긴다. 육류를 먹지 않음으로써 동물들이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사는 걸 막을 수 있고, 지구 환경을 보호할 수 있으며, 자신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채식만큼 쉽고 적합한 것이 없다고들 생각한다. “왜 베지테리언이 됐어?” 남자친구를 만난 첫날 물어봤던 것 같다. “동물을 비윤리적으로 사육하고 고기를 얻는 공장식 육류 산업에 반대하기 때문이야. 내가 쓰는 돈이 그곳으로 가는 게 싫어. 고기를 안 먹은 건 열네 살 때부터인데, 그렇다고 고기를 아예 안 먹는 건 아니야. 아이들이 먹다 남긴 치킨이나 고기는 일부러 먹기도 해. 버려지려고 죽은 애들이 아니니까.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사냥꾼에게 잡힌 고기도 맛은 봐. 걔네는 행복하게 살다가 간 거잖아.” 먹다 남긴 고기를 가끔 그가 먹을 때, 즐거워서 먹는 게 아니란 건 이미 표정에서 알겠다. 도저히 못 먹겠는 건 그도 남긴다. 하지만 원래 음식을 안 남기고 먹는 스타일이라 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구나 그게 고기라면 남이 주문한 음식이라도 버리지 않으려고 대신 먹는다. 나도 가급적이면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베를린의 레스토랑은 음식의 양이 기본적으로 많아서 고기 메뉴를 시키면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다 못 먹을 것 같으면 그냥 채식 메뉴를 시킬 때도 있다. 남기지 않는 것,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 또한 베를린에서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쓰레기를 줄이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제로’로 만들자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확산하는 이유다.미테 한복판에 있는 ‘프레아’(FREA)는 ‘세계 최초의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식재료는 가까운 산지에서 포장되지 않은 상태로 공급받고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테이블에는 일회용 냅킨 대신 부드러운 면 손수건을 놓는 식이다. 음식은 모두 채식과 비건 메뉴로 돼 있으며 일체의 동물성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헤이즐넛을 이용해 만드는 커피와 쌀로 만든 우유, 직접 만드는 사워도 빵과 파스타 등 더 건강하고 질 좋은 재료를 만드는 데 열심이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이 기본 취지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쓰레기는 레스토랑 내에 설치된 음식물 처리 기계를 통해 퇴비로 만든다.베를린의 힙스터들이 모이는 ‘프레아’에서 머리를 앙증맞게 옆으로 묶은 남자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음식을 고른다. 건강식 샐러드와 홈메이드 파스타 혹은 구운 감자가 메인으로 나오는 점심코스는 16유로. 적당한 가격에 폼 내기도 좋아서 서울에서 친구가 오면 당장 데려가고 싶은데, 여행은 언제나 가능해질까. 채식 어렵다고? 베를린 마트 ‘비건 패티’ 즐겨 봐●비건 음식이 파인다이닝을 만났을 때 ‘러키 리크’ 남자친구를 만난 지 1년, 베를린에서 산 지 7개월이 된 기념으로 모처럼 근사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고른 ‘러키 리크’ 레스토랑은 비건 음식을 파인다이닝 콘셉트로 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베를린에서 꼭 가 봐야 할 비건 레스토랑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베를린에서 더 많은 비건 음식과 레스토랑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터라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저녁에만 열고 코스요리로만 내기 때문에 아무 때나 가긴 버거웠다.2011년에 오픈한 ‘러키 리크’는 두부나 콩을 이용한 단순한 비건 음식이 아니라 실제 소고기처럼 느껴지는 스테이크, 일반 치즈와 전혀 분간이 안 가는 비건 치즈 등을 독창적으로 선보이며 입소문을 탔다. 비트를 구워 만든 스테이크가 어떻게 진짜 스테이크 같은 맛을 내는지 너무 궁금했다.‘러키 리크’의 메뉴는 딱 한 가지. 샐러드, 수프, 두 가지의 메인 음식, 디저트로 구성된 메뉴에서 3코스, 4코스, 5코스로 고를 수 있다. 우리가 간 날 메뉴에는 스테이크가 없었다. 대신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슈니첼(독일식 돈가스)과 여러 가지 곡물과 야채로 바삭하게 만든 슈니첼이 메인으로 있었다. 아스파라거스 슈니첼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뻔한’ 맛이 났지만, 곡물 슈니첼은 바삭바삭한 식감이 진짜 고기를 씹는 것 같았다. 아몬드로 만든 리코타 치즈도 진짜 치즈 같고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우유 없이 만들었다는 걸 알아채기 어려웠다. 소문대로 러키 리크는 비건 음식을 먹을 때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2% 부족한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만족스러웠다.●하나의 유행, 일상의 방식으로 통하는 ‘채식’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겐 환경과 동물 보호를 위한 설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채식을 즐길 수 있으려면 고기 맛이 ‘별로’ 그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능동적인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다. 고기 굽는 소리나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이는 사람들이 신념만 가지고 채식을 하기엔 너무 고행이 따를 테니까. 유럽의 비건 마켓 ‘베간츠’의 창업자인 얀 브레딕도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비건 푸드가 비(非)비건 음식보다 맛있지 않으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는데, 그 말에 무척 공감이 갔다. 고기가 그립지 않은 비건 음식, 과연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매번 햄버거를 사 먹는 게 지겨워서 집에서 만들어 먹은 적이 있다. 패티는 슈퍼마켓 ‘레베’에서 샀다. 남자친구는 비건 버거로 유명한 ‘비욘드 버거’ 패티를, 나는 소고기 패티를 샀다. 베지 버거는 가히 패티계의 혁명이라 느껴질 맛이었다. 일반 고기와 차이점을 거의 느낄 수 없고, 식감은 더 부드럽고 가벼웠다. 이 놀라운 맛은 이미 빌 게이츠도 투자할 만큼 획기적인 제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이 ‘식물성 고기’의 한 가지 단점이라면, 일반 고기 패티가 2유로대인데 이 비건 버거는 5유로가 넘는다는 것. 진짜 고기이고 가격까지 저렴한데도 더 비싼 비건 패티를 사 먹고 싶은 건 맛 경쟁력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베를린에 와서 고기가 들어간 메뉴를 시키고 남기는 반복을 줄였다. 고기를 끊겠다는 생각을 아직 해 본 적은 없지만, 고기를 먹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비건 음식을 먹는 것이 힘들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채식은 이제 그냥 하나의 유행, 일상의 방식으로 통한다. 그중 비건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져서 음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비건 패션과 뷰티 아이템, 비건 투어 프로그램 등 라이프 스타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뷰티 제품은 베를린에서 음식만큼 관심이 높은데, 이곳의 흔한 드럭 스토어인 데엠과 로스만에만 가도 동물성 원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비건 뷰티 제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대형 숍들은 식물성 100%의 자체 비건 브랜드 제품도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애용한다. 베를린에서 산 뒤에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도 거의 반 이상 줄었다. 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비건 음식과 채식에 맛을 들이고 있는 요즘, 나는 조금씩 진짜 베를리너가 돼 가는 기분이 든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배신한 中 더 조인다” “모욕 준 美 받아친다”

    “배신한 中 더 조인다” “모욕 준 美 받아친다”

    지금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속에 있다’는 비유가 적절해 보인다. 두 나라가 수교한 뒤로 최악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국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떠올리게 한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물러나면 양국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한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중국은 어떤 나라일까.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에 미국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미중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봤다.■“中 어떡하나”… 세계 최강대국 美의 속내 1971년 7월 9일 미국의 외교 전략가로 유명한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두 나라의 데탕트(긴장 완화)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일주일 뒤인 15일 리처드 닉슨(1913~1994) 미 대통령은 방송을 통해 키신저의 방중을 알리며 “중국 정부가 자신을 초청해 이를 수락했다”고 알렸다. 닉슨은 “7억 5000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여 없이 세계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2020년. 이제 수도 워싱턴에서 닉슨 행정부처럼 중국에 우호적 입장을 가진 이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미중 수교는 소련에 대한 견제의 성격이 강했다. 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1893~1976)은 1969년 중소 국경분쟁 당시 소련의 군사력을 체감하고 두려워했다. 닉슨 대통령도 자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소련을 봉쇄해야겠다고 느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공감대를 통해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가 구현됐다.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도 양국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자 애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만 워싱턴이 미래를 정확히 내다볼 수 있었다면 굳이 베이징에 손을 내밀 필요가 없었다. 소련은 내부 모순 때문에 스스로 무너질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련의 붕괴 뒤로 사회주의 국가의 맹주를 자처했다. 미국의 배려로 WTO에 가입해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우뚝 섰음에도 미국 주도 국제질서인 ‘팍스 아메리카나’를 거부하고 자국 중심의 ‘팍스 시니카’를 추구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아예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베이징에 대한 미국의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워싱턴은 공화당·민주당에 관계없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 집중하던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을 아시아로 옮겨 중국을 견제하려는 ‘피봇 투 아시아’(아시아 중시)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외교 정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력충돌을 불사하는 수준의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89년 베이징에서 톈안먼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주도하며 대량살상 책임을 물었다. 중국은 톈안먼 관련자 일부를 석방하며 국제사회에 고개를 숙였다. 이달 1일부터 베이징은 서구 세계의 반대에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을 강행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서 톈안먼 사태 당시 수뇌부가 보여준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다.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두 나라가 손을 잡은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워싱턴에는 ‘미국이 바란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인식이 퍼졌다”면서 “워싱턴의 현실주의는 베이징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한다”고 진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美 어떡하나”… 세계 2위 경제대국 中의 속내 “인류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일어섰다. 다시는 (외세에) 모욕받지 않을 것이다.” 신중국(사회주의 중국)을 세운 마오쩌둥 공산당 주석이 1949년 10월 1일 건국행사에서 이같이 선언한 지 71년이 지났다. 19세기부터 서구 열강의 혹독한 지배를 받은 중국은 이제 마오의 바람대로 누구도 모욕할 수 없는 대국으로 거듭났다. 미국 한 나라만 빼고 말이다. 영국 경제경영연구소(CEBR)는 “2033년쯤 중국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대해 일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그간 미국은 자국 GDP의 40%에 근접하는 나라가 나타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너뜨렸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70~1990년대에 구소련과 일본, 독일 등이 미국의 군사 압박과 환율 재평가 요구를 버티지 못하고 패권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중국은 예외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재임하던 1995년만 해도 중국의 GDP(7360억 달러)는 미국(7조 6400억 달러)의 10%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던 2005년에는 20%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반기인 2015년에는 60%까지 뛰어올랐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 ‘중국 죽이기’가 시작됐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국가 부도 위기를 수습하느라 중국을 견제할 여력이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뒤늦게 중국을 압박했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쳤다. 올해 중국은 미국의 72%까지 추격할 전망이다.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시진핑 국가주석 등 베이징 수뇌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개시하고 홍콩보안법 시행을 명분 삼아 여러 보복조치를 쏟아내는 행태를 ‘피할 수 없는 역사적 대결’로 이해한다. 미국산 농산물을 더 많이 사주거나 홍콩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제질서 주도권인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1904~1997)이 제시한 ‘두 개의 100년’ 목표가 있다.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사회’(중진국)를 실현하고 신중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다퉁사회’(선진국)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베이징 수뇌부가 전임 지도부의 유훈을 지키려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해선 안 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중국 때리기’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타협이 불가능한 대만 독립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모습은 분명 ‘외세의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얻어맞더라도 모욕에 고개를 숙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트럼프도 北도 文의 판문점 동행 거절했는데” 볼턴 회고록 정상회담 막후 2

    “트럼프도 北도 文의 판문점 동행 거절했는데” 볼턴 회고록 정상회담 막후 2

    볼턴 회고록 가운데 한반도 관련 정상회담 발췌본 요약이다. 연합뉴스의 22일 새벽 보도 일곱 건을 둘로 나눠 싣는데 그 두 번째다. 아래 첫 번째 기사 가운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또는 선상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는 대목은 서울신문이 가장 먼저 보도한 내용이기도 하다.문 대통령 끈질기게 이야기해 동행 관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11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또는 선상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제안하며 합류 의사를 밝혔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트윗’으로 시작된 지난해 6월말 ‘판문점 회동’과 관련, 미국과 북한 모두 북미 양자간 정상회동을 원했으나 문 대통령이 ‘동행’을 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귀결된 데 대해 자신이 ‘나쁜 합의’(배드 딜)에 서명하기보다는 걸어 나온 데 대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판문점 또는 해군 군함 위에서의 만남을 제안하며 극적인 결과를 이끌 수 있는 시각, 장소, 형식에 대한 극적인 접근법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세기의 회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극적인 무언가를 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독백’을 끊으며 문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평가한다면서도 다음 정상회담에서는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말을 끊은 것은 다행이었다며 잠이 들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판문점 회동’이 열린 지난해 6월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이 문 대통령의 동행을 여러 차례에 걸쳐 거절했지만 문 대통령이 동행 입장을 계속 고수해 관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과 달리 김 위원장이 자신에게 만나자고 요청했다고 설명하면서 문 대통령도 같이 가서 만나면 보기에 매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대화에 끼어들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의 형식을 포함,북한 측과의 조율 내용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만남을 갖는 것이지만, 김 위원장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그곳에 없다면 적절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김 위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를 넘겨준 뒤 떠나겠다는 설명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끼어들어 지난 밤 문 대통령의 견해를 제안했지만, 북한이 거절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참석을 바라지만 북한의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간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대통령들은 많았지만,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서 ‘이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경호처가 일정을 조율하고 있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재차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고 있으며 김 위원장이 자신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면서 문 대통령에게 자신을 DMZ로 배웅한 뒤 판문점 회동 후 오산 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DMZ내 오울렛초소까지 동행하겠다면서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는 그때 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원하는 어떠한 것도 괜찮다며 DMZ OP에 함께 갈 수 있다고 했다. 4 27 판문점 회담 때 북한에 CVID 강하게 압박 한국이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그해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동의하도록 압박했다. 같은 달 12일 정의용 국가안보 실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미일 균열을 유도하는 것을 피하도록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피하라고 촉구했다. 정 실장은 같은 달 24일 남북공동선언은 2쪽짜리일 것이라고 알려왔고, 비핵화에 관해 매우 구체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해 안심이 됐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튿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해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전했지만 난 북한의 또다른 ‘가짜 양보’라고 생각했다. 문 대통령은 또 북미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에서 남북미 3자 회담 직후 북미 정상이 회담할 것을 주장했지만 난 문 대통령의 ‘사진찍기용’이라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넋이 빠진 것처럼 보였고 심지어 김 위원장과 회담을 5월 중순으로 제안하기까지 했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1년 내 비핵화를 물었고, ‘그’는 동의했다고 적었다. 이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칭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 한국 언론에 알려달라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동에서 전화 통화를 들었는데 심장마비가 온다는 농담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멸을 표현했고 나 역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정 실장은 5월 4일 세 번째로 워싱턴을 방문해 판문점 회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했다. 판문점 회동에서 한국은 김 위원장에게 ‘CVID’에 동의하도록 밀어붙였고, 김 위원장은 이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빅 딜’에 이르면 구체적인 것은 실무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비핵화를 완수한 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정 실장을 면담한 4월 12일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도 만났는데, 한국의 생각과 180도 달랐고 ‘행동대 행동’ 전략에 반대하는 내 생각과 매우 비슷했다. 야치는 북미정상회담 이후 즉각적으로 시작해 길어도 2년이 걸리는 비핵화를 원했고, 내가 ‘리비아 모델’에 근거해 6~9개월 이내에 해체돼야 한다고 촉구하자 야치는 미소를 지었다. 같은 달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며 6~9개월 내 해체, 생화학무기도 합의문에 포함 등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야치는 5월 4일 회동 때도 내게 북한의 ‘행동 대 행동’ 접근법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 “왜 한국에 미군 있느냐, 얼간이 되는 것 끝낼 것”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위 외교안보 참모들에게 왜 한반도에 대규모 주한미군이 주둔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싱가포르 첫 북미정상회담 이후인 지난 2018년 7월 6∼7일(한국시간) 이뤄진 3차 방북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두 차례 통화에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반면 폼페이오 장관은 대단치 않게 여겼다. 중국의 역할이 주시할 가치가 있긴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평가가 더 정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전쟁 연습’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왜 한국전에 나가 싸웠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여전히 한반도에 그토록 많은 병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우리는 얼간이(chumps)가 되는 것을 끝낼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다시 북한 문제로 화제를 돌려 “이는 시간 낭비”라며 “그들은 기본적으로 비핵화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폼페이오 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사인이 담긴 엘튼 존의 ‘로켓맨’ 시디를 선물로 전달했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이 당시 통화에서 북한이 비핵화 전에 체제 보장을 원하며 검증은 비핵화 후에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 구축은 허튼 소리”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에 대해 ‘제재를 약화하려는 전통적인 지연 전술’이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50억 달러 못 받아내면 미군 한국에서 빼와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에 관한 회의를 하던 중 한국에서 진행 중이던 한미연합훈련을 가리키면서 “그 워게임은 큰 실수”라며 “우리가 (한국의 미군기지 지원으로) 50억 달러 합의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거기에서 나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훈련이 모의연습이고 자신도 훈련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정신병자와 평화를 이뤄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에서 무역으로 380억 달러를 잃고 있다. 거기에서 나오자”라고 강조했고, 당시 한미 훈련에 대해서도 “이틀 안에 끝내라. 하루도 연장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에 앞서 볼턴 전 보좌관이 같은해 7월 방위비 분담금 협상차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뒤 워싱턴DC로 돌아와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80억 달러(일본)와 50억 달러(한국)를 각각 얻어내는 방식은 모든 미군을 철수한다고 위협하는 것”이라고 지시했다. 이어 “그것이 당신을 매우 강한 협상 지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추가 보고를 받은 후 “이것은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면서 “존(볼턴 전 보좌관)이 올해 10억 달러를 가져왔는데 미사일 때문에 50억 달러를 얻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주둔국들이 기지 비용에 ‘플러스 50%’를 더 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갖고 있었다. 난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한 액수라고 판단하는 만큼 지불하지 않는 나라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그의 궁극적인 위협이 한국에 진짜가 되는 일을 두려워했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려고도 했다. 또 미군 주둔국의 비용 분담에 대해 “그 액수와 방식은 다양했고 실제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는 없었다”면서 “미 국방부의 창의적인 회계 기술에 따라 거의 모든 비용 수치가 높든, 낮든 정당화될 수 있었다”. 정리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의 경찰’ 미국/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세계의 경찰’ 미국/박록삼 논설위원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침략했다. 미군 12만명이 ‘충격과 공포’ 전술을 사용했다. 침략의 가장 큰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다. 하지만 유엔사찰단이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미군 전사자 2000여명, 최대 10만명의 이라크 사망자를 쏟아낸 불필요한 전쟁이었다. 2011년 철군 전까지 이라크 전후 복구사업에 600억 달러(약 72조 1800억원)가 투입됐지만, 미국의 이라크 재건사업 특별감사팀이 조사해 보니 친미적인 이라크 시아파 정치가들에게 흘러갔을 뿐이다. 중동평화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6일 전쟁’으로 부르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상과 달리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 아랍연합군을 속전속결로 격파한 성과 뒤에도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있었다. 1989년 2만 5000명의 미군을 동원해 파나마를 침공한 뒤 노리에가를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했다. 재미있는 점은 노리에가가 1970년대부터 CIA의 돈을 받으며 미국 하수인 노릇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무기 제공,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등 297억 달러에 달할 만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온 인물이었다. 미국은 제3세계 국가의 지도자를 지원했더라도, 쓰임이 다하거나 입맛대로 굴지 않으면 언제든 폐기처분했다. 냉전시대부터 미국은 중남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내정간섭, 개전 등을 일상다반사처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오랜 갈등을 해결하는 건 미군의 책무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세계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외 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협상을 위해 내놓은 ‘장사꾼 발언’ 성격이 짙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해 친미정부를 세워 온 역사를 떠올리면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는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타이베이 법안’과 상충한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채택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한 타이베이 법안은 ‘세계의 경찰’ 노릇의 일환이다. 심지어 지난해 5월 미 국방부 전략보고서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대만을 보호할 필요성’까지 거론했다. 미국은 대만에 수상함 공격이 가능한 중어뢰를 비롯해 대만형 에이브럼스 전차와 스팅어 미사일, 최신 개량형 F16V 66대도 판매했다. 대만을 앞세운 ‘미중 전쟁’이 언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 온 미국이지만, 트럼프 대통령 말처럼 그 역할을 내려놓을 시기가 됐다.
  • 이스라엘에게 손 내민 UAE “서안지구 합병 철회 땐 협력”

    이스라엘에게 손 내민 UAE “서안지구 합병 철회 땐 협력”

    아랍권 대다수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 아랍에미리트(UAE)가 관계 개선의 신호를 보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강 서안지구 합병 계획을 철회하면 UAE는 이스라엘과 경제와 안보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미국에 주재하는 UEA 대사인 유세프 알오타이바는 12일(현지시간) 중동 국가의 외교관으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에서 발간되는 히브리어 신문에 양국이 국방을 포함해 더 긴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고를 게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그는 기고에서 “(UAE는) 항공과 물류, 미디어 등을 통해 이스라엘을 중동과 전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안지구를 합병하면 아랍 세계 및 UAE와의 안보 및 경제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스라엘의 기대는 확실히 그리고 즉시 끝나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다음달부터 서안지구 합병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온건한 오만과 이집트를 제외한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공동의 적인 이란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가 두터워지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UAE 대사의 기고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놀라워했다. 리오르 하이아트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로 “히브리어로 (기고를) 읽어 놀랍다”며 “평화는 중동 전체를 위한 기회이자 우리 모두를 위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미국의 평화 구상이 이런 이상을 실현할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팔레스타인 구호 물품을 실은 UAE 화물기 2대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도착하기도 했다. UAE 국영 항공사인 ‘에티하드 항공’이 그대로 노출된 비행기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것은 처음이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워싱턴DC 육군 1600여명 배치… 도시 곳곳 시위대·경찰 충돌

    워싱턴DC 육군 1600여명 배치… 도시 곳곳 시위대·경찰 충돌

    백악관 주변에 2.4m 쇠 울타리도 설치 트럼프, 시위대에 또 “폭력배” 트윗 공세 美전역 ‘중동 3국’ 파병 맞먹는 주방위군 통금 앞당긴 뉴욕 ‘아수라장’ 200명 체포 ‘목 누르기’로 의식불명 44명… 60% 흑인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군대를 투입할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전포고’ 하루 뒤인 2일(현지시간) 수도 워싱턴DC에 현역 육군 1600여명이 배치됐다.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기조에 맞춰 병력을 증원했지만, 되레 워싱턴DC에는 시위 시작 이래 최대 인파가 모였다. 워싱턴DC와 뉴욕을 비롯해 일부 도시에서는 통행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메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조지 플로이드 추모 행사가 4일부터 잇따라 예정되면서 앞으로 일주일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통신은 조너선 호프먼 국방부 대변인이 “군 병력이 수도 지역(NCR)에 있는 군 기지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육군 병력이 배치된 사실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병력은 워싱턴DC 내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대기시킨 것으로 관측된다. 또 인디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주의 주방위군 병력 1500명을 워싱턴에 추가로 배치할 예정이다. 미 전역 29개 주에는 1만 8000명의 주방위군이 시위 대응에 투입됐으며, 이 같은 규모는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미군 병력을 다 합친 숫자와 비슷하다고 CNN은 전했다. 더불어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 주변에는 백악관 경호를 위한 8피트(약 2.43m) 높이의 쇠 울타리도 설치됐다. 그러나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시위 진압에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이날 낮까지 비폭력 기조가 유지된 워싱턴DC의 시위 규모는 2000명을 넘어서 지난달 29일 수도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WP는 이날 워싱턴 도심에서 열린 시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 노부부, 고등학생 등 남녀노소가 참여했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남편과 함께 현장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또 일부 시위자가 도심 기물을 파손하려 하자 주변에 있던 시위대가 이를 제지하며 비폭력을 호소하기도 했다. CNN은 ‘보다 평화로웠던 저항의 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국적 차원에서 주말과 전날의 폭력적인 충돌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했다”면서도 “대체로 평화적 시위가 전개됐음에도 불구, 여러 주요 도시에서 경찰과 시위대들 사이에서 폭력적인 대치가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전날부터 통금 시간을 4시간 앞당겨 오후 7시로 바꾼 워싱턴DC는 시위 해산을 위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등 대응에 나서며 도심은 아수라장이 됐다. 밤 11시부터였던 통금 시간을 3시간 앞당긴 뉴욕시는 밤 12시를 지나 새벽 1시까지 200여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시위대를 ‘폭력배’(Thugs)라고 또 부르는 등 시위 사태 속에 주류 언론과 민주당 등을 비난하는 트윗을 쏟아냈다. 한편 플로이드를 숨지게 한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목 누르기’ 체포 행위로 최근 5년간 44명이 의식불명에 빠졌고, 이 중 60%가 흑인이었다고 NBC방송은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박록삼의 시시콜콜] 진보의 도덕, 보수의 도덕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담하다. 전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저지른 전쟁 범죄에 맞선 30년의 오랜 활동이 기부금의 개인적 횡령, 주먹구구식 회계 비리 등 파렴치범으로 몰리며 도매금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국제인권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의 빛나는 역사가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뼈아픈 비판도 있고, 모종의 의도에 근거한 억측도 있고, 웬지 주류세력이 된 것 같으니 그냥 비판을 받아라는 식의 몰가치적 비난도 있고, 이참에 기사 조회수 좀 늘려보겠다는 언론 상업주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죽거리며 내뱉는 썩은 웃음소리들이 있다. 1990년 11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맞서 만들어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김학순 할머니로 시작해서 한국,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덜란드, 호주 등 전세계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집회는 1440차에 이르도록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의 추악한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 요구는 높았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당연히 공식 사죄 및 법적 배상도 외면해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제 정대협, 정의기억연대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에 대한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적반하장의 입장을 낸다. 일본 우익 매체 산케이신문은 지난 19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반일집회를 중단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영훈, 이우연 등 극우세력의 이데올로그들은 “강제징용은 없었다. 위안부는 고위험 고수익 시장” 등 기존 의견을 반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힘입어 평화의 소녀상을 훼손한 사건까지 벌어졌다.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은 “(윤미향 전 대표는)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라는 무시무시한 비유를 했다. 더더욱 참담한 일이다.회계에 부정함이 있고, 활동에 위법함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관성에 빠져 무사안일했다면 시민들의 죽비를 내려맞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 성폭력 이슈를 힘겹게 끌고오며 국제인권운동사에 길이 빛나는 활동과 성과까지 부정되어선 안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극우세력이 이용할 틈을 줘서도 결코 안된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부여당(민주당 계열 옛 야당)이 심각한 위기에 빠지는 것은 대부분 도덕성에 타격을 입을 때다. 유교적 문화가 남아 있기에 국민들이 도덕성이라는 가치에 더욱 민감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잣대는 하필 이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에 유독 엄격하게 들이대진다. 그래서 진보단체 혹은 진보를 지향하는 기자 개인 등에서는 스스로 ‘도덕성 컴플렉스’에 빠진 경우 또한 많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가는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세력의 위상 추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도덕’은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초적 수단이다. 전통적 측면에서 변화보다는 안정,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추구하는 보수주의자를 보수주의자로 지탱시켜줄 수 있는 핵심 무기가 도덕이다. 민족과 국가의 개념 역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반면 진보주의를 실천하고 지향하는 이라면 기존의 관성과 제도, 질서, 문화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 마련이다. 어떤 진보의 가치도 그 배경에 도덕을 필수 기초 요소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 속 상황은 달랐다. 한국의 보수 세력의 기초는 ‘도덕’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민족 또는 국가의 이익 또한 아니었다. 숱한 보수세력의 정치인, 기업인들은 반공, 반북이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시작해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의 대통령들이 보여준 부도덕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또한 기업인들 역시 권력에 막대한 돈을 건네며 자신들의 부를 더욱 키우는 데 혈안을 했다. 장삼이사 같은 평범한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 또한 필요하면 기꺼이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어 대고, 또 한때는 가스통까지 들고 광장으로 나와 공권력을 위협했다. 배려, 공정, 타인 및 공동체 존중 등 도덕의 가치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기에 그 반대편에 있는 진보세력이 오히려 ‘도덕’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진보의 가치를 왼손에 들고, 도덕을 오른손에 든 채 ‘도덕적이지 못한 보수’와 맞서는 양상이다. 하나 안타깝게도 자승자박이다. 필연적으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라 하더라도 사적 욕망이 없을 수 없는 개인들의 모임이다. 공공의 가치의 제도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공동체 발전에 대한 비전 마련 등 전통적 의미의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뒤섞여서 진보세력을 이룰 뿐이다. 필연적으로 언제든 도덕적 일탈의 개인이 나올 수도 있는 구조인 셈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상황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채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에 정의기억연대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조중동이 100년 동안 저지른 과에 비하면 천분의 1, 만분의 1일 것이고, 그 역사적 기여는 조중동의 백배 천배’(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페이스북 인용)라는 항변처럼 억울함을 토로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항변 또한 많은 이들에게 ‘겨 묻은 개와 × 묻은 개’ 사이의 싸움처럼 비쳐지기 일쑤다. 이제는 시민이 나설 때다. 일탈하는 진보세력 내 개인은 따끔히 단죄하더라도 그 가치와 방향까지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옥석구분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시민사회의 힘은 시민에 있기 때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김정은 뉴스 앞 ‘소설’ 미디어 전락한 언론/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정은 뉴스 앞 ‘소설’ 미디어 전락한 언론/박록삼 논설위원

    311만명 넘게 감염됐고 21만명 이상이 죽었다.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 세계 최대 감염국 미국에서는 폭동을 염려하며 총기류를 앞다퉈 사재기하는가 하면 대통령이 나서서 살균제 인체 주사를 언급한다. 중동 어느 나라에선 바이러스를 막겠다며 소독용 알코올을 마셔 525명이 숨졌다. 주요 2개국(G2)을 자처하는 중국은 최초 바이러스 확산 국가라는 혐의를 떨치려 음모론을 제기하며 미국에 책임을 물으려 한다. 묵시록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 상황의 연속이다. 무인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화성 이주를 계획하는 대명천지 21세기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다. 인류의 생명과 미래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이겨낼 만한 관심사는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뉴스 하나가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CNN 보도가 출발점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보면 21대 총선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4일 저녁 돌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지라시’(정보지)가 진짜 방아쇠였다. ‘김정은 수술 중 뇌사, 후계 구도, 중국 움직임…’ 등이 담겼다. 선거의 불리함을 느낀 정당 쪽에서 판을 흔들어 보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여겨졌기에 별 파장은 없었다. 그런데, 그 지라시를 참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거의 흡사한 내용으로, CNN이 익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큰 수술을 받았고 수술 이후 심각한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고 보도하자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국내 언론들은 물론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모든 신문, 방송은 확인되지 않는 뉴스를 쏟아냈다. 한반도 정세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특히 구시대적 냉전과 대결을 활동의 자양분으로 삼는 이들이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페이스북에 “김 위원장은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쓴 글은 100건이 넘는 기사로 재인용됐다. 그가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유언비어를 버젓이 확산시킨 전력이 있는 TV조선 진행자였다는 사실은 애써 감춘 채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이라는 20년도 더 된 직함을 기사에 내세웠다. 또 주영국 북한 공사 출신의 탈북자로서 서울 강남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태영호(58)씨는 “혹시나 모를 급변 사태에 대비해 만전을 기해야 할 것”, “김여정은 애송이”, “숙부 김평일을 주목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연일 반복했고 언론은 이 또한 수백 건의 기사로 받아 썼다. 또 다른 탈북자 출신 비례대표 당선자 지성호(38)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확인해 봤는데 건강이상설이 사실이며 김 위원장이 다시 복귀하기 어려울 것 같고 현재는 섭정 체제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한국,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정부 모두 여러 차례에 걸쳐 “특이사항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정했음에도 진정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 행사와 4월 25일 인민군 창건일 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이 컸다. 그 사이 뇌사설, 식물인간설, 단순 수술설, 코로나19 감염 혹은 피신설 등 ‘아니면 말고식’ 기사 또는 ‘급변 사태 시 핵무기 선제 확보’, ‘평양 생필품 사재기 극성’ 등 어지간한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추측 기사들까지 난무했다. 한반도 평화 반대 세력의 안보 상업주의에, 무작정 기사 조회수를 늘리고자 하는 선정적 상업주의까지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김일성ㆍ김정일ㆍ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정권 최고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죽음과 부활’을 반복해 왔다. 1986년 11월 16일 ‘김일성 피격 사망’은 국내 언론 역사상 대표적인 오보로 꼽힌다. 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어떤 반성도 없었다. 최근의 북한 관련 뉴스 역시 언론이 ‘소셜 미디어’로서의 위상과 역할이 아닌 ‘소설 같은 기사’를 쓰는 ‘소설 미디어’로 전락했음을 절감시켜 줄 따름이다. ‘기레기’(기자+쓰레기), ‘기더기’(기자+구더기) 하는 대중의 조소는 언론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객관적 사실을 보도하고, 그 사실에 기초해 진실을 도출해 내고, 사회의 변화 방향을 전망하는 지식산업의 한 축을 맡은 언론의 기능과 역할은 여전히 부정될 수 없다. 한반도 관련 뉴스야말로 더욱 엄정히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소설적 상상력’이 아닌, 좀더 차분하고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대 섞인 호들갑도, 불필요한 비관도 필요하지 않다. youngtan@seoul.co.kr
  • 美 합참의장, 北 순항미사일 발사에 “도발적이라 생각 안한다”

    美 합참의장, 北 순항미사일 발사에 “도발적이라 생각 안한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 의장은 북한이 지대함으로 추정되는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데 대해 특별히 미국에 도발적이거나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밀리 의장은 14일(현지시간) 국방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순항미사일 발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평가의 관점에서 지금 당장은 뒤섞여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북한은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전 강원도 문천 일대에서 지대함으로 추정되는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동해를 향해 발사했다. 그는 “우리에 대한 어떤 의도적인 도발이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기념행사와 연결돼 있을지 모른다”며 “하루나 이틀 지나면 정보 채널에서 얻은 것을 통해 분명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거리나 단거리 어느 것도 아니라는 말이냐는 질문에 “아니다. 그건 단거리였다. 특별히 큰 미사일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밀리 의장은 “우리가 어느 곳에서 날아오는 어떤 미사일에 대해서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주 면밀히 감시하고 분석을 행한다. 보통 이틀 정도 걸린다”며 이번 미사일 발사를 놓고서도 한국군과 긴밀히 협력하고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과도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밀리 의장의 반응은 북한이 발사한 순항미사일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탄도미사일 시험이 아닌 데다 그동안 미국이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던 단거리 미사일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가 언급한 북한의 기념행사란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밀리 의장은 이날 코로나19와 관련해 미군 입장에서 불안정성을 가장 우려하는 지역이 어디냐는 질문에 “우리가 관여하는 상당수 지역이 있다”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를 꼽았다. 이어 북한은 어떠냐는 질문이 나오자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북한에 관해 좋은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그러나 북한에게도 도전받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브리핑 모두발언을 통해 미국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국가안보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며 중동에서 아프간까지 대테러 임무, 항행의 자유 보장, 이란의 나쁜 행동 억제 등과 함께 북한의 무기시험 감시를 사례로 꼽았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이 미국에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제공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우리 동맹이 우리에게 준 물자, 지원 등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무부 대변인도 미국이 한국 기업에서 지금까지 75만개의 진단 키트를 구입했고 15일까지 모두 도착할 예정이라며 구매를 가능하게 한 한국의 지원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린치핀) 동맹으로서 한국은 이 전염병 대유행의 최전방에 있었다”며 “우리는 이 질병과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싸우는 데 있어 한국의 협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2000자 인터뷰 31] 설대우 “올바른 방향으로 헤쳐온 두 달, 아찔한 순간도”

    [2000자 인터뷰 31] 설대우 “올바른 방향으로 헤쳐온 두 달, 아찔한 순간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코로나19와 관련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지 2주 가까이 흘렀다.  ‘사회적 거리 두기’나 ‘멈춤’ 운동으로 우리의 일상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더 바뀌고 세계질서를 재편할지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적지 않은 이들이 왜 팬데믹을 선언하지 않느냐고 윽박지를 때 WHO가 시류에 영합해 서둘러 선언하는 바람에 상상하기 어려운 경제사회적 파장을 낳았다고 본 사람이 있었다.  설대우(54)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가 주인공인데 지난 15일 서울신문 3층 편집국 회의실에서 마주 앉았다. 팬데믹 선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와야 했는지 톺아보고,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발생한 지 두 달이 흐른 과정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 설 교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총점을 매긴다면 75점 정도 줄 수 있겠지만 올바른 방향을 걸어왔고 우리의 소중한 경험이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무대에서의 발언권을 높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물론 중간중간 뼈아픈 실책과 결함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Q. 사람들은 팬데믹 선언이 열흘 뒤였건, 앞이었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할 것 같다. A.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난 팬데믹 선언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방역 차원의 문제를 넘어 경제사회적 문제로 확대됐다고 본다. 지난 1월 31일 WHO는 ‘세계적 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했는데 많은 이들이 이때 팬데믹을 선언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WHO가 중국 눈치를 본 것은 맞는데 팬데믹을 선언할 시점은 분명 아니었다. 거의 중국에서만 발병이 된 국지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WHO는 세계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사람이나 물류의 이동 제한이나 국경 폐쇄는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때 물류의 이동 제한이나 국경 폐쇄를 선언해 각국이 중국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할 수 있는 외교적 명분을 줬어야 했다. 그리고 정작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는 반대로 여러 나라의 국경 폐쇄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선언해야 했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세계적 대유행이 안됐는데도 될 것이란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실물경제가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 감염자는 15만명, 사망자는 4000명 수준이다. 과거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두 차례 있었는데 1968~69년 홍콩 독감 사망자는 100만명이었다. 2009~10년 신종플루는 전 세계에 퍼져 수억명을 감염시켰고 사망자가 1만 9000명 정도였다. 한국에서만 감염자가 70만~100만명, 사망자가 260여명이었다. 홍콩독감은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 신종플루 때는 타미플루도 있었고, 백신도 있어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신종플루 때는 팬데믹을 선언하면서도 통제가 가능한 수단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WHO는 팬데믹을 선언하며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데 통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완전히 이율배반적인 얘기다. 또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진정, 둔화 국면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뿐인데 WHO의 도움을 받아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명백히 사람간 접촉에 의해 발생하니 웨이브(파도)형 확산 양상을 띄니까 팬데믹 선언을 미루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한국과 같은 확산 차단이 가능한지 따졌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서둘러 팬데믹을 선언하는 바람에 세계 증시 시총이 1경원이나 빠지는 사태를 초래했다. 한국도 시총 300조원이 증발했다. 한국은 오히려 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 세계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 선언을 우리 식대로 ‘경계’라고 보면 팬데믹은 ‘심각’ 단계인데 이 두 단계에서는 대처 방법이 달라야 한다. 그런데 대처하는 데 아무런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도움을 주지 않고 공포만 부추겨, WHO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아졌을 한국의 극복 노력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었다. 앞으로도 WHO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데 팬데믹 선언의 기조 아래 움직여 한국처럼 스스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가로막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유럽발 경제위기다. 이탈리아는 진정되고 나면 국가부도 사태를 걱정하게 되고, 유럽을 거쳐 세계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WHO가 초래했다. Q. WHO는 사령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A. 거칠게 얘기하면 WHO 사무총장은 개인적 가십으로 기구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중국과 같은 강압적 봉쇄 정책은 체제가 다른 나라들에 전범이 될 수가 없다. 한국 모델이 가장 적합한 모델이니 전파, 확산, 권고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실제로 WHO는 21일에야 한국 모델을 “교과서”라고 치켜세웠다.) 언론에서는 늑장이라고 계속 질타하는데 타이밍이 맞지도 않았고, 내용도 부실했다. 실제로 방역과 관련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헛발질했다고 본다. Q.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인구의 70%는 걸린다고 보고 완화하고 시간을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는데. A. 절대 동의한다. 이미 확산됐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정책의 무게 중심을 희생을 줄이는 쪽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병원이 마비된다고 가정하고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수 있느냐를 선제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병원이 감당이 안 되니 누구는 살리고 누구를 구할지를 결정할 시점에 와있다. 이탈리아는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일격을 맞은 것이다. 독일은 이미 4000명의 확진 환자가 나왔으니 메르켈 총리가 현실적인 접근을 한 것이다. 한국도 위험천만한 순간이 있었다. 정치가 방역에 발을 들이려는 순간이었다. ‘진단 검사를 너무 많이 해서 감염자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아니냐’고 정치권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는 생각의 일단을 보여준 때가 있었다. 확진자란 이름표를 붙여줘 돌아다니면 지역사회 감염을 일으킨다고 경고하게 만든 것이 우리의 방향이었다. 이 질병은 전파하는 사람 따로 있고, 희생되는 사람 따로 있다. 젊은이들은 무증상, 경증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해 돌아다녀 지역사회에 퍼뜨리고 희생자는 고령에 기저질환이 있는 이들일 것이라고 난 여러 차례 얘기했다. 계속 검사 역량을 높여 확진자란 이름표를 달아주는 일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그렇게 해서 아무튼 그런 얘기 사라졌다. 중국처럼 한 지역을 권위적으로 봉쇄하지 않고, 민주적인 통제를 통해 안정화시킨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을 만든 힘은 진단검사와 역학조사로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올바르게 실천한 덕분이었다. 그게 올바른 방향이었다는 얘기다. 만약 우리가 그때 정치가 개입해 사태 해결을 왜곡시키게 놔뒀으면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굉장히 위험한 순간을 뚫고 나왔고,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매우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성과를 이뤄내 세계에 모범이 될 것이다. 중국의 방법은 다른 민주 국가나 서구에서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모델이다. 설사 사태를 종식시킨 뒤에라도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런 시스템으로 안정화, 둔화 추세로 넘어갔기 때문에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다. 언제나 세계질서는 굉장한 위기 뒤에 재편됐다. 한국의 위상이 G7에 걸맞은 것이 될 것이라고 본다. 투명한 사회 시스템,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구나, 모두가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일본의 한국인 대상 입국 제한 조치는 한국인의 건강을 위해 매우 올바른 정책이라고 방송에서 (비꼬아) 얘기한 적이 있다. 일본의 확진 환자 수도 실제의 10분의 1 밖에 안된다고 한다. 일본의 불투명성, 방역에 있어 (도쿄올림픽 성공에 집착한) 정치권의 개입 때문에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고 믿는다. 난 유람선 사태 초기부터 일본은 (7월에) 올림픽 못한다고 했다. 갈수록 감염병 이슈가 글로벌 사회에서 중요해지는데 다른 나라가 발언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영향력을 한국은 갖게 된다. 일본은 한국에 행한 경제 보복, 비자로 인한 외교 분쟁이 뼈아픈 실책이 될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괜찮은 파트너로 부상한다. 일인당 실질 소득은 이미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 자연재해는 정치가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감염병이란 사회적 재해는 전문성이 앞서고 정부는 보조 기능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가 끼어들면 방역이 뒤엉킨다. 전문가 집단이나 방역당국이 일할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옳다. 미국의 예를 봐도 그렇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뭘 하려고 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혼내고 하다가 유럽 사태를 보며 태도가 바뀌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문 영역에 정치가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결국 뒤엉키게 된다는 교훈을 다시 깨닫게 된다. 방역과 관련 잘했는데 마스크 관련 당국이 못해 부총리-총리-대통령 순으로 나섰다. WHO의 전격적인 팬데믹 선언이 있을 수 있으니, 팬데믹을 선언하는 그날 곧바로 미리 준비해 둔 액션 플랜이 나와야 한다고 거듭 얘기했는데 정작 WHO가 선언한 날, 아무도 움직이지 않더라. 대통령이 예전에 없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지시하니까 그때야 움직이는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도 감염병이 간격을 두고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국가 연구소가 감염병 전문지식을 제시하고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하고 다른 나라의 감염병 정보를 축적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질병을 연구할 수 있도록 설치됐으면 하는 것이 이번의 교훈이 됐으면 한다.Q. 적지 않은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풍토병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보는데. A. 당분간 웨이브(파도 치는) 형태로 확산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이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감염증을 옮길 중간 숙주가 없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중동에서는 낙타라는 중간 숙주가 있어 계속 숙주를 통해 메르스가 번식했다. 사스는 2년이 걸려 완전히 없어졌는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중간 숙주(예를 들어 천산갑 같은)가 없어서다. 우리를 감염시키는 네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있는데 이들처럼 병원성을 상실하면서 사람을 감염시킨다면 계속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Q. 언제 어떻게 종식을 선언하는가? A. 신규 확진자가 없어야 하고 치료 중인 최후의 환자가 완치된 뒤 잠복기의 두 배, 코로나19 같으면 4주가 지나면 종식을 선언할 수 있다. Q. 당분간 우리 방역의 큰 방향은 치료, 격리, 해외 유입 차단이 되는 것이 맞는지? A. 크게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는 확진 환자를 빨리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해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과 접촉한 이를 신속하게 격리해 더 이상 확산하는 일을 막는 것이다. 해외 요인은 우리가 기존에 봉쇄가 아니라 추적을 통해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계속하는 것이 옳겠다. 다만 미국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많다. 진단 검사비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불법체류자, 보험이 안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것이다. 감염 확산이 통제 불능이 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은 의료 시스템이 이탈리아처럼 감당 안되면 엄청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강(强)달러가 돼 완전히 경제문제가 된다. 우리가 코로나 종식시킨다, 이런 것도 하등에 문제가 되지 않는 국면이 올 수 있는데, 대통령이 한마디 해야 움직이는 이런 정책당국이 그에 대한 대비를 글로벌 시각으로 준비할 수 있겠느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종식했는데도 미국이 환자가 많아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이 올 수 있다. 특별입국 절차를 강화하되 사전에 미국의 양해를 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Q. 얼마 전 ‘비선 자문’ 논란이 있기도 했다. A. 메르스 때는 대통령이 전문가 집단에 권한을 위임한 것처럼 하면서 비선 자문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결과가 아주 좋지 않았다. 전문가 집단도 집단지성이 필요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자문하는 이들은 의사들이 아무래도 많다. 바이러스를 전공하거나 약학을 공부하고 역학을 전공하는 분들이 다양하게 포진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중구난방이 되선 안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사태가 조기 종식될 수 있다고 발언한 뒤 곧바로 (신천지 때문에) 환자가 폭증했던 것이 잘못된 조언 탓이었지 않나 짐작할 따름이다. 비선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조언이 아니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숱한 분쟁의 ‘해결사’ 데케야르 전 유엔 총장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숱한 분쟁의 ‘해결사’ 데케야르 전 유엔 총장

    옛적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했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나바호족에게도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넌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전해진다. 죽음이 곧 삶이다. 의미있는 삶을 마치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자취를 좇는다.하비에르 페레스 데케야르 제5대 유엔 사무총장이 4일(이하 현지시간)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프란시스코가 페루 총리를 지내기도 했던 부친이 “어려운 시간을 견뎌내고” 이날 오후 8시 9분 페루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현지 라디오 방송 RPP에 알렸다고 영국 BBC가 5일 전했다.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다음날 곧바로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한 차례 연임해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유엔을 이끈 데케야르는 8년을 끈 이란-이라크 전쟁을 종전으로 이끈 것을 비롯해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의 숱한 평화협상을 주도했다. 8시9분에 숨을 거뒀다“고 현지 RPP라디오에 밝혔다고 AF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현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 부고를 듣고 무척 슬펐다고 밝힌 뒤 “고인은 성취를 이룬 공직자였으며 충실한 외교관이자 유엔과 우리 세계에 혁혁한 영향을 미친 열정 넘친 인물이었다”고 애석해 했다. 마르틴 비스카라 페루 대통령은 “온 삶을 바쳐 우리 나라를 뻗어나가게 헌신한 진심을 다한 민주주의자였다”고 돌아봤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으로 1981년부터 1991년까지 두 번의 임기를 채운 데케야르 전 총장은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페루 외무부에 들어가 외교관 경력을 쌓았다. 유럽과 남미 지역 대사관에서 근무한 뒤 유엔 주재 페루 대사로 유엔 총회에 데뷔했다. 1973년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을 1년 동안 맡아 1974년 터키군의 키프로스 침공 이후 그리스와 터키의 화친 조약을 중재해 외교 수완을 인정받았다. 미소 냉전 초기의 위험천만한 유엔을 그나마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1991년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사하라 서부의 적대 종식, 엘살바도르와 캄보디아, 니카라과 내전 종식에 힘썼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옛 소련 군의 철수, 아프리카의 마지막 식민지 나미비아가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이런 국제적 업적에도 그는 1995년 페루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 후보에게 패배하는 좌절을 맛봤다. 5년 뒤 후지모리가 뇌물 추문에 연루돼 사임한 뒤 외교부 장관 겸 총리로 짧게 활약하며 과도정부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준비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 선거 결과 집권한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은 고인을 프랑스 주재 대사로 임명해 노고를 보상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글로벌 In&Out] 코로나19와 한일 관계/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글로벌 In&Out] 코로나19와 한일 관계/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

    2020년 벽두 동북아를 석권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핵·미사일도 한일 관계도 아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다. 동아시아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이런 감염병 현상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전례가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인적 이동은 한일·일중·한중 간 1000만명씩 되는 만큼 충격은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이 사태에 직면하고는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3대 외교 목표였다. 한중일이 경제적 상호 의존에도 불구하고 역사·안보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는 ‘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지는 상황에서 환경이나 위생 등 비전통적 안전보장 분야에서 협력을 축적함으로써 동북아에서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취지였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외교의 성과는 대통령 탄핵으로 지금은 거의 잊힌 상태가 됐다. 요란하게 제시되고 여러 차례 국제회의가 열렸는데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비교하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실천적 의의도 명확하고 추진해야 할 구상임이 분명하다. 한중일은 다시 한번 이 구상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는 의료위생 분야에서 긴밀한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지금도 한중일의 기능적 협력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각국 지도자의 강한 정치적 지도 아래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한중일 관계는 확진자 대량 발생이란 긴급 사태 때문에 비난을 자제하고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한일이 중국에 책임이 있다고 떠미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사태를 3국 공통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전면적 협력으로 대응한다기보다 자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19는 각 정부의 국민 지지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국가 간 현안이 있는 한중일 정부로서는 협력의 당위성은 알지만, 정치적 관계 탓에 실제로 협력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중일 국민은 코로나19와 관련해 자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일 정부나 사회는 코로나19 사태에 얼마나 이성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지 경쟁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런 경쟁을 넘어서 싫든 좋든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상호 협력을 통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서로 책임을 미루며 비난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 경쟁과 협력이 한중일에 요구되는 조건이다. 그러면 경쟁과 협력을 어떻게 동북아에서 실현해 갈 수 있을까. 경쟁이 대립으로 심화하는 경향이어서 협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제로섬이 아닌 윈윈 관계를 경쟁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성가신 것은 한일처럼 설령 자국 이익이 커지더라도 상대방 이익이 더욱 커져 격차가 벌어지는 일이 발생할 때다. 경우에 따라서는 윈윈과 거꾸로 갈 수 있다. 한일 협력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다만 이번처럼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서로의 차이에 신경을 빼앗겨 협조하지 못해 서로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경쟁하면서도 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차이에 집착할 게 아니라 협력을 통한 대재앙의 회피라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한일 관계의 이러한 상황은 코로나19 사태에만 한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직면해 어떤 평화적 수단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을지, 목적과 수단의 양립을 어떻게 도모할지에 관해 한일은 상호 경쟁하면서도 협력을 통해 대재앙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코로나19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는 다시 한번 양국이 놓인 현주소를 돌아보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 이집트 30년 철권 통치 무바라크 사망

    이집트 30년 철권 통치 무바라크 사망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혁명 때 축출 ‘시위대 학살’ 종신형… 91세 지병으로 숨져2011년 ‘아랍의 봄’ 민중봉기 때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사망했다. 91세. AP통신은 이집트 국영TV를 인용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수도 카이로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무바라크는 1969년 공군 참모총장에 올라 제3차 중동전쟁(1967)에서 이스라엘에 참패한 이집트 공군을 재건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을 몰아붙여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전쟁에서 얻은 명성에 힘입어 1975년 안와르 사다트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임명됐다. 1979년 집권 국민민주당(NDP) 부의장에 선출되면서 사다트의 후계자 자리를 굳혔다. 사다트는 1979년 아랍권 국가 가운데 최초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가 1981년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암살됐다. 부통령이던 무바라크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그는 사다트 시절 탈퇴했던 아랍연맹에 복귀하고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화해하는 등 ‘아랍 회귀’를 추진해 중동의 맹주로 떠올랐다. 유엔 사무총장과 아랍연맹 사무총장,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모두 배출해 국제적 위상도 높였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중재해 중동 평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반면 국내 정치에서는 억압적이었다. 정보기관을 이용해 철권통치를 펼쳤다. 국영기업이 전체 고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경제도 나빠졌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는 ‘현대판 파라오’로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독재자로 평가받는다. 집권 말기에는 자신의 둘째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는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아랍의 봄’을 비켜 가지 못했다. 국내외의 비난 속에서도 그해 2월 당시 집권당이던 민족민주당은 무바라크가 대선에 단독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논란이 커지자 무바라크가 직접 나서 “집권을 연장할 계획은 없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혁명이 이집트로도 넘어왔고 시민들이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모여들었다. 군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84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바라크를 지지하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등을 돌리면서 이집트 국민의 저항이 더욱 거세졌다. 결국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무바라크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가 축출된 뒤 잠시 이슬람 조직 ‘무슬림형제단’ 정권이 집권했지만 군부 쿠데타로 축출됐다. 그 뒤로 무바라크에게 우호적인 군 장성 출신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집권했다. 무바라크는 2011년 4월 두 아들과 함께 부패 및 권력 남용, 군경의 시위대 학살을 막지 못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12년 6월 종신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듬해 항소법원이 재심을 명령했다. 2015년 재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고령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2015년 10월 석방됐다. 2017년 3월 항소법원이 사면을 선고했다. 그 뒤로 지중해 샤름엘셰이크의 자택에서 지내던 그는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지난해 10월 유튜브에 등장해 욤키푸르 전쟁을 회상해 눈길을 끌었다. 무바라크는 집권 당시 북한에 우호적인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무바라크는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네 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30년 철권 통치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 92세 일기로 운명

    30년 철권 통치 무바라크 이집트 전 대통령 92세 일기로 운명

    30년 동안 철권 통치를 휘두르다 2011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카이로에서 92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지난달 늦게 수술대에 올랐고 회복 중 손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는데 25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군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알와탄 웹사이트가 가장 먼저 보도했다. 나중에 국영 매체들도 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앞서 아들 알라는 아버지가 지난 11일 응급실에서 투병 중이라고 밝혔다. 1928년에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공군에 들어가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0년도 안돼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이 암살되자 대통령에 올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재직 시 군부에 엄청난 돈이 지원됐지만 실업률, 빈곤, 부패는 늘어만 갔다. 2011년 1월 이웃 나라 튀니지 대통령이 민중 봉기에 실각하자 이집트 국민들도 봉기에 나섰고, 단 18일 만에 그는 물러났다. 그 뒤 1년여 만에 무슬림 정치인 모하메드 모르시가 이집트에서 처음 치러진 민주 선거로 대통령에 올랐다. 하지만 모르시 역시 1년도 안돼 또다시 군부에 의해 축출됐고, 지난해 감옥에서 사망했다. 고인은 아랍의 봄 때 900여명의 시위대원들을 살해하라고 보안군에 지시를 내렸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나중에 무죄로 번복돼 2017년 3월에 석방됐다. 한편 북한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이집트에 전투기와 조종사를 지원했고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무바라크는 이를 계기로 북한과 각별한 관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는 김일성 북한 주석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네 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방역망 밖 감염, 밀접접촉자 격리 급선무… 대응체계 전면 검토”

    “방역망 밖 감염, 밀접접촉자 격리 급선무… 대응체계 전면 검토”

    “(2015년 메르스 사태 초기 잘 대응하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대처해 온 것 같다. 이제 방역망 바깥의 감염자가 잇따라 나왔으니 대응 체계를 전면 검토해 보완할 부분은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 지난달 20일 국내에 첫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환자가 나온 뒤 한 달 가까이 된 지난 18일, 권덕철(59·전 보건복지부 차관) 보건산업진흥원장을 충북 오송의 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권 원장은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복지부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총괄반장을 맡아 두 달 동안 욕이란 욕은 다 들은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긴급 감염병 대처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 이번에 안정적 관리를 해낸 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질병관리본부나 보건복지부의 방역대책본부를 지켜보며 느낀 소회, 우리 방역 시스템의 진화, 앞으로 유념해야 할 점 등을 들어봤다. 그는 또 2018년 11월 7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진행된 남북보건회담에 참가한 경험도 있어 남북 공동 방역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다음은 19일 전화 통화까지 포함한 일문일답.-지난 한 달 동안 보건 일선에 계셨을 때처럼 조마조마했을 것 같다.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질병관리본부에 방역본부가 설치돼 활동하다가 주말에 경기 평택 환자가 퇴원 형태로 나가는 바람에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대책 본부장이 장관으로 격상되고 실장이었던 제가 총괄반장으로 매일 브리핑을 하게 됐다. 중동지역에서는 치사율이 30~40%로 치솟아 두려워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두 달 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그때의 경험과 대책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환자 초기 유입 단계부터 감시하는 시스템이 빨리 작동할 수 있었다. 일부 언론은 그래도 늦었다고 지적했지만 어느 사태든지 초기에 세팅 단계에서 늦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참 대응을 잘했다고 평가한다.” -외신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시스템이 어떻게 바뀐 건가.  “메르스 이전엔 방역대책본부나 수습대책본부를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지가 잘 정리돼 있지 않았다. 감염병이란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했다. 메르스 사태를 겪고서야 국가방역 체계가 구축됐는데 질병관리본부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위기 단계에 관계없이 방역 업무를 지휘하고, 의료기관 및 건강보험, 관련 부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등 행정적 지원은 수습본부에서 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다. 국가지정 격리병상(음압병상)을 전국에 대폭 확충하고 24시간 대응할 수 있는 긴급상황실을 질본 안에 두고 역학조사관도 늘린 것 등이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런 시스템이 정부 안에 매뉴얼로 자리잡았다고 본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나 김강립 복지부 차관의 차분한 음성도 국민들을 안심시켰다고들 한다.  “고위 관료가 되기 전에 언론과 시민사회, 민원인 대응 등을 평가받기 때문에 교육 훈련을 받는다. 브리퍼가 안정돼야 국민들이 신뢰하게 된다는 말들을 그때도 했다. 지금은 질본 안에도 위기소통담당관이 만들어져 있다.” -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생활 침해의 여지가 있어 서구라면 어림 없는 일이라며 빅데이터로 수집된 정보를 해석하는 일은 다른 차원이라고 지적했는데.  “양면이 있다. 앞의 평택 환자가 슈퍼전파자가 됐다. 그가 서울 병원으로 오는 과정에 탔던 버스 안에 함께 있었던 20여명의 밀접 접촉자를 어떻게 찾아내느냐가 관건이 됐다. 휴대폰이나 교통카드 정보로 확인했다. 국가의 감염병 차단이란 공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개인 사생활 침해 소지는 없다고 믿는다. 본인이 알아서 신고하는 것이 가장 궁극의 대안일 수밖에 없는데 모두가 응하긴 사실상 어렵다.  또 입국할 때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게 하는데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모바일 자가진단 앱을 깔게 하거나 심지어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등은 참 잘한 일이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됐는데 의료 분야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아 복지부와 진흥원 등이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우리의 건강보험 정보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 의사들은 이제 환자의 건강보험 정보만 입력하면 그가 어디어디를 여행하고 돌아왔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약물을 많이 처방 받으면 서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이 없는지 파악해서 자동으로 알려주는 시스템까지 만들어져 있다.”  -질본에서 접촉자를 자가격리시켜 관리하는데 쓰레기 봉투까지 따로 쓰게 하고 수거해 가더라는 인터넷 기사를 보고 놀랐다. 어떻게 가능한가?  “(잘 대응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메르스 때도 접촉자 등을 격리 시설에 보내려고 했다. 충주의 한 시설을 검토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자가 격리만 했다. 반드시 행동 요령을 써주고 따르도록 설명해야 하는데 자가격리자가 골프 치러 가고, 난리가 났다. 가족과의 접촉도 하면 안된다. 명확한 행동 요령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메르스 이후 신종 감염병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협조 의식이 높아졌다. 아산과 진천에서는 오해한 분들이 저지에 나서는 등 홍역을 치렀지만 지자체와 당국이 잘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 국민들에게 충분히 어떤 질병이고, 어떻게 하면 감염이 안되는지 잘 설명하면 우려는 해소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감염력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증상이 나타나고, 대중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매뉴얼로 만들어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  -메르스 때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시골 부모님도 이웃들이 텔레비전 시청하면서 ‘저 죽일 놈 또 나왔다’고 말하더라고 하셨다. 사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초기에는 미흡했지만 빨리 따라잡아 잘 대처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186명 중에 38명이 희생됐으니 치사율은 20%로 사우디의 절반 밖에 안 됐다. 어떻게든 전파를 막고 목숨을 잃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고, 그때 노력한 일이 지금의 차분한 대응으로 이어진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당시 흉부외과 에크모 팀이 전국을 돌며 환자 회복진료에 큰 역할을 했다. 이렇듯 민간에서 의료인들의 큰 희생으로 신종 전염병을 막을 수 있었다.” -지난 17일 29번과 30번, 18일 31번 확진자, 19일 22명 모두 방역망 밖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데.  “공기 중 전파(에어로졸)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감염됐는지도 중요하지만 역학 조사에는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밀접접촉자를 찾아내 격리, 검사 등을 진행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 사례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대목은.  “메르스 때도 환자가 다녀간 병원 정보를 공개하느냐를 놓고 이견이 많았다. 초기에는 불안감을 확산시킬까 봐 공개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도 있고 해서 공개했다. 중국은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 대응하게 하고 준비를 하도록 설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걸 하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 일본은 잘 모르겠다. 매뉴얼 사회라 치밀한데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크루즈 유람선이라 특수하긴 하다. 유람선의 위생이나 공기 정화 시스템이 취약하다고 한다. 빨리 전수조사하고 위험한 사람을 격리시켰으면 됐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감염병 대처 예산 등이 늘어나 성과를 봤다고 판단해도 되는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이 미흡했다고 판단해 보강했고, 질본 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검역관과 역학조사관도 늘렸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계속 보완해야 할 것이다.” -메르스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보건산업진흥원은 어떻게 돕고 있나.  “복지부의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이 5278억원인데 진흥원이 4100억원을 지원한다. 감염병이나 정신질환, 치매 등 사회적 재난 예산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확보했다. 감염병 진단 고도화 및 미해결 치료제 개발에 지난해 361억원에서 443억원으로 늘렸다. 10년 동안 6240억원을 투자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자체가 자원이다. 메르스 때도 미국에서 균을 달라고 했다. 백신 개발에 지난해 275억원이, 올해 322억원이 투입된다. 매년 WHO가 내년에 유행하는 감염병을 예고하면 백신을 개발하는데 변이가 일어나 잘 먹히지 않곤 한다.” -국민들에게 감염병 실태를 알리는 언론에 당부하고 싶은 일은.  “초기에 워낙 중국 상황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경각심을 일으키는 일과 함께 정확한 팩트를 중심으로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있었다. 미국은 중국인 입국을 막는데 우리는 뭐하느냐고 질타하는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지정하고 대응하는 것은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무리가 따른다. 확진환자들이 드문드문 나올 때도 국민들이 집에만 있으려고 하고, 행사나 학회도 취소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행동요령만 정확히 알려 주고 지키면 된다. 국민들은 지나친 공포나 두려움을 갖지 말고 방역당국이 안내한 개인 위생수칙을 준수하고 접촉자 관리에 적극 협조하는 등 차분하게 대응했으면 좋겠다. 질본의 검역인력, 역학조사관 보강이 필요하고 격리 병상과 고도의 감염병 전문병원 등을 확대하려면 민원이 발생하는데 안전하게 설계하니 불필요한 두려움은 갖지 않도록 계도하는 일도 언론에 필요해 보인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작전명 ‘루비콘’/문소영 논설실장

    [씨줄날줄] 작전명 ‘루비콘’/문소영 논설실장

    ‘제이슨 본’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내 트레드스톤의 존재를 세상에 폭로하자, 국방부의 최정예 요원으로 육성된 ‘애런 크로스’는 제거될 위기에 처한다. 관련 책임자 ‘바이어’가 모든 요원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근육과 인지능력 강화 약물에 중독된 크로스는 제약사가 있는 필리핀에 잠입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암살자들에게 쫓긴다. 영화 ‘본 시리즈’에 합류한 ‘본 레거시’ 이야기다. 바이어는 필리핀의 이런 상황을 미국 워싱턴에서 대형 화면으로 실시간 지켜보면서 지시를 내리는데, 잠깐! 바이어는 어떻게 현장을 지켜보게 된 것일까. 군사용 인공위성을 활용했겠지 하는 생각은 어제자로 폭로된 CIA가 운영하는 암호장비 회사 ‘크립토 AG사’ 덕분인가 하고 재고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독일 ZDF방송은 11일(현지시간) 미국과 서독의 정보기관인 CIA와 BND가 스위스의 암호장비업체 크립토AG를 극비리에 공동 운영해 왔다고 보도했다. CIA와 BND는 크립토AG가 세계 각국에 판매한 암호장비를 활용해 중요한 외교안보적 비밀 정보를 무려 2018년까지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1978년 미국 캠프 데이비드 중동 평화협상 때도, 1979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때도, 1982년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 때도 이 장비가 활용됐단다. 이 장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한국, 이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등 120개 국가에 판매됐다. 미국은 이 장비를 활용해 기밀정보를 불법수집했는데, 작전명은 ‘루비콘’이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스파이 혐의를 씌우고 독일·일본 등 우방국가에 화웨이를 사용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27%를 점유한 화웨이는 그 이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미중 무역전쟁의 전초전 같았다. 그런 측면에서 1986년 체결된 ‘미일 반도체 협정’을 연상시켰다. 1980년대 미국 미사일은 소련 미사일보다 정확도가 높았는데 이는 일본산 반도체를 장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기술력을 근거로 일본산 반도체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여론을 확산시킨 뒤 일본 반도체에 반덤핑 관세 100%를 때리는 등 공격을 했다. 미일의 이 협정은 1996년 종료하지만 일본 반도체 산업은 이후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암호장비를 활용해 120개국에서 70년간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해온 미국 정부로서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장비를 활용해 각국에서 불법정보를 수집할 것이라고 판단할 만했다. symun@seoul.co.kr
  • CIA, 스위스 암호장비 회사 소유 숨기고 수십년간 한국 등 120개국 기밀 캐냈다

    중국 당국과 통신업체 화웨이가 유착해 각국의 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압박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스위스의 독점적 암호화 장비 회사를 은밀하게 소유한 채 수십년간 적국과 동맹을 가리지 않고 기밀을 털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자신들이 입수한 CIA 내부 자료를 인용해 옛 서독의 정보기관 BND와 공조한 CIA가 ‘크립토AG’라는 회사를 이용해 120여개국의 기밀을 빼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립토AG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암호생성기를 만들며 처음 미국과 연이 닿았다. 이 회사의 주요 고객에는 한국·일본 등 미국의 동맹, 유엔 등 국제기구, 이란·중남미 군사정부 등 미국의 적대국, 인도·파키스탄 등 핵경쟁국, 바티칸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고객들은 이 회사가 CIA 소유로, 미국이 자국 정보·군사·외교상 기밀 통신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CIA와 BND는 이 회사를 ‘미네르바’라고 불렀는데, 이를 통한 기밀 작전의 이름은 ‘루비콘’이었다. 미 국가안보국(NSA)도 회사에 적극 개입하며 작전을 지휘했다. 일례로 1978년 중동 평화협정 당시 NSA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기밀 통신 내용을 읽었다. 이집트 역시 크립토AG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점거 사태 당시에도 NSA는 이란 내부 통신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CIA는 암호장비 시장에서 크립토AG의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사를 비방하고, 고객에게 롤렉스 시계나 성매매 등 뇌물 제공도 일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립토AG 관계자들은 대부분 CIA와의 연계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1992년 이 회사 판매담당 직원 한스 뷸러는 이란에 구금됐다가 풀려난 뒤 품은 의심을 이후 인터뷰에서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독일은 루비콘에서 손을 뗐지만 미국은 2018년까지 작전을 계속했다. 당시 NSA 국장, CIA 부국장을 역임한 바비 레이 인먼은 WP와의 인터뷰에서 루비콘 작전과 관련해 “거리낌은 전혀 없었다. 미국 정책 결정에 아주 결정적인 정보의 원천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펜타곤 “이라크 주둔 미군 109명 지난달 이란 공습에 뇌 손상”

    펜타곤 “이라크 주둔 미군 109명 지난달 이란 공습에 뇌 손상”

    지난달 8일(이하 현지시간) 이라크 미군 기지 두 곳을 겨낭한 이란 군의 미사일 공격에 지속적인 뇌손상(TBI) 피해를 입은 미군 병사가 109명으로 늘었다고 미국 국방부가 밝혔다. TBI는 보통 경미한 뇌진탕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조금 더 정신적 트라우마에 치우쳐 있다. 예를 들어 매설 폭탄 공격에 자주 노출된 병사들은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전투나 일상애 임한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2000년 9·11 테러 이후 TBI 진단을 받은 미군 병사는 40만명에 이른다. 당초 이란 정부는 지난달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인 가셈 솔레이마니가 미군의 드론 공격에 폭사하자 닷새 뒤 이라크의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란 정부는 공습 직후 80여명의 미군 병사들이 앰뷸런스 등에 실려 기지를 떠났다고 주장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병사들이 두통 정도 앓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용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펜타곤은 지난달 말에야 64명이 TBI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때도 “내가 보아온 어떤 다른 부상과도 연결지어 심각한 부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받아넘겼다. 그런데 이번에 그 숫자가 훨씬 늘어난 것이라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아울러 다친 병사 가운데 70% 정도가 복무에 복귀했다며 복귀한 병사들도 충실하고 세심하게 예후를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니 에른스트(공화당) 미국 상원의원은 이날 정부가 더 많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1979년 이슬람 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일 각국 외교 사절들을 초청하고 국영방송을 통해 중계된 연설을 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중동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한 인물이라고 칭송한 뒤 “그가 미군 장성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아주 아주 쉽게 제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어느 곳에서든 미군 장성을 죽일 수 있었으나 중동의 안정을 위해 절대 그렇게 하지 않고 자제했다”고 말했다.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내 미군 기지들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해선 “테러리즘과 범죄에 맞서기 위해서였다”면서 “우리는 이웃 국가를 침략하려고 미사일을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이 이란에 가하는 제재는 100% 비인도적”이라며 “그들의 전면적 제재에도 이란의 모든 경제 지표는 지난 8개월 완전히 안정됐고 우리는 미국이 실수로 저지른 제재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라고 자평했다. 우연의 일치로 이슬람혁명 기념일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폭사한 지 40일이 되는 날이다. 한국에서 49재를 지내는 것처럼 이슬람 시아파는 죽은 지 40일째에 망자를 추모하는 아르바인 행사를 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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